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방사능은 결코 생명과 공존할 수 없다. 방사능은 생물의 세포를 손상시키고, 유전자 변형을 일으킨다. 이것은 기초적인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환경 속에서 측정되는 방사선량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호흡과 피부 또는 음식 섭취를 통해서 몸속에 흡수되어 쌓이는내부 피복이다. 아무리 저농도라 할지라도 장기적으로 대기와 토양과 물이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호흡과 먹이사슬을 통해 내부 피폭을 당한다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당장 눈에 띄는 상해가 나타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장기 노출로 인한 체내 축적의 결과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손들에게 어떤 가공할 신체적, 정신적 장해를 입힐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12)

아마도 초기에 핵 발전을 기획한 사람들은 원자로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만간 기술적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핵 발전에 비판적이던 사람들도 대부분은 운전 중 핵 발전소의 안전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 만물은 생성, 성장, 노쇠, 사멸의 과정을 밟기 마련이다. 돌덩어리, 쇳덩어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태어나면 죽게 마련이고, 탄생의 장소가 있으면 죽음의 장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핵분열 반응의 생성물이라는 이 기괴한 물질만은 예외적이다. 아마도 이것이 자연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한 지식이 창조해낸 물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31)

특히 이 주장은 온실가스 저감 효과를 과장하는 데 문제가 있다. 발전 과정만 보면 화석연료 발전에 견줘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라늄 채굴, 제련, 운송, 원전 건설, 핵폐기물 처분 등 전 과정을 포함해 실증적으로 분석하면, 핵 에너지의 기후 안정화 효과는 알려진 것처럼 크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핵 에너지의 온실효과 감축 기여도를 2030년까지 10퍼센트, 2050년까지 6퍼센트로 예측한다. 반면 70~80퍼센트 감축은 에너지 효율과 재생 가능 에너지라는 진정한 녹색 에너지 시스템이 담당할 것으로 내다본다.

 

(88~89)

따라서 에너지 기술의 전환은 성장과 공급 중심에서 절약과 수요 중심의 에너지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는 전환이라는 틀 안에서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에너지 전환의 토대가 되는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은에너지 커먼스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성장과 이윤 추구에 집중된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에서 에너지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그리고 그동안 국가와 시장이 맡아온 에너지 관리를 시민과 지역에게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의 참여와 책임, 그리고 협동의 원리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 중심의 에너지 체제는 이윤이나 성장보다는 지속 가능한 수준의 에너지 생산과 소비 관계를 확립할 가능성이 크다 외부 자원에 의존해 에너지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 개선에 힘쓰고 지역 에너지원(재생 가능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함으로써 환경 부담을 줄이고 에너지 자립도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112)

일본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올덴’(영어의 ‘All’과 전기를 뜻하는을 합한 말)화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1980년대부터 일본 전기 사업자를 중심으로 제기된올덴화전략은 가정의 난방, 냉방, 조리, 조명 등 에너지가 필요한 모든 부문에서 전기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가스 조리기 등 에너지가 필요한 모든 부문에서 전기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가스 조리기 등을 전기 조리기로 바꾸고, 심야 전력을 이용한 보일러와 비데, 다양한 온열기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명목상으로 전기를 이용해 깨끗한 생활을 영위하자는 것이지만, 실상은 전력 수요가 더 늘지 않은 상황에서 가스 사업자와 경쟁하는 국면에 내몰린 전기 사업자들이 내놓은 궁여지책의 일환이다. 도쿄전력 전력관에는 전기 오븐을 이용한 요리교실과 비데와 전기 족욕기, 욕실 체험장이 전체의 3분의 1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풍부한 전기 생활을 통해 전기 사용의 이점을 보이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국 전력 산업, 특히 핵 산업계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들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버넌트 버티고 시리즈
마이클 푼케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레버넌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특히나 2015년은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로 기록되었으며 저희가 촬영 당시 눈이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남쪽 끝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기후 변화는 현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 인류와 동물을 위협하는 가장 긴급한 위협이며 전세계가 힘을 합쳐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환경오염을 범하는 거대 기업을 위한 지도자가 아닌, 전인류와 원주민, 생태 변화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혜택 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우리 자녀들의 아이들,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에 의해 목소리를 내지 못한 분들, 이런 분들을 대변하는 지도자를 지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2016년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이야기한 수상소감이란다. 아빠 세대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잘생긴 사람이라고 하면 첫 번째로 찾는 사람이란다. 어떤 이는 그가 뛰어난 외모 때문에 연기력을 빛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 이도 있었어. 그런 그가 드디어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았어. 그리고 멋진 수상 소감을 남겼단다. 그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레버넌트그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아빠도 아직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소설부터 읽어볼까 하고 구입했단다.

 

1.

때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 주인공의 이름은 휴 글래스.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했잖아. 그래서 구글링으로 휴 글래스를 찾아봤더니 1783년경에 태어나서 1833년에 죽었다고 하는구나. 대충 그 시절의 이야기라고 보면 돼. 휴 글래스가 모피 수송대 일원으로 있는데,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잠시 이야기해줄게. 글래스는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여러 일을 하다가 선장이 되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해적의 공격을 받으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어. 해적으로부터 도망을 가다가 인디언에 잡혔단다. 아빠가 앞서 미국 서부 개척 시대라고 했는데, 그 시대를 인디언 입장에서 보면,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자신의 땅에 온 침략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종족을 보호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였던 거야. 백인들과 인디언들 사이는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단다. 인디언들의 종족들이 많이 있는데, 종족마다 백인을 대하는 것은 조금 차이가 있었어. 글래스를 잡은 인디언들은 적대적인 인디언들이었어. 글래스를 화형에 처하려고 했지. 글래스는 죽기 직전에 꾀를 부려 살아났고, 그 이후 일 년 넘게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을 했단다. 그리고 인디언 마을을 떠나 다시 도시로 왔는데, 그것이 그가 처음 해적의 공격을 받은 시간으로부터 5년이 지났을 때였단다. 사람들은 다들 글래스가 죽은 줄 알고 있었어. 그러나 글래스가 죽지 않았을 거라며 기다리면 약혼녀 엘리자베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만 글래스가 돌아온 해 1월에 이미 죽었다고 하는구나. 글래스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돌아가셨대. 휴 글래스는 과거를 잊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자 마음먹고 모피 수송대에 지원을 했단다.

 

2.

때는 1823 8 21. 헨리 대위가 이끌던 모피 수송대는 아리카라 족에게 공격을 받아 16명이 사망했고, 살아 남은 자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헨리 대위 주위에는 열한 명만 남아있었어. 그들은 약속장소인 엘로스톤으로 향했단다. 그들은 먹을 것도 자체 해결해야만 했어. 글래스는 사냥 도중에 회색곰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총으로 곰을 죽이기는 했지만, 글래스 역시 머릿가죽이 벗겨지고, 목과 온몸에 깊은 상처를 받고 정신을 잃고 말았단다. 죽지는 않았지만, 혼수상태에 빠졌어. 헨리 대위는 부하들 중에 글래스를 가장 신뢰했었는데 하필 그가 이렇게 부상을 입게 된 것을 안타까워 했어. 헨리는 글래스를 데려가려고 했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지. 며칠 동안 머무르고 있는데 글래스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어. 결단이 필요했지.

헨리 대위는 2명을 지원 받아 글래스가 죽을 때까지 보살펴주다가 오라고 했어.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기 때문에 일을 맡은 사람에게 돈을 준다고 했어. 먼저 피츠제럴드라는 사람이 지원했어. 그는 전직 악당이었다가 수송대에 합류한 사람인데 그는 돈 때문에 지원했단다. 그는 글래스가 빨리 죽기를 바랬단다. 아마 혼자였다면 그냥 두고 도망갔을 거야. 그런데 또 다른 지원자 브리저 때문에 그렇게 못했어. 브리저는 수송대에서 가장 어린 사람으로 휴 글래스가 잘 챙겨주었단다. 브리저는 그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원을 했어. 글래스는 간혹 의식이 돌아왔다가 다시 잃었다가 했어.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 피츠제럴드가 글래스가 죽지 않고 시간만 지나가는 것이 불만이었어. 피츠제럴드는 강압 반 설득 반으로 브리저를 꼬셔서 그곳을 떠나기로 했어. 브리저는 미안함으로 떠나기 전에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송진을 채취해서 글래스의 상처에 잔뜩 발라주었단다. 그리고 그들은 글래스를 남겨두고 떠났어. 글래스의 총과 장비까지 가지고 갔단다. 그들이 떠나는 그 순간 글래스는 다시 의식이 돌아왔어. 자신의 총과 장비를 가지고 떠나는 그들을 보고 있었지.

 

3.

이번에 돌아온 의식은 완전히 돌아온 의식이었어. 하지만 온 몸에 입은 부상으로 그는 꼼짝할 수 없었고, 목을 심하게 다쳐서 말도 할 수 없었어. 팔만 움직일 수 있는데, 그 움직임으로 글래스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단다. 글래스는 기어서 고여 있는 물을 먹었어. 무엇인가 먹어야 하는데그때 그의 주위에 토끼를 먹고 곤히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방울뱀을 보았어. 방심하고 있는 방울뱀을 글래스는 돌로 공격을 해서 죽였단다. 그렇게 그는 방울뱀으로 허기를 채웠단다. 그 허기는 오래가지 못했어. 그는 기어 다니고 있으니 사냥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지. 썩은 동물 시체를 먹었다가 배탈이 나기도 했어. 그리고 늑대들이 사냥하여 먹고 남긴 물소를 먹기도 했어. 남은 것은 육포로 만들기도 했어. 먹을 것도 먹고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의 몸도 점점 회복이 되었단다. 그리고 나무 막대기로 의지해서 어렵지만 절룩거리면서 걸을 수 있게 되었어.

버려진 인디언 마을에 홀로 남겨진 장님늙은이를 만났어. 자신이 어려운 상태였지만, 그 장님늙은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단다. 글래스는 그 늙은이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했어. 그런 측은지심이 생길 정도로 글래스도 많이 호전되었다는 소리야. 그런데 그 다음날 그 장님늙은이는 죽고 말았단다. 그래서 글래스는 홀로 장례식을 치러주었어. 그 때 수 족이라는 인디언들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잡혔어. 그들은 비교적 호의적인 인디언들이었어. 수 족의 주술사가 글래스의 심각한 상태를 보고 치료해주었단다. 수 족의 마을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글래스는 많이 회복되었단다. 그리고 모피 수송대가 처음 출발했던 브라조 진지에 갔어.

한편, 피츠제럴드와 브리저는 헨리 대위를 만났어. 피츠제럴드는 글래스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브리저는 아무 말 못하고 속으로 죄책감만 커져갔단다.

 

4.

브라조 진지에 도착한 글래스는 브라조 진지의 주인인 카이오와 브라조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어. 몸이 회복된 글래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죽도록 방치한 피츠제럴드와 브리저를 만나 복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지. 그러기 위해서는 글래스는 다시 상류로 올라가야 했어. 헨리 대위 일행과 다시 합류하기 위해때마침 랑 주뱅이라는 사람이 일행과 함께 상류로 올라간다고 해서, 그들에 합류해서 글래스는 다시 길을 떠났단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데 말이야. 복수도 좋지만, 좀 날 좀 풀리면 하지

상류로 올라가는 동안 그들은 인디언의 공격을 받고, 글래스만 간신히 도망을 가고 다른 이들은 모두 죽고 말았단다. 홀로 남은 글래스는 다시 생존이 제 1의 목표가 되었단다. 그는 피츠제럴드와 만날 뻔했단다. 강변에서 불을 피우고 쉬고 있었는데, 모피 수송대를 탈영한 피츠제럴드가 배를 타고 도망가고 있었거든. 글래스는 누군가 배를 타고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시비가 붙으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두었단다. 피츠제럴드인 것을 알았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휴 글래스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헨리 부대에 도착을 했단다. 브리저를 보자마자 마구 때렸어. 죽일 생각도 했지만, 브리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맞기만 하고 있어서 그만 두었어. 브리저는 사과를 했어. 글래스는 여전히 피츠제럴드에게 복수하려고 했지. 헨리 대위는 세인트루이스에 전할 메시지가 있었는데, 글래스는 자원해서 자신이 하겠다고 했어. 사실 딴 뜻이 있었지. 피츠제럴드에 대한 복수. 다른 일행 3명과 함께 출발했어. 그런데 또다시 인디언들의 공격. 모두 죽고 다시 글래스 혼자만 남았어.

글래스는 홀로 가다가 어떤 군대를 만났어. 그런데 그 군대에 피츠제럴드가 이병으로 근무하고 있었어. 피츠제럴드가 어떻게 군대로 오게 되었냐고? 피츠제럴드는 폭행죄를 지었는데, 벌받는 대신 군대로 끌려왔단다. 당시 군인들의 수가 적으러 죄를 짓고 군대로 끌려오는 이들이 많았나 봐. 글래스는 소령에게 피츠제럴드가 한 짓을 모두 이야기하고 자신은 복수를 해야 한다고 했어. 이야기를 들은 소령은 재판을 하겠다고 했어. 그런데 그 재판에서 피츠제럴드는 온갖 거짓말을 했고, 열 받은 글래스는 권총으로 피츠제럴드를 쐈어. 어깨에 부상을 입혔지. 재판장에서 난동을 부린 것이 되어버린 글래스는 영창에 갇히고 말았단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브라조 주인인 카이오와가 도와주어 풀려날 수 있었단다. 여전히 글래스는 복수를 하려고 했지만, 카이오와는 복수를 단념하라고 설득했단다. 세상일이 다 그렇게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지는 것은 아니라면서그리고 세상 모든 일엔 미진한 부분이 남기 마련이라면서….

지은이는 에필로그를 통해서 휴 글래스의 뒷이야기도 해주었는데, 몇 번의 죽음의 위기를 넘겼던 글래스는 결국 인디언들의 공격을 받고 죽었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복수라는 생존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 그가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아빠는 마지막 부분에 카이오와가 한 말을 자꾸 되새기게 되더구나. 세상 모든 일엔 미진한 부분이 남기 마련이라는 말…. 완벽하게 할 필요 없어~

, 이제 <레버넌트> 영화를 봐야겠구나.


(294)
글래스가 걸음을 멈추고 프랑스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카이오와가 말했다. "당신이 피츠제럴드에게 계획했던 복수를 못했다는 건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게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지진 않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나부끼는 깃발 소리뿐이었다.
"이건 당신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카이오와."
"당연히 아니겠죠. 누가 간단하다고 했습니까? 하지만 그거 알아요? 세상 모든 일엔 미진한 부분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냥 주어진 패에 만족하고 흘려버려야죠."
카이오와가 또다시 제안했다. "나랑 같이 브라조 진지로 갑시다. 나중에 내 파트너가 될 수도 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순희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은 아빠가 작년에 녹색평론을 통해서 알게 된 책이란다. 녹색평론에는 매번 서너 편의 서평을 통해 책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그 때 소개된 책 중에 하나란다. 아빠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이어서 꼭 읽어보고 싶었어. 그래서 책을 검색해보니, 출판사도 아빠가 좋아하는열린책들이더구나. 아빠가열린책들의 책은 주로 소설만 읽었는데, 이런 사회 분야의 책을열린책들출판사를 통해 만나니 반갑더구나. 아빠가 생각하기에 이런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어려운 책인데, 출간해준 것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책의 분량도 칠백 페이지가 넘는 엄청 많은 분량의 책이란다. 책을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 오히려 이렇게 두껍고 분량이 많다 보니 사람들이 접근하기 더 어렵다는 생각조금 얇고 가볍게그래서 책 가격도 좀 부담되지 않은 가격으로 썼더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겠다 싶었단다.

이 책은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는 책이란다. 그리고 그 지구 온난화는 지구와 인류를 파멸하는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이고그렇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의 속도라도 늦추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팽개쳐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핵심이란다. 그런데,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그만둘 수 있는 여건이 안되고 있어 안타깝다는 생각만 드는구나.

..

올 여름..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최고 온도 기록들을 갈아치웠고, 지금은 연일 폭염 속의 날들을 보내고 있단다. 이것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야. 아빠가 어렸을 때만 해도.. 본격적인 더위는 장마철이 끝나고 나서 시작했고.. 정말 참을 수 없는 무더위도 길어야 일주일이었어. 그 일주일이 지나면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가을의 냄새가 났단다. 하지만, 최근의 날씨는 유월부터 폭염이 찾아오고, 장마철에 비가 와도 시원해지지 않고, 습식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날씨를 보이고, 장마 중간에 하루 이틀만 비가 오지 않으면 다시 폭염이 찾아오고.. 장마철이 끝나고 나면 무더위의 절정에 다다르고

아빠는 더운 게 싫어서 예전부터 여름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점점 이런 여름이 길어지고 있어서 괴롭구나. 이렇게 기후가 엉망으로 변해버렸는데, 그 시급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구나. 아빠는 그래도 이 해결방안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구나. 물론 지은이는 책 뒷부분에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를 제대로 듣는 이가 없으니 희망을 버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구나. 희망고문에 나만 더 고생하는 거 아닌가 몰라.

얼마 전에 트럼프가 파리협정을 탈퇴하겠다는 소식도 들었어. 파리협정은 잘 지켜지고는 있지 않지만, 그래도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이 함께 한 협정인데, 그 협정을 세계 제 1 강대국이 탈퇴하겠다는 것이 무식한 양반아그럼 너희들만 잘 살 것 같냐지구가 망하고 있는데, 혼자만 잘 살면 뭣하냐.

 

1.

지은이는 사람들은 대형사고와 재해에 손해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그런 것은 우리가 많이 볼 수 있어. 갑작스러운 홍수나 대형 사고 등이 발생하면 자신의 돈을 기부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이 조금 불편해져도 감수를 하곤 해. 그러므로 지구 온난화의 심각을 모두 인지한다면, 손해를 보는 감수를 할 수 있다는 거야. 누군가는 사람들의 이기주의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거야. 사람들의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자본주의가 그렇게 만든 거야. 자본주의가 지구온난화를 만들었어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지구 온난화에 대한 심각성을 과학자들과 환경학자들은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들은 권력을 쥔 자들에게도 이야기했지. 그래서 기후 협정들이 체결되고 여러 나라의 리더들은 모여서 온길 가스 감축에 대해 회의를 했어. 하지만, 오히려 2009년에 온실 가스의 상승률이 부쩍 늘어 5.3%나 증가를 했대. 1990년대에는 온실가스가 배출양이 1년에 1% 정도밖에 상승을 안 했대. 그러다가 자유무역이 완전 활성화가 되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는 2000년대에 들어서는 배출양이 1년에 3.4%씩 증가를 했다는구나. 그러던 것이 2009년에는 5%를 넘어선 거야.

이런 온실 가스의 배출로 지구 온난화는 급속하게 진행되었고, 지구의 온도를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어.. 그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려고 한대.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있잖아. 파멸로 향해 치닫는 공포감을 모르고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졌겠지. 정말 이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없을까? 그래, 맞아. 이제 우리는 기후 변화를 순순히 받아 들어야 해. 기상 이변이 아니고, 기후 변화로 일상이 되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래도 할 일은 있어. 기후 변화는 어쩔 수 없지만,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겠니?

  

2.

그런데 우파들이 생각은 다른가 봐. 그들은 지구 온난화는 온실 가스 배출과 무관하다고 이야기해고 있어. 그건 단순히 태양의 영향이라는 거야. 그리도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97%의 지구학자들을 사회주의로, 좌파로 몰아붙여 이념몰이 공격을 했어. 그리고 언론에서도 기후 변화에 대한 언론기사가 급격히 줄어들었어. 또 중요한 사실 하나.. 온실 가스를 배출하는 국가 따로, 그로 인해 피해 받는 국가 따로라는 사실이야. 어차피 지구 온난화는 지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만, 온실 가스를 배출을 적게 하는 나라도 똑같이 피해를 받거나, 오히려 더 많은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대. 우리 집 불장난이 옆집에 옮겨 붙어 우리 집보다 옆집이 더 많이 피해를 입은 격이지. 그러면 당연히 우리 집에서 옆집의 피해를 보상해 주는 것이 당연하겠지. 그런데, 오히려 난 그냥 계속 불장난 할 거야,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게 말이 되는 거겠니? 그런데 온실 가스를 더 많이 내뿜는 나라 중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라가 많다는 거야. 당연히 온실 가스를 많이 배출한 나라는 더 많은 규제를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한 것이야.

온실가스와 지구온난화의 상관관계가 밝혀졌지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데 공(?)을 세우고 있는 화석연료회사들의 막강한 로비로 인해 일부 학자들은 둘 간의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기 돼. 그리고 그런 학자들의 이론이 언론으로 소개되기도 하고, 책으로 나오기도 하고... 일반인들은 그런 것들을 보고 그런가 보다 하고이제 그들은 은밀하게 지구온난화를 이용하여 어떻게 하면 부를 축적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거야.

1992 UN기후변화협약이 있었는데, 이것만 제대로 약속을 지키고 수행했다면 많이 좋아졌을 것이라고 하는구나. 하지만 그 협약 이행은 계속 미뤄지기만 했대. 더 웃긴 것은 몇몇 나라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려고 하면 다른 나라에서 그 사업에 대해 맹비난을 하거나 제재를 가한다는 거지. 그것은 에너지에 대한 자유 무역 위반이라면서 말이야. 거 참이 사람들이 정말 제 정신인 거 맞는지 모르겠구나.

  

3.

그 와중에도 재생에너지를 열심히 한 나라들이 있단다. 대표적인 나라가 덴마크야. 덴마크의 재생에너지, 특히 풍력 에너지는 전체 에너지 공급의 40%를 차지하고 있대. 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 무역 시대 전에 이미 재생에너지를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만약 최근에 했었더라면 그들 또한 마찰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산업 혁명 이후 온실가스가 늘어난 것은 맞는데, 냉전 이후 아주 급격하게 늘어났고, 자유 무역이 대세를 이룰 1990년대 이후 온실 가스는 더욱 늘어났대.

물론 1990년대부터 기후 변화에 대한 협정들도 생겨났어. 이 무역 협정과 기후 협정은 서로 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구나. 대표적인 것인 비슷한 시기에 체결된 1994년 북미자유무역과 1992년 리우 협약이야. 20 여 년이 지난 오늘날승자는 무역협상인 것 같구나. 외견 상 선진국들은 온실가스가 줄긴 했대. 그런데 그것도 자유 무역에 의한 영향이란다. 그들은 국내에 있던 공장들을 개발도상국으로 옮겼기 때문이야. 세계의 공장이 되어버린 중국의 온실가스 급증도 그 예인 것이야. 2007년 전세계의 무려 3분의 2의 온실가스가 중국에서 배출했다고 하는구나. 그 영향을 우리나라가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것이구나. 정말 슬프구나.

그리고 자유 무역을 하다 보니 물류이동이 많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또 온실가스가 많이 늘어났다고 하는구나. , 열받는다. 이미 지구의 평균 온도는 해마다 올라가고 있대. 과학자들은 지구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마지노선은 이전 지구 온도 대비 섭씨 2도 상승이라고 하는구나. 이미 0.7도가 올라갔는데, 지금 같은 자유 무역 시스템이라면 섭씨 2도는 금방 무너질 것이래. 그러면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성장 위주의 자본주의를 버리고, 지속 가능한 경제를 추구해야 하고, 소비 패턴도 1960~7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구나. 소비 줄이고, 무역 줄이고, 민간투자 줄이고, 소득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이를 인해서 노동 시간은 단축하고 그로 인한 소득 손실은 기본 소득으로 채우고….

 

4.

선진국 중에는 독일이 그나마 재생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이란다. 그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여론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야. 독일은 친환경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높여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단다. 독일은 핵발전소도 없애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세웠어. 그럼에도 독일 온실 가스 배출량이 늘었다고 하는구나. 그 이유는 석탄발전소로 전기를 수출하고 있었대. 독일이 진정 온실 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것에 대한 규제도 해야 해.

미국도 기회가 있었대. 2009년 오바마 정권이 들어섰고, 때마침 금융 위기가 왔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 정당성도 생겼거든. 이때 환경 정책에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면예를 들어 붕괴한 자동차 공장들을 태양광 부품 공장으로 전환시키고, 국민들에게 생활 방식을 바꾸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그러나, 오바마 정권과 환경 단체 모두 소극적이었대. 지은이는 그 이유를 진보 성향의 오바마 역시 이미 자유 시장의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더구나. 재생에너지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좋은 기회가 되고 실업률을 줄이는 좋은 방안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아. 지은이는 오바마의 얼버무리기와 지연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어떤 환경학자들은 핵발전소가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니 핵발전소를 늘이자고 주장한다고 하는구나. 탈핵 선언을 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국의 어떤 환경학자가 핵발전을 계속 해야 한다는 편지를 썼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보고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 그런 환경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하지만 몇몇 환경학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핵발전소는 답이 아니란다. 핵발전소를 짓는데 엄청난 화석연료가 필요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핵발전소를 하나 짓는데 10~19년이나 걸리는데 이제 지구는 그렇게 많은 시간을 기다릴 수 없어. 풍력발전소는 만드는데 2~5년 밖에 안 걸린다고 하니, 재생에너지가 답이지. (얼마 전 녹색평론에서 알게 된 사실로는.. 풍력발전소도 인근 주민과 갈등, 또다른 자연 훼손 등이 이슈가 있지만, 일단 이 책에서는 기후 변화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풍력발전소에 대해 호의적으로 쓰고 있단다.) 그런데 그보다 온실가스를 줄이려다가 더 위험한 방사능을 만드는 것이 맞는 생각인지 모르겠구나. 또 누군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천연가스를 이야기하는구나. 그런데 요즘 말들이 많은 셰일가스를 채취하는데 막대한 오염과 온난가스 배출을 한다고 하는구나. 특히 메탄가스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측정조차 못한다고 하는구나. 이 메탄가스도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데 말이야.

 

5.

온난가스 배출의 주범인 대형 화석연료 기업의 입장은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란다. 주주와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 말이야. 그들은 막강한 돈으로 꾸준히 로비를 하고 있단다. 그에 비해 돈이 없는 기후 단체는 로비를 할 수 없지. 그 동안 여러 차례 기후와 환경에 관한 국제적인 회의를 했지만, 대기업들의 막강한 정치 영향력으로 인해 효과는 볼 수 없었어. 결국 기후 과학이 자본주의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론적 무기를 가지고 대중과 함께 여론을 만들어 가는 방법 밖에 없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하지만 흐름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대기업의 로비는 대형 환경단체에까지 손을 뻗었단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자연보호협회인데 이 단체는 직접 석유가스 유전까지 뚫는다고 하는구나. 스스로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이지. 또 대기업들은 환경 단체와 손잡고 탄소 상쇄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또 다른 인권 침해를 하고 있대. 예를 들어 브라질의 밀림에의 벌목을 못해서 하여 원주민들이 땔감조차 못 가져 가게 했다는구나. 이 똑똑한 사람들이 도대체 핵심조차 제대로 못 잡고 있는 것 같구나.

일부 유력 기업가들도 기후 변화 대책에 대해 기부를 하고 투자하겠다고 하는데 뒤로는 딴 짓을 하는 경우도 많대 그 대표적인 예가 버진 그룹의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기후 변화 대책에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을 한지 길게는 10년이 지났지만 깜깜무소식이고, 오히려 새로 항공 사업에 뛰어드는 등 온실가스와 탄소 배출을 하는 사업을 늘려갔어. 그리고 빌 게이츠도 석유 회사에 투자를 하면서 탄소흡수기적기술을 찾는다고 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단다.

기후 변화 대책의 플랜 B로 햇빛을 차단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것에 놀랐단다. 대형 화산이 발생하면 화산재가 성층권에 가사 태양을 차단하는 것을 보고, 이산화황을 성층권에 투입해서 햇빛을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래. 그래서 지구의 온도 상승을 막겠다는 소리야. 그리고 화석 연료를 그냥 그대로 쓰겠다는 것이지. 이 무식한 계획을 생각해냈다는 것이 놀랍구나. 그래, 좋아.. 이것이 제대로 해서 성공을 했다고 치자. 그래도 이 영향으로 아프리카 지역에는 대규모 가뭄에 예상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대. 물론 우리가 알 수 없는 악영향은 더 많이 있을 거야. 이런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플랜 B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더구나. 심지어 지구를 탈출하자는 화성프로젝트를 플랜 C로 생각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는구나.

  

6.

이렇게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랬다고 포기하고 있으면 안되겠지. 어쨌든 시작하자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여론을 만들어야 해. 이미 그런 분위기가 여기저기에서 조성되고 있어. 미국은 새로운 화석 연료인 프레킹 천연가스와 타르샌드 사업에 열을 내고 있어. 이것을 운송하기 위한 송유관 건설과 기차로 운송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송유관이나 기차 운송에 따른 사고가 잦아지고, 그로 인해 인명피해도 많아졌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반대 여론이 만들어지고 여러 곳에서 시위도 일어났대.

블로카디아라는 말이 있단다. 이것은 노천 채광이나 프래킹 가스 채취, 혹은 타르샌드 오일 송유관 등 채광 및 가스 채취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국경을 초월한 충돌의 빈도와 강도가 갈수록 심해지는 지대를 이야기한단다. 그만큼 시민들의 화석 연료 반대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기도 하지. 세계 곳곳에 블로카디아가 생겨나고 있다는구나. 시민들의 이런 운동으로 프래킹 가스 금지 조치를 만들어낸 곳도 있대. 프랑스, 불가리아, 네델란드, 캐나다의 버몬트 주와 퀘벡 주 등이 그런 곳이라는구나. 시민들의 풀뿌리 환경 운동의 승리인 거야. 그 밖에 화석 연료 채취 반대 투쟁, 석탄 화력 발전소를 없애는 데 성공한 사례도 많다고 하는구나. 아시아, 특히 인도와 중국에서도 블로카디아가 생겨나고 있대. 그래서 중국은 석탄화력발전소 감소와 폐쇄에 동참하기도 했다는 구나. 일부 환경 단체들도 화석 연료 반대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데, 시에라 클럽의 경우, 그동안 잘못을 반성하고 환경 운동에 적극적으로 돌아섰대.

..

하지만 화석연료채취기업의 반격도 여전히 있어. 그들이 항상 내세우는 것은 자유무역협정 투자자보호규정이라는 것이래.. 그들이 믿는 구석에는 부패한 정치 시스템이 있어. 그런 부패한 정치 시스템은 환경 단체와 시민 단체에 대한 불법 사찰을 일삼고, 공권력으로 시위를 공격하기도 하지. 그들은 금융자본과 석유산업이익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의 민주적 열망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해. 하기야 부패한 정치 권력은 항상 힘있고 돈 있는 이들의 이익을 대변했지. 나라와 시대를 불문하고 말이야. 우리나라도 지난 구 년간 절실히 봐왔으니까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시민 여론을 만들어가면서, 한편으로는 에너지 자립 운동도 확산이 필요하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

물론 화석연료회사를 반대하는 것도 일부 선의의 피해자가 있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어떤 이들이 오염보다 생계가 더 중요한 이들도 있잖아. 이것은 정부가 책임을 져야 돼. 탄소세 등을 걷어서 그들의 새로운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방안도 좋은 방안일거야.

이제 지구 온난화는 미래가 아니고 현실이란다. 폭염이 끊이지 않는 올 여름, 모두 절실히 깨닫고 있단다. 그런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홍수와 태풍, 또는 가뭄은 이제 다반사가 되었어. 그런데도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되겠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이들이 많단다. 지구는 재생 능력이 그 어떤 생명체보다 강하단다. 우리 인류가 지구를 보살펴 준다면, 지구도 분명 응답을 할 것이란다. 지은이는 자신의 불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결국 폐경을 앞둔 첫 출산을 한 이야기를 하면서 생명의 재생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 우리 지구도 그렇게 재생할 수 있다고

.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각 국가의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들의 변화가 일어나야 해. 그들을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힘이란다. 어떤 일이라도 해야겠구나. 우리나라 시민들은 단합된 촛불의 힘으로 부패한 정치 세력을 몰아낸 경험이 있단다. 그 힘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만약 외계인들이 지구를 공격해 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아마 모든 지구인들은 똘똘 뭉쳐 외계인을 몰아내기 위해서 싸울 거야. 그것과 마찬가지야. 지금 우리 지구는 온실 가스라는 외계인들, 지구 온난화라는 외계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거야. 그런데 그냥 공격들에 무참히 무너지면 되겠니그 공격에 모든 지구인들이 힘을 모마 몰아내야겠지. 그걸 모든 지구인들이 꼭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33)
물론 우리는 섭씨 4도나 뜨거워진 세계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따르더라도 그 모습은 처참할 것이다. 기온이 섭씨 4도나 상승하면 2100년에는 해수면이 1미터, 어쩌면 2미터까지 상승할 것이고 그다음 세기에도 추가적인 해수면 상승이 일어날 것이다. 몰디브와 투발루 같은 몇몇 섬나라들이 물에 잠기고 에콰도르와 브라질, 그리고 미국 북동부와 캘리포니아,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안 지역 상당 부분이 침수될 것이다. 보스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광역권, 밴쿠버, 런던, 뭄바이, 홍콩, 상하이 등의 대도시들이 역시 침수 위기에 놓이게 된다.

(56)
자연이 말을 하는데 인간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애석할 따름이다.
- 빅토르 위고

(619)
실로 인간은 놀라운 회복력을 가진 존재, 어떤 역경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역경을 헤치고 살아갈 능력과 아드레날린이라는 소중한 선물,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기회라는 호사를 허용하는 수많은 생물학적 중복성을 타고났다. 지구의 바다나 대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존과 번성이 동의어가 아니듯, 생존과 행복 역시 동의어가 아니다. 앞서 보았듯이, 수많은 종들에게 생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양분을 공급받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생태계에 관용의 사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관용이 무한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적절히 주의하고 관리하면 우리는 놀라울 만큼 유연하게 구부러지고 펴진다. 그러나 고장이 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도, 우리를 지탱하는 사회와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0)

물론 빅토리 위고처럼 하려고 들어가는 글로 1904년에 하이드리히가 태어난 도시 할레에 대해 열 페이지 넘게 묘사할 수도 있다. 아마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그 도시의 거리, 상점, 유적지, 현지 명소, 관청, 사회 기반 시설, 향토 음식, 주민과 그들의 사고방식, 정치 성향, 취향, 여가 생활에 대해 묘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다음에는 하이드리히의 집을 자세히 묘사하겠지. 덧문 색, 커튼 색, 방 배치, 거실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의 재료가 된 나무에 대해 자세히 묘사해야 할 거고.

 

(32-33)

역사소설에서 제일 억지스러운 것은 과거를 그린 죽은 페이지에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직접 수집한 증언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대사다. 이것은 활사법과 비슷하다. 묘사가 너무 생생해 마치 눈느오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법이다. 대화를 재구성하면 부자연스러울 수 있고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인위적인 기교가 너무나 뻔히 보이고 역사적 인물들의 목소리를 가로채어 되살리려는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된다.

 

(107)

우리는 일촉즉발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다뉴브 강의 입구에서 흑해로 통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중앙유럽과 다뉴브 계곡의 모든 나라들이 베를린에서 불어온 나치의 무력 외교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으로 차례로 끌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미, 오히려 시작일 뿐입니다…..”

잠시 후 처칠은 불멸의 명연설로 마무리한다.

여러분은 전쟁과 불명예 중에 선택해야 했을 때 불명예를 선택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전쟁만이 남았습니다.”

 

(318)

진실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싫다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글이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진실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진실을 가리기 위해 적극 노력하는 천박한 인간들이 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 항일 무장투쟁의 영웅,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장렬한 삶
김삼웅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학교 다닐 때 국사 시간에 배운 것에 의하면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이었단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절실히 깨닫게 만든 책이 이번에 아빠가 읽은 김삼웅의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이야.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는 김삼웅이 쓰는 인물 평전을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읽는단다. 이름만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 이번에 읽은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이라는 책도 마찬가지였단다. 홍범도라고 하면 봉오동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지, 봉오동 전투 이전에 그가 어떻게 살았고 봉오동 전투 이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어. 그런데 이 책을 통해 혁명가로 평생을 살았던 홍범도를 알게 되었고, 그의 대표적인 전투는 봉오동 전투가 아닌 청산리 대첩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단다. 그의 업적에 비해 그에 대한 평가와 대접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대한민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죄송함마저 들었어.

 

1.

홍범도는 1868년 평양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났어. 홍범도의 어머니는 홍범도를 낳은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시고, 아홉 살 때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단다. 그래서 그는 아홉 살부터 머슴살이를 했어. 그러다가 열다섯 살에 군대에 들어갔어. 열다섯 나이면 원래 군대를 들어갈 수 없지만, 그는 나이를 두 살을 속여 군대에 들어갔단다. 그가 군대에 들어간 것은 대단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생계를 위해서였어. 군대에 들어간 그는 나팔수 역할을 했대. 그러다가 서울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난 이후 경비 인력이 부족해서 차출되어 서울로 갔어. 그는 군인이 백성을 탄압하는 것에 회의를 느꼈대. 그 와중에 부패한 상관을 폭행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로 군대를 떠났대. 4 년 간의 군생활의 끝이었지. 그래도 그 4 년의 군생활이 나중에 그가 몸을 담은 의병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단다. 특히 홍범도는 신기의 총격술을 가지고 있었대. 백발백중.

그는 군대를 떠나서 제지공장에 취업을 했어. 제지 공장의 주인이 동학을 권유했고, 동학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홍범도는 거절을 했대. 그 일로 주인과 불화를 빚고, 주인이 임금도 주지 않았대. 그래서 그만 그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하는구나. 그 때 나이 스물두 살. 그는 금강산의 신계사에 가서 승려 생활을 했는데, 상좌의 직책이었지만, 행자 노릇을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절에서 비구니와 연정을 품게 되었고, 그 비구니가 임신까지 하게 되었대. 그런 일이 있었으니 절을 떠났을 수 밖에 없었지. 비구니의 고향인 함경도 북청으로 길을 떠났단다. 그가 절에 있으면서 임진왜란에 대한 지식을 얻고 처음으로 항일 정신을 키우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단다. 홍범도와 비구니는 북청을 가던 길에 건달을 만나 싸움이 붙고 그 일로 비구니와 헤어지게 되었단다. 그렇게 헤어져서 홍범도는 강원도 산중에서 은둔생활을 하게 돼. 이 은둔생활을 하던 중, 김수협이라는 청년을 만나는데, 김수협과 함께 의경운동을 시작하였단다.

 

2.

홍범도는 김수협과 단둘이 일본군 11명을 제압해서 무기를 빼앗았어. 이후 의병대를 만들어 의병을 시작했어. 그렇다고 군 기술을 배운 이들이 아니었어. 농민과 신포수로 이루어진 단체야. 홍범도는 유인석의 의병대와 합류해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도 했어. 그런데 전투에서 져서, 의병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홍범도는 북천으로 향했단다. 북천은 자신이 사랑했던 비구니의 고향이었거든. 그런데, 그곳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있었어. 그리고 그의 아들 양순도….

그는 그곳에서 7~8년 동안 행복한 삶을 살았단다. 산포수로 생계를 꾸리면서 가족들과 지냈어. 그런데 점점 산포수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수탈이 심해져서 그는 저항을 했고, 다시 의병대를 조직했어. 차도선이라는 사람과 함께 의병을 이끌며 삼수, 갑산 지역에서 활동했단다. 일본군은 가족을 회유했지만, 오히려 아들 양순도 어린 나에 의병에 참가했단다. 홍범도가 이끄는 의병대는 규모가 커져서 500여명이 되었고, 주변의 작은 의병대들도 합류하고 연합을 했어.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야. 아들 양순이 1908년 전투 중에 죽고 말았고, 부인은 감옥에서 죽고 말았어. 혁명가의 가족이 가져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구나. 홍범도가 이끄는 의병대는 왜 강한가에 대해 지은이는 다섯가지로 정리해 주었단다. 첫번째는 주로 포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는 점. 둘째 기동력이 좋다는 점. 셋째 평민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의견충돌이 적다는 점. 넷째 막강한 전투력을 가졌다는 점. 다섯째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었다고 하는구나.

 

3.

일제 탄압은 점점 커져서 홍범도는 국내 의병전에 한계를 느끼고 국경을 넘기로 했단다. 이때 그의 나이 어느덧 사십이었어. 모든 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었어. 그는 측근들만 데리고 압록강을 건너 간도로 이동했단다. 1909년 초 홍범도는 다시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했어. 당시 블라디보스톡은 항일 운동의 중심지였어. 아무래도 일본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는 여기서 안중근을 만나기도 했대. 홍범도는 ‘13도 의군에 참가하기도 했고, 권업회에 참석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했어. 권업회는 최재형이 회장을 맡고, 홍범도가 부회장을 맡았어. 그리고 아빠가 존경하는 신채호가 주필이 되어 권업신문을 내기도 했어.

그런데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러시아와 일본이 동맹을 맺으면서 상황이 바뀌었어. 일본과 동맹을 맺은 러시아가 그냥 지켜볼 수 없었어. 1914년 러시아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추방했단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독립 운동은 타격을 입었어. 권업회도 이때 해산되었단다. 홍범도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쫓겨나서 봉밀산 등지에서 독립 운동 준비를 했어. 삼일 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어졌단다. 약간의 변화가 있다면 러시아 혁명 이후 다시 러시아와 협력을 하게 되었다는 것.

3.1운동 이후 문창범이 회장으로 있는 대한국민회의에서 활동을 했어. 이 단체는 상해 임시정부와 함께 협력을 하였고 군무부에 있던 홍범도를 중심으로 대한독립군을 창설하게 되었단다. 대한독립군의 사령관은 홍범도였고, 이들은 북간도로 이동했어. 국내 진입 작전을 이끌면서 국경 지역과 가까운 갑산과 평북의 강계 지역에 진입해서 일제의 무기를 갈취하는 등의 성과를 냈단다.

 

4.

1920 6 7. 독립전쟁 제 1회전이라고도 부르는 봉오동 전투. 이것은 사실 작은 전투에서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소규모 헌병순찰대를 격파했는데, 이에 일본군의 반격이 있었고, 삼둔자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 일본군을 전멸시키는 성과를 냈단다. 이에 일본군의 대대적인 보복전이 있었어. 홍범도는 전략을 세웠어. 먼저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는 마을 공동화 작전을 폈고, 이후 유인 작전 전술을 폈어. 그날 날씨는 천둥 번개를 동반하여 좋지 않았지만, 그것은 일본군에도 마찬가지. 봉오동에 있었던 전투에서 적군 500여명을 살상하는 대승을 거두었단다.

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다시 한번 대규모 보복전을 준비하였단다. 이번에는 중국군에 압력을 넣어 중국군까지 동원했어. 하지만 홍범도는 오히려 중국군을 회유했어. 하지만 계속된 일본군의 압박때문에 홍범도는 봉오동를 떠날 수 밖에 없었어. 봉오동 전투가 있고 4개월 뒤, 일본군을 간도 지역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어. 홍범도는 그들을 용정촌에서 100여 리 떨어진 화룡현 삼도구로 유인하려고 했어. 그곳은 깊은 계곡으로 전략적으로 먼저 진을 치면 유리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결전지로 정했단다. 이번 전투에는 김좌진이 이끄는북로군정서군도 함께 했단다.

한편, 일본군은 이 전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전에 음모를 벌였어. 마적단을 돈주고 사서 간도 내 일본 영사관을 공격하여 아홉 명을 죽이는 자작극을 벌였어. 이 사건은 훈춘 사건이라고 한단다. 이 훈춘 사건을 빌미로 대규모 일본군은 간도에 주둔하게 되고, 1920 10 21일부터 26일까지 청산리 지역에서 대규모 교전을 벌이게 된단다.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 전투, 천수평 전투, 어랑촌 전투, 맹개골 전투, 만기구 전투, 쉬구 전투, 천불산 전투, 고등하 골짜기의 전투까지사전에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우리 군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단다. 위에서 열거한 많은 전투들은 모두 홍범도의 연합독립군과 김좌진이 인솔하는 북로군정서군이 단독 혹은 연합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란다. 이 청산리 전투로 일본군은 1200 여명이 죽었어. 우리나라 독립군으로는 정말 큰 승리였단다. 홍범도도 이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단다.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왜, 청산리 대첩에서 홍범도가 빠진 교과서로 배워야 했을까. 홍범도가 나중에 소련공산당에 가입을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한 사람의 의해서 역사의 왜곡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어. 잠시 그 이야기를 해볼게. 나중에 해방이 된 후 북로군정서군의 장교로 있었던 이범석이 국무총리를 맡았는데, 그 이범석이 회고록을 썼어. 그런데 그 회고록에 자신의 업적을 과장해서 쓰면서, 홍범도를 나쁘게 왜곡을 해서 쓴 거야. 홍범도가 도망치다가 아랫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이야. 아주 노골적으로 왜곡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청산리대첩의 기록에는 홍범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러나 청산리 대첩의 진정한 주역은 홍범도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의 세 주역들과

무명의 많은 독립군들, 그리고 간도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이것이 청산리 대첩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거야. 정세윤 박사라는 분은 청산리 전쟁을 아래와 같이 평가하고 있단다.

==================================================

장세윤 박사는 청산리 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가 아닌 홍범도라는 주장을 편다.

홍범도 부대는 김좌진 부대와 같이 청산리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어떤 면에서 청산리 독립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 부대가 아니라 오히려 홍범도와 그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독립군 부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로군정서 군대가 독립군의 단위부대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며 기관총과 박격포까지 갖추고 있어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군과의 전투 직전에 수백 리에 이르는 길을 강행군하여 이동하였고 도착 직후는 심한 식량난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홍범도 부대는 9월 하순 가장 먼저 청산리 일대에 도착하여 훈련과 식량조달 등 적과의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청산리 전쟁의 ‘3주역이라 할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각기 다른 행보를 걷다가 청산리에서 연합군 지휘자의 위치에서 일제와 싸워 대첩을 이루었다. (184)

==================================================

 

5.

일본의 보복은 더욱 악랄했단다. 경신대학살이나 간도대학살이라고도 부르는 경신참변. 재만교포 5천여 명 학살을 했어. 시베리아에서도 최재형을 포함하여 70여명을 죽였단다. 이런 무자비한 만행으로 간도의 독립 운동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어. 홍범도도 독립 운동은 잠시 접고, 이때 대종교와 단군계열 단학회에 참여하여 활동을 했어. 독립군들도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을 해서, 자유시 근방에 집결하였단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리 독립군들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어. 다른 나라의 무기를 사용한다는 이유야. , 힘없는 민족의 설움

홍범도는 고심 끝에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어. 이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어. 자유시로 여러 독립군들이 모여들었다고 했잖아. 자유시에 모여든 여러 독립 단체들의 갈등이 고조되었어.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의 파쟁이 결국 비극을 만들었단다. 그들의 분쟁은 무고한 다수의 독립군 대원들이 희생당했어. 6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대. 이를 자유시 참변이라고 부르는데, 이 일로 홍범도 무장 투쟁도 크게 위축되었단다.

홍범도는 부대원 1745명과 함께 이르쿠츠크로 이동해서 소비에트 적군 조선독립여단 1대대장에 임명되었어.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극동민족대회에서 참석을 하기도 했어. 이때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났고, 레닌으로부터는 권총과 돈, 그리고 선물도 받았단다. 러시아 핵심 인물들과 안면을 텄으니, 독립 운동에 대한 지원에 희망을 걸 만 했어. 그러나, 이루쿠츠크로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

레닌이 죽었다는 소식, 트로츠키가 축출되었다는 소식. 스탈린이 서기장이 되었다는 안 좋은 소식이 전해졌어.

그래도 홍범도는 꾸준히 독립 운동에 도움이 될만한 일들을 했단다. 연해주에 농업조합을 만들었고, 청년들에게 사격 등 군사 훈련을 시켰어. 그리고 1926년 이인복이라는 여인과 재혼을 했단다. 전 부인과 사별한 지 18년 만이었고, 홍범도의 나이 어느덧 59세였어. 집단 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1927넌 소련공산당에 입당을 했는데, 이 이력이 나중에 역사에서 그를 배제하는 빌미가 되었단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스탈린이 서기장이 된 것이 안 좋은 소식이라고 했잖아. 스탈린은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동을 명령했단다. 간첩과 외모가 비슷해서 어렵다는 이유였는데, 그러면 사람 대우를 해주면서, 보상을 해주면서,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보내줘야지한달 동안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는, 그곳도 척박한 땅으로 먹을 것도 없는 중앙아시아라고 하니…. 우리 한인들 17만 명을 기차로 꽉꽉 채워서 강제 이동 시켰단다. 이때 많은 이들이 기차 안에서 죽었다고 하니, 또 가슴이 먹먹해 지는구나.

홍범도도 노구를 이끌고 이동을 했고, 카자흐스탄에 배치를 받았단다. 그곳 땅에 척박한 땅이었지만, 한인들은 또다시 개척을 했단다. 카자흐스탄에서 홍범도는 태장춘이라는 연극 연출가를 만나게 되었어. 태장춘은 홍범도의 파란만장 삶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 홍범도를 설득해서 자서전을 쓰도록 했어. 그렇게 쓴 자서전이 <홍범도 일지>였어. 그리고 태장춘은 홍범도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했단다.

1943 10 25…. 조금만 더 사셨으면 꿈에 그리던 해방을 보셨겠지만, 홍범도는 해방을 희망으로만 간직한 채 75세의 나이도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사람은 죽어서 어떻게 될까. 영혼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거야.. 분명히.. 그래서 홍범도의 영혼도 조국이 해방을 한 것으로 보고, 기뻐하셨을 거야. 비록 곧 둘로 나뉘어져 서로 총칼을 겨누어 많은 이들이 죽어서 다시 슬퍼하셨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나눈 둘이 여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어 가슴 아파하시겠지만, 그래도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 이 정도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발전했으니, 조금은 기뻐하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이국 땅에서, 특히 추운 만주, 연해주 등에서 독립운동을 한 홍범도를 비롯한 많은 독립군들그들의 희생에 고마움을 늘 마음 속에 둘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단다.

 

 

장세윤 박사는 청산리 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가 아닌 홍범도라는 주장을 편다.

홍범도 부대는 김좌진 부대와 같이 청산리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어떤 면에서 청산리 독립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 부대가 아니라 오히려 홍범도와 그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독립군 부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로군정서 군대가 독립군의 단위부대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며 기관총과 박격포까지 갖추고 있어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군과의 전투 직전에 수백 리에 이르는 길을 강행군하여 이동하였고 도착 직후는 심한 식량난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홍범도 부대는 9월 하순 가장 먼저 청산리 일대에 도착하여 훈련과 식량조달 등 적과의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청산리 전쟁의 ‘3주역’이라 할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각기 다른 행보를 걷다가 청산리에서 연합군 지휘자의 위치에서 일제와 싸워 대첩을 이루었다. (18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