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3 - 연산군에서 선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3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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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 세 번째 책을 읽었단다.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형식을 그대로 책으로 엮어서 읽기 편한 시리즈란다. 아빠가 어렸을 때 역사를 안 좋아했고, 나중에 커서 좋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잖아. 너희들은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으면 했는데, 아빠의 아이들이 맞는 것 같구나. 슬쩍 역사 관련 책들을 사다 두었는데, 안 읽는 것 같구나.

아빠가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능력도 안 되고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알려주는 유튜브를 찾아봐야 하나그래도, 지루하더라도, 역사책 읽고 나서 아빠는 너희들에게 역사책 이야기를 해보련다.

이번 역사저널 그날 3권은 조선시대 연산군부터 선조시대까지의 이야기란다. 연산군이라고 하면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 통틀어 최고의 폭군이라고 할 수 있지. 너희들도 이제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 알게 될 거야. 무오사화, 갑사사화로 많은 신하들을 내치고, 직언을 하면 죽여버리니, 누가 왕에게 제대로 된 조언이나 충언을 하겠는가. 듣기 좋은 말만 하겠지. 직언을 하는 신하가 없고,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보니, 보다 못한 내관 김처선이 직언을 했는데, 그 또한 살아남을 리 있겠니, 비참하게 죽고 말았어. 연산군은 김처선을 죽이고 그의 이름인 이라는 글자를 쓰지 못하게 했다는구나. 허허, 그 흔한 성씨인 을 빼 준 배려에 감사해야 하나.

그와 반대로 김자원이라는 내관은 온갖 감언이설을 하여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온갖 권력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연산군의 영혼의 파트너라고 하면 장녹수라는, 역시 악명 높은 이가 있단다. 궁궐 안에 모든 신하들이 그를 멀리하고, 가끔 보면 듣기 좋은 말만 하고쿠데타가 안 일어나면 이상한 일이었단다. 신하들이 합심하여 쿠데타, 그러니까 반정을 일으켰는데, 너무 쉽게 연산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단다. 연산군의 측근과 간신들, 그리고 장녹수는 처형 당하고, 연산군은 강화도 위쪽 교동도로 유배를 보냈단다. 유배를 간 지 두 달 만에 역질로 죽고 말았단다. 그의 나이 새파란 서른 하나.


1.

연산군을 몰아낸 반정을 역사적으로 중종반정이라고 한단다. 왜냐하면 연산군이 몰아내고 왕이 된 사람이 중종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정작 중종은 반정이 일어나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하는구나. 신하들이 연산군을 몰아내서 중종을 왕위에 얹혀 놓은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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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중종반정은 명분은 있었으나, 준비는 부족했던 사건이었다. 연산군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준비된 왕이 없었고, 중종 스스로도 왕이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왕이 되었기 때문에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존재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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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에 오른다고 모두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란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의 부인이었던 단경왕후는 폐위당했단다. 단경왕후가 연산군의 측근이자 연산군의 처남인 신유근의 딸이기 때문이었어. 어떤 심정이었을까. 왕이 된 자신의 아내를 폐위시키는데 아무 말도 못한 왕. 다음 부인도 신하들이 정해주었어. 장경왕후가 왕비가 되었어. 장경왕후는 8년이 지난 뒤 아이를 낳았는데, 장경왕후는 산후열로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불쌍한 중종그 이후 다시 왕비를 뽑았는데, 이번에는 간택으로 왕비를 뽑았다고 하는구나. 사극을 보다 보면 간혹 왕비 후보를 뽑아 고르는 간택이 가끔 나오는데, 이 때가 조선시대 최초의 간택이라고 하는구나. 그렇게 간택된 왕비가 문정왕후 윤씨란다. 문정왕후는 나중에 명종때 수렴청정을 하면서 권력을 독차지하여 여인천하를 이룬 인물로 유명하단다.

….

앞서 이야기했지만 준비도 없이 왕이 된 중종그래도 권력을 잡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겠지. 주위에는 온갖 공신들의 압력에 기를 펴지 못할 때 그가 손잡은 이가 신진세력의 대표주자 조광조였단다. 아빠도 예전에 조광조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조광조라는 인물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왕을 잘못 만나서 안타까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단다.

중종은 조광조와 함께 개혁을 하려고 하는 듯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조광조에 변심하고 훈구파의 모함까지 더해져서 조광조를 반역의 누명을 씌어 죽여 버렸단다. 조광조가 너무 왕을 다그치면서 개혁을 주장해서 중종이 등을 돌렸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원래 종중이 그런 사람이었다고 하는구나. 반정공신을 몰아내기 위해 조광조를 이용했고, 조광조를 몰아내려고 훈구파의 심정과 왕실의 경빈 박씨를 이용했고, 심정과 경빈 박씨를 몰아내기 위해 김안로를 이용하고, 김안로를 몰아내기 위해 양연이라는 사람을 몰아내고 말이야. 어떤 이가 우스개로 중종의 법칙이라는 말까지 했단다. 중종반정으로 준비 안된 상태로 왕위에 올라서, 왕 자리를 존속하기 위한 그만의 비법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아무튼 그는 조선 왕들 중에 다섯째로 오랜 기간인 38년 동안 왕을 했단다.


2.

이번 시대에 몇몇 인물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단다. 먼저, 명종 때의 의적 임꺽정. 임꺽정이 유명해진 것은 아마 홍명희의 소설 때문일 거야. 그 이후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고 말이야. 백정이었던 임꺽정은 왜 의적이 되었을까. 당시 평민과 천민에 대한 수탈이 무척 심했단다. 일하면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고 빚이 늘어나고 시절이었어. 조정에서는 알아봐주지도 않고그의 반란은 결국 실패했지만, 조선 민중의 힘을 볼 수 있었단다.

이번에는 양반 한 분을 이야기해줄게. 국어책에 자주 등장하는 시인이자 문인으로 알려진 정철. 예전에 이미 다른 책들에서 정철의 본모습을 알게 된 다음부터 그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안 좋아져서, 정철 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이 책에서도 노회한 정치인으로써 정철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정여립이라는 사람이 역모를 꾸몄다고 하면서 관련된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이를 주도한 것이 정철이었고, 무려 3~4년 동안 이어졌으며, 죽은 사람만 1000여명에 다다른다고 하는구나. 이를 기축옥사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정여립이 역모를 꾸미지는 않은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란다. 정철이 속해 있던 서인이 권력을 잡는데 정여립을 이용했던 것이고, 이 사건의 배후에는 당시 왕이었던 선조가 있었다고 하는구나. 정치인으로써 정철은돌직구를 날리기도 하는 신조 있는 정치인이면서, 자신의 세력을 위해 감투를 쓰고 무리한 수사까지 하는 인물이었단다. 앞서 이야기한 정여립 사건도 이런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고, 진실도 밝혀내지 못하고 반대파만 신나게 처단한 사건이었던 거야. 그렇다고 그의 말년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단다. 기축옥사로 서인들과 함께 권력을 잡았지만, 선조의 세자 책봉 당시 선조와 다른 의견을 내 놓았다가, 좌의정 딱지 떼이고 좌천된 뒤 유배까지 떠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1년 뒤 술병으로 죽었다고 하니, 그 또한 허망한 인생이로구나. 문학적 재능으로 글이나 열심히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을

….

이문건이라는 사람이 있단다. 이 사람은 위인은 아니야. 그런데 그가 남긴 독특한 기록이 있어 소개되었단다. 손자의 육아일기 <양아록>을 쓴 거야. 예나 지금이나 손자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행복하겠니. 그런 마음을 갓난아기 때부터 손자에 대한 글을 쓴 이문건. 나중에 십대가 된 뒤에는 손자와 갈등을 담기도 했는데, 역시 기록이라는 것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또다른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 한 명 더 소개해 줄게. 조주삼이라는 사람이란다. 이 사람은 83살에 과거 시험을 붙었다고 하는구나. 과거 시험이 어렵다는 것은 알았지만, 83살이라니그의 불굴의 의지와 83살에 과거에 붙었을 당시 그의 느낌을 상상해 보았단다. 얼마나 기쁘고 짜릿했을까. 조주삼이라는 분의 이야기를 하면서 조선시대 과거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시험제도가 상당히 복잡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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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단순 명쾌하게 조선의 과거 시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문과는 크게 대과와 소과로 나뉩니다. 소과는 다시 진사시와 생원시로 나뉘는데요. 진사시와 생원시에는 초시와 복시가 있고, 합격자는 진사시, 생원시 각각 100명씩 총 200명입니다. 이렇게 소과에 합격하고 나면 대과를 볼 수 있습니다. 대과에는 초시, 복시, 전시 3단계가 있는데요. 초시와 복시는 각각 초장과 중장, 종장 3단계의 시험을 보게 됩니다. 초시에서 240명을 선발을 하고, 그중 33명을 복시에서 뽑습니다. 여기서 뽑힌 33명은 마지막 절차인 전시, 즉 왕 앞에서 보는 시험을 통해 최종 순위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 모든 단계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관직에 나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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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과에 합격을 하면 성균관에 들어가게 되는데, 성균관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 대과에 시험 보게 되는데 대과는 오늘날 5급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성균관은 한 달에 2일 휴일을 주곤 하는데 그때 유생들은 반촌이라는 곳에서 놀곤 했는데, 그 반촌이 오늘날 대학로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니대학로가 현재 그 자리에 생긴 이유가 반촌이었나 싶더구나.

마지막으로 승정원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간단히 이야기하고 마칠게. 승정원일기는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조선 초부터 승정원에서 기록한 일지란다. 조선 초의 기록은 전쟁으로 사라지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인조 때부터의 기록인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는구나. 3243권으로 되어 있고, 24250여만 글자로 되어 있대. 번역을 시작한지 20여년이 되었는데, 아직 진척율이 10%라고 하는구나. 인력이 충원되더라도 앞으로 100년은 넘게 걸린다고 하니, 대단한 기록물이로구나.

….

아참, 한가지만 더 이야기할게. 나중에 너희들이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육십갑자로 된 역사적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될 거야. 그때 대략적인 년도를 추측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도 꼭 기억하고 있어야겠구나. 10간이고 숫자가 10개이니까 생각하면 쉽게 생각할 수 있었던 내용인데 미처 몰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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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연도의 끝자리 수 쉽게 외우는 법

10

연도

4

5

6

7

8

9

0

1

2

3

*10간의 ()’으로 시작되는 해는 갑신정변(1884), 갑오개혁(1894)처럼 끝자리 수가 4이다. ‘’,  도 이렇게 외우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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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라는 잠언의 한 구절은 중요한 진실을 짚었다고 생각한다.

책의 끝 문장 : <승정원일기>가 완역되면 그런 인상도 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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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2-21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철. 아이들이 관동별곡땜에 치를 떨지요 ㅎㅎ 양아록은 만화책으로도 나와있는데 할아버지의 손주에 대한 사랑과 교육열은 시대를 초월하는것 같아요 아이들이 만화다 보니 재미있게 읽더군요 *^^*

bookholic 2021-02-21 13:58   좋아요 1 | URL
정철이 문학에만 전념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아, 만화로 된 양아록은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47)

세상은 좋은 곳이지요. 마릴라 아주머니? 린드 아주머니는 세상엔 별로 좋은 일이 없다고 하셨어요. 기분 좋은 일을 찾으려고 할 때마다 실망만 하게 된다고, 기대와 다르다고 말이에요. 맞는 말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거기에는 좋은 점도 있어요. 나쁜 일도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훨씬 좋게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224)

난 네가 대학에 갔으면 좋겠구나. . 하지만 못 간다고 해도 속상해하지는 마라. 어디에 있든 우리는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니까. 대학은 그걸 좀 더 쉽게 해줄 뿐이지. 무엇을 얻는지가 아니라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서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하지. 인생의 풍요로움과 충만함에 온 마음을 여는 법만 배운다면 인생은 풍요롭고 충만할 거야. 여기에서…. 그 어디에서도.


(255)

제가 그런 면이 좀 지나치다는 건 알아요.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면 기대감에 차올라서 하늘로 훨훨 날아가거든요. 하지만 그러다 쿵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져 버려요. 하지만 마릴라 아주머니, 하늘을 나는 동안만큼은 정말로 멋진걸요. 저녁노을 위로 날아오르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쿵 떨어져도 괜찮을 정도예요.


(277)

가장 즐거운 날은 굉장하거나 근사하거나 신나는 일이 생기는 날이 아니라 목걸이를 만들 듯 소박하고 작은 즐거움들이 하나하나 조용히 이어지는 날이라고 생각해요.


(461)

그 순간 앤은 이상하게 가슴이 떨렸고 처음으로 길버트의 시선에 흔들려 창백한 얼굴이 장밋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지금까지 마음속 깊은 곳에 드리워져 있던 베일이 걷히고 뜻밖의 감정과 진실이 드러난 것 같았다. 어쩌면 낭만적인 사랑은 백마 탄 기사님처럼 화려하고 조용하게 다가오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사랑은 예상치 못했을 때 빛처럼 나타나 시와 음악이 있는 책장을 넘겨 버리고 평범한 산문처럼 나타날지도 모른다. 마치 초록색 꽃망울이 황금빛을 띠는 장미꽃으로 바뀌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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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나중에 알아볼 것들을 생각하는 일도 근사하지 않나요? 살아 있다는 게 기쁘게 느껴지거든요. 세상엔 재미있는 일이 참 많아요. 우리가 모든 걸 다 안다면 사는 재미가 반으로 줄어들 거예요. 안 그래요? 그러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일도 없겠죠? 그런데 제가 말이 너무 많나요? 모두들 그렇게 말해요. 제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으세요? 아저씨가 그렇다면 조용히 할게요. 전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그만둘 수 있거든요.


(62)

이런 아침에는 세상이 온통 사랑스럽지 않나요? 시냇물의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와요. 시냇물이 얼마나 유쾌한지 아세요? 언제나 웃고 있어요. 겨울철에도 얼음 밑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요. 초록 지붕 집 근처에 시내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어차피 여기서 살지도 못할 건데 무슨 상관이냐 싶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다시는 보지 못한다 해도 전 초록 지붕 집에 시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거예요. 만약 없었다면 그곳에 시내가 꼭 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늘 따라다닐지 모르거든요. 전 오늘 아침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지 않아요. 아침엔 절대 그럴 수가 없어요. 아침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무척 슬퍼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주머니가 바라시던 아이는 바로 저이고, 여기서 언제까지나 살게 되었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상상을 하는 동안에는 큰 위로가 됐어요. 하지만 상상의 가장 나쁜 점은 깨어날 때 마음이 아프다는 거예요.


(168)

어머, 어떤 일이든 기대하는 데 그 즐거움의 반이 있는 걸요. 혹시 일이 잘못된다 해도 기대하는 동안의 기쁨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거예요. 물론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실망할 일도 없으니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전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쪽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397)

전 초록 지붕 집에 온 뒤부터 실수를 많이 저질렀는데, 그 실수들은 하나같이 저의 큰 단점들을 고치게 해줬어요. 자수정 브로치 사건으로 제 것이 아닌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게 됐고요. 유령의 숲 일은 상상에 너무 빠져 드는 버릇을 고치게 해줬어요. 진통제 케이크 사건으로, 요리할 때 신중하지 못한 습관을 버리게 됐고요. 염색 사건을 겪으면서는 허영심이 없어졌어요. 이젠 더 이상 머리나 코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적어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오늘 실수는 지나치게 낭만을 찾는 습관을 고쳐 줄 거예요.


(428)

지난 한 해 동안 다들 열심히 잘해 주었어요. 여러분은 즐겁고 신나게 방학을 보낼 자격이 있어요. 밖에서 마음껏 뛰어 놀면서 다음 학년을 위한 건강과 활기와 포부를 가득 채우도록 하세요.


(472)

글쎄, 난 다이아몬드가 없어 평생 위안받지 못하더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긴 싫어. 난 진주 목걸이를 한 초록 지붕 집의 앤으로 충분히 만족해. 분홍 드레스를 입은 부인의 보석 못지않게 이 목걸이에 담긴 매슈 아저씨의 소중한 사랑을 난 알고 있으니까.


(475)

전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정말이에요. 그저 쓸모없는 가지를 잘라 내고 새 가지를 뻗었을 뿐이에요. 초록 지붕 집에 있는 진짜 제 모습은 한결같아요. 제가 어디를 가든 겉모습이 어떻게 변하든 전 조금도 달라지지 않아요. 마음속엔 항상 어린 앤이 있어서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와 정겨운 초록 지붕 집을 날마다 더욱더 사랑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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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무관생도들 소설로 읽는 역사 1
이원규 지음 / 푸른사상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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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원규님의 책을 읽었단다. 이원규님이 쓰신 역사 소설과 평전을 몇 권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너무 좋아서 그의 다른 책들은 뭐가 있나, 이렇게 찾아보고 알게 된 책이 바로 이번에 읽은 <마지막 무관생도들>이란 책이란다. 이원규님이 쓰신 책들은 주로 일제 시대 독립 운동을 무대로 책들이라서, 책 제목을 보고 이번에도 그 시대를 쓰셨구나, 생각했단다. 그리고 늘 그렇듯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역사를 찾아내어 알려준 그런 책이었단다.

마지막 무관생도들이라고 하면 언제를 이야기하는 걸까. 바로 1908년 대한제국의 마지막 무관학교에서 공부하고 훈련 받던 생도들의 이야기란다. 그럼,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꾸나. 소설의 형식을 띠었지만, 고증을 통해 대부분 실제 있었던 일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구나.

 

1.

1908년 대한제국무관학교. 북악산 삼청동에 위치하고 있었단다. 당시 남아 있는 생도들은 고작 24명이었고, 교장은 노백린이라는 분으로 나중에 임시정부 국무총리도 하셨단다. 1908년이면 을사늑약은 이미 맺어진 다음이라서, 무관학교에서 일본인 파견 고관이 있었는데, 오구라 대위였어.

이응준. 이 소설의 첫 번째 중요 인물이란다. 평안도 농부의 아들로 어렸을 때 가출해서 무작정 한성에 왔다가 우연히 노백린이 그를 알게 되었고, 똘똘한 이응준을 무관학교의 이갑 참령에게 소개시켜 주어 이갑 참령이 자기의 집에 기거하게 하며 학교 공부를 시켜 주었단다. 보성 중학에 다니던 중에 무관학교로 편입하게 되었어. 그는 무관학교에서 지석규, 홍사익과 친해져서, 셋은 단짝 친구가 된단다. 지석규. 이 분의 당숙이 한글학자이자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이란다.

1908년 나라가 위태위태한 시기얼마 후 교장 노백린과 이갑 참령 모두 잘리고, 일본과 친분이 있는 이희두 장군이 교장이 되었단다. 그리고 1909년 학교는 폐교되었단다. 그렇게 생도들은 대한제국 마지막 무관생도들이 되었단다.

 

2.

학교가 폐간되고, 그들은 도쿄 육군중앙유년학교로 편입하게 된단다. 이때 애국심에 불타는 생도들은 고민들을 했단다. 편입하는 것은 나라에 배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고, 일본을 배워야 일본을 이길 수 있다면서 편입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선배들도 그렇고, 주위의 어르신들도 그렇고, 마음에 늘 애국심을 품고 일본을 가서 일본을 배워 나중에 조선을 위한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단다. 그렇게 몇몇 이들을 빼고 대부분 일본행 배에 몸을 실었단다. 그렇게 도착한 도쿄. 5년제인 육군중앙유년학교에 편입했고, 그 학교를 졸업하면 1년동안 육군사관학교에서 공부하게 된단다.

대한제국의 생도들은 한국학생반이라고 따로 수업을 받았단다. 하지만 모든 수업이 일본말로 진행되어 쉽지 않았어. 육군중앙유년학교에 먼저 와서 공부하고 있던 한국의 선배도 있었어. 김현충이라는 분인데 나중에 이름은 김광서로 바꿨어. 김광서의 도움으로 일본 생활을 적응하는데 생도들은 많은 도움을 받았단다. 특히 주말에 외박할 수 있는 거처인 일요하숙을 알아봐 주어, 주말마다 한국에서 온 생도 동기들과 회포를 풀 수도 있었어.

1909 10월 학교의 분위기가 안 좋았단다.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소식이 전해진 거야. 한국 생도들은 겉으로는 표정 관리를 했지만, 속으로는 모두들 쾌재를 불렀단다. 하지만, 1910년은 암울한 소식도 전해졌단다. 한일 합병 소식. 이제 더 이상 조선이라는 나라는 대학제국이라는 나라는 없어졌단다. 한일합병이 이루어진 다음, 육군중앙유년학교는 더 이상 한국학생반을 두지 않았단다. 이제 한국이라는 나라가 없어졌으니 말이야. 한국에서 온 생도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일본생도들이 있는 반들에 배정받았어. 이젠 일본 생도들과 경쟁을 해야 했어. 일본어로 배우는데 일본 생도들보다 뛰어난 성적을 내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 이들이 있었단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홍사익으로 전교에서 3등을 했다는구나.

대한제국무관학교를 이끌었던 이들 소식을 좀 이야기해주어야겠구나. 이갑 참령은 식구들 모두 데리고 독립운동을 마음 먹고, 북간도로 망명을 했단다. 이응준이 방학 때 한성 이갑 참령의 집에 왔을 때는 이미 망명을 하고 난 뒤였어.

 

3.

세월은 빠르게 흘러, 과락이나 퇴교 조치된 생도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임관을 해서 소위가 되었단다. 지석규는 소대장으로 중국 땅에서 독일군과 전투에 참전하기도 했단다.

연해주에 있던 이갑 참령으로부터 이응준에게 연락이 왔단다. 이갑은 자신의 딸 정희와 이응준이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사실 이응준이 이갑 참령 댁에서 지내면서, 이갑 참령의 딸을 동생처럼 여겼지만, 언젠가부터 다른 감정이 생겼었어. 정희도 이응준을 따르고 좋아했었단다. 그런 둘의 마음을 알았던 이갑 참령이 둘의 결혼을 먼저 주선한 거야. 이응준은 좋다고 답장을 보냈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죄스러운 마음이 있었단다. 왜냐하면 얼마 전 술기운에 유학생 김명순을 겁탈한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으로 인해 신문에도 났었기 때문이야. 그래도 이응준은 속으로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고, 정희와 혼인을 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이갑 참령이 연해주 땅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이응준도 전쟁터에 참전하게 되었어. 러시아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는 연합국으로 이루어진 국제간섭군 소속으로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연해주였단다. 그곳에 가서 여러 독립 운동가들도 만났고, 수소문 끝에 이갑 참령 댁에 들렀지만, 정희는 한성에 가 있어서 만나지 못하고, 장모님이 되실 이갑 참령의 부인만 만나고 발길을 돌렸단다. 그는 연해주에서 러시아 공산주의자들과 싸웠는데, 러시아 공산주의 진영에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도 있어서 몹시 갈등했단다. 나중에는 자신도 독립 운동을 하겠다고, 적을 알기 위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것인데,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으니 말이야. 그것으로 마음 고생을 많이 해서 위장병까지 앓게 되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단다.

조선 독립 운동은 국내외 여기저기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단다. 그런 와중에 1919 2 8일 일본 도쿄 한바닥에서 유학생 중심으로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사건이 일어났단다. 그리고 곧이어 3 1일 국내에서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단다. 이때가 조선 독립의 절호의 기회라고 독립운동가들도 생각했어.

한성에 있던 김광서는 일본에 있는 지석규, 이응준, 홍사익에게 조선으로 오라고 했단다. 지금이 가장 적당한 때이라고 말이야. 지석규는 스스로 위장을 망가뜨려 병가를 내고 조선으로 돌아왔단다. 이응준은 이미 전쟁에서 위장병을 얻어 입원 중이었기 때문에 쉽게 국내로 돌아왔단다. 그때 정희는 3.1 운동으로 몸이 안 좋아져서 어머니의 고향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응준도 정희를 만나서 평양으로 갔단다. 하지만 홍사익은 심한 갈등을 했단다. 일본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고 조선인 최초로 육군대학 입학 후보가 되어 있었거든. 그는 결국 육군대학 입학을 위해 일본 잔류를 결정한단다. , 그 육군대학은 일본의 육군대학이 아니더냐.

 

4.

김광서와 지석규는 경의선을 타고 곧바로 망명길에 올랐단다. 그 기차에 이응준도 타기로 했는데, 나오지 않았단다. 다음 열차를 기다렸는데도 그는 오지 않았단다. 이응준은 자신의 위장병이 아직 낫지 않고, 정희와 결혼한 지도 얼마 안되어 나중에 합류하기로 마음 먹었단다. 합류하면 되지, 시기가 중요한 것인가?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구나. 스멀스멀 일어나는 자기합리화. 이응준은 평양에 있으면 권총 분실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았고, 김광서와 지석규의 망명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들의 측근이었던 그도 헌병 조사를 받았단다. 그가 난처한 일들이 생길 때마다 조선군 사령관으로 파견 나온 일본인 우쓰노미야의 도움으로 쉽게 풀려났단다. 우쓰노미야는 계속 이응준을 도와주고 회유를 했단다. 이응준은 그 고마움을 배신할 수 없다는 생각에 그의 제안대로 조선군 사령부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어린 시절 대한 제국에 대한 뜨거운 애국심은 어디로 가 버렸는가. 그가 배신할 수 없다고 하는 우쓰노미야가 어떤 놈인지 모른단 말인가. 뻔히 알면서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자기합리화밖에 안 되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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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288)

대한제국 마지막 무관생도들의 대표적 존재인 이응준과 김석원은 우쓰노미야의 회유책에 그렇게 발목을 잡혀버렸다.

두 장교는 그렇게 우쓰노미야의 선한 면만 바라보았지만 그 자는 제암리 학살의 책임자였다. 그리고 그 무렵 조선민족을 절망으로 몰고 갈 무서운 일을 꾸미고 있었다. 홍범도의 독립군을 도운 만주 조선인들을 응징하기 위한 출병을 본국 정부에 강력히 요구했다.

만주 출병은 그가 조선군사령관직을 떠난 직후 실현되었다. 일본은 훈춘사건을 조작해 대규모로 출병했다. 그러나 독립군을 뒤쫓다가 챵산리(청산리) 등지에서 대패해 오히려 3천여 명이 전사했다. 악에 받친 일본군은 만주의 조선인 3만여 명을 보복적으로 학살했다. 그것이 경신참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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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망명을 한 김광서는 이름을 김경천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고, 지석규는 지청천으로 하려다가 씨 성이 드물어서 이청천으로 활동을 했단다. , 지청천? 이 사람이 독립운동가 지청천이었던 것인가. 책을 잠시 두고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독립운동가 지청천이 맞더구나. 아빠가 그 분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름은 알고 있었거든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분을 알게 되어 다행이구나.

김광서와 지석규는 신흥무관학교에 교사로 일하게 되었고, 신흥무관학교를 통해 많은 조선이 장교들을 배출하였단다. 그리고 직접 전투에도 참여했어. 김광서는 간도 지방에서 백마 타고 달리는 장군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단다. 지석규는 홍범도 장군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였고 연해주 고려혁명군사관학교 교장으로 많은 학생들을 배출했단다.

일본땅에 머물렀던 홍사익은 결국 육군대학에 입학을 했단다. 똑똑하긴 엄청 똑똑했나 보구나.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일본사람과 경쟁해서 잡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어. 독립 운동을 하겠다는 어린 시절의 다짐은 모래성이었던 것이구나. 그 후로 홍사익은 국내와 만주와 일본을 오가면서 승승장구하였단다. 물론 일본 장교로써 말이야. 그는 나중에 그 어렵다는 별 두 개, 소장까지 진급했단다. 마지막 무관생도들 중에 가장 성공했다고 할 수 있었지. 물론 일본 장교로써 말이야. 그는 만주국에서 관동군으로 일하기도 했는데, 독립군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했단다. 양심은 완전히 갖다 버렸구나.

마지막 무관생도들 중에 이종혁이라는 사람도 있었단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후예였어. 그는 이응준과 마찬가지로 국제간섭군으로 연해주에 왔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탈출하여 독립군을 찾아왔단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석규와 해후를 했고, 이후 줄곧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5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였대. 출감 이후 후유증으로 병에 걸려 죽고 말았구나. 이렇게 의로운 사람들은 어찌 이리 쉽게 죽는가.

이응준은 여러 차례 독립 운동의 길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단다. 지석규가 두어 차례 밀사를 보내 독립 운동을 하러 자신에게 오라고 했거든. 하지만 이응준은 거절했단다. 지석규는 이응준과 홍사익이 친일을 하며 일하고 있는 소식을 듣고, 분노했단다.  그 옛날의 결의는 어디로 갔는가. 이응준은 일본인 장교가 되어 대좌라는 높은 계급까지 올라갔단다. 이응준뿐만 아니라, 일본을 배우고 일본에 맞서 싸우자고 했던 마지막 무관생도들의 많은 이들이 일본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친일을 했단다. 또는 일본에 순응하면서 지냈단다. 그들의 마지막 양심은 고작 돈을 보아서 살림이 어려워진 지석규와 김광서의 집에 보내주는 것이었어.

 

5.

세월은 흘러 흘러 1940년대일본 장군으로 승승장구하던 홍사익은 필리핀포로수용소장으로 발령 받았단다. 가기 전에 이응준을 만났어. 둘은 홍사익이 필리핀포로수용소장으로 가는 것이 승진을 아니고, 좌천이라는 것을 알았을 거야. 1940년에 들어서면서 일본의 전세를 기울고 있었고, 언제 전쟁에서 질 지 모르는 상황에 외국 험지로 보낸다는 것은 책임을 다 떠넘기려는 의도인 것처럼도 보였단다. 결국 홍사익은 필리핀에서 일본의 패전 소식을 들었어. 그래도 돌아갈 줄 알았던 것 같아. 하지만 그는 전범 재판 후 그곳에서 사형을 당했단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준다고 적군에 충성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마지막의 모습에 누가 슬퍼하겠는가. 홍사익의 후세들도 전쟁이 끝나도 국내로 들어오지 않고 일본에서 살았다고 하는구나.,

지석규는 광복군 총사령관이 되었어. 광복군은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을 하나로 모은 단체로 국내 진공 작전 준비에 힘을 쓰고 있었어. 그런데 그 와중에 해방이 되었단다. 자신들의 손으로 해방이 되었어야 하는데, 외세의 힘으로 해방이 된 점을 아쉬워했어. 그들의 아쉬움은 곧 불행의 현실이 되었어. 한반도는 미군정과 소련에 의해 둘로 나뉘고, 미군정은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인정하지 않았어. 임시정부 요원과 독립군들은 귀국을 하루 이틀 미루다가 마지못해 귀국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미군정의 앞잡이가 권력을 잡고 있었어. 지석규는 1947년 개인자격으로 입국했고, 지청천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했으며, 국회의원 등도 했지만, 독립운동 때만큼 부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단다. 그리고 1957년 병으로 돌아가셨단다.

..

조선 해방 후 이응준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조선 해방과 동시에 자신이 벌 받을 생각을 했었어.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미군정에서 그에게 육군창립을 도와달라고 했어. 그래서 참여하면서, 그는 대한민국 군인으로 또 잘 나가게 되었지. 그뿐만 아니라 친일을 했던 그의 동기들도 많은 요직을 차지했단다. 해방이 아니라 침략자가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뀐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 같구나. 그는 뿐만 아니라 필리핀에서 죽은 홍사익 구명 운동도 했다고 하는데, 할 말이 없구나. 이런 이들은 또 오래도 사는구나. 1985 96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고 하는구나. 친일을 하고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우리나라, 부끄럽구나.

김광서의 최후가 불행했단다. 연해주 극동사범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간첩죄로 누명을 썼다가 이후 감옥을 오가는 신세가 되어 1942년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김광서와 이응준의 삶을 비교해 보면, 분명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없는 게 확실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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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김광서는 최후가 불행했다.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사범대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936년 간첩죄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2년 반의 금고형을 받고 복역했다. 1939 2월 석방되어 카자흐스탄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갔으나 그해 12월 다시 체포되어 8년의 강제수형령을 받고 카라간다 감옥으로 수용됐다가 거기서 북부 시베리아 코미 자치공화국으로 이송되었다. 철도 노역을 했고 1942 1 26일 철도수용소 부설병원에서 영양부족에 따른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1956년 유족의 탄원을 받은 소련 군사법원은 재심을 열어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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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이 있단다. 자신의 몸을 다 받쳐 나라를 위해 일을 하신 분들은 꼭 잊지 말아야겠지만, 기회주의자로 적국에 아부하고 동기들과 나라를 배신한 이들의 이름도 잊지 말아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1908년 봄, 한성(漢城)

책의 끝 문장 : 모두 광복되고도 한참 늦어진 수훈(受勳)이었다.

이응준은 권총 분실 사건과 우쓰노미야에 접근한 일로 인생의 길을 180도 바꿀 수도 있었다. 우선 임시정부 밀사인 최성수와 더불어 만주로 탈출할 수 있었다. 3.1운동 무력탄압의 원흉 우쓰노미야를 여러 차례 만나면서, 지석규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를 저격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런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다. 우쓰노미야에게 인간적 배신을 할 수 없었다면 그가 떠난 뒤 독립운동 전선으로 갈 수도 있었다. - P290

염창섭은 일본영사관에 소속되어, 랴오닝성과 지린성 일대를 순회하며 동포들에게 만주국 건설을 찬성하게 지도하고 취약지구에 집단부락을 만드는 등 친일 행위를 하고 있었다. 원용국은 지린성 판스현에서 동포들을 회유해 항일무장세력이 발을 못 붙이도록 자위단을 조직하는 공작을 전개하고 있었다. 후배 학년 중 우등생이었던 윤상필은 관동군 참모부 조선반에 속해 있었다. 재만동포들을 만주국과 일본군 쪽으로 끌어당겨 항일세력을 와해시키는 온갖 공작을 기획하는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 P338

마지막 무관생도들은 이제 천명을 안다는 오십 줄 나이에 이르렀고 절반 이상이 퇴역했다. 현역장관들은 대부분 고국에 돌아와 청년들을 일본군으로 뽑아내는 병사(兵事) 업무를 맡거나 전문학교와 중학교의 교련 교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퇴역한 사람들도 대개는 교련 교관 등 육사 출신에 걸맞는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다. 독립투쟁을 하고 민족혼 교육에 매달렸던 조철호가 세상을 떠나 그런 역할을 할 위인은 이제 없었다. 아오야마 묘지에서 뒷날 조국 독립을 위해 한 몸을 던지자고 한 맹세는 대부분이 추억으로만 생각할 뿐 몸도 정신도 이제 일본의 통치에 젖어 있었다.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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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책을 펼쳐 들면 순식간에 나만 남습니다. 사람으로 가득 찬 한낮의 카페 한가운데 좌석에서든, 시계 초침 소리만이 공간을 울리는 한밤의 방 한구석에 홀로 기대 앉아서든, 모두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경험이지만, 그 고독은 감미롭습니다.


(13)

저의 서재에는 물론 다 읽은 책도 상당하지만 끝까지 읽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서문만 읽은 책도 있고 구입 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도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사는 것, 서문만 읽는 것, 부분부분만 찾아 읽는 것, 그 모든 것이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25-26)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중세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다.” <독일인의 사랑>을 썼던 막스 뮐러는 하나만 아는 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이다.”라고 말했어요.


(68)

독서를 즐기는 것과 어려운 책에 도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려운 책을 통해 지적인 성취감을 얻는 동시에 독서력에도 도움을 받는다면 그다음에 다른 책을 훨씬 더 즐겁게 읽을 수 있거든요. 가끔은 생소하고 어려운 분야의 책에 도전해보세요. 일단 시작해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힘든 일은 아닐 겁니다.


(77)

왜 하필이면 3분의 2 지점을 보는 거냐면, 저자의 힘이 가장 떨어질 때가 바로 그 부분입니다. 무슨 책이든 시작과 끝은 대부분 나쁘지 않습니다. 저도 책을 낼 때 그렇습니다. 원고를 배열할 때 잘 쓴 걸 앞에 둡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앞쪽부터 읽어나갈 테니까요. 한편 맨 뒤부터 슬쩍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맨 뒤에 넣죠. 바로 그래서 3분의 2쯤을 읽으면 저자의 약한 급소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부분마저 훌륭하다면 그 책은 정말 훌륭하니까 그 책을 읽으시면 됩니다.


(98)

과학 분야 같은 것도, 중고등학교 때 기본적인 책을 재미있게 읽었더라면 나중에 책 읽기 훨씬 좋았을 텐데 싶어요. 지금은 독서에서 넓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상대적으로 한창 책에 깊이 빠져든 중고등학교 때 저는 깊이를 더 중시했던 것 같아요. 그게 좋기도 했지만, 특히 십 대에서 이십 대는 책을 넓게 읽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143)

낮 동안에 일하느라 힘들었으니까 오늘 저녁은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간다거나 그런 게 우리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습관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오히려 쩔쩔매는 시간이에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거죠. 그런데 패턴화되어 있는, 습관화된 부분이 행복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세요. 그러면 그 인생은 너무 행복한 거죠. 시공간 속에서 매번 판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이 실존적으로 세상을 향해서 갑옷을 두르는 게 최상의 행복 기술인데 그 습관 중에 독서가 있다면 너무 괜찮은 거죠. 예를 들어 매일매일이 습관으로 빼곡한데, 모처럼 이번 달 말일에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니 책을 한번 읽어보자. 그러면 책 읽는 게 행복이 아니라 쾌락인 거예요. 그런데 습관화되어 매일 책 읽는 사람이 있다고 쳐보세요. 저녁 먹기 전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있으면 책을 자동적으로 펼치는 거예요. 그건 행복인 거예요. 똑같이 책을 읽어도 쾌락이 될 수도, 행복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다만 쾌락은 지속 불가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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