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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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평이 괜찮아 주문 버튼을 눌렀단다. 그리고 아빠가 요즘 영어 공부에 관심이 많거든. 관심은 많은데 실력은 늘지 않고그리고 몇 달 전 마음 먹었던 결심이 서서히 힘이 풀리고그래서 마음을 다시 잡아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서 이 책을 읽은 거야.

아무튼 외국어. .. 요즘 책 제목에 아무튼이라는 말을 넣는 게 유행인가? 이런 생각을 했단다. 아빠가 작년에 <아무튼,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거든. , 책을 받고 보니…. 아무튼 시리즈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단다. <아무튼, >, <아무튼, 외국어> 모두 아무튼 시리즈였어. 놀랍게도 <아무튼 외국어>는 아무튼 시리즈의 열두 번째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검색을 해보니 최근에는 수십 개의 아무튼 책이 있는 것 같아. 김혼비라는 작가에 큰 기대를 걸고 읽었던 <아무튼 술>에 실망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아무튼, 외국어>라는 책도 살짝 선입견이 있었어. 별로일 것 같아, 책도 얇고 구성도 내 스타일이 아니야이러면서 책을 펼쳐 들었어. 솔직히 반전은 없었단다. 딱 예상한 수준의 책이었단다.


1.

지은이 조지영님은 대학교 때 불문과를 전공했다는구나. 그러니까 프랑스어를 배웠다는 이야기이지. 그렇다고 프랑스어를 아주 잘 하는 편은 아니래.(겸손일 수 있지만…) 또 그렇다고 영어를 아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것은 지은이의 취미가 외국어 배우기라고 하는구나. 한 개 언어를 통달할 때까지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당연한 언어를 조금씩 배운다는 거야. 중국어, 일본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또 뭐가 있었지? 참 다양한 언어를 조금씩 맛보듯 공부를 하다니사실 아빠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더구나. 아무리 취미라고 하지만 말이야.

외국어가 다 그렇지만, 동사 부분에 오면 큰 장벽을 만나게 된단다. 그렇지, 공감이 되더구나. 우리나라 동사 체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 학장시절 아빠를 괴롭혔던 과거완료. 갑자기 옛 생각이 마구 떠오르는구나. 맞다, 대과거라는 해괴망측한 말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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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외국어의 평화를 잠식하는 것은 대체로 동사라는 막강한 빌런의 공이 크다. 마치 공부를 잘해도 수학을 못하면 크게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동사를 잘 구사한다는 뜻과 많이 다르지 않다. 우선 동사가 제 역할을 하려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주어가 하나인지 둘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중요하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영어에서 완료시제를 배울 때, ‘have+pp’라는 공식을 암기했던 사람들은 과거-현재-미래 말고도 또 다른 시간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나마 경험했을 것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고생문이 열리는 지점은 그러니까 바로 이런 순간, 시제를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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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은 지은이가 다양한 외국어를 공부하면 생긴 에피소드와 외국 여행 경험담을 주로 담고 있단다. 아빠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영어 공부에 대한 운동화 끈을 조여 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랬지만, 그 정도까지의 생각은 들지 않았단다. 그냥 아빠의 의지로 영어 공부에 대한 마음을 먹어야겠구나.


2.

문득 아빠도 아무튼아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예전에 아무튼이 맞냐? ‘아뭏든이 맞냐?  고민을 한 적도 사실 있었는데, 요즘에는 알아서 맞춤법을 알려주어 아무튼이 옳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지. 아무튼 아빠는 아무튼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아. 화제 전환하기 딱 좋거든.. 가끔은 맞춤법이 맞지 않다고 빨간 줄이 그어지지만, 줄여서 암튼도 쓰곤 하지.

아무튼, 아무튼, 아무튼, 오늘 독서 편지는 끝!


PS:

책의 첫 문장 :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내게는 좀 특별한 영화다.

책의 끝 문장 : 외국어 배우기 책을 써야 할 사람은 실은 내가 아니라, S였던 것이다.


나는 강박적으로 모호함을 싫어하는, 융통성 없는 이 언어를, ‘어제의 세계’를 기억하는 말들을, 좀더 알고 싶어졌다. 츠바이크의 작별 인사를 언젠가 독일어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은 소박하지만 영 허황된 바람도 생겼다. 무엇보다 독일어를 공부할 때는 이 언어가 나에게 실질적인 효용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서인지, 교양이 올라가는(?) 느낌마저 든다. 대단한 대가가 되는 일 같은 건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일, 열심히 해도 잘하기는 쉽지 않은 일, 무엇보다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매달리고 싶어지는 그런 때가 있다. 요약하면 그것이 바로 ‘쓸데없는 일’의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 P72

정말로 스페인어는 정다운 언어 같다고 생각한다. ‘한’이라는가 ‘정’이라는 정서, 혹은 ‘효’라는 개념이 우리한테만 있는 특산품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코코>만 봐도, 거기도 있을 거 있다. 한도 있고, 정도 있고, 심지어 그 효도 있고 그렇다. 스페인어를 들으면, 정말이기 독일어는 세상 무뚝뚝하고, 프랑스어는 살짝 간질거리는 것 같고, 영어는 새삼 밍밍하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스페인어는 확실히 모음으로 끝나는 단어가 많아서인지 부드럽기도 한 느낌이다. 그래서 노래하기에도 좋은 언어인 것 같다. - P88

그러므로 쓸 일도 없는 불어를 기억하려고 애쓰고, 뜬금없이 독일어 관사와 씨름을 해대고, 일드의 명대사를 반복하거나 스페인어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중국어 성조를 외우며 고개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은 떠나지 않고, 떠난 척해보고 싶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도 같다. 키에르케고르 원서를 읽어보겠다고 무심하게 네덜란드어를 하나 마스터하신 서강대 철학과 강영안 교수님이나, 혹은 그 바쁜 스케줄에도 중국어, 영어, 일어로 유창하게 비즈니스를 이끌어가는 빅뱅의 승리 씨처럼 언어 감각이 탁월하거나 부지런하지는 못한 까닭에, 나의 외국어들은 대체로 그저 아장아장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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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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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정유정님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단다.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분이셔.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 중에 드물게 장르 소설을 쓰시는 분이지. 그분의 소설들을 장르 소설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아빠가 느낀 바로는 그랬어.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가 떠들썩하잖아. 그러다 보지 정유정님의 소설 중에 <28>도 생각이 나더구나. 전염성과 치사율 높은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는데, 그 소설 속과 달리 우리나라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번에 읽은 정유정님의 <진이, 지니>라는 소설은, 정유정님이 좀더 새로운 분야로 발걸음 내디딘 것 같구나. 판타지라는 영역으로 말이야.

1.

주인공 이진이. 영장류 센터 연구원. 새로운 길을 가기로 결심함. 마지막 근무.

그렇지, 늘 이런 날 일이 생기지. 센터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불법 사설 동물원에서 불이 나고 여기서 탈출한 침팬지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고이진이의 스승은 진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같이 갔어. 진이는 그 침팬지를 구했는데, 자세히 보니 침팬지가 아니고 보노보였어. 보노보는 침팬지와 비슷하지만 사람과 더 가까운 영장류란다. 마취총에 잠든 보노보를 데리고 영장류 센터로 오면서, 진이는 그 보노보에게 지니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어. 그런데, 뜻밖에 교통사고진이는 정신을 잃었단다.

또 다른 주인공 민주. 만년 백수. 고시원에서 만난 선배 때문에 알게 된 영장류 센터에 왔다가 밤이 늦어 근처 산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크락션 소리에 잠을 깨고그냥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가보았더니. 사고 난 차량에 운전사만 혼자 정신을 잃고 있었어. 신고만 하고 하고 응급차 오는 소리를 듣고 자리를 피했단다.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린 진이. 자신이 나무 위에 걸려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영장류 센터로 갔어. 그런데 자신의 몸과 행동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불길한 예감으로 거울을 보았는데, 지니의 몸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진이의 영혼이 지니의 몸으로 들어온, 그런 거지.(아빠가 그래서 이 소설이 환타지 요소가 있다고 한 것이란다.) 그는 센터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몰래 듣고, 실제 자신이 중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센터의 사람들이 진이의 영혼을 한 지니를 보고 한바탕 난리가 나고, 진이는 도망을 갔단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2.

진이는 산속을 헤매다가 민주를 만났단다. 어렵게 민주에게 자신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었어. 민주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그런데 키보드까지 사용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보노보를 하니, 안 믿을 수가 없었지. 그리고 그 사람이 민주가 어제 영장류 센터에서 본 친절한 그녀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 진이는 자신의 육체가 있는 병원에 가면 다시 영혼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민주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했단다. 민주는 처음에 꺼렸지만, 돈을 준다기에그렇게 한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돈은 큰 의미가 없어지게 된단다. 민주는 배낭에 진이를 넣고, 진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어. 그런데, 일이 벌어졌단다. 지니가 돌아온 거야. 그러니까 말이야. 진이의 영혼이 지니의 몸에 깃들어 있었는데, 여전히 지니의 영혼도 같이 있었던 것이란다. 영혼이 완전히 뒤바뀌어. 지니의 영혼이 중태에 빠진 진이의 몸에 들어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지니의 몸에 진이의 영혼과 지니의 영혼이 공존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언제 두 영혼이 교차할 지도 모르고.. 이렇게 병원에서 갑자기 지니의 영혼이 지니의 몸을 지배하게 되자,병원은 당황한 보노보의 출현으로 난리가 나게 된단다. 그렇게 지니의 영혼이 지니의 몸을 지배하게 되면, 진이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그 사이에 진이의 영혼은 지니의 과거 속에 있었단다. 지니가 살아온 과거를 볼 수 있었어.

….

민주는 다시 사라진 지니를 찾으려고 노력했단다. 한참 만에 찾은 지니는 다시 진이의 영혼을 하고 있었지만, 많이 지쳐 있었단다. 이젠 병원에서 한바탕 난리를 친 보노보를 찾으려고 하는 관계기관 사람들도 있어서 숨어 다니기도 쉽지 않았어. 언제 또 지니의 영혼을 갖게 될지도 모르고 말이야. 진이의 영혼과 지니의 영혼이 교차를 거듭할수록 진이는 지니에게 동화되어가는 것을 느꼈단다.

3.

민주는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진이의 상태를 알아보았어.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가망이 없다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들었단다. 그런데, 진이는 그런 육신으로 꼭 들어가야 하는가. 실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떤 감정일까. 자신이 보노보의 모습으로 살 수 있고,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곧 죽을 수 있는 상황. 진이는 자신뿐만 아니라 지니도 생각하게 된단다. 자신으로 인해 지니는 또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우여곡절 끝에 진이의 영혼은 다시 자신의 몸을 찾아가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단다.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기 전 진이는 민주에게 부탁해서 지니가 고향인 콩고로 돌아갈 수 있게 부탁을 했어. 민주는 그 약속을 지키고. 그러면서 이야기는 끝이 났단다.

….

아빠가 요즘 이상하게 동물들이 좋아졌단다. 그래서 가끔 동물들 동영상도 보곤 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보노보 영상도 한번 찾아왔단다. 보노보뿐만 아니라 영장류들의 영상을 보다 보면, 정말 사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같은 동족이고, 사람은 그저 털없는 원숭이이고 지능이 살짝 더 좋은 것 뿐이라고정유정님의 오랜만에 읽은 소설, 재미있었단다. .

PS:

책의 첫 문장 : 막다른 곳에 불시착하는 때가 있다.

책의 끝 문장 : 햇살 속으로 당신이 오는 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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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보급판)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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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정말 오랜만에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었단다. 그 전에 아빠가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모두 소설이었는데, 에세이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책 제목에 아예 지은이 알랭 드 보통이 들어 있어서, 알랭 드 보통이 쓴 책이겠거니 했는데, 지은이를 보니 한 명이 아니고, 알랭 드 보통과 존 암스트롱이라는 분, 이렇게 두 분이구나.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미술에 관한 책이란다. 미술에 관한 책 또한 오랜만에 읽어보는구나. 미술에 관한 책들을 아빠가 여러 권 읽었는데, 솔직히 쉽게 읽히는 책은 없었어. 아참, 오주석님의 책들은 재미있게 읽었단다. 다시 이야기해야겠구나. 서양화를 설명해주는 책들은 지은이가 한국사람이건, 외국사람이건 쉽지 않았어. 왜 그럴까 생각해봤어. 우선 그림 등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 능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 그렇다 보니 그 미술 작품을 설명해주는 것도 또한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 이번에 읽은 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단다. 내심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을 괜찮게 읽었기 때문에, 이 책도 잘 읽어보겠다고 다짐을 하고 책을 폈지만, 아빠에게는 쉽지는 않았단다.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미술 작품들을 많이 만나는 것은 좋았지만, 좀처럼 집중이 안되고 그랬어. 아빠는 미술을 감상하기에 부족한 뇌세포를 가진 것 같구나.

이 책을 잘 소화하고 극찬하며 별 다섯 개를 주는 많은 리뷰어들이 부럽구나. 아빠는 솔직히 이 책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 너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구나. 발췌한 것을 바탕으로 짧게 쓸게. 너희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니, 미술작품을 잘 이해하는 눈과 뇌세포를 갖기를


1.

그림은 언제 시작했을까? 사람들은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사람들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기억을 위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을 거야. 여러 가지를 잊지 않으려고 그림을 그렸겠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림은 시작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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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쓰기는 분명 망각의 결과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고, 미술은 그 다음으로 중요한 방편이다. 그림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 하나가 정확히 이 동기를 설명해준다. 로마 역사가 대 플리니우스가 전해주었고, 18~19세기 유럽 미술에 종종 등장하는 주제다. 사랑에 깊이 빠진 젊은 남녀가 헤어질 순간에 이르자, 아쉬운 마음에 여자는 연인의 그림자 윤곽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여자는 기억을 잃을까 두려워 까맣게 태운 지팡이 끝으로 무덤 벽면에 비친 남자의 그림자 선을 따라 그린다. 르노의 장면 묘사는 특히나 애절하다. 부드러운 저녁 하늘은 연인이 함께하는 마지막날이 저물고 있음을 암시한다. 양치기의 전통적 상징인 소박한 피리는 남자의 손에 무심히 쥐여 있는 반면, 왼쪽에서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는 개는 보는 이게게 정절과 헌신을 일깨운다. 여자는 남자가 떠났을 때 자신의 마음 속에 남자를 더 선명하고 더 강하게 붙잡아두기 위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코의 정확한 모양, 곱슬거리는 머릿결, 둥근 턱선과 치켜 올라간 어깨는 남자가 수 마일 떨어진 푸른 계속에서 가축에 신경쓰는 동안에도 여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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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포함하여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이유를 모두 일곱 가지로 들어 설명해 주었어. 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감상. 아주 가끔 감성에 빠져 있을 때, 오래 전 즐겨 들었던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올 때 갑자기 아빠도 모르게 울컥하고 심지어 눈물이 나올 때도 있어. 그런 감정을 예술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사실 아빠는 예술작품을 통해서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은 없구나. 하지만 지은이와 같이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은 그런다고 하니, 미술의 힘은 대단한 것인가 보구나. 그림으로 사람을 울릴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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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삶에 고단할수록 우리는 우아한 꽃 그림에 더 깊이 감동하게 된다. 눈물이 나온다면 이는 그 이미지가 얼마나 슬픈가에 반응해서가 아니다. 유리병 속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국화를 그린 사람은 그의 자화상이 말해주듯, 인생의 비극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자화상은 이 화가가 어리석은 천진함 때문에 우리에게 즐거운 이미지를 보여줬을 거라는 일말의 우려를 확실히 잠재운다. 앙리 판 탱라투르는 비극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반대쪽으로 더 강한 생명력을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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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이야기한 눈물은 감동의 눈물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을 승화된 슬픔이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구나. 예술을 그렇게도 이야기하는구나. 그런 예술 작품을 보면서 관객도 같이 슬픔을 느낄 수 있다면, 훌륭한 화가이고, 훌륭한 관객이 아닐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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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5)

우리는 수많은 예술적 성취를 예술가의 승화된슬픔이라고 보고, 결국 관객도 작품을 접하며 슬픔을 승화시킨다고 본다. 승화라는 말은 화학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단단한 물질이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직접 기체로 변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예술에서 승화는 천하고 보잘것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환되는 심리적 변형 과정을 가리킨다. 슬픔이 예술을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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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들게 읽어가던 책은 마지막 문장에 결론을 토해놓는단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술 작품을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라고결론조차 무슨 의미인지 한참 생각하게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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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예술에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 데 있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예술이 다루는 가치, 즉 아름다움, 의미의 깊이, 좋은 관계, 자연의 감상, 덧없는 인생에 대한 인식, 공감, 자비 등에 냉담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예술이 나타내는 이상들을 흡수한 뒤, 아무리 우아하고 의도적이어도 단지 상징적으로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가치들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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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빠가 이 책의 문장 중에 몇몇 예술과 관련이 없지만, 공감해서 발췌한 글 두 부분이 있단다. 첫 번째는 인간은 너무 금방 익숙함에 빠지면서 불행해진다는 거야. 우리 주위에 놀라운 것이 많고 매혹적인 것이 많은데, 금방 익숙해지고 습관이 되면 그저 지나치게 된다는 것이지. , 그런 것이 예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게 만든 것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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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우리의 주된 결점,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주위에 늘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의 가치를 보지 못해 고생하고, 매혹적인 것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종종 엉뚱한 갈망을 품는다.

문제의 한 원인은 상황에 익숙해지는 우리의 능력, 즉 우리가 습관화라는 기술의 달인이라는 데 있다. 습관이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 운전 습관이 들기 전 우리는 운전대 앞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빈틈없이 의식해야 한다. 소리, , 움직임에 그리고 강철 상자를 조종해 빠르게 세상을 누비고 다닐 수 있다는 순진하고도 놀라운 경이로움에 바짝 긴장해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 이 과잉 의식 때문에 운전은 신경과민의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몇 년을 타고 다니고 나면 점차 기어 변속이나 계기판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먼길을 운전하게 된다. 행동은 기계적이 되고, 로터리를 도는 동안 인생의 의미에 침잠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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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자는 교훈 같은 글이란다. 아빠가 특히 잘 새겨 읽어야 할 부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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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사랑은 당연히 인생의 큰 즐거움이어야 하지만, 나와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은 다음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잔인함의 정도는 철전지원수 저리 가라다. 우리는 사랑이 충만함의 강력한 원천이길 바라지만, 사랑은 때때로 무시, 헛된 갈망, 복수, 자포자기의 무대로 변한다. 우리는 부루퉁하거나 째쩨해지고, 성가시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고, 어떻게 혹은 왜 그런지 이해조차 못하고서 자신의 삶과 한때 자신이 좋아한다고 맹세했던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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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서 마칠게. 언젠가는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볼 기회가 오기를, 지금 방금 라디오가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온다. . 아빠를 울컥하게 만들 정도로 좋아하는 노래가 말이야..

♬♪♬♪♬♪~~~

산책길을 떠남에 으뜸 가는 순간은

멋진 책을 읽다 맨 끝장을 덮는 그 때

이를테면 봉결기의 마지막 장처럼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 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

♬♪♬♪♬♪~~~

, 아빠는 미술보다는 음악인 것 같아…^^


PS:

책의 첫 문장 : 현대 세계는 예술을 매우 중요하게, 인생의 의미에 버금갈 정도로 소중히 여긴다.

책의 끝 문장 :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세상의 많은 예술이 단지 예쁘기만 하진 않다. 어떤 예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을 철저히 이상화해 보여준다. 이는 현대적 감수성에 훨씬 더 난처하게 다가올 수 있다. 스코틀랜드 왕립의사협회는 에든버러 뉴타운의 중심부에 서 있다. 이 건물 안에서 벌어질 법한 절차들을 상상해보라. 고결한 품위, 박식함과 온화한 권위, 전문가에게 꼭 들어맞는 얼굴, 에든버러의 의사들은 분명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리라. 이 건물은 세상에 당당한 전면을 내보이고서, 존경, 더 나아가 숭배를 요구한다. 이 건물은 이상을 구현하고 있다. - P19

그림은 우리의 인간관계나, 일상의 스트레스와 고난을 직접 가리키지 않는다. 이 그림의 기능은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의 거대함을 날카롭게 의식하는 심리 상태를 일깨우는 것이다. 작품은 슬프다기보다 음울하고, 고요하지만 절망적이지 않다. 그런 심리 상태, 좀더 낭만적으로 표현하자면 영혼의 그런 상태에서 예술작품을 접할 때 종종 그렇듯, 우리 앞에 놓인 강렬하고 다루기 힘든 구체적인 슬픔들은 더 잘 극복할 채비를 하게 된다.

- P27

사랑은 당연히 인생의 큰 즐거움이어야 하지만, 나와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은 다음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잔인함의 정도는 철전지원수 저리 가라다. 우리는 사랑이 충만함의 강력한 원천이길 바라지만, 사랑은 때때로 무시, 헛된 갈망, 복수, 자포자기의 무대로 변한다. 우리는 부루퉁하거나 째쩨해지고, 성가시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고, 어떻게 혹은 왜 그런지 이해조차 못하고서 자신의 삶과 한때 자신이 좋아한다고 맹세했던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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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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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피에르 르메르트의 <화재의 색>이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피에르 르메르트는 콩쿠르 상을 받은 <오르부아르>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어. 아빠도 그 소설을 읽기는 했지만, 피에르 르메르트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알렉스>라는 추리 소설이었어. 정통 스릴러 추리 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었지. 보통 어떤 소설가의 소설을 읽을 때 보통 대표작을 가장 먼저 읽고, 그 다음 그 소설가의 다른 소설들을 찾아 읽는 경우가 많아. 그렇다 보니, 맨 처음 읽은 소설보다 두 번째 세 번째 읽은 소설들이 별로인 경우가 많단다.

그런데, 피에르 르메르트의 소설들은 읽을수록 더 좋아지더구나.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빠한테는 그랬어. 마치 대표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 더 괜찮은 작품들을 써내는구나. 이번에 읽은 <화재의 색>은 통쾌한 복수극에 관한 이야기란다. 시대적 배경은 1920~30년대 이야기야..


1.

지금부터 줄거리를 이야기해 줄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책을 읽고 싶다면 편지를 읽기를 중단하려구마.

1927년 프랑스 경제계 거물 마르셀 페리쿠르의 장례식으로 소설은 시작된단다. 얼마나 거물이냐면 프랑스 대통령이 장례식이 참석할 정도였어. 돈도 엄청 많았어. 그런 엄청난 부자가 죽고 나면 상속 문제로 시끄럽게 된단다.

그의 가족들을 한번 보자꾸나. 먼저 마르셀의 동생 샤를. 현재 국회의원인데, 그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형 마르셀이 돈으로 막강하게 지원해 주었기 때문이야. 샤를은 그리 착하거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야, 문제도 많이 일으키고 성격도 별로인 그런 사람인데 형 덕분에 국회의원이 된 거지. 마르셀에게는 아들 에두아르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7년전 자살을 했단다. 그에게는 딸만 남았어. 마들렌이라고 하는 36살의 이혼녀인데 일곱 살짜리 아들 폴이 함께 마르셀이 죽기 전까지 함께 살고 있었어. 엄청난 부자의 외동딸, 아무래도 노리는 이들이 많겠지.

마르셀이 죽기 전에 마르셀은 자신의 오른팔인 귀스타브 주베르를 자신의 딸과 맺어주려고 했어. 귀스타브 주베르는 마르셀의 기업을 도맡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마르셀이 마들렌과 연을 맺게 해주려는 것에 내심 좋아했어. 하지만, 마들렌이 거절했어.. 귀스타브는 마들렌에게 심한 배신감을 가졌지. 마들렌은 사실, 폴의 가정교사인 앙드레와 썸씽이 있었거든. 앙드레는 기자 지망생의 스물여섯 살 젊은이였는데, 폴의 가정교사로 있었어. 나중에 마들렌의 도움으로 신문사에 취직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또 중요 인물로는 하녀로 일하고 있는 레옹스가 있었어. 레옹스는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며, 마들렌이 가장 신뢰하는 하녀였으며, 때론 친구이기도 했어. 레옹스가 돈을 몰래 빼돌린 것이 발각된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레옹스를 용서해주고, 오히려 월급을 올려주었어. ,, 이 정도면 마르셀 주변 인물에 다 이야기를 한 것 같구나.

마르셀의 장례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엄숙하게 진행되던 마르셀의 장례식에서 충격적인 사고가 일어났단다. 마들렌의 아들 폴이 3층에서 뛰어내려 마르셀 관으로 떨어진 것이야. 바로 응급실로 갔어.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척추를 크게 다쳐서 평생 휠체어에서 살아야만 한다고 했어.

….


2.

마르셀의 유언장. 대부분의 돈은 딸 마들렌과 손자 폴에게 가게 되었단다. 이에 마르셀의 동생 샤를과 마르셀의 오른팔 주베르는 분노를 했단다. 돈이 많으면 뭐하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불구가 되었는데마르셀은 절망 속에 폴만 간호했어. 회사 일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어. 주베르에 맡겼어. 마르셀은 레옹스의 조언으로 폴의 간호사를 고용하기로 했는데, 계속 마음 들지 않다가 폴란드 출신 블라디라는 간호사를 고용했어. 블라디는 상당히 적극적이고 성격이 강하지만 착했어. 블라디가 폴을 보살펴주기 시작하면서, 폴이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휠체어에 아무 것도 하지 않던 폴이 오페라와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특히 솔랑주라는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의 광팬이 되어, 팬레터도 꾸준히 보내곤 했어. 그리고 답장을 받기도 하고, 공연장에서 직접 만나기도 했단다. 그의 초대로 밀라노에 초대되어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 비록 몸은 회복할 수 없지만, 정신은 점차 회복해가고 있었어.

마들렌이 이렇게 폴에게 올인하고 있는 동안에, 샤를과 주베르는 못된 계략을 꾸미고 있었단다. 교묘하게 마들렌을 속여서, 가능성 없는 루마니아 석유에 투자를 하게 했어. 마들렌은 거의 모든 재산을 거기에 투자를 했어. 결과는 어떻겠니. 얼마 못 가 루마니아 석유는 파산을 하고 마들렌은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었어. 마들렌은 하루아침에 파산하고 말았단다. 샤를과 주베르에 당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어. 집도 팔고 블라디만 남겨 두고 하녀들도 모두 내보내고, 남은 돈으로 아파트 두 채를 겨우 사서 하나는 그들이 살고 하나는 임대를 해서, 그 돈으로 겨우 살아가야 했어. 그에 반해 주베르는 큰 돈을 벌게 되었고, 마들렌이 내놓은 마르셀의 저택을 사서 그 집의 주인이 되었단다. 그리고, 또 한 명. 친구라고 생각했던 하녀 레옹스도 그녀를 배신하고, 주베르와 결혼하였단다.

….

이렇게 한꺼번에 여러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한 마들렌결정타가 기다리고 있었어. 활기를 되찾은 아들 폴의 고백. 자신이 할아버지 때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던 이유를 이야기했어. 그의 가정교사였던 앙드레의 가혹행위와 성폭행에 괴로워했었대. 당시 폴의 유일한 위안처는 할아버지였다는구나.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자신을 보살펴 줄이 이가 없다는 생각에 죽으려고 했다는 거야. 앙드레의 괴롭힘을 참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지. 이 이야기를 들은 마들렌의 분노 레벨은 극에 달했어. 도대체 몇 명이나 복수를 해야 하는 거야.


3.

시간이 흐르고 1933. 비록 돈은 별로 없지만 마들렌은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어. 아들 폴도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하지만 잘 지내고 있고, 블라디 역시 폴을 꾸준히 잘 보살펴 주고 있었어. 이제 시간이 된 거야. 복수의 시간. 소설이니…. 마들렌의 복수가 성공하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어. 그리고 마들렌의 복수를 읽으면서, 같이 기뻐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책을 읽어나갔지.

그녀가 복수한 방법은 짧게 이야기할게. 먼저 주베르 귀스타브. 제트기 사업을 하다가 안전 사고를 일어나게 했어. 아주 은밀하게그래서 쫄딱 망했지. 그것뿐만 아니라, 그 제트기 기술을 적국인 독일에 파는 것처럼 꾸며서, 국가반역죄로 감옥에 갇히게 만들었단다. 어떻게 주베르를 이렇게 쉽게 망하게 할 수 있었냐면, 레옹스의 약점을 쥐고 레옹스를 협박했거든. 주베르와 결혼했던 레옹스. 마들렌은 레옹스가 중혼, 그러니까 주베르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결혼한 몸이라는 것으로 알아냈어. 그 약점을 잡고 레옹스로부터 주베르의 정보를 캤고, 레옹스의 첫 번째 남편 로베르(이 사람은 좀 덜 떨어진 사람으로 나옴)를 행동대장으로 이용했어.

그리고 샤를. 삼촌이 어떻게 조카를 그렇게 망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국회의원을 망하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 법을 어긴 것을 찾거나 법을 어긴 것처럼 꾸미거나샤를이 탈세를 한 것처럼 위조를 해서 그 또한 가옥으로 보내드렸어. 앙드레…. 이 나쁜 놈은…. 마들렌이 취직시켜준 이후 기자로 아주 잘 나가고 있었지. 마들렌은 앙드레를 살인죄로 누명을 씌워 감옥에 보내드렸지. 나중에 진짜 살인범이 나타나서, 풀려났지만 오래 못 가 의문사로 세상을 떴단다.

이렇듯, 이어지는 마들렌의 통쾌한 복수. 칼에는 칼로 맞대응하는 것이 맞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빠도 그렇게 큰 배신을 당했으면, 저렇게 복수를 하지 못하면, 제 명에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충분히 마들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아빠가 간단히 이야기해서 복수를 아주 쉽게 한 것 같지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어. 그 이야기들이 이 두꺼운 소설에 자세히 그려지고 있어. 책이 두꺼운 만큼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지만, 마들렌의 복수 위주로 짧게 이야기하고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 마르셀 페리쿠르의 장례식은 어수선하게 진행되다가 완전히 혼란스럽게 끝났지만, 적어도 시작만큼은 정시에 이루어졌다.

책의 끝 문장 :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 준 파스칼린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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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

겐테 박사는 서울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서울의 로케이션은 아주 독특하다. 사방에 뾰족하고 높고 힘찬 산들이 민가가 들어선 곳까지 뻗어 내려오면서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 서울의 모습이다. 이런 전망(view)을 가진 서울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아름답고도 꼽는 군주국 도시 명단에 들어가야 할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울을 페르시아 수도 테헤란과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서울에는 (…) 잘츠부르크처럼 웅장하고 엄숙한 기사의 성채가 없고, 테헤란의 (…) 위엄 넘치는 다만반드(Damavand) 산처럼 거대한 산도 없다. 그러나 서울보다 고도가 약 300미터 높을 뿐인 남산에서 내려다보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44-45)

성종 19(1488)에 명나라에서 온 동월이라는 사신은 <조선부>에서 서북쪽에서 들어오며 한양의 인상을 다음과 같이 찬미했다.

임진강 나루를 건너 파주에 이르러 한성을 바라보니 저 높이 서기(瑞氣)가 어리었다. 벽제관을 지나 홍제원에 당도하니 여기가 조선의 서울인데 동편으로 우뚝하다. 높은 삼각산에 받쳐 있고 울창한 푸른 소나무 그늘에 덮여 있다. 북쪽은 천 길로 이어져 내려서 그 기세는 진정 천군(千軍)을 누를 만하고 서쪽을 바라보니 한 관문(關門)이 있는데 오직 말 한 필 드나들 만하다. 산은 성 밖을 둘렀는데 날쌘 봉황이 날아가며 번뜩이는 것 같고 소나무 아래에 흰모래는 마치 쌓인 눈에 햇볕이 내리쬐는 듯하다.”


(48)

단적으로 말해 한양도성은 전란을 대비해 쌓은 성곽이 아니라 수도 한양의 권위와 품위를 위해 두른 울타리다. 집에 담장이 있고, 읍에 읍성이 있듯이 수도 서울에 두른 도성이다. 영어로 말해서 포트리스(fortress)가 아니라 시티 월(city wall)이다. 만약에 전쟁을 대비해 성곽을 축조했다면 석벽을 사다리꼴로 높이 쌓고 성곽 둘레에 해자를 깊게 파서 두르는 등 겹겹의 방어시설을 구축했어야 했다. 도성이 울타리이기 때문에 숭례문을 비롯한 관문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행문 이상의 기능을 하지 않았다. 동대문을 옹성처럼 두른 것은 전투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풍수상 허하다는 서울의 동쪽 지세를 보완한다는 의미였을 뿐이다.


(64)

풍경 뻬레스트로이까 북악산 개방에 부쳐(황지우)


뉴욕에도 도쿄에도 베이징에도 베를린,

모스끄바에도 없는 산()

단 하루도 산을 못 보면 사는 것 같지가 않은,

산이 목숨이고 산이 종교인 나라에

오늘

싱싱한 산 한 채가

방금 채색한 각황전(覺皇殿)처럼

사월 초순 첫 초록 재치고

솟아올랐네.


저 권부의 푸른 기와집 그늘에 가려

지난 반세기 마음의 위도에서 사라졌던 자리에서

오늘 이제는 육성으로 이름 불러도 될

그대 백악이여,

금지된 빗금을 넘어 그대가

사람 만나러 내려올 때

솟아난 것은 한낱 돌덩어리가 아닌

우리네 마음의 넉넉한 포물선이었구나.


이렇게 풀어버리니 별것도 아니었던 두려움이,

홍련사에서 숙정문 지나

창의문에 이른 길 따라,

혼자 보기엔 너무 아까운 아름다움이 되었으니

아무나 그 문들 활짝 열어

그대 슬하에 감추인 말바위며 촛대바위를

순우리말로 되찾아오네.

하여 차출된 팔도 머슴애들의 사투리를

잘 짜 맞춘 성곽이

산허리를 재봉틀질한 것 같은

역사의 긴 문장이 되고

그 쉼표마다 돌아서 내쉰 한숨이

이렇듯 위업이 되었음에랴, 하지만.

이렇듯 풀과 꽃과 나미가 되돌아온 자리에

제 빛깔과 향기가 이름을 되물려 주는 것만으로도

이보다 더 한 위업이 있을까!


, 이제 가물면 북문(北門)을 열어주고

물 넘치면 그 문 닫아둘 수 있는 산,

동네 처자들 숙정문 세 번 가면

안 되는 사랑도 이루어진다는 그 소문난 산,

파리에도 런던에도 하노이, 시드니에도 없는 산,

봄비 그치고 송진처럼 물방울 맺힌 나뭇가지 사이로

마침내 사람 눈을 만난 북악산

그 언저리 허공 어디쯤

붉은 낙관(落款) 한 점 꾸욱 눌러두고 싶네.


(125)

인조반정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연산군 때 탕춘대 절벽 밑 좌우로 흐르는 물을 가로질러 돌기둥을 세워 옆으로 긴 누각을 지었다.”고 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성종 때 문신인 성현(成俔) <용재총화>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도성 밖에 놀 만한 곳으로는 장의사 앞 시내가 가장 아름답다. 시냇물이 삼각산 여러 골짜기에서 흘러나오고 골짜기 안에는 여제단(厲祭壇)이 있으며 그 남쪽에는 무이정사(武夷精舍, 무계정사를 말한 듯함)의 옛터가 있는데 길 앞에는 돌을 수십 길이나 쌓아올린 수각이 있다. 또 절 앞 수십 보 앞에는 차일암(遮日巖)이 있는데, 바위가 절벽을 이루어 시내를 베고 있는 것과 같으며 그 바위 위에는 장막을 칠 만한 우묵한 곳이 있는데 바위는 층층으로 포개져 계단과 같다. 흐르는 물소리가 맑은 하늘 아래 천둥 번개가 치는 듯해 귀가 따갑다. 물이 맑고 돌이 희어서 선경(仙境)이 완연하다.”


(151)

석파(이하응)는 난초 그림뿐만 아니라 시도 잘 지었고, 글씨도 잘 썼고 독서도 많이 했다. 그가 즐겨 사용한 문자도장에는 이런 멋진 문구가 있다.

讀未見書 如逢良士

讀己見書 如遇故士

아직 보지 못한 책을 읽을 때는 어진 선비를 만나듯 하고

이미 본 때를 읽을 때는 옛 벗을 만나듯 한다.”


(152)

유주학선 무주학불(有酒學仙 無酒學佛)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운다.”

인생의 여유와 허허로움을 느끼게 하는 명구가 아닐 수 없다. 석파정에서 동쪽으로 건너다보이는 북악산 아래에는 추시가 지내던 백석동천 별서가 있다. 이제 백석동천으로 발을 옮기자니 사제지간에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것이 왠지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어쩌면 별서의 팔자였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든다.


(168)

현진권은 자신이 역사소설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 <문장> 1939 12월호에 <역사소설문제>를 기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을 위한 소설이 아니오. 소설을 위한 사실인 이상 그 과거가 현재에 가지지 못한, 구하지 못한 진실성을 띄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이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사실에서 취재한 것보담 더 맥이 뛰고 피가 흐르는 현실감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비현실적이라는 둥 도피적이라는 둥 하는 비난의 화살은 저절로 그 과녁을 잃을 것입니다.”


(176-177)

나는 이 집의 돌기와 지붕을 얹은 긴 콩떡 담장에서 우리나라 한옥 담장의 미학을 본다. 중국의 담처럼 바깥과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비탈을 오르는 돌담의 기와 지붕이 계속 높이를 달리하는 것도 즐겁다. 이 돌담이 있음으로 해서 이 동네 거리가 얼마나 고상해지고 품격이 높아지는가 생각하면 내 주장에 수긍할 것이다. 돌담도 사괴석(四塊石)으로 권위 있게 쌓은 것이 아니라 막돌을 얼기설기 쌓고 흰 강회로 마감한 콩떡 담장인지라 더 정감이 간다.


(196)

그런 경운궁이 다시 역사의 주무대에 등장한 것은 1897 2월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1895)을 겪은 고종이 일제의 감시를 피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지 1년 뒤에 경복궁이 아니라 경운궁으로 환궁하면서 조선왕조의 마지막 법궁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해 10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경운궁은 황궁이 되었다.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뒤를 이은 순종황제가 창덕궁으로 이어하면서 경운궁에 상황(上皇)으로 남은 아버지께서 덕에 의지해 장수하시라는 뜻으로 덕 덕() , 목숨 수() , 덕수(德壽)라는 이름을 지어 바쳤고 이후 덕수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283-284)

그런가 하면 대한문의 한() 자를 중국의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 중국을 숭상하는 뜻이 있다는 주장, 혹은 조선도 중국처럼 큰 나라라는 뜻이라는 설도 나왔다. 반대로 이 글자를 놈이라는 뜻으로 해석해 이토 히로부미가 큰 놈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으로 바꾸도록 강요했다는 주장도 생겼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낭설이다. 1907년에 편찬된 <경운궁 중건도감 의궤>에 실려 있는 이근명(李根命) <대한문 상량문>에 그 내력이 소상히 밝혀져 있는바, 대한은 큰 하늘이라는 뜻으로 새로 태어난 대한제국이 하늘과 함께 영원히 창대하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381)

성균이란 음악에서 음을 고르게 주율하는 것을 뜻하며 <주례(周禮)> <대사악(大司樂)>에서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성균의 법을 관장하여 국가의 학정(學政)을 다스리고 나라의 자제들을 모아 교육한다.”

그리고 주소(注疏, 각주)에서는 그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이란 그 행동의 이지러진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고, ()이란 습속의 치우침을 균형 있게 하는 것이다.”


(387-389)

모든 선비들이 학문에 힘쓰고 품행을 깨끗이 해 세상에 나오면 왕조의 존경 대상이 되고, 들어앉아서 유림(儒林)의 표상과 기준이 된다면 국가적으로는 그것이 큰 디딤돌이 되어 굳이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법은 엄해질 것이요, 비단결같이 꾸미지 않아도 문장은 유려할 것이며, 노래와 춤이 아니어도 백성들은 즐길 것이고, 사냥 연습이 아니고도 병력은 강해질 것이며, 100년이 안 되어도 예악(禮樂)이 흥성해질 것이다.”

이렇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두를 시작한 정조는 나라에서 학생들을 예우하는 뜻을 이렇게 말했다.

요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지금 선비들의 처신이 예만 못하고, 학문도 지금 선비들은 예만 못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껄이는 소리에 불과하다. 지껄이는 자 역시 지금의 선비가 아니란 말인가.

선비를 만들고 뛰어난 인물을 장려하는 것이 왜 괜한 일이 일이겠는가. 선비로서 자신을 아끼는 것과 남들이 아껴주는 것 모두가 국가에서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에 임할 것을 부탁하는데 그것은 의례적인 훈시가 아니라 술잔을 내려주며 하는 격려였다.

이제 먹을 것과 함께 은술잔을 내린다. 제생(諸生)들은 술잔 속에 아유가빈(我有嘉賓)’이라 새겨져 있는 것을 아는가? ‘나에게 아름다운 손님이 있다는 이 말은 <시경> ‘녹명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빈객과 자리를 함께하는 것이란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밤새도록 자리를 뜨지 않고 갖옷 없이도 추위를 느끼지 않으며 또 피곤도 느끼지 않는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영재를 육성하는 데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새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부탁하는 말로 끝맺는데 그 비유의 뜻이 자못 사람을 긴장하게 만든다.

! 제생들아! 그대들은 나의 이 말로 하여 혹 느슨하게 생각하지들 말고 한 치 한 푼이라도 오르고 또 올라 마치 100리 길을 가는 사람이 항상 90리를 절반쯤으로 생각하듯이 하라. 그리하면 자만하고 싶어도 자만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계속해야 할 것이 학업이고 무궁무진한 것이 덕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바라는 것은 제생들이 그렇게 계속 노력하여 무궁한 발전을 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제생들이여! 감히 노력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정조의 ‘100리 길을 갈 때 90리를 절반쯤으로 생각하라는 말에 나는 그간 80리만 가도 다 간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아 조금 뜨끔했다.


(409)

먼 옛날로 돌아가서 600여 년 전, 수도 한양의 도시계획 마스터플랜을 설계한 삼봉(三峯) 정도전은 동네마다 이름을 지으면서 성균관 일대는 가르침을 숭상한다는 의미로 숭교방(崇敎坊)이라고 했다. 오늘날 대학로가 있는 성균관 옆 동네가 동숭동(東崇洞)인 것은 숭교방의 동쪽이라는 뜻이다.


(448)

성균관이 강학공간인 명륜당(明倫堂)과 향사공간인 대성전(大成殿)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교()와 학()이 분리되지 않아 유학(儒學)이면서 동시에 유교(儒敎)임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그 때문에 불교와 마찬가지로 유교의 성현을 모시고 예를 올리는 종교공간을 갖고 있는데 이를 문묘(文廟)라 한다. 불교에 사찰이 있듯이 유교엔 문묘가 있고, 사찰에 대웅전이 있듯이 문묘엔 대성전이 있고, 사찰에 관음전, 지장전이 있어 보살을 모시듯이 문묘엔 동무(東廡), 서무(西廡)가 있어 역대 성현들을 모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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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철 2020-08-17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고 쓰고 잊는다...
황지우님의 시 잘 읽고 복사해 갑니다.
감사합니다.

읽고 복사하고 저장해두고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