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9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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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영혼의 집> 2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1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블랑카가 아버지 에스테반에 의해 장 드 사티니와 강제 결혼을 하고 북부 지역으로 이사를 갔잖니. 강제 결혼한 것 치고는 블랑카는 신랑이랑 비교적 원만하게 지내고 있었단다. 하지만, 장 드 사티니의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사진 암실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그의 실체를 확인하고 나서 그 길로 도망쳐서 수도에 있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단다.

엄마 클라라는 마치 블랑카로 올 것이라도 예상을 한 듯 다정하게 받아주었단다. 블랑카는 그곳에서 딸 아이를 낳았고 이름은 알바로 지었어. 알바는 엄마, 외할머니, 외삼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단다. 비록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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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알바는 그때까지 죄악이라든가 젊은 요조숙녀들이 지켜야 할 바른 몸가짐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고,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도 구분할 줄 몰랐다. 외삼촌 한 명은 복도에서 벌거벗은 채 가라테를 한답시고 뛰어다니고, 다른 외삼촌 한 명은 책 더미 속에 파묻혀 지내고, 외할아버지는 지팡이로 전화기와 테라스에 있는 화분들을 박살내고 다니고, 엄마는 촌스러운 가방을 들고 몰래 나갔다 들어오고, 외할머니는 삼각 테이블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고, 피아노 뚜껑을 열지 않은 쇼팽을 연주했다. 그런 것만 보고 자란 알바이니 당연히 틀에 박힌 학교 일과가 지겨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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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가끔씩 만나는 외할아버지 에스테반도 알바를 좋아했단다. 누구나 미워할 수 없는 천사 같은 아기였지. 하지만 에스테반은 다른 식구들과는 거의 교류를 하지 않고 농장에서 혼자 지냈단다. 알바가 혼자 다닐 만큼 크고 나서 혼자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농장에 갔단다.

블랑카는 페드로를 다시 만났어. 페드로 기억나지? 에스테반의 소작농의 아들로 블랑카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가 에스테반가 휘두른 도끼에 손가락 세 개가 날라간 사람, 바로 알바의 아빠잖니. 다시 만난 페드로는 가수가 되어 있었단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어.

알바가 일곱 살 때 외할머니 클라라가 죽고 말았단다. 예지력이 있던 클라라는 자신의 죽음도 예견하고 있었고, 죽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는 등 죽음을 준비했단다. 클라라가 죽고 나서 수도 있던 그들의 집은 그야말로 쇠락하고 말았단다. 재정은 늘 적자에 시달리고, 집 관리는 제대로 안되어 지저분했지.


1.

농장에서 혼자 지내는 에스테반에게 누군가 찾아왔어. 자신은 소작농의 아들이라고 밝힌 에스테반 가르시아라는 사람이었어. 이름이 에스테반과 같았는데, 에스테반은 자신을 존경한 어떤 소작농이 아들의 이름을 자신과 같게 지었나 하고 생각했단다. 사실은 사생아였어. 에스테반은 젊은 시절 난봉꾼이라서 사생아가 엄청 많았다고 했잖아. 에스테반 가르시아는 그 중에 한 명이었단다. 가르시아는 당돌하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그 당돌한 자신감이 마음에 들어서 에스테반은 돈을 빌려주었단다.

에스테반은 정치도 계속 하고 있어서 계속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단다. 어느덧 보수당의 정치 거물이 되어 있었어. 에스테반은 보수당답게 공산주의 사상뿐만 아니라 좌파 세력을 용납하지 않았어. 그의 첫 번째 정치적 목표는 공산주의를 척결하는 거야.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대부분 좌파였단다. 알바의 외삼촌인 하이메도 좌파였는데, 좌파 정치 세력의 리더이자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과 친분도 있었어. 알바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만난 미겔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단다.

미겔이라는 이름 1권에서 나왔었는데 혹시 생각나니? 알바의 쌍둥이 외삼촌 중에 한 명인 니콜라스의 여자친구 아만다의 어린 동생. 클라라의 집에도 자주 왔었다고 했었지. 알바라 어렸을 때도 몇 번 미겔이 찾아왔었어. 그러니까 어렸을 때 그들은 이미 만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당연히 기억을 못하지. 알바는 미겔의 영향을 받아서 노동자 시위에도 참여를 했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외할아버지 에스테반은 분노하다가도 알바를 걱정하기도 했단다. 아무리 평생을 나쁜 놈으로 살았어도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다들 비슷한가 보구나.

미겔로부터 누나 아만다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알바는 의사인 하이메 외삼촌에게 도움을 청했어. 하이메는 그렇게 아만다와 재회를 했단다. 1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하이메는 남몰래 쌍둥이 형제 니콜라스의 여자친구 아만다를 짝사랑했었잖아. 당시 니콜라스는 해외로 나가서 소식이 끊겨 있었단다. 위중이라고 하는 아만다는 지나친 약물로 폐인이 다 되었고,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보였단다.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알 수 있었어.


2.

나라에서는 대통령 선거에서 몇 번 고배를 마신 좌파 대통령이 드디어 당선되었단다. 이 소설에서는 대통령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1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란다. 좌파를 지지했던 알바와 블랑카 집안은 축제분위기였단다. 보수당 정치 거물이었던 에스테반만 빼고 말이야. 좌파 대통령이 집권을 하고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기대도 컸어. 하지만 야당이 된 우파가 그냥 앉아서 좌시하지 않았어. 그들은 좌파 정권을 다시 뒤엎으려는 음모를 꾸몄어. 언론을 이용해서 사회 혼란은 야기해서 사람들은 물건 사재기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물가가 폭등했단다. 그로 인해 국민 여론은 크게 분열되고 말았단다.

좌파 정권이 들어서자 에스테반도 직격탄을 받았어. 소작농들 중에 과격한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에스테반을 인질로 잡고 난동을 부렸단다. 블랑카와 알바는 페드로에게 도움을 요청했단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페드로는 당시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었거든. 페드로는 직접 농장을 찾아갔단다. 페드로와 에스테반은 수십 년 만에 대면을 했단다. 마지막 대면이 에스테반이 도끼를 들고 페드로의 손가락을 잘랐을 때였단다. 아무튼 페드로의 도움으로 에스테반은 안전하게 풀렸단다.

….

사회 분열의 양상은 수그러들지 않고 더 심해졌단다. 얼마 후 우파의 야당과 군 수뇌부가 연합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단다. 이 소식을 들은 알바의 외삼촌 하이메는 대통령궁으로 갔단다.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으니 혹시 부상자가 생기면 치료하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의 세력은 막강했단다. 대통령궁에 폭탄을 날려 무너뜨렸어. 결국 대통령은 쿠데타를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단다. 방송을 통해 전한 그의 마지막 말은 다시 읽어봐도 절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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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217)

대통령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앞으로 박해받을 사람들을 위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나 역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심에 내 목숨 다 바쳐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 조국과 조국의 운명을 믿습니다. 이 순간을 잘 극복하십시오. 그러면 조만간 보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자유인이 지나갈 수 있는 드넓은 가로수 길이 열릴 것입니다.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입니다. 나는 내 희생이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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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로 인해 좌파를 지지했던 블랑카의 집안도 쑥대밭이 되었단다. 대통령궁에 있었던 하이메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그만 죽고 말았단다. 알바는 집에 있으면서 몸을 사렸어. 미겔이 실종되었는데 찾아 나서지도 못했어. 장관직을 역임했던 페드로도 도망자 신세가 되어 블랑카의 비밀 골방에 피신해 있었어.


3.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사람(책에는 실명이 안 나왔지만 피노체트)은 국민들에게 잘 보이려고 여러 가지 선심 정책을 펼쳤지만 나라는 계속 속으로 썩고 있었단다. 피노체트는 강력한 독재 정치를 준비하고 있었어. 에스테반은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 세력에서도 점점 배제되어 가고 있었어. 그런 정치판에 이제 신물이 났어. 이제서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단다. 에스테반이 변한 것을 알게 된 블랑카는 한 가지 부탁을 했어. 페드로와 자신이 망명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어. 에스테반은 아직 영향력이 있는 친구들의 도움으로 페드로와 블랑카를 교황청대사관으로 빼돌리는데 성공했단다.

이 일을 같이 계획하면서 블랑카는 아버지 에스테반과 화해를 하게 된단다. 그리고 페드로와 블랑카는 그렇게 해외로 망명을 하게 된단다. 이후 에스테반은 자신의 집을 도피자들의 임시 피신처로 만들었어. 그가 정치를 그만두었지만, 보수당 정치 거물이었던 집을 함부로 수색할 수 없었거든.

어느날 미겔이 찾아왔어. 미겔은 다시 정권을 잡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게릴라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어. 알바는 살림살이를 팔아서 군자금으로 미겔에게 주는 등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쳐 알바를 강제 연행해 갔단다. 그 자리에 에스테반도 있어서 자신의 지위와 이름을 걸로 군인들을 협박했지만 군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알바를 연행해갔단다. 이 일은 에스테반 가르시아 대령이 꾸민 짓이란다. 기억나지? 에스테반에게서 돈을 빌려가 사생아 에스테반 가르시아. 그는 사실 에스테반에게 강한 복수심을 갖고 있었고, 복수를 이런 식으로 했던 것이란다.

끌려간 알바는 너희들에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한 고문을 받았단다. 이것은 에스테반 가르시아의 개인적인 복수의 방법인 거야. 한편 에스테반은 외손녀 알바를 찾으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단다. 에스테반이 젊었을 때 사창가의 한 여인한테 진심으로 도와준 적이 있었어. 그 여인은 트란시토 소토라는 여자인데, 1권에서도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단다. 트란시토가 지금은 홍등가의 사장이 되어 정부 거물급 인사와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에스테반은 트란스토에게 도움을 청했고, 트란스토가 도와줘서 마침내 알바를 찾아내 빼낼 수 있었단다.

그렇게 풀려난 알바는 외할아버지 에스테반의 마지막을 함께 한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다 서사시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더구나. 아빠가 소설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적어두는데, <영혼의 집> 1권의 첫 문장과 2권의 마지막 문장, 그러니까 소설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똑같더구나.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이렇게 의도적으로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같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단다. 마치 아빠 같이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기록해 두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신 것 같거든.

….

지은이 이사벨 아옌데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너무 좋았고, 마지막에 가족 간의 갈등이 해소되는 것도 좋았지만,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힘들었던 점에 가슴이 아프구나. 소설 속 주인공들과 삶을 살았던 이들이 칠레에도 많이 있었을 텐데지은이 이사벨 아옌데도 망명생활을 했었잔니. 작년에 <바다의 긴 꽃잎>을 읽고 이사벨 아옌데의 책들을 몇 권 사 두었는데 이번에 <영혼의 집>을 읽고 나니 이사벨 아옌데의 책들을 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너희들도 나중에 커서 이사벨 아옌데를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클라라와 블랑카가 서로 주고받은 편지들이 없었더라면 그 시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빛이 바래고 희미해진 기억들로 뒤죽박죽 되었을 것이다.

책의 끝 문장: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


블랑카는 알바 나이에 맞지 않는 책들도 있으므로 독서도 가려서 해야 한다는 주의였다. 그렇지만 하이메 외삼촌은 사람들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책은 절대 읽지 못하며, 만약 그 책에 흥미를 느낀다면 그건 이미 그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성숙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메 외삼촌은 목욕과 식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론을 갖고 있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알기 때문에, 만약 알바가 목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건 목욕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것이며, 애가 배가 고플 때는 뭐가 됐든지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48

알바는 군인들의 행동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 대부분이 중간 계급이나 노동자 계급 출신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극우 쪽보다는 좌파에 더 가까웠다. 알바는 나라가 왜 내전 상태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쟁은 군인들의 작품으로, 그들이 받은 훈련의 결정체이자 그들 직업의 빛나는 훈장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군인들은 평화 시에는 빛을 발할 수가 없었다. 쿠데타는 군인들이 병영에서 받았던 훈련과 맹목적인 복종, 무기 사용법, 그리고 일단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고 나면 습득이 가능한 다른 기술들을 실제로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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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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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에 이사벨 아옌데의 <바다의 긴 꽃잎>을 재미있게 읽고 이사벨 아옌데의 팬을 자처했단다. <바다의 긴 꽃잎>을 읽고 쓴 독서편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로 이사벨 아옌데를 알게 되었다고 했잖아. 이젠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삼촌이 살바도로 아옌데 대통령이라고 이야기하게 되는구나. 그만큼 한 작품이지만, 너무 인상 깊고 재미있었단다. 그래서 그 이후 이사벨 아옌데의 책들을 몇 권 구입했단다.

여성 주인공이 등장해서 이사벨 아옌데의 여성 3부작으로 부르는 <영혼의 집>, <운명의 딸>, <세피아빛 초상> 중에서 이번에 <영혼의 집>을 읽었단다. 이 책은 칠레의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참, 소설에서는 나라 이름이 한번도 안 나온 것 같았어. 하지만 누구나 소설 속 나라가 칠레라는 것을 알 거야. 아빠가 전에 읽은 칠레 현대사에 관련된 책들,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의 <살바도르 아옌데>, 이사벨 아옌데의 <바다의 긴 꽃잎>, 루이풀 세풀베다의 <역사의 끝까지> <영혼의 집>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단다.

이번에 읽은 <영혼의 집>도 재미와 감동을 모두 주었단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가끔 읽기 어려운 책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 책은 재미있어서 술술 넘어가는 몇 안 되는 책이었단다. 더욱 이사벨 아옌데의 찐팬이 된 듯싶구나. <영혼의 집>은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늘은 1권을 먼저 이야기해줄게.


1.

그럼 바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세베로 델 바예는 전직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란다. 의회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지. 그의 아내는 니베아이고 아이들을 15명을 낳았는데, 11명이 생존했단다. 소설의 첫 부분의 시대적 배경이 1900년대 전반기로 낳기도 많이 낳고 영아 사망률도 높던 시대였단다. 세베로 델 바예의 첫째 딸 로사는 열여덟 살로 뛰어난 미모로 유명했단다. 로사는 에스테반 트라에바라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지금은 북쪽 지방의 광산에서 일하고 있었어. 세배로 델 바예의 막내딸 클라라는 열한 살인데 미래를 예언하는 등 영적인 능력을 갖고 있었고, 조숙했단다. 클라라는 외삼촌 마르코스와 무척 친했단다. 마르코스는 모험심이 강해서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하였고, 해외 여행을 많이 다니고 그랬어. 직접 비행기를 만들어서 그 나라에서 최초로 비행한 이력도 있었어. 불시착해서 몇 달 만에 돌아와서 가족들을 걱정시키기도 했지만 말이야. 조카 클라라가 영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둘이 점술사업을 하기도 했는데 세베로가 이를 알고 반대하여 그만 두었단다.

그런 마르코스가 아프리카 여행 중에 전염병에 걸리고 말았어. 전염병에 걸린 마르코스는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그만 집에 도착하기 전에 죽고 말았단다. 클라라의 집안은 온통 슬픔에 잠겼지. 클라라는 마르코스와 함께 온 개 바라바스를 정성껏 보살폈단다.

세베로 델 바예 집안의 불행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란다. 클라라가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다고 했잖아. 누군가 실수가 죽을 것이라고 식구들에게 이야기를 했으나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단다. 마르코스가 살아 있다면 클라라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을 텐데그가 없으니 클라라의 말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어. 얼마 후 세베로를 죽이려고 정치적 반대파에서 독이 든 술을 선물로 보내왔단다. 그런데 그것이 술이라고 생각하고 그만 큰 딸 로사가 먹고 죽고 말았단다.

클라라의 집은 또다시 비통에 빠졌어. 클라라는 이 충격으로 말을 잃고 말았단다. 로사의 남자친구 에스테반도 광산에서 이 소식을 듣고 비탄에 잠긴 채 돌아왔단다. 그 술을 보낸 사람은 끝내 잡지 못했어. 에스테반은 여자 친구 로사를 잃은 슬픔에 광산에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부모님의 땅이지만 관리를 하지 않아 황무지가 된 트레스 마리아스라는 농장에 가서 농장 일을 시작했단다.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아픔도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농장에 있는 저택을 보수하고 일꾼을 고용해서 농장을 다시 일으켰어. 그 농장이 황무지가 된 이유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지병으로 침대에만 계시고, 그 엄마를 누나 페룰라가 도시에서 보살피고 있었거든. 에스테반은 농장을 다 보수하고 소작인들이 살고 있는 트레스 마리아스 마을 전체를 보수했단다. 학교도 짓고 상점도 세우고 그랬어. 트레스 마리아스는 다시 번창하게 되었고, 농장에서도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단다. 당시는 무척 귀했던 라디오도 하나 장만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도 챙기고 그랬어.

한편 로사의 죽음 이후 말을 잃은 클라라. 클라라의 부모님은 클라라를 치료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어. 하지만 고칠 수 없었지. 그도 그럴 것이 클라라는 의식적으로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구나. 죄책감을 느끼고 있던 것일까? 아마도 자신이 누군가 죽는다고 이야기를 해서 언니가 죽었다고 죄책감 말이야. 클라라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기록을 했단다. 엄청난 양의 메모를 노트에 쓰기 시작했어.

아버지 세베로는 로사가 죽고 나서 정치도 그만 두었어. 오히려 어머니 니베아가 정치판에 뛰어들어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성인권 운동에 힘썼단다. 클라라는 나이를 먹으면서 영적인 능력은 더 강해졌어. 로사가 죽고 나서 9년이 지난 어는 날, 클라라가 갑자기 말을 시작했어. 그 한마디가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는 듯한 말이었어. 자신은 도시에서 온 약혼남과 결혼하겠다고다들 클라라가 다시 말했다는 것이 관심이 있었지. 클라라가 내뱉은 말의 내용에 대해서는 관심들이 없었단다.


2.

시간은 흘러 10년이 지났단다. 농장은 크게 번성하여 돈은 많은 벌었지만 에스테반은 무섭고 악명 높은 농장주가 되었단다.  무서운 것뿐만 아니라 난봉꾼이 되어 소작인들의 딸들을 겁탈해서 사생아가 몇 명이나 되는지도 모를 정도였어. , 나쁜 사람이구나. 로사와 결혼을 했다면 달랐을까?

에스테반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누나의 전보를 받았어.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지 가게 되었어. 그가 자리를 빈 사이 농장과 트레스 마리아스는 소작인 중에 능력 있고 똘똘한 페드로 세군도에게 맡기고 어머니가 계시는 수도로 갔단다. 에스테반은 어머니의 임종을 함께 하고, 장례식도 치렀단다. 그래도 아들의 역할은 한 것 같구나.

장례식이 끝나고 에스테반은 세베로의 집에 찾아왔단다. 로사의 옛 남자친구로서가 아니었어. 그 집안에 결혼 적령기에 든 여자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는 클라라에게 청혼했단다. 클라라는 좋다고 했고, 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아서 그들의 결혼을 성사되었단다. 수도에 신혼집을 새로 지었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누나 페룰라도 에스테반과 클라라와 함께 지냈단다. 페룰라는 올케인 클라라와 사이가 무척 좋았단다.

시간은 흘러 클라라는 딸 블랑카를 낳았어. 그리고 그들은 농장으로 이사를 갔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농장 생활이었단다. 특히 도시에서만 생활하던 페룰라는 특히 힘들어했단다. 클라라는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을 위해 다시 도시로 갔단다. 이번에는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 클라라가 예지력이 있다고 했잖아. 꿈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을 꾸고 힘들어했는데, 역시도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클라라는 아들 쌍둥이를 낳았고 이름을 하이메와 니콜라스라고 지었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유모가 있었는데, 클라라는 유모에게 함께 지내자고 해서 유모도 클라라네 집으로 왔고, 유모는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단다. 앞서 페룰라가 올케인 클라라와 사이가 좋았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정도가, 뭐랄까 지나치다고나 할까? 선을 넘었다고 할까? 클라라를 목욕을 시켜주기도 하고, 클라라가 혼자 자고 있는 침대 옆에 몰래 와서 자기도 했어. 그런 모습을 에스테반이 보고 질투도 느끼고 혐오감도 느끼게 되어 누나인 페룰라를 내쫓았단다. 누나의 정 때문에 생활비는 계속 보내 주었어.

페룰라가 집을 나가사 집안은 엉망진창이 되었단다. 그동안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페룰라가 집을 나가서 집이 온통 엉망이 된 거야. 에스테반의 생활도 총각 때의 난잡함으로 돌아갔어. 사창가를 드나들고 처녀들을 겁탈하고사창가에서 만난 트란시토 소토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와는 나중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간단다. 한편 클라라는 자신처럼 염력을 가진 모라 자매들을 알게 되었고, 모라 자매들과 자주 모임을 갖고 염력과 점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이런 엄마와 아빠를 둔 블랑카가 한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3.

시간은 또 흘러 블랑카의 나이 10살이 되었어. 농장에서 많은 시간을 지내다 보니 같이 어울릴 또래가 별로 없었어. 소작인의 아들 페드로 테르세로와 친해지게 되었단다. 점점 나이를 먹어 사춘기가 되면서 블랑카와 페드로는 첫사랑이 되었단다. 하지만 공부를 위해서 블랑카가 수도에서 지내고, 페드로는 농장에서 지내면서 멀어지게 되었단다.

예지력이 있는 클라라의 눈에 페룰라의 죽음도 예측을 했고, 대지진도 예측했단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는 심한 발작도 일으켰어. 대지진이라는 대재앙이 몰려오지만, 클라라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지. 아빠가 알기에 칠레는 지진이 많은 환태평양 지대에 있는 나라로 지진이 많이 일어난단다. 루이스 세풀베다의 <역사의 끝까지>라는 소설에서도 큰 지진이 있었잖아. <영혼의 집>의 시대적 배경이 1900년대 전반부라고 했으니 그 때쯤 큰 지진이 있었는지 검색을 해보았단다. 1939 1 24일 칠레에 대지진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 소설에서 클라라가 예측한 지진은 이 지진인 듯싶구나. 이 대지진으로 유모가 죽고 말았어. 그리고 남편 에스테반도 무너진 집에 깔려 온 몸의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죽을 뻔 했으나, 장님이었던 페드로의 할아버지가 치료해주어 회복할 수 있었단다.

….

블랑카의 첫사랑 페드로 테르세로는 공산주의 사상을 알게 되고, 농장에 있는 소작농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퍼뜨렸단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에스테반은 페드로를 쫓아냈단다.

농장이 있는 마을에 장 드 사티니 백작이라는 프랑스 사업가가 왔단다. 에스테반과 친분을 쌓게 되었고 블랑카에게 청혼을 했지만, 블랑카는 거절했단다. 어느날 장 드 사티니 백작은 블랑카와 페드로의 밀애 장면을 목격하게 돼. 이걸 치사하게 에스테반에게 고자질을 하고, 에스테반은 블랑카를 심하게 때렸단다. 이를 변호하던 클라라도 때렸어. 이 일로 클라라는 딸을 데리고 농장을 떠나 수도에 있는 집으로 와버렸단다. 에스테반은 혼자 남겨졌고, 분노를 참을 수 없어 페드로를 찾아내 죽이려고 했어. 페드로를 찾아낸 에스테반은 도끼를 휘둘렀고 페드로는 간신히 도망쳤단다. 하지만, 페드로는 손가락 세 개가 도끼에 잘리고 말았단다. 에스테반은 정치도 시작하여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보수당의 상원의원이 되었단다.

….

수도에 온 블랑카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았어. 당연히 페드로의 아이였지. 이 소식을 들은 에스테반은 자신의 딸이 사생아를 낳을 수는 없다고 했어. 정치 인생에 도움도 안되고 말이야. 에스테반이 생각해 낸 수는 장 드 사티니 백작이었어. 돈을 밝히는 장 드 사티니 백작에게 돈을 잔뜩 쥐어주고 블랑카와 얼른 결혼시키는 것이었어. 클라라는 당연히 반대를 했지만, 에스테반의 무식한 힘을 이길 수 없었단다. 결국 블랑카는 강제 결혼을 하고 장 드 사티니의 집이 있는 북부로 이사를 갔단다.

여기서 잠깐 블랑카의 쌍둥이 동생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이름 기억나니? 하이메와 니콜라스. 하이메는 공부를 엄청 잘해서 의대생이 되었단다. 금욕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보살피는 봉사활동도 열심이었어.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서 몰래 페드로 테르세로를 만나 사회주의를 함께 공부하기도 했어. 니콜라스는 하이메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단다. 니콜라스는 자유로운 영혼이고 엉뚱한 사업들을 많이 했어. 춤교습소라든가, 열기구 사업, 닭 키우기 등

여자친구 아만다가 있었는데 아만다 또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지. 아만다는 다섯살짜리 동생 미겔이 있었는데 부모님 없이 둘이 살고 있었어. 아만다와 미겔은 클라라의 집에 자주 놀러왔는데, 클라라는 어린 미겔을 잘 보살펴 주었단다. 니콜라스와 클라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말았고, 니콜라스는 의대생이었던 하이메에게 아만다의 중절 수술을 부탁했단다. 의대생이니 아직 의사는 아닌데 그런 수술을 어떻게 하겠니하지만 니콜라스와 아만다의 간곡한 부탁에 첫 수술을 중절수술로 집도하게 되었단다. 사실 하이메는 아만다를 짝사랑하고 있었단다. 짝사랑하는 여자가 동생과 자유연애를 하는 것도 속이 쓰릴 텐데, 임신까지 하고 중절수술까지 자기 손으로 해야 하다니

….

여기까지 <영혼의 집> 1권의 이야기란다. 등장인물들이 다들 평범하지 않구나. 지은이는 어떻게 이런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족으로 만들었을까. 2권에서는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갈까. 2권도 곧 이야기해줄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왔다.”

책의 끝 문장: 그렇지만 에스테반은 자기집 지붕 아래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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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6-28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꾸준히 잘 쓰십니다. 부러워요!!!

bookholic 2023-06-28 23:04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기억력이 점점 떨어져서,
이렇게라도 적어놓아야
책읽을 때의 느낌과 줄거리를 알수 있어서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120)

워쨌든 나는 내외간, 자슥간에 착취란 말은 쓰고 싶지 않허요. 왠지 나는 그 말이 싫으요, 착취, 착취 해봤자 불쌍한 게 누구요. 결국 나 아니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착취당했다는데 그라믄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닌가. 지들 엄메가 바보라는데 서방이라고 좋겄소 자슥이라고 좋겄소. 그 교수 선생한테 가서 내 생각은 이란디 내가 틀린 것이오, 당신이 틀린 것이오, 그라고 묻고 싶은 맴도 있었지만 워디 가당키나 한 일이오. 을매나 배웠으면 여자가 그 젊은 나이에 교수까지 하고 있을 것이오. 내가 무슨 수로 그런 사람을 당해낼 수 있겄소. 그냥 속이 답답해서 엄메한테나 하는 말이지라. 엄메가 아니면 내가 또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하겄소.


(134)

지금 저기에서 제일 가슴 아픈 사람은요, 사장도 아니고 주주도 아니고 인근 음식점 주인도 아니고, 바로 자기 일터에다 불을 질러야 하는 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어르신께서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네요. 자기 권리를 모르는 사람은 종이 되는 겁니다. 싸우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종이 된다고요.”


(193)

그 형사 하는 말이, 하숙생은 원체 세상에 불만이 많은 인물이라 여그랑은 완전히 다른 꿈나라 같은 세상을 그리워해서 그런 짓거리를 한고 다닌다는디, 저가 살아본 적도 없는 세상을 워떻게 그리워한다는 건지 나는 그게 이해가 안 가는 거라. 한 번이라도 겪어봤어야 그리워하든 보고 잪아 하든 하는 거 아니오? , 우리가 먹는 이 밥만 해도 그렇지 않소? 뭐가 먹고 잪아도 어릴 때 한두 번씩 해먹던 음식이나 그리워하지 생판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을 뭔 맛인 줄 알고 그리워하겄소?”


(284-285)

사람의 운명이란 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하룻밤만의 생각으로 내리는 결정일까. 아니면 먼 훗날, 소중한 무언가를 지킬 수 없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면, 부모도 모르게, 형제도 모르게, 친구도 모르게 자신의 발목을 자르고 스스로 뛰어내겠다고 신에게만 조용히 고백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오래된 결심일까. 만약 그런 것이라면 삶에 미련을 가지도록 달콤한 말들로 꾀어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얼굴이 상해 보인다, 무슨 고민이 있느냐, 다 괜찮아질 것이다, 정도의 서툰 걱정이 무슨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그 깊고 차가운 물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이 밤이 나의 마지막 밤이라고 결정지어놓은 것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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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의 과학 허세 (리커버판, 양장)
궤도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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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양자역학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유튜브에서도 양자역학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았거든. 그때 안될과학이라는 유튜브 채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과학 관련 유튜브 답지 않게 구독자도 엄청 많았단다. 그 채널은 무엇보다 알기 쉽고 재미있게 편집하여 설명해주었단다. ‘안될과학에 올라온 몇몇 영상을 보고 나서 왜 구독자가 그렇게 많은지 알게 되었고, 아빠도 구독 버튼을 눌렀단다. 그 이후에도 가끔씩 안될과학의 영상을 보곤 했단다.

안될과학의 패널 중에 한 분이 궤도라는 분인데, 그 분이 책도 쓰셨다는 것을 얼마 전에 알고 한번 읽어보겠다고 샀단다. 기본적으로 안될과학이라는 유튜브가 재미있으니, 책도 재미있게 과학을 소개해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그 책에서 알게 된 내용을 너희들에게 다시 전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단다. 이 책의 차례를 보면, 각 장마다 주 제목 옆에 괄호를 치고 부 제목을 달아 놓았는데, 부 제목이 OO의 과학이라는 일관성으로 가지고 있단다. 알코올의 과학, 심해의 과학, 블랙홀의 과학으로 시작해서, 계속 무엇의 과학으로 계속 이어졌어. 마지막 양자역학만 빼고 말이야. 그것도 양자역학의 과학이라고 하면 안 되었을까? 양자역학은 그냥 양자역학으로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양자역학의 과학이라고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모두 를 빼는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아빠가 존경하는 이오덕 님의 말씀에 의하면 는 일본어의 잔재로 우리나라 말에는 가급적 를 안 쓴다고 하셨으니 말이야. 그냥 알코올 과학, 심해 과학, 블랙홀 과학이라고 해도 말이 다 통하니까 말이야. 한참 이야기하다 보니, 아빠가 차례를 잡고 괜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 같구나.

차례의 소제목을 보면 세상 모든 잡다한 일에 과학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단다. 심지어 귀신의 과학이라는 장도 있구나. 이렇듯 이 세상에서 과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과학으로 이 세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구나.


1.

각 장마다 길지 않아서 너희들과 하루에 한 장씩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너희들은 바쁘고 관심 밖의 분야에 대해서는 지루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생각만 했단다. 책은 재미있게 쓰여 있어도 말이야.

시작은 술 이야기부터구나. 적당한 술은 몸에 좋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건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하는구나. 아빠도 술을 어느 정도 먹으면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파서, 조금씩만 먹고, 먹으면서 이 정도는 건강에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먹었는데 그것이 근거도 없고 잘못된 지식이라고 하는구나. , 그래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포기할 수는 없지.

깊고 깊은 바다에는 태양의 빛이 닿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그 곳에는 생명체가 없는가? 왜냐하면 생명체는 태양이 없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태양이 있어야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식물들이 자라고, 식물들로부터 먹이사실이 시작하여 다른 생물들도 살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태양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는 생물이 없어야 맞는 말이잖니. 그런데 심해에 열수분출공이라는 것이 있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심해에도 생명체들이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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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이 깊은 곳에는 열수분출공이라는, 일종의 심해 생물들의 놀이터가 있는데 거의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는 곳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심해에는 독일 과학자가 광합성할 만한 태양조차 없다. 지상의 생명체들이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듯이 심해의 생물들은 바로 이곳을 근원으로 생존한다. 열수분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을 먹고 사는 세균들이 있는데 이들이 똥을 싸면 그게 바로 심해 생물들이 먹을 수 있는 탄수화물이다. 태양의 광합성이 없이 탄수화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역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게 세상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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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를 돋우기 위한 주제도 참 많단다. 시간여행은 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어. 아빠가 예전에 어떤 책에서 봤는데, 시간여행이 먼 훗날 가능하게 되었다면, 미래에서 온 여행객들을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봐야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시간여행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어. 아빠도 그 이야기에 깊게 수긍이 되어, 어쩌다 대화를 하다가 시간여행이라는 주제가 나오면 그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했어. 그런데 어떤 미국의 과학자는 또 다른 가설을 내세우면서, 미래에서 온 관광객이 없는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였단다. , 다음에 시간여행이 대화의 주제가 나올 때는 이 이야기도 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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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0)

미래에서 온 관광객이 아직까지 없다는 점이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미국의 한 과학자는 타임머신이 일종의 체크포인트 역할을 해서 최초의 기계가 가동을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가 돌아갈 수 있는 과거의 시작점이 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 타임머신이 작동되기 전의 과거는 타임머신상에서 없는 시대이며 오직 타임머신이 작동된 이후만 자유롭게 시공간을 오갈 수 있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아직까지 미래 관광객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일리가 있다. 미래에서 봤을 때 지금 우리 시대는 돌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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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과학이라는 장에서는 이상형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를 과학적 확률로 설명하기도 한단다. 어떤 사람은 이를 데이트 방정식이라는 하고 확률을 구했는데, 기대치가 1명보다도 극히 적었다고 하는구나. 데이트 방정식을 어떻게 푸는 거냐면, 서울에 사는 남성의 예를 설명한 것을 같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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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서울에 사는 결혼적령기의 한 남성의 경우, 서울의 인구를 1,000만 명이라고 가정하고 이 중 50퍼센트를 여성이라고 하자. 남성의 출퇴근하는 방법이나 동선에 따라 지나가다 이성을 만날 확률은 달라지겠지만 1퍼센트 정도라고 하면 이미 대상자는 5만 명으로 줄어든다. 같은 결혼적령기 여성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대상자의 나이 분포를 1세부터 100세까지 일정하다고 했을 때 15퍼센트 정도와 나이가 맞을 것이다. 비슷한 교육환경에 있을 확률은 1퍼센트 정도로 보고 매력을 느낄 확률은 5퍼센트, 서로 만날 때까지 살아 있을 확률 10퍼센트까지 계산을 하면 고작 0.375명이 이 남자와 연애 가능한 여성의 숫자라고 볼 수 있다. 아쉽게도 1명도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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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빠는 인연을 믿고, 운명의 짝을 믿는단다.

다이어트 이건 많은 사람들의 꿈 중에 하나란다. 적게 먹고 열심히 운동하는 것.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란다. 여기에도 과학에 담겨 있단다. 운동을 많이 하고 나면 더 많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지극히 정상이란다. 뇌는 너무 똑똑해서 운동을 하게 되면 칼로리는 많이 소모된 것을 알게 되고 어떤 수를 써서든 잃어버린 칼로리를 보충하려고 애를 쓴다고 하는구나. 그걸 참지 못하고 운동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 그런 것을 보면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은 정말 독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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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당신의 뇌는 매우 똑똑해서 혹시나 운동으로 평소보다 더 많은 칼로리가 소모되면 어떻게든 수를 써서 당신이 더 많은 칼로리를 먹도록 만든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난 뒤에 라면을 끓여서 먹어보아라. 몇 젓가락 먹지도 않았는데 이미 라면은 국물만 남아 있고 바로 하나를 더 끓여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 평소보다 더 먹도록 뇌가 유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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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것도 과학이다, 라고 하면서 재미있는 주제들을 뽑아 과학적 시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았단다.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필수교양이라는 제목을 달고, 암호화폐, 중력, 힉스, 우주쓰레기, 음식, 양자역학 등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아빠도 궁금했던 암호화폐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좋았단다.

, 이 정도로 책 소개를 마칠게. 이 책에서 읽은 것을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아빠의 기억력은 이미 책 읽기 전으로 돌아간 듯 하구나.


PS:

책의 첫 문장: 간단히 말해서 술이 몸에 좋지 않다는 말이다.

책의 끝 문장: , 다행이다.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를 때,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게 바로 이 현기증 뉴런 때문이다. 심해지면 두통이나 현기증까지 나기도 하지만 일단 현기증 뉴런이 활성화되면 불쾌하고 울적해진다. 반대로 음식을 먹어서 현기증 뉴런이 작용을 멈추게 되면, 뇌에서 보상회로가 가동되면서 평소에 먹던 음식이라고 해도 더욱 맛있게 느끼게 된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맞다. - P113

그리고 그 흔적은 당신에게도 남아 있다. 바로 흰자. 달걀 노른자 흰자 말고 눈동자의 흰자 말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은 눈에 흰자가 없다. 하지만 사람은 흰자가 눈동자에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흰자가 많다고 시력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동공이 크면 클수록 시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흰자가 많으면 보는 성능이 떨어진다. 그럼 왜 이렇게 불리한 상황을 감당하면서도 흰자가 많아진 걸까? 역시 뭔가 이득이 있을 것이다.
흰자가 있다면 멀리서도 상대방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서로 마주 본다는 것도 느낄 수 있고 소통하는 데 눈짓이 굉장히 많이 쓰인다. 눈동자의 방향을 통해 상호 신뢰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서로가 잘 길들여졌다는 증거로 이만한 게 어디 있을까?
- P137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전자는 단백질을 조립하는 매뉴얼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을 제대로 조립하기 위해서 특이하게 생긴 레고블록 같은 것을 이용하는데 이걸 아미노산이라고 부른다. 출신이 고작 블록 조각 비스무리한 녀석이라 아무리 백날 열심히 조립을 해도 단백질의 기능을 넘어서는 것들은 못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즉, 원래 단백질은 하늘을 나는 기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백질을 아무리 잘 조립해도 하늘을 날지 못한다.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 P175

거래 내용에 대한 신뢰도를 보증하는 중앙이 없고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 개개인이 모든 거래 내역을 기록하고 확인한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암호화에 도달한다. 기존의 보안 방식이 최대한 복잡하고 많은 자물쇠를 금고에 빽빽하게 거는 형태라면, 블록체인을 이용한 이 방식은 금고 자체를 전 세계를 셀 수도 없이 많은 곳에 뿌려두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금고들은 정기적으로 암호가 바뀌며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를 옮겨다닌다. 내가 해커라도 맥이 빠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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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생각해 보면 개인의 사고를 그토록 붙들어 맨 일본의 국가권력은 놀랍다. 그것도 장구하게 유지해 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기능과 세기(細技)가 우수하면서도 일본은 항상 남의 틀과 본을 훔쳐 오거나 얻어 와서 갈고 닦고 할밖에 없었다. 본과 틀이 없는 나라, 그들의 정치 이념은 창조의 활력이 위축된 민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 교과서는 여전히 피해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가는 시냇물처럼 이어져 온 일본의 맑은 줄기, 선병질적이리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들이 소리를 내어 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 가고 있는 우익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여 분명한 것이 차츰 부풀어 거대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이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39-40)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종교나 도적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것들은 적시적소에 써먹은 도구에 불과하고 어떤 권력이든 도구화하려는 속성은 있게 마련이지만 일본처럼 철저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그런 그들에게 내세관이 희박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유한(有限)을 잘 소화시켜 온 민족이다. 유한은 인간의 숙명이지만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이 오는 곳 생명이 가는 곳, 그 한() 때문에 사람은 유한 밖으로 나가려 몸부림치는 것이며 그 몸부림은 신의 축복인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신의 축복이 없는 나라 일본, 역사상 한 번 기회가 있었다. 시마바라의 난으로까지 몰고 갔으나 섬멸되고 만 천주교도들, 답회령(踏繪令)으로 수없는 순교자를 냈던 그때, 아마테라스를 뛰어넘고 영혼의 구제로 향한 죽음들이 있었다.


(58)

나는 내 자신을 소개하기를 철두철미 반일(反日) 작가다.” 두 사람은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왜 충격을 받을까? 전에도 그런 얘기는 했었고 일본인들은 가만히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깨달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반일을 당연하다고 본 그들은 이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과 나는 꽤 오랜 시간 얘기를 했다. 남경(南京, 난징) 학살 사건에 관한 말이 나왔을 때 그들의 안색은 변했고 실은 겁이 많은 것이 일본 사람 아니냐 했을 때는 당혹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손님에게 너무 무례했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2)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피해였지만 그들은 거의 보상하지 않았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통분이 무슨 사과인가? 그러고도 욕을 안 먹겠다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다. 가와무라 씨는 한글세대는 반일이라는 대전제를 전면에 세우고 있으나 구체적 체험과 연구 관찰이라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다만 반일이라는 민족교육으로 길러진 지식과 근본적 이미지에 의해 일본을 단죄, 규탄하는 태도를 가지기 일쑤다 했는데 동감이다. 그러나 동감의 뉘앙스는 상당히 다르다. 도식적인 교육을 떠나 생생한 역사적 사실 역사적 입김에 접할 수 있다면 한글세대는 무조건 감정적 시비를 떠나 조목조목 따지고 넘어가는 사상적 강화(强化)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전후세대도 우리 한글세대에 대한 불만을 사실에 입각하여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관찰하고 연구해야만 한다. 대로(大路)는 결코 일방통행일 수 없기 때문이다.


(76)

전쟁은 문화의 어머니요 어쩌고 하는 말도 생각이 난다.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 바 없는 일을 좀스럽고 쩨쩨하게 늘어놓는 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침략이 아니라는 망언에 대해서도 무반응이다. 그들의 계속되는 망언은 괜찮아도 한국인의 분노는 왜 지겨운가.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데서 오는 근심이다. 장차 세계에서,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인류에 속하는 일본인 역시 오늘 군비 확장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의 목을 조르는 아들의 비극이 없기 위하여.


(93)

언제였는지 일본인의 저축열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기사를 읽었을 때 일본인은 저금통장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결코 저금통장을 위해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살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사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저금통장이 필요한 것이지 저금통장을 위해 삶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쿠타가와의 예술지상주의가 만일 저금통장을 위한 삶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전적으로 허위인 것입니다. 착각이거나 아쿠타가와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의식구조는 반생명적인 경향이 농후하며 그것이 체제에서 굳어져 버린 것이고 보면 분재와도 같이, 축소되고 불구적인 정신세계를 떠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국체를 부정하고 진실에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106-107)

이삼 년 종안 나는 우리 뒷동산에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리는 일을 계속하여 육십오 계단이라는 꼬불꼬불 계단이 만들어졌습니다. 비록 만리장성은 아닐지라도 내 손자가 오르내리는 기쁨의 자리가 되었고, 오른다는 것 무한히 오른다는 것 무한히 간다는 것…… 나는 그 계단을 끝내고서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계단 위에 산이 계속되고 또 울타리가 없다면 계단은 계속하여 쌓아 올려졌을 거라고. 그리고 시시포스의 바위를 생각했지요. 부정적, 근원적으로 부정적인 인생과 문학 행위. 아마도 긍정적이었다면 갈 길은 없었을 것이요, 배불리 먹고 눈물이 없고 죽음이 없고 사랑도 없고 존재뿐인 삶은 비인간 로보트가 아니겠습니까.


(114)

인간들의 지칠 줄 모르는 파괴와 약탈로 아시다시피 지구는 지금 만신창이가 돼 있습니다. 설령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자업자득, 어디 봄의 죄이겠습니까. 소생시켜 놓은 생명들이 참살을 당하고 멸종이 된들 봄에게는 임무 밖의 일이지요. 다만 길손일 뿐, 노쇠해 가는 길손일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그도 인간이 저질러서 맞이하게 될 재난에 희생되어 처지일 수도 있고 지구와 생명들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노쇠한 봄이라는 말은 물론 합당하지 않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세월의 조화인데 계절 자체가 세월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늙고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합니다.


(119)

내 생각에는 말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또 창조적 열정은 균형을 잡고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잡아주어 존재하게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균형을 파괴하고 존재를 흔들리게 하는 것으로 바로 오늘, 현재가 그 같은 것을 여실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구 도처에서 균형을 망가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땅이 죽어간다거나 물이 썩어간다거나. 이젠 그것이 대단한 일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보다 가공할 일은 오존층이 찢기어 점점 넓어져 가고 있다는 것, 환경호르몬에 관한 것, 지구온난화 현상, 여차하면 자멸의 무기 핵폭탄 등. 이것들이 하늘이 내린 재앙이라 하겠습니까? 지구의 사막화, 도처에서 범람하는 물, 이런 상황이 천재인가요?


(161)

일본인에게는 예()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164)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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