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스탕달 신드롬이 뭔데요?

미술 감상에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빠지면 겪을 수 있다는 증상입니다. 감상에 너무 몰입하다가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는데 심하면 실신에 이르기도 한다고 해요. 실제로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다가 겪게 되면서 알려진 증상입니다. 요즘도 피렌체 여행객 중에는 이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32)

유럽인에게 후추는 그야말로 새로운 미각의 세계를 열어 주었습니다. 아예 맛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후추 없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 거죠. 그렇게 점점 유럽인들은 더 많은 후추를 낙타에 싣고 콘스탄티노플이나 알렉산드리아 같은 지중해 동쪽의 도시까지 가져와야 비로소 유럽의 상인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후추 값이 거의 금값이라고 할 정도였죠.


(95)

그런데 이 옷 색을 한번 보세요. 커피에 우유를 탄 색처럼 보이지 않나요? 여담입니다만 프란체스코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카푸친 수도회사람들이 입었던 옷이 카푸치노 커피색과 똑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유를 넣은 커피에 카푸치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106)

우리의 모든 꿈은 추진할 용기만 있으면 이뤄질 수 있다.

-       월트 디즈니


(159)

이성주의가 흑사병 때문에 나온다고요?

,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르네상스 때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건 상당 부분 흑사병이라는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화가가 해부학을 연구한 이유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하고 관련이 있었던 겁니다.


(199)

결국 르네상스의 핵심은 고대 문명의 부활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피렌체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자신감을 가질 만합니다. 고대를 부활시키려면 고대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어야 하겠죠. 피렌체는 그 어느 도시보다 고대의 전통이 강하게 이어져 내려오던 도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대의 전통이 도시에 각인되어 있었던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225)

물론 15세기부터는 메디치 가문이 정치권력을 점점 독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메디치 가문도 항상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실제로 메디치 가문은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면서 여러 번 추방당하기도 하죠. 피렌체 시민들의 정치적 자의식이 어느 도시국가보다도 강했기 때문에 시민 중심의 공화국 체제를 상당 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겁니다.

시민들이 지녔던 정치적 자의식은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272)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에서 실패로 걸어가는 것이 성공이다.

-       윈스턴 처칠


(293-294)

당시 인문학자이자 미술이론가였던 알베르티는 하늘 높이 솟구친 피렌체 대성당 돔이 토스카나의 모든 사람을 그늘로 덮을 듯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시기 피렌체 사람들에게 돔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알 것 같죠. 물론 과장처럼 들리기도 해요. 하지만 막상 피렌체에 가서 직접 이 돔과 마주하면 단순한 과장으로 들리지만은 않을 겁니다.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 30층 높이의 대성당이 우뚝 솟아올라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거대한 돔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하고, 가파르게 솟아오른 윤곽선은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318)

알베르티는 보통 특출 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다양한 방면에서 천재성을 드러냈기 때문에 르네상스 맨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르네상스 맨이라 다재다능한 천재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도 여러 방면으로 재주가 많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르네상스 맨이라고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먼저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시작은 알베르티였다고 봐야 합니다.


(362)

예술만큼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예술만큼 확실하게 세상과 이어주는 것도 없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443)

사실 레오나르도의 생애에서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습니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작업 기간이 한없이 길어지다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치게 완벽주의자였던 작가 개인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대작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줄 만한 아량을 가진 후원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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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25 2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너무 좋아오 *^^*

bookholic 2021-08-26 09:01   좋아요 2 | URL
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발췌하면서 새로움을 만났습니다..^^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더 기억을...~~ 즐거운 하루 되세요^^

scott 2021-08-25 2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 좋습니다

bookholic 2021-08-26 09:01   좋아요 2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시원한 하루 되십시오..^^
 
독립혁명가 김원봉
허영만 지음 / 가디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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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약산 김원봉을 알게 된 이후, 가장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중에 한 사람으로 늘 손꼽고 있단다. 남북으로 갈려서 학교에서는 반 쪽짜리 역사를 배웠던 아빠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김원봉을 배우지 않았단다. 몇 번 너희들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해방 후 김원봉이 북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말이야. 김원봉이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북으로 넘어간 것이라면 이해라도 하지, 남한에서 생명 위협을 느끼고, 일제 시대 우리 독립운동가를 고문했던 노덕술한테 고문을 당하는 치욕을 당하자 남한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북으로 간 것이거든…. 김원봉이 북으로 간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위와 같은 이유였던 것 같았어.

이런 이유로 반공정신 투철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서는 김원봉을 볼 수 없었단다. 요즘 역사 교과서에는 김원봉이 나오는지 궁금하긴 하구나. 너희들이 좀더 크면 한국 근현대사를 학교에서 배울 텐데, 그때 너희들 교과서를 봐야겠구나.

1.

아빠는 김원봉이라는 분을 알게 된 이후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었어. 그래서 김원봉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기도 했고 말이야. 그 책들을 읽고 나서 너희들에게도 몇 번 이야기를 해 주어서, 오늘 또 김원봉의 삶과 그가 이끌었던 의열단의 이야기는 생략할게.

이번에는 좀 특별한 책으로 김원봉을 만났단다. 만화로 엮은 김원봉. 지은이가 무려 허영만. 아빠가 만화를 즐겨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허영만 님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대표 만화가라고 할 수 있단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 웹툰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만화가들이 있지만, 웹툰이 생기기 이전부터 허영만은 많은 작품을 통해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던 만화가란다. 아빠도 예전에 허영만 님의 만화를 여러 편 본 적이 있단다. 비교적 최근에 본 것은 <커피 한 잔 할까요?> <허허 동의보감>라는 책이었어. <커피 한 잔 할까요?>는 모두 8권까지 있는데, 아빠가 읽을 당시에는 5권까지만 출간되어 5권까지만 읽었는데 커피에 관한 상식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구나. 아직 읽지 않은 6~8권도 읽어봐야겠구나. <허허 동의보감>은 조만간에 이야기해줄게.

그런 허영만 님이 약산 김원봉을 그렸다? 호기심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구나. 기회 되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우리 막둥이가 아빠한테 김원봉 아냐고 물어봤잖아. 어디서 김원봉을 듣고 물어본 건지 아빠가 까먹었지만, 김원봉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어린이들을 위한 김원봉 위인전이나 학습만화를 검색해 보다가, 굳이 그런 책 말고 허영만 님이 쓴 <독립혁명가 김원봉>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이 책을 구입했단다.

그리고 아빠가 먼저 읽어 보았어. 예전에 읽은 김원봉 평전들을 읽을 때, 머릿속에 상상했던 장면들을 멋진 만화로 잘 그려 놓았더구나. 김원봉뿐만 아니라 의열단원들의 활약상들도 나와 있었어. 만화로 읽다 보니 흡입력도 좋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가니 영화를 보는 듯 하기도 했단다. 물론 만화로 읽다 보니 일부 자세한 부분은 빠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김원봉 전기를 읽어보면 메워지겠다 싶더구나. 만화를 먼저 읽고, 나중에 전기나 평전을 읽어도 좋고, 아빠처럼 전기나 평전을 먼저 읽고, 만화를 읽어도 나쁘지 않는 것 같았어.

2.

다 읽고 너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려고 하니, 살짝 걱정은 되더구나. 일본이 우리 조상에게 행한 악한 짓이 사진으로 삽입되어 있거든. 너희들이 무서운 것을 좀 무서워들 하셔서하지만 그것도 다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이란다. 그런 일들이 불과 100년도 안된 과거에 일어났던 것이야. 일본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데,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나더구나. 더 짜증이 나는 것은 그런 일본의 망언을 따라 하는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있다는 것, 그러면서 외교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며 정부를 욕하는 인간들

이럴수록 잊혀져 가는 독립운동가들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구나. , 이 만화책 한 번 읽어보렴

PS:

책의 첫 문장: 1905 11 17(약산 8)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한 을사늑약 체결

책의 끝 문장: 황포군관학교 교관을 거쳐 광주봉기에도 참가했던 그는 북한 정권이 수립되면서 부수상 겸 민족보위상으로 2인자의 위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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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22 07: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립운동 관련 영화에 김원봉님이 자주 등장했던거 같은데 이렇게 북홀릭님 리뷰로 보니 반갑네요. 궁금해집니다 ^^

bookholic 2021-08-22 08:36   좋아요 4 | URL
이원규 님이 쓰신 책을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레삭매냐 2021-08-22 12: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원규 작가의 성함이 제 절친
과 같아서 ㅋㅋ

약산 김원봉 선생의 전기를
한 번 읽어 보고 싶네요.

bookholic 2021-08-22 22:26   좋아요 2 | URL
그 친구분한테도 이원규 님이 쓰신 책들을 추천하심이...^^

붕붕툐툐 2021-08-22 1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잔인한 건 못 봐서-특히 실제 상황이라 상상하면 으~~~ - 댓글에 소개해 주신 책으로 읽어봐야겠습니다!

bookholic 2021-08-22 22:27   좋아요 3 | URL
이원규 님의 책이 소설적인 요소도 좀 있어요.. 감안하시고요~~^^

scott 2021-08-22 12: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주말 북홀릭님 올리신 책들 쓸어 담귀 @ㅅ@

bookholic 2021-08-22 22:28   좋아요 3 | URL
주말이 휘리릭 가버렸어요... ㅠㅠ

행복한책읽기 2021-08-22 14: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는 만화를 대출하겠슴다. 저희딸 학습 만화광이시라. 근데 북홀릭님 아빠세요?? 프로필 보고 당근 어여쁜 여성이라 여겼건만^^;;;;

bookholic 2021-08-22 22:31   좋아요 4 | URL
따님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프로필을 바꿔야 하나요? 엄마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mini74 2021-08-23 1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약산 김원봉 ! 오래전 밀양에서 폐허같은 김원봉 생가를 보며 슬펐는데 요즘은 그래도 나름 잘해놨더라고요. 하기야 몇년전까지도 친일파 음악가를 기리는 음악제가 열리던 곳이었으니까요 ㅠㅠ 그러고보니 저도 김원봉은 배우질 못했어요. 요즘 아이들은 배워요 *^^* 다행이지요. 독립운동계의 최고봉 쓰리봉이 있으니 ~ 하면서 배웠다고 하네요.

bookholic 2021-08-24 10:38   좋아요 1 | URL
밀양 근처에 가게 되면 한번 방문해야겠어요..
쓰리봉이라...^^ ㅎㅎ 재미있게 공부하네요~~
 
안녕, 드뷔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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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너희들이 피아노를 배운 이후로, 가끔 피아노 음악을 같이 듣기도 하잖아. 많은 음악가들 중에 우리 식구 모두가 좋아하는 음악가 라흐마니노프. 문득 그 사람의 음악이 아닌, 그 사람의 삶이 궁금하더구나. 그래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악보가 아닌 라흐마니노프 전기나 평전 등 라흐마니노프 그 사람 자체와 삶에 관한 책을 읽어볼까 하고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해보았단다. ,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 중에 그런 책이 없더구나. 모차르트, 베토벤보다는 유명하지 않지만,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에 관한 책이 없다니원서를 찾아 읽을 수도 없고웹사이트 검색으로 만족해야 하나

그런데 라흐마니노프의 전기나 평전은 없지만, 제목에 라흐마니노프가 들어가 있는 소설은 하나 있었단다.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 삶을 소설로 쓴 것인가? 싶어 책 소개를 읽어봤더니 그런 건 아니더구나. 추리 소설이래.. ? 그리고 그 책은 나카야마 시치리라는 일본 작가 쓴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물의 하나라고 하더구나. 평점이 좋아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구나.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겠거니,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게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의 2권이라고 했어. 이왕 읽는 거, 1권부터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1권을 검색해봤고, 1권이 이번에 아빠가 읽은 <안녕, 드뷔시>라는 책이란다.

아빠가 알고 있는 노래는 달빛이 유일하지만, 드뷔시도 유명한 음악가잖아. 너희들도 드뷔시의 <달빛>을 좋아해서 가끔 유튜브에서 찾아서 들었고음악이라는 소재와 추리 소설과 만남이라이런 스타일의 소설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 그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꾸나.


1.

드뷔시의 달빛만 알았지. 드뷔시에 대한 사람도 잘 몰랐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의 음악은 프랑스 인상주의로 분류되고, 1862년에 태어나서 1918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많은 유명한 음악을 남겼지만, 아빠가 아는 음악은 달빛 하나.^^ 이 책에는 드뷔시 달빛에 대한 곡 해석 부분이 나오는데, 별 생각 없이 듣던 아빠도 그 글을 읽고, 그런 감정으로 드뷔시의 <달빛>을 다시 들어보았는데, 싸구려 귀에는 그냥 피아노 소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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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영롱한 음 하나에 달빛 한 줄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음이 빛이 되어 마음속에 비쳐 든다. 눈꺼풀이 절로 감기더니 이내 정경이 떠올라 또 한 번 놀랐다. 미사키 씨에 따르면 드뷔시는 음과 영상의 관계를 중시했다고 하던데, 정말이었다. 달빛이 호수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교교한 달빛 아래 한 쌍의 남녀가 한가로이 왈츠를 춘다. 시간마저 느릿느릿 흘러가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잔물결 위로 퇴락한 고성이 또렷이 떠오른다. 한 음이 끊어지기 전에 다음 음이 이어진다. 곡이 끝나자 나는 무척 후회했다. 왜 이런 곡을 그동안 허투루 들었을까. 선율이 아름답다는 생각은 했지만, 진지하게 들으면 이토록 상상력을 자극하는 곡이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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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바로 책 이야기를 해볼게. 주인공은 고즈키 하루카. 피아니스트가 꿈이 소녀로 예술학교도 입학했단다. 자수성가해서 큰 부자가 된 할아버지, 은행에 다니는 아버지, 가정 주부인 어머니, 백수인 겐조 삼촌 이렇게 함께 살고 있었단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사촌인 가타기리 루시아도 함께 살기 시작했어. 루시아는 아버지의 여동생의 딸 그러니까 하루카의 고종사촌이었어. 둘은 나이도 같아서 아주 친하게 지냈어. 루시아와 함께 살게 된 이유는 아주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단다. 2005년 인도네시아에는 아주 무서운 쓰나미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적이 있었어. 그 때 루시아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거야. 2005년이면 이 책이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2009년 기준으로 얼마 전의 일이었지. 이 소설은 2009년보다 더 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얼마 전에 무서운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루시아가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하루카의 부모는 루시아를 양녀를 들이려고 절차를 알아보고 있었고, 실제로도 루시아를 친딸처럼 생각했단다.

어느 날 별채에서 큰 불이 일어났어. 그곳은 할아버지의 작업실 겸 침실이 있었고, 하루카와 루시아도 별채의 또 다른 침실에서 자고 있었단다. 이 큰 불로 그만 할아버지와 루시아가 죽고 말았고, 하루카는 전신화상을 입은 채 간신히 살아났단다. 며칠째 정신을 잃고 있었고, 처음에는 말도 못했어. 얼굴도 화상으로 엉망이 되어서 얼굴의 3분의 1이상을 피부이식을 해야만 했어. 가족을 잃은 슬픔. 자신이 꿈인 피아니스트에 대한 좌절. 하루카는 잘 버텨나갈 수 있을까.


2.

그런 하루카를 자진해서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강사가 나타났단다. 미사키 요스케. 이 소설이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했잖아. 그 요스케가 드디어 나타났구나. 요스케는 하루카를 가르치던 학원 선생님의 후배이자 떠오르는 천재 피아니스트였어. 요스케는 피아노를 통해 하루카의 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단다.

갑부였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할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유산 분배가 있었단다. 유서에 적힌 대로 하루카가 1/2, 아버지가 1/4, 겐조 삼촌이 1/4이었고, 할아버지를 친절하게 돌봐주던 개인 간호사 미치코에도 적지 않은 돈을 남기셨단다. 미치코는 다른 식구들과도 친해서, 하루카의 병간호를 계속 해주기로 했단다. 할아버지의 유산 분배에 대해 겐조 삼촌은 자신의 것이 적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단다. 철 없는 삼촌이네.

그런데 얼마 뒤 집에서 하루카를 노리는 테러가 일어날 뻔했어. 일부러 계단의 미끄럼 방지를 떼어 놓아 하루카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는데, 요스케가 옆에 있다가 구해주었어. 요스케가 아니면 큰 일 날 뻔했어. 누가 일부러 계단의 미끄럼 방지를 떼어 놓았을까. 

요스케는 자신이 피아노를 잘 치는 것뿐만 아니라, 피아노도 잘 가르쳤단다. 아빠는 피아노를 못 치니 그가 소설 속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훌륭한 가르침인지 잘 모르겠지만, 읽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긴 하더구나. 피아노를 칠 줄 아는 너희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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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있지. 건반을 힘주어서 정확히 치고 싶은 나머지 손끝에 체중이 실리도록 의자를 높게 조절하거든. 그런데 건반의 무게는 고작 70그램이야. 지압하듯 센 힘이 필요 없어. 앉은 위치를 낮추면 자연히 등허리가 세워지고 근육을 곧게 펴서 잘못된 자세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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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 음이 연속해서 나면 드디어 연주의 기본 요소가 갖추어진 셈이야. 기본 요소는 세 가지인데 첫째 리듬, 둘째 음, 그리고 셋째 스타일. 리듬은 작품의 짜임새인 만큼 무조건 정확해야 할 것. 또 연속해서 내되 각각의 끝소리가 다음 소리와 붙어 버리면 안 돼. 리듬이 애매해지거든. 따라서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의 시간을 가늠할 필요가 있어.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의 시간은 오롯이 음절의 울림을 나타내는 셈이니까, 여기서도 너무 강하게 쳐서 울리지 않게 하는 건 마이너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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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스케의 가르침과 하루카의 노력은 결실을 맺기 시작했어. 학교 교장으로부터 콩쿨 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석해 보라고 했어. 학교 교장이 장애를 딛고 일어난 하루카를 다른 저의로 쿵쿨 대회을 제안한 것일 수도 있지만, 하루카는 나가겠다고 결심했어. 그렇게 하루카는 다시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되었단다.


3.

그런데 하루카 집의 비극은 끝이 아니었단다. 하루카의 엄마가 시장에 다녀오다가 낙상 사고로 그만 돌아가셨단다. 처음에는 단순 사고인 것 같았는데, 경찰은 이 사고를 할아버지의 화재 사고와 연관을 지어 조사했어.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사고도 누군가의 방화로 일어난 것일 수 있다면서요스케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단다.

사실 요스케는 평범한 피아니스트는 아니었단다. 요스케의 아버지는 유명한 검찰이었고, 요스케도 사법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하고 사법연수원까지 마쳤었어. 하지만 자신의 꿈인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그만 둔 것이지. 그런 요스케이니 어떤 사건에 대한 추리력이 있었던 것이란다. 그런 캐릭터이니 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야. 아무튼, 하루카의 어머니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고 사건이라면, 누가? 하루카에게 테러를 하려고 했던 사람? 아무래도 범인은 가족 중에 있다 보니, 용의선상에 가장 먼저 올라오는 이는 유산에 불만이 있던 겐조 삼촌. 하지만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이들은 가장 범인 같은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겐조 삼촌은 가장 먼저 리스트에서 지워버리겠지. 아빠처럼^^

….

하루카에 대한 테러도 더 일어났어. 하루카의 목발을 일부러 고장 나게 하거나, 누군가 도로로 하루카를 밀치는 일이 있었어. 다행히 그때마다 실제 테러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렇게 좋지 않은 일들이 연속이었지만 하루카는 그런 아픔과 슬픔을 잊지 위해서라도 피아노에 더욱 열심이었단다. 드디어 쿵쿨 대회. 예선에서는 쇼팽의 <에튀드> 10-2, 10-4를 연주하고, 본선에는 드뷔시의 <달빛> <아라베스크 1>을 연주하기로 했어. 이렇게 하루카가 피아노 쿵쿨을 준비하고 참가하는 동안 요스케는 계속 범인을 추적하여 드디어 범인을 밝혀낸단다. 그리고 하루카가 본선을 마치고 시상식을 기다릴 때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아무래도 사건의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피아노 연중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 말이야..


4.

이제부터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이어질 텐데, 스포일러가 싫다면 아래 글은 읽지 않아도 된단다. 자 그럼 강력한 스포일러를 이야기할게. 추리 소설의 범인은 늘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이가 범인이 되는 경우가 많잖아. 이 소설도 그 규칙에 맞았단다. 먼저 하루카에게 테러를 했던 이는 할아버지의 개인 간호사이자, 지금은 하루카를 돌보고 있는 미치코였단다. 왜냐고? 그 이유는 조금 있다가그러면 미치코가 엄마도 죽였냐고? 그건 아니야.

엄마를 죽인 것은 바로 루시아였단다. 뭐라고? 루시아는 죽었잖아. 사실 하루카는 하루카가 아니고 하루카의 사촌 루시아였던 것이란다. 화재가 일어난 날 둘은 잠옷을 서로 바꿔 입고 있었어.(전에도 가끔 이런 적이 있었거든) 화재가 일어나고 살아난 사람은 하루카의 잠옷을 입은 이였으니 다들 하루카인 줄 알았지. 얼굴과 머리도 화상으로 엉망으로 되었고, 루시아도 며칠 동안 정신을 잃고 말도 못했으니 말이야. 루시아는 정신이 들고 보니 자신이 하루카가 되어 있던 거야. 이미 얼굴에 피부 이식과 성형으로 하루카의 얼굴이 되어 있었고순간, 루시아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하루카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야.

그런 루시아를 처음 알아본 이가 미치코였어. 그래서 미치코는 루시아에게 테러를 가한 거야. 화재도 루시아가 낸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미치코는 돌아가신 하루카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했는데 그런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하니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 그런데 화재는 실재 사고였단다.

그리고 두 번째로 루시아를 알아본 것인 엄마였어. 비 오는 신사의 계단 위에서 우연히 마주친 엄마와 하루카, 아니 루시아엄마는 그 순간 루시아인 것을 알아보고, 둘은 서로 티격태격 하다고 우발적으로 루시아가 엄마를 밀쳤는데, 그만 계단이 높아서 떨어져 죽고 말았던 것이란다. 요스케는 이 사건의 전말을 하루카, 아니 루시아에게 모두 이야기해주었어.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라고 했고, 벌을 받고 난 다음에도 자신이 계속 피아노를 가르치겠다고 했단다. 피아노는 피아노이고, 사람은 사람이니까..

아빠도 루시아를 이해해 보려고 했단다. 어쩌다 보니 하루카가 되어 있었고, 우연히 엄마와 티격태격 하다가 실수로 엄마를 밀쳐서 죽게 만들었으니속으로 무천 힘들어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루시아는 콩쿨 시상식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겠다고 결심했단다. 1등을 한 그 시상식에서 말이야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클래식 음악과 추리 소설의 콜라보나쁘지 않았단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피아노 연주에 관한 글도 나오고 음악에 대한 소소한 에피소드도 나오고 말이야. 예를 들어 쇼팽의 유명한 피아노곡 <혁명>이 어떤 사연으로 만들었는지 나왔단다. 그 이야기로 오늘 편지는 마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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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쇼팽은 1831년 파리로 향하던 길에 고국인 폴란드 바르샤바가 러시아군에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짓밟힌 고향과 남겨 둔 가족. 이 곡(혁명)은 그때의 실망과 분노를 즉흥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곡 전반에 걸쳐 쇼팽의 분노가 가득 차 있다.

곡은 왼손에서 시작해 낮은 음역부터 음계적으로 진행하고 내림나장조로 바뀐다. 도입부의 거친 화음은 몇 번이나 형태를 바꿔 나타나고 그때마다 흥분이 더해진다. 분노는 가라앉을 줄 모른 채 솟구치기만 한다. 선율을 배경으로 전쟁에 쓰러져 가는 민중과 무너져 가는 건물이 보인다. 권총, 파괴음, 그리고 아비규환. 관객은 모두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나도 두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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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건반에 손가락을 살포시 올려놓는다.

책의 끝 문장: 안녕, 드뷔시


쇼팽의 <영웅 폴로네즈>.
폴로네즈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볼로네즈 파스타와 헷갈리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파스타를 푸짐하게 삶아 줄 테다. 폴로네즈란 폴란드 무곡을 뜻하는 말인데 곡의 주선율은 과연 무곡풍이다. 서주부터 춤추는 듯한 선율이 이어져 듣는 이를 들뜨게 한다. 하지만 연주하는 입장에서 이 곡은 그야말로 난곡이다. 화음을 이루는 음표가 건반을 폭넓게 넘나들어 손이 작은 연주자가 치기에는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 연속되는 왼손 옥타브 때문에 엄지손가락을 거의 중노동 하듯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차라리 파스타를 삶는 게 훨씬 편하다. 실제로 중간부에 접어든 시점에서 내 손가락은 이미 너덜너덜해졌다.
- P14

"아무리 근사한 옷이라도 취향과 체형에 맞지 않으면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그런 걸 오시키세(주인이 고용인에게 철마다 해 입히는 의복을 뜻하는 말)라고 하죠. 제 지인 중에도 실제로 있는데요, 주변의 기대와 착각 때문에 본래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건 비극입니다. 인간은 물이 아니라서 준비된 그릇에 강제로 집어넣으면 뼈가 뒤틀리고 피멍도 생기지요. 그런데도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무리를 거듭합니다. 그건 남의 인생을 사는 빈껍데기 같은 삶입니다. 그 괴로움과 허무함을 생각하니 암담한 기분이 드는군요." - P271

"으음. 하긴 수업이나 레슨에서는 음악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거의 없으니. 다만 그러다 보면 신체와 직감, 기술과 정신이 따로 놀게 돼. 마음에 곡의 이미지가 확립된 상태에서 손가락으로 재현할 때 지금껏 상상도 하지 못한 운지가 나오는 경우가 있어. 반대로 새로운 움직임이 이미지에 새로운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지. 하지만 양쪽이 동떨어지면 연주는 절로 빈곤해지지. 잘 들으렴. 연주의 기본 요소 중 세 번째가 스타일이라는 건 전에 설명했지? 스타일이란 곡의 건축 형태를 가리켜. 연주자가 어떻게 칠 것인지는 곡이 만들어진 시대와 작곡가의 어법을 연주자가 어떻게 인식하느냐로 결정되지. 그리고 그 인식 방법은 직감과 조예를 통해 길러져. 악보에 기록된 이음줄, 악센트, 스타카토, 강약 등의 지시 기호를 존중한 상태에서 자신의 재능과 교양과 감수성이 그 곡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걸 선택하지. - P303

그것이 피아노였다. 피아노와 하나가 되었을 때 나는 목소리보다 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노래한다. 말보다 더 전달력 있는 말로 이야기한다. 나이, 성별, 국경, 언어와 같은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꿈같았던 마법이 지금은 미사키 씨가 가능성을 끌어올려 준 덕분에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능력, 허락된 유일한 재산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 내게 남은 건 피아노밖에 없다.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지 못하면 나는 나조차 아니게 된다. 그래서 매일 연주했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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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8-21 10: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좋은 문장들이 많이 있네요! 요스케 시리즈 목록보면 클레식에 관한 작가님 사랑이 예사롭지 않은 듯 해요. 그리고 첫 문장과 끝 문장 조합이 어쩐지 감동적입니당~♡

bookholic 2021-08-21 15:25   좋아요 2 | URL
라흐마니노프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책인데, 괜찮더라구요..
클래식과 추리 소설의 조합 나쁘지 않아요~~^^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scott 2021-08-21 11: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나카야마 시치리표
클래식 음악+추리 시리즈
한때 줄줄이 읽었었는데
이 작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 다작을 쏟아내서 따라 읽기가 힘들정도 ㅎㅎ

북홀릭 님 처럼
저도 첫문장! 자판기에 손을 살포시 얹어 놓는다
끝문장! 북홀릭님 주말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bookholic 2021-08-21 15:27   좋아요 3 | URL
알라딘에서 클래식하면 scott님을 빼놓을 수가 없죠..^^
이 시리즈는 한 권을 읽었지만 나쁘지 않은 것 같았어요...
클래식에도 관심이 있고,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scott님도 행복한 주말 되시길~~~
 














(12-13)

아침에 일어나자 마음속의 공허가 느껴졌다. 바깥 대기는 온화했다. 나무 사이를 지나온 바람의 녹색 물결이 내 안으로 바다를 실어왔고, 그 소리와 더불어 떠나고 싶은 욕구가 밀려왔다. 잠에 쫓겨 갔던 의문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부르르 몸을 흔들어 그것을 떨쳐냈다. 사람들이 결혼으로 행복해 하듯 나도 음악 안에서 행복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음악에 관한 모든 질문에 하나의 대답으로 충분하다고 결론 내림으로써 이미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던가. 음악이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가운데 우주를 향해, 상충하는 것들이 화합점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이라는 것이 그 대답이 아니었던가.


(18)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수습하리라. 내게는 여유와 사랑과 고독이 필요했다. 그러면 은밀히 나를 괴롭히는 불안, 나를 압박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의문의 근원과 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21)

아프리카는 성격이 분명한 대륙이다. 아프리카라는 단어 속에는 코끼리의 울음소리와 치타의 으르렁 소리, 사자의 포효가 있고, 나아가 강렬한 태양 아래 쩍쩍 갈라지는 대지의 소리가 있다. 그곳에서는 공허조차 생동감에 넘친다. 아프리카는 지구라는 행성이 들려주는 원시의 노래다. 이 대륙의 본질 속에는 깊이 있고 유쾌한 그 무엇, 유쾌하지만 꼭 즐겁다고는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느껴진다. 알티플라노의 인디언들이 서글프고 수심에 찬 것만큼이나 근원에 닿아 있는 유쾌함 말이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상이라는 목신의 피리 속에 깃든 잉카족의 그 천식성 숨결은 언제나 내 마음을 죄어들게 했다. 자신들의 신이 살해당한 후 귀머거리가 된 하늘을 향한 그 말 없는 애원, 소통이 불가능해진 그 대화, 드넓은 피라미드의 계단 위로 속절없이 흘러내린 그 많은 피, 그 종족은 핏속의 혈구를 회복시키지 못했다. 그들의 음악에서는 빈혈증세가 느껴진다. 산소 결핍과 신들의 무분별에 짓눌린 그 종족. 치명적인 코카나무 잎에 마취된 남녀들, 현실을 거부하고 조상이 그려놓은 하늘의 어둑한 별들 속에서 죽고자 하는 그들의 갈망.


(43-44)

그의 얼굴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 “행운이 함께해 집중할 줄 아는 학생들을 만났을 때 내가 그들의 마음에 새기고자 했던 게 바로 그거랍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공부하고 심화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무엇보다도 적절한 때에 전인미답의 것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이런 열의야말로 배움이고, 이런 배움의 과정 가운데 열심히 헌신하기만 한다면 인간은 최상의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현재 있는 것을 무시하지 않는 겸손,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오만을 가져야 하지요.”


(44-45)

그러면 선생님, 어떤 학생이 좋은 학생, 최상의 것을 성취하는 학생일까요?”

간단하게 대답하지요. 이전의 지식을 답습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 학생, 그렇다고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을 만들어내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학생. 아울러……”

아울러?”

현재 존재하는 걸 포착할 채비가 되어 있는 학생, 순간의 신비를 관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이지요. 그렇습니다. 좋은 학생이란 순간을 타는 곡예사입니다.”


(50)

그렇지요. 많은 예술가와 영웅과 성자들이 그런 위대한 교훈을 주고 있지요. 자유로워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역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유로워지는 것은 위대한 창조의 알파벳을 배우기 위한, ‘지금 여기에 낙원을 쓰기 위한 준비일 뿐입니다. 따라서 모든 글쓰기는 어쩔 수 없이 사랑의 편지가 됩니다. 시인 오든은, ‘글을 쓸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개념을 좀 더 밀고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오직 사랑 때문에 죽어야 하고 그런 죽음은 비극이 아닙니다. 인간이 뭔가를 창조하는 건 바로 이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서고, 그 창조가 끝나는 것도 오직 이 죽음에 의해서지요.”


(52)

그런대로 애를 쓰긴 했지요. 학교(school)의 어원이 된 여가라는 뜻의 그리스어 스콜레(schole)’에는 시제가 없답니다. 자유의 시제인 셈이지요.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시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서, 뭔가를 배울 수 있도록 위한 것입니다. 학교는 자유를 수련하는 곳이고 학생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에게서 필요한 것, 잉여의 것을 덜어내는 존재입니다. ‘스콜레는 본질적인 시제인 셈이지요. 현실 속에 실재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여는 시제이자, 가장 인간적인 행위, 곧 글, 사랑, 세계의 발견 같은 영혼의 활동에 스스로를 내어주는 시제입니다. 스승은 가르침을 주지만 작품 역시 사랑을 가르치지요. 당신은 음악가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81)

개개의 공간에는 독특한 소리가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도시를 생각해 보세요. 두 눈이 천으로 가려지고 청각만을 쓸 수 있는 상태에서 당신이 어딘가에 떨어졌다고 해보죠. 그렇다 해도 거의 즉각적으로 그곳이 프랑스의 어느 도시란 것 정도만 알 수 있을 거예요. 성당의 종탑에서 시간을 알리는 소리, 뛰어노는 아이들의 외침 소리, 아침마다 열리는 하수구의 물소리, 창문 아래로 지나가는 유리 장수의 외침 소리 같은 게 들릴 테니까요. 그것이 도시라는 것, 하지만 파리나 리용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소도시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대도시라면 줄곧 이어지는 자동차 소리, 전철이 우틍거리는 소리, 열차가 삐걱대는 소리, 소방대와 구급차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상점이나 자동차의 경보음이 줄곧 들려올 테니까요. 가엾은 사이렌들! 과거에는 노래를 부르더니 오늘은 울부짖고 있네요.”


(88)

한밤중 달을 향해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제겐 그렇답니다. 또 너울거리는 대양 속에 울려 퍼지는 고래의 노랫소리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늑대의 커다란 외침소리가 으뜸이죠.”


(119)

뉴욕을 떠나면서 나는 휴가, 곧 여행이 내게 필요한 휴식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의 판에 박힌 일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빡빡한 일정이 표시된 시간표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나 자신에게 생각을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이란 사물함 속에 넣어두고 떠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끝에 이르러도, 극지나 적도에 가도 사람은 여전히 자기 고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옥이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135-136)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언제든 무력감이 솟구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절망이 엄습할 수 있다. 그럴 때면 온 힘을 기울여 자신을 통합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환기시켜야 한다. 그런 빛살, 그런 열정, 그런 문장 없이는 자신 안에서 그 무엇도 완벽해질 수 없다. 내게는 그것이 음악과 늑대인 셈이다.

어떤 행위에 속에 어떤 생각 속에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해서는 강한 에너지와 견고한 믿음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 무수한 상황들을 모두 통제한다는 것은 충족시키기 어려운 바람이다. 하지만 그런 바람 없이 기적은 과거에도 일어날 수 없고, 지금도 일어날 수 없을 터.


(139-140)

오랫동안 나는 톨스토이와 더불어 지냈고,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광란의 밤을 보냈으며, 독일 소설들과 더불어 때로는 격분하고 때로는 즐거워했다.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들거나 속수무책의 악의와 맞닥뜨릴 때면 언제나 책 속에서 도움을 구했다. 책 속에서는 심술궂은 이들조차 저속하거나 비루하지 않았다. 책 속에서는 속속들이 어리석은 이를 거의 만날 수 없었다. 독서는 언제나 나를 언제나 지복의 경지에 이르도록 해주었다. 강렬한 감정, 다시 말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열정적인 가슴을 갖도록 해주었다.


(166)

예술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어요. 예술은 사랑을 펼치죠. ‘곧 진정한 사랑을 믿는 이들의 작품 속에는 사랑의 실존에 대한 기쁨이 표현되어 있어요. 조토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감탄한 적이 있나요? 아레초에 있는 시바 여왕의 눈길을 본 적이 있나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어보셨나요? 언어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하지 못하지만, 가장 내밀한 마음속의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예술은 드러내지요. 예술은 영혼과 친숙하게 반말로 이야기합니다. 예술의 소통 대상이 바로 영혼이기 때문이죠. 예술에는 구원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술은 종교, 곧 사랑과의 관계를 새롭게 합니다. 거기에 창조, 즐거움, 공감 같은 다른 이름을 붙일 수도 있어요. 조금 전 당신은 지성과 악의 새로운 결합을 강조했죠. 예술은 지성을 직관적인 사랑으로 돌려놓습니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특별한 힘이고, 예술의 능력은 아름다운 희망이기 때문이죠. 예술은 제 영혼을 무한하게 만들어줍니다.”


(183-184)

고백하건대, 나는 잠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잠이 건방진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하게 대한다. 잠자는 것을 좋아하고 육체적으로 잠이 몹시 필요한 나는 아주 기분 좋게, 관능적인 쾌감까지 느끼면서 잠의 품에 안겨 몸을 웅크린다. 침대에 들어가 눕는 순간 내 몸은 서양가새풀이 된다. 가장 깊은 꽃잎 속까지 나는 잠을 초대한다. 하지만 종종 연주회에 대한 신경성 긴장이나 피로가 잠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친다. 그럴 때면 다가온다 해도 잠의 포옹은 표면적인 것에 머문다. 이따금 결합이 이루어지면 잠은 나를 일으켜 이끌어간다. 내 꿈은 그와 하나가 된다.


(203)

오늘날 인간은 스스로에게 동물을 혹사할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인간은 동물을 이용하고, 종 전체를 아사시키고 질식시키고 멸절시킵니다. 대양 저 멀리에서 수백 년의 수명을 지난 거북이들이 해파리인 줄 알고 먹은 비닐 봉투가 위장에 가득 쌓여 죽어갑니다. 인간이 동물을 신성에 가장 가까운 존재로 여기고 그 절대적인 무구함을 부러워하는 그런 시대가 다시 올까요? 이집트인이나 아스텍족이 섬기던 신으로서의 동물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미트라가 숭배하던 힘센 수소는요? 인간이 동물과 자신의 혈연관계를 존중하고, 살아있는 존재와 대지와의 근원적인 관계를 가꾸어나가던 그런 시대는 어디로 간 걸까요?


(216-217)

구름에도 음악이 있다. 모차르트 소나타 같은 작고 둥근 흰 구름. 모리스 라벨과 에릭 시터 같은 풀어헤쳐진 긴 구름. 베토벤 같은 묵직하고 검은 안개구름. 브람스의 구름에는 성당의 하늘 같은 갈라진 틈이 있는데, 그 틈으로 빛줄기로 이루어진 붉은 광채가 비쳐 나온다. 그 광채가 어디에서 솟아나오는지는, 태양에서인지 지옥에서인지 혹은 희망에서인지 알 길이 없다.


(235)

그렇습니다. 자유, 다시 말해서 원치 않는 것을 사랑으로 거부하고, 원하는 것, 받아들일 만한 것을 받아들이는 선택권 말입니다. 저는 불필요한 것들에서 벗어나 빛에 도달했습니다. 청빈의 정신을 넘어서만이 도달할 수 있는 빛 말입니다.


(237)

습관이나 나태로 말미암아 자신의 가슴과 영혼을 진지하게 천착하고 탐색하는 것을 그만둘 때 슬픔이 찾아옵니다. 이런 끊임없는 탐색 속에서만이 인간은 점점 더 소박해지고 진지해져서 모든 수식을 버리고 본질을 이해하고 추구하는 최고의 기술입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합니다.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한다는 것은 죽음과 맞서 싸울 무기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효과적으로 삶을, 그리고 빛을 지켜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무기는 그뿐인지도 모릅니다.


(246)

진정한 엘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내 영혼의 가치에 어울리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아주 특별한 천분, 곧 자신만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삶을 산다는 뜻이다. 내 스타일은 피아노, 믿음, 글쓰기에 대한 희망이 아닌가. 내 몸은 또 다른 생명을, 음악을, 결혼을, 음을 품고 있다. 내게 도전하는 음악, 나를 충족시키는 음악은 나를 무화시킬 수도, 나를 나 이상으로 들어 올릴 수도 있다. “당신의 삶이 음악의 연장선상에 놓이기를.”이라고 그 교사는 초입에서 그는 나에게 열쇠를 주었다. 세상을 여는 그 열쇠는, 나누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황폐하다는 의미일 터였다.


(247-248)

누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가? 우리 자신이 아니라면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다. 행복이 타인에게서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게으르고 무분별해서 자신의 정수에서 행복을 놓치는 것과도 같다. 또한 상대의 본질적인 자유를 빼앗고 그것을 훼방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피상적인 행복에 만족하지 않는 데 있다. 훌륭한 그림이나 시나 노래에 스스로 헌신하듯 행복에 자신의 삶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249)

갈매기 한 마리가 작은 배의 돛 위에서 웃음을 터뜨렸고, 세 마리 제비가 하늘을 가르며 태양을 향해 날아올랐다.

나는 나 자신을 축소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활짝 펼치고 싶었다.

또다시 나는 내 운을 시험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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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21 11: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엘렌 그리모 글도 잘 쓰는 군요
피아노 연주 실력도 뛰어나지만
이분 늑대도 키운다고 합니다 ^ㅅ^

bookholic 2021-08-21 15:24   좋아요 3 | URL
이 책에서도 뉴욕 늑대 센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늑대에게 물린 에피소드도...ㅠㅠ
정말 대단하신 분 같아요~~

mini74 2021-08-21 17: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요즘 음악에 홀릭하신건가요 ㅎㅎ 앞에 요스케 이야기도 재미있고. 이 책도 문장이 참 좋아요 *^^*

bookholic 2021-08-22 06:10   좋아요 0 | URL
ㅎㅎ 재미있다고 하는 책들 찾아 읽다가 우연히 겹쳤어요~~
저는 scott님이 들려주는 음악으로 충분~~^^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문제적 과학책 : 문과형 뇌를 위한 과학적 사고의 힘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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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오래 전에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 5)>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단다. 그 책을 쓰신 분은 수잔 와이즈 바우어라는 분이었는데, 최근에 책 관련 SNS에서 그 분의 다른 책을 우연히 보고 검색을 해보았어. 오래 전에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 5)>을 재미있게 읽고 나서 그때 지은이의 다른 책들은 왜 안 읽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번에 검색을 해보니 아빠가 관심을 가질만한 책들이 여럿 있었단다. 그 중에 한 권 <문제적 과학책 : 문과형 뇌를 위한 과학적 사고의 힘>을 이번에 읽었단다. 제목이원제가 궁금하더구나. 원제는 <The story of Western Science>로 대충 해석하면 서양 과학의 이야기로 볼 수 있겠구나. 지은이는 이 책이 온 세계의 과학 이야기가 아닌 서양 과학에 관한 이야기라고만, 다소 겸손한 제목을 지었던 것이구나. 그런데 그것을 우리나라에서 출간하여 뽑은 제목이 <문제적 과학책 : 문과형 뇌를 위한 과학적 사고의 힘>… 문과형 뇌를 위한 과학적 사고…. 무슨 말인지 대략 감이 오긴 하지만, 말이야. 아빠에게는 거부감을 주었어.

갑자기 오래 전에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 5)>을 읽고 썼던 독서 편지가 생각이 나는구나. 그 때도 아빠가 그 책의 책 제목에 딴지를 걸었거든책 제목에 굳이 교양 있는 교양 있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야 했을까 말이야. 그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책 내용이 너무 좋아서 많이들 볼 것 같았거든 말이야. 아무튼 그랬어. 이 책 <문제적 과학책 : 문과형 뇌를 위한 과학적 사고의 힘>은 한 마디로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서양에서 출간된 과학책 중에서 지은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학책 36권을 소개해주는 책이었단다. 책 소개를 해주는 여러 가지 책들이 있지만, 이 책은 그 중에 과학 고전부터 최근 책까지 과학에 관련된 책만 소개해 주는 그런 책이야. 가끔씩 과학 관련 책들을 읽는 아빠에게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고, 아빠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책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해줄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서 읽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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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대의 과학책부터 소개하기 시작하여 현대의 과학책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과학사 흐름을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단다. 책으로 읽는 과학사라도 해도 좋을 것 같았어. 기원전 420년 경에 쓴 히포크라테스의 <공기, , 장소에 관하여>서부터 1987년에 쓴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까지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연구에 대한 발전, 생명체와 진화에 대한 책들, 물체의 운동에 관한 책들, 천체의 이동에 관한 책들, 지구의 정체를 연구한 책들, 그리고 현대과학의 꽃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에 관한 책들까지

여기에 나와 있는 책들이 번역되어 모두 출간되었다고 해도, 감히 읽기는 어려운 것 같더구나. 이 책에서 소개된 36권의 책에서 아빠가 읽은 책도 두어 권 있었단다.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이라든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책들이야. 그리고 아빠가 예전부터 읽고 싶어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 천동설과 지동설, 두 체계에 관하여>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한 책도 소개해 주었단다. 각각의 책들을 더 짧게 소개해 보고 싶지만, 능력도 안 되고, 이 책의 뒤편에 잘 나와 있으니 그걸 참고하면 되겠다 싶었단다.

그래서 오늘은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짧게 마치려고 한단다. 과학의 위대한 발견이 우연히 같은 시간대에 위대한 두 과학자에 의해 거의 동시에 발견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단다. 그 대표적인 것이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분 발견 등이 있어. 그리고 다윈의 종의 기원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단다. 다윈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은 월리스라는 사람인데 다윈에 비해 별로 안 유명한 사람이야. 그런데 뉴턴과 라이프니츠처럼 서로 자신이 처음이라고 다툰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학회에 발표하고, 그 이후에도 자신들의 연구를 서로 교류했다고 하는구나. 그런 것에 비해 월리스가 유명하지 않은 점이 아쉽긴 하구나. 아무래도 찰스 다윈이 쓴 역저 <종의 기원>의 힘이 컸던 것 같구나. 기록이란 것이 역시 중요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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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97)

월리스는 이러한 생각을 원래의 유형에서 무한히 멀어지려는 변종들의 경향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짧은 글로 작성해서 편지와 함께 다윈에게 보내면서 이 글을 찰스 라이엘이나 그 밖에 관심 가질 만한 자연사학자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윈은 깜짝 놀랐다. ‘이 글은 내 이론과 정확히 같은 이론을 담고 있다.’ 편지에 적힌 부탁대로 다윈은 이 글을 라이엘로 보냈다. (‘나는 이보다 더 놀라온 우연의 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 그게 무엇이건 나의 독창성은 깨질 것입니다.’) 그리고 다윈 자신의 연구에 대한 간단한 초록도 보냈다. 라이엘과 동료인 조지프 후커(왕립 식물원장이자 다윈의 친구)는 두 글 모두를 린네 학회에서 발표했다(린네 학회는 100년 역사를 가진 자연사 학회다). 1858 8월 월리스와 다윈의 이론이 린네 학회 모음집에 나란히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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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과학사 책이 아니다.

책의 끝 문장: 그 약속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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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18 03: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수잔 와이즈 바우어가 이런 책도 썼군요. 참 쉽게 책을 잘 쓰는 사람인데 이 책도 쉽게 읽을 수 있을까요? 저는 진짜 과학문맹이라서 과학관련만 들어가면 일단 식은땀부터 나는 사람인지라요. ㅎㅎ

bookholic 2021-08-19 09:30   좋아요 0 | URL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전 5권)>보다는 별로였어요~~
과학 고전들에 흥미를 가져보려고 했는데, 어렵겠는데... 이런 생각만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