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하고 

집에 와보니

우리집 십대소녀께서

편지라면서 종이 하나를 건넸는데...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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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1-26 07: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롱다리 머큐리네요^^:)

syo 2019-01-26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오....

카알벨루치 2019-01-26 09:25   좋아요 1 | URL
에오2

bookholic 2019-01-26 09:58   좋아요 1 | URL
˝에~~~ 오~~~~˝ 30년이 지나서 유행어가 된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syo님, 카알벨루치님, 모두 ˝에~~~~ 오~~~˝하는 주말 되세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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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도 축구를 좋아하는 편이야.. 아주 예전에는 조기 축구도 하고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기회도 없어지고, 체력도 떨어지고, 낯가림도 많아지고, 게으름도 많아지고 나서는 축구를 할 기회가 없구나. 하지만 축구 보는 것은 여전히 좋아한단다. 작년에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때는 너희들과 함께 축구를 보고 같이 응원을 할 수 있어 좋았단다. 그런데 방금 전 아시안컵에 보다가 속 터지는지 알았단다. 국가대표 경기 말고 프로축구도 가끔 보고, 유럽축구도 즐겨본단다. 그런데, 아빠가 보는 축구는 늘 남자들이 하는 축구였단다.

여자축구를 본 적이 있나 싶어.. 이 책을 읽고 나서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여자축구 경기를 제대로 한번 관람한 적도 없으니 말이야. 우리나라에 여자프로축구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단다. 그냥 실업 축구단만 있는 줄 알았어. 그리고 그 여자프로축구는 입장료도 없다고 하더구나. 그런데도 관객은 거의 없다고 하고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여자축구의 관심이 늘었으면 하네.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에 관한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런데 제목에 떡 하니여자 축구라고 써있는 책을 왜 읽었냐고? 이 책은 먼저 읽은 이들의 극찬이 이어진 책이란다. 아빠도 축구도 좋아하니까 읽어보고 싶어서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에 읽게 된 것이란다. 김혼비라는 필명을 가진 분이 끈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라는 책이야.

평범한 직장 여성이 아마추어 여자축구단에 가입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을 모아 놓은 글이란다.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단다. 말을 재미있게 쓰는 사람은 꽤 있지만, 글을 재미있게 쓰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지은이의 첫 번째 책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썼단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렇게 킥킥 웃으면서 읽은 책이 있나 싶었단다. 비유 또한 놀랍더구나. 폴란드 학생을 소환하고 실존주의를 소환하는 실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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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튀어나온 공을 리바운드해서 골로 연결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바라 마지않았고, 하려고 노력했던툭 쳐서 주워 먹기를 드디어 성공했는데, 하필 골키퍼가 나였다. 저 시나리오에서 골키퍼도 내가 되고 주워 먹는 사람도 내가 될 수 있었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대반전이다. 마치 폴란드 영화 학교 2학년생이 실존주의에 대해 고민하다가 써낸 단편 영화 시나리오 같다. 살면서 내가 골을 넣는다는 것도 매우 현실성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면서 내가 자책골을 넣는다는 것은 아예 상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동시에일어났다. 축구가 진짜 이렇게 전복적인 종합 예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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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은 이들이 왜 극찬을 했는지 알겠더구나.

 

 

1.

여자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보통 보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야. 2002년 월드컵 이후에는 여자들도 축구 보는 것을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그 이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로 축구 이야기가 3등이었고, 1등이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라는 우스개도 있었어. 최근 들어서는 축구에 관심이 많은 여자들도 많아졌지만, 유럽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아빠 주변에 없는 것 같아.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의 여자 주인공이 바르셀로나와 유럽축구의 광팬으로 나왔던 것이 기억나는구나. 이 책의 지은이 김혼비도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호나우두에 반해서 그가 뛰었던 유럽축구에 빠졌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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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7)

나는 어느 날 우연히 호나우두가 스텝오버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보통 헛다리를 짚을 때는 달리는 속도가 확 줄기 마련인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수비수들을 휙휙 제치고 죽죽 나아가고 있었다. 아니, 저게 가능한가? 물리학적으로 말이 되나? 마지막에는 골키퍼까지 스텝오버로 제치고 골을 꽂아 넣는데, 축구가 저렇게까지 아름다울 노릇인가 어이없을 정도였다. 우아한 헛다리와 그물 안으로 감겨들어 가는 공의 궤적과 관중들의 얼굴에 역력한 감동의 흔적. 어마어마한 규모의 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지만 세상이 잠시 숨을 죽인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축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어 오랫동안 호나우두를 따라다니며 해외 축구를 찾아봤다. (새벽 중계가 대부분이어서 오랜만에 AM 김혼비가 맹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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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직접 여자가 축구를 한다? 아빠 주변에는 물론 축구 하는 여자가 없기 때문에 축구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어.  이 책은 그런 축구 하는 여자가 직접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어. 그들이 뛴 경기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 있었던 일들까지 말이야. 그것도 극적인 반전과 순발력 있는 위트까지 가미해서 말이지때로는 콧등 찡한 감동도 주었어. 연령대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한 그녀들은 왜 축구를 하는 것일까? 여자 축구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남자 축구와 달리 섬세함이 있다면서 이번에는 트럼프 카드를 소환해서 비유했단다. 지은이는 비유의 천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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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신체 조건상 남자 축구에 비해 힘과 속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여자 축구만의 독특한 색깔이 나온다 남자 축구는 뭔가 휙휙 재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라면, (물론 그게 또 재미지만) 여자 축구는상대적으로느리고 정적인 몸동작과 전개가 선수들과 공이 만들어 내는 축구의 전체적인 그림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 준다. 패스 워크라든지, 오프더볼 상황에서의 움직이라든지, 역습 때의 호흡 같은 것들을 그때그때 섬세하게 읽어 내는 재미가 있다. 툭툭 주고받는 짧은 패스들이 중간에 끊기는 일 없이 호쾌한 슈팅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한 장 한 장 엇갈리게 섞인 트럼프 카드가 둥그렇게 만든 손 모양을 따라 폭포처럼 아래로 좌르륵 떨어지며 반듯하게 정리되는 것을 볼 때처럼 살짝 황홀하고 근사한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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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킥킥 웃음을 참으며 책을 읽다 보면 금방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게 된단다.. 마지막에는 생각거리를 하나 던져 주었어.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남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자 축구는 그런 인식의 틈을 내고 인식의 변화를 만들었다고 했어. 축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은연중에 남자의 전유물로 여기는 많은 분야에 여자들의 도전으로 인식인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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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그러다 보면 지금은 너무나 아득해서 보이지도 않는, 축구처럼 아직까지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다른 많은 분야들에서 끊임없이 인식의 구획에 틈을 내고 틈을 넓히는 많은 사람들과 마침내 아무 구획도 없는 넓은 광장에서 만나는 그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초개인주의자’인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그렇다 인간은 모일수록 좋은 것 같다. 적어도 축구공 앞에서, 특히 여자들은. 무엇보다 축구는 재미있으니까. 너무 재미있으니까.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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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단다. 그래서 여자프로축구에 대해서 검색도 해보고 그랬어. 앞으로 남자 축구뿐만 아니라 여자 축구에도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해나중에 기회가 되면 너희들과 여자프로축구를 한번 보러 가도 좋고.. 공짜라잖아..^^

 

PS:

책의 첫 문장 : “나이 먹으면서 취향이 변하는 게 맞나 봐. 난 원래 운동하는 거 질색했는데.”

책의 끝 문장 :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


(8)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 우연찮게, 썩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룰도 제대로 모른 채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넓은 피치 위를 뛰어다니고, 공 다루는 섬세한 기술들을 하나둘씩 익혀가고,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 골대를 향해 공을 착착 몰고 가는 재미에 푹 빠지며 ‘아, 사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운동에 대한 깊고 오랜 오해 하나가 풀렸을 뿐인데 그녀들에게 축구를 시작한 이후의 시간들은 전과 다른 시간이 되었다.

(34)

이렇게 운동 효과 면에서나 대외 이미지나 일상 활용성에서 모두 애매하디 애매한 운동이면서, 결정적으로 접근성까지 낮다. 다른 운동처럼 여기저기 배울 곳이 있고 정보가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경로로 열심히 검색해 봐야 하나씩 겨우 나온다. 이 모든 것이 여자들이 그라운드로 진입하는 것을 겹겹이 막으며 철통 수비하고 있다. 축구로 입문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축구인 것이다.

(43)

반면 남의 축구는 거의 보지 않는 이 ‘축구하는 여자들’ 머릿속에 뜨는 것들은 본인이 넣었던 첫 골, 본인이 경기 중 저지른 뼈아픈 실책, 우리 팀이 역전승하던 날, 우리 팀 유니폼 같은 것들일 것 같다. 그 속에는 오직 나 자신, 내가 속한 팀만이 있다. 어느 프로 축구팀의 어느 유명 선수가 끼어들 틈 없이. ‘축구’와 관련해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경험들로만 꽉 채워져 있는 여자들. 오, 생각해 보니 이건 이거대로 멋있잖아?

(64)

이게 다 아웃사이드 드리블 때문이다. 아웃사이드 드리블은 발 바깥쪽을 이용해서 새끼발가락이 공 밑 부분에 살짝 들어가듯 차, 공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드리블 최고의 장점은 수비를 속일 때 아주 유용하다는 점이다. 이쪽으로 갈 것처럼 몸을 기울여서 상대 선수가 덩달아 그쪽으로 몸이 기운 틈을 타 반대쪽으로 휙 빠져나가기 좋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라면 단연 ‘슛! 골인’이겠지만, 수비를 휙휙 제치며 빠져나가는 순간도 그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나를 축구로 확 끌어들인 장면도 호나우두의 골이 아니라 헛다리 짚기 아닌가! 로빙슛의 그날, 우리 주장이 보여 줬던 현란한 페인트 동작은 또 어떻고!

(67)

공을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어쩐지 공을 헛 찰 것 같고, 발, 발등, 새끼발가락, 땅을 딛고 있는 반대편 다리로 온 신경이 분산되면서 스텝이 엉키거나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공을 이상하게 차고 만다. 인간이란 무언가를 의식하는 순간 그 의식의 대상에 필요 이상으로 파괴적인 힘을 주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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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26 0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 축구 지고 난 후 딱 들어맞는 리뷰입니다 굿뜨!!! 이거 빌려놓고 언제까지 썩힐런지 ㅋㅋ

bookholic 2019-01-26 00:23   좋아요 1 | URL
이번 주말에 즐독하시기를...^^

카알벨루치 2019-01-26 00:2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23)

슈뢰딩거 말이로군. 그는 오래전부터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의 최대 적수였어. 그들은 누구의 이론이 옳은지를 놓고 오랫동안 경쟁을 벌였지. 하이젠베르크는 헬골란트에서 행렬역학을 발견했고, 그보다 불과 일주일 뒤에 슈뢰딩거는 아로사에서 파동역학을 발견했거든. 두 사람 사이에 심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싸움은 아주 희한하게 끝났지. 갈등이 극에 달했을 때 슈뢰딩거가 마치 솔로몬처럼 극적인 해결책을 발견했어. 그게 뭔지 알아? 사실은 두 사람은 똑 같은 얘기를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다는 거지. 싸움은 하루아침에 싱겁게 끝나버렸어. 그후 슈뢰딩거는 유대인이 아니었는데도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치와 문제가 생겨 결국 더블린으로 도망친 거야. 그곳에서 그는 프린스턴에 있는 것과 같은 연구소를 설립했어.”

(36)

비엔나 토박이인 슈뢰딩거는 하이젠베르크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1888년생으로 그보다 열세살이 많은 이 물리학자는 매우 사교적이고 여자를 좋아했다. 슈트라우스의 왈츠 같은 생활 철학을 지닌 신사이자 도락가였다. 술과 여자 그리고 음악. 하이젠베르트가 물리학의 금욕주의자였다면 슈뢰딩거는 대표적인 쾌락주의자였다. 두 사람의 인생행로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젊은 시절 슈뢰딩거가 새로운 양자이론에 눈길도 주지 않은 반면,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이론과 함께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위대한 첫 발견을 세상에 발표했을 때 슈뢰딩거는 취리히 대학의 평범한 교수에 불과했던 데 반해 일찌감치 신동이란 평을 들었던 하이젠베르크는 이미 물리학의 대가들로부터 사랑과 비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스물다섯 살에 벌써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지만 슈뢰딩거는 서른일곱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45)

파동역학의 발견은 양자물리학이 뉴턴의 법칙들을 뒤엎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뢰딩거의 정신은 오히려 플랑크나 아인슈타인에 더 가까웠다. 기본적으로 그는 여전히 부르주아 출신의 전통적인 비엔나 보수주의자였다. 자신이 선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물리학의 혁명이 끝나자 그는 다시 고전물리학의 확고한 영역으로 복귀했다. 슈뢰딩거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후 줄곧 더블린 고등연구소의 자기 연구실에 틀어박혀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동맹자로서 우연의 추종자들에 맞선 싸움을 전개했다.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그의 목표 역시 단 하나였다. 전자기력, 중력, 원자론 등 자연에 작용하는 모든 힘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통일된 장이론을 찾아내어 우주의 대한 일관된 설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53)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정말 중요한 건 결국 물리학자들이 원자를 연구하는 데 더 적합한 방법을 택할 거란 사실이지.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건 수학적으로 훨씬 간단명료한 내 방법이야. 나의 방법이 하이젠베르크의 것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는 걸 깨달은 물리학자들이 너도나도 내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하이젠베르크의 친구인 파울리조차도 내 공식의 단순성에 감탄했지. 모든 물리학자들이 그렇게 이성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던 것은 정말 유감이야. 그들은 그렇게 간단할 수도 없다고 믿었던 것 같아.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에 지나치게 경도된 나머지, 비엔나 출신의 아웃사이더가 그들을 능가한다는 걸 차마 눈뜨고 인정할 수가 없었던 거야.”

(66)

나는 그녀의 비아냥거림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건 다른 수많은 가능성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상자 안에서 죽은 고양이를 보는 순간에 시간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돼요. 그것을 관찰하는 우리의 행위가 우리를 세계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사랑도 똑같아요. 이럴 때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묻는 것은 정말 정말적인 일이에요.”

(108)

그와의 만남은 내게 매우 큰 자극을 주었소. 그의 불확정성원리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때 그와 나눈 토론이 없었더라면 나의 상보성원리도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요. 당시에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은 양자물리학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을 내놓는 거였지. 그때까지 우리가 거둔 개별적인 성과들을 완벽하게 능가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비전 말이야.”

(112)

전자란 뭘까? 물리학자들은 그것을 무슨 악당인 것처럼 여긴다. 수없이 많은 범행을 저지르고 도망쳐버리는 사악하고 간교한 존재. 전자는 대단히 영리하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놈을 추적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그의 교묘한 도피 행각에 부딪혀 좌절했다. 곡예사처럼 훈련된 전자는 우리의 눈에 띄지 않게 이리저리 돌아다닐 수 있다. 또 적들이 접근하면 지체 없이 쏴 죽이지만 추적자들에게 언제나 명확한 알리바이를 제시하기 때문에 번번이 혐의해서 벗어나곤 한다. 심지어 단독범행이 아니라 거대한 집단을 이루어 범행을 저지른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전자가 자아 분열을 일으킨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가 개별자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집단적 개체로서 행동한다면서. 주어진 공간을 휘젓고 다니며 충동적으로 약탈을 일삼는 폭력적인 집단, 욕망과 쾌락의 집단.

(113)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양자역학이다. 이것은 이 악당의 체포전략을 결정적으로 개선시키려는 추적자의 안타까운 노력의 결실이었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추적자 한 사람(어쩌면 두 사람)의 노고로 만들어진 이 새로운 전략은 무엇보다도 전자가 숨어 있는 위치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예전의 방법은 이 악당이 범행을 저지른 지점에서부터 추적해 들어가려고 했던 반면, 양자역학은 통계적 방법을 사용해 범인의 은신처로 가장 확률이 높은 장소를 미리 찾아내는 것이었다. 전자는 거의 마법적인 능력을 소유한 존재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이론적으로 전자는 동시에 여러 장소에 있을 수 있다. 어두운 거리에서 극히 짧은 순간 형체를 포착한 것이 우리가 그의 정체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전부다.

(169)

괴델의 정리에 따라 모든 공리체계가 결정 불가능한 진술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절대적 시간도 절대적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양자물리학에 따라 과학이 세계에 대해서 단지 애매모호하고 우연적인 접근만을 제공할 뿐이라면,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인과성이 미래의 확실성을 예측하는 데 더 이상 쓸모가 없다면, 그래서 개인이 오직 부분적인 진리만을 소유할 수 있을 뿐이라면, 그렇다면 다 똑같이 원자들로 구성된 우리 모두는 불확정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역설과 불가능성의 결과다. 우리의 모든 확신은 필연적으로 반쪽짜리 진리에 불과하다. 우리의 모든 자장은 기만이고, 힘자랑이고, 거짓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믿어서는 안 된다.

(236)

루스트는 괴링이 학술연구위원회의 책임자를 맡고 난 뒤에도 갈등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두 기관 사이의 이러한 갈등은 전쟁이 다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해소되었다. SS사령관 히믈러가 괴링의 동의를 얻어 저명한 과학자 한 사람을 제국학술위원회의 최고위원으로 임명했다. 그와 두 사람의 서면 동의에 따라 위원회에 제출된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쥐게 되었다. 이 인물은 학문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이러한 결정에 불가침적인 권위를 행사할 만한 위상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여러 차례의 토의 끝에 히믈러는 이 특권을 부여하기에 적합한 인물을 찾아냈다. 두 사람은 그가 주어진 임무를 마찰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그의 이름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하지만 그가 지닌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 때문에 점차 그의 존재를 눈치 채게 된 사람들은 베일에 싸인 이 인물을 클링조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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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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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를 좋아한단다. 아빠도 읽어보기는 했어. 군대 있을 때그 유명한 <상실의 시대>를 읽었지. 읽고 나서 느낀 생각은 사람들이 왜 이런 소설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단다. 그리고 군대 제대하고 집에 와 보니, 집에 예상 밖의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 한 권 있었어. 단편집이었던 것 같은데너희 고모가 어디서 얻어온 책인 것 같았어. 혹시나 열어봤는데음… 역시 아빠와는 안 맞아… 이러면서 책을 덮었단다.

그 이후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어. 그가 신간을 내놓을 때마다 사람들이 열광을 하고, 베스트셀러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단다. 그런데 몇 년 전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를 듣다가 거기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소개시켜 주었고, 일부를 읽어주었는데아주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이런 생각이 들면서 다시 한번 하루키 소설을 읽어볼까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이제서야 하루키의 첫 번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소설을 읽게 된 것이란다. 책도 얇아서 하루키 소설을 맛보는데 좋을 것 같았단다. 맛이 별로면 다시 안 집어 들면 되고 말이야. 예전에 읽었으면 읽고 나서이런 것도 소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 있겠지만, 그 동안 형식 파괴의 소설을 여럿 읽다 보니 잔잔하니 읽을 만하네…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니까 맛을 보긴 했는데정확히 잘 모르겠다는 말이야. 그럴 때는 한번 더 맛을 봐야겠지. 역자의 말에 따르면 하루키 초기 4부작이 있다고 하더구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 (이 소설이 앞서 이야기한 팟캐스트에서 소개한 소설로이것도 일단 구입은 해놨어.) <댄스 댄스 댄스> 이 책들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1.

이 짧은 소설은 앞서 이야기했지만, 소설이라도 해야 하나 할 정도로 특별한 줄거리가 없단다. 책 읽기 좋아하는 21살 주인공 ‘나’가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 때 고향에 내려와 지내는 일상을 적은 것이 전부란다. 하필 ‘쥐’라는 별명을 가진 부잣집 친구와 만나고, 제이가 운영하는 제이스 바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술집의 화장실에서 심하게 취한 여자를 집에 데려다 주었어. 그리고 며칠 뒤 우연히 들른 음반 가게에서 그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되어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깊은 사랑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단다. 다시 도쿄로 학교로 떠나면서 여자와 헤어졌고, 겨울 방학에 다시 돌아온 고향의 그 음반 가게에 그녀는 없었어.

이렇게 특별한 줄거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의 강렬함이 읽는 이를 끌어당기지 않았나 싶구나. 첫 문장은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어떤 작가가 한 말이라고 했고, 마지막 문장은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주인공 ‘나’가 좋아하는 작가 하트필드라는 작가의 묘비명이라고 했어.

.

아빠가 하루키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지만, 하루키 소설에는 항상 음악이 등장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 이 소설에도 주인공 ‘나’가 음반가게에 들러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찾았는데, 그때 음악가로 아빠가 얼마 전에 읽은 글렌 굴드가 나와서 반가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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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고 3번도.

그녀는 잠자코 이번에는 두 장의 LP를 들고 돌아왔다.

“글렌 굴드와 박하우스어느 쪽이 좋아?

“글렌 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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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늘 거창하고 극적인 줄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우리 일상과 비슷한 소설도 괜찮은 것 같아. 오늘은 여기서 끝~~~

  

PS:

책의 첫 문장 :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책의 끝 문장 : “한낮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10)
물론 모든 것으로부터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한,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게 그렇게 크게 고통스런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론이다.
스무 살이 좀 지났을 때부터 나는 줄곧 그런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다. 그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여러 번 뼈아픈 타격을 받고, 기만당하고, 오해받고, 또 동시에 많은 이상한 체험을 하기도 했다.

(30)
"옛날 옛날에 아주 마음씨 착한 산양이 살고 있었단다."
멋진 첫마디였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씨가 착한 산양을 상상해 보았다.
"산양은 항상 무거운 금시계를 목에 걸고 헉헉거리면서 돌아다녔지. 그런데 그 시계는 너무 무거운 데다가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도 않았어. 그래서 친구인 토끼는 이렇게 물었지. ‘이봐, 산양, 왜 자네는 가지도 않는 시계를 늘 목에 매달고 다니는 건가? 무겁기만 하고 아무 쓸모도 없는 걸 말이야.’ 산양은 ‘그야 물론 무겁지. 하지만 익숙해졌거든. 시계가 무거운 것에도, 움직이지 않는 거에도 말이야’ 하고 대답했지."

(116-117)
어떤 신문 기자가 인터뷰 중에 하트필드에게 물었다.
"당신 소설의 주인공 월드는 화성에서 두 번 죽고, 금성에서 한 번 죽었습니다. 이건 모순 아닙니까?"
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는 우주 공간에서 시간이 어떤 식으로 흐르는지 알고 있나?"
"아뇨,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도 모릅니다."
기자의 말에 하트필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걸 소설에 쓴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123
거짓말을 하는 건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의 인간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거대한 두 가지 죄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자주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1년 내내 쉴 새 없이 지껄여대면서 그것도 진실만 말한다면, 진실의 가치는 없어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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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과학은 게임이다. 날카로운 칼을 사용하는 현실의 게임. 하나의 그림을 조심스럽게 수천 개의 조각으로 잘라낸 뒤, 잘라진 조각들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그림을 다시 완성할 때 이 퍼즐게임은 끝난다. 이 게임에서 당신의 상대는 신이다. 신은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의 규칙들도 만들어냈다. 이 규칙들이 무엇인지는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규칙의 절반은 당신 스스로 발견하거나 유추해내야 한다. 실험은 날을 세운 검이다. 이 검을 휘둘러 어둠의 악령들을 몰아내거나 아니면 치욕스럽게 몰락해야 한다. 신이 얼마나 많은 규칙들을 만들어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규칙들이 인간의 게으름 때문에 생겨났는지는 분명치 않다. 해법은 당신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만 가능하다. 이것이 이 게임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당신은 당신과 신 사이에 놓여 있는 상상의 한계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상상의 한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76)

한 번은 리포터가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성공을 위한 공식이 존재할까요?”

있고말고요.”

어떤 겁니까?” 리포터는 다시 물었다.

성공을 A라고 한다면 공식은 A=X+Y+Z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X는 일이고, Y는 유희입니다.”

그럼 Z는 뭐죠?”

아인슈타인은 웃으며 천천히 대답했다.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79)

아인슈타인의 가장 중요한, 동시에 논란의 여지가 가장 많았던 사고실험으로는 1935년에 발표된 ‘EPR역설이라는 것이 있다(EPR은 아인슈타인의 이니셜과 프린스턴에서 그와 함께 일했던 두 과학자 포돌스키와 로젠의 이니셜로 이루어진 명칭이다). 자신의 가설을 입증할 아무런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이루어진 순수한 사고실험인 EPR역설을 통해서 아인슈타인은 오랫동안 골치를 아프게 만들었던 양자물리학의 모순을 완전히 입증했노라고 주장했다(사실 양자물리학이 생겨나게 된 데에는 아인슈타인의 공헌이 적지 않다).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가 이른바 코펜하겐 해석을 통해서 강력하게 옹호했던 양자역학은 우연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물리적 법칙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친구 막스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EPR역설은 양자역학의 이런 근본적인 모순을 밝혀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보어와 그의 추종자들은 아인슈타인이 이상적 사고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맹비난했다.

(111)

지난 수천 년 동안 수학은 가지가 아무렇게나 뻗어나와 마구 뒤엉켜버린 나무처럼 무질서하게 성장했다. 바빌로니아, 이집트, 그리스, 아랍, 인도 등지에서의 발견과 그 뒤를 이은 근대 서양에서의 진보 등으로 수학은 수천 개의 머리를 지닌 괴물로 바뀌었다.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수학은 인류가 가진 가장 객관적이며 가장 광범위하게 발전된 학문적 도구인데도(실제로 매일같이 수백만의 사람들이 수학을 사용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 무한한 다양성 내부에 혹시 썩은 씨앗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곰팡이가 피어 그 계산결과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다.

(115)

괴델이 1931년에 마침내 문제를 해결했을 때 그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수학자에 불과했다. <수학원리와 그와 연관된 형식적으로 결정불가능한 명제들에 대하여 I>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그의 논문은 힐베르트의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거기서 괴델은 수학원리에 참이면서 동시에 증명이 불가능한 결정 불가능한 진술들이 존재할 수 있을 분만 아니라, 이런 결정 불가능성이 필연적으로 모든 공리체계는 물론 현존하는 그리고 앞으로 존재하게 될 모든 종류의 수학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모든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것과는 반대로 수학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없이 불완전했다.

수학이 세계를 총체적으로 표현한다거나 철학의 모순들로부터 자유롭다는 낭만적인 생각들은 괴델의 간단한 논증을 통해 단칼에 궤멸되었다.

(116)

괴델의 주장을 요약해보면 학문, 언어, 정신 등 모든 시스템 안에 참인 진술이 존재하지만 증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항상 증명 불가능한 허점이 발견되고 흰개미처럼 우리의 확신을 모조리 갉아먹는 모순된 논리가 등장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보어 계열의 양자이론을 통해서 물리학이 완벽하게 결정론적인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면, 괴델은 수학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았다.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확실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괴델 덕택에 진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것이 되었다.

(243)

그러면 악마는 어떤 특정한 이유 때문에 사악한 걸까? 이 물음은 조금 더 복잡하다. 악마는 순전히 자족적인 쾌락을 위해서 사방에 독을 뿌리는 걸까? 아니면 어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일까? 이 점에서 이론들은 서로 엇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악마의 의도가 창조의 계획을 어지럽히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악마의 임무는 혼란을 조장하고, 우주를 혼돈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악마는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엔트로피의 군주다. 그는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악마는 왜 그렇게 집요하게 우리를 죽음에 빠뜨리려고 애쓰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자기가 그의 경쟁자 못지않게 강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다. 어떤 악령학자들의 생각은 물론 이와 다르다. 사탄은 아무런 이유 없이 악하다. 그에게 어떤 동기가 있다면 우리는 그가 완전히사악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지배자가 되려는 그의 소망에는 어떤 납득할 만한 논리가 숨겨져 있을 것이며, 따라서 최후의 심판 때 적어도 그의 오만은 어느 정도 용서가 될 테니까. 반대로 악마가 이유가 없는 맹목적인 사악함을 지녔다고 한다면 우리는 비이성적이라는 절대적인 공포와 마주치게 된다. 타락한 천사 루시퍼는 지옥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우연도 지배한다고 한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물론 첫 번째 이론의 화신, 즉 이류의 악당들이다. 그들은 목적에 따라 행동했고, 스스로 정당성을 확신했으며, 심지어는 그러한 믿음 속에서 눈을 감았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기껏해야 이단자로 단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클링조르는?

(247)

그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현대 독일 과학의 역사에 정통하지. 그 대표적인 인물들에서부터 발전과정의 부침과 비극까지 모두 알고 있어. 왜냐하면 그가 바로 현대 독일 과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니까. 그는 단순히 선악으로 구분 짓기 힘든 인물로 친구와 적들이 모두 존경할 뿐만 아니라 의심할 바 없는 고귀한 도덕성까지 갖추고 있지. 내 생각에 그는 우리에게 매우 도움이 될 거야. 우리의 판단기분 자체를 바꾸어 놓을걸. 그도 이젠 늙고 허약한 남자에 불과하지만, 난 그가 우리 일에 틀림없이 도움을 줄 거라고 확신해.”

아인슈타인을 제외하면 교수님의 설명에 부합되는 인물은 단 한 사람밖에 없어요. 막스 플랑크! 그런데 지금 몇 살이나 됐죠? 한 백 살?”

(258)

그럼 교수님께서는 과학을 종교의 대체물로 보시는 겁니까?”

신앙심은 회의론자들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해. 과학적 연구에 진지하게 몰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과학의 사원 입구에 너는 믿어야만 하느니라라고 써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소. 우리 과학자들은 결코 믿음을 포기할 수 없지. 거듭된 실험의 결과를 놓고 우리는 마음속으로 우리가 찾는 법칙을 떠올려야 하는 거요. 그리고 가설을 세워 그것이 일정한 형체를 갖도록 만들어야 해.”

(260)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과학이 연구해야 할 무언가가 존재하며, 그것은 또한 과학이 풀어야 할 비밀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믿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 말씀인가요?”

과학의 법칙에만 충실하다면 맞는 말이오. 당신이 이 세계의 어떤 영역을 연구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그런 믿음을 통해 그리로 나아갈 수 있지. 물론 그것이 잘못된 걸음이라 거기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과학자들에게 흔하디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야. 무언가 어둠을 밝히는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계속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소. 위대한 발견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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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1-20 13: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신림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 1,2권 득템했어요! ㅎㅎ

bookholic 2019-01-20 16:43   좋아요 1 | URL
잘 하셨습니다.^^ 게으른 저보다 먼저 멋진 리뷰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