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키르케>의 전작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읽었으니, 이제 <키르케>를 읽어야겠지, 하고 책을 폈단다. 이 두 책을 연달아 읽다 보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가 저절로 떠오르게 된단다.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파트로클로스가 본 <일리아스>라면 <키르케>는 키르케가 본 <오디세이아>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아빠도 오래 전에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읽긴 했는데, 그 책보다 너희들과 함께 본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가 더 생각이 나는구나.

아빠가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너희들이 뭐 읽냐고 물어봐서, 키르케 읽는다고 했다니우리 공주님도 키르케 안다면서, 처음에는 나빴는데 나중에 오디세우스를 사랑하면서 좀 착해졌다고 했잖아. 그러면서 키르케가 실려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들고 왔지. 아빠도 다시 한번 읽어 봤단다. <아킬레우스의 노래>에서는 왜 아킬레우스가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 그의 친구이자 연인인 파트로클로스가 이야기해주는 것이고, <키르케>는 키르케가 왜 그렇게 했는지, 키르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1.

그리스 로마 신화의 첫 부분에 보면 티탄 신족들과 제우스가 이끄는 올림푸스 신들과의 한바탕 전쟁이 일어나잖아. 그 티탄 신족들의 리더격인 태양신 헬리오스. 그 헬리오스와 님프 페르세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 키르케란다. 키르케의 뒤를 이어 연이어 여동생 파시파에와 남동생 페르세스가 태어났단다. 그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했어. 그리고 이어 태어난 그 아랫동생 아이에테스와는 친하게 지냈단다. 그런데 아이에테스는 좀 크자마자 그들을 떠나 콜키스 왕국을 다스리러 갔단다. 키르케가 가지 말라고 좀 잡아보려고 했지만, 아이에테스는 야심이 많은 동생이었단다. 여동생 파시파에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와 결혼했어.

여전히 집안에서 외톨이 키르케. 바닷가 산책 중에 한 인간 글라우코스를 사랑하게 된단다. 글라우코스도 키르케를 사랑하는 듯 했어. 물론 신인 것을 모른 채. 키르케는 글루우코스를 사랑한 나머지 그를 신으로 만들기도 결심한다. 하지만, 인간을 신으로 만드는 것이 쉽나. 그런데 알고 보니 키르케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단다. 자신은 약초를 이용해서 글라우코스를 신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키르케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었던 거야. 사람을 다른 존재로 만드는 능력. 그렇게 글라우코스는 신이 되었어.

이제 불행 끝, 행복 시작인줄 알았는데, 신으로 변한 글루우코스는 다른 여자인 스킬라를 사랑하였단다. , 이 배신자. 화가 난 키르케는 어떤 약을 이용해서(어떤 약인지 까먹었어 ㅠㅠ) 스킬라를 괴물로 만들었단다. 화나 많이 난 신이라면 그럴 만 하지마음에 걸렸는지, 키르케는 벌을 받겠다고 아버지를 찾아가 자백했단다. 그런데, 키르케가 지금까지 한 일들글라우코스를 약초를 이용하여 신을 만든 일. 스킬라를 어떤 약을 이용하여 괴물로 만든 일. 이런 일들이 모두 그런 약초와 약과는 관련이 없다는 거야. 그 약초와 약에는 그런 효능이 없다고 했어. 글라우코스를 신으로 만들고, 스킬라를 괴물로 만든 것은 순전히 키르케 자신의 능력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키르게는 마법의 능력을 갖고 있는 마녀라고 아버지 헬리오스는 이야기했어.

그런 마법을 함부로 썼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헬리오스는 제우스와 협의하여 키르케를 아이아이에라고 하는 무인도에 혼자 갇혀 사는 벌을 내렸단다. 그날로 키르케는 아이아이에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단다. 좀 억울할 것 같구나. 자신은 마법인 줄도 모르고 썼고, 용서를 빌려고 자신의 잘못을 자백을 했는데 말이야. 키르케가 불쌍하구나. 이제 소설 초반부인데 키르케를 이해하는 마음은 벌써 잔뜩 생겨났단다.


2.

아이아이에 섬에서 혼자 지낸 첫날밤은 외롭고 무서웠단다. 하지만 이내 적응을 해서 마법 연습을 했단다. 마치 무인도에서 홀로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처럼그 장면을 상상해보니 은근 멋있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 곳에 어느 날 헤르메스가 찾아왔단다. 다양한 능력이 있는 신인데, 제우스의 전령으로 유명한 신이란다. 헤르메스는 가끔씩 그 섬에 와서 바깥 소식을 전해주었단다. 스킬라는 바다 괴물이 되어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아 먹으며 지내고 있다고 했단다. 그 마법을 다시 푸는 방법은 없었나 보구나. 스킬라도 불쌍하긴 한데, 원래 성격은 좀 않아서 그런지 괴물이 되어서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구나.

어느 날 여동생, 파시파에, 크레타의 왕 미노스와 결혼한 그 파시파에의 부하 다이달로스가 찾아왔단다. 파시파에가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도와달라고 와달라고 한 거야. 별로 친하지 않은데 무슨 꿍꿍이가 있나? 이런 생각을 가졌지만, 아이아이에의 섬을 정말 오랜만에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기로 했단다. 가는 길에 스킬라가 지키는 바다를 지나가야 했는데, 키르케의 재치로 한 사람도 죽지 않고 통과했단다. 이 일로 다이달로스는 키르케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되었지. 나중에 감사의 마음으로 베틀을 만들어 주기도 했어.

크레타에 도착을 해서, 파시파에의 아기를 낳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아기가 아니고 괴물을 낳았단다. 파시파에가 괴물과 정을 통하고 낳은 것이었고, 그 아기가 그 유명한 미노타우로스였단다. 미노타우로스는 다이달로스가 만든 복잡한 미로 같은 우리에 갇히게 되었고, 키르케는 다시 아이아이에로 돌아왔단다.

다시 지루한 시간의 나날이었단다. 누군가 왔다가 가곤 했지어린 시절 좋아했던 남동생 아이에테스의 딸 메레이다가 이글코스 왕국의 후계자 이아손과 함께 아이에테스를 피해 도망 왔다가 다시 가기도 했어. 그리고 그들을 따라 아이에테스도 왔었는데, 그 옛날 다정다감한 동생의 모습은 볼 수 없었어. 도망 간 딸을 찾으러 고리타분한 아버지의 모습이랄까. 딸이 없다는 것을 알고 금방 돌아갔어.

어느 날은 알케라는 님프가 왔어. 알케가 온 이유는 인간을 사랑했다는 죄로, 1년간 아이아이에 머무르는 벌을 받았다는 거야. 알케를 시작으로 벌을 받는 님프들이 아이아이에로 오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길 잃은 선원들도 왔어. 혼자 사는 키르케를 겁탈하려는 선원들을 키르케가 처단하기도 하고, 그냥 돌려보기도 하고이런 일이 잦았어. 그래서 키르케는 어느 날부터는 마법을 써서 그런 선원들을 돼지로 바꿔 버렸어. 이제 아이아이에 섬은 그 옛날 외롭고 조용한 섬이 아닌가 보구나.


3.

한 무리들의 선원들이 또 와서, 저녁을 잘 먹이고 모두 돼지로 바꿔 버렸단다. 뒤늦게 한 남자가 왔어. 자신의 부하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찾아온 거야. 그 남자는 그 동안의 남자들과 사뭇 달랐단다. 욕정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황금에 욕심부리지도 않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베틀에 관심을 있었어. 그리고 고향에 있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애정 표시를 했어. 이 남자가 바로 오디세우스야. 이런 오디세우스의 모습에 키르케도 급호감을 갖게 되었단다. 그리고 먼 옛날 헤르메스의 예언도 생각이 났어. 오디세우스라는 자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이야. 오디세우스의 부탁으로 키르케는 그의 부하들을 다시 사람으로 만들었단다. 그들은 부서진 배를 고치는 동안 섬에서 머무르기로 했어. 그러면서 키르케와 오디세우스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떠나야 할 사람. 키르케는 쿨하게 오디세우스를 보내주었고,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이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주의를 주기도 했어. 특히 소를 먹지 말라고 했어.

오디세우스가 떠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키르케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섬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이름을 텔레고노스라고 지었단다. 그 아이가 순하고 착한 아이였으면 좋았겠지만, 온갖 말썽을 다 부리는 아기여서, 키르케의 육아는 그야말로 전쟁이었단다. 그래도 키르케는 정성을 다해서 아이를 키웠단다. 아테나가 와서 기분 나쁜 예언을 하고 갔어. 텔레고노스는 죽을 운명이라는 예언을 한 거야. 그 이후 키르케는 한 시도 자신의 눈 밖에 아이를 두지 않았어. 늘 자신이 보호할 수 있는 곳에 텔레고노스가 있게 했단다.

시간은 흘러 텔레고노스가 어느덧 열여섯 살이 되었어. 텔레고노스는 아버지는 만나고 싶다고 했어. 아버지를 만나러 이타케에 가겠다고 했어. 키르케는 허락을 하면서도 죽음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단다. 키르케는 위험을 무릅쓰고 바닷속 괴물 트리곤을 찾아가 독을 얻어와서 독창을 만들어 왔어. 그것을 텔레고노스에게 주고 자신을 보호하라고 했어. 말이야. 그런데 텔레고노스는 아이아이에를 떠난 지 얼마 안되어 울면서 다시 돌아왔단다. 그것도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켈레마코스와 같이 말이야.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4.

텔레고노스는 그간 여정을 이야기해주었어. 이타케에는 잘 도착해서 오디세우스도 만났어. 오디세우스는 만나자마자 텔레고노스를 적으로 생각하고 싸움을 걸어왔어. 텔레고노스는 자신이 아들이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오디세우스는 텔레고노스에게 싸움을 걸어오면서 텔레고노스의 창을 손으로 잡아 쥐었어. 그래, 그 키르케가 만들어준 독창 말이야. 그 독창에는 아주 강력한 독이 묻어 있어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죽을 수 있었어. 오디세우스는 그렇게 죽었단다. 죽기 전에 간신히 텔레고노스는 자신이 온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었지.

이 장면을 멀리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보았단다. 하지만, 텔라마코스는 텔레고노스를 원망하지 않았어. 그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이해했단다. 이 사건의 소식을 들은 페넬로페도 크게 슬퍼하거나 텔레고노스를 원망하지 않았단다. 사실 이타케에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벌인 행동들이 페넬로페를 힘들게 하고 오디세우스에 정이 떨어졌을 거야.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에게 청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남자들을 죽였는데, 그 수가 엄청 났단다. 이타케 남자들의 절반이라는 소리도 있었어. 그리고 구혼자들에게 겁탈을 당한 페넬로페의 시녀들도 모두 죽였어. 시녀들을 죽일 때 텔레마코스도 함께 했는데, 오디세우스가 시키니까 억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어. 오디세우스는 날마다 이타케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싸움이나 하고 지냈어. 옛날의 남편이 아니었어.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어. 이런 남편을 누가 좋아하겠니

그리고 이타케 사람들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같이 전쟁에 참가했던 다른 이타케 사람들은 모두 죽고 혼자 살아 돌아왔거든아이아이에를 떠날 때는 그래도 부하들이 많았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그들은 키르케가 알려준 주의를 잊고 행동하다가 칼립소에게 붙들려 7년 동안이나 억류되어 있었고, 다른 선원과 부하들은 모두 죽고, 혼자 간신히 이타케에 도착을 했던 거였어. 그런데 오자마자 한 짓이 이타케 사람들을 죽인 것이니, 누가 그를 좋아하겠니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이 읽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라는 소설이 생각나는구나. 페넬로페 입장에서 쓴 오디세이아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소설에서도 오디세우스는 맹비난의 대상이었거든. 아무튼 오디세우스가 죽고 난 다음 이타케에 남아 있을 일이 없었어. 이타케 사람들이 다들 오디세우스를 원망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는 텔레고노스와 함께 아이아이에로 온 것이었단다.

이해할만한 일들이 일어나긴 했는데 지금 이 상황은 조금 이상한 상황이 되고 말았구나.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 오디세우스가 바람을 핀 키르케와 그의 아들 텔레고노스. 그들 넷이 한 섬에서 지내게 된 거야. 하지만 생각보다 그들의 마음이 잘 맞았단다. 잘 지냈어. 페넬로페는 베틀로 길쌈에 푹 빠져 있었고, 텔레마코스와 텔레고노스도 형제처럼 잘 지냈단다. 그리고 가끔 섬 밖으로도 다녀오고 그랬어. 어느 날 아테나가 찾아와 텔레고노스가 죽을 운명이라고 한 예언도 풀어주었단다. 이제 텔레고노스는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어. 그리고 키르케와 텔레마코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오늘날 윤리로 봤을 때는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주 먼 옛날 신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 이해해야지.... 페넬로페는 아이아이에의 섬을 지키고, 다른 이들은 섬을 떠나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그렇게 행복한 생활을 했단다....

아빠는 솔직히 키르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단다. 오디세이아를 읽긴 했지만 아주 오래 전이라서 조연에 불과했던 키르케를 잘 기억하지도 못했고, 너희들의 만화책을 읽어보긴 했지만, 그런 신이 있었지, 이름은 정확히 기억을 못했거든. 그렇게 비중 있는 신은 아니었으니 말이야. 이 책을 통해 잊지 못할 신이 되었구나, 키르케지은이 매들린 밀러가 키르케의 원한을 잘 풀어준 것이 아닐까 싶구나. 키르케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잘 설명해 주었어. 그리고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라고 하는 오디세우스는 말년에는 만인의 적이었구나. 앞서 이야기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페넬로피아드>에서도 그랬고, 이번 <키르케>에서도 다시 한번 고발을 당한 것 같구나.

이상. .


PS:

책의 첫 문장 : 맨 처음 태어났을 때 나에게는 걸맞는 이름이 없었다.

책의 끝 문장 : 나는 찰랑거리는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1-03-28 0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에서 키르케의 마지막 선택이 좋았어요 결국은 이렇게 되었구나 납득이 가더라구요ㅎㅎㅎ bookholic님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bookholic 2021-03-28 11:30   좋아요 2 | URL
그 오랜 시간 외로운 섬에서 혼자 보내고, 그 정도 살짝(^^) 나쁜 짓은 이해해 주어야죠.
비록 사랑하는 사람이 바뀌긴 했지만, 이후에는 행복했기를....
파이버님도 남은 일요일,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고맙습니다~~~
 















(100)

지구상에는 다른 모든 생명체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이제 바이러스는 생물학의 암흑 물질로 여겨지고 있다. 왜냐하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아직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바이러스, 특히 살균 바이러스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몇 년 뒤면 지금보다 많은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02)

시겔라나 살로넬라 같은 일부 박테리아는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기생세균으로 분류되지만, 대부분의 장내 미생물은 유익균으로 간주된다. 유용한 비타민, 영양소 그리고 호르몬을 만들기 때문이다. 해롭거나 기생하는 미생물조차 낮은 정도의 자가면역 질환을 유도함으로써 우리의 면역체계를 훈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


(103)

박테리오파아지(또는 파아지)는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종류다. ‘Bacteria(박테리아)’와 그리스어 ‘phagein(먹다라는 뜻)’이 합쳐진 이름이다. 두 단어를 합하면 실제로 박테리아 포식자라는 뜻이 된다.

박테리오파아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생물학적 개체다. 지구상에 10마리의 파아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0 31개나 붙는 숫자로, 우주에서 관측되는 별보다 많은 숫자다. 파아지를 한 줄로 쌓아놀리면 1억 광년 높이까지 올라갈 것이다.


(108-109)

간단히 다섯 단계로 끝나는 바이러스 복제

1. 침투 후 몇 초 안에 바이러스 유전자는 숙주 박테리아의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역공을 시작한다.

2. 바이러스 유전체가 원형을 그리면서(고리화) 숙주의 DNA를 사용해 새로운 복사본을 만들기 시작한다.(복제)

3. 다음 단계로 구조단백질이 만들어지는데, 숙주의 아미노산을 이용하여 새로운 박테리오파아지의 껍질을 만드는 것이다.

4. 새로운 바이러스 구성요서(단백질과 유전체)가 조립되면서 수십 마리의 새로운 박테리아파아지로 완성된다.

5. 마지막으로 파아지는 홀린과 리신, 두 종류의 킬러 효소를 합성한다. 홀린이 박테리아 세포막에 구멍을 뚫으면, 이 구멍을 통해 들어간 리신이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먹어치운다. 두 효소가 함께 작용하여 박테리아는 터져버린다. 그 결과 수십 마리의 박테리오파아지가 주변의 체액으로 퍼지게 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 트로이 전쟁을 이야기한 책들과 영화를 봐서 줄거리는 알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또 읽은 이유가 있단다. 먼저 지은이 매들린 밀러의 최근작 <키르케>를 알게 되었단다. 사람들의 평이 좋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 책 디자인이 예뻐서 눈에 띄었어. 외모를 중시하면 안 되는데, 아빠는 겉표지가 예쁜 책들에게 약하단다. 그렇게 읽는 책들도 여럿 있고 말이야. ㅎㅎ <키르케>도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키르케>라는 책과 짝을 이루는 책이 하나 있으니, 그보다 먼저 출간된 <아킬레우스의 노래>라는 책이란다. 출간 시기도 먼저이고, 책의 내용도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먼저이기 때문에, 이 책을 먼저 읽게 된 것이란다.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 수많은 작가들이 트로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또 하나의 이야기나 나왔다고 관심을 가질 필요 있겠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은 또 다른 시각으로 트로이 전쟁을 풀어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단다. 아킬레우스의 친구였던 파트로클로스. 그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다음 분노에 찬 슬픔으로 복수를 하게 된 아킬레우스. 그 둘 간의 관계는 어떤 관계였길래, 냉정하던 아킬레우스를 그렇게 만들었는지트로이 전쟁의 분수령이었던 그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를 파트로클로스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란다. , 그럼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꾸나.


1.

파트로클로스의 아버지는 메노이티오스라는 사람으로 작은 나라의 왕이었어. 엄한 아버지였어. 파트로클로스가 아홉 살밖에 안되었는데, 헬레네의 남편 선발 대회에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참가했단다. 당연히 선발될 수 있겠나. 헬레네의 남편은 스파르타의 왕 메넬리우스가 되었단다.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온 파트로클로스. 친구와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밀쳤던데, 실수로 그 친구가 죽고 말았어. 이 일로 그는 추방당해야 했어. 파트로클로스의 나이 고작 12살이었단다. 그는 펠레우스 왕이 다스리고 있는 프티아라는 나라로 갔어. 펠레우스 왕의 아들이 아킬레우스였단다. 파트로클로스는 그곳에서 아킬레우스와 친한 친구가 되었단다. 아버지가 친구들을 사귀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말을 안 듣던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와는 곧바로 친한 친구가 되었단다. 이후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같은 방에서 자는 등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고, 뭘 해도 함께 했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가 그냥 우정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이 생겨는 것 같았어. 파트로클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감정에 이끌려 아킬레우스에게 키스를 했는데, 아킬레우스도 그냥 받아주었어.  그런데 그들의 이런 관계를 알아챈 이가 있으니, 아킬레우스의 엄마 테티스야. 너희들도 잘 알겠지만, 테티스는 바다의 신이잖아. 아킬레우스가 태어날 때 그를 불멸의 존재를 만들기 위해서 저승에 흐르는 스틱스 강에 담겼다 꺼냈다는 일화. 그런데 뒷발꿈치를 손으로 잡고 넣었다 빼서 그곳에는 불멸의 존재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너무 유명해서 아빠가 또 할 필요는 없지만아무튼,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를 떨어뜨리려고, 아킬레우스를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에게 보냈단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가 떠난 뒤 무작정 그를 찾아 길을 떠났고, 아킬레우스도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들은 함께 케이론에게 가서 이런 저런 다양한 것을 배웠단다. 의술, 무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배웠어. 나중에 테티스가 케이론을 찾아와 화를 냈지만, 케이론이 잘 설득을 시켰단다. 그곳에서 2~3년을 보내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그러다가 아버지 펠레우스 왕으로부터 호출이 왔단다. 돌아오라고….


2.

그들이 케이론과 함께 있는 동안, 이쪽 세상에서는 난리가 났구나.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메넬레우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아로 갔어. 너희들도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잖아. 이 일로 메넬레우스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트리이아에 전쟁을 선포했잖아. 당시 아가멤논의 파워가 세다 보니 주변의 여러 왕들도 자의 반 타의 반 전쟁에 참가를 해야 했단다. 그리고 메넬레우스와 헬레네가 결혼했을 당시 맹세가 하나 있었어. 메넬레우스와 함께 헬레네에게 구혼했던 이들은 모두 메넬레우스의 도움을 청할 때 도와주어야 한다고앞서 이야기했지만, 파트로클로스도 그때 구혼자에 포함되어 있었잖아. 그리고 펠레우스 왕도 참전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를 소환했던 것이란다.

그런데, 아킬레우스가 사라졌단다. 테티스가 전쟁 못 나가게 빼돌린 것이야. 그 전쟁에 나가면 아킬레우스가 못 돌아온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야. 아킬레우스가 어디로 갔는지는 파트로클로스도 몰랐단다. 아킬레우스가 사라진 지 한 달이 지나고, 펠레우스 왕은 파트로클로스에게 아킬레우스를 찾아오라고 지시했고, 파트로클로스는 어찌 어찌하여 스키로스라는 곳에서 여장을 하고 숨어 있는 아킬레우스를 찾았단다. 테티스가 강요해서 그곳에서 여장을 하고 있었고, 그곳 공주 데이다메아와 결혼까지 해서 데이아메아는 임신까지 한 상태였단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그녀에게 마음도 없고, 오직 파트로클로스만 사랑하고 있었지.

그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을 때, 이타케의 왕자 오디세우스가 스키로스에 왔어.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를 찾으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거든. 설득의 왕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참전 의무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테티스가 방해했지만 결국 참전하기로 결정했단다. 아킬레우스에 대한 예언을 정확히 이야기해주면 이랬단다. 첫번째,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에서 못 돌아온다. 두번째, 헥토르가 아킬레우스보다 먼저 죽는다. , 그러면 이 예언이 틀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야. 헥토르가 안 죽으면 되는 거지그들의 세상에서 전사 중에 최고는 아킬레우스이고, 헥토르가 2인자로 알려져 있단다. 그리니까 아킬레우스 자신이 헥토르를 죽이지 않으면, 헥토르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면 아킬레우스가 죽을 일도 없고 말이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아킬레우스는 그 전쟁에 참가하기로 했단다. 파트로클로스도 함께 참가하기로 했어.


3.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한 여러 나라의 왕들이 모두 모였단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안 좋아했고, 아가멤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아킬레우스를 안 좋아했단다. 자신의 말보다 아킬레우스의 말이 더 잘 먹혔으니까트로이아를 진군해야 하는데, 계속 날씨가 궂어서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 이건 트로이아 편에 있는 신들의 짓이었어.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을 신들에게 제물로 바쳤어. 대단한 사람이네. 빼앗긴 동생의 아내를 찾으러 가는 전쟁에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다니그러니, 이 전쟁의 목적이 동생의 아내를 찾는 게 아니라 그것은 핑계이고, 트로이아를 빼앗으려는 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전쟁이었던 거야.

한편, 아가멤논이 제물로 바쳐 죽을 때, 옆에 있었던 아킬레우스는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었는데, 못했다면서 죄책감에 빠졌단다.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사람들을 많이 죽이게 되지만, 그에게는 늘 이런 인간전인 감정이 남아 있었단다. 아가멤논이 바친 제물로 날씨도 개이고,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었단다.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아 군의 전쟁아킬레우스는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공을 세워서, 트로이아의 여자 노예를 얻을 수 있었는데, 다른 이들과 달리 여자 노예들을 데리고 와서 보살펴 주었단다. 파트로클로스도 함께 끌려온 노예들을 보살펴 주었어. 가장 먼저 끌려온 브리세이스는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단다. 파트로클로스는 전투 능력이 뛰어나지 못해서,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했어. 자신도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싶었는데, 예전에 케이론으로부터 배운 의술이 도움이 될 수 있었어.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단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해가 지나도 끝나지 않았어.. 4년이 지날 즈음에는 집으로 가겠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일도 있었어. 그래도 10년이나 걸릴 줄은 아무도 몰랐지. 그렇게 오랫동안 전쟁을 하면서,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이 쌓여 있던 악감정이 드디어 폭발했단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강제로 데리고 간 것이었어. 그 일로 아킬레우스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어. 아킬레우스가 빠진 그리스 군은 사기가 떨어져서 계속 밀리는 형상이었어. 아가멤논이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하거나, 아킬레우스가 마음을 바꾸어 전투에 참여하면 되었지만, 둘 다 자존심을 거둬들이지 않았단다. 군인들이 점점 아킬레우스를 탓하기 시작했어.

파트로클로스도 마음이 불편하여, 아킬레우스에게 제안했어. 자신이 아킬레우스인 척 전투에 참가하겠다고... 실제 싸움은 안 하고, 뒤에 있겠다고 했어. 아킬레우스의 존재만으로도 그리스군의 사기가 올라가니까 말이야. 싸움에 참가하지 않는 약속을 하고 아킬레우스가 그의 복장과 투구를 빌려주었단다. 그런데 파트로클로스는 직접 전투에 참여해보니 가만히 뒷짐만 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적군을 스스로 죽이고 보니, 자신이 전투에 능력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쾌감 같은 것도 느꼈어. 그래서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헥토르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단다. 이런….


4.

그 이후의 이야기 또한 유명해서 너희들도 잘 알겠지. 이 소설은 파트로클로스의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하려나? 궁금했는데, 예상대로 파트로클로스의 영혼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하고 전쟁 시작하기 전 다짐했던 약속을 깼단다. 헥토를 죽이는 것 말이야. 자신의 연인이자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였으니 보이는 것이 없었단다. 결국 싸움의 2인자 헥토르는 싸움의 1인자 아킬레우스에게 죽고 말았단다.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가 시신을 찾으러 죽음을 무릅쓰고 아킬레우스를 찾아오고, 아킬레우스는 인간적으로 헥토르의 아버지를 대했고, 시신을 돌려주었어. 그리고 이후 전투에서 아킬레우스는 예언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이 길고 긴 전쟁은 오디세우스가 짝 목마 작전으로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된단다. 그 마지막 전투에 아킬레우스의 아들이 참가했다는구나. 어떤 아들이냐고? 스키로스에 숨어 있다가 그곳 공주 데이다메아와 강제로 결혼하고 데이다메아가 임신했었다고 했잖아. 그 아이가 태어나서 커서 그곳에 온 거야. 이름은 네오프톨레모스. 피로스라고도 불렀단다. 12살 밖에 안된 소년이었는데, 그 잔인함은 엄청났다고 하는구나. 프리아모스의 왕을 잔인하게 죽은 것도 그였고, 헥토르의 갓난 아들을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인 것도 그였다고 하는구나. 헥토로의 아내 안드로마케도 자신이 가지겠다고 했어. 이 전쟁의 최고 수훈은 자신의 아버지이니까,  그 아버지의 공을 자신이 받아야 한다면서 말이야. 아킬레우스에게 이런 망나니 아들이 있었다니

그렇게 길고 긴 트로이 전쟁은 끝이 났단다. 아킬레우스에게 파트로클로스는 단순한 친구가 아닌 평생 사랑을 했던 연인이었던 것이었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연인.. 하기야 그 정도는 되어야 그의 행동이 설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구나.

키르케 이야기도 곧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 나의 어버지는 왕이었고 왕의 자손이었다.

책의 끝 문장 : 태양 밖으로 금 항아리 백 개가 쏟아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정로드 4000km - 대한민국 100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 투어가이드
김종훈 외 지음 / 필로소픽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 100년이 되던 해였단다. 100년이라고 하면 매우 기념할 만한 시간인데, 아빠 기억으로는 그리 많은 행사가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아빠가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2019 4 11일 임시정부가 세워진 날을 즈음하여, 각종 매체에서 100주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뿐이지, 어떤 행사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구나. 2018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임시정부 26년의 여정을 따라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고 하는구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그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 책이 바로 <임정로드 4000 km>인데, 그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순례길이 있는데, 이 책의 지은이들은 임시정부가 행적을 따라 가는 임정로드도 순례길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했단다.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광복을 할 때는 충칭(중경)에 있었다는 내용만 알고 있지, 중간에 여러 곳을 거친 것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세세한 곳들을 알게 되어 좋았단다.


1.

이 다큐에 참석했던 이들이 임정로드를 모두 다녀오는데 20 21일이 걸렸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이 가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짧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도 알려주고 있단다. 만일 시간이 넉넉해서 풀코스를 간다면, 이 책을 들고 지은이들이 다녔던 길을 그대로 가면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구나. 임시정부의 역사적인 장소와 사건에 대한 것만 이야기하는 주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별로 주의해야 할 점과 숙박, 교통에 대한 정보도 주고 있는 좋은 여행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단다.

서울을 출발하여, 상하이, 자싱, 항정우, 난징, 창사, 광저우, 류저우, 구이린, 충칭으로  이어지는 긴 여행길이었단다. 상하이로 출발하기 전에, 서울의 임시정부 관련 장소 먼저 소개해주었단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후 국내에 들어와서 머물렀던 경교장을 소개해주었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분의 유해가 계신 효창공원도 소개해주었단다. 그분들이 효창공원에 그곳에 계셨구나, 이번에 알게 되었단다. 외국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그곳으로 모셔온 것도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고 하는구나.

==========================

(55)

김구 선생이 1946년 고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당시 재일본조선거류민단 단장 박열 선생을 통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수습해서 국내로 모셔오게 한 것이다. 의거 이후 십수 년이 지났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위해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긴구 선생께서 몸소 보여주셨다. 지금 우리는 어떨까?

==========================

..

효창 공원은 이렇게 애국지사들이 많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구나. 뿐만 아니라 효창운동장이 효창 공원 앞에 떡 하니 있어 가로 막고 있다고 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승만이 그런 일을 벌인 것이란다. 백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인사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한 짓이 아닌가 싶구나. 그 뒤의 박정희도 만만치 않은 짓을 했구나.

==========================

(51)

효창공원 입구부터 거대한 축구장(효창운동장)이 있습니다. 반세기 넘게 김구 선생과 삼 의사 묘역 남쪽을 막고 있습니다. 효창운동장 때문에 숨이 턱 막힐 지경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9 <2회 아세아축구선구권대회> 개최를 구실로 독립운동가의 표를 이장하고, 운동장 건설을 밀어붙였습니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은 김구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 효창원에 경찰을 배치해서 시민들의 참배를 막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만행이 이 전 대통령이 쫓겨난 뒤에도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1969, 박정희 정권은 김구 선생과 삼 의사 묘역이 능선으로 이어진 머리 쪽에 느닷없이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을 세웠습니다.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만들어진 건데, 이 역시 반세기 넘게 김구 선생의 묘역과 삼 의사 묘역 머리 쪽에 버티고 있습니다.

==========================


2.

1919 4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생겨났단다. 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하는구나. 상하이의 서금이로라는 거리에서 생겼다고는 하지만,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몰라서 지은이들도 대략적인 위치를 추정하더구나. 정확한 위치는 아니더라도, 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워져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 하나 없다고 했어. 이곳뿐만 아니라, 지은이들이 가는 임시정부 유적지 대부분이 표지석이 없어서 어디가 어딘지 정확히 모른다고 했어. 아무튼 알아두자꾸나.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곳은 서금이로라고

==========================

(70)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곳 서금이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장소다.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 명명된 국가가 만들어진 곳이며,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대한민국 민주공화정이 정립된 곳이다. 우리 헌법이 세계만방에 공표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반복되는 건국절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

이 책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련된 분들을 소개해주었는데, 아빠가 알고 있는 분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던 분들도 많았단다. 그 중에 대표적인 분이 예관 신규식이라는 분이란다. 나라가 망하고 두 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다가 살아 남으신 다음, 임시정부에 온 인생을 희생하신 분이라고 하는구나.

==========================

(99)

선생(예관 신규식)의 집을 나오니 빗줄기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더 아쉬웠나 봅니다. 임시정부의 기틀을 마련했고, 외무총장과 국무총리 대리까지 맡으셨던 분의 거처치고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운 좋게 선생의 집에 거주하는 중국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집 안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지만, 선생의 거주지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첫 번째, 두 번째 청사처럼 아무런 표식조차 없었습니다.

==========================

윤봉길 선생의 홍커우 의거와 도쿄에서 이봉창 선생의 의거 이후, 그 배후로 지목된 김구 선생은 피신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피신한 곳이 중국 자싱이라는 곳이란다. 그곳에서 2년 동안 피신하고 있었는데, 그 때 도움을 주신 분이 중국인 주푸청이라는 분이란다. 김구 선생을 비롯하여 임시 정부 요인들을 2년 동안 도와 주신 것이란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그 일을 주푸청과 그의 식구들이 해 주신 것이란다.

==========================

(136)

한번 상상해보자. 이름만 알던 지인에게 무려 현상금 200억 원이 걸렸다. 정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다. 결코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오히려 남남에 가깝다. 만에 하나 그 사람을 숨겼다 발각당하기라도 하면 내 몸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런데 지인이 갑자기 나를 찾아와 숨겨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혹자는 거절에 그치기는커녕 현상금 200억 원에 눈이 멀어 오히려 적극적으로 신고할지도 모른다. 1932, 중국인 주푸청 선생에게 찾아온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그리고 선생은 200억 유혹을 뿌리쳤다.

==========================

아빠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싱 피신 생활에 대한 내용은 좀 알고 있단다. 왜냐하면 오래 전이긴 하지만, 중국 작가 하련생님의 소설 <선월>을 읽었는데, 그 소설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의 자싱에서의 생활을 그린 것이었거든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구나. 너희들도 나중에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어.


3.

일제 36년의 기억은 우리에게 아픈 기억들이 너무 많단다. 그 중에 가장 아픈 기억은 위안부들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싶구나. 이번 임정로드 길에도 위안부들의 유적지가 있다고 하는구나. 난징에 있는 리시샹 위안소 유적진열관이 바로 그것이란다. 리지샹 위안소는 조선인 위안부들을 있던 곳이었단다. 그곳이 위안소가 있었던 곳이라고 확인된 것이, 위안부였던 고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 때문이었다는구나. 중국에서는 과거 아픈 기억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리지샹 위안소 유적진열관을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에는 이런 진열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에서 우리나라 위안부들을 위한 건물이 있다는 것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구나. 그리고 진열관 광장에는 동상이 있는데, 위안부 시절 임신했던 고 박영심 할머니의 동상이 있다고 하는구나. 고맙긴 한데, 우리나라는 뭐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부끄럽더구나.

==========================

(178)

난징 <리지샹 위안소 유적진열관> 2015 12 1, 정식 개관했다. 위안소를 주제로 한 전시관 중 압도적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니가 이곳 두 번째 건물 19번 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2003 11 21, 박 할머니가 현장을 찾아 내가 있던 곳이 여기라고 증언하자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 난징 중심부에 유적 진열관을 마련했다. 3,000m^2 규모로 1,600여 점의 전시물과 680장의 사진이 생생하게 보존돼 있다. 진열관 가운데에는 마당이 있는데, 한쪽 벽면이 70명의 할머니 얼굴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70명 할머니 중 다수가 한국 출신이다. 광장 가운데 박영심 할머니가 위안부 시절 임신했을 당시 모습이 동상으로 서 있다.

==========================

정정화란 분이 있단다. 이 분도 아빠가 좀 알고 있단다. 예전에 정정화님께서 직접 쓰신 <장강일기>를 읽은 적이 있거든..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이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한 이후, 얼마 안 있어 여자 혼자의 몸으로 상하이까지 가시고, 광복 때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신 분이란다. 임시정부 요원 중에 그 분의 밥을 먹지 않은 분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몇 번이라 국내에 왔다 갔다 하시고,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하는 등 독립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셨단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광복 후 그도 나라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는 것특히 백범 김구 선생이 돌아가시고, 남편 김의한이 납북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고 하는구나. ,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정정화님께서 쓰신 <장강일기>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

(215)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 인사들이 그대로 미 군정에 부역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러난 일제의 자리를 미 군정이 채운 상황, 한평생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정정화 여사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어렵게 서울에 자리를 잡았지만, 믿고 의지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1949 6 26일 암살당했다. 이후에 시련의 연속,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40년 지기이자 독립운동 동지였던 남편 김의한이 납북되었다. 남한에 남은 정정화 여사는 부역죄로 끌려가 투옥당하는 등 잦은 고초를 겪었다. 여사는 1991년 사망할 때까지 세상에 나서지 않고 조용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별개로, 일제 강점기와 미 군정, 이어진 독재정권이 그들을 가만히 두지않았다.

==========================


4.

그 밖에 많은 분들과 유적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한 분만 더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를 해야겠구나. 아빠도 처음 들어보는 분인데 조명하 선생님이라는 분이야. 그분은 익숙지 않은 대만에서 의거를 일으키신 분이란다. 꼭 기억을 해야 할 또 한 분의 독립 의사란다.

==========================

(335)

조명하 선생, 아마 처음 들어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 조명하 의사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거짓말인 줄 알았다. 마치 무협지 주인공처럼, 혼자 무공(?)을 연마했다. 단도 한 자루를 던져 의거에 성공했다. 그것도 당시 히로히토 장인이자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를 없애 버린 것이다. 1928 5 14, 대만 타이중에서 의거한 스물네 살 청년 조명하의 이야기다.

==========================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가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해 너무 소홀한 것 같다는 것이야. 일단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 많았고, 관리되고 있는 곳도 다녀간 사람들이 너무 적단다. 그렇게 잊혀지고 찾는 이가 없고, 시간이 흐르면 그곳은 사라질 거야. 대한민국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임시 정부. 그 임시 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유적지들을 좀 잘 관리했으면 좋겠구나. 임시정부 요원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에게 고마움을 생각하고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너희들도 그러길 바래.

임정로드 4000km 말고 약산로드 7000km도 있다고 하는데, 그 책도 한번 보고 싶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임정 프로젝트>을 진행하며 가장 자주 내뱉었던 말이 있다. “헛헛하다.”

책의 끝 문장 :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작은 움직임들이 생기길 기대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3-22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봐야지 하고 깜박 잊고 있었네요. 약산로드와 함께 다시 바구니에 넣어놓습니다. ^^

bookholic 2021-03-22 08:42   좋아요 0 | URL
독립 운동 유적지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책을 통해서라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즐독하시고, 즐거운 한 주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23)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의 주체는 지역의 소농이다. 땅심을 북돋고, 논밭 농사와 상호 순환하는 축산을 유지하고, 지역사회 먹을거리체계를 지탱하는 원천은 소농이다. 미국 농무부가 지원하는 다국적 농기업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통상은 소농의 자치를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힘은 무역이 아니라 소농이 중심이 된 지역사회 자치에 있다. 특히 새 농업통상은 여성 농민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한다. 지구의 보편적 규범으로, 여성이 생산과 유통의 주체가 되어 지역사회 속에서 식량보장계획을 주도하도록 지지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여성 농민에게 농업 공동경영주의 법칙 지위를 보장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36)

이제 도시로의 집중과 개발은 한계에 달했다. 코로나19, 기후위기, 환경위기, 농업위기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먼저 농어촌을 돌봐야 한다. 농어촌 주민에게 기본소득은 이러한 문영의 전환을 위한 소중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가지 않았던 길을 가도록 요구하고 있다. 농촌기본소득은 그 길의 나침반이자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56)

재생가능에너지를 정말 옹호한다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부터 돌아봐야 한다. 지배엘리트의 관점에서 농촌, 산촌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숲과 환경을 지배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농촌의 관점, 농민의 관점, 숲의 관점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바라보고, 다시 한번 자기 지역 에너지는 자기 지역에서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에너지전환을 앞당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래야 도시와 공장 곳곳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려고 애쓰게 될 것이고, 전기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전환을 앞당기는 방법이다.

 

(58)

농촌 없는 사회란 상상할 수도 없다. 농촌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되면, 그 사회는 망할 것이다. 농민이 있어야 농촌이 살지만, 농촌이 살 만한 곳이 되지 못하면 농민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농촌, 농민, 농업은 서로 떼래야 뗄 수 없다. 그리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농촌-농민-농업의 가치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한반도에서 식량위기로 나타날 것이다. 곡물자급률이 20%대에 머무르는 사회에서 정치와 언론이 이렇게 농촌-농민-농업을 홀대한다는 것은 사회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102)

농사를 대규모로 짓고 농사짓지 않고 착취하는 수탈계급이 생기면서 인간 문명은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농사를 바라보는 저의 관점은 이중적이 되었습니다. 농업문명은 지주-소작인 계급문명으로 변질되더니 약탈과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자급 중신의 농사문명이 교환 중심의 농업문명으로 바뀐 건 동력 기계와 자본주의가 출현하면서 결국에는 농업이 산업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서구 제국주의 지식인들과 아류들이 말하는 직선적 역사발전 단계설이란 결국 탐욕과 착취를 무한 추구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쌓아올린 바벨벨탑입니다. 자본주의 근대문명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역사가 종식된 지상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지요.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는 모래성을 허물고 흙으로 되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108-109)

한 스위스 수녀님이 20대 때 우연히 한국에 오게 되었답니다. 1970년대 초였는데 서울의 판자촌에 가게 되었던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여남은 명 되는 동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하나를 나눠 먹는 장면을 보았다고 해요. 이 수녀님이 그 모습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고, 또 감격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서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살고 싶다고 결심을 하고 고아들, 집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거두면서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답니다. 그리고 은퇴를 해서 충청도 어디 시골에 가서 혼자 살고 계셨는데, 그 당시에 기자가 찾아가서 인터뷰를 했어요. 그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이야기, 지금 살고 있는 이야기를 기자가 들었는데, 그분이 굉장히 화가 나 있더라는 거예요. 한국이 너무 달라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곳으로 와서 살지 않았다, 지금 한국은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니라 돈만 아는 짐승들이 사는 곳이다, 한국이 이렇게 사나운 사회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그걸 제가 신문에서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요.

 

(114-115)

20세기 초에 미국 농무성 토양관리국장으로 있던 프랭클린 H.킹이라는 사람이 조선, 일본, 중국, 만주를 둘러보고 난 뒤에 돌아가서 <4,000년의 농부>라는 책을 썼어요. 동양에 가보고 탄복했다, 동양 사람들이 굉장히 지혜롭게 토양을 관리하더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깜짝 놀란 게 뭐냐면 인분을 거름으로 쓰는 거였어요. 서양 사람들은 가축분뇨를 퇴비로 쓴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임분을 쓴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런데 인구가 많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인분을 농사에 쓰지 않고 강이나 바다에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강물, 바다 다 오염됩니다. 동양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랜 옛날부터 이것을 삭혀서 발효시켜가지고 도로 농토로 넣어줬어요. 그렇게 해서 농토가 지력이 고갈되지 않았던 것이죠. 우리가 작물을 키워서 먹으면 그만큼 땅에 있던 양분이 뺏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다시 땅으로 돌려주는 거예요. 이 순환을 4,000, 아니 만 년 동안 계속하니까 땅이 보호가 되는 거죠. 게다가 논농사는 수전(水田)입니다. 표토가 날아갈 일이 없어요. 그리고 논은 기후도 조절합니다. 우리나라 전체 대형 댐 한 10개 이상의 물 저장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논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116)

저는 밥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밥이 어디서 나오는가. 이 밥을 지키기 위해서 농민들이 어떻게 고생하는가. 하늘과 별과 바람과 비가 땀과 결합해서 종합 예술품으로서 쌀이 나오는 거잖아요. 일찍이 해월 최시형 선생님이 밥 한 그릇을 제대로 알면 만사를 안다 그랬는데, 하나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압축하고 있는 말이 공양인 거예요. , 하늘과 농부와 별과 바람과 비가 결합해서 하나의 제물이 되어서 나를 모시는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밥 먹는 시간이 한없이 거룩해집니다. 쌀 한 알 한 알 씹으면 희열이 생깁니다. 나한테 희생되겠다고 온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뭐 쌀 아껴라, 밥풀 함부로 버리지 마라,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겠죠. 자연히 경건해지니까요. 해월 선생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고 그랬습니다. 만물의 관계는 이천식천이다. 하늘이 하늘을 먹여 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분이 말한 하늘은 모든 생명을 말하는 거예요. 하늘의 도움 없이, 하늘의 정기 없이는 어떤 생명도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게 없어요.

 

(207)

2015년 여름 인권사회학자 조효제 교수는 칼럼 기후변화, 절체절명의 인권’(<한겨레>, 2015 8 19)에서 기후변화를 가장 심각한 구조적 폭력이며 “21세기 인권침해의 주범 중 주범이라 확신한다며, 기후변화가 인권에 주는 끔찍한 함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불면의 밤을 뒤척여야 정상이 아닐까라고 물었다. 인권침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설정되는 관계만을 인권문제로 파악하는 기존의 인권담론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시스템적, 구조화된 인권문제는 배제된다는 진단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3-21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1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