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손원평님의 <서른의 반격>을 마흔 훌쩍 넘은 나이에 읽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었었단다. 그래서 손원평님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어. 그래서 재워두었던 책이 바로 <아몬드>라는 책이란다. 손원평님을 유명하게 만든 소설이라고 할 수 있고, 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기도 한 책이란다. 졸린 눈의 얼굴을 가진 소년을 그린 앞표지. 왜 제목이 아몬드일까? 아몬드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소한 견과류. 머리에 좋다고 해서 하루에 몇 개씩 먹으면 좋다고 하는 그 아몬드. 이 소설의 제목이 아몬드인 이유는…. 지은이의 아몬드가 고장 났기 때문이란다. 사람한테 무슨 아몬드가 있냐고? 다음 글을 읽어 보면 이해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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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아미그달라라든지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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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과학 시간에 어렴풋이 편도체라는 것을 배운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편도체가 공포를 자각하고 기분 나쁨과 좋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 같구나. 그러니까 주인공이 좋고 나쁘고, 무서운 그런 감정들은 느끼지 못하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갖고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란다.


1.

그 소년의 이름은 선윤재였단다. 어렸을 때부터 좋고 나쁜 감정을 몰랐고, 더 큰 걱정은 두려움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위험 감지 능력도 없어서, 차가 달려와도 가만히 서 있었단다. 그렇다 보니 멍청하다는 소리도 듣고 놀림도 많이 받았어. 가족은 엄마와 단둘이었는데, 엄마가 정성스런 사랑으로 이를 극복해 나갔어. 그것도 역부족 정을 끊고 살았던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윤재의 외할머니한테 도움을 요청했어. 그들은 화해를 하고 같이 살았고, 윤재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도록 최선을 다했어.

윤재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게 되었어. 그러다가 열여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려고 외식을 하러 갔다가 어떤 괴한의 공격을 받아서 할머니는 죽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었어. 그 자리에서 윤재는 아무것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했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바라만 보고 있었어. 그 괴한은 자살을 했고, 그 괴한의 유서에는 웃는 사람과 함께 죽겠다고 써 있었어. 사회부적응자의 무식한 결심 때문에 그렇게 윤재는 혼자가 되었단다. 그리고 윤재의 사정을 모르는 시선들은, 윤재의 무반응에 대해 비난을 하였지.


2.

어떤 교수가 찾아왔어. 죽어가는 아내에게 아들 노릇 좀 해달라고 했어. 잃어버린 자기 아들과 비슷하게 생겼다면서어렵지 않은 부탁이라서 윤재는 그 부탁을 들어주었지. 그런데 그 교수의 아내의 장례식장에 진짜 아들이 나타났어. 곤이. 곤이는 보호시설에서 자랐는데, 자라면서 문제아가 되어 있었지. 소년원도 다녀왔어. 그래서 곤이 아버지는 곤이를 찾았으면서도 아내에게 데려가지 않은 거야. 곤이 또한 참 불쌍하구나. 곤이는 윤재가 같은 학교였어. 곤이는 윤재를 괴롭히고 폭행을 휘두르기도 했어. 하지만 윤재는 아무런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지. 윤재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니까 말이야.

곤이 아버지가 윤재에게 와서 미안하다고 했고, 윤재뿐만 아니라 윤재 엄마의 치료비도 모두 다 주겠다고 했어. 윤재 엄마가 사고 나기 전까지 헌책방을 운영했는데, 사고 이후에는 윤재가 방과후에 그 헌책방을 운영했단다. 어느날 곤이가 책방에 찾아왔어. 곤이도 외롭고 힘들었던 거야. 윤재가 곤이에게 손을 내밀자 곤이도 손을 내밀었어. 그렇게 그들은 친구가 되었단다. 윤재와 친구가 되었지만, 곤이는 가끔씩 다른 학교의 불량배와도 어울렸어. 어느날 수학여행 회비를 모은 돈이 사라졌는데, 그 돈이 곤이 가방에서 발견되었어. 곤이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그렇지 않았어.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지. 나중에 그의 결백이 사실로 밝혀졌지만 아무도 그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어.

곤이가 사라졌어. 윤재를 곤이를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어. 그 당시 윤재는 도라라는 소녀와 애틋한 감정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 감정보다 곤이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어. 우여곡절 끝에 곤이를 찾았는데, 곤이는 소년원에서 만난 철사라는 무서운 선배와 함께 있었어. 곤이는 많이 맞아서 정신을 거의 잃고 상처투성이였어. 윤재는 철사에게 곤이를 데려가겠다고 했고, ‘철사는 그런 윤재에게 폭행을 했고, 곤이가 만류했지만, 윤재는 칼에 찔려 정신을 잃고 말았단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어. 도라가 경찰에게 신고를 해서 윤재가 살아날 수 있었어. 그리고 더 반가운 소식식물인간이었던 윤재 엄마가 휠체어에 타고 윤재의 병실로 찾아왔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해피 엔딩이었어. 소설은 끝났지만, 그들의 뒷이야기는 행복만이 이어지기를곤이도 정신을 차렸겠지. 윤재와 곤이는 더욱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겠지. 그리고 엄마도 점점 회복을 해서 다시 행복을 하나하나 쌓아가겠지

…..

약간은 예상된 결말이었지만, 잔잔한 감동도 있었고 나쁘지 않았단다. 어떤 사람을 볼 때 겉으로만 단편적으로 보면 안 된단다. 편견을 가지고 보면 안되고…. 윤재처럼, 병 때문에 어떨 수 없이 상식 밖에 행동을 할 수도 있거든.


PS:

책의 첫 문장 :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책의 끝 문장 :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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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20-04-04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감정을 지닌, 그로 인해 공감도 할 수 있는 ‘정상인’들이 더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부분을 눈여겨 읽었어요.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bookholic 2020-04-05 00:50   좋아요 1 | URL
그런 비정상적인 ‘정상인‘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휴일 되시길 바라고요...^^
 














(38)

흥미로운 것은 헌종 대의 증축이 마치 왕조의 마지막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의 종말과 함께 정전과 영녕전의 신실이 모두 채워지고 더 이상의 빈 공간이 없어졌다. 정전의 마지막 신실인 제19실에는 순종을 모셨고, 영녕전의 마지막 칸에는 영친왕을 모시면서 16개 신실이 다 찼다. 그러고는 더 모실 신위도 빈 신실도 없었으니 왕조의 종말은 거의 운명적인 것이었다.


(53-54)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 겨울이 더 좋다. 종묘의 단풍은 울긋불긋 요란스레 화려한 것이 아니라,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청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한다. 그때 종묘에 가면 아마도 인생의 황혼 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잘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뒷산 너머에 있는 창덕궁 후원의 단풍이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한다면 종묘의 단풍은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라 할 만하다.


(61-62)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완성된 <국조오례의>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길례는 조상과 대자연에 복을 기원하는 종요, 사직, 선농(先農), 선잠(先蠶), 기우(祈雨), 산천(山川)에 지내는 제례다. 가례는 기쁨의 의식으로 명절 의식, 왕비 책봉, 왕자와 공주의 혼례, 원로대신에 베푸는 양로잔치인 기로연(耆老宴) 등이며 흉례는 장례의식으로 국장(國葬)을 비롯한 상례(喪禮). 빈례는 외교 의식으로 중국, 일본, 유구(지금의 일본 오키나와) 등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이고 군례는 군대 의식으로 임금이 참석하는 활쏘기, 군대의 열병(閱兵), 무술 시범식이다.


(104)

돌이켜보건대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태조 4(1395)이고 창덕궁이 창건된 것은 태종 5(1405)이었다. 조선 개국 후 10년 사이에 전혀 다른 성격으로 지어진 두 궁궐은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비극의 소산이었지만 결국 우리 문화유산의 큰 자산이 되었다. 당시 이 엄청난 두 차례의 대역사(大役事)에 동원되어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던 조상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희생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106-108)

창덕궁을 제대로 답사할 양이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 월대(月臺)에서 시작해야 한다. 궁궐의 모든 주요 건물 앞에는 지표에서 높직이 올려쌓은 평편한 대가 있는데 이를 월대라 한다. 달 월() 자에 받침 대()자를 썼으니 그곳에 서면 달빛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듯 하늘이 열린다는 뜻일 것이다. 언어의 묘미가 물씬 풍기는데 중국에서는 기차역 플랫폼을 월대라 부른다.


(138)

건축의 눈이 밝지 않은 분이라도 여기서 바라보면 한옥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멋을 한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이 정무를 보는 선정전은 엄숙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희정당은 우아하면서도 화려하고, 왕세자의 공간인 성정각은 밝고 안온해 보인다. 전통 한옥의 모든 것이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163)

건축적으로 대조전은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건축 형식을 무량각(無樑閣)이라고 하는데 궁궐 건축에서만 보인다. 확실한 예기는 아니지만 임금이 머무는 대조전에 용마루가 없는 것은 임금이 곧 용이기 때문에 두 용이 부딪치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창경궁의 통명전 등 왕과 왕비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이 대개 무량각인 것을 보면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 형식이 구중궁궐 안에서도 지밀한 건물임을 도드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218)

이에 대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랑스 건축가협회장 로랑 살로몽(파리 벨빌 건축학교 교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전통 건축물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이고 풍경이다. 인위적이로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 위에 그냥 얹혀 있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전통 건축은 미학적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230)

우리나라 정원에서 건물은 마치 자연이라는 거실에 배치된 가구 같아서 건물이 있음으로 해서 경관이 생기고 건물의 크고 작음에 따라 다양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부용지를 거실이라고 치면 연못은 폭넓은 화문석(花紋席) 같고, 규장각 주합루는 듬직한 반닫이와 기품 있는 의걸이장 같고, 부용정 정자는 화려한 화초장(花草欌) 같고, 영화당은 단아한 서안(書案) 같고, 비각은 곱상한 연상(硯床) 같다.


(262)

서양인은 한결같이 인간적 체취를 말한다. 가는 곳마다 지금도 사람이 살면서 사용하는 것 같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을 경험하고 온 분들은 한국의 미학이 따로 있음을 창덕궁 후원에서 비로소 느낄 수 있다며 이곳 하나를 본 것만으로 이번 방문에 만족한다고 한다. 이런 창덕궁 후원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은 진정 서울 사람의 복이자 큰 자산이다.

후원의 관람 코스는 낙선재 옆 출입구에서 시작하여 부용정, 애련정, 존덕정, 옥류천, 연경당을 두로 관람하고 규장각 위쪽 산길로 해서 출구로 돌아나가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즐거운 산책이 된다. 나의 창덕궁 후원답사기는 앞으로 찾아올 분들을 위해 이 코스대로 따라가겠다.


(299-301)

나는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우친 바 있다.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숫자는 1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의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1만 개면 달 역시 1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로 하나뿐이다.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고 무리 지어 쫓아다니며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었다. 모양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다른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바보같이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고 얕은 자, 용감한 자, 겹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을 아끼는 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 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천 가지 백 가지일 것이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가슴에 찔리는 바가 있었다. 윗사람에게 나는 어떤 유형의 인간이었던가 생각하니 아차 싶었다. 그러나 정조는 이 모두를 끌어안는 너그러움을 말한다.

내가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내 마음으로 미루어도 보고 일부러 믿어도 보고, 또 그의 재능의 시험해보기도 하고 일을 맡겨 단련도 시켜 보고, 혹은 흥기시키고 혹은 진작시키고 규제하여 바르게도 하고, 굽은 자는 교정하여 바로잡고 곧게 하면서 그 숱한 과정에 피곤함을 느껴온 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다.

근래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쓴 것이다.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301~303)

이어서 정조는 신하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하여 말했다.

트인 자를 대할 때는 규모가 크면서도 주밀한 방법을 이용하고 막힌 자는 여유를 두고 너그럽게 대하며, 강한 자는 유하게 유한 자는 강하게 대하고, 바보 같은 자는 밝게 어리석은 자는 조리 있게 대하며, 소견이 좁은 자는 넓게 얕은 자는 깊게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를 쓰고 겁이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을 쓰며, 총명한 자는 차분하게 교활한 자는 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고, 희석하지 않은 순주(醇酒)를 마시게 하는 것은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며, 모난 자는 둥글게 원만한 자는 모나게 대하고,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이 있는 면을 보여주고 대범하게 무게가 있는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면을 보여준다. 말을 아끼는 자는 실천에 더욱 노력하도록 하고 말재주를 부리는 자는 되도록 종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며, 엄하고 드센 자는 산과 못처럼 포용성 있게 제어하고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는 포근하게 감싸주며,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을 기하도록 권하고 실속만 차리는 자는 달관하도록 면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조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 말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은 것과 같다.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만천(萬川)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내가 머무는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써서 나의 호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면(1798) 12 3일이다.”


(306)

어디까지가 권력기관입니까?

윗분이 말씀하시는데 말을 끊는 것은 예가 아니었지만 노 대통령은 나를 불경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체 없이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 그리고 언론기관입니다. 쉽게 말해서 전화 와서 받았는데 기분 나쁘면 다 권력기관입니다.”


(331-332)

세종은 즉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태종을 모시기 위해 1418년 창덕궁 곁에 수강궁(壽康宮)을 지었다. 이것이 창경궁의 시작이다. 그뒤 성종은 무려 세 분의 대비를 모시게 되었다. 할머니인 세조 비(정희왕후 윤씨), 작은어머니인 예종 계비(안순왕후 한씨), 생어머니인 덕종 비(소혜왕후 한씨) 등이다.

이에 성종은 수강궁을 중건하고 정전인 명정전, 정무를 보는 문정전 등을 지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고 창경궁이라 했다. 창경궁은 빛나는 경사라는 뜻이며 궁의 둘레가 4,325척이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담장을 맞대고 있어 둘을 합쳐서 동궐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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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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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무척 즐겨 듣던 팟캐스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줄여서 지대넓얕이 종방을 한 지 3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구나. 종방을 할 때만 해도, 얼마 안 있어 시즌 2를 할 것이라고 아빠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여 아쉬움을 달랬을 거야. 이렇게 오랫동안 감감무소식이 될 줄이야. 지대넓얕 팬들이 그토록 요청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시즌 2는 없는 것인지소식이 없구나. 최근에 채사장 혼자서 유튜브 채널을 열었는데, 혼자가 아닌 넷을 원한다고….

가끔 TV를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아빠는 TV를 거의 보지 않으니그들을 볼 수도 없어. TV를 그들을 본다고 해도, 그들의 진정한 모습은 지대넓얕을 통한 모습이어야 한단다. 그런 와중에 채사장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지난번 책에 약간의 실망감을 준 이후, 첫 번째 내놓은 책. 공존의 히트를 쳤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단다. 채사장의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권과 2권이 출간되었었는데, 이번에 나온 것은 3권이 아니고, 0권이란다. 이번에 나온 책이 흐름상 1권과 2권의 앞에 배치되어 있어야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제목을 붙인 거야.

책 제목에 붙은 “0”는 시간적으로 12의 앞부분을 의미할 수도 있고, 0차원을 이야기할 수도 있단다. 우주가 탄생하기 전에 무엇이 있었을까? 우주는 빅뱅을 통해 탄생된 이후 계속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을까. 시간도 존재하지 않고, 공간도 존재하지 않던 그 시절. 그래서 차원조차 없던, 0차원의 세계. 이 책에서는 그때부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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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0차원.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좌표축의 개수가 0인 세계. 여기에는 가로, 세로, 높이가 없고 시간의 차원도 없다. 이 세계는 시간과 무관한 그저 의 세계다. 점의 수학적 정의는 크기를 갖지 않는 최소의 단위. 이 모순되어 보이는 정의처럼, 0차원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크기도 갖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다. 시간, 공간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만약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어떤 존재일까? 그는 아마도 세계 그 자체일 것이고, 그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세계는 나다. 나는 세계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세계이고, 나는 나다.’ 그는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에 무척이나 어색함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존재와 부재는 구분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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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를 이야기를 할 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인류 탄생의 시간의 이전까지 가게 되고, 그곳부터는 역사라기보다 과학이라고 봐야겠지. 그렇게 생명의 탄생의 시간에 다다르게 되고, 또 계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구의 탄생에 다다르고, 우주의 탄생에 다다르게 된단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빅히스토리라고 한다고 들었어. <호모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도 그런 기법으로 <호모 사피엔스>를 기술했었지. 채사장님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제로 편>도 그런 부류로 볼 수 있겠구나. 비록 인류 탄생 이후 보편적인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지식의 탄생과 철학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나 할까. 채사장만의 빅히스토리 이야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구나.

누군가는 채사장에 대한 책 구성을 비판하는 이도 있지만, 모든 사람의 요구조건을 어떻게 만족시키겠니. 아빠에게는 좋았단다. 채사장의 해박한 지식. 그것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여 하나의 날줄로 잘 엮는 능력. 그리고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설명해주는 능력. 이번 책에서도 그런 것은 느낄 수 있었단다. 아빠는 독자로써 그것을 모두 소화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

우주의 탄생 이야기를 하자면, 양자역학이니 다중우주론이니 끈이론이니어려운 현대 과학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였고, 우주 탄생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다 보면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절로 하게 되었단다. 아빠는 신비한 우주의 이야기를 읽거나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란다. 그 광활한 우주의 비밀을 인류가 다 밝혀내기 전에 인류가 멸망하게 되겠지만 말이야. 우주의 이야기를 아빠가 좋아하는 이유 중에 또 하나는 우주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 자신의 존재가 아무 미미하게 되고, 그로 인해 왜 걱정을 하고,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아빠는 우주에 관한 영상을 보거나, 여건이 안되면 눈을 감고 광활한 우주를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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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우주의 크기를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지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초월적 거대함 앞에서 내 일상의 사소함은 너무도 하찮게 느껴진다. 현대의 이르러서도 인류가 을 놓지 못하는 철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가치 때문이다. 이 거대한 세계를 창조한 신이 인간의 기원일 것이라는 상상의 나의 존재론적 하찮음을 해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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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탄생을 지나 지구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지구 상에 생명이 나타난 이후는 진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인류가 탄생하게 되고, 인류가 지구 곳곳에 퍼지게 되고, 또 시간이 나자 문명이 탄생하게 된단다. 그리고 우주 탄생 이후의 시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른 시간으로 인류는 진보(?)하게 된단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지식의 뿌리가 되고 있는 것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이야기하고 해주었단다. 베다, 도가, 불교, 철학(서양의 철학), 그리고 기독교까지이것들이 다른 것 같지만, 모두 자아와 세계, 그리고 그것 간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지은이 채사장은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베다,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는 아빠가 정리해서 이야기하기에는 방대하구나. 아빠가 생각하기에, 채사장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들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의 지식이었노라인 것 같았단다.


2.

그래도 부족했단다. 채사장의 간만의 신간에 반가웠고, 지난 책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 느꼈던 실망감을 어느 정도 채워주었지만, 아직도 덜 채워졌단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팻캐스트 지대넓얕시즌 2. 채사장, 이독실, 김도인, 깡샘 그들의 복귀만이 부족함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구나.


PS:

책의 첫 문장 : 파잔(phajaan)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이다.

책의 끝 문장 : 당신이 언젠가 당신의 내면 안에서 찬란히 빛나는 세계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과학자들이 우리의 피 같은 세금을 써가며 당장 써먹을 수도 없는 수많은 우주를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중 우주론이 오늘날의 과학이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문턱을 넘을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중 우주론은 막다른 길에 봉착한 현대 물리학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 문제, 우주상수와 미세 조정의 문제, 양자 얽힘의 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끈이론과 M이론 등 인간의 이성 안에서 모순을 일으키는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한 큰 그림을 제공해준다. - P44

만약 지금의 수치와 달리 아주 작은 차이만 있었더라도 우리 우주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 질량이 이미 정확하게 밝혀져 있는데, 중성자가 양성자보다 조금 더 무겁다. 하지만, 그 차이는 매우 미세해서 고작 전자 2개 정도의 질량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차이는 사실 너무도 미미하다. 그런데 이 미세한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차이를 만들었다. 더 무거운 중성자가 붕괴하며 양성자가 되는 방식으로 우리 우주의 모든 물질을 구성한 것이다. 만약 반대였다면 양성자가 약간 더 무거웠다면 양성자가 붕괴하여 중성자가 되는 방식으로 원자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종류의 물질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은하계와 태양계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며, 우주의 구조도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과 인간의 탄생이 불가능한 건 말할 것도 없다. - P78

그렇다면 신이란 무엇인가? 크리슈나는 신의 본성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그대에게 자아의 신성(神聖)에 대해 설명하겠다.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틀을 갖지 않는다. 자아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중간이며 끝이다. 자아는 모든 존재의 탄생이고 시작이며, 끝이자 죽음이다. 자아는 영원하니 결코 태어난 적이 없고 결코 죽은 적이 없다. 자아는 모든 곳과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하고 자기 속에 모든 만물이 존재한다. 자아 없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란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그 어떤 것도 없다." - P229

노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덕이 없는 사회에서는 인이 강조되고, 인이 없는 사회에서는 의가 강조되며, 의마저도 없는 사회에서는 예만 강조된다. 쉽게 말하면, 자기 내면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인자함이 중요시되고, 인자함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의리가 중요해지며, 의리가 사라진 사회에는 예절이 강요된다는 것이다. - P274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무아설에 있다. 자아의 실체를 부정하는 세계관은 지금까지의 다른 사상이나 종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개념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포함하는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는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을 상정하고,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 합리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도 사유하는 존재로서 자아의 자기동일성을 강조하며, 특정 종교나 사상을 떠나서도 보통의 사람들에게 매우 상징적이고 친숙한 사고방식이 ‘내가 있다’는 전제이니 말이다. - P383

플라톤은 우리의 머릿속에 혹은 영혼 속에 절대적이고 완벽한 이성적 개념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 이렇게 이데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의 영혼은 원래 이데아의 세계에 있었지만 육체를 갖고 이를 망각한 상태로 지상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를 상기론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지식은 현실의 경험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에 남아 있는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얻게 된다. - P430

흔히 서양 사상은 두 가지 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헬레니즘은 그리스*로마의 정신을, 헤브라이즘은 <구약>성서의 세계관을 말한다. 헬레니즘은 서양 철학의 기원이 되었고, 헤브라이즘은 기독교의 기원이 되었다. 이것은 언뜻 대립하는 사상처럼 보인다.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인본주의적 철학과 절대자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는 신본주의적 종교, 하지만 대립하는 두 사상은 근원에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것은 이원론이다. -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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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렇다면 선거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기득권층 내부의 싸움, 즉 사회적으로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 엘리트들끼리의 권력 쟁탈 게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기득권층의 영구적 권력 향유를 보장하는 합법적 메커니즘인 것이다. 사실, 선거(election)라는 말 자체가 원래 엘리트(elite)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일찍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만약에 선거로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면, 선거는 벌써 오래전에 (지배층에 의해) 불법화되었을 것이다.”


(7)

그러나 미국의 정치, 문화 풍토에서는 매우 낯선 개념,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샌더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이변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최근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샌더스가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전 대통령 오바마와 클린턴 부부를 포함한 민주당 주류파와 <뉴욕타임즈>를 위시한 진보파언론들의 샌더스의 대한 거부감은 갈수록 노골적으로 되고 있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이 무엇이건, 그들이 샌더스를 반대하는 이유는 극히 단순하다. , 민주, 공화 양당체제 속에서 오랫동안 엘리트로서 온갖 특권을 누려온 그들은 사상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사회주의자샌더스와는 결코 동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선거제도하에서 샌더스와 같은 혁신적인 비전을 가진 급진파가 정치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거의 모든 나라의 엄중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40)

의회는 중세 초기의 혼란이 가라앉고 점차 봉건적 질서가 안정되던 시기의 유럽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제도이지만, 그 기능은 왕과 귀족들의 회의의 장으로서 민주주의의 기구 따위는 전혀 아니었다. 영국의 경우 엘프레드대왕의 앵글로-색슨 왕국 시절부터 위탄(witan)’이라는 기구가 있었지만, 이는 지혜로운 자들의 모임이라는 그 말의 의미대로 전쟁이나 징세 등과 같은 국가 대사를 놓고서 왕과 귀족들이 숙의하고 합의하는 장이었다. 이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바이킹들을 이끌고 윌리엄 1세가 영국을 정복한 이후 그나마 위탄도 폐지되고, 전권을 쥔 정복왕이 법률을 정할 적에 자문을 행하는 귀족과 성직자들의 회의체 정도만 남게 된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 회의체에 귀족과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영국 각 지역의 기사들 및 시민들(burgess)도 참여하게 되면서 의회의 모습이 갖추어지게 되고, 14세기가 되면 이른바 모범 의회와 같은 틀이 만들어진다.


(44)

2차대전이 끝난 뒤 이렇게 마비되어버린 의회민주주의를 되살린 핵심적인 받침대가 바로 정당이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정당이란 뜻과 이익을 함께 하는 도당에 불과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그 전과는 다른 각종 대중정당들-대표적으로 노동자들의 사회민주당-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들이 완전히 의회 내의 제도 정당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2차대전 이후의 일이었다. 이 정당들의 의회 바깥에서 사회 전체를 양분하는 노동과 자본이라는 양대 세력을 각각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고, 각각의 입장에서 산업사회 전체를 어떻게 개조하고 운영할 것인지의 구체적인 방안과 또 그것을 실현할 인물들 그리고 홍보하고 정당화시키는 조직 동원의 장치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당정치의 안정으로 인해 의회는 산업사회의 통치 주체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정당들은 그 자체로 준비된집권세력이었다. 선거는 그러한 집권세력 몇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하는 행위가 되었으며, 의회는 그러한 집권 정당의 준비된 통치가 야당의 견제 속에서 관철되는 장으로 성격이 변하게 되었다.


(69)

중증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은 과연 어느 쪽인가. ‘만세일계현인신천황의 이름으로 받들어 모시는 신도를 사실상의 국교로 삼고 그 신자들이 구성하는 일본회의라는 초우익 단체가 사실상 지배하는 신국(神國)’, ‘신주(神洲)’라는 일본의 주술적 모모타로 후예 우익세력, 그리고 그들과 공명하는 이 땅의 우익이 의기투합해 도깨비사냥에 나서는 것, 그리하여 좋았던 그 시절을 탈환하자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야만적 종족주의 아닌가.


(75-6)

중세에 들어와 아랍인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만들고 세력을 규합한 뒤 가장 먼저 공략에 나선 상대가 이란이었다. 보통 이란을 아랍국으로 착각하지만 아랍과 이란은 뿌리도 언어도 다르다. 비슷한 점이라면 같은 이슬람을 믿는다는 점,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 정도다. 이란은 이란이고 아랍은 아랍이다. 실제 아랍국들은 이란을 경외 혹은 백안시한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 미국은 물론이고 사우디 같은 아랍국들도 모두 아랍 형제 이라크를 지원했었다.


(94)

하지만 IOC 위원들을 보라. 그들에게는 900달러라는 수당이 매일 지급되고, 5성급 호텔에서의 숙박과 같은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3주 동안이면 2만 달러나 된다. 선수들이 인생을 걸고 획득한 메달 이상의 금액이 주어진다. 선수들이 어떻게 취급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시합을 보면서 코를 고는 자들이 생애를 걸고 단련한 선수들을 제쳐 놓고 900달러라는 일당을 받는다. 이러한 정보가 널리 알려진다면 선수들이 단결하여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역전극이 벌어진다. 올림픽이 변할지도 모른다.


(103)

이처럼 논은 늪이 생산할 수 없는 주곡을 대량 생산하면서도 늪과 비교할 수 없는 광활한 면적으로 늪과 같은 생태적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거대한 습지다. 늪만 습지가 아니다. 논은 수심이 얕고 규격이 작게 분할되어 오히려 생태적인 작은 인공 습지들의 집합이다.

논댐의 가장 큰 생태적 역할은 토양유실을 방지하는 것이다. 경사진 산지와 밭에서는 비가 올 때마다 겉흙이 조금씩 씻겨 내리거나 때로 크고 작은 산사태가 이어진다. 그런데 비탈밭이나 산자락에도 계단식으로 논을 만들면 토양유식을 거의 완벽하게 방지한다. 논의 지면은 경사가 아닌 수평이기 때문에, 그리고 논두렁으로 물을 막아 놓고 있기 때문에 비가 와도 논바닥 흙이 씻겨 내리지 않는다. 물꼬 입구까지 차면 흙의 유실 없이 물만 물꼬를 통해 도랑이나 논 옆에 개설한 수로를 통해 흘러간다.


(133)

, 여름, 가을이 있고 유년 장년 노년이 있듯이 인종에게도 태허(太虛) 다음 봄의 세계가 있었을 것이고, 여름의 무성이 있었을 것이고, 가을의 귀의가 있을 것이다. – 신동엽, <시인 정신론>

마치 가을 들판의 농부들처럼 저녁 빛 속에서 다시 갈 길을 찾자 하고 외치는 것 같다. 바로 여기에서 질문되어야 할 것이 그가 농경적 상상력을 고집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는 현대문명이 야기한 존재의 망각현상의 원인을 농경문화의 종결이 가져다주는 대치 체험의 상실로 본다. 그로 인해 발생한 가장 뼈아픈 결손은 영성의 소멸일 것이다. 인간이 농업을 붙들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대지와의 연대감이 살아 있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교통이 불편하고 네트워크가 열악한 시골에서 사는 것을 현대인들은 고립된 존재로 생각하기 쉬우나 농부는 안 안에 앉아서도 기러기가 나는 것을 알고, 외양간의 가축들과도 우정을 나누며, 들판의 곡식과 대화도 한다. 그 외딴곳 한 모퉁이에 서서 다음 날 펼쳐질 날씨를 귀신같이 아는 것을 영성적 소통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198)

이제는 나의 거실 한쪽 벽면의 책장에도 적지 않은 책이 무질서하게 꽂혀 있다. 어느 날 잠깐 책으로 눈이 갔다.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읽다 만 책, 읽었던 책, 미처 못 읽고 놓아둔 책, 저들을 어찌할거나? 저 아까운 책들을 놓고 저세상으로 가게 되면저 속에 알천이 담겨 있는데, 미처 못 읽은 책, 언젠가는 꼭 읽고 싶었는데, 순간 애간장을 저미는 듯 가슴에 뜨거운 김이 훑고 지나갔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내게는 귀중본 같은 소유물인데. 여러 차례 폐기하고 알짜배기만 남았는데얼추 호명해보니 리영희, 법정, 권정생, 장준하, 한하운, 최명희, 조정래, 이청준, 이문구, 김종필, 빅터 프랭클, 헨리 데이비드 소로, 프리모 레비, 헬렌 니어링,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정갈해지는 것 같다.


(198-9)

그런 분은 그렇다 쳐도 나야 문학의 우아한 멋도 깊이도 배워본 것 없지만, 책을 버리면서는 얼른 버리지 못하고 현관 밖에 일단 내놓고서 며칠을 지나는 사이 미련스럽게 다시 매만져보게 된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아까운 생각에 골라서 몇 권을 다시 들여놓는 버릇이 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책은 그런 것이었다. 책 속에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세계가 있다. 희망과 위안으로 나를 여물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책에서 생각을 키웠고,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저 너머 세계를 느껴보는 것도 책에서였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책 속세는 향기를 품은 어머니의 살 내음 같은 것이 있다. 젊은 날 허둥댈 때 그 내음에 기대어 불안한 마음을 잠재워보았다.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소곤거림도 책에서 수시로 들었다. 이 세상을 떠난 먼 나라로 갈 때 권정생의 책 한 권 품속에 안고 갈 수는 없을까. 죽음 뒤의 삶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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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 인간 이봉창 이야기
배경식 지음 / 너머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궁금해하는 독립 운동가 중에 이봉창이라는 분이 있단다. 천황을 노리고 폭탄을 던졌지만,  불발로 그쳐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던 이. 그가 했던 일은 그것 하나뿐이었단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궁금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여러 책에서 단편적으로 보았던 그의 호방한 모습 때문이었어. 특히 김구의 백범일지에 적혀 있는 김구와 이봉창의 일화는 가슴 뭉클하게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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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데 그 청년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당신네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왜 일본 천황을 안 죽이오?"

이 말에 어떤 민단 사무원이,

"일개 문관이나 무관 하나도 죽이기가 어려운데 천황을

어떻게 죽이오?"

한즉, 그 청년은,

"내가 작년에 천황이 능행을 하는 것을 길가에 엎드려서 보았는데,

그때에는 나는 지금 내 손에 폭발탄 1개만 있었으면 천황을 죽이겠다고

생각하였소"

하였다.

나는 그날 밤에 이봉창을 그 여관으로 찾았다.

그는 상해에 온 뜻을 이렇게 말하였다.

"제 나이가 이제 서른한 살입니다. 앞으로 서른한 해를 더 산다 해도

지금까지보다 더 나은 재미는 없을 것입니다. 늙겠으니까요.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에 인생의 쾌락이란 것은

대강 맛을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 사업에

몸을 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

이씨의 이 말에 내 눈에는 눈물이 찼다.

                 - 김구 <백범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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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이봉창에 대한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이봉창에 관한 책 두 권을 사두었다가 이번에 그 중에 한 권을 읽었단다.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부제 <인간 이봉창 이야기>를 보지 않고, 제목만 보았다면 어떤 일본인이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이야기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왜 지은이는 제목을 그렇게 지을 수 밖에 없었을까. 그 이야기를 해줄게


1.

독립운동가들의 전기를 보다 보면, 가끔 독립운동가를 미화하여 영웅시하는 경우가 있곤 한단다. 잘 한 것에 대해 좀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은이 배경식님은 좀더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서 써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셨어. 이 책을 출간하기 전까지 나온 이봉창의 전기들이 이봉창에 대해 좀 미화를 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시면서, 좀더 사실에 근거해서 쓰셨다고 했어. 그렇다고 이봉창의 업적을 깎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인간 이봉창에 대해 솔직하게 써서 이봉창에 대해 더 정확히 알리고 그의 인간적인 고뇌도 함께 느끼게 해주려는 것은 아니었나 싶구나.

여러 책들을 참고를 했는데, 이봉창의 옥중수기 <상신서>도 참고했다고 했어. 이 책의 뒷부분에 이봉창의 옥중수기 <상신서>도 실려 있어서 같이 읽어서 좋았단다. 그런데 문득 아빠는 그런 생각을 했단다. 일본 경찰들이 강제로 수기를 거짓으로, 그러니까 이봉창의 삶을 안 좋게 쓰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말이야.

책제목에 나와 있는 기노시타 쇼조는 이봉창의 일본식 이름이란다. 왜 그는 일본식 이름을 썼을까.

1900년 용산에 태어난 이봉창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하여 부유하게 살기도 했지만, 이봉창의 아버지는 일본인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집을 나갔어. 그래서 남은 가족들은 어려운 생활을 했다고 했어. 이봉창은 돈 벌 궁리를 하면서도 모던보이를 꿈꾸었던 사람이었어. 식민지를 사는 스무 살의 젊은이라면, 독립 운동에 관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이봉창은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대. 그가 관심 있는 것은 돈이었어.

이봉창은 인구센서스의 조사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이 직업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 조선총독부로부터 신분을 보장 받은 이들만 할 수 있는 직업이었던 것이지. 하지만 조선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는 차별을 받았어. 승진이나 임금 모두 차별을 받았지. 누군가로부터 일본에 가면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일본으로 향했단다.


2.

일본에 건너간 그는 기노시타 쇼조라는 이름으로 일했어. 정말 임금을 많이 주었어. 그런데, 두 번째 임금은 처음보다 적게 주는 것이었어. 알고 보니, 처음에는 그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많은 돈을 주었다는 거야. 일본에서도 차별을 받았어. 일본에서 5년 동안 살았는데, 5년 동안의 생활에서 그가 얻은 것은 그에게도 뜨거운 심장이 있다는 사실. 조선 독립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조선이 독립을 되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에서 능력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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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그때의 심정을 이봉창은 <상신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때부터 나도 직장일이나 생활이 점점 타락으로 치달아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고, 따라서 사상도 저절로 변해 어떤 사상 운동에 몸과 마음을 던지기로 마음먹고 기회를 엿봤으나 좋은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때의 사상은 특별히 정한 사상은 없었다. 무엇이든 좋다.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갈 기분이었다. 그후 다시금 생각하게 돼 나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선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우리 2천만 동포를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

============================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일본을 떠나 중국 상해로 갔단다. 그곳에서 김구를 만났고, 의거의 뜻을 전했단다. 김구도 임시정부의 영향력이 쇠퇴하여 반전의 카드를 도모하고 있던 시기에, 이봉창과 같은 이를 만나 기뻐했단다. 이봉창은 김구의 비밀 조직 한인애국단에 가입을 하고 김구는 의거의 성공을 위해 이봉창의 계획을 비밀로 했어. 그렇다 보니, 임시정부의 다른 요인들은 이봉창을 무시하고 왜영감이라는 모욕적인 별명까지 붙였어. 그렇게 일년을 준비하고, 드디어 일본을 다시 향했단다.


3.

지은이는, 이봉창이 상해를 떠나 도쿄에 도착해서 거사를 치르기까지 20일간의 이야기를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단다. 그 사이에 술도 마시고 유곽에서 유흥을 즐긴 이야기도 해주었어. 이봉창의 감정이입을 해보기로 했어. 이 의거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을 거야. 의거에 대한 준비도 혼자 준비해야 했어. 상해에서 김구가 돈을 지원해 주었지만, 적지에서는 혼자 준비해야 했어. , 외롭지 않았을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았을까.

그는 모던보이를 꿈꾸던 이답게 모던보이의 생활을 하면서 의거를 준비했다고 보면 돼. 일본 경찰들은 그런 이봉창의 겉모습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까 싶구나. 지은이는 이봉창이 폭탄 관리에 부주의해서 불발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이봉창 그도 걱정을 했을 거야. 폭탄이 불발이라도 되면 어쩔까 하고그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업적을 과소평가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변절이 난무하고 친일파로 전향을 밥 먹듯 하던 그 시절에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질 수 있는 강하고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던 이봉창. 누가 그와 같은 삶을 살겠는가. 그는 결국 1932년 사형 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단다. 우리나라 나이로 쳐도 고작 33.

….

그와 함께 한인애국단 소속이었던 윤봉길도 잇달아 의거를 일으켰어. 다행히 윤봉길의 의거는 성공했단다. 일본은 이봉창과 윤봉길의 배후가 누구인지 처음에는 파악하지 못했어. 김구가 스스로 자신이 배후라고 밝혔고, 쇠퇴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다시 한번 온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단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힘도 다시 갖추는 계기가 되었단다.

이봉창. 이 책을 통해 그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그의 짧은 삶을 함께 산 느낌이었단다. 그의 영화 같은 삶을 잘 연출해서 영화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러면 그에 대해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지 않을까 싶구나. 이름만 알고 있는 그에 대해서 말이야


PS:

책의 첫 문장 : 지금 우리는 두 장의 사진을 보고 있다.

책의 끝 문장 : 이옹의 말처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어머니와 동생 태준을 한 해에 한 번씩이라도 서로 만나봐야 죽은 다음에 만날 봉창에게도 이야깃거리가 있을 터인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봉창은 자신이 결코 일본인이 될 수 없는 조선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조선인임을 깨닫는 그 순간 이봉창은 일본인이 되어 어떻게 하든지 식민지 백성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나는 조선인이라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선에는 편지도 보내지 않았으며 또한 본명도 밝히지 않고 언제나 항상 일본이름을 쓰면서 어디에 가든 진짜 일본인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본명을 사용해서는 이 세상을 편안하고 태평스럽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언짢은 마음 참을 길이 없었고, 당당하게 본명을 쓰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 P109

그날 저녁 김구는 이봉창이 묵고 있는 여관을 찾아와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봉창은 김구에게 자신의 포부를 털어놓았다.

"제 나이 서른하나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하여도 과거 반생 동안 방랑생활에서 맛본 것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해로 왔습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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