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보경은 콜리가 아닌 주방에 난 창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떼어낸다는 게 가능한가요? 그러다 죽어요.”

. 이러다 나도 죽겠지. 죽으면 다 그만이지, 하면서 사는 거지.”


(233)

물론 콜리가 스스로 깨닫거나 책에서 읽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책보다 더 정확하고 지혜롭다는 인간의 삶에서 나온 진리였다.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313)

틀렸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세상에는 원래 이유가 없었어. 인간들이 이유를 가져다 붙인 거지. 그러니까 순서를 따지자면 이유 없이 생겨난 게 먼저야.”

하지만 저는 틀릴 수가 없는데…”

누구라도 틀려. 원래 살아가는 건 틀림의 연속이야.”


(343)

인간의 눈이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콜리는 인간의 구조가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 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때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다른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으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맞았다. 어렵고 복잡했다. 하지만 즐거울 것 같기도 했다. 콜리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리라. 삶 자체가 연속되는 퀴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할린 3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사할린> 마지막 3권의 이야기를 할 차례구나. 이 소설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지은이 이규정 님이 오랜 시간 동안 취재를 하고 쓰신 것이니까 때문에 등장 인물의 이름은 허구일 수 있지만, 그 인물들의 삶은 실제란다. 소설에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그 사람들의 인생이 참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사람들의 인생이 모두 실제로 그러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안타깝더구나. 강제로 끌려간 사할린 땅에서, 조국이 해방이 되어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어쩔 수 없이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 하긴 하지만, 가슴 속에 얼마나 많은 한()이 맺혀 있을까.

….

세월이 흘러 1960년대에 들어섰어. 이제 누구나 사할린은 소련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냉전 시대 소련과 우리나라는 왕래가 어려운 사이였어. 사할린 사람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것은 이젠 더 어려워졌어. 우리나라 정부에서 신경이라도 쓰면 모를까, 외면하고 있으니 더욱 힘들었지. 사할린의 우리 동포들은 예전부터 각자 도생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구나.

남아 있는 이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어. 그들의 아이들, 그러니까 사할린 동포 2세들은 우리말보다 러시아 말을 더 잘했어. 그곳에서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겠지. 어떤 아이들은 공부를 잘해서 사할린을 떠나 러시아 본토로 공부하러 가기도 했어. 이젠 한국 사람이 아닌 사할린 사람으로 러시아 사람으로 살아갔단다. 그래도 자기 자식들은 같은 한국 사람과 결혼해주길 바랬는데, 사랑에 국경이 있는가, 러시아 사람들과 결혼하는 2세들도 있었단다.


1.

이문근은 사할린에 있는 동포들 중에 몇 안 되는 지식인이었단다. 그래서 동포들이 상의할 일이 있거나 어려움에 빠졌을 때 이문근을 찾아왔단다. 이문근은 그곳에서 우리 동포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어. 아내 최숙경을 찾아 해방이 되고 나서 사할린에 온 이문근. 최숙경은 이미 사할린을 떠나고, 이문근은 사할린에서 발이 묶이고이후 최숙경에 대한 소식을 듣지도 못한 채, 세월만 하염없이 흘러가고

어느덧 1980년대에 들어섰고, 이문근도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단다. 1988년에는 남한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소식도 들려왔어. 이런 일을 계기로 남한과 왕래가 가능해진다면 고향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는 이들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이젠 그들이 사할린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고향을 가더라도 다시 사할린으로 돌아와야겠지..

사할린 사람들은 그 동안 꾸준하게 고국으로 편지를 보냈단다. 하지만 그 편지들이 제대로 고국으로 오기는 쉽지 않았어. 앞서 이야기했지만, 소련과 남한은 사이가 좋지 않아 편지도 쉽게 오갈 수 없었거든. 그런데 오랜 시간을 걸친 편지들이 하나 둘 고향 땅에 도착하기 시작했단다. 사할린에 살고 있는 정상봉이 보낸 편지가 동생 정상규에게 도착을 했고, 최해술이 보낸 편지는 뒤늦게 그의 그의 아들 최상표에게 도착했고, 이문근이 보낸 편지도 결국 조카 이철환에게 도착했단다.

편지를 받은 이들은 반가운 마음에 답장을 해주었어. 이문근도 이철환의 답방을 받았단다. 조카인줄 알았던 이철환이 자신의 양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최숙경이 끝내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하지만 최숙경은 이문근이 죽은 줄 알고 피폐한 삶을 살다가 일찍 죽었다는 이야기 등이 담겨 있었어.

이 얼마나 슬프고도 허망한 소식이었을까. 희망이라는 것이 이렇게 삶의 끈과 관련이 있던 것이란다. 최숙경은 이문근이 죽었다고 알고 있어 희망을 잃고 일찍 삶을 마감하고, 이문근은 언젠가 최숙경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하나 때문에 살아있었고 말이야. 최숙경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문근은 1여 년 뒤 병으로 그만 죽고 말았단다. 때는 1991년이었어. 안타깝게도 그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사할린의 가족을 둔 대한민국 국민들의 사할린 방문이 준비 중이었단다. 최숙경은 만나지 못해도, 이철환은 만나 볼 수 있었을 텐데


2.

이철환은 이문근과 소식이 닿은 이후, 이문근이 죽은 줄 모르고 사할린 이산가족모임에 가입하여 사할린 방문을 준비했단다. 이철환, 최상필, 김종규 등은 모두 2차에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1991 5 22일 드디어 사할린으로 향했단다.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얼마나 감개무량했을까. 당시 사할린은 소련의 땅이고 소련에 개방의 바람이 들어오긴 했지만, 자유가 통제되던 사회주의국가였단다. 사할린에 도착한 이들은 그런 제한에 낯설고 낙후된 시설에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가족들을 만난다는 희망 하나로 기쁘고 들떴단다. 이철환처럼 안타깝게 만나려고 했던 가족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도 있었지만그래도 사할린에서 지낸 가족들의 흔적과 그를 기억하는 다른 사할린 동포들과 만남을 통해 아쉬움을 털 수 있었단다. 이철환은 이문근이 남긴 일기장과 유품을 통해 이문근을 만났단다.

소설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단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아빠도 사할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 사실을 알지 못했단다. 이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보다 지금은 또 한 세대 이상 흘렀으니, 그 후손들은 러시아 사람들이 다 되었지만,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은 아직도 우리말을 하고 우리 풍속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구나. 그들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오늘 편지는 이만 마치련다.


PS:

책의 첫 문장: 1975 5월 얼어붙었던 대지가 풀리고 수목에는 나뭇잎이 파릇파릇 돋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비행기는 망망대해의 바다 위를 전속력으로 날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9)

무릇 사람의 형체는 긴 것이 짧은 것만 못하고

큰 것이 작은 것만 못하며 살찐 것이 여윈 것만 못하다.

사람의 피부색은 흰 것이 검은 것만 못하며

색이 엷은 것은 진한 것만 못하다.

살찐 사람은 습기가 많고 여윈 사람은 화()가 많다.

피부가 너무 흰 것은 폐의 기가 허한 것이며

검은 것은 신장의 기가 넉넉한 것이다.

이렇게 형체와 색이 달고 오장육부도 다르니,

비록 겉으로 보이는 증상이 같을지라도

사람에 따라 치료법은 확연히 다르게 된다.


(31)

부자는 몸이 편하되 마음은 불편하고

부자가 아닌 사람은 몸은 고달프되 마음은 편하네

어찌 같은 약을 쓸 수 있겠는가.

높은 곳은 건조하고 낮은 곳은 습하고 기압과 음식이 다르니

달리 써야 하지 않겠는가.


(90)

봄은 간장,

여름은 심장,

가을은 폐,

겨울은 신장의

기운이 강하다.


(92)

음식물에 넣어서 맛을 내는 것이 양념이다.

양념이라는 말은 약념(藥念)에서 나왔다.

약처럼 생각하고 음식에 첨가하라는 뜻이다.

양념으로 음식에 넣는 파, 마늘, 생강, 고추 등이 모두 약이다.

모두 따뜻한 성질이다.


(133)

네 병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먼저 네 마음을 다스려라.”

<동의보감>의 모든 가르침은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신부님들은 결혼을 버리고 스님들은 세속을 버릴까.

의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음을 비우고 좋은 것만 먹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바른 생활을 하면

누가 병에 걸리겠는가.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의학은

병든 사람에게 위안이 된다.

그래도 마음 다스리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

온갖 나쁜 짓은 다 해놓고 의사와 약을 돈으로 사는 것은

가장 나쁜 일이다. 그런 일은 나에게 해가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나아가 자연에도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35)

모든 병은

마음에서부터 온다.

환자가 마음을

바르게 하고

걱정, 공상, 불평을

모두 버리도록

치료해야 한다.

이것이 의사의 몫이다.


(201)

생각이 많으면 집중으로 못하고

욕심이 많으면 판단이 어둡고

일이 많으면 몸이 피곤해지고

말이 많으면 기가 빠지고

웃음이 많으면 마음이 흩어지고 오장이 상하며

즐거움이 많으면 감정이 어지럽게 뒤섞이고

성을 많이 내면 맥이 진정되지 않고

너무 좋아하면 이치를 따지지 못하고

미워하는 것이 많으면

즐거움이 없어진다.


(264-265)

목화토금수는 상생(相生)의 순서다.

나무()를 때서 불()를 만들고

()이 타고 나면 흙()이 생기고

() 속에서 쇠()를 캐고

() 표면에 물()이 생기고

이 물()을 주면 나무()가 잘 자란다.

반면 목토수화금은 상극(相克)의 순서다.

나무()는 흙()을 뚫고 들어간다.

()을 쌓아 물()을 막는다.

()은 불()을 끄고

()은 쇠()를 녹인다.

()는 나무()를 자른다.

모든 인간사와 자연사에 있어 상생과 상극은 매우 중요한 관계다.


(420)

어른들은 휴일이 있는데 청소년들은 왜 휴일이 없는가?

왜 없어요? 토일은 학교에 안 가는데요.

학교에 안 가지만 학원에는 가야 하지 않은가

쉬지 못하는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기 어렵다.

토일은 공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네.

공부시키는 학부형은 잡아가든지 벌금을 많이 물게 해야 한다네.


(422)

성내면 기가 거슬러 오르는데

심해지면 피를 토하고 설사한다.

기뻐하면 기가 조화롭게 되고 잘 통해서 느슨해진다.

슬퍼하면 상초(上焦)가 막히고 기운이 흩어지지 못해서

열이 안에서 생기기 때문에 기가 사그러진다.

두려워하면 정이 도망가고 상초가 막혀

기가 아래로 돌아가서 하초가 꽉 차므로 기가 흐르지 못한다.

추우면 피부가 오그라들어 기가 흘러 다니지 못하니 모아지고

열이 나면 피부가 열리고 땀이 나기 때문에 기가 빠져나간다.

놀라면 마음이 기댈 곳이 없고

정신이 마음이 기댈 곳이 없고

정신이 안정되지 않아 기가 어지러워진다.

피로하면 숨을 헐떡이고 땀이 나서 기가 닳고

생각을 많이 하면 기가 돌아다니지 못하고

한곳에 머물러 기가 맺힌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1-08-14 22: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서가 동의보감 키워드 컬렉션에서 한참 서성이다 그냥왔는데 이책은 못보았네요^^담아 놓겠습니다

bookholic 2021-08-15 07:12   좋아요 0 | URL
핵심만 정리해서 유머와 함께 만화로 잘 그려주셨어요~~^^
그래서 더 머릿속에 가슴속에~~

scott 2021-08-14 22: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발췌 문장만 읽어도 인생 꿀팁으로 새겨야겠네요 북홀릭님 주말 멋지게 보내세요

bookholic 2021-08-15 07:14   좋아요 1 | URL
읽고 적고 했으니, 실천을 잘 해야하는데 쉽지 않아요.. 마음 다스리고 비우는 것...ㅠㅠ
soctt님도 광복절 연휴, 좋은 책과 좋은 음악과 즐겁게 보내세요~~^^

mini74 2021-08-14 22: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비우고 좋은 것만 먹는게 참 힘든거 같아요. 지금도 쫀드기 먹고 있는 일인 ㅠㅠ 아이들과 즐거운 휴일보내세요 *^^*

bookholic 2021-08-15 07:15   좋아요 2 | URL
˝어떤 것이든 맛있게 먹으면 보약˝이라는 말도 저 책에 있었어요~~
쫀드기도 맛있게 먹으면 보약~~ㅎ
mini74님도 쫀드기와 책과 식구들 모두와 즐거운 광복절 연휴 되시길...^^
 
사할린 2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사할린> 2권을 해줄게. 일제시대 사할린은 일본말인 가라후토로 알려져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가끔 가라후토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할린과 같은 지명이라고 생각하면 돼. 해방은 되었지만, 나라꼴은 가장 최악의 경우로 흘러갔단다. 해방이 되고 누가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남과 북이 갈리고 왕래도 점점 어려워졌어. 주인공 이문근은 최숙경을 찾기 위해 최숙경이 되돌아 올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 어느덧 그의 나이 서른 다섯 살. 부모님뿐만 아니라, 절친 강화중의 계속된 설득으로 결국 강화중의 동생 복희와 결혼하기로 했어. 그래도 생사를 모르는 최숙경이 있는데, 더 기다려야 했다고 봐.. 10년도 안되었는데

결혼 전 속죄라도 하듯 최숙경의 친정에 처음으로 인사 드리러 갔단다. 이문근과 결혼을 끝내 반대했었잖아. 그래서 한번도 찾아 뵙지 못한 장인어른과 장모님그 분들께 최숙경의 소식을 알리고 잘못을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만의 하나 최숙경이 친정이 있는 개성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하지만 그의 바램은 바램일 뿐이었어. 최숙경의 친정도 최악이었단다. 숙경의 부모님은 몇 년 전에 전염병으로 돌아가셨고, 부잣집이었던 가세도 많이 기울었고, 숙경의 동생들은 일하러 나가고 집은 숙경의 할머니 혼자 지키고 계셨단다. 문근은 차마 숙경의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숙경의 집을 떠났단다.

….

다시 집으로 돌아온 문근. 어느 날 보도연맹에 가입하라고 연락이 왔어. 보도연맹이 무엇인지 짧게 설명한다면, 과거에 좌익이었지만 지금은 전향한 사람들을 증명하기 위해 가입하는 단체였어.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 때 좌익으로 몰리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것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고발로 반강제적으로 가입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어. 문근도 그런 사례였단다. 가입을 거부한다면 자신은 좌익이었고 전향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거든. 그런데 문근은 좌익도 우익도 아니었고, 자신은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했어. 도대체 누가 문근을 리스트에 올리게 했을까. 아마 척을 두고 있었던 (1권에서 이야기했던) 그 초등학교 교장이었었을 거야. 문근은 고민 끝에 가입을 거부하는 것보다 가입하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 같아서 가입했단다. 절친이자 학교 동료 선생인 강화중도 똑 같은 입장이었고, 그도 가입을 했어. 강화중의 여동생 복희와 결혼을 얼마 앞둔 1950 6월 하순정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단다.

1.

전쟁. 북한에서 결국 전쟁을 일으켜 남으로 밀고 내려온 것이야. 해방 5년도 안되어 우리나라는 역사상 최악의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단다. 어느 날 강화중이 찾아와 이상한 이야기를 했어. 우리나라 경찰들이 보도 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을 놀래 끌고가 총살시킨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좌익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입한 단체인데하지만, 어떤 흉악한 놈의 결정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이었단다. 실제로도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

이문근도 그날 밤 집을 떠나 일단 피하려고 했단다. 바로 그날 경찰들이 찾아올 줄 꿈에도 몰랐지. 옷도 챙겨 입지도 못하고 경찰서로 끌려간 이문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끌려와 있었어. 문근은 도망갈 틈을 보았지만 쉽지 않았어. 몇 명 도망가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총에 맞고 죽었단다. 그들이 끌려간 곳은 어느 산골짜기그들 앞엔 깊이 파인 구덩이가 있었어. 수십 명씩 총알세례를 받고 죽었단다. 얼마나 억울할까. 하라는 대로 하고, 오라는 대로 왔을 뿐인데, 가족들한테 연락도 못하고 항변 한번 못하고 죽어야 하니까 말이야. 문근은 그 총알 세례에 정신을 잃고 죽은 줄 알았어. 하지만 기적적으로 그는 살아났단다. 그 총알 세례가 문근을 피해갔던 거야. 이렇게 소설뿐만 아니라 실제 그런 무서운 경험을 했던 사람들 중에 이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있었단다. 정말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로구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문근은 무조건 도망을 갔단다. 어떤 절에 들어가서 스님의 도움으로 승복을 입고 승려 행세를 하기도 하고, 미군을 만나 한동안 미군 통역으로 일하고 하고, 인민군 포로가 되었다가 우연히 처남 친구를 만나기도 했어. 그 처남 친구는 이문근의 사연을 듣고 허가증을 주었어. 이문근이 최숙경을 찾기 위해 사할린을 가기 위해 북쪽으로 가겠다고 했었거든. 그의 신분을 보장해는 그런 허가증이었어. 이문근은 그렇게 북으로 가서 함경도 땅까지 갔지만 그곳에서 사할린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어.

방법으로 찾아보려고 평양으로 왔단다. 평양에서 우연히 경성사범학교의 동창과 문근의 친척 형님인 준근을 만났어. 하지만 그들도 사할린으로 가는 방법을 잘 몰랐어. 그나마 가장 좋은 방법이 일본을 통해서 가는 방법이라고 해서, 문근은 다시 부산까지 내려와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단다. 부산으로 가면서도 그는 고향집에는 들르지 않았어. 그는 이미 보도연맹 사건으로 죽은 것으로 되어 있고, 살아 왔다면 다시 끌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야.

2.

문근이 이렇게 동분서주하고 있는 동안 최숙경은 1951년 집에 돌아왔단다. ,,, 엇갈리는 운명문근이 조금만 더 똑똑해서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고향집에 밤에 몰래 다녀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집에 돌아온 최숙경을 기다리고 있던 소식은 문근의 사망 소식이었어. 그렇게 힘들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 집에 돌아온 이유는 문근이었는데, 그가 죽고 없다니삶의 의미가 사라졌단다. 최숙경은 자살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기도 했어. 남은 인생 아무 의미도 없이 살다가 1971년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했단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불쌍한 삶을 살았지만, 아빠가 생각하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구나.

3.

이젠 사할린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해방 후에도 6만명의 조선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고, 해방이 되고 5~6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5만명 이상이 그곳에 살고 있었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결국 그곳에서 정착할 수밖에 없었어. 그들은 그곳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았단다.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최악이었어. 전쟁이라니, 같은 민족끼리 전쟁이라니.. 완전히 미쳤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을 거야.

===========================

(225)

특히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이야기는 그들 모두 남조선 출신이지마는 남조선 당국에 대하여 심한 욕을 퍼부었다. 6만 명 가까운 조선 사람들을 이 사할린에 팽개쳐 둔 채 전쟁을 일으켜 북침을 하다니, 조국의 통일도 중요하지만 조국이 불행했던 시절에 외지에 끌려나와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구해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전쟁 놀음이나 벌이다니! 해방 전에는 왜놈들로부터 갖은 구박과 수모를 당했더니, 해방이 되자 로스케 놈들이 건너와, 들어온 놈이 동네 팔아먹는다고 오래전부터 살아온 조선 사람들을 얼마나 천대하고 멸시했는가. 왜놈들이 조선을 조센징이라고 멸시했듯이 이놈들도 조선 사람들에 대하여, 까레이 혹은 까레스키, 하면서 천대와 구박을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최해술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젊은 허남보 같은 사람도 울분과 슬픔으로 절로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지면서 눈물까지 고였다.

특히 조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남조선에 대하여 적의를 품게 된 이유는 북조선 사람들의 입김과, 그 입김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 소련 당국의 영향이 무엇보다도 컸다. 남쪽에서 불법 북침을 했다는 것도 북조선에게 전해진 소리였다.

===========================

그들이 사할린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상한 사람이 한 명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조선 사람 한 사람이 사할린에 왔다는 거야. 그래, 이문근이 일본에 갔다가 선박회사에 취업한 후 끝내 사할린에 도착한 거야. 사할린에 와서 문근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아내 최숙경을 찾아보았어. 최숙경을 아는 사람들도 만났어. 1권에서도 나왔던 최해술, 박판도이 문근에게 숙경의 소식을 알려주었어.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말이야. 힘들게 왔지만….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방법은 쉽지 않았어. 그는 일단 사할린에 있으면서 돌아갈 길을 알아보기로 했어.

최해술, 박판도 등 사할린에 정착한 이들은 사할린 조선 민족 학교를 세우기로 했는데, 이문근은 이 일에 많은 도움을 주었단다. 그렇게 사할린에 있으면서, 이문근은 조선 귀국을 위해 소련 정부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방법을 찾았지만, 여기서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어.

..

일본 정부는 사할린에 억류된 일본인들의 국내 귀환을 위해 소련 정부와 협상하기도 했어. 여기에 기대를 하고 일본 정부에 조선인 귀환도 요청했지만, 매몰찬 답변만 돌아왔단다. 이제 너희들 정부가 있으니 그쪽에서 알아서 알 것이라고 말이야. 어느덧 시간은 흘러 1960년에 들어섰단다.

===========================

(340)

일본에 있는 사할린 억류 귀환 한국인회에서는 혼신의 힘을 다쏟아 일본 정부에 재사할린 조선인의 귀환을 교섭했지만 일본 정부 당국자의 변명을 이러했다.

당신들의 고충이나 간절한 희망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이 일은 정부가 수립되어 당당한 독립국이 된 당신네들의 나라 한국정부에서 맡아 할 일이거나 한국 국민 전체가 나설 일이 아니겠소. 당신들의 소망이 이처럼 절절한데 당신네들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가 왜 말 한 마디 없겠소.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일한 간에 관계가 좀 더 본궤도에 올라 정상 가동되면 당신들의 희망은 보가 전향적으로 고려될 것이오.”

===========================

이렇게 <사할린> 2권의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소설이 소설로 끝이 아니고 실제 일어난 일들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안타깝고 무능했던 옛 우리 정부를 생각하니 참 답답했단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3권의 이야기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1949년 겨울방학, 문근은 화중과 함께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개성으로 가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조선동포들이 연명으로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에게 보낸 탄원서도 헛수고, 김형개가 애지중지 키운 딸로, 자신의 명예는 물론 조선 민족의 자존심과 영광까지를 생각하던 김형개의 꿈도 헛수고, 늦게야 아내를 얻어 인생살이의 또 다른 행복을 맛보겠다던 정상봉의 꿈도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북조선 편을 드는 조총련에도 가입하지 않았네. 사실은 무슨 주의, 무슨 주의 그런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거네. 미국과 소련이 없으면 자본주의도 없고 공산주의도 없는 거네. 우리에게는 무슨 주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살아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 아니겠는가. 미국의 자본주의는 죄가 얼마나 많으며, 소련의 공산주의 또한 죄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통일이 돼도 나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그런 통일이 돼야 한다고 보네. 자네 생각은 어떤까?" - P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할린 1
이규정 지음 / 산지니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이번에 읽은 <사할린( 3)>이라는 책은 몇 년 전에 녹색평론에서 추천하여 알게 된 책이란다. 슬픈 역사가 가득 담긴 일제 시대 사할린으로 끌려가서 돌아 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헤어져 끝내 만나지 못한 부부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고 했어. 아빠가 잘 알지 못하는 역사의 한 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 소설이라고 하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읽고 싶은 목록에 추가했다가 이번에서야 읽은 것이란다.

일제 시대 강제 징용이라고 하면 일본 땅이랑, 동남아와 중국 등으로 끌려가 전쟁과 위안부로 고생하신 것만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할린 땅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 지금이야 러시아 땅이지만, 당시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사할린의 남쪽 지역을 차지하였고, 그곳에는 많은 탄광에 끌려가 노예처럼 일했던 우리 조상들이 있었던 것이야. 해방과 동시에 그들을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그 수가 수 만 명에 이루고, 그들의 후예들이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단다. 이 안타까운 일들이 100년도 안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의 이야기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있구나.

지은이 이규정이라는 분은 대학교수이면서 여러 책을 쓰신 작가이면서,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민주화에도 힘쓰신 분이란다. 그가 1991년 사할린 강제 징용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로 마음먹고, 직접 사할린에 취재를 하고, 그 바탕으로 1996 <먼 땅 가까운 하늘>이라는 소설을 출간하셨단다. 그리고 20년이 흐르고 재출간한 것이 바로 <사할린>이란다. 머리말에 쓰신 이규정 님의 글을 읽어보니, 이런 역사관을 가지신 분이라면 존경할만하다는 생각을 했단다.

=========================

(5)

부산의 일본 영사관 앞에 앉힌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지금도 일본과는 껄끄러운 관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과 한 마디 없이, 10억 엔을 주었으니 이제 아무 소리 말고 소녀상도 철거하라는 일본 당국자를 텔레비전에서 볼 때마다 그 낯짝에 오물을 뒤집어씌우고 싶습니다. 2015년 말에 일본 당국자와 서툰 협상을 벌여 일본에 꼬투리를 잡힌 등신 같은 우리 정부 당국자가 한없이 원망스럽습니다. 우리 정부의 총체적 능력의 한계를 보는 듯한 비애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무능하면 그것은 국가의 위상 추락은 물론, 국가 존망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대한제국 정부의 무능이 결국 나라를 망친 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위안부 문제 협상은 반드시 다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

이 책을 통해 이규정이라는 분을 처음 알게 되어 이규정이라는 분을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안타깝게도 2018년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뒤늦게 이규정 님의 명복을 빌어보았단다.

1.

모두 세 권으로 이루어진 <사할린>. 그 중에 오늘은 1권의 이야기를 해줄게.

일제 시대 경성사범을 다니던 이문근은 인근에 있는 여자 고등학교에 다니는 최숙경이라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대시를 했고, 최숙경도 이문근을 마음에 들어 했어. 이문근과 최숙경은 결혼을 약속했지만, 개성의 잘나가는 부잣집이었던 최숙경의 부모님이 반대를 했단다. 시골 출신 이문근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지. 최숙경은 부모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이문근과 함께 절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고, 이문근의 시골집에 와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단다. 그런데, 이문근이 담을 쌓는 일을 하다가 담이 무너지면서 중병에 걸리고 말았어. 이문근의 병 치료를 위해서 돈이 필요했는데, 조선 땅에서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자원하여 사할린으로 향했단다. 그때가 1943년이었다.

당시 사할린은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도 있었지만, 최숙경처럼 일제시대 말기에 혹해서 짧은 기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원해서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는구나. 당시 고등학교까지 다닐 만큼 배운 사람이고, 똑똑했던 최숙경인데 사할린을 가더라도 좀더 알아보고 갈 일이지…. 비극의 서막은 그렇게 시작했단다.

사할린에 도착한 숙경은 비행장에서 일하다가 탄광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탄광 노동자의 밥 짓는 일을 했단다. 약속한 돈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으면서 말이야. 그렇다고 돌아갈 수 없는 일.. 그 돈이라도 이문근의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어렵게 생활했단다. 조금만 참으로 다시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최숙경이 보내준 돈은 시댁 생활의 밑천이 되었고, 이문근도 건강을 되찾아 다시 학교에 복학할 수 있게 되었어.

사할린에는 많은 탄광들이 있었고, 각 탄광에는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있었어. 그들은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끌려오기도 하고, 밭에서 일하다 끌려오기도 했어. 그렇게 끌려온 그들은 온갖 착취를 당하며 살았단다. 일본인 관리인들에게 폭행당하여 죽기도 하고, 의료 시설이 없어 병에 걸려 제대로 치료 받지도 못하여 죽기도 하고, 탄광이 무너져 땅속에 갇혀 죽기도 했단다.

….

지은이가 이 소설을 쓰기 전 직접 취재를 하고 쓰셨다고 하니, 이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이 이름은 다르겠지만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구나. 만약 아빠가 그렇게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도 하고몇몇 등장인물들을 소개해줄게.

김형개.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에 가는 길에 잡혀서 집에 연락도 하지 못한 채 끌려온 곳이 사할린이었단다. 사할린에 와서야 편지로 집에 소식을 알렸어. 고향에 두고 온 애인 점옥이에게 알리지 못했는데, 그 점옥이 또한 정신대로 끌려갔다고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김상문, 김상식, 김상주 삼형제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다른 이들보다 빠른 1933년에 사할린 우글레고르스크에 정착했어. 우애가 깊은 그들은 사할린에서 함바식당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단다. 그들은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삼형제의 아이들 중에 가장 똑똑했던 김상주의 아들 종규를 도쿄로 유학 보내기로 결정했단다. 그래서 김상주 식구들은 도쿄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들 형제와 마지막이었어. 해방 이후 김상주 식구들은 어렵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사할린에 있는 가족들은 돌아오지 못했거든

2.

드디어 해방이 되었단다. 사할린에도 그 소식이 전해졌어. 그리고 그 소식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진 일본 사람들. 탄광 노동자들은 고향에 돌아갈 걱정보다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 걱정이 앞선단다. 그리고 그들의 귀향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일본은 지네 나라 챙긴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단다. 언제는 한 국민이라고 하더만, 이제 와서는 비일본인 취급이었어. 하기야 자신의 국민이라면 그렇게 혹사시킬 수가 없지.

=========================

(263)

이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최초의 각서(SCAPIN 822)에 이미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구일본인 점령지의 일본인 귀환 및 일본으로부터의 비일본 귀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및 동국의 지배하에 있는 영토로부터의 일본인 포로 및 일반 일본인의 귀환과 더불어 북위 38도 이북의 북조선 재일 조선인의 귀환에 관하여 본 협정을 체결한다.”

이러한 협정을 보면 사할린에 있는 조선인의 귀환은 처음부터 귀환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게다가 소련 지배하의 사할인 여러 항구에서 일본 귀국선에 승선시키는 일체의 권한과 책임은 소련관헌에게 있었다. 일본의 강제연행에 의해 사할린까지 끌려온 수많은 조선인들은 당연히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조선에까지 귀국시켜야 함에도 일본은 이를 깨끗이 외면했다. 패전 전까지만 해도 조선인을 법적으로는 일본인과 같이 보았고, 국적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었다. 그것뿐인가. 종전 직후 사할린의 조선인들은 연합군 총사령부로부터 일본 국적을 가진 비일본인으로 취급되어 전범자로 처벌된 사례까지 있었다. 그러니 당시의 조선인은 이리 걸면 벌받아야 할 일본인이었고, 저리 걸면 절대로 귀국 대열에 끼지도 못하는 특수 일본인이었다.

=========================

그렇다고 해방 조국이 그들을 챙길까. 해방은 했다고 하지만, 어수선한 국내 분위기에 남북으로 나뉘어지려는 혼란멀리 사할린의 사람들을 챙길 이성들이 없었어. 그렇다고 러시아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줄까? 그들 눈에는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다 이방인. 결국 사할린 사람들은 각자 도생할 수 밖에 없었단다. 최숙경도 함께 있던 말숙과 함께 사할린을 떠났단다. 최숙경은 일단 일본으로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어. 다행히 일본인들 틈에서 일본행 배를 탈 수 있었단다.

해방이 되고 여러 탄광들에서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났단다. 어떤 탄광에서는 해방 소식을 먼저 접한 일본 경찰들이 조선인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모두 총살해 버리는 사건도 있었단다. 이 사건은 극적으로 살아난 최해술이라는 사람에 의해 알려졌어. 최해술은 민족운동가인 아버지가 경찰에 잡힌 다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징용을 자원해서 사할린에 왔던 것인데, 이렇게 극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 거야. 하지만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할린에 발이 묶이고 말았단다. 또 다른 탄광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뻔했는데, 그곳에서는 다행히 착한 일본인이 한 명 있었어. 이시무라라는 사람으로 전쟁 전에 천주교 신부였어. 이시무라는 평상시 알고 지내던 조선인 천주교 신자인 정상봉과 김형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려주었고, 정상봉과 김형개가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단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사할린을 벗어날 수 있을까.

3.

조선에 있는 최숙경의 남편 이문근의 이야기를 해줄게. 이문근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했단다. 해방이 된 이후 최숙경이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걸고 있었어. 그런데 오히려 해방이 된 이후 최숙경의 소식이 끊겼어. 그리고 돌아가는 국내 정세가 답답했단다. 나라는  둘로 쪼개졌지. 자신이 존경했던 민족주의자들이 하나 둘 암살당했지일제시대 그 모진 세상도 이겨내신 분들인데 말이야. 해방된 지 이삼 년이 되어도 최숙경의 소식이 없자, 부모들은 최숙경을 잊고 재혼하라고 성화였단다. 하지만 이문근에게 최숙경이 어떤 사람인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고, 자신의 병을 고치겠다고 사할린까지 자원해서 간 사람 아닌가.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끝내 혼자 살더라도 끝까지 기다려야지. 이문근은 동료 선생님 중에 자신과 뜻이 같고 마음도 통하는 강화중이라는 선생님이 있었어. 이문근과 강화중은 교장 선생님한테 찍혀서 신변의 위협을 받는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별 이유 없이 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했단다. 경고이자 협박이었지나라와 학교 교장이 하는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르라고 말이야. 이문근은 과연 최숙경을 만날 수 있을까. 2권에서 더 이야기해줄게.

해방 정국을 배경으로 한 책을 읽다 보면, 자꾸 속상하고 화가 나더구나. 왜 피해국인 우리나라가 둘로 갈려야 했는가 말이야. , 억울하고 속상하고지금 억울하고 속상해도 과거가 바뀌지는 않지만, 그 때 잘려진 분단이 너무 오래가는구나. 오늘은 이만 할게.

PS:

책의 첫 문장: 이렇게 순 한문으로 된 포창문의 주인공 경주 최씨는 철환의 양모였다.

책의 끝 문장: 어디선가 컹컹컹 개 짖는 소리가 식은 밤공기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