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두 남자는 미소지으며 산책길을 따라간다. 그 모든 일이 그들 뒤로 아주 멀리 있다. 둘 중 한 사람은 이십오 년간 교직에 있었다. 대략 2500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중 상당수는 심각한 난관에 처한 학생들이었다. 두 남자는 저마다 가정을 꾸린 아버지다. 그들은 선생님이 그랬어……”라는 말의 의미를 잘 안다. 열등생이 지루한 푸념 속에 들어앉히는 희망, 그래 그거다…… 선생님의 말이라 급물살을 타고 추락하는 강물 위에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 붙잡고 매달리는 부표일 뿐이다. 열등생은 선생님이 한 말을 반복한다.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고, 규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놓여나기 위해하는 말이다.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47)

나를 구해냈던 그리고 나를 교사로 만들었던 선생님들은 그 일을 위해 양성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의 무능한 학교생활의 기원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았다. 원인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았거니와 나에게 설교를 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위기에 빠진 청소년을 마주한 어른이었다. 그들은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던졌다. 그들은 나를 놓쳤다. 하지만 매일같이 다시 몸을 던지고 던지도 또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거기서 건져냈다. 나와 더불어 다른 많은 아이도 건져냈다. 말 그대로 우리를 낚아올린 것이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생명의 빚을 지고 있다.


(82)

선생이라는 직업이 필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다시 시작하는 일. 만일 우리가 한 명의 학생을 우리 수업의 직설적 현재에 정착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의 앎과 그것의 활용에 대한 안목이 이 아이들에게 미치지 않는다면, 그들의 실존은 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막연한 결핍의 늪지에서 질척거릴 것이다. 물론 우리 선생들만이 그런 갱도를 파낸 것도 아니고, 그걸 메울 줄 몰랐던 것도 우리 책임만은 아니지만, 그때 그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혹은 몇 년의 어린 시절을 우리 앞에 마주앉아 함께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망쳐버린 학교생활 일 년은 하찮은 게 아니다. 어항 속에서는 영겁의 세월이다.


(96-97)

하지만 선생이 거짓말을 모른 척하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좀더 깊숙이 숨겨진 이유인데, 명석한 의식에 비춰보자면 대충 이런 거다. 즉 그 아이가 교사라는 내 직업의 실패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발전시키지도 공부시키지도 못한 채, 그저 내 반에 들여놓고 그 아이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것이다.


(98)

지쳐버린 수많은 부모들은 사람의 진을 빼는 이런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척한다. 우선은 그들 자신의 고통을 잠시나마 진정시키기 위해(1515년 마리냐노 전투 같은 극소량의 진실은 진통제 역할을 한다), 그 다음엔 가족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그리하여 저녁식사 시간이 비극으로 선회하지 않도록, 제발 오늘 저녁은 아니기를, 각자의 마음을 찢어놓은 고백의 시련을 늦추기 위해, 요컨대 틈틈이 편지함을 살펴보던 당사자에 의해 다소 교묘하게 위조된 학기말 성적표를 받아들고, 사실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으면 학교생활의 재앙의 범위를 가늠하게 될 순간을 밀어내기 위해서다.

내일 생각해보자.

내일 생각해보자고……


(110-111)

우선 짚고 넘어갈 사실이 있다. 알다시피 어른과 아이는 시간을 동일하게 지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십 년 단위로 계산하는 어른의 눈에 십 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 오십이 되면 십 년은 금세 지나간다! 그렇게 빠른 속도감 때문에 어머니들은 아들의 장래를 근심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오 년 후면 벌써 대학 입시네, 아니 이제 금방이잖아! 이 어린 것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근본적으로 뭐 그리 변할 수 있겠어? 그런데 아이에게 그 시절의 일 년은 천 년과도 같다. 아이의 눈에 자신의 미래는 뒤 이은 며칠 안에 몽땅 달려 있다. 아이에게 장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한을 센티미터로 재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되다라는 동사가 아이에게 주눅들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어른들의 걱정이나 질책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장래란 최악의 상태의 나를 말하며, 바로 그것이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선생님들의 말에서 내가 대충 이해한 바였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시간이란 게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조금도 생각해내지 못했고, 그냥 순진하게 영원히, 언제나 바보일 거라는 그들의 말을 믿었다. ‘영원히언제나는 상처받은 자존심이 열등생에게 시간을 헤아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단위였다.


(133)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이란 놀랍고도 짧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렇게 한마디로 말할 수 있겠는걸. 예를 들자면 한 젊은이가 우연히 맞닥뜨린 불행한 사고는 제쳐놓는다 해도 별 탈 없이 흘러가는 평범한 나날조차도 나들이를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옆 마을로 말을 타고 나설 작정을 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으로 말이다.”

이자벨은 존경심을 표하며 그 작가의 이름을 말했다. 프란츠 카프카.


(158)

망쳐버린 시간이 나를 기진맥진하게 했다. 나는 지치고 화가 난 채로 교실에서 나왔다. 그 화는 하루종일 학생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위험이 있다. 자기불만에 휩싸인 선생은 누구보다 재빨리 학생을 야단치기 때문이다. 얘들아, 조심해라, 바짝 기어라, 선생이 자기바하에 빠져버렸으니 맨 처음 걸려든 사람한테 불똥이 튈 거다! 그날 저녁은 집에 가서 숙제 검사 같은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피로와 불쾌한 의식은 좋은 충고자가 될 수 없다! 아니, 그날 저녁은 숙제 검사도, 텔레비전도, 외출도 그만두고 잠자리로 직행! 선생의 첫째 자질은 수면이다. 일찍 자야 착한 선생이 된다.


(275)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막시밀리앵은 젊음만능주의라는 동전의 이면이다. 우리 시대는 젊음의 의무로 이루어져 있다. 젊어야 하고, 젊게 사고해야 하고, 젊게 소비해야 하고, 젊게 늙어야 하고, 유행은 젊고, 축구도 젊고, 라디오방송도 젊고, 잡지도 젊고, 광고도 젊고, 텔레비전도 젊은이로 가득하고, 인터넷도 젊고, 사람들도 젊고, 살아 있는 베이비붐 세대의 마지막 사람들도 젊게 남아 있고, 우리의 정치인들마저 마침내 다시 젊어졌다. 젊음 만만세! 젊음에 영광을! 젊어야만 한다!


(281)

이때 담임선생님의 질문.

신발은 걸어다니는 데 쓰이고, 상표는 뭐에 쓰이지?”

교실 구석에서 터져나온 돌발 발언.

뽀다구 내는 데요!”

모두의 폭소.


(323-324)

모든 점을 잘 따져보면 이 세 분의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모른다고 하는 우리의 고백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철자법의 결함을 이유로 내세우며 지 선생님은 내게 얼마나 여러 번 논술문을 다시 쓰게 했던가? 발 선생님은 내가 복도에 멍하니 있거나 자습실에서 몽상에 잠겨 있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여러 번 보충수업을 시켰던가? “시간이 있으니까 우리 한 십오 분만 더 사학을 해보면 어덜까? 페나키오니? , 십오 분만 해보자……”) 익사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그 몸짓의 이미지, 자살하려는 몸짓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저 위로 나를 끌어올리려는 그 손목, 내 옷자락을 단단히 움켜쥔 살아 있는 손의 생생한 이미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들의 현존 안에서 그들의 과목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수학자인 나, 역사가인 나, 철학자인 나로. 그러한 나는 이 스승들을 만날 때까지 진정으로 여기 있다는 느낌을 방해했던 나를 한 시간 동안 잠시 잊고, 나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로부터 나를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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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재미 교포인 이민진 님이라는 분이 계셔. 우연히 유튜브에서 그 분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고 그 분이 쓴 <파친코>라는 소설이 읽고 싶어졌단다. 그 전부터 <파친코>라는 소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제목만 보고, 아빠의 관심사와 먼 이야기했구나, 하던 책이었거든. 그런데, 이민진 님의 인터뷰를 보고, 이 책을 자세히 찾아보고 관심이 생겼단다. 이 책은 슬픈 우리나라 역사의 단면을 담고 있었어. 얼마 전에 이규정 님의 <사할린>이라는 소설을 이야기했잖아. 사할린 땅에 어쩔 수 없이 가서 그곳에 정착해 생활하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 <파친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본 땅에 갔다가 영원한 이방인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단다. 그래서 <파친코>를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사할린>도 자주 떠오르더구나.

지은이 이민진 님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자면, 서울에 태어나 부모님의 결정으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했어. 미국에 이민을 간 다른 한국인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이민진 님의 부모님 역시 헌신적이었고, 그런 부모님 밑에서 이민진 님은 잘 자라서,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되었대. 그런데 건강이 악화되어 변호사를 그만 두고 글 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일본계 미국인 남편을 만나서, 일본에 살고 있는 있는 한국인들을 부르는 자이니치라는 말을 알게 되었고, 남편 회사 때문에 4년간 일본에 살 기회가 생겨 그때 취재 및 탐사를 한 것을 바탕으로 <파친코>를 쓰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이 책은 미국에서 영어로 출간된 것인데, 이미정 님이 우리말로 옮겨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었단다. , 그럼 오늘은 <파친코> 1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1.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 소설은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했단다. 어찌 보면 자조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긍정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어. 이야기는 19세기말 부산 영도에서 시작한단다. 훈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언청이에 다리가 기형이었어. 훈이 부모님은 하숙집을 운영했는데, 하숙집에 잘 되어 집안은 넉넉했단다. 하지만,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혼하기 힘들었는데, 가난한 집에 착한 딸 양진과 짝을 맺을 수 있게 되었어. 둘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는데, 훈이의 장애 때문인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모두 죽었어. 그렇다가 넷째 아이 선자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었단다.  

선자가 열세 살이 되었을 때 훈이는 죽고 말았어. 비록 장애를 가진 훈이였지만, 선자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였단다. 훈이가 선자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해주었거든. 양진은 이제 어린 선자를 데리고 혼자 하숙집을 운영했어. 그로부터 3년 뒤 배이삭이라는 손님이 찾아왔어. 배이삭은 목사였는데 10년 전 자신의 형이 이 하숙집에 머물렀는데 착한 주인들이라면서 추천을 해주어 자신도 일본으로 형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잠시 이 하숙집에 머무르려고 왔다는 거래. 그런데, 그곳에 있으면서 백이삭은 어렸을 때 앓았던 결핵이 재발해서 잠시가 아니고 한 동안 머물러야만 했어. 죽음의 위기도 있었는데, 양진과 선자가 잘 보살펴주어 회복할 수 있었단다.

그때 선자의 나이 열여섯 살이었는데, 6개월 전부터 알게 된 생선중매상 고한수와 사랑을 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임신을 한 것을 알게 되었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단다. 어차피 고한수와 결혼하면 되니까 말이야. 선자는 자신의 임신 소식을 이야기하니, 고한수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자신은 오사카에 아내와 아이가 셋이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선자를 사랑하니 선자와 뱃속의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하겠다며 했어. 그러니까 한수는 선자를 첩으로 생각한 것이야. 선주는 이 이야기를 듣고,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헤어져버렸어. 선자는 자신의 임신 소식을 엄마 양진에게 이야기하고 엄마는 자세한 것은 묻지 않고 선자를 그저 걱정했단다.


2.

죽음의 위기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와 건강을 되찾은 백이삭 목사. 우연히 선자의 사연을 듣고, 자신이 선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어. 그것이 기독교의 희생 정신이고, 자신을 살려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어. 원래 백이삭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병약해서 오래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해고, 평생 결혼하지 않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구나.

백이삭과 선자는 결혼을 하고, 백이삭의 형님이 살고 있는 일본 오사카로 갔단다. 이 때가 1933년이었어. 백이삭의 형님 백요셉과 아내 경희 부부는 백이삭과 선자를 환대해주었어. 선자의 과거를 알고 있지만, 형님 부부는 정말 따뜻하게 맞아주었어. 특히 경희는 일본땅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답답했는데, 말이 잘 통하는 선자를 동생처럼 대해주었고 금방 친해졌단다. 백이삭은 교회에서 평목사로 일하기 시작했고, 얼마 뒤 선자는 아들을 낳았고 이름은 노아로 지었단다. 백노아. 백이삭과 선자뿐만 아니라 아이가 없었던 백요셉과 경희도 모두 노아를 사랑으로 키웠단다.

시간을 흘러 1939, 노아가 어느덧 여섯 살이 되었고, 그새 백이삭과 선자는 아들을 하나 낳았고 그 아이의 이름은 모자수였어. 1939년 일본은 전운이 감돌았고, 그에 따른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엄격하고 어둡고 그랬어. 백이삭이 다니는 교회에서 일하는 라는 사람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일이 있는데, 이 사소한 일로 가 경찰서에 붙들려갔고, 후를 변호하려고 경찰서에 갔던 백이삭 마저 경찰서에 갇히고 말았어. 그게 끝이 아니라, 경찰서에 갇힌 후 백이삭의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었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랐어. 식구들은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던 백이삭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백이삭의 상황을 알 수 없어서 더 답답했단다.

백이삭의 뒷바라지를 하려다 보니 돈이 필요했고, 백요셉이 벌어오는 돈으로 부족해서 선자와 경희는 김치 장사를 시작했단다. 이 일에 대해 백요셉이 크게 화를 내면서 반대했어. 백요셉은 상당히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가장이었어. 그래서 경희는 집에서 김치를 만들기만 하고, 선자가 밖에서 김치를 팔았어. 그들의 김치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큰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창호라는 동포로부터 자신의 식당에 전속으로 김치를 공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 그래서 이제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되었단다. 하지만 여전히 백이삭의 소식은 알 수 없었어.


3.

또 시간이 흐르고 1942. 어느날 폐인이 된 백이삭이 돌아왔어. 죽을 것 같으니까 경찰서에 풀어준 것 같았어. 식구들이 열심히 백이삭을 간호하고 보살펴 주었지만 결국 백이삭은 죽고 말았단다. 백이삭이 죽고 2년쯤 지난 뒤에 고한수가 선자를 찾아왔어. 고한수는 일본인 장인어른과 함께 대금업을 해서 큰돈을 벌고 있었어. 사실 그동안 선자 식구들을 몰래 도와주고 있었어. 김치를 팔아준 김창호도 고한수의 수하였고, 김창호가 선자네 김치를 산 것도 고한수가 시켜서 그런 것이었어. 선자는 고한수의 도움을 거부하려고 했지만, 그의 도움을 마냥 피할 수는 없었단다. 전쟁으로 일본의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자, 백요셉은 나가사키로 돈 벌러 갔단다. , 하필 나가사키였을까. 그곳은 얼마 후에 핵폭탄이 떨어지는 곳인데 말이야.

고한수는 어디서 정보를 입수했는지 얼마 안 있으면 큰 전쟁이 난다면서, 오사카를 피해 시골 농장으로 피해야 한다면서 선자 식구들을 설득해서 그들 모두 농장으로 이사 갔단다. 정말 전쟁으로 오사카는 폐허가 되어서 당분간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 전쟁이 끝나고 백요셉이 돌아왔는데,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반신불구가 되어 돌아왔단다. 목숨을 건진 것이 다행이었는데, 이후 백요셉은 신경질을 자주 부르고 예민해져서 식구들이 무척 고생했단다. 특히 경희가 무척 힘들어했어.

….

고한수는 부산에 가서 선자의 엄마 양진을 모셔왔어. 양진과 선자는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단다. 1949, 그들은 다시 오사카로 왔어. 고한숙의 도움으로 다시 집을 지었단다. 그들은 조선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그쪽의 사정이 좋지 않아 일단 여기 있으라는 고한수의 설득에 머무르기로 했어. 선자의 아들 노아도 부쩍 커서 노아의 교육도 생각해야 하지 않냐고 했거든

여기까지 <파친코> 1권의 이야기란다. 소설 속 시간의 흐름의 빠르게 전개되더구나. , 원래 시간이란 것이 엄청 빠르게 흘러가니까선자 식구들은 일단 일본에 머무르기로 결정을 했는데, 과연 조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 2권에서 그 뒷이야기들을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책의 끝 문장: 김창호는 경희를 사랑하는 고통을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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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4 0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부에서는 자손들의 이야기가 시작 되나 봅니다

수년전 킨들로 휘리릭 읽었는데 첫문장만 기억 하고 있습니다 ㅎㅎ

작가의 부모님도 실향민 출신이고 남편분이 일본계 미국인이라고 하네요 ^ㅅ^

bookholic 2021-09-04 06:24   좋아요 4 | URL
네.. 첫문장이 강렬하긴 하죠..^^
2부에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자손들의 이야기가~~
즐거운 주말 되시고요!!!
 















(13)

임진왜란은 1592 4 13일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700여 척의 배가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면서 시작되어 1598 11월 종결되기까지 동아시아를 뒤흔들었다. 그 영향도 지대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란이 끝난 뒤 명과 일본 모두 왕조나 정권이 교체되었다는 것이다. 그전부터 침체했던 명은 참전 뒤 더욱 허약해졌고 결국 멸망했다. 일본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수립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무너질 때까지 250여 년간 존속하면서 일본의 중세를 이끌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전쟁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조선은 쓰러지지 않았다. 전쟁 이후 조선은 체제를 수습했고, 그동안 지내온 것보다 더 오랜 기간을 존속했다.

 

(20)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낙관에는 일본 군사력에 대한 낮은 평가도에 꽤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얼마 전에 선조가 신하들을 불러서 의논을 했대요. ‘일본이 진짜 침략할 것 같나?’ 그랬더니 한 신하가 웃으면서, ‘일본은 배 한 척에 100명밖에 못 싣고, 배는 많아봐야 100척 밖에 동원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대요. 그런데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에 동원하도록 지시한 배는 2000척 가까이 됐던 거죠. 조선은 이렇게 일본의 군사력을 한참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즈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국서를 보내왔어요. 그런데 조선 입장에서는 그 국서의 내용이 굉장히 오만방자하게 느껴졌던 거죠. 여기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가 태몽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태양의 아들이라고 칭한 부분도 있고, 또 자기가 전쟁을 하면 지는 일이 없다면서 자신감을 넘어 오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26)

일본인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 항상 하는 얘기가 있죠. 어떤 사람이 두견새를 선물로 줬는데 이 새가 울지를 않는 거예요. 그러면 이 새를 어떻게 할까에 대해 일본에서 유명한 장군 세 명,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답이 다 달라요. 1번 울지 않으면 죽여버린다. 2번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 3번 울 때까지 기다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디에 해당할까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면 2번 아닐까요?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

맞습니다. 정답은 2번이에요.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는 말이 그의 성향을 굉장히 잘 보여 주죠. 새 앞에서 재롱을 부리든 새를 놀라게 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를 울게 만드는 거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목표가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이루고 마는 집념의 소유자였다고 해요.

재미있는 문제네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인물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러면 나머지 두 명은 어떻게 대답했어요?

오다 노부나가는 1울지 않으면 죽여버린다에 해당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49)

송상현이 동래부사로 부임한 게 임진왜란 1년 전인 1591년입니다. 동래부사는 지금으로 치면 부산시장 정도 되는 자리죠. 송상현은 부임과 동시에 성 주변에 나무를 심습니다. 나무가 성책(城柵) 역할을 하도록 한 거죠. 송상현은 또 군사 훈련을 철저하게 시켰다고 합니다. 이때가 꽤 평화로운 시대였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조치죠. 그러므로 송상현은 일본군의 침략을 예견했거나 적어도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유능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91)

어떤 면에서 이순신 장군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쟁을 준비해요.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있으면 곤장을 때리기도 했고요. 당시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은 불만을 가졌을지도 몰라요.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한테 맨날 전쟁 준비시키고 함부로 곤장 때리고 그러냐?’ 이런 불만이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그런 걸 보면 이순신 장군은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아요.

 

(92)

두 사람은 사실 처음부터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습니다. 허균의 책을 보면 두 사람이 같은 동네 출신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원균은 부친이 수군절도사까지 지낸 무반 가문 자손이고, 이순신은 할아버지 때까지 굉장히 잘 나가던 문반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두 사람의 무과 합격 시기도 10년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이순신이 한참 늦게 합격했죠. 그런데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이 종6품인 정읍 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까지 일곱 품계가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하고, 계속 승승장구하잖아요. 본래 이순신보다 훨씬 높은 직급에 있었던 원균으로서는 그런 이순신이 탐탁지 않았겠죠.

 

(106)

의병은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났죠. 우선 경상도 3대 의병장으로 곽재우, 정인홍, 김면이 있습니다. 호남 의병장으로는 고경명, 김천일 등이 있고, 지금의 충청도 지역인 호서 의병장에는 조헌, 영규가 있죠. 금강산에서 활약한 사명대사 유정과 함경도의 정문부 장군도 빼놓을 수 없고요. 이렇듯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일본군에게 타격을 가했어요. 그러므로 의병의 봉기는 수군의 승리와 더불어 전쟁의 흐름을 바꾼 핵심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54)

그 재조지은이라는 말을 들으면 너무 화가 나요. 대체 누가 나라를 구했습니까? 나라를 구한 건 조선의 백성들이에요. 그러면 백성을 섬겨야지 이게 무슨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그런 걸 보면 선조는 그토록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도 배운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전쟁 후에도 제대로 된 국가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어요.

 

(166)

류성룡과 이순신은 언제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관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흔히 두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류성룡이 세 살 많아요. 사실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의 형님과 친구였어요. 이순신 장군은 사형제 중 셋째인데, 제일 윗형님 이름이 복희씨의 신하, 희신입니다. 그다음에 중국 제일의 성인으로 치는 분이 요 임금, 순 임금이죠. 그래서 바로 윗형님 이름이 요신이에요. 이 형님하고 류성룡이 친구 관계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순 임금의 신하라는 뜻으로 순신이죠. 그러나 이순신 장군 동생 이름은 뭘까요?

이순신 장군의 동생도 있어요?

, 요순 다음으로 하나라의 우임금이 유명하죠. 치수(治水)를 잘했던 분이요. 이 우임금의 신하라는 뜻에서 동생 이름은 우신이에요.

 

(168-169)

손바닥도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잖아요. 이순신이 그토록 큰 전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덕분이었습니다. 하나는 경상도 지역의 의병이죠. 곽재우를 비롯해서 김면, 정인홍 등이 낙동강 지역을 굳게 지킴으로써 왜적들이 진주를 거쳐 전라도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했고, 덕분에 후방 기지를 든든하게 확보할 수 있었죠. 두 번째는 류성룡이 조정에서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 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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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1 1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에 언급된 인물들중에 저의 집안 선조가 ㅋ ㅋㅋ 나라를 지켰냈다는 뿌듯함 북홀릭님 페어퍼에서 다시 한번 깨닫게 되네요 ^^

bookholic 2021-09-01 19:52   좋아요 3 | URL
ㅎㅎ 누굴까요? 궁금~~^^
scott 조상님~~ 나라를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제희 지음 / 샘터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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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 서점 서핑하다가 우연히 재미있는 책 제목과 책 표지를 하나 보았단다.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

도스토옙스키. 너무나 유명한 위대한 러시아 작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분이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도스토옙스키는 도끼 선생님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단다. 아빠도 오래 전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스토옙스키 빨갱이 전집으로 나왔을 때 두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단다. 당시 그 책을 읽고 난 아빠의 느낌은, 재미는 있으나 읽기 무척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당시 러시아의 시대상을 잘 알지 못한 상태이고, 지은이들의 이름이 이것저것으로 바꿔 나오기 때문에, 누구 누구인지 확인하면서 읽어내는 것이 힘들었고, 열린책들 도스토옙스키 빨갱이 전집 판본의 글씨 크기가 작고 엄청 빽빽했고그렇다 보니 두 작품까지만 읽고 그 다음 읽으려고 사 둔 책은 결국 책장을 장식하는 용도가 되어버렸단다.

하지만 여전히 아빠는 도스토옙스키 책들에 관심이 있고,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 그러다가 이 책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라는 책을 보니 급 관심이 가지 않겠니. 지은이는 도제희라는 분인데 아빠는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2015년 소설가로 등단했고, 책으로는 이 책 <난데없이 도스토옙스키>가 첫 번째 책이라고 하는구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지은이는 어렵게 재취업한 회사에서 회사 대표와 대판 싸우고 초고속으로 퇴사를 한 이후, 예전에 읽던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고 하더구나. 이후 다시 직장인도 되고, 소설가로 등단하고 하고그의 이력만 봐도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겠구나. 아빠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


1.

이 책 소개를 보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아빠가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이 적어서, 공감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읽기를 여러 번 망설였단다. 도스토옙스키의 책들, 특히 이 책에서 소개된 책들을 읽고 나서 읽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러자면 이 책을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그냥 에세이 읽듯이 읽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쁘지 않았단다.

이 책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에 대한 리뷰와 지은이의 일상을 잘 믹싱한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다고 다른 책 리뷰를 엮은 책처럼, 책 한 권씩 하나의 챕터를 둔 것이 아니고, 지은이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면서 그에 맞는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소환하여 이야기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네, 하는 공감을 불러 일으켰단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란다. 열혈퇴사를 하고 위로를 받기 위해 옛 동료에게 연락했는데, 그 옛 동료에게서, 아빠가 오래 전에 읽어서 대략적인 줄거리만 기억하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등장하는 막내아들 알렉세이를 떠올리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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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알렉세이는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이름이지만 그중 대표를 꼽으라면 역시 그의 마지막 작품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알렉세이를 들어야겠다. 까라마조프 씨네 막내아들이자 참으로 비현실적이어서 기이하게 다가오는 캐릭터. 모두의 벗이자, 형제 같은 사람. 남녀노소 불문, 한 번이라도 그를 만나면 금세 사랑하게 만드는 마성의 남자. 누군가를 어떤 이유로도 비난하지 않으며, 그가 모든 이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믿게 만드는 사람. 그렇기에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그의 혈육들도 알렉세이만은 자신들과 다른 카테고리에 넣는다. 그러곤 모두 그에게 고백하고, 이해받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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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소설에는 많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 소환되었단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가난한 사람들>, <미성년>, <노름꾼>, <죄와 벌>, <백치>, <악령>,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백야>, <악령> 등등아빠가 빼먹은 작품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략 이 정도였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읽기가 쉽지는 않단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여러 개로 부르고, 배경 지식도 부족하고, 가끔 지나친 묘사도 심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다고 하더구나. 예를 들어 <스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이란 작품이 그렇다고 하는데, 나중에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면 이 작품을 앞쪽에 배치해야겠구나.

======================

(193)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을 긴 풀 네임, 약칭, 여러 애칭으로 불러서 누가 누구인지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리도록 하는 불친절함, 하루 이틀 밤 이야기를 1000쪽 이상의 분량으로 풀어내는 집요함과 심오함에 임하기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대체 내가 왜 이 인간 소설을 이렇게 파고 있나 회의감을 느낄 즈음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날 대체 뭘로 보는 거냐며 뒤통수를 한 대 쳤다. <스쩨빤치코보 마을 사람들>이란 소설을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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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몇몇 관심이 가는 책들이 생겼어. 물론 다 읽으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은 많고, 시간은 제한적이고 하니 일단 관심 있는 책들 먼저 읽어 봐야겠지. 이 책을 통해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은 <노름꾼>이라는 책이란다. 도스토옙스키 본인이 실제로 도박을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어. 그런데 이 <노름꾼>을 쓸 때 도스토옙스키 자신도 도박으로 돈이 쪼들리던 시기라고 하니, 절박한 심정에 자신의 처지에 관한 책을 썼다는 생각을 하니 그 내용이 궁금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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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도스토예스키 장편 <노름꾼>은 여러 가지로 유명하다. 장편 <죄와 벌>을 쓰는 동안 27일 만에 완성했다는 것, 그것도 구두로 완성한 소설을 속기사 안나가 문자로 옮겨 출판사로 넘겼으며, 그 뒤 도스토예스크의 청혼으로 두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 이 소설을 쓸 당시 작가 자신도 도박으로 인해 돈에 쪼들리며 급하게 완성했다는 사실 등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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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또 하나의 책은 <악령>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책장의 장식이 되어버린 책이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앞 부분 수십 페이지를 읽었던 기억은 있구나. 지은이의 소개를 읽어보면 그렇게 앞부분만 읽고 그만둘 소설은 아닌 것 같았는데, 약 이십 년 전이었으니 그 당시에는 아빠의 사정이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악령>은 뒷담화의 선을 넘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더구나. 뒷담화의 선을 넘는 인간으로 하급관리인 리뿌찐이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남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당사자게 비밀이니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이야기하고, 친구들이 뒷담화를 하지 말라고 말려도 이야기하고 친구들이 들은 이야기를 다시 재생산하기도 하고딱 들어봐도 짜증나는 스타일의 인간이구나. 리뿌찐이 호감을 두고 있는 바르바라라는 좋은 귀족 집안의 부인이 등장하고, 그 부인의 아들 스따브로긴이라는 사람이 나온단다. 스따브로긴은 불안정한 정신의 소유자이고 추문과 악행이 뒤를 잇는 사람이었어. 바라바라에게는 수양딸 다샤가 있는데, 다샤와 아들 사이의 안좋은 소문이 일어나자, 다샤를 어떤 중노인과 결혼시키려고 했어. 원래 수양딸과 사이가 무척 좋았는데, 이 일로 다샤와 사이가 틀어졌대. 또 중요한 인물로 쁘로호브나라는 산파가 나오는데, 무례함과 불경함을 장착한 인물이라고 하는구나. 대략 이런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나온다고 했어.

이 책에서 소개한 다른 책들에 비해 <악령>에 대해 자세히 적어 둔 이유는 아빠가 조만간에 <악령>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단다. 이 책은 우리 집에 장식용으로 잘 꽂혀 있으니 접근성이 좋잖아. 이 책을 덮고 <악령>을 책장에서 꺼내보았단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분들이 전집 중에 최고 중 하나로 치는 열린책들 빨갱이 시리즈였단다. 오랜만에 펼쳐 본 책. , 아빠가 관리를 안 해서 그 예쁘고 정열적인 빨갱이의 책등이 빛에 바래 있더구나. 책을 펼쳐보니, 역시 빽빽한 글씨에 <>, <>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권당 500페이지가 넘는 페이지, 읽을 수 있을까 싶더구나.

….

아빠가 자주 방문하는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알라딘 서재란 사이트가 있는데, 그 곳에 가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을 만화책 읽듯 쉽게 읽어내는 고수들이 있단다. 그렇게 도스토옙스키 소설들을 다 읽은 이들은 이 에세이가 더 공감이 가겠다 이런 생각을 했단다. 책 뒷면을 보니 도스토옙스키 전문가로 유명한 로쟈 이현우 님의 추천 글도 있구나. 이 책의 지은이와 도스토옙스키 매니아들을 보면 아빠도 다시 한번 정신무장을 하고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다짐을 해 보았단다. 몇몇 도스토옙스키의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초가을이었다.

책의 끝 문장: 알고 보니, 200년 전 유럽 동부 대륙의 사람들도 막장의 달인들이었다고, 우리 삶이 아름답지 않은 순간에 직면할 때 사실 우리와 전혀 상관 없을 법한 그 사람들도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그 와중에 추운 계절의 동백꽃처럼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꽃피웠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프로가 되는 지름길이며 또 그것만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조건도 없다. 그렇게 산다 해서 모든 일이 잘되진 않겠지만 모른 채 산다면 자신을 더 힘들게 할 선택을 하게 될 것만은 분명하다. 잘 맞지 않은 회사에 아무 문제의식도 없이 입사하고 퇴사하기를 반복했던 나처럼 말이다. - P48

물론 성숙한 인간이라면 죽는 순간까지 섣불리 자기 생각을 말하기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살피며 진상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 역시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다. 하지만 시대가 계속 변하고 있다는 사실, 그 변화 속도를 내가 따라가지 못해 때로 꼰대적 발상과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다. - P74

나는 자신만의 소박한 일상을 잘 지켜 나가면서도 품위 있고, 지적이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 이를 몇 알고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내적 자산을 비교적 쉬이 갖출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보다 대단해 보이고, 그래서 그들을 만날 때마다 질투하고 부러워한다. 그렇게 부러워하다 보면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말은 어쩌면 틀렸다. 부러우면 이기는 건지도 모른다. - P102

솔직함은 그 내용이 자기 자신일 때 빛을 발한다.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도 호감을 얻는 방법이겠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용기에 타인의 마음은 더 크게 움직이지 않을까. 상대에게 자신도 진심을 내보여도 안전하겠단 느낌을 주니 말이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잘 알 것, 그런 자신을 받아들일 것, 솔직함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둘 것.
- P182

그렇다고 해서 삶의 주도권까지 내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장에서 누군가 나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 삶까지 좌우하려 할 때, 즉 내 삶의 주도권이 본인에게 있는 양 굴려 할 때 거절할 만한 지혜와 배짱은 필요하다. 그러자면 우선, 내 인생의 모든 행운과 불운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감당하겠다는 주인 의식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아직 멀었단 걸 알았다. <노름꾼>의 가정교사의 대처에 정말 놀랐으니 말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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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30 00: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 글 읽으니 북플의 도선생님전문가들이 떠오르네요. 저도 먼저 도선생님 책을 읽고나서 ㅎㅎㅎ 이 책을 시작해야 될듯 합니다. 가끔 힘들어서 잠시 쉬어야겠어 하고 책을 미뤄놓으면 아이가 슬쩍 갖고가요. 뭔가 자신은 자신이 있다는 듯. 하지만 대부분은 곧 다시 돌아온답니다 ㅎㅎ

bookholic 2021-08-30 07:27   좋아요 4 | URL
아이와 책들을 함께 읽는 모습 좋아요...^^
그것도 도선생님의 책을....
읽고 나서 도선생님의 책에 대해 식구들과 토론하는 모습도 그려집니다~~~^^

새파랑 2021-08-30 00: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노름꾼하고 악령은 대박 입니다 ㅋ 완전 👍 저도 도선생님 책 완독하면 이책을 꼭 읽어봐야 겠네요. 북홀릭님이 말씀하신 고수중에 저도 있는건가요? 😅

scott 2021-08-30 01:28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은 도끼 선생 매니아 넘버원 .🖐

bookholic 2021-08-30 07:31   좋아요 4 | URL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을 만화책 읽듯 쉽게 읽어내는 고수들˝은 새파랑 님 생각하면서 쓴 문구입니다~~^^

scott 2021-08-30 0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책 좋아 합니다 ㅋㅋ 자기계발서(실제로는 저자의 사회 생활 조직 생활의 벽에 부딪칠때마다 도끼 선생의 작품 속 인물들이 튀어나오는)보다 이렇게 문학적 은유가 담겨서 참신하고 좋았어요.

bookholic 2021-08-30 07:37   좋아요 4 | URL
네, 독특한 구성의 책인데 참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도씨 선생님의 작품들을 가볍게 이야기하면서도 핵심을 콕콕 찍어 이야기해주고...^^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EBS CLASS ⓔ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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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인터넷에선가 지나가는 동영상을 보다가, 낯익은 이가 휙 지나갔는데, 누구였지? 분명 낯이 익는데이러면서, 다시 그 동영상을 제대로 보니, 강신주 님이었단다. 그런데 아빠가 아는 강신주 님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어. 조금 통통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너무 살이 빠지고 부쩍 나이든 모습에 큰 병에 걸리셨나?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 동영상은 지난 해 EBS에서 강연하던 모습이었단다. 반갑지만, 너무 달라진 외모에 걱정이 들어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더니 강신주 님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지만, 아빠처럼 강신주 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독자들의 글들만 볼 수 있었단다. 부디 별 일 없이 건강하시길 바란다.

강신주 님은 예전에 <감정수업>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이후 다른 책들도 서너 권 읽고,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찾아보고 그랬단다. 아빠는 <감정수업>에서 느낀 그의 신선함과 독특함으로 여전히 강신주 님을 보고 있단다. 늘 좋은 이미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지. 그가 최근에 ESB에서 강의한 것을 책으로 낸 것이 아빠가 이번에 읽은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라는 책이란다. 책 소개를 봤더니, 불교 철학의 여덟 가지 키워드. 아빠가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한 때 불교 경전을 공부하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공부하진 않지만 여전히 불교에 관심이 많고, 절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삼배를 하고, 누군가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불교라고 이야기를 한단다. 강신주 님이 불교 철학에 대해 강의를 했다고 하니, 급 관심을 갖게 되더구나.


1.

강신주 님이 뽑은 불교 철학의 여덟 가지 키워드는 고(), 무상(無常), 무아(無我), (), 인연(因緣), 주인(主人), (), () 이란다. 이 여덟 가지 중에 또 하나를 뽑으라고 하면 무엇일까? 아빠가 생각하기에 강신주 님은 사랑()을 뽑으신 것 같더구나. 책 제목에도 보면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고, 책 제목에 또 다른 아낌이라는 것도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거든예전에 다른 책들에서도 늘 사랑을 중요하게 이야기하셨지. 사랑을 좀 다르게, 좀 솔직하게, 좀 자유롭게 해석하셨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이번 책에서도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이라는 큰 주제에 다른 것들도 담고 있다고 아빠는 생각했단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에게 무한의 사랑, 끝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해. 하지만, 강신주 님은 사랑이라는 것이 밥과 비슷하다고 해서, 너무 많이 주게 되면 그게 고통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단다. 프롤로그에서 책 제목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 주었는데, 그의 의견에 적극 공감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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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 공기의 사랑이다. 그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한 공기의 사랑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한 공기를 넘어서는 모든 사랑은 정말 사랑했다!”라는 나의 정신 승리는 가능하게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온갖 고통을 가하는 끔찍한 일이다. 심지어 나를 사랑하면 세 공기든 네 공기든 한 가마든 먹어야 한다고 그를 압박한다. 세 공기, 네 공기의 밥을 지은 자신의 수고를 내세우면서 말이다. “당신을 위한 나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말아줘. 그러면 나는 정말 슬플 거야.” 어느새 그의 배고픔과 포만감보다 나의 수고가 핵심이 되고 만다. 한 공기를 넘어서는 사랑은 이제 사랑의 궤도를 이탈해 공회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애지중지(愛之重之)하지 않게 되니까. 애지중지하는 마음은 그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 한마디로 그를 내 뜻대로 부리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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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 중에 하나. 고통()이 아닐까 싶구나. 우리가 숨을 쉬고 살아가는 동안 고통이라는 것을 없앨 수 있을까. 없을 거야. 신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고통이 제로가 되었다는 것은 죽었을 때나 가능한 거야. 그렇다면 고통이라는 것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완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잡아야 한단다. 사랑이라는 것도 상대방의 고통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란다. 배고픔의 고통을 한 공기의 밥을 줌으로써 해결하는 것처럼 말이야. 회사에서도 자신만 잘났다고 떠들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이들이 있는데, 이것은 사랑의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이란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어야 고통을 줄이는데 힘쓰고,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인데 말이야. 예전에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모순 덩어리 말이었던 거야. 학생의 고통을 공감한다면 어찌 때릴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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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과거 독재 시절, 시대에 걸맞게 학교에는 사랑의 매라는 것이 있었다. 학생들을 미워해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때린다는 체벌의 논리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선생님이 학생들의 종아리에 매를 대는 순간 아이들의 고통이 느껴진다면, 과연 선생님은 계속 매를 댈 수 있을까. 한 대 두 대 때리면 때릴수록 아이들의 아픔이 느껴진다면, 어떻게 아이들을 계속 때릴 수 있을까? 아내에 대한 사랑, 남편에 대한 사랑, 아이에 대한 사랑, 후배에 대한 사랑 등 타인에 대한 사랑은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랑은 타인의 고통을 완화시키려는, 다시 말해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려는 의지이자 감정이기 때문이다.

=====================


2.

강신주 님께서 여덟 가지로 나누어 설명을 해주셨는데, 하나씩 살펴보자꾸나. 앞서 첫 번째로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두 번째로 이어지는 것이 무상(無常)이란다. 영원한 것은 없고, 세상 만물 모든 것은 변한다는 뜻이야. 강신주 님이 무상(無常)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언젠가 변해서 사라지는 인생무상임을 깨닫게 되었다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하더구나. 사랑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든 언젠가 사라지니, 현재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야. 함부로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아빠도 반성하게 되더구나. 얼마나 많은 일을 미래로 미루면서 살고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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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7)

놀이의 삶에는 근사한 표어가 주어진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표어이다. 반면 노동의 삶에도 그에 어울리는 표어가 있다.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라는 표어다. 이는 연애 시절과 결혼 생활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연애 시절에 우리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몰입한다. 가장 좋은 음식을 사주고 값비싼 선물도 아끼지 않는다. 오늘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지 않으면 내일은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하염없이 미루기 쉽다. 대출을 갚아야 하고 아이들 양육비도 생각해야 하니, 맛있는 스파게티나 여행 등 오늘의 행복을 속절없이 미루게 된다. 오늘이 수단이 되고 내일이 목적이 되는 순간, 오늘은 수단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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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행복을 뒤로 미루기만 하다 보면 어느덧 삶의 끝자락에 도착을 하게 될 거야. 요즘에는 가뜩이나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는데 말이야아빠도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단다.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제대로 여행도 못 가고코로나를 모르던 시절에는 다음에 해야지, 다음에 가야지 하면서 미뤄두었던 일들이 코로나 때문에 기약 없이 뒤로 계속 미뤄지고 있구나. 그러면서 어떤 일들은 너희들이 커가면서 기회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있고 말이야. 모든 것은 때가 있기 마련인데, 잠깐 뒤로 미뤄둔 일들이 코로나 같은 예상치 못한 일들 때문에 때를 놓치는 경우가 있더구나. 안타까울 뿐이구나.

무아(無我)라는 말은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도 하고 제법무자성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제법(諸法)이란 다르마에서 온 말로 모든 존재를 이야기한단다. 세상 모든 존재는 본질이 없다는 뜻이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하거나 불멸하지도 않고 동시에 순간적인 것도 없다는 뜻이란다. 변화를 잘 받아들여야겠구나. 왜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엔 왜 그래?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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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먼저 영원할 듯한 것에서 작은 변화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영원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가 그 대상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일 가능성은 줄어드는 말이다. 아내와의 관계나 남편과의 관계, 혹은 친구와의 관계가 예전 같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려고 노력하라. 돈독하던 관계에서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것이 보일 수도 있다. 어제와 다름없이 보이는 부모님, 아내, 남편, 아이의 얼굴에서 변화를 읽으려고 노력하라. 작은 주름 하나, 깊은 한숨 하나, 작은 새치 하나, 작은 어둠 하나를 찾아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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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마음과 들끓는 마음을 설명한단다. 아빠의 마음이 고요했던 적이 있던가 싶구나. 늘 머릿속에는 생각이 많고, 어떤 작은 일에 대해서도 머릿속에서는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 그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적이 많아. 요즘에는 그걸 받아들이려고 한단다.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기면 한 동안 아빠 머릿속에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해 버려. 아빠처럼 남들보다 민감한 사람에게 있어 그런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 버리기로 했어. 물론 며칠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조차 잊게 되니까, 그런데 가끔 이 파문이 사라지기도 전에 더 큰 파문이 일어날 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이렇듯 아빠의 머릿속은 번뇌와 망집의 반복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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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52)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남자의 사례를 통해 번뇌망집이 그 정체를 드러낸다.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발견하지 못하자 그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스마트폰을 카페 의자에 둔 것이 맞을까?’ ‘스마트폰을 카페 점원이나 손님들 중 누군가 가져간 것은 아닐까?’ 등등, 번뇌란 이런 것이다. 스마트폰의 없음을 경험하자, 그의 뇌리에는 사라진 스마트폰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는 허탈해하며 카페에서 나와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미 없어진 스마트폰이야. 없는 건 없는 거지. 잊자!’ 하지만 스마트폰의 없음을 받아들이려 할수록 없어진 스마트폰에 대한 기억은 더 강해질 뿐이다. ‘잊자, 잊어라는 생각이 오히려 사라진 스마트폰을 떠오르게 하니 말이다. 바로 망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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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은 보통 연기법과 함께 생각하게 된단다. 어떤 일이 그냥 일어나는 것은 없다는 뜻이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잖니.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게 되면 세상이 끝난 듯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도 또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나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보자고 하더구나.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 아빠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한동안 번뇌와 망집에 또 휩싸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도 보면 또 다른 인연을 만나게 될 거야.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듯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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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만성화된 슬픔, 고질적인 우울 속에 갇히게 된다. 행복과 기쁨이 더 이상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앞으로 앞으로삶을 밀어붙이면 알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이 부재하기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인연이 끝나야 다른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이별이 절벽으로 떨어지는 수평선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앞으로 앞으로걸어나가면, “앞으로 앞으로배를 수평선 쪽으로 밀어붙이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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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主人)이라는 챕터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아빠에게 채찍을 가하는 듯했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보다 무엇인가 그만두고 싶은 것을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말에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굳이 라고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라고 하는 순간 피곤한 일들이 이어질 것을 아니까. 그러므로 아빠의 생각과 다르지만 그냥 예스라고 하고 아빠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된단다. 이로서 아빠는 자발적 노예가 되는 것이란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아빠와 비슷한 것 같아. 다들 자발적 노예인가 보구나. 회사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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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독일 철학자 슬로터다이크(1947~) <냉소적 이성 비판>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성숙한 능력은 예스의 유일하게 타당한 배경이 되며, 이 둘을 통해 진정한 자유의 윤관이 비로소 뚜렷해진다.” “예스가 힘이 있으려면 라고 외쳤던 경험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예스는 굴종의 표현이 아니라 자유의 표현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예스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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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유는 멈출 수 있을 때, 그만둘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고 하더구나. 아빠가 가끔 유튜브를 보다 보면 회사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집을 짓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빠가 본 그 분들은 얼굴에 행복이라고 쓰여 있더구나. 물론 회사라는 절벽에 매달려 있을 때 그 절벽에서 손을 떼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있었을 거야. 자신이 숨겨 두었던 날개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말이야. 하지만 용기 있게 그 절벽에서 손을 떼는 순간 그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하더구나.

이 말에 아빠가 소심해서 딴지를 걸고 싶긴 하더구나. 절벽에 매달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해볼 수 있겠는데, 그 절벽에서 손을 놓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같았어. 모든 사람이 날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진짜 끝없이 추락을 해버리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회사 안은 전쟁터이고, 밖은 지옥이라는 소리도 있고, 실제로 그런 예도 본 적이 있고 말이야. 그런 사람들의 경우 날개가 없는 것일까? 날개가 있음을 모르는 것일까? 사실 아빠도 아빠가 날개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일단은 절벽을 잡고 보자비록 어깨가 아플지라도…. 아빠의 깨달음이 부족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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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228)

매달린 절벽은 사실 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놓으면 죽을 것 같다고 믿는 집착의 대상일 뿐이다. ‘매달린 절벽은 사람마다 다르다. 젊음일 수도 있고, 건강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고, 집일 수도 있고, 아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랑일 수도 있고, 우정일 수도 있고, 타인의 인정일 수도 있다. 아이를 잡지 않으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사람에게 아이에게 그렇게 집착하지 말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게 권고하는 사람도 돌아보면 돈이나 건강을 매달린 절벽처럼 붙잡고 집착할 수도 있다. 또한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려 해서도 안 된다. 그럴수록 그 사람은 더 억세게, 저 집요하게 매달린 절벽을 잡으려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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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자발적 노예의 안락한 삶을 진정한 자유와 트레이드 오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그 자발적 노예를 사랑해 주고 절벽을 잡고 있는 팔과 어깨를 주물러 주는 너희들이 있음에 위안을 삼으면서, 좀더 잡고 있어보지이런 생각을 해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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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핵심 주제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온단다.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시간을 잊게 만들고 아픔을 잊게 만든단다. 그 대상을 소중히 다루어 아끼게 되는데, 그런 말로 애지중지(愛之重之)라는 말이 있단다. 어떤 것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에 대해서는 대가를 바라면 안 돼. 그러면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아끼는 것이 아니란다. 아빠가 우리 식구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런데 가끔 내가 이만큼 했던데 저 일은 좀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말로 튀어 나오는 경우도 있어. 그 경우 아낌의 관계는 깨지는 것이란다. 반려 동물을 사랑할 때와 비유를 하고 하는데 반려 동물을 사랑하면서 반려 동물에게 무엇을 바라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 말길을 못 알아듣고 멀뚱멀뚱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는데 말이야. 핵심은 사랑을 할 때, 누군가를 아껴줄 때 대가를 바라지 말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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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

아끼는 사람은 그 존재만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소중한 사람이다. 아끼는 사람이 무언가 해주기를 원하는 순간, 아낌의 관계는 무너지고 그 자리에 너저분한 거래 관계가 들어선다. “내가 이만큼 했으면 너도 이만큼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이제 상대방이 나의 애지중지하는 모든 행동을 일종의 부채감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아낌의 관계는 막장을 향해 치닫고 만다. 이런 비극을 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끼는 사람을 반려견이나 반려묘처럼 보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물을 가져다 달라고, 밥을 해달라고, 쓰레기 봉투를 버려달라고, 청소를 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아듣는다 해도 쫑긋한 귀와 해맑은 눈, 그리고 네 다리를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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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님이 이야기하는 불교철학의 마지막 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이 부분에서도 애()의 연장선상으로 아낌에 대해 이야기를 한단다. 나의 생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끼는 것들과 인연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란다. 그 인연에는 가족들일 수도 있고, 반려 동물, 반려 식물일 수도 있고, 그 외 아끼는 모든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야. 건강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인연들에 있어 많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한 공기의 연이 필요하다고 강신주 님은 이야기하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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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우리 각자에게 아끼는 대상이 어머니일 수도, 아버지일 수도, 아내일 수도, 남편일 수도, 아일 수도, 친구일 수도, 반려견일 수도, 반려묘일 수도, 아니면 화초일 수도 있다. 아끼는 대상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의 행복에 있어 한 공기의 연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농부의 물꼬 트기처럼 이 한 공기의 연을 우리가 채우지 못하면, 아끼는 사람의 삶은 불행에 빠진다. 그러니 좋은 공기, 맛있는 음식, 쾌적한 잠자리, 따뜻한 태양, 싱그러운 바람, 아름다운 음악, 근사한 영화, 멋진 식당, 의사와 간호사, 친구들 등등이 아끼는 사람에게 건강한 연이 되어줄 때, 우리는 충분히 쉬어야 한다. 잘 쉬고 맛있는 것을 먹고 잠도 잘 자야 한다. 우리게는 한 공기의 연을 채워야 할 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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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처지에서 보면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는 것은 정말 어렵단다. 요즘 너희들이 커가면서 어떤 방향으로 안내를 해주어야 하나, 지금 이 방향이 맞나, 그냥 남들이 가니까 따라 가는 것은 아닌가? 등 고민이 많단다. 엄마도 고민이 많아 아빠한테 물어보곤 하는데, 아빠도 처음 겪은 일이니 쉽지 않더구나. 그렇다고 소위 방목 또는 방임하면서 키웠다가 전혀 엉뚱한 도착지에 가 있으면 어쩌나,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 어쩌나, 이런 걱정에 휩싸이게 되고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강신주 님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였단다. 아이를 진정으로 아낀다는 것은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완전히 알 때까지 망()과 조장(助長) 사이의 균형을 이루라고 하는구나. ()잊다라는 뜻이고, 조장(助長)잘 자라도록 돕는다는 뜻이란다. 방임과 관심의 사이를 균형을 이루라는 것인데, 이것도 앞서 이야기한 한 공기의 사랑, 한 공기의 아낌과 비슷한 말인 것 같구나. 그런데 그게 쉬울 것 같지는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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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아이를 아끼기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아이가 잘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영어 학원에 보내고 태권도를 가르치고 수영 강습도 받게 하고 피아노도 가르치고 방학마다 여행을 가고 캠핑도 간다. 문제는 엄마가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해야만 한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 혹은 언젠가 아이가 원할 수도 있다고 자신이 믿는 것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웃음과 미소를 점점 잃어가게 될 것이다. 반대로 간혹 우리는 아이를 방임해서 키워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엄마도 있다. 김을 매지 않아 잡초들에 둘러싸인 벼처럼, 아이는 경쟁적 교육 환경, 왕따를 시키는 차별적 문화,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 둘러싸여 시름시름 앓게 될 것이다. 결국 엄마는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되 지나치게 관여해서는 안 되고, 관여하지 않되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완전히 알 때까지, 혹은 엄마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 때까지, ‘조장사이 혹은 물망물조장사이 그 어딘가를 지키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아끼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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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강신주 님의 이야기한 불교 철학 여덟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이 책의 핵심은 책 제목에 다 들어 있단다. 한 공기의 사랑과 아낌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사랑과 아낌이 중요하다이상. .


PS:

책의 첫 문장: 그가 늦게 귀가했다.

책의 끝 문장: 좋은 추억으로 남을 만한 인연이자 하나의 행복한 축제였다.


사실 모든 생명체의 고통을 느끼고 그것들을 사랑한다면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정확히 말하면 먹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자기 자신을 죽이게 된다.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우리는 배고픔의 고통을 견디다 굶어 죽을 테니 말이다. 식물도, 토끼도, 사슴도, 독수리도, 늑대도, 그리도 인간도 생명체다. 식물을 살리려고 토끼를 죽여서도 안 된다. 토끼를 살리려고 늑대나 인간을 죽여서도 안 된다. 엄청난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사슴과 늑대가 동시에 배고픔의 고통을 토로한다면 싯다르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난감한 일이다. 어쩌면 이 딜레마, 이 난감함, 이 애절함, 그리고 이 간절함 속에서 산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일체개고’의 진정한 의미, 혹은 ‘고통’의 기원이 아닐까. - P31

진짜 사랑이 열정적인, 그리고 자발적인 노동을 낳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배부르면, 사랑하는 사람이 지인과 행복한 담소를 나누면,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힘차게 잘 걸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명랑하면, 우리는 고맙기만 하다. 진짜 사랑할 때에는 질투라는 감정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완화시켜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이 완화되었는지 여부뿐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질투심이 강해질수록 우리의 사랑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 P41

이렇게 현재의 삶을 수단으로 만들고 내일의 삶을 목적으로 만들면, 오늘의 행복은 계속 내일로 미루어지고 만다. 이런 식으로 반복하다 삶의 끝자락에 이르게 되면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행복한 적이 없다는 후회가 밀려올 것이다. 물론 이런 후회는 금방 사라질 수도 있다. 죽음 이후의 피안이나 이데아 세계, 혹은 기독교의 천국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마지막 기대를 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은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 "오늘보다 내일이 더 중요하다"는 기만적인 생각은 충만하고 아름다운 현재의 삶을 좀먹는 독약과도 같아.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은 영원을 꿈꾸면서 무상을 직면하지 못하게 만드는 헛된 사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 P83

성숙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은 단순하다. 성숙하면 자신이 강해지고 자신이 많은 것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아끼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아파하게 된다. 간혹 아이들은 엄마가 아파서 밥을 못 해주면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는 엄마가 아플 때 혼자 라면을 끓여 먹는다. 바로 이때 아이는 나이와 상관없이 성숙했다고 할 수 있다. 아이의 마음이 타인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요한 물처럼 작동한 것이다. 비록 아이지만, 이 순간 아이는 부처다. 자신의 배고픔이 아니라 엄마의 아픔에 사무쳐 있기 때문이다. - P176

멈출 수 있어야, 혹은 그만둘 수 있어야 자유다. 멈출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고, 관계를 단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멈출 수 있어야 하고,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럴 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당당해지고, 그만큼 우리는 주인으로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멈출 수 있는 자유를 가슴에 품을 때, 그가 누구이든 상대방은 우리를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가슴에 사표를 품고 있는 직원에게 사장이 어떻게 갑질을 할 수 있을까? 캐리어를 들고 집을 떠날 수 있는 아내에게 남편이 어떻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학위쯤이야 우습게 여기는 학생에게 교수가 어떻게 사역을 시킬 수 있을까? - P244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점점 줄어들면 우리는 주인으로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면 주인이 아니라 노예의 삶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 P249

사랑도 삶도 행복도 그리고 자유도 ‘이만하면’이라는 말로 가늠할 수 있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다. 사랑했거나 사랑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살았거나 그러지 못했거나, 행복했거나 행복하지 않았거나, 자유롭거나 자유롭지 않았거나, 이제 ‘이만하면’이라는 말을 우리 삶의 사전에서 지우도록 하자. 사랑도 삶도 행복도 그리고 자유도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 재산이나 소비수준과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잘 사랑하려면, 제래도 살려면, 정말 행복하려면, 그리고 자유로우려면, 우리는 ‘이만하면’이라는 전체를 붙인 너저분한 자기만족과 정신 승리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사랑도 삶도 행복도 그리고 자유도 아직까지 제대로 영위하지 못했다고, 아직도 부족하다고 이야기하자. 그래야 우리에게는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살아가고, 제대로 행복하고, 제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희망이 생길 수 있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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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28 16: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페이퍼는 진심으로 북홀릭님의 아들과 딸이 꼭 읽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문장 하나 새겨두지 않아야 할 문장이 없네요

전 한줄 한줄 읽으면서 이기적인 제 자신을 반성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살아가고, 제대로 행복하고, 제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희망]
이 문장 만큼은 앞으로 남은 생애 꼬옥 실천하고 실행하도록 노력 하려고 합니다. ^ㅅ^

bookholic 2021-08-28 18:51   좋아요 2 | URL
scott님은 페이퍼뿐만 아니라 댓글도 정성스럽고, 읽은 이를 행복하게 해주십니다..^^
덕분에 행복한 주말입니다~~
scott님도 행복하고 즐거운 주말되십시오~~^^

붕붕툐툐 2021-08-28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강신주님 신간이라 담아는 놨었는데, 불교에 대한 이야기인 줄은 몰랐어요! 알았음 진작에 읽었을 텐데요! 감사합니다. 만약 강신주님이 아픈게 아니라면 고행을 하신게 아닐까 추측을 해보게 되네요~ 왠지 강신주님이라면 해보셨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bookholic 2021-08-29 10:07   좋아요 0 | URL
고행이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직접 고행을 체험하고 글로 쓰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