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아이다운 아이였던 적이 없는 나는 런던의 거대한 로열 앨버트 홀에 들어선다. 수천 명은 족이 된다. 살아 숨 쉬는 육체를 이끌고 이곳으로 모요든 사람들. 음악을 통해서 거룩하고 신성한 숨결을 듣고, 느끼고, 호흡하기 위해서. 그것에 시종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그 숨결, 하모니의 숨결은 나의 영원한 열망이다.

청중들에게 인사한다. 박수 소리가 잦아든다. 어떤 남자가 잦아든다. 어떤 남자가 기침을 한다. 피아노는 잠자코 나를 기다린다. 의자에 앉고, 음악은 시작된다. 모든 것이 펼쳐진다. 음악은 그들이며, 나 자신이며, 당신이며, 침묵을 갈구하는 우리이다.


(26-27)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해서 아버지는 통 말씀을 안 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음성에서 징용자의 절규를 듣는다. 아버지의 목청 속에는 강제로 빼앗긴 모국어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의 두 손에는 일본인들의 구타가, 몸속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실험쥐 신세가 된, 마치도 없이 생체이식을 당한 한국인들의 몸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어깨에는 도저히 먹여 살릴 수 없었던 집안의 무게가, 뱃속에는 장남의, 한 남자의, 한 아이의 분노가 한 짐이었다.


(34-35)

아무튼 내가 전적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유일한 공간은 피아노 앞에서였다. 영혼이 느끼는 행복감은 한참 후에나 찾아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나는 아직 피아노를 일종의 의무로 받아들였다. 내면적인 명령. 나의 임무. 아무도 나에게 신동을 만들기 위한 교육법이라든지 아주 세세한 전문적 방식에 따라 손가락, 손목, 팔 놀리는 법, 자세를 유지하는 법 등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아직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 작은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무도 나에게 신동들이 강요받는 몸짓을 강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그것은 분명 다행이었다. 내 몸은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간혹 내가 사람들에게서 고양이처럼 연주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36)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형편없는 수준의 피아노 앞에 앉게 되면 그날은 연주회를 망쳐버리고는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피아노를 받아들인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악기쯤은 잊게 된다. 나는 악기가 아니라 음악과 사랑하는 관계이므로, 중요한 것은 표현할 수 없는 것조차 표현하려는 욕망이다.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나만의 독특하고 개인적이며 직관적인 욕망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침묵이다. 피아노는 그저 그곳으로 데려가주는 사공일 뿐이다.


(63)

드디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내가 음표들을 통해서 암울한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은 축복이었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격랑은 내가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음악이 나를 잡아당기고 이끌었다. 내가 거기에 기대서 내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완전히 낯선 이 세계에서 음악만큼은 나만의 동굴, 나의 피난처, 내가 몸을 웅크리고 안길 수 있는 가장 은밀하고도 친숙한 존재였다.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그곳이 어디건, 나는 내 집에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90-91)

독창적인 해석이란 없다. 뚜렷하게 유일무이한 진정성 있는 해석이 있을 뿐이다. 비극적인 음악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극적으로 연주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차피 그 음악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연주하는 사람이 음악과 하나가 된다면, 연주자가 감히 그 정도까지 자기 자신이고자 한다면 결국 그 자신은 숨결과 하나가 되며 우리가 라고 알고 있는 그 나가 사라지게 될 테니까. 음악과 한 몸이 되는 것. 음악을 연주하고 해석하는 것을 멈추고 음악이 우리의 영혼을 아예 관통하는 것. 마침내 존재하기 위해서 사라지기.


(92)

템포란 무엇인가? 음악에서 템포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저 작곡가가 실마리를 주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 한 인간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어떠한 말을 속삭일 때 누가 그 어떠한 속도로 말을 하는지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표현이 먼저이다. 열광하면 그것이 속도를 결정한다. 음악은 템포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는다. 음악은 템포 속에 갇혀 있지 않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음악이 템포를 창조하는 것이다.


(109)

어떤 작품을 연주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작품과 함께하지 않으면 우리 삶의 의미마저 사라지는 듯한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느라 밥 먹는 일마저 잊어버리는 것이며, 손가락이 몹시 아프고, 밤에도 연습을 하기 위해서 문득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나의 몸 안에서 음표들이 펄떡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며, 열광이 나의 몸을 휘감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을 전적으로 작품에 내어주는 것을 뜻한다.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지혜가 있든 없든 개의치 않고 오직 열망만을 믿음과 토대로 삼아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138)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육체는 하나의 옷에 불과하며,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해도 그것을 저세상에 가져갈 수 있는가? 나에게는 오히려 영원히 지속되는, 저세상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함께하는 나의 영원한 본질을 풍성하게 키우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롭고 온당한 것이었다. 내면의 본질적인 아름다움, 보이지 않는 섬세한 아름다움의 영원한 재산. 나는 그 재산을 끊임없이 늘리고 싶었다. 더불어 지금 열여섯 살의 내가 접한 불교의 신선한 가르침과 매일매일의 경험에서 얻는 깨달음은 조금씩 내 안에 새로운 자산이 되어갔고 탐험의 공간을 만들었다.


(140-141)

훗날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께서 그분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머와 간명함으로 나에게 한마디 해주셨다.

부처가 되기보다 부처럼 행동하라. 부처행을 하는 자가 부처님이니 깨달음을 찾으려고 허망하게 시간을 보내기 말고 지금 즉시 각자 자리에서 부처행을 하라. 부처행이란 나 아닌 것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걸 깨달아 모든 생명이 행복하도록 도우면 부처행이다

그렇다. “절대적인 완전함을 계속 찾으며 헤맬 것이 아니라 지금 즉시 여기에서 그 절대적인 완전함을 삶과 음악으로서 표현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 절대적인 완전함, 즉 정신의 본질, 온전하고 완전한 참나는 영원한 영원부터 언제나 내 안에 있었고 영원히 있을 진정한 이므로, 그것은 표면적인 자아”, 혹은 껍질에 불과한 가 아닌 나의 진정한 본질이므로.


(159)

많은 음악인들에게 큰 혼동이 되는 이 문제에 대해서 훗날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은 그분만의 특유의 명쾌함으로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셨다.

우리가 위대한 한 작곡가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음악은 깨달은 자의 음악이므로 우리 또한 그 작곡가의 진정한 본질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되며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질에도 도달합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체성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소위 말하는 하나가 된 의식과 연결되기 때문이죠. 온 세계를 놓고 볼 때,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으나, 참자아, 즉 정신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하나이며 그것이 바로 우주의 의식입니다. 그때는 연주자와 작곡가 각각의 개성이 공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상호의존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둘은 하나가 되니까요.”


(175)

음악은 바람의 소리에서 처음으로 생겨났으며,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모두 음악의 원천이다. 음악은 안양의 다리 밑에도, 어린 나의 두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던 나른한 물풀들의 움직임에도 이미 있었다. 음악은 자연이다. 또한 자연의 메아리다. 음악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불규칙적인 흐름의 완벽함을 듣게 해준다. 반복되는 프레이징으로 모래사장을 향해 밀려와서 부서지는 파도. 하지만 밀려올 때마다 각각 늘 유일하며 개별적인 파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새의 노래.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와 봄날의 이슬비. 내면의 숨결에 몰아치는 열대 계절풍, 영혼의 루바토, 쿵쿵 뛰는 심장, 점점 더 빨리 뛰었다가, 겁을 먹기도 하며, 순간 평온을 되찾는 우리의 심장. 감정이 고조되면서 빨갛게 달아오르는 두 볼. 축축하게 젖은 손. 살아 있는 육체!


(177)

음악에는 끝이 없다. 음악은 작곡가 개인의 스타일이나 개성을 초월한다. 그리고 연주자는 연주를 통해서 자신만의 감수성과 개별성을 더함으로써 창조 작업을 이어간다. 즉 연주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낯선 것,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일시적 불안감과 맞서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거장의 발걸음이 아니겠는가.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은 실패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실패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다른 한 번의 경험을 쌓았을 뿐이고 한 번 더 반복했을 뿐이다. 그리고 오로지 반복이 부족했음을 발견한 위대한 순간이다. 언제나 다시 하면 더 나아지는 법, 포기하지 않는데 어떻게 실패가 존재한단 말인가.”


(183-184)

유명한 작곡가들의 이름을 단 이 콩쿠르들은 모두 그들의 이름을 내세워서 그들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데 고작 몇 명에게 상을 주고 그 나머지 몇 백 명들의 마음은 무너뜨리고 상심하게 했다. 정작 그 창조자들은 이런 비즈니스에 어떻게 반응할까? 정말 그들의 이름이 경쟁을 앞세워 음악도들을 모으는 비즈니스에 쓰이는 것을 그들은 원할까? 그들의 독립적인 정신이 그것을 허락했을까? 의문이다.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벨기에 왕가에서 개설했다는, 음악에 열중하는 데에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삶의 조건을 제시하는 그 기관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하자 나는 나의 인생의 마지막 시험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이제 겨우 스물 살밖에 안 되었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휴식을 필요로 했다. 아니, 내 안에 있는 그 무언가는 이제 보살핌을 필요로 했다.


(198-199)

내 나이 이제 스물한 살.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퀸 엘리자베스 뮤직채플에서 편안히 일주일에 한 번씩 레슨받으며 이 무대, 저 오케스트라와 연주해달라는 요청을 따르면서 사는 새로 얻게 된 안락한 삶. 아니면 음악의 이름으로 영위하게 될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삶”, 직접 맞서고 스스로 찾아나가야 하는 삶, 그러나 어떤 종류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삶. 나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독립적인 삶. 폭풍의 역경이 몰아치고 가뭄이 와도 감수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삶. 내가 열두 살 때부터 휴식도 안정도 없이 살아온 삶. 그리고 그 삶은 또다시 나를 요구하고 부르고 있었다. 음악을 위하여. 나는 어느 누구도 아닌 음악에 몸을 맡긴 사람이니까. 내가 외로울 때 나를 지켜주고 살펴준 것이 음악이기 때문에. 음악이 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었으니까. 내가 추위에 떨 때 음악이 나를 품에 안아주었으니까. 두려움에 떨 때도. 음악이 나의 잡을 기다려주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곳으로, 프랑스로, 벨기에로, 유럽으로 나를 이끌어주었고 나의 꿈을 이루어주었으니까. 음악이 나의 엄마가 되었으니까.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나는 음악에게 빚을 졌다. 존재할 수 있는 이 영광을 삶이 우리에게 준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해 살면서 그 은혜에 보답을 해야 하듯이, 나는 음악에 보답해야 했다. 더 이상 피아노를 통해서 엄마를 구할 것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에, 그 음악에게 나 자신을 송두리째 바칠 것이다. 결심이 섰다. 이곳을 떠나리라.


(217)

서른 개의 소나타는 이를 테면 각각이 하나의 소설이다. 극한으로 치닫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인생이 가지는 정수를 기념비적인 작품의 형태로 드러내 보이니까. 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 의 전 인생을 다시 사는 것이었다. 그 서른 개의 소나타를 나는 흔히들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같이 연대순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묶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야 총 99개의 악장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명쾌하게 이해되는 음악적 설계도를 완성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224)

나는 마음 깊이 하모니를 믿는다. 아니, 더 나아가 이 세상에는 하모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 하모니는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고, 무너질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근원이라고도 하고 하나님, , 우주적 의식, 창조주, 알라, 혹은 부처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것을 하모니라고 부른다.


(234)

프랑스에서 연주할 때면 운다. 아주 많이 운다. 친구들이 청중들 속에 앉아 있는데 난 친구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같이 함께 연주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운다. 드디어 전적으로 나의 거처와  강렬하게, 그리고 진정하게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안전과 사랑이 있는 곳, 용서와 평화가 있는 곳이다. 침묵의 거처이기도 하다. 그곳을 내 거처로 삼을수록 더욱 음악은 나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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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로켓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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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로 유명한 이케이도 준 님의 <변두리 로켓>이란 책을 읽었단다. 이 책은 책 제목이 독특하고, 책 표지 그림이 맘에 들어서 끌렸단다. 아빠는 이케이도 준 님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워낙 유명해서 알고 있었지만, 읽어 보지는 않았어.

이번에 읽은 <변두리 로켓>은 재미있고 회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라서 그런지 공감 가는 내용도 많아서 좋았단다. <변두리 로켓>도 시리즈로 4권까지 출간되어 있던데, 계속 읽어봐야겠구나.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책 소개를 봤더니 이 책은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많은 인기도 끌었다고 하네. 그럼 이 소설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이야기해줄게.


1.

이 소설의 이야기는 변두리 로켓이라는 말 속에 어느 정도 힌트가 있단다. 변두리라는 말이 우리 사회 주류가 아닌 비주류를 떠오르게 하는 말이잖니. 변두리라는 말답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대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소기업의 사장이란다. 쓰쿠다제작소의 사장 쓰쿠다. 쓰쿠다제작소는 쓰쿠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인데, 7년 전 쓰쿠다가 물려 받은 것이란다.

사실 쓰쿠다는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그곳에서 하던 일은 로켓 개발이었어. 그런데 자신이 참여한 로켓이 발사 실패하고 말았는데 그 잘못이 어쩌다 자신에게 향하게 되어 회사를 그만두었단다. 때마침 아버지의 건강도 좋지 않았어.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제는 혼자 경영을 해야 한단다. 아버지께서 터를 잘 잡아놓으셔서 회사는 꾸준하게 성과를 냈단다. 대박 같은 것은 없었지만 말이야.

그런데 어느날 대기업을 갑작스런 납품 중지 통보를 받았어. 불량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대기업 지들 사정에 의해서 그렇게 수주를 끊어버린 거야. 갑작스런 통보에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 납품을 위해 미리 원자재도 다 사놓았는데 말이야. , 우리나라의 경우 요즘 이렇게 하면 법의 처벌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은 안 그런가? 우리나라도 알게 모르게 그런 만행이 아직도 있나? 아무튼 이 일로 쓰쿠다의 회사에는 타격을 입게 되었단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란다. 쓰쿠다 회사의 주력 제품인 소형 엔진인데 나카시마 공업이라는 또 다른 대기업에서 이 엔진에 대한 특허 소송을 걸어왔어. 특허 소송이란 것이 하루 이틀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빠르면 몇 개월 길면 몇 년씩 걸린단다. 그리고 소송이 걸린 회사의 제품을 섣불리 구매할 수도 없어. 만약 나중에 소송에 지면 구매한 제품에 대한 AS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되거든.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소송에서 지면 회사가 그대로 망할 수도 있거든돈줄이 든든한 대기업이 이렇게 소송을 질질 끌면서, 중소기업을 망하게 해서 접수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카시마 공업이라는 대기업이 쓰쿠다제작소에게 그런 작전을 걸어온 것이란다. 쓰쿠다제작소의 최대 위기가 찾아온 것이지.


2.

이런 일이 일어나니 당장 주거래 은행에서도 더 이상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했어. 쓰쿠다제작소의 경리부장인 도노무라라는 사람이 있어. 일본은 은행에서 각 회사에 경리나 회계 업무를 보는 사람을 파견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도노무라도 그렇게 은행에서 파견 온 사람이란다. 이 사태의 본질을 뻔히 알고 있는 도노무라는, 성심 성의껏 쓰쿠다를 도와주게 된단다. 쓰쿠다의 사람됨을 알고 존경하고 있었거든. 도노무라의 의견에 따라 회사의 보장성 예금을 깨면 1년 정도 버틸 수 있다고 했어. 그리고 벤처 회사들을 지원해주는 벤처캐피탈에서 1.5억엔을 빌리면 회사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고

그러니까 1년 안에 나카시마 공업과 소송에서 이겨야 하는 거야. 그러려면 기술 전문 변호사가 필요한데, 쓰쿠다제작소의 전담 변호사 다나베는 기술 변호에 익숙지 않았어. 첫 심리에 대박으로 깨지고 말았단다. 쓰쿠다는 이혼한 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어. 사실 며칠 전에 전 아내가 전화를 걸어와서 기술 변호사를 소개해준다고 했는데 자존심 때문에 거절했거든이젠 회사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에 앞뒤 가릴 것 없었어.

전 아내로부터 특허 전문 변호사 가미야를 소개 받았는데, 가미야는 완전 선수였단다. 심지어 적군인 나카시마 공업과 일도 같이 했었대. 그러다가 비윤리적인 행태에 더 이상 같이 일을 안하고 오히려 나카시마 공업에게 손해를 보는 이들의 변호를 맡아준다는 거야. 가미야는 먼저 쓰쿠다제작소의 진단을 해 보았어. 5년 전 쓰쿠다가 쓴 특허가 너무 허술해서 빈 틈이 많다고 했어. 그런 빈 틈을 나카시마 공업에서 노리고 소송을 한 것이라고그리고 다른 특허들도 빈틈이 있으니 특허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쓰쿠다제작소의 특허들을 빈틈없이 다시 등록했단다. 그리고 나카시마공업에 역소송을 걸었단다. 정면승부인 거지.

또다른 대기업 데이코쿠 중공업이란 회사가 나온단다. 이 회사는 우주 항공 관련 민간 기업으로 스타더스트 프로젝트라는 위성 발사 사업을 하고 있었어. 데이코쿠 중공업에서 최근에 수소엔진을 자제 개발하여 시범 비행을 앞두고 있었단다. 그들이 개발한 수소엔진시스템에 대해 특허를 등록하려고 했더니 이미 세달 전에 등록이 되어 있다는 거야. 분명 개발을 시작할 때 특허 조사를 할 때는 없었는데 말이야. 그 특허를 등록한 회사는 쓰쿠다제작소라는 중소기업이라는 거야.. 아하, 가미야 변호사가 특허를 재정비를 한 효과가 단단히 나타나는구나.

울며 겨자 먹기로 데이코구 중공업에서는 그 특허로 사기로 결정하고, 자이젠 부장이 쓰쿠다제작소를 찾아왔단다. 특허 값으로 20억엔을 제안했단다. 이 돈이면 현재 회사를 몇 년을 더 버틸 수 있는 금액이야. 그런데 쓰쿠다에게 그 특허는 자식과 같은 존재였어. 자식을 돈 주고 팔 수 없는 일이잖아. 쓰쿠다는 거절했단다. 그 대신 특허 사용료를 받고 대여하는 것은 허용하기로 했단다. 하지만, 그건 또 데이코쿠 중공업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단다. 1차 협상 결렬.


3.

가미야 변호사의 활약으로 나카시마 공업과 맞소송은 56억엔이라는 화해금을 받아내면서 승리를 거두었단다. 와우다시 회사는 안정을 찾아갈 수 있겠구나. 그런데 데이코쿠 중공업과의 일은 어쩌지? 데이코쿠 중공업의 자이젠 부장은 자신의 상사를 설득해서 대여라도 하자고 했어. 왜냐하면 자신들의 사업에 있어 수소엔진시스템은 필수적이거든. 다시 개발하려고 해도 적어도 2~3년이 걸리고그러면 경쟁사들이 앞서갈 수 있고 말이야.

결국 특허 대여를 하기로 하고 다시 쓰쿠다제작소를 찾아갔단다. 그런데 그 사이에 쓰쿠다의 방침은 또 바뀌어 있었어. 소송에도 이겨서 굳이 특허를 팔지 않아도 됐거든. 그는 자신의 꿈을 다시 이뤄보고 싶었어. 로켓의 부품, 그것도 아주 중요한 수소밸브시스템을 직접 만들어 납품하고 싶다고 데이코쿠 중공업 자이젠 부장에게 이야기했어. 데이코쿠 중공업 입장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제안이란다. 아빠도 이건 데이코쿠 중공업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로켓의 아주 중요한 부품인데, 그걸 거래를 한 적이 한번도 없는 중소기업에 맡긴다? 쉽지 않을 것 같아. 다른 사업도 아니고 위성을 쏘아 올리는 로켓인데 말이야. 품질이 확인된 자사 제품을 쓰고 싶겠지.

이 건은 데이코쿠 중공업뿐만 아니라 쓰쿠다제작소 직원들 사이에도 의견이 갈렸단다. 왜냐하면 수소밸브시스템의 특허를 가지고 있는 것이랑 실제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랑은 천지차이거든. 편하게 특허 사용료를 받아도 돈을 벌 수 있는데, 힘들게 그 제품을 만든다고? 그랬다가 로켓이 실패하면 그 책임을 모두 져야 할 수도 있고 말이야. 하지만 직원들을 하나하나 설득했지.

그리고 데이코쿠 중공업 자이젠 부장이 스쿠다제작소의 제조 현장을 둘러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단다. 대기업 수준의 제조 시스템과 품질 시스템이 자신들보다 뛰어나 보였거든. 믿을 만했어. 자이젠 부장은 데이코쿠 중공업 상사들을 설득했단다. 그리고 테스트를 받게 되었어. 쓰쿠다제작소는 데이코쿠 중공업의 깐깐한 테스트 항목들을 모두 합격하였단다. 그렇게 해서 로켓의 중요 부품인 수소밸브 시스템을 납품하게 되었어.

….

그리고 첫 시험 발사발사 준비 과정에서 스크린에 비정상 수치가 확인되어 중단되었단다. 데이코쿠 중공업에서는 그 책임을 쓰쿠다제작소에 떠 넘기려고 했단다. 쓰쿠다제작소의 쓰쿠다와 직원들은 밤을 새가면서 원인 분석을 했고, 그 원인이 데이코쿠 중공업에서 만든 필터라는 것을 증명했단다. 데이코쿠 중공업에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야. 수리를 한 후 다시 시험 발사. 이번에는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우주 속으로 날아갔단다.


4.

아빠가 짧게 이야기한다고 중간중간 나오는 회사 직원들 사이의 사람 사는 이야기들은 빼먹었는데, 가족 같은 직원들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약간은 뻔한 교훈도 느꼈단다. 그리고 이 책에는 좋은 문구들도 여럿 있었어. 그 중에 아래 글이 좋았단다. 식상하지만 늘 꿈을 가지라고 말이야. 아빠는 그동안 너무 1층에서만 아등바등 살았던 것 같아. 2층은 생각도 못해보고 말이야. 이제라도 조금씩 2층을 쌓아 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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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난 말이야. 일이란 이층집과 같다고 생각해. 1층은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하지. 생활을 위해 일하고 돈을 벌어. 하지만 1층만으로는 비좁아. 그래서 일에는 꿈이 있어야 해. 그게 2층이야. 꿈만 쫓아서는 먹고 살 수 없고, 먹고 살아도 꿈이 없으면 인생이 갑갑해. 자네도 우리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었을 거야. 그건 어디로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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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을 읽다 보니,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기술로 쏘아 올린 첫 로켓 위성 누리호도 떠오르더구나. 비록 완벽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이번 실패를 발판 삼아 다음에는 꼭 완벽한 성공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상 마치련다.


PS:

책의 첫 문장: 이제 시작이로군. 아아, 두근두근하는 걸.

책의 끝 문장: 커튼콜이 없는 무대에서 담담하게 뒷정리 작업이 시작됐다.


"손으로 만드는 편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거든요. 물론 백 퍼센트 다는 아니지만 가능한 부분은 수작업으로 만듭니다. 수작업으로 하면 기계로 만들 때에 비해 생각할 여유가 생기고 발상이 유연해져요. 예를 들어 구멍을 뚫다가 아무래도 조금 옆쪽이 낫겠다고 느끼거나, 조립하기 전에 설계의 미비점을 알아차리기도 하죠. 완성 후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확률도 수작업이 오히려 낮고요. 결과적으로 시제품 공정의 효율이 오르는 셈이에요." - P218

쓰쿠다는 인정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회사는 시시하지 않아? 자네가 말하는 확률은 결국 돈을 버느냐 마느냐의 확률이잖아. 하지만 돈만 벌면 될까? 더 큰 꿈을 가지고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확률을 따져봐도 되지 않겠어?"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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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12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작품 일드 추천합니다 ^^

bookholic 2021-12-13 00:07   좋아요 1 | URL
제가 본 유일한 일드는 <노다메 칸타빌레>인데요...
또 한번 도전을 해볼까용?^^
 
인류의 기원 - 난쟁이 인류 호빗에서 네안데르탈인까지 22가지 재미있는 인류 이야기
이상희.윤신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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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 인류는 어디서 왔는가? 이것에 대한 연구는 계속 되고 있고, 아직 정확한 답을 찾지는 못한 것 같아. 진화에 의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가졌을 텐데, 그 첫 출발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연구중인 것 같아. 이번에 읽은 책도 그런 인류학을 전공한 분께서 인류의 기원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적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란다.

너희들도 학교 교과서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니 네안데르탈인이니 배웠잖아. 그래서 아빠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너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고 하고 읽게 되었단다. 물론 과학 교양 서적은 아빠의 관심 분야라서 읽은 이유도 있고 말이야. 이 책의 지은이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 이상희 교수님과 <과학 동아> 윤신영 편집장님의 공저란다. 이 글들은 <과학 동아>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라고 하는데, 인류학에 대한 이야기라서 어려우면 어쩌나 하고 책을 폈는데, 책을 읽기 편하게 잘 써주셨단다.

그리고 높임말을 사용하여 써주셔서, 직접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단다. 지은이 이상희 교수님은 흔치 않은 인류학을 전공하셨고, 미국의 대학교에서 교수님을 하고 있다니 대단한 분이신 것 같았단다. 교수님이 그 동안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라고 하는데,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아빠와 같은 아마추어들도 이해하기 쉽게 적어 주셨단다. 22개의 꼭지로 되어 있는데,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차례를 보고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 먼저 읽어도 좋을 것 같더구나.


1.

인류학은 어떻게 연구하는가. 오래된 인류의 화석과 유골들을 찾고 그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고, 화석들의 상태를 보고 당시의 생활상을 추측하곤 한단다. 그런 화석이 많은 것도 아니니 적은 양에서 그 오래 전의 일을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구나. 100 퍼센트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의 인류학자들과 과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진 인류의 진화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해볼게.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원은 너희들도 잘 알고 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약 400만 년 전에 살았다고 하는구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인류의 기원으로 생각하는 것은 땅에서 직립 보행을 했기 때문이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아파렌시스와 아프리카누스 등으로 세분화하여 진화하였고, 200만년 전에 호모에렉투스가 나타난단다. 호모 에렉투스는 돌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그런 도구를 이용해서 동물을 잡아 먹으면서 육식을 시작하게 되었대.

그런 인류는 더욱 진화를 거쳐 약 20만 년에서 15만 년 전에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단다. 당시 호모 사피엔스 말고도 인류와 비슷한 다른 인류들이 존재했고,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네안데르탈인이란다. 아빠도 예전에 다른 책에서 그런 내용은 본 적이 있어. 그 책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와 다른 인류로 지금은 멸종되었다고 했어. 하지만 현생 인류의 유전자 분석을 해보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도 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호모 사피엔스가 홀로 진화한 것이 아니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하여 다른 인류들과 교류하면서 오늘날 현생 인류가 된 것이라 이야기해주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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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263)

현생 인류가 한곳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홀로 세계로 진출한 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존재하던 여러 인류와 만나 교류하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광범위한 지역적 다양성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모두 현생 인류의 한 식구인 것은 물론이고요. 이런 생각은 현생 인류가 어느 한 시점에 홀로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여러 지점, 여러 시점에서 다발적으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아프리카 기원론의 맞수인 다지역 연계론(다지역 진화론)’입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서로 교류하며 유전자 이동을 통해 계속 하나의 종으로 진화해 왔다는 다지역 진화론은 최근의 유전학 연구 결과와도 부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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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는 이런 직선적인 진화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처음 출현한 이후 인류가 진화해 가면서 같게 된 인류의 특징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어. 왜 그런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었냐, 이런 내용으로 말이야. 예를 들어 어른이 왜 우유를 마시게 되었나? 사람의 피부는 왜 흰 사람이 있고 검은 사람이 있냐? 인류는 왜 걷게 되었는가? 인류는 왜 농사를 하게 되었는가? 등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이야기들도 많이 있었단다.

몇몇 그런 이야기를 소개해 볼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수다를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는 수단으로 쓰이잖아. 왜 인류는 그렇게 수다를 많이 떨까? 진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인류는 다른 덩치 큰 짐승들에 비해 힘이 약해서 그들을 잡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소통으로 정보를 주고 받아야 그 덩치 큰 짐승을 잡기 수월했다는 거야. 그래서 언어가 생기고 정보의 주고받는 주요 기능이 바로 수다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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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직립 보행을 하게 된 인간은 그 손에 주먹도끼를 쥐어 봤자 광활한 아프리카의 초원에서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가련한 인간의 혼자 힘으로는 짐승을 잡기에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집단 수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단 수렵 활동을 위해서는 탄탄한 사회 구조가 필요했습니다. 게다가 사계절마다 변하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빙하기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단적인 정보 취합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인간에서 사회생활은 여가를 활용하기 위한 취미 생활이 아닌,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고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필수입니다. 그러한 정보를 수집, 교환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소통의 수단으로 언어가 발생하고 발달하였으며 그 주된 기능이 바로 수다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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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털이 사라진 이유는 주로 낮에 움직이기 때문이래. 많은 맹수들이 야행성이라서, 그 맹수들이 활동하지 않는 낮이어야 약한 동물들을 노려 사냥할 수 있으니 말이야. 맹수들이 야행성인 이유는 털이 많아서 더운 낮에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라는구나. 그럼 반대로 인류는 맹수들을 피해 낮에 움직이는데, 털이 있으면 역시 금방 지치겠지. 그래서 털이 점점 없어지는 진화를 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털이 없어지자, 자외선이 직접 피부에 노출되는 것이야. 그런 자외선을 차단하는 것이 멜라닌이라는 색소인데, 이 색소가 피부에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이 멜라닌 색소가 많으면 피부도 검어진대. 아프리카의 첫 번째 인류는 피부색이 검정색이었을 것이라고 하는구나.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인류의 후세는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데, 햇빛이 덜 뜨거운 북쪽 지방에서는 자외선이 약해서 멜라닌 색소가 필요 없게 되었단다. 오히려 멜라닌 색소가 많으면 자외선 속의 비타민 D를 흡수하지 못하게 되었어. 그래서 북쪽 사람들은 자외선 속 비타민 D를 흡수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가 없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었대. 그래서 다양한 피부색의 인류가 나타난 것이란다. 그렇게 피부색은 진화에 의한 것인데, 오늘날에도 몰염치한 이들 중에 피부색으로 가지고 차별하고 무시하는 이들이 있는데, 공부 좀 제대로 받고 오라고 이야기해주고 싶구나.

원숭이와 유인원의 차이를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금방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겠구나. 꼬리가 있으면 원숭이, 꼬리가 없으면 유인원그런데 긴팔원숭이라는 동물이 있는데, 이 동물은 유인원인데 이름에 원숭이를 붙여 놓아서 혼란을 주고 있다고 하는구나. 비전공자가 이름을 처음 붙여 놓았나 보네. 아무튼 다음에 놀이동산에 가서 동물들을 보면, 원숭이인지 유인원인지 유심히 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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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300)

유인원과 원숭이를 볼 때 가장 눈에 띄고 분명한 차이는 꼬리의 유무입니다. 꼬리가 있으면 원숭이이고, 꼬리가 없으면 유인원입니다. 절대 혼동할 수 없는 차이입니다. 그런데 유인원 중 마지막으로 게놈이 밝혀진 기번(gibbon)의 한국어 명칭이 바로 긴팔원숭이입니다. 유인원의 이름이 긴팔원숭이인 이상, 혼돈스러운 명칭을 바로 잡는 일은 매우 어려울 것만 같습니다. 참으로 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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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어, 너희들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

여러 인류 기원설들이 있어. 진화론이 대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만들었다는 창조를 믿는 사람들도 있단다. 그런데 아빠는 예전부터 외계 유입설이 마음이 가더구나. 지구 환경에 가장 못하는 인류. 인류가 그렇게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외계에서 온 생명체라는 썰…. 불시착한 우주선이든, 멸망 직전에서 탈출한 우주선이든…. 유난히 밤 하늘을 많이 쳐다보는 인류는 그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오래 전 고향을 쳐다보는 것은 아닐는지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2001, 저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인류학과에서 조교수로서의 새로운 삶을 새작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왔습니다.

책의 끝 문장: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있게 되었는가?


이런 동물에게 서열 경쟁에서 우위를 지키게 하는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몸집과 송곳니입니다. 수컷에게는 이 두가지가 최대한 크고 강할수록 유리하겠죠. 유인원 가운데에서 이런 특성을 보이는 종이 있을까요? 바로 고릴라가 그렇습니다. 고릴라는 암수 사이에 몸집, 두개골, 송곳니 크기가 대단히 큰 차이를 보입니다. 암수 사이의 크기 차이는 수컷끼리의 경쟁을 알려 줍니다. 암컷에 비해 수컷의 몸집이 크면 클수록 수컷끼리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음을 나타내지요. 실제로 고릴라는 짝짓기를 할 때는 수컷이 미리 힘 대결을 펼쳐 서열을 정해 두고, 가임기가 되면 높은 서열을 지난 수컷만 암컷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 P40

후기 구석기 시대 이후 현대까지, 평균 수명과 노년층의 수는 계속 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 변하지 않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과거 평균 수명이 50세이던 시대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살아 있었습니다. 즉 3대가 함께 살았습니다. 그 이후 수명이 대폭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 추세를 고려하면 평균 수명이 75세가 된 지금 증손주가 클 때까지 증조부모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4대가 공존해야 하죠.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칠순이 되도록 증손주는커녕 손주를 보기도 힘듭니다. 예전에 비해 결혼과 출산 연령이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 P113

두뇌가 커진 것도 역시 걷기 덕분입니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려면 뛰어난 지능이 필요합니다. 언어를 사용할 만큼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려고 해도 지능이 필요하고, 이는 곧 큰 두뇌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두뇌는 그냥 커질 수 없습니다. 두뇌는 지방으로 이뤄진 기관입니다. 고지방, 고단백의 식생활이 필수입니다. 이런 식생활은 도구를 이용해 고기를 정기적으로 확보하고 섭취한 이후에야 가능했습니다. 모든 게 두 발로 걸은 이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뤄진 일입니다. - P182

현생 인류가 한곳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홀로 세계로 진출한 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존재하던 여러 인류와 만나 교류하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볼 수 있는 광범위한 지역적 다양성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모두 현생 인류의 한 식구인 것은 물론이고요. 이런 생각은 현생 인류가 어느 한 시점에 홀로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여러 지점, 여러 시점에서 다발적으로 태어났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바로 아프리카 기원론의 맞수인 ‘다지역 연계론(다지역 진화론)’입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가 서로 교류하며 유전자 이동을 통해 계속 하나의 종으로 진화해 왔다는 다지역 진화론은 최근의 유전학 연구 결과와도 부합합니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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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리뷰툰 - 유머와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 1
키두니스트 지음 / 북바이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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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는 책을 읽으면 리뷰를 쓰곤 한단다. 이 습관을 들인 것도 꽤 오랜 된 것 같구나. 리뷰를 쓰게 된 이유는 기억력이 좋질 않아서 읽고 나서 얼마 지나면 다 까먹거든. 그래서 리뷰라도 써 놓으면, 그걸 다시 찾아 보고, , 책 내용이 이랬지그런단다. 아빠에게 리뷰는 기억의 보조 수단이었던 것이지. 아빠처럼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나면 리뷰, 그러니까 독후감을 쓰곤 한단다. 너희들도 학교 숙제로 독후감을 쓰곤 하잖니. 자의든 타의든 많은 사람들이 독후감을 쓰고 있어. 너희들도 숙제로 어쩔 수 없이 쓰는 독후감이 아닌,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이 사라지지 않게 스스로 독후감을 쓰는 즐거움을 갖기를

그렇게 리뷰를 쓰는 사람들 중에 글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자신의 독후감들을 엮어서 책을 내기도 해. 아빠도 그런 책들을 여럿 읽었단다. 그런 책을 읽다 보면 아빠가 미쳐 깨닫지 못했던 책 속의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많은 책들을 소개받기도 하거든그 책들에게 소개 받은 책들을 찾아 읽기도 하고, 선순환이구나.

그런데 책을 읽고 리뷰를 만화로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책이 있었단다. 바로 키두니스트 님의 <유머과 드립이 난무하는 고전 리뷰툰> 아빠가 그림을 잘 못 그리지만,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도, 만화로 리뷰를 그린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글로 리뷰를 쓰려고 해도 뭘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그걸 만화로 그리다니대단한 열정과 재능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단다. 그런데 그것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이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참 전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는구나. 아빠도 한때 자주 들락거렸던 디씨인사이드라는 커뮤니티에 만화로 그린 책 리뷰를 올렸다는구나. 그리고 이번에 자신이 그렸던 리뷰 중에 번외 편 포함하여 12편을 엮어서 단행본을 낸 것이야.

그리고 소개한 작품들은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 중에 장르 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문학들의 리뷰라고 했어. 고전 장르 문학을 만화로 그렸다니, 책 선정도 덕후들에게 사랑 받을 만한 선택인 듯싶구나. 고전 리뷰를 해 주는 책들은 간혹 어렵게 읽혀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쉽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단다. 책 제목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머와 드립이 유치하지 않게 난무하고 말이야.


1.

장르 고전 문학이라면 어떤 것을 이야기할까? 아빠도 몇몇 떠오르는 작품들이 있었어. 이 책에서 소개된 11편의 고전은 다음과 같단다. 멋진 신세계, 1984, 걸리버 여행기, 장미의 이름, 데카메론,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오 헨리의 단편들,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 시리즈,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들, 러브크래프트 전집, 카프카의 단편들. 아빠가 읽은 작품은 <멋진 신세계>, <1984>, <장미의 이름> 이렇게 세 개뿐이구나. 어렸을 때 동화로 읽은 <걸리버 여행기>도 완역본으로 읽은 것이 아니니 제외해야 하고일부만 읽은 것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두어 개, 카프카의 단편 두어 개 정도…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처음 들어본 작품인데, 요코미조 세이시라는 작가가 쓴 연쇄 살인 모음집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 아무리 재미있게 소개를 해주어도 아빠는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구나.

지은이 키두니스트님께서 아빠가 리스트에서 뺄 수 있도록 솔직한 리뷰를 해 주셨단다. 그리고 < 러브크래프트 전집>도 읽어야 할 책에서 슬쩍 빼기로 했단다. <러브크래프트 전집>은 예전에 책이 너무 예쁘게 출간되어 아빠가 혹한 적이 있었단다. 그리고 나중에 한번 기웃거려봐야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 단지 전집의 겉모습에 반해서 말이야. 하지만, 키두니스트 님의 리뷰를 보고 난 다음, 아빠가 보기에는 무척 어려운 책이겠구나, 하고 마음을 접었단다. 장르도 익숙지 않은 코즈믹 호러라는 장르코즈믹 호러란, 인간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를 말한대. 개미가 인간에게 느끼는 감각 혹은 인간이 몇 천 미터짜리 괴물에 대해 느끼는 감각이나 거대한 자연에서 느껴지는 공포도 코즈믹 호러라고 하는구나.

같은 호러라도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 소설은 그래도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우리 집에도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모음집 <우울과 몽상>이 있는데, 아빠가 몇 편 읽고는 다시 책장에 모셔두고 있단다. 책이 거대한 벽돌 책이고 단편들로 가득 차 있다 보니 한번에 읽기 버겁다고 해야 할까? 이 책에서 지은이가 에드가 앨렌 포 전집으로 두 개 출판사를 소개해 주었는데, 그 중에 저렴한 것으로 주문해 버렸단다. 분책도 되어 있어서 접근성도 좋아 보였어.

<오 헨리 단편선>은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었단다. 오 헨리는 단편 중에는 유명한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만 알고 있었어. 작가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어. 이 책을 통해서 오 헨리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오 헨리는 평생 단편만 썼대. 보통 소설가는 경력이 쌓이다 보면 장편도 쓰고 그러던데, 평생 단편만 수백 편을 쓰셨다니…. 재능은 있으나 인내력이 부족하셨던가. ㅎㅎ. 한 우물만 파서 크게 성공하면 됐지, .. 키두니스트 님이 소개해 준 오 헨리의 몇몇 작품 소개를 읽다 보니, 모두 유쾌하고 기분 좋게 해 주는 작품들 있었단다. 책 읽다 말고,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오 헨리 단편선>을 그냥 장바구니에 넣게 되더구나.

데카메론이라는 작품은 어떤 내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 책도 아빠의 읽어야 할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던 책인데, 키두니스트 님의 소개를 읽으니 바로 읽고 싶더구나. 정말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참 많은 것 같구나

....

이 책을 읽고 나니, <걸리버 여행기>는 동화가 아닌 완역본으로 읽어 보고 싶고, 아빠가 한번씩 읽어 본 <멋진 신세계>, <1984>, <장미의 이름>은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게 되었단다. 지금도 읽어야 할 책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언제 다시 읽는가. 예전에 아빠 회사 분께서 담배를 오래도록 피기 위해서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지킨다고 하신 적이 있는데 ㅎㅎ 아빠는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서 그걸 다 읽기 위해서 건강을 지켜야겠구나.

….

아참, 이 책에는 번외 편으로 <해리 포터> 리뷰도 만화로 그리셨단다. 그만큼 지은이 키두니스트 님이 좋아하는 작품이라서, 번외 편으로 <해리 포터>를 실으신 것 같더구나. 지은이 소개란에 해리 포터 스튜디오를 가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적을 만큼 해리 포터 마니아이신 것 같구나. 책 표지에 해리 포터 그림이 있는데, 너희들이 그걸 보고 , 해리 포터다!’ 그랬잖니. 너희들도 해리 포터 시리즈 마니아인데 말이야.

키두니스트 님이 인터넷에서 연재한 리뷰들이 수십 편이라고 했는데, 이 책에는 고작 12편이 실려 있었단다. 그 이야기는 후속작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 기대해 봐야겠구나.

그런데 지은이의 필명 키두니스트는 무슨 뜻이지?


PS:

책의 첫 문장: 일반적으로 디스토피아 소설하면 무엇을 상상할까요?

책의 끝 문장: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롤링 여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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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9 0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오늘 리뷰 따숩 뭉클합니다
이렇게 편지로 책과 교감하는 북홀릭님 아이들 키두니스트님 연재작 알고 있을것 같습니다 ^^

bookholic 2021-12-09 18:44   좋아요 2 | URL
아이들 아직 모르는 것 같아요..아직 초딩들이라 ㅎㅎ

새파랑 2021-12-09 00: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1984밖에 없네요 😅 어렸을때는 독후감 쓰는게 싫었는데 지금은 재미있네요. 역시 강제보다는 자발적인게 좋은거 같아요 ^^ 리뷰는 바로 써야 안까먹는게 맞는거 같아요~!!

bookholic 2021-12-09 18:45   좋아요 3 | URL
그런데 저는 게을러서 리뷰는 늘 많이 밀려있어요 ㅎㅎ 새파랑님의 부지럼을 배워 보겠습니다~~

mini74 2021-12-09 08: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가님 너무 기발하고 웃기고 해서 아이도 재미있게 봤던 책이에요. 그럼에도 가볍지만은 않던 ~걸리버여행기 읽으면서 아 야후가 여기서 나오는건가 했던 기억이 납니다 *^^*

bookholic 2021-12-09 18:48   좋아요 2 | URL
작가님의 정체가 무척 궁금하더라구요~~
다음 책이 기대됩니다^^
 
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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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출퇴근길에 영어 공부 좀 하겠다고 EBS 라디오를 듣곤 했었는데, 중간 중간 광고에 자주 나오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단다. 정확한 멘트는 생가나진 않지만, 12시 밤 12시에 만나요, <윤고은의 EBS 북카페>.. 대충 이런 멘트가 있는 광고였어. 아빠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방송을 듣고도 싶었지만, 12시와 밤 12시에 라디오를 듣기는 쉽지 않은 시간대지. 그리고 나중에 윤고은 님이 소설가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 그런데 아빠는 그분의 책을 읽은 적이 없었단다. 아빠도 한국문학에 아주 문외한은 아닌데, 어쩌다 윤고은 님의 책을 만날 기회가 없었을까.

그러다가 몇 달 전에 윤고은 님께서 대거상이라는 상을 탔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사실 대거상이라는 것도 처음 들어봤는데, 영국에서 유명한 추리문학상이라고 하는구나. 우리나라 최초로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에서 수상하셨다고 했어. 뭐야, 추리 소설 쓰시는 분이었어? 라디오 광고에서 들은 윤고은 님 목소리는 엄청 부드러우셨는데, 추리 소설도 쓰셨구나. 갑자기 그 대거상을 탔다고 하는 책이 궁금해졌단다. 그리고 아빠가 추리소설을 쫌 좋아하잖니. 그렇게 알게 되어 읽은 책이 <밤의 여행자들>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이 2013년이구나. 그 동안 몰라봐서 미안하네.^^ 민음사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3권이었네. 대거상 수상으로 출판사도 미소를 지었겠네.


1.

주인공 고요나는 정글이라는 여행사에 다니고 있단다. 그런데 이 여행사는 평범한 여행사가 아니었어. 여행사 정글은 재난 장소로 가는 여행상품만 판매하는 독특한 여행사란다. 재난 여행이라는 것이 실제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있어도 그런 곳에 가려는 사람들이 많을까? 남들의 고통을 통해서 얻는 것은 무엇? 이 소설에서 재난 여행을 통해서 얻는 것이 있다고 야기를 했는데, 그래도 아빠는 실제로 이런 상품이 있다 해도 가지는 않을 것 같구나. 아름답고 멋진 곳들도 얼마나 많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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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à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à 내 삶에 대한 감사 à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단계까지 마음이 움직이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국 이 모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까 재난 가까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전했다,는 이기적인 위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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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요나는 이 여행사의 10년차 수석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재난 여행 상품을 기획하며 발굴하는 그런 일을 했어. 어느 날 그의 상사인 김조광 팀장이 그에게 성추행을 했어. 다른 회사 같으면 김조광 팀장이 짤려나갔을 텐데, 이 회사는 김조광이 인사권의 50% 이상을 갖고 있어서 김조광을 어떻게 할 수 없었어. 사실 김조광이 이런 성추행을 한 것이 고요나가 처음이 아니었어. 그 이전에 다른 사람들한테도 했어. 그런데 그 성추행 당한 사람의 공통점은 회사에서 좀 위태위태한 사람들업적 부진으로 곧 잘릴 것 같은 사람들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고요나는 성추행의 수모도 수모지만, 자신이 퇴출되는 것인가? 이런 고민도 했어.

여러 번 김팀장의 성추행을 당하고 결국 요나는 사표를 썼어. 그런데, 김팀장은 사표를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요나에게 한 달간 휴가 겸 출장을 주였어. 그들의 여행 상품들 중에 인기가 없는 곳에 가서,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체험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것이었어. 병 주고 약 주나. 아빠가 요나라면, 그런 건 니가 하라면서 사표 쓰고 김팀장을 고소했을 것 같은데, 소설 속 요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단다.


2.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요나에서 홍보팀에서 추천한 곳은 비싸지만 인기 없는 사막의 블랙홀이라는 상품이었단다. 가상의 조그마한 섬나라 무이에 있는 사막인데, 수십 년 전에 사막 한 바탕에 블랙홀이 생겨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건이 있었어. 그래서 재난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되었는데, 요즘에는 인기가 시들었단다. 일정은 5 6일 일정으로 직접 가는 항공편이 없어서, 가는데 하루, 오는데 하루를 까먹었어. , 벌써 일정부터 마이너스.

이번 여행에 같이 간 이들은 모두 다섯 명으로 간신히 숫자를 채웠단다. 교사와 어린 딸, 시나리오 작가, 군대를 갓 제대한 대학생, 그리고 요나. 현지 가이드 루까지 포함하면 여섯 명이었어. 현장을 들러본 요나는 왜 인기가 시들하고 퇴출 후보인지 알게 되었단다. 사막의 싱크홀에 지금은 물어 들어차 있어서 전혀 재난 현장 같지 않았어. 그리고 그 사막에 살고 있는 운다 족과 카누 족이 예전에 전쟁을 벌여 서로 죽이고 죽고 그랬어. 그래서 그 부족들과 하룻밤 같이 체험하는 코스도 있었는데, 그것도 전혀 감흥을 주지 못했어.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상품이었고, 체험자들이 블로그에 여행기를 쓴다면 재난 여행지로는 완전 비추로 작성할 그런 곳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열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데, 열차가 중간에 둘로 갈라져서 한 쪽은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모르고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기차는 둘로 갈라졌단다. 그리고 자신의 짐과 일행은 가른 열차 칸에서 공항으로 갔고, 요나는 빈털터리가 되어 혼자 다른 곳으로 향했어. 요나의 고생은 그것이 끝이 아니야. 여건과 지갑은 잃어버리고, 핸드폰 배터리는 다 떨어졌단다. 우여곡절 끝에 무이에서 머물렀던 벨에포크 리조트로 다시 왔단다. 돈도 없고, 여권도 없으니 당장 돌아갈 수 없었어. 그런데 며칠 뒤 여행의 일행이었던 시나리오 작가가 다시 리조트로 돌아왔단다. ? 왜 다시 돌아온 거지?


3.

그 시나라오 작가는 황준모라는 사람인데 그는 벨에포크 리조트와 함께 일하기로 했다고 했어. 무슨 일? 무이의 관광 사업을 다시 살리기 위한 일. 그런데 거기 시나리오 작가가 왜 필요하지?

요나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자신의 회사인 여행사 정글에 전화를 했어. 그 전화를 듣건 벨에포크 리조트의 매니저 폴은 요나가 여행사 직원이라는 것을 알고 협조를 요청하였단다. 무이 관광 사업을 다시 살리는데 도와달라고 말이야. 그것이 요나의 회사에게도 도움이 되고, 요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냐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 일이라는 것이 좀 그랬단다. 인공적인 싱크홀을 만들고 그것이 자발적으로 생겨났다고 홍보하는 것이야. 앞뒤 정황을 잘 만들고, 사고 발생 뒤 극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시나리오 작가 황준모도 그 곳에 있었던 거야. 요나는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나 보니 얼떨결에 그 사업에 합류하기로 했어. 사고 발생 후 희생자들을 만들기 위해서 시신들도 구해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었단다. 잔인한 면도 없진 않지만, 일단 이 작전이 성공하면 벨에포크 리조트는 살아날 수 있으니 리조트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지.

그리고 그 사고일은 8월 첫 번째 일요일로 계획했단다. 그런데 그날 새벽….. 더 엄청난 재난이 그곳에 몰려왔단다. 쓰나미.. 동남아 섬나라였던 무이에게 예상하지 못한 재난은 아니었지만, 예고도 없이 찾아온 갑작스러운 쓰나미가 모든 것을 휩쓸어 갔단다. 그곳에 머물고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과 함께그 동안 아빠가 감정이입을 하며 읽던 주인공 고요나도 마찬가지로 죽고 말았단다. 아빠는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기 때문에 주인공인 죽는 경우 약간의 충격을 받는데, 이번에도 그랬어.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지만, 무이는 쓰나미는 대 재난이 발생해서, 다시 재난여행상품으로 인기를 끌게 되겠지. 결말이 약간은 블랙코미디 요소도 좀 있긴 한데, 주인공은 간신히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참, 요나의 시신은 아직 찾지 못했지? 죽었다고 장담해도 되나? 이 책의 속편이 나와서, 요나가 죽지 않고 살아 나타나서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 어떨까, 그런 상상도 해 보았단다. 예를 들어 피눈물 나는 사람들의 아픔을 여행 상품으로 파는 여행사 정글과 싸우는 휴머니즘? ㅎㅎ 아빠가 너무 나갔나? 아무튼 이 소설을 나쁘지 않게 읽었단다. 윤고은 님의 다른 책들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그리고 윤고은 님이 진행하는 윤고은의 EBS 북카페도 꼭 들어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북상하는 것.

책의 끝 문장: 그러나 거기에도 요나는 없었다.


사막은 스스로 분열하듯이 수많은 색들을 만들어 냈다. 사막에도 채도와 명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막을 말할 때에 수만 가지 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모래의 색에 따라 사막의 색도 달라지면서 이름이 달라졌다. 흰모래사막이 있는가 하면 붉은모래사막이 있었다. 같은 이름의 사막도 그 위에 구름이 얼마나 덮고 있느냐, 구름 위로 햇살이 내리쬐느냐 아니냐에 따라 색이 달라졌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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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2-07 23: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장바구니에 넣어놓고 아직 못 읽어봤어요. 추리소설에 손이 잘 안가서 그런가 봐요 ㅜㅜ 작가님이 라디오도 진행하시는군요. 왠지 궁금합니다 ㅋ 속편이 필요한 작품이라니 여운이 많이 남나봐요 ^^

bookholic 2021-12-08 21:35   좋아요 2 | URL
정통 추리소설은 아니니까 문학을 사랑하시는 새파랑님도 잼있게 읽으실 것 같아요.. 순식간에..^^

scott 2021-12-08 00: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좋았습니다 영어로 번역 된걸로만 읽었지만 이런 스타일에 한국 문학 아주 신선했습니다.책 읽기전 부터 윤고은님 EBS 북카페 들었었는데 글쟁이와 전혀 다른 활달 명랑하신분 ^^

bookholic 2021-12-08 21:36   좋아요 3 | URL
영어로 읽으셨군요.. 역시^^.. 어떻게 번역이 되었을까 궁금하네요~~ 저도 라디오 꼭 들어보겠습니다~~^^

mini74 2021-12-08 00: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속편이 필요하다 ㅎㅎ 저도 동의합니다 *^^*

bookholic 2021-12-08 21:37   좋아요 3 | URL
주인공 고요나 님을 그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 없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