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노년에 한명회가 이런 시를 남긴다고요.

    청춘에는 사직을 붙들고,   (靑春扶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   (白首臥江湖)

이게 압구정에서 지은 시예요.

한명회가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는 건데, 김시습이 이걸 보고 재치있게 패러디를 해요.

     청춘에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靑春亡社稷)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네.         (白首汚江湖)

중간에 글자 하나를 바꿔서 한명회를 비꼬는 거죠.


(118)

한명회 하면 과거에도 계속 떨어지고, 칠삭둥이에 못생긴 이미지가 보편적이잖아요. 사실 한명회는 명문가의 후손입니다. 청주 한씨 집안의 귀공자였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명문가 자제들하고 놀죠. 가장 친한 친구인 권람은 안동 권씨고, 친구들이 전부 대표적인 개국공신 집안 출신이에요. 한명회는 이렇게 집안 배경도 좋고, 머리도 좋은데 과거시험만 봤다 하면 자꾸 떨어졌대요. 아마 필기시험에 약한 타입이었나 봐요.

그때 또 재미난 일화가 있어요. 한명회가 개성에서 경덕궁지기를 할 적에, 명절이라 개성부 관원들이 만월대에서 연회를 하다가 개성으로 파견된 서울 출신 관원들끼리 계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와요. 이때 한명회가 자기가 끼워 달라고 하는데, 궁궐지기는 좀 미천하니까 무시한 거죠. 그런데 계유정난 후에 한명회가 일등 공신에 책봉되고 계속 출세하니까 이 사람들은 아쉬운 거예요. 그때부터 하찮은 지위나 세력을 믿고 남한테 오만하게 구는 사람들을 송도계원이라고 불렀대요.


(187-8)

어우동이 여러 사람과 간통한 혐의가 있기는 했지만, 간통죄로 사형시키는 건 법규에 없어요. 그런데 성종의 강력한 의지로 어우동을 교형에 처하죠. 이때가 바로 인수대비가 <내훈>을 쓰고 성리학적인 이데올로기로 나라를 만들어가던 바로 그때입니다. 따라서 어우동처럼 방탕한 여성은 죽음으로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절묘하게도 어우동이 처형당한 게 1480년이고, 폐비 윤씨가 사약 받은 게 1482년이에요. 시기가 맞물려 있습니다. 결국 성리학 이념이 강화되고 여성다운 여성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왕실에서 희생된 사람이 폐비 윤씨였다면, 민간의 희생양은 어우동이었다는 거죠.


(204)

그 사초의 작성자가 김일손이고,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이 쓴 게 <조의제문>이에요. 이 부분에서 많이들 실수하는데 조, 의제문 이렇게 띄어 읽어야 해요. 어쨌거나 의제는 부하 항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이에요. 세조를 대놓고 비판하지는 못하니까 주군을 죽인 항우 사례를 빗대서 단종을 죽인 세조를 은근히 비판한 거죠. 그게 <조의제문>인데 김일손이 이 글을 사초에 실은 거예요. 세조에 대한 강한 반감의 표시였죠. 결국 이게 공개되고 연산군이 이를 왕에 대한 모독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사초 작성자인 김일손 비롯한 관련자들이 대거 체포됩니다.


(225)

1450, 세종이 승하했다.

맏아들 문종은 유언에 따라 왕릉 조성에 들어간다.


세종 생존에 마련해 두었던 장지는 태종이 잠들어 있는

헌릉 근처, 그런데 그 터를 두고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장남을 잃을 땅이라는 것이다.


   최양선이 수릉의 혈 자리가 좋지 못해

   손이 끊어지고 맏아들을 잃는다고 하였다.

-       <세종실록> 25 2 2


풍수가들의 예언은 세종의 장남 문종의 죽음을

시작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문종의 외아들이었던 단종마저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고 단종을 밀어내고 왕이 된 세조 역시

맏아들 의경세자를 잃고 마는데……


왕실의 대를 이을 장남들의 잇따른 죽음,

결국 세종의 영릉은 여주 지역으로 옮겨지게 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0-03-21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자 하나 바꾼 패러디 엄지 척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주말풍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초딩 2020-03-21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앳 홈 에 책과 함께요

bookholic 2020-03-21 14:11   좋아요 0 | URL
초딩님도 즐거운 주말 되시길... 즐독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역사학계 큰 별이 졌다˝..각계서 이이화 추모 잇따라 | 다음뉴스
https://news.v.daum.net/v/202003201834136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리플리 4 : 리플리를 따라간 소년 리플리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4권을 읽었단다. <리플리> 시리즈 5권을 아빠가 연달아 읽고 있지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이 시리즈를 완성하는데 1955년부터 1991년까지 36년이 걸렸다고 하는구나. <리플리> 4권은 1980년에 출간되었구나. 꽤 오래된 소설이구나. 책소개를 다시 읽어보니 리플리가 현대 문학사에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사이코패스로도 부른다고 하는구나. 카리스마와 사이코패스를 같이 쓸 수 있다니독특한 캐릭터는 독특한 캐릭터야.

3권까지의 책을 읽어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런데 4권에서는 조금 변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범죄를 저지른 소년을 감싸는 행동을 보였어. 범죄를 저지른 이를 감싸는 행동이 착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읽다 보면 리플리가 선한 이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단다. 3권부터 그런 조짐이 조금씩 보였는데 말이야. 리플리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1.

그럼 줄거리를 짧게 이야기해줄게. 미국 식료품업계 재벌 존 피어슨이라는 사람이 벼랑에서 추락해서 죽은 사고가 일어났단다. 존 피어슨은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하는 장애인이었지만, 사업 수완이 좋아서 업계 최고의 재벌이 될 수 있었어. 그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또는 실수에 의한 사고인지 확실치 않았는데, 결국 사고사로 잠정 결론지어졌단다. 그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조니이고 둘째 아들은 프랭크였어. 사고가 일어나고 난 후, 둘째 프랭크가 사라졌는데, 형의 여권을 가지고 프랑스로 잠적을 했단다. 언론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둘째 아들이 잠적한 것으로 보고 있었어.

하지만, 사실은 달랐단다. 프랭크가 아버지를 벼랑으로 밀어 버린 것이란다. 그리고 프랭크가 프랑스로 온 이유는 바로 톰 리플리를 만나러 온 거야. 서로 알고 있는 사이는 아니고, 프랭크는 예전 신문 자료 등에서 톰 리플리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의문의 죽음들 곁에 톰 리플리가 있었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다그런 기사를 통해서 톰 리플리에 묘한 존경심마저 일었던 거야. 프랭크는 가명으로 톰 리플리를 찾아왔지만, 존 피어슨 사고와 프랭트의 잠적을 뉴스로 접한 뒤여서 인지 톰은 곧 그가 프랭크라는 것을 알아챘어.

프랭크도 톰 리플리 앞에서 숨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범행 사실을 이야기했단다. 자신이 아버지를 벼랑에서 밀어서 죽였다고톰은 마치 자신의 옛모습을 보는 듯했어. 프랭크를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고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은 완전범죄가 될 수 있으며, 프랭크에게 안심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했단다. 미국으로 돌아가라면서 자기 돈을 써가며 가짜 여권도 만들어주었어.

 

2.

형 조니는 자신의 여권이 프랑스에 발견되어 동생을 찾으러, 사설탐정과 함께 파리로 날아왔단다.

톰 리플리는 프랭크를 설득해서 미국에 돌아가도록 했지만, 아직 마음에 확신을 하지 못한 프랭크에게 베를린 여행을 제안하고, 베를린 여행 다음에 프랑스로 돌아온 후 미국으로 가기로 했어. 그런데 베를린에서 프랭크가 납치범들에게 납치를 당했어. 납치범들의 순전히 프랭크의 몸값을 받아내려는 놈들이었어. 톰은 파리에 도착한 조니와 사설탐정인 셜로와 연락해서 프랭크의 납치 소식을 알려주었고 그들과 함께 프랭크를 구하기로 했어.

납치범들로부터 전화가 왔어. 거금을 요구하는 것이었어. 그런데 납치범들은 아마추어였단다. 프로급의 사이코패스인 톰 리플리를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지. 약속한 거금을 들고 톰 리플리는 약속장소에 나갔다가 납치범들 중 한 명이 혼자 오는 것을 보고, 몰래 그를 죽였단다. 납치범들이 여럿이라 한 명이 죽었다고 그들이 돈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납치범들은 다시 연락이 왔어. 두 번째 약속에서는 톰 리플리가 여장까지 하면서 그들의 아지트까지 쫓아가서 프랭크를 구출하게 된단다. 돈도 잃지 않고..

프랭크를 데리고 프랑스로 돌아왔어. 형 조니와 셜로를 만나 프랭크를 인계했단다. 톰 리플리는 왜 그렇게 프랭크를 도와주려고 했을까. 자신의 불우한 어린 시절이 떠올랐던 것은 아닐 거야. 프랭크는 부잣집 아들이었으니까아무래도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려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잘만 궁리하면 완전범죄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것을 프랭크에게 일깨워주려고? 이번에는 처음이라서 불안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좀더 쉽다고 말이지참 무서운 사람이구나.

톰 리플리는 끝까지 프랭크를 감쌌단다. 프랭크가 미국에 같이 가 달라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어. 미국 고향으로 돌아온 프랭크.. 그런데 톰이 생각했던 것보다 프랭크는 정신력이 강하지 않았어. 계속 아버지를 죽인 것에 죄책감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어. 결국 아버지가 죽은 벼랑에서 자살을 시도했단다. 그것을 눈치챈 톰 리플리가 극적으로 막았고, 톰 리플리는 프랭크에게 안심시키고 설득시켰어. 프랭크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 것 같아, 안심한 리플리하지만 프랭크는 리플리가 될 수 없었단다. 결국 그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했단다. 그런 프랭크를 본 리플리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가 마음먹으면 사람을 죽일 수도,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그 마음에 큰 흠집이 나지 않았을까. 반성하고 자신의 범죄들을 자수하면 좋으련만이 똑똑한 사이코패스는 5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를 지을까. 과연 그의 저지른 범죄들이 만천하에 드러날런지

5권도 이야기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 톰은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마룻바닥을 기어서 욕실 문간을 지나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책의 끝 문장 : 프랭크에게 시간은 이제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88)

우리는 우리만의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요. 그는 일이 나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우리가 처한 상황에 생각을 적용해서 상황을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옥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잘못이에요. 밀턴이 그 글을 썼던 시기에는 급진적인 생각으로 보였겠죠. 악마는 모든 것을 예정하는 하느님을 믿는 대신,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스스로의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니까요. 그건 운명에 대한 결정권을 갖지 못하고 정해진 운명을 따르는 피창조물을 넘어서서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는 거죠.


(198)

너무 이상해. 헬레가, 말한다. 제대로인 게 아무것도 없어. 우리 어렸을 때 기억나, 비트? 상황이 아무리 나빴어도 우린 늘 똘똘 뭉친 팀이었잖아? 나는 계속 그 천이. 펠트가 기억나. 스웨터나 뜨개질 조각에 비누칠을 해서 계속 비비다보면 실이 줄줄이 뒤섞이면서 도저히 풀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잖아.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각자 자기 멋대로 뜨개질을 하는 수백만 명의 미친 사람들 같아. 이 남자는 벨트를 만들고, 이 여자는 자기가 냄비 장갑이나 뭐 그런 걸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크고 흉하고 거지 같은 담요를 갖게 되었는데, 그걸로는 우리를 다 덮을 수도 따뜻하게 할 수도 없는 거야. 헬레는 말을 멈추고 웃더니 나지막이 혼잣말을 한다. 참 지랄맞은 비유다. 헬레.


(247-248)

비트는 각진 얼굴에 주먹이 다부진 건장한 아이들을 바라본다. 가장 오래된 유토피아주의자들이야. 언젠가 해나가 추수를 도와주러 온 아미시 남자들을 보며 말했었다. 저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가장 완벽한 삶을 몇 세대에 걸쳐 살고 있어. 비트는 동물 고기로 만든 음식과 힘든 노동, 엄청난 대가족, 얌전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 사촌들을 상상한다. 늘 가족과 함께 살면 얼마나 안심이 될까. 나와 닮은 사람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신 고통을 줄 만큼 화를 내고 선물을 줄 만큼 사랑을 하는 신, 내가 속삭이는 모든 비밀을 다 귀담아들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귀가 있는 신, 나 자신을 비우고 나의 삶으로, 무한히 더 가벼운 삶으로 돌아가게 해줄 그런 신 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얼마나 안심이 될까. 그는 그가 평생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실감을 느낀다.


(280-281)

그는 학교에서 암실을 청소하며 그의 꿈은 어디로 간 것인지 생각해본다. 그리 큰 꿈도 아니었다. 짊어지고 가기에 그리 무거운 꿈도 아니었다. 아르카디아에서 받은 유산 하나는 그가 추구하는 행복이 세상의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야망이란 그저 안전, 안정, 음식과 쉴 곳과 돈이 넉넉한 생활, 책과 사랑, 예술을 통해 진실을 추구할 수 있는 사치, 그 정도였다. 더 깊이 바라보는, 공감으로 곧자 이어지는 길을 걷는 사치. 그것은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들로 보였다. 도시에서, 재능 있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는 곳에서 그의 조용하고 느린 추구는 야망 없음의 한 형태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그나마 그것조차 헬레가 떠난 후엔 사라졌다.


(409)

둘 다 갖길 원하면 실패하게 되어 있어. 글로리가 말한다. 그녀가 비트를 쳐다본다. 난 당신들이 여기 살던 때를 기억해요.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도 큰 논쟁거리였죠.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요. 우리는 공포에 질린 채 지켜봤어요! 나체족, 마약, 요란한 음악! 당신네들은 아기들 같아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밭을 갈 줄도 몰랐죠. 우리는 당신들이 굶게 내버려둘 수 없었어요. 마침내 우리는 회의를 열고 당신들이 먹고살 수 있을 정도로만 도와주자고. 그러다 스스로 해체되도록 내버려두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그리고 당신들이 결국 해체되었을 때, 우리 중에는 우리가 아주 현명했다고 느낀 사람들도 있었죠. 자유가 너무 많으면 공동체는 썩기 마련이에요, 그것도 아주 빨리. 그게 아르카디아의 문제였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