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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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예전에 안도현 시인이 <백석 평전>을 썼단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오래 전에 알라딘 인터넷 서점 이벤트로 이 <백석 평전>을 전자책을 무료로 받은 기억이 있단다. 그래서 가끔 스마트폰으로 읽어보려고 했는데,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책 보는 것이 익숙지 않더구나. 그래서 앞에 몇 페이지 읽다가 그만 두었단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읽은 박균호 님의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서 백석 시인을 소개한 준 것을 보고, 안도현 시인의 <백석 평전>이 생각나서 다시 읽어보고 싶었단다. 예전에 받은 <백석 평전>의 전자책을 아직도 읽을 수 있더구나. 그런데 전자책은 잘 안 읽어질 것 같아서, 검색해보니, 괜찮은 품질의 중고로 나와 있는 게 있어서 그걸 사서 읽었단다.

이왕 백석 시인에 관한 것을 읽는 김에, 관련된 책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연달아 읽었단다. 안도현 님의 <백석 평전> 백석의 시를 모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김연수 님의 <일곱 해의 마지막>. 오늘은 먼저 안도현 님의 <백석 평전>을 이야기해 줄게.


1.

1912 7 1일 평안북도 정주라는 곳에서 태어났단다. 어린 시절의 이름은 백기행이었어. 명문인 오산고보를 졸업했는데, 학창 시절 김소월 시인을 존경하여 시인에 대한 꿈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학교 선생님이 그의 첫 번째 꿈이었단다. 영어에 재능이 뛰어났다고 하는구나. 나중에는 러시아도 잘 하셨다고 하니, 언어에 감각이 있으신가 보구나. 부럽네.

오산고보를 졸업했지만, 일본이 지배하고 있던 시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 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이 넉넉하지는 못했고 말이야. 이때 사업가 방응모의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갈 수 있었단다. 친일 신문인 조선일보의 사장 방응모 맞단다. 골수 친일이 되기 전에는 학생들의 학비를 대주던 리즈 시절도 있었던 것 같구나. 방응모의 후원으로 일본 아오야마 학원에서 4년 동안을 공부를 했어. 유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백석. 방응모의 부탁으로 조선일보에 입사하게 된단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 셋. 젊음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멋 내기 좋아하는 젊은이였단다. 모던 보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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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당시 <조선일보> 사옥은 태평로 1가에 있던 2층짜리 조그마한 건물이었다. 백석은 광화문을 지나 세종로를 걸어 신문사로 출근했다. 멀리서 봐도 그는 남들의 눈에 금방 들어올 만큼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숱이 많은 새까만 곱슬머리에 선명한 눈썹에다 얼굴 한가운데에는 서양 사람처럼 콧날이 깎아놓은 듯 우뚝 자리 잡고 있었다. 균형 잡힌 어깨와 다리를 가진 훤칠한 키의 백석이 세종로를 겅중겅중 걸어가면 누구나 다시 한 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목이 유난히 긴 이 청년은 늘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이었다. 길 가던 여성들이 이런 모던보이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며 곁눈질을 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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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번역으로 외국의 문학작품을 소개해 주기고 했어. 이때 허준, 신현중과 어울리면서 광화문 3인방이라는 별명도 생겼어. 허준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게 되었단다. 통영에서 온 박경련이라는 이에게 첫눈에 반했단다. 박경련은 이화여고를 나온 신여성이었어. 박경련은 광화문 3인방인 신현중의 고향 후배였어. 그래서 백석은 신현중에게 부탁해서 같이 통영으로 박경련을 만나러 가기도 했단다. 하지만, 길이 어긋나서 만나지 못했어.

백석은 이렇게 사랑만 한 것은 아니야. 틈틈이 쓴 시들을 모아 시집 <사슴>을 출간했단다. 100부 한정판이고, 가격도 다른 시집의 두 배 가격이 될 정도로 고급으로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정말 멋쟁이로구나. 이 시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시집이 되었단다. 그의 시가 유명하고 사랑 받는 토속적이고 향토색이 짙기 때문이란다. 모던 보이였던 그에게서 그런 시가 나오다니, 내면의 순수한 시인의 마음이 가득 들어 있었나 보구나.


2.

2년 기자 생활을 마치고 백석은 어렸을 때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함흥의 영생고보에 갔단다. 이곳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게 되었단다. 이 때 칠판 앞에서 찍은 백석의 사진이 그의 사진 중에 가장 유명한 한 컷이 되었는데, 밝게 웃는 모습에 많은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이때 제자들 중에 동화 작가로 유명한 강소천도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서울에서 더 위로 올라왔으니 사랑하는 박경련이 있는 통영과는 더 멀어졌구나. 하지만, 그의 사랑하는 마음은 더 커져만 갔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인지, 백석은 청혼하기 위해 다시 통영으로 갔단다. 하지만, 박경련의 부모님들이 반대했단다. 그 반대에 한 몫을 한 것이 백석 엄마가 기생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었는데, 그 소문을 낸 이가 바로 백석의 친구였던 신현중이었단다. 신형중도 뒤늦게 박경련을 사랑해서, 연적인 백석의 험담을 했던 거란다. 깊은 좌절을 안고 함흥으로 돌아온 백석. 얼마 뒤 접한 신현중과 박경련의 결혼 소식은 얼마나 슬펐겠니. 그것도 친구의 배신백석은 이후 신현중과 연락을 끊었다고 하는구나.

….

백석은 함흥에서 또 한 명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데, 지덕체를 고루 갖춘 진향이라고 하는 기생이었딴다. 진향과 사랑에 빠진 백성은 진향에게 자야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단다. 백석와 자야의 사랑은 이후에도 계속 된단다. 자야의 본명은 김영한인데, 나중에 서울로 와서 고급 요정을 운영하게 되는데, 말년이 그 술집을 그대로 법정 스님께 시주를 해서 길상사라는 절을 창건하게 된단다. 법정 스님의 길상사가 요정을 시주 받아 지었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는데, 그 분이 백석의 애인이었다는 것은 얼마 전에 읽은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단다. 멋진 분들이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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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백석의 연인이었던 자야 김영한은 서울 성북동에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을 경영했다. 1970년대 후반까지 거물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이 요정을 드나들었다. 1996년 대원각이 들어선 7,000여 평의 땅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고, 1년 뒤에 사찰 길상사가 완공되었다. 1997년 김영한은 백석 연구자 이동순의 주선으로 창작과비평사에서 백석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1999년 자야 여사는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백석의 연인답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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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 영생고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시와 산문을 쓰던 이 시절이 그 인생의 전성기가 아닌가 싶구나. 백석은 영생고보의 축구부도 담당하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시합이 있어서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 출장을 왔는데, 학생들 관리는 하지 않고 자야의 집에 찾아가서 지냈다고 하는구나. 그것이 들통이 나서, 징계를 받았는데 그 일로 학교는 그만 두었다고 했어.

그리고 조선일보에 재취업을 해서 <여성>이라는 잡지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이 잡지가 크게 히트를 쳤어. 이 시절이 1930년대였는데, 우리나라 1930년대는 일제 침략이 길어지면서, 우리나라의 광복을 하나 둘 꿈을 접을 때였어. 여러 분야의 유력 인사들이 친일로 돌아서던 시기였단다. 문학을 하던 이들도 친일로 돌아서기 시작했고, 조선일보도 이 때부터 일본 찬양을 하기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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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하지만 그는 1933년 일제의 기관총 구입비용 1,600만원을 헌납한 것을 시작으로 중일전쟁을 전후해 친일의 길로 들어섰다. 1937 1 1일자 <조선일보> 1면에 일왕 부부 사진을 크게 실어 충성을 표시하는가 하면, 전쟁 발발 직후 8 2일자 사설에서는 출정 장병을 향하여 위로 고무 격려의 편지 한 장 보내는 것도 총후의 임무라고 썼다. 그 후에는 국방헌금을 모은다는 사고를 내고 전쟁자금 모금에 앞장섰다. <동아일보>의 김성수 사장도 군사헌금 1,000만원을 헌납하는 등 중일전쟁을 전후에 친일신문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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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유학까지 갔다 왔지만, 그는 한번도 일본말로 시를 지은 적이 없고,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가 적극적인 항일 투쟁이나 독립 운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서정주나 이광수 등과 같이 친일로 돌아서지는 않았어. 국내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게 되자, 이 시기에 만주 산징으로 이주하게 된단다. 그곳에서 화가 문학수의 동생인 문경옥과 결혼을 했지만, 1년 후에 이혼을 했단다. 이 문경옥이라는 분은 나중에 북한에서 최고의 여성 음악가가 된다고 하는구나. 그는 만주에 머물면서 일체 문학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가 해방을 맞이하게 된단다.


3.

해방이 되고 나서 백석은 신의주를 거쳐 고향 정주에 돌아왔단다. 그리고 예전 학창 시절 인연이 있던 조만식의 부탁으로 통역 비서 역할을 위해 평양에 왔단다. 그리고 리윤희와 결혼도 하였단다. 그리고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일도 하고, 시도 다시 쓰기 시작했단다. 해방된 조국에서 의미 있는 일도 하고,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삶을 그렸을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나라는 백성들의 행복한 삶을 그대로 두지 않았어.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는 해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전쟁에 휩싸이게 된단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창작 활동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이 있어서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위한 작품도 썼단다. 특히 동시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동화시집들을 써냈어. 우리 집에도 백석의 동화 시집이 한 권 있잖아. 너희들이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아무튼 전쟁 후 북한에서 그의 창작 활동은 순탄치 않았단다. 일부 작품들에 대해 비판을 받게 되었고, 자아 비판을 받는 자리도 여럿 있었어. 그런 자아 비판의 결말은 함경도 삼수군에 가서 현지 지도를 하라는 것이었어. 말이 현지 지도이지, 거의 유배나 다름 없었단다. 고향도 아닌 오지 삼수에 가라고 했으니 말이야. 삼수갑산이라는 말이 있단다. 함경도의 삼수군과 갑산군을 함께 부르는 말인데, 그 말의 숨겨진 뜻에는 엄청나게 힘든 오지를 뜻하고, 몹시 어려운 상황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뜻에 있단다. 그러니 삼수군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 곳이겠니. 그래도 숙청당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어야 했나. 남한 출신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작가들도 많이 숙청당했던 시절이니까. 아무런 연고 없는 삼수군에서 그는 국가에 순응하면 잘 지냈단다. 중앙 정부를 찬양하는 시와 글도 쓰고 그랬단다. 하지만 끝내 삼수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1962 <조국의 바다여>라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창작 활동을 접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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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조국의 바다여>는 백석이 북한에서 발표한 마지막 시였다. 아니, 그가 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겨놓은 시였다. 평양에서 삼수군으로 쫓겨날 즈음 백석에게 시는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시인으로 살아남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 인간으로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백석에게는 더 시급했다. 해방 이후 백석의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을 단순히 예술성을 망각하고 시를 정치도구화한 파렴치한 행위로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백석이 북한에서 아동문학논쟁을 통해 문학의 자율성과 미학주의를 주장한 마지막 시인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의 지도 아래 놓인 북한의 문학을 조금이라도 더 보편적인 미학의 논리로 되돌려놓겠다는 그의 문학주의는 결국 꺾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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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창작활동을 그만두어서 1963년 즈음에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그래서 한 동안 백석이 그 때 죽었다고 알려졌었대. 하지만, 그는 삼수군에서 조용히 농부로 살아갔던 거야. 1996 8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 백석의 노년에 식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단다. 젊은 시절 모던 보이 백석의 모습은 간데 없고, 한 노인의 지나온 인생이 보였단다. 그의 식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니,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행복해 보이더구나.

글쟁이가 글을 쓸 수 없던 많은 시간들누가 백석을 그런 삶을 살게 만들었는가. 아픈 우리나라 역사로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비록 백석이 출간을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시골에서 써 놓은 글과 시가 있지 않을까. 자녀분들이 그 시와 글들을 잘 보관하고는 있지 않을까. 언젠가는 그의 미출시 작품들이 무더기로 공개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기대를 기대해 보며, 오늘 독서 편지는 마치련다.


PS:

책의 첫 문장 : 1945 8 25, 소련군 사령부는 경성에서 신의주를 운행하는 경의선 철도를 차단하였다.

책의 끝 문장 : 고형진의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문학동네, 2013)에 따르면 백석과 관련된 단행본, 학위논문, 평론, 에세이 등의 연구물이 8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음식에는 가족이라는 공동운명체의 기질과 취향과 풍습이 반영되어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매우 사소하고 일상적인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함께 밥을 먹었던 기억은 가족을 단단히 결합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음식의 공유는 기억의 공유로 곧잘 이어진다. 사소한 것을 통해 ‘조선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게 백석의 시라면 백석에게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먹을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백석의 시를 지배하는 음식이 거의 모든 시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가 음식을 감각의 총화로 파악하고 의도적으로 시에 배치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음식은 놀라운 친화력을 발휘해 독자를 시의 자장 안으로 강하게 끌어들인다. - P16

백석은 혼란스러워 머리를 흔들었다. 백석은 일본에 유학을 할 때나 귀국한 뒤에 단 한 편도 일본어로 작품을 쓰지 않았다. 수업을 하거나 사적인 편지를 쓸 때에도 일본어를 섞는 일을 극도로 자제했다. 의사전달도 문학적인 표현도 조선어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고향 평안도의 방언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백석만의 특허상표였다. 그의 몸은 함경도에 머물고 있었지만 백석은 시시때때로 머리에 떠오르는 고향의 방언 때문에 외로움을 누를 수 있었다. - P161

일제는 황국 신민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비국민’이라는 굴레를 씌워 분리하는 정책을 폈다. 식민지를 철저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통치하겠다는 발상이었다. 그것은 백석이 보기에 굴종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백석은 ‘내선일체’를 강요하고 빠르게 미쳐가는 조선에서 더 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조선과 일본은, 엄연히 민족과 언어가 다른데도 그 둘을 하나로 여기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경성에 계속 남아 있다가는 ‘내선일체’의 수렁으로 빠져들 게 뻔했다. - P218

백석은 ‘1956년도 <아동문학>에 발표된 시인 및 서클 작품들에 대하여’라는 총평 형식의 글에서 시와 동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매우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피력했다. 시의 요건은 생활에서 우러난 감정, 사색의 중요성, 언어를 부리를 법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했다. 하지만 이 자신감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북한문학의 주류가 항일혁명문학에 이은 김일성 유일사상을 바탕으로 한 주체문학으로 변화하면서 북한문학에서 자율성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게 되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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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24 00: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진짜 ‘아! 백석!‘이네요. 저도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 나온 백석 스토리 넘 재미나게 읽었어요. 백석 평전도 담아놓은 책인데 이렇게 다시 떠오르니 읽어야겠어욤!ㅎㅎ

bookholic 2021-05-24 22:14   좋아요 3 | URL
농부가 된 시인...
하지만 그 영혼만은 영원히 시인이었을 거라 믿습니다.
노년의 사진 속에서도 여전히 시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mini74 2021-05-24 12: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백석 정말 좋아해요 *^^*

bookholic 2021-05-24 22:15   좋아요 4 | URL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을 가지신 분 같아요~~^^

조그만 메모수첩 2021-05-24 18:5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실연과 배신의 상처가, 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중 ‘내가 오래 그려오든 처녀가 시집을 간 것과 / 그렇게도 살틀하든 동무가 나를 버린 일을 생각한다’란 시구에 남았던 것이 기억이 나네요. 필자가 시인의 여성들과 그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백석이 저버렸던 여성들의 아픔 역시 언급해줬던 것이 인상에 남았어요. 리뷰 읽으면서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던 사실 몇 개를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bookholic 2021-05-24 22:18   좋아요 5 | URL
리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다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의 한계로 리뷰에 몇몇 오류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scott 2021-06-04 2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시인 백석
이달의 당선작으로!!
추카~*추카~**

bookholic 2021-06-06 22:09   좋아요 1 | URL
ㅎㅎ 감사합니다... 변변치 않은 글에 이웃 북플러님들께서 ˝좋아요˝를 눌러 주신 덕분~~

그레이스 2021-06-04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당선 축하드려요~♡

bookholic 2021-06-06 22: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늘 즐거운 시간 되시길...

새파랑 2021-06-04 21: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 드립니다. 북홀릭님~! 딸과 아들에게 꼭 말하시길^^

bookholic 2021-06-06 22:11   좋아요 2 | URL
ㅎㅎ 당선작으로 받은 적립금은 우리 식구들 아무도 모르는 제 비자금입니다~~^^

서니데이 2021-06-04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1-06-06 22:11   좋아요 1 | URL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늘 즐거운 날들 되시길~~

강나루 2021-06-04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bookholic 2021-06-06 22:1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이하라 2021-06-05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1-06-06 22:1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주말도 휘리릭 가버렸는데, 새로운 한 주, 새로운 한 주 되시길...^^

초딩 2021-06-05 18: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한에서의 생활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ㅜㅜ

아무튼,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bookholic 2021-06-06 22:13   좋아요 1 | URL
백석의 고향이 남쪽이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너무 안타까운 삶입니다...
축하 해주신 것도 고맙고요~~^^
즐거운 한 주 되십시오~~
 














(5-6)

석탄발전소, 자동차 등록대수, 주유소, 산업단지, 소 사육두수. 상징적인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이다. 지난해 정부는 ‘2050 탄소 중립을 발표했는데, 순배출량 ‘0’를 탄소중립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도무지 감을 잡기 어렵다. ‘2050 탄소중립은 간단히 말하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30년 안에 석탄발전소, 내연기관 차량, 주유소 같은 화석연료 기반 시설은 완전히 사라지고 산업단지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전환해야 하며, 소 사육두수는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2018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1.5도 특별보고서를 계기를 본격 등장한 탄소중립은 지금껏 지구에서 인간이 구축해온 화석에너지 기반의 경제 사회 체제를 완전히 뒤흔드는 일이다.

(11)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80%를 화석에너지를 태워서 쓰고 있다. 2017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 석탄 소비 세계 4, 석탄 해외투자 3, OECD 온실가스 배출 증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30년 이내에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30년간 하는 체만 해왔던 기후위기 대응을 끝까지 버티다가 이제는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동안 정부와 산업계는 기후위기를 방관해왔다. 특히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산업계는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강화하면 해외로 산업체를 이전하겠다고 정부를 압박했고, 정부는 그런 산업계에 끌려다녔다. 지금까지 정부와 기업이 행동하지 않음으로 인해, 한국사회 전체가 3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 셈이다.


(15)

어쩌다, 지금, 지구에서, 사는 우리는 한정된 지구에서 인간의 무한한 소비와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세대이다. 지구의 생태적 한계 내에서 살 만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탄소중립산회는 정부와 기업, 시민이 각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합의해야 실현할 수 있는 사회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무엇이 지금의 위기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뼛속 깊이 인식하지 않고서는 변화도 합의도 만들어내기 어렵다. 탄소중립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탄소중립사회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지 등 우리가 바라는 사회에 대한 그림을 공유하는 시간을 거쳐야 한다.


(39)

우리가 현재 향유하고있는 시장경제에 대해서, 호주 출신의 작가인 테드 트레이너는 물자가 부족해지면 부자만 그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기발한 장치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우리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화석연료가 점차 부족해지면서 이 말은 진실로 밝혀질 것이다. 부유층은 어떤 식으로든 에너지를 충분히 갖고 사용하면서 부와 정치적 권력을 유지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과거의 문명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사회가 붕괴할 때 부유층 역시 가난한 이웃들과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좀더 오래 연명할 뿐이다. 이번에는 개발도상국에서도 선진국에서도 빈곤층은 조용히 사멸해가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화된 통신수단이 그럴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가장 부유하고 가장 잘 방비를 한 엘리트일지라도 장단기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사회적 정의(正義)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43)

피크오일로 인해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좀더 지속가능하고 재생가능에너지로 동력을 얻는 경제로 옮겨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간극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 사이에 디딤돌은 없다. 저편의 세상은 이쪽과 매우 다를 것이다. 또 달라야 한다. 그러므로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전면적인 개조 말고는 대안이 없다. 소심하게 조금씩 바꾸어나가려는 정책, 실패하고 있는 체제를 조금 개량하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52-53)

오늘날 우리는 인류세를 살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편으로 인류가 자연자체를 바꾸는 환경적 힘이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 행위의 결과로 인간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말하기도 한다. 다행히 이를 막기 위해 탈탄소화를 비롯해서 생태적 전환이 긴급하게 필요하며, 이는 정의로운 전환이어야 하고 또 정의로운 전환일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의미와 존엄을 가지고 있다는 보편적 정의가 없다면 우리의 생태적 전환은 불가능하거나 인간의 파멸을 유예시키는 일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류세까지 오게 된 것은 인간 존재를 자연과 분리하여 특권화시키고 분리된 자연을 격하시켰기 때문인데 이를 회복하지 않고는 생태적 전환이라는 말로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107-108)

많을수록 좋다는 인식이 우리를 지배한다. ‘으로 결정되고, 행복은 성장으로 보장된다고 믿는다. 우리는 자율성을 상실했고 체념과 순응에 익숙해졌다. 타율성에 길든 우리는 이제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내면은 성장 이데올로기의 식민지가 되었고 성장은 자연의 질서로 행세한다. 경제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 성장의 주술에 걸린 현실에서, 탈성장은 우선 상상력의 문제다. 탈성장은 경제성장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판에서 나왔지만, 경제학적 관념에 국한되지 않는다. 탈성장은 다른 경제, 다른 생활방식, 다른 문명, 다른 사회적 관계를 요구하는 삶의 근원적 전환을 뜻한다.(<에콜로지카>). 탈성장은 일차적으로 경제성장이 삶의 터전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삶과 다른 사회가 가능하다고 세상 사람들을 깨우는 외침이다. 성장주의가 의식을 마비시키고 소비주의가 삶을 잠식한 현실에서 새로운 전망을 열려고 하는 탈성장은 상상력의 탈식민지화로 시작해야 한다.(세르주 라투슈, <탈성장사회>).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탈성장의 가능성이 아니다. 가능성부터 따지면, 시작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우리는 먼저 새로운 삶의 양식과 사회의 전망을 상상할 수 있는지, 상상할 자유가 있는지 묻고 고민해야 한다(월터 브루그만, <예언적 상상력>).


(121-122)

온 나라, 온 세계가 코로나 역병의 비상사태로 코와 입을 막은 채

형제간의 만남조차 제지되는 자리에서

수백만 수천만의 가축들이 역병 방지라는 이름으로 무차별 살처분되고

미세먼지 하늘과 플라스틱 바다와

기후위기와 종의 대멸종으로 인류의 생존 자체가 절박한 이 엄중한 시기에

한때의 정권을 위해

한갓 선거의 매표행위를 위해

생명을 담보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만들고 통과시킨 자들


그들에게 다시 묻는다

그 파괴와 죽음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 신공항

누구를 위한 신공항인가.

무엇을 위한 신공항인가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이 죽어가야

얼마나 더 숱한 생령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그 삽질

그 탐욕

그 피 묻은 손 내려놓을 수 있을까


지금 우리 모두 죽어가고 있다

인제 그만두어라

그 죽임의 굿판 제발 걷어치워라

그렇게 모두가 죽어간 뒤에 남겨질 것이 무엇인가

- 이병철 <그 죽임의 삽질을 내려놓아라> 중에서

(144)

바다가 바다인 것은 바닥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강물을 품어주기 때문이네

산이 산인 것은 지리산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네

변치 않는다는 것이지

돌 속에서 돌을 꺼내 돌의 자리에 세우고

나무속에 나무를 꺼내

나무로 자라게 했기 때문이네

제자리에 있어야 하네

사람은 사람의 자리에

반달가슴곰은 반달가슴곰의 자리에 있어야 하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산자락마다 깨알처럼 모여 사는 마름과 마을을

능선과 능선 너머

푸르고 푸른 첩첩의 산능선을

그리하여 사람의 처음처럼 거기 서 있는 지리산을

그 곁을 따라 그대와 나의 마른 꿈을 적시며

골짜기마다 풀어놓은

논과 밭을 키우고 흐르는 섬진강을

정녕 그대를 보지 못하는가

    - 박남준 <지리산은 지리산의 자리에서 노래하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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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3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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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4 <카이사르의 여자들> 3권을 이야기해줄게. 3권은 1, 2권에 비해 페이지가 적으니, 편지도 좀 짧게 끝나지 않을까 싶구나. <카이사르의 여자들> 3권은 기원전 60 5월부터 기원전 58 3월까지의 이야기란다.

로마 원로원은 계속 대립하고 있단다. 오늘날 국회에서 좌우가 대립하는 것과 비슷해민주주의 제도라는 것이 늘 양 진영간의 대립과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구나. 협력이나 공생은 별로 찾아보기 힘들구나. 예나 지금이나, 외국이나 우리나라나로마 원로원도 자칭 보수라고 하는 보니파인 비불루스와 카토 진영과 신진 진보 세력이라고 하는 폼페이우스 진영 사이 갈등의 연속이었어. 카이사르는 먼 히스파니아 총독으로 가 있어서 그 갈등에서 잠시 발을 빼고 있었지.

먼 히스파니아 총독으로 가 있는 동안 카이사르는 그곳의 골칫거리를 하나하나 해결을 했단다. 야만족의 침입과 전쟁에서도 승리하고, 재정적인 문제들도 해결하고 그랬어. 그래서 금은도 많이 확보하여 로마의 창고를 두둑하게 했단다. 그러면서 카이사르에 대한 로마시민들의 지지도는 더욱 올라가고, 그를 미워하는 보니파들은 더욱 그를 미워하게 되었단다. 먼 히스파니아 총독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 집정관에 출마를 하려고 하는 카이사르. 보니파가 카이사르의 집정관 입후보를 막기 위한 꼼수 같은 법령을 재정했어. 카이사르의 먼 히스파니아에서 여러 공적을 세웠기 때문에 개선식을 열면서 로마에 입성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자신에게도 명예가 된단다. 그렇게 화려한 개선식을 하고 로마에 와서 집정관 입후보를 하면, 집정관도 거의 따놓은 당상이 아닐까 싶었지. 그런데 보니파가 법령을 바꾸어 집정관 입후보 날짜를 개선식보다 앞서게 바꾸었어. 그러니까 카이사르는 개선식을 하게 되면 집정관 후보를 출하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로마 원로원이라면 명예를 안겨주는 개선식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보니파는 생각했어. 하지만, 카이사르는 개선식 같은 것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어. 나중에 하면 되지, 이런 생각을 했단다. 카이사르는 변경된 날짜에 맞춰 로마에 도착했단다. 먼 히스파니아에 있으면서 이런 로마의 사정을 잘 모를 만 한데, 폼페이우스가 편지로 계속 알려주고 있었단다. 폼페이우스는 이제 카이사르가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구나.


1.

보니파들, 특히 카토가 카이사르에 대한 온갖 험담을 쏟아내며 선거에 방해 공작을 펼쳤지만, 카이사르는 가볍게 수석 집정관이 되었단다. 약간 불행한 것은 차석 집정관이 보니파 일원인 비불루스가 되었다는 점이란다. 비불루스는 카이사르가 하려는 정책마다 모두 딴지를 걸면서 방해를 했단다. 카이사르도 차석 집정관 때문에 골치가 아팠단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로원에서 좀더 파워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 예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크라수스, 최근에 친하게 지내게 된 폼페이우스.. 이들에게 삼두정치를 제안했어. 문제가 한가지 있었지.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의 사이가 무척 안 좋았다는 거야. 예전에 같이 집정관을 하면서 성과를 경쟁하듯 하다가 사이가 틀어졌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어.

카이사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 카이사르는 가운데서 잘 중재를 해서, 결국 동의를 했단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삼두정치를 시작했으며, 그들을 따르는 무리로는 카이사르와 전쟁터에서 친분을 쌓아온 발부스, 조카 사위인 옥타비우스, 원로원 동료 중에는 바티니우스, 가비니우스 등이 있었어.

이제 본격적인 카이사르 진영과 보니파 간 혈전이 시작되었어. 보니파는 차석 집정관 비불루스를 중심으로 온갖 공작을 펼쳤단다. 그러다 보니 원로원에서는 늘 몸싸움과 모욕적인 말이 오고 가고 했어. 키케로도 카이사르를 싫어했는데, 어느 날 카이사르에게 욕 한 사발 던지고 로마를 떠나 동방으로 가버렸어. 카이사르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는데, 속으로는 복수 리스트에 키케로의 이름을 새겨 놓았어.

….


2.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가 어느덧 열일곱 살이 되었어. 율리아는 일찌감치 세르빌리아의 아들 브루투스와 약혼한 사이였지. 이제 열일곱 살이나 되었으니 결혼할 때가 되어 브루투스는 결혼을 하겠다고 카이사르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카이사르는 거절을 했단다. 처음 약혼할 때 약속한 것처럼 열여덟 살 때 시키겠다고 했어. 하지만, 사실 이유는 따로 있었단다. 율리아의 행동을 보니, 브루투스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았어. 어렸을 때 어른들이 정해준 약혼이니 의무감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율리아는 당시 로마의 다른 소녀들처럼, 동방 정벌을 마치고 돌아온 영웅 폼페이우스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어. 폼페이우스는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당시 최고 인기남이었단다. 이런 마음을 알아챈 카이사르는 율리아를 폼페이우스와 결혼시키려고 했어. 그것이 자신에게도 더욱 득이 되기도 하고

율리아와 폼페이우스의 마음을 떠 보려고, 폼페이우스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 동석하게 했단다. 둘은 첫눈에 반했지. 나이 차이가 거의 서른 살이 되지만, 로마 시대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 카이사르는 율리아와 브루투스의 약혼을 파기하고 율리아와 폼페이우스의 결혼을 성사시켰단다.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엄마 세르빌리아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그런데 율리아와 브루투스의 약혼 파기 소식까지 전해주니 악녀 기질 다분한 세르빌리아는 분노가 폭발하였단다. 브루투스도 삼촌 카토가 있는 보니파의 일원이 되어 카이사르에 복수를 다짐했단다. 한편, 카이사르도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되는데, 루키우스 칼 푸르니우스 피소라는 사람의 딸 칼 푸르니아와의 정략 결혼이었단다. 칼 푸르니아 역시 열 여덟 어린 나이였어. 이 소식 또한 세르빌리아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단다.

삼두정치의 소식을 들은 카토는 은밀하게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사이를 이간질시키려고 했어. 하지만 눈치 빠른 카이사르가 다 알고 있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단다. 고대 로마의 시계도 만만치 빨리 갔나 보구나. 어느덧 카이사르의 집정관 1년의 시간이 끝났어. 카이사르는 갈리아와 일루리쿰 총독으로 가려고 있어. 이번에도 보니파는 카이사르의 계획에 방해를 했지만, 또 물거품로마의 정치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직책이 일년에 한번씩 뽑는 두 명의 집정관이란다. 그리고 평민들 중에서 뽑는 호민관들이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 같더구나. 그래서 원로원 의원들, 특히 집정관이 되려는 사람들은 호민관이 될 사람과 친분을 쌓게 된단다.

또 하나 집정관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은 다음 집정관이 될 사람이란다. 되도록 자기 진영 사람이 최소 한 명은 집정관이 되어야 자신이 추구했던 정책이 잘 이어지고, 몸도 좀 편안해질 수 있단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삼두정치 양반들은, 카이사르 이후 집정관 두 명을 모두 자신들의 사람으로 선출시키는 데 성공했단다. 삼두정치의 파워를 볼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겠구나.

….

여기까지 <카이사르의 여자들>의 이야기란다. 이제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6, 7부 이렇게 세 개가 남았구나. 5부의 제목은 <카이사르>. 카이사르의 활약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이 되는구나. 지난 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올해 끝나는 것을 목표로

, 그럼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나중에 5부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 먼 히스파니아의 집정관급 총독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개선장군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책의 끝 문장 : 카이사르의 여자들 가운데 최연장자로서, 내일 다같이 보나 데아의 정원을 파헤치러 가자고 제안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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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19 23: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로마인들의 사랑이 진짜 신기하더라구요. 아 물론 소설이니 진짜 율리아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말이죠. ㅎㅎ bookholic님 리뷰 읽다보면 자꾸 집에 쌓아놓은 나머지 시리즈를 빨리 읽고싶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올 여름에 읽으려고 미뤄뒀는데 말이죠. ^^

bookholic 2021-05-20 00:33   좋아요 0 | URL
저도 율리아의 마음이 진짜 그랬을까? 궁금했어요... 작가의 상상력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6, 7부 남으셨다고 하셨죠?^^ 화이팅하고 끝내 버리시죠~~^^
 
카이사르의 여자들 2 - 4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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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4 <카이사르의 여자들> 2권을 이야기해줄게. <카이사르의 여자들> 2권은 기원전 63 1월부터 기원전 61 3월까지의 이야기란다. 이 책을 통해서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확 깨진 인물이 있다면 키케로란 사람이란다. 키케로 하면 로마의 정치인이자 변호사이자 작가로 유명한 사람이란다. 잘 알지 못하지만, 로마의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리고 고대 로마 시대의 인물 중에 제법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고그만큼 유능하기도 했고, 말이야. 그런데 이 책에서는 욕심 많고, 소심하기도 하고, 우유부단하기도 한 인물로 그려진단다. 지은이 콜린 매컬로의 말에 따르면 키케로 변호사로 능력이 뛰어나고 글재주도 뛰어난 작가이지만, 실제 성격이나 생활은 본받을 만하지는 않았다고 하는구나. 앞으로 이야기하는 키케로의 모습을 보면 아빠가 왜 이미지가 확 깨졌다고 하는지 알게 될 거야.

마르쿠스 키케로. 그는 일단 로마의 주류가 아니었단다. 옛 로마의 일인자였다가 하루 아침에 폭군이 되어버렸던 마리우스가 살던 아르피눔 지역 출신이라고 늘 멸시를 받곤 했어. 키케로를 그것을 극복하려고 했고 결국 수석집정관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단다. 그는 수석집정관으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어.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단다. 로마의 경제 상황이 무척 안 좋았어. 키케로가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지만, 경제 쪽은 취약 분야였어. 그렇다 보니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뜻대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그랬어.

여기서 잠깐 키케로의 주변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갈게. 키케로의 아내는 테렌티아라는 사람이고 둘 사이에는 딸 툴리아를 비롯하여 여럿 아이들이 있었어. 동생은 퀸투스였는데 그의 아내가 대단한 악처였어. 키케로의 측근 중에 측근을 뽑으라고 하면 노예인 티로였단다. 티로는 키케로의 모든 문서 작업을 (완벽하게) 도와주었어. 키케로는 고마워서 티로에게 해방노예의 자격을 주었는데, 티로는 키케로와 끝까지 함께 했단다. 키케로와 친한 귀족으로는 아티쿠스, 니기니우스, 피굴루스 등이 있었단다.

키케로는 아내로부터 이런저런 소문을 많이 듣곤 한단다. 어느 날, 카틸리나라는 원로원 의원이 반란을 도모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 이에 키케로는 원로원에 그를 폭로했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었단다. 오히려 키케로는 역풍을 맞고 기사 계급과 평민 계급들이 그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었어.  존경 받는 수석집정관의 모습과는 점점 멀어져갔어. 하지만 이 의혹 제기는 카틸리나를 집정관 선거에서 떨어지게 하기에 충분했단다.


1.

키케로는 또다시 소문을 듣게 되었어. 이번에도 카틸리나가 반란을 꾸미고 있다는 소민이었어. 크라수스에게 익명의 편지가 오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번에도 실증은 없었고, 크라수스가 온 편지도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고 배후가 누구인지 몰랐어. 이번에도 키케로는 카틸리나를 의심했지만, 지난번 섣불리 나섰다가 역풍을 받을까 봐 조심했단다. 그런 와중에 로마 북쪽 지방에서 실제로 반란이 일어났단다. 하지만 카틸리나와 연관성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키케로의 계속 카틸리나를 몰아붙였어. 분명 반란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거든.

결국 카틸리나는 자진에서 로마를 떠났어. 실제 반란에 참여 했다고 봐야겠지? 키케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 추가로 다섯 명의 원로원 의원이 반란과 관련이 있다는 편지를 입수했다고 했어. 결국 그들의 자백을 받아내고 가두었단다. 키케로의 임기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무엇인가 대단한 성과를 내고 싶은데, 임기는 얼마 남지 않고키케로는 자신의 임기 내에 이 반란 사건을 마무리해서 반란을 진압했다는 성과를 내고 싶어했어. 원로원을 소집하고 반란에 관여한 의원 다섯 명의 죄를 물어 사형을 선고하려고 했지. 키케로의 연설에 다들 찬성을 표시했어. 하지만, 카이사르는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고, 재판을 통해 벌을 주어야 한다고 했어. 사형을 집행하는 것 자체도 로마답지 않다고 했지.. 추방하여 감옥에 가두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했어.

카이사르가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자 카이사르 의견에 따르는 이들이 많이 생겨났어. 카이사르의 말에 격분한 이가 있었어. 카토였어. 가뜩이나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 카이사르이니 더 열 받았을 거야. 카토가 또 다시 사형의 정당성에 대한 열변을 토했어. 결국 원로원 투표로 반란에 참여했던 다섯 명의 원로원 의원의 사형이 결정되었단다. 키케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론은 났지만, 카이사르의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걸려 찜찜했어. 카이사르는 계속 키케로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고 분노했단다. 카이사르는 법 테두리 안에서 반격을 했단다. 오래 전 사건을 들추어 키케로 진영에 있는 원로원 인사를 반란죄로 고발했단다. 키케로와 달리 원로원 결의로 죄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정식 재판 절차를 선택했어. 마치 로마의 민주주의는 이런 식으로 하는 거라고 키케로에 보여주는 듯이 말이야. 키케로는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어. 이런 카이사르의 모습에 로마의 젊은 층들은 지지를 하게 되었단다.

카토는 원로원 회의가 끝나자마자 누나 세르빌리아를 찾아갔어. 카이사르 때문에 쌓인 화가 아직 누그러들지 않았어. 카이사르와 그렇고 그런 사이인 누나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했어. 카이사르와 세르빌리아의 불륜에 대해 큰소리로 화를 내면서 이야기했어. 그러면서 세르빌리아의 아들이자 카이사르의 사위가 될 브루투스에게도 카이사르와 세르빌리아의 불륜에 대해 이야기했어...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브루투스도 놀랐어. 이런 상황에 화가 잔뜩 난 세르빌리아는 기다란 손톱으로 카토의 얼굴을 깊게 할퀴어 큰 상처를 냈단다. 카토는 피가 흐르는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어.


2.

해가 바뀌고... 키케로는 집정관에서 물러나 전직 집정관이 되었고, 카이사르는 수도 수석 법무관의 임기를 시작했단다. 하지만, 반대파 원로원이 숫적 우위로 카이사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고, 작은 일에 꼬투리를 잡아 자격 정지 판결을 내렸어. 카이사르를 지지하고 있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어. 재판도 없이 원로원 결의로 다 결정을 비판하는 시위였어. 원로원 의원들은 시민들의 시위에 겁을 먹었어. 이때 카이사르가 시위를 하는 민중 앞에 나타나서, 연설을 해서 시위를 해산시켰단다. 이렇게 카이사르는 원로원과 적이 되고, 시민들과 친구가 되었단다.

로마에는 여러 축제들이 있는데, 그 중에 여자들만 참석할 수 있는 축제가 있었단다. 그 축제는 여자들의 신을 기리는 축제였어. 그런데 클로디우스(1권에서 소개해 주었던)가 사고를 하나 쳤단다. 여장을 하고 그 축제에 몰래 참가를 한 거야. 그런데 아우렐리아한테 걸려서 망신과 모욕을 받았어.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은 신성을 모독한 것으로 대역죄인 취급을 받게 되었단다. 한 동안 논란이 되었어. 전무후무한 이 사건에 대해 그에게 어떤 처벌을 주어야한지도 논란이었어. 클로디우스의 아내 풀비아도 크게 화를 냈어. 그런데 카이사르의 아내 폼페이아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돌았어. 진실은 어떤 지 모르지만 소문만으로 카이사르는 자신의 아내 자격이 안 된다고, 폼페이아와 이혼을 했단다. 자신의 경력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사실 폼페이아와 결혼은 사랑은 전혀 없고, 형식적인 결혼이었기 때문에 이혼도 더 쉽게 했을 거야.

....

세르빌리아의 남편 실라누스가 오랜 지병으로 결국 죽었단다. 세르빌리아는 이제 당연히 카이사르와 재혼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카이사르는 매몰차게 거절했단다. 그의 경력에 세르빌리아의 결혼은 득이 없다는 거지. 화가 난 세르빌리아는 복수를 다짐했단다.

...

카이사르는 법무관 임기를 마치고 먼 히스파니아 총독이 되어 길을 떠났단다. 당시 카이사르는 많은 빚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채권자들로부터 도망가는 것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카이사르의 측근 크라수스가 돈을 빌려주어 빚을 탕감하긴 했어.

....

해적 소탕을 위해 길을 떠났던 폼페이우스가 먼 동방 원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왔단다. 그의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영웅 대접을 받았어. 카이사르가 먼 히스파니아 총독으로 떠나기 전에 잠시 만날 수 있었단다. 예전에는 그리 친하지 않았는데, 폼페이우스가 원정 가 있는 동안 편지도 주고 받는 증 조금씩 친분을 쌓아갔단다.

...

여기까지가 <카이사르와 여자들> 2권의 이야기란다. 늘 이야기하지만, 이야기가 복잡해서 잘못된 내용도 있을 수 있다는 점 이해 바람.


PS:

책의 첫 문장 : 불운하게도 키케로가 집정관으로 취임한 때는 심각한 경제 불황이 한창이었다.

책의 끝 문장 : 그 무엇도 나를 방해할 수 없고, 일그러뜨릴 수 없고, 혼란시킬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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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1-05-17 0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드 ROMA 봤나요? 좋아할듯

bookholic 2021-05-17 08:06   좋아요 1 | URL
그런 미드가 있었군요~~ 그 드라마도 오래되었네요~~ 언젠가는 꼭 보겠습니다~~
즐거운 월요일 되시길...^^

바람돌이 2021-05-17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키케로 진짜 확 깨긴 했어요. ㅎㅎ 저는 지금의 우리랑 전혀 사고하는 방법 행동하는 방법이 다른 로마인들을 보는게 너무 흥미진진했습니다. ^^

bookholic 2021-05-18 00:10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같은 사람인데 생각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더군요..
그런데 원로원에서 치고박고 싸우는 걸 보면 어찌나 똑같은지....^^
 














(39)

심지어 미국의 어떤 은행은 대출받는 이유를 글로 쓰게 하고 그 글에 등장하는 단어를 분석해 대출 신청자가 돈을 잘 갚을 사람인지, 못 갚을 사람인지를 추정한다. 해당 은행이 발견한 인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대출금을 잘 갚는 사람들은 금리’, ‘금리 차이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했고, 잘 갚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죽어도’, ‘반드시’, ‘하나님께 맹세와 같은 단어나 구문을 많이 사용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라도 대출을 받으려고 과장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43-44)

여기서 인사이트는 사전상 통찰력이라고 번역된다. 그냥 영어로 보면 인사이트란 말은 ‘in’‘sight’의 결합으로 안을 본다는 뜻이다. 은 보는 이의 관심에 따라 달라진다. 소비자가 고객에게 관심이 있는 판매자라면 고객의 마음속을 본다는 뜻이다. 고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즉 해당 제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이 제품을 구매하는지 또는 구매하지 않는지를 아는 것이 인사이트다. 기계 장비에 관심이 있는 엔지니어게는 기계 장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보인다는 의미다. 품질이 나쁜 제품이 나올 때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특정 부품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인다는 뜻이다.


(53)

첫 번째가 묘사분석, 두 번째가 진단 분석, 세 번째가 예측분석, 네 번째가 처방분석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가 또는 일어나고 있는가로부터 시작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로 이어지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나아간다. 과거의 상황 이애, 원인 이해, 미래 예측, 그리고 우리의 액션 플랜을 파악하는 순으로 나아간다.


(76)

최근 몇 년 간 가장 성장세가 높은 사업 분야는 플랫폼 사업이다. 플랫폼이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일종의 시장이다. 플랫폼 자체는 생산도 하지 않고 구매도 하지 않으며, 단지 중간자 역할만 한다. 그런데 여기에 소비자가 몰려와야만 시장이 형성된다. 이 때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당근이 바로 빅데이터다. 플랫폼이 성공하려면 소비자 입장에서 많은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꼭 가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 대표적인 곳이 아마존, 호텔스닷컴, 유튜브, 우버 등이다.


(115-116)

예를 들어 고객이 3일 내내 밤마다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서 시계 하나를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아마존은 그 고객이 그 시계를 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고객은 시계 가격이 5000달러로 고가라서 망설이고 있다. 그런데 이 고객의 과거 구매 이력을 보니 그 가격의 제품을 못 살 고객이 아니다. 이렇게 판단되면 아마존은 그 시계를 드론에 태워서 고객에서 보낸다. 드론 안에는 시계와 함께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다. ‘원치 않으면 반품하세요!’

이 드론을 받는 순가 고객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결제가 된다. 고객의 카드 정보는 아미존이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게 지금 아마존이 추진하고자 하는 예측 배송이다.


(149-149)

어떤 연구팀은 목소리도 분석했다. 애널리스트가 내년에는 실적이 안 좋겠죠?”라고 물어볼 때 CEO가 편안한 목소리로 그럴 리가 없다고 하는지, 아니면 갑자기 흥분해서 말이 빨라지는지 그 음성을 분석한다. CEO의 말이 빨라지거나 톤이 올라간 경우,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CEO가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용어를 쓰면서 설명하는 경우에도 주가가 떨어지기는 예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안 좋은 상황을 인정하기 싫어서 어려운 말과 복잡한 표현으로 적당히 피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159-160)

태스크(task)란 인사이트를 도출하기 위해 데이터에 대해 우리가 수행하는 작업을 뜻한다. 과거와 현재를 묘사하는 인사이트 관련 태스크에는 시각화, 연관분석(association mining), 클러스터링(clustering)이 있고, 미래 예측인 포사이트 관련 태스크에는 예측 및 분류와 이상탐지(anomaly detection)가 있다. 총 다섯 가지의 분석 태스크가 있는 것이다.


(256)

미국은 1970년대에 개인정보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치열하게 거친 후에 기본적으로 활용을 허용하되 대신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에만 처벌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우리나라는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만 있어도 처벌하는 것과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후 미국은 개인정보를 적극적으로 산업에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데이터를 구매하고 가공하고 판매하는 것이 모두 허용된다. 데이터 가공업과 데이터 산업 자체가 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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