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3)

나는 엄마를 말리는 데 애를 먹었다. 엄마는 베개에 몸을 기댄 채 내 눈을 바라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매가리가 풀린 게야. 너무 피곤하고 진이 다 빠져버렸어. 내가 늙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단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나면 일흔여덟이야. 완전히 늙어 버린 셈이지. 그러니 준비를 해야겠구나. 인생의 책장을 한 장 넘기려고 해.”


(34)

. 그런 것 같았다. 심지어 암인 게 분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눈언저리에 든 멍이며 살이 빠지는 것 하며. 그런데 의사는 암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아들이 미쳤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인정하는 이는 부모고,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가장 나중에 인정하는 이는 자식이기 십상이다. 엄마는 평생 동안 암에 걸리지 않을까 두려워해 온 만큼 나와 내 동생은 엄마가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걸 믿지 않곤 했다.


(58)

자기 생각을 스스로 반박해 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주 많은 걸 얻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며 살았던 것이다.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것을 참아 내기 위해 엄마는 온 힘을 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 내내 규범과 금기라는 갑옷을 두른 채 몸과 마음, 정신을 억압당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끈으로 옭아매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엄마의 내면에는 끓어오르는 피와 불 같은 정열을 지닌 한 여인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뒤틀리고 훼손된 끝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존재가 되어 버린 모습이었다.


(79)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예측, 그리고 결정을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니 그들의 손아귀에서 환자를 빼내 와야 하지 않겠는가! 지난 수요일에는 수술과 안락사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당시로서는 굳어 가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게 되면 엄마가 장폐색증을 견디면서 지옥을 맛봐야 하는 처지에 놓일 게 뻔했다. 의상들이 안락사를 거부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수요일 아침6시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랬다고 해도 용기를 내서 N박사에게 그대로 돌아가시도록 어머니를 내버려두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N박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아는 자 특유의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나를 냉대했다.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어머니에게서 몇 년 더 사실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셈입니다라고. 내가 엄마를 죽게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하지 못한 것은 그래서였다.


(96)

엄마가 다른 이들에게 내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대신에 나를 조금 더 믿고 내게 마음을 더 써 줬더라면 우리 관계가 좀 더 좋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엄마가 그러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복수심이 너무나 컸고, 치료해야 할 상처가 너무나 깊었던 까닭이다. 무언가를 할 때면 엄마는 늘 스스로를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길 거부해 온 엄마가 어찌 나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 사이가 나빠지지 않도록 태도를 꾸며 내는 데 있어서도 엄마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린 때면 엄마는 무척 당황하곤 했는데, 이는 이미 주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도록 교육받은 탓이었다.


(106)

푸페트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로 지냈다. 나 역시 혈압이 높아 얼굴이 붉어진 상태다. 우리는 엄마가 임종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회복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걸 보는 게 괴로웠다. 또한 그걸 지켜보면서 모순적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처지로 인해 특히나 힘들었다. 고통과 죽음 사이에 경주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죽음이 이기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죽은 듯 잠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우리는 시계를 매달아 둔 검은색 리본이 미미하게나마 움직이는지를 확인하게 위해 엄마가 입고 있는 하얀색 실내복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심스레 관찰하곤 했다. 이게 마지막 경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위가 쪼그라들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136-137)

그러나 엄마의 죽음이 늦춰진 결과, 어떤 면에서 우리는 얻은 게 있었다. 그 덕분에 거의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누군가를 읽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수많은 후회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완전히 소멸하는 동시에 반대로 자신의 현존 덕분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이 세계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는, 우리 삶에서 더 크고 많은 자리를 차지했어야 했던 존재,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리 삶 전부에 해당하는 존재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그가 다른 이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을, 정신을 잃을 전도로 아찔함을 자아내는 이 사실을 외면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한계-물론 한계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내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151-152)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사랑, 우정, 동료애가 죽음이 야기한 고독을 능가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겉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있을 때조차 나는 엄마와 함께 있지 않았다. 엄마를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속고만 살아온 엄마를 거짓말로 끝내 다시 한 번 속이고 있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엄마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운명과 공모한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거부하고 죽음에 맞서 싸우던 엄마와 세포 구석구석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엄마의 패배로 나 역시 쓰러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임종하는 자리에는 세 번씩이나 참석했던 나는 정작 엄마의 임종은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의 머리맡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조소를 머금은 채 음산하게 춤을 추던 죽음의 신을 보았다. 한 손에 낫을 든 채로 문을 두드린다는, 밤새워 듣던 이야기에 나오는 그 죽음의 신을, 낯설고도 끔찍한 모습을 하고서 머나먼 다른 곳에서 찾아온다는 죽음의 신을 나는 보았다. 죽음의 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입을 활짝 벌리고 턱뼈를 드러내며 웃던 엄마의 바로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153)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이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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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5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 겨울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내년 겨울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단다. 러시아 소설은 겨울에 읽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일 년은 금방 휙 지나가고겨울이 되어 묵혀두었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꺼내 들었단다. 두께부터 엄청나구나. 아빠가 읽은 것은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양장본인데, 한 권이 거의 600페이지모두 합쳐서 2400페이지에 육박하고, 누가 세었는지 모르겠지만 등장인물이 559명이나 된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얼마나 방대한 소설인지 알겠지?

아빠가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너희들이 아빠 뭐 읽어?” 물어봐서 아빠는 전쟁과 평화”. 며칠 뒤 다시 아빠, 오늘은 뭐 읽어?” 아빠는 다시 전쟁과 평화또 며칠 뒤 아빠, 전쟁과 평화 다 읽었어?” “아니, 오늘도 전쟁과 평화야. ㅎㅎ그렇게 페이지 수가 엄청난 <전쟁과 평화>. 읽기 시작하기 전에 큰 마음 먹고, 심호흡 한번 하고… 1권을 꺼내 들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러시아 소설은 이름 때문에 애를 먹는데, 다행히 책 앞에 주요 인물들을 집안 별로 정리가 되어 있단다. 초반부는 새로운 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앞의 인물 소개 부분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았단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책을 톨스토이가 30대에 썼다고 하더구나. 유전자가 남달랐던지, 외계인이던지 그랬을 것 같구나.

<전쟁과 평화>는 단순히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란다. 19세기 초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 관한 지은이의 철학적 인문학적 고찰에 대한 내용도 있고,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은이에 내용도 가득 담겨 있었단다. 그러니까 아빠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능력은 없다는 거야. 이 책은 소설과 인문학이 잘 버물려져 대작인 것 같구나. 아빠는 주로 이 책의 소설 부분, 그러니까 스토리 쪽 위주로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줄게.


1.

때는 1805. 러시아 모스크바 일대프랑스 나폴레옹 황제가 전 유럽을 들쑤시고 있던 시기란다. 프랑스 나폴레옹은 영역 확장을 하던 시기인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그 영역 확장의 방향을 틀던 시기였단다. 나폴레옹은 독일, 오스트리아 땅까지 점령을 했어. 프랑스와 러시아의 전쟁의 전운이 돌던 시기였단다.

러시아의 한 연회장에서 소설은 시작된단다. 러시아 귀족들이 모인 연회장에서 요즘 돌아가고 있는 국제 정세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어. 대부분이 나폴레옹이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일부 젊은 귀족, 특히 파리에서 오랜 기간 유학을 하고 돌아온 이들은 나폴레옹을 옹호하기도 했단다. 그들 젊은 귀족들에는 안드레이와 피예르가 있단다. 등장인물들이 많아서 다 소개해주기는 어렵고, 주요 집안의 사람들만 이야기를 해줄게.

위에서 이야기한 안드레이의 아버지는 볼콘스키 공작이라는 사람인데, 아버지가 엄청 엄격하고 무서운 사람이란다. 안드레이는 리자라는 사람과 결혼을 한 유부남이고, 리자는 임신을 하고 있었어. 안드레이의 여동생은 마리야라는 사람이고 아직 결혼하지 않았단다. 그리고 피예르의 아버지는 베주호프 백작으로 엄청난 부자란다. 그런데 피예르는 적자가 아니고 서자라서 집안에서는 그리 대접을 받지는 못했어. 하지만, 베주호프 백작이 병으로 죽으면서 그 많은 재산을 모두 피예르에 남겼단다. 사실 자식이 없었거든베주호프가 병이 위중하자 유산을 좀 받을까 싶어 그의 친척들이 모여들기도 했지만, 거의 모든 재산이 피예르에게 갔단다. 그런 먼 친척 중에 바실라 공작이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베주호프의 모든 재산을 피예르에게 넘어가자, 바실라 공작은 이번에는 작전을 바꿔서, 자신의 딸 옐렌을 피예르와 결혼 시키려고 했어. 옐렌은 누구나 알아주는 미인이었는데, 피예르는 자신의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만남을 가지면서 자신도 옐렌을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얼떨결에 피예르는 옐렌과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또 하나의 주요 집안인 로스토프 백작 집안이 있단다. 로스토프 백작은 자상한 아버지상으로 생각하면 된단다. 그에게는 아이가 아들이 둘, 딸이 둘이 있었단다. 첫째 니콜라이, 둘째 베라, 셋째 나타샤, 넷째 페탸. 그리고 조카딸 소냐도 함께 살고 있었어. 니콜라이는 소냐와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나타샤는 보리스라는 소년과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단다. 나타샤의 나이가 이제 열세 살이니 심각한 관계는 아니었어. 보리스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엄마 안나 미하일로브나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 집안은 몰락한 가문으로 앞서 이야기했던 베주호프 백작의 친척 중 하나였단다.

, 대충 주요 등장 인물 소개를 다 한 것 같구나.


2.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러시아와 프랑스 전쟁이 감돌고 있던 시기라서, 많은 러시아 청년들이 자원해서 전쟁에 가기로 했단다. 임신한 아내를 두고 전쟁에 자원한다는 것이 지금의 기준으로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당시 러시아에서는 많은 젊은이들이 자원해서 군대를 갔단다. 전쟁에 참가하는 여러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안드레이가 전쟁에 참가하려는 이유는 좀 이해하기 힘들구나.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나? 지금 자신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전쟁에 참가하겠다고 하니 말이야.

===========================

(54-55)

모두가 자기 신념에 따라서만 전쟁을 하고자 한다면, 전쟁은 없어질 걸세.” 그는 말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죠.” 피예르는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피식 웃었다.

정말 좋겠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거든……”

그럼, 당신은 뭐 때문에 전쟁에 나가시는 겁니까?” 피예르는 물었다.

뭐 때문이냐고? 나도 모르겠어. 그래야 하는 거니까. 또한 내가 전쟁에 나가는 것은……” 그는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나의 삶이,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야!”

===========================

군대를 입대하면서 임신한 아내 리자를 혼자 두기 어려우니, 아버지가 살고 있는 시골 집에서 지내게 했단다. 기억나지? 그 아버지가 얼마나 무섭고 엄격한 지를그나마 안드레이의 동생 마리야가 착한 사람이라서 다행이구나. 리사는 몸이 좋질 않았어. 거기에 무서운 시아버지 볼콘스키 백작와 함께 지내니 얼마나 더 스트레스를 받겠니. 착한 시누이 마리야가 보살펴 주긴 했지만, 참 불쌍하구나.

안드레이는 군대 입대해서 러시아 총사령관 쿠투조프의 부사관 업무를 하게 되었단다. 쿠투조프는 실존했던 인물로, 이 책에는 쿠투조프뿐만 아니라 많은 실존인물이 나온단다. 나폴레옹 황제도 나오고,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알렉산드르도 나오고 그런단다.

로스토프 백작의 첫째 아들 니콜라이도 경기병으로 군대에 입대를 했단다. 그곳에서 알게 된 친구 데니소프와 친하게 지냈어. 니콜라이가 전쟁터에서 겪는 이야기를 하면서, 전쟁의 생생한 묘사를 하게 되었단다. 당시 프랑스와 러시아가 격돌한 곳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땅이었어. 그러니까 프랑스 대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연합군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어. 전쟁을 직접 겪으면서 니콜라이는 왜 이런 전쟁을 하는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이 사람들은 왜 여기에 왔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성숙해 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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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384)

이 사람들은 누구지? 무엇 때문에 왔지? 이 사람들한테 무엇이 필요한 걸까? 그리고 언제쯤 이런 것들이 모두 끝나는 걸까?’ 눈앞에서 변하고 있는 그림자들을 바라보면서 로스토프는 생각했다. 팔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졸음이 엄습했고, 눈 속에서 빨간 동그라미들이 튀었고, 이 목소리들, 이 얼굴들이 주는 인상과 통증이 고독감과 하나로 녹아들었다. 이 사람들, 부상하거나 부상하지 않은 이 병사들이 그의 힘줄들을 으스러뜨리고, 짓누르고, 비틀고, 부러진 팔과 어깨의 살을 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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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러시아 황제는 젊은 알렉산드르 황제였는데, 전쟁터까지 직접 와서 군인들을 격려를 했단다. 그러니 젊은 군인들은 이 젊은 황제를 다들 좋아했단다. 안드레이도 총사령관의 부사관으로 황제를 만나기도 했단다.

계속 되는 전투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그랬단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들도 그런 것을 피할 수는 없었어. 안드레이는 어떤 한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게 되었어. 나중에 눈을 떴을 때는 주변에는 러시아군인들이 시신들만 있었고, 살아 있는 이들은 프랑스군들이었단다. 그는 그렇게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나중에 다행이 풀려나게 된단다.


3.

전쟁터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모스크바에는 아직 평화로운 일상의 날들이었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전쟁이 국경 밖에서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야. 전쟁터에서 아들들이 나간 부모님들은 애가 타겠지만 말이야. 가끔씩 오는 편지를 통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겠지만, 얼마나 마음을 조아리겠니니콜라이의 어머니 로스토프 백작부인도 그런 심정이었어. 갓난 아이였던 아들이 장성해서 군인이 된 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늘 걱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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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

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거쳐 요람에서 나와 어른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온 세계 공통의 오래된 모든 경험도 백작부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성장의 각 시기에 있었던 아들의 변화는, 그것과 똑 같은 길을 밟고 성장한 무수히 많은 사람이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그녀에게는 언제나 신기한 것이었다. 스무 해 전 그녀의 심장 아래 어딘가에서 숨쉬던 조그마한 존재가 응애응애 울기도 하고 젖을 빨기도 하고 옹알거리기도 한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 존재가, 편지로 미루어보건대 강건하고 용감한 사나이가 되어 세상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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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공작은 딸 옐렌을 부자인 피예르와 결혼시키는 것에 성공을 했잖아. 그는 이번에는 아들 아나톨을 볼콘스키 백작의 딸 마리야와 결혼시키려고 했어. 그래서 아들 아나톨을 데리고 볼콘스키 백작의 집에 방문을 했단다. 마리야는 아나톨이 자신보다 식객으로 머무르고 있는 프랑스 여인 부리엔을 좋아하는 사실을 알고, 청혼을 정중히 거절했단다.

대충 1권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란다. 중간중간 메모를 간단히 해 둔 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빠진 내용이 훨씬 많단다. 이해 바라고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묵직해서 말이야. ㅎ 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2권에서 이어서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그것 보세요, 공작. 제노바도 루카도 보나파르트 일가의 영지, 영지나 다름없이 되어버렸잖아요.

책의 끝 문장: 결국 안드레이 공작은 회복될 가망이 없는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그 지방 사람들에게 맡겨져 보호받는 몸이 되었다.


아버지는 행군이니 진격이니 하시면서 나로서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만 하고 계십니다. 그제는 평소처럼 마을의 거리를 거닐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에서 소집되어 군대에 보내지는 신병들이었습니다…… 나는 출발하는 사람들의 어머니, 아내, 아이들이 비탄에 잠긴 모습을 보았고, 떠나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이 오열하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인류는 우리에게 사랑과 모욕에 대한 용서를 가르쳐주신 구세주의 율법을 잊고 서로를 죽이는 기술 속에 자기들의 주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P186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은 것 같은 이 선을 한 발짝 넘어서면 미지와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가 있을까? 이 들과 나무와 태양에 빛나는 지붕 저쪽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싶다. 이 선을 넘는 두렵다. 그러나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선을 넘어 거기에, 이 선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은 죽음 저쪽에 무엇이 있는지 결국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 힘이 넘치고 건강하고 쾌활하고 흥분해 있고, 나와 똑같이 건강하고 활기차고 흥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적과 마주보고 있는 사람들은 똑같지는 않아도 다들 이렇게 느끼고 있었고, 이 느낌은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 특별한 광채와 즐겁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 P280

안개가 자욱한 밤, 달빛이 안개 속으로 신비롭게 비치고 있었다. ‘그렇다, 내일이다, 내일!’ 그는 생각했다. ‘내일, 어쩌면 나의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모른다. 이런 추억도 모두 사라지고 더 이상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아니 확실히 내일이다, 내 역량을 남김없이 발휘할 순간이 마침내 처음으로 찾아온 것이다.’ - P509

그러나 내가 이러한 것을 원하고, 명예를 원하고,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고, 남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원하는 것. 내가 오직 그것만을 원하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죄는 아니다. 그렇다. 그것만을 위해서인 것이다! 나는 절대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아아! 명예와 사람들의 사랑 외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죽음도, 부상도, 가족을 잃는 것도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 많은 사람-아버지, 누이, 아내는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이 아무리 소중하고 사랑스럽더라도 명예의 한순간을 위해, 사람들에게 승리를 자랑하는 한순간을 위해, 내가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알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나는 아버지와 누이와 아내를 지금 당장이라도 버릴 수 있다. 이런 생각이 아무리 무섭고 부자연스러운 것이라 해도 나는 상관없다. -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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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09 11: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랑 <안나 카레니나> 아닌가요? ^^ 이 책은 너무 방대해서 리뷰 쓰기도 힘들거 같아요 ㅜㅜ 등장인물 소개를 보니 저도 재독하고 싶어집니다~!!

bookholic 2022-01-09 21:22   좋아요 1 | URL
리뷰 쓰기 겁날 정도로 방대하죠...^^
그냥 주인공들 줄거리만 따라 이야해주듯 적어봤습니다~~
 















(7-8)

이것이 시간이다. 친숙하고 은밀하다. 시간이라는 도둑은 우리를 끌고 간다. 1, 1, 1시간, 1년의 쏜살 같은 흐름이 우리를 삶 속으로 밀어넣었다가 나중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로 끌고 간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는 시간 곳에서 산다. 우리 존재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시간의 애가(哀歌)는 우리의 영양분이 되고, 우리에게 세상을 열어주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한편, 편안한 요람이 되어주기도 한다. 세상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시간이 이끌어가는 일들을 펼쳐나간다.


(18)

시계만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니다. 아래쪽에서는 모든 과정이 더 느리다. 나이가 같은 두 친구가 있는데, 한 명은 평지에 살고 다른 한 명은 산에 산다고 해보자. 수년이 지난 뒤 두 사람이 만나면, 평지에서 산 친구는 살아온 시간이 더 짧아서 덜 늙어 있다. 이 친구의 집에 걸린 뻐꾸기시계는 덜 진동했고, 볼일을 볼 시간도 적었으며, 집에서 기르는 식물도 덜 자랐다. 또한 이 친구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시간도 적었다. 아래쪽은 위쪽보다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20)

아인슈타인은 중력을 연구할 때 수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졌다. 태양과 지구가 서로 접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중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가하는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납득이 갈 만한 설명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태양과 지구가 직접 서로를 끌어당기지는 않지만, 양쪽 모두 둘 사이에 있는 그 무엇인가에 서서히 반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공간과 시간만 있으니 태양과 지구가 각자 주위의 공간과 시간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했다. 마치 어떤 물체가 물 속에 잠기면 주변의 물이 흐트러지듯이, 시간의 구조가 변경되면 모든 물체의 운동에 영향을 끼치고, 그들이 서로를 향해 떨어지게만든다는 것이다.


(26)

, 시간은 첫 번째 층인 유일함을 상실했다. 모든 장소의 시간은 다른 리듬과 속도를 갖는다. 다양한 리듬의 춤 속에서 세계의 사건들이 얽힌다. 세상이 춤추는 생명의 여신으로부터 지배를 받는다면 최소한 만 명의 여신이 있어야 할 테고, 그 여신들의 춤은 마티스의 그림처럼 거대한 군무로 펼쳐질 것이다.


(39)

이 분자들의 동요는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한다. 일부 분자들이 멈춰 있는 상태라도, 다른 분자들의 격렬한 움직임에 의해 요동이 일어나고, 이 분자들의 요동은 확장되면서 서로 충돌하고 밀어낸다. 그래서 차가운 물체가 뜨거운 물체와 접촉하면 가열되는 것이다. 멈춰 있던 차가운 물체의 분자들이 요동치는 뜨거운 물체의 분자들과 부딪히면서 움직이기 시작해 열이 오른다.


(65)

현재가 아무 의미 없다면 우주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존재하는 것이 현재 속에있는 것 아닌가? 우주가 어떤 특별한 구성으로 지금존재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는 생각은 이제 더는 타당하지 않다.


(68)

고대 세계에서도 해시계나 모래시계, 물시계는 지중해 주변과 중국에 있었지만, 지금처럼 일상 생활을 계획할 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13세기가 되어서야 유럽에서 사람들의 일상이 기계식 시계를 통해 조율되기 시작했다. 도시와 시골에서는 교회를 짓고 그 옆에 종탁을 세웠다. 바로 이 종탑에 자리 잡은 시계가 공동체 생활에 리듬을 부여했다. 시계로 조절되는 시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76)

뉴턴의 시간은 우리 감각의 증거물이 아니라 우아한 지적 산물인 것이다. 교육받은 여러분에게 사물과 관련이 없는 뉴턴의 시간이란 존재가 단순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면, 그 이유는 여러분이 학교에서 이 시간을 접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조금씩, 알게 모르게 시간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전 세계 교과서들은 시간을 공통적으로 생각하도록 기타의 개념들을 걸러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시간에 대한 직관을 만들었다. 지금은 사물이나 사물의 움직임과 별개인 균일한 시간의 존재가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고대의 인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98)

시간은 더 이상 일관성 있는 하나의 캔버스가 아니라, 관계들의 느슨한 망이 된다. 여러 시공간들이 파동처럼 요동치고, 서로 중첩이 가능하고, 특정한 물체와 관련해 특정한 시간에 구체화된다는 이미지는 우리에겐 매우 모호하다. 그러나 이는 세상의 정교한 입자성을 위해선 최선이다. 우리는 지금 양자 중력의 세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107-108)

반면, 세상이 사건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면 작동한다. 아주 간단한 사건이든 아주 복잡한 사건이든 더 단순한 사건들의 조합으로 분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쟁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들의 총체이다. 폭풍우도 사물이 아니라 돌발적인 사건들의 집합이다. 산 위의 구름도 사물이 아니다. 공기 중의 습기가 응결된 것을 바람이 산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파도도 사물이 아니라 물이 움직이는 것이고, 이 물은 언제나 다른 모양을 만든다. 가족도 사물이 아니라 관계와 사건, 느낌의 총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당연히 사물이 아니다. 산 위에 결린 구름처럼 음식, 정보, , 언어를 비롯한 수많은 것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복잡한 프로세스다. 사회적 관계의 네트워크 속에, 화학적 프로세스의 네트워크 속에, 자신과 비슷한 타인들과 교환한 감정의 네트워크 속에 있는 수많은 매듭들이 인간 안에 존재한다.


(150)

열적 시간은 열역학, 그러니까 열과 관련이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과는 유사하지 않다.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지 않고 방향도 없으며 우리가 흐름이라 말할 때 부여하는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과거와 미래의 차이, 그것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161)

관점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본 수많은 것들은 이해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채도 남는다. 어떤 경험을 하든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마음과 뇌, 공간의 어느 지점, 시간의 어느 순간 안에 있다. 세상 속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이 시간에 관한 우리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근본적이다. 우리는 외부에서 본세계의 시간 구조와 우리가 보는 세상의 측면, 즉 우리가 세상 안에 세상의 일부로 존재함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측면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171)

생명체도 유사하게 상호 뒤얽힌 과정들로 구성되어 있다. 광합성은 태양으로부터 받은 낮은 엔트로피가 식물에 쌓이는 과정이다. 동물은 음식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낮은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엔트로피가 아니라 모두 에너지라면, 우리는 음식을 먹지 않고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세포 내부는 복잡한 화학 공정들의 네트워크로서 낮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문을 여닫는 구조물이다. 분자들은 촉매처럼 공정들의 얽힘을 촉진하거나, 반대로 억제하기도 한다. 각각의 모든 공정에서 엔트로피의 증가는 모든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생명은 서로 촉매작용을 하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과정들의 네트워크다. 간혹 생명이 특별히 질서화된 구조들을 만들어낸다거나, 국소적인 영역에서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고 흔히 말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그저 낮은 엔트로피의 음식을 분해하고 소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나머지 우주에 존재하는 스스로 구조화된 무질서 그 자체다.


(196-197)

이것이 시간이다. 이런 특성이 우리를 매혹시키며 안절부절못하게 만들고, 어쩌면 이런 고통스러운 측면 때문에 여러분도 지금 이 책을 손에 들고 있을지 모른다. 왜냐면 시간은 세상의 일시적인 구조이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일시적인 변동일 뿐이면서도, 우리를 어떤 존재로 생기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시간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 자신에게 우리라는 소중한 존재를 선물하고, 모든 고통의 근원인 영원에 대한 허무한 환상을 만들게 한다.


(208)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시간이라는 것도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공간, 우리 신경들의 연결 속 기억의 흔적들에 의해 펼쳐진 초원이다. 우리는 기억이다. 기억과 예측을 통해 이런 식으로 펼쳐진 공간이 시간이다. 때로는 고뇌의 근원이지만, 결국은 엄청난 선물이다.


(211)

내가 보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진화의 오류다. 수많은 동물들이 포식자가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며 도망친다.. 그것이 건강한 반응이고 그래야 위험에서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잠깐 동안의 두려움일 뿐 계속되지는 않는다. 이 두려움 덕분에 유인원이 탄생했다.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은 분명 도움이 되는 특권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 유인원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 물론 두려움의 본능을 일깨워 포식자로부터 도망치게 해주기는 한다. 나는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두 가지 진화의 압박에 의한 우발적이고 어리석은 간섭이자, 우리 뇌 속에서 발생한 잘못된 자동 회로 연결의 산물일 뿐 특별히 유용하다거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일정한 기한이 있다. 인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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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임현정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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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어느날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알게 된 피아니스트 임현정 님. 아빠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음악에 관심이 있거든. 음악에 관련된 책들도 가끔 보고, 음악에 관련된 콘텐츠도 가끔 보고 듣고, 물론 음악 자체도 즐겨 듣고하기야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으려나.

그런데 아빠는 애석하게도 음악을 평가하는 귀는 가지고 있지 못했어. 피아니스트들이 치는 음악을 들어봐도 정확히 차이점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임현정 님이 치는 피아노 연주는 한번만 봐도 한번만 들어도 차이가 확 나더구나. 힘이 느껴지고, 속도감이 느껴졌어. 그리고 음악에 취해서 연주하는 모습 또한 좋았단다.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단다. 처음 우연히 보고 난 다음 임현정 님의 연주 모습을 여럿 찾아보았단다. 여성 피아니스트라고 하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연주하는 경우도 많은데, 임현정 님은 대부분 블랙의 편안해 보이는 의상을 입으셨는데 긴 검은 머리와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았어.

혹시나 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임현정 님을 검색해 보았더니 책도 내셨구나. 그 중에 최근에 출간된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라는 책을 읽었단다. 지은이도 이야기한 것처럼 베토벤에 대한 책들은 너무 많아서, 누군가는 또 베토벤이냐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임현정 님은 자칭 베토벤 스토커라고 할 정도로 베토벤에 푹 빠져 사시는 임현정 님께서 음악가에 대한 책을 쓴다면 가장 먼저가 베토벤인 것은 당연했을 거야. 특히 임현정 님은 24살 때 유명 음악사의 제안을 받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다 외워서 녹음을 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그 앨범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빌보드 클래식 종합 차트 1위를 했다고 했어. 이 내용을 보니 어렴풋이 기억나는구나. 우리나라 사람 중에 빌보드 차트 1위를 했던 클래식 연주자가 있다는 소식. 그 분이 임현정 님이었구나.

이 책을 읽다 보니, 처음 프랑스로 유학을 간 지 20년 정도 되었다고 했어. 스무 살에 갔다고 해도 그럼 벌써 마흔이 넘었나? 아빠가 본 영상에서는 꽤 젊어 보였는데이래서 알아보니 프랑스 유학을 열네 살에 갔다고 하는구나. 그것도 혼자서중학교 1학년 때될 사람들은 떡잎부터 다르다더니이 책을 읽고 나서 임현정 님이 쓰신 책을 한 권 더 샀어. 그 책은 유럽에서 임현정 님께서 프랑스어로 출간한 책을 다른 번역가가 우리말로 옮긴 <침묵의 소리>라는 책이란다. 그 책에서는 임현정 님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임현정 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그 책을 읽고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자꾸나. 그 책도 기대되는구나.

1.

임현정 님께서 베토벤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베토벤 음악을 좀 더 잘 파악하기 위해서 베토벤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러나 베토벤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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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베토벤의 곡을 연주하는 일은 단지 음악 작품을 연주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방면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우리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려는 시도다. 베토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인생을 조명하는 것이 음악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감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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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임현정 님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곡이 너무 빠르다는 평을 받는다고 하더구나. 하지만 임현정 님은 베토벤의 악보대로 연주한다고 하셨어. 너희들은 피아노를 칠 줄 아니 메트로놈도 아빠보다 더 잘 알잖아. 임현정 님께서 이야기하기를, 베토벤의 악보에 적혀 있는 메트로놈의 속도에 맞춰 연주를 한 것뿐이라고 하더구나. 최근에 많은 연주자들의 베토벤 연주는 원래 메트로놈의 속도보다 느리게 연주한다고 하셨어. 심지어 어떤 음악가는 베토벤 악보에 적혀 있는 메트로놈의 숫자가 실수로 잘못 적힌 것이라는 하는 이도 있다고 했어. 아빠는 임현정 님이 빠른 속도로 연주하는 베토벤의 음악이 더 듣기 좋았단다. 힘이 있고, 속도감이 있고, 마치 락을 듣는 기분이었어.

음악가는 어떤 연주를 해야 할까? 남들이 듣기 좋아하는 음악을 해야 할까? 자신만의 스타일을 연주해야 할까? 연주자마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임연정 님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연주자였어. 고전음악가들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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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억제하고 나보다 남의 시선을 우선시하면서 연주하는 연주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면 좋겠다. 고전 음악가라고 불리는 그들이 오늘날까지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이유는 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정신을 음악에 녹여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품이 세월을 관통해 우리에게까지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치의 위선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는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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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에 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구나. 임현정 님께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 베토벤에 관한 좋은 평전들이 많이 있으니까 말이야. 이 책은 피아니스트 임현정 님께서 베토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고, 음악을 사랑하는 임현정 님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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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음악이야말로 표현이 자유로운 언어다. 사회가 문학을 검열하고 억압했을 때 마지막까지 자유롭게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던 도구는 바로 음악이었다. 위대한 음악가들의 연주는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누가 연주하는지 대번에 알아들을 수 있다. 그들은 기계처럼 악보대로 연주하는 수준을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곡을 재창조한다. 이그나츠 프리드만이 연주하기 시작하면 즉시 그임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나의 전폭적인 찬탄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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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화제가 되었던 임현정 님의 베토벤 소나타 연주 전집을 검색해 보았더니 절판되었더구나. 안타깝네.

PS:

책의 첫 문장: 처음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보겠다고 결심했을 때, 이미 베토벤에 관한 훌륭한 평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의 끝 문장: 그는 앞으로도 영원히 내 인생의 롤모델이자 큰 영감으로 남을 것이다.


베토벤 역시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찰나의 순간 듣고 끝나는 무언가가 아닌, 영원히 신화처럼 남을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작품에 일일이 작품 번호를 매기고 엄격하게 관리했다. 작품 번호를 붙이지 않은 곡도 있지만 심혈을 기울여 애착이 가는 작품에는 꼭 작품 번호를 붙여 정식으로 출판했다. - P62

침묵은 자신의 마음이다. 그 마음 안에 불필요한 생각과 감정이 가득 차 있다면 이어질 음악이 온전하게 느껴질 리 없다. 그래서 침묵의 순간에는 고요함과 평온함을 유지해야 하며, 그 깊은 안정감에서부터 에너지를 일으켜야만 모든 격한 감정들을 요동치게 만들 수 있다. - P64

누구나 남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약점이나 트라우마가 한두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강점으로 승화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현재 자신의 사정이 너무 불리하다고 해서 미래의 가능성마저 닫아버려서는 안 된다. 과거는 이미 끝났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현재보다 더 중요한 시간은 없다. 과거의 시간에 매몰되어 절망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미래를 바꿀 현재의 선택이 더 중요하다. - P88

젊음이 가지는 눈부신 활력과 무모함은 그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리고 장년의 지혜와 깊이 있는 열정은 장년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다. 간혹 젊은 음악가들이 왜 벌써부터 하얀 머리가 난 철학가처럼 심오한 분위기를 풍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지나간 젊음은 다시 오지 않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이 20대 때 작곡했던 초기 피아노 소나타의 열정과 활기를 그대로 표현해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 P109

음악에서 말하는 템포는 속도가 아닌 ‘시간’을 뜻한다. 이탈리아어로 시간은 템포(tempo), 영어로는 타임(time), 프랑스어로는 떵(temps)인데, 굳이 여러 나라 언어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모든 단어들이 라틴어 ‘템푸스(tempus)’에서 유래된 것임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여기서 ‘템(tem)’은 무언가를 자른다는 뜻으로, 즉 템푸스는 ‘시간을 자른다.’ ‘시간을 나눈다.’라는 뜻이라고 보면 되겠다. 절을 영어로 ‘템플(temple)’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자른다는 뜻의 ‘템’에서 유래되었다. 속세에서 떨어져 있다는 뜻에서 템플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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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2-01-07 0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임현정님이 유튜브 채널에서 이 책을 함께 읽으며 독자들과 대화하기도 하세요. 자유롭게 대화하면서 즉흥적으로 관련 곡을 연주해주기도 하시고요 ㅎㅎ

bookholic 2022-01-07 18:38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영상을 찾아서 보도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유니와책친구들 2022-01-07 0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아빠에게 이런 편지를 받는 자녀분들운 넘 행복할 것 같아요!

bookholic 2022-01-07 18:3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가 몇몇분께는 말씀드렸는데, 아이들이 이 편지의 존재를 아직 모릅니다 ㅎㅎ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mini74 2022-02-10 1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베토벤의 보은인가요 ㅎㅎ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2-02-12 05:04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오늘은 베토벤의 고마움을 느끼며 베토벤의 음악을 들어봐야겠어요...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새파랑 2022-02-10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이번달도 당선 축하드려요~!!

bookholic 2022-02-12 05:05   좋아요 2 | URL
네, 고맙습니다~~~
늘 변변치 않은 글에 ˝좋아요˝ 버튼 눌러주신 덕입니다 ㅎㅎ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이번주말도 책과 함께~~

이하라 2022-02-10 1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2-02-12 05:05   좋아요 1 | URL
늘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서니데이 2022-02-10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ookholic 2022-02-12 05:0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scott 2022-02-10 2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북홀릭님에게 임현정님이 진짜로 선물을 주셨네요!
아들과 딸에게 비밀로 😊

bookholic 2022-02-12 05:09   좋아요 2 | URL
ㅎㅎ 그렇게 되었네요..
책 읽을 때 책 제목도 유심히 봐야겠어요~~
임현정 님 SNS에 가서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겠어요...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러블리땡 2022-02-11 0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 즐거운 주말 되세요 ^^

bookholic 2022-02-12 05:13   좋아요 1 | URL
러블리땡 님, 고맙습니다~~
좋은 책과 함께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thkang1001 2022-02-11 0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2-02-12 05:14   좋아요 1 | URL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따뜻하고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강나루 2022-02-11 14: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해요^^

bookholic 2022-02-12 05:16   좋아요 2 | URL
강나루 님, 늘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thkang1001 2022-02-12 0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41-42)

부르주아(bourgeois)는 프랑스어로 성안에 사는 사람들을 뜻해요. 여기서 부르(bourg)는 성을 의미합니다. 유럽에는 스트라스부르, 함부르크, 잘츠부르크처럼 부르(bourg), 혹은 부르크(burg)로 끝나는 도시 이름이 많아요. 성벽을 둘러치면서 도시를 형성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중세 후기에 상업 활동으로 부를 쌓은 평민들이 주로 성안에서 살았어요. 이 때문에 성공한 평민들을 성한에 사는 사람, 즉 부르주아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89)

한편 테르 뷔르제 광장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지속됩니다. 프랑스어로 증원 거래소를 북스(Bourse)라 하고, 독일어로는 뵈르제(Borse)라 하는데요. 이게 다 여관 테르 뷔르제(Ter Buerse)를 어원으로 삼아요. 영어로도 증권 거래소는 원래 부어스(Burse)로 불렸는데 18세기에 국가로부터 왕립 거래소라는 명칭을 부여받아 이름을 바꾸었죠.


(135)

프랑스 동부에 닿아 있는 부르고뉴 공국은 1363년부터 1482년까지 약 120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15세기 르네상스라는 결정적 시기에 유럽 한복판에 강력한 국가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리고 부르고뉴 공국이 있었던 120년간은 미술사에 대단한 자취를 남겼죠. 앞으로 펼쳐질 북유럽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거든요.


(243)

옛날에는 사회 변화나 유행의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느렸으니 30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 변화는 격변이라고 할 수 있죠. 인물이든 사물이든 정확히 재현해낸 얀 반 에이크 그림이 여러 가지 부분에서 이전에 비해 진보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얀 반 에이크가 등장하는 1420년대에서 1430년대에 북유럽에서 그려진 그림들을 아르스 노바(Ars nova) , ‘새로운 미술이라 하는 거겠지요. 도시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소비 문화가 만들어졌고, 상인과 장인 등 제3신분이 등장해 시민사회가 형성되었죠. 이 같은 일련의 변화는 새롭고 정확한 미술이 나오는 데 중요한 시대 배경이 되었습니다.


(542)

요즘 화가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화가들이 쓰는 재료와 표현 기법에 큰 관심을 기울일 겁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떤 재료를 썼는지는 간과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재료를 통해서 미술을 보면 달리 보이는 부분들이 많아요. 베네치아 회화는 유화를 캔버스에 그렸기 때문에 색채가 더욱 살아나고 표현도 더 다채로워졌으니까요.

이렇게 색채는 베네치아 회화의 핵심 요소로 떠오릅니다. 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색채가 주목받는 시기가 온 겁니다. 특히 조반니 벨리니는 15세기 후반부터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며 베네치아의 화려한 색채 표현을 이끌어나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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