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임승수의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시리즈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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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몇몇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공대 출신인 아빠가 무릎을 치게 할만한 책은 없었어. 좀더 쉬운 책을 찾아보고자 두리번거리다가 쉽고 재미있다는 평을 받은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라는 책을 알게 되어 이번에 읽었단다. 제목부터가 원숭이를 이해시킬 수 있다는 지은이의 자신감이 배어 있는 듯 했어. 읽기 전에 이 책을 읽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원숭이보다도 못한 것인가? 하는 걱정이 들었단다.

소문대로 쉽게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잘 써 있는 것 같더구나. 비록 깊이는 깊지 않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자본론이란 이런 거야.. 하고 간단히 이빨을 깔 수 있게 해 주는 책 같았어. 아빠의 기억력이 바람에 쉬 날라가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자본론의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어. 놀랍게도 이 책의 지은이 임승수님도 공대 출신이더구나.


1.

전세계가 자본주의의 악마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단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편의와 행복을 주는 듯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지구를 조금씩 망가뜨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되었어. 그리고 편의와 행복을 위해서는 꾸준히 누군가와 싸워서 이겨야 하고, 누군가를 위해 꾸준히 노동력을 팔아야 한단다. 이런 자본주의가 생겨나 세계를 집어삼킨 것이 길어야 몇 백 년 전이란다. 자본주의의 위험성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경고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칼 마르크스라는 사람이란다.

그럼,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생산관계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로 형성된 사회라고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단다. 노예제는 주인과 노예. 봉건제는 영주와 농노.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 노동자가 노예와 농노와 무엇이 다를까. 노예와 농노가 주인과 영주로부터 착취를 당하느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이야기를 할 거야. 그러면 노동자도 자본가에게 착취를 당하느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답변을 망설일 수도 있을 거야. 왜냐하면 노동자는 노예나 농노와 달리 자유의지가 있거든. 노동자가 자본가의 종속되지 않고 싶으면 안 해도 되거든. 그리고 때론 노동자가 자본가를 선택할 때도 있고 말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본가가 돈을 축적할 수 있는 이유는 착취에 있단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노동자의 노동시간(노동력)을 착취하는 거지.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왜 중요하냐? 그 노동시간이 바로 상품의 가치를 만들어내거든. 그 관계는 조금 있다가 다시 이야기하고, 대기업이 돈을 잘 벌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간단히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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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임직원 10만 명이 일하는 대기업이 있다고 합시다. 이런 방식으로 직원 1명당 1시간씩 빼앗을 수 있다면 하루에 총 몇 시간을 빼앗나요? 임직원이 10만 명이니 무려 10만 시간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서 하루에 10만 시간씩 일을 해준다면 내가 부자가 되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물론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 잘 팔린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따지고 보면 노예 주인도 노예한테 시간을 빼앗았고, 봉건영주도 농노에게 시간을 빼앗았죠. 마찬가지로 <자본론>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본가가 노동자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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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품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될 수 있단다. ,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있어야 해. 다시 말해서 쓸모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다른 것과 교환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해. 그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중에 노동이 꼭 필요하단다. 그래서 상품을 노동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그 상품을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그 상품의 가격이 결정된단다. 사람마다 상품을 만드는데 걸리는 노동시간이 다르니까, 여기서 이야기하는 노동시간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 즉 평균 노동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돼.

..

, 그럼 자본이란 무엇인가? 좀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자본은 화폐와 어떻게 다른가. 돌려 이야기하지 않을게. 자본은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다음 식으로 설명하는 게 낫겠구나.

M-C-M’

여기서 M money, 돈의 약자이고, C commodity, 상품의 약자란다. 그러니까 돈으로 상품을 만들고, 그 상품을 팔아서 또 다른 돈을 만들어내게 된단다. 그렇게 만들어낸 돈 M’는 처음의 돈 M보다 많게 되는데, 그것을 바로 이윤이라고 하는구나. , 이런 마법의 비밀은 무엇이냐..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바로 자본론의 핵심중의 하나란다. 그렇게 돈으로 상품으로 만들어 처음의 돈보다 많은 돈을 만들어낼 때 이때의 돈을 바로 자본이라고 하는 것이란다. 결론부터 이야기해보면 이윤은 노동자의 잉여노동으로 만들어진다. 위 식을 좀더 자세히 풀어 쓰면

M-C(LP,MP)-P-C’-M’

LP는 노동력, MP는 생산수단, P는 생산과정, C’는 상품. 먼저 처음 M 자본으로 노동력(LP)과 생산수단(기계, 원료)을 사야 한단다. 그리고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이용해서 생산과정(P)을 통해 상품(C’)을 만들어낸단다. 마지막으로 상품을 판 돈을 만들어내고 그 돈(M’)은 처음 자본(M)보다 많은 돈이 되는 것. , 이윤을 만들어낸단다. 자 그러면 어떻게 이윤을 만들어낸 것인가. 책에 나온 예를 들어 알려줄게. 아빠가 줄여서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럼 시작해볼게. 빵 한 개를 만드는데 필요한 밀가루는 1kg(생산수단)이고 노동시간은 1시간(1노동시간)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제빵기계 1대는 10,000 노동시간이라고 하고, 수명은 빵 10,000개로 하자꾸나. 그러니까 빵 10,000개를 만들면 그 제빵기계는 더 이상 못쓰는 거야. 다음, 1노동시간은 10,000원의 가치가 있다고 하자꾸나. 그럼 시작해보자꾸나. 노동자는 하루 8시간을 일한다고 하자. 그리고 노동자는 빵 8시간에 빵 8개를 만든다고 하고, 그 노동의 대가로 빵 1개를 받는다고 하자꾸나. , 이제 하루에 만든 빵 8개의 가치를 계산해 보자꾸나. 8개를 만들려면 밀가루 8Kg이 들어가고, 밀가루 8kg을 얻기 위해서는 8 노동시간이 필요하단다., 그리고 제빵기계가 쓰였잖아. 제빵기계도 노동시간으로 환산을 해야 하는데, 그 제빵기계가 빵 10,000개를 만들면 수명이 다 되는 거야. 제빵기계의 가치가 10,000노동시간이니까, 제빵기계가 빵 한 개에 해당하는 노동시간은 1시간이 된단다. (10,000 나누기 10,000) 그래서 빵 8개에 대한 제방기계의 노동시간은 8시간이 된다. 그리고 빵 8개를 만들기 위한 노동자의 시간도 8시간이 된단다. (노동자 한 명이 하루에 8시간동안 빵 8개의 빵을 만든다고 했으니까…) 이것을 다 더하면 빵 8개의 가치는 밀가루 8Kg - 8노동시간. 제빵기계 빵 8개분 - 8노동시간. 8개 만드는 노동자의 노동시간 - 8노동시간. 모두 더하면 24노동시간이고, 돈으로 보면 24만원이 된단다. 아까 1노동시간을 만원이라고 했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위 수식에서 M’ 24만원이 된단다.

그러면 자본은 얼마인지 계산해 보자. 밀가루 8kg 8노동시간. 일당으로 빵 1개를 주었으니, 노동력은 빵 1개의 가치인 3노동시간이야. 제빵기계는 빵 8개에 대한 가치는 8노동시간. 그러니까 두 번째 C는 모두 19노동시간이 된단다. 그러니까, 자본금은 19노동시간에 대한 19만원이 된단다. 정리해서 이야기하면, 자본금 M 19만원에서 빵을 판 돈 M’ 24만원을 만들어낸 것이란다. 이 돈의 차이 5만원을 이윤이라고 했지? , 5만원은 어디서 나온 것이지? 그것은 바로 노동력에서 나온 것이란다. 노동자는 8시간을 일했는데, 일당은 3시간에 대한 노동력에 대한 것만 받은 것이란다. 나머지 5시간이 바로 자본자의 이윤 5만원이 되는 것이란다.

위 예에서 노동자가 8시간을 일하면 3시간은 나의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5시간은 자본의 돈을 불리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란다. 이것이 바로 착취가 되는 것이란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임금을 노동의 대가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단다. 왜냐하면 노동은 8시간을 일했는데, 임금은 3시간에 대한 것만 받았잖아. 그러니까, 임금은 노동력에 대한 대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란다. 여기서 3시간은 필요노동, 5시간은 잉여노동 또는 잉여가치라고 한단다. 이것을 정의한 것이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이란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이윤은 빼앗긴 착취당한 노동, 즉 잉여가치에서 나온다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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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아무튼 이번 시간에는 이윤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이윤은 빼앗긴, 착취당한 노동(잉여가치)’에서 나온다는 중요한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잉여가치론입니다.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라는 것도 알았죠. 오늘 다룬 내용은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이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필히 복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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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만약 자본가가 야근을 시킨다고 해보자. 그러면 당연히 잉여가치가 그대로 늘어나기 자본가의 이윤도 더 늘어나겠지. 노동자에게 야근 수당을 주어도 마찬가지가 돼. 2시간 야근 시키고, 1노동시간 만큼 야근수당을 준다고 해도 위 예에서 하루에 이윤은 5노동시간에서 6노동시간으로 늘어나게 된단다. 그래서 자본가는 이윤을 챙기게 된단다. 그래서 자본가는 노동자의 야근을 좋아하는 거야.

그럼, 자본가가 이윤을 더 많이 가져가려면 어떻게 하는가. 그건 바로 노동자를 착취하면 되는 것이야. 그래서 착한 자본가는 망한다는 소리가 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란다. 그것은 바로 성과급제를 도입하는 것이란다. 노동자들간에 경쟁을 시키고, 특별보너스제를 도입하게 되면, 스스로 노동력을 늘리게 된단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노동력을 착취하게 되는 거야. 남들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더 많은 노동시간을 착취당하게 되는 것이고, 자본가의 이윤은 증가하게 되는 것이란다. , 아빠가 다니는 회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회사가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있단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성과급제가 사실은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고 있는 제도라니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야. 원래 인간은 본성적으로 생존에 따라 협동성을 가질 수 있다고 했어. 그러면서 인디언들의 예를 들었단다. 인디언들에게 문제를 주면 늘 협력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대. 그들에게 있어서 협력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이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단다. 그래야만 더 잘 생존할 수 있거든.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본가는 노동자들을 더 착취하려고, 경쟁을 시키잖아.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를 이겨야 생존에 더 도움이 된단다. 그러니까, 이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야.

<자본론>에는 물신주의(物神主義)라는 말이 있어. 물질이 신이 됐다는 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신이 되었다고 마르크스는 이야기했어.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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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89)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물신주의(物神主義)를 얘기했습니다. 물질이 신이 됐다는 말이죠.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잖아요? 중세 서양에서는 신의 뜻이라면 아무리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일들도, 예컨대 마녀사냥이나 십자군 전쟁도 정당하다는 명분을 얻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전지전능한 신의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모든 것의 꼭대기에 돈이 군림하고, 돈만 된다면 상식 밖의 일도 정당성을 획득합니다. 돈이면 어비어미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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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개선책도 제안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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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마르크스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생산수단의 소유권 문제를 손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자가 임금노예로 착취당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생산 활동의 주체로서 존중 받고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죠. 그러기 위해서는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가가 독점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공동체의 소유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소수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자원과 재원을 낭비하지 않고, 공동체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이윤이 나지 않는다고 노동자를 해고하거나 생산을 멈출 일도 없겠죠. 필요한 만큼 일하면 될 테니 쓸데없이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산업재해도 크게 감소할 테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이윤 창출이 생산의 목적이 아니라면, 이윤을 계산하는 일조차 없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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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백여 년 전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책도 내놓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는 기세 등등하여 세계를 정복했단다. 처음 출현했던 자본주의보다는 모습이 조금씩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마르크스가 말했던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여전했어. 최근 들어 그 문제점은 더욱 심해져서 빈부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단다. 착취가 심해지고 있다는 거야. 이대로 그냥 둘 것인가? 자본주의 기차의 폭주를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 폭주의 끝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 심히 걱정되는구나.

아빠가 또 쉽게 읽으려고 사둔 책 중에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이 있단다. 원숭이를 이해시킨 책을 읽었으니, 청소년들을 위한 자본론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꼭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꼭 읽어보고 싶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마르크스 <자본론>. 이 단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책의 끝 문장 :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에는 공산주의 계획졍제 시스템에 전혀 불필요한 문자 그대로의 순수한 유통 부문이 필요합니다. 상품이 화폐로 교환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죠. 열심히 만들었는데 판매가 안 되면 말짱 헛일이니까요. 이 때문에 생산과정처럼 가치를 창조하지 않더라도 가치가 실현되는(화폐로 교환되는) 영역에서는 유통 부문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르크스가 얘기한 유통 부문은 바로 이런 순전한 형태를 뜻합니다. - P79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경제가 어렵더라도 꾸준히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실시했다고 해요. 그런데 남한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병원이 운영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 토지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놀랐다고 하더군요. 땅은 자연의 선물인데, 보이지 않는 금을 그어놓고 내 것과 네 것을 가리니 이해할 수 없었다며, 토지는 공공재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하지 않겠냐면서요. 돈이 있어야 병원에 갈 수 있고 개인이 땅을 소유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식’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비상식’으로 보일 수 있는 거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수한 현상을 보편적 현상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 P190

분노라는 감정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로봇은 아니잖아요? 만약 사람에게 감정이 없다면 잘못된 현실에 분노할 수 없겠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의지조차 생기지 않을 겁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에요. ‘이성’만큼이나 ‘감성’도 중요합니다. 이성이 우리에게 방향타 역할을 한다면 감성은 추진력과 같은 것이니까요. - P233

제국주의의 배후에는 독점자본의 이윤 추구 욕망이 존재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점 자본의 출현이 필연적이듯, 국가마다 자본주의가 불균등하게 발전하면서 제국주의 국가가 생겨나는 것도 어쩌면 필연적일지 모르겠군요. 이런 상황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없다면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서서 약소국들이 함께 대응하지 않는다면, 강대국들의 제국주의 횡포는 끊이지 않을 겁니다.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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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9-380)

어떻게 우리가 군대와 돈을 대라고 요구하는, 우리가 더불어 공존해야 하는 사람들을 매질할 수가 있습니까? 이 의사당의 일부 방종한 무리가 이곳 동료들의 혈통에 대해 비방할 수 있다고 한들, 우리가 이탈리아인들과 그렇게 다른 존재입니까? 이 점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 여러분이 숙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때려서 아들을 훈육하는 아버지는 나쁜 아버지입니다. 그 아들은 자란 후에 아버지를 증오하지, 사랑하거나 존경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반도에 사는 우리의 이탈리아인 친족을 매질한다면, 잔인한 우리를 증오하는 사람들과 공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로마 시민권 획득을 막는다면, 속물적인 우리를 증오하는 사람들과 공존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막대한 벌금으로 벌한다면, 탐욕스러운 증오하는 사람들과 공존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집에서 쫓아낸다면, 냉담한 우리를 증오하는 사람들과 공존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을 모두 합치면 얼마나 큰 증오일까요? 원로원 의원 여러분, 퀴리테스 여러분, 그것은 우리와 똑 같은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품게 하기에는 너무나 큰 증오입니다.


(419)

꼭 그래야 한다면 후회해요. 하지만 그것이 오늘이나 내일을 물들이게 하지는 마세요.” 아우렐리아의 말투는 신비롭다기보다 현실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과거는 당신을 영원히 괴롭힐 거예요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그리고 예전에도 몇 번 말했듯이 당신은 앞으로도 먼길을 달려야 해요. 경주는 이제 겨우 시작이에요.”


(432)

강한 애착이 없을 경우-대개 그렇지만-연애란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방식일 뿐이야. 사람들은 늘 뭔가를 찾으려고 하지.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단다. 연애는 그 가치보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걸,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는 그런 식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걸 말이다.


(500-501)

로마가 우리의 왕이오, 오로바조스 경. 로마를 여성형 명사로 쓰기는 하지만 말이오. 그리스인들은 하나의 이상을 섬겼다오. 당신들은 한 사람, 왕을 섬기고 하지만 우리 로마인들은 로마를, 오직 로마만 섬긴다오. 우리는 한 인간 앞에 무릎을 꿇지 않소, 오로바조스 경. 또한 이상이라는 추상관념 앞에 무릎을 꿇지도 않소. 로마가 우리의 신이자 우리의 왕, 우리의 생명 그 자체요. 로마인 개개인은 자신의 명성을 쌓고 동료 로마인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기 위해 애쓰지만 길게 보면 그것은 모두 로마를, 그리고 로마의 위대함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오. 우리는 터전을 숭배하오. 오로바조스 경. 사람도 이상도 숭배하지 않소. 사람은 왔다가 가기 마련이고 이 세상에서 순식간에 사라지오. 이상은 온갑 철학의 바람이 불 때마다 바뀌고 흔들리오. 하지만 터전은 그 땅에 사는 자들이 가꾸고 위대함을 더하는 한 영원할 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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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손원평님의 <서른의 반격>을 마흔 훌쩍 넘은 나이에 읽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었었단다. 그래서 손원평님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어. 그래서 재워두었던 책이 바로 <아몬드>라는 책이란다. 손원평님을 유명하게 만든 소설이라고 할 수 있고, 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받기도 한 책이란다. 졸린 눈의 얼굴을 가진 소년을 그린 앞표지. 왜 제목이 아몬드일까? 아몬드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소한 견과류. 머리에 좋다고 해서 하루에 몇 개씩 먹으면 좋다고 하는 그 아몬드. 이 소설의 제목이 아몬드인 이유는…. 지은이의 아몬드가 고장 났기 때문이란다. 사람한테 무슨 아몬드가 있냐고? 다음 글을 읽어 보면 이해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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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귀 뒤쪽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깊숙한 어디께, 단단하게 박혀 있다. 크기도, 생긴 것도 딱 아몬드 같다. 복숭아씨를 닮았다고 해서아미그달라라든지편도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아몬드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자극의 성질에 따라 당신은 공포를 자각하거나 기분 나쁨을 느끼고, 좋고 싫은 감정을 느끼는 거다.

그런데 내 머릿속의 아몬드는 어딘가가 고장 난 모양이다. 자극이 주어져도 빨간 불이 잘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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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과학 시간에 어렴풋이 편도체라는 것을 배운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 편도체가 공포를 자각하고 기분 나쁨과 좋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 같구나. 그러니까 주인공이 좋고 나쁘고, 무서운 그런 감정들은 느끼지 못하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갖고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란다.


1.

그 소년의 이름은 선윤재였단다. 어렸을 때부터 좋고 나쁜 감정을 몰랐고, 더 큰 걱정은 두려움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위험 감지 능력도 없어서, 차가 달려와도 가만히 서 있었단다. 그렇다 보니 멍청하다는 소리도 듣고 놀림도 많이 받았어. 가족은 엄마와 단둘이었는데, 엄마가 정성스런 사랑으로 이를 극복해 나갔어. 그것도 역부족 정을 끊고 살았던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윤재의 외할머니한테 도움을 요청했어. 그들은 화해를 하고 같이 살았고, 윤재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도록 최선을 다했어.

윤재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게 되었어. 그러다가 열여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려고 외식을 하러 갔다가 어떤 괴한의 공격을 받아서 할머니는 죽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었어. 그 자리에서 윤재는 아무것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했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는 바라만 보고 있었어. 그 괴한은 자살을 했고, 그 괴한의 유서에는 웃는 사람과 함께 죽겠다고 써 있었어. 사회부적응자의 무식한 결심 때문에 그렇게 윤재는 혼자가 되었단다. 그리고 윤재의 사정을 모르는 시선들은, 윤재의 무반응에 대해 비난을 하였지.


2.

어떤 교수가 찾아왔어. 죽어가는 아내에게 아들 노릇 좀 해달라고 했어. 잃어버린 자기 아들과 비슷하게 생겼다면서어렵지 않은 부탁이라서 윤재는 그 부탁을 들어주었지. 그런데 그 교수의 아내의 장례식장에 진짜 아들이 나타났어. 곤이. 곤이는 보호시설에서 자랐는데, 자라면서 문제아가 되어 있었지. 소년원도 다녀왔어. 그래서 곤이 아버지는 곤이를 찾았으면서도 아내에게 데려가지 않은 거야. 곤이 또한 참 불쌍하구나. 곤이는 윤재가 같은 학교였어. 곤이는 윤재를 괴롭히고 폭행을 휘두르기도 했어. 하지만 윤재는 아무런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지. 윤재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니까 말이야.

곤이 아버지가 윤재에게 와서 미안하다고 했고, 윤재뿐만 아니라 윤재 엄마의 치료비도 모두 다 주겠다고 했어. 윤재 엄마가 사고 나기 전까지 헌책방을 운영했는데, 사고 이후에는 윤재가 방과후에 그 헌책방을 운영했단다. 어느날 곤이가 책방에 찾아왔어. 곤이도 외롭고 힘들었던 거야. 윤재가 곤이에게 손을 내밀자 곤이도 손을 내밀었어. 그렇게 그들은 친구가 되었단다. 윤재와 친구가 되었지만, 곤이는 가끔씩 다른 학교의 불량배와도 어울렸어. 어느날 수학여행 회비를 모은 돈이 사라졌는데, 그 돈이 곤이 가방에서 발견되었어. 곤이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을 그렇지 않았어. 아무도 그를 믿지 않았지. 나중에 그의 결백이 사실로 밝혀졌지만 아무도 그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어.

곤이가 사라졌어. 윤재를 곤이를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어. 그 당시 윤재는 도라라는 소녀와 애틋한 감정을 키우고 있었는데, 그 감정보다 곤이를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어. 우여곡절 끝에 곤이를 찾았는데, 곤이는 소년원에서 만난 철사라는 무서운 선배와 함께 있었어. 곤이는 많이 맞아서 정신을 거의 잃고 상처투성이였어. 윤재는 철사에게 곤이를 데려가겠다고 했고, ‘철사는 그런 윤재에게 폭행을 했고, 곤이가 만류했지만, 윤재는 칼에 찔려 정신을 잃고 말았단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어. 도라가 경찰에게 신고를 해서 윤재가 살아날 수 있었어. 그리고 더 반가운 소식식물인간이었던 윤재 엄마가 휠체어에 타고 윤재의 병실로 찾아왔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해피 엔딩이었어. 소설은 끝났지만, 그들의 뒷이야기는 행복만이 이어지기를곤이도 정신을 차렸겠지. 윤재와 곤이는 더욱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겠지. 그리고 엄마도 점점 회복을 해서 다시 행복을 하나하나 쌓아가겠지

…..

약간은 예상된 결말이었지만, 잔잔한 감동도 있었고 나쁘지 않았단다. 어떤 사람을 볼 때 겉으로만 단편적으로 보면 안 된단다. 편견을 가지고 보면 안되고…. 윤재처럼, 병 때문에 어떨 수 없이 상식 밖에 행동을 할 수도 있거든.


PS:

책의 첫 문장 : 그날 한 명이 다치고 여섯 명이 죽었다.

책의 끝 문장 :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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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20-04-04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감정을 지닌, 그로 인해 공감도 할 수 있는 ‘정상인’들이 더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부분을 눈여겨 읽었어요. 리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bookholic 2020-04-05 00:50   좋아요 1 | URL
그런 비정상적인 ‘정상인‘이 없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즐거운 휴일 되시길 바라고요...^^
 














(38)

흥미로운 것은 헌종 대의 증축이 마치 왕조의 마지막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맞아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왕조의 종말과 함께 정전과 영녕전의 신실이 모두 채워지고 더 이상의 빈 공간이 없어졌다. 정전의 마지막 신실인 제19실에는 순종을 모셨고, 영녕전의 마지막 칸에는 영친왕을 모시면서 16개 신실이 다 찼다. 그러고는 더 모실 신위도 빈 신실도 없었으니 왕조의 종말은 거의 운명적인 것이었다.


(53-54)

종묘는 봄여름보다 가을 겨울이 더 좋다. 종묘의 단풍은 울긋불긋 요란스레 화려한 것이 아니라,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가을날의 차분한 청취가 은은히 젖어들게 한다. 그때 종묘에 가면 아마도 인생의 황혼 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끼게 될 것이며, 그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잘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뒷산 너머에 있는 창덕궁 후원의 단풍이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한다면 종묘의 단풍은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라 할 만하다.


(61-62)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완성된 <국조오례의>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길례는 조상과 대자연에 복을 기원하는 종요, 사직, 선농(先農), 선잠(先蠶), 기우(祈雨), 산천(山川)에 지내는 제례다. 가례는 기쁨의 의식으로 명절 의식, 왕비 책봉, 왕자와 공주의 혼례, 원로대신에 베푸는 양로잔치인 기로연(耆老宴) 등이며 흉례는 장례의식으로 국장(國葬)을 비롯한 상례(喪禮). 빈례는 외교 의식으로 중국, 일본, 유구(지금의 일본 오키나와) 등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의식이고 군례는 군대 의식으로 임금이 참석하는 활쏘기, 군대의 열병(閱兵), 무술 시범식이다.


(104)

돌이켜보건대 경복궁이 창건된 것은 태조 4(1395)이고 창덕궁이 창건된 것은 태종 5(1405)이었다. 조선 개국 후 10년 사이에 전혀 다른 성격으로 지어진 두 궁궐은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비극의 소산이었지만 결국 우리 문화유산의 큰 자산이 되었다. 당시 이 엄청난 두 차례의 대역사(大役事)에 동원되어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던 조상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신들의 희생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106-108)

창덕궁을 제대로 답사할 양이면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앞 월대(月臺)에서 시작해야 한다. 궁궐의 모든 주요 건물 앞에는 지표에서 높직이 올려쌓은 평편한 대가 있는데 이를 월대라 한다. 달 월() 자에 받침 대()자를 썼으니 그곳에 서면 달빛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듯 하늘이 열린다는 뜻일 것이다. 언어의 묘미가 물씬 풍기는데 중국에서는 기차역 플랫폼을 월대라 부른다.


(138)

건축의 눈이 밝지 않은 분이라도 여기서 바라보면 한옥의 다양한 아름다움과 멋을 한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임금이 정무를 보는 선정전은 엄숙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희정당은 우아하면서도 화려하고, 왕세자의 공간인 성정각은 밝고 안온해 보인다. 전통 한옥의 모든 것이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163)

건축적으로 대조전은 용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건축 형식을 무량각(無樑閣)이라고 하는데 궁궐 건축에서만 보인다. 확실한 예기는 아니지만 임금이 머무는 대조전에 용마루가 없는 것은 임금이 곧 용이기 때문에 두 용이 부딪치지 않도록 한 것이라는 속설이 있다. 경복궁의 강녕전과 교태전, 창경궁의 통명전 등 왕과 왕비의 생활과 관련된 건물이 대개 무량각인 것을 보면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 형식이 구중궁궐 안에서도 지밀한 건물임을 도드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218)

이에 대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랑스 건축가협회장 로랑 살로몽(파리 벨빌 건축학교 교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전통 건축물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이고 풍경이다. 인위적이로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 위에 그냥 얹혀 있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전통 건축은 미학적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230)

우리나라 정원에서 건물은 마치 자연이라는 거실에 배치된 가구 같아서 건물이 있음으로 해서 경관이 생기고 건물의 크고 작음에 따라 다양한 표정이 만들어진다. 부용지를 거실이라고 치면 연못은 폭넓은 화문석(花紋席) 같고, 규장각 주합루는 듬직한 반닫이와 기품 있는 의걸이장 같고, 부용정 정자는 화려한 화초장(花草欌) 같고, 영화당은 단아한 서안(書案) 같고, 비각은 곱상한 연상(硯床) 같다.


(262)

서양인은 한결같이 인간적 체취를 말한다. 가는 곳마다 지금도 사람이 살면서 사용하는 것 같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을 경험하고 온 분들은 한국의 미학이 따로 있음을 창덕궁 후원에서 비로소 느낄 수 있다며 이곳 하나를 본 것만으로 이번 방문에 만족한다고 한다. 이런 창덕궁 후원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은 진정 서울 사람의 복이자 큰 자산이다.

후원의 관람 코스는 낙선재 옆 출입구에서 시작하여 부용정, 애련정, 존덕정, 옥류천, 연경당을 두로 관람하고 규장각 위쪽 산길로 해서 출구로 돌아나가는 한 시간 반 정도의 즐거운 산책이 된다. 나의 창덕궁 후원답사기는 앞으로 찾아올 분들을 위해 이 코스대로 따라가겠다.


(299-301)

나는 물과 달을 보고서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우친 바 있다. 달은 하나뿐이고 물의 숫자는 1만 개나 되지만 물이 달빛을 받을 경우, 앞의 시내에도 달이요, 뒷 시내에도 달이어서 달과 시내의 수가 같게 되므로 시냇물이 1만 개면 달 역시 1만 개가 된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달은 물로 하나뿐이다.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고 무리 지어 쫓아다니며 가는 것인지 오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었다. 모양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다른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바보같이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고 얕은 자, 용감한 자, 겹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을 아끼는 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 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천 가지 백 가지일 것이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가슴에 찔리는 바가 있었다. 윗사람에게 나는 어떤 유형의 인간이었던가 생각하니 아차 싶었다. 그러나 정조는 이 모두를 끌어안는 너그러움을 말한다.

내가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내 마음으로 미루어도 보고 일부러 믿어도 보고, 또 그의 재능의 시험해보기도 하고 일을 맡겨 단련도 시켜 보고, 혹은 흥기시키고 혹은 진작시키고 규제하여 바르게도 하고, 굽은 자는 교정하여 바로잡고 곧게 하면서 그 숱한 과정에 피곤함을 느껴온 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다.

근래 와서 다행히도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고 또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도 터득했다. 그리하여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쓴 것이다.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만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뒷전으로 하며,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고, 재주보다는 뜻을 더 중히 여겨 양쪽 끝을 잡고 거기에서 가운데를 택했다.”


(301~303)

이어서 정조는 신하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하여 말했다.

트인 자를 대할 때는 규모가 크면서도 주밀한 방법을 이용하고 막힌 자는 여유를 두고 너그럽게 대하며, 강한 자는 유하게 유한 자는 강하게 대하고, 바보 같은 자는 밝게 어리석은 자는 조리 있게 대하며, 소견이 좁은 자는 넓게 얕은 자는 깊게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를 쓰고 겁이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을 쓰며, 총명한 자는 차분하게 교활한 자는 강직하게 대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고, 희석하지 않은 순주(醇酒)를 마시게 하는 것은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신의 주장을 하는 자를 대하는 방법이며, 모난 자는 둥글게 원만한 자는 모나게 대하고,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이 있는 면을 보여주고 대범하게 무게가 있는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면을 보여준다. 말을 아끼는 자는 실천에 더욱 노력하도록 하고 말재주를 부리는 자는 되도록 종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하며, 엄하고 드센 자는 산과 못처럼 포용성 있게 제어하고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는 포근하게 감싸주며,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을 기하도록 권하고 실속만 차리는 자는 달관하도록 면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조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어 말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성인을 배우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달이 물속에 있어도 하늘에 있는 달은 그대로 밝은 것과 같다.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춰줄 뿐이다.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친다. 거기에서 나는 물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달이 비춰 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 각자의 얼굴이고 달은 태극인데 그 태극은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만천(萬川)의 밝은 달에 태극의 신비한 작용을 비유하여 말한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내가 머무는 처소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써서 나의 호로 삼기로 한 것이다. 때는 무오면(1798) 12 3일이다.”


(306)

어디까지가 권력기관입니까?

윗분이 말씀하시는데 말을 끊는 것은 예가 아니었지만 노 대통령은 나를 불경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체 없이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 그리고 언론기관입니다. 쉽게 말해서 전화 와서 받았는데 기분 나쁘면 다 권력기관입니다.”


(331-332)

세종은 즉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태종을 모시기 위해 1418년 창덕궁 곁에 수강궁(壽康宮)을 지었다. 이것이 창경궁의 시작이다. 그뒤 성종은 무려 세 분의 대비를 모시게 되었다. 할머니인 세조 비(정희왕후 윤씨), 작은어머니인 예종 계비(안순왕후 한씨), 생어머니인 덕종 비(소혜왕후 한씨) 등이다.

이에 성종은 수강궁을 중건하고 정전인 명정전, 정무를 보는 문정전 등을 지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고 창경궁이라 했다. 창경궁은 빛나는 경사라는 뜻이며 궁의 둘레가 4,325척이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담장을 맞대고 있어 둘을 합쳐서 동궐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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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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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무척 즐겨 듣던 팟캐스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줄여서 지대넓얕이 종방을 한 지 3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구나. 종방을 할 때만 해도, 얼마 안 있어 시즌 2를 할 것이라고 아빠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여 아쉬움을 달랬을 거야. 이렇게 오랫동안 감감무소식이 될 줄이야. 지대넓얕 팬들이 그토록 요청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시즌 2는 없는 것인지소식이 없구나. 최근에 채사장 혼자서 유튜브 채널을 열었는데, 혼자가 아닌 넷을 원한다고….

가끔 TV를 통해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아빠는 TV를 거의 보지 않으니그들을 볼 수도 없어. TV를 그들을 본다고 해도, 그들의 진정한 모습은 지대넓얕을 통한 모습이어야 한단다. 그런 와중에 채사장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지난번 책에 약간의 실망감을 준 이후, 첫 번째 내놓은 책. 공존의 히트를 쳤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단다. 채사장의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권과 2권이 출간되었었는데, 이번에 나온 것은 3권이 아니고, 0권이란다. 이번에 나온 책이 흐름상 1권과 2권의 앞에 배치되어 있어야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제목을 붙인 거야.

책 제목에 붙은 “0”는 시간적으로 12의 앞부분을 의미할 수도 있고, 0차원을 이야기할 수도 있단다. 우주가 탄생하기 전에 무엇이 있었을까? 우주는 빅뱅을 통해 탄생된 이후 계속 팽창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을까. 시간도 존재하지 않고, 공간도 존재하지 않던 그 시절. 그래서 차원조차 없던, 0차원의 세계. 이 책에서는 그때부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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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0차원.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좌표축의 개수가 0인 세계. 여기에는 가로, 세로, 높이가 없고 시간의 차원도 없다. 이 세계는 시간과 무관한 그저 의 세계다. 점의 수학적 정의는 크기를 갖지 않는 최소의 단위. 이 모순되어 보이는 정의처럼, 0차원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 크기도 갖지 않지만 존재하는 세계다. 시간, 공간과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만약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어떤 존재일까? 그는 아마도 세계 그 자체일 것이고, 그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세계는 나다. 나는 세계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세계이고, 나는 나다.’ 그는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는 것에 무척이나 어색함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존재와 부재는 구분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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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를 이야기를 할 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인류 탄생의 시간의 이전까지 가게 되고, 그곳부터는 역사라기보다 과학이라고 봐야겠지. 그렇게 생명의 탄생의 시간에 다다르게 되고, 또 계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구의 탄생에 다다르고, 우주의 탄생에 다다르게 된단다. 그렇게 인류의 역사와 우주의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빅히스토리라고 한다고 들었어. <호모 사피엔스>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도 그런 기법으로 <호모 사피엔스>를 기술했었지. 채사장님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제로 편>도 그런 부류로 볼 수 있겠구나. 비록 인류 탄생 이후 보편적인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지식의 탄생과 철학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나 할까. 채사장만의 빅히스토리 이야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구나.

누군가는 채사장에 대한 책 구성을 비판하는 이도 있지만, 모든 사람의 요구조건을 어떻게 만족시키겠니. 아빠에게는 좋았단다. 채사장의 해박한 지식. 그것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여 하나의 날줄로 잘 엮는 능력. 그리고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쉽게 설명해주는 능력. 이번 책에서도 그런 것은 느낄 수 있었단다. 아빠는 독자로써 그것을 모두 소화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을 뿐

우주의 탄생 이야기를 하자면, 양자역학이니 다중우주론이니 끈이론이니어려운 현대 과학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였고, 우주 탄생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하다 보면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절로 하게 되었단다. 아빠는 신비한 우주의 이야기를 읽거나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란다. 그 광활한 우주의 비밀을 인류가 다 밝혀내기 전에 인류가 멸망하게 되겠지만 말이야. 우주의 이야기를 아빠가 좋아하는 이유 중에 또 하나는 우주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 자신의 존재가 아무 미미하게 되고, 그로 인해 왜 걱정을 하고,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아빠는 우주에 관한 영상을 보거나, 여건이 안되면 눈을 감고 광활한 우주를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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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우주의 크기를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지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초월적 거대함 앞에서 내 일상의 사소함은 너무도 하찮게 느껴진다. 현대의 이르러서도 인류가 을 놓지 못하는 철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가치 때문이다. 이 거대한 세계를 창조한 신이 인간의 기원일 것이라는 상상의 나의 존재론적 하찮음을 해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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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탄생을 지나 지구의 탄생과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지구 상에 생명이 나타난 이후는 진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인류가 탄생하게 되고, 인류가 지구 곳곳에 퍼지게 되고, 또 시간이 나자 문명이 탄생하게 된단다. 그리고 우주 탄생 이후의 시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른 시간으로 인류는 진보(?)하게 된단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지식의 뿌리가 되고 있는 것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이야기하고 해주었단다. 베다, 도가, 불교, 철학(서양의 철학), 그리고 기독교까지이것들이 다른 것 같지만, 모두 자아와 세계, 그리고 그것 간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지은이 채사장은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베다, 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에 관한 세세한 이야기는 아빠가 정리해서 이야기하기에는 방대하구나. 아빠가 생각하기에, 채사장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들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닌 하나의 지식이었노라인 것 같았단다.


2.

그래도 부족했단다. 채사장의 간만의 신간에 반가웠고, 지난 책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 느꼈던 실망감을 어느 정도 채워주었지만, 아직도 덜 채워졌단다.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팻캐스트 지대넓얕시즌 2. 채사장, 이독실, 김도인, 깡샘 그들의 복귀만이 부족함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구나.


PS:

책의 첫 문장 : 파잔(phajaan)은 코끼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의식이다.

책의 끝 문장 : 당신이 언젠가 당신의 내면 안에서 찬란히 빛나는 세계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의 우주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과학자들이 우리의 피 같은 세금을 써가며 당장 써먹을 수도 없는 수많은 우주를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중 우주론이 오늘날의 과학이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문턱을 넘을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중 우주론은 막다른 길에 봉착한 현대 물리학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통합 문제, 우주상수와 미세 조정의 문제, 양자 얽힘의 문제, 인플레이션 문제, 끈이론과 M이론 등 인간의 이성 안에서 모순을 일으키는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한 큰 그림을 제공해준다. - P44

만약 지금의 수치와 달리 아주 작은 차이만 있었더라도 우리 우주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그 질량이 이미 정확하게 밝혀져 있는데, 중성자가 양성자보다 조금 더 무겁다. 하지만, 그 차이는 매우 미세해서 고작 전자 2개 정도의 질량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차이는 사실 너무도 미미하다. 그런데 이 미세한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차이를 만들었다. 더 무거운 중성자가 붕괴하며 양성자가 되는 방식으로 우리 우주의 모든 물질을 구성한 것이다. 만약 반대였다면 양성자가 약간 더 무거웠다면 양성자가 붕괴하여 중성자가 되는 방식으로 원자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종류의 물질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은하계와 태양계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며, 우주의 구조도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과 인간의 탄생이 불가능한 건 말할 것도 없다. - P78

그렇다면 신이란 무엇인가? 크리슈나는 신의 본성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그대에게 자아의 신성(神聖)에 대해 설명하겠다. 나라는 존재는 고정된 틀을 갖지 않는다. 자아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중간이며 끝이다. 자아는 모든 존재의 탄생이고 시작이며, 끝이자 죽음이다. 자아는 영원하니 결코 태어난 적이 없고 결코 죽은 적이 없다. 자아는 모든 곳과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하고 자기 속에 모든 만물이 존재한다. 자아 없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란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그 어떤 것도 없다." - P229

노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덕이 없는 사회에서는 인이 강조되고, 인이 없는 사회에서는 의가 강조되며, 의마저도 없는 사회에서는 예만 강조된다. 쉽게 말하면, 자기 내면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인자함이 중요시되고, 인자함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의리가 중요해지며, 의리가 사라진 사회에는 예절이 강요된다는 것이다. - P274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무아설에 있다. 자아의 실체를 부정하는 세계관은 지금까지의 다른 사상이나 종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개념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포함하는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는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을 상정하고,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 합리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도 사유하는 존재로서 자아의 자기동일성을 강조하며, 특정 종교나 사상을 떠나서도 보통의 사람들에게 매우 상징적이고 친숙한 사고방식이 ‘내가 있다’는 전제이니 말이다. - P383

플라톤은 우리의 머릿속에 혹은 영혼 속에 절대적이고 완벽한 이성적 개념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 이렇게 이데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의 영혼은 원래 이데아의 세계에 있었지만 육체를 갖고 이를 망각한 상태로 지상에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를 상기론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지식은 현실의 경험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에 남아 있는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얻게 된다. - P430

흔히 서양 사상은 두 가지 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다. 헬레니즘은 그리스*로마의 정신을, 헤브라이즘은 <구약>성서의 세계관을 말한다. 헬레니즘은 서양 철학의 기원이 되었고, 헤브라이즘은 기독교의 기원이 되었다. 이것은 언뜻 대립하는 사상처럼 보인다.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인본주의적 철학과 절대자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는 신본주의적 종교, 하지만 대립하는 두 사상은 근원에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것은 이원론이다. - P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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