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쩌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꿋꿋하게 삶을 꾸려가는 모습에서 그 어떤 무용담이나 모험담보다 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처한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는 그들도 희망을 가질 때가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류애를 지닌, 가슴이 뜨거운 피디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들도 평범한 그 누군가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다.


(59)

전쟁이 나든 종교가 무엇이든 그것은 어른들의 일이다. 아이들은 어느 나라를 지목하여 태어날 수도 전쟁을 막을 수도 없는 힘없는 생명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적어도 세 가지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배고프지 않을 권리,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을 권리, 그리고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


(73)

피디를 시작하던 때 내가 방송이 재미있고 신난다. 피디라는 직업 정말 좋다라고 말하자 한 선배는 시간이 지나면 그냥 단지 직업일 뿐이야. 나이를 먹으니 열정도 많이 식더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나이가 들어도 출연자들을 만나 카메라에 담는 일이 더더욱 신나고 행복해진다. 내가 철이 안 들어 그런가 하는 생각도 해 보지만 아마도 내 생애는 마리암과 같은 출연자를 만나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으로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또 다른 마리암을 만나러 세계를 돌아다닌다.


(111)

남편과 가족은 아프가니스탄 여성으로 공개적으로 사랑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집을 낸 나디아를 죽여야 했다. 그런 입에 담을 수 없는 단어를 사용한 나디아를 명예살인 한 것이다. ‘명예살인이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거나 죄를 지은 아내나 딸, 여동생을 죽여 가문의 위신을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이 천재 시인은 시()와 자기 목숨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140)

그런데 세상에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파키스탄 페샤와르로 취재 갔을 때 나는 음악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탈레반이다. 그들은 인간이 즐기기 위해 만든 음악은 신이 금지한다고 주장한다. 흥겨워 어깨를 들썩이고 음악을 흥얼거리는 것은 절대 신이 용납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탈레반은 이런 신념을 곧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음반 가게나 라디오, 텔레비전을 파는 상점에 폭탄 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194)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로 본 전쟁과 전쟁을 겪어 본 아이들 눈에 비친 진짜 전쟁은 많이 달랐다. 우선 그림 속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았다. 반면 무기나 탱크는 사람들에 비해 과장되게 컸다. 내가 그림 전문가 수준의 안목은 아니나, 무기가 사람을 죽일 만큼 어마어마한 화력을 내뿜는다는 것이 아이들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고, 그런 무시무시한 무기 앞에서 인간이란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나무와 꽃 같은 아름다운 것을 그려야 할 동심이 전쟁으로 물든 것 같아 안쓰러웠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나라와 어른들 잘못 만나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생과 사를 가르는 전쟁에 노출되었나 싶었다.


(246)

미군에게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이들은 말하자면 독립군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독립군들이 만주 벌판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는 모습이 떠올랐다. 테러리스트냐 독립군이냐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독립군도 일본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이다. 이라크 저항 세력도 미군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이다. 하지만 우리의 독립군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사람들에게 그들은 독립군이다. 역사의 평가는 후대에 한다지만 내가 그때 그들에게서 받은 인상은 애국심에 불타는 독립군이었다.


(302-303)

이라크는 인간이 전쟁 때문에 얼마나 많이 피폐해지는지 너무도 잘 보여 준 곳이다. 이라크 사람들도 전쟁으로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전쟁터에 내몰린 미군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전쟁에는 승자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되고 나서 얻는 승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쯤 마이크가 집으로 돌아가 엄마와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엄마가 해 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기를 바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1-28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분 책 좋던데 이런 책도 있었군요. 조만간 봐야겠습니다

bookholic 2022-01-29 23:05   좋아요 0 | URL
네, 글을 읽기 쉽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지만, 그 속에 사람들에 촛점을 맞추셔서 글들이 따뜻합니다...
바람돌이 님, 즐거운 설명절 되십시오~~^^
 
침묵의 소리 - 열정의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나의 이야기
임현정 지음, 양영란 옮김 / 청미래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피아니스트 임현정 님이 쓴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를 읽고, 임현정 님의 또 다른 책 <침묵의 소리>를 읽겠다고 했잖아. 그래서 이번에 읽었단다. 제목은 <침묵의 소리>

임현정 님의 <침묵의 소리>는 프랑스의 출판사의 제의로 임현정 님이 프랑스어로 쓴 책을 양영란 님이 번역하여 우리나라에도 출간한 책이란다. 그러니까 임현정 님의 첫 번째 책은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거야. 그만큼,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한 피아니스트야. 최근에도 프랑스 방송국에서 임현정 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정말 멋진 분이시네.

임현정 님의 약력을 보면, 루앙 국립유학원 조기 졸업,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 최연소 입학,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 조기 수석 졸업, 베토벤 소나타 최연소 전곡 앨범 발매, 그 데뷔 앨범이 빌보드 클래식 차트와 아이튠즈 클래식 차트에서 한국인 최초 1위 기록 등 엄청난 이력을 갖고 계신단다. 이번에 읽은 <침묵의 소리> 2016년에 프랑스에서 출간한 책이라고 하는구나. 임현정 님이 1986년생이니, 30년 인생과 음악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이란다.


1.

1986년 안양에서 늦둥이로 태어났다고 했어. 임현정 님의 태어났을 때 이미 아버지는 50이 넘으셨다고 했어. 아버지는 시골에서 무일푼으로 올라와 자수성가하신 분으로 안양에 건물도 갖고 계신다고 했어. 어렸을 때 임현정 님은 엄마와 유달리 친밀한 관계였대. 피아노를 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에 엄마는 임현정 님을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는구나. 곧바로 임현정 님은 피아노에 푹 빠지게 되었어. 피아노 앞에 있을 때 자유를 느꼈다는 임현정 님. 부모님도 딸의 자유에 간섭을 걸지 하고 원하는 대로 하게 두셨나 봐. 그래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었고 말이야.

========================

(34-35)

아무튼 내가 전적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유일한 공간은 피아노 앞에서였다. 영혼이 느끼는 행복감은 한참 후에나 찾아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나는 아직 피아노를 일종의 의무로 받아들였다. 내면적인 명령. 나의 임무. 아무도 나에게 신동을 만들기 위한 교육법이라든지 아주 세세한 전문적 방식에 따라 손가락, 손목, 팔 놀리는 법, 자세를 유지하는 법 등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아직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 작은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무도 나에게 신동들이 강요받는 몸짓을 강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그것은 분명 다행이었다. 내 몸은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간혹 내가 사람들에게서 고양이처럼 연주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

중학생이 되고 나서 프랑스 유학을 가겠다고 부모님께 이야기했다는구나. 엄마는 찬성, 아빠는 반대. 역술인이 나서서 임현정 님의 아빠를 설득했다고 하는데그렇게 무작정 떠난 프랑스 유학. 프랑스 콩피에뉴에서 생활을 시작했어. 그곳에 엄마의 친구의 아들 부부가 살고 계셔서 그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단다. 엄마의 친구의 며느리 분이 자신을 이모라고 부르라고 했어. 그런데 그 이모는 임현정 님한테 무척 엄하고, 현정 님 앞에서 대놓고 험담도 많이 하고 자신의 아이들과 차별하고 무시를 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임현정 님의 부모님이 보내준 돈도 많이 떼어먹었다고 하는구나.

예민한 중학생 시절 그렇게 엄하고 차별 받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구나. 학교 생활도 힘들었어. 프랑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동양인 여자아이에게 프랑스 애들은 친절하지 않았어. 동급생들에게 차별 받고 그랬는데, 어느 날 피아노 한번 연주를 하고 나서는 친구들의 시선이 확 바뀌었단다. 그렇게 힘든 시절 임현정 님이 참아낼 수 있던 것은 역시 피아노였단다.

========================

(63)

드디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내가 음표들을 통해서 암울한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은 축복이었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격랑은 내가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음악이 나를 잡아당기고 이끌었다. 내가 거기에 기대서 내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완전히 낯선 이 세계에서 음악만큼은 나만의 동굴, 나의 피난처, 내가 몸을 웅크리고 안길 수 있는 가장 은밀하고도 친숙한 존재였다.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그곳이 어디건, 나는 내 집에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2.

임현정 님은 콩피에뉴 음악원을 다녔는데, 마르크 오플레 선생님을 만났는데, 오플레 선생님은 바로 임현정 님의 재능을 알아보고,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 입학 시험을 준비하자고 하셨어. 이때 고국에 계시던 엄마가 처음으로 프랑스에 왔단다. 그리고 임현정 님이 머물던 집의 아줌마의 행적을 알게 되고, 바로 짐을 빼서 호텔로 옮겼다고 하는구나. 머물 곳을 찾고 있었는데, 오플레 선생님이 자신의 집에서 지내라고 하셔서, 임현정 님은 오플레 선생님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어. 오플레 선생님의 부인께서도 임현정 님을 딸처럼 여기고 잘 보살펴 주셨다고 하는구나.

이제 더욱 피아노에 전념할 수 있는 임현정 님. 15살에 루앙 국립음악원에 입학을 해서 거처를 다시 옮기게 되었는데, 이 때는 엄마가 다시 프랑스로 오셔서 한동안 함께 지냈다고 하는구나. 자신을 보살펴 주러 엄마가 프랑스에 오셨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프랑스말도 못하시는 엄마가 오히려 걱정이 되었어. 그러다가 교포분들과 알게 되면서 엄마도 프랑스 생활에 적응하셨고, 김양희 외교관님의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는구나. 루앙 국립음악원에서는 지도교사와 마찰도 있어서, 지도교수 없이 혼자 파리국립 고등음악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어. 타고난 능력과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2003년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 입학을 했단다. 이 때 엄마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셨단다.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서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 그래서 자신만이 피아노를 사서 집에서 연주연습을 하려고 했지. 하지만 가정집에서 내가 원할 만큼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 그래서 도로변 차고형 아파트를 간신히 빌려서 정말 열심히 연습했대. 그 아파트 위치상 얼마나 위험한지도 몰랐고, 가끔씩 쥐가 출현하는 그런 집이었어도 피아노 연습만 할 수 있다면 참을 수 있는 젊음과 열정이 있었어.

이때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음악을 하면서, 불교에도 빠져들게 되었단다. 불교를 삶의 자세로 받아들이게 되었어. 아빠도 한 때 삶의 방식으로 불교를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실천은 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임현정 님이 불교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하니 왠지 반갑더구나.

========================

(138)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육체는 하나의 옷에 불과하며,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해도 그것을 저세상에 가져갈 수 있는가? 나에게는 오히려 영원히 지속되는, 저세상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함께하는 나의 영원한 본질을 풍성하게 키우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롭고 온당한 것이었다. 내면의 본질적인 아름다움, 보이지 않는 섬세한 아름다움의 영원한 재산. 나는 그 재산을 끊임없이 늘리고 싶었다. 더불어 지금 열여섯 살의 내가 접한 불교의 신선한 가르침과 매일매일의 경험에서 얻는 깨달음은 조금씩 내 안에 새로운 자산이 되어갔고 탐험의 공간을 만들었다.

========================

엄마의 소개로 알게 된 성담 스님과 계속 교류를 하게 되었는데, 성담 스님으로부터 정신적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고 했어. 이 책에서도 성담 스님의 가르침이 여럿 나와 있는데, 다 좋은 글들이었어. 그 중에 두 개만 소개해 볼게.

========================

(140-141)

훗날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께서 그분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머와 간명함으로 나에게 한마디 해주셨다.

부처가 되기보다 부처럼 행동하라. 부처행을 하는 자가 부처님이니 깨달음을 찾으려고 허망하게 시간을 보내기 말고 지금 즉시 각자 자리에서 부처행을 하라. 부처행이란 나 아닌 것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걸 깨달아 모든 생명이 행복하도록 도우면 부처행이다

그렇다. “절대적인 완전함을 계속 찾으며 헤맬 것이 아니라 지금 즉시 여기에서 그 절대적인 완전함을 삶과 음악으로서 표현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 절대적인 완전함, 즉 정신의 본질, 온전하고 완전한 참나는 영원한 영원부터 언제나 내 안에 있었고 영원히 있을 진정한 이므로, 그것은 표면적인 자아”, 혹은 껍질에 불과한 가 아닌 나의 진정한 본질이므로.

========================

========================

(159)

많은 음악인들에게 큰 혼동이 되는 이 문제에 대해서 훗날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은 그분만의 특유의 명쾌함으로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셨다.

우리가 위대한 한 작곡가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음악은 깨달은 자의 음악이므로 우리 또한 그 작곡가의 진정한 본질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되며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질에도 도달합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체성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소위 말하는 하나가 된 의식과 연결되기 때문이죠. 온 세계를 놓고 볼 때,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으나, 참자아, 즉 정신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하나이며 그것이 바로 우주의 의식입니다. 그때는 연주자와 작곡가 각각의 개성이 공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상호의존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둘은 하나가 되니까요.”

========================


3.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을 조기 수석 졸업하고, 벨기에 엘리자베스 뮤직 채플에 합격하여 다니다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마에스트로 리바노비치-바라콥스키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충고로 뮤직채플을 그만두고 임현정 님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갔어. 그런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다 보니, 그 흔한 콩쿠르도 나가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런 명예욕과 욕심도 없으시고, 오직 피아노에 대한 열정만 있으신 것 같구나.

========================

(183-184)

유명한 작곡가들의 이름을 단 이 콩쿠르들은 모두 그들의 이름을 내세워서 그들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데 고작 몇 명에게 상을 주고 그 나머지 몇 백 명들의 마음은 무너뜨리고 상심하게 했다. 정작 그 창조자들은 이런 비즈니스에 어떻게 반응할까? 정말 그들의 이름이 경쟁을 앞세워 음악도들을 모으는 비즈니스에 쓰이는 것을 그들은 원할까? 그들의 독립적인 정신이 그것을 허락했을까? 의문이다.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벨기에 왕가에서 개설했다는, 음악에 열중하는 데에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삶의 조건을 제시하는 그 기관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하자 나는 나의 인생의 마지막 시험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이제 겨우 스물 살밖에 안 되었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휴식을 필요로 했다. 아니, 내 안에 있는 그 무언가는 이제 보살핌을 필요로 했다.

========================

마에스트로 리바노비치-바라콥스키는 임현정 님께 많은 독주회를 주선해주었고, 그 연주들을 인터넷에 올려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런 영상들이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면서, 임현정 님이 유명해지셨대. 그리고 어느날 영국의 유명 매니저인 재스퍼 패로트로부터 연락이 와서 전속 계약을 맺었대. 이후 임현정 님은 더욱 실력을 인정 받게 되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데뷔앨범으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앨범을 발매하기까지 한 거야.

...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홀로 유학을 가는 담대함은 어디서 온 것이며, 타고난 피아노 실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열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정말 대단한 분이신 것 같구나. 그리고 글도 정말 멋지게 잘 쓰셨어. 주옥 같은 글들도 많아서 아빠도 여러 곳 발췌하면서 다시 읽곤 했단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연주를 자주 하시는데, 언젠가는 아빠도 한번 공연을 직접 보고 싶구나. 너희들도 함께 가면 더욱 좋고 말이야.

임현정 님께서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공연도 하셔서 너희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가도 좋겠지만, 코로나가 우리들의 발목을 잡는구나. 오미크론이 극성인데 오미크론이 가고 나면 부디 더 이상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는 찾아오질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마스크 벗고 공연장도 걱정 없이 다니고 말이야. 마스크 일상이 너무 오래되었어. 이젠 그만 할 때도 되었는데올해는 꼭부디


PS:

책의 첫 문장: 아이다운 아이였던 적이 없는 나는 런던의 거대한 로열 앨버트 홀에 들어선다.

책의 끝 문장: 엄마, 아빠의 영원한 막내딸로서. 영원히 사랑합니다.


아이다운 아이였던 적이 없는 나는 런던의 거대한 로열 앨버트 홀에 들어선다. 수천 명은 족이 된다. 살아 숨 쉬는 육체를 이끌고 이곳으로 모요든 사람들. 음악을 통해서 거룩하고 신성한 숨결을 듣고, 느끼고, 호흡하기 위해서. 그것에 시종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그 숨결, 하모니의 숨결은 나의 영원한 열망이다.
청중들에게 인사한다. 박수 소리가 잦아든다. 어떤 남자가 잦아든다. 어떤 남자가 기침을 한다. 피아노는 잠자코 나를 기다린다. 의자에 앉고, 음악은 시작된다. 모든 것이 펼쳐진다. 음악은 그들이며, 나 자신이며, 당신이며, 침묵을 갈구하는 우리이다.
- P11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해서 아버지는 통 말씀을 안 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음성에서 징용자의 절규를 듣는다. 아버지의 목청 속에는 강제로 빼앗긴 모국어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의 두 손에는 일본인들의 구타가, 몸속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실험쥐 신세가 된, 마치도 없이 생체이식을 당한 한국인들의 몸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어깨에는 도저히 먹여 살릴 수 없었던 집안의 무게가, 뱃속에는 장남의, 한 남자의, 한 아이의 분노가 한 짐이었다. - P26

독창적인 해석이란 없다. 뚜렷하게 유일무이한 진정성 있는 해석이 있을 뿐이다. 비극적인 음악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극적으로 연주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차피 그 음악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연주하는 사람이 음악과 하나가 된다면, 연주자가 감히 그 정도까지 자기 자신이고자 한다면 결국 그 자신은 숨결과 하나가 되며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그 나가 사라지게 될 테니까. 음악과 한 몸이 되는 것. 음악을 연주하고 해석하는 것을 멈추고 음악이 우리의 영혼을 아예 관통하는 것. 마침내 존재하기 위해서 사라지기. - P90

템포란 무엇인가? 음악에서 템포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저 작곡가가 실마리를 주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 한 인간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어떠한 말을 속삭일 때 누가 그 어떠한 속도로 말을 하는지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표현이 먼저이다. 열광하면 그것이 속도를 결정한다. 음악은 템포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는다. 음악은 템포 속에 갇혀 있지 않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음악이 템포를 창조하는 것이다. - P92

음악은 바람의 소리에서 처음으로 생겨났으며,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모두 음악의 원천이다. 음악은 안양의 다리 밑에도, 어린 나의 두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던 나른한 물풀들의 움직임에도 이미 있었다. 음악은 자연이다. 또한 자연의 메아리다. 음악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불규칙적인 흐름의 완벽함을 듣게 해준다. 반복되는 프레이징으로 모래사장을 향해 밀려와서 부서지는 파도. 하지만 밀려올 때마다 각각 늘 유일하며 개별적인 파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새의 노래.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와 봄날의 이슬비. 내면의 숨결에 몰아치는 열대 계절풍, 영혼의 루바토, 쿵쿵 뛰는 심장, 점점 더 빨리 뛰었다가, 겁을 먹기도 하며, 순간 평온을 되찾는 우리의 심장. 감정이 고조되면서 빨갛게 달아오르는 두 볼. 축축하게 젖은 손. 살아 있는 육체! - P175

서른 개의 소나타는 이를 테면 각각이 하나의 소설이다. 극한으로 치닫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인생이 가지는 정수를 기념비적인 작품의 형태로 드러내 보이니까. 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 의 전 인생을 다시 사는 것이었다. 그 서른 개의 소나타를 나는 흔히들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같이 연대순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묶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야 총 99개의 악장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명쾌하게 이해되는 음악적 설계도를 완성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 P217

프랑스에서 연주할 때면 운다. 아주 많이 운다. 친구들이 청중들 속에 앉아 있는데 난 친구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같이 함께 연주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운다. 드디어 전적으로 나의 거처와 강렬하게, 그리고 진정하게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안전과 사랑이 있는 곳, 용서와 평화가 있는 곳이다. 침묵의 거처이기도 하다. 그곳을 내 거처로 삼을수록 더욱 음악은 나에게 다가온다. - P23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1-26 01: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로변 차고형 아파트...
가끔씩 쥐!가 출몰하능!

피아니스트 임현정님 파리에서 지독할 정도로 연습!연습!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파리 유학 시절은
좋은 추억 기억이 없었다고 합니다.

bookholic 2022-01-27 00:07   좋아요 2 | URL
다들 힘들게 노력하셨군요~~^^
꿈을 향한 열정, 다들 멋지십니다...
 
가시나무 새
콜린 맥클로우 지음, 홍석연 옮김 / 문지사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콜린 매컬로 님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다 읽고 나서, 에필로그 격으로 콜린 매컬로의 또 다른 유명한 작품인 <가시나무새>를 읽었단다. 아빠도 어려서 잘 모르지만, 예전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져서 엄청 유명했단다. 제목은 잘 알고 있던 책.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지은이가 <가시나무 새>를 쓴 그 작가라서 해서 약간 놀랬던 기억이 있구나. 장르가 좀 다른 소설이라서 말이야.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가시나무 새>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이번에 읽게 된 것이란다.

1915년 뉴질랜드의 한 시골의 가난한 가족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클레어리와 휘모나는 부부이고, 첫째 프랭크 열여섯 살, 둘째 바브 열한 살, 셋째 재크 열 살, 넷째 휴이 아홉 살, 다섯째 슈튜어트 다섯 살. 그리고 막내이자 외동딸 메기가 네 살이 가족구성원 중에 주인공은 막내이자 외동딸 메기. 메기가 커 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란다.

그런데 왜 제목이 가시나무새일까. 가시나무새는 켈트족의 전설에 나오는 새로, 가슴을 가시에 찔려 붉은 피를 흘리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서 죽어가는 새라고 하는구나. 아픔을 감수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가시나무새. 이미 제목에서 슬픔을 암시하고 있어. 지은이 콜린 매컬로는 아픔을 감수하는 일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는 일이 우리의 삶이라고 이야기를 하더구나.


1.

클레어리와 휘모나의 가족들그 중에 막내이자 외동딸 메기가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집에서는 가난했지만, 그래도 서로 의지하며 행복했어. 메기는 특히 큰 오빠 프랭크가 예뻐해 주었단다. 그런데 프랭크와 아빠 클레어리는 사이가 무척 안 좋았단다. 나중에 알고 알고 보니 프랭크의 친아빠가 클레어리가 아니었어. 부잣집 딸이었던 휘모나는 집안에서 반대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았고, 부모의 의지에 따라 클레어리와 결혼하게 된 거야. 그래도 휘모나는 아내의 역할과 엄마의 역할을 잘 하였단다. 메기가 아홉 살이 되는 데에 동생이 한 명 더 태어났고, 나중에 그 밑으로 쌍둥이 동생들이 또 태어나게 되는데 모두 아들들이라서 여전히 메기는 외동딸이란다.

클레어리가 가난하지만, 엄청 부자인 누나가 한 명 있긴 했어. 그 누나는 오스트레일리아 길란본에 사는 메리 카슨이라는 사람인데 남편을 잃고 혼자 살고 있었어. 자식도 없었단다. 갑부에 까칠한 성격으로 동생과도 연락을 거의 안하고 살았어. 그런데 메리 카슨은 자신이 나중에 죽고 나면 그 재산을 어차피 클레어리에 주어야 하니까, 미리 와서 같이 자신의 농장에서 살라고 했단다. 그래서 메기의 가족들은 모두 뉴질랜드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 길란본으로 왔단다. 당시 메기는 십대 초반이었어.

메리 카슨은 젊은 랠프 신부와 친하게 지내서, 집안일 관리를 랠프 신부에게 맡기곤 했어. 메기 가족들도 랠프 신부와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메기도 랠프 신부님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단다. 메기가 점점 커가면서 랠프 신부님도 메기를 여자로 사랑하게 되어 심하게 갈등을 하게 된단다. 사랑하는 메기를 위해서 성직자의 삶까지 포기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런 랠프의 마음을 알고 있는 메리 카슨이 랠프 신부에게 제안을 했어.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랠프에게 준다는 새로운 유서를 준다는 내용이었어. 그 대신 신부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아빠가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조건이 좀 이상하구나. 메리 카슨이 랠프 신부를 남자로 보기도 했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서 마음속에만 그를 품고 있기 했어도, 이 제안은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랠프 신부도 메기를 그렇게 사랑했으면서, 신학자인 사람이 돈의 유혹에 엄청난 재산을 선택한다는 것도 이해가 좀 안되고 말이야.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사람이라 아빠의 정서와 다른 것인지 모르겠구나. 아무튼 메리 카슨은 얼마 후 죽었고, 랠프 신부는 엄청난 유산을 받고 메기를 떠나게 된단다. 메기와 식구들은 지금 살고 있는 저택과 농장만 유산으로 받게 되었어. , 랠프는 메기에게 매년 2000파운드를 주어야 한다는 내용이 유서에 있었단다.

….

이제 성인인 된 프랭크는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가 아버지는 실수로 프랭크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프랭크는 상심하고 집을 떠나게 된단다. 몇 년 뒤 시비가 붙어 누군가와 싸우다가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해서 감옥에 복역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단다. 메기의 가족에게 불행은 이것은 시작이었어. 농장 주변에 큰 화재가 일어나서, 아버지 클레어리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를 찾아 나선 스튜어트가 멧돼지의 공격을 받아 죽고 말았단다. 가난을 벗어나 행복을 찾아온 땅에서 그들을 반기는 것은 계속된 불행들뿐이로구나. 이런 불행들의 소식을 접한 랠프 신부님이 위로해 주려고 메기 가족을 찾아왔단다. 오랜 만에 만난 메기와 랠프 신부는 서로 애타게 찾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하지만 랠프 신부는 다시 떠났어.


2.

일손이 부족한 농장에 루크라는 일꾼이 한 명 와서 일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메기는 그 루크와 사랑하게 되어 되어 결혼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메기의 마음 속 진정한 사랑은 여전히 랠프 신부님이었어. 랠프 신부님을 잊기 위해 루크와 만나고 결혼하고루크가 다정다감한 사람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루크는 돈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고, 자존심도 센 사람이었어. 결혼하고 나서 그냥 메기네 농장에서 함께 살아도 되었건만, 멀리 퀸슬랜드에서 신혼집을 차렸단다. 메기도 돈을 벌어야 한다면서 가정부로 일해야 한다고 했어. 자신은 사탕수수 농장으로 돈을 번다고 떠나면서 집에는 거의 오지도 않았단다. 루크의 한가지 목표는 오직 자신의 농장을 갖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돈을 악착같이 모으는 것이었어.

결혼을 하고 나서 오히려 혼자 지내게 된 메기. 다행히 메기가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집의 부부가 다정하게 잘 대해주었단다. 특히 앤 부인은 메기를 딸처럼 잘 대해 주었어. 메기가 첫딸 저스틴을 낳았을 때도 앤 부인이 다 보살펴 주었어. 루크는 아이를 낳았는데도 오지 않았어. 이때 랠프 신부님이 찾아와 메기를 위로해 주었는데, 어찌 이렇게 삶이란 게 마음대로 되지 않고 틀어져서 나아가는지

혼자 아이를 힘들게 키우는 메기에게 앤 부인은 휴가를 주었어. 아기도 자신이 키울 테니 혼자 쉬고 오라면서 한적한 섬의 리조트도 알아봐주었어. 메기는 그 리조트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쉴 수 있었단다. 그런데 그곳에 랠프 신부가 찾아왔어. 앤 부인이 메기와 랠프 신부 사이를 알아채고 알려준 것이었지. 그 섬의 리조트에서 메기와 랠프 신부에게는 아무런 방해도 없었단다. 성직자의 직위도 잠시 잊고 그들은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어. 메기에게는 얼마 만에 느껴보는 행복일까.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행복일 수도섬에서 휴가를 마치고 랠프 신부는 다시 성직자로 돌아와서, 로마의 바티칸으로 가게 되었어. 그리고 그 섬에서 짧은 행복은 데인이라는 아이를 낳게 되었단다. 메기도 이제 자신의 삶을 다시 찾기 위해 루크와 이혼하고 가족들이 있는 농장으로 돌아왔단다. 엄마 휘모나는 메기를 따뜻하게 받아주었어.

….

당시 세계는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단다. 메기의 쌍둥이 동생들인 제임스와 패트릭도 참전을 하게 되었는데, 패트릭은 부상을 당하고 불구의 몸으로 돌아오게 되었어. 가족의 시련은 아직 끝나기 않은 것 같구나.


3.

시간을 또 흘러 메기와 랠프 신부의 아들 데인이 십대 소년이 되었어. 데인은 커서 신부가 되겠다고 했단다. 메기는 데인을 바티칸에 있는 랠프에게 보냈어. 그런데 랠프는 데인이 자신의 아들이란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단다. 메기가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거든. 다들 루크의 아들인줄 알고 있었지. (아참, 메기의 엄마 휘모나만 진작에 눈치를 채고 있었고, 말씀은 안 하셨지만…) 그리고 첫딸 저스틴은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영국으로 떠났단다.

이제 다들 커서 제 앞가림을 하게 된 아이들은 둔 메기더 이상 찔릴 가시가 없었을까. 하지만 그 전보다 더 큰 가시가 메기를 찌르려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데인이 그리스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 바다에 빠진 이를 구해주고 그만 자신은 파도에 휩쓸려 죽는 사고가 발생했단다. 이 소식을 들은 메기는 하늘이 무너지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남겨진 식구들을 위해, 특히 딸 저스틴을 위해 무너지지 않으려고 했어. 가시나무새처럼 말이야.

데인의 죽음에 저스틴은 심한 자책감에 세상을 등지려고 했어. 사실 그 그리스 여행은 데인과 저스틴이 함께 가려고 했었거든. 그런데 저스틴이 남자친구와 약속 때문에 데인이 혼자 가게 된 것이고저스틴은 함께 여행을 갔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심하게 자책하고 있었단다. 그런 저스틴을 다시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온 이는 엄마 메기였단다. 저스틴은 엄마 메기의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를 받고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단다. 이렇게 소설을 끝이 났어. 한 평생 크고 작은 가시에 찔리면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메기가 바로 가시나무새였던 것이란다.

….

아빠가 생각하기에 랠프 신부이 잘못한 것 같구나. 랠프 신부가 진정 사랑하는 존재는 하느님이 아니고 메기였는데 말이야. 평생 곁에서 메기와 사랑으로 살아갔다면 그 자신에게도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었을 것이고, 메기가 찔린 수많은 가시들은 찔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야.

좋은 작품들을 남기시고 이제 고인이 되신 콜린 메컬로 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며, 오늘은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1915 12 8, 메기 클레어리에게 네 번째 생일이 돌아왔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1-24 00: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가시나무새는 정말 마스터스 오브 로마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의 글이네요. 같은 작가라고 보기 힘들정도로 말이죠. 왠지 저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그 콜린 매클로로만 알고싶다는 생각이..... ^^;;

bookholic 2022-01-25 06:03   좋아요 0 | URL
저도 읽으면서 <가시나무새>가 왜 그렇게 많은 인기를 끌었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절은 그랬나?
 














(19)

[계승범] 그렇죠. 명에 대한 광해군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죠. 게다가 명이 후금 진영으로 들어가 선제공격을 하겠다며 원군을 요청했는데, 광해군은 명나라 군대가 반드시 패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광해군은 조선이 명을 도와서 군대를 보내면 아까운 조선 병사들만 죽을 것이고 거기에 후금의 원한까지 사서 후금이 우리에게 보복하려 들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죠. 반대로 신하들은 명이 분명 이길 텐데 우리가 미적거리면서 확실하게 돕지 않으면 나중에 후환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누가 이길 것인가? 그 판단에 차이가 있었던 거죠.

(77)

[이다지] 저는 이 얘기 들으면서 중국의 유명한 명의 편작이 떠올랐어요. 편작이 그런 말을 했잖아요. “저보다 더 뛰어난 의사 두 명 있는데 모두 제 친형들입니다. 형들 중에는 큰 형님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님이 그 다음입니다. 큰 형님은 환자가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환자의 얼굴만 보고 무슨 병이 생길지를 미리 알고 치료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둘째 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미약할 때 병을 알아내어 치료해 주니 환자들은 간단한 치료를 받은 줄로만 알고 크게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병이 커져서 심한 고통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치료를 시작하니 환자들은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고 믿고 고마워하는 것일 뿐입니다.” 양생이란 결국 이런 개념이 아닐까요?


(94-95)

[정철상] 허균이 남긴 글과 기록을 추론해 볼 때, 허균은 언변능숙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외향적이며 낙천적 성격을 가지고 있죠. 실제로 허균은 임진왜란 시기에 왜군에 쫓기면서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경치를 즐기고 누정마다 걸린 시판을 평하는 여유까지 즐겼다고 합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허균은 풍부한 직관적 감성을 지닌 것으로 추론됩니다. 이러한 성격이 타고난 천재성과 결합되어 소설이나 시 등 문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허균은 감성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추상적 세계를 다루는 이론 분야에도 능했습니다. 유학뿐 아니라 불교, 도교, 천주교 등을 깊이 있게 파고든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02-103)

[신병주] 허균의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가장 뚜렷이 보여 주는 글이 바로 <호민론>입니다. <호민론>에서는 백성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눕니다. 먼저 시키는 일만 하는 백성인 항민(恒民)이 있습니다. 또 세상에 원망을 품는 원민(怨民)이 있죠. 원민은 저항은 하지 않고 억울함을 속으로 삭힙니다. 반면 세상에 대한 울분이다 원한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호민(豪民)입니다. 결국 활빈당을 조직해서 조정 관리들에게 맞서는 홍길동이 호민이라는 구상이죠.


(148)

[최태성] 일단 명나라는 멸망했을 거 아니예요. 그럼 광해군 그늘 밑에서 친청 세력이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실제로 이로부터 100년 뒤에 북학파가 나와서 청의 문물을 수용하자고 주장하잖아요.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다면 아마 그런 세력이 더 일찍 형성되었을 테고, 청의 문물을 빨리 수용하면서 근대 사회로 일찍 진입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일제강점기도 없었을 테고 산업화도 더 빨라졌겠죠.


(176)

[윤성은] 그렇죠. 이 인절미가 오늘 얘기하는 주제와 연이 깊은 음식이거든요. 백성들이 피란 온 인조에게 인절미를 가져다 줬다고 해요. 그때 이 떡을 처음 먹어 본 인조가 너무 맛있어서 누가만든 떡이냐?’ 했더니, 답하기를 이름은 정확히 모르나 임씨가 만든 떡입니다.’ 해서 임절미, 임절미 하다가 인절미가 됐다는 거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 - 기린 덕후 소녀가 기린 박사가 되기까지의 치열하고도 행복한 여정
군지 메구 지음, 이재화 옮김, 최형선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어렸을 때 봤던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의 문제가 답과 함께 아직도 기억이 나는구나. “사람의 목뼈는 7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기린의 목뼈는 몇 개인가요?” 이 문제였는데, 질문자의 의도를 눈치챘다면 답인 7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거야. 아무튼 아빠는 그걸 보고 나서, 모든 포유류의 목뼈는 7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목이 그렇게 긴 기린 목도 똑같이 7그게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어. 목뼈 하나하나가 길면 되지, 개수가 뭣 중요하겠니.

길쭉하게 빼어난 몸매와 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큰 눈을 가지고, 때론 우아하게 걷고, 때론 열정적으로 달리는 기린. 기린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구나. 특히 어린 아이들도 더욱 더너희들도 어렸을 때부터 동물원에서 만난 기린의 모습에 웃음꽃을 피웠잖니.

그렇게 어렸을 때 기린을 좋아한다고 해서 어른이 되어서도 어렸을 때만큼의 기린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 같구나. 그런데 이번에 아빠가 읽은 <나는 기린 해부학자입니다>의 지은이 군지 메구는 어른이 되어서도 기린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셨나 보구나. 18세가 되고 나서 평생 기린 연구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는구나. 기린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린의 생태를 연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린 몸 자체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기린을 해부하는 일도 해야 하는 거지. , 보통 동물들을 좋아하는 것은 살아 있는 귀여운 모습들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데, 죽음 시체의 모습, 그리고 그걸 칼로 직접 해부한다고 하면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하구나.


1.

막상 기린을 연구한다고 하니, 연구할 것은 참 많았어. 우리가 생각해봐도 다른 동물들과 달리 기린 만의 유별난 특징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기린은 왜 목이 길어졌을까? 기린은 긴 목을 어떻게 움직이고 지탱하고 있을까? 기린의 목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그 외 여러 가지

이런 것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기린을 해부해야 하는데, 그럼 기린의 시체들은 어떻게 구하게 될까.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기린을 볼 수 있는 곳은 동물원뿐이야. 그래서 동물원으로부터 기증을 받는다고 하는구나. 지은이 군지 메구는 10년 동안 30마리의 기린을 해부했다고 하는구나. 기린이 예고를 하고 죽는 것이 아니라서, 기린의 죽음 소식, 그러니 기린의 해부 일정은 예측이 안되기 때문에 자신의 스케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대. 기린이 죽고 나서 오랫동안 방치하지 못하고 바로 해부를 해야 하니까 말이야.

기린이 크다 보니 무니 무게도 엄청 나갔어. 기린 전체를 온전하게 운송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죽은 기린은 늘 몇 부분으로 절단되어 나뉜 다음 배달이 된다고 하는구나. 보통 머리랑 목이 한 덩어리, 그 밖에 몸통 부분, 다리 부분 등이 나뉘어 배달이 된대. 너무 사실 그대로 이야기를 해 주다 보니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니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비록 죽은 기린이긴 하지만 말이야. 이 책은 너희들과도 함께 읽어보려고 산 것이지만, 이런 리얼한 잔인한 묘사 때문에 아직 어린 너희들에게는 추천해주고 싶지 않더구나.

아무튼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은이 군지 메구는 기린의 목에 대한 숨겨진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것이 목뼈, 그러니까 경추와 연결된 흉추에 있지 않을까 의심했어. 그래서 기린의 온전한 시신을 받아서 연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그런 지은이의 뜻을 이해한 한 동물원에서 협조를 받아서, 분리된 시신이 아닌 온전한 기린 시신을 받았어. 그리고 군지 메구는 드디어 발견하게 된단다. 기린이 그 긴 목을 지탱할 수 있는 이유를 말이야. 그건 바로…. 8번째 목뼈의 발견…. 정확히 이야기하면 기린의 제 1 흉추가 목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단다. 흉추는 원래 움직이지 않는데, 기린의 1흉추는 마치 목뼈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군지 메구는 해부를 통해 1흉추를 움직이게 하는 근육을 발견함으로써, 기린이 스스로 1흉추를 움직여서 마치 8번째 목뼈처럼 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야. 군지 메구의 10년 기린 해부의 여정의 결실이라고 하는구나.

이 책은 기린 덕후라고 할 수 있는 군지 메구의 기린에 대한 연구와 결실을 정리한 책으로 한 사람의 집념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단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아쉬움 점이 많았어. 과학 관련 책이긴 하지만 너무 사실에 대해서만 기술했다는 거야. 논문도 아니고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한 글인데 말이야. 물론 개인적인 에피소드들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것도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글들이었어. 과학 교양서가 좀더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감성의 글들이 포함되어 읽은 이로 하여금 감정을 마사지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그런데 이 책은 그런 점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 이건 아빠의 기준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너희들이 나중에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지. , 그럼 오늘은 짧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기린이 죽었습니다.”

책의 끝 문장: 수많은 표본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자주 공격받는 지금이야말로 ‘3를 잊지 않고 소중히 지켜 나가고 싶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1-22 17: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기린을 좋아해서 기린의 해부학자가 된다고 하는건 또 새로운 발상이네요. ^^

bookholic 2022-01-23 07:3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기린을 좋아한다고 해부학자가 되다니...
만약 지은이가 호랑이나 사자를 좋아했다면...^^
우리 애들이 동물을 썩 좋아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ㅎㅎ
즐거운 일요일 되십시오~~

파이버 2022-01-25 0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선물 받은 책이지만 미뤄두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전문적인 내용이 많은가보네요~ 그래도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글은 언제나 끌립니다.

bookholic 2022-01-25 06:06   좋아요 3 | URL
저는 책표지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은이의 열정도 함께 담겨 있긴 합니다~~^^
즐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