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물론 배우가 인기가 있으면 단순히 연기 이외의 것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건 배우의 인격입니다. 사람들은 배우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 합니다. 그들이 배우와 연락하여 살고 있는 듯 느끼기도 합니다. 때론 그런 점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할리우드는 너무합니다. 그들은 배우를 노예처럼 생각합니다. 영화에 출현하지 않을 때도 아무 때나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녀(이탈리아 배우 발렌티나)는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오드리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을 이었다.

 

(168)

일반적으로 스타들은 명성을,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그런 것들 없이 살아가야 하는 금욕적인 의무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드리의 야망은 다른 사람들처럼 밝게 타올랐지만, 그 불빛은 일반적인 목표들을 비추지 않았다. 스타덤에 대한 그녀의 태도에는 자기희생이라는 강한 요소가 있었다.

스타덤뿐이 아니었다. 결혼을 생각하는 태도는 더 심했다. 그녀는 로맨틱한 이상적인 결혼에 대해 전부를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위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느꼈다.

 

(177)

오드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초조해하고 있을 때 파라마운트 제작부장 돈 하트먼에게서 뉴스가 전해졌다. <로마의 휴일>의 주연인 그녀가 다가오는 아카데미상의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뉴욕의 영화평론가협회는 이미 12월 말에 그녀에게 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의 현재 감정 상태에서는 이런 좋은 뉴스가 많이 생겨도 흥분되기보다는 무덤덤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개인적인 박수갈채는 자극제가 아니라 진정제 역할을 했다. 칭찬은 의무를 동반했다. 방종을 허락하는 허가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갖고 있는 캘빈주의 유산의 한 부분이었다.

내가 느낀 것은 성공에 뒤따르는 책임감이었어요.”

 

(195)

미국의 평론가이며 페미니스트인 마조리 로젠은 이렇게 썼다.

그녀는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순수한 힘과 신체적인 특질이 잘 조화되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중략)

오드리는 자신의 특징을 일찍 만든 편이고 오랫동안 지속시켰다. 세실 비턴은 그녀를 전문적인 시각으로 관찰해 사진작가로서의 견해를 피력했다.

커다란 입, 낮은 가슴, 짙게 칠한 눈썹, 코코넛 머리 장식, 광택 없는 긴 손톱, 유연한 몸동작, 긴 목, 그리고 지나치게 마른 몸매…, 그녀는 모든 것이 심플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비턴의 시각으로 그녀를 보지 못했다. 대중들은 생기발랄함만을 보았다. 리처드 쉬켈은 이 생기발랄함을 심각함과 결합된 장난기 가득한 순진함이라고 표현했다.

오드리의 목소리 톤은 다른 신체적 특징만큼 뚜렷한 특징이다. 비턴은 이렇게 썼다.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처럼 리듬을 타고 처음에는 평이하고 느린 어투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어린아이가 질문할 때처럼 높이 올라가는 어조로, 가슴을 쥐어짜는 특질이 있다.”

(236)

오드리는 존경받을 만했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들은 땀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편집증처럼 집착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 주고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는 전적으로 상대를 믿었어요. 오드리는 그 점이 아주 좋아요. 그래서 상대가 돈을 벌게 되는 겁니다.”

(401)

나에게 한 편의 새로운 영화를 시작한다는 건 항상 두려운 일이었어요. 난 근본적으로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촬영하는 것이 언제나 힘든 일이었지요. 영화 촬영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는 다른 작업인 것 같아요. 자전거는 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지만, 영화는 한번 촬영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지요. 아무리 아름다운 시나리오와 훌륭한 배우와 감독이 있더라도 촬영할 때면 언제나 혼자가 된답니다.”

(456)

그녀는 린 바버에게 말했다.

명성은 내가 영화에 출현하던 시절 이후 나에게 남겨진 물건, 예를 들면 이런 가방 같은 겁니다.”

기자는 이렇게 썼다.

내가 그녀에게 시간을 희생한다는 표현을 썼어요. 그러자 그녀는 곧바로 반박했어요.”

그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희생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걸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내가 받은 선물입니다.”

(462)

그녀는 전쟁 경험에 대해 자주 질문을 받았었다.

전쟁은 오랫동안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어요. 나는 전쟁 중에 많은 것을 보았어요. 그러나 그 모든 경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본적으로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낙천주의자가 되었어요. 죽어서 과거를 비참하게 되돌아보면 기분만 상할 겁니다. 단지 나쁜 면만을 보고, 놓친 기회들을 아쉬워하고, 이랬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뭐 하나요?”

이제 오드리는 두 번 다시 무비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다. 그녀는 할리우드의 방음 스튜디오에 만들어진 천국을 떠났다. 그리고 유니세프를 위한 여행길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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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오랜 친구가 보내준 쪽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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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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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오월. 아빠가 좋아하는 분들 중에 그 오월에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 유달리 많은 것 같구나. 노무현 대통령, 권정생, 박경리, 그리고 장영희. 작년에 장영희 교수의 책 중에 아빠가 읽지 않은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구입해두었던 책이 있는데, 장영희 교수의 책은 그 분이 떠난 즈음에 그 분을 기리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이번에 읽은 것이란다. 돌아가실 때까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던 장영희 교수. 남긴 글을 읽을 때 떠오르는 것은 영원한 문학 소녀셨구나, 하는 생각이란다. 소설을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고, 그런 소설과 시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고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 같았어.

아빠가 장영희 교수의 다른 책을 읽고 쓴 책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장영희 교수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남달랐던 것 같았어. 그러니까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백만 불 짜리 미소를 낼 수 있겠지.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그런 부모를 남겨두고 눈을 감는 자식 또한 가슴이 아플 거야. 장영희 교수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보다 먼저 눈을 감으셨어.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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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 나중에 다시 만나.

======================================

 

1.

이 책은 장영희 교수가 살아 생전에 신문 등에 연재했던 짧은 글이나 시 소개하는 글들을 모은 책이란다. 아빠가 장영희 교수의 책들은 거의 다 읽어서 인지, 다른 책들에서 이미 한두 번 본 듯한 글들이 많았어. 하지만, 아빠의 기억력은 그런 글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니까, 다시 읽고 다시 감동하고 다시 베껴 쓰고….

결국 문학의 주제는 사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사랑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왠지 젊어지는 느낌도 들어. 그 글들을 읽는 동안 영혼의 나이는 거꾸로 먹는 기분이었어. 가령 이런 시를 한 편을 읽다 보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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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는 것보다

- 앨프레드 L. 테니슨. <사우보> 중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부럽지 않네

고귀한 분노를 모르는 포로가,

여름 숲을 알지 못하는

새장에서 태어난 방울새가.

난 부럽지 않네, 시간의 들녘에서

제멋대로 뛰어놀며

죄책감에 얽매이지도 않고

양심도 깨어 있지 않는 짐승들이

한 번도 사랑해본 적 없는 것도

사랑해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나으리.

======================================

 

2.

이 책에는 좋은 시들이 참 많이 담겨 있었어. 아빠가 아직도 시 읽기는 어려워한단다. 그런데 장영희 교수가 골라준 시들은 읽기도 쉽고 감동을 쓸어 담아주는 시들이 많았어. 그 중에 너희들과 함께 읽어 보고 싶은 시 한 편을 발췌해 보았단다. 요즘 시현이가 학교에 들어가더니 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좋은 시를 많이 읽다 보면 좋은 시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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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 메리 R. 하트만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미소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간혹 가슴앓이가 오고 가지만

다른 얼굴을 한 축복일 뿐

시간이 책장을 넘기면

위대한 놀라움을 보여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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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를 읽다 보면 감동을 받기도 하는데, 그런 감동을 받으면 좋아지는 것이 좋을까? 앞서도 이야기했잖아. 영혼을 젊게 해준다고 말이야. 그리고 감동을 받으면 치매 예방이 된다고 하더구나. 이 책에서 장영희 교수가 소개해주었어. 감동을 많이 하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이야. 이 글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단다. 아빠는 너희들에게 늘 감동을 받는데, 치매 걸릴 일은 없겠구나, 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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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떤 잡지를 보니 치매 예방법이 나와 있었다. 호기심에 유심히 보았다. ‘하루 두 시간 이상씩 책을 읽는다’, ‘의도적으로 왼손과 왼발을 많이 쓴다’, ‘일회용 컵이나 접시를 쓰지 않는다.’, ‘가능하면 자주 자연을 접한다등등 어느 정도 상식적인 예방법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이 재미있었다. ‘가능하면 자주 감동을 한다.’

감동을 많이 하라?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되는지 모르지만 감동을 하면 치매 예방이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마음의 움직임이 두뇌의 움직임과 직결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치매라는 병이 흔한 이유는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언제부터인가감동이 없어진 것과 상관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치매에 안 걸리려면 감동을 많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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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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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읽고 싶은 책들은 계속 출간되고, 아빠의 책 읽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고, 읽고 싶은 책들이 읽을 수 있는 책들보다 숫자가 많다 보니 점점 읽고 싶은 책들에 대해서 나중을 기약하게 되었단다. 그렇다 보니 요즘에는 신간으로 출간되는 책들을 바로 읽는 경우는 별로 없단다. 잘 기억하고 있다가 좀 나중에 읽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그걸 못 기다리는 작가들이 있단다. 공지영의 책들도 그런 책들이란다. 따끈따끈한 신작이 나와서 바로 주문을 해서 읽었어.

제목을 보고 순간, , 공지영님이 벌써 할머니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할머니가 된 느낌을 쓴 에세이인가 싶었단다. 아무래도 최근에 에세이를 많이 쓰셔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 봐. 책 소개를 봤더니, 에세이가 아니고 소설이더구나. 단편 소설들을 엮은 소설집. 공지영님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빠가 그동안 읽은 것은 모두 장편소설이란다. 공지영의 단편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어.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최근에 쓴 것이 아니고, 멀게는 10년 넘은 소설도 있었어. 2000년 이후 발표했던 단편소설들을 모은 것이야. 몇몇 소설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도 있었어. 총 다섯 편이 실려 있는데, 어떤 소설들은 소설의 주인공이 작가 자신인 작품들도 있었어.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이 공지영인 소설도 있었단다.

 

1.

지은이가 소설을 쓸 때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쓸 거야. 그리고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그 의도를 알아내려고 생각하면서 소설을 읽지. 마치 지은이가 숨겨 놓은 보물을 찾는 보물찾기 놀이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아빠도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을 읽으면서 아빠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읽었단다. 지은이가 숨겨 놓은 보물을 찾지 못해도 상관없어. 그걸 감안해주고 아빠의 이번 독서편지를 읽어주길 바래.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월춘장구. 이게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서 겨울을 잘 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월동준비라고 하고 이때 필요한 도구들을 월동장구라는 말을 사용한단다. 그것과 비슷하게 만들어낸 말로 다가오는 봄을 대비해서 준비하는 장구를 뜻하는 것으로월춘장구라는 제목을 지은 거야. 이 책에 실린 다섯 편 중에 가장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이었단다. 그냥 지은이의 일상을 적은 것 같았어. 아빠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것도 소설이 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소설의 범위는 무한한 것이구나, 깨닫게 되었단다. 독자들의 이런 반응을 예상을 한 것인지, 지은이는 소설 속에 자신도 이렇게 적었단다.

-------------------------------------------------

써놓고 나서 이것이 소설일까 생각했다. 이런 것도 소설일까…. 그러면 소설은 무엇일까, 하는 내 안의 오래된 물음이 뒤따라왔다. 누가 이것은 소설이고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말해주는가. 누가? 어떤 검사가 술잔을 오래 붙들고 있다가 내게 말했었다.

“예전에는 말이지요. 자신이 있었어요. 이건 이 죄고, 저건 저 죄목이고, 너는 범인이고 너는 아니고……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게 힘들어요. 점점 더 말이지요. 힘들고, 또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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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작품이 소설의 제목으로 뽑은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작품이란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괴이하다는 단어가 떠오르는 소설이란다. 어떤 여고생이 자신의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설정이야. 식도암 말기로 병원에서도 포기해서 집에서 병 치료를 하고 있는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자식들은 할머니 곁에서 극진히 병간호를 경쟁적으로 했어. 그 이유는 바로 할머니의 엄청난 재산 때문이었단다. 그런데 할머니는 생각한 것처럼 바로 돌아가시지 않았어. 그뿐 아니라 가족이나 할머니의 집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죽는 것이었어. 다른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할머니는 다시 생기를 찾았어. 그랬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죽음 직전까지 가셨어. 그랬다가 또 한 사람이 죽고.. 나중에는 집에 있는 동물들이 죽기까지 했어. 하지만, 할머니의 곁에는 자식들과 며느리, 사위들이 떠나지 않았어. 죽음을 두렵지 않게 하는 엄청난 돈 때문이지. 권력에 빌붙으려는 사람들. 그 권력 때문에 자신이 몰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그런데도 탐욕과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잘못된 권력에 빌붙으려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소설 속에 보였단다.

.

세 번째 소설은우리는 누구이며 어디 와서 어디로 가는가’. 최인옥이라는 여인이 5년 전에 소설 속 주인공 공지영을 찾아왔었는데, 이번에 다시 찾아왔단다. 그가 공지영을 찾아온 이유는 자신의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야. 동생이 갓난아기일 때 부산에서 잃어버렸는데, 여러 정황상 공지영이 자신의 동생인 것 같다면서그래서 친자 확인까지 부탁을 했어. 어렸을 때면 몰라도, 지금 다 커서 자식들도 있는 이 마당에 그것이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그의 동생이라고 밝혀져도 바뀌는 것이 없는데 말이야. 만일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진실을 확인하고 싶어할까. 아빠도 생각해봤어. 지금 진실이 밝혀져도 지금 생활에 바뀌는 것이 없는데도 확인해 볼까? 그 진실이라는 것이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려주는 것이라면사람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단다.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다가 소설이 끝났단다. 주인공 공지영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

네 번째 소설의 제목은부활 무렵’. 주인공 순례의 아버지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단다. 고성장 시대에 자신이 살던 동네의 부동산 값이 엄청 뜨면서 가만히 있어도 부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섣부른 판단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이사를 가다 보니 가난이 주인공 순례 곁을 떠나지 않았어. 거기에 남편도 일찍 죽어서 집안을 혼자 책임져야 했어. 파출부 등 고된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지. 순례의 동생 정례도 파출부 일을 했는데, 주인집 아줌마의 명품 가방을 훔치다 걸려서 경찰서에 끌려갔어. 순례가 찾아가 주인집 아줌마한테 사정사정 빌어서 선처를 받아냈어. 그런데 조건이 있었어. 교회에 나와 간증을 하라는 것이야. 순례는 마음에 없는 간증을 하는데, 그런 마음에도 없는 간증이 무슨 의미인가 싶다는 생각을 했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 세상. 우리가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속마음보다 겉에 드러난 모습이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너희들은 나중에라도 아빠에게 형식적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다섯 번째 소설은맨발로 글목을 들다라는 소설이야. 주인공 공지영은 일본에서 자신의 책을 출간하게 되었어. 그런데 자신의 책을 일본어로 번역해준 일본인 H의 이력이 독특했단다. H는 북한에 끌려갔다가 24년 동안 억류되었다가 풀려났는데, 그때 배운 우리말로 번역일을 하는 번역가였어. 공지영 작가와 H가 같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기자들은 H에게만 질문을 하거나, 작품에 대한 질문이 아닌 H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질문을 했어. 마치 너희와 한민족이라고 하는 북한이 죄 없는 사람들을 데려가 20년 넘게 억류한 것에 대한 인권 문제에 너희 나라에도 책임이 있지 않냐는 식으로 말이야. 공지영도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답변을 했어. 그러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위안부 이야기를 꺼내 들었어. 일본 자신들은 더 심한 위안부로 인권을 유린했으면서, 수십 년이 지났어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냐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지. 기자는 궁색한 답변을 내놓았고, 주인공 공지영은 본의 아니게 애국자 행세를 한 꼴이 되었는데, 공지영은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황까지 된 것을 싫어했어. 그렇다면 H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H 입장에서는 억울한 시간이고, 분노할 만한데 그는 오히려 그 일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그건 지나간 과거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렇다고 H가 북한을 용서하는 것은 아니야. H의 모습에서 우리 위안부 할머니의 모습들을 볼 수도 있었어. 과거의 잘못이 있으면, 과거라고, 다 지나간 일이라고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란다. 진심 어린 사과는 과거가 아니고 현재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현재의 사과는 둘 사이의 과거를 바꿀 수 있고, 미래를 바꿀 수 있으니까 말이야.

다음 공지영님의 글을 기다리며, 오늘은 이만 줄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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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생각
윤태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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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윤태영은 줄곧 노무현 대통령님에 관한 책을 쓰셨어. 아빠도 그의 책을 읽으면서, 노무현 대통령님을 그리워하고 그랬지. 이번 달로 노무현 대통령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8년이 되었단다. 윤태영의 신간이 나왔다고 해서, 이번에도 그 전의 책들과 비슷한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의 책을 읽으면서 또 한번 노무현 대통령에게 빠져볼까 하고 책 소개를 읽어보았단다. , 그런데, 이번에는 소설이었어. 윤태영이 소설을? 아빠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글 잘 쓰는 윤태영 대변인이라면 소설도 괜찮게 썼을 것이라 생각했어.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소설이라고 하니까 드는 생각. 소설은 허구이니까, 어쩌면 소설 속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지 않고 살아계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현실에서는 슬픈 결말이었지만, 소설 속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잖아. 노무현 대통령님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서 그가 살아 있는 2017. 상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구나. 책을 받자마자 맨 뒷장을 폈어. 2017년 대통령 임진혁은 고향 땅에서 방문객을 만나고 있었단다. 그렇게 소설이 끝날 때까지 살아있는 대통령님을 확인하고 다시 소설의 맨 처음으로 와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

 

1.

소설의 시작은 2006년부터 시작한단다. 소설의 주인공 임진혁은 대한민국 대통령이야. 소설이라고 하지만, 임진혁의 말과 행동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님의 말과 행동이라고 생각해도 돼. 그리고 지은이 윤태영은 소설 속에서 진익훈이라는 사람으로 나온단다.

진익훈은 어린 시절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찰떡같이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어. 인수와 희연.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절친이었어. 그런데 남자 둘에 여자 하나. 그들이 커가면서 삼각관계가 되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진부해 보였지만, 이 소설은 그런 것은 감초와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돼. 대학에 들어가서 익훈은 학생 운동을 하게 되었고, 부잣집 아이들이었던 인수와 희연은 자의 반 타의 반 익훈과 반댓점의 서 있었어. 이때 괴로워하는 이가 희연이었단다. 왜냐하면 희연은 익훈을 사랑하고 있었거든. 익훈이 학생 운동으로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옥바라지를 해주던 이가 희연이었어. 하지만 익훈은 희연이가 부모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떠나라고 했어. 그리고 먼저 외면을 했지. 한편 인수는 희연이 익훈을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희연을 짝사랑했고, 인수는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검사가 되었단다. 그리고 세월은 또 흘러 결국 희연은 인수와 결혼을 하게 되었어. 그리고 또 세월은 흘러 진익훈은 청와대 대변인이 있었고, 김인수는 청와대와 정부를 맹렬히 공격하는 야당 대변인이자 국회의원이 되어 있었어.

아빠도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참 답답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한단다. 진보의 바탕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뜻과 다른 선택을 할 때도 있는 거야. 하지만, 이런 선택들은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 세력과 진보 언론도 등을 돌리게 만들었어. 그렇다고 보수 세력이 지지로 돌아선 것도 아니고 말이야. 보수 세력과 당시 야당은 단 한번도 대통령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으니까 말이야. 이 소설에서는 더욱 극단적인 음모도 나왔단다. 진익훈의 친구이자 김인수는 임진혁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단다. 이 음모에는 야당 정치인들, 경제계의 큰 손들, 그리고 대통령이 군수작전권 환수를 주장한 이후 못 참겠다면서 군 장성들도 합류했어. 비록 일 년 남짓 남은 대통령의 임기이지만, 그들은 그것조차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전방위로 청와대와 대통령을 공격하였단다. 하지만, 야당의 유력 국회의원이 역풍을 걱정하여 그 음모는 계획에서 끝이 나고 말았어.

..

임진혁 대통령에게 2006년부터의 시간은 최악의 시간을 겪고 있었어.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내놓은 정책인데,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반대를 하고 있었어. 반대를 위한 반대였지. 그렇다고 여론의 지지율도 낮기 때문에 그 정책을 밀어붙일 수도 없었어. 언론은 언론대로 진실을 왜곡하여 공격하지, 그런 진실 왜곡에 대해 따지는 것도 지친 시절이었어. 소설을 읽는 동안 그 시절 노무현 대통령님이 정말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혹시 그때부터 마음에 병에 생기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2.

임기를 마치고 고향 땅에 내려온 임진혁 대통령. 그는 진보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청와대 시절 같이 일했던 이들도 모임을 만들어 토론하고, 글을 쓰는 일을 했어. 하지만, 바뀐 정권의 칼날은 임진혁 대통령을 향했어. 치졸한 복수의 칼날이었지. 그런데 그 칼날은 임진혁을 바로 노리는 것이 아닌, 임진혁의 측근들과 가족들을 노렸단다. 자신으로 인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것을 보는 것. 이것만큼 힘든 것이 있을까. 특히 평생 남들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이 말이야. 임진혁은 더 이상 글도 쓸 수 없고, 책을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된단다. 그리고 그는 오래된 생각을 실천에 이르게 된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 한 편을 남겨 두고 말이야.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아빠가 소설을 읽기 전에 소설의 마지막을 먼저 보았을 때 임진혁 대통령은 생존해 있었는데, 읽다 보니 소설의 주인공도 결국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마지막이었단다. , 슬프다. 아빠가 잘못 본 것인가? 아니란다. 소설은 짧은 에필로그로 이어진단다. 2017. 임진혁 대통령은 여전히 고향에서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이해주고 있는 것으로 끝을 맺었어. 이 에필로그는 지은이 윤태영의 희망사항이 아니었나 싶구나. 또는 평행우주? 많은 과학자들이 평행우주설을 주장하고 있단다. 유사한 수많은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평행우주설. 그리고 그 평행우주에는 우리와 동일한 존재가 있다는 설. 그 평행우주설이 맞다고 한다면 어쩌면 어떤 우주에서는 이 소설의 에필로그처럼 노무현 대통령님이 생존해 계셔서 큰 웃음을 짓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란다

 

3.

비상식적인 대한민국의 종식하는 날이 이제 한 주도 남지 않았단다. 오월에 대통령 선거를 한다는 것은 마치 운명 같구나. 노무현 대통령님이 떠난 오월에 대통령 선거라니.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꿈꿔왔던 사람 사는 세상을 다시 이어질 것이라는 운명을 암시하는 것 같았어. 올 오월은 잃어버린 오월의 봄을 다시 찾는 그런 오월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8주기에서는 다시 웃을 수 있으면 좋겠구나.

한편, 아빠는 걱정이 한가지 있단다.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진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이어갈 사람이 될 거야. 그런데 그 또한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 또 야당과 언론, 그리고 또다른 권력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란다. 그때 그를 지켜줄 이는 국민들 밖에 없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언론에 쉽게 흔들린다는 것이 문제란다.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역사가 또 반복될까 하는 걱정이 있단다. 지난 추운 겨울 촛불혁명을 이뤄냈던 우리 시민들. 그 촛불혁명의 힘이 이제는 언론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길 바란단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님이 꿈꾸던 세상이 다음 정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쭉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란다. 거기에 좀더 좌측에 있는 이들의 의견까지 수렴하게 된다면 더 밝은 우리나라의 미래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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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7-05-05 1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월은 노무현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소설에서라도 살아계실 수 있겠군요. 제 마음 속엔 늘 살아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