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역사란 그 터무니없이 큰 나무와 같은 존재다. 건드려보고 즐겨봐도 어느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모조모 사용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하지만 광막한 들판에 서 있는 나무는 우리를 소요하게 만든다. 거기서 인생의 영욕과 의미,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내는 세상의 흐름을 사색할 수 있다. 역사란 이 큰 나무처럼 우리에게 좀 더 크고 긴 안목을 주는 쉼터다.

 

(178)

관중은 굴러온 돌이었기에 기반이 없었다. 또 관중은 명문거족 출신이 아니기에 줄타기도 할 수 없었다. 관중, 포숙, 소홀은 의리와 실력으로 뭉친 선비 집단이었고, 이들은 오직 공과에 의한 작위를 주장함으로써 좀 더 진일보한 세대를 열고자 했다. 물론 관중 사후 제나라는 다시 거성귀족들이 차지하게 되지만 광중의 시도는 춘추시대 첫 번째 관료제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중의 정책들은 실로 다양하고, 그의 말과 행동은 개성이 넘친다. 그러나 관중을 생각할 때는 부귀한 말년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직 실력을 믿고 떠돌던 청년기와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현실정치의 살벌함을 피부로 실감하던 장년기에 바로 관중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210)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군주와 신하의 재능을 나눈다. 신하는 군주의 재능을 가질 수가 없으며, 또 군주는 신하의 재능을 다 가질 필요가 없다. 군주는 신하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으면 그만이다. 그 나머지 일들은 신하들이 한다. 군주는 신하들이 최선을 다해서 달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큰 인재와 작은 인재를 구분할 능력이 있으면 어떤 조직이든 다스릴 수 있다. 술을 좋아해도 술의 폐해를 알고 있으면 인재를 쓸 수 있다. 다혈질이라도 남이 제어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자신은 허명을 쫓더라도 실속 있는 사람을 옆에 구면 된다. 제나라 환공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238)

고대 전제정치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대대손손 부귀를 누리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성을 쌓아야 하고, 궁정을 크게 지어 권위를 높이고, 공실의 창고에 재물을 채워넣어야 한다. 그러나 관중은 말한다. 열심히 성을 쌓고 권위를 높이고 공실의 창고를 채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니, 바로 백성들이 열심히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생산한 부가 어디로 가겠는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그 나라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러면 나라가 부유해진다. 나라의 사람들이 만족하면 공실은 안정된다. 굳이 농민들의 노동력을 과도하게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관중은 백성들의 시간을 뺏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누군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두렵다고? 그러면 스스로 오래된 사람들을 존경하면 된다. 모든 사람이 그런 기풍 속에서 산다면, 함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설 땅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관중이 공실을 안정시키는 방법이었다. 관중의 방법은 향후 2천 년이 훨씬 넘는 동안 여러 가지 변주를 울리며 중국사에서 위세를 떨친다.

 

(337)

그러나 명백한 것은 관중과 환공이 먼저 동쪽을 제패하고, 남쪽으로 초나라를 눌렀으며, 북쪽 융적의 동남진을 막았다. 말년에는 중원과 서방의 문제까지 끼어들어 혜공을 세우고 융을 공격하여 진()의 명백을 이었고, ()의 동쪽을 두드려 겁을 주고 제나라의 패권을 인정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과연 동서남북에서 일광천하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관중이 환공을 보좌하여 한 일이다. 춘추시기의 환경에서 이 정도의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관중과 환공의 조합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358)

포숙의 사람됨은 어떻습니까?”

포숙은 군자입니다. 천승의 나라라도 도로써 주는 것이 아니면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지나치게 미워합니다. 한 가지 악을 보면 종신토록 잊지 않습니다.”

평생을 함께한 마음의 친구에 대한 관중의 정당한 평가였다. 이 말에는 포숙에 대한 진정한 우정이 묻어난다. ‘정치, 그것 정말 할 만한 것인가? 포숙은 좀 물러나서 인성을 보존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러자 환공이 다시 묻는다.

그런 누가 맡을 수 있겠습니까?”

습붕이면 됩니다. 그 사람은 잘 알면서도 아래 사람에게 묻는 것을 좋아합니다. 신이 듣기로 덕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이를 인하다 하고, 재물을 나누어주는 이는 선량하다 합니다. 참함으로 남을 이기고자 하면 절대 복종시킬 수가 없고, 착함으로 남을 길고자 하면 복종시키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나라에 임해서는 남모르게 하는 일이 있고 가정에 임해서도 남모르게 하는 일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습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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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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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0-04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진 왕좌의 게임 전집입니다! ^^:

bookholic 2017-10-05 10:04   좋아요 2 | URL
외서라서 도서정가제가 적용이 안되어 많이 싸더군요.^^ 남은 가을방학, 행복한 시간들 되시기를...^^
 
김수영을 위하여 -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
강신주 지음 / 천년의상상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본가, 그러니까 너희들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 가게 되면 가끔씩 들르는 곳이 있었단다. 파주출판단지에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보물섬이라는 헌책방이었어. 헌책방은 비단 싼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가는 것은 아니야. 헌책방에 한참 둘러보다 보면 아빠가 미처 알지 못했던 좋은 책들과 작가들을 알게 되는 행복이 있어. 그야말로 숨겨져 있던 보물을 얻는 기분이었어.. 보물섬이라는 헌책방 이름을 참 잘 지은 것 같구나. 그 보물섬에서 김수영 작가에 관한 책을 하나 산 적이 있어. 아빠가 당시 양장본 책을 유달리 좋아해서 양장본에 선뜻 눈이 갔었거든. 양장본의 우수에 찬 포즈의 김수영이라는 작가의 얼굴이 끌렸어. 그때는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지. 그렇게 산 김수영에 관한 책은 책장에 한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읽지는 않았어. 사실 엄두가 좀 나지 않았어. 아빠가 김수영이라는 사람을 잘 알지도 못했고, 책이 워낙 전문서적처럼 보였거든. 그 책의 정체는 문광훈이라는 분이 쓴 <시의 희생자 김수영>이라는 책이야. 나중에 김수영이라는 시인의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그리고 그 이후, 한참 시간이 흐르고녹색평론에서 김수영을 한 꼭지로 다루었는데, 그때서야 김수영이 4.19혁명 때 저항시인이었다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어. 그리고 정재찬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김수영의 멋진 시 한 편을 알게 되었어. <우선 그 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라는 시였어.. 이렇게 다른 책들을 통해서 우연히 김수영이라는 시인의 자취를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 책이 생각이 나서 읽어 보려다가좀더 읽기 쉬운 책 먼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다 검색을 하다 보니, 몇 년 전에 강신주가 김수영에 관해 쓴 책이 있더구나. 강신주. 예전에 아빠가 그의 책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너무 잘 읽고 나서 그의 다른 책들도 몇 권 더 읽었었거든. 강신주의 자유로운 영혼을 부러워했고, 그의 글발을 좋아하게 되었지. 그런 강신주가 아빠가 궁금해하던 김수영의 관한 책을 썼다? 읽어봐야겠다 싶었어. 책의 제목은 <김수영을 위하여>. 책 제목도 한번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읽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라고 하면강신주가 어떻게 그런 자유로운 영혼을 갖게 되었는지 알겠더구나. 강신주는 김수영을 정신적 아버지라고 생각할 만큼 존경하였다고 하는구나. 그런 김수영의 삶은 그저 저항시인으로 표현하기에는 위대하고 더 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시인 김수영은 진정한 자유를 꿈꿨고, 그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시대에 저항할 수 밖에 없었던 거야. 그 이야기가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단다. 이 책은 몇 년 전에 강신주가 김수영에 관한 강좌를 열었었는데, 그 강좌를 정리한 책이란다. 아빠가 이 책을 읽을 때 어떤 부분은 집중해서 읽고, 어떤 부분은 건성으로 읽었어. 건성으로 읽을 때는 글이 어렵게 느껴졌지만, 집중해서, 간혹 메모도 하고 꼼꼼하게 읽을 때는 뭔가 꽉 찬 느낌이고, 아빠의 영혼에도 차곡차곡 무엇인가 채워지는 기분이었단다.

 

1.

이 책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결론을 한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바로자유란다. 우리는 지금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은 자유를 누린다고 이야기할 거라 생각한단다. 강신주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을 하면서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읽어주면 대부분 대학생들이 불편해 한다고 하는구나. 그 시는 이런 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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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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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불편하게 느껴졌단다. 그런데 이 시는 50여 년 전에 김수영이 쓴 시라고 하는구나. 이 시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체제 안에서 제한적으로 누리는 자유라는 것을 깨우치게 하고자 지은 시라는 구나. “김일성만세”를 보고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는 제한적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 그런 자유는 조선시대 규방 안에 있는 여인의 자유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거야. 그에 반해 시인 김수영은 진정한 자유를 노래했어. 그런 진정한 자유를 표현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했어. 그러면 시인은 어떤 사람을 이야기하는가? 시인은 평범한 사람과 달라야 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했어. 그렇게 자시만의 목소리를 내다 보니 세상과 불화는 필연적이었던 것이야. 이것이 바로 시인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생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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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이제 더욱더 궁금해진다. 김수영은 가슴에 어떤 이상을 품고 살았던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김수영은 시인이 되려고 했고, 시인으로 살고자 했다. 다시 말해 김수영의 이상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시인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지금부터 차근차근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숙고해 보도록 하자. 무엇보다도 먼저 시인은 평범한 일반 사람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일반 사람은 관습이나 교육에 따라 사물이나 자신을 이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이 세계와 불화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미 세계가 조율한 대로 소리를 내니, 타인이나 사회와 불화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시인은 투철한 자기 이해에 이르러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관습의 목소리나 타인의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에서 추방할 수 있고, 나아가 잃어버린 자신만의 목소리를 되찾아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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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어떻게 이런 자유를 신봉하게 되었고, 자유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었을까?

 

2.

1921년생인 김수영은 태어났어. 그리고 1941년 친구의 여동생을 짝사랑해서 그를 쫓아 일본 유학을 갔대. 하지만, 그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어. 다시 귀국한 그는 1950 4월 이화여전 출신의 김현경과 동거를 시작했어. 결혼식만 올리지 않았지, 결혼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 그에게 행복한 시간의 시작이었어. ... 1950 4월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가장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기 직전이었어.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어. 6,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의용군에 강제 징집되었단다. 그곳에서 도망을 쳤지만, 다시 붙잡혀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도망을 쳤어. 서울에 왔다가 이번에는 의용군이라면서 경찰에 붙잡혀 집에도 가보지 못하고 바로 거제포로수용소로 끌려갔어. 집에는 연락도 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김수영은 2년 동안 지냈어. 이 거제포로수용소의 강력한 억압을 통해 그는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2년이 지나고 서울 집에 왔는데, 아내 김현경은 생사를 모르는 남편은 둘째 치고, 아들 준까지 시댁에 맡기고, 김수영의 친구인 이종구와 재혼을 해서 부산에서 살고 있었어. 김수영은 심한 배신감에 빠지고, 부산에 내려가 김현경을 만났지만, 김현경은 김수영을 따라오지 않았어. 김수영은 다시 서울에 올라왔어. 그러다가 포로수용소 간호사였던 노봉실과 사랑에 빠졌어. 그런데 노봉실은 이미 유부녀였고, 노봉실은 선을 넘지 않고 지켰어. 그 와중에 1954년 김현경이 돌아왔어. 하지만, 그 이전의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부부생활을 했어. 자유의 영혼을 정착한 김수영은 김현경을 끝내 용서하지 못한 것이야.

그리고, 19686 16일 동료 문인들과 술을 먹고 크게 취해서 늦은 시간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운명하고 만단다.

 

3.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예찬이란다. 자유와 비슷하게 쓰인 말들로 단독성, 포즈, 자신만의 제스처 등으로 표현했어. 혹시 그 차이가 있다고 하면 아빠가 잘못 이해한 것이란다. 아빠는 같은 것으로 이해를 했거든. 책에서 위 단어들을 자주 나오는데, 그것을 자유로 받아들여도 된단다. 그는 자유롭기 때문에 비판도 솔직하게 했어. 당대 동료 시인들을 평하기도 했는데, 아주 가혹한 평이더구나. 다른 동료 시인들이 그를 싫어하기에 충분한 혹평들이었어. 김수영이 시를 보는 기준은 자유의 회복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시인들을 혹평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가 바라보는 시와 다른 시인들이 바라보는 시가 달랐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왜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모르는 것일까? 제한적 자유를 누리면서 자유를 누린다고 이야기할까? 그것은 교육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교육은 단독성을 개화시키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신봉하는 가치를 주입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야. 그걸 깨닫고 단독성을 회복하려고 하면 탄압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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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불행히도 모든 교육은 단독성을 개화시키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신봉하는 가치를 주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단독성을 회복하려는 순간, 당연히 가정이든 학교든 군대든 회사든 권력을 쥔 자들로부터 탄압받기 마련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생긴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로부터 스스로 단독성을 부정하는 개인들이 탄생한다. 외적인 탄압과 억압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과 똑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불쾌하게 느끼는 사람들과 달리, 이런 불행한 개인들은 오히려 타인이 자신과 같은 옷을 입고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기 쉽다. 그들이 유니폼, 즉 동일한 형식을 즐기는 것은 이런 이유인지 모른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제스처를 버리고 권력이 허용하는 제스처를 취해서 자신의 단독성을 은폐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를 싫어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는 자신들이 애써 은폐하려던 단독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시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들은 조금씩 자신이니까 살 수 있는 삶, 자신이니까 느낄 수 있는 감성, 자신이니까 생각할 수 있는 사유를 영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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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교에서 자유를 방종과 구별해야 한다고 배웠던 기억이 있단다. 책을 읽으면서 강수영이 이야기하는 자유와, 아빠가 생각한 것은 방종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지?라는 의심이 계속 갔어. 김수영은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했어. 사랑이 아닌 자유는 방종이라는 것이지. , 그가 자유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나 싶구나. 비록 아내 김현경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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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자유의 방종은 그 척도가 기준이 사랑에 있다는 것만을 말해 두고 싶습니다.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자유는 여하한 행동도 방종이라고 볼 수 없지만, 사랑이 아닌 자유는 방종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호흡입니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에도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사회환경에서는 여간 조심해서 보지 않으면 분간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사랑이 순결하면 순결할수록 더 그렇습니다. 기도가 눈에 보이지 않듯이 사랑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자유의 방종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회에서는 백이면 백이 거의 다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의 자유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를 방종이라고 탓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요즈음 느끼는 일>(19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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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책은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많이 발췌하여 싣고 있단다. 그 발췌하고 싶은 글들이 상당히 많았어. 그 시와 산문들은 모두자유를 주제로 하고 있어. 이 책에 김수영의 글들 중에서 일부러 그런자유에 관련된 글들만 실은 건지, 아니면 김수영의 모든 글에자유라는 색깔이 칠해져 있는지는 모르겠구나. 아무튼,, 강신주는 김수영을 통해 초지일관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단다. 그가 1961년에 발표한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를 보면, 팽이를 통해 고독한 자유 정신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어. 팽이는 혼자 자유롭게 평면에 돌아야 잘 돌잖아. 그런데 평면이 아니라면 돌 수 있는 힘이 있다 해도 저항이 생기잖아. 자유를 누릴 마음이 있어도, 세상이 그것을 막는다면 저항이 생기는 것을 팽이에 빗대어 노래한 것이란다.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의 전문은 아래와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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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의 장난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壁畵)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數千年 )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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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은 이 시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 시에 대한 강신주의 설명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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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86)

모든 돌고 있는 팽이는 자시만의 중심을 가지고 돈다. 그런데 두 팽이가 마주친다는 것은, 어느 하나가 다른 팽이의 회전 스타일을 수용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허망하게도 팽이는 쓰러지고 만다. 팽이만 그런가. 인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기만의 스타일로 살지 못하고 남의 스타일을 답습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 내지 못한다. 김수영의 말대로생각하면 서러운일이다. 보통은 인간이 고독하기 때문에 누군가와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거나 완성되기 위해 지혜로운 사람이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통찰이 옳다면, 이게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서도 안 되고, 누가 기대는 것을 용납해서도 안 된다. 오직 철저하게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삶을 마무리해야만 한다.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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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강신주의 설명이 없었다면, 아빠는 이 시를 통해서 그런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못 찾았을 것 같구나. 강신주는 또 이야기한단다. 시인은 자유를 노래하기 때문에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김수영은 7할의 고민과 3할의 시화가 행동이었대. 그런데 예술파 시인으로 부르는 사람들은 7할의 고민, 즉 사상이 없었다고 비판했대. 당시에 순수 문학과 실천 문학이 대립하는 양상도 보였는데, 실천 문학에 있던 그었지만, 순수 문학뿐만 아니라 참여파 시인도 비판을 했다는구나. 당시 참여파 시인들이 너무 투박한 나머지, 민족주의와 민중중의에만 근거를 두었다는 거야. 그게 뭐가 문제냐고? 강신주는 그 민족주의와 민중중의 또한 자유를 누리는데 제한이 된다는 것이었지.

강신주는 시인이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많이 했어. 시인은 자유를 노래라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뿐만 아니라 시인은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를 형식을 부정해야 한다고 했어. 그는 참여파 시인들이 그들 내부의 잠복해 있는 지배욕을 극복하는데 실패했다고 이야기했어. 그렇게 양쪽을 비판하면서도, 그래도 시인은, 모두 자유를 노래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어. 그리고 시인은 각자 가진 경향을 긍정하면서 내용이나 형식에서 모두 자유를 충족하는 시를 쓰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했어. 시인의 최고 긍지는 자유이기 때문에 현실과 불화는 불가피했던 것이고 시는 형식이 없어야 한다고 했어. 진정한 시는 절대성과 단독성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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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 <시여, 침을 뱉어라>(19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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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간혹 문학과 삶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오해를 만든 것은 문학자 자신들이라고 강신주는 이야기하면서, 문학의 본질은혁명이란 이념민족이나 인류의 이념에 있다고 덧붙였어. 여기서 혁명이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의 힘을 얻는 것을 이야기했어.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정치이데올로기를 피력은 하는 것은 배신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가능한 것이라고 했어. 왜냐하면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까 말이야. 어떤 사회가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권력은 자신이 신봉하는 이념과 사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시인이라면 침묵할 수 없다고 그는 이야기했어. 그가 비록 50년 전의 당시 상황을 빗대 이야기한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그런 정치가 문화를 탄압한 일이 불과 얼마 전까지 있었단다.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는 MB정권부터 이어진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 그 더러운 권력들은 시민의 힘의 위대함을 몰랐단 말인가? 그들에 대한 처벌은 공정하고 엄정하게 이루어지길 바라고 기도하고 있단다. 그리고 그 권력이 심어놓은 썩은 내 진동하는 씨앗이 아직 방송국들을 장악하고 있단다. 아직 언론 권력은 적폐 세력이 그대로 점령하고 있는 것이야. 최근 벌어지고 있는 마봉춘, 고봉순의 파업에 절대 지지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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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이 꿈꾸는 세상.

앞서도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자유 그 자체였어. 인간의 자유를 불온하다고 보지 않는 세상. 자시만의 삶을 살아내려는 의지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는 세상. 이것이 그가 꿈꾸는 세상이란다. 사랑이 가득한 집안은 침묵할까? 늘 시끄럽고 야단법석일까? 당연히 늘 시끄럽겠지. 나라도 마찬가지야. 자기만의 삶을 살다 보면 시끄럽겠지. 그것을 저항이라고도 하지만, 그건 바로 자유의 소리인 것이란다.

이 책을 읽고 아빠도 아빠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제한적 자유였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단다. 그리고 좀더 유연한 생각으로 자유의 폭을 넓혀볼까 싶다가도 소심한 아빠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한단다. 지은이 강신주가 김수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철학전공을 하면서 자신이 이상과 현실이 상충할 때였다고 하더구나. 그때 김수영을 처음 알게 되고, 이후 김수영은 그의 정신적 멘토가 되었대.

, 이제 김수영의 책을 읽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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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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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 책은 SNS에서 먼저 본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평을 보고 알게 된 책이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웃기다고 했어. 아빠가 지난 봄에 너희들의 고모 생일 선물로 사 준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책이란다. 고모도 이 책을 읽고 재미있다고 하더구나. 어떤 내용일까? 아빠도 궁금해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이제에서야 읽게 되었단다. 일단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해서 좋았단다. 장서가로써 겪은 경험담을 재미있게 잘 이야기해주고 있었어.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많아도 글을 재미있게 쓰는 것은 또 다른 것인데, 이 책의 지은이는 글을 참 재미있게 쓰더구나.

아빠도 지은이만큼 장서가는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책중독 증세가 조금 있다는 생각은 들어. 일단 사기만 하고 안 읽은 책이 수백 권이니까 말이야. 아주 예전에는 읽기 전에 사서 읽었는데, 언젠가부터는 사두면 언젠가 읽겠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샀어. 그러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단다. 요즘은 책을 살 때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서 산다고 생각하는데도,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욱 빠르단다. 그리고 책을 살 때마다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곤 해. 술 한 잔 했다고 생각하지 뭐이러거나갖고 있던 주식이 올랐네? 이러거나하지만 주문 다음날 이내 주식은 곤두박질치고, 책은 배송중이고ㅜㅜ 오늘 또 추석 연휴 때 읽을 책이 때맞게 도착했단다.

 

1.

지은이 박균호는 장서가란다. 그런 장서란 무엇인가? 책이 많으면 다 장서냐? 아니란다. 장서는 그 책주인이 수십 년 필요에 의해한 땀 한 땀모은 책의 컬렉션을 이야기하는 거래. 그래서 장서를 훑어만 봐도 그 사람의 인생관을 알 수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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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장서는 그 주인과 운명을 함께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서란 그 주인이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취향과 필요 때문에한 땀 한 땀일군 책의 컬렉션을 말한다.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읽지도 않을 책을 장식용으로 마련했거나, 주위에서 선물받은 것으로 채워져 있거나,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기호가 아닌 그냥 방치된 책의 무더기는 장서가 아니다. 그래서 장서를 잠시만 둘러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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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다 보니 깊게 공감이 가고, 아빠가한 땀 한 땀모은 책들에 눈이 갔단다. 아빠도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것은 아니란다.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어렸을 때는 책을 정말 안 읽었어. 그러다가 이십 대 후반서점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사게 되었어. 아주 우연히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한 이후 집에 책이 하나 둘 쌓이게 된 거야. 누군가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으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잖아. 그런데 이상하게 아빠는 책이 지저분하면 눈에 잘 안 들어 오더라구. 그렇다고 아빠가 새 책만 사는 건 아니야. 몇 년 전 도서정가제를 확대 실시한 이후에는 지갑 사정도 있고 해서 오히려 헌책방이나 인터넷 중고서점을 더 기웃거린단다. 그런데 그곳에도 책 상태가최상이나 아주 조금 양보해서인 책에서 골라. 앞서 이야기했듯이 책상태가 좋지 않으면 눈에 잘 안 들어와서..

아빠도 그렇게 한 권 한 권 모은 책들이 어느덧 정말 책의 무게로 집이 무너질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단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책 무게로 아파트 바닥이 내려앉을 것을 걱정해서, 폐교된 학교로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그렇게 모인 책들을 한번 훑어 보았단다. , 이 책들이 아빠의 인생관을 대변한다고? .. 그래,, 그렇지,, 저 책은 실수로 잘못 산 건데.. .. 평균적으로 보면.. 맞아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하하, 또 이 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아빠의 이야기로 빠졌구나. 이 책이 아무래도 책과 독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니, 저절로 아빠의 책 이야기로 빠지게 되는구나.

지은이 박균호는 고서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았어. 희귀본은 찾는 책 사냥꾼으로써의 에피소드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단다. 아빠는 희귀본을 찾지는 않기 때문에, 이것은 약간 다르더구나. 아빠는 희귀본은 찾지 않지만, 책의 외모는 좀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란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책의 개정판이 아주 빼어난 외모로 다시 나왔다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곤 한단다.

지은이의 나이가 오십에 들어서면서, 책을 사기가 주저한다고 하더구나.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자신의 서재에 있는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래. 그런데 이건 비단 지은이만 그런 것이 아니고 많은 장서가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노년의 장서가들의 서재를 보면, 새책보다 그들의 젊은 시절을 함께한 책들이 오래된 친구들처럼 함께 하고 있대. 결코 노년이 들어 독서를 게을리하는 것이 아니고, 아빠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빠도 요즘 고민이라고까지는 그렇지만, 우리집에 있는 책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왔거든. 책을 이렇게 사다 보면 나중에 책을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나중에 삶을 마감하면 이 책들은 어떻게 될까? 이렇게 책을 보고 읽지 않는 책이 늘어나다 보면 결국 읽지 못하는 책도 있겠네.. 이런 생각들지은이가 이야기하는 것에 참 공감이 가더구나.

 

2.

아빠가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 그래서 혼자 독후감을 쓰고, 최근에는 너희들에게 독서편지 형식으로 이야기하듯 쓰고 있단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아빠도 책에 관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는 것 같구나. 책을 다루는데 있어, 밑줄을 그으면서, 책에 접으면서 열성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아빠처럼 정말 소중히 다루면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지은이는 그런 독서가들을 육체파 사랑을 나누는 사람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사람으로 구분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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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4)

이렇듯 뜨거운 동지애를 발휘하는 애서가들조차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두 부류가 있다.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와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부류가 그들이다.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는 책을 함부로 다룬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심지어는 침을 묻혀가면서 읽는다. 또 읽다가 멈출 때는 스스럼없이 다음에 읽어야 할 부분을 접는다.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는 책을 마치 보물처럼 다룬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고 반드시 책갈피를 사용하며 심지어 책 표지의 띠지조차 소중히 여겨서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이런 부류가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사람을 보면 그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책을 그렇게 험하게 다룰 수 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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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의 기준대로라면 아빠는 완벽한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빠는 책에 낙서는 물론이고, 실수로 책장이 접히는 것도 안타깝게 생각하거든. 그리고 겉표지도 기스가 날까 봐 책을 볼 때는 항상 북커버를 이용하고 있어. 북커버에 맞지 않는 책의 크기라면, 책을 포장해서 읽는단다. 왜 그러냐고? 글쎄,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선천적인 것 같구나.

..

 

3.

이 책에는 책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지은이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단다.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그는 중학생 딸이 하나 있고 엄한(?) 아내가 있는, 행복이 가득 묻어나는 가족을 이루고 있어.. 시크한 중학생 딸과 엄한 아내의 무시하는 듯한 시선들이 그의 글에 나오고, 아내와 부부싸움을 한 것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런 글들에도 행복이 묻어 있었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재미있는 글솜씨로 포장해서 말이야.

아무런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는 일상을 재치 있고 유머스러운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능력. 그것이 지은이의 장점인 것 같더구나. 아빠는 너희들에게 가끔 독서편지를 쓰고 있지만, 다시 읽고 싶지 않을 정도의 무미건조함으로 가득 차 있는데 말이야 그의 글솜씨가 부럽더구나.

삶을 글로 기록하는 것지은이처럼 재미있게 쓰지 않더라도 우리가 겪은 일상을 글로 기록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구나. 아빠가 그동안 독서 편지를 쓸 때, 가급적 다른 이야기는 안하고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만 주로 했는데, 좀더 우리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해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단다. 비록 무미건조한 글들일지라도우리의 이야기가 남잖아.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읽을 때 좋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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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장서는 그 주인과 운명을 함께한다. 여기서 말하는 장서란 그 주인이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취향과 필요 때문에 한 땀 한 땀일군 책의 컬렉션을 말한다.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읽지도 않을 책을 장식용으로 마련했거나, 주위에서 선물받은 것으로 채워져 있거나,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기호가 아닌 그냥 방치된 책의 무더기는 장서가 아니다. 그래서 장서를 잠시만 둘러보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다.

 

(43~44)

흔히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고 한다. 같은 글이라고 해도 나이에 따라, 처지에 따라, 생각의 깊이에 따라 새로운 감동과 공감을 준다는 말인데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책을 읽다 보면 집중력이 잠시 흐트러져서 읽지 않고 넘어가는 구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 책을 다시 읽다가 그 부분을 자세히 읽으면 어찌 되었든 처음 읽는셈이다. 두 번째도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부분은 처음 읽는 것이라서 첫 독서 때에는 없었던 생각과 공감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두고 읽을수록 새로운 감동이 느껴진다라는 고전의 미덕을 경험했다고 오해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처음 읽을 때부터 꼼꼼하게 읽어서 같은 내용을 다시 읽더라도 감동할 수 있다는 말도 틀리지 않고,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는 독자도 많다. 다만 나의 경우는 처음 읽는 내용을 잊어버린다든가 건너뛰어서 두 번 이상 읽어야 처음으로 감동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읽은 책인데도 그 내용을 궁금해하면서 읽는 경우도 허다하다. 두 번째 읽는 책인데도 처음 읽은 것과 진배없이 낯설고 신선한 경우가 허다하다.

 

(57)

노년에 이른 분들의 서재를 보면 주인과 함께 늙은 것을 자주 발견한다. 서제에 꽂힌 책이 대부분 주인이 젊은 시절에 모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서재를 보면 주인이 어느 시대에 젊었는지 한눈에 보인다. 특정 시대의 책들로 이루어진 서재를 보면 왜 노년이 되어서 독서를 게을리하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이제 요즘은 나도 새 책을 사기가 주저된다. 꼭 서재가 꽉 찬 탓만은 아니다. 산다고 해도 버릴 책이 태반이다. 졸지에 재활용 박스에 들어가거나 지역 도서관에 기부되는 책들은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이거나 유치하다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속절없이 내 방에서 쫓겨 가는 비운을 맞이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책에 담긴 지식과 이야기가 일정한 주기를 두고 재생산되어서인 듯하다. 새 책을 사서 실망하는 것보다는 내 서재에 있는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두기만 하고 아직 읽지 못한 <모비 딕>을 마치 고시 공부하듯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복해가는 즐거움도 크지 않을까.

 

(63~64)

이렇듯 뜨거운 동지애를 발휘하는 애서가들조차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두 부류가 있다.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와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부류가 그들이다.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는 책을 함부로 다룬다.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심지어는 침을 묻혀가면서 읽는다. 또 읽다가 멈출 때는 스스럼없이 다음에 읽어야 할 부분을 접는다.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애서가는 책을 마치 보물처럼 다룬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고 반드시 책갈피를 사용하며 심지어 책 표지의 띠지조차 소중히 여겨서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이런 부류가 책과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사람을 보면 그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책을 그렇게 험하게 다룰 수 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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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9 0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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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9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