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 - 전민식 장편소설
전민식 지음 / 마시멜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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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강치>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이 책을 인터넷에서 처음 봤을 때, 강치가 뭐였더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이러면서 책 소개를 읽어보았단다. , 독도에 살던 동물이구나강치는 독도 주변에 살던 바다사자의 한 종이었단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그 강치를 너무 많이 잡아가서 지금은 멸종이 되고 말았다고 해.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제 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 땅인 독도에 침범해서 독도에 서식하고 있는 강치들을 잡아 갔다고 하는구나.

독도를 상징하던 동물 강치. 지금은 비록 멸종되었지만, 여전히 독도를 상징하는 동물 중에 하나. 소설 <강치>는 독도에 관한 이야기란다. 조선시대 독도를 지키고자 했던 안용복이라는 사람에 관한 소설이란다. 독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사람, 안용복. 아빠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 예전에 읽은 김탁환님의 <독도 평전>이라는 책에서 잠시 소개되어 읽은 기억이 있을 뿐.


1.

독도 근해에서 어업을 하던 안용복 일행들 중에, 안용복을 비롯하여 세 명이 일본 어부들에 납치를 당한단다. 독도가 조선의 땅이지만, 조선 조정은 어리석은 결정을 내놓았단다. 독도에서 어업을 하던 자국의 백성들이 자꾸 일본 해적들에게 피해를 입으니까, 내 놓은 정책이 독도를 하기 못하게 도해금지령을 내린 것이란다. 독도 주변에는 많은 고기들이 많아 어업에 많은 도움을 주는데, 해적들 때문에 못하게 하다니비어버린 독도는 일본 해적과 일본 어부의 차지가 되어 버렸단다.

도해금지령이라고 하지만, 조선의 어부들도 간혹 독도 주변에서 고기를 잡았단다. 안영복 일행도 그렇게 독도에 왔다가 일본어부들에게 납치 당한 거야. 그 중에 업동이라는 자는 중상을 입고 죽고 말았고, 안용복과 박어둔은 일본까지 끌려갔단다. 안용복과 박어둔이 일본까지 끌려가서 가장 많은 들은 이야기는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거야. 그 이유가 말도 안 되는구나. 일본은 80여 년 전부터 독도에서 어업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내 주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일본 조정에서 남의 섬에 가서 어업을 할 수 있게 허가를 내 주었다는 거지.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말이더냐. 만약 일본이 자신의 땅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허락을 맞고 어업을 하냐. 그냥 가서 잡으면 되는 거지. 허락을 받고 어업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지. 안용복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들이 독도에서 가장 많이 잡는 것 중에 하나가 강치였단다. 강치는 고기뿐만 아니라 기름을 많이 뽑아낼 수 있었거든. 안용복은 그 전에 상인으로 일해서 일본말도 잘하고 검술도 뛰어났단다. 그를 납치해간 일본 어부들은 일본말도 잘하고 검술도 뛰어나다 보니, 안용복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영주에게 데리고 갔어. 꼭 같은 질문이 날아왔어. 왜 허락 없이 독도에서 고기를 잡았냐. 내 나라 땅에서 무슨 허락을 받고 고기를 잡냐이런 대답을 하는데 일본사람들을 상대로 혼자 싸우다 보니, 그는 조선을 대표하는 입장이 되었단다. 그렇다고 그가 조선 조정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어. 하지만, 그 자신은 뼛속까지 조선인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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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갑작스럽게 나는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 앞에서 기죽고 싶지는 않았다. 조선에 대한 원망이 깊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조선인이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모든 걸 빼앗긴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전국을 뒤져 가져온 산삼을 그렇게 헐값에 넘기진 않았을 터였다. 초량 왜관에 머무는 일본인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날카로웠다. 그들에 대한 선입견에 휩싸여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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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과 박어둔의 납치 사건은 일본 막부인 쇼코에게까지 알려졌고, 조선과 일본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우려한 막부는 안용복과 박어둔을 후하게 대해주고,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명시하는 서계를 직접 써서 주었단다. 그리고 그 서계를 가지고 조선으로 가라며, 일본에서 벗어날 때까지 호위무사까지 붙여 주었어. 서계를 가지고 조선을 향하던 안영복과 박어둔은 쓰시마에서 제동이 걸렸단다.

쓰시마 도주는 막부와 생각이 달랐단다. 막부는 조선과 갈등을 꺼려했지만, 쓰시마 도주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다시 일본은 중앙 막부가 영향력이 컸지만 먼 지역은 도주의 영향력이 더 컸어. 쓰시마 도주는 막부의 서계를 빼앗고 내쫓듯 하여 안용복과 박어둔은 힘겹게 조선에 도착했단다. 그들을 기다린 것은 곤장이었어. 도해금지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곤장 맞고 유배를 갔단다.


2.

일본에서 있었던 그의 일들이 소문이 돌았고, 일본의 사절을 맞이하는 일을 하는 접위관 유일집이 안용복을 찾아왔어. 안용복은 그에게 서계가 있었고, 그것을 쓰시마 도주에게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했어. 그러자, 접위관 유일집이 몰래 그를 일본으로 보내기로 했단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명확히 하고, 빼앗긴 일본 쇼군의 서계를 받아오기 위함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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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우리가 가는 건 우리의 섬이고 우리의 땅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일본은 울릉도나 독도를 소유했던 번이 없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의 울진에 속해 있었지만, 저들은 근래에 와서 지들의 번에 속해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지요. 게다가 독도든, 울릉도든 우리와 달리 일본 백성들이 거주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일본의 지난 쇼군 시절에 요나고 사람들이 울릉도에 와서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도해 허가를 해준 일을 두고 자신들의 섬이라 우기고 있는 겁니다. 도해 허가를 내주었다는 사실도 웃긴 일이지만, 그런 사실을 파악했으면 강하게 항의를 했어야 하는데, 우리 조정에서는 그리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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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직접 가면 다른 이들이 눈치를 챌 수 있으니, 울릉도와 독도를 통해 우회해서 가지로 했어. 그리고 유일집은 안용복에게 정 3품에 해당하는 감세장을 주는 등 도움을 주었어. 그렇게 안용복 일행은 다시 일본으로 갔단다. 온갖 어려움과 죽을 위기를 넘긴 안용복은 결국 쇼국 막부의 서계를 받아왔단다. 일본 최고 우두머리가 독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인정한 공식 문서인 거야.

그런 문서를 받아온 안용복이지만, 무능한 조선 조정은 별난 토론을 했단다. 안용복이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는 의견과 안용복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양분되어 격론을 벌였대. 결국 양쪽 모두의 의견을 들어, 안용복의 공을 인정하되, 죽음을 면하게 해주고 유배를 보냈다고 하는구나.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꽉 막혀 있던 나라였단다. 안용복의 그 이후 행적에 대한 기록은 없다는구나. 안용복은 아마 조용히 지내고 싶었을 거야. 어쩌면 몰래 울릉도에 가서 살았을 수도

실학자로 유명한 이익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안용복을 재평가하였는데, 이 소설을 마치고 책 뒷편에 그 글을 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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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일개 군졸로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하여 강적과 겨루어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회복했으니, 부개자와 진탕에 비하여 그 일이 더욱 어려운 것이니, 영특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상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에는 형벌을 내리고 뒤에는 귀양을 보내어 꺾어버리기에 주저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울릉도와 독도가 비록 척박하다고 하나, 쓰시마도 또한 한 조각의 농토가 없는 곳으로서 왜인의 소굴이 되어 역대로 내려오면서 우환거리가 되고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를 한 번 빼앗긴다면 이는 또 하나의 쓰시마가 불어나게 되는 것이니, 앞으로 오는 앙화를 어찌 말하겠는가? 안용복은 한 세대의 공적을 세운 것뿐이 아니었다. 고금에 장순왕의 화원노졸(花園老卒)을 호걸이라고 칭송하나, 그가 이룩한 일은 대상 거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국가의 큰 계책에는 도움이 없었던 것이다. 안용복과 같은 자는 국가의 위급한 때를 당하여 항오에서 발탁하여 장수급으로 등용하고 그 뜻을 행하게 했다면, 그 이룩한 바가 어찌 이에 그쳤겠는가? – 이익의 <성호사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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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용복이라는 인물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단다.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 찬 달빛이 파도 위로 켜켜이 깔렸다.

책의 끝 문장 : 봄볕이 짚신 밖으로 삐져나온 오른발 엄지발가락 위에 가만 내려앉았다.


"독도와 울릉도는 조선의 것이란 말이다!"
나는 독도와 울릉도가 나의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조선의 것이라 말했다. 우리를 끌고 왔던 어부가 몽둥이로 나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이라 꾸미려면 언제나 폭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한 차례 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의 섬이며, 그 섬의 바다는 조선의 바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일본인의 매는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쏟아졌다. - P52

조선은 몇몇의 나라가 아니라 다수 백성의 나라여야 했다. 나라는 내게 목숨까지 버리라 말하면서도 사방이 막힌 이 순간에는 나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눈물마저 새카맣게 타버려 흐를 줄 몰랐다. 나는 버려졌다. 그 점은 억울하지 않았다. 나라가 내게 기대한 일이 없으며, 나 역시 나라에게 기대할 일이 없으니 억울할 것도 없었다. 내가 마음이 아픈 건 살아남아도 우리가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사실이었다. - P194

*1693년 9월 초, 안용복과 박어둔은 돗토리 번에서 나가사키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당시 안용복과 박어둔을 납치한 내용은 오야 집안의 문서인 <죽도 도해 유래기 발서공, 이하 발서공>과 한자로는 ‘백기’로 적는 호키주의 일을 기록한 <이본 백기지>에도 실려 있다. <발서공>에는 안용복이 에도에 갔고,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에도 막부가 안용복에 대한 조사를 끝낸 뒤 안용복에게 무엇인가를 줘서 조선으로 귀국시켰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쇼군으로부터 받은 서계로 추측된다. 두 사람이 나가사키로 후송되었을 때 쓰시마 번 사람들이 두 사람을 맞이했는데, 이때 선물과 서계를 모두 강탈당했으며 이를 쓰시마 번에서 보관하고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해 재해석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힌다. -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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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렇게 푹 쌓인 눈 위를 걸으니 옛날 산 친구 생각이 난다. 백두대간은 물론이고 전국의 명산을 두루 다녀본 후 그가 던진 한마디.

앞으론 눈 쌓인 겨울산만 다니련다.”

연유를 물으니, 눈이 쌓이면 나무뿌리를 밟지 않아도 되고 흙이 패지 않으니 나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덜하다는 얘기다. 미안한 마음 없이 나무의 진면목을 바라본다는 것, 겨울산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37-38)

제주에는 많은 설화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설화의 주인공인 설문대할망은 몸집이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관탈 섬에 걸쳐졌다고 한다. 그 설문대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퍼 담아다 한라산을 쌓아 올릴 때 구멍 난 치맛자락 사이로 한 움큼씩 떨어져 나온 흙이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오름들은 제주도민에겐 뒷동산이며, 가축들에겐 풀을 뜯는 목장이었고, 지붕을 덮을 띠가 자라는 곳이자, 굼부리 안은 목동들이 바람을 피해 누울 수 있는 안식처였다.


(50)

제주어 사전에는 곶자왈을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헝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정의하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중산간지대의 숲을 대개 이나 자왈또는 곶자왈이라고 불러왔다. 따라서 곶자왈이란 민가 근처에 있는 숲으로, 쟁기의 날이 땅을 갈아엎을 수 없어서 농부의 손에 길들여지지 않은 거친 땅을 의미한다.


(72)

흑룡만리(黑龍萬里). 누군가 제주의 돌담길을 흑룡만리라 했다. 용은 바다를 희롱하고, 바다는 화답이라도 하듯 비릿한 물바람을 보내어 용을 춤추게 하며, 길은 그 사이에 길게 누워 있다.


(87)

협곡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탐스럽게 생긴 담팔수가 나그네를 반기고, 구실잣밤나무, 종가시나무, 황칠나무, 참식나무, 조록나무, 아왜나무 같은 늘푸른나무들이 터널을 이룬다. 사이사이에는 예덕나무, 팽나무, 푸조나무, 멀구슬나무, 머귀나무, 때죽나무, 자귀나무, 단풍나무, 산벚나무, 굴피나무, 합다리나무, 꾸지나무, 곰의말채나무, 까마귀베개 같은 낙엽 지는 나무가 살고 있다. 숲 바닥에는 바람등취(후추등)이 바위를 뒤덮고, 맥문아재비가 보석같이 영롱한 열매를 달고 있다.


(116)

너도밤나무 하면 나도밤나무가 떠오른다. 나도밤나무는 너도밤나무더러 나도밤나무 대열에 끼워달라고 조르는 것 같다. 그렇지만 너도밤나무는 참나뭇과이고 나도밤나무는 나도밤나뭇과이다. 나도밤나무는 밤나무와 잎의 모양이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주로 서해안 주변의 산에서 자란다.


(127-129)

옛날 울릉도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산신령이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산에 밤나무 100그루를 심으라고 하면서 만약 100그루를 심지 못하면 큰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을 사람들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하루 만에 전부 심었다. 심은 밤나무에서는 싹도 나고 잘 자랐다.

어느 날 산신령이 찾아와서 그동안 심어놓은 밤나무를 확인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보아도 아흔아홉 그루밖에 되지 않았다. 산신령은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여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여러 번 세어도 아흔아홉 그루밖에는 안 되는 밤나무가 그사이에 한 그루 더 생길 수는 없으니 마을 사람들은 이제 죽었구나하고 생각했다. 심기는 100그루를 심었지만 그사이 한 그루가 말라 죽은 것이었다. 그때 뜻밖에도 옆에 서 있던 조그만 나무 한 그루가 나도 밤나무입니다.”하고 외쳤다. 산신령은 다시 그 나무에게 밤나무가 맞는지 확인했다. 그 나무는 자기도 밤나무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너도밤나무라고 이름 붙여주고 잘 가꾸었다고 한다.


(136)

성인봉은 왜 산이 아니고 봉일까? 산의 격에서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이곳의 높이는 984미터이다. 1000미터에서 16미터 못 미치는 큰 산이다. 사방으로 갈래를 친 겹산인데다, 산이 험준하고 계곡도 깊다.

산과 봉()의 차이에 대해서는 설왕설래 말이 많지만, 일단 산이라고 하면 산괴를 떠받치고 있는 땅이 있어야 한다. 한라산은 한라산을 떠받치고 있는 넓은 대지가 있기에 산이며, 울릉도는 섬 자체가 산으로 떠받칠 땅이 없기에 봉이다.


(268)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의 일이다.

도읍은 정했는데 도읍을 감싸주고 궁궐을 지켜줄 주산(主山:도읍, 집터, 무덤 따위의 뒤쪽에 있는 산)이 없었다. 그래서 전국의 산에 연락하여 주산을 모집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산들이 도읍의 주산이 되기 위해 앞 다투어 한양으로 모여들었는데,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주흘산도 열심히 한양으로 쫓아갔지만 이미 삼각산이 먼저 자리를 차지한 뒤였다. 크게 실망한 주흘산은 돌아오는 길에 이곳 문경에 주저앉아 버렸고, 그때 삐친 것 때문에 지금도 한양을 등지고 앉아 있다는 재미난 얘기가 전해진다.


(281)

산에서 나는 약초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체질이 있으며, 따라서 같은 병이라도 약은 달라질 수 있다. 일찍이 중국 주나라의 명의인 편작이 자신의 저서 <난경>에서 의사가 아무리 고쳐주려 하여도 병이 잘 낫지 않는 환자의 경우 여섯 가지를 설명하였다.

첫째, 환자가 교만하고 방자하여 내 병은 내가 안다고 주장하는 자

둘째, 자신의 몸을 가벼이 여기고 돈과 재물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자

셋째, 음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자

넷째, 음양의 균형이 깨져서 오장의 기가 안정되지 않은 자

다섯째,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도저히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

여섯째, 무당의 말만 믿고 의사를 믿지 못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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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옷을 찾아서 -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
정혜주 지음 / 하늘자연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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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조선의 딸, 총을 들다>라는 책을 읽었잖아. 그 책에서 많은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소개해 준 것은 좋았지만, 너무 많은 이들을 다루어 깊이 알아 볼 수는 없었단다. 그래서 그 책에 나와 있는 분들 중에 아빠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몇몇 분들의 책을 찾아보았단다. 그 중에 한 분이 우리나라 최초 여성비행사인 권기옥이란 분이었어. 독립운동을 함에 있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전투기 비행사가 되어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겠다는 당찬 꿈을 가진 이는 없었을 거야.

그래서 그 분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단다. 다행히 권기옥이라는 분에 대한 책이 몇 권 있었어. 그 중에 고른 책이 바로 정혜주님의 <날개 옷을 찾아서>였단다. 평전 소설이라고 써 있구나. 권기옥의 삶을 소설의 형식으로 썼다고 생각하면 돼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 최초 여성 비행사를 다룬 영화 <청연>이 생각이 나더구나. 아빠는 보지 않은 영화이지만, 일제 시대 여성 비행사를 다룬 영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 그래서 당연히 <청연>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권기옥님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구나. ? 좀 찾아 보니 영화 <청연>의 주인공은 친일까지 했다는구나. 영화 감독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그런 영화를그리고 영화 <청연>의 주인공과 권기옥님 사이를 두고, 최초의 여성비행사가 누구냐는 논란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여러 가지를 알아보면 권기옥님이 2년 가까이 앞선다고 하는데, 친일을 했던 <청연>의 여주인공을 일제 시대 당시 일제가 최초 여성비행사로 부각시켰다고 하는구나.

정작 권기옥님은 생전에 그런 논란을 보면서 “근래에 와서 내가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라고 화제에 자주 오르는 것 같소. 허나 내가 비행기를 탄 것은 무슨 최초가 되기 위한 사치스러운 욕심에서가 아니었소. 오로지 일편단심 조국광복이라는 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내 청춘과 열정을 바친 것이오.” 라고 하셨다고 하니, 정말 멋진 분이 아닌가 싶구나.


1.

권기옥님은 1901년 평양 근처 중화군이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어렸을 때 평양에 와서 줄곧 평양에서 학교를 다녔단다. 열아홉 살 때인 1919 3.1 운동 때 시위를 주도했다가 체포되기도 했고, 그 이후 군자금을 모으는 등 독립 운동을 하기 시작했단다. 항일 시위에 꼬박 참석해서 여러 번 체포를 당했어. 그로 인해 고문후유증으로 병까지 얻게 되어 석방되었단다. 석방 후 몸에 괜찮아지면 또 독립운동을 하고, 강연회를 열기도 했어.

임시정부에서 몰래 잠입한 문일민과 장덕진의 폭탄 제조를 돕기도 했고, 임시정부의 자금 마련에 힘쓰기도 했어. 또다시 체포를 당할 위기에 몰리자 권기옥은 상하이로 망명하였어. 한참을 이야기했지만, 그때 나이 고작 스무 살이었단다. 꽃다운 나이 스무 살에 조선 독립을 위해 고향을 떠나 상하이로 간 거야. 상하이에서 다시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학교 공부를 마치고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비행사가 되기 위해 항공학교 입학을 알아보았단다. 하지만 번번이 여자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했어.

23. 임시정부 이시영의 소개로 찾아간 윈난항공학교에서 드디어 입학을 허가해 주어 비행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고, 25살 드디어 비행사 자격증을 획득했어. 비행사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의열단들과 교류를 하면서 독립 투쟁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어.

권기옥님은 중국의 국민혁명군의 근거지인 광저우로 갔어. 그곳에서 여운형을 만났고, 그를 통해 국민군 항공대 소좌인 서왈보를 만난단다. 권기옥은 서왈보의 도움으로 국민군 제1항공대 비행사로 초대받았어. 서왈보로부터 독립운동가 유동열과 이상정을 만나게 되는데, 후에 이상정과 결혼을 하였단다. 이상정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형이라고 하는구나. 이상정, 이상화 형제와 함께 사진도 같이 찍은 것이 있는데, 그분들의 독립에 대한 열정이 사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했어.


2.

권기옥이 비행사가 되었지만, 우리나라 임시정부에는 전투기가 없었어. 공군 자체가 없었지. 조선총독부를 파괴하겠다는 당찬 꿈을 접을 수는 없었어. 권기옥은 중국 공군 소속에 있으면서 중국과 일본 간 전투에 참여한단다. 10여년 간 중국 공군 소속에 있으면서, 중일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쳤단다. 10여년간 비행사를 마치고서 권기옥은 중국 항공학교의 강사를 하기도 하고, 남편 이상정과 함께 독립운동도 꾸준히 했단다.

한국애국부인회를 재건시켜 활동했고, 한국광복군 비행대 편성과 작전에도 참여를 했단다. 그렇게 임시정부에 속해 있으면서 전투를 준비를 하던 와중에 조선의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단다. 귀국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준비를 했어. 남편 이상정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고 먼저 귀국했어. 그런데, 귀국 두 달 만에 뇌일혈로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단다. 얼마나 허망할까. 그런데 뜻밖에 소식 하나. 이상정인 고국에 부인이 있었다는 거야. 남편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속았다는 배신감

....

중국에 공산당이 득세하게 되면서 권기옥님은 국민당과 함께 타이완으로 피신했다가 1949년에서야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공군 창설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고 했어. 평생 조국을 위해 사시던 권기옥님은 1988 88세의 일기로 눈을 감으셨단다.

….

책은 썩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기옥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절로 생기더구나. 다시는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여성 독립 운동가라고 하면 유관순 누나만 떠오르고 끝나곤 했는데, 권기옥님도 꼭 기억할 것이란다. 너희들도 꼭 기억해주길그럴 것을 기대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권기옥 위인전도 함께 사 두었으니, 너희들도 꼭 한번 읽어보기를…. 그리고 또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한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PS:

책의 첫 문장 : 겨우내 모란봉은 눈옷 속에 꽃잎을 감추고 있다.

책의 끝 문장 : 역사도 개인사도 그 순간에 새로 쓰여진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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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20.
사진 다 찍고 다시 각자 위치로 보내고 나니,
앗.. 한 권을 빼먹었...
.
알라디언님들 모두 즐거운 2020년 마지막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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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2-31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새해인사드립니다.
올해는 조금 남고 새해는 가까워지는 날입니다.
가족과 함께 희망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새해엔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bookholic 2020-12-31 13:3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년 새해에는 어느날 갑자기 코로나가 싹 사라졌으면 합니다.
서니데이님 식구들 모두 건강한 2021년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늘 좋은 글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12-31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녹색 평론을 비롯한 좋은 글 소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0-12-31 13:3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겨울호랑이님의 깊으면서 넓은 책읽기를 본받고 싶지만, 저는 깊이는 어렵고 넓게만 본받겠습니다.^^
2021년 새해에도 늘 좋은 글과 좋은 책 추천 부탁드려요.
온 식구들 건강한 2021년 되길 바랍니다.

스텔라 2020-12-31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

bookholic 2020-12-31 13:3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더불어 2021년 한 해 온 식구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늘 그렇듯이 내년에도 좋은 글과 좋은 책 추천 부탁드리고요..
고맙습니다^^

막시무스 2020-12-3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iokholic님! 올 해도 엄청 많이 읽으시고 자제분들께 좋은 글도 많이 남겨 주셨네요! 내년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책읽기, 글쓰기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ㅎ

bookholic 2020-12-31 13:48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도 올 한 해 즐거운 책읽기 되셨죠?^^
내년에도 즐겁고 행복한 책읽기 하시고 좋은 글과 좋은 책 추천 부탁드려요.
그리고 막시무스님과 모든 식구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한 2021년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mini74 2020-12-31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하십니다. 멋져요. 좋은 글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책들로 만나요 ~~ 건강조심하시고 멋진 새해 보내세요

bookholic 2020-12-31 23:23   좋아요 1 | URL
mini74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식구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2021년 소의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내년에도 늘 좋은 글과 좋은 책 추천 부탁드리고요.
고맙습니다~~^^

초딩 2020-12-31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건 정말 정말 ^^
^^ 멋져요!!!
bookholic 님 올 한 해도 넘넘 감사했습니다. 남은 한 해 잘 보내시고 ^^
내년에도 많이 많이 뵙겠습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20-12-31 23:28   좋아요 1 | URL
저도 올 한 해
초딩님의 읽기 편하면서 좋은 글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글과 좋은 책 많이많이 추천 부탁드려요...
그리고 초딩님 식구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레삭매냐 2021-01-01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
전 베스트로 뽑은 책도 찾질 못해서
버벅거리고 있답니다.

새해에도 또 열심히 읽으시고 좋은
글 기대해 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21-01-01 21:00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올해도 깊이 있으면서 읽기 편한 좋은 글들 부탁드립니다.^^
새해 연휴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1-01-01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멋져 멋져 보입니다. 이렇게 잘 생긴 책탑이라니!!!
갑자기 새해 독서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빡쎄게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듭니다 .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님이 뜻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 ★ ★

bookholic 2021-01-01 21: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페크님도 즐거운 독서와 즐거운 글쓰기 하는 올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36)

아무로 높고 강력한 파도라도 결국 스스로 무너진다.

-       슈테판 츠바이크


(90-91)

, 다른 말로 하면 삶에 철학적 깊이가 생겼다고 할 수 있지요. 바로 이 부분이 중세 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입니다. 중세는 흔히 암흑시대니 뭐니 해서 역사가 후퇴한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면적으로 아주 깊은 성찰을 했던 시기입니다. 지금까지 보았듯 죽음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물음에 대답하는 시기이기도 했고요. 또 앞으로 보겠지만 신은 어떤 존재여야 하고 신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끝없이 탐구하는 과정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96)

참고로 가톨릭의 경우 지금도 공의회가 열립니다. 가장 최근에 열린 공의회는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여기서 각국의 다양한 언어로 미사를 지낼 수 있다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 공의회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 성당에서도 라틴어로 미사를 지내야 했겠지요. 생각해보면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만들어진 공의회라는 합의 방식이 지금까지 지켜진다는 사실이 대단하지 않나요?


(133)

예루살렘은 이슬람 교도들이 메카, 메디나와 함께 3대 성지로 모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방금 본 사진 속 바위 돔 사원이 매우 화려하게 지어진 거죠. 이 사원의 황금빛 지붕 밑에는 큰 너럭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그 바위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알라신을 만나기 위해 하늘로 승천했다 돌아온 장소라고 알려져 있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바위는 유대교와 기독교인에게도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이 바로 이 바위 위에서 아들을 신에게 제물을 바치려 했다고 하거든요. 이 이야기는 구약성경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133-134)

그래서 오늘날의 예루살렘은 분쟁의 땅이기도 합니다. 뒤 페이지 지도를 보세요. 일단 이 도시는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슬람,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 구역이 있고, 여기에 아르메니아인들이 사는 지역도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일찍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인 후 예루살렘으로 이주해 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왔던 소수 민족입니다. 이렇게 사방 1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작은 지역 안에 각자 이곳이 자기 종교의 성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옹다옹 모여 있으니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겠죠.


(147)

11세기 무렵 기독교가 동서로 분열하며 서쪽에는 로마를 중심으로 가톨릭이, 동쪽에는 비잔티움 제국을 중심으로 정교회가 세워집니다. 가톨릭은 교황이, 정교회는 총대주교가 대표하게 되었죠. 이렇게 분열한 가톨릭과 정교회는 서로 정통성을 주장했는데, 이름에도 그 주장이 드러나 있습니다. 가톨릭(Catholic)이라는 단어는 보편성은, 정교회를 가리키는 오서독스(Orthodox)는 정통을 의미하거든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정교회는 지금도 러시아와 그리스에서 국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적 규모의 기독교 종파입니다.


(183-184)

그래서 일반적으로 서로마가 멸망한 476년을 고대 로마제국이 멸망하며 중세가 시작된 때라고 합니다. 물로 동로마는 로마라는 이름을 유지한 채 콘스탄티노플의 단단한 방벽 뒤에서 1000년을 더 살아남긴 했지요. 그러나 살아남은 동로마를 고대 로마제국과 같다고 보기는 힘들어요. 고대 로마제국의 중심이 이탈리아 반도였다면 동로마제국의 중심은 이탈리아 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소아시아 지역이거든요. 당연히 동방 문화권이고요.


(237-238)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인간은 진리를 볼 수 없지만 예술이 진리를 보는 눈이 되어줄 수 있다고 했지요.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창작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창작은 보편적인 것을 말하지만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스스로 진리를 말하지 않으므로, 사실로부터 진리를 알아내려면 시나 그림 같은 예술적 창작이 주는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모방을 긍정적으로 바라봤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은 인간의 본능이고, 교육도 결국 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모방의 기능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지요. 또한 사람들이 그림을 보는 이유는 그것이 진짜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고 그림이 모방하려 한 진리를 추리하거나 상상하면서 그 차이를 즐기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323)

보통 르네상스라고 하면 대부분 우리가 잘 아는 15~16세기의 르네상스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부터 르네상스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바로 8세기 후반부터 9세기까지 이어진 카롤링거 르네상스입니다. 이 시기에 드디어 본격적인 중세를 망라할 사회제도, 기독교 교리, 중세적 감수성 전체가 선명해집니다. 더 나아가 자취를 감추었던 고대 그리스 로마 유산들이 복원되기 시작했고요. 초기 기독교 시대의 혼란을 넘어 서유럽 세계의 질서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중세의 암흑기가 거의 끝나간다고 할 수 있지요.


(335)

샤를마뉴가 사랑받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샤를마뉴가 화려한 로마시가 아니라 소박한 북쪽의 고향 땅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앞서 교황에게서 로마 황제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했지만 샤를마뉴는 평생 로마 시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여러 거점에서 나라를 통치하다가 지금의 독일 아헨에 수도를 정한 후로는 쭉 그곳에 머물렀죠. 샤를마뉴는 그리스 로마 문화를 부흥하고자 했지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던 거예요. 샤를마뉴 치세에 게르만 문화와 그리스 로마 문화, 그리고 기독교가 융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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