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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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채사장 님의 신간 소식이 반가웠단다. 팟캐스트 <지대넓얇>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쉽게 인문 지식을 쉽게 설명해주는 책을 통해 만났지. 그와 친구들이 진행하던 팟캐스트를 참 즐겨 들었었어. 어느 날 갑자기 그만들 하신다고 해서, 한 동안 쉬다가 시즌 2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구나. 최근에 나온 책들은 초창기 책들에 비해 임팩트가 좀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쓴 책은 소설이라고 하는구나. 소설은 처음인데,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하더구나.


1.

책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이란다. 소마.

소설은 소마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그의 한평생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어린 시절 부족 간인지 나라 간인지 모를 전쟁으로 부모를 잃었단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남아서, 적국 엘가나라는 장수가 데리고 갔단다. 엘가나는 아데사라는 명문가의 사위였는데, 엘가나의 아내는 한나라는 여자였단다.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고, 그 일로 한나는 늘 신경과민 상태의 우울증을 갖고 있었어. 한나는 남의 집 아이, 그것도 이도교의 아이인 소마를 멀리하고, 아이를 자신의 눈에 띄지 않게 하인들에게 지시를 했는데, 나중에는 그 소마를 잘 보살펴주고 소마를 통해 치유 받게 된단다. 한나는 소마의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자기네 식으로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지었단다.

한나의 오빠 바가렐라라는 사람이 있어. 아데사 가문의 실질적인 권력자이자 엄청 무서운 장수이기도 하단다. 바가렐라는 한나가 사무엘을 데리고 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자신의 막내 아들이자 서자인 헤렌을 엘가나와 한나의 양자로 주었단다. 한나는 무서운 오빠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어. 한나는 소마를 아들처럼 생각했지만, 양자이긴 했지만 아들이 생겼으니 헤렌과 소마를 똑같이 대할 수는 없었단다.

헤렌은 당연한 듯 소마를 시기하고 못살게 굴었단다. 그러다가 작은 트러블이 생겼고, 그 일을 헤렌이 친아버지 바가렐라에게 고자질을 했고, 그 일에 연루되었던 소마를 보살피던 하인을 죽여 버렸단다. 그때 소마도 같이 죽이려고 했지만, 한나가 결사적으로 막아서 간신히 살았단다. 이 일이 있고 소마를 다들 멀리했단다. 잘못하면 또 죽을 수 있으니 말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마는 아데사 가문의 하인이라고 생각했어. 한나만이 아들처럼 잘 보살폈단다.


2.

청년이 된 소마와 헤렌. 헤렌은 친아버지 바가렐라의 빽으로 왕립기사단에 들어가게 되었단다.  한나는 오빠에게 사정사정해서 소마도 뒤늦게 왕립기사단에 들어갔단다. 굳이 헤렌이 몸답고 있는 왕립기사단이었을까. 둘이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소설의 재미적인 요소 때문에 지은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현실세계에서 한나라면 이제 헤렌이 떠나고 없으니, 소마를 좀 더 살갑게 대하면서 곁에 두었을 것 같구나.

소마는 왕립기산단에서 네이케스와 고네라는 남매를 만나게 된단다. 그들은 부조리한 이 세상을 바꾸려는 비밀 조직을 갖고 있었어. 소마도 그 조직에 들어갔단다. 그들은 미래를 꿈꾸지만 현실에서도 할 수 있다면 했단다. 그 중에 하나가 마녀 재판에 끌려온 여인들을 구하는 일이란다. 마녀 재판이라고 하면 중세시대에 실제로 있던 일인데, 마녀로 몰린 사람은 누명을 쓰고 화형을 당했단다. 이런 일이 네이케스와 고네의 눈에는 부조리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그들이 이끄는 비밀 조직은 복면을 쓰고 마녀 재판에 끌려온 여인을 구출하는 일을 가끔씩 했단다.

헤렌이 이 비밀조직의 정체를 알게 되고, 다시 삼촌이자 친아버지인 바가렐라에게 알리고, 바가렐라는 기사단장에게 압력을 가해서, 이 조직은 결국 와해되게 된단다. 네이케스를 전쟁터에 보내 버렸어. 그리고 그들은 불법 단체를 만든 벌을 받게 되는데 소마가 고네를 채찍으로 때리는 벌을 받았어. 그들의 저항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아쉬웠단다. 지키는 대로 소마가 고메를 채찍으로 때렸거든. 물론 고네가 괜찮다는 눈짓을 소마에게 보냈어. 일단 순응하고 다음 기회를 볼 생각을 했는지도 있겠구나. 그런데 그 채찍에 독이 묻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했지. 이 일이 있고 소마도 전쟁터로 끌려갔는데, 그곳에서 고네의 죽음 소식을 들었단다. 채찍에 묻어 있던 독으로 죽은 거야.

네이케스도 동생 고네의 죽음 소식을 들었는데, 이 일로 네이케스는 소마를 배신자로 생각했단다. 나중에 만났을 때 소마가 불가피했던 일이고 독이 묻은 줄 몰랐다고 잘 이야기했다면 네이케스도 이해해줄 것 같았는데, 그런 기회가 있을 때도 소마는 침묵했단다.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아.

전쟁터에서 소마는 큰 충격을 받는단다. 전쟁을 통해 죽은 사람은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보다 선량한 백성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그리고 자신의 적국이었던 크레도니아에 투항하였어. 이제 그는 자신의 조국의 적군이 되어 싸우게 되었는데, 그는 크레도니아의 사령관이 되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단다.


3.

그렇게 전쟁과 함께 20년의 시간이 지났어. 소마는 크레도니아의 최고사령관이 되어 있었어. 적국이자 자신의 모국에는 여전히 헤렌이 있었단다. 헤렌과 소마는 적으로 만났고, 결국 소마가 이겼단다. 크레도니아의 정치인들은 소마의 출신성분까지 들먹이며 소마를 의심했어. 거기에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소마는 죽을 뻔했다가 극적으로 탈출했단다. 그래서 소마는 쿠데타를 일으켰어. 이 쿠데타는 성공하여 정권을 잡고 반대파를 모두 숙청했단다.

소마도 권력 시스템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본능적인 모습을 보여주더구나. 우리 인간들이 자신의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소마는 세상의 일인자가 되었단다. 그리고 아데사 땅에 돌아갔단다.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한나의 소식도 궁금하고하지만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았지. 한나는 이미 죽고 없었고, 그 옛날 권력의 중심이었던 바가렐라도 이제 늙은 채 죽어가고 있었단다. 자신과 전투에서 죽은 줄 알았던 헤렌은 폐인이 되어 누군가의 보살핌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으로 살아가고 있었어. 소마는 헤렌을 죽였단다.

계속 극으로 치닫는 느낌을 떨칠 수 없구나. 어린 시절 순순했던 소마가 이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아데사의 저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그 중심에는 네이케스가 있었어. 네이케스와 오해를 풀 정도의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소마는 예전의 소마가 아니었단다. 적으로 만난 소마는 네이케스는 옛친구가 아니고 그저 적군이었어. 네이케스 마저 죽였단다. 둘 간에 대치했을 때 대화를 나눌 만했는데, 아무 말도 없었단다.

이제 그의 적수는 없었단다. 또 세월이 흘렀단다. 일인자가 된 지 10. 크레도니아 곳곳에 기독교 마을이 곳곳에서 생겨났어. 그곳에서 기독교는 이교도였어. 소마는 명령을 내려 기독교 마을을 탄압하라고 했단다. 기독교도들을 모두 죽였어. 어떤 마을은 모든 사람들을 죽였단다. 그 마을에 우연히 살아남은 한 장님 소녀 이오페가 있었는데, 이 소년은 마치 어린 시절 소마를 보는 듯했단다. 소마도 마음에서 혼자 살아났잖니. 자신의 그런 아픈 기억이 있었는데, 그와 똑 같은 만행을 저지르다니그의 오래된 기억도 모두 잊어버린 것 같구나. 소마는 이오페를 데리고 와서 보살폈단다.

이오페가 자라고 이오페는 소마를 마사지해주고 말동무를 해주었단다. 이오페와 함께 하는 시간만이 소마에게 편안함을 주었고, 그 편안함은 사랑으로 발전했단다. 노년에 들어 진정한 사랑을 얻게 된 소마. 그런 소마를 정치인들은 불만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어. 그리고 반대 세력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소마를 불구로 만들어 내쫓아버렸단다. , , , 입을 모두 망가뜨려 소마는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했어. 그에게 남은 감각은 촉각뿐이었지그렇게 불구의 몸이 된 소마는 내면의 세계에서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된단다.

비록 소설이지만. 소마의 행동에 이해하지 못할 부분들이 많았단다. 약간은 답답한 캐릭터였어. 일인자로 최정상에 있을 때조차 그는 세상의 문을 닫고 혼자만의 세상을 구축한 것 같았어.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폭력적인 세상에 적응했던 그가 자신의 세력을 구축을 하지 않았다니 이해가 좀 안 가는구나. 그러니 쿠데타로 수십 년 쌓아 올린 권력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지

채사장 님이 이 소설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단다. 소마가 커가면서 나이 먹으면서 영혼이 성숙했다고 볼 수는 없고, 더 사악해지고 탐욕적으로 바뀌는 모습만 보였거든. 그걸 반면교사 삼으라고 그런 캐릭터를 만드신 건지이런 저런 궁금증이 많이 생긴 채 책을 덮었단다.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아버지는 밤새 신을 태웠다.

책의 끝 문장: 그즈음 북쪽 평원에서 다시 늑대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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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그는 <봄은 가장 잔인한 계절입니다!>라고 말하고 카페에 들어갔지요. 사람이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아야 하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실은 나도 봄에는 신경질적으로 됩니다. 나도 봄이 일깨워 주는 곱고 진부한 추억과 감정 때문에 혼란에 빠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봄을 욕하고 경멸할 생각은 없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봄을 대하면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입니다. 봄이 지닌 순수한 자연성과 의기양양한 청춘 앞에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달베르크가 이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그를 부러워해야 할지, 경멸해야 할지 잘 모르겠군요……


(51)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중요한 것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고, 근본적으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소재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미학적 형상물을 만들어 내려면 유희적이면서도 차분한 태도로, 우월한 입장에서 이러한 소재를 짜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말하려는 내용에 너무 집착해서, 그로 인해 당신의 가슴이 너무 따뜻해진다면 당신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당신은 격하게 되고 감상적으로 되며, 다듬어지지 않은 것, 아이러니가 결여된 것, 양념이 덜 된 것, 지루하고 진부한 것이 나오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냉담한 반응만을 보일 거고, 결국 당신은 좌절하여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겁니다……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거니까요, 리자베타. 감정 말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감정은 언제나 진부하고 쓸모없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망가진, 우리의 정교한 신경 조직의 발끈하기 쉬운 예리함과 차가운 황홀함만이 예술적인 것입니다. 우리 예술가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거나 비인간적으로 될 필요가 있습니다.


(55-56)

하지만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요? 안일하고 지적인 사고를 하는 일에 게으른 인류가 다른 질문과는 달리 이 질문에는 말할 수 없이 끈질긴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그런 건 하늘이 내린 재능이야!> 어떤 예술가에게 감명을 받은 착실한 사람들은 이렇게 겸허하게 말합니다. 이들의 선량한 견해에 따르면 명랑하고 고상한 감명을 주려면 그 원천인 예술가도 틀림없이 명랑하고 고상할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리하여 예술가의 이러한 재능이 극히 사악한, 극히 미심쩍은 <재능>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술가들이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자아 존중감이 건실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59-60)

그럼, 아까 말한 <인식>의 문제로 돌아가서, 천성적으로 선량하고 온화하며 호의적이고, 약간 감상적이면서 남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혜안이 있어서 심신이 지친 나머지 파멸 상태에 이르게 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세상의 슬픈 일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관찰하고 주의 깊게 살피며,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일이라도 자신의 사고 체계 속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존재의 혐오스러운 허구에 대해 벌써부터 도덕적인 우월감에 가득 차서 기분이 좋은 척해야 합니다 , 물론 그래야지요! 하지만 표현의 즐거움을 누리다가도 가끔씩 이런 일이 당신에게 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말일까요? 모르겠습니다.


(61)

진지하게 말하자면, 문학 언어가 우리의 감정을 그토록 신속하고도 피상적으로 처리하는 데는 얼음같이 차디찬, 화가 날 정도로 불손한 사정이 숨어 있는 겁니다. 당신의 가슴이 너무 벅차오르면 당신은 어떤 감미롭거나 숭고한 체험에 온통 사로잡혀 있다고 느낄 겁니다. 이때는 더 이상 간단한 일이 없습니다! 글쓰는 문사(文士)한테 가면 모든 거시 순식간에 정리되어 나올 겁니다. 그는 당신의 문제를 분석하고 명확히 표현하여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견해를 표명할 겁니다. 이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그에 대한 감사의 인사말도 듣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68)

있을 것 같기도 해요. …… 토니오, 난 당신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들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오늘 오후에 한 모든 말에 알맞은 대답을 해 드리지요. 그리고 그것이 당신을 그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기도 합니다. , 그럼 말하지요! 그 해답은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당신은 누가 뭐래도 한 사람의 시민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요?” 그는 이렇게 물으며 약간 주저앉는 듯했다.

그렇지 않아요? 충격이 크겠죠. 또 당연히 그래야 하고요. 그러니 형량을 조금 줄여 주려고 합니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당신은 <길을 잘못 든 시민>입니다, 토니오 크뢰거-<길을 잃고 헤매는 시민>이지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그는 단호한 태도로 일어서더니 모자와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고맙습니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이젠 안심하고 집에 갈 수 있겠습니다. 난 처리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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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365)

당신은 재건의 역사를 식물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 작업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인류는 그간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역사만을 써온 것일까요.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오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


(379)

마음도 감정도 물질적인 것이고, 시간의 물줄기를 맞다보면 그 표면이 점차 깎여나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어떤 핵심이 남잖아요. 그렇게 남은 건 정말로 당신이 가졌던 마음이라고요. 시간조차 그 마음을 지우지 못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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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5 - 광해군에서 인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5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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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가끔씩 읽는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 5권을 읽었단다. 이 책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방송에 나왔던 내용을 편집한 책이라서 쉽고 재미있게 잘 써져 있었단다. 너희들이 조금 더 크면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구나. 너희들이 역사를 좀 안 좋아하는 것 같지만 말이야. 이번 <역사저널 그날> 5권에서는 광해군부터 인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단다. 우리 Jiny도 학교에서 역사를 배워서 광해군과 인조라는 사람을 들어봤는지 모르겠구나. 작년에 <역사저널 그날> 4권의 이야기가 임진왜란 이야기였는데, 그 다음 이야기라고 보면 된단다.

광해군도 왕인데 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왕자리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란다. 연산군과 광해군이렇게 두 명의 왕이 왕자리에서 쫓겨났지. 사실 단종도 오랫동안 노산군으로 불렀는데, 단종은 쫓겨난 것이 아니라 삼촌한테 왕자리를 빼앗긴 것이니 그들과는 좀 다르단다. 그런데 연산군과 광해군도 좀 많이 다르단다. 연산군이 쫓겨난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지만, 광해군이 쫓겨난 것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부당하다는 의견이 많이 있단다. 아빠도 오래 전에 한명기 님의 <광해군>이라는 책을 통해서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된 이후 광해군을 쫓아낸 것은 부당하고 생각하게 되었단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가 된 조선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 그 와중에 어려운 국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모습이 현명한 왕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단다. 당시 신하들 대부분은 명나라를 받들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광해군은 국제정세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대처했어. 당시 명나라는 쇠퇴해가고 있었고, 여진족이 세운 후금은 기병부대를 앞세워 세력이 커지고 있었거든. 광해군은 그런 후금을 오랑캐로 보지 않고 하나의 나라로 보았고, 그런 명과 후금 사이에 조선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거야. 그는 명의 눈치도 봐야 하고, 후금의 눈치도 보면서 요령껏 대처했단다. 명에서 조선에 원군을 요청했을 때도 일단 원군을 보냈지만 후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전투에서 지면서 바로 항복을 했단다. 당시 이 원군을 이끌던 사람은 강홍립 장군이라는 사람인데 사전에 광해군과 의견 조율이 있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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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계승범] 그렇죠. 명에 대한 광해군의 감정이 좋을 리가 없죠. 게다가 명이 후금 진영으로 들어가 선제공격을 하겠다며 원군을 요청했는데, 광해군은 명나라 군대가 반드시 패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광해군은 조선이 명을 도와서 군대를 보내면 아까운 조선 병사들만 죽을 것이고 거기에 후금의 원한까지 사서 후금이 우리에게 보복하려 들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죠. 반대로 신하들은 명이 분명 이길 텐데 우리가 미적거리면서 확실하게 돕지 않으면 나중에 후환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누가 이길 것인가? 그 판단에 차이가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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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세도 어려웠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내 사정도 어려웠어. 광해군은 여러 당파의 인재들을 등용하였고, 나라의 조세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대동법을 시행하려고 했단다. 대동법은 기득권의 거센 반발로 결국 경기도만 시범 적용하는 것으로 축소되었어.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들의 자기 밥그릇 챙기는 버릇은 알아줘야겠구나. 광해군의 콤플렉스는 자신이 적자가 아닌 서자라는 사실이었어. 그래서 늘 역모 사건에 대한 걱정이 있었던 것 같아. 실제로 적정자인 영창대군을 왕으로 세우자는 역모가 발생하기도 했단다. 이 사건이 진압되긴 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여덟 살이었던 영창대군도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단다. 물론 영창대군은 이 역모와 관련이 없었지. 지금은 여덟 살로 어리지만 그가 스무 살이 된다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강화도로 유배를 간 영창대군은 불을 뜨겁게 달군 방에서 죽게 되는데 이를 주도한 사람이 이정표라는 사람이란다. 광해군의 지시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구나. 광해군이 잔인하다고 하지만, 당시 조선에서 권력 싸움으로 상대진영을 죽이는 것은 아주 흔한 것은 아니지만 아주 드문 것도 아니었단다. 태종이나 세조 모두 가족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잖니.

광해군은 영창대군의 엄마이자 선조의 왕비인 인목대비도 폐위시켰단다. 자신의 친엄마는 아니지만, 현재는 자신의 엄마이니, 엄마를 폐위시킨 격이 된단다. 위에서 아빠가 이야기한 것들이 인조 세력이 반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들이야. 명과 후금 사이의 줄다리기 외교를 한 것은 조선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고,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킨 것은 권력 다툼의 부산물이라고 보면 이것이 과연 반정을 할 정도의 잘못이냐 라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날까지 계속 논란이 되었던 거야.


1.

하지만 인조반정은 손쉽게 성공하고 만단다. 광해군도 반정이 일어나기 전에 반정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대. 지나가는 소문으로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반정이 일어나고 왕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유배 생활. 유배를 가서도 18년 동안 지내고 나서 나이 들어 죽었다고 하는구나. , 그의 삶도 참 파란만장하구나.

만약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고 광해군이 계속 왕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 후금이 이름을 바꾼 청나라와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구나. <역사저널 그날> TV 프로그램의 패널로 참여하신 역사학자 최태성 님은 더 낙관적으로 보시더구나. 인조반정, 참 안타까운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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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최태성] 일단 명나라는 멸망했을 거 아니예요. 그럼 광해군 그늘 밑에서 친청 세력이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실제로 이로부터 100년 뒤에 북학파가 나와서 청의 문물을 수용하자고 주장하잖아요. 광해군이 계속 집권했다면 아마 그런 세력이 더 일찍 형성되었을 테고, 청의 문물을 빨리 수용하면서 근대 사회로 일찍 진입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일제강점기도 없었을 테고 산업화도 더 빨라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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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돌이킬 수 없는 법. 인조 반정은 일어났고, 인조와 반정세력은 이제 자신들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어. 무너져가는 명나라에 무조건 숭배하고, 강력해지는 후금을 멸시하고는 감각 떨어진 세력들. 그리고 인조반정에 성공한 데 기여를 했다고 공신책봉을 하는데, 왜 나는 적게 주냐고 불만인 사람들그릇이 딱 그 정도에 모양도 엉망인 그릇들이었단다. 인조 또한 준비된 왕이 아니니 우왕좌왕. 그저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진 신하들의 이야기나 따라야지

공신책봉에 불만을 가졌던 이 중에 이괄이라는 사람이 변방으로 좌천까지 되고 역모를 꾸민다는 누명까지 쓰자 화가 나서 실제로 난을 일으킨단다. 역사는 이괄의 난이라고 불렀어. 이 한 사람이 일으킨 난도 제대로 막지 못하고 한양을 두고 공주성까지 도망을 가는 것이 당시 인조와 측근 세력이었단다. 그러면서 후금을 쳐야 한다는 소리를 하다니이괄은 한양까지 점령을 했어. 그렇다고 이괄의 군대도 제대로 된 군대가 아니다 보니 오래 가지는 못했단다. 한양 입성 3일만에 정규군에 의해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단다.

이 반란에 참여했던 한윤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반란이 실패하고 후금으로 도망가서 투항했단다. 조선의 사정을 잘 알고 있고, 조선 조정에 미움 박힌 그가 후금에 가선 조선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조선 조정이 갖고 있는 후금에 대한 의견에 거짓말까지 더해서 이야기를 했겠지. 당시 후금은 누루하치가 죽고 홍타이지가 정권을 잡았는데, 홍타이지는 늘 조선에 강경한 자세를 보였던 사람이란다. 거기에 한윤의 이야기까지 들었으니그것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겠지만, 후금은 명을 공격하기 전에 후방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을 쳐들어왔단다. 정묘호란이었어.

이때 한윤은 후금의 앞잡이가 되어 함께 쳐들어왔단다. 후금의 기병부대를 조선이 막을 힘이 있었겠니. 다시 도망가야지. 이번에는 강화도로 도망을 갔단다. 기병부대가 주력인 후금이 바다를 건너오지 못하겠다는 생각으로육지에 있는 백성들이 어떻게든 나 몰라라 하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강화도에 콕 박혀 있는 인조와 신하들. 후금은 여기서 오래 시간을 끌 수 없어서 먼저 화친 요청을 했고, 후금과 조선의 관계는 형과 아우 같은 관계를 갖자고 했단다. 인조는 이에 동의하고 강화도에서 나와 한양에 입성했단다.

지금이라도 국제정세를 잘 파악하고 후금과 사이를 좋게 유지해야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후금에 대한 자세는 오랑캐를 보는 듯한 자세였단다. 외교 사절단이 와도 오랑캐 취급을 해서 그들 속을 뒤집어 놓는 등 다시 사이가 급격하게 안 좋아졌단다. 얼마 뒤 홍타이지는 다시 조선을 쳐들어왔단다. 인조는 이번에도 강화도로 도망을 가려고 했지만, 타이밍을 놓치고 남한산성으로 도망갔단다. 남한산성이 지대가 험하긴 하지만, 바다 위에 섬도 아니고 날씨는 엄청 추운 겨울이고, 먹을 것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몰래 강화도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빙판길에 넘어져 다쳐 다시 남한산성으로….

이 싸움은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고, 산성 안에 갇혀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겠니거기에 강화도 마저 무너지고 말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단다. 사실 강화도에 왕과 신하들의 가족들이 대피하고 있었거든결국 조선의 왕 인조는 항복을 하고, 삼전도에서 삼배구고구례라는 굴욕을 감당해야겠단다. 이 일을 인조 속마음은 굴욕이라고 생각했을지는 잘 모르겠구나. 그저, ,,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어. 왕이 되면 안 될 사람.

오늘 이 이야기들은 아빠가 예전에 한명기 님의 <병자호란>을 읽고 해준 이야기들과 많이 겹쳤구나. 그 때 이야기해준 독서 편지를 찾아보면 조금은 더 자세히 나와 있단다. 참고하시고


2.

광해군과 인조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 책에는 당시 유명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단다. 그 중에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허준도 나왔어. 허준은 아빠가 이미 다른 책을 읽고 쓴 독서편지에 여러 번 소개를 했던 것 같아서 생략할게. 또 워낙 유명한 사람이니까 말이야. 우리나라 의사의 원탑이라고 할 수 있잖니.

그리고 또 한 사람 허균. 학교에서 허균이라는 사람은 국어교과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사람으로 배웠던 기억이 있어. 아빠가 학창 시절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 역사 교과서에도 그가 나왔는지 잘 모르겠어. 나중에 커서 허균이라는 사람의 실체를 알고 그의 가치관과 그의 최후를 알고 놀랬던 것이 있단다. 그리고 아빠가 좋아하는 위인 중 한 명으로 뽑기 시작했단다.

아빠가 허균을 제대로 알게 된 책은 허경진 님이 쓰신 <허균 평전>이라는 책이었단다. 이 책을 일고 나서 허균 팬이 되어 그가 쓴 산문들을 찾아 읽고, 허균에 대한 책들도 찾아 읽고,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에 관한 책들도 찾아 읽었단다. 읽으면 읽을수록 허균이라는 사람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더구나. 허균은 한마디로 시대를 앞서 산 사람이었어. 예전에도 허균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따로 안 하고, 허균이 주장한 호민론에 대해 설명한 부분만 발췌하는 것으로 대신할게. 아무튼 허균이 역모 사건으로 안타깝게 죽지 않았다면, 더 좋은 작품들을 남겼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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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03)

[신병주] 허균의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가장 뚜렷이 보여 주는 글이 바로 <호민론>입니다. <호민론>에서는 백성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눕니다. 먼저 시키는 일만 하는 백성인 항민(恒民)이 있습니다. 또 세상에 원망을 품는 원민(怨民)이 있죠. 원민은 저항은 하지 않고 억울함을 속으로 삭힙니다. 반면 세상에 대한 울분이다 원한을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호민(豪民)입니다. 결국 활빈당을 조직해서 조정 관리들에게 맞서는 홍길동이 호민이라는 구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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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인조 세력이 반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광해군의 죄목은 숭청배명과 폐모살제였다.

책의 끝 문장: 이런 참담한 비극은 꼭 막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하죠.


[이다지] 저는 이 얘기 들으면서 중국의 유명한 명의 편작이 떠올랐어요. 편작이 그런 말을 했잖아요. "저보다 더 뛰어난 의사 두 명 있는데 모두 제 친형들입니다. 형들 중에는 큰 형님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님이 그 다음입니다. 큰 형님은 환자가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환자의 얼굴만 보고 무슨 병이 생길지를 미리 알고 치료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마운 줄을 모릅니다. 둘째 형님은 환자의 병세가 미약할 때 병을 알아내어 치료해 주니 환자들은 간단한 치료를 받은 줄로만 알고 크게 고마워하지 않습니다. 저는 병이 커져서 심한 고통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치료를 시작하니 환자들은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고 믿고 고마워하는 것일 뿐입니다." 양생이란 결국 이런 개념이 아닐까요? - P77

[정철상] 허균이 남긴 글과 기록을 추론해 볼 때, 허균은 언변능숙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외향적이며 낙천적 성격을 가지고 있죠. 실제로 허균은 임진왜란 시기에 왜군에 쫓기면서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경치를 즐기고 누정마다 걸린 시판을 평하는 여유까지 즐겼다고 합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허균은 풍부한 직관적 감성을 지닌 것으로 추론됩니다. 이러한 성격이 타고난 천재성과 결합되어 소설이나 시 등 문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허균은 감성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추상적 세계를 다루는 이론 분야에도 능했습니다. 유학뿐 아니라 불교, 도교, 천주교 등을 깊이 있게 파고든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P94

[윤성은] 그렇죠. 이 인절미가 오늘 얘기하는 주제와 연이 깊은 음식이거든요. 백성들이 피란 온 인조에게 인절미를 가져다 줬다고 해요. 그때 이 떡을 처음 먹어 본 인조가 너무 맛있어서 ‘누가만든 떡이냐?’ 했더니, 답하기를 ‘이름은 정확히 모르나 임씨가 만든 떡입니다.’ 해서 임절미, 임절미 하다가 인절미가 됐다는 거죠.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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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타국에 나라를 빼앗긴 슬픈 현실, 말문마저 탄압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이중섭은 민족의 존엄성을 그림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 존엄성을 은밀하게 담아 우리 민족만이 알아챌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할 존재는 소였습니다. 그의 소 사랑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틈만 나면 들에 나가 소를 구석구석 관찰하며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기숙사에 있는 그의 방에는 소의 몸통, 앞발, 뒷발, 꼬리, 머리 등을 스케치한 그림들로 가득했고, 중섭은 그 스케치와 함께 잠들었다고 합니다. ‘소를 나만의 방식으로 그려내겠다는 그의 열정은 주변 지인들이 보았을 때 미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44)

우리는 왜 이중섭을 국민화가라 부를까요? 아마도 그의 삶에서 나온 소를 비롯한 모든 그림이 20세기 한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는 타인의 삶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 자체를 소에 이입해 그렸죠. 그가 겪은 고난과 아픔은 당시 한반도 위에서 생을 이어가던 모든 이의 고난과 아픔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고난과 아픔을 직접 겪어본 적 없지만, 이상하게도 중섭의 그림을 볼 때마다 마치 기억 속에 묻어둔 어떤 파편을 끄집어내 마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아마 중섭이 시대의 산증인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그림에 온전히 이입시키고 있기에 가능해진 일일 것입니다. 그 결과, 중섭의 그림은 영원히 살아 숨 쉬며 우리와 감정으로 소통합니다. 중섭과 중섭의 그림은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들어와 애달프면서도 따뜻한기억의 조각이 됩니다. 그렇게 중섭은 국민화가로 우리 마음 한편에 남게 되었습니다.

(59)

이를 위해, 혜석이 선택한 아이템은 붓과 펜이었습니다. 붓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서 자신의 화업을 만들어가는, 신여성의 길을 가는 지팡이였습니다. 펜은 여성 운동가로서 자신의 사상을 글로 표현해 세상에 알리는 확성기였죠. 사실 혜석을 최초의 서양화가라고만 기억하고 평가하는 것은 많이 아쉽습니다. 글쓰기에도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문필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글을 정말 잘 씁니다.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작법이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합니다. 단순히 논설문을 넘어 시, 소설, 희곡, 수필 등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자유자재로 구사합니다. 글로써 자신의 생각과 감정, 더 나아가 사상까지 솔직담백하게 담아냅니다. 그녀의 글은 흡입력이 상당하죠.

(114)

당시 내 머릿속에는 민족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어요. 모두들 서양화만을 그린다면 동양화는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그는 동양화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전통 동양화가 아닙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조화롭게 융합시키는 미지의 길을 선택합니다. (사실상 지구상에) 어느 누구도 가본 적 없는 그 길을 개척하기로 한 것이죠. 동양화로는 이미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오른 응노. 그렇기에 이제 그가 할 일은 서양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서른두 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가족들에게 논밭까지 장만해주던 간판점 개척사를 미련 없이 처분하고 말이죠.

(121)

노력. 그것도 목적이 있는 노력. 50대의 나이에도 항상 깨어 있고자 노력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작품에 반영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이응노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예술에서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시대에 깨어 있던 그의 작품은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전에 출품됩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판매되어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됩니다. 곧 이어 자크 라센느(세계미술평론가협회 프랑스 지부장)가 프랑스로 그를 초청하죠. 이미 한국미술계에서 승승장구하며 환갑을 앞두고 있던 거장 이응노. 이제 좀 쉬겠다고  해도 누구도 안 말릴 나이에 그는 새로운 도전에 또 한 번 몸을 내던집니다.

(138)

한국인이지만 한국에 갈 수도, 작품을 나눌 수도 없던 예술가. 20년 전부터 주변에서 권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이 거절해왔던 그것, 프랑스로의 귀화를 1983년의 응노는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랑스 사람이 되나, 나는 한 번도 내 조국을 잊어본 일이 없어요. 비록 조국이 나를 버린다 해도 난 나의 피와 정신 속에 살아 있는 조국을 버릴 수 없지.’ 유럽에 온 이후 끝까지 한국 신문을 놓지 않았던 그. 전시를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저 멀리 보이는 한반도를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 프랑스 유수의 미술관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국가사업을 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재능이 외국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에 깊은 안타까움을 토론했던 그.

(139)

나는 우리가 쓰는 말과 문자, 흰 옷을 입는 기상 등 깨끗하고 고상하고 착한 우리 민족성을 그리고 싶습니다.”

 -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 중에서

격동의 20세기 한국의 근현대사. 끝없이 변모하던 시대의 물결을 예민하게 감각하며 자신의 작품을 변신시킨 예술가. 자칫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민족의 예술정신을 현대에 살아 있게 하고자 삶의 모든 것을 던진 예술가. 86년의 생애 수없이 작품의 외형을 변신시켰지만, 그 안에는 오직 인간에 대한 순수한 애정만을 채웠던 고암 이응노. 시대를 초월해 그의 작품에서 영원히 울려 퍼져 나갈 시는 이것이 아닐까.

모두, 함께, 어울려, 자유와 평화의 춤을.

(167)

(유영국)에게 사업은 가족을 경제적으로 지키고, 자신이 예술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예술에 대해선 무한한 꿈을 가지고 있던 이상주의자였지만,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선 돈이라는 수단이 기반이 되어야 함을 알고 있던 현실주의자였죠. 그런데 그는 또 너무 많은 돈을 원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243)

백자가 가진 평범한 빛깔과 평범한 형태. 한마디로 평범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환기는 지극히 평범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직관으로 깨닫습니다. , 조선 백자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닭이 알을 낳듯이 자연에서 출산한 것임을 환기는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백자를 빚은 조선의 도공에게서 찾습니다. 조선의 도공은 완벽한 비례와 균형을 갖춘 도자기를 잘 만들기 위해 인위적인 이론, 규범, 기교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잘 만들고 싶은 마음 없이그저 꽃을 피우는 무심(無心)’한 자연처럼, 도공은 무심하게 백자항아리를 빚습니다. 자연과 하나되어 무심의 경지에 이른 도공이 빚었기에 백자항아리가 자연 그 자체의 미=평범의 미를 고스란히 품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조선이 가진 미의 정수이며, 우리의 미가 가진 특유의 멋임을 통찰하게 됩니다.

(290)

그 평범한 서민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생존을 위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평범한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 그리기를 반복하는수근처럼 말이죠. 전쟁이 몰고 온 비참한 상황 속에서 가족을 위해 그림을 그리던 수근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반복적인 그림 그리기와 서민들의 반복적인 일이 결국 모두 가족을 위한 노동이었음을. 평범한 서민 중 한 명이었던 수근은 자신과 그들과의 끈끈한 동질성을 발견합니다. 문만 나가면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서민들에게서 깊은 동정과 연민을 느끼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따뜻한 온정을 느끼며. 마치 그들에게서 자신을 보는 것과 같던 수근은 그들을 화폭에 담습니다. 그 어떤 고상한 정신도, 심오한 주제도 그의 그림에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현실이었고, 주변에서 함께 숨 쉬며 하루를 살아내던 사람들의 현실이었습니다. 수근은 자신의 자화상과도 같은 그 평범한 사람들을 화폭에 담고 또 담기를 반복합니다.

(316)

나는 소녀 적부터 가슴속에 커다란 감상의 주머니를 지니고 있다. 그 주머니가 이날 이때까지 나를 살게 하는 것 같다.”

소녀 시절부터 가슴에 품어 온 감상의 주머니’. 그 주머니에서 외할아버지와의 행복한 추억이 담긴 <조부>가 나왔듯이 뱀 역시 그 주머니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경자에게 뱀은 행복한 추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릴 적, 친구(화자)가 산나물을 캐다 독사에 물려 죽은 기억이 뇌리에 남아 있는 만큼 뱀은 저주를 불러오는 악한 것이었죠. 자신의 삶이 저주의 늪에서 빠져나와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감상의 주머니에서 뱀을 끄집어냅니다. 그리고 그 저주의 대상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기로 합니다. 자신의 삶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저주를 물리치기 위해 뱀을 그리며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합니다. 말이 좋아 예술이지 그녀에게 이 행위는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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