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김언수님의 대표작 <설계자들>을 이제서야 읽었단다. 지난 부산 여행 때 들렀던 부산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김언수님의 <설계자들>. 너희들도 이 책을 보고 재미있냐고 물어봤잖아. 그럼, 이 책은 너무 재미있어서 미국에서도 억대 돈을 주고 판권을 사갔대.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너희들은 이 책만 보면 1억 원 책이라고 이야기 하는구나.

소문대로 재미있더구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의 최근작 <뜨거운 피>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제목 설계자들도대체 무엇을 설계하는 것일까. 무섭게도 살인을 설계하는 것이란다. 주인공 래생은 청부살인업자야. 킬러라고도 하지. 그는 배후의 설계자들에 의해 설계된 암살 시나리오대로 타겟을 죽이는 일을 해. 쓸데없는 감정이 개입되면 할 수 없는 냉혹한 일이란다. , 그럼 지금부터 얼마나 재미있길래 억대 판권에 팔렸는지 이야기해줄게. 아참, 아직 어린 너희들이 보기에는 무서운 장면도 많이 있어.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이 편지를 읽는다고 생각하고 쓸게.

1.

래생은 서른두 살.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라는 것은 사람 죽이는 일뿐이었단다. 그가 갓난아기일 때 수녀원의 쓰레기통에 버려져서 수녀원에서 자라다가 개들의 도서관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도서관을 운영하는 너구리 영감에게 맡겨졌어.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으면서 글자도 혼자 배운 래생. 혼자 공부해서 유명한 학자가 된다는 이야기였으면 좋았겠지만, 도서관장 너구리 영감은 사실 설계자였단다. 도서관은 그의 본업을 숨기기 위한 위장술이었어. 너구리 영감은 유명한 설계자로서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설계하고 있어. 너구리 영감이 래생을 데리고 온 이유도 래생을 킬러로 키우려고 했던 거야. 다른 이유 없었지.

래생은 열일곱 살 때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어. 그들의 세상은 규칙이 있었고, 그 규칙을 어기면 그 자신이 타겟이 된단다. 래생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도 단 한번 감정에 흔들려서 타겟이었던 어떤 여자를 살려주고 나서 자신이 죽음을 당했어. 래생도 스물두 살 때인가 고의는 아니지만 설계가 어긋난 적이 있었어. 너구리 영감의 손을 써서 잠시 이 일에 손을 떼고 숨어 지내며 공장에서 일한 적도 있었어. 그러면서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어떤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되어 난생 처음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너구리영감으로부터 복귀 연락을 받은 순간, 래생은 공장과 행복의 인연을 끊고 다시 청부 살인업자의 길에 들어섰단다….

2.

서른두 살. 어느덧 이 일을 한 지 십오 년이 되었어. 이번에 그에게 주어진 일은 전원주택에 혼자 살고 있는 어떤 노인을 멀리서 총으로 저격하는 것이었어. 산에 숨어 있다가 타겟인 노인이 산에 산책 나왔다가 발견되어 노인의 집에 초대되어 밥도 얻어먹고, 하룻밤 잠도 자게 되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되었지만, 래생은 냉철했어. 다음날 다시 산에 와서 노인에 총을 겨눴어. 이 정도의 냉철함을 가져야 진정한 킬러지. 래생이 그렇게 사람을 죽이면 보통 시신은 털보아저씨네로 옮겨져. 털보아저씨는 애완동물들을 화장해주는 일을 하는데, 실제 수입은 설계자들의 희생자들을 처리해주는 것에서 생겼단다. 래생이 이번에 죽인 노인도 털보아저씨네를 거쳐 한줌 뼛가루가 되었단다.…

그런데 이런 일상의 일이 설계자의 의도와 다르게 처리된 것이었어. 이번 타겟인 노인을 죽인 다음 화장하지 말고 시신을 원래 그의 집에 그대로 두었어야 했대. 래생은 시킨 대로 한 것인데, 이 일을 시킨 너구리 영감이 잘못 시킨 것인가. 이 일로 설계자 중에 한 명인 한자가 크게 화를 내며 너구리 영감을 찾아왔어. 한자는 최근에 크게 성공한 설계자란다. 그는 외국 유학파 출신으로 겉으로는 보안회사를 차리고 있는 듯 했지만, 실제로는 설계자 일을 크게 하고 있는 것이고, 이를 기업화했어. 청부살인을 기업식으로 운영하다니… 30년 이상 이 바닥의 일인자였던 너구리 영감을 밀어내고 한자는 새로운 일인자가 되어가고 있었어. 그래서 많은 설계자들과 킬러들이 그의 밑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지. 너구리 영감 밑에 있는 이는 래생과 몇 안 되었어. 시나리오에 맞지 않게 일이 끝났으니 너구리 영감과 래생도 언제 한자의 리스트에 오를지 몰랐어.

3.

래생은 집에서 혼자 지냈어. 도서관과 스탠드라 부르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그런데 어느날 변기에 숨겨진 작은 폭탄을 발견하게 되었단다. 도대체 이 폭탄이 왜 여기에…. 자신을 노린 것이 분명했지. 친구이자 트래커를 하고 있는 정안에게 폭탄의 추적해달라고 했어. 트래커는 말 그대로 뒷조사를 하는 거야. 정안도 너구리 영감 밑에서 일하는 전문 트래커였단다. 며칠 뒤 정안은 그 폭탄은 어떤 편의점 알바생이 만든 것 같다고 했어. , 편의점 알바생? 거기에 의대 출신의 여자라고? 이름은 미토. 부모가 어렸을 때 설계자들에 의해 교통사고로 위장되어 죽은 것 같다고 했어. 그리고 여동생은 그 교통사고로 불구가 되어 휠체어 타고 생활해야 했대. 멀리서 지켜본 바로는 미토는 활발한 성격같았어. 래생이 불쑥 편의점에 들어섰을 때 전혀 알아보지 못한 미토를 보고 래생은 잘못된 추적인가 싶어 잠시 물러났단다.

자신의 변기에 폭탄을 설치한 자가 누가 되었든, 그것의 배후에는 한자가 있을 거라 확신한 래생. 한자와 한판 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너구리 영감은 래생의 계획에 반대했지. 래생은 한자를 직접 찾아갔어. 폭탄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지만, 래생과 정안에게 경고를 했단다.….

래생은 정안의 정보로 미토의 동생 미사가 운영하는 뜨개질 가게를 찾아갔어. 그런데 첫만남인데 미사가 래생을 알아보았어. 자신의 언니 미토의 애인으로 말이야.. , 이것 봐라,, 래생은 속으로 생각했겠지. 래생은 미토의 애인인 척 미사와 이야기도 나누고, 틈을 타서 그곳의 비밀 다락방가 갔다가 자신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는 벽을 보았어. …. 잠시 후 뜨개질 가게에 미토와 또 다른 여자가 들어왔어. 그런데 또 다른 여자도 래생이 알고 있는 여자가 들어왔어. 다들 놀랬지미토와 함께 들어온 여자는 너구리 영감의 도서관에서 5년째 일하던 사서였어. 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뜨개질만 뜨던 수민…. 그녀도 사실 미토와 한패였던 거야. 래생은 계속 꺼려했지만, 미토가 래생만 따로 데리고 가서 이야기를 했어.

미토는 자신도 설계자라고 했어.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복수를 알아보다가 설계자가 되었다고 했어. 그리고 래생에서 협조를 요청했어. 한자와 너구리 영감이 구축한 이 시스템을 없애려고 한다. 도와달라. 그 일환으로 래생을 죽이려고 했던 것 맞다래생은 한칼에 거절하고 미토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어….

4.

얼마 후 래생의 친구 정안의 시체가 도서관에 도착했어. 한자가 계획하고 이발사가 솜씨를 부린 것이 확실했어. 래생은 이발사를 찾아갔어. 결투를 했지. 래생은 치명상을 입고 죽기 직전 이발사의 아내가 나타나서 이발사를 말려서 구상일생으로 살았어. 미토가 정신 잃은 래생을 데리고 왔으며, 이후 미토의 작은 별장에서 한달 넘게 치료를 받으며 요양을 했어. 그곳에 있으면서 미토와 미사와 정이 들고 왠지 모를 작은 행복마저그곳에서 미토의 계획을 다시 듣게 되었어. 한자의 장부와 영감의 책자를 빼와 달라는 것이었어. 래생은 미토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했지. 래생은 한자의 본거지에 잠입하여 장부를 빼와 미토에게 건네주었어. 그리고 래생은 다시 친구 정안의 복수를 위해 이발사를 찾아갔어. 다시 처절한 결투이발사를 끝내 죽였지만, 자신도 중상을 입었지

한편 미토의 최종 목표는 한자를 죽이는 것이었어. 자신의 죽음까지 각오한 계획이었지. 그러면서 자신의 동생을 일본으로 안전하게 빼돌리기까지 하고 래생에게 동생을 부탁하기도 했어. 하지만, 래생의 자존심으로 한자는 자신이 처치하고 싶었어. 미토를 기절시키고, 한자를 찾아갔어. 래생의 작전도 좋았어. 한자를 거의 다 제압할 뻔했는데,,, 한자는 한자였지한자의 부하의 총에 그만래생이 이왕 마음 먹은 거 준비도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예를 들어 방탄복이라도 입고 가든지무슨 멋이라고….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소설은 끝을 맺었단다.

….

이 소설은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질 것 같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 소설에 호평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김언수님의 장편소설은 이제 모두 다 읽은 것 같구나. 데뷔하신 지는 꽤 되는데, 작품수는 그리 많지가 않아신중에 신중을 기해 완벽을 추구하는 분이시라서 작품수가 적으신가 신작으로 원양어선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구나.…

얼마 전에 신문 기사를 통해서 김언수님의 <뜨거운 피>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했단다. 신기하게도 감독은 소설가 천명관님이라고 했어. 주인공은 정우라는 배우이고.. 정말 기대되는구나. 김언수+천명관+정우과연 결과가 나올는지

PS:

책의 첫 문장 : 노인이 마당에 나왔다.

책의 끝 문장 : 래생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의 오랜 전매특허처럼 허공을 향해 피식 웃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4-15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출판 기념해서 밤새도록 작가분과
홍대 인근에서 술 푸던 기억이 새롭네요.

제가 가장 먼저 리뷰 쓴 사람이라고 자랑
하던 일도... 핫하

bookholic 2019-04-15 23:25   좋아요 0 | URL
김언수님과 좋은(?) 추억을 갖고 계시네요~~ 부러워요^^
 















(35)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외모를 보면 뭔가 정상이 아닙니다. 뭔가 불쾌하고 뭔가 아주 혐오스러워요. 이렇게 싫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정말 처음이었는데 그 이유를 딱히 알 수가 없어요. 어딘가 기형인 게 분명해요. 어디라고 꼬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하여튼 기형의 분위기가 강하게 납니다. 정말 특이하게 생긴 사람인데 저로서는 도저히 묘사할 수가 없네요. 그래요, 할 수가 없어요. 설명이 안 되네요. 기억을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눈 앞에 생생히 떠오르거든요.”

(106~107)

그 진실이란, 인간은 진정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이다. 내가 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 지식이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기 대문이다. 같은 선상에서 혹자는 나를 뒤따를 것이고, 혹자는 나를 앞질러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내가 감히 추측건대 인간은 결국 여러 개의 모순되면서도 각기 독립적인 인자들이 모인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내 경우, 내 삶의 본성이 한 방향으로만, 오직 한 방향으로만 절대적으로 전진했다. 그것은 도덕적 측면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는 나란 인간 속에서 철저하고 근본적인 인간의 이중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 의식 속에는 서로 갈등하고 있는 두 개의 본성이 있으며, 비록 내가 그중 어느 한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하더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내가 양쪽 모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찍이 애 과학적 발전의 경로를 통해 두 본성을 분리하는 기적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 전에도 나는 그러한 몽상을 즐기곤 했었다.

(108)

그러나 나는 지금 고백함에 있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런 과학적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첫째는, 우리 인간은 인생의 불운과 고난을 영원히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 그 짐을 던져버리려고 시도하면 그것이 더욱 낯설고 더욱 끔찍한 무게로 되돌아와 우리를 짓누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불행히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 자명해지겠지만, 그 발견이 결국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자연적 육체에서 정신을 구성하는 어떤 힘이 발산되어 빛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뿐 아니라 그 힘의 주도권을 빼앗은 후 제2의 형태와 모습으로 대체하는 약을 제조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제2의 형태라는 것 또한 내 영혼의 근저에 있는 요소들을 표현하고 그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이었기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8)

비탈길은 사람의 발길을 느긋하게 잡아놓는다. 제아무리 잰걸음의 성급한 현대인이라도 이 비탈길에 와서는 발목이 잡힌다. 사람은 걸어다닐 때 머릿속이 가장 맑다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봐라. 직장에서 집까지,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머릿속에서 무엇을 했나. 돌아오는 길은 어떠했나. 최소 하루 두 시간 자기만의 명상 시간을 갖고 있는 셈인데 대부분은 그 시간을 소비해버리고 있다.

그러나 비탈길은 그런 경박과 멍청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아무리 완만해도 비탈인지라 하체는 긴장하고 있다. 꾹꾹 누르는 발걸음의 무게가 순례자의 마음속에 기여하는 바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은 걷는 발뒤꿈치에서 시작한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35)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 끝에 안양류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안양루에 오르면 발아래는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마치도 저마다 독경을 하고 있는 듯한 자세인데,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소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 웅대한 스케일, 소백산맥 전체를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9품 계단의 정연한 질서를 관통하여 오른 때문일까. 안양루의 전망은 홀연히 심신 모두가 해방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지루한 장마 끝의 햇살인들 이처럼 밝고 맑을 수 있겠는가.

(65-66)

이 점에 대해서는 건축가 승효상이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 셋>이라는 글에서 아주 핵심을 잡아 논한 부분이 있다.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의 사이,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 이 마당은, 서양인들이 집과 대립적 요소로 사용한 정원과도 다르며 관상의 대상으로 이용되는 일본의 정원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서양의 눈에는 그냥 남겨진 이 비움의 공간은 집의 생명을 길게 하여 가족공동체를 확인시키고 사회공동체를 공고히 하여 우리의 주체를 이루게 하는 우리의 고유한 건축 언어이며 귀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인 것이다.

(179-180)

수덕사 대웅전 건축은 그 구조와 외형이 아주 단순하다. 화려하고 장식이 많아야 눈이 휘둥그레지는 현대인에게 이 단순성이 보여주는 간결한 것의 아름다움,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수식이 가해지지 않은 필요미(必要美)는 얼른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안정된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덕사 대웅전의 저 간결미와 필요미가 연출한 정숙한 아름다움에 깊은 마음의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가벼운 밑화장만 한 중년의 미인을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이다.

(237)

해인사 조실 자운스님은 열반에 드는 날 저녁에 4행시를 지었는데 맨 끝 구절은 서쪽에서 해가 뜬다였다. 서산대사는 운명 직전에 당신의 초상화를 가져와서는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라고 적고는 입적하셨다. 또 수덕사 만공스님은 저녁공양 후 거울을 보면서 만공, 자네는 나와 함께 70여 년 동고동락했지. 그동안 수고했네라고 말하고 떠났고, 인조 때 걸출한 스님 진묵대사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얘들아, 내 곧 떠날 것이니 물을 것 있으면 빨리 다 물어나보아라하고는 한두 마디 대답하더니 앉은 채로 열반했다고 한다. 단재 신채호의 수필 중 비뚤어진 험악한 세상에서는 차라리 이단을 택하리라는 내용의 글이 있는데, 청주의 어느 스님이 제자들을 보고 얘들아, 앉아서 죽었다는 사람 보았느냐?”고 물으니 , 있습니다.”고 답하자 그러면 서서 죽은 사람도 있느냐?”고 묻고 들어보진 못했으나 있을 법은 합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스님은 거꾸로 서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였더니 제자들은 그건 불가능할 것입니다라고 답하자 그 스님은 그 자리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모두가 죽음을 알아차린 분들의 이야기들이다.

(248)

그러나 좋은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건축적으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여기에서 건축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이다. 조용한 산세에는 소박하게, 화려한 산세에는 다채롭게, 호방한 산세에는 기세 좋게 건물을 세운 것이 우리 산사 건축의 미학이다. 전국 각 산사의 건축이 비슷한 것 같지만 자연과의 어울림은 모두가 저마다의 여건에 따라 이런 원칙을 지키고 있다.

(254-255)

답사를 가든, 수학여행을 가든 우리의 마음과 눈을 가장 즐겁게 해주는 것은 자연 그 차제다. 장엄한 산, 시원한 바다, 유장한 강줄기, 그 사이를 비집고 뻗은 길…… 그것이 국보급 문화재를 보는 것보다 더욱 감동을 준다. 그중에서도 철 따라 바뀌는 꽃과 나무는 우리의 정서를 더없이 맑게 표백시켜준다. 그 꽃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감지하지 못하는 서정의 여백이 없다면 국보도 그저 돌덩이, 나뭇조각으로만 보일 것이다.

(262)

조선의 소나무는 그래도 죽지 않고 여기 이렇게 사철 푸르게 살아 있지 않은가. 웬만한 소나무는 그 칼부림, 도끼날에 생명을 다했을 거이련만 조선의 소나무는 그 아픔의 상처를 드러내놓고도 아리따운 자태로 늠름히 살아 있지 않은가. 저 푸른 소나무에 박힌 상처는 우리가 극복해낸 역사적 시련의 상처일 뿐이다. 아무리 모진 시련도 우리는 그렇게 꿋꿋이 이겨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4-12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존의 답사기에서 산사 엑기스만
뽑아낸 책인가 보네요.

bookholic 2019-04-13 00:3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예전에 답사기에서 읽었던 것들일텐데, 처음 읽는 기분이었어요.ㅎㅎ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류시화님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란다. 그래서 류시화님의 책이 출간되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단다. 늘 그랬듯이 류시화님의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명상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단다. 이번에 읽은 <인생우화>역시 그랬단다. 이 책은 폴란드 헤움이라는 하는 작은 마을에서 내려오는 우화들과, 류시화님이 그 헤움이라는 마을의 사람들의 캐릭터로 새로 쓴 우화들을 엮은 책이란다.

책 뒤편에 작가의 말을 통해, 헤움에 전해져 내려오는 우화들은 폴란드 어떤 대학의 레나타 체칼스카 교수라는 분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했어. 그래서 이 책을 공저로 출간하려고 했는데, 레나타 체칼스카 교수가 극구 사양을 했다고 하는구나. 이런 아름다운 우화가 전해 내려오는 마을이라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1.

신은 한 천사에게 어리석은 영혼들을 자루에 담아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어. 지혜로운 영혼으로 바로잡아 다시 세계로 보내려고 했던 것이지. 그런데 어리석은 영혼을 자루에 담아오던 천사가 그만 실수를 해서 자루가 찢어졌고, 영혼들이 다시 지상에 떨어졌어. 그들은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곳이었단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똑똑하지 않고 어리석은 것은 맞지만, 그보다는 그들은 순수하고 순박하다고 하는 것 맞을 것 같구나.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이들의 삶. 그들의 일화를 읽다 보면 어떤 경우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더구나. 얼마 전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없애달라고 하는 입주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 이유가 무엇인즉, 요즘 고급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의 거울이 없다는 거야.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없애면 고급 아파트는 된다는 생각일까? 헤움 사람들이 비가 안오고 가뭄이 오래되자, 나무를 라고 부르기로 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

하나하나 일화들이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들어서 좋았어. 그리고 글들이 어렵지 않고 쉽게 쓰여 있어서 너희들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우화와 동화는 종이 한 장 차이잖니?

2.

문득, 우리 세상을 둘러봤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 그런데 세상의 때가 잔뜩 묻은 우리들의 삶. 그 똑똑하다는 머리들로 만들어진 자본주의 세상. 그 자본주의 세상은 폭주기관차처럼 인류 멸망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다들 미소 지으며 더 빨리 달리라고 하고 있어. 헤움 사람들이 더 행복하냐, 우리가 더 행복하냐 따지기 전에 우리가 과연 그들보다 똑똑한 사람이 맞는지 잘 모르겠구나. 벌써 며칠째 미세먼지들의 공습으로 집에서 갇혀 있는지 모르겠구나. 어리석은 영혼들이 살았던 폴란드 헤움 사람들이 부럽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신성한 책에 따르면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 각각의 영혼에 탄생을 주관할 천사를 한 명씩 지정했다.

책의 끝 문장 : 그리고 그들을 설득하려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가 가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부터 우리는 나무를 ‘비’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그리고 비는 ‘나무’라고 부릅시다. 자, 주위를 둘러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 풍부한 비가 보이지 않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들은 온통 비에 둘러싸여 있었다. - P31

그 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항아리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고는 소리쳤다.

"정말 구려! 구린 걸 보니 진실이 틀림없어!"

그렇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그것이 정말로 진실 그 자체라고 소리쳤다.

"진실이 맞아! 진실은 원래 심한 구린내가 나잖아!" - P167

"아들아,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참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우리보다 가진 것이 없으면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긴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 P178

"너무 상심하지 마, 아나톨. 나의 할머니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다고 늘 말씀하셨어. 헤움의 큰 사건들은 마을의 연대기에 기록되지만 날의 작은 일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아. 그것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만약 당신이 그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쓴다면 당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일들이 문자로 기록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게 될 거야. 헤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해도 적어도 당신의 책 속에서는 언제까지나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될 거야." - P27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4-11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화 속의 유대인 마을은 나름 이상적으로 보이는데
현실의 이스라엘 정치 상황은 참...

bookholic 2019-04-12 00:38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레삭매냐님, 즐거운 금요일 되십시오.^^
 















(45)

나보다 더 행복하게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모님은 너그러웠고 벗들은 사랑스러웠다. 우리는 공부를 강요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언제나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었기에 열성적으로 공부에 정진할 수 있었다. 경쟁심이 아니라 이처럼 자발적인 열의로 연구를 했던 것이다. 엘리자베트는 친구들이 자기를 앞지를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제 손으로 마음에 드는 풍경을 그려 외숙모를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림을 배웠다. 우리는 라틴어와 영어로 쓰인 글들을 읽기 위해 라틴어와 영어를 배웠다. 벌 받으며 공부하느라 공부가 끔찍이 싫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학문을 사랑했다. 우리의 즐거움은 다른 아이들에게는 힘든 노동이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평범한 방식을 따라 공부한 사람들만큼 많은 책을 읽거나 언어를 빨리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68~69)

그때는 무심함을 죄악으로 간주하고 내게 잘못을 묻는 아버지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 비난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보았던 아버지가 옳았다고 확신한다. 완벽한 인간은 언제나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고, 정념이나 찰나의 욕망에 휘둘려 마음의 평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지식의 추구가 이 법칙의 예외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 매진하고 있는 공부가 사랑하는 마음을 약하게 하고 어떤 연금술로도 합성할 수 없는 소박한 즐거움을 아끼는 취향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그 공부는 분명 불법적이며 인간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법칙이 항상 준수되었다면, 그리하여 어느 한 사람도 가족의 애정이 주는 평온을 깨뜨리는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노예국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나라를 삼키겠다는 야욕을 갖지 않았을 것이요, 아메리카는 좀 더 서서히 발견되어 멕시코와 페루 제국은 파멸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129)

! 어째서 인간은 짐승보다 훨씬 우월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일까? 그로 인해 훨씬 더 유약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될 뿐인데. 우리의 욕망이 굶주림, 갈증, 그리고 성욕에 국한되었다면, 거의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 한 줄기, 우연한 한 마디, 아니면 그 말로 전달되는 풍경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않는가.

(161)

또 다른 깨달음 몇 가지는 내 가슴에 더 깊이 새겨졌다. 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에 대해서도 들어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갓난아기의 미소에 얼마나 무조건적으로 기뻐하는지, 아이가 좀 더 자라면 활기차게 뛰어나오는 그 모습에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그 고귀한 임무에 어머니의 삶과 관심이 얼마나 집중되어 있으며,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지식을 확장하고 얻어나가는지를 배웠고, 형제, 자매, 그리고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상호 유대로 묶어주는 다양한 인간관계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287~288)

힘겨운 행군에 지칠 때면 밤이 올 때까지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밤이 되면 내 소중한 사람들의 품 안에서 현실을 만끽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들을 향한 내 사랑은 얼마나 괴롭고 괴로웠던가! 심지어 눈을 뜨고 있을 때고 내 온 마음을 사로잡던 그네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얼마나 필사적으로 매달렸으며,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으려 얼마나 애썼던가. 그런 순간 내 안에서 불타던 복수심은 심장 속에서 죽어버리고, 그 악마를 파괴하기 위한 행보는 내 영혼의 열렬한 갈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늘이 내린 사명, 나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힘의 기계적 충동 같았다.

(302)

하지만 내가 저주받은 괴물이라는 건 사실이다. 사랑스럽고 힘없는 이들을 무참히 죽였으니. 죄 없는 이들이 잠자는 사이에 그 목을 졸랐고, 나나 다른 살아 있는 존재를 한 번도 해한 적 없는 사람의 목덜미를 죽도록 그러쥐었다. 인간들 중에서도 사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한 우수한 인물인 내 창조자를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결코 치유할 수 없는 파멸의 길로 그를 쫓았다. 저기 그가 누워 있군, 하얗고 차가운 몸으로 죽어서. 당신은 나를 미워하겠지. 그러나 그 증오는 나 스스로 느끼는 혐오감에는 차마 비길 수도 없다. 나는 그 일을 집행한 손을 본다. 그런 상상을 품었던 심장을 생각한다. 그들이 내 눈길과 마주치고 그 행위가 내 생각을 온통 사로잡을 그 순간만을 갈망한다.

(303)

안녕히! 이제 난 당신을 떠난다. 그리고 당신은 내 눈이 보게 될 마지막 인간이 되겠지. 이제는 작별이다. 프랑켄슈타인! 아직 살아 있어 내게 복수심을 품고 있다면, 나를 죽이는 것보다는 살려두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 테지.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당신은 내가 더 큰 불행을 초래할까봐 두려워 나를 파멸시키려 했으니까. 하지만 혹시라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방식을 통해 당신이 아직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자 내 목숨을 원치는 않을 거다. 당신이 아무리 비참하게 무너졌다 한들, 내 괴로움이 당신보다 훨씬 크니까. 회한의 쓰라린 가책은 죽음이 영원히 상처를 덮어버리지 않는 한 상처 속에서 끝없이 곪아갈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