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74)

스스로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등 떠밀려 시작한 방랑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행성에 속해 있었지만 나는 이 행성에 속해 있다는 확신이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세상을 사랑했고 사람들을 이해했다. 누군가 그를 힘껏 밀쳐도 그는 곧 중심을 잡고 자기가 갈 방향을 찾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도 항상 제자리를 벗어나 있었고 항상 뒤처진 느낌이었다. 내가 어디에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면 그건 단지 내가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시적으로 불안정을 겪을지라도 끊임없이 돌아다녔지만 나는 영원히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움직였다면 급류가 흐르는 여울에서 흔들리는 뗏목 위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사람 같았을 것이다 뗏목이 움직이고 강물이 움직일지라도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96)

그는 실험에서 대조군이었고 나는 실험군이었다. 그에게 가짜 약이, 내게는 진짜 약이 주어졌다. 나는 신약의 효과를 경험한 반면 그는 왜 약이 효과가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둘 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내겐 버티고 설 땅이 있었고 그는 언제나 방랑자였다. 내게는 영주권이, 그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벼랑 끝에 서 있었지만 나는 벼랑 밑을 내려다봐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게는 그 심연을 가릴 담장이나 생울타리가 항상 있었던 반면 그에게는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또 다른 차이도 있었다. 그는 그 벼랑에서 물러서서 살아나올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벼랑과 나 사이에 그를 세워놓았다. 그는 내 가림막, 내 스승, 내 목소리였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추구했던 삶이 그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123)

아무것도 몰라. 너무 갈팡질팡하고. 그래서 잠자코 있거나 너무 서두르지. 여자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그래. 가만히 앉아서 뭔가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그게 자네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야.” 그는 내가 순간을 팽창시키고 오래 끄는 방법을 알고, 발을 질질 끌면서 원하는 일이 일어나길 가만히 기다린다고 말했다. 사부라르 트레네(질질 끄는 지식인). 그저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는 거라고.


(197)

나는 왜 그녀를 떠났을까? 내가 나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있고 싶었거나, 혹은 그녀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거나, 그도 아니면 아무하고도 함께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었지만 타인은 절대로 나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없고, 결국에 그런 허상은 내 안에서 끄집어내 던져서 깨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이가 소원해지면서 영혼이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고, 사랑이란 내게는 낯선 것이며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분노와 증오만 있었기 때문이다.


(199)

멀어져가는 그의 택시를 바라보면서, 우리를 친하게 만든 요인은 상상 속 프랑스와의 로맨스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냥 가림막, 착각이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어디서도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극단적인 무능력이었다. 우리는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한 집에서 살며 평범한 일을 하고 평범한 텔레비전을 보고 평범한 식사를 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심지어 우린 평범한 친구를 갖거나 유지할 수도 없었다.


(328)

그날 저녁 뉴턴행 그린 라인 지하철의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너야? 이 너무도 낯선 보스턴 풍경 속에서 눈에 띄는 저 얼굴이 정말 너라고? 네가 누군데? 너는 몇 개의 가면을 동시에 쓸 수 있어? 이렇게 보지 않을 땐 너는 누군데? 너는 형체가 없는 반죽 같은 존재냐?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질 준비가 된 반죽? 그렇게 쉬운 묵인과 동의, 인정으로, 그 거짓된 얼굴을 믿는 사람들에게 네가 안겨줄 배신감에 대해 미리 사죄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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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02 16: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을,,,
애치먼의 <하버드 스퀘어>
재독 해야 겠습니다 ^^

bookholic 2022-09-03 00:35   좋아요 2 | URL
그렇게 말씀하셔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소설 가을하고 어울리는 것 같아요..^^
즐거운 가을 되세요~~
 
비곡 소오강호 6
김용 지음, 박영창 옮김 / 중원문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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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김용의 소오강호 6권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5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교와 마교의 대결을 암시는 장면으로 끝이 났었잖아. 6권에서는 그 대결로 시작하였단다. 일종의 내기였는데, 마교가 내기에서 지면, 임아행, 향문청, 영영이 소림사에서 10년 간 머무르는 것이었어. 말이 머무르는 것이지, 갇혀 지내야 하는 것이었지.

각각 대표 3명이 나와서 삼판 이승제로 하기로 했어. 이런 대결을 영호충은 여전히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단다. 첫 번째 대전은 소림파의 방증대사와 임아행. 그들은 양측 최고의 고수답게 오랫동안 승부를 가릴 수 없었는데, 임아행인 꾀를 써서 이겼단다. 임아행의 반칙성 행동에 화가 난, 숭산파 장문인인 좌랭선이 곧바로 나서서 싸움을 걸어왔는데, 방증대사와 결투에서 힘을 쏟아 부은 탓에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그만 지고 말았단다. 현재 스코어 일 대 일.

이제 마지막 승부. 정교에서는 그들을 응원 온 무당파 충허도인이 겨루기로 했단다. 그러자, 임아행도 자신들을 응원하러 온 이가 참가하겠다고 하면서, 숨어 있던 영호충을 불러냈단다. 영호충은 엉겁결에 그들 앞에 나왔지만, 다소 당황스러웠어. 영호충은 정교 소속의 스승님뿐만 아니라 방증대사 등과도 친분이 있었고, 마교 소속의 임아행과도 친분이 있고, 특히 영영에게는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야. 그래도 사랑의 힘이 강한 법이지.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영영이 소림사에 10년간 갇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대결에 참석하겠다고 했어. 그러자, 충허도인은 이미 며칠 전에 영호충과 대결을 한 차례 했고, 그 대결에서 자신이 졌기 때문에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였단다.

이로써 마교의 승리로 끝나려는 찰나, 화산파의 장인 악불군이 나서서 싸우겠다고 했단다. 영호충 입장에서는 더욱 난처하게 되었어. 자신을 키워주신 스승님과 대결을 벌여야 하니까 말이야. 그렇게 시작된 영호충과 악불군의 대결. 영호충은 스승님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 방어만 하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 보는 이들은 영호충의 무공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단다. 계속 방어만 하던 영호충은 실수로 사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면서 이 대결은 영호충의 승리로 끝이 나고 말았단다. 이 때 화가 난 악불군은 영호충에게 장풍을 날렸고, 아무런 대비가 없던 영호충은 스승이 쏜 장풍에 맞고 정신을 잃었단다.

다시 정신이 든 영호충. 이미 소림사를 떠나 있었고, 그의 곁에는 영영이 그를 보살펴 주고 있었단다. 임아행과 향문청과 영영과 영호충은 부상의 치료를 위해 서서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진기를 불어넣어 주었단다. 그런데 갑자기 내리는 눈그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와서 그 네 사람을 모두 뒤엎어 버렸단다. 그래도 그들은 그 눈을 다 맞으면서 진기를 불어넣은 것을 계속 했어.

그런데 그곳을 악불군과 악부인이 지나가게 되었어. 악불군과 악부인은 임아행 일행을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악불군은 숭산파가 제안했던 오악검파를 하나로 합치는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어. 그에 반해 악부인은 그것을 거절해야 한다고 했어. 악불군은 거절하게 되면 항산파 정한 사태나 정일 사태처럼 숭산파한테 당할 수 있다고 했어. 아니, 정한 사태와 정일 사태가 같은 편인 숭산파에게 당했단 말인가. 그러면서 그들은 정교라 떠들고 다닌 것인가.

악불군과 악부인이 지나가고 나서, 얼마 뒤 악영산과 임평지가 그곳을 지나갔어. 그들은 부모님을 찾아가는 길인데, 둘은 신혼 부부답게 알콩달콩 깨가 쏟아졌단다. 그런데 동방불패 무리들이 와서 악영산과 임평지를 납치하려고 했어. 그러자 영호충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 속에서 뛰쳐나와 동방불패 무리들을 처치하고 악영산과 임평지를 도와주었어. 눈사람인줄 알았는데 거기서 영호충이 뛰쳐나와 깜짝 놀랬지만, 자신들을 위험에서 구출해준 영호충에게 고맙다면서 길을 떠났단다. 영호충의 마음 한쪽에서는 싸한 느낌이 일지 않았을까 싶구나.


1.

영호충은 정한 사태와 정일 사태와 한 약속이 있어서 항산파로 간다고 하면서, 임아행, 영영, 향문청과 헤어졌단다. 항산파에 도착한 영호충. 다른 항산파 사람들은 영호충의 장문인 취임식을 해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취임식 준비를 하는데, 얼마 뒤 의림의 아버지 불계화상(기억나지?)이 전백광을 데리고 항산에 왔단다. 그런데 전백광이 머리를 빡빡 밀고 스님이 되어 나타났어. 불계화상이 그를 불교에 귀의시켰다고 하더구나. 불계화상과 전백광이 항산에 온 이유는 항산파에 가입하기 위함이라고 했어. 여자들만 있는 항산파의 장문인이 되는 영호충이 난처하게 될 까봐 남자들인 자신들도 항산파에 가입하겠다고 온 것이었어. 그들뿐만 아니라 영영을 따르던 수천 명의 무리들도 항산파에 가입하겠다면서 왔어. 이것은 영영이 영호충이 난처하지 않게 하려고 한 조치였단다. 마음씀씀이가 착한 영영이로구나.

….

영호충의 항산파 장문인 취임식방증대사와 충허도인도 축하해 주러 왔단다. 하지만 숭산파의 악후가 형산파, 태산파, 화산파 일행들을 데리고 와서 영호충의 장문인 취임은 무효라고 경고하러 왔어. 앞서 이야기한 영영의 수천 명의 무리들이 그곳에 있는 줄 몰랐던, 악후는 쪽수에 밀려 그곳을 다시 떠났는데, 다음달에 오악검파를 하나로 합치는 행사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이야기를 남겼단다.

방증대사는 충허도인과 영호충을 데리고 조용한 것에 셋 만의 대화를 나누었어. 숭산파 좌랭선의 야욕이 걱정된다고 했어. 오악검파를 하나로 합치려는 것도 오악검파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그 다음은 강호의 일인자로 데려는 야욕이 있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것에 같이 대비를 하자고 했단다. 방증대사는 규화보전과 벽사검보에 대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해주었어. 옛 화산파 제자 중에 두 명이 규화보전을 보고 나서 외웠는데, 나중에 보니 둘이 서로 외운 것이 달랐다고 했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다가 화산파가 내분에 휩싸여 검종과 기종의 둘로 나뉘게 되었다고 했어. 이들 중 하나가 자신의 기억을 적은 다시 적은 것이 오늘날 동방불패의 손에 있는 규화보전이라고 했어. 그리고 규화보전과 벽사검보는 원래 하나였다고 했어. 그들이 그렇게 밀담을 나누고 있던 자리에 동방불패의 부하 가포와 무리들을 이끌고 와서 그들을 기습했어. 아무런 준비가 없던 방증대사, 충허도인, 영호충은 그들에게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는데, 때마침 임아행, 향문청, 영영이 그곳에 나타나서 방증대사, 충허도인, 영호충을 구해 주었단다. 임아행은 가포의 무리들 중에 상관운이라는 자를 알고 있었는데,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그를 포섭했어. 임아행은 진정한 일월신교의 교주이고, 동방불패가 그 자리를 빼앗은 것이었잖아. 임아행 일행은 동방불패가 있는 흑목애로 향했단다. 일전을 겨루기 위해서….


2.

임아행 일행은 흑목애에 도착해서 동방불패를 만났는데, 그는 가짜였고, 진짜 동방불패는 숨어 지내고 있었단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분명 남자였던 동방불패의 목소리는 완전 여자 목소리가 되었고, 신체도 여자처럼 변해있었어. 자신의 부하였던 양련정이란 자와 사랑에 빠져 있기도 했어. 그가 이렇게 된 것은 그가 연마한 규화보전 때문이었어. 규화보전을 연마하면 무공의 실력은 뛰어나게 되지만, 여성화되는 부작용이 있었던 거야. 그럼에도 무공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서 동방불패는 규화보전을 익힌 것이지.

임아행 일행은 동방불패와 겨루게 되었는데, 소문대로 동방불패는 그들이 함께 겨루어도 이겨낼 수가 없었어. 영영이 꾀를 써서 동방불패가 사랑하는 양련정을 공격하려고 하자, 그 때 빈틈을 보이게 되었고 그로 인해 동방불패는 죽고 말았단다. 아빠가 어렸을 때 본 영화들에서는 동방불패의 존재감이 엄청났었는데, 원작에서는 잠깐 출현했다가 곧바로 죽고 마는구나. 그렇게 영화로 각색한 감독의 창의성에 박수를 보내야 하나, 원작을 제대로 무시한 감독의 무례함에 비판을 보내야 하나.

아무튼 동방불패가 죽고 나서, 임아행은 다시 일월신교의 교주가 되었단다. 영호충도 이들과 함께 왔었는데, 모든 것이 다 정리되고 나서 다시 항산으로 돌아왔단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고 숭산파에서 이야기한 오악검파를 합치는 행사가 있는 날짜가 다가와서 영호충은 숭산으로 향했단다. 숭산에는 오악검파의 장문인들과 각 파를 대표하는 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어. 그런데 이미 숭산파 좌랭선이 떡밥을 다 뿌려 놓아서 오악검파를 합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 같았어. 믿고 있던 스승 악불군마저 동참하겠다고 했단다. 배신감을 느낀 영호충.

여기까지 소오강호 6권의 이야기란다. 김용의 소설들은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난단다. 이제 남은 2 권에서는 어떻게 잘 해피엔딩을 끝날 지다음에 또 이야기해줄게. 아빠의 게으름이 좀 나아져야 할 텐데.. 밀린 독서편지를 언제 따라 잡으려나ㅎㅎ


PS:

책의 첫 문장: 영호충은 방증대사의 입으로 그날 영영이 자기를 매고 이곳에 도착했던 상황을 듣자, 마음속으로 감격하고 또 감격하였다.

책의 끝 문장: 우리는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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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2 -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편 유럽 도시 기행 2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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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유시민 님의 책을 읽었단다. 유시민 님이 유럽 도시 여행을 주제로 책을 쓰신다고 하셨고, 몇 년 전에 1권이 나왔단다. 원래는 1권이 나오고 얼마 후에 2권이 나올 예정이었으나 전무후무한 코로나 전염병으로 인해 책 출간이 계속 미뤄지다가 올해 나왔단다. 코로나 전염병이 창궐해 있는 동안 해외 여행에 대한 규제가 있어서 자유롭게 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올해 그 규제가 풀리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해외 여행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단다. 그래서 2권이 이번에 출간된 것 같구나. 유시민 님이 2권에서 소개된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을 여행한 것은 코로나가 창궐하기 이전이라서 이전에 책을 출간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책을 보고 책에서 소개한 곳을 여행할 수도 있으니, 해외 여행의 규제가 풀어진 시점으로 출간 시점을 맞춘 것 같구나.

그런데 최근에 다시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서 다시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조심하게 되는 것 같구나. 하기야 우리나라의 명소들도 못 가본 곳이 얼마나 많은데급히 해외로 갈 필요 있겠는가. 더욱이 지구온난화로 전 세계가 끓고 있는데 말이야. 이젠 점점 여행하기 힘든 시절이 오는 것 같구나. 예전에 많이 다니지 못한 것에 대해 너희들에게 미안하구나.


1.

이번 <유럽도시기행 2>에 소개된 도시는 모두 네 곳이란다. ,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아빠는 모두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드레스덴을 제외한 세 곳은 모두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란다. 드레스덴이란 곳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드레스덴 폭격으로 많은 희생자를 생겼던 곳으로 유명한데, 아빠는 커트 보니것의 <5도살장>을 통해서 그 비극적인 사건을 알게 되었단다. 좀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커트 보니것의 <5도살장>을 읽고 너희들에게 쓴 독서편지를 읽어보렴.

아무튼 이 네 도시에 대한 소개와 그 도시에 얽힌 역사 등을 유시민 님의 화법으로 재미있게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고, 이야기해주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어.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유시민 님이 각 도시에 대한 느낀 점을 짧게 한 마디로 적은 것을 볼 수 있단다. 빈은 내게 너무 완벽한’, 부다페스트는 슬픈데도 명랑한’, 프라하는 뭘 해도 괜찮을 듯한’, 드레스덴은 부활의 기적을 이룬’. 이 차례들을 보면서 왜 유시민 님은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아빠도 그의 글들을 읽어보면,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하면서 책을 펼쳤단다. 그러나 그가 직접 걷고 보고 느낀 감정을 그가 쓴 글에서 느끼기는 어렵겠지? 여행은 역시 간접 경험보다는 직접 경험을 해야 해


2.

이번 편지에서는 아빠가 뽑은 네 도시의 핵심 키워드 몇 개를 소개하고, 각 도시에 대해 유시민 님이 설명하는 부분 일부를 발췌해서 너희들에게 알려줄게.

먼저 빈. 빈의 키워드는 슈테판 성당, 비엔나 커피, 시씨, 마리아 테레지아로 뽑았단다. 슈테판 성당은 빈의 대표적인 건물이고, 빈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고 반전이 있어서 키워드로 뽑았단다. 그리고 시씨는 빈 사람들이 좋아하는 역사 속 인물인데,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라서 뽑았단다. 시씨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황후였단다. 시씨는 애칭이고 본명은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라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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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7)

사람들은 비운의 주인공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지만, 빈 사람들이 시씨를 사랑하는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운명에 의해 권력형 셀럽이 되었지만 시씨는 자기다운 삶을 추구했다. 그녀는 남편이 황제여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혼인했다. 황후의 권력과 화려한 궁정 생활에서 의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남편이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빈을 떠나 여행자의 삶을 영위했다. 아름다운 몸과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고 처절한 노력을 쏟았고 신분의 차이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려 했다. 운명을 거부하거나 극복하지는 않았으나 운명에 갇히지도 않았다.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의미를 느끼는 인생을 살아나가려고 번민하고 도전했다. 그리고 그런 끝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역사의 위인은 아니었으나 사랑할 만한 미덕을 지난 황후였음에는 분명하다. 그러니 시씨의 사진과 초상화를 마케팅 수단으로 쓰는 빈의 상인들을 욕하지 마시라. 그들은 시씨를 정말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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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프랑스 혁명과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의 엄마로 알게 된 마리아 테레지아도 빈을 대표하는 위인이란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책을 읽을 때도 든 생각인데, 마리아 테레지아에 대한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번에도 들었단다. 그 시절 여성으로써 어떻게 그렇게 유능한 군주가 되었는지 궁금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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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74)

마리아 테레지아가 오로지 타고난 성격과 재능 덕분에 유능한 군주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남자 형제가 없었기에 어려서부터 군주가 되기 위한 공부를 했고 권력 행사와 관련한 직접 간접 경험을 쌓았다. 쇤브룬 궁전의 마리아 테레지아는 내게 말했다. “리더십을 형성하려면 지적,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학습과 경험을 해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그런 기회를 얻는다면 누구라도 탁월한 리더가 될 수 있다. 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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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도시 부다페스트의 키워드는 도나우강, 리스트, 언드라시 등으로 뽑았단다. 유명하지만 아빠에게는 낯선 도시 부다페스트. 이 도시를 흐르는 유명한 강 도나우 강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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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도나우강은 알프스 남쪽 경계를 타고 동쪽으로 흐르면서 빈을 지난 다음 부다페스트 근처에서 직각으로 몸을 틀어 남쪽으로 내려간다. 헝가리를 벗어날 때 다시 동으로 전향해 카르파아산맥과 발칸 산맥 사이의 협곡을 따라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등 발칸반도 북부를 가로지른 후 루마니아 남부 평원과 우크라이나 저지대를 거쳐 흑해에 들어간다. 숱한 지류를 끌어안으며 알프스의 발원지에서 흑해까지 3천 킬로미터를 달리는 도나우의 품에서 빈, 부다페스트, 베오그라드 등 크고 작은 도시들이 자라났다. 1990년대에 라인강과 연결하는 운하가 개통되어 이제 도나우 물길은 흑해에서 북해까지 통하게 되었다. 하류의 도나우는 잔물결이 흐르는 푸른 강이지만 빈과 부다페스트 구간의 도나우 상류는 그렇지 않다. 탁류가 빠르게 흐르는 위험한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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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만 보는 도나우 강이지만, 아빠 생각에는 한강만 못한 것 같더구나.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리스트가 있단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젊은 피아니스트 임윤찬 님이 콩쿠르 대회에서 리스트의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달아 치면서, 그것도 리스트가 환생했다는 극찬을 받으면서 연주를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된 리스트가 바로 부다페스트 출신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언드라시라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는 처음 들어본 사람이지만 헝가리에서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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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언드라시(Andrassy Gyula, 1823~1890)는 오늘날 슬로바키아공화국에 속하는 곳에서 태어났다.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백작의 아들이었던 그는 소년 시절부터 민족주의 정치 운동에 참여했고 세체니 이슈트반의 눈에 들어 스물세 살에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848년 귀족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크로아티아 영토전쟁에 종군했으며 헝가리혁명 정부의 명에 따라 이스탄불로 파견되어 오스만제국 정부의 협력을 끌어내려고 했다. 혁명을 진압한 합스부르크제국은 그를 반역자의 두목으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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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도시 프라하의 키워드는 얀 후스, 보헤미아, 성 바츨라프로 뽑았단다. 얀 후스와 성 바츨라프는 프라하의 유명한 위인인데 아빠는 역시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고, 보헤미아는 프라하와 관계가 있는 말인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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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89)

그래서 보헤미안이라는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보헤미아인에 해당하는 체코 말은 체키인데 뜻은 정반대에 가깝다. ‘체키는 슬로바키아인이나 모라비아인 같은 소수민족을 제외한 보헤미아의 체코인을 가리키는 체코 말이고, ‘보헤미안은 독일인과 집시를 비롯해 체코인이 아닌 보헤미아 사람을 지칭하는 외국어였다. 그런데 19세기 후반 보헤미안의 뜻이 달라졌다. 유럽 사회의 주류로 지위를 굳힌 부르주아 계급의 틀에 박힌 도덕 규범이나 행동 양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한 가치관에 따라 자유분방하게 활동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주로 시인, 소설가, 화가, 음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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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네 번째 도시 드레스덴의 키워드는 드레스덴 폭격, 부활, 아우구스트로 뽑아 보았단다. 드레스덴을 이야기할 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이 벌인 만행을 빼놓지 않을 수 없구나. 독일은 자신들이 더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드레스덴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손해배상 이야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어. 전쟁은 이래저래 죄 없는 민간들을 불쌍하게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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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영국과 미국 공군은 1945 2 13일 밤부터 사흘 동안 네 차례 번갈아 드레스덴을 융단폭격했다. 그때마다 고열의 화염폭풍이 도심을 집어삼켰다. 군수품 공장과 기차역뿐 아니라 주택, 상점, 호텔, 술집, 교회, 성당, 병원, 오페라하우스, 영화관, 동물원, 학교, 엘베강의 선박까지 도심 반경 3킬로미터 안에 있던 모든 것이 터지고 녹고 부서지고 불탔다. 사망자만 20만 명이라며 연합국을 비난한 나치 정부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그 폭격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몇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전쟁이 끝나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무너진 건물에서 시신이 나왔고 지하 방공호 한군데서 1천여 명의 시신을 찾은 일도 있었다. 체코 접경지 수데텐란트(보헤미아의 독일 국경 인접 지역)에서 쫓겨나 드레스덴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던 피난민들은 거주자 통계에 잡히지도 않았다. 당시 시신을 수습한 사망자만 35천 명이 넘었다. 독일이 엘베의 피렌체라고 자랑했던 드레스덴에는 공장 몇 개 말고는 전쟁과 관계있는 시설이 없었는데도 연합국 공군은 엄청난 양의 폭탄을 투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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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간단히 네 도시에 대해 소개를 해 보았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역시 여행은 간접 체험보다는 직접 체험이 나을 듯 하구나. 유시민 님이 아무리 재미있게 이야기를 해주셔도 감흥이 크게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야. 다시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열렬히 기다리며 오늘 편지는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유럽도시기행> 1권을 내고 제법 긴 시간이 지났다.

책의 끝 문장: 관용의 정신이 더욱 널리 퍼져 인간은 더 자유롭고 세상은 더 평화로워지기를.


온몸을 적셔 준 ‘비엔나커피’의 달콤함이 물 밑으로 가라앉는 듯한 우울함을 덜어주었다. ‘이성은 고상할지 몰라도 사람의 내면을 항구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해. 매 순간 더 강하게 인간을 끌어당기는 것은 감각인지도 몰라. 어때? 그런 것 같지 않아? ‘비엔나커피’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잠깐, 오해를 피하려면 ‘비엔나커피’라고 따옴표를 한 이유를 말해야겠다. 빈에는 ‘비엔나커피’가 없었다. 딱 한군데, 부다페스트행 기차를 기다렸던 중앙역 로비의 비스트로에 ‘비엔나커피’라고 써 붙여 놓은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건 ‘비엔나커피’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길다방 커피’에 생크림을 올린, 다시는 맛보고 싶지 않은 정체불명 음료였다. - P32

부다페스트의 화려함은 헝가리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열등감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사의 상처를 감쪽같이 지워버린 빈과 달리 부다페스트는 그 모든 것을 내놓고 보여줌으로써 여행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증언하는 초대형 기억 공간을 조성한 베를린 말고는 부다페스트만큼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을 적극 홍보하는 도시를 찾아보기 어렵다. 부다페스트에서 반드시 그런 것을 챙겨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사연을 알면 부다페스트가 더 정겹게 안겨 오는 느낌이 들 것이다. - P114

나는 얀 후스를 존경한다. 후스를 모른다고 해서 프라하 여행에 지장이 생기진 않지만 알면 프라하 공간과 체코 사람들의 정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 세계사 교과서에서 얀 후스(Jan Hus, 1372~1415)라는 ‘종교개혁가’의 이름을 처음 보았다. 그렇지만 후스가 그저 종교개혁가로서 프라하의 광장에 서 있는 건 아니다. 후스의 동상은 보헤미아 민족주의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담고 있다. 그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았고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럴 의도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의 삶과 죽음은 보헤미아와 유럽의 역사를 바꾸었다. - P181

집은 건축주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종교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건축양식은 건축기술의 발전, 활용할 수 있는 건축자재의 변화, 건축주가 동원할 수 있는 재정의 규모 등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건축주의 철학과 욕망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로마제국 시대에 지은 교회는 무섭지 않다. 아테네 도심 골목의 오래된 정교회들은 아담하고 소박하고 정겹다. 원래 성당이었던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중세 유럽의 대세였던 고딕 양식 성당들은 그렇지 않다. 높고 날카로운 첨탑과 장중한 스테인글라스로 ‘경외심’ 또는 ‘공포감’을 강요한다. 고딕 양식은 가톨릭교회가 세속권력과 결탁하거나 스스로 세속권력을 능가하는 권력이었던 시대의 지배적 건축양식이다. 그들이 그런 집을 지은 것은 민중이 그곳에서 두려움을 느끼며 복종하기를 원해서였을 것이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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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상한 일이지만, 바로 그 순간까지 나는 건강하고 의식 있는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죄수가 웅덩이를 피하느라 몸을 비키는 것을 보는 순가,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불가사의함을,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있듯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신체기관은 미련스러우면서도 장엄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내장은 음식물을 소화하고, 피부는 재생하고 손톱은 자라고, 조직은 계속 생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설 때에도, 10분의 1초 만에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쑥 떨어질 때에도, 그의 손톱은 자라나고 있을 터였다. 그의 눈은 누런 자갈과 잿빛 담장을 보았고, 그의 뇌는 여전히 기억과 예측과 추론을 했다-그는 웅덩이에 대해서도 추론을 했던 것이다. 그와 우리는 같은 세상을 함께 걷고,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2분 귀면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우리 중 하나가 죽어 없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었다.


(32)

이 모든 것들이 당혹스럽고 언짢았다. 왜냐하면 그 무렵 나는 제국주의가 사악한 것이니 어서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좋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론적으로는(물론 남몰래 그랬다) 전적으로 버마인들 편이었고, 그들의 압제자인 영국인들을 전적으로 적대시했다. 내가 하고 있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도보다 지독하게 혐오했다. 그런 일을 하다보면 제국의 추악한 짓거리들을 지근거리에서 보게 된다. 악취 지독한 철창에 처박혀 있는 불쌍한 죄수들, 장기 재소자들의 겁먹은 얼굴, 대나무로 매질을 당한 사람들의 터진 엉덩이. 이 모든 게 견딜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난 그럴싸한 내 나름의 관점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나는 아직 어린데다 부실한 교육을 받았고, 동양에 가 있는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그랬듯 내 문제를 철저히 함구한 채 혼자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대영제국이 저물어가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것을 대체해가는 신생 제국들보다는 영국이 훨씬 낫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내가 알았던 것이라곤 섬기던 제국에 대한 나의 증오와, 도무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려던 악독하고 자그만 인간들에 대한 나의 분노 사이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64-65)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나 지금 우리 사회와 같은 곳에 살면서 변화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성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버마에서 영국 제국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목격했고, 영국에 와서는 빈곤과 실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그런 시스템에 맞서 싸운다는 게, 주로 독서 대중에서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책들을 쓰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태의 진전이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한때는 한 세대 뒤의 위험 같아 보이던 것들이 우리를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적극적인 사회주의가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에 공감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되고, 언제나 활발한 적들의 술수에 놀아나서도 한 된다.


(88)

애국주의, 즉 국민적 충심이 갖는 압도적 힘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오늘의 세계를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애국주의는 상황에 따라 무력해질 수도 있고, 문명의 어느 단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힘으로서 그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다. 기독교와 국제 사회주의는 애국주의에 비하면 지푸라기처럼 연약하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들의 나라에서 권좌에 오른 가장 큰 비결은, 그들은 이 사실을 파악했고 그들의 적들은 그러지 못했다는 데 있다.


(107)

영국은, 자주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구절처럼 보배 같은 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괴벨스 박사의 묘사처럼 지옥인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집안을, 상당히 고루한 빅토리아 시대의 집안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골칫덩이가 많진 않아도 찬장마다 해골이 넘쳐나는 집안 말이다. 이 집안에는 비굴하게 아첨을 떨어야 하는 부자 친척도, 끔찍이 들러붙는 가난뱅이 친척도 있으며, 집안의 수입원에 대해 함구한다는 단단한 공모가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좌절을 겪고, 실권은 대부분 무책임한 삼촌들이나 몸져누운 숙모들 손에 있다. 그래도, 집안은 집안이다. 나름의 언어가 있고, 공통의 기억이 있으며, 적이 다가오면 단결한다. 엉뚱한 식구들이 살림을 주무르는 집안-영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게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134-135)

군대 생활의 본질적인 공포는(군인이 되어본 사람이라면 군대 생활의 본질적 공포라는 게 무엇인지 알 것이다) 어떤 성격의 전쟁에서 싸우게 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기 같은 것은 어떤 군대든 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명령은 복종해야 하고 필요하면 처벌로써 강요되며, 장교와 사병의 관계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책들에 나오는 전쟁 묘사는 대체로 정확하다. 총탄은 맞으면 아프고, 시체는 썩어 악취를 풍기고, 총격전이 벌어지면 너무 무서워 바지를 적시기도 한다. 어떤 군대가 만들어지게 된 사회적 배경이 그 군대의 훈련과 전술과 전반적인 능력에 영향을 끼치며, 정의 편이라는 의식이 사기를 북돋우는 것도 사실이다.


(137)

오늘날 일반 대중의 견해가 왔다갔다하는 묘한 현상은, 말하자면 수도꼭지 열리고 닫히듯 정서가 돌변하는 것은 신문과 라디오의 최면 탓이다. 한편 지식인들의 경우는 상당 부분 돈과 한낱 신체적 안전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주전(主戰)’ 쪽이 되기도 하고 반전쪽이 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그들의 머릿속에는 전쟁에 대한 실제적인 그림이 없다. 물론 그들은 스페인내전에 대해 열광하면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죽는다는 게 불쾌한 일이란 건 알았다. 하지만 스페인 공화국 장병의 전쟁 체험은 아무튼 품위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웬일진지 이 전쟁의 변소는 악취가 덜 나고, 군기는 덜 짜증스럽다고 본 것이다. 그들이 정말 그렇게 믿었는지는 <뉴 스테이츠먼>을 슬쩍 들여다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과 쏙 빼닮은 허튼소리가 작금의 붉은 군대에 대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문명화되어 명백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 더럽혀야 한다. 전쟁은 악이며, 차악(遮惡)인 경우도 흔히 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며,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악취 진동하는 병으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케케묵은 소리를 굳이 쓸 필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간 임대소득이나 이자로 먹고사는 자본주의가 우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148)

기록된 역사 대부분은 어떤 식이든 거짓이라는 말이 유행인 건 나도 안다. 나는 역사가 대체로 부정확하고 편향된 것이라는 말을 기꺼이 믿는 쪽이다. 한데 우리 시대에 와서 특이한 점은, 역사가 진실하게 기록될 수도있다는 개념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 글을 무의식적으로 윤색하거나,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진실을 애써 추구했다. 단 어느 쪽이든 사실은 존재하며,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 만한 사실이 늘 상당 부분 있었다.


(194)

진실은 밝혀질 수도 있겠지만, 거의 모든 신문이 사실을 워낙 거짓으로 알리기 때문에, 거짓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어거나 나름을 견해를 갖추지 못한다 해서 일반 독자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정보가 전반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에 황당한 믿음을 고수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무엇 하나 입증되지도 반증되지도 않기에, 더없이 엄연한 사실도 뻔뻔히 부인해버리는 게 가능해진다. 더구나 민족주의자는 세력, 승리, 패배, 복수에 대해 끊임없이 골몰하면서도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선 다소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가 바라는 바는 자기편이 상대편보다 앞서고 있다고 느끼는것이며, 사실이 뒷받침되는지 확인하기보다는 상대편을 묵살해버림으로써 더 쉽게 그럴 수 있다. 모든 민족주의 논쟁은 토론반 학생들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떤 논쟁 참가자든 자신이 이겼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수준을 넘지 못한다. 어떤 논쟁 참가자든 자신이 이겼다고 믿어버리기 때문에 결판이 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어떤 민족주의자는 정신분열증 환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실제 세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세력과 정복을 꿈꾸며 제법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210)

문명의 역사는 대체로 무기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주장은 이제는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특히 화약의 발명과 부르주아에 의한 봉건제 전복의 연관성은 누차 지적된 바 있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일반적인 사실로 판명될 것이라 생각한다. , 가장 강력한 무기가 싸고 단순한 시대에는 서민들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예컨대 탱크나 전함이나 폭격기는 본질적으로 압제적인 무기인 반면에, 소총이나 머스킷총이나 긴 활이나 수류탄은 본질적으로 민주적인 무기인 셈이다. 복잡한 무기는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들고, 단순한 무기는(보복이 따르지 않는 한) 약자에게 갈고리발톱이 된다.


(218-219)

확실히 과학교육은 합리적이고 회의적이며 실험적인 사고의 습성을 심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방식’, 즉 부닥치는 어떤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습득하는 것이어야지, 사실을 잔뜩 축적하는 것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을 과학교육 옹호론자에게 하면 대게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하면, 언제나 과학교육이란 정밀과학에, 달리 말해 더 많은 사실에 주목하는 일이라는 식의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과학은 한 덩어리의 지식에 불과한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생각은 현실에서 강한 반발에 부닥친다. 그렇게 된 데에는 순전히 직업적인 시기심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이 단순히 하나의 방식이나 태도라면, 그래서 사고방식이 충분히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의미에서 과학자라 할 수 있다면, 지금 화학자나 물리학자 등등이 누리고 있는 엄청난 위세는 어찌 되며 아무튼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현명하다는 주장은 또 어찌 되겠는가?


(240)

하지만 자연과학이나 음식이나 미술이나 건축이 어떻게 되든 간에 사상의 자유가 말살된다면 문학의 운명은 (내가 지금까지 밝히려고 한 바와 같이) 암울할 게 확실하다.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전체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작가, 박해와 현실 조작에 대해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작가, 그럼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이는 작가도 같은 운명인 것이다. 그 길로 접어들면 헤어날 방법이 없다. ‘개인주의상아탑을 비난하는 어떤 장광설도, ‘참된 개성은 공동체와 합일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식의 경건하고 상투적인 어떤 주장도, 매수된 정신은 망가진 정신이라는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어느 순간에 자발성을 갖게 되지 않는 한, 문학 창작은 불가능하며 언어 자체가 굳어져버린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인간의 정신이 지금의 것과 완전히 다른 무엇이 된다면, 우리는 문학 창작과 지적 정직성을 분리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가 아는 것은,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것이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을 부인하는(지금 소련에 대한 거의 모든 찬사에는 그런 부인이 내제되어 있다) 작가나 언론인은 실은 자신의 파멸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246-248)

이런 질문을 하루 수밖에 없는 건,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 때문이다. 행락이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중 상당수는 의식을 파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인간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면 인간으로서 잘 산다는 것이 단순히 일을 하지 않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등 아래서 녹음된 음악만 듣고 사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에겐 온기가, 사회가, 여유가, 안락이, 안전이 필요하다. 또 고독도, 창조적인 작업도, 경이감도 필요하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것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의 기준을 적용하여 과학과 산업화의 산물을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울러 삶이 점점 더 기계화되는 현실에서 민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가, 옛것을 선호하는 감상적 취향에 불과한 게 아니라 십분 정당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수많은 발명품들(특히 영화, 라디오, 비행기)은 인간의 의식을 약화시키고, 호기심을 무디게 하며, 대체로 인간을 가축에 더 가까운 쪽으로 몰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77)

제비보다 먼저, 수선화보다 먼저, 아네모네보다 조금 늦게, 두꺼비는 봄이 다시 찾아온 것에 대해 나름의 경의를 표한다. 지난 가을부터 들어가 누워 있던 땅속 구멍에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적당한 물웅덩이 쪽으로 최대한 빨리 기어가는 것이다. 무언가가(땅속의 어떤 떨림인지 아니면 그냥 온도가 몇 도 올라서인지 잘은 모르지만) 두꺼비에게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몇 마리는 내내 잠만 자다 한 해를 아예 빼먹기도 하는 것 같다. 한여름에 땅을 파다가 멀쩡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두꺼비를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300)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으로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 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이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다.


(329)

작가의 관점은 정신건강 차원의 온전함, 그리고 가지 생각을 밀어붙이는 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이상으로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재능일 것이며, 그것은 확신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프트는 정상적인 의미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비전은 확실히 갖고 있었으며, 그것은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골라내어 확대하고 비틀어서 볼 줄 아는 능력이기도 했다. <걸리버 어행기>가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작가의 세계관이 온전함이라는 기준을 겨우 만족시키는 수준일지라도, 작가의 확신이 뒷받침해준다면 위대한 예술 작품을 충분히 낳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419)

언제나 강자가 약자에게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미덕은 이기는 데 있었다. , 미덕이란 남들보다 더 크고, 강하고, 잘생기고, 부유하고, 인기 좋고, 세련되고, 거리낌 없는 데 있었다. 달리 말해 남을 지배하고,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바보 같아 보이게 하며, 모든 면에서 남보다 앞서는 데 있었던 것이다. 삶이란 본래 위아래가 있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 자체가 옳은 일이었다. 강자가 있어 그들은 이겨 마땅하고 언제나 이겼으며, 약자가 있어 그들은 져 마땅하고 언제나, 끝없이 지기만 했다.


(431)

아이는 일종의 이질적인 수중(水中) 세계에 살며, 우리가 그 세계를 이해하자면 기억이나 점술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단서는 우리도 한때 어린아이였다는 점인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 어린 시절의 분위기를 거의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자기 어린 시절의 분위기를 거의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 같다. 이를테면 신학기가 되어 학교로 아이를 돌려보낼 때 무늬가 영 이상한 옷을 입혀 보내면서 그게 문제가 된다는 걸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아이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안겨주는 부모를 생각해보라! 그런 유의 문제에 대해 아이는 때때로 항의 표시를 하겠지만, 많은 경우 아이의 태도는 그저 감정을 숨기는 데 그치고 만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어른에게 노출하지 않는 것은 일고여덟 살 때부터 시작되는 본능 같은 게 아닌가 싶다. 어른이 아이한테 느끼는 애정이나 아이를 보호하고 아끼고자 하는 욕구도 몰이해의 원인이 된다. 어른이 다른 성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아이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고 하자.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보답으로 그 어른에게 사랑을 느낀다고 생각한다면 경솔한 판단이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건대, 유아기가 끝난 뒤로는 어머니 말고는 어떤 어른에게도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어머니에 대해서도 신뢰가 없었는데, 쑥스러워서 진짜 감정은 대부분 숨겼다는 의미에서 그랬다. 내 경우에 자발적이고 전폭적인 사랑의 감정은 어린 사람에게만 느낄 수 있는 무엇이었다.


(434)

아이들의 약점은 백지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사는 사회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의문시하지도 않는다. 아이는 그렇게 잘 믿기 때문에 어른한테 영향받기 쉬우며, 그만큼 열등감에 물들거나 불가사의하고 끔찍한 법을 어기는 데 대한 공포감에 휘둘리기 쉽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은 가장 계몽된 학교에서도(보다 미묘한 방식일진 몰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하는 기숙학교가 일반 통학학교보다 더 나쁘다는 것만은 거의 확신할 수 있다. 집이 가까이 있으면 아이가 인식을 얻기가 더 쉬운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영국 상류층과 중산층 특유의 결함은 여덟아홉, 심지어 일곱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을 최근까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로 보내온 일반적인 관행에서 어느 정도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446)

정치에선 둘 중 어느 쪽이 덜 악한지를 판단하는 것 이상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악마나 미치광이처럼 행동해야만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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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8-28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책입니다.
뽑아주신 인용문장을 보니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bookholic 2022-08-28 23:21   좋아요 1 | URL
저는 읽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좋은 글들이 많았어요...
소설을 통해 조지 오웰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의 에세이도 깊이 있고, 좋았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게르니카의 황소
한이리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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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아빠가 읽은 책은 한이리 님의 <게르니카의 황소>라는 소설이란다. 이 책은 독특한 소설 제목과 먼저 읽은 이들의 높은 평점으로 아빠의 눈길을 끈 책이란다. 그리고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스토리부문 대상작이라고 하였어. 이 소설의 제목은 누가 봐도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에서 따 온 것을 알 수 있었단다. 아빠도 그 그림의 제목만 알았지, 자세한 내용은 몰라서 구글링을 좀 해봤더니 게르니카라는 그림은 스페인 내전 당시 게르니카 지역을 독일군이 비행기로 폭격한 참상을 기리는 마음으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구나. 그 크기가 349.3 x 776.6 cm나 되는 엄청난 크기라고 하더구나.

그런데 왜 이 소설에 그 그림에서 따왔을까, 궁금했단다. 지은이는 한이리 님이라는 처음 알게 된 분이었어. 대한민국콘텐츠대상 스토리부문 대상작이고, 평점이 너무 좋아서 아빠가 너무 기대를 하고 책을 펴서 그런지, 그 기대에는 좀 못 미쳤단다. 아빠의 취향과 좀 안 맞는다고 할까?


1.

한국에서 부모님을 따라 미국 뉴욕으로 이민은 온 소녀. 신경질환을 겪던 엄마가 아빠를 죽이고 딸도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 엄마는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혼자 남은 딸은 정신병원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고, 그 딸은 그 사고가 일어나기 전엔 열 살 이전의 기억을 하나도 못하고, 심지어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그 딸을 치료하던 의사 칼 벤헴은 그 소녀를 양녀로 입양하였고, 이름을 케이트라고 지어주었어. 케이트 벤헴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칼 벤헴에게는 친 딸 레이첼과 친아들 댄이 있었는데 레이첼과 댄은 케이트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단다. 케이트는 그 사건의 트라우마로 정신 질환을 겪고 약을 주기적으로 먹어야 했어.

그런 케이트가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을 보면 안정을 찾았어. 그래서 칼 벤헴은 케이트의 생일 선물로 게르니카그림을 주었어. 케이트 방의 한 쪽 면을 게르니카로 가득 채웠지. 그 이후 케이트는 게르니카 그림 속 황소가 뛰쳐나오는 환상을 겪곤 했어. 그러다가 그림을 그리면 안정을 찾곤 하는데, 케이트의 그림이 수준급이었단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버지 칼 벤헴의 소개로 그가 근무하는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상대로 그림 치료 강의를 하기도 했단다.

케이트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상태가 호전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약을 먹지 않기도 했는데 그 때면 아버지한테 혼나고 다시 약을 먹었단다. 심지어 어쩔 때는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어.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약을 먹지 않아서 다시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했어.


2.

그런 병원 생활이 싫어서 탈출을 하고 친구 니콜의 집에서 숨어 지냈어. 그 때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꿈을 너무 생생히 꾸었단다. 그리고 케이트 자신도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어. 꿈속에서 알게 된 에린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에린이 그린 그림이 엄청났고, 꿈속에 본 에린의 그림을 케이트가 다시 그렸어. 그런데 그 그림들이 그야말로 대박을 치게 된 거야. 꿈 속의 에린은 자신의 그림을 훔쳤다고 했어.

이 때부터 소설은 지금 이야기가 케이트의 꿈 속에서 일어나고 이야기인지,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인지 읽는 이들도 혼란스러웠단다. 에린이 정신병원 보일러실에 갇혀 있었는데, 케이트는 그 에린을 구출해 주고 시골의 한 별장에 지내게 하면서 그림만 그리게 했단다. 어찌 보면 케이트가 다시 에린을 가두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 아무튼 에린이 그린 그림들은 케이트의 이름이 붙인 채 고가에 팔리게 되었어. 사실 케이트가 현실에서 다시 그린 그림들이지만, 이미 케이트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어.

….

그런데 있잖니이런 이야기는 결말부에 가서 대 반전을 이루게 된단다. 지금부터는 아빠의 편지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나중에 이 소설을 읽을 마음이 있다면 아래 편지는 안 읽는 편이 좋을 것 같구나.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케이트의 열 살 이전의 기억들 있잖니. 그게 모두 거짓이었어. 케이트는 열 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상실했고, 양아버지 칼 벤헴한테 들은 것들이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어.

모두 칼 벤헴의 짓이었어. 칼 벤헴은 아동성애자란다. 그가 납치 후 가둬서 죽인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었어. 그가 케이트에게 약을 먹인 것도 정신 질환 치료가 아닌, 옛 기억을 떠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수단이었어. 케이트의 부모님은 죽었냐고? 그렇지 않았어. 그들의 식구들은 여전히 코리아타운에 살고 있단다. 딸을 잃은 슬픔을 안은 채 말이야. 그리고 칼의 결말은 이 사실을 알게 된 케이트의 의해 끝나게 된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마지막 예상치 못했던 반전은 괜찮았지만, 소설 중반부 꿈과 현실을 어지러움이 아빠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머릿속에서 그려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단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기분일까?


PS:

책의 첫 문장: 어머니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샤넬 No.5의 향기를 맡았다고 한다.

책의 끝 문장: 다시는 그 어떤 환상에도 속지 않도록 두 눈을 똑바로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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