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그의 아버지의 눈에는 이러한 시대 상황이 아마도 거의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전 여러 대에 걸쳐 그래 왔던 것처럼,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도 방랑하는 음유시인이나 그 비슷한 부류의 방랑자를 제외한 약사들은 귀족의 궁정에서나 성직자의 궁정에서나(모차르트는 양쪽 다 해당된다) 당연히 하인으로 분류되었다. 그들은 시종이나 마차꾼처럼 하인의 제복을 입고(하이든도 생애 대부분을 이렇게 살았다), 하인들의 부엌에서 요리사, 부엌일 담당 하녀들과 어울려서 식사했다. 하인들 중에서도 악사의 지위는 높지 않았다. 그들은 고용주가 허락하지 않으면 여행을 할 수도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는(하이든의 첫 일자리인 보헤미아의 모르친 백작의 궁정에서처럼) 결혼조차 금지되었다. 대개는 시종처럼 필요에 따라 1 2역을 해야 했다(J.S. 바흐도 바이마르 궁정에 처음 일자리를 얻었을 때 공식적으로 그런 역할을 요구받았다.)

 

(26)

이를 테면 프리드리히 멜키오르 폰 그림 남작도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이렇게 그 어린 영혼에게 정복당했다.

어디서 이런 아이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기가 막히게 매력적인 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말씨와 행동은 동심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풋풋함이 어우러져 찬란한 생명력과 원기가 넘쳐 흘렀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그 쾌활함은 그 아이가 제대로 영글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적정조차 떨쳐냈습니다.”

 

(29)

모차르트는 알았을 리가 없지만 트럼펫은 이 세상 어느 인간 집단에서나 강력한 남성, 더 나아가 남근을 상징했다.(아직도 그런 지역이 많이 남아 있다) 다시 말해 꿰뚫는, 공격적인 독재적이고 위협적인 속성의 상징이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은 것이, 트럼펫은 어느 나라에서나 군대를 집합시키거나 적을 위협하기 위해 고안된 군악기이다. 18세기 유럽 음악, 특히 바로크 음악에서는 왕의 영광을 찬양하는 음악에서 가장 도드라진 악기로 쓰였다. 모차르트의 트럼펫 공포와 아버지에 대한 공포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면? 그의 어린 시절 모토는 하느님 다음은 아빠였다. 성인이 된 뒤에도 스트레스로 힘겨울 때면 종종 그 모토를 읊조리곤 했다. 하느님이 그러하듯이 아버지도 베풀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는 존재였다. 그게 아버지의 주요한 교육 기법 중 하나였다. 모차르트에게 스승이라고는 오로지 아버지 한 사람밖에 없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아이들을 학교 문전에도 데려가지 않고, 또래와의 우정을 거의 박탈한 채로 키웠다.

 

(83)

자식이 어린이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어른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양치기는 양을 잃어버렸다. 레오폴트로서는 자기의 존재 이유를 박탈당한 것이었다. 의존적이었던 것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였던 셈이다. 메이너드 솔로몬에 따르면 모차르트 가정에서 진짜 영원한 어린이는 볼프강이 아니라 레오폴트였다. 밖으로 내돌려진 신동들의 실제 모습(신화가 만들어낸 모습의 상대어로서)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모차르트가 청중이나 가족에게 휘둘렀던 바로 그 권력이다. 그가 권력을 남용한 흔적은 없지만 가족이나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읽다 보면 언제나 그가 권력을 의식했고 즐겼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루이 15세의 연인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에게 차갑게 거절당했을 때 모차르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내게 입 맞추기를 거절한 그대는 누구십니까? 황후께서는 내게 입 맞추셨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사와도 같은, 티 한 점 없는 어린 모차르트의 이미지를 바로잡아줄 요긴한 대목이다.

 

(112~113)

언제나 그는 가족이라는 단위에 방점을 찍었다. 어린 모차르트를 데리고 연주 여행을 돌아다니던 시절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자기는 오로지 아들의 성공을 위해 헌신적으로 돈을 쏟아 부었으며, 그 결과 경제적으로 말할 수 없이 쪼들리게 되었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모차르트에게는 죄의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실은 레오폴트는 자식들 덕에 한 재산을 벌었으며 그 대부분을 여기저기에 빼돌렸고, 그러면서도 남들에게는 쉬지 않고 돈이 없다고 불평을 해댔던 것이다. 레오폴트는 심리전의 명수였다.

 

(134)

모차르트는 헨델 이래로 후원자라는 족쇄 대신에 자유를 선택한 첫 위대한 작곡가였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독주자를 함께 해방시켜 그들이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게 만든 첫 작곡가로 불려 마땅하다. K.271에 나오는 대화는 그 수준과 내용이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관악 파트(오보에와 호른)를 음악적 대화의 일선에 내세운 것도 마찬가지이다.(첫 악장 알레그로에서 오보에와 피아노가 나누는 대화는 이런 매력적인 자리바꿈의 첫 시도이다.) 이때부터 그는 협주곡에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관악 밴드에게 이중의 역할을 주었다. 그 하나는 오케스트라라는 팔레트 위에서 색조를 혼합하는 마법의 중개자 역할이고, 또 하나는 독주자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조정자 역할이다. 다수에 둘러싸인 독주자를 아우르고 각 파트를 하나의 위대한 전체로 연합해나간 것이 모차르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이다.

 

(151~152)

그러나 여기에도 모차르트 특유의 초연함이 있었다. 그는 레오폴트에게 이렇게 전했다.

그녀는 집안 살림을 모두 책임지고 있지만 그들의 태도로만 판단한다면 아버지는 그녀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 사랑하는 아버지, 제가 그 가정에서 직접 목격한 것만 묘사한다 해도 편지지를 여러 장 채울 수 있습니다. 그녀는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못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의 작고 까만 두 눈과 사랑스러운 용모에는 순순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녀는 위트가 없지만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자신의 역할을 해나가기에 충분한 상식을 갖췄습니다. 사치와는 거리가 멀고요, 옷차림도 대개는 초라해요. 그녀의 어머니가, 없는 살림에 다른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그녀는 뒷전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그녀는 살림살이를 터득했고 아주 친절한 마음을 지녔습니다. 저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는 온 영혼으로 저를 사랑해요. 제가 이 이상의 아내를 바랄 수 있을까요?”

 

(169)

이 헌정의 편지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한 가지 특징은 모차르트의 힘든 고생에 대한 언급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많은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그 어떤 일에도 힘들여 고생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저 음악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고 여겼다. 마치 모차르트는 하느님의 물길을 열어준 도랑이나 도구적인 존재였다는 듯이(언제나 악전고투하며 창작에 임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베토벤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했지만 비범하게 조직적인 두뇌의 소유자이기도 했으며, 따라서 사실상 모든 작곡 행위가 머릿속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이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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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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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과 올해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헌법에 대해서 관심이 높고, 헌법에 대해 공부하려는 사람이 많았던 적이 우리나라에 역사에 있었을까 싶구나.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또 하나의 큰 획을 그었던 촛불혁명. 그리고 9년간의 암흑을 거둬내서, 민주정부 3기를 열게 된 2017년은 역사에 남을 한 해인 것 같구나. 많은 진보 인사들이 정권 교체를 위해 노력을 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지금은 민정수석이 된 조국 서울대 교수란다. 이름부터 애국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이름, 조국. 그는 이름 때문에 한번 들으면 기억에 남게 되고, 그의 얼굴을 보면, 잘 생긴 외모 때문에 한번 더 기억을 하게 된단다. 학창시절에는 이름 때문에 학기초 가장 먼저 선생님한테 호명과 질문을 받게 되었고, 질문에 답변을 하기 위해 공부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하더구나.

그의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가 참 많겠지만, 아빠는 예전에 들은 팟캐스트에서 김용민이 이야기한 것이 가장 재미있어 아직도 기억에 남는구나. <나는 꼼수다>로 유명한 김용민이 쓴 책 중에 <조국 현상을 말한다>라는 책이 있어. 2012년 대선 전에 나온 책인데, 그 책의 부제는 ‘2012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였어.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김용민이 이야기하기를 2017년에 조국 서울대 교수가 집권을 하는 플랜을 그 나름대로 쓴 책이었어. 그런데 어떤 보수 단체에서 책 제목에 있는조국우리나라를 뜻하는 보통명사를 생각을 해서 책을 잔뜩 샀다는 이야기였어. 거기에 책 부제가 ‘2012 진보가 집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보니 보수 측에서는 얼마나 대견해 보였겠어. 책 내용은 전혀 딴판이었겠지만 말이야. 그 에피소드가 아직도 생각이 나는구나.

조국 서울대 교수., 아니 조국 민정수석. 이제 그는 청와대에서 민정 수석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고, 청와대 얼굴패권주의 핵심 멤버로 있단다. 페이스북이나 팟캐스트 등의 매체에서는 이제 자주 볼 수 없어 아쉽지만,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가 큰 결심을 하고 문재인 정부를 도와주고 있어서 든든하단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고,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에서 대통령이 되었듯이 조국 민정수석도 같은 길을 걷길 진심으로 바란단다.

 

1.

아빠는 우리나라 법에 대해 잘 모른단다. 그래서 예전에 헌법이나 법에 관한 책을 두어 권 읽은 적도 있어. 최근에도 헌법에 관해 괜찮은 책이 없나 두리번거리기도 했어. 그러다가 얼마 전에 이 책을 알게 되어 읽게 된 것이란다. 책 표지에 섹시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어떤 여인이 한 손에는 칼을 들고,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여인의 그림이 있단다. 정의의 여신 디케를 상징하는 그림일 텐데, 굳이 저런 섹시하게 그릴 것까지야정의의 여신 디케는 법의 공정성을 상징하고 있어. 아빠가 예전에 읽은 김욱의 <교양으로 읽는 법이야기>에서 알게 된 내용으로는 정의의 여신 디케의 여신상이 법원에 많이 있다고 하는구나. 어떤 나라에서는 공정한 심판을 위해서 디케의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약자에게 선처를 주기 위해서 안대를 풀었다고 하는구나. 결과를 보면 오히려 강자를 알아보기 위해 안대를 푼 것 같긴 하다만이 책 표지의 디케를 상징하는 여인도 눈을 또렷이 뜨고 있는 것을 보니 그런 의미겠구나 싶었단다

.

그런데 이 책은 법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책 제목의 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공부에 관한 이야기더구나. 조국 민정수석 본인은 지금까지 늘 공부를 해왔다고 하며,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 오늘날의 자신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공부를 많이 사람들 중에 수구꼴통이 되어 국민들 속을 긁는 사람도 많은데, 조국 민정수석은 국민들을 대변하면서 사이다 발언을 쏟아낸단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어. 서울대 등 소위 일류대를 나와서 수구꼴통이 된 이들은 학창시절에만 공부를 열심해 했고, 조국 민정수석은 학창시절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공부를 꾸준히 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구나.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편협한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넓은 지식을 가지는데 부족한 시스템이잖아. 그에 반해 학창 시절 이후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는, 세상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갖게 하는 공부이다 보니, 세상의 부조리도 보이고, 불의도 보이고 그것이 옳지 못하다가 생각하지 않을까 싶구나.

아빠도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아빠도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욕구가 커서,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그러나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너희들과 놀다 보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잖아. 거기에 머리는 안 받쳐주지, 인내력은 부족하지…. 마음만 있지, 공부는 제대로 하지 못한단다. 요즘은 공부보다 책 읽는 것에 만족하고 있어. 조국 민정수석은 약간은 식상하지만, 공부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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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부란 자신을 아는 길이다.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무엇에 들뜨고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아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공부란 이렇게 자신의 꿈과 갈등을 직시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문이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점에서 공부에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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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이 출간된 것은 2014년이야. 그 당시까지 조국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공부했고, 어떤 생각들을 해왔는지에 대해 적은 글이라고 볼 수 있어. 그가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외부 활동은 잠시 접고, 국민들과 소통을 해왔던 페이스북도 잠시 쉬고 있지만, 그 전에는 그는 페이스북이나 팟캐스트 등에도 출현하는 등 교수 외에 여러 사회 활동도 많이 했어. 그런 것들을 통해서도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삶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어.

16세에 서울대 법대를 입학하고, 26세에 당시 최연소 교수에 임용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는 그런 칭찬이 부끄러웠던지 같이 놀던 동네 친구들 따라 학교에 2년 입학을 해서 그렇게 된것 뿐이라고 하더구나. , 아빠는 뭐 그런 게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단지 그런 실력자가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다는 것이…. (^^)

그런 그가 그냥 공부만 잘했던 것도 아니었어. 불의의 정권에 저항도 할 줄 아는 젊은이였어. 젊은 시절에는 사노맹 활동으로 국보법 전과자 이력도 있었어. 그러면서 잘못된 시스템에는 저항하는 인간이 되라고 이야기했어. 그 자신이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본이니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오늘은 간단히 이렇게 이야기할게. 법에 대한 내용이 적게 나와서 조금 아쉬웠지만, 조국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될 수 있는 기회라서 좋았단다. 더욱 친근감이 가는 것 같아.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성공적인 문재인 정부의 큰 도움이 되어, 다음에도 정권을 다시 잡을 수 있으면 좋겠구나. 직접 잡으셔도 좋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녹색당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써, 소수 진보 정당도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도 좀 만들어주었으면 좋겠구나.

 



(8)
공부란 자신을 아는 길이다.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무엇에 들뜨고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아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공부란 이렇게 자신의 꿈과 갈등을 직시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문이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점에서 공부에는 끝이 없다.

(63)
진정한 ‘나’를 찾은 사람이 주체적 개인이 된다. 자신의 분야에 진정성을 가지고 꿈을 키워가는 열정은 우열을 나눌 수 없다. 주체적인 개인은 서로를 존중하며 연대한다. 주체적 개인의 연대는 진정한 ‘나’와 ‘나’의 어울림이다. 갖가지 색깔을 가진 개인이 어우러지는 무지개 같은 연대는 개인을 더욱 창조적으로 만들고 사회를 더욱 풍성하고도 다양하게 만든다.

(203)
변화를 일으키는 결정적 순간은 이성으로는 억지할 수 없는 강한 감성의 힘이 자신을 지배할 때다. 가슴속에서 울컥하는 그 무엇, 배꼽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는 그 무엇이 있어야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런 감정적 떨림 없이는 잘못을 인지하고도 행동하지 못한다. 지식 습득을 통해 머리로 깨닫는 것, 가능하다. 그로 인한 변화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지식이 가슴 떨림과 만나야 ‘또 하나의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해야 할 공부는 이런 것 아닐까? 찰리 채플린의 명작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연설에 나오는 명대사는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를 냉소적으로 만들었고, 우리의 영리함은 우리를 딱딱하고 불친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은 너무 많이 하지만 너무 적게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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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2017-10-22 18: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생 공부해야한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중간에 인용해주신 문구가 정말 와닿네요:)

bookholic 2017-10-22 23:24   좋아요 1 | URL
이유나님을 비롯하여 북플에서 만나는 알리디언들을 보면 다들 평생공부를 실천하는 분들 같아요..^^

아트 2017-10-22 23:45   좋아요 1 | URL
Bookholic님도요!!! 👍👏👏👏
 
춘추전국 이야기 1 -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1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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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요즘에는 책관련 SNS인 북플을 통해 새로운 책들을 아는 경우가 많아. 이번에 읽은춘추전국이야기 1”도 그렇게 알게 된 책이란다. 아빠가 학창시절에는 역사에 관심도 없고, 시험공부용으로만 공부를 하다 보니, 어렵게 느껴져서 싫어하는 과목이었어. 그런데 나중에 커서 책을 읽다 보니 역사만큼 재미있는 것도 드물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새로 알게 된 역사서이니 관심이 갈 만하겠지. 이 책은 제목만 봐도 중국 고대 역사 중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많은 사상가와 전술가를 배출했던 난세의 시절, 춘추전국시대. 그렇다 보니 옛날부터 그 시대를 다룬 많은 역사서들이 있단다.

지은이는 우리나라 사람으로 공원국이라는 분이란다.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나라의 특정 시대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것도 한두 권이 아니고 12권이나대단한 열정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춘추전국 이야기 시리즈는 12권으로 기획하고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인터넷 서점에서 확인해보니, 현재 10권까지 나왔고, 이번 달에 11권이 나올 예정이더구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벤치마킹을 했나 싶기도 하지만, 한 분야에 대해 이런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 같구나. 아빠도 앞으로 천천히 이 시리즈도 읽어볼까 한다.

중국 역사에 관련된 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고우영 화백의 만화십팔사략이란다. 아빠 중국 역사를 다룬 교양서나 소설도 읽었지만,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고우영 화백의십팔사략이었어. 아빠가 이번에 <춘추전국 이야기 1>을 읽고, 고우영 화백의십팔사략을 읽고 쓴 리뷰를 찾아 읽어봤어. 그리고 좌절을 느낀 것이 하나 있었단다. 이번에 읽은 <춘추전국 이야기 1>에서 처음 접한 내용인줄 알았는데, 이미 고우영 화백의십팔사략을 읽고 쓴 리뷰에 그 내용이 적혀있는 거야. , 아빠의 이 기억력…. 그러면서 그러니까 리뷰를 써두지.. 위안을 삼기도 했단다.

 

1.

춘추전국 이야기 1권의 부제목은최초의 경제학자 관중이란다. 관중이라고 하면, 아빠는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에서 나온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만 알고 있었는데, 1권의 부제목으로 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싶었단다. 관중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고,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를 한다고 하니  춘추전국시대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를 알아보자꾸나. 기원전 770년 경 주나라가 융족에 밀려 동쪽 낙양으로 옮겨온 시대부터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까지 약 550년의 기간을 춘추전국시대라고 해. 춘추 시대 초기에는 수백개의 국가가 있었고, 전국 시대 말기에는 일곱 개 국가가 있었다가 결국 진나라로 통일이 된 것이 이 시기에 있었던 일이란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전쟁과 사건, 사고들이 있었고,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이 시설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출현하게 되었어..

 

2.

, 그러면 춘추 시대 이전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었을까? 아빠가 기억하기로, 중국의 역사는 하, , 주로 기억하고 있단다. 하나라는 우임금이라는 사람이 세웠고, 걸왕 시절이 온갖 포악한 짓을 해서 민심을 잃고, 상나라의 성왕이 하나라를 멸망시켰단다. ? 아빠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하나라 다음은 은나라인데이상하네하나라와 은나라 사이에 상나라가 있었나? 생각이 살짝 들었다가 읽어보니 이건 완전히 은나라 이야기더라구. 은나라를 상나라라고도 부르나? 싶어 확인해 보니 맞더구나. 나중에 상나라가(은허)’을 수도로 해서 은나라라고도 불렀고, 다른 나라에서도 상나라를 은나라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학계에서 부르는 정확한 명칭은 상나라가 맞다고 하는구나.

상나라는 최초의 국가체제를 갖춘 나라였대. 왕을 중심으로 다층적 통치체제를 가지게 되었고, 왕을 세습하기 시작했대. 왕은 이념적 구심점이 되어 제사권의 독점을 가지고 있었고, 상나라 때부터는 문자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국가에서 주관하는 거대한 동원 체제도 있었고, 청동기 기반의 물질문명이 시작되어 무기와 제기를 다량 만들어졌대. 이 융성한 나라는 약 500년간 이어졌다고 하니, 상나라 때, 본격적인 고대 국가의 틀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말이 빈말은 아니란 것을 알겠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융성했던 나라가 왜 망했을까? ,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 상나라는 주나라의 무왕에 의해 멸망했는데, 그 이유는 상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이 폭군이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달기라는 여인에 빠져 국정은 뒷전이고, 충신을 죽이고 가두는 악행을 계속했대. 상나라 충신이었던 서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감옥에 갇히고 말았어. 그런데 서백이라는 사람됨을 알아 본 강태공은 자신의 돈으로 그를 석방시켰어. 그를 석방시키고 서백은 서쪽에서 세력을 키우고 강태공이 보좌했어. 강에서 빈 낚싯대를 들고 세월을 낚는다는 유명한 고사의 강태공 일화는 무척 유명한 일화로 너희들도 좀더 크면 알게 될 것 같구나.

아무튼 그렇게 세월만 낚던 강태공은 서백과 함께 세력을 키웠던 것인데, 서백(주 문왕)이라는 사람이 그만 일찍 죽고 말았단다. 그래서 그의 아들이 세력을 키워서 상나라를 공격하여 상을 멸망시켰단다. 그리고 그가 세운 나라가 바로 주나라고 그 사람이 주 무왕이란다. 주나라는 상나라와 다른 점은 무엇이냐? 가장 큰 특징은 그 전에는 신을 중심으로 한 나라였는데, 주나라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갖다 보니 진정한 정치가 시작되었다고 하는구나. 인간혁명과 정치혁명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지. 그 전에는 점괘, 신의 뜻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나, 주나라에서는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이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풍습도 많이 바뀌었지. 상나라에서는 사람을 제물로 제사를 지내고, 순장이 일반적인 풍습이었지만, 주나라에 와서는 사람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거의 없어지고, 순장은 크게 줄었다고 하는구나.. 제도, 법률, 관념이 이 때 만들어졌다는 하는데, 이런 것으로 정치혁명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는 거야.

상나라에서는 힘의 의한 약탈 경제, 호전적 기질로 나라를 다스렸고, 국제정치란 개념이 없었지만, 주나라에서는 국제정치도 만들어졌다고 하는구나. 주나라는 국토 운영 전략도 그 전과는 달랐어. 왕의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봉건제로 통치했어. 지방의 권력을 제후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말하는 거야. 다만, 공의 크고 작음에 따라 제후의 등급을 공, , , , 남 등으로 차등을 두었단다.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던 강태공도 제나라라는 제후국의 제후가 되었어. 주나라는 무왕이 세우긴 했는데, 공헌도로 봐서는 무왕의 희과 강태공의 강의 연합체라고 볼 수 있어. 처음에는 관계가 좋지만, 언제든 관계가 좋아지지 않으면 적대관계가 될 수 있다고 무왕은 생각했어. 그래서 위협이 될 수 있는 강성의 제후국은 동남쪽 멀리 주었단다. 그리고 친지로 이루어진 제후국을 주변에 두었단다. 그렇게 각 제후국의 위치를 힘의 균형에 맞게 배치를 하였고, 각 제후국은 서로 견제하도록 했어.

주나라를 세운 무왕이 죽고 어린 성왕이 즉위를 했어. 그러자, 무왕의 동생 주공이 권력을 행사를 하게 되었고, 이에 불만을 가진 무왕의 다른 동생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반란을 주공이 진압하였어., 이제 막 나라의 틀을 마련하였지만, 권력의 유혹은 목숨을 내놓을 만큼 달콤한 것인가 보구나. 주나라는 이후 번성하다가 무능한 왕들이 출현하면서, 제후국의 세력이 커지고, 제후국의 독립성을 점점 띠게 되었고, 유왕에 와서 극에 달했어. 포사라는 미인에 빠진 유왕은 나라 운영은 뒷전이었고, 융족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피신을 가야 했어. 이때 동쪽의 낙읍으로 천도를 했고, 역사가들은 이때 서쪽의 서주는 망하고 동쪽의 동주가 시작되었다고 했어.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때부터 본격적인 춘추시대가 시작된 것이란다.

 

3.

종주국이었던 주나라가 맥없이 무너지자, 주변이 있던 제후국들이이것 봐라, 내가 종주국이 되어볼까?’하는 마음들이 생긴 거지. 그러면서 여러 제후국들의 야욕의 발톱을 내세우기 시작했고, 초기 춘추 시대를 이끌게 되는 4개의 강대국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우연찮게 동서남북의 네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 나갔대. 북쪽의 진()나라, 남쪽의 초나라, 서쪽의 진()나라, 동쪽의 제나라가 그들이었어. 남방의 초나라의 경우, 무왕이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고 주변 약국을 침략하면서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서방의 진()은 처음에는 종주국인 주나라를 도와주다가 주나라가 동으로 쫓겨간 이후에는 융족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고, 융족과의 전쟁에서 이기면서 옛 서주의 옛땅을 대부분 차지하게 되었단다. 북방의 태행산맥의 진()은 무공때 이르러 그 세력을 키웠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이제 동방의 제나라를 살펴보자꾸나. 4개 나라 중에서도 특히 제나라가 초기 패권을 잡았던 나라였단다. 주나라의 힘이 약해져 종주국은 명분으로만 남고, 제나라가 초기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제환공과 관중 때문이었던 것이야. 그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자꾸나.

 

4.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제나라의 시조는 강태공이었단다. 제나라는 태산과 제수, 그리고 발해만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강태공의 고손자 애공이 모략으로 주나라 왕에게 죽음을 당한 이후 혼란의 시기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장공과 희공에 의해 안정을 되찾게 되었어. 그런데 그것도 잠시 희공의 첫째 아들 양공이 패륜아에 무능아였어. 관중과 포숙은 이때 제나라 신하였는데, 국내에 머물고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관중은 희공의 둘째 아들 규를 데리고 국외로 피신해 있었고, 포숙은 희공의 막내아들 소백을 데리고 국외로 피신해 있었어. 폭정을 일삼는 양공은 오래가지 못하고, 사촌 무지의 반란으로 죽고 말았어. 무지가 정권을 잡았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못했단다. 이제 둘째 아들 규 또는 막내 아들 소백 중에서 먼저 제나라에 도착하는 이가 정권을 잡는 형세였어.

관중은 둘째 아들 규를으로 세우려고 소백에 오는 길목에서 그를 죽으려고 화살을 쏘기도 했어. 소백이 허리 가죽띠에 화살을 맞고 죽은 척을 했다가 소백이 먼저 제나라에 도착을 해서 권력을 잡게 되었어. 관중은 이에 두번째 소백을 암살하려고 시도했으나 또 실패를 했대. 소백은 관중을 죽이려고 했으나, 소백을 보좌하고 있었던 포숙이 말렸고, 오히려 관중을 중용해야 한다고 간청했어. 관중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라면서포숙의 이야기를 들은 소백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대단한 배포구나. 포숙이 숨어 있는 관중을 데리고 와서 소백의 신하가 되었단다. 소백이 바로 제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제환공이었어. 그는 관중의 이후 관중의 의견에 존중하고 잘 따랐단다. 그렇다고 제환공이 인성이 썩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 제환공의 능력은 능력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썼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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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군주와 신하의 재능을 나눈다. 신하는 군주의 재능을 가질 수가 없으며, 또 군주는 신하의 재능을 다 가질 필요가 없다. 군주는 신하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으면 그만이다. 그 나머지 일들은 신하들이 한다. 군주는 신하들이 최선을 다해서 달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큰 인재와 작은 인재를 구분할 능력이 있으면 어떤 조직이든 다스릴 수 있다. 술을 좋아해도 술의 폐해를 알고 있으면 인재를 쓸 수 있다. 다혈질이라도 남이 제어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자신은 허명을 쫓더라도 실속 있는 사람을 옆에 구면 된다. 제나라 환공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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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의 정책은 상당히 진보적이었어. 그는 자신이나 권력의 이익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였단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도에 대해서도 유지하면서도, 효율성을 위해 신분에 따라 사는 곳을 달리하자고 했어. 그렇게 하는 것이 각 신분의 노하우를 공유함으로써 효율적이고,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했어. 그리고 국가의 부를 늘리기 위한 경제정책도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단다. 나라의 부를 늘리기 위해서는 백성의 부를 늘리면 된다고 했어. 백성들의 부가 늘어나면 굳이 나라의 부를 늘릴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노동력을 빼앗지 말라고 했어. 그의 이러한 사상은 후세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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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고대 전제정치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대대손손 부귀를 누리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성을 쌓아야 하고, 궁정을 크게 지어 권위를 높이고, 공실의 창고에 재물을 채워넣어야 한다. 그러나 관중은 말한다. 열심히 성을 쌓고 권위를 높이고 공실의 창고를 채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으니, 바로 백성들이 열심히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생산한 부가 어디로 가겠는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그 나라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러면 나라가 부유해진다. 나라의 사람들이 만족하면 공실은 안정된다. 굳이 농민들의 노동력을 과도하게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관중은 백성들의 시간을 뺏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누군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두렵다고? 그러면 스스로 오래된 사람들을 존경하면 된다. 모든 사람이 그런 기풍 속에서 산다면, 함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설 땅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관중이 공실을 안정시키는 방법이었다. 관중의 방법은 향후 2천 년이 훨씬 넘는 동안 여러 가지 변주를 울리며 중국사에서 위세를 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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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경우에도 책임정치를 중요시했어. 신분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등용했어. 실력 위주를 사람을 뽑다 보니, 이웃 주변국에서도 인재들이 몰려들었단다. 상업은 어땠을까? 국가는 상업의 보호자이면서, 동시에 커다란 상인의 역할을 하고 있음으로 깨달았어. 국가는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복지 국가의 행보이기도 한 것이었어. 정치가로써 관중은 범에 의한 정치를 중요시하였고, 그로 인해 기본에 충실했고,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배신자는 용납하지 않았어. 관중은 제나라 전반적인 정책에 모두 관여를 하였고, 제환공은 관중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것이 잘 실천될 수 있도록 하였단다. 그렇게 제환공과 관중의 환상조합은 제나라를 초기 춘추 시대의 패권을 잡을 수 있게 한 것이었어.

하지만 세월은 영원하지 않는 것. 관중이 죽으면서 제환공에게 습붕을 중용하라고 유언을 남겼어. 제환공은 관중의 말따라 습붕을 중용했지만, 습붕 역시 금방 죽고 말았단다. 이후 제나라는 아부꾼이 득세하고 반란이 이어지면서 제환공이 감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단다. 관중이 자신의 사후를 걱정하면서, 습붕이라는 인재까지 지목을 했으나, 그가 그렇게 비명을 달리할 줄을 미처 몰랐으리라. 관중의 영향력이 사라진 제나라, 제환공마저 감금상태에 빠지는 혼란의 시기그러니 관중의 얼마나 대단했던 사람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것 같구나. 그 반란 속에서 제환공마저 죽고 말았고, 짧았던 제나라의 패권은 진()나라에 넘겨주어야 했단다.

 

5.

앞서 짧게 춘추시대 초기 4개의 강국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잖아. 좀더 이야기를 해볼게. 제나라가 흥망성쇠를 하는 시절에초나라는 서서히 북진을 계속해왔고, 이것을 제나라에서는 부담스러워했어. 제나라는 초나라의 북진을 대비하기 위해서, 경제력으로 만들어진 힘을 가지고 주변국을 불러놓고 회맹을 맺었어. 그러면서 제나라는 자신을 패자로 칭했고, 주변국을 보호해주겠다면서 소위 보안관 역할을 했어. 그러면서 나라 간의 행동 기준을 명확히 했단다. 그러면서 상황에 따라서 제나라가 개입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놓았어. 이런 제나라 주도의 동맹은 효과를 보았어. 초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정나라가 있었는데, 정나라의 입장에서는 제나라와 동맹을 맺기는 했지만, 초나라의 공격에 맞설 수만은 없었어. 제나라와 초나라가 정나라를 두고 전면 배치했다가 대화로 전투를 막기도 했어. 하지만 그 초나라가 다시 정나라를 치면서 정나라의 입장은 애매해졌고, 동요하게 되었단다.

북방의 진()나라도 야금야금 주변국을 치면서 세력을 확장했어. 제나라의 연맹국에 융적이 침입했을 때 개입해서 도와주기도 했어. 그러면서 더욱 국제적인 입지를 키워나갔단다. 서방의 진()나라에 목공은 인력 부족을 중원에서 충당한다는 이유로 중원에 진출을 했어. 목공에게는 백리해라는 전략가가 있었는데, 우나라의 천한 신분의 사람이었는데, ()나라로 팔려왔다가 진 목공에게 등용이 된 사람이야. 제나라에는 제환공과 관중이 있던 것처럼 진()나라에는 진목공과 백리해가 있어 부흥을 이끌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고 하는구나.

여기까지 대략적인 1권의 이야기야… 2권의 책소개를 잠시 봤는데, 부제가영웅의 탄생으로, 본격적인 춘추시대 여러 나라의 세력 다툼에서 출현하는, 소위 영웅으로 부르는 이들의 활약상이 그려지는 것 같더구나. 기회가 되면 2권도 읽고 이야기를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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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래서 나는 요즘 대학생들의 편에서 박정희를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존경한다는 말을 들으면 저 우체국 창구를 뛰어넘을 때와 같은 충동을 다시 느낀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라면, 한때의 압제와 불의는 세월의 강 저편으로 물러나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으니, 그렇게 어떻게 이루어졌다는 경제적 성과를 두 손으로 거머쥐기만 하면 그만일 것이다. 과거는 바로 그렇게 착취당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2009)

 

(21)

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 도시민들은 늘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사람들이 좋은 소금을 산답시고, 우리 고향 마을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은 소금을 고르게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같은 이치다. 살아 있는 삶, 다시 말해서 죽음이 함께 깃들어 있는 삶을 고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좋은 식품을 고르기 위해서도, 사람 사는 동네에 이른바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59)

모든 시간이 같은 시간이 아니며, 모든 땅이 같은 땅은 아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같은 길이로 쪼개서 달력을 만들지만 어떤 날은 다른 날과 다르고 어떤 시간은 다른 시간과 다르다. 어떤 독재 권력이 추석을 양력 9 18일로 바꾸고 그날에 차례를 지내라고 강압할 수는 있어도, 이 나라 사람들을 남북으로 이동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추석인 날을 추석 아닌 날과 다르게 하여, 그 많은 사람들을 제 고향으로 달려가게 하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이 나라의 시간 속에 쌓아놓은 기억이다. 땅이라고 다를까. 어느 부자가 어느 언덕에 아무리 호화로운 집을 지어놓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루이틀도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 내 고개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 비옥한 땅에서건 척박한 땅에서건 사람들이 살고, 꿈꾸고, 고뇌하는 가운데 조금 특별한 일을 실천하려 했던 기억이 한 땅을 다른 땅과 다르게 하고, 내 몸을 나도 모르게 움직이게 한다. 땅이 그 기억을 간직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 사람이 이 땅에서 반만년을 살았다 한들, 한 사람이 이 땅에서 백년을 산다 한들, 단 한순간도 살지 않은 것과 같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78)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여 한반도와 만주에 걸치는 거대한 나라를 건설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나라라고 볼 수 있을까. 풍속과 문화가 지금과 같이 않을 것이며, 따라서 언어도 다를 것이다. 내가 좋아했던 소월의 시는 없을 것이다. 아니 사람살이 형편이 달라지고 서로 사귀는 범위가 달라졌을 것이니, 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소월이라는 재능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고구려의 힘으로 이 땅에 지금보다 더 부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이룩되어, 거기서 수많은 다른 재능이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나라가 나라일 수는 없는 것이 확실했다. 고구려가 건설했을 큰 나라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이기를 바란다는 생각과 무엇이 다를까.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이 나라의 역사가 어떤 역사이건 이 역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에도 할 수 있었다.

 

(108)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다라는 말에 대해서도 필경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우리 삶의 환경이고, 우리가 저마다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고 저와 이웃의 행복을 가꾸어가는 터전이다. 물론 우리가 완전한 민주주의를 누리고 사는 것은 아니다. 민주적 정의가 올바르게 실현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자신이 정말로 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자부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살아온 역사도 우리의 민주적 의지를 제약하고, 여러 가지 물질적 조건도 우리를 가로막는다. 우리 개개인의 민주적 자질이 충분히 성숙한 것도 아니며,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인격이 완성된 것도 아니다. 이 점은 우리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다. 어디에서건 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된 적은 없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저마다 제 마음대로 행동해도 옳은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의 조건이 이러저러하니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까지만 실현하자는 식으로 민주주의에 선을 긋는 것은 현실의 압제를 인정하자는 것이며,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는 말에는 우리가 어떤 난관에 부딪히고 어떤 나쁜 조건에 처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이상에 가장 가깝게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고 노력한다는 뜻이 포함될뿐만 아니라, 그 뜻이 거기 들어 있는 다른 모든 뜻보다 앞선다. 민주주의에 다른 수식어를 붙일 수 없는 이유가 그와 같다.

 

(176)

그런데 우리는 그 실패의 순간마다 변화한다. 사람들마다 하나씩 안고 있는 이 사소한 당신의 사정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당신의 쓰고 있는 글에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자신의 사소한 경험을 이 세상에 알려야 할 중요한 지식으로 여긴다는 것이며, 자신의 사소한 변화를 세상에 대한 자신의 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275)

사실,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자각되지 않는 말들이고 진실과 부합되지 않는 말들이고 인습적인 말들이지, 반드시 어려운 말이 아니다. 어려운 말은 쉬워질 수 있지만, 인습적인 말은 더 인습적이 될 뿐이다. 진실은 어렵게 표현될 수도 있고 쉽게 표현될 수도 있다. 진실하지 않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진실이야말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속한다. 장 주네는 자신이 배반자라고 여겨질 때 마지막 남아 있는 수단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도 아마 이와 관련될 것이다.

 

(281)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식구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애들은 그 시간에 학교 성적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소설이나 만화를 보기도 할 것이며, 내가 알고는 제지하지 않을 수 없는 난잡한 비디오에 빠져 있기도 할 것이다. 어차피 보게 될 것이라면 마음 편하게 보는 편이 낫다고 본다. 아내는 그런 시간에 노래방에 갈 수도 있고, 옛날 남자친구를 만나 내 흉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늘 되풀이되는 생활에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르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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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부 1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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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 인터넷 서점 신간 코너에 소개된 책이 있었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그리고 그 책이 완간이라고 했어. 책 표지는 예쁜 주인공이 만화책에서 보던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어. 당연히 만화책인줄 알았어. 예쁜 주인공 그림으로 눈이 가기도 했지만, 책제목에 때문에 무슨 책인가 클릭해 보았단다. 고서당이라고 해서 책에 관한 만화책인가 싶었어. 당연히 만화책인줄 알았는데, 책소개를 보니 그냥 소설이었어. 비블리아 고서당이라는 헌책방에서 헌책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이야기들책을 좀 읽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아빠는 책을 좀 읽는 부류에 낀다고 할 수 없지만, 책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책에 관한 소설에는 눈이 휙 돌아간단다. 그리고 예쁜 여자의 그림도 한몫을 했다고 할 수밖에역시 책도 외모가 중요해..

 

1.

주인공 고우라 다이스케. 나이 스물셋. , 좋은 나이구나. 그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엄마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어. 외할머니가 젊은 시절에 책을 많이 좋아하셨고, 그때 모은 책들로 꾸며진 할머니의 서재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지. 다이스케가 다섯 살 때 할머니 서재에 들어가서 책을 만졌다가 할머니에게 크게 혼나고 손찌검까지 당했으니 말이야. 그게 할머니한테 맞은 유일한 '사건'이었어. 이 사건 이후 트라우마 때문인지 다이스케는 책만 보면 거부 반응을 일으켰어. 책을 읽고 싶지만, 거부반응으로 책을 읽을 수가 없었어. 그러다 보니, 학창시절 공부에도 영향을 주어 공부는 잘 못하고, 다행히 큰 덩치로 유도를 배워서 유도 대학에 진학했어. 그런데 불행히 지금은 백수야.

1년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그 옛날 때린 것에 대해 것에 미안하다고 사과하셨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이 지나고 엄마는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자고 하셨어... 할머니의 유품은 할머니의 책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책들에는 다이스케가 다섯 살 때 그 '사건'의 책 소세키 전집 중 여덟 번째 책인 <그 후>라는 책도 있었어. 나쓰메 소세키는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일본에서 활동한 유명한 작가로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대부분의 책들이 번역 출간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야. <그 후>라는 책의 앞면지에는 다나카 오시오라는 사람의 이름과 소세키의 사인이 있었어. 만약 소세키의 사인이 진짜라면 이 책은 상당히 고가일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 소세키의 전집에 영수증이 있었는데,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구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비블리아 고서당. 다이스케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헌책방인데, 고등학교 때 우연히 거기서 일하는 예쁜 아가씨를 한번 본 기억이 떠올랐어. 그 이후에 몇 번 더 기웃거려봤지만, 그 예쁜 아가씨는 없었고, 주인 아저씨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 아무튼 그 소세키 전집과 소세키의 사인본 감정을 위해 다이스케는 비블리아 고서당에 갔어. 그곳에 어떤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고서당 주인은 병원에 입원에 있다는 거야. 다음에 오겠다고 이야기할 틈도 없이 그 여자아이는 병원에 전화를 했고, 그리로 가보면 된다고 했어. 소세키 전집을 다시 들고 병원에 갔어. 그런데 그 병실 침대에 책들을 옆에 쌓아두고 누워있는 이는 다름 아닌 고등학교 때 봤던 그 예쁜 아가씨였던 거야...

그 아가씨의 이름은 시노카와 시오리코...  고서당 주인이었어. 그 전에 주인인 그녀의 아버지였는데, 작년에 돌아가셨다는 거야... 시오리코는 책방 주인인데, 서점 운영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을 할 때 힘이 없고, 작은 목소리로 소심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다이스케가 소세키 전집과 사인 때문에 찾아왔다고 하니... , 책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니 시오리코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열성적으로 이야기했어. 그리고, 다이스케가 가지고 온 책에 있는 소세키의 사인은 소세키가 직접 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어. 소세키는 1916년 삶을 마감했고, 이 책은 1956년에 나온 책이니까 말이야. 다이스케가 가지고 온 소세키 전집은 이와나미쇼텐의 신서판이라는 것도 덧붙여 이야기해주었어. 그야말로 줄줄.. 모르는 것이 없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다고 했어. 소세키 전집 34권 중 <그 후>만 장서인이 찍혀 있지 않고, 소세키 사인이 있다는 거야. 그것은 혹시 <그 후>라는 책을 남들에게 알아채지 못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 같다고 했어. 사인도 소세키와 함께 적혀 있는 다나카 요시오라는 사람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적은 것. 그러니까 할머니가 <그 후>라는 책을 다카가 요시오라는 사람한테서 선물을 받았고, 그 책 하나만 있으면 눈에 띠니까 소세키 전집을 사서 그 사이에 꽂아두었다는 것... 아무도 모르던 할머니의 로맨스의 주인공의 이름이 다나카 요시오. 이것이 시오리코의 추측이었어.

그런 사연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니 팔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책을 들고 집으로 왔어. 그런데 다이스케는 엄마한테 혼이 났어. 감정 비용을 주지 않고 왔다고... 다시 감사의 선물을 주고 오라고 호통을 치셨지... 다이스케 입장에서는 땡큐지.. 예쁜 시오리코 씨를 다시 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다음날 병원 가는 길에 선물사려고 빵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오랜만에 이모를 만났어. 이모가 이야기 중에 엄마와 다이스케만 집안에서 유별나게 키가 크다고 이야기했고, 할머니가 진정으로 좋아했던 사람은 바로 엄마와 다이스케였다고 이야기했어.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넘겨 버릴 이야기였는데, 어제 할머니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뒤라서.... 혹시 엄마가 할머니의 비밀 사랑, 그것도 진정한 사랑의 씨앗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더욱이 병원에서 다시 만난 시오리코가 다이스케한테 이름을 혹시 할머니가 지어주신 거 아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어. 그게 맞거든. 다이스케라는 이름, 할머니가 지어주신 거였어. 다이스케는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소설 <그 후>의 주인공 이름이 다이스케였대. 그리고 소설 <그 후> 내용도 할머니의 사랑과 비슷한 사랑이야기가 나오고.... .. 할머니의 숨겨진 로맨스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 비록 당시에 주변사람들에게 걸렸다면 불륜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했겠지만, 지나고 보니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처럼 느껴지는구나.

시오리코 씨는 다이스케에게 소심하게 제안을 하나 했어. 자신이 병원에 입원한 것은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인데 한동안 고서당 일을 못하고, 지금은 동생(고서당을 지키고 있던 여고생)이 도와주는데 학생이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해 볼 생각이 없냐고... 어려운 것은 아니고, 고서당에 감정이나 헌책이 들어오면 그걸 병원에 가지고 오면 되는 일이라고 했어. 다이스케는 당연히 오케이였지... 뭐 망설일 게 있었니.. 하하.

...

아빠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 그 유명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은 구입해서 집에 있긴 하지... 그보다 이젠 <그 후>라는 소설을 읽고 싶어지더구나.

 

2.

다이스케는 이제 비블리아 고서당으로 출근을 했어. 어느날 비블리아 고서당의 단골손님인 시다가 찾아와 문고를 하나 맡기고 갔어. 다이스케는 시오리코에게 그 책을 들고 찾아갔는데, 시오리코는 그 문고판 책을 엄청 좋아했단다. 그 이유는 그 책이 희귀본이었거든... 그 책을 가지고 온 시다라는 사람은 일명 책등빼기라고 부르는 사람이었어. 책등빼기는 고서점에서 희귀본을 알아보고 싸게 구입해서 비싸게 되파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시다는 그 문고판을 주면서, 한가지 부탁을 했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고야마 기요시라는 작가의 <이삭줍기, 성 안데르센> 문고판 초판(1955)을 잃어버렸는데... 그 책을 찾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었어.

며칠 전 어떤 소녀와 부딪쳤는데, 거기에 있는 책이 사라졌다는 거야. 그때 시다는 가사이라는 다른 책등빼기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가사이라는 사람이 소녀를 보았다고 했어. 그리고 소녀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보았는데, 보냉제와 쇼핑백을 들고 있었대. 또 그 소녀는 어떤 남자학생을 만나려고 하는 것 같았대. 다이스케는 다시 그곳에 단서가 있을까 싶어서 갔다가 가사이가 이야기한 외모를 가진 남자학생을 봐서 혹시나 하고 그날 일을 물어봤어. 그 남학생이 맞았어. 그리고 소녀는 그 남학생에게 선물을 주려고 했었고... 소녀의 이름은 고스가 나오였고, 그 남학생이 고스가의 이메일 주소도 알려 주었어. 고스가에게 연락을 했더니, 고스가는 병원으로 찾아왔어.

시오리코의 추리... 고스가가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학생에게 선물을 주려고 있는데, 자전거와 부딪히면서 선물 포장이 떨어지고... 그 와중에 문고판 책의 가름끈이 보여서, 그 가름끈으로 리본을 만들려고 책을 훔쳤다고 했어.. 그래서 그 가름끈으로 포장을 해서 선물을 주었는데, 그 남학생은 그 선물을 받지 않았어.. 그 남학생이 좀 재수없는 캐릭터였거든... 그래서 집에 돌아왔는데, 우연히 그 책을 읽어보니, <이삭줍기>라는 소설에 자신과 같은 이야기였던 거지. 그래서 지금은 그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고

고스가는 너무 정확한 추리에 깜짝 놀랬고…. 그 책을 다 읽고 돌려주어도 되냐고 물어봤어. 물론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과 함께.... 시다에게 이런 사연을 이야기해주었고, 고스가가 직접 시다에게 사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시다가 사과를 받아주었단다. 이런 극적인 일들이 실제에서 벌어지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책에 관한 작고 큰 에피소드들이 담겨져 있는 경우는 많이 있을 거야. 아빠가 읽은 모든 책들에 그런 에피소드들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빠도 많은 책들이 아빠의 삶과 경험과 추억과 엮여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단다.

 

3.

세번째 이야기는 비노그라도프와 쿠즈민이 쓴 <논리학 입문>이라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란다. 어느날 양복을 빼입은 사카구치라는 사람이 책감정을 의뢰하기 위해 왔어. 그 책이 바로 비노그라도프와 쿠즈민이 쓴 <논리학 입문>라는 책이야. 그런데 몇 시간 뒤에 이상하게도 사카구치의 아내 시노부가 전화해서 남편이 다녀갔는지 물어봤어. 다이스케는 그 책을 들고 시오리코를 찾아갔지. 그들은 그 책이 감방 안에서 보던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아주 오래 전이긴 하지만... 사카구치 나이를 봤을 때 상당히 오래 전 사카구치가 젊었을 때의 일인 것 같았어. 아마 사카구치 씨가 감방에 갔던 사실을 아내한테 숨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들통이 날까 싶어 그 책을 팔려고 했던 것 같아. 그런데 그 병실에 사카구치의 아내 시노부가 찾아와서 책을 돌려달라고 했어. 다이스케와 시오리코는 당황을 했지... 시노부는 딱 봐서 성격이 쿨한 중년의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

그런데 곧이어 사카구치도 병실로 방문했어. 그들은 고서당에 차례로 들렀다가 다이스케가 병실에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거야. 다시 시오리코는 그들이 숨기고 있던 사연을 추리해냈어. 선글라스를 쓰고 온 사카구치...  사실 눈에 병이 있었어. 몇몇 행동을 보고, 시오리코는 사카구치가 눈에 병이 생길 걸 알게 되었고, 그걸 아내에게도 숨기려고 했다는 사실을 눈치챘어. 그리고 자신이 전과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내가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소심함에 그 <논리학 입문>이라는 책을 더 이상 시력을 잃기 전에 처분하려고 했던 거야. 전과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시오리코는 사카구치 씨의 눈에 관한 이야기만 했어. 아내는 괜찮다면서 끝까지 같이 하겠다고 이야기했어. 그러자 사카구치는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젊은 시절 잘못을 저질러 감방에 갔다왔다는 사실도 고백했어. 그러자 아내 시노부는 이미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괜찮다고 이야기했어. , 약간은 식상하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장면이구나... 서로 이해해주는 부부의 마음이란.... 아빠가 무척 찔리는 장면이구나. 사카구치와 시노부는 다정하게,, <논리학 입문>이라는 책도 돌려받고 돌아갔단다. 그들이 가자 시오리코가 이야기하기를, 시노부가 남편이 전과범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어. 남편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즉흥적으로 한 선의의 거짓말 말이야....

...

시오리코가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것은 사실 누군가 고의로 밀어서 다친 것이라고 했어. 그 범인을 찾고 있는데, 다이스케에게 도와달라고 정식으로 요청을 했단다. 다이스케는 시오리코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에 좋다고 했어.

 

4.

시오리코가 가장 아끼던 책 중에 하나를 판매대에 내놓았어.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내려온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 초판 '언컷'. 그것도 저자의 사인이 있는 것... '언컷'본은 처음 책을 찍어서 페이지 별로 잘라야 하는데 그것까지 자르지 않은 것을 이야기한대. 그러니 얼마나 그 수가 적겠어. 거기에 저자 사인까지 있다니.... 감정가격이 30만 엔이나 한다고 했어. 우리나라 돈으로 3000만원 정도 되는 돈이야.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가 그럼 그 정도로 유명한 작가냐고? 일본에서는 그렇다고 하는구나. 여러 번의 자살시도를 했었고, 결국 연인과 자살로 삶을 마감한 것으로도 유명하대.

...

그런데 그런 귀중한 책을 시오리코는 왜 판매대에 내놓았을까? 사실 얼마 전에 시오리코의 <만년>을 부탁을 받아서 전시회에 내놓은 적이 있었대. 그 이후 어떤 스토커가 그 <만년>을 사겠다고 계속 연락을 했고, 매번 시오리코는 거절을 했대. 그러자 시오리코을 밀쳐내는 폭력까지 썼던 거야. 다행히 그때 그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고그 때 일로 시오리코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거야. 시오리코는 자신을 공격했을 때의 상대방 외모를 정확히 보지 못했지만, 키가 큰 남자라는 것은 알 수 있었대. 그 범인을 찾고자 미끼로 <만년>을 판매대에 내 놓은 거야. 그런데, 사실은 진품은 아니고 위조품이었대. 어느날 책등빼기인 시다와 가사이가 헌책방에 왔는데, 가사이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거듭 해서 그가 바로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가사이는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이 밝혀진 다음, 오히려 병원으로 달려갔어. 목적은 <만년> 언컷본. 다이스케가 그를 쫓아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옥상에서 시오리코와 대치중이었어. 시오리코는 <만년>이라는 책을 꺼내 들어 라이터로 불을 붙였어... 가사이는 경악을 했어. 그에게 있어 생명보다 소중했던 책이었는데... 가사이가 경악을 하며 당황하는 순간 그에게 빈틈이 있어서 다이스케가 제압을 했단다. 유도로 대학까지 간 몸인데, 이쯤이야그의 지갑을 뒤져서 이름을 확인해 보니 다나카 도시오. ? 어디서 비슷한 이름을 본 거 같은데... 바로 다이스케 할머니의 사연이 담긴 <그 후>라는 책의 앞면지에 적힌 이름 다나카 요시오와 비슷했던 거야. 도시오에게 물어봤더니 자신의 할아버지였다는 거야. 어쩌면 다이스케와 도시오는 피가 섞여 있을 수도 있는 거야. 두 사람 모두 키도 엄청 컸으니까 말이야. 도시오에게 할아버지의 근황을 물어봤더니 이미 한참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아참, 시오리코가 불을 태운 <만년> 또한 위조품이었어. 다이스케도 속인 거야. 다이스케는 자신도 속였다는 사실에 삐쳐서 고서당 일을 그만두었어. 하지만 다이스케 마음 속에 이미 시오리코에 대한 사랑이 싹트고 있었으니.. 시오리코의 사과 한마디에 서운한 감정이 녹고 말았단다. 그렇게 소설이 끝났어.

앞서 이야기했지만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이야기는 7권까지 이어진단다. 앞으로 종종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아빠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본 작가와 일본 소설을 많이 다루었지만, 책에 관한 이야기라서 좋았단다. 무엇보다 책 디자인이 너무 예쁘구나..^^ 비블리아 고서당 여주인공 시오리코의 피규어 인형도 있다고 하던데... 이 책이 상당히 인기가 있었던 책이었나 보구나.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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