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그러나 나는 별 쓸모도 없는 물건들을 집안에 잔뜩 쌓아놓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아주 긴 시간을 시달리다가 수십 년 뒤 허비한 세월을 후회하는 어른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오랫동안 힘든 일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보다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맹세하고 있었다. 최고의 자산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34)

이곳이었소. 물론 박사는 물리학자이니까, 반물질이 발견된 곳이 이곳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겠지. 하지만 현재 항공학의 원리들이 만들어진 곳도 칼텍이고, 지구의 나이를 처음으로 정확하게 확정한 곳도 칼텍이라는 것을 몰랐을지도 모르오. 로저 스페리가 좌뇌와 우뇌의 기능이 다르다는 사실, 그러니까 좌뇌는 언어에 쓰이고 우뇌는 시각이나 공간 감각에 쓰인다는 사실을 파악한 곳도 이곳이라는 것도. 분자생물학도 칼텍에서 만들어내다시피 했소. 그 일의 핵임에 있었던 사람이 박사 같은 물리학자인 막스 델브뤼크였지. 그는 그 공로로 1969년에 노벨상을 탔소.”

(44~45)

파인만은 철학 연구를 경멸했지만, 사실 두 사람의 마찰은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파인만은 물리학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하나는 바빌로니아인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인으로, 바빌로니아인은 숫자와 방정식, 기하학의 이해에서 서양 문명 최초로 큰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우리는 수학을 발면한 것이 탈레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등 훗날의 그리스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바빌로니아인은 어떤 계산 방법이 효과가 있느냐, 즉 실재하는 물리적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하느냐 하는 문제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그것이 정확한가, 더 큰 논리 체계와 맞아떨어지는가 하는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탈레스를 비롯한 그리스인들은 정리(定理)와 증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어떤 진술이 공표된 공리(公理)나 가정의 체계에서 나온 정확한 논리적 결과물일 때에만 그 진술을 참으로 여겼다. 간단히 말해서, 바빌로니아인은 현상에 맞추었고 그리스인은 그 밑에 깔린 질서에 초점을 맞추었다.

(98)

예를 들어 중력이 강한 힘보다 훨씬 약하지 않다고 생각해보라. 별은 훨씬 더 압착이 되어 핵연료는 빠른 속도로 타버릴 것이고, 생명의 진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중력이 훨씬 더 약하다면, 전자기적인 반발력 때문에 물질이 하나의 별로 합체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강한 힘이 전자기력보다 훨씬 강하지 않다면, 대부분의 원자핵은 해체되어버릴 것이다. 물질 속의 전자와 양성자들의 숫자가 1퍼센트라도 균형이 맞지 않으면, 나와 1미터 떨어진 사람 사이의 전자기력이 지구의 무게보다 더 클 것이다. 자연의 힘들은 서로 다르지만 섬세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 왜일까? 이 답을 찾으려면 개별적인 힘들을 묘사하는 각각의 이론들로는 부족하다. 오직 모든 힘을 포괄하는 하나의 이론만이 존재에 대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다.

(173)

그렇다고 나한테 좋은 상상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야. 사실 나는 소설을 상상하는 것보다 과학자의 일이 훨씬 더 힘들다고 생각해. 즉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보다는 있는 것을 파악하거나 상상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지. 소규모로 또는 대규모로 벌어지는 일들은 처음 예상과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많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네! 원자를 그려보는 데도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지. 원자가 이렇게 저렇게 움직일 거라고 예측하는 데 말이야. 원소의 주기율표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지.

과학자의 상상력은 제어를 당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상상력과는 다르네. 과학자가 뭔가를 상상하면, 신은 부정확하다거나 지금까지는 괜찮다고 말하지. 물론 여기서 신은 실험이야. 신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 ‘, 아니야, 그건 일치하지 않아.’ 우리는 이렇게 말해 나는 그것이 이렇게 될 거라고 상상해. 그렇다면 이런 것을 보게 될 거냐.”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그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우리가 잘못 추측한 거니까. 하지만 글쓰기에는 이런 것이 없네.

(208)

나는 스스로 과학자라고 말할 수 있네. 발견을 하면 흥분을 하지. 흥분은 사실 자신이 뭔가를 만들어냈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을 때 오는 것이라네. 따라서 과학적인 것은 나의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주네.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에도 영향을 주고, 어느 게 먼저고 어느 게 뒤인지는 모르겠네. 나는 통합된 사람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나의 회의주의 때문에 내가 과학에 관심을 갖는 것인지, 과학 때문에 회의적이 되는 것인지 그런 것은 모르겠네. 그런 것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해. 어쨌든 나는 무엇이 사실인지 알고 싶네. 그래서 사물을 들여다보지. 보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발견하려는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의 일인자 3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그럼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제1 <로마의 일인자>의 마지막 3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길게 한숨 쉬고 시작해야겠구나. 3권은 기원전 104년부터 시작한단다. 1권 처음이 기원전 110년부터였으니까, 어느덧 7년이 흐른 거야.

아프리카 누미디아 반란을 평정한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화려한 개선식으로 로마에 입성을 하였고, 또 화려한 집정관 취임식으로 복귀를 알렸어. 여전히 그를 반대하는 원로원의 보수파 의원들이 꽤 있었어. 마리우스는 로마에 오래 머물지 않았어. 왜냐하면 갈리아 지방의 게르만족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거든. 이미 지난해에 대패를 당하기도 했잖니. 마리우스는 갈리아 지방으로 가는 일반적인 길인 알프스 산맥을 넘는 길이 아닌, 해변을 따라 가는 길을 택했어. 그리고 줄어든 군인들을 채우기 위해 최하층민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노예들도 해방시켜 군의 자격을 주는 정책을 만들려고 했어. 그야말로 실용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지.

로마의 최하층민에게 군인의 자격을 주는 것도 강하게 반대하던 로마 원로원인데, 동맹국들의 노예에게 로마의 군인의 자격을 주는 것은 어떻겠니? 그야말로 온몸 바쳐 반대를 했단다. 마치 우리나라 국회의 모정당을 보는 것 같았어. 원로원은 이 정책이 채택되지 못하게 하려고 고의로 곡물 가격을 조정해서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어. 그리고는 사투르니누스라는 자에게 누명을 씌어 범인으로 지목했어. 억울한 사투르니누스는 마리우스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고, 마리우스는 사투르니누스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그를 돕기로 했어. 사투르니누스가 호민관이 되는 것을 돕기로 하고, 그 대신 사투르니누스는 마리우스의 정책을 돕기로 했어.

술라는 마리우스의 갈리아 원정에도 동행했어. 술라는 한가지 묘책을 이야기했어. 자신이 게르만족으로 변신해서 게르만 족에 잠입하여 정보를 빼오겠다는 거야. 마리우스는 술라의 이런 작전에 놀랐지만, 그것이 성공만 하면 좋은 작전이라고 생각했어. 술라는 자신뿐만 아니라 마리우스의 측근 중에 한 명인 세르토리우스에게 동참할 것을 권했고, 세르토리우스는 흔쾌히 응했어.

 

1.

로마의 상황을 살펴보자꾸나. 원로원은 보수파가 차지하고 평민회는 신진세력이 주도를 잡고 있었어. 평민회는 앞서 이야기한 마리우스가 후원을 해 주는 사투르니누스 호민관 중심으로 활동을 했어. 사투르니누스는 원로원 의원들의 잘못을 찾아내어 기소를 해서 유죄까지 받아냈단다. 마리우스를 위해 열일을 하고 있었어. 특히 원로원 보수파의 거물인 카이피오가 돈을 몰래 빼돌린 것을 기소해서 유죄를 받아냈단다. 카이피오는 2권에서도 이야기했었지? 게르만 전투에 참여했다가 독불장군처럼 행동했다가 패배의 빌미가 되었던 그 사람. 그리고 아우렐리아한테 시련을 당한 드루스라는 사람이 카이피오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잖아. 드루스의 동생 리비아는 오빠의 강압에 의해 카이피오 2세와 강제결혼을 했고 말이야. 그 카이피오가 유죄를 받고 유배를 떠났어.

 

2.

, 다시 갈리아 지방으로 가보자꾸나. 게르만족 첩자 역할을 했던 술라가 오랜 뒤에 돌아왔어. 게르만족의 대표회의까지 참석할 수 있는 지위를 얻었다고 했어. 위장결혼까지 해서 쌍둥이까지 낳았다고 했어. , 술라는 마리우스의 동서지간으로 카이사르의 둘째딸 율릴라와 결혼을 한 몸인데게르만족 사이에서 결혼까지 했으니 첩자 노릇을 정말 제대로 했구나. 술라가 알아낸 게르만족의 상황. 게르만족은 여러 부족들이 모여 있어서 늘 갈등을 보이고 있고 단합이 안 되곤 했어. 그런데 보이 오릭스라는 자가 그들을 한데 뭉치게 했다는구나. 하지만 늘 부족간 알력으로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고 했어. 그리고 게르만족은 다음해에 이탈리아 본토를 공격할 계획이 있다고 했어. 이번 해가 아니고 다음 해라면그들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권력을 유지해야 하므로, 다시 집정관이 되어야 한다고 마리우스는 생각했어. 물론 로마 원로원에서는 딴 생각을 했지. 한동한 전쟁을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집정관 출마를 위해 로마에 돌아왔단다.

….

술라도 함께 돌아왔어. 술라는 오랜만에 집에 왔어. 집에서 기다린 것은 행복이 아니고 고성이었어. 아내 율릴라와 손녀를 봐주기 위해 온 장모 마르키아가 서로 싸우며 소리 지르고 있었거든율릴라는 늘 술을 마시고 취해있었어. 그래서 술라와도 심한 말다툼을 했단다.

..

어느날 술라가 결혼하기 전 만나곤 했던 소년이 찾아왔단다. 옛날 로마 사람들은 어린 소년과 사랑을 하기도 했어. 술라는 그 소년과 애정행각을 벌였는데, 그 장면을 율릴라가 봤어.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율릴라는 자살을 했단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마르키아는 율릴라의 자살을 받아들였어. 율릴라가 심적으로 늘 불안하고 술에 취해 있어서 자살이라는 행동이 뜻밖이라고 생각은 안 한 거야. 술라의 결혼은 시작부터 행복할 수 없었던 결혼이었던 것 같아. 술라는 오히려 게르만 첩자로 있을 때 결혼한 여자를 그리워했단다.

마리우스는 다시 집정관이 되어 갈리아로 갔어. 차석 집정관으로 뽑힌 카툴루스 카이사르도 군대를 이끌고 북으로 갔단다. 카툴루스는 원로파 보수파가 꼽아놓은 보수파의 꼭두각시 같은 인물이란다. 이때가 어느덧 기원전 102년이었어. 카툴루스 카이사르는 전쟁경험도 없고 군대를 이끌 실력도 안 되는 것을 마리우스는 알고 있었어. 그래서 술라를 선임 지휘관으로 카툴루스 카이사르에게 보냈단다. 카툴루스는 썩 좋아하지 않았고 술라와 갈등을 보였어. 카툴루스는 게르만의 부족 공격에 무모한 작전을 펼쳐 패배 위기에 빠졌어. 더 이상 보고 있으면 패배가 뻔히 보여 술라는 지휘부의 지지를 받으며 카툴루스와 단판을 지으려고 했어. 술라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키겠다고 했지. 그러자 카툴루스가 한 발 물러나고 술라의 말을 따르겠다고 했어. 마리우스와 술라의 협공으로 게르만족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단다. 이에 마리우스의 인기는 치솟았고, 그 인기로 기원전 101년 다시 집정관이 되었어.

 

3.

갈리아 지방에 있는 마리우스는 로마에 있는 루푸스와 편지를 통해 서로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정황을 알고 있었어. 로마는 여전히 원로원들이 마리우스와 척을 세우고 있었어. 마리우스는 전쟁 승리의 소식을 자신의 처남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가 전하게 했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승리의 소식을 로마에 가지고 왔단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니 아우렐리아와 만났어. 귀족이었던 아우렐리아는 평민들이 사는 수부라 생활도 잘 적응했어. 그 사이에 두 딸을 낳았단다.

율리우스가 없는 사이 여주인 역할도 잘했단다. 자신의 수부라 지역의 술집에서 말썽을 부리는 술집 주인 데쿠미우스를 내쫓으려고 직접 찾아가기 했어. 쫓아내지는 못하고 말썽을 피우지 않겠다는 선에서 협상을 했지만, , 그 사람에게서 이상한 감성, .. 사랑 같은 거? 그런 것을 느꼈어. <로마의 일인자> 마지막까지 그들의 사이가 크게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다음 이야기인 <풀잎관>에서 어떻게 될 지 몰라 일단 그런 감정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한 거야.

원로원에서도 승리의 소식을 전해 들었어. 원로원 보수파의 꼭두각시 카툴루스도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카툴루스의 공을 띄워주기 위해 개선식을 마리우스와 따로 하겠다고 했어. 하지만 마리우스는 영리하게 로마의 재정을 걱정하는 투로 개선식은 같이 한번만 하겠다고 했어. 원로원에서는 마리우스의 말이 합리적이라 반대를 할 수 없었어. 그렇게 갈리아 지방의 게르만족의 반란을 잠재우고 로마로 돌아왔단다.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집정관을 안 해도 되지만, 마지막으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집정관의 권력이 필요했어. 그래서 기원전 100년 다시 집정관이 되었단다. 워낙 민심의 지지가 높아서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집정관이 될 수 있었거든. 여섯 번째 집정관. 그야말로 로마의 일인자라는 소리를 들을만했어.

 

4.

마리우스가 계획했던 일은 군인이 되었던 최하층민들이 군대를 제대하고 난 후의 복지에 대한 것이었어. 그들에게 아프리카에서 얻은 땅을 나눠 주겠다고 했어. 어차피 그 땅은 로마 귀족은 물론 평민들도 꺼리는 땅이니까 말이야. 최하층민들에게 나눠주면 그들에게도 좋고, 로마에게도 좋은 것이니까 말이야. 원로원에서는 당연히 극심한 반대를 하겠지. 원로원의 반대 이유는 뻔했어. 그 동안 그런 적 없다. 마리우스가 주장하니까 그냥 반대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리우스가 위기에 빠졌어. 원로원에서 쳐 놓은 함정에 빠져서 자신의 지지기반의 신임과 지지를 잃는 일이 생겼어. 마리우스가 후원하던 호민관 사투르니투스와도 사이가 틀어졌어. 마리우스를 로마의 일인자로 불렀지만, 원로원의 옹고집 같은 권력이 더 셌어. 그런 일이 있고 마리우스는 건강마저 안 좋아져서 쿠마이라는 곳으로 요양을 갔단다. 로마는 극심한 가뭄으로 민심이 흉흉해졌어.

한편 다음해 집정관으로 보수파가 지지하는 안토니우스라는 해군장수를 후보로 내세웠어. 나머지 집정관도 보수파인 멤미우스라는 사람으로 채우려고 했어. 마리우스가 로마를 비운 사이 권력을 차지하려고 하는 꼼수라고 할까. 다시 로마에 돌아온 마리우스. 건강상의 이유로 집정관 불출마 선언을 했단다. 마리우스와 사이가 틀어진 사투르니누스는 호민관 후보에 다시 등록하고 그의 오랜 파트너인 글라우키아는 집정관에 입후보했어. 길을 가다가 보수파의 집정관 후보인 멤미우스와 시비가 붙었다가 싸움이 벌어져 엉겁결에 멤미우스를 죽이고 말았어.

글라우키아는 그 길로 도망을 갔어. 사투르니누스는 언변이 좋아서 말로 민심을 얻어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고, 반란까지 일으키려고 했어. 사투르니누스의 반란 도모를 알게 된 마리우스 또한 영리한 정치인이었어. 민심을 잘 이용해서 사투르니누스 일행을 체포했단다. 사투르니누스는 결국 원로원 청년 보수파들에게 피살을 당했어. 사투르니누스의 반역 모의는 로마를 대혼란으로 빠뜨릴 수 있는 사건이었는데, 마리우스가 사전에 잘 막아낸 것으로 반대만 하던 원로원 보수파도 이 일에 대해서는 지지를 보냈어. 마리우스는 그렇게 원로원 보수파의 지지를 얻자마자, 많은 민중들 앞에서 곡물값을 내리겠다고 폭탄선언을 했어. 원로원 보수파가 반대하고 있던 사항인데, 많은 민중들 앞에서 선언을 해버렸으니 돌이킬 수도 없게 되었지. 원로원이 한방 먹었다고 할 수 있지

….

여기까지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로마의 일인자> 이야기란다.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전성기를 그린 <로마의 일인자> 분명 예전에 다른 책에서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만났을 텐데, 전혀 기억이 없구나. 이 책의 기억도 또 얼마 안 가서 사라지겠지. 그래도 가이우스 마리우스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된 좋은 기회였고,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는구나. 그와 로마원 의원들의 싸움이 오늘날 진보 대통령과 수구 정당과 싸움을 연상하게 되었단다. 앞뒤 안 가리고 열등감에 찌든 반대를 위한 반대. 그래서 소설을 읽는 내내 마리우스를 지지했고, 그가 승리를 거둘 때마다, 원로원 의원들을 당황케 할 때마다 속 시원했단다. , 이제 2 <풀잎관>을 읽어야 하는데, 지금 바로 읽을 것은 아니란다. 천천히 또 읽고 싶어질 때 읽으려고 해. 그때 또 이야기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마리우스의 개선행진을 준비하는 일은 술라에게 맡겨졌다.

책의 끝 문장: “눈이 너무 부시군!” 술라는 괴로워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 빛으로부터 눈길을 돌리 수는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42-143)

니체는 유혹하는 자 역으로 적격이다. 아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편이 되고 싶을 정도이다. 그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이며 나를 오싹하게 하는 동시에 매혹시킨다. 넌 영광과 권력을 얻고 싶어 하고, 다른 이들로부터 존경받고 싶어 하고, 억만장자가 되고 싶어 하고, 혹은 세상 모든 여자들을 유혹하고 싶어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품는 자기 자신을 책망하지. 그래, 어쩌면 이것들은 천박한 열망들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실제적인 것들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이것들은 우리가 이기거나 질 수 있는, 승리하거나 패배할 수 있는 영역에서 펼쳐지는 반면 기독교적 모델에 따른 내적인 삶은 반박 받을 위험이 전혀 없는 이야기들을 스스로에게 들려주기 위한,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스스로가 보기에 존경할 만한 존재가 되기 위한 확실한 테크닉이라 할 수 있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고 비겁하고 헛된 생각일 뿐이야. 모든 것을, 각 사람의 구원을 일종의 장애물 경주를 설정해 놓은 신이 마련한 시련들로 해석하는 것은 웃기는 망상일 뿐이라고. 사람들은 자신에게 헛된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않는 능력으로 심판되어야 해 그리고 우리는 예수의 말과는 반대로 사람들을 심판해야 해. 현실을 대신하는 허구들, 위안이 되는 허구들이 아니라 현실 자체를 사랑하는 능력으로 심판되어야 해. 사람들은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진실의 양으로 심판되어야 한다고.

(152)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는데, 그가 불쑥 입을 열더니 어린 시절에 자기를 무척 놀라게 한 일이 하나 있었다, 자기 할머니의 앵무새가 새장을 열어 주었는데도 도망가지 않아서 정말 놀랐다고 말한다. 앵무새는 날아가니 않고 바보처럼 그냥 거기 남아 있었단다. 할머니는 그 비결을 설명해 주었다. 새장 안쪽에다 조그만 거울을 하나 놓아두면 된다는 거였다. 앵무새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아 거기에 홀딱 빠져든 나머지, 활짝 열린 새장 문도, 날갯짓 한 번이면 도달할 수 있는 바깥과 자유도 보지 못한다는 거였다.

(160)

예수라는 인물은 우리에게 계시의 빛을 비추거나, 아니면 눈을 멀게 하거니 둘 중 하나이다. 나는 그것을 정면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다. 나중에 근원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을지라도, 우선은 이 조사를 하류에서부터 착수하여, 바오로의 서신들과 <사도행전>을 최대한 주의 깊게 읽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359)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것은 다들 알고 있고,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얘기들이다. 나는 2천 년전부터 모든 기독교 역사가들이 해왔던 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다시 한 번 해봤다. 즉 바오로의 서신들과 <사도행전>을 읽어 보고, 그것들을 서로 겹쳐 보고, 얼마 안 되는 비기독교 자료들과 대조할 수 있는 부분은 대조해 보았다. 나는 이 작업을 정직하게 수행했으며, 내가 얘기하는 것의 개연성의 정도에 대해 독자를 속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에서 보낸 2년에 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없다. 단 하나의 자료도 없다 따라서 나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꾸며 낼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535)

지금까지 나는 그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제야 하려 하지만 좀 겁이 나는데, 왜냐하면 요한은 제1세대 기독교도 중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가장 파악하기 힘들고, 가장 다양한 얼굴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곧 네 번째 복음서와 묵시록을 쓴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는 곧 네 번째 복음서와 묵시록을 쓴 사람으로 여겨지게 된다. 하지만 동일한 사람이 네 번째 복음서와 묵시록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은, 20세기 프랑스 문학에 대한 모든 참고 자료가 없어진 상황에서 동일 인물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밤의 끝으로의 여행>을 썼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586-7)

서기 70년까지, 기독교도는 일종의 유대인이었다. 이런 혼동은 기독교도들에게 나쁘지 않은 것이었으니, 제국은 유대인들을 모두 동일시하고, 또 대체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구별이 행해졌는데, 이 구별은 기독교도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로마 대화재에 대한 보복으로 불태워 죽인 것은 그들이었지, 유대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란이 진압되고 나서 유대인들이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여겨지고, 그동안 누려 왔던 기분 좋은 특권들을 모두 박탈당한 추방자의 위치로 전락했을 때, 기독교도들로서는 그들과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70년까지 그들 교회의 중심인물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 등, 유대교의 전통에 충실한 유대인들이었다. 바오로는 그가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는 비주류의 말썽꾼이 불과했다. 그런데 70변부터 모든 게 바뀐다. 야고보의 교회는 광야의 모래 속에 사랴져 버렸고, 요한의 교회는 편집광적인 비의주의자들의 종파로 변했다. 바오로와 그의 탈유대적 교회에게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바오로 자신은 없었지만, 그의 지지자들이 세계 도처에 흩어져 있었다. 루카는 이 바오로의 기독교 내 중진 중의 하나였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자신은 완전히 은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이야기는 끝났고, 게임은 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옛 동지들이 아니냐, 모든 게 다시 시작돼, 우리에게 당신이 필요해,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676)

기독교는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이것은 성장하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떤 것이 되었는데,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떤 아이가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그 아이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로 남아있는 아이는 죽은 아이, 기껏해야 지진아일 뿐이다. 예수는 이 유기체의 유년기였고, 바오로와 초기의 교회는 반항적이고 열정적인 청소년기였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과 더불어 서구기독교의 긴 역사가 시작된다. 다시 말해서, 무거운 책무들과 대단한 성공들과 엄청난 권한들과 타협들과 부끄러운 과오들로 채워지는 성인(成人)의 삶과 전문적 커리어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계몽사상과 근대성은 은퇴의 시간이 왔음을 알렸다. 이제 교회는 실무에서 물러났고, 전성기가 지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우리가 아주 무관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그것의 노년이 과연 고약한 치매증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자신의 노년에 이르고 싶어 하는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 빛나는 지혜 쪽으로 향해 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차원에서 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의 일인자 2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로마의 일인자 2권을 이야기해줄게. 2권은 기원전 107년부터 시작해. <로마의 일인자> 전체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수석집정관 루키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과 함께 처음으로 집정관이 된 해였어.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로마 출신이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으로 그가 집정관이 된 것을 불만을 갖고 있던 로마 원로원 회원들이 많았어.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그 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일들을 해 나갔어. 그에게 현재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프리카 땅에서 일어난 누미디아 반란을 잠재우는 일이었어.

총사령관으로 전쟁을 치뤄야 하는데 군인이 부족했어. 그래서 그는 군인 자격이 없는 최하층 남자들을 군인으로 모집할 수 있는 법을 만들었어. 원로원의 격심한 반대가 있었지. 원로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수파 회원들이 있었는데, 로마를 지키는 군대는 로마의 평민 계급 이상이어야 한다고 했어. 군인은 로마를 지키는 자존심이라서 아무나 할 수 없다고 말이야. 하지만 마리우스는 최하층 남자들을 군인으로 뽑는 것은 일석이조라고 생각했어. 사회문제의 원천인 최하층 남자들에게 경제력을 주어 사회문제를 줄이고, 부족한 군인들을 보충할 수도 있다고 했지. 결국 집정관의 권한으로 법은 통과되고 최하층 남자들까지 모집해서 아프리카 원정을 떠났단다.

이때 재무관이자, 동서지간인 술라도 같이 가고, 처남들, 그러니까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같이 갔어. 아프리카에서는 누미디아의 유구르타가 전투를 피하고 다녀서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되는 것처럼 보였어.

한편 북쪽에서는 게르만족의 계속된 침입으로 골치가 아팠어. 게르만족과 전투에서 계속 패배를 했거든. 기원전 107년의 로마는 남쪽에서는 아프리카 속국에서 일어난 반란을 정리해야 하고, 북쪽으로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아야 하는 어려움에 빠져 있었어. 마리우스도 이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빨리 아프리카를 정리하고 북쪽으로 향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1.

기원전 106년은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와 가이우스 아틸리우스 세라누스가 집정관이 되었어. 카이피오가 게르만 원정에 갔다가 패배했어. 하지만 게르만족은 아직 더 이상 남하하지는 않고, 갈리아 지방에 넓게 눌러 앉아 있었단다. 하지만 늘 골치덩어리였고, 언제 쳐들어올 지 몰랐어.

아프리카 누미디아에서는 우연한 일로 적의 요새를 발견하게 되었어. 달팽이 요리를 좋아하는 어떤 병사가 달팽이 냄새를 따라 갔다가 그곳에서 유구르타 군대의 요새를 발견했어. 그래서 그 요새를 몰래 타격해서 대승을 거두었단다. 그 전투를 기점으로 마리우스가 이끈 로마군이 우세해졌어. 하지만, 섣불리 공격할 수 없었어. 그들의 후방에는 유구르타의 장인인 보쿠스 왕이 이끄는 미우레타니아의 군대가 있었거든.

다시 해가 바뀌어 기원전 105. 집정관은 푸블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와 나이우스 말리우스 막시무스.

……

술라의 대활약이 있었어. 술라는 유구르타의 장인 보쿠스 왕을 설득 반 협박 반으로 포섭을 했어. 보쿠스 왕을 이용해서 함정을 만들어 드디어 유구르타를 생포할 수 있었단다. 이로서 누미디아 반란을 정리하게 되었어.

2..

그 오래 전에도 당연히 사랑이야기가 있었단다. 잠시 원로원과 집정관 사이의 정치 싸움을 뒤로 하고 사랑이야기 하나 전해줄게. 집정관인 루푸스의 조카 중에 빼어난 미인 아우렐리아가 있었어. 구혼자만 무려 서른일곱 명이라고 했어. 대단하구나. 루푸스는 여동생 부부에게 조언을 했어. 아우렐리아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시키라는, 오늘날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말을 했어. 아우렐리아는 현명하기 때문에 괜찮은 배우자를 고를 거라는 거지. 그러면서 루푸스는 아우렐리아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어. 그 자리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도 초대해서 동석시켰어. 말은 안 했지만, 거의 맞선 자리가 아니겠니. 루푸스는 아우렐리아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시키라고 하면서 그 앞에 괜찮은 남자를 하나 턱 갖다 놓은 거야. 허허.

아우렐리아와 카이사르 2세는 서로 한 눈에 반했단다. 아빠가 1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동명이인이 많다고 했잖아. 여기서 이야기하는 카이사르도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니야… (사실은 그의 아버지란다.) 결국 아우렐리아와 카이사르는 결혼을 했어. 아우렐리아는 엄청난 부자였지만 카이사르 2세는 평범했어. 하지만 아우렐리아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단다. 그리고 아우렐리아는 진취적이면서 어떤 일을 해도 똑부러지게 잘 했어.

아우렐리아에게 구혼했던 서른일곱의 남자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지. 그 중에 엄청 상처 받은 루푸스의 처조카 드루수스라는 사람이 있었어. 드루수스는 홧김에 부자인 카이피오를 찾아가 겹사돈을 맺자고 했어. 그러니까 드루수스와 카이피오의 딸 오다와 결혼을 하고, 드루수스의 여동생과 카이피오의 아들 카이피오 2세와 결혼하자고 했어. 카이피오는 드루수스의 능력과 유력 가문임을 알고 있었기에, (거기에 집정관의 처조카 아닌가…) 흔쾌히 허락했어. 그런데 드루수스의 여동생 리비아가 극구 반대했어.. 그 일로 드루수스는 리비아를 며칠 동안 가두기도 했어. 결국 리비아는 무슨 마음인지..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오빠의 뜻에 따랐단다.

.

4.

게르만족과 전쟁은 이제 피할 수 없어. 카이피오, 말리우스, 아우렐리우스가 각각 군대를 이끌고 왔는데, 각기 군대를 따로 이끌어서 의견 차이도 심했어. 특히 카이피오는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고, 무모한 자신감으로 혼자 진지를 구축한다고 했어. 그것도 모두가 반대하는 위치에 말이야. 그곳에 진지를 구축을 하면 백전백패라는 것을 알기에 다들 그를 설득했지만 끝까지 고집했어. 아우렐리우스는 최전방에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전쟁보다 협상으로 전쟁을 막아보려고 했어. 그래서 게르만 장수들과 만나 협상을 했지만, 협상은 결렬됐어. 게르만족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와서 로마군과 전투를 벌였고, 로마군은 대패했단다. 죽은 군인 수만 8만 명에 이르고 군인이 아닌 사람도 2만 명이 되었다고 했어.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어.

카이피오는 빨리 로마로 가서 자기를 변호하려고 했단다. 원로원은 아무래도 첫 번째로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의 말을 믿을 테니 말이야. 그러나 원로원으로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코타라는 사람이 배를 타고 지름길로 로마에 먼저 도착했어. 비극적인  소식을 전했고, 그 원인이 카이피오의 고집 때문이라고 했어. 로마는 충격에 빠졌어. 집정관이었던 루푸스는 게르만 족과 전쟁은 아프리카의 승리를 이끈 마리우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리고 그가 총사령관으로 군대를 이끌기 위해서는 다음해에 집정관의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했어. 원로원들은 무조건 반대했어.  그리고 마리우스는 아직 로마에 오지도 않았잖아. 부재자를 집정관으로 뽑은 역사는 없었거든그렇게 반대를 하지만, 다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어.

...

하지만, 원로원 회원 중에서도 마리우스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호민관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어. 결국 마리우스는 두번째 집정관이 되었어. 이 소식을 그는 아프리카 땅에서 들었단다. 술라와 함께 귀국했어. 술라는 마리우스와 동서이면서 측근으로 마리우스를 잘 따랐지만, 그의 속마음은 대단한 야심과 욕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겉으로 지금 그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야.

여기까지가 로마의 일인자 2권의 이야기란다. 21권의 긴 이야기를 오랜 시간 동안 읽기에는 아빠의 기억력이 그리 좋지 못해서, 줄거리를 좀 자세히 적었단다.. 나중에 기억하지 못할 때 좀 읽어보려고 말이야. 그리스와 더불어 민주주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의 원로원과 집정관의 알력다툼을 보고 있노라니,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본모습은 소수권력을 가진 자들의 다툼인가 싶었단다. 오늘은 이만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가이우스 마이우스의 첫 집정관 직만큼 당사자에게 중요한 집정관 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책의 끝 문장: 토가 칸디다를 입고 로마에 출두하지도 않은 사람이 3년만에 집정관으로 다시 뽑히질 않나, 최하층민을 군에 입대시키질 않나, 대신관과 조점관을 선거로 뽑질 않나, 누가 무엇을 통치할지에 대한 원로원 결정을 평민들이 뒤엎질 않나, 원로원에서 로마군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질 않나, 신진 세력과 신출내기들이 실권을 행사하질 않나, 이런 젠장맞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보 2019-08-28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요
 
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드디어 건드렸단다. 해설서 1권 포함해서 무려 22.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고 나서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22권이나 되어서 망설였어. 읽기 시작하면 쭉 읽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읽기에도 벅찬 22권짜리 소설을 쓴 사람은 바로 콜린 매컬로라는 분이란다. 제목만 얼핏 알고 있는 <가시나무새>라는 드라마의 원작 소설을 쓰신 분이래. <가시나무새>라는 소설이 전세계적으로 엄청 팔렸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사실 콜린 매컬로는 <가시나무새>의 지은이보다 역사소설가로 더 유명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그의 소설들 중에 가장 대표작은 바로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야. 고증에만 13, 집필에만 거의 20년에 걸쳐 썼다고 하니, 그 집념이 대단한 것 같구나.

이 소설의 시작이 기원전 110년이니까, 2000년도 더 된 이야기를 썼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 같구나. 유명한 사람들 몇 명만 기억하고 있을 그 시절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복원해서,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알게 해 준 거야. 로마 이야기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시리즈가 유명한데, 시오노 나나미의 위안부 발언 등 그의 본모습을 알게 되어 싫어졌단다. 이제 그 방대한 이야기 그 시작을 이야기해줄게.

1.

이야기의 시작은 기원전 110년 로마에서 시작된단다. 로마는 일년에 2명씩 집정관을 뽑고, 그 집정관을 중심으로 하고, 오늘날 의회 역할을 하는 원로원이 국가를 이끌어간단다. 그 원로원을 견제하는 평민회라는 것이 있고, 평민회의 대표급인 호민관 10명이 있는데, 호민관 역시 1년에 한번씩 선출을 한단다. 기원전 110년에는 수석집정관으로 마르쿠스 미누가우스 루푸스가 선출되었고, 차석집정관으로 스푸리우스 포스투미우스 알비누스가 선출되었어.

그런 로마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집안 이야기부터 해보자꾸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니란다. 로마의 이름 체계는 좀 복잡한데, 같은 이름들을 많이 써서 혼동되는 경우가 있단다. 가장 먼저 앞에 오는 이름은 개인 이름으로 프로아노멘이라고 해. 그렇다고 오늘날처럼 개인 이름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었어. 몇 개 안 되는 것을 같이 사용했단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집안에서도 첫째 아들은 대부분 섹스투스라고 했고, 딸들의 이름은 모두 율리아라고 했어. 그렇게 때문에 이 소설을 읽을 때 집중하지 않으면 누가 누군인지 혼동할 때가 있단다. 그리고 두번째 오는 율리우스에 해당하는 이름은 노멘이라고 하는데, 씨족명이야. 오늘날 영어의 패밀리 네임에 해당하겠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붙은 카이사르와 같은 것은 코그노멘이라는 것이 있는데, 로마 남성에 붙였던 이름으로 개인이 알아서 붙이는 경우도 있고, 율리우스 집안처럼 대대로 같은 코그노멘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단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할아버지란다. 가이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부인은 마르키아이고, 두 아들 섹스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2세가 있어. 가이우스에게는 두 딸의 율리아가 있어둘째 딸은 언니와 구분하기 위해 율릴아라 불렀단다. 율리우스 집안에서 집정관을 배출한 것은 400년이 넘었어. 가이우스는 하지만 야심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야심만 가지고는 안되었어. 로마에서 어떤 직책을 맡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어. 가이우스 집안은 집정관은커녕 두 아들을 원로원에 보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어.

가이우스는 원로원 의원 마리우스를 좋게 보았어. 그 사람은 이미 마흔 일곱 살로 집정관을 하기에 나이가 좀 많았지만, 그의 능력을 높게 보았어. 젊은 시절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서 많은 공도 세웠어. 그때 마리우스는 누만티아 전투에 참석해서, 지금의 집정관인 마르쿠스 미누가우스 루푸스와 친분을 쌓아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와서 법무관이 되었고, 집정관이 되려고 했지만, 그의 앙숙 메텔루스 집안의 반대로 무산되었단다. 그리고 마리우스는 로마 출산이 아니라 이탈리아 출신이었거든.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초대했어. 가이우스는 마리우스에게 집정관이 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했어. 율리우스 가문은 그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전통 있는 집안이었거든.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딸들 중에 하나와 결혼을 하라고 했어. 그 대신 아들의 자산을 지원해 주고, 나머지 딸의 결혼지참금도 요청했어. 마리우스는 나쁜 거래는 아니라고 생각했어. 마리우스는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학식을 갖춘 첫째 율리아를 선택했어. 가이우스는 미모를 갖춘 것이 둘째 율릴라라서 둘째를 고를 줄 알았는데, 마리우스는 현명한 아내가 필요했던 거야.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 마리우스는 아내가 이미 있었어. 마리우스는 그 아내와는 애정 없는 지루한 결혼 생활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었지. 둘 사이에는 자식도 없었어. 마리우스는 곧바로 이혼을 하고 가이우스의 딸 율리아와 결혼을 했어. 이제 율리우스 집안과 관계를 맺게 되었단다. 든든한 후원군이 생긴 거야. 다행히 가이우스의 첫째 딸 율리아도 마리우스를 마음에 들어 했어. 비록 나이가 자신보다 서른 살 가까이 많았지만, 말이야.

2.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웃 중에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어. 앞으로 이 사람은 짧게 술라라고 부를게. 술라는 귀족집안이었지만, 술라의 아버지가 술꾼으로 집안의 모든 돈을 탕진했어. 술라의 아버지는 클리툼나라는 여자와 재혼해서 살고 있었는데, 이 클리툼나는 돈이 많은 사람이었어. 술라의 아버지와 결혼을 하긴 했지만, 사실은 술라을 보고 결혼한 것이야. 클리툼나는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거든. 술라의 아버지가 결국 술병으로 일찍 죽고 나서, 클리툼나는 술라와 같은 침대를 사용했어.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동성 애인 니코폴리스와 같이 지냈어. 클리툼나, 술라, 니코폴리스는 모두 한 침대를 사용하는 그런 사이였어. 낯 뜨겁구나.

술라의 아버지가 술꾼이다 보니 어린 시절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어. 다행히 미르토라는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었어. 미르토는 술라가 귀족집안이고 재능을 알아보아서, 돈도 받지 않고 가르쳐 주었어. 자신이 죽을 때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책들을 유산으로 남겨주기도 했어. 아버지가 그 책들을 모두 팔아서 술을 사먹긴 했지만 말이야. 그때 술라는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어. 계모 클리툼나에게 유일한 혈육인 조카 스키쿠스가 있는데, 술라의 집에 와서 눌러 지냈어. 술라와 사이가 좋을 수가 없지. 술라는 몰래 스티쿠스의 음식에 독을 조금씩 타서 먹였어.. 남들이 보기에는 스티쿠스는 중병에 걸려 죽는 것처럼 서서히 몸이 망가지면서 죽어갔단다.

술라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웃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가이우스의 둘째 딸,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있는 율릴라의 레이다에 술라가 걸렸어. 율릴라가 술라를 좋아하게 된 거야. 술라가 산책을 하는 곳에 따라온 율릴라가 술라에게 사랑고백을 했지만, 술라는 거절했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 술라도 싫지는 않았어. 율릴라는 자신이 살이 쪄서 술라가 싫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날부터 단식에 들어갔단다. .

.

3.

아프리카 땅 지역에 누미디아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로마의 속국에 해당하는 나라인데, 그 누미디아의 왕 유구르타가 로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했어. 마음대로 이웃나라를 쳐서 차지한 거야. 로마에서 조사를 나오자, 뇌물로 무마시켰어. 하지만 로마 원로원에서는 그를 호출했어. 로마에 와서 조사를 받으라는 것이지. 그렇게 로마에 왔다가 집정관 취임식과 시간이 겹쳐서 로마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어. 로마원로원은 누미디아 왕을 바꾸기로 결정했단다.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것이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란 어쩜 그리 변하지 않는 것인지그런데 로마에 있던 유구르타도 그 소문을 들었어. 부하 보밀카르를 시켜서 예비 왕 후보자를 죽이라고 했어. 보밀카르는 청부살인업자를 시켜서 그 일을 성공했단다. 나중에 정보원이 배신하여 보밀카르가 감옥에 갇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보석으로 빼내면 되었어. 그리고 유구르타는 누미디아로 돌아갔단다.

해가 바뀌어 기원전 109. 수석집정관으로 마리우스의 앙숙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가 되었어. 메텔루스는 누미디아와 전쟁을 위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출동했단다. 전쟁 경험이 많은 마리우스에게도 도움을 청했어. 앙숙이긴 했지만, 집정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마리우스도 함께 누미디아로 향했어. 이때 카이사르의 두 아들도 함께 갔단다. 한편 율리아는 첫아이를 낳았어. 수석 집정관이 누미디아로 간 사이 로마는 차석집정관인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이때 게르만족의 대거 침입이 있었단다. 실라누스가 군대를 소집해서 막았지만 역부족이었어. 게르만족은 전투에서 승리를 했어.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용히 물러났어.

.

4.

술라는 대단히 무서운 야심을 가진 사람이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계모의 유일한 혈육을 몰래 죽였잖아. 술라는 애인 이코폴리스와 함께 소풍을 갔단다. 니코폴리스가 독버섯을 따는 것을 보고도 술라는 가만히 있었어. 그리고 니코폴리스는 집에 와서 그 독버섯을 요리해 먹었지. 그렇게 니코폴리스는 죽었어. 놀라운 것은 니코폴리스의 유언장이었어. 그녀는 가족이 없었기에 자신의 재산을 술라에게 남긴다는 유언장을 썼던 거야. 그런데 그녀의 재산이 만만치 않게 많았던 거야. 클리툼나의 집에 오기 전에 결혼을 했었는데, 남편이 죽으면서 니코폴리스에게 재산을 많이 남겼었거든.

술라는 이제 원로원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이 생겼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어. 니코폴리스의 죽음으로 깊은 상심에 빠진 클리툼나에게도 작업을 시작했어. 클리툼나에게 별장에 가서 쉬라고 하면서 데려다 주었어. 그리고 클리툼나를 벼랑에서 밀어서 죽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쿨리툼나가 우울증 끝에 자살했다고 생각했어. 술라는 자신을 의심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완벽하게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고 클리툼나를 죽였던 거야. 클리툼나의 유언장에도 술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단다.

술라는 겉으로는 슬픔에 빠져 있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어. 술라는 카이사르를 찾아갔어. 율릴라와 관계를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 그런데 오랜 단식으로 피골이 상접해 있는 율릴라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랬지. 술라는 율릴라가 왜 단식을 하는지 이야기하고 자신이 율릴라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어. 카이사르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어. 그렇게 술라와 율릴라는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이제 술라는 많은 재산 뿐만 아니라 유력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게 된 거야.

.

5.

해가 바뀌고 기원전 108년이 되었단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와 퀸투스 호르텐 시우스가 집정관이 되었어. 누미디아에서는 전쟁은 교착상태로 길어지고 있었어. 메텔루스가 총대장이긴 한데,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갈등을 빚고 있었지. 기원전 108년 거의 다 가도록 누미디아 전쟁에서는 큰 성과가 없었어. 마리우스는 자신이 집정관이 되어 총지휘관이 되어 전쟁을 해야겠다고 했어. 그래서 집정관 선거를 위해 로마 복귀를 메텔루스에게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어. 마리우스는 로마에 편지를 써서 전쟁의 진행 사항에 정확히 전달하려고 했어. 메텔루스가 무능해서 전쟁이 지지부진하고, 그나마 전투 대부분을 마리우스가 이끌고 있다고 말이야.

메텔루스는 전쟁보다 상대방을 교란시키려고 했어. 유구르타의 최측근인 보밀카르를 포섭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하려고 했어. 하지만 이 계획은 발각이 되어 보밀카르는 죽음을 당했단다.

마리우스는 선거 며칠 전에 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어. 그렇게 집정관에 출마를 하게 되었단다. 장인 카이사르를 만났는데, 술라가 둘째 사위가 될 거라는 소식에 약간 놀랐단다. 카이사르는 술라를 마리우스의 정무관으로 해달라고 청탁을 했어. 술라와 율릴라는 결혼을 하고, 마리우스도 술라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어. 이제 술라는 배우와 같은 생활을 시작했단다. 방탕했던 과거의 모습을 잠시 갖추고, 귀족 집안의 아들과 같은 그런 모습으로 말이야.

….

, 여기까지가 1권의 이야기란다. 이름들이 비슷비슷해서 헛갈릴 것 같구나. 아빠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기억이 흐려져 아마 엄청 헛갈릴 거야. 줄거리도 금방 까먹을 것 같아서 좀 자세히 썼는데, 나중에 읽어보고 무슨 내용인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제 여름이 서서히 꼬리를 감추려는 것 같구나. 세월은 정말 빠르구나로마의 그 시절로부터 2000년이 흘러왔으니, 2000년도 흘러가겠지

PS:

책의 첫 문장: 신임집정관 둘 중 어느 쪽과도 개인적인 연고가 없었기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그의 두 아들은 단순히 그들의 집과 더 가까운 곳에서 출발하는 행렬을 따르기로 했다.

책의 끝 문장: “알아요.” 메트로비오스가 말하고 손님의 팔을 들어올려 자신의 양 어깨를 감쌌다. “당신은 내년에 누미디아로 갈 거고, 행복해질 거예요.”


로마인들은 무슨 일에든 위원회나 위원단을 꾸리기 좋아했다. 지구상 저 끝에도 소규모 사절단을 파견해서 진상을 조사하고, 고견을 제시하고, 판정을 내리고, 개선을 지시했다. 보통은 그냥 군대를 앞세워 쳐들어갈 일에도, 로마인들은 갑옷이 아닌 토가를 걸치고 긴급 소집으로 모은 병사들이 아닌 릭토르들의 수행을 받으며 나타났다. 그러고 나선 명령을 공표한 다음, 마치 뒤에 천만 대군이라도 끌고 온 양 상태가 자기들에게 복종하리라 기대했다. 또 대부분의 경우 상대는 그들에게 복종했다. - P70

카이사르가 아내를 쳐다봤다. "자기 자식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정말 드물고 귀한 기쁨이 아니겠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타고난 본능이지. 하지만 자식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마음은 절대 저절로 생기지 않소." - P14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나무 2019-08-25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마스터스 오브 로마> 대장정에 뛰어드신 겁니까?
저는 해설서까지 22권의 책을 꽂아놓은 책장만 봐도 가슴이 벅차서 정작 읽지는 않고 있습니다. ㅎㅎㅎ;;;;
언젠가는 읽겠지... 요런 마음인데요. 북홀릭님께서 멋지게 이 대장정의 끝을 알려주시면 저도 그때는 용기내서 한번 시작해 보려구요~ ^^
북홀릭님... 무조건 응원하겠습니다. ^^

bookholic 2019-08-26 00:07   좋아요 1 | URL
응원 감사합니다~~~^^
저도 <마스터스 오브 로마>를 읽기 시작하면서 한번에 쭉 읽는 것이 아니고,
천천히 읽는 계획을 세웠답니다~~~
시작은 괜찮았던 것 같아요...
설해목님도 늘 즐거운 독서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