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속으로 - 한국 문학사에서 지워진 이름. 평생을 방랑자로 산 작가 김사량의 작품집
김사량 지음, 김석희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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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을 처음 알라딘 서재에서 보고, 지은이 김사량 님이 아빠의 기억 속에서 떠 올랐단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김사량에 대한 분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 분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 분에 대한 평전을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기억. 하지만 그 다짐은 실천에 옮기지 못했지. 시간이 아빠의 그 다짐을 잊게 했거든…^^ 지금은 어떤 책에서 김사량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구나. 기록의 힘을 빌려보았단다. 2010년에 읽은 이원규 님의 <독립전쟁이 사라진다>였구나. 김사량 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당시 이원규 님의 <독립전쟁이 사라진다>를 읽고 쓴 독후감에 김사량 님에 대한 아빠의 느낀 점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단다. 졸필이긴 하지만, 잊혀졌던 당시 아빠의 감정이 다시 기억났고, 김사량 님이 어떤 분이었는지도 어렴풋이 떠올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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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참 많은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전부 나의 심금을 울렸지만, 특히 더 내 가슴을 찡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에 김사량이라는 소설가가 있었다. 31세에 조선 출신 일본군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강연을 하라는 일제의 명에 따라 중국으로 떠나 화북전선까지 갔다가 탈출해 조선의용군을 찾아 태항산 근거지로 들어갔다. 그는 일제 말 암흑기에 나약한 변절한 지식인의 길을 가지 않고, 저항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한 용기있는 지식인이었다.

그의 작품 중 <노마만리>라는 기행문이 유명하다고 한다. <노마만리>는 태항산으로 탈출해 들어가 진중에서 썼다고 한다. 그는 탈출 직전 투숙했던 북경 반점이라는 유명한 호텔을 묘사한 것이 있는데, 당시 북경 반점은 친일해서 갑부가 된 많은 조선인들이 북적였다고 한다. 지은이는 북경 반점에 들러 친일파를 보면서 울분을 삭히는 그의 모습에 반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 그의 오래된 사진이 실렸다. 그의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 볼 수 없는 오래된 사진이었다. 하지만, 그의 여유로우면서, 세상을 통달한 듯한 모습이었다. 인터넷에서 그에 관해 검색해 보니, 다행히 평전도 있었다. 기회가 되면 한번 꼭 읽어봐야겠다.

  - <독립전쟁이 사라진다> 독후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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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김사량 님을 다시 만나 반가웠고, 그의 소설들이 예쁜 포장과 함께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반가웠단다. 전에 다짐한 그의 평전을 읽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들을 읽어볼 수 있겠다는 기분으로 책을 펼쳐 들었단다. 아참, 아빠가 이 책을 읽을 때 너희들이 이 책을 보고 제목 잘 지었다고 했었고, 책도 예쁘다고 했는데, 아빠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1.

이 작품에는 모두 네 개의 작품이 실려 있단다. <빛 속으로>, <천마>, <풀이 깊다>, <노마만리> 이렇게 네 편이란다.

빛 속으로.

이 소설의 배경은 일제 침략기 동경이고, 주인공은 동경제대에 재학중인 조선 유학생 이라는 사람이란다. 빈민촌 S협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그 곳에서는 자신을 미나미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조선의 이름이 아닌 일본식 이름. 그 자신 또한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사는 것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단다. 그의 학생 야마다 하루오. 엄마가 조선인인데, 일본인인 아버지가 그 엄마가 무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그런 가정에서 자라서인지, 하루오도 자신의 엄마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생활한다. 일본에서 잘고 있는 조선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려고 하는 마음이 이해가 간다. 한편으로 자신이 조선인이라고 당당하게 내세우면서 살고 있는 이군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나 하루오를 탓할 수 없다고 생각한단다. ‘과 하루오는 우연한 일의 계기로 서로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단다. ‘선생의 집에서 하루오가 하루 묵으면서 둘은 친분을 쌓게 된단다. 읽다 보면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음이 느껴졌고, 지은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소설로 그려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

천마.

소설 천마의 배경은 경성이란다. 친일을 하는 현룡이라는 소설가가 주인공이란다. 소설가라고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거의 없고, 그나마 쓴 소설들도 졸작으로 그야말로 형편 없는 작가였단다. 친일 행세로 일본인 관리 오무라에게 눈에 들었지만, 얼마 못 가 다 쓴 종이처럼 버려지게 될 위기에 처했단다.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일본인 인맥을 이용하여 비굴하게 부활하려고 했지만, 그는 버림을 받고 만다는 이야기란다. 지금이나 예나 실력은 없이 권력에 빌붙어 한 자리를 하려는 이들이 있단다. 사실 아빠의 눈에는 그럼 사람들의 행태가 보이고, 그런 사람들이 세금을 받아 먹고 위세 떠는 것이 정말 보기 싫단다. 그런 무리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었으니 아빠가 얼마나 화가 나겠니진정해야겠구나.

풀이 깊다.

이 소설의 배경은 일제 시대 강원도 산골 지방이란다. 군수란 사람은 조선 사람인데, 그는 연설을 하면서 일본말로 하고 다른 조선인 선생님을 시켜 통역을 하게 하였단다. 그 연설 내용 또한 가관이란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 정책 중에 백색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는구나. 백의 민족이라고 부를 만큼 흰 옷을 중시했던 우리 민족을 탄압하려는 정책이었던 모양이다. 흰옷을 입은 조선들에게 먹물을 뿌리거나 낙서를 했단다.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별 걸 다 가지고 괴롭혔구나. 가슴 아프구나. 이런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저항하며 백백교라는 종교도 등장했다고 하는구나. 백색 옷을 입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그 종교는 비록 사이비종교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 저항하는 민중의식이 만든 해프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노마만리.

이 이야기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김사량 님이 일제 협력하러 중국에 왔다가 그곳을 탈출해서 조선의용군을 찾아 태항산을 찾아가는 일종의 기행문이란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노마만리의 도입부만 짧게 실었다고 하는구나. …. 아빠가 가장 싫어하는 책 편집. 어떤 작품의 일부만 실어놓는 편집을 여기서 만나다니…. 그냥 세편만 간단히 싣고, <노마만리>는 따로 책 한 권으로 출간을 하시지, 이 무슨 이상한 편집인가. 지은이 정성 들여 쓴 이야기의 앞 부분만 떼어 놓다니지은이의 허락도 없이 말이야.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단다. 결국 나중에 제대로 된 <노마만리>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휘리릭 대충 읽었단다.

….

이상으로 김사량 님의 작품 소개를 간단히 해 보았단다. 이 소설들은 일본어로 쓰여져 있어. 김석희라는 분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단다. 일제 시대 일제의 탄압에서 살아가는 지식인들. 친일을 하면 편하겠지만, 저항의 피가 흐르는 지식인들은 어떤 스탠스를 잡아야 할지 괴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김사량 님의 글에도 그런 지은이의 감정들이 실려 있는 듯했어.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내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야마다 하루오는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책의 끝 문장: 베이징이여, 잘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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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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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러시아 작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참 다양으로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구나. 러시아 발음 상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야. 아빠가 이번에 읽은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일곱 번째 책 <벨낀 이야기>를 쓴 뿌쉬낀도 마찬가지푸슈킨이라고 하기도 하고, 푸시킨이라고 하기도 하고 말이야열린책들에서는 된소리를 강조해서 뿌쉬낀이라고 했단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뿌쉬낀의 소설 중에 아빠가 읽은 것은 <대위의 딸>이라는 소설 한 편이란다. 아빠가 존경하는 유시민 님께서 추천해서 읽게 된 책인데,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구나. 뿌쉬낀은 능력이 비해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어. 왜냐하면 서른여덟 살에 요절했거든. 바람난 아내의 정부와 결투를 했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아빠가 예전에 뿌쉬낀의 단편 소설들을 모아 놓은 책을 산 기억이 있는데, 읽어보지 못하고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을 것 같은데, 어디에 꽂혀 있는지 못하겠구나.


1.

벨낀 이야기는 마치 벨낀이라는 실존 작가의 작품을 우연히 손에 넣은 후 소개하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는 설정이며, 지은이 뿌쉬낀이 쓴 작품들이란다. 이 책에서 벨낀이 남겼다고 하는 소설은 총 다섯 편의 단편이란다. 정말 재미있었다, 이런 평은 못 하겠더구나. 그냥 그 시절 러시아의 일상들과 인간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 비슷비슷하구나, 하는 이런 생각을 들게 한 작품들이었어. 각 작품 별로 아주 짧게 이야기를 해볼게.

1 마지막 한 발

퇴역 장군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형식의 소설이란다. 실비오라는 사람이 결투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그 결투를 취소했어. 다른 사람들이 그를 겁쟁이라고 여겼지만, 실비오는 상대방이 결투 전 공포심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 공포심을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고, 그런 생명을 소중이 여기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생각이었지.

2 눈보라

귀족 출신의 마리야는 가난한 장교 블라지미르와 사랑에 빠졌지만, 부모의 반대로 인해 몰래 도망치기로 했단다. 외딴 교회에서 만나 결혼식을 치르기로 한단다. 그날 눈보라가 엄청나게 불었는데, 다행히 마리야는 다행히 그 교회에 도착을 했고, 캄캄한 교회에서 블라지미르와 결혼식을 치르고 집에 돌아왔단다. 하지만 블라지미르는 제 시간에 교회에 도착을 하지 못했지. 뭐야? 그런 교회에서 그 남자는? 이 일이 있고 마리야는 블라지미르와 헤어지게 되었어. 나중에 부르민이라는 남자에게 호의를 갖게 사귀게 되는데, 자신들의 비밀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라게 된단다. 그 옛날 캄캄한 교회에서 블라지미르인줄 알았던 그 남자가 바로 부르민이었던 거야. 그들은 다시 한번 정식으로 결혼을 한단다.

3 장의사

장의사 쁘로호로프라는 사람의 이야기란다. 이웃집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가 자신을 놀리는 듯한 대화에 화가 나서 집에 돌아왔단다. 그런데 자신이 장사 지냈던, 죽은 이들이 찾아왔단다. 자신의 관 값을 속였다면서 쁘로호로프를 비난하는 이도 있었단다. 자실 쁘로호로프는 관 값이나 장례비를 속여서 돈을 벌었는데, 그걸 안 죽은 이들이 알고 그를 찾아온 것이란다. 느낌상 꿈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뽀로호로프의 꿈이었단다. 그 꿈이 크리스마스 캐롤의 스크루지 영감처럼 그를 반성하게 했으려나.

4 역참지기

시골 역참에 들렀던 기병 장교가 역참지기 노인의 딸 두냐에 사랑에 빠지고 그 장교는 두냐를 데리고 도망을 갔어. 역참지기 노인은 장교의 집을 찾아왔지만 딸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단다. 얼마 뒤 노인은 죽고, 두냐는 노인의 무덤에 찾아오게 된다는 이야기. 굳이 아버지를 그렇게 외면할 필요가 있었나 싶구나.

5 귀족아가씨 - 시골처녀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집안 무롬스키 집안의 딸 리자와 베리스또프 집안의 아들 알렉세이의 사랑이야기란다.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집안의 이루어질 없는 사랑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의 단골 소재거리구나. 리자는 집안의 반대가 심할 거라는 생각하고 아꿀리나라는 농부의 딸로 변장을 하고 알렉세이를 만나게 된단다. 알렉세이는 아꿀리나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 그런데 그 사이에 무롬스키와 베리스또프 집안의 사이가 좋아져서 리자와 알렉세이를 결혼시키려고 했단다. 그런데 알렉세이는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아꿀리나를 저버릴 수 없었어. 무롬스키의 집에 찾아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리자가 바로 아꿀리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달리 해피 엔딩이구나 ㅎㅎ 결혼 이후에도 행복하게 잘 살았으려나?

....

, 이상으로 벨낀 이야기에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해 보았단다. 그리고 앞으로 한 동안 독서 편지는 좀더 짧게 쓰려고 해. 너희들이 각자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길어진 코로나 펜데믹에 주말에 아빠는 책 읽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아져서 그런지 예전보다 읽은 책이 쌓이는 속도가 빨라진 것 같아. 그래서 독서 편지가 엄청나게 밀려버렸어. 그거 따라잡을 동안은 좀 짧게 쓰려고 하니 양해 바람.^^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바야흐로 독자 대중에서 소개될 I. P. 벨낀의 의야기들을 간행하려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간략하나마 고인이 된 저자의 전기를 수록함으로써 우리 나라 문학 애호가들의 지극히 당연한 호기심을 부분적으로나마  만족시켜 주길 희망하였다.

책의 끝 문장: 독자 여러분은 대단원을 묘사해야 하는 불필요한 의미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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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클래식 클라우드 6
백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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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에서 서핑하다가 <클래식 클라우드>라는 시리즈를 알게 되었단다. 유명한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여행하며 그들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그런 시리즈야. 괜찮을 것 같았고, 그 시리즈에 소개된 사람들 중에서 몇몇은 아빠가 그 전부터 전기문을 읽어보고 싶어 했던 분들이었어. 그래서 알아보다가 얼마 전에 읽은 <노인과 바다>의 지은이 헤밍웨이에 관한 클라식 클라우드 시리즈 6<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를 읽었단다.

지은이는 백민석이라는 처음 본 분인데, 소설과 산문을 많이 쓰신 작가시더구나.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워낙 유명해서, 헤밍웨이의 삶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아빠는 잘 모른단다. 그가 스페인 전쟁에 참여를 하고 나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소설을 썼고, 삶의 마지막은 비참하게도 권총 자살을 했다는 정도 밖에 아는 것이 없었어. 살아서도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은 그가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궁금하구나. 자 그럼 아빠와 함께 헤밍웨이 여행을 떠나보자꾸나.


1.

헤밍웨이는 한 곳에 정착한 삶을 살지 않았고, 한 여성에 장착한 삶도 살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무려 20여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살았고, 결혼과 이혼도 네 번이나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 경험들이 다양한 소재로 소설을 쓰는데 바탕이 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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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헤밍웨이는 한 장소에 붙박인 삶을 살지 않았다. 그는 4대륙 20여개 나라에 삶의 흔적을 남겼고, 창작도 온갖 도시의 온갖 호텔을 옮겨 다니며 했다. <태양은 다시 뜬다>는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팜플로나가 배경이고 스위스에서 마감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베네치아가 배경이고 마조레 호숫가의 호텔에서 쓰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의 전장이 배경이고 쿠바의 아바나에서 주로 쓰였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아프리카가 배경이고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아바나가 배경이다. 한 여성에게 머물지도 않았다. 그는 네 명의 여성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애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할 때마다 굵직한 작품들을 써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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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였대. 그 무서운 전쟁에 직접 참여도 했대.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 스페인 내전 등 현대사에 굵직한 전쟁에 직접 참가를 했다는구나. 1차 세계 대전에서는 중상을 입어 죽을 뻔 했대. 그런데도 또 전쟁을 나가다니 대단한 사람이네. 자신을 스스로 죽지 않는 불사조라고 불렀다고 하던데… 1차 세계 대전에서 중상을 입고(그가 1차 세계 대전에서 부상을 입은 첫 번째 미국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병원에 입원에 있으면서 아그네스라는 간호사와 사랑에 빠지기도 했대.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 밀라노와 스트레사를 배경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대작을 썼다고 하는구나.

지은이 백민석 님의 헤밍웨이 발자취 따라가기 첫 번째 여행지는 파리였단다. 1920년대 헤밍웨이가 파리에 머물렀는데, 당시 파리에는 파리지엥이라고 해서 세계 곳곳에서 많은 예술가, 소설가들이 모여서 활동을 했단다. 아빠도 재미있게 본 <미드나잇 인 파리> 1920년대 파리지엥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영화에 헤밍웨이도 조연으로 출현했었단다. 이 책에서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하더구나.

헤밍웨이의 소설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원래 뜻은 수면 아래 두고 짧고 함축적인 글만 수면 밖에 내놓은 빙산처럼 쓰기 때문이라고 했어. 그런 걸 빙산이론에 의한 글쓰기라고 한대. 수면 아래에 읽는 속 뜻을 읽기 쉽지 않지. 아빠는 반대다. 빙산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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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107)

난 늘 빙산 원칙에 따라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마다 물 밑에는 8분의 7이 있죠. 아는 건 뭐든 없앨 수 있어요. 그럴수록 빙산은 더 단단해지죠. 그게 보이는 않는 부분입니다. 작가가 모르기 때문에 뭔가를 생략하면, 그때는 이야기에 구멍이 생겨요. (…) 하지만 알고 있는 그런 것들이 수면 아래의 빙산을 만드는 겁니다. - <헤밍웨이의 말> 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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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헤밍웨이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오랫동안 갈등을 빚었대. 그래서 남성성이 강한 소설들을 많이 썼고, 여러 여자들과 만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어.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젊었을 때는 나이차이가 많은 연상의 여인을 만났을 것이라 추측하더구나. 앞서 병원에서 만난 아그네스, 첫 번째 부인, 두 번째 부인 모두 나이 차 많은 연상이었대. 세 번째 부인부터 연하의 여인이었다고 하더구나.

헤밍웨이가 세계 여러 곳을 다녔지만, 그 중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던 곳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한 곳이 스페인의 팜플로나라고 하는구나. 팜를로나에는 거의 매년 갔다고 했어. 그곳에는 투우 축제인 산 페르민 축제라는 것이 있었어. 지은이 백민석 님도 직접 산 페르민 축제를 가셨는데, 생생한 사진과 함께 그 축제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단다. 헤밍웨이는 이 축제를 경험하고 나서 소설 <태양은 다시 뜬다> <오후의 죽음>을 썼는데 아빠는 다 모르는 작품들이구나.

그리고 그가 또 좋아하는 장소는 아프리카. 그가 아프리카에 자주 간 것은 그가 좋아하는 사냥을 하기 위해서였대. 사냥뿐만 아니라 헤밍웨이는 스포츠 광이었다고 하는구나. 아프리카 여행을 경험을 <킬라만자로의 눈>이라는 소설을 썼다고 하는구나.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다고 했잖아. 그는 그곳에서 겔혼이라는 여기자와 사랑에 따지고 결혼을 했다는구나. 겔혼과 사랑을 다룬 영화 <헤밍웨이와 겔혼>라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어서, 겔혼이라는 이름이 낯설지는 않구나. 영화를 보지 않았고 헤밍웨이의 삶을 몰라서 <헤밍웨이와 겔혼>이라는 영화가 헤밍웨이의 유일하고 운명적인 사람, 뭐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세 번째 부인과의 이야기였구나. 유일한 사랑은 아니어도 운명적인 사랑이었나? 이것도 기회 되면 한번 보고 싶은데, 봐야 할 영화들이 워낙 많아서

아무튼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다가 독재가 시작되어 스페인을 떠났다가 독재와 반파시즘이 계속 되면서 스페인에 가지 못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그의 라틴 사랑이 대단해서 스페인을 가지 못하는 대신 그와 유사한 라틴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쿠바에 가서 정착을 하게 되었대. 이미 이 때는 겔혼과 헤어졌고, 넷째 부인 메리 웰시와 결혼을 했다는구나. 스페인에서의 스페인 내전의 경험과 산 페르민 축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소설을 썼단다. 지금도 쿠바에 가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썼던 헤밍웨이의 집을 관람할 수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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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하지만 헤밍웨이가 무슨 이데올로기적인 확신이 있어서 참전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시즘,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가 뒤섞여 이데올로기의 각축장 같았던 스페인 내전에서 그는 어느 이데올로기도 공식적으로 두둔하지 않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그는 로버트 조던의 입을 빌려 자신에게 정치적인 입장이 없을 강조한다. 그의 참전은 다큐멘터리 해설에서 보듯 감정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는 이미 스페인이 배경인 책을 두 권 펴냈고 거의 해마다 스페인에 놀러가고 있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도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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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쿠바에 정착한 이후 주로 쿠바에서 생활을 했단다. 네 번째 부인 메리 웰시와도 17년이나 같이 살았다고 하는구나. 쿠바에서 쓴 작품들에 가장 성공적이고 유명한 작품은 바로 <노인과 바다>란다. 쿠바에서의 삶은 1960년 쿠바 혁명이 일어난 이후 마무리되었단다. 그는 그 이후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했어.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심한 우울증을 겪게 되었대. 전쟁터에 여러 번 나아가서도 살아 돌아왔고, 크고 작은 사건과 수 많은 질병에 걸려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겼던 헤밍웨이, 심지어 죽지도 않았는데 사망 기사가 세 번이나 났었다고 하더구나. 그런 헤밍웨이가 우울증에 빠져 권총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니 안타깝구나. 그것도 그가 그렇게 따라 하지 않으려고 했던 아버지와 같은 방식으로 죽었단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

헤밍웨이에 모든 것을 적은 전기문은 아니었지만, 헤밍웨이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이었던 것 같구나. 칼라풀한 사진들이 많아서 좋았고 말이야. 그로 인해 가격이 좀 셌지만 말이야.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에 아빠가 관심을 두었던 예술가들 몇몇은 또 읽어보고 싶구나.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헤밍웨이는 초인의 삶을 살았다.

책의 끝 문장: 오히려 갈수록 풍부해지고 있었다.


1920년대 문학을 말할 때 가장 널리 이야기되는 것이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다. 어쩌면 이 이름이 그 뒤를 잇는 여러 세대론의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 이후로 1950년대의 ‘비트족’, 1960~1970년대의 ‘히피족’이 뒤를 잇는다. 이 ‘잃어버린 세대’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것이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뜬다>였다. ‘잃어버린 세대’는 그의 창작이 아니었지만, 그가 소설에 써서 유명하게 되었고 그를 비롯한 몇몇 작가를 일컫는 공식적인 세대 이름이 되었다. - P67

헤밍웨이가 대화문을 쓸 때 현실성을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소설이고 따라서 극한 상황에 처한 군인들이 내뱉는 욕설과 비속어 ‘cocksucker’가 등장한다. 결국 저급한 단어들이 문제가 되어 보스턴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가 금서 목록에 오른다. 편집자 맥스 퍼킨스는 출판사 사장에게 이런 편지를 섰다. "삶에서든 문학에서든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게 헤밍웨이의 원칙입니다."(<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는 검열 소식을 듣고 레마르크의 전쟁소설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구해 헤밍웨이에게 보내준다. 당연히 그 소설에서도 군인들은 욕설을 내뱉는다. 남성들뿐인 전장의 막사에서 군인들이 조곤조곤 우아하게 존댓말로 대화한다면 그것만큼 어색한 장면도 또 없을 것이다. 결국 헤밍웨이와 맥스 퍼킨스는 한동안 설전을 거듭하다가 비속어를 빼기로 한다. - P104

헤밍웨이는 삶의 경험도 많고 어디 한군데 머무르지 않는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단 몇 줄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단편적이고 단조로웠다. 그런 여성들과 그 자신의 반영인 남성 주인공들은 대개의 경우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 무르익은 밀고 당기는 연애 과정은 짧다. "그녀를 본 순간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 내면의 모든 곳이 뒤집혀버렸다."(<무기여 잘 있거라> 126쪽)라고 말하면서 프레더릭은 캐서린과 병실에서 다짜고짜 사랑을 나눈다. 이런 관계에서 언제나 더 많이 사랑하고 그래서 더 순종적이게 되는 편은 항상 여성이다. 캐서린은 프레더릭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체온까지 멋지군요. (…) 당신 체온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무기여 잘 있거라>, 139쪽) 프레더릭이 "당신은 나의 착한 여자야."라고 하지 캐서린은 "난 정말 당신의 여자예요."(<무기여 잘 있거라>, 205쪽)라고 답한다. - P142

내가 보기에 이 점이 헤밍웨이의 삶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비행기 사고도, 자살도, 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들의 연속선상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그는 말하자면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하고도 똑 같은 행위를 다시금 반복했고, 비슷한 위험한 상황을 반복해 만들었다. 보통의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낚싯대를 타고 나갔다가 한 번 큰 부상을 입었으면 또다시 낚싯대에 오르기를 꺼려할 것이다. 전장에 나가 다리에 200개가 넘는 파편이 박혔다면, 전쟁은 소문만 들어도 치라 떨릴 것이다. 술에 취해 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냈으면 다시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 낚싯배를 타고 청새치를 쫓아다녔고, 늙어서도 주먹질 싸움을 그치지 않았으며, 알려진 것만 전쟁에 다섯 번 참전했고 음주 운전을 멈추지 않았다. - P274

헤밍웨이는 죽기를 욕망했다. 죽음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의 원인이었고, 그가 쫓아다닌 위험한 장소들은 죽음에 그를 가까이 데려다주기는 하지만 결국 실패하게 되는 욕망의 틀린 대상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갖가지 사고와 질병, 비행기 사고, 자살까지 이어지는 그의 기나긴 ‘육체적 고난의 연보’는 이렇게 해서 연속성을 얻게 되고 조금이나마 이해 가능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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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4-29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의 첫 문장과 책의 끝 문장을 넣으니 좋습니다.

bookholic 2022-04-29 23:12   좋아요 0 | URL
^^ 고맙습니다...
간혹 첫문장과 끝문장만이라도 손글씨로 쓰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편히 키보드라도 두들겨봅니다....
 














(15)

국토를 인체에 비유하면 산맥은 뼈, 들판은 살, 강은 핏줄이다. 산과 들은 국토의 골격을 이루고 강물은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강은 언제나 그렇듯이 유유히 흐르면서 국토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며 흐르는 강물은 여기에 살던 사람들의 애환을 침묵 속에 증언한다. 그리하여 강은 그 이름만 불러보아도 국토의 향기와 역사의 고동이 일어난다.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임진강, 한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


(16)

한강은 태백산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이 양수리에서 만나 도도한 강줄기를 이루며 서울을 가로질러 서해로 흘러드는 한반도의 젖줄이다. 그중 한강의 본류는 남한강인데,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서해에 이르는 물길은 약 500킬로미터에 이른다.

남한강에는 수많은 지류가 실핏줄처럼 퍼져 있어 상류로 올라가 각 고장을 지날 때마다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남한강의 상류는 크게 두 줄기로 흘러내려 영월에서 만난다. 그것이 영월의 동강과 서강이다.


(55)

나는 최언위의 일생을 통해 통일신라가 왜 망했고 고려가 어떻게 새 왕조를 세웠는가를 생각해본다. 통일신라는 끝내 골품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당나라 과거에 급제한 지식인들을 여전히 6두품에 두어 아찬(阿飡) 이상 올라갈 수 없게 했다. 최치원이 제시한 시무십조(時務十條)’라는 개혁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득권을 갖고 있던 보수적인 귀족들이 개혁은커녕 자신들의 보호막을 더욱더 두껍게 두르다가 종국엔 멸망의 길로 들어갔던 것이다.


(100-101)

이렇게 쓰인 그의 <단종애사>는 당시 독자들이 식민지 현실에 빗대어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은 일제의 이등박문을, 삼촌 손에 억울하게 폐위당하고 죽은 단종은 고종 순종을, 사육신 생육신은 독립투사를, 수양대군과 한패가 된 정인지 한명회는 이완용 조병준 등의 매국노를 연상시키는 뚜렷한 작중인물 설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춘원 이광수는 과연 춘원이로다라는 찬사를 받았다는데 나는 그의 명작을 이 이상 소개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132-133)

한국문화에 대하여 줄곧 애정 있는 충고를 해온 프랑스의 석학인 기소르망이 올해(2015) 6월 초, 한국외국어대에서 열린 특강에서 한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는 경제와 산업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가며 이제 한국은 문화적 정당성을 인지하고 그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정해보라고 한다면 백자 달항아리를 심벌로 삼겠다고 했다. 기소르망은 모나리자에 견줄 수 있는 달항아리의 미적 가치를 왜 한국이 이미지 메이킹에 활용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06)

<삼봉집>에는 이외에도 삼봉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 위치를 보면 삼각산이 맞다고 했다. 이런 논증은 단양 사람들에게 서운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오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허구를 사실로 끼워맞추다보면 더 큰 허구만 낳는다. ‘한때 정도전의 삼봉이 도담삼봉으로 알려졌다.’고 한 걸음만 양보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런다고 도담삼봉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280-281)

영국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메켄지(F.A. Mckenzie) 기자는 <조선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내가 제천에 이르렀을 때는 햇살이 뜨거운 초여름이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제천 시내 한가운데 아사봉(관아 뒤쪽에 있는 동산)에는 펄럭이는 일장기가 밝은 햇살 아래 선명하게 보였고, 일본군 보초의 총검 또한 빛났다. (…)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번화했던 거리였었는데 그것이 지금은 시커먼 잿더미와 타다 남은 것들만이 쌓여 있을 따름이었다. 완전한 벽 하나, 기둥 하나, 된장항아리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제천은 지도 위에서 싹 지워져버리고 말았다.”

위정척사 사상과 의병운동에 대해서는 완고한 보수적 고집이라는 측면이 강한 유교의 극단적인 이단(異端)으로 보는 역사적 평가도 있다. 그러나 위정척사는 외세와 일본의 침탈에 대한 완강한 저항과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흔히 생각하는 보수반동과는 다르다.


(285)

황사영 백서는 길이 62센티미터, 너비 38센티미터의 흰 비단에 극세필 붓을 사용하여 먹으로 쓴 깨알 같은 글씨 1 3,311자로 이루어진 장문의 편지이다. 누구든 이 편지를 보면 내용을 둘째 치고 그 정성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다. 2013년 울산 대곡박물관에서는 천주교의 큰 빛, 언양이라는 기획전을 하면서 이 황사영 백서의 정밀 복제본을 전시했는데 박미연 학예사의 말에 의하면 천주교인들은 그 내용보다 깨알 같은 글씨는 보면서 울먹이며 기도하더라는 것이다.


(377)

내가 담배를 끊은 이유는 그때 담뱃값이 폭발적으로 올라서도 아니고, 건강이 나빠져서도 아니었다. 세상이 담배 피우는 사람을 미개인 보듯 하고, 공공의 유해사범으로 모는 것이 기분 나쁘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길에서도 담배 피울 곳이 없어 쓰레기통 옆이나 독가스실 같은 흡연실에서 피우고 있자니 서럽고 처량하고 아니꼽고 치사해서 끊은 것이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7세기로 <조선왕조실록>에선 광해군 때부터 담배 얘기가 나온다. 담배라는 말은 포르투갈어 타바코(Tabaco)에서 온 것이고 옛날에는 연초(煙草)라고 했다. 이후 많은 애연가를 낳아 영조 때 허필(許佖)이라는 문인은 아예 호를 연객(煙客)이라고 했다. 연초는 연차(煙茶)라는 매력적인 이름으로도 불렸다. 정조대왕이 어느 신하에게 창덕궁에서 재배한 연두 두 봉지를 보낸다고 한 자상한 편지가 전하고 있다.


(419)

신륵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강변 사찰이다. 절집이라면 대개 깊은 산중이나 시내에 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남한강변의 높직한 절벽 위에 자리잡은 신륵사는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내려다보며 여봐란듯이 가슴을 젖히고 있다. 강물은 쪽빛으로 흐르고 강 건너 은모래 백사장은 눈부시게 빛난다. 그들이 말하는 신륵사의 아름다움이란 곧 신륵사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442)

신륵사 절집 자체도 주변의 번잡함에 오염되었는지 절집의 크기와 어울리지 않게 일주문을 거대하게 세우고 단청도 요란하게 하면서 고찰의 모습을 잃어간 것이 너무도 아쉽다. 게다가 4대강 사업이 강행되면서 신륵사는 두 가지를 잃었다. 강월헌 건너편 은모래 백사장이 이제는 사라졌다. 그 아름다운 강마을을 대신한 고수부지식 석축엔 자전거길이 휑하니 뚫려 있을 뿐이다. , 그것은 너무도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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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4-24 2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홍준 선생님께서 담배 끊게 되신 계기가 아주 확 와닿습니다!
저의 경우, 너무 어려서 읽고는 그 맛음 음미 못했던 책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일테데, 북플에 간혹 올라오는 리뷰를 볼 때마다
내공이 있으신 분들은 다르게 읽는구나 느낍니다.

bookholic 2022-04-25 12:49   좋아요 0 | URL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더라구요..
우리 집 애가 재미없대요....ㅎㅎ

페크pek0501 2022-04-29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2권까지인지 3권까지인지 읽었던 기억이...
재미없을 것 같은데 유익할 것 같아 읽었는데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bookholic 2022-04-29 23:09   좋아요 1 | URL
네, 글을 찰지게 잘 쓰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랫동안 많은 사람한테 사랑 받는 책이 된 것 같아요....
페크 님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전자책]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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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나라에 많은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이 있단다. 특히 여성 작가들이 많은 것 같아. (젊은 남성 작가들 분발 좀 하길…) 아빠가 오래 전에는 한국 여성 작가의 책을 많이 읽지 않았어. 묘사가 좀 지나치고 전개도 느린 것 같아서 아빠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최근의 한국 여성 작가들은 소재도 다양하고 전개도 빠르고 아빠의 취향에 맞는 소설을 쓰시는 작가들이 많아졌더구나. 이번에 읽은 <밝은 밤>의 지은이 최은영 님의 소설들도 그랬어. 아빠가 읽은 것은 <쇼코의 미소>라는 단편집이랑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작품들이 전부였지만, 이름을 기억하게 하는 작품들이었단다.

<밝은 밤>은 최은영 님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인데 읽은 이로 하여금 긴장감 늦추지 않게 이야기를 잘 풀어 나가셨단다. 단편에서 보여준 저력을 장편에서도 보여주지 못하는 분들도 간혹 계신데, 최은영 님의 이번 장편은 아주 좋았단다. 그리고 소재도 굴곡진 우리나라 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은 어떤 여인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의 모습이 이러지 않았을까 하면서 읽게 되더구나. 그리고 이 책을 쓰면서, 최은영 님은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를 겼었다고 하던데, 앞으로는 좋은 시기만 쭉 이어져 쭉 좋은 작품을 쓰셨으면 좋겠구나.


1.

이 소설에는 4대에 걸친 여인들이 등장한단다. 외증조할머니인 정선, 외할머니인 영옥, 엄마 미선,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지연..

지연은 서른두 살로 얼마 전 남편과 이혼한 뒤, 때마침 희령의 천문대에 취업을 하게 되어 희령에 내려가서 살게 되었단다. 희령은 가상의 도시인데 강원도 속초 근처를 배경으로 했단다. 희령은 지연의 외할머니 영옥이 살고 있는 곳인데, 어렸을 때는 몇 번 놀러 왔었지만, 그 이후에는 온 적이 없고 할머니와도 연을 끊고 살았단다. 할머니와 연을 끊은 이유는 엄마 미선이 할머니와 무슨 이유인지 연을 끊고 살았기 때문에 지연도 덩달아 할머니와 연을 끊고 산 것이야.

희령이 조그마한 도시이다 보니 지연은 우연히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어. 그 이후 집을 오가면서 자주 만났고, 할머니로부터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단다. 증조모는 일제 시대에 일본군인에게 잡혀 위안부로 끌려갈 뻔했는데, 증조부께서 증조모가 살고 있던 시골에서 증조모를 데리고 개성으로 도망을 갔고 그곳에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이런 걸 보면 증조부가 증조모에게 무척 잘 해줄 거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결혼하고 나서 증조부는 증조모에게 그리 잘 해주지는 않았어.

증조모는 또 하나 콤플렉스가 있었어. 아버지가 백정이어서 늘 백정의 딸이라고 모욕을 많이 당했단다. 시댁 식구들도 백정의 딸이라서 증조모를 탐탁지 않게 보았단다. 다행히 새비 아주머니라고 불렀던 분와 무척 친했다고 하더구나. 새비 아주머니는 새비라는 마을에 살고 있어서 그렇게 불렀어. 지연의 할머니가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보니 새비 아주머니라고 이야기하셨는데. 새비 아주머니와 증조모는 같은 세대이셨어. 친구라고 생각해도 돼. 새비 아주버니의 남편은 새비 삼촌이라고 불렀는데, 일제 시대 일본에 돈 벌러 갔다가 해방 후에 돌아오시긴 했는데, 그가 있었던 것이 히로시마였어. 몇 년 후 원폭 피해 후유증으로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새비 삼촌이 돌아가신 다음에 새비 아주머니는 시대에서 핍박을 받다가 쫓겨나게 되었어. 그래서 새비 아주머니는 딸 희자와 함께 증조모 집에 들렀단다. 외할머니 영옥과 희자는 세 살 차이로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단다. 새비 아주머니와 딸 희자를 증조모 님에 받아주었으면 좋았겠지만, 증조모 집도 그리 넉넉하지 못했어. 대구에 있는 고모댁에 간다는 새비 아주머니를  빈 말이라도 여기 있으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가슴에 계속 걸렸다고 했단다. 그렇게 증보모와 새비 아주머니는 멀리 떨어지게 되었단다.


2.

그런데 한국전쟁이 일어났단다. 증조모님 가족도 남쪽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어. 서울 친척집이 종착지였지만, 그 친척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곳도 안전하지 못했단다. 결국 갈 곳이 없는 증조모네는 대구로 가서 새비 아주머니가 머무르고 있는 새비 아주머니의 고모댁의 문을 두들겼어. 고모는 수녀여서 가족들은 없었고 새비 아주머니 모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어. 넉넉하지 못했지만, 증조모 가족들을 떨칠 수는 없었단다. 새비 아주머니의 고모님 성함이 명숙이라서 할머니 영옥은 명숙 할머니라고 불렀어. 할머니는 명숙 할머니로부터 재봉틀을 배웠고, 재봉틀에 재능이 있어 보이는 할머니에서 명숙 할머니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단다. 전쟁통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할머니는 희자와도 친하게 지내며 가난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했단다.

전쟁이 끝나고 강원도 희령에 증조부의 식구들이 내려와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증조모 식구들은 대구를 떠나 희령을 갔단다. 대구를 떠날 때 정든 새비 아주머니, 희자, 그리고 명숙 할머니와 헤어지는 것이 무척 슬펐어. 특히 할머니 영옥은 명숙 할머니와 이별을 무척 힘들어했어. 겉으로는 의연한 척 했지만 말이야. 희령에 도착한 증조모 식구들그곳에는 소식과 달리 증조부 식구들은 없었어. 다시 대구로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증조부와 증조모는 희령에 정착하기로 했단다.

그곳에서 자란 할머니는 길남선이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딸 미선을 낳았어. 그 미선이 바로 지연의 어머니시고 말이야. 그런데 길남선이라는 이 사람이 사실은 유부남이었던 거야. 북에서 이미 결혼을 했는데, 본처가 북한에 남을 줄 알고 총각 행세를 하고 결혼까지 하고 아이까지 낳은 거지. 뒤늦게 길남선의 어머니와 아내가 찾아오게 되고 할아버지 길남선은 할머니를 떠나 본처의 집으로 가 버렸단다. 대구를 떠나온 뒤 희자와는 가끔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희자는 공부를 잘해서 이화여대에 수학과에 수석 입학을 했다는 소식도 들었어.

새비 아주머니도 오랫동안 만나 뵙지 못했는데 어느 날 희령에 찾아왔단다. 종조모, 새비 아주머니, 할머니는 셋이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잊지 못할 추억거리도 하나 만들었단다. 그런데 그 추억이 새비 아주머니와 함께 했던 마지막이었단다. 대구로 돌아가신 다음 얼마 후에 돌아가셨지그 이후로 희자와 연락이 더 뜸해지게 되었어.


3.

지연이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 할머니가 와서 보살펴 주곤 하셨지. 그런데 엄마도 지연의 병문안을 왔다가 할머니와 만나게 된단다. 오랜 세월 무엇 때문에 연을 끊고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할머니와 엄마는 잠시 마주하고 짧은 대화를 나주고 헤어졌는데, 그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았단다. 나중에 할머니와 엄마도 다시 화해를 하게 되었어.

사실 엄마와 지연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늘 티격태격했어. 그리고 지연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언니가 어렸을 때 죽어서 그 이후 가족 분위기는 늘 엉망이었지. 최근에는 지연이 이혼을 해서 엄마는 더욱 지연을 멀리하려고 했어. 그래도 식구인데어려움이 있을 때면 늘 엄마를 먼저 찾고, 딸을 먼저는 찾는 법이지.

….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지연은 희자 할머니를 찾기로 했어. 그래서 할머니와 다시 만나게 해드리려고 했단다. 수소문 끝에 희자 할머니께서 계신 곳을 알게 되었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간 희자 할머니는 그곳에서 정착을 하셨고, 유명한 암호학자가 되셨어. 그래서 오래 전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도 나오셨다고 하는구나. 지연은 희자 할머니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답장이 왔단다. 희자 할머니도 한국에 왔을 때 할머니를 찾으려고 했지만 연락처도 없고 해서 찾지 못했다는 답 메일이 왔어. 다시 연락이 닿았으니 한국에 오신다고 했어. 그리고 지연과 할머니가 희자 할머니를 마중 나가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한 권이기 하지만 몇 권짜리 대하 소설을 본 기분도 들었단다. 4대에 걸친 여인들의 굴곡진 삶에서 따뜻한 사람 향기도 느꼈고, 가족의 사랑도 볼 수 있었고, 아픔을 치유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단다. 최은영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책의 끝 문장: 할머니는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 P14

열일곱은 그런 나이가 아니다. 군인들에게 잡혀갈까봐 두려워하며 잠들지 못하는 나이, 아침마다 옥수수를 삶아 한 광주리를 이고 팔러 다녀야 하는 나이, 죽음을 목전에 둔 엄마의 공포와 노여움과 외로움을 지켜봐야 하는 나이, 영영 자기 혼자 남겨질 것이라는 예감을 하는 나이, 백정이라는 표지 때문에 길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어김없이 조롱당하고 위협당하는 나이, 엄마를 버려야 하는 나이, 엄마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고 멀리서 소식을 들어야 하는 나이. 그렇지만 증조모의 열일곱은 그런 나이였다. 할머니는 증조모가 그 나이의 자신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붙들고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 P47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 P130

그때의 내 마음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지구 밖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함을 위로했다. 우주에 비하자면 나는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이나 입도 없이 살다 죽는 작은 벌레와 같았다. 언제나 무겁게만 느껴지던 내 존재가 그런 생각 안에서 가벼워지던 느낌을 나는 기억했다. 무리를 이루는 듯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도 철저히 혼자이며,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어 있던 물질들이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느껴왔던 슬픔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그 순진무구한 사랑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차츰 빛을 잃어갔고, 그 자리는 현실적인 크기의 희망으로 대체됐다. 나의 숨쉴 구멍이었던 존재가 일이 되고, 나의 가능성이 한계가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P158

하지만 할머니는 그날 그 자리에서 불안을 느꼈다. 경계하지 않을 때, 긴장하지 않을 때,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생각할 때, 비관적인 생각에서 자유로울 때, 어떤 순간을 즐길 때 다시 어려운 일이 닥치리라는 불안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전전긍긍할 때는 별다른 일이 없다가도 조금이라도 안심하면 뒤통수를 치는 것이 삶이라고 할머니 생각했다.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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