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그러니까 보통 우리가 운동이라고 하면, 물체가 움직이는 위치를 계속 눈으로 추적하면서 위치가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위치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만약 위치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운동을 어떻게 기술할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그 대상으로부터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만 가지고서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원자의 경우에는 그게 바로 이런 숫자들이라는 겁니다.


(47-48)

본다는 것은 빛이 물체에 부딪혀 튀어나온 후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빛이 물체에 부딪히는 공안 교란이 전혀 없을 수는 없어요. 물론 대부분 물체는 너무 무거워서 빛에 맞더라도 별 영향을 받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죠. 아이스크림을 맛 볼 때에도 아이스크림을 교란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처럼, 어떤 물리량일지라도 측정을 하려면 그 대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교란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60)

관측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 존재 여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은 과학의 기본 전제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보지 않은 걸 믿지 않는 거죠. 이게 그냥 과학자들의 믿음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아요. 양자역학, 아니 우주가 그렇게 굴러간다는 겁니다. 과학자들도 이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무슨 관념론 같잖아요. 사실 처음엔 저도 거부감이 좀 있었습니다. 무언가 우리의 의식이나 의지 같은 게 거기에 관여하는 것 같은 느낌이 약간 있어서 그래요.


(76)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양자역학이 이상한 것은 단지 아직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기 때문이다. 우주는 결정되어 있는데, 아직 우리가 모르지만 우주는 아미 알고 있는 무엇인가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알게 되면 양자역학의 측정문제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거죠.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을 숨은변수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숨은변수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겠죠? 우주에는 우리가 모르는 아직 숨어있는 그런 것이 있는데, 이것이 결정론으로 된 것이라는 겁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숨은변수를 찾는 것뿐이죠.


(89)

하나는 국소성이고 다른 하나는 실재성입니다. 말이 무척 어렵죠? 하나씩 풀어봅시다. ‘국소성이라는 건 빛보다 빠른 정보 통신이 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상대성이론의 가정을 말하는 거지요. ‘실재성은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한 대로 측정하기 전에 물리량이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국소성과 실재성을 가정하면, 이것이 아마도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그런 숨은변수이론이 아니겠냐는 생각입니다.


(121)

실체(實體)나 실재(實在)라는 단어도 상황에 따라 어려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종교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또는 어떤 철학적 배경이 있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겁니다. 과학자들이 실재성 논쟁에서 염두에 두는 것은 오직 물리량이 측정 전에 정의되어 있으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선 물리량으로 표현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 측정하기 전 물리량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을 두고서 실제로 존재가 없는 거냐고 물으면 그건 다른 문제라고 답해드리겠습니다. 존재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잖아요? 빨간 알약인지 파란 알약인지 전혀 알 수 없을 때, 적어도 알약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 적어도 색은 존재하는 것인 것 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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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7)

19세기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전 세계 물리학자들에게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을 선사한 것이다. 그의 이론은 1901 1월에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연보>에 게재되었는데, 이 논문에서 막스 플랑크는 자신이 도입한 상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 상수는 에너지와 시간이 곱해진 단위를 갖고 있으므로 에너지요소 hv와 구별하기 위해 기본작용양자(elementary quantum action) 또는 작용요소(element of action)라 부르기로 한다.”

이로써 1900 12 14일은 양자혁명이 촉발된 날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정작 플랑크 자신은 E=hv가 고전물리학 체계를 송두리째 바꾸리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47)

막스 플랑크는 통계적 방법을 이용하여 고정된 에너지 요소를 진동자에 할당하면서 그 물리적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은 플랑크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원자나 분자가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그는 에너지가 복사와 물질 사이에서 연속적으로 흐른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플랑크는 복사 공식을 유도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발상을 처음 도입했지만, 그의 강연록이나 논문 어디를 뒤져봐도 이 사실이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62)

러더퍼드는 실험 결과를 면밀히 분석한 끝에 원자 질량의 대부분은 중심부에 있는 원자핵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보다 훨씬 가벼운 전자들이 마치 태양계의 행성처럼 그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원자의 내부는 거의 텅 빈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즘 출간되는 물리학 관련 서적을 보면 원자의 내부 구조를 그림으로 표현할 때 러더퍼드의 태양계 모형을 그려 넣곤 한다. 궁극적으로 맞는 모형은 아니지만, 원자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이것만큼 적절한 그림을 찾기 어렵다.


(110)

그 후 폴 디랙은 전자의 스핀 방향이 두 가지이기 때문에 원자의 각 궤도에 두 개의 전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론을 제안했다. 다시 말해서, 하나의 궤도에 들어가는 두 개의 전자는 스핀 방향이 반대여야 한다는 뜻이다. 스핀이 반대인 한 쌍의 전자들이 짝을 이루어 궤도를 채우면, 그 궤도는 더 이상 다른 전자를 수용할 수 없다.

이것은 이론물리학의 커다란 진보였지만, 여전히 문제점은 많이 남아 있었다. 고전물리학에서 팽이처럼 자전하는 물체의 자전축은 임의의 방향을 향할 수 있는데, 전자의 자전축은 외부 자기장이 걸렸을 때 왜 두 가지 방향으로만 나타날까? 이런 제한 조건이 전자의 양자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심증만 있을 뿐 그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135-136)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생각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왔다.

양자역학은 매우 인상적인 이론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양자역학이 물리적 세계를 정확히 예견한다 해도, 자연의 비밀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신은 주사위놀음 같은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탁월한 천재성과 직관으로 양자역학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결국에는 양자역학을 가장 극렬히 반대하는 쪽에 서게 되었다. 보른은 아인슈타인의 냉담한 반응에 크게 당황했다. 그 뒤 물리학계는 양자 수준에서 실체란 무엇인가?’를 놓고 과학 역사상 가장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147)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엇걸렸지만, 하이젠베르크는 보어와 자신이 같은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안개상자 속에서 나타나는 전자의 궤적처럼 지극히 간단한 현상조차 다루기 어렵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행렬역학에서는 궤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반면에 파동역학은 시간이 흐를수록 넓게 퍼지는 물질파의 개념을 이용하여 안개상자 속을 지나가는 전자의 궤적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개상자 속에서 전자가 남긴 궤적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전자가 입자라는 주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었다.


(153)

아인슈타인은 그 점을 인정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물리학 이론의 본분은 관측 가능한 양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도 알다시피 관측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관측 장비 안에서 또 다른 사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관측 장비의 내부에서는 또 다른 과정이 진행되고, 이것이 복잡한 단계를 거쳐 관측자에게 인식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자연현상에서 뇌의 인식 작용에 이르는 이 모든 과정으로부터 우리는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을 알아내야 하며, 현실적인 언어로 자연의 법칙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언가를 관측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158)

여기서 하이젠베르크의 설명을 들어보자

“”현재를 정확히 알면 미래를 예견할 수 없다는 것은 고전물리학의 결론이 아니라 가정이다. 현재를 정확히 아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관측된 모든 것은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들 중 하나가 우연히 선택되어 나타난 것이다. 양자역학의 통계적 특성은 부정확한 지각(知覺)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통계적 세계의 저변에 진짜세계가 숨어 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런 식의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리학의 본분은 관측된 사이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즉 모든 실험과 관측은 양자역학의 법칙을 따른다. … 그러므로 양자역학은 인과율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한 최후의 법정이다. 그 이상의 판결 기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175-176)

보어는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은 고전물리학의 개념들을 원자 규모에 적용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비로소 그 특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관측장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고전적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양자역학에서는 매우 생소한 결과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182)

실증주의든 실용주의든 간에, 보어는 명백한 -실존주의자였다. 그는 자신의 관점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은 관측 장비가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의 물리적 실체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으며, 앞으로 이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감춰진 실체의 지금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일상적인 물리학적 관점에서 말하는 독립적 실체는 눈앞에 나타난 현상이나 관측 방식과 무관하다.”


(263)

1947년에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계기로 물리학자들은 죄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다른 지식은 모두 잊어버려도, 이것만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338-339)

서버는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생각임을 인정했다. 전하가 분수인 입자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겔만은 서버가 찾는 것이 완전히 어불성설이라며, ‘코크(quorks)’라는 이상한 단어를 갖다 붙였다. 그 뒤 이어진 강연에서 이 단어를 몇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서버는 겔만이 지어준 이름을 쿼크(quirk, ‘기발함이라는 뜻의 명사)’로 알아듣고, 분수 전하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만큼 말도 안 되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345)

자발적 대칭성 붕괴는 고체물리학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양자장이론이나 입자물리학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대부분의 이론물리학자들은 스스로를 자연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에서 물리학적 원리를 찾아내는 순수주의자로 생각했기에, 고체물리학들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고체물리학을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한 시스템을 몇 개의 가정으로 단순화시키는 작업쯤으로 생각했다. 머리 겔만도 고체물리학을 너저분한물리학이라고 비아냥거리곤 했다.


(417)

새뮤얼 팅과 버튼 릭터의 발견이 알려진 뒤 물리학자들은 소립자가 두 종류의 세대(generation)’로 존대한다고 생각했다. 각 세대는 두 개의 렙톤과 두 개의 쿼크로 이루어져 있고, 그 밖에 이들 사이에서 힘을 매개하는 매개 입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입자의 족보가 완성될 듯했다. 전자와 전자뉴트리노 그리고 위쿼트와 아래쿼크는 제1세대에 속하고, 뮤온과 뮤온뉴트리오, 맵시쿼크와 야릇한쿼크가 제2세대에 속한다. 1세대와 제2세대 입자들은 일대일로 대응되며, 세대 간의 차이점은 질량뿐이다. 그 외에 광자는 전자기력을 매개하고 W 입자와 Z 입자는 약학 핵력을, 색전하를 갖는 글루온은 쿼크들 사이에서 강한 핵력을 매개한다.


(434)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물질은 대부분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의 중심부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이 자리잡고 있으며, 파동이면서 입자이기도 한 유령 같은 전자가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또한 양성자와 중성자는 위쿼크와 아래쿼크로 이루어져 있다. 쿼크와 전자, 전자뉴트리노는 스핀이 1/2인 페르미온이며, 이들은 표준모형에서 ‘1세대 물질 입자에 속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세계를 서술할 때에는 이 세 종류의 입자로 충분히다.


(438)

이 모든 체계의 저변에 신비하게 깔려 있는 것이 바로 힉스장(Higgs field)이다. 힉스장은 우주 공간의 진공 속에 골고루 퍼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질량이 없는 입자가 힉스장(또는 힉스 응축물’)과 상호작용을 하면 질량을 갖게 되는데, 이때 획득한 질량은 입자와 힉스장 사이의 결합강도(coupling)에 따라 달라진다. 힉스장의 장 입자는 스핀=0인 힉스 보존으로, 표준모형에서는 모든 입자에 질량을 주여하는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알려져 있다.

헤라르트 토프트는 자신의 저서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힉스 입자는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지만 힉스장의 존재는 모든 곳에서 느낄 수 있다. 만일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표준모형의 대칭성이 너무 커서 모든 입자들이 거의 똑같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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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통권 179호 - 2021년 7월~8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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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녹색평론 179 2021 7~8월호를 읽었단다. 녹색평론에서 창간 이래 계속 경고했던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를 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보고 있는 올 여름인 것 같구나. 세계 곳곳에서 대홍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상 최고의 기온을 찍은 더위로 난리고, 우리나라도 예년과 달리 짧은 장마와 함께 일찍 시작한 무더위는 끝을 모르고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야. 이런 일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질 테니 더욱 걱정이구나. 진작에 기후변화에 온 세계 사람들이 대처를 했어야 했는데지금 와서 후회하느니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노력하면 좋겠지만, 말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인류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야 하는데, 가장 쉬운 방향으로 하는 것이 안타깝구나.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 에너지원을 사용한다고 농촌마다 깔아놓은 태양광 전지가 대표적인 예란다. 농업과 태양광 전지는 상극인 거야. 태양광 전지를 하려면 농업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말이야. 우리는 죽어가는 농업도 살려야 하는 의무가 있거든. 뿐만 아니라 산을 깎아서 태양광 전지를 깔아 놓은 경우도 있는데, 산도 죽이고 폭우가 한번 오면 태양광 전지도 쓸려 나가고미관상 보기도 좋지 않고 말이야. 태양광 에너지는 그런 곳에 설치하는 것이 아니고, 고속도로 변이나 철도변 못쓰는 땅에 설치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야. 이건 아빠도 예전에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이란다. 유럽의 태양광을 앞서 개발하는 나라들이 고속도로변에 태양광을 설치했다고 봤거든그걸 처음 봤을 때는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 못된 것들은 선진국 것을 잘 따라 하면서 이런 건 또 왜 안했을까? 어떤 사람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것일까. 참 안타까운 일이구나.

얼마 전에 전국에 있는 나무들에 베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단다. 이런 일이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아빠는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이해해 보려고 했단다. 하지만 탄소 중립을 위해서 베어버린다고 하니 더욱 이해가 힘들었단다. 탄소 중립을 위해서라면 나무를 심어야지, 나무를 베어 버린다고? 어떤 연구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30년된 나무들은 탄소 중립에 도움이 안되고 어린 나무들이 탄소중립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나? 그래서 30년된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다시 나무를 심는다고언뜻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일이로구나. 조금만 더 살펴보면 30년된 나무들이 더 많은 산소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없앤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데 말이야.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모르겠구나. 지금이라도 국민청원을 해서 이 일을 막아야 되는 거 아닌가 싶구나.

….

이런 무대뽀 개발의 역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란다. 많은 환경 단체와 시민 단체가 반대했던 새만금 간척 사업. 아빠는 새만금 간척 사업을 어렸을 때부터 들어본 것이라, 이미 다 끝난 줄 알고 있었단다. 하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고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단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직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고,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 지 모른다면, 지금이라도 복원을 하든, 그것이 안되면 현 상태에서 멈추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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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새만금 간척사업은 유사 이래 우리나라 최대의 토건사업으로 30년째 진행 중인 사업이다. 2050년까지 사업을 계속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의 계획대로 새만금사업이 진행된 역사가 없다. 앞으로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현재 새만금사업은 인간의 탐욕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사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초에는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이후에는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한중 경협특구로, 현재는 그린뉴딜 1번지로,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로, 그동안 제대로 된 개발 없이 새만금사업은 표류해왔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전북도민들의 탐욕을 부추기고 기대감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업이 계속되는 한 시민사회의 새만금살리기 활동도 계속될 것이다. 새만금 살리기운동의 짐이 미래세대에게로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개발과 성장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평화로운 새만금이 언제 온 수 있을지, 걱정과 함께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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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서는 하는 일들은 대부분은 엄청 큰 돈이 들어간다. 물론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나라에서 어떤 큰 사업을 하겠다고 할 때, 그것도 좋은 의도로 하겠다고 할 때는 좀더 신중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돈도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처음 시작 단계에서 좀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좀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그렇게 결정하라는 것이란다. 국가 대형 정책에는 국민들이 의견을 듣고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단다.


1.

녹색평론을 만드시고 키우신 김종철 님께서 돌아가신 지 어느덧 1년이 되었단다. 늘 그렇듯 1년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는구나. 갑작스런 김종철 선생님의 비보에 놀랬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1년이 흘렀더니김종철 선생님께서 그렇게 갑자기 가시고, 녹색평론이 제대로 갈까, 걱정을 했으나, 녹색평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담론 그대로 잘 이어지고 있어 다행이구나. 하지만 여전히 김종철 선생님의 부재는 녹색평론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커다란 손해로구나. 이번 녹색평론 179호에서는 김종철 선생님 1주기 기념으로 그의 사상에 대한 글들이 여럿 편 실려 있단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옛날부터 오늘의 이 엉망인 세상을 예견하였다는 점이 놀랐고, 당시 그의 말을 따라 세상이 움직였다면, 오늘날 기후 위기나 전염병 팬더믹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어. 환경, 농업, 민주주의그가 지난 수십 년간 이야기한 것들의 핵심적인 말들이란다. 녹색평론 창간사부터 농업 중심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셨지. 남들 모두 농촌을 떠나 도시가 가는 모습을 모두 얼마나 답답해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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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농민 중심의 민중 자치는 근본적으로 흙(지구)과의 건강한 관계를 기초로 한다. 그것은 농민이 볼 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흙이 만물을 살려내는 기본 바탕임을 직관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한 톨의 곡식처럼 한 줌의 흙도 소중하다. 이런 겸허한 자세가 전제되지 않으면 공동체는 어렵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을 실천할 수 있어야”(<녹색평론> 창간사) 좋은 삶이나 공동체의 전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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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것도 서울대 영문학과라고 하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 입학한 그를아직 그의 삶을 그린 평전이나 자서전이 출간되지 않았는데, 그의 삶을 그린 책이 나오면 한번 읽고 싶더구나.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이나 준 사람이 많이 있을 텐데, 이번 녹색평론 179호에서 소개된 사람 중에 낯익은 이가 있었단다. 몇 달 전에 읽은 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에서 소개되었던 시인 블레이크였단다. 아빠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책에서 시인 블레이크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는데, 김종철 님도 그 시인에게 많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구나. 다시 시인 블레이크라는 사람이 궁금해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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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시인 지망생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1965년 서울대 영문학과에 입학하는데 영문학에 큰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생의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2019) 서문에 따르면, 서양적인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그리고 영어를 익히면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맹목적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영문과의 한 연구실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줄 강력한 언어와 만납니다.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 새는/온 하늘을 분노로 떨게 한다. / 주인집 대문 앞에 굶주려 쓰러진 한 마리 개는 / 제국의 멸망을 예고한다.” 다름 아닌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였습니다. 그날 이후 영문학도는 블레이크의 근원적 상상력과 철저한 민중성, 그리고 예언자적 풍모(정직성)에 사로잡힙니다. 선생이 보기에 블레이크는 민중적 전통에 입각해 억압적 부르주아체제에 대하여 가장 근본적인 비판에 도달한 근대 최초의 지식인이자 사상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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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선생님의 글과 사상을 읽다 보면 하나하나 마음에 새겨 할 것들이 많았어. 이 지구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생존하기 위해서는 다같이 가난하게, 하지만 품위 있고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하시는 말씀. 언제부터 왜 사람의 유전자에 욕심과 탐욕이 새겨져 버렸을까. 그로 인해 스스로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면서까지 그 욕심을 채우는 종족이 되어 버렸을까. 김종철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공빈론은 공감이 가면서, 실천하기 어려운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의 욕심과 탐욕의 DNA가 너무 강력해서 말이야. 그래도 마음으로는 계속 그런 삶을 생각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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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김종철 선생은 가난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그것은 물론 물질적 결핍이 아니라 깨끗하고 품위 있는 가난으로, 그런 가난이야말로 우리의 인간성을 고양시키는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물 마시고 나물 먹고 그러면서 달을 희롱하는 따위의 안빈낙도하고는 다르다. 선생이 말하고자 한 것은 늘 어울려 일하고 즐기는 삶의 중요성이었다. 물론 우정과 환대에 기초한 그런 삶을 꾀하더라도 생태학적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 가난은 그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필수적이다. 말하자면 공생공락의 혹은 공생공락을 위한 공빈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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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이번 녹색평론 179호는 김종철 선생님의 글과 생각에 관한 글들이 있어 좋았단다. 그렇게 그의 1주기를 그리는 특집도 좋았고 말이야. 여전히 그의 부재가 믿기기 않지만 말이야.


2.

오늘날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편리함을 우리는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란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를 우리는 누군가에 주고 있단다. 여기서 말하는 누군가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야. 물론 우리나라의 네이버나 다음 같은 회사도 마찬가지이고알게 모르게 우리는 감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거야. 하지만 그 편리함을 이기지 못하고 오늘도 열심히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있구나. 아빠는 그 동안 편리함을 얻고 우리의 정보를 주는 것이 윈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번 녹색평론에서 감시자본주의에 대해 정형철님은 좀 다르게 생각하시는구나.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고객은 우리가 아니고, 광고주들이라고 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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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여기서 주의할 점은 감시자본의 고객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사용자인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 자신이 고객의 지위를 누려야 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감시자본의 고객은 따로 존재한다. , 감시자본의 고객은 사용자의 행동잉여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맞춤형 광고를 사가는 광고주이다. 구글은 사용자의 서비스 개선에도 데이터의 일부를 활용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를 광고에 활용한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구글과 같은 감시자본에게 사용자는 행동잉여 데이터라는 원재료를 무상으로 공급해주는 자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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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감시자본은 우리의 경험과 행동을 데이터화하여 도구화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전혀 관심 갖지 않는다. 감시자본의 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사용자 개인은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고 데이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극단적 무관심과 타자화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여기서 말하는 극단적 무관심이라는 것은 감시자본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주체인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같은 의미에서 감시자본주의하에서 우리는 자유의지와 존엄한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감시자본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저 매 순간 구글의 검색창에 정보를 입력하고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누르며 인스타그램에 자신해서 사진을 올리는, 생체정보를 지닌 유기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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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들이 틀린 말들은 아닌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평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선한 기능도 있고, 그것으로 행복과 기쁨의 호르몬이 만들어지는 것도 사실이긴 한데그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좋아요를 클릭하고 구글 검색 창에 검색어를 입력한 것들이 데이터화되어 이용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냥 너희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지식을 찾는데 지금처럼 디지털 기기들을 잘 사용해 보련다.


3.

우여곡절 끝에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었단다. 후쿠시마의 안전성을 온 세상에 알리고 부활해 보겠다는 의지가 담긴 일본의 뜻과 달리, 올림픽은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제대로 되는 것은 없고, 일정에 따라 운동 경기만 펼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구나. 처음부터의 후쿠시마의 안전성을 알리겠다는 일본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지. 후쿠시마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니 말이야. 그것이 숨긴다고 숨겨지고 가린다고 가려지겠니, 두 손으로 태양을 가리는 격이지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처하는 일본 정부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글도 이번 호에 실려 있었어. 이와 관련된 글은 자주 실리는데, 이번에 올림픽에 맞춰 다시 한번 실은 것 같구나.

<야생초 편지>의 지은이로 유명한 황대권 님은 감옥에서 나오신 후 조용히 보내려고 했지만, 그가 정착한 마을에 핵폐기물이 들어오게 되면서, 그를 조용히 지내지 못하게 했나 보구나. 그는 오랫동안 활동한 고준위 핵폐기물 반대 투쟁에 대한 역사도 실려 있단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위험성은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했던 것 같아서 오늘은 생략할게. 한 가지만 이야기하면, 이번 정부 초기에 신고로 5, 6호기 건설을 계속 할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 에 대한 공론회를 구성한 적 있어. 이 공론회에서 패배한 것이 아빠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던 일 중에 하나였는데, 탈핵 운동하는 분들도 그랬던 것 같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탈핵 진영의 조직들이 와해되는 후폭풍이 있었다는구나.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 같아. 그 일로 고준위 핵폐기물 반대 투쟁도 많이 힘들어졌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하니, 많이 관심을 가져주어야겠구나. 정부가 바뀌어도 막강한 핵마피아들그들과 힘들게 싸우고들 있으니 말이야.

….

몇몇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있었는데,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칠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유독 긴 올 여름 무더위가 얼른 끝나기를그 무더위가 끝나는 날 코로나는 이유 없이 사라지기를…. 이상.


PS:

책의 첫 문장: 기후위기라는 의제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다.

책의 끝 문장: ‘아픔을 마중하는 세계가 바로 그런 다정한 세계라고 믿는다.


감시자본은 우리의 행동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예측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시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고, 조종하고, 통제해나간다. 우리는 구글에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검색한다 생각하지만, 실상은 역으로 우리가 구글에 의해 검색당하는 것이다. 감시자본 아래에서 우리는 자유의지를 지닌 주체가 아니라 수집, 분석, 추출의 공정에 던져진 재료로서 존재한다. 감시자본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데이터로 전락한다.
감시자본의 이러한 도구주의적 권력 속성은 "인간에게서 반성적 의미 작용을 빼앗아 동물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민주적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간의 능력과 자기이해를 갉아먹으며 내부로부터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 P72

‘풀뿌리 민주주의’ 개념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풀과 뿌리는 비바람과 폭설에 쓰러지고 파묻히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생명력이 있다. 5월의 신록조차 한겨울과 초봄의 갈색 잎들 사이로 풀뿌리가 뿜어내는 기운을 받아 하나씩 새잎을 튀운 결과다. 새 손톱이 헌 손톱을 멀어내는 손톱갈이를 하듯, 새 잎사귀가 헌 잎사귀 사이로 돋아나며 해마다 산천갈이를 한다. 그러나 헌 잎사귀는 단지 새 잎사귀로 교체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썩어 거름이 됨으로써 새 에너지원이 된다. "희생 없이는 우정도 없다"던 선생의 말처럼 지난가을 낙엽들이 거름이 됨으로써 풀뿌리와 신록을 살려낸다. 나아가 풀뿌리 그 자체는 서로 얽히고설켜 아무리 뜯기고 짓밟혀도 한두 가닥 살아남아 한사코 일어선다. 바로 이런 면들이 우리가 그토록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 P135

"<녹색평론>은 이른바 ‘발전’ 혹은 ‘진보’의 이름 밑에서 인간생존의 사회적 자연적 토대를 끊임없이 훼손하는 일체의 움직임, 논리, 사고, 제도, 관행을 비판하는 데 있어서는 늘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했고, 동시에 어떻게 하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왜 우리가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선생이 단호한 어조로 밝힌 <녹색평론>의 정체성과 지향점은 곧 김종철 문학의 그것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선생의 문학은 전환의 문학이었습니다. 근대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 모든 과정과 부문에 적극 개입하는 모든 형태의 문학. - P147

독재로부터 벗어나 선거대의제로 목소리를 찾게 된 민중이 느끼는 환희에 대해서는 언제나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된다. 그러나 혹은 나중에 이들 가운데 실망감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뉴스가 되지 못한다. <이코노미스트>(2009년 11월 4일 발행)의 한 기사는, 대부분의 공산주의국가들이 몰락하고 20년이 지난 뒤 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해보았더니 오직 절반만이 서구식 ‘자유와 자본주의’로 전환된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러한 전환으로 인해 혜택을 본 것은 보통사람들보다 기업과 정치 엘리트들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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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06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녹색평론을 구매해 읽은 적이 있는, 유익한 책으로 아는 1인입니다.
지난호를 저렴하게 팔기도 하던데 언제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bookholic 2021-08-06 22:18   좋아요 0 | URL
녹색평론이 사정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습니다... 같이 읽어보아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1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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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즐겨 찾는 알라딘 북플에서 알게 된 정희진 님의 책을 읽었단다. 정희진이라는 분의 글쓰기 시리즈 중 첫 번째인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현재까지 출간된 책이 세 권이라서 이 시리즈가 모두 세 권인 줄 알았는데, 책 소개를 보니 모두 5권까지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구나. 지은이 정희진 님의 책은 아빠가 처음이야. 이름은 익숙한데 읽어본 책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인터넷 서점에 들락거리다가 본 것 같구나.

정희진 님을 검색해 보면 여성학을 전공하신 여성학자로 이면서, 여러 여성조직 등에서 자문위원을 하셨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전공 관련된 여러 책들을 내시기도 한 작가이기도 하고, 노동운동이나 시민단체에서도 활동을 많이 하신 분이야. 책 제목 또한 멋지구나.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그래, 무슨 일이든 나쁜 사람에게 지면 안 되지. 정희진 님은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우선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 그렇게 자기 자신을 검열을 하면서 생활을 했다고 하니, 대단하신 분인 것 같구나. 아빠 같으면 이런 책 제목을 지으려면 찔리는 부분이 많아서 못했을 것 같은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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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나쁜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정치학과 미학은 이 몸부림 과정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사람마다 행로가 다르기 때문에, 이른바 독특한 글(콘텐츠)이 나올 수밖에 없다. 흔히,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군자의 비현실적인 말이 아니라, 과정에서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괴로운 과정에서최선의 올바름’, 아름다운 문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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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글쓰기는 솔직해서 좋았단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이 있는 경우도 재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적으셨어.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평가도 몇몇 실려 있었는데, 아래 글을 읽어보고 정희진 님은 우리 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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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책을 읽다가노무현과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적 약자(야권)자발적 무지’, 강자의 정체성 정치(지역주의)와 약자의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인 민주당 분당 사건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같은 인물은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의 캐릭터는 우리 사회의 가능성이었다. 노무현의 당선은 일본의 진보 세력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들은한국은 미래가 있는 나라라며 부러워했다. 연주 없는 고졸 대통령. 일본은 지방의원부터 국회의원, 총리까지 몇몇 가문이 독점하는 철저한 세습 사회다. 그들은 아버지로부터 자금, 지명도, 후원회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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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대부분이 서평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각 서평을 깊게 분석한 것이 아니고, 당시 시대상이나 지은이의 생각을 짧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스포일러도 거의 없으면서도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그런 서평들이었단다. 그런데 그 책들이 오래된 고전이나 명작들이 아닌, 최근에 출간된 책들도 많아서 더 좋았단다. 김영하 님의 책이나 유시민 님의 책도 있고 말이야. 고전으로는 아빠가 너무 좋게 읽었던, 법정 스님이 옮기신 <숫타니파타>도 소개해 주었단다. 그 밖에 녹색평론도 소개하는 등 아빠가 읽은 책들도 있어서 반가웠어. 그리고 읽으려고 계획했던 책들도 있어서 도움이 될 것 같구나.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새로 알게 되어, 아빠의 리스트에 추가된 책들도 있단다. <지젝이 만난 레닌>, <기형도 산문집>,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등등….

이 책이 출간된 것은 2020년이지만, 이 책의 바탕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신문에 기고했던 서평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실려 있단다. 어느덧 그 사건이 일어난 지 7년이 흘렀구나. 아빠도 초창기에는 그 사건을 절대 잊지 말자고 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누군가 그 사건을 이야기할 때만 떠오르는구나. 그 때의 아이들의 고통들그렇게 만든 사람들요즘도 어떤 사고가 나면 세월호와 비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어떤 사건사고를 그에 비교할 수 있을까 싶구나. 아물고 있는 상처를 다시 터뜨리는 행동과 말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가. 세월호는 상식적으로만 대처했어도 일어나지 말아야 사건인데, 당시 정부에는 비상식적인 사람들만 똘똘 뭉쳐 있었거든. 그런데 그 때 그 시절의 사람들이 다시 정권을 잡겠다고 떠들썩한데, 그런 일이 일어날까 두렵구나.

국민들이 선거를 할 때 제발 상식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 최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차선을 선택해야지, 최악을 선택하면 안되고 말이야. 앞으로도 정희진 님의 글쓰기 시리즈를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PS:

책의 첫 문장: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 프란츠 파농

책의 끝 문장: 어쩌면 이 질문만이 유일한 사실(史實)일지도 모른다.


"왜 쓰는가"와 "왜 사는가"는 같은 표현이다. 사실, 이 물음은-누구나 작가인 시대지만-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이 아니다. "왜 사는가"를 고민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특히 어려운 시대, 어려운 상황에 처음 이들일수록 그렇다. 삶은 행위의 연속이다. 모든 행위는 침묵이든 폭력이든 놀이든 노동이든 인간관계든, 그리고 죽음의 방식까지 자신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다. 이러한 표현은 기호(signs), 즉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이 그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표현은 자기만의 사유(특정한 렌즈)를 거치므로 각자의 몸을 통과해 ‘걸러진’ 재현(re-presentation)이다. 표현이 아니라 재현이 맞는 말이다. - P10

환경운동 구호 중에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원전에 반대한다.", "인간은 후대로부터 지구를 잠시 빌린 것이니 지구를 완전히 부숴버리지는 말자(‘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오역됨)."는 논리는 틀렸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고 현재 나를 위해 원전에 반대해야 한다. 이 구호는 여전히 인간의 것이 아닌데 누가 누구에게 지구를 ‘물려주고 말고’ 한단 말인가. - P53

노년 담론 중 흔히 회자되는 논리가 ‘곱게 늙기’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나이듦은 ‘곱지 않다’는 전제가 있다. 또한 ‘내면의 아름다움’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곱게 늙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왜 노인에게만 곱게 살라고 하는가! - P82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인 동시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 ‘희망찬 인생’은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의 볼모가 된다. 희망은 욕망의 포로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조종하는 벗어나기 어려운 권력이다. - P95

‘이야기’는 곧 읽기와 쓰기다. 반응하지 않는, 감정 이입 없는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그러지 않아야 더 잘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뇌는 진공 상태다. 글이란 자기 생각을 외부로 물질화하는 일인데, 생각이 없다면? 생각 없는 글쓰기가 가능하고 심지어 널리 읽히는 세상이다. - P149

우주에서 보면 인간은 하루를 사는 곤충이나 길가의 이름 모를 풀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가 아니라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산다. 이름을 얻으려고 발광하다가 타인까지 질식시키는 이들이 있는 하면, 드물지만 흔적을 지워 가며 사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미숙한 범죄자처럼 가는 곳마다 뭔가를 흘리고 다니지만, 나는 욕망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는 삶은.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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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04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찔리는 부분이 많아서 저렇게 멋진 제목으로 글쓰지는 못할거 같아요 🙄 저도 정희진님 책은 1권 읽어봤는데 이책도 읽어봐야 겠어요~!!

bookholic 2021-08-05 05:09   좋아요 1 | URL
기준을 넓게 잡아 보아요~~ 우리가 나쁜 사람 범주에 포함 안 되도록..^^
우리보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책을 읽고, 글을 씁시다~~

scott 2021-08-04 1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 밑줄 !쫘악~~

[우주에서 보면 인간은 하루를 사는 곤충이나 길가의 이름 모를 풀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인간은 우주가 아니라 자기가 만든 세상에서 산다. 이름을 얻으려고 발광하다가 타인까지 질식시키는 이들이 있는 하면, 드물지만 흔적을 지워 가며 사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미숙한 범죄자처럼 가는 곳마다 뭔가를 흘리고 다니지만, 나는 욕망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는 삶은.]

분명, 이 책을 읽었는데 이렇게 북홀릭님 글에서 다시 읽으니, 새로움이 ^ㅅ^

bookholic 2021-08-05 05:10   좋아요 2 | URL
저도 이번에 리뷰 쓰면서, 이런 글이 있었나?
싶은 문구들이 많았어요..^^
짧은 기억력으로 늘 새로움을 만나는 기쁨~~~^^

파이버 2021-08-04 16: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전자책으로 사놓고 계속 못 읽고 있었는데(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림 ㅠㅠ) 북홀릭님 평이 좋으시니 궁금하네요~

bookholic 2021-08-05 05:11   좋아요 3 | URL
전자책으로 갖고 계시면, 기다리는 시간들을 이용하여 틈틈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챕터 하나가 짧게 구성되어 있어서요~~
즐독하시구요~~^^

scott 2021-09-10 16: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아들과 딸에게 비밀!👆

새파랑 2021-09-10 16:13   좋아요 2 | URL
매달 비밀이 늘어나시네요 ^^ 축하드려요~!

bookholic 2021-09-10 21:04   좋아요 2 | URL
이번달은 정말 기대 안하고 있었어요...
적립금 안 타면 책도 적게 사겠지.. 이러고 있었는데, 또 질르러 가야겠네요...
늘 빠른 축하 감사합니다~~
...
비밀이 늘어나면서, 아이들도 쑥쑥 자라고 있어요.. ㅎㅎ

mini74 2021-09-10 16: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지무지 축하드려요 ~

bookholic 2021-09-10 21:0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다 님들 덕분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서니데이 2021-09-10 18: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bookholic 2021-09-10 21:06   좋아요 2 | URL
날마다 좋은 글들 고맙습니다..
축하해 주신 것도 고맙구요.. ^^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이하라 2021-09-10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bookholic 2021-09-10 21:07   좋아요 1 | URL
잊지 않고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불금 잘 보내시고, 주말도 여유롭기를...^^

페넬로페 2021-09-10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정희진선생의 작품은 아직 완전히 저한테 와 닿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bookholic 2021-09-10 22:58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책 소개해주는 책이라서 정희진의 책이 와 닿으면 지출이 좀 심해지는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초딩 2021-09-1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좋은 날 되세요~
 














(23)

이 도시와 충동적 젊은이였던 나, 이 두 존재, 즉 우리는 흡사 불안과 초초함의 동력 발전기처럼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때처럼 그렇게 베를린을 이해하고 사랑한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도시는 높이 웅비하면서도 따사롭기 그지없는, 인간을 위한 달콤한 안식처와 같아서 내 몸 속에 있는 모든 세포가 갑작스럽게 확장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초조한 청춘들의 강렬함은 뜨겁고 풍만한 여인의 떨리는 품속과도 같은 베를린, 힘이 솟구쳐 오르는 이 도시 속에서 비로소 격렬하게 터져 나왔습니다.


(44-45)

우리는 언제나 모든 현상, 모든 인간을 그 불꽃의 형태로만, 정열을 통해서만 인식할 뿐입니다. 모든 정신은 피 속에서 끓어오르고, 모든 사상은 정열에서, 모든 정열은 영적인 감동에서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셰익스피어와 그 시대 사람들에게 먼저 눈길을 돌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을 진실로 젊게 만들어 줄 셰익스피어를 말입니다! 먼저 감동하고, 그 다음에 공부하시오! 언어를 공부하기 전에 먼저, 가장 찬란한 세계의 교과서인 그 사람, 그 고귀한 그 사람, 최고의 인물인 셰익스피어에 대해 연구하시기를!


(55)

조용히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들어온 그는 그저 지치고 나이든 남자일 뿐이었습니다. 반짝반짝 비치던 눈의 초점은 사라지고, 맨 첫 줄 의자에 앉아 있던 내 눈에 비친 그는 푹 패인 주름살과 얼굴에 퍼진 상처들로 거의 환자처럼 생기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상처 자국이 있는 그의 얼굴은 움푹 파였고, 푸르스름한 그늘이 늘어진 회색 뺨에 흘러내리는 듯 했습니다. 책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눈 위로 눈꺼풀 그림자가 드리웠으며, 창백하고 얇은 입술에서도 청랑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청아함, 저절로 환호성을 지르게 만든 넘치는 활력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낯설게 느껴지는 목소리는 흡사 재미없는 문법 강의처럼 단조로웠고, 피로에 지친 발걸음으로 바짝 말라 딱딱해진 모래를 지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불안이 엄습했습니다.


(86-87)

고귀한 남성의 우울은 늘 젊은이의 정신을 강하게 붙드는 법입니다. 자신의 심연 아래를 응시하는 미켈란젤로의 사상과 처절하게 내면을 향해 꾹 다문 베토벤의 입, 이렇듯 세계 고뇌를 가린 비극적인 가면들은 모차르트의 은빛 멜로디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물 주위에 밝게 퍼지는 빛보다 더 강력하게 청년을 감동시킵니다. 사실, 청춘은 그 자체로 아름다워서 아름다움을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청춘의 힘은 활력이 지나치게 넘쳐흘러서 비극적인 것으로 치닫기도 하고,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피를 달콤하게 흠뻑 빨아들이기까지 합니다. , 그런 이유로 정신적 고뇌 속에서도 청춘은 위험을 받아들이고 형제 같은 마음으로 내민 손을 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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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01 10: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ㅜㅜ 너무 너무 좋네요!!!!
츠바이크는 정말 조곤조곤 젠틀하고 지적이고
고요하게 차곡차곡 서사하고 자신의 감상과 의견과 분석을 전하는 것 같아요
양서입니다!

bookholic 2021-08-01 18:47   좋아요 2 | URL
츠바이크 문장의 특징을 어떻게 이야기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초딩 님께서 답을 알려주셨네요..^^
조곤조곤하고 젠틀하고 지적이고 고요하게 차곡차곡 서사하고 자신의 감상과 의견과 분석을 전한다^^
핵심을 찌르는 요약입니다~~^^

청아 2021-08-01 11: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으아~곱씹을 수록 좋은 츠바이크의 문장들이네요!!!

bookholic 2021-08-01 18:48   좋아요 2 | URL
츠바이크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한 권 한 권 실망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