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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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무척 즐겨 듣던 팟캐스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줄여서 지대넓얕이 종방을 한 지 3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구나. 종방을 할 때만 해도, 얼마 안 있어 시즌 2를 할 것이라고 아빠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여 아쉬움을 달랬을 거야. 이렇게 오랫동안 감감무소식이 될 줄이야. 지대넓얕 팬들이 그토록 요청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시즌 2는 없는 것인지소식이 없구나. 최근에 채사장 혼자서 유튜브 채널을 열었는데, 혼자가 아닌 넷을 원한다고….

가끔 TV를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아빠는 TV를 거의 보지 않으니그들을 볼 수도 없어. TV를 그들을 본다고 해도, 그들의 진정한 모습은 지대넓얕을 통한 모습이어야 한단다. 그런 와중에 채사장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지난번 책에 약간의 실망감을 준 이후, 첫 번째 내놓은 책. 공존의 히트를 쳤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단다. 채사장의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권과 2권이 출간되었었는데, 이번에 나온 것은 3권이 아니고, 0권이란다. 이번에 나온 책이 흐름상 1권과 2권의 앞에 배치되어 있어야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제목을 붙인 거야.

책 제목에 붙은 “0”는 시간적으로 12의 앞부분을 의미할 수도 있고, 0차원을 이야기할 수도 있단다. 우주가 탄생하기 전에 무엇이 있었을까? 우주는 빅뱅을 통해 탄생된 이후 계속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을까. 시간도 존재하지 않고, 공간도 존재하지 않던 그 시절. 그래서 차원조차 없던, 0차원의 세계. 이 책에서는 그때부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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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0차원.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좌표축의 개수가 0인 세계. 여기에는 가로, 세로, 높이가 없고 시간의 차원도 없다. 이 세계는 시간과 무관한 그저 의 세계다. 점의 수학적 정의는 크기를 갖지 않는 최소의 단위. 이 모순되어 보이는 정의처럼, 0차원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크기도 갖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다. 시간, 공간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만약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어떤 존재일까? 그는 아마도 세계 그 자체일 것이고, 그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세계는 나다. 나는 세계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세계이고, 나는 나다.’ 그는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에 무척이나 어색함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존재와 부재는 구분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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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를 이야기를 할 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인류 탄생의 시간의 이전까지 가게 되고, 그곳부터는 역사라기보다 과학이라고 봐야겠지. 그렇게 생명의 탄생의 시간에 다다르게 되고, 또 계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구의 탄생에 다다르고, 우주의 탄생에 다다르게 된단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빅히스토리라고 한다고 들었어. <호모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도 그런 기법으로 <호모 사피엔스>를 기술했었지. 채사장님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제로 편>도 그런 부류로 볼 수 있겠구나. 비록 인류 탄생 이후 보편적인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지식의 탄생과 철학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나 할까. 채사장만의 빅히스토리 이야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구나.

누군가는 채사장에 대한 책 구성을 비판하는 이도 있지만, 모든 사람의 요구조건을 어떻게 만족시키겠니. 아빠에게는 좋았단다. 채사장의 해박한 지식. 그것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여 하나의 날줄로 잘 엮는 능력. 그리고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설명해주는 능력. 이번 책에서도 그런 것은 느낄 수 있었단다. 아빠는 독자로써 그것을 모두 소화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

우주의 탄생 이야기를 하자면, 양자역학이니 다중우주론이니 끈이론이니어려운 현대 과학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였고, 우주 탄생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다 보면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절로 하게 되었단다. 아빠는 신비한 우주의 이야기를 읽거나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란다. 그 광활한 우주의 비밀을 인류가 다 밝혀내기 전에 인류가 멸망하게 되겠지만 말이야. 우주의 이야기를 아빠가 좋아하는 이유 중에 또 하나는 우주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 자신의 존재가 아무 미미하게 되고, 그로 인해 왜 걱정을 하고,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아빠는 우주에 관한 영상을 보거나, 여건이 안되면 눈을 감고 광활한 우주를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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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우주의 크기를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지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초월적 거대함 앞에서 내 일상의 사소함은 너무도 하찮게 느껴진다. 현대의 이르러서도 인류가 을 놓지 못하는 철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가치 때문이다. 이 거대한 세계를 창조한 신이 인간의 기원일 것이라는 상상의 나의 존재론적 하찮음을 해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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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탄생을 지나 지구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지구 상에 생명이 나타난 이후는 진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인류가 탄생하게 되고, 인류가 지구 곳곳에 퍼지게 되고, 또 시간이 나자 문명이 탄생하게 된단다. 그리고 우주 탄생 이후의 시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른 시간으로 인류는 진보(?)하게 된단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지식의 뿌리가 되고 있는 것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이야기하고 해주었단다. 베다, 도가, 불교, 철학(서양의 철학), 그리고 기독교까지이것들이 다른 것 같지만, 모두 자아와 세계, 그리고 그것 간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지은이 채사장은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베다,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는 아빠가 정리해서 이야기하기에는 방대하구나. 아빠가 생각하기에, 채사장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들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의 지식이었노라인 것 같았단다.


2.

그래도 부족했단다. 채사장의 간만의 신간에 반가웠고, 지난 책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 느꼈던 실망감을 어느 정도 채워주었지만, 아직도 덜 채워졌단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팻캐스트 지대넓얕시즌 2. 채사장, 이독실, 김도인, 깡샘 그들의 복귀만이 부족함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구나.


PS:

책의 첫 문장 : 파잔(phajaan)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이다.

책의 끝 문장 : 당신이 언젠가 당신의 내면 안에서 찬란히 빛나는 세계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과학자들이 우리의 피 같은 세금을 써가며 당장 써먹을 수도 없는 수많은 우주를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중 우주론이 오늘날의 과학이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문턱을 넘을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중 우주론은 막다른 길에 봉착한 현대 물리학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 문제, 우주상수와 미세 조정의 문제, 양자 얽힘의 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끈이론과 M이론 등 인간의 이성 안에서 모순을 일으키는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한 큰 그림을 제공해준다. - P44

만약 지금의 수치와 달리 아주 작은 차이만 있었더라도 우리 우주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 질량이 이미 정확하게 밝혀져 있는데, 중성자가 양성자보다 조금 더 무겁다. 하지만, 그 차이는 매우 미세해서 고작 전자 2개 정도의 질량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차이는 사실 너무도 미미하다. 그런데 이 미세한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차이를 만들었다. 더 무거운 중성자가 붕괴하며 양성자가 되는 방식으로 우리 우주의 모든 물질을 구성한 것이다. 만약 반대였다면 양성자가 약간 더 무거웠다면 양성자가 붕괴하여 중성자가 되는 방식으로 원자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종류의 물질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은하계와 태양계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며, 우주의 구조도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과 인간의 탄생이 불가능한 건 말할 것도 없다. - P78

그렇다면 신이란 무엇인가? 크리슈나는 신의 본성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그대에게 자아의 신성(神聖)에 대해 설명하겠다.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틀을 갖지 않는다. 자아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중간이며 끝이다. 자아는 모든 존재의 탄생이고 시작이며, 끝이자 죽음이다. 자아는 영원하니 결코 태어난 적이 없고 결코 죽은 적이 없다. 자아는 모든 곳과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하고 자기 속에 모든 만물이 존재한다. 자아 없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란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그 어떤 것도 없다." - P229

노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덕이 없는 사회에서는 인이 강조되고, 인이 없는 사회에서는 의가 강조되며, 의마저도 없는 사회에서는 예만 강조된다. 쉽게 말하면, 자기 내면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인자함이 중요시되고, 인자함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의리가 중요해지며, 의리가 사라진 사회에는 예절이 강요된다는 것이다. - P274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무아설에 있다. 자아의 실체를 부정하는 세계관은 지금까지의 다른 사상이나 종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개념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포함하는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는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을 상정하고,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 합리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도 사유하는 존재로서 자아의 자기동일성을 강조하며, 특정 종교나 사상을 떠나서도 보통의 사람들에게 매우 상징적이고 친숙한 사고방식이 ‘내가 있다’는 전제이니 말이다. - P383

플라톤은 우리의 머릿속에 혹은 영혼 속에 절대적이고 완벽한 이성적 개념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 이렇게 이데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의 영혼은 원래 이데아의 세계에 있었지만 육체를 갖고 이를 망각한 상태로 지상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를 상기론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지식은 현실의 경험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에 남아 있는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얻게 된다. - P430

흔히 서양 사상은 두 가지 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헬레니즘은 그리스*로마의 정신을, 헤브라이즘은 <구약>성서의 세계관을 말한다. 헬레니즘은 서양 철학의 기원이 되었고, 헤브라이즘은 기독교의 기원이 되었다. 이것은 언뜻 대립하는 사상처럼 보인다.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인본주의적 철학과 절대자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는 신본주의적 종교, 하지만 대립하는 두 사상은 근원에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것은 이원론이다. -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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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렇다면 선거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기득권층 내부의 싸움, 즉 사회적으로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 엘리트들끼리의 권력 쟁탈 게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기득권층의 영구적 권력 향유를 보장하는 합법적 메커니즘인 것이다. 사실, 선거(election)라는 말 자체가 원래 엘리트(elite)라는 말과 어원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일찍이 미국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했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만약에 선거로 진정한 개혁이 가능하다면, 선거는 벌써 오래전에 (지배층에 의해) 불법화되었을 것이다.”


(7)

그러나 미국의 정치, 문화 풍토에서는 매우 낯선 개념,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샌더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이변이 과연 일어날 수 있을까? 최근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샌더스가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전 대통령 오바마와 클린턴 부부를 포함한 민주당 주류파와 <뉴욕타임즈>를 위시한 진보파언론들의 샌더스의 대한 거부감은 갈수록 노골적으로 되고 있다.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이 무엇이건, 그들이 샌더스를 반대하는 이유는 극히 단순하다. , 민주, 공화 양당체제 속에서 오랫동안 엘리트로서 온갖 특권을 누려온 그들은 사상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사회주의자샌더스와는 결코 동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존의 선거제도하에서 샌더스와 같은 혁신적인 비전을 가진 급진파가 정치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거의 모든 나라의 엄중한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40)

의회는 중세 초기의 혼란이 가라앉고 점차 봉건적 질서가 안정되던 시기의 유럽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제도이지만, 그 기능은 왕과 귀족들의 회의의 장으로서 민주주의의 기구 따위는 전혀 아니었다. 영국의 경우 엘프레드대왕의 앵글로-색슨 왕국 시절부터 위탄(witan)’이라는 기구가 있었지만, 이는 지혜로운 자들의 모임이라는 그 말의 의미대로 전쟁이나 징세 등과 같은 국가 대사를 놓고서 왕과 귀족들이 숙의하고 합의하는 장이었다. 이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바이킹들을 이끌고 윌리엄 1세가 영국을 정복한 이후 그나마 위탄도 폐지되고, 전권을 쥔 정복왕이 법률을 정할 적에 자문을 행하는 귀족과 성직자들의 회의체 정도만 남게 된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 회의체에 귀족과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영국 각 지역의 기사들 및 시민들(burgess)도 참여하게 되면서 의회의 모습이 갖추어지게 되고, 14세기가 되면 이른바 모범 의회와 같은 틀이 만들어진다.


(44)

2차대전이 끝난 뒤 이렇게 마비되어버린 의회민주주의를 되살린 핵심적인 받침대가 바로 정당이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정당이란 뜻과 이익을 함께 하는 도당에 불과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그 전과는 다른 각종 대중정당들-대표적으로 노동자들의 사회민주당-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들이 완전히 의회 내의 제도 정당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2차대전 이후의 일이었다. 이 정당들의 의회 바깥에서 사회 전체를 양분하는 노동과 자본이라는 양대 세력을 각각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고, 각각의 입장에서 산업사회 전체를 어떻게 개조하고 운영할 것인지의 구체적인 방안과 또 그것을 실현할 인물들 그리고 홍보하고 정당화시키는 조직 동원의 장치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당정치의 안정으로 인해 의회는 산업사회의 통치 주체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정당들은 그 자체로 준비된집권세력이었다. 선거는 그러한 집권세력 몇 가지 중에서 선택을 하는 행위가 되었으며, 의회는 그러한 집권 정당의 준비된 통치가 야당의 견제 속에서 관철되는 장으로 성격이 변하게 되었다.


(69)

중증의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은 과연 어느 쪽인가. ‘만세일계현인신천황의 이름으로 받들어 모시는 신도를 사실상의 국교로 삼고 그 신자들이 구성하는 일본회의라는 초우익 단체가 사실상 지배하는 신국(神國)’, ‘신주(神洲)’라는 일본의 주술적 모모타로 후예 우익세력, 그리고 그들과 공명하는 이 땅의 우익이 의기투합해 도깨비사냥에 나서는 것, 그리하여 좋았던 그 시절을 탈환하자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야만적 종족주의 아닌가.


(75-6)

중세에 들어와 아랍인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만들고 세력을 규합한 뒤 가장 먼저 공략에 나선 상대가 이란이었다. 보통 이란을 아랍국으로 착각하지만 아랍과 이란은 뿌리도 언어도 다르다. 비슷한 점이라면 같은 이슬람을 믿는다는 점,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 정도다. 이란은 이란이고 아랍은 아랍이다. 실제 아랍국들은 이란을 경외 혹은 백안시한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 미국은 물론이고 사우디 같은 아랍국들도 모두 아랍 형제 이라크를 지원했었다.


(94)

하지만 IOC 위원들을 보라. 그들에게는 900달러라는 수당이 매일 지급되고, 5성급 호텔에서의 숙박과 같은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3주 동안이면 2만 달러나 된다. 선수들이 인생을 걸고 획득한 메달 이상의 금액이 주어진다. 선수들이 어떻게 취급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시합을 보면서 코를 고는 자들이 생애를 걸고 단련한 선수들을 제쳐 놓고 900달러라는 일당을 받는다. 이러한 정보가 널리 알려진다면 선수들이 단결하여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역전극이 벌어진다. 올림픽이 변할지도 모른다.


(103)

이처럼 논은 늪이 생산할 수 없는 주곡을 대량 생산하면서도 늪과 비교할 수 없는 광활한 면적으로 늪과 같은 생태적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거대한 습지다. 늪만 습지가 아니다. 논은 수심이 얕고 규격이 작게 분할되어 오히려 생태적인 작은 인공 습지들의 집합이다.

논댐의 가장 큰 생태적 역할은 토양유실을 방지하는 것이다. 경사진 산지와 밭에서는 비가 올 때마다 겉흙이 조금씩 씻겨 내리거나 때로 크고 작은 산사태가 이어진다. 그런데 비탈밭이나 산자락에도 계단식으로 논을 만들면 토양유식을 거의 완벽하게 방지한다. 논의 지면은 경사가 아닌 수평이기 때문에, 그리고 논두렁으로 물을 막아 놓고 있기 때문에 비가 와도 논바닥 흙이 씻겨 내리지 않는다. 물꼬 입구까지 차면 흙의 유실 없이 물만 물꼬를 통해 도랑이나 논 옆에 개설한 수로를 통해 흘러간다.


(133)

, 여름, 가을이 있고 유년 장년 노년이 있듯이 인종에게도 태허(太虛) 다음 봄의 세계가 있었을 것이고, 여름의 무성이 있었을 것이고, 가을의 귀의가 있을 것이다. – 신동엽, <시인 정신론>

마치 가을 들판의 농부들처럼 저녁 빛 속에서 다시 갈 길을 찾자 하고 외치는 것 같다. 바로 여기에서 질문되어야 할 것이 그가 농경적 상상력을 고집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는 현대문명이 야기한 존재의 망각현상의 원인을 농경문화의 종결이 가져다주는 대치 체험의 상실로 본다. 그로 인해 발생한 가장 뼈아픈 결손은 영성의 소멸일 것이다. 인간이 농업을 붙들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대지와의 연대감이 살아 있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교통이 불편하고 네트워크가 열악한 시골에서 사는 것을 현대인들은 고립된 존재로 생각하기 쉬우나 농부는 안 안에 앉아서도 기러기가 나는 것을 알고, 외양간의 가축들과도 우정을 나누며, 들판의 곡식과 대화도 한다. 그 외딴곳 한 모퉁이에 서서 다음 날 펼쳐질 날씨를 귀신같이 아는 것을 영성적 소통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198)

이제는 나의 거실 한쪽 벽면의 책장에도 적지 않은 책이 무질서하게 꽂혀 있다. 어느 날 잠깐 책으로 눈이 갔다.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읽다 만 책, 읽었던 책, 미처 못 읽고 놓아둔 책, 저들을 어찌할거나? 저 아까운 책들을 놓고 저세상으로 가게 되면저 속에 알천이 담겨 있는데, 미처 못 읽은 책, 언젠가는 꼭 읽고 싶었는데, 순간 애간장을 저미는 듯 가슴에 뜨거운 김이 훑고 지나갔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내게는 귀중본 같은 소유물인데. 여러 차례 폐기하고 알짜배기만 남았는데얼추 호명해보니 리영희, 법정, 권정생, 장준하, 한하운, 최명희, 조정래, 이청준, 이문구, 김종필, 빅터 프랭클, 헨리 데이비드 소로, 프리모 레비, 헬렌 니어링,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이름만 불러도 마음이 정갈해지는 것 같다.


(198-9)

그런 분은 그렇다 쳐도 나야 문학의 우아한 멋도 깊이도 배워본 것 없지만, 책을 버리면서는 얼른 버리지 못하고 현관 밖에 일단 내놓고서 며칠을 지나는 사이 미련스럽게 다시 매만져보게 된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는 아까운 생각에 골라서 몇 권을 다시 들여놓는 버릇이 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책은 그런 것이었다. 책 속에는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세계가 있다. 희망과 위안으로 나를 여물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책에서 생각을 키웠고,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저 너머 세계를 느껴보는 것도 책에서였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책 속세는 향기를 품은 어머니의 살 내음 같은 것이 있다. 젊은 날 허둥댈 때 그 내음에 기대어 불안한 마음을 잠재워보았다.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소곤거림도 책에서 수시로 들었다. 이 세상을 떠난 먼 나라로 갈 때 권정생의 책 한 권 품속에 안고 갈 수는 없을까. 죽음 뒤의 삶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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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 인간 이봉창 이야기
배경식 지음 / 너머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궁금해하는 독립 운동가 중에 이봉창이라는 분이 있단다. 천황을 노리고 폭탄을 던졌지만,  불발로 그쳐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던 이. 그가 했던 일은 그것 하나뿐이었단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궁금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여러 책에서 단편적으로 보았던 그의 호방한 모습 때문이었어. 특히 김구의 백범일지에 적혀 있는 김구와 이봉창의 일화는 가슴 뭉클하게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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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데 그 청년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당신네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왜 일본 천황을 안 죽이오?"

이 말에 어떤 민단 사무원이,

"일개 문관이나 무관 하나도 죽이기가 어려운데 천황을

어떻게 죽이오?"

한즉, 그 청년은,

"내가 작년에 천황이 능행을 하는 것을 길가에 엎드려서 보았는데,

그때에는 나는 지금 내 손에 폭발탄 1개만 있었으면 천황을 죽이겠다고

생각하였소"

하였다.

나는 그날 밤에 이봉창을 그 여관으로 찾았다.

그는 상해에 온 뜻을 이렇게 말하였다.

"제 나이가 이제 서른한 살입니다. 앞으로 서른한 해를 더 산다 해도

지금까지보다 더 나은 재미는 없을 것입니다. 늙겠으니까요.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에 인생의 쾌락이란 것은

대강 맛을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 사업에

몸을 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

이씨의 이 말에 내 눈에는 눈물이 찼다.

                 - 김구 <백범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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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이봉창에 대한 책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이봉창에 관한 책 두 권을 사두었다가 이번에 그 중에 한 권을 읽었단다.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 부제 <인간 이봉창 이야기>를 보지 않고, 제목만 보았다면 어떤 일본인이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이야기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왜 지은이는 제목을 그렇게 지을 수 밖에 없었을까. 그 이야기를 해줄게


1.

독립운동가들의 전기를 보다 보면, 가끔 독립운동가를 미화하여 영웅시하는 경우가 있곤 한단다. 잘 한 것에 대해 좀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것을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은이 배경식님은 좀더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서 써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셨어. 이 책을 출간하기 전까지 나온 이봉창의 전기들이 이봉창에 대해 좀 미화를 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시면서, 좀더 사실에 근거해서 쓰셨다고 했어. 그렇다고 이봉창의 업적을 깎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어. 인간 이봉창에 대해 솔직하게 써서 이봉창에 대해 더 정확히 알리고 그의 인간적인 고뇌도 함께 느끼게 해주려는 것은 아니었나 싶구나.

여러 책들을 참고를 했는데, 이봉창의 옥중수기 <상신서>도 참고했다고 했어. 이 책의 뒷부분에 이봉창의 옥중수기 <상신서>도 실려 있어서 같이 읽어서 좋았단다. 그런데 문득 아빠는 그런 생각을 했단다. 일본 경찰들이 강제로 수기를 거짓으로, 그러니까 이봉창의 삶을 안 좋게 쓰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말이야.

책제목에 나와 있는 기노시타 쇼조는 이봉창의 일본식 이름이란다. 왜 그는 일본식 이름을 썼을까.

1900년 용산에 태어난 이봉창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하여 부유하게 살기도 했지만, 이봉창의 아버지는 일본인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집을 나갔어. 그래서 남은 가족들은 어려운 생활을 했다고 했어. 이봉창은 돈 벌 궁리를 하면서도 모던보이를 꿈꾸었던 사람이었어. 식민지를 사는 스무 살의 젊은이라면, 독립 운동에 관심을 가질 만도 하지만, 이봉창은 1919년 삼일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대. 그가 관심 있는 것은 돈이었어.

이봉창은 인구센서스의 조사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이 직업은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 조선총독부로부터 신분을 보장 받은 이들만 할 수 있는 직업이었던 것이지. 하지만 조선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는 차별을 받았어. 승진이나 임금 모두 차별을 받았지. 누군가로부터 일본에 가면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일본으로 향했단다.


2.

일본에 건너간 그는 기노시타 쇼조라는 이름으로 일했어. 정말 임금을 많이 주었어. 그런데, 두 번째 임금은 처음보다 적게 주는 것이었어. 알고 보니, 처음에는 그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많은 돈을 주었다는 거야. 일본에서도 차별을 받았어. 일본에서 5년 동안 살았는데, 5년 동안의 생활에서 그가 얻은 것은 그에게도 뜨거운 심장이 있다는 사실. 조선 독립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조선이 독립을 되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에서 능력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구나.

============================

(102)

그때의 심정을 이봉창은 <상신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때부터 나도 직장일이나 생활이 점점 타락으로 치달아 남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고, 따라서 사상도 저절로 변해 어떤 사상 운동에 몸과 마음을 던지기로 마음먹고 기회를 엿봤으나 좋은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때의 사상은 특별히 정한 사상은 없었다. 무엇이든 좋다. 누군가 끌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갈 기분이었다. 그후 다시금 생각하게 돼 나는 조선인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선독립운동에 몸을 던져 우리 2천만 동포를 위해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마음먹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

============================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어.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일본을 떠나 중국 상해로 갔단다. 그곳에서 김구를 만났고, 의거의 뜻을 전했단다. 김구도 임시정부의 영향력이 쇠퇴하여 반전의 카드를 도모하고 있던 시기에, 이봉창과 같은 이를 만나 기뻐했단다. 이봉창은 김구의 비밀 조직 한인애국단에 가입을 하고 김구는 의거의 성공을 위해 이봉창의 계획을 비밀로 했어. 그렇다 보니, 임시정부의 다른 요인들은 이봉창을 무시하고 왜영감이라는 모욕적인 별명까지 붙였어. 그렇게 일년을 준비하고, 드디어 일본을 다시 향했단다.


3.

지은이는, 이봉창이 상해를 떠나 도쿄에 도착해서 거사를 치르기까지 20일간의 이야기를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단다. 그 사이에 술도 마시고 유곽에서 유흥을 즐긴 이야기도 해주었어. 이봉창의 감정이입을 해보기로 했어. 이 의거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을 거야. 의거에 대한 준비도 혼자 준비해야 했어. 상해에서 김구가 돈을 지원해 주었지만, 적지에서는 혼자 준비해야 했어. , 외롭지 않았을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았을까.

그는 모던보이를 꿈꾸던 이답게 모던보이의 생활을 하면서 의거를 준비했다고 보면 돼. 일본 경찰들은 그런 이봉창의 겉모습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까 싶구나. 지은이는 이봉창이 폭탄 관리에 부주의해서 불발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이봉창 그도 걱정을 했을 거야. 폭탄이 불발이라도 되면 어쩔까 하고그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업적을 과소평가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변절이 난무하고 친일파로 전향을 밥 먹듯 하던 그 시절에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질 수 있는 강하고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던 이봉창. 누가 그와 같은 삶을 살겠는가. 그는 결국 1932년 사형 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단다. 우리나라 나이로 쳐도 고작 33.

….

그와 함께 한인애국단 소속이었던 윤봉길도 잇달아 의거를 일으켰어. 다행히 윤봉길의 의거는 성공했단다. 일본은 이봉창과 윤봉길의 배후가 누구인지 처음에는 파악하지 못했어. 김구가 스스로 자신이 배후라고 밝혔고, 쇠퇴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다시 한번 온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단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힘도 다시 갖추는 계기가 되었단다.

이봉창. 이 책을 통해 그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그의 짧은 삶을 함께 산 느낌이었단다. 그의 영화 같은 삶을 잘 연출해서 영화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러면 그에 대해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지 않을까 싶구나. 이름만 알고 있는 그에 대해서 말이야


PS:

책의 첫 문장 : 지금 우리는 두 장의 사진을 보고 있다.

책의 끝 문장 : 이옹의 말처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어머니와 동생 태준을 한 해에 한 번씩이라도 서로 만나봐야 죽은 다음에 만날 봉창에게도 이야깃거리가 있을 터인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봉창은 자신이 결코 일본인이 될 수 없는 조선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조선인임을 깨닫는 그 순간 이봉창은 일본인이 되어 어떻게 하든지 식민지 백성의 굴레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나는 조선인이라는 것이 남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선에는 편지도 보내지 않았으며 또한 본명도 밝히지 않고 언제나 항상 일본이름을 쓰면서 어디에 가든 진짜 일본인 행세를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본명을 사용해서는 이 세상을 편안하고 태평스럽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언짢은 마음 참을 길이 없었고, 당당하게 본명을 쓰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 P109

그날 저녁 김구는 이봉창이 묵고 있는 여관을 찾아와서 속마음을 털어놓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었다. 이봉창은 김구에게 자신의 포부를 털어놓았다.

"제 나이 서른하나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하여도 과거 반생 동안 방랑생활에서 맛본 것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해로 왔습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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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다윈)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음과 같이 은유적으로 말할 수 있으리라. 자연선택은 전 세계를 매시간 매일 샅샅이 수색하여, 가장 작은 변이까지도 찾아낸다. 그리하여 나쁜 것은 기각하고, 좋은 것은 보존하여 보관목록에 추가한다. 자연선택은 언제 어디서나 기회가 생길 때마다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인다. 그러나 시간의 손이 연대의 경과를 표시할 때까지 우리는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아득히 먼 지질시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너무나 불완전해서, 기껏해야 오늘날의 생물형태가 종전과 다르다라는 정도만 알 뿐이다.”


(38)

전문적이든 대중적이든, 진화론을 다룬 서적과 논문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상당수는 바늘 끝에 천사가 몇 명 올라갈 수 있을까?” 같은 중세 주석학자들의 논쟁처럼 지극히 추상적이었다. 다윈주의에 대한 가장 박식한 해석 중 일부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졌다. 결정적으로 수많은 문헌들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라는 이론을 여전히 편지봉투 겉봉에 휘갈겨 쓴 메모처럼 단편적으로 다뤘고, ‘종의 기원은 다윈이 <비글호 항해기>에서 말한 것처럼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로 남았다.


(42)

갈라파고스 제도는 10여 개의 큰 섬과 10여 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섬들은 모두 해저에서 솟아오른 화산의 끄트머리다. 섬들의 태평양 표면을 꿰뚫고 올라온 지는 500만 년이 채 안 되므로, 아메리카 대륙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암석들보다 나이가 젊다는 특정이 있다. 그 섬들 중 몇 개는 아직도 산고를 겪고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맹렬한 화산으로 분류된다. 갈라파고스는 너무 젊어서 구형에서 신형이 창조되는 과정이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 갈라파고스에서는 생물도 화산과 마찬가지로 빠르고 맹렬하게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당수의 생물들은 고립된 섬들에 발목이 잡혀 있고(각 화산의 정상은 교도소와 비슷해서 대부분의 생물들은 그곳에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본토와 연결되는 다리도 전혀 없어서(남아메리카 대륙은 동쪽으로 1,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제도에 서식하는 생물의 생활형은 본의 아니게 자신만의 경로를 밟는다.


(69)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다윈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내 생각에 약간의 근거라도 있다면,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물학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관찰한 현상들은 종의 안정성을 약화시킨다.” ‘종의 안정성을 약화시킨다라는 구절은 다윈이 향후 20여 년간 겪을 고뇌를 예고하는 조짐이었다.


(103)

사소한 차이가 생존할 것사라질 것을 결정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 찰스 다윈이 아사 그레이에게 쓴 편지 중에서


(162)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심지어 메마른 섬에 사는 새 떼들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삶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동안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도 녹록치 않다. 물론 살아남는 건 단지 기본사항일 뿐이다. 나이가 좀 더 들면 새들은 목숨을 계속 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배우자를 만나 짝짓기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은 기존의 생존경쟁에 완전히 새로운 경쟁을 덧붙이며, 성선택의 압력은 자연선택의 압력과 가끔씩 충돌한다.


(206)

돌프 슐러터는 이렇게 말한다. “예민한 움직임은 도처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군들의 한 측면입니다. 그것은 개체군이 역동적이며, 아직 요동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든 좀 더 큰 환경변화가 일어나는 순간, 개체군들이 이쪽 또는 저쪽으로 떠밀릴지도 모릅니다.” 만약 개체군들이 환경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과정은 완료되었으며 생명창조가 끝났음을 시사한다. 원자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주가 죽거나 소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개체군의 움직임은 어디서나 발견되기 때문이다. 슐러터에 의하면 그것은 항상 존재한다.


(277)

비글호는 영국 해군의 탐사선이었으므로 다윈은 바위와 산호모래로 구성된 보이는 해안선을 지도로 작성하는 데 동참했다. 하지만 종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해안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일관성이 없고 헷갈렸다. 첫 비밀노트에서 그는 종을 성적 본능 및 도구에 의해 격리된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분기 원리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주제에서 이 부분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새로운 종을 계속 격리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종간의 장벽은 무엇이고, 이 장벽을 넘기 어렵거나 쉽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다윈이 조사나 탐험을 하지 않은 채 남겨둔 부분은 바로 이것, ‘보이지 않는 해안선이었다.


(334-5)

지난 20년간의 관찰기간 동안 그랜트 부부는 진자가 가뭄 쪽으로 이동했다가 홍수 쪽으로 이동하고, 다시 가뭄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봤다. 그러면서 그들은 적응지형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흰 파도처럼) 슬로 모션으로 서서히 솟아오르는 것을 봤다. 적응지형이 대홍수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때, 즉 땅이 건조해지고 선인장과 남가새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 종 사이의 유전자 흐름도 고갈될 것이다. 그렇데 된다면 크랜트 부부가 말한 것처럼 현재의 적응지형에서 지금껏 번성했던 잡종은 다시 불리해질 것이고, 결국에는 자연선택을 통해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슈퍼 엘니뇨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세 가지 종(중간땅핀치, 작은땅핀치, 보통선인장핀치)은 독립된 종으로 존속할 것이다. 참고로 지난 500년간 슈퍼 엘니뇨로 분류된 엘니뇨는 한 세기에 한 번 내지 세 번꼴로 일어났다.


(341-2)

계통수에 대한 오래된 관점은 소박하고 깔끔하고 삭막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하는 관점은 부드럽고 혼란스럽고 뒤엉켜 있고 생생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동정적이기도 하다. 다윈핀치의 계통들이 경쟁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다윈의 분기 원리에 따라 서로 투쟁하고 밀어낸다. 산의 왕 자리를 놓고 끊임없이 게임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각각의 섬과 고독한 봉우리에 사는 새들은 겉보기와 달리 고독하기 않다. 핀치들은 (수많은 핵의 결속과 긴장에 얽매인) 핵가족 내의 형제자매들처럼 또는 (왕자와 공주를 교환하여 혈통을 연결하는) 유럽의 왕가들처럼 분열과 융합, 경쟁과 협동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새들은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이리저리 전달하면서 좋은 이웃들이 레시피, 요리 도구, 리메릭(aabba의 각을 가지는 5행 익살시_옮긴이)을 교환하듯 무심코 유전자를 교환한다. 비밀을 공유하고, 긴 여행을 하며 서로 친해지고, 상대방의 제안에 마음을 연다. 핀치들은 계통은 합쳐졌다가 갈라지므로 이런 측면에서 창조되고 재창조되는 일을 되풀이한다고 할 수 있다.


(342)

지구의 외견상 고정불변성이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상식적 주장이었던 것처럼, ‘종의 외견상 불변성은 한때 진화론을 반박하는 가장 주요한 주장이었다. 한때 이솝을 비롯한 우화 작가들로 하여금 여우, 올빼미, 늑대, 고래, 까마귀 이야기를 늘어놓게 함으로써 우리를 만족시키고 안심시켰던 동일성은 어쩌면 환상에 불과한 개념인지도 모른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라고 말했다. 생물의 형태와 본능,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 그리고 살고 있는 해안과 지형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343-4)

빅토리아 시대의 물리학자 켈빈 경은 1883년에 이렇게 선언했다. “당신이 말하고 표현하는 것을 측정하여 숫자로 나타낼 수 있을 때, 당신은 그것에 대해 뭔가를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면 당신의 지식은 빈약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말이나 표현이 지식의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어떤 문제이든 간에 당신의 사유는 과학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378)

인간 때문에 본의 아니게 지구상의 새로운 장소에 침입하는 바람에, 그들(영국참새, 따개비, 초파리 등)은 갈라파고스에 상륙한 첫 핀치들처럼 위기에 처했으며, 핀치의 진화처럼 그들의 진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위기라기보다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434-5)

우리가 해충과 세균에게 가하는 압력이 강해질수록 그들은 그 압력을 우회하여 진화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압력은 해충에게 진화압력으로 작용하지만, 우리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진화의 기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는 갈라파고스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창밖에서 악전고투하는 개똥지빠귀와 참나무만의 문제도 아니다. 진화는 매우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 이것은 끔찍한 아이러니다. 환경을 가장 철저하게 통제하고 가장 완벽하게 소유하고 싶은 곳에서 우리는 저항운동에 포위되어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저항운동과 맹렬히 싸울수록 세균과 해충은 더 강하고 빠르게 진화한다. 잘라낼수록 더 빨리 튀어나오는 히드라의 머리처럼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을 통제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바로 그들의 진화를 촉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통제가 그들에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변화의 한 자락에 불과하다. 그것은 환경의 변화일 뿐이며, 그들은 꿋꿋하게 서서 변화를 따라잡도록 설계되어 있다. 무차별적으로 진화압력을 계속 가하는 한, 그들은 대항하여 전염병을 계속 일으킬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이집트 땅에 출현한 개구리들처럼, 또는 이집트 땅 전체에서 이(lice)로 변한 지구의 먼지처럼 말이다.


(456-7)

진화가 팩트임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다윈은 첫 번째 비밀노트 중 한 권에 이렇게 써놓았다. “거만한 인간은 자신을 (신성이 개입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생각보다 더 비천하다고 느끼며, 동물에서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믿는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의식이라는 재능은 미스터리이며, 생물학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의식이 새의 부리, 깃털, 날개보다 우월한 기적은 아니며, ‘살아 있는 진흙의 모델링과 몰딩에 의해 새와 꼭 같은 과정, 즉 다윈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는 왜 의식을 정도의 차이로 보지 않고, ‘우리에게 특유한 것이라고 가정할까? 다윈은 노트에 이렇게 썼다. “의식은 우리의 자만심의 발로이자 자화자찬 행위에 불과하다.”


(468)

에머슨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각자 천직을 갖고 있으며, 재능은 소명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열린 길이 있으며, 그쪽에 끝없이 정진하도록 묵묵히 이끄는 재능을 갖고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개처럼 걸으려고 애쓰는 양이나, 말처럼 뛰기 위해 노력하는 황소를 본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모방하려 애쓰는 인간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사람들 간의 차이가 동물 종들 간의 차이보다 더 크다.” 아이스킬루스는 말한다. “특징이 곧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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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ehyun 2020-03-24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론은 읽을수록 매력적이예요.

bookholic 2020-03-25 00:01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것 같아요~~
더 내공을 쌓아서 언젠가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도전을 해봐야할텐데요..^^
 
리플리 5 : 심연의 리플리 리플리 5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세기적 사이코 패스 시리즈 <리플리>의 마지막 5권을 읽었단다. 그럼,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그 마지막 이야기를 해줄게.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지은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이 시리즈를 완성하는데 36년이 걸렸다고 했잖아. 이번에 읽은 5권은 1991년에 출간되었단다. 책의 앞머리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단다.

======================

억압에 맞서 싸우다 죽어 간 쿠르드인들,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든 억압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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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억압에 저항했던 일이 있어나 보구나. 쿠르드인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억압에 저항하다가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리는 것을 보니, 지은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다시 보게 되고, 그의 다른 소설들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삶도 궁금해지는구나.


1.

톰 리플리의 마지막 시리즈. 5권을 들면서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톰 리플리가 결국 경찰에 잡히거나 자신의 범죄가 모두 드러나게 되는 것을 기대하는 독자들이 많았을까. 끝내 톰 리플리의 범죄가 드러나지 않는 것을 기대하는 독자들이 많았을까. 현실에서는 당연히 톰 리플리의 범죄가 드러나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텐데소설이다 보니 끝내 범죄가 밝혀지지 않고 끝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어느덧 악한 톰 리플리에게 정이 든 걸까.

어떤 미국인 부부가 톰 리플리 주변을 기분 나쁘게 기웃거렸단다. 그 부부 중 남편은 데이비드 프리처드라는 남자인데,  먼저 리플리에게 접근해서 아는 척을 하기도 하고, 리플리에 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단다. 리플리의 집 근처에 집까지 얻었다고 했어. 그런데 리플리에 관해 많이 알고 있는 것들은 바로 리플리가 숨기고 싶은 과거의 것들이었어.

프리처드가 나타난 이후에는 이상한 일이 생기곤 했어. 전화가 한 통 왔는데, 자신이 디키 그린리프라고 했어. 기억나니? 톰 리플리가 가장 먼저 살인을 저지른 인물.. 디키 그린리프. 요트에서 죽인 후 바다에 돌과 함께 수장시킨 디키. 이 이야기의 시작이 되었던 그 인물. 톰 리플리는 태연한 척 어떤 이가 장난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어떤 이는 바로 프리처드일 것이라고 생각했어. 프리처드 이 사람도 보통 사람은 아닌 듯 했어. 톰과 인연도 없어 보이는데, 계속 톰의 신경을 건들였어. 톰의 집 주변에서 톰의 집을 사진찍기도 했단다.

그리고 톰과 톰의 아내 엘로이즈가 모로코의 탕헤르에 여행을 갔는데, 거기까지 찾아왔어. 도대체 프리처드는 왜 이렇게 톰을 따라 다닐까. 프리처드의 아내 재니스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프리처드와 재니스는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어. 재니스가 이야기하길, 프리처드는 남들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어. 단지 그 이유였다는 거야. 프리처드가 이상한 성격을 가졌다고 하지만, 세기의 사이코패스의 신경을 건들다니.. 톰은 프리처드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단다.


2.

일단 프리처드가 하는 지켜 보기로 했어.. 무심한 척 하면서 말이야. 프리처드는 톰이 2권에서 와인병으로 때려 주이고 강에 빠뜨린 머치슨의 죽음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어. 톰이 세기의 사이코패스이지만, 악함으로 보면 한 수 위가 맞지만, 프리처드가 톰의 약점을 많이 쥐고 있는 것 같았어. 프리처드는 디키와 머치슨과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도 연락을 해서 톰을 괴롭히려고 했어. 그리고 프리처드는 사람까지 고용해서, 갈고리 같은 것을 이용해서 강바닥을 뒤졌어. 머치슨이 죽은 지 수 년이 지났으니, 건져봤자 유골일 텐데대단한 집념이구나.

그러던 어느날, 톰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기집 창고에 젖은 유골이 있는 것을 발견했어. 프리처드가 드디어 찾은 것인가. 톰은 이제 이 사태를 어떻게 대응할까.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그 유골을 다시 원주인에게 몰래 갖다 주기로 했어. 프리처드 말이야. 프리처드도 몰래 자신의 집에 갖다 놓았으니 그대로 갚아주겠다는 거지.

동업자 에드의 도움을 받아 머치슨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을 프리처드의 집 수영장에 몰래 던져 버렸단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몰래는 아니지.. 유골을 수영장에 빠뜨리는 소리를 듣고 프리처드와 재니스가 달려왔으니까자리를 피하고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는 톰. 프리처드는 당황하여 안절부절 하면서 갈고리로 유골을 건지려다가 수영장에 빠지고, 재니스도 프리처드를 도와주려다가 수영장에 빠졌어. 수영장의 깊이는 2미터프리처드와 재니스는 수영을 하지 못했어. 그들은 허우적대다가 그만그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을 본 톰 리플리는 그저 보기만 했어. 톰의 동업자 에드는 이런 일을 처음 겪다 보니 도와주자고 했지만, 톰은 그를 설득했어. 그들을 구해줘 봤자, 도움이 되는 것은 없고, 톰과 에드가 사기를 친 과거만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야.

….

다음날 프리처드와 재니스는 물에 빠져 죽은 채 발견되었단다. 그 어떤 타살의 흔적도 없었고, 그들이 실수로 깊은 수영장에 빠진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단다.

..

그리고 결국 톰 리플리의 범죄는 소설 속에 묻힌 채 끝이 났단다. , 이 소설은 해피 엔딩인가? 언해피 엔딩인가? 권선징악이고 정의가 승리하고 범죄는 심판을 받는 정통적인 소설에서 크게 벗어난 이 결말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안도하게 되는 감정. 지은이는 이 소설을 통해서 누구나 갖고 있는 악의 본능을 끄집어내려고 했던 것일까. 아무튼, <리플리> 시리즈 다섯 권을 잘 읽었단다. 아빠가 얼마 전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또 다른 소설을 한 권 구입했는데, 그것도 나중에 시간 나면 읽고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 톰은 에스프레소 커피가 가득 든 잔을 들고 조지 앤드 마리 카페에 서 있었다.

책의 끝 문장 : 톰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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