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5 - 제2부 유형시대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조정래 님의 <한강> 5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5권은 유일표의 친구 이상재의 이야기부터 시작했단다. 이상재는 통일혁명당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뜻밖에 소식을 듣는단다. 자신이 활동했던 통일혁명당이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고 불법정당 활동을 하고 간첩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어. 그는 충격을 받았어. 이것이 실제인지, 누명을 쓴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았어. 그러면서 자신이 한국에 있다면 감옥에서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베트남 참전을 신청하여 베트남에 가게 되었단다.

베트남에서 군생활을 하게 된 이상재는 친척의 빽으로 PX에서 일하게 되었어. PX는 군대 내에 매점이라고 할 수 있어. 아빠도 군대 있을 때 PX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아무튼, 이상재는 통혁당 간첩단 사건으로 배신감도 들었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일지도 의심을 했단다. 아빠도 통혁당 사건에 대해서 들어봤는데, 당시에 워낙 조작 사건이 많아서 이것도 그런 것인가, 검색해봤는데 이 사건은 실체가 있었던 사건 같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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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상층부 몇 명이 북쪽에 가고, 노동당에 입당을 하고, 거액의 돈을 받아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악명 높은 중정의 고문수사에 의한 조작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개된 재판을 하게 되면 조작이 폭로되고 말 텐데 그럴 수가 있을까. 더구나 한두 명이 연루된 사건도 아니고 70명이 넘게 구속된 대사건을 가지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보다 더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 그런 행위가 온몸에 휘발유 뒤집어 쓰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위험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자신들이 추구했던 운동이 김일성 정권을 편드는 것이었던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남쪽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동시에 직시하고 해결해 나아가는 것이 사회혁신이며, 진정한 통일운동의 길이라고 인식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상층부에서는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인가? 자금이 필요해서? 그건 전혀 말이 안 된다. 돈이 없으면 운동을 중단해야지 돈 때문에 운동의 순수한 목적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게 아니면 상층부에서는 처음부터 그런 의식과 목적을 가지고 조직원들을 속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건 악질적인 흉계고, 속은 자들의 순수한 무참하게 짓밟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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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베트남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기업들에게도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여 많이들 갔단다. 그렇게 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일반 노동자들도 베트남에 갔단다. 문태복이란 사람도 베트남에서 군수업을 하며 일했어. 베트남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귀국한 후 택시 회사를 차리는 것이 꿈이었지. 그런데 그는 도박에 빠져서, 돈을 모으기는커녕 빚만 늘어가고 있었단다. 그 빚을 벌기 위해 베트남 근무를 계속 연장해야 했단다. 이런 사람이 비단 문태복만이 아니었을 거야.

 

1.

김명숙이란 사람 기억나니? 김선오의 둘째 동생으로 가출해서 차장으로 일하고 있었어. 친구 박보금과 나복녀는 술집 웨이터를 한다면서 차장 일을 그만 두고 나서 한참 연락이 끊겨서 그들을 만나보려고 했어. 김명숙은 박보금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일은 그냥 술집 웨이터가 아니고 2차까지 나가 몸까지 파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김명숙은 자신이 그런 일을 안하게 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단다. 김명숙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안 하기로 했었거든. 그런데 나복녀는 폐병 걸린 것이 확인되어 그곳에서도 쫓겨나게 되었대. 그 이후 연락이 안 된다고 했어. 나복녀는 술집에서 쫓겨난 이후 불쌍하게도 사창가에 팔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성병까지 얻게 되고 또 폐병이 도지게 되었어. 결구 나복녀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자살 기도를 했단다.

...

천두만의 딸 천말분은 가발 공장에서 가발 만드는 일을 했는데 손놀림이 좋고 빨라서 동료들보다 돈을 많이 받았어. 그들의 보수는 도급제, 그러니까 실적만큼 주는 것이어서 천말분은 화장실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열심히 가발을 만들었단다. 천두만은 가발공장에 다니는 큰딸의 소개로 가발 공장의 원자재인 머리카락을 사는 일을 했어. 미용사 두 명과 함께 시골을 돌면서 여자들의 긴 생머리를 사는 거야. 당시에는 화학섬유로 만드는 가발도 있었지만, 실제 머리로 만든 가발이 더 품질이 좋았단다. 천두만과 미용사들은 시골에 가서 공짜로 파마를 해주고 머리카락 사는 돈도 준다는 전략을 썼는데, 이것이 잘 먹혀 들어가 벌이가 심심치 않았어. 뿐만 아니라 시골의 아가씨들에게 가발공장의 일자리 알선도 해주어 부수입도 챙겼어. 그에게는 꿈이 생겼어. 자신과 큰딸이 버는 돈을 모아서 조그마한 하청공장을 차리겠다는 꿈이었어.

나복남은 결국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어. 스테인리스 기계에 그만 손가락 네 개가 잘려나가고 말았어. 순식간이었단다. 하지만 공장에서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회사에서 해고까지 당했단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사장 집까지 찾아갔지만 소란을 피웠다며 자신만 파출소에 끌려가고 말았어. 아무도 그의 억울함을 들어주는 이는 없었어. 그에게 그런 일자리를 주었던 천두만은 미안함 마음이 컸단다. 어떻게든 나복남의 생활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 천두만은 나복남의 손이 다 나으면 자신과 함께 머리카락을 사러 다니는 일을 하자고 했어. 그리고 자신이 공장을 짓게 되면 그곳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면 된다고 희망을 가지라고 이야기했지만 잘려나간 손가락 네 개는 어디서 보상을 받겠니. 나복남은 계속 사장에게 복수를 계획했어. 그래서 자신처럼 공장에서 손가락을 잃고 일자리를 잃은 다른 피해자들에게 연락했지만, 그들은 소극적이었단다. 하지만 그는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접을 수 없었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억울하니 말이야.

김선오의 바로 밑 여동생, 김광자. 그녀는 선생님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다른 꿈이 생겨났단다. 서독에서 간호사로 일하러 간 다음에 그곳에서 틈틈이 공부하여 의대를 가겠다는 꿈이었어. 더욱이 서독은 공부만 잘하면 의대 비용은 무료라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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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경은 박부길 사장에게 그만 겁탈을 당했어. 허미경은 자신을 좋아하는 오빠 허진의 친구 이상재의 마음을 알았기에 자신의 몸이 더럽혀진 이후 이상재에게 연락도 안 했어. 이런 소식을 모르는 이상재는 제대 후에 사라진 허미경을 찾아 다녔어. 6개월에 만에 허미경을 찾았지만, 허미경이 박부길의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단다.

....

이번 <한강> 5권에서는 전태일 이야기도 나오는데, 전태일이야 말로 용기 있고 진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도 오래 전에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었는데 그 내용이 전부 기억나질 않지만, 자신은 충분히 먹고 살고 살 수 있는 재단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노동자들을 위해서 헌신했던 위대한 노동자란다. 앞서 이야기했던 <전태일 평전>을 너희들도 나중에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전태일이 노동 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강> 5권에 실려 있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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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전태일은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며 봉투에서 서류를 꺼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이야기 들을 자세를 전혀 갖추지 않은 채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훅 내뿜으며 책상 옆구리에 붙여둔 빈 의자가 있는데도 자리를 권하지 않았다.

저어, 저희들이 일하는 봉제공장들은 작업환경부터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도록 형편없이 나쁩니다. 먼저, 천장 높이가 1.5미터밖에 안 되어 모두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해야 합니다. 원래는 3미터 높이였는데 사장들이 임대료를 줄이고 돈을 많이 벌려고 절반을 막아 2층으로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장들은 대개 8평 정도고, 평균 32명씩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좁은 공장이 복도로 통하는 문 외에는 세 벽이 모두 막혀 있어 통풍이 전혀 안 될 뿐만 아니라 환기장치도 일절 없다는 사실입니다. 감독관님, 봉제공장은 모두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통풍도 안 되고 환기장치도 전혀 없으니 원단에서 풍기는 코를 찌르는 포르말린 냄새며, 옷감을 재단하고 옷들을 만들면서 끝없이 일어나는 실밥먼지는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대로 공장 안에 갇혀 있어서 공장 안은 언제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침침합니다. 공원들은 그 먼지를 다 마시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지가 많이 나는 옷감일 때는 서너 시간만 일해도 먼지가 앉아 머리가 허옇게 되고, 도시락을 펴놓고 첫숟가락을 넘기기도 전에 밥에 먼지가 허옇게 내려앉아 먼지밥을 먹는 실정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먼저구덩이에서 날마다 14시간씩 일을 하다 보니 기관지염, 진폐증, 폐결핵, 각종 눈병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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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자아, 그럼 내 말 똑똑히 들어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분명히 사람이야.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은 그 누구나 다 똑같이 평등해. 사람이면 모두가 다 공평하게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 것처럼 말이야. 사람은 모두 평등하니까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어.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말야. 우리 공원들도 일반 직장인들처럼 하루 여덟 시간 일하고 제대로 봉급받고, 야근을 하게 되면 야근수당을 따로 받고 해서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져 있어. 그건 나라가 만든 법인데, 그 법 이름이 바로 근로기준법이야. 그런데 그 법이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 공원들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기계처럼 뼛골 빠지게 혹사당하면서도 거지꼴을 못 면하고 살고 있는 거야. 그런데 왜 그 법이 안 지켜질까? 사장들이 돈 많이 벌 욕심으로 안 지키기 때문이라고? 그거 맞는 말이야. 그러나 그건 정확한 답이 아니야. 사장들의 잘못은 3분의 1밖에 없어. 그 법이 제대로 확실하게 지켜지게 하려면 사장들 말고 또 책임져야 할 데가 두 군데가 더 있다 그런 말이야. 자아, 이 대목에서 내 말 똑똑히 들어. 그 두 군데 중에 한 군데가 나라에서 만든 법을 제대로 잘 지키나, 안 지키나 감독해야 하는 공무원들이야. 그럼 나머지 한 군데는 어디지?”

전태일은 두 공원 아가씨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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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근로감독관, 노동청 등에 부당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서 이이기했지만 그들 모두 기업의 편에 서서 전태일의 의견을 묵살했어. 오히려 전태일은 회사에서 짤리게 되고, 다른 곳에도 취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단다.

 

2.

유일민은 임채옥이 준 돈으로 술 도매상 사업을 시작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단다. 서동철이 소개해준 남미미라는 전직 여배우가 운영하는 술집에 납품을 하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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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임은 복부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어. 강남 쪽에 새로운 개발이 있을 거라는 소문에,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남편으로부터 정보를 알아내어 강남땅을 사들이기 시작했지. 당시만 해도 강남은 허허벌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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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일하는 광부들 사이에는 미국으로 이민 가는 유행이 번졌단다. 미국에는 일자리가 더 많고, 광부처럼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한국에서는 미국 이민이 쉽지 않지만, 독일에서는 그것보다는 쉽게 이민을 갈 수 있었기 때문이야. 배상집은 광부 일을 하면서 틈틈이 공부를 했단다. 자신이 원래 목표로 했던 박사학위를 따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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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백은 처가 등쌀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어. 장인 어른은 검사인 이규백을 이용하여 이권을 챙기기에만 혈안이고, 아내는 시댁 식구들을 벌레 보듯 혐오하고 말이야. 이게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인지... 돈만 보고 결혼한 자신의 잘못도 적지 않지.

...

허미경은 박부길의 첩이 되었고, 박부길은 허미경의 가족들한테도 아파트 한 채를 선물해 주었어. 그렇다고 허미경이 그에게 마음까지 준 것은 아니란다. 자신의 몸을 버려 체념을 한 것 뿐이지. 어느 날 허미경은 할머니와 가족들이 있는 아파트가 붕괴되어 무너졌다는 뉴스를 들었단다. 깜짝 놀라서 그곳에 갔는데 다행히 할머니가 사는 동은 아니고 옆 동이 무너졌단다. 이것은 실제 있었던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이란다. 15동이 그대로 주저앉아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사건이야. 날치기로 허술하게 지은 아파트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논란이 되었지. 당시 책임을 져야 할 부르도자(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진 서울 시장은 책임만 회피하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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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284)

원병균은 여러 가지 정황을 세밀하게 살피면서 말을 잃고 있었다. 산비탈은 45도가 족히 될 만큼 경사가 심했다. 그런 급경사에 단층짜리 주택도 아니고 5층이나 되는 아파트를 세운 것이다. 최신 장비나 최신 기술이 있더라도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할 난공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모든 자재들을 등짐으로 져올리고, 콘크리트 반죽도 삽으로 적당적당 해치우는 형편에 그런 난공사를 한 것이다. 땅값 비싼 서울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평지보다 몇 배 더 강하고 튼튼하게 공사를 하도록 규정을 정하고, 감시했어야 한다. 그러나 산동네마다 솟아오르는 시민 아파트들이 너무 졸속이고 날림이라는 비판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부르도자시장은 그런 우려와 비판을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깔아뭉개며 일을 몰아붙여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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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여기까지가 <한강> 5권의 이야기란다.., 해방과 전쟁 이후 나라의 시스템에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자본주의가 물밀듯이 들어오다 보니, 사람은 뒷전이 되고 돈이 우선인 세상이 된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나 월남 가기로 자원했다. 곧 떠나.”

책의 끝 문장: 박준서는 멀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까라면 까야지하고 생각했다.

 



미군들은 월남사람들을 ‘국’이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멸시하고 차별했다. 그러나 ‘국’이라는 비칭은 월남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국’은 원래 미국에 사는 중국인들을 천시해 생겨난 것이었고, 그 비하의 지칭에는 아시아 황색인종 전체를 업신여기는 의미가 포괄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군들은 한국군은 연합군으로 자기네와 같다고 애써 구분하면서 월남인들만 ‘국’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이상재는 그 얍삽한 수작이 오히려 역겹고 기분 상했다. 그건 단순히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백인들은 아시아인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간주한다는 글을 일찍이 읽었기 때문이다. 황인종들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취급해 버리는 백인들의 그 대책 없는 오만과 우월감, 그에 대한 반감이 이상재는 월남에 와서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미군들이 더럽고 냄새난다고 해서 월남사람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6.25 때 한국사람들을 그렇게 취급했던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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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116)

그리고 여자 애들한테는 차가운 분노가 있어야 해요. 여자 아이들은 싸늘하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 사그라지지 않는 원한, 용서하지 않는 재능과 협상을 회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무슨 얘기를 할 때는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요. 그건 세상에서 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살아야 하는 데 대한 보상이에요. 남자에게 맞서 싸움을 해 이기면 자기 방식대로 계속 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 거죠. 여자한테 맞서면 온 우주가 다시 한번 다 바뀌어요. 왜냐하면 차가운 분노는 멸시와 모욕에 관한 한 어떤 문제에서든 언제까지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계를 풀지 않는 법이니까요.” 사리마는 피예로에 대해, 리르에 대해 입 밖에 내지 않는 비난을 던지며 엘파바를 쏘아보았다.

 

(257)

약에 대한 진실은 여러분이 말한 것 중 그 어느 것도 아니야. 당신들은 악의 한쪽 면, 즉 인간적인 면만 발견했어. 영속적인 면은 그늘 속으로 들어가 버렸어. 아니면 그 반대이든가. 옛날 속담 같은 거지. 껍데기 속의 용이 어떻게 생겼을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 보려고 껍데기를 깨는 순간 용은 더 이상 껍데기 속에 없을 테니까. 악의 본질은 비밀스러움이기 때문에, 이 질문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어.”

 

(283)

종교라는 꼬챙이가 몸 전체를 꿰뚫고 있다면, 움직일 때마다 의식할 것이다. 그런 사람의 정신적, 도덕적 체계에서 종교라는 언월도를 뽑아낸다면 제대로 서 있기나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초원의 하마가 섬유질의 소화를 돕는 유독한 작은 미생물들을 몸속에 품어야 하듯이 인간도 종교를 품어야 하는 것일까? 종교를 벗어 버린 사람들의 역사는 종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설득력 있게 와 닿지 않는다. 그 진부하고 아이러니한 종교란 그 자체로 필요악인가?

 

(284)

이름 없는 신에게서 인격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다 쳐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거세게 몰아치는 한 줄기 공허한 바람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 바람은 모든 것을 쓸어 버리는 강풍일 수도 있지만, 도덕적인 힘은 없을지 모른다. 회오리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사육제의 호객꾼이 손님을 끄는 외침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번만큼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교의 관념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요정 마차를 타고 구름 속 보이지 않는 곳을 맴도는 럴라이나라면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고 천년왕국이든 어디든 언제고 하늘에서 내려와 덮칠 것이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 없는 신이 갑자기 들이닥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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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너는 왜 구레나룻을 기르고, 통바지를 입고, 그렇게 요란한 신발을 신는 거야?”

글쎄, 멋있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일종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그래, 멋으로 저항을 하는 거지. 이 재미없고 감옥 같은 학교를 향해서.”

 

(186)

이곳처럼 야생적이지 않았어. 이미 학생들도 학교를 초월한 어른들의 가치가 물들어 있었거든. 권력지향적이고 자본주의적이었다고 할까. 부모님이 어떤 직업이고 알만큼의 권력과 부를 소유했는지가 중요했어. 보다 중요한 건 권력과 부를 소유했는지가 중요했어. 보다 중요한 건 권력을 세습하고 부를 상속할 수 있는지의 여부였지. 그게 가능하다면 이미 무언가를 성취한 거나 다름없었거든. 또 어느 정도의 성적을 갖고 있으며 어떤 학교를 갈 수 있는지도 중요한 요인이었지. 이러한 잣대로 비슷한 조건을 가진 애들끼리 몰려다니며 어른들과 유사한 권력 놀이를 했어. 오히려 물리적인 힘에서 오는 권력은 야만스러운 것에 불과했지.

 

(245)

그를 따라 절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는 하나, 둘 숫자를 세어 나갔다.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갖다 대며 절을 하니 마음 한편이 경건해지는 것만 같았다. 백 번을 하니 이마와 콧등에 땀이 맺히고 몸이 후끈후끈해지기 시작했다. 이젠 그와 속도도 달라졌다. 이백 번, 삼백 번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반복하니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아버지, 어머니, 상민이와의 우정, 지민이와의 사랑, 곁에 있는 민재 그리고 나에 대해서 말이다. 복잡했다.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내가 두 명이 된 것 같았다. 절을 반복해서 하고 있는 나와, 생각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나로 말이다. 오백 번, 육백 번어떤 정의도, 결론도 내리지 않기도 했다. 그저 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고, 몸은 지쳐갔다. 그럼에도 끝까지 해보고 싶다는 묘한 오기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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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 2
정지아 지음 / 필맥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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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나이를 먹었더니,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저녁이 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그렇다 보니 독서 편지 쓰는 것이 하나 둘 밀려 쌓여가고 있구나. 어제는 잠을 좀 많이 자서 그런지 오늘은 좀 컨디션이 괜찮아서, 또 피곤이 몰려오기 전에 얼른 독서편지를 하나 써야겠구나. 오늘 이야기할 책은 지난번에 이어서 정지아 님의 <빨치산의 딸> 2권에 관한 이야기란다. 지난 번에 말한 것처럼 2권은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의 뒷부분 이야기와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님의 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그러면 정지아 작가님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1조국이 부르다의 뒷부분 이야기를 해줄게.

<빨치산의 딸> 1권은 한국전쟁 중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방에 있던 국군들과 미군들이 빨치산을 진압하기 위해 지리산 인근으로 대거 내려왔고, 그들을 피해 빨치산들은 쫓겨가고 있는 부분까지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국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빨치산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들은 작전 변경을 해야 했어. 그 중에 하나가 위중자수였단다. 유혁운의 연인 김춘옥이 그 작전에 제격이었단다. 왜냐하면 김춘옥의 집안이 잘 사는 집안이었거든. 김춘옥도 그 작전에 흔쾌히 동의하였단다. 위장자수를 한 이후 지하에 침투하여 세력을 키워가기로 했어.

유혁운은 김춘옥의 위장자수 준비를 도와주었어. 믿을만한 지인의 집에 은거하면서 준비를 하였고, 김춘옥은 자수를 하였고 경찰도 김춘옥의 자수를 인정해 주었단다. 그런데 김춘옥의 위장자수를 준비하면서 유혁운도 위장자수를 하라는 설득과 압박을 받았어. 더욱이 산에서 내려 와 있었기 때문에 퇴로까지 막힌 상황이었어. 고민 끝에 유혁운도 위장자수를 하기로 했단다. 위장자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길고 긴 시간싸움이었단다. 경찰의 감시가 이어지는 와중에 지하 세력을 확장하기가 쉽지 않았어.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는데 일년의 시간이 필요했어.

위장자수를 하고 일년이 지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옛동지를 만날 수 있었단다. 하지만 그 동지가 배신을 했을 줄이야. 옛 동지의 배신으로 위장자수라는 것이 드러나고 체포되고 온갖 고만을 당했단다.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확정되었어. 그 때가 1954년이었어. 위장자수를 했던 김춘옥은 진짜 자수를 선택했단다. 힘든 산 생활을 하다가 편한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 같더구나. 그렇게 변심한 김춘옥이 면회를 왔는데, 유혁운은 김춘옥과 결별하였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57년 유혁운은 전향하기로 결심했단다. 전향을 하면 일단 출소할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진짜 전향이 아니고 전향인 척 하려고 했어. 밖에 나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다시 그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 여기까지가 1권부터 이어진 1조국이 부르다의 이야기란다. 아빠는 1부를 읽으면서 김춘옥이라는 사람이 정지아 작가의 어머니가 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1.

2지리산의 영웅들은 앞서 이야기했지만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이야기란다. 아빠는 이런 내용을 모르고 읽어서 처음에 읽을 때는 1분의 뒷이야기가 이어지는 줄 알았어. 그런데 좀 읽다 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고, 이내 정지아 작가님의 어머님의 이야기란 것을 알게 되었단다. 옥남이라는 여자가 있었어. 공부하고 싶어했지만 집안이 어렵다 보니 부모님은 딸까지 공부를 시키지는 않았어. 하지만 혼자 틈틈이 공부를 했단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다가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고, 옥남은 강제로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남편은 최규복이란 사람으로 장난기도 많고 재미있는 말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어. 처음에는 정을 붙이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최규복에게 정도 붙였단다. 그런데 1944년 최규복은 일제에 의해 전쟁터에 끌려가게 되었고, 다행히 1945년 가을에 몸 건강히 살아서 돌아왔단다. 그 사이에 남편은 사회주의 사상을 알게 되어 사회주의 운동을 하였어. 빨치산 활동도 하게 되었는데, 최규복은 옥남에게 같이 하자고 했단다. 최규복이 빨치산 활동하는 것이 알려지자 경찰은 최규복 집안을 들쑤셔 놓았고 최규복의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어. 옥남도 최규복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빨치산 활동을 했단다. 그리고 산에서 아이도 낳았어. 산에서 도망 다니면서 어린 아가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어. 먹는 것도 편편치 않고 말이야. 결국 아이는 얼마 못 가서 그만 죽고 말았단다.

옥남은 지리산의 이현상 부대에서 소속되어 일했단다. 이름도 본명을 버리고 옥자로 바꾸어 활동했어남편과 한참 떨어져서 일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만나기도 했단다. 그런 와중에 한국전쟁이 일어났어. 1부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물밀듯이 내려와서 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에게도 활약을 넣어주었지. 더 이상 산에 숨어 활동할 필요가 없어졌어. 이현상 부대는 낙동강 전선에 인력을 지원하기로 했어. 이때 최규복도 참가했단다. 하지만 최규복은 그 전투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단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상황은 급변하게 반전되었어. 전선은 다시 중부 지방에서 형성되었고, 이현상 부대는 중부 지방을 지원하기 위해 태백산맥을 타고 북상하였단다. 전선은 중부 지방에서 계속 올라갔고, 이현상 부대도 계속 북상하여 북쪽 땅까지 가서 거물급 인사인 이승엽을 만나기도 했단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 다른 임무가 주어졌어.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후방을 교란하라는 역할이었어. 그래서 그들은 남부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남하하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몸이 좋지 않았던 옥남에게 북에 남아서 공부하라고 제안했지만 옥남은 끝까지 현장에서 투쟁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남부군에 합류했단다.

남부군은 다시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왔단다. 내려오면서도 여기저기서 국군과 결전을 벌였고, 지리산까지 내려왔어. 지리산을 거점으로 유격활동을 했단다. 지리산에 가보면 세석 산장에서 장대목 산장까지 가는 길에 넓은 평원이 이어져 있고 나무들이 별로 없는 곳이 있는데, 빨치산 토벌을 위해 나무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 그렇듯 지리산은 아픈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곳이란다. 아빠가 예전에 지리산을 좋아해서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그곳에 깃든 역사로 인해 숙연해지곤 했단다.

 

2.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지리산에서 유격 활동은 쉽지 않았어. 특히 여자에게는 더욱 힘들었단다. 용변 보는 것도 그렇고 생리 현상도 그렇고 말이야. 하지만 여성 동지들도 꿋꿋하게 유격 활동을 했단다. 북으로부터 지원이 끊긴 남부군은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400여명이었던 남부군은 150여 명으로 줄어들었어. 북쪽에서 이승엽 간첩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일이 남부군에까지 전해졌단다. 전쟁 실패의 책임을 남로당 출신인 박헌영과 이승엽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북한의 음모라는 것이 정설이란다. 이 일로 이승엽 측근이었던 이현상도 종파주의자로 비판을 받고, 직책에서 물러났단다. 그리고 1953년 매복 중 죽고 말았대. 이현상이 죽고 나서 남부군을 궤멸되었다고 볼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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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306)

지리산의 가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산꼭대기에서부터 화려하게 타오르는 단풍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순간 낙엽이 지고 거센 북풍과 함께 겨울이 닥쳐오는 것이다. 남부군의 마지막 낙원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11월 초 서남지구 경찰병력이 총동원되어 비행기까지 합동으로 달궁을 공격해 들어왔다. 대형폭탄과 기총사격에 밀려 남부군은 결국 한 달여의 천국을 버리고 그 달 말까지 지리산 곳곳의 골짜기를 전전하면서 월동준비에 바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깊어가는 겨울과 함께 남한 빨치산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그 유명한 수도사단의 공세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후평에서 9백여 명에 가까운 대부대로 승승장구하던 남부군은 이 수도사단의 공세가 끝나고 난 후 150여 명 정도만이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 수많은 인민군 정규부대도 넘지 못한 낙동강을 넘어 종횡무진 적의 심장을 들쑤시고 다니던 남부군, 후평에서부터 지리산까지 몇 천 리 장정 동안 유격부대답게 후방의 적을 마음껏 섬멸하고 다니던 남부군의 사실상의 유격투쟁은 이제 막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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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아빠가 예전에 안재성 님의 <이현상 평전>을 읽고 쓴 독서편지가 있으니 다시 한번 읽어보면 오늘 해준 이야기랑 연계되어 좋을 것 같구나.

옥남은 부상을 입어 환자트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동료의 배신으로 토벌대에 생포되었고, 산에서 내려오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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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389)

남편의 얼굴이, 이현상, 박종하, 이진범, 양봉순, 다 기억할 수도 없는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동지들의 피가 스미고 살이 썩은 이 산은 봄이면 더 눈부신 녹음을 피워낼 것이다. 이 산으로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역사는 소용돌이치며 저 거대한 지리산의 산맥처럼 수많은 봉우리를 만들며 흘러갔다. 우리는 어떤 봉우리를 만든 것일까. 우리는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또 다른 동지들이 정상으로 오를 것이다. ‘평등이라는 말만큼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꽃같은 열정으로 또다시 꿈꾸는 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 혁명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이현상도, 박종하도, 마실 동무도, 김 영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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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가 <빨치산의 딸> 2권의 이야기란다. 1부에서 이야기한 아버지와 2부에서 이야기한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까지 나올 것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이야기는 옥남이 하산하는 부분에서 끝을 맺었단다. 소설 어디선가 다른 소속으로 근무하던 혁운과 옥남이 한번 스치듯 만나 인사를 나눴던 장면이 있긴 했지만 말이야그래서 더욱 여운이 남고, 이후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 궁금하기도 하구나. 그런데 이전에 읽은 정지아 작가님의 책들 중에 부모님이 어떻게 만났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았거든한참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내려 했지만 슬프게도 생각이 나질 않았단다. 독서편지를 뒤져봤지만 그런 내용이 없었어. 아쉬운 기억력을 탓해야겠구나.

빨치산의 딸.. 참 잘 읽었단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총부리까지 서로 겨누어야 했나 싶지만, 그들에게는 사상은 목숨보다 중요했나 보구나. 그리고 그들의 열정을 다 마칠 수 있던 것이 또 그들이 믿는 사상인가 보다. 무엇인가 하나에 빠져 온몸을 다 바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면서, 아빠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구나. 아무튼 정지아 님의 글빨로 인해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책 속에서 지리산이 많이 등장하여 문득 지리산에 가보고 싶구나. 마지막으로 천왕봉에 오른 것이 10년 가까이 되어 가는구나.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지리산 천왕봉에 한번 가보고 싶구나. 너희들도 함께 가면 더 좋고…^^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52 4 10일경, 곡성 봉두산에 있던 도당 연락과 분트가 적의 기습으로 전멸당하고 생포자까지 생기는 바람에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기존의 모든 연락루트가 차단됐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녀는 그 산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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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 1
정지아 지음 / 필맥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공존의 히트를 친 정지아 작가의 30여년 전 작품인<빨치산의 딸> 1권의 이야기란다. 이 책은 총 2권으로 되어 있고 오늘은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던 1990년에는 아직 반공의 시대를 살고 있던 시절이라 이 책은 금서로 지정되었고, 출판사 사장은 실형까지 선고 받았고 정지아 작가는 지명수배까지 당했다고 하는구나. 그 이야기는 정지아 작가의 에세이에서도 읽은 적이 있단다. 아빠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해 정지아 님의 팬이 되었고, 이후 정지아 님의 책들을 하나 둘 찾아 읽고 있단다. 이번에 읽은 것도 그의 연장선상이란다.

<빨치산의 딸>은 정지아 작가의 초기작이지만 그 때부터 필력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었단다. 처음 출간된 것은 1990년인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출간되자 금서 처리가 되었고, 그로부터 15년 뒤인 2005년에 새로 출간되었단다. 아빠가 읽은 것은 2005년도판인데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히트를 친 후 2023년에 다시 한번 개정판이 나왔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빨치산이 지리산 근처 어디쯤 있는 산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고 해서 너희들에게도 함 물어봤더니, 아직 빨치산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빨치산은 비정규 게릴라 부대를 말하는데 이것은 영어 partisan 을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다가 변형된 것이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조선인민유격대를 보통 빨치산이라고 한단다. 그래서 반공의 시대에 빨치산은 거의 금기어나 마찬가지였고, 빨치산들이 체포되어 자유민주주의 진영으로 전향하지 않으면 계속 감옥에 있어야 한단다. 그런 사람들이 오랫동안 감옥에 있어서 장기수(長期囚)라고 했는데, 아빠가 어렸을 때 그런 장기수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간혹 나왔던 기억도 있구나. 정지아 작가님은 <아버지의 해방일지>나 에세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듯이 부모님들이 빨치산 경력이 있던 분들이었어.

이 소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바로 정지아 작가님의 가족의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단다. 2권으로 되어 있고, 책의 구성은 아주 긴 프롤로그가 있고, 1부와 2부가 있단다. 프롤로그에서는 정지아 작가 자신을 모델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1부에서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2부에서는 정지아 작가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 줄 <빨치산의 딸> 1권의 이야기는 프롤로그와 1부 대부분의 내용까지란다. 1부의 나머지 부분과 2부의 이야기는 <빨치산의 딸> 2권에서 이야기해줄게.

 

1.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지만, 100년도 안 되어 그 실험을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인단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일부 나라에서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말이야. 한 때 그런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해주겠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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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래전에 쓴 글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다시 한번 역사라는 것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 현대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목숨까지 걸게 했던 사회주의는 이미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지고 있다. 중국이나 베트남, 쿠바 정도가 사회주의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주의를 현실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사회주의란 소련이나 중국으로 대표되는 어떤 제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사회주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가리키는 추상명사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추구하는 동물이므로, 사회주의가 사멸했다고 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더 나은 어떤 세상,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옛 사람들의 기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위안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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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초등학생이었던 지아. 당시 아버지는 감옥에 있었고, 친구들로부터 빨갱이의 딸이라고 놀리며 따돌림을 받아야 했어. 결국 어머니는 그런 이력을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서울로 이사하기로 하고 은평구 갈현동으로 이사 왔단다. .. 은평구 갈현동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동네로구나. 지아가 중학생이 되고 글솜씨가 좋다는 것을 인정 받으면서 학교에서도 인정 받는 학생이 되었단다.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중학교 때 처음으로 어머니도 빨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대. 그래서 늘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 사춘기였던 지아는 이런 부모님의 이력에 불만이 많았고, 엄마와 심한 갈등을 빚기도 했대. 왜 빨갱이를 해서 이렇게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냐면서 말이야. 하지만 어머니는 그럴수록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당당하셨다고 했어.

1979 8월 특사로 아버지가 8년만에 출소하셨어. 그리고 얼마 후 1979 10월에는 반공의 상징이자 독재정권의 심장인 박정희가 암살당했단다. 새로운 세상이 오는가 싶었지만, 두 달 뒤에 너희들과 함께 본 영화 <서울의 봄>의 실제 배경인 1212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어. 1980년 지아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늘 소설만 읽었어. 그러자 성적이 계속 떨어졌지. 아버지는 시골에 내려가서 살자고 했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고향 구례로 내려오게 되었어.

지아는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단다. 부모님은 고향인 반내골에 정착을 하셨고, 두 분은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농사를 처음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처음 하는 농사이다 보니 서툴고 돈벌이도 제대로 안되었단다. 구례에 내려와도 가난은 벗어나기 어려웠지. 지아는 재수를 해서 원하는 학과에 진학을 했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제대로 된 지식과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어. 그러면서 부모님의 행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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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6)

역사란 세계사 책 속에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걷는 이 길, 내가 사는 이 반내골에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다는 게 신비로웠다. 구름 위로 솟은 지리산을 볼 때면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 비로소 구체적인 형상을 띠고 다가왔다. 할머니의 말대로 공산당이 모두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면, 설령 두 분 때문에 연좌제 정도가 아니라 목숨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반쪽짜리 역사였거나 어쩌면 완전히 잘못된 역사인 것만은 분명했다.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은 배웠지만,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적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학교에서는 내 혼란의 일부분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왜 세상에는 차별이 있는지, 왜 나는 공산당의 딸로 태어나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지, 할머니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할머니는 책에 씌어진 역사와는 다른, 보통사람들의 역사가 있다는 것, 내 부모는 그 역사의 와중에서 그것이 옳든 그르든, 없는 사람들의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신념으로 목숨까지 내던졌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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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도 바뀌어서 부모님은 옛 동지들을 만나서 회포도 풀고 그랬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빨치산의 딸은 가난과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했단다. 긴 프롤로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지은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을 빌려서 들려주었단다. 아참, 지은이 정지아의 이름은 부모님이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지리산의 와 백아산의 를 따서 지어주신 것이라고 하는구나.

 

2.

1부의 제목은 조국이 부르다란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작가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이야기란다. 때는 1945 4월 정운창은 구례역 철도원으로 취직을 했단다. 1945 4월이면 2차세계대전의 막바지이고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던 시기로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끌려가던 시기였단다. 철도원이라는 직업은 다행히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대. 얼마 안 있어 해방이 되고 친일파들을 처치할 수 있어 기뻐했는데,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친일파들이 다시 고용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어. 일제시대 후반기부터 새로운 사상인 사회주의가 지식인들과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퍼져 있었단다. 당시는 이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친일파가 다시 극성을 부르고, 노동자들의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1946 9월 전국적인 총파업이 시작되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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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그러던 9월 전국적인 총파업이 시작됐다. 그가 소속해 있는 철도에서의 파업이 총파업이 불씨였다. 애당초 철도파업이 내건 요구사항은 쌀을 달라는 대부분 인민들의 요구와 별다른 바 없었다. 일급제 반대, 기본급료 인상, 가족수당 일인당 육백 원 지불, 물가수당 인상, 식량을 본인에게 네 홉, 가족에게 세 홉씩 지급할 것, 운수부 직원도 동등하게 대우할 것 등이 노조의 요구조건이었다. 당시 모든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엄청난 물가상승으로 일제시대의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철도국장 맥크라인은 철도노조가 제출한 요구조건에 대하여 인도 사람은 굶고 있는데 조선 사람은 강냉이를 먹고 있으니 행복하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군정청의 회답이 없자 철도노조는 24일 오전 9시를 기해 사만여 노조원들이 일제파업에 돌입했고, 26일에는 서울지역 출판부문 노동자들이 동조파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26경성지방 총파업 출판노동조합 투쟁위원회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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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대화가 아닌 무력 진압을 선택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남한 정부에 실망한 이들 중에 북으로 가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남북한 이동이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다시 내려오기도 했대. 운창은 남로당에 가입을 하고 본격적인 사회주의 활동을 했단다. 대부분의 좌익 활동하던 이들이 가명을 쓰고 활동을 했는데, 운창은 유혁운이라는 가명을 사용했어. 하지만 체포되어 감옥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어. 동지들의 이름을 끝내 불지 않아서 더 심한 고문을 받았지. 다시 풀려나서는 1948년 여수순천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때 저항군에 합류하여 계엄군과 맞서 싸웠어. 전세가 불리해지자 산으로 대피했어. 운창의 아버지는 골수 우익이라서 피해를 입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엄군에게 그만 총살당하시고 말았어.

산에 들어간 이후에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게릴라 작전을 펼쳤단다. 곡성, 화순, 광주, 구례로 이동하면서 게릴라 작전을 펼쳤지만, 토벌대의 대대적인 공격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었어. 유격대는 절멸의 위기가 있었어. 그런데 그 때 전쟁이 일어났어. 북쪽에서 많은 동지들이 밀고 내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안되어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다는 거야. 그들이 있던 곳은 모두 북한 인민군의 점령지가 되어서 산에서 활동하던 빨치산들은 모두 산에서 내려와 인민해방군으로 각 지방을 관리하게 되었단다.

금방 승리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낙동강에서 한동한 소강 상태로 이어졌고, 얼마 후에는 인천을 빼앗겼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지. 얼마 후 남한은 서울도 수복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어 국군은 북으로 치고 올라가고 있었어. 그러자 산에서 내려왔던 빨치산들은 다시 쫓기는 몸이 되어 산으로 들어갔단다. 다시 유격 게릴라군이 되어 활동하게 되었어. 그들의 임무는 후방에서 국군을 공격하여 전방에 있는 국군 세력을 남쪽으로 유인하는 것이었어.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방에서는 휴전 협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이것은 후방의 빨치산들에게는 청천벽력의 소리였단다. 왜냐하면 전방에 있는 국군들이 후방으로 대거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야. 예상은 현실이 되어 전방의 국군들은 빨치산쪽으로 이동하였어. 지리산, 백운산, 백아산에서 빨치산들은 대규모 국군들에 맞서야 했어. 지원이 끊긴 그들의 싸움을 쉽지 않았지. 많은 동지들이 죽어나갔어. 그런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 의지하는 힘은 강해지고 그러면서 사랑도 하게 되었단다. 유혁운은 김춘옥이라는 동지와 사랑하게 되었어. 하지만 둘 모두 사랑보다는 혁명이 먼저라고 생각했단다. 외롭게 싸워가든 그들에게 드디어 지원군이 나타났어. 북에서 보낸 남부군이 그들이야. 남부군과 합세하여 국군에 대항했어. 하지만 국군은 미군과 연합하여 총공세를 했는데, 세균전과 화학전까지 이용했어.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재귀열이라는 병에 걸려 죽고 네이팜 탐에 죽고 말았단다. 그들의 전력이 엄청나게 열세였지만, 그들은 혁명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게 된단다.

여기까지가 <빨치산의 딸> 1권의 이야기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은이의 필력이 좋으셔서 금방금방 책장이 넘어간단다. 그리고 마치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어. 그렇게 어려움에 빠지고 옆에 있던 동지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계속 항쟁할 수 있는 신념이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빠라면 그렇게 못했을 텐데 말이야.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내 인생 최초의 싸움은 아버지 때문에 시작되었다.

책의 끝 문장: 이제 밀알이 되는 것, 땅에 뿌려져 더 많은 밀로 태어날 그날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 그것이 남은 그들의 자리였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어항 속의 금붕어였을 뿐이었다. 어항의 벽을 깨뜨릴 수 없다면 굴욕적으로 숨쉬느니 어항 벽에 머리를 박고 죽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내게는 벽을 깰 방법이 없었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 있을 따름이었다. 판검사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든가, 판검사가 될 수 없으니까 가능한 한도 내에서 의사라도 되겠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음으로 해서 세상을 비웃어주고 싶었다.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살기로 했다. 나를 소외시킨 세상을 오히려 내가 소외시킨면서 말이다. - P33

천하의 개망나니 박종하는 46년 말이 되면서 차차 변하기 시작했다. 동네사람들은 천하의 박종하를 저렇게 얌전하게 만든 게 누구냐며 수군거렸다. 박종하를 변화시킨 장본인은 곧 밝혀졌다. 바로 공산당이었다. 주먹이나 휘두르는 것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말뿐인 해방조선 젊은이의 답답함이 무신자를 위한 평등한 새 세계 건설과, 친일파를 비호하며 조선을 새로운 식민지로 만들려는 미 제국주의로부터의 민족해방이라는 이 땅의 역사적 사명을 알아가면서 비로소 진정한 자기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직활동을 시작하면서 놀랍게 변해가는 박종하를 보며 마을사람들은 공산당의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당시 남조선 대부분의 인민이 그랬지만 박종하와 같은 동네 사람들이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노인네나 젊은이들이나 모두가 좌익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동네에서 조금 말썽피우는 사람을 보면 으레 "저놈 공산당 만들어야 사람 된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 P151

"동무들! 우리는 조선노동당 당원들이오. 굶주리고 짓밟힌 무산대중을 위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가들이오. 혁명가는 이미 자기를 버린 지 오래요, ……혁명가는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혁명당을 따라야 하오. 동무들은 한 지도자의 일시적인 오류로 혁명사업을 그르쳤다고 해서 영원히 혁명을 포기하겠다는 거요? …… 이번 전쟁은 언젠가 중앙에서 다시 검토될 것이오. 그때 모든 과오들이 가려지고 비판되겠지요. 이 점 명심하고 동무들 몇 명이서 북으로 가겠다는 거요? 이미 퇴로도 끊겼소. 지금까지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지금 당장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결정하시오. 내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 각자 자기 부서로 돌아가 자기 임무를 다하시오." - P262

묻혀진 역사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세계 어디에도 한국의 현대사와 같은 뼈아픈 비극은 없었고, 또 그렇게 철저하게 묻혀진 비극의 역사도 없다. 아직까지도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그 시기의 이야기는 금기로 묻혀져 있다. 최근 들어 간혹 한두 사람의 묻혀진 이야기들이 비밀스럽게 들춰지기도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흐름이 사실대로 밝혀지지 않는 한 한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거대한 물줄기의 한 지류일 뿐이고, 그 작은 흐름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도 도도한 원 물줄기가 제자리를 잡을 때뿐일 것이다. - P363

박갑출도 전적으로 그의 견해에 동의했다. 이제 남한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은 보라빛 먼 날의 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간부들 중의 어느 누구도 이전과 같은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당장 다시 오리라고 믿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최후까지 싸우다 죽는 것과,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다시 오고야 말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해 도시로 들어가 지하조직을 구축하는 길뿐이었다. 그날이 언제쯤일까? 10년 뒤일 수도 있고 어쩌면 50년 뒤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뿌린 싹이 해방의 그날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았고, 살아서 볼 수 없는 날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좋았다. 단지 이 결정적 시기를 해방으로 성공시키지 못한 쓰라림이 남는 것뿐이었다. 이제 밀알이 되는 것, 땅에 뿌려져 더 많은 밀로 태어날 그날을 위해 자신을 죽이는 것, 그것이 남은 그들의 자리였다.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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