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2 - 문종에서 연산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2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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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역사저널 그날 2권을 읽었단다. 1권과 마찬가지로 쉽게 재미있게 역사를 이야기해주었단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검색해보니, 그냥 역사저널 그날 2권이 아니라,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2권으로 조회가 되더구나. 책의 표지에는 조선편이라는 말이 적혀 있지 않은데 말이야. 책의 제목이 바뀐 이유는 바로 역사저널 고려편도 출간되었기 때문이더구나. 그래서 구분하기 위해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이라고 제목이 바뀐 것 같구나. 조선편은 총 여덟 권으로 마무리가 되었더구나.

천천히 읽어봐야겠구나. 아주 깊거나 자세히는 아니지만, 조선의 역사를 꿰뚫어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번에 읽은 2권에서는 문종부터 연산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단다. 그 시절에는 역사의 흐름을 갈랐던 역사적인 날들은 어떤 날이 있었는지 한번 이야기해줄게.


1.

조선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시대의 가장 큰 사건은 세조가 조카를 몰아내고 왕자리를 빼앗은 사건이라는 것을 알 거야. 그 전에 문종부터 이야기해보자꾸나. 세종의 아들로 조선 왕조에서 첫 번째 적장자로 왕위에 오른 왕. 그의 재위기간이 짧아서 그를 거의 지나지듯 기록을 하곤 하는데, 그가 세자 자리에 있을 때 많은 공을 세웠다고 하는구나. 문종의 재위기간은 짧았지만, 세자로서의 기간은 29년으로 무척 길었어. 그 중에 8년은 섭정을 했다고 하는구나. 세종의 재임 후반기의 공적들의 많은 부분이 문종의 공이라고 하더구나. 모든 면에서 우수해서 세종의 뒤를 이은 성군이 될 자질이 충분했기에 그의 짧은 삶은 조선에게 큰 손해가 아닐 수 없구나. 아내 복도 없었는지 두 번의 세자빈 폐위가 있었고, 세 번째 세자빈은 아이를 낳고 다음날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 아이가 바로 단종이란다.

세종이 죽고 문종이 왕위에 오른 지 2 3개월, 그의 나이 39세에 그만 죽고 말았단다. 문종은 어머니 소헌왕후와 아버지 세종이 잇달아 죽으면서, 삼년상을 연달아 치르게 된단다. 그러면서 몸이 많이 쇠약해지고, 종기가 나서 죽고 말았대. 옛날에는 종기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었다고 하는구나. 문종은 죽으면서 신하들에게 12살 단종을 부탁하면서 눈을 감았다고 하는구나. 세 번째 세자빈이 죽고 나서 부인을 새로 들였다면, 그 부인이 수렴청정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문종은 세 번째 세자빈이 죽은 이후 결혼도 하지 않았다는구나.

12살 단종은 고아가 된 거야. 그 고아를 신하에게 부탁을 하고 눈을 감은 거야. 그 신하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김종서였어. ,,, 신하가 아닌 동생한테 부탁을 했어야지. 아니면 아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왕을 동생에게 주었어야지. 동생 수양대군이 호랑이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야. 수양대군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가족에도 칼부림을 한다는 이유로, 태종을 닮았다고 하는 이들이 많단다. 수양대군이 처음에는 단종을 도와주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어. 그것이 진심인지, 연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김종서와 갈등을 겪게 되고결국은 1453 10 10일 칼을 꺼내 들었단다.

계유정난(癸酉靖難). ‘이라는 글자가 있어서 수양대군이 일으킨 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는 난리의 ()’아니고 어려움을 나타내는 난()이란다. 그러니까 계유정난이라는 것은 계유년에 어려움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하잖아. 수양대군이 승자가 되었으니, 그의 입장에서 그날을 기록한 것이야. 그냥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황보인을 죽이고 정권을 잡았단다. 단종이 왕위에 오른 지 20개월째였지. 말이 양위지,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이 왕이 되었단다. 세조.

단종은 영월의 청룡도로 유배를 보냈단다. 아빠도 청룡도를 가본 적이 있는데, 한쪽은 절벽이고 나머지 세면은 물로 둘러 쌓여 있었단다. 하루 이틀 여행지로는 좋은 곳이지만 그곳은 영락없이 감옥이었어. 유교의 교리를 거스르는 세조의 이런 왕위 찬탈 사건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많았단다. 그래서 단종복위운동이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었어. 집현전 학자로 유명한 성상문, 박팽년, 유응부 등이 주도했어. 그러나 내부 밀고로 인해 그들의 계획은 실패하고 죽고 말았단다. 사육신.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박팽년, 김문기. 단종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단다. 죽이고 싶었겠지. 건수가 없었는데 잘 됐다 싶었겠지. 세조는 조카 단종에게 사약을 내렸단다. 단종은 자살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세조가 죽인 것이야. 단종 복위 운동에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금성대군도 사약을 받고 죽었다고 하는구나. 이 또한 누명을 쓰고 죽은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란다.

….

이렇게 무서운 과정을 거친 후 왕위에 오른 세조. 분발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세조는 왕노릇은 잘했다고 하는구나. 우선 왕권 강화를 힘썼대. 신하들의 힘의 기반이었던 집현전을 폐쇄했어. 호패제도를 정비해서 세수를 확보하기도 했어. 그리고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했어. 비록 그의 재위기간에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큰 업적이었어. 세조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명분이 없는 왕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기에 신하들에게 잘 보여야 했어. 그러기 위해서 공신 책봉을 연이어서 했다는 구나. 참모였던 한명회와 배신의 아이콘 신숙주는 4번이나 공신에 책봉되었대. 한명회가 시를 쓰고 그것을 패러디한 김시습의 글이 책에 실려 있었는데, 생육신 김시습의 면목을 볼 수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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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노년에 한명회가 이런 시를 남긴다고요.

    청춘에는 사직을 붙들고,   (靑春扶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   (白首臥江湖)

이게 압구정에서 지은 시예요.

한명회가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는 건데, 김시습이 이걸 보고 재치있게 패러디를 해요.

청춘에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靑春亡社稷)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네.         (白首汚江湖)

중간에 글자 하나를 바꿔서 한명회를 비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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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세종은 공신들을 백 퍼센트 믿을 수는 없었어. 이시애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이야기에 한명회와 신숙주를 하옥시키기도 했어. 이시애의 난은 남이 장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이 공으로 남이 장군은 20대 젊은 나이에 병조판서가 되었어. 세조가 계속 왕위에 있었다면 남이 장군은 승승장구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남이 장군은 병조판서가 된지 15일만에 세조는 죽고 말았단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 유자광이라는 간신의 고변에 속아서 남이 장군을 좌천시키고, 누명을 씌워 죽였단다. 역사는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들이 참 많구나.


2.

세조의 이야기가 길어졌구나. 사실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다른 책들을 읽고 나서 쓴 독서편지나 독서일기에서도 두어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단다. 세조 이후 이어지는 성종과 연산군의 이야기도 전에 여러 번 이야기를 했었어. 그래서 아주 짧게 하고 마치려고 한단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은 즉위 14개월만에 죽고, 13살 성종이 왕위에 오르게 된단다. 또다시 어린 왕의 즉위. 또다시 왕위 찬탈 사건이 일어나는 것인가. 하지만 성종에게는 할머니 정희왕후가 있었단다. 그리고 인수대비로 유명한 어머니 소혜왕후도 있었단다. 잠깐 가족 소개를 해보겠다. 세조와 정비인 정희왕후의 첫째 아들은 의경세자였고, 의경세자의 아내가 세자빈 수빈 한씨였단다. 그런데 의경세자가 아들 둘을 남기고 일찍 죽고 말았고, 의경세자 동생 예종이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란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예종이 왕위에 오른 지 14개월만에 죽고 말았어. 다시 빈 왕의 자리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잘산군이 왕위에 오르니 바로 성종이란다. 성종이 왕에 오르자, 사가로 물러났던 수빈 한씨가 왕의 어머니로 궁궐로 돌아왔고 인수대비가 된 거야. 복잡하구나.

성종이 오랜 재위기간 왕위에 있으면서 경국대전을 완성하는 등 여러 업적이 있었지만, 그것보다 여자 문제로 더 유명하고 드라마에도 많이 나온단다. 첫 왕비였던 공혜왕후가 죽고 후궁이었던 숙의 윤씨를 왕비로 간택하지만, 나중에 질투와 여러 문제를 일으키면서 폐비가 되고 결국 사약까지 받아 죽고 말았지. 그리고 폐비 윤씨의 아들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드라마는 비극으로 이어진단다. 연산군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고, 아빠가 전에도 한 적이 있어서 오늘은 생략할게. 무엇보다 너무 피곤하구나. 양해 바람.

아참, 그것만 하나 더 이야기할게. 이 책에 왕릉 특집으로 왕릉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 세종이 여주라는 곳에 있거든. 영릉이라고그런데 원래는 서울에 있었다고 하더구나. 세종의 릉자리 때문에 장남들이 일찍 세상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여주로 옮긴 거이라고 하는구나. 재미있는 일화인 것 같아 적어두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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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1450, 세종이 승하했다.

맏아들 문종은 유언에 따라 왕릉 조성에 들어간다.

세종 생존에 마련해 두었던 장지는 태종이 잠들어 있는

헌릉 근처, 그런데 그 터를 두고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장남을 잃을 땅이라는 것이다.

   최양선이 수릉의 혈 자리가 좋지 못해

   손이 끊어지고 맏아들을 잃는다고 하였다.

-       <세종실록> 25 2 2

풍수가들의 예언은 세종의 장남 문종의 죽음을

시작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문종의 외아들이었던 단종마저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고 단종을 밀어내고 왕이 된 세조 역시

맏아들 의경세자를 잃고 마는데……

왕실의 대를 이을 장남들의 잇따른 죽음,

결국 세종의 영릉은 여주 지역으로 옮겨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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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문종은 조선왕조가 시작된 뒤 적장자로 왕위를 이은 첫 국왕이다.

책의 끝 문장 :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조선 왕릉, 오늘 이 시간 함께 하셨다면 좀 더 넓어진 시각으로 근처에 있는 조선 왕릉 한 번 찾아보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명회 하면 과거에도 계속 떨어지고, 칠삭둥이에 못생긴 이미지가 보편적이잖아요. 사실 한명회는 명문가의 후손입니다. 청주 한씨 집안의 귀공자였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명문가 자제들하고 놀죠. 가장 친한 친구인 권람은 안동 권씨고, 친구들이 전부 대표적인 개국공신 집안 출신이에요. 한명회는 이렇게 집안 배경도 좋고, 머리도 좋은데 과거시험만 봤다 하면 자꾸 떨어졌대요. 아마 필기시험에 약한 타입이었나 봐요.



그때 또 재미난 일화가 있어요. 한명회가 개성에서 경덕궁지기를 할 적에, 명절이라 개성부 관원들이 만월대에서 연회를 하다가 개성으로 파견된 서울 출신 관원들끼리 계를 만들자는 얘기가 나와요. 이때 한명회가 자기가 끼워 달라고 하는데, 궁궐지기는 좀 미천하니까 무시한 거죠. 그런데 계유정난 후에 한명회가 일등 공신에 책봉되고 계속 출세하니까 이 사람들은 아쉬운 거예요. 그때부터 하찮은 지위나 세력을 믿고 남한테 오만하게 구는 사람들을 송도계원이라고 불렀대요. - P118

어우동이 여러 사람과 간통한 혐의가 있기는 했지만, 간통죄로 사형시키는 건 법규에 없어요. 그런데 성종의 강력한 의지로 어우동을 교형에 처하죠. 이때가 바로 인수대비가 <내훈>을 쓰고 성리학적인 이데올로기로 나라를 만들어가던 바로 그때입니다. 따라서 어우동처럼 방탕한 여성은 죽음으로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절묘하게도 어우동이 처형당한 게 1480년이고, 폐비 윤씨가 사약 받은 게 1482년이에요. 시기가 맞물려 있습니다. 결국 성리학 이념이 강화되고 여성다운 여성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왕실에서 희생된 사람이 폐비 윤씨였다면, 민간의 희생양은 어우동이었다는 거죠. - P187

그 사초의 작성자가 김일손이고, 김일손의 스승인 김종직이 쓴 게 <조의제문>이에요. 이 부분에서 많이들 실수하는데 조, 의제문 이렇게 띄어 읽어야 해요. 어쨌거나 의제는 부하 항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이에요. 세조를 대놓고 비판하지는 못하니까 주군을 죽인 항우 사례를 빗대서 단종을 죽인 세조를 은근히 비판한 거죠. 그게 <조의제문>인데 김일손이 이 글을 사초에 실은 거예요. 세조에 대한 강한 반감의 표시였죠. 결국 이게 공개되고 연산군이 이를 왕에 대한 모독이라고 받아들이면서 사초 작성자인 김일손 비롯한 관련자들이 대거 체포됩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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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찼던 젊은 시절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을 때, 나는 당최 아이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손을 많이 댈수록 오히려 자라지 못하는 어린 묘목을 떠올렸다. 나무를  키울 때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한다는 걸 떠올리고는 아이도 나무 기르듯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마치 어린 묘목을 돌보듯 간섭하고 싶은 마음을 거두고 한 걸음 뒤에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덕분에 딸아이는 일찍부터 제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깨우쳤다.


(7)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은 노목에게서 나이 듦의 자세를 새삼 깨우치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제 속을 비우고 작은 생명들을 품는 나무를 보며 가진 것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삶, 비움으로서 채우는 생의 묘미를 깨닫곤 한다. 평생을 나무를 위해 살겠다고 마음 먹고 병든 나무를 고쳐 왔지만, 실은 나무에게서 매 순간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17)

나무는 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생명체이다. 움직일 수 없는 탓에 환경의 영향이 절대적이고, 생존하려면 주변의 아주 작은 변화에도 재빨리 대응해야 한다. 말 그대로 나무의 삶은 선택의 연속인 셈이다. 해를 향해 뻗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우듬지의 끝은 배의 돛대 꼭대기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선원과 같다. 항해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발견하면 그 즉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우듬지의 끝은 가지에 이르는 햇볕의 상태를 일분일초 예의 주시하다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낌새가 감지되면 미련 없이 방향을 바꾼다. 그 선택에 주저함은 없다. 오늘 하루가 인생의 전부인 양 곧바로 선택을 단행한다. 가만히 보면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저 온 힘을 다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뿐이다. 하긴 결과를 예측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미래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르는데 말이다.


(21)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희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한 번쯤 청계산의 소나무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소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았다. 방향을 바꾸어야 하면 미련 없이 바꾸었고, 그 결과 소나무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덕분에 사람들 눈에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지만 그럼 어떤가. 소나무가 왜 ㄷ자 모양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나면 그 지독하고도 무서운 결단력에 혀를 내두르게 될 뿐이다. 내일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오늘 이 순간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 온 소나무.


(32)

나무는 유형기를 보내는 동안 바깥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따뜻한 햇볕이 아무리 유혹해도, 주변 나무들이 보란 듯이 쑥쑥 자라나도, 결코 하늘을 향해 몸집을 키우지 않는다. 땅속 어딘가에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그렇게 어두운 땅속에서 길을 트고 자리를 잡는 동안 실타래처럼 가는 뿌리는 튼튼하게 골격을 만들고 웬만한 가뭄은 너끈히 이겨낼 근성을 갖춘다. 나무마다 다르지만 그렇게 보내는 유형기가 평균 잡아 5. 나무는 유형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 짧지 않은 시간 뿌리에 힘에 쏟은 덕분에 세찬 바람과 폭우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성목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38)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잘 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성장했고, 욕심을 내면 조금 더 클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무들은 자라기를 멈춘다. 마치 동맹을 맺듯 나도 그만 자랄 테니 너도 그만 자라렴하고 함께 성장을 멈추고는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결국 나무에게 있어 멈춤은 자신을 위한 약속이면서 동시에 주변 나무들과 맺은 공존의 계약인 셈이다.


(50)

새 생명이 자라기 위해 숲에 빈틈이 필요하듯 우리 인생도 틈이 있어야만 한숨을 돌리고 다음 걸음을 내디딜 힘을 얻을 수 있다. 나 또한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만일 내가 모든 나무를 완벽하게 고치겠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더라면 나무 몇 그루쯤 더 살릴 수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까지 일을 계속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이지 일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실수한 것만 떠오르고, 전부 마음에 들지 않고, 스트레스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해 나무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64)

그렇게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걷다 보니 걷는 것이 마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욕심으로 무겁게 배낭을 메고서는 절대 멀리 가지 못하는 것처럼, 인생도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지 않고는 진정 원하는 곳에 이를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마음을 낮추고 가진 것을 내려놓을 때 인생길이든 여행길이든 비로소 가볍게 걸을 수 있다는 걸 왜 진작에 몰랐을까.


(84)

이렇듯 우듬지가 구심점 노릇을 해 주어서 나무는 자라는 동안 일정한 수형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전나무나 메타세쿼이아 같은 침엽수들이 원추형으로 길고 곧게 자랄 수 있는 것은 줄기 꼭대기의 우듬지가 아래 가지들을 강한 힘으로 통솔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생에 비유하자면 꿈이나 희망이랄까. 나무의 우듬지가 아래 가지들을 다스려 가면서 하늘을 향해 뻗어 가듯, 사람은 꿈이나 희망 등 살아갈 이유가 있어야만 삶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이겨 내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96)

누구에게나 새로운 시작은 두렵고 떨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살아 보니 틀린 길은 없었다. 시도한 일이 혹시 실패한다 해도 경험은 남아서 다른 일을 함에 있어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해 볼 여지가 있다면, 씨앗이 껍질을 뚫고 세상으로 나오듯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괴테도 말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거목도 그 처음은 손톱보다도 작은 씨앗이었음을 잊지 말기를.


(101-102)

그래서 나는 광보상점 같은 나무의 기질에 대해 설명할 때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자세를 비유로 들곤 한다. 기질에 맞게 자리만 잘 잡아주면 나무는 큰 보살핌 없이도 제가 알아서 잘 자란다. 아이 역시 타고난 적성에 맞춰 방향만 잘 잡아 주면 아기새가 둥지를 떠나 드넓은 하늘로 날아오르듯 자신의 인생을 알아서 잘 펼쳐 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든지 잘 모르는 부모가 의외로 많다. 나무에 관심이 많다면서도 나무에 대해 너무 몰랐던 내 친구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알지요라고 말하기 전에 아이에게 요즘은 뭐가 제일 재미있어?”라고 묻는 부모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114)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가는 모든 길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이왕 남길 흔적,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고, 나와 함께해서 좋았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어나면 얼마나 보람될까. 그래서 나는 나무처럼 사는 것이 삶의 목표다. 그러한 제목으로 책을 낸 후 후회도 많이 했다. 어디 나무처럼 산다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그래도 나는 그러고 싶다. 꼭 나무처럼만 살았으면 원이 없겠다.


(132-133)

맞서 싸우지 않고 일단 한 걸음 물러서서 부드럽게 우회할 줄 아는 것. 그것을 결코 지는 것이 아니다. 저 혼자 강하게 곧추선 나무가 한여름 폭풍우에 가장 먼저 쓰러지는 법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아무리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 노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부드러운 것이 능히 단단한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이긴다.”


(137)

가만히 보면 나무에게 있어 적응은 가진 것을 버리는 데사 출발한다. 똑 같은 종인데도 사막과 초원의 경계쯤에 자리한 나무는 비옥한 땅에서 자라는 나무에 비해 뻗는 가지도 적고, 가지에 달린 잎도 얼마 되지 않는다. 대신 건조한 기후에 살아남기 위해 잎이 두껍다. 아예 사막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있던 잎도 모두 없애고 잎이 달릴 자리에 가시만 남긴다. 변화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연의 모습을 철저히 버리고 그곳에 맞게 적응해 가는 것이다. 더욱이 그냥 적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의 다른 생명체들까지 불러 모아 새로운 생명의 땅을 만든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나무가 한번 머물다 간 자리는 생명이 깃드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198)

사람은 누구나 어제보다 나은 오늘, 달라질 내일을 꿈꾼다. 하지만 마음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거창한 변화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오늘이 쌓여 어느 순간 달라지는 내일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결국 모든 것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겠다는 작은 결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자리를 탓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 안에서 부단히 변모를 꾀하며 수백 년 살아가는 나무처럼 말이다.


(226-227)

그런데 플라타너스의 우리말 이름이 버즘나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플라타너스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껍질이 벗겨져 허연 속살이 얼룩덜룩 보이는 수피가 얼굴에 피는 버짐(버즘)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253-254)

가만히 보면 세상 모든 문제를 정해진 틀 안에서 해석하고, 자신의 삶조차 규격화된 공식 안에 가두어 살아가는 존재는 인간뿐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한 삶이라는 것도 실은 누가 정해 놓았는지도 모를 인생 공식 안에 갇힌 박제 같은 인생이 아닐는지. 하지만 삶을 거듭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복잡한 문제들은 결코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다. 알려진 공식대로 열심히 달려간다 한들, 그것이 진정한 인생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292)

나무가 하늘을 향해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바람에 수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냉혹한 바람에 꽃과 열매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뿌리의 힘은 강해지고 시련에 대한 내성도 커진다. 바닷가에 자리한 팽나무가 거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꼿꼿했더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가지들을 지닌 거목으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팽나무에게 있어 흔들림은 스스로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드는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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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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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로런 그러프의 <아르카디아>라는 소설을 읽었단다. 책 앞표지만 보면 가볍고 유쾌 통쾌한 소설일 것 같았단다. 핑크빛 바탕에 꽃단장 그림이 그려진 귀여운 미니버스. 거기에 글씨체도 예쁘게… <오베라는 남자>와 같은 느낌이 드는 책표지라서, <오베라는 남자>와 같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어. 책표지와 달리 꽤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었단다. 유토피아를 꿈꾸던 이들이 결국 실패를 했다는 이야기라고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아빠가 너무 비약한 것일까. 아무튼 책표지와는 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단다.

아르카디아는 고대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한 지역의 이름이고, 현재도 그 고장의 이름으로 있대. 그렇다고 이 소설이 그리스의 아르카디아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아니란다. 그리스 신화에 아르카디아가 나오는데, 목신의 영토라고 했대. 숲의 신, 나무의 요정, 자연의 정령인 님프 등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목가적 낙원이라고 옮긴이가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는구나. 그렇게 낙원을 꿈꾸던 사람들의 이야기. 1960년대 미국 뉴욕주에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만든 공동체. 그 공동체의 이름이 아르카디아였단다. 그들은 그들만의 룰을 만들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단다. 실화는 아니고, 가상의 공동체였지만, 당시 미국에는 실제로 여럿 공동체가 있었다고 하는구나.


1.

아르카디아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나서, 처음 태어난 아이 비트가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비트가 태어났을 때 아직 공동체에 제대로 된 시설이 없어서, 텐트를 치고 살거나 차 안에서 생활했어. 그들은 자신들을 자유민이라 부르며 공동 노동으로 공동 주택을 짓고 있었지. 아르카디아에서는 사유 재산도 없고, 공동 노동을 하고 공동 육아를 하는 등 그들 만의 룰이 있었단다. 그들만의 시스템을 하나하나 만들어간다고 할까.

비트의 원래 이름은 리들리 소럴 스톤인데, 태어날 때 아주 작게 태어나서 비트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부른단다. 비트의 아빠는 에이브이고 엄마는 해나인데, 해나는 비트의 동생을 임신했다고 유산을 해서 몸도 좋지 않았고, 우울증도 앓고 있었어. 기분이 가라 앉았을 때도 많았고 몸도 좋지 않아 임시 주택에만 있었어. 그런 시간이 오래되다 보니 처음에는 이해하던 다른 자유민들이 점점 해나를 좋지 않게 보았어. 일도 안하고 쉬기만 한다고 말이야. 이곳에서는 공동 노동이 필수인데 말이야. 한편, 공동 주택 공사가 끝나갈 즈음 비트의 아빠 에이브가 크게 다치고 말았단다.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불행히도 평생 불구의 몸을 갖고 살아야 했어.

아르카디아 공동체에서도 리더는 있었단다. 핸디라는 사람인데 그는 바깥 세상으로 공연을 하러 다니기도 했어. 그 수입은 공동체 운영하는데 썼고 말이야. 그런데 이 핸디라는 사람은 아빠가 생각하기에 자유와 방종을 좀 구분을 못하는 사람 같았단다. 그들이 표방하는 것이 자유이긴 하지만, 책임이 뒤따르지 않고, 공동체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는 것도 있었어. 핸디에서 공식적인 아내 애스트리드가 있었지만 자유연애를 즐겼단다. 아빠가 생각하기에 이 공동체의 문제점은 핸디라는 사람이 리더라는 것

....


2.

세월이 흘러 어느덧 비트는 14살이 되었단다. 정신적 리더 핸디의 딸 헬레가 있었는데 비트 또래였단다. 헬레는 바깥 세상에 다녀오기도 했어. 비트가 헬레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 비트는 열 네 살이 되도록 아르카디아 안에서만 지내고 있었단다. 그들의 룰에 따라서 말이야. 아르카디아도 운영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들은 대마를 키워서 돈을 벌었어. 그런데 그 대마라는 것이 불법이다 보니 바깥세상의 경찰들이 아르카디아를 감시하곤 했어. 시간이 꽤 지나면서 공동체 안에 자유민들 간에 대립이나 갈등도 생겨났고, 핸디의 독단에 대한 불만들도 늘어났단다.

그 공동체에 들어오는 사람들에 무분별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범죄자들이 은닉의 목적으로 오는 경우도 있는 등 공동체 생활이 점점 삐그덕거렸어. 그래서 아르카디아를 떠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났어. 비트 가족 바깥 세상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참아 보았지만, 결국 그들도 아르카디아를 떠나기로 했단다.


3.

바깥 세상으로 나온 비트... 또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었고, 헬레와 결혼을 했고, 세 살배기 딸 그레테가 있었어. 비트는 사진작가 겸 교수로 일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나. 아르카디아는 어떻게 되었냐고?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의 세상은 붕괴되고 다들 뿔뿔이 흩어졌단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연락을 하면 지내고 있었어.

비트와 결혼을 한 헬레. 지금은 그녀가 없단다. 헬레는 9 개월 전에 산책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어. 헬레가 정신적으로 그리 건강하지 않고, 늘 힘들어했지만 세 살배기 딸을 두고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 했구나. 비트는 홀로 딸을 키우면서 그런 생활에 적응하려고 했어.

또 세월이 그리고 2018년이 되었단다. 여전히 헬레는 돌아오지 않았고, 딸 그레테는 비트가 아르카디아를 떠났던 나이인 열 네 살이 되었단다. 반항기 있는 십대가 된 것이지비트의 엄마 해나는 루게릭 병에 걸리고 말았어. 근육이 위축되어 움직이지 못하다가 결국 죽고 마는 무서운 병이란다. 비트의 아빠 에이브는 여전히 휠체어 생활을 하시지. 그 옛날 아르카디아에서 사고 때문에 말이야. 해나와 에이브는 자신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없고 비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동반 자살을 시도한단다. 하지만 에이브만 죽고 해나는 실패하게 돼. 혼자 된 해나를 보살피기 위해 비트와 그레테는 해나의 집으로 온단다. 해나는 아르카디아가 있었던 지역에 살고 있었어. 비트는 엄마인 해나와 함께 그곳에 살면서, 옛날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렸단다. 비트는 그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결국 엄마 해나는 죽고, 끝내 헬레는 돌아오지 않았단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은 2012년이란다. 그러니까 소설 속의 2018년은 지은이가 2012년에 생각했던 미래의 모습이지. 2018년은 이미 지나간 과거이지만, 소설 속 2018년은 마치 오늘날 2020년의 모습과 흡사해서 놀랐단다. 소설 속 2018년은 전 세계가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한 시대를 그리고 있었거든. 그런데 2020년 오늘전세계가 무서운 전염병과 싸우고 있잖아. 일상이 사라지고, 아니 전염병과 싸우는 모습이 일상에 된 세상. 얼른 코로나19가 사라졌으면 좋겠구나.


4.

자본주의 종말을 치달아가고 있는 세상. 이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 그런 것으로부터 탈피해서 뜻 맞는 사람들과 모여서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공동체 생활. 하지만 그런 공동체 생활도 결국은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거야. 그러면서, 공동체 바깥의 생활, 그렇게 부조리하고 썩어빠진 곳이라고 생각했던 세상의 좋았던 점이 떠오르면서, 그리워 하게 되고결국 공동체 생활은 파탄이 나고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고... 또 다시 바깥 세상의 부조리함을 깨닫게 되는 반복.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면서도, 그래도 지구를 파괴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안은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들게 한 소설이었단다.


PS:

책의 첫 문장 : 강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인들.

책의 끝 문장 : 이런 순간, 활짝 피어났다 희미해지며 지나가는 이 순간, 그는 그것으로 족하다. 세상은 모든 것이 안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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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6)

내 생각을 말해줄까?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들이파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면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다. 앞뒤가 꼭 막혔다고? 융통성이 없다고 했지? 여름 장마철의 봇물을 보렴. 막힌 물은 답답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돈다. 그러다가 농부가 삽을 들어 막힌 봇물을 터뜨리면 그 성대한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단다. 얼마나 통쾌하냐? 어근버근 답답하다고 했지?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나중에는 튀어나와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 반반해져서 마침내 반빡반짝 빛나게 된다.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


(53)

사의재(四宜齋)는 내가 강진에 귀양 와서 사는 집이다. 생각은 담백해야 한다. 담백하지 않으면 서둘러 이를 맑게 해야 한다. 외모는 장중해야 한다. 장중하지 않으면 빨리 단속해야 한다. 말은 과묵해야 한다. 과묵하지 않으면 바삐 멈춰야 한다. 동작은 무거워야 한다. 무겁지 않거든 재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에 이름을 붙여 사의재라 하였다. 마땅하다()는 것은 의롭다()는 뜻이다. 의로움으로 통제한다는 의미다. 나이가 들어감을 생각하다보니 뜻과 학업이 무너진 것이 슬퍼서 스스로 반성하길 바란 것이다. 이때는 가경8(순조3, 1803) 겨울 11월 신축일 초열흘, 동짓날이니, 실로 갑자년이 시작하는 날이다. 이날 <주역>의 건괘를 읽었다.”


(62~63)

아이가 글을 읽는 것은 대개9년이다. 여덟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가 그때다. 하지만 여덟 살부터 열한 살까지는 아는 것이 어리석어 책을 읽어도 맛을 모른다. 열대여섯 살쯤 되면 이미 음양에 대한 기호가 생겨 여러 가지 물욕으로 마음이 나뉜다. 실제로는 열두 살부터 열네 살까지 3년간 독서한다. 하지만 이 3년 중에도 여름에는 무더위로 괴롭고 봄가을로는 좋은 날이 많다. 아이들은 놀기를 좋아해서 모두 능히 독서만 할 수가 없다. 다만 9월부터 2월까지의 180일간이 독서하는 날이 된다. 3년을 합쳐 계산하면 540일이다. 여기에다 세시(歲時)의 놀이와 질병이나 우환으로 방해받는 날짜를 빼면 실제로 독서할 수 있는 대략 3백 일이다. 3백 일은 하루하루가 보배구슬 같고, 하나하나가 금옥과 다름없다. 하지만 조선의 어린이들은 모두 소미 선생의 <통감절요> 15책을 이 3백 일간의 양식으로 충당한다. 결국 평생의 독서가 이 책 한 질에 그치고 만나. 나머지 다른 책을 읽는다고는 해도 모두 대충대충 읽어 온전히 하지 못하니 족히 꼽을 것이 못 된다.”


(131)

생활을 꾀하는 방법은 밤낮으로 궁리해봐도 뽕나무 심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구나. 이제야 제갈공명의 지혜로움이 과연 가장 윗길임을 알겠다. 과일을 파는 것은 본래 맑은 이름을 지키는 일이기는 해도 장사꾼에 가깝다. 뽕나무 같은 것으로 선비의 명성을 잃지도 않고 큰 장사꾼의 이익을 얻게 되니, 천하에 이 같은 일이 다시 있겠느냐. 남쪽 땅에 뽕나무를 365그루 심은 사람이 있다. 이것으로 해마다 돈 365꿰미를 얻는다. 1 365일에 날마다 한 꿰미씩 써서 양식을 삼으니 평생 궁하지 않았다. 마침내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채 세상을 떴으니, 이 일을 가장 본떠 배워야 할 것이다. 그다음은 잠실(蠶室) 세 칸을 짓고 잠박(蠶箔) 7층으로 만들어라. 모두 스물한 칸에 누에를 길러 부녀자들이 놀고먹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니라. 올해 오디가 익었으니, 너는 소홀히 여기지 마라.”


(139)

- 공부는 밥 먹듯이 해야 하는 법이다. 숨 쉬듯이 하고, 습관처럼 해야지. 내가 그렇게 두고두고 일렀거늘

- 그리하겠습니다. 다시는 마음을 풀지 않겠습니다.

- 한동안 고성사로 올라가 지내거라. 안과는 당분간 떨어져 공부만 해야 한다. 시를 짓거든 내게 내려보내고. 날마다 목표량을 정해놓고 읽고 쓰도록 해라. 중간에 맥을 놓으면 공부도 덩달아 맹탕이 된다. 새잡이가 되고 만다. 이 길로 올라가거라. 알겠느냐?


(160-161)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은 처음에 종을 쳐서 시작하고, 끝에는 경()을 울려 마친다. 순순하게 나가다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마침내 화합을 이룬다. 이렇게 해서 악장이 이루어진다. 하늘은 1년을 한 악장으로 삼는다. 처음에는 싹 트고 번성하며 곱고도 어여뻐 온갖 꽃이 향기롭다. 마칠 때가 되면 곱게 물들이고 단장한 듯 색칠하여 붉은색과 노란색, 자줏빛과 초록빛을 띤다. 너울너울 어지러운 빛이 사람의 눈에 환하게 비친다. 그러고서는 거둬들여 이를 간직한다. 그 능함을 드러내고 그 묘함을 빛내려는 까닭이다. 만약 가을바람이 한차례 불어오자 쓸쓸해져서 다시 떨쳐 펴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텅 비어 떨어진다면, 그래도 이것으로 악장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산에 산 지 여러 해가 되었다. 매번 단풍철을 만나면 문득 술을 갖추고 시를 지으며 하루를 즐겼다. 진실로 또한 한 곡이 끝나는 연주에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185)

- 아버님! 우리 풍속에서 집안의 촌수를 따지는 것은 고루하고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닐는지요?

- 삼촌이니 사촌이니 하는 것은 네 말대로 우리나라 풍속이다. 하지만 또 지극히 묘하고 정밀하다. 마땅히 정리(情理)상 우리나라 풍속이라 하여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다만 촌수를 따지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숙부가 삼촌이 되는 것을 따져보자. 나와 아버지는 1촌이고,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또 1촌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동생은 또 1촌이다. 그래서 3촌이 되는 것이지. 4촌이나 6촌은 거슬러 증조부까지 올라가서 따져서 내려와 그 촌수를 헤아린다. 지금 사람들이 4촌과 6촌은 모두 나란히 놓고 옆으로만 따지려 들어, 끝내 4 6을 맞추기 못하니 또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촌의 경우는 고조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내려와야 한다. 네가 시험 삼아 다른 사람에게 이를 물어보면 알게 될 게다.


(285)

깊은 산속에 살며 거친 옷에 짚신을 신고 맑은 못가에서 발을 씻고 고송에 기대어 휘파람을 분다. 집에는 좋은 거문고와 오래된 경쇠(맑은 소리를 내는 악기의 종류)를 놓아두고, 바둑판 하나와 책을 한 다락쯤 갖추어 둔다. 마당에는 백학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꽃과 나무, 수명을 늘이고 기운을 북돋우는 약초를 심는다. 이따금 산승이나 우객(羽客, 도사)과 서로 왕래하며 소요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세월이 가고 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조야(朝野, 조정과 민간을 통틀어 이르는 말)가 잘 다스려지는지 어지러운지에 대해서도 듣지 않는다. 이런 것을 두고 청복(淸福)이라고 한다.”


(312)

제목은 <4 20일에 학포가 왔다. 서로 헤어진 지 이미 8년이 되었다>이다.

생김새는 내 자식이 틀림없는데

수염 자라 흡사 딴사람 같네.

집 편지 가지고 오긴 했어도

정말로 진짜인가 긴가민가해.”


(331~333)

예전 죽란(竹欄, 서울 명례방의 집 이름)에서 살 적에 내 성품이 국화를 사랑했다. 해마다 국화 화분 수십 개를 길러, 여름에는 그 잎을 살피고, 가을에는 그 꽃을 보았다. 낮에는 그 자태를 관찰하고, 밤에는 그림자를 감상했다. 무실선생(務實先生)이란 이가 지나는 길에 들렀다가 비난하며 말했다. “심하구려. 그대의 화려함이. 그대는 어째서 국화를 기르는가? 복숭아와 오얏, 매화가 살구 같은 것은 꽃과 열매를 두루 갖추고 있고. 나는 이 때문에 일삼아 이를 기른다네. 열매가 없는 꽃은 군자가 마땅히 심을 것이 못 되어.” 내가 말했다. “공께서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십니다그려. 형체와 정신이 오묘하게 합쳐져 사람이 됩니다. 형체만 기르면 정신이 굶주릴 수 있습니다. 열매가 있는 것은 입과 몸뚱이를 길러주고, 열매가 없는 것은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하지요. 어느 것이든 사람을 길러주지 않음이 없습니다. 맹자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요? ‘대체(大體)를 기르는 자는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를 기르는 자는 소인이 된다고요. 어찌 반드시 입에 넣어 목구멍으로 삼킨 뒤라야 실용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도리를 확충한다면 장차 농부라야 성인이 되겠고, 시를 외우고 글을 읽는 것은 모두 실속 없는 공부가 되고 말겠군요. 이 어찌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불가의 말에도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이도(異道)이기는 하나 지극한 이치가 담긴 말입니다. 또 어찌 이른바 실이 허가 아니며, 허가 실이 아닌 줄을 알겠습니까? 공자께서는 군자는 의리로 깨우치고, 소인은 이익으로 깨우친다고 했습니다. 주자가 육자정(중국 남송의 유학자 육구연)과 더불어 아호의 강석(講席)에서 이 뜻을 강론할 때, 사방에 앉았던 이들이 이를 위해 눈물을 흘린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두 허를 살핌을 실이라 여기고, 이익을 깨우침을 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실로 분명하고 통쾌하게 이를 나눠 풀이하자 총명한 사람들이 모두 울었던 것입니다.”


(406-407)

황상이 마재를 떠나던 2 19일만 해도 다산의 용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침나절에는 감회가 일었던지 결혼 60주년을 돌아보는 시도 한 수 지었다. <회근시>가 그것이다.

눈 돌리는 사이에 예순 해가 지나가니

복사꽃 짙은 봄빛 신혼 때와 비슷하다.

살아 이별 죽어 이별 늙음만 재촉하고

짧은 근심 긴 기쁨에 임금 은혜 감격하네.

이 밤에 목란사(木蘭詞)는 가락이 더욱 좋고

그 옛날의 <하피첩>엔 먹 자국이 남았구나.

갈라졌다 되합쳐짐 내 형상 그대로라

합환 술잔 남겨두어 자손에게 주리라.”


(543-544)

황상은 정학연의 죽음을 통곡하며 <곡정감역> 3수를 지었다. 셋째 수만 읽겠다.

이재 완당 산천 공의 좌석에 함께하니

노둔한 말 천리마 터럭에 붙었다고 말들 했지.

만리장성 무너져서 몸은 위태로운데

늦봄이라 꽃 시들고 빗소리는 수런수런.

집 일으킨 큰 사업이 어이 부끄러우랴만

동각의 유편(遺編) 앞에 머리 자주 긁적였지.

시문 어이 일삼으리 휘파람만 그저 불며

남은 인생 다만 그저 술 마시며 울 뿐일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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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외국어 - 모든 나라에는 철수와 영희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 12
조지영 지음 / 위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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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평이 괜찮아 주문 버튼을 눌렀단다. 그리고 아빠가 요즘 영어 공부에 관심이 많거든. 관심은 많은데 실력은 늘지 않고그리고 몇 달 전 마음 먹었던 결심이 서서히 힘이 풀리고그래서 마음을 다시 잡아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서 이 책을 읽은 거야.

아무튼 외국어. .. 요즘 책 제목에 아무튼이라는 말을 넣는 게 유행인가? 이런 생각을 했단다. 아빠가 작년에 <아무튼, >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거든. , 책을 받고 보니…. 아무튼 시리즈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단다. <아무튼, >, <아무튼, 외국어> 모두 아무튼 시리즈였어. 놀랍게도 <아무튼 외국어>는 아무튼 시리즈의 열두 번째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검색을 해보니 최근에는 수십 개의 아무튼 책이 있는 것 같아. 김혼비라는 작가에 큰 기대를 걸고 읽었던 <아무튼 술>에 실망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아무튼, 외국어>라는 책도 살짝 선입견이 있었어. 별로일 것 같아, 책도 얇고 구성도 내 스타일이 아니야이러면서 책을 펼쳐 들었어. 솔직히 반전은 없었단다. 딱 예상한 수준의 책이었단다.


1.

지은이 조지영님은 대학교 때 불문과를 전공했다는구나. 그러니까 프랑스어를 배웠다는 이야기이지. 그렇다고 프랑스어를 아주 잘 하는 편은 아니래.(겸손일 수 있지만…) 또 그렇다고 영어를 아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에 관한 책을 쓰게 된 것은 지은이의 취미가 외국어 배우기라고 하는구나. 한 개 언어를 통달할 때까지 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 당연한 언어를 조금씩 배운다는 거야. 중국어, 일본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또 뭐가 있었지? 참 다양한 언어를 조금씩 맛보듯 공부를 하다니사실 아빠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더구나. 아무리 취미라고 하지만 말이야.

외국어가 다 그렇지만, 동사 부분에 오면 큰 장벽을 만나게 된단다. 그렇지, 공감이 되더구나. 우리나라 동사 체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 학장시절 아빠를 괴롭혔던 과거완료. 갑자기 옛 생각이 마구 떠오르는구나. 맞다, 대과거라는 해괴망측한 말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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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외국어의 평화를 잠식하는 것은 대체로 동사라는 막강한 빌런의 공이 크다. 마치 공부를 잘해도 수학을 못하면 크게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동사를 잘 구사한다는 뜻과 많이 다르지 않다. 우선 동사가 제 역할을 하려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주어가 하나인지 둘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중요하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영어에서 완료시제를 배울 때, ‘have+pp’라는 공식을 암기했던 사람들은 과거-현재-미래 말고도 또 다른 시간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나마 경험했을 것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고생문이 열리는 지점은 그러니까 바로 이런 순간, 시제를 배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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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은 지은이가 다양한 외국어를 공부하면 생긴 에피소드와 외국 여행 경험담을 주로 담고 있단다. 아빠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영어 공부에 대한 운동화 끈을 조여 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랬지만, 그 정도까지의 생각은 들지 않았단다. 그냥 아빠의 의지로 영어 공부에 대한 마음을 먹어야겠구나.


2.

문득 아빠도 아무튼아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예전에 아무튼이 맞냐? ‘아뭏든이 맞냐?  고민을 한 적도 사실 있었는데, 요즘에는 알아서 맞춤법을 알려주어 아무튼이 옳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지. 아무튼 아빠는 아무튼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아. 화제 전환하기 딱 좋거든.. 가끔은 맞춤법이 맞지 않다고 빨간 줄이 그어지지만, 줄여서 암튼도 쓰곤 하지.

아무튼, 아무튼, 아무튼, 오늘 독서 편지는 끝!


PS:

책의 첫 문장 :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는 내게는 좀 특별한 영화다.

책의 끝 문장 : 외국어 배우기 책을 써야 할 사람은 실은 내가 아니라, S였던 것이다.


나는 강박적으로 모호함을 싫어하는, 융통성 없는 이 언어를, ‘어제의 세계’를 기억하는 말들을, 좀더 알고 싶어졌다. 츠바이크의 작별 인사를 언젠가 독일어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은 소박하지만 영 허황된 바람도 생겼다. 무엇보다 독일어를 공부할 때는 이 언어가 나에게 실질적인 효용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서인지, 교양이 올라가는(?) 느낌마저 든다. 대단한 대가가 되는 일 같은 건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일, 열심히 해도 잘하기는 쉽지 않은 일, 무엇보다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매달리고 싶어지는 그런 때가 있다. 요약하면 그것이 바로 ‘쓸데없는 일’의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 P72

정말로 스페인어는 정다운 언어 같다고 생각한다. ‘한’이라는가 ‘정’이라는 정서, 혹은 ‘효’라는 개념이 우리한테만 있는 특산품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코코>만 봐도, 거기도 있을 거 있다. 한도 있고, 정도 있고, 심지어 그 효도 있고 그렇다. 스페인어를 들으면, 정말이기 독일어는 세상 무뚝뚝하고, 프랑스어는 살짝 간질거리는 것 같고, 영어는 새삼 밍밍하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스페인어는 확실히 모음으로 끝나는 단어가 많아서인지 부드럽기도 한 느낌이다. 그래서 노래하기에도 좋은 언어인 것 같다. - P88

그러므로 쓸 일도 없는 불어를 기억하려고 애쓰고, 뜬금없이 독일어 관사와 씨름을 해대고, 일드의 명대사를 반복하거나 스페인어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중국어 성조를 외우며 고개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은 떠나지 않고, 떠난 척해보고 싶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도 같다. 키에르케고르 원서를 읽어보겠다고 무심하게 네덜란드어를 하나 마스터하신 서강대 철학과 강영안 교수님이나, 혹은 그 바쁜 스케줄에도 중국어, 영어, 일어로 유창하게 비즈니스를 이끌어가는 빅뱅의 승리 씨처럼 언어 감각이 탁월하거나 부지런하지는 못한 까닭에, 나의 외국어들은 대체로 그저 아장아장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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