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미술 이야기 5 -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명과 미술 : 갈등하는 인간이 세계를 바꾸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5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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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 제 5권을 읽었단다. 드디어 미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르네상스시대의 이야기란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의 장점은 늘 그렇듯 대화체로 쉽게 미술을 설명해주는 것이라 부담 없이 책을 펼쳐들 수 있단다. 책 값이 좀 비싸긴 하지만 컬러 도판 사진으로 설명을 읽으면서 바로 미술작품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단다. 중간중간 정리해 주는 것도 좋고… 5권까지 읽었다고 아빠가 미술에 대한 상식이 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마렴기억력은 빠르게 퇴화하고 있으니 말이야. 예전에 쓴 너희들에게 쓴 편지와 발췌록들을 읽어보면 어찌나 새로운지


1.

유럽은 1300년대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발전했는데, 특히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많이 발전했대. 그렇게 사회가 발전하다 보니 미술도 덩달아 발전을 했고 말이야. 이탈리아는 오랫동안 많은 도시국가들의 혼재하는 형태로 지냈다고 하는구나. 한때 200여개의 도시 국가가 있었을 때도 있다고 하는데, 1300년 즈음에는 50여개 도시국가들이 있었고…(여전히 많네)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는 등이 특히 강한 도시국가들이었대.

이 시절 향후 미술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문학작품이 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단테의 <신곡>이란다. 이 책은 아주 유명한 책이지만, 어려울 것 같은 생각에 아빠는 읽어보지 못한 책이란다. 이 책은 지옥, 연옥, 천국을 단테 본인이 여행하는 이야기로, 당대 실존 인물들이 많이 많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부패한 정치인이나 성직자들도 출현하여 현실에서는 하지 못하는 쓴 소리를 하기도 했대.

이 책에서 나오는 연옥이라는 곳이 천국과 지옥의 중간 지역이야. 부자들은 원래 천국에 가질 못하는데, 이 연옥이라는 곳에서 일정 시간 죄를 뉘우치면 부자들도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단다. 그럼 어떻게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느냐그것은 바로 예배당을 짓는 거야. 부자들과 상인들이 지은 예배당들이 하나둘 나타나는데 그 중에 파도바라는 도시의 스크로베니 예배당을 소개해 주었단다. 고리대금업으로 큰 돈을 본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속죄하기 위해 세운 예배당당시 유명한 화가인 조토에게 의뢰하여 벽화를 그리게 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유명한 작품으로 남아 있단다. (조토는 아빠가 학창시절 배울 때는 지오토로 배웠는데, 요즘에는 조토로 부른다고 하네.) 조토가 벽화를 꾸민 것은 프레스코 기법이라고 하는데, 석회 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리는 것으로 시간이 지나도 변색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들의 예배당은…. 프란체스코 성인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았고, 그가 죽고 나서 아시시라는 도시에 프란체스코 수도회 성당을 지었는데, 이 수도회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위해 쉬운 말론 강론을 이야기했고, 글을 모르는 그들을 위해 벽화로 프란체스코 성인의 일대기로 그렸다고 하는구나. 그 그림은 모두 28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시 앞서 이야기했던 조토가 그렸다고 하더구나. (모두는 아니고 대부분…) 당시의 도시국가들 중에 당시의 모습을 오늘날까지 잘 유지하고 있는 도시들이 있는데 그 중에 시에나라는 도시가 있단다. 그곳에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팔라초 푸블리코와 시에나 대성당이 있는데, 팔로초 푸블리코는 시에나의 시청사로 이 건물 안에는 로렌체티의 유명한 벽화가 있대. 그리고 시에나 대성당에는 마에스타 두초가 그린 시엔나 대성당의 제대화가 있고이 마에스타 두초는 앞서 몇 번 이야기했던 조토와 더불어 당대 쌍벽을 이루는 미술가로 조토는 신체의 입체감과 무게감을 두드러지게 표현을 했고, 두초는 화려한 옷에 초점을 둔 차이가 있다고 하는구나.

….

이렇게 성장을 거듭하던 유럽 세계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단다.


2.

그 위기는 다름 아닌 1347년 발생한 흑사병.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을 몰아 넣은 죽음의 병이란다. 어벤져스의 빌런 타노스가 이루려던 꿈. 전염병이 유행을 하면 꼭 언급되는 흑사병은 삶의 모습까지 바꾸었단다. 작년부터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도 자주 흑사병과 비교되잖니당시 도시는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위생 시절도 마찬가지고, 거기에 정확한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흑사병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단다. 병이 생긴지 2~3일 내에 죽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아. 이 흑사병은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단다. 어떤 성모자상이 병을 치유한다는 소문이 돌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주변으로 성당이 지어지고, 그 성당에 벽화들이 그려졌어. 흑사병이 끝나고 살아남은 자들은 오히려 삶의 질을 좋아지면서, 중산층까지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면서 미술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는구나.

이탈리아 도시 국가 중에 가장 잘 나가던 피렌체는 기근과 전염병과 전쟁으로 도시가 전체적으로 위기에 빠지게 되는데, 혼란에 빠진 이 도시를 다시 살리자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르네상스는 서서히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르네상스의 본거지는 피렌체라고 하는구나. 르네상스는 워낙 유명해서 그 핵심이 화려했던 고대 문명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란다. 그런 점에서도 피렌체는 고대 유물을 많이 남아 있어서 유리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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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결국 르네상스의 핵심은 고대 문명의 부활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피렌체는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자신감을 가질 만합니다. 고대를 부활시키려면 고대라는 역사를 지니고 있어야 하겠죠. 피렌체는 그 어느 도시보다 고대의 전통이 강하게 이어져 내려오던 도시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대의 전통이 도시에 각인되어 있었던 거라고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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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은 안정된 경제와 정치를 들 수 있는데, 지중해를 통한 중계 무역과 은행을 통해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고, 다른 도시에 비해 오랫동안 공화정을 유지되었다고 하는구나. 한때 메디치 가문이 정치 권력을 독차지하기도 했지만, 여론이 등을 돌리게 되면서 추방당하기도 할 정도로 시민들의 권력이 센 도시가 바로 피렌체였단다. 피렌체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그 유명한 피렌체 대상당이 있는데, 30층 높이의 거대한 성당인데, 상상만 해도 엄청나구나. 우리가 계획했던 유럽 여행이 코로나 때문에 무한 연기가 되었는데, 나중에 다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더구나.

그렇다면 이 피렌체 대성당은 누가 지었을까. 특히 피렌체 대성당의 거대한 돔을 만든 사람은 브루넬레스키라는 사람이란다. 이전에 피렌체에서는 세례당 청동문을 만들기로 했고, 그걸 경연에서 이긴 사람이 만들기로 했는데 브루넬레스키는 그 경연에서 기베르티라는 사람한테 졌다고 하는구나. 그 경연에서 진 브루넬레스키는 피렌체를 떠나 로마 여행을 했대. 원래는 미술가였던 브루넬레스키는 로마 여행을 마치고 건축가로 변신해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지었다고 하는구나. 당시 피렌체에서는 피렌체 대성당의 직경이 45미터라서 거대한 돔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거든.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바로 브루넬레스키였어. 그는 로마 판테온에서 힌트를 얻어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완성했다고 하는구나. 수평쌓기와 수직쌓기를 교차하는 헤링본 기술과 돔을 이중을 하여 무게를 가볍게 하는 등 혁신적인 방법으로 지었대. 그래서 피렌체 사람들이 모두 자부심을 갖게 하는 피렌체 대성당의 거대한 마침표를 찍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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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294)

당시 인문학자이자 미술이론가였던 알베르티는 하늘 높이 솟구친 피렌체 대성당 돔이 토스카나의 모든 사람을 그늘로 덮을 듯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 시기 피렌체 사람들에게 돔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알 것 같죠. 물론 과장처럼 들리기도 해요. 하지만 막상 피렌체에 가서 직접 이 돔과 마주하면 단순한 과장으로 들리지만은 않을 겁니다.

나지막한 건물들 사이에 30층 높이의 대성당이 우뚝 솟아올라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거대한 돔은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하고, 가파르게 솟아오른 윤곽선은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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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 미술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원근법이 생겨났다는 점이라고 하는구나. 소실점을 기준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단다. 아빠도 학창 시절 소실점을 처음 배우고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떠오르더구나.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던 아빠도 소실점을 이용해서 그리니 보이지 않던 입체감이 보였던 기억그런 원근법이 그리 오래 전이 아닌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생겨난 거구나. 앞서 이야기한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하고 마사초라는 사람이 그림에 적용하였다고 하더구나.

르네상스 미술가들은 대부분 후원을 받았고, 그런 후원 아래서 미술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후원은 돈이 많은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대표적인 가문으로 메디치 가문이 있단다. 메디치 가문은 의사와 약재상으로 시작했으나, 이후에는 다양한 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성공하면 피렌체와 인근을 다스리는 대공이라는 지위까지 오르게 되었대. 이들의 막강한 후원을 통해 많은 미술가들이 성장했고, 도나텔로와 미켈란젤로도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시대마다 미술의 유행도 변하게 되는데, 15세기 후반 피란체에서는 관념론이 유행하면서 비너스 같은 감각적 주제의 그림이 유행했다고 하는데, 관념론과 비너스가 어떤 관계이지?^^

....

르네상스 미술가라고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빠는 사실 그에 대해서 잘 몰라. 그저 몇몇 유명한 작품들의 작가로만 알고 있지. 그런 그의 작품 중에 청동 기마상이라는 것도 있다고 하는구나. 아니, 있을 뻔 했다고 하는구나. 높이가 무려 7.5미터에 달하는 이 기마상은 스포르차 가문을 기념하기 위해 계획했으나 끝을 보지 못했다는구나. 실험정신이 대단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완벽주의자이다 보니 미완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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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사실 레오나르도의 생애에서 이런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습니다. 뭐든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작업 기간이 한없이 길어지다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는 프로젝트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치게 완벽주의자였던 작가 개인의 문제였는지 아니면 대작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줄 만한 아량을 가진 후원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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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계획했던 청동기마상은 그 설계도가 남아 있어서 현대에 와서 미국의 어떤 작가가 실제로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엄청난 크기인데 뛰어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더구나..

, 이렇게 르네상스를 다룬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5권의 이야기를 마무리를 해야겠구나. 역사가 발전하면서 미술도 발전한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고, 인간에 있어 예술과 미술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고, 책 속에서 본 건축물과 미술작품들은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단다. 중간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전세계를 2년 가까이 장악한 코로나 바이러스.. 그것은 이미 우리 삶의 모습을 많이 바꾸어 놓았고, 앞으로도 더 많이 바꾸어 놓을 것 같구나. 이젠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가라고 하지 말고, 같이 살아줄 테니 힘 좀 빼라고 이야기하고 싶구나. 감기 수준으로 힘 좀 빼고 같이 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종종 저에게 유럽 여행을 가면 어떤 미술 작품을 보고 오는 게 좋을 지 추천해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책의 끝 문장: 언제나 변화는 천천히, 그러나 광대하게 찾아오는 거죠.


스탕달 신드롬이 뭔데요?
미술 감상에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빠지면 겪을 수 있다는 증상입니다. 감상에 너무 몰입하다가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는데 심하면 실신에 이르기도 한다고 해요. 실제로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다가 겪게 되면서 알려진 증상입니다. 요즘도 피렌체 여행객 중에는 이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 P18

유럽인에게 후추는 그야말로 새로운 미각의 세계를 열어 주었습니다. 아예 맛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후추 없이 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 거죠. 그렇게 점점 유럽인들은 더 많은 후추를 낙타에 싣고 콘스탄티노플이나 알렉산드리아 같은 지중해 동쪽의 도시까지 가져와야 비로소 유럽의 상인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후추 값이 거의 금값이라고 할 정도였죠. - P32

그런데 이 옷 색을 한번 보세요. 커피에 우유를 탄 색처럼 보이지 않나요? 여담입니다만 프란체스코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는 ‘카푸친 수도회’ 사람들이 입었던 옷이 카푸치노 커피색과 똑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유를 넣은 커피에 카푸치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 P95

우리의 모든 꿈은 추진할 용기만 있으면 이뤄질 수 있다.
- 월트 디즈니
- P106

이성주의가 흑사병 때문에 나온다고요?
네,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르네상스 때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건 상당 부분 흑사병이라는 재앙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화가가 해부학을 연구한 이유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하고 관련이 있었던 겁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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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09 00: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약도 참 좋고 또 꾸준히 읽으시는 모습 👍 작가님이 빨리 7권도 내셔야 할텐데 말이지요 ㅎㅎ 안녕히 주무세요 ~

bookholic 2021-10-09 10:35   좋아요 1 | URL
설마 6권에서 배신하시는 건 아니겠죠?^^
코로나 때문에 현장 답사를 못하시나???

scott 2021-10-09 00: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 이번엔 흑사병이 돌던 시대 이네요!
르네상스 시대 의학이 발전 한것 처럼

내년 코로나 치료제 알약으로
우리 모두 마스크 없이 살았으면 ,,,,

bookholic 2021-10-09 10:36   좋아요 2 | URL
네, 내년에는 꼭 마스크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1)

솔직히 말씀드리건대 나는 꽤 오래 살았습니다.햇수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말이죠. 하지만 나는 아직 인생에 그리 싫증이 나지 않았으며 살해당하는 것으로 삶을 끝낼 생각이 없습니다. 나를 제거해보십시오, 그러면 장담컨대 로마는 독재관 카이사르보다 훨씬 더 나쁜 병폐들을 겪게 될 겁니다. 로마의 현상황은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독재관 직을 맡을 때와 다릅니다. 로마는 하나의 강력한 손이 필요하고, 그 손을 내게서 찾았습니다. 내 법들을 확립시키고 로마가 그 어느 때보다 위대하게 살아남을 거라는 확신이 들면 나는 독재관 직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일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며, 그때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경고하겠습니다. 내게 예전의 영광으로 공화국을 되돌려 놓으라는 부탁은 이제 그만하십시오.


(203-204)

문제의 핵심은 어느 특정 단체에 있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실패한 지점은 바로 그가 이 모든 일을 사실상 혼자 했다는 사실이었다. 독재관으로서. 그런데 로마에는 자기도 카이사르와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이사르가 독재관을 지내는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그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는 여생 동안 독재관 직을 유지해야 할 터였고, 그가 죽은 후 로마가 부디 충분한 교훈을 깨달아 후퇴가 아닌 전진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전진이란 말인가? 그것은 그도 몰랐다. 카이사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가 도입한 변화들이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를 따르는 자들이 그 훌륭함에 충분히 감화되어 이 변화들을 지속해나가리라고 믿는 것뿐이었다.


(231-232)

원로원 의원 여러분, 나는 이 우스꽝스러운 아첨을 당장에 그만두라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요구한 적도 바란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결코 받지 않을 겁니다. 이것이 나의 지시이며, 이 지시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합니다. 원로원에서 나를 로마의 왕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는 결의안이 통과되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로마에서 왕정은 폐지되었고 그 대신 공화정이 탄생했습니다. 나는 왕정을 혐오합니다. 나는 결단코 로마의 왕이 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합법적으로 임명된 로마의 독재관이며 이 독재관 직만이 내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325)

해방자들이 광기 어린 눈빛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브루투스는 손등에 흐르는 피를 멎게 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하지만 무언의 동의라도 한 듯 일제히 돌아서서 문을 향해 달렸다. 데카무스 역시 넋이 나가 있었다. 평의원들은 현장을 목격하자마자 이미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달아난 터였다. 그가 죽었다, 카이사르가 죽었다! 해방자들마저 정원으로 뛰쳐나오자 밖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공황상태에 빠졌다. 해방자들의 토가에는 선혈이 낭자했고 끈적끈적한 주먹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400)

편지를 끝맺기 전에 꼭 말해두어야 할 게 있다. 네가 상속받은 유산 말이다. 옥타비우스, 제발 유산을 물려받지 마라! 재산을 똑같이 나눠서 8분의 1만 받겠다고 하고 입양되는 것은 거부하렴. 이대로 유산을 받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짓이야. 너는 안토니우스와 해방자들과 돌라벨라의 등쌀에 올해를 넘기기 힘들 거야. 그들은 열여덟 살 어린애인 너를 박살대고 말 거라고. 안토니우스는 고작 어린애한테 밀려서 유산을 상속받지 못했다고 화가 나서 제정신이 아니야. 나는 그가 카이사르의 암살자들과 공모했다고까지 말하진 않겠다. 그랬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자가 도덕이나 윤리 따윈 없는 인간이라는 건 분명해. 그러니 널 만났을 때 카이사르의 유산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듣길 기대하마. 오래오래, 늙은이가 될 때까지 살아라, 옥타비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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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그리모의 특별 수업
엘렌 그리모 지음, 김남주 옮김 / 현실문화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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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풍월당 박종호 님의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단다. 그 시리즈에서 많은 음악가들을 알게 되었어. 클래식을 소개해주는 책이니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이미 유명한 작곡가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아빠가 알지 못했던 많은 연주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어. 그렇게 알게 된 연주자들 중에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그 연주자들에 대한 책들도 찾아보곤 했단다. 이번에 아빠가 읽은 <엘렌 그리모의 특별 수업>도 그런 책들 중 하나란다.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책이 품절이라서 구하기 어려웠고, 알라딘 인터넷서점의 중고 등록 알람을 설정을 해도, 알람이 오고 나면 바로 사라지곤 했어. 아빠처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지..^^ 그러다가 운 좋게 이번에 구할 수 있었단다.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이렇게 좋은 책이라면, 출판사에서 재출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단다.

엘렌 그리모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란다. 피아노 실력도 대단하지만, 아마 미모의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하지 않을까 싶구나. 하지만, 엘렌 그리모의 미모는 부수적인 것이고, 피아노 실력이 일단 대단하단다. 그리고 엘렌 그리모에게는 또 다른 독특한 별명이 있단다. ‘늑대를 키우는 피아니스트’. 늑대를 길들여질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늑대를 키우고 있다니늑대와 피아니스트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지만, 엘렌 그리모는 사라져가는 늑대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다는구나. 이 책에서도 보니, 엘렌 그리모는 직접 뉴욕 늑대 센터를 설립하여 늑대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는구나. 엘렌 그리모는 책들도 쓰곤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은 <엘렌 그리모의 특별 수업>이라는 책 한 권뿐이더구나.

아빠가 책의 좋은 구절이 있으면 발췌하곤 하는데, 이 책은 발췌한 곳이 수십 페이지나 된단다. 칼럼리스트 이동진 님이 책을 살펴볼 때, 책의 3분의 2 지점을 들쳐본다고 했어. 대부분의 작가가 그 시점에서 가서 필력이 떨어진다고 말이야. 아빠도 이동진 님의 그런 관점에 대해서 공감을 했단다. 그런데 이 책 <엘렌 그리모의 특별 수업>은 그런 점을 찾아볼 수 없었어. 끝날 때까지 좋은 글들도 공감하게 했단다. 엘렌 그리모가 음악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늑대를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글들이 가득 찼단다.


1.

유명한 피아니스트라고 하면 빽빽한 연주 일정이 잡혀 있는 것이 당연할 거야. 엘렌 그리모도 마찬가지였어. 그런데 뉴욕에서 연주 녹음 일정이 갑자기 취소되면서, 3주간의 공백이 생긴 적이 있었대. 그 동안 힘들고 빽빽한 일정 속에서 갑자기 생긴 여유힐링을 하기 위해 참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엘렌 그리모는 여행을 가기로 생각했단다. 그리고 몇몇 후보지를 생각했었는데, 그 중에 가장 무난한 유럽을 선택하고 이탈리아와 독일 등지를 여행하게 된단다. 그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었단다.

그런데 그 우연히 만난 사람들 치고는, 사람들이 다들 명상가 같은 사람들이었단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그렇게 친분을 쌓고, 그 사람이 부탁했다고 해서 한 번도 본 적을 없는 사람을 방문하는 등 아빠로서는 다소 어려운 모험 같은 만남을 갖더구나.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전부 삶을 깨친 듯한 이야기를 해 주면서, 엘렌 그리모의 힐링 여행에 큰 도움을 주었어. 그걸 글로 옮겨서 읽는 독자들도 같은 힐링을 느낄 수 있었고 말이야. 독특한 기행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책에서는 여러 좋은 문장들이 많이 실려 있단다. 그 중에는 몇 가지 소개를 해볼게. 너희들이 학생이다 보니 아래와 같이 좋은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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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5)

그러면 선생님, 어떤 학생이 좋은 학생, 최상의 것을 성취하는 학생일까요?”

간단하게 대답하지요. 이전의 지식을 답습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 학생, 그렇다고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을 만들어내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학생. 아울러……”

아울러?”

현재 존재하는 걸 포착할 채비가 되어 있는 학생, 순간의 신비를 관통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이지요. 그렇습니다. 좋은 학생이란 순간을 타는 곡예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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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학생이란 순간을 타는 곡예사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일까. 현재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말로 이해가 되는구나. 지금 이 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곡예사는 다칠 수 있으니 말이야.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이 이야기되는 것 같구나. 너희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이 있는데, 아빠도 어렸을 때 학교 가기 싫었으니,  공감하면서 안타까움만 느끼게 되는구나. 그런데 학교(school)이 여유(schole)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뜻밖이구나. 학교는 자유를 수련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 학교에서 하고 있는 것이랑 너무 상반되는 이야기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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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그런대로 애를 쓰긴 했지요. 학교(school)의 어원이 된 여가라는 뜻의 그리스어 스콜레(schole)’에는 시제가 없답니다. 자유의 시제인 셈이지요.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시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서, 뭔가를 배울 수 있도록 위한 것입니다. 학교는 자유를 수련하는 곳이고 학생이란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에게서 필요한 것, 잉여의 것을 덜어내는 존재입니다. ‘스콜레는 본질적인 시제인 셈이지요. 현실 속에 실재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여는 시제이자, 가장 인간적인 행위, 곧 글, 사랑, 세계의 발견 같은 영혼의 활동에 스스로를 내어주는 시제입니다. 스승은 가르침을 주지만 작품 역시 사랑을 가르치지요. 당신은 음악가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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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렌 그리모는 책들도 많이 읽는 것 같았어. 하기야 책들을 그렇게 많이 읽으니 이런 글들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엘렌 그리모처럼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어찌나 반가운지더욱 좋아하게 만드는구나. 언급하는 작가들마저 아빠가 좋아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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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140)

오랫동안 나는 톨스토이와 더불어 지냈고,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광란의 밤을 보냈으며, 독일 소설들과 더불어 때로는 격분하고 때로는 즐거워했다. 고갈되었다는 느낌이 들거나 속수무책의 악의와 맞닥뜨릴 때면 언제나 책 속에서 도움을 구했다. 책 속에서는 심술궂은 이들조차 저속하거나 비루하지 않았다. 책 속에서는 속속들이 어리석은 이를 거의 만날 수 없었다. 독서는 언제나 나를 언제나 지복의 경지에 이르도록 해주었다. 강렬한 감정, 다시 말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열정적인 가슴을 갖도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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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고 하면 짧은 이 여행을 통해서 엘렌 그리모는 한 단계 좀더 자른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된 것 같아. 자신을 한 단계 더 자라게 하는 이런 여행이라면 정말 값진 여행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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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진정한 엘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내 영혼의 가치에 어울리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아주 특별한 천분, 곧 자신만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삶을 산다는 뜻이다. 내 스타일은 피아노, 믿음, 글쓰기에 대한 희망이 아닌가. 내 몸은 또 다른 생명을, 음악을, 결혼을, 음을 품고 있다. 내게 도전하는 음악, 나를 충족시키는 음악은 나를 무화시킬 수도, 나를 나 이상으로 들어 올릴 수도 있다. “당신의 삶이 음악의 연장선상에 놓이기를.”이라고 그 교사는 초입에서 그는 나에게 열쇠를 주었다. 세상을 여는 그 열쇠는, 나누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황폐하다는 의미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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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늑대를 키우는 피아니스트답게 이 책에서도 늑대에 대한 에피소드도 실려 있고, 늑대를 예찬하는 글들도 실려 있단다. 늑대를 키우면서 늘 늑대와 친하게 지내고 엘렌 그리모. 예전에 콜로라도에 있는 어떤 낯선 늑대와 다큐멘터리를 찍을 일이 있었대. 그 당시 몇몇 우연이 모여서 늑대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하여 엘렌 그리모는 늑대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목과 엄지 손가락을 다치기도 했다는구나. 피아니스트에서 엄지손가락이 다쳤다면 큰 일인데 말이야. 다행히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 후에 잠시 트라우마도 있었다고 하는구나.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엘렌 그리모의 늑대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어. 늑대의 울음소리가 으뜸이라고 하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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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한밤중 달을 향해 울부짖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제겐 그렇답니다. 또 너울거리는 대양 속에 울려 퍼지는 고래의 노랫소리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늑대의 커다란 외침소리가 으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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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그리모에게 늑대는 음악와 동급이라고 하니, 엘렌에게 늑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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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136)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언제든 무력감이 솟구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절망이 엄습할 수 있다. 그럴 때면 온 힘을 기울여 자신을 통합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환기시켜야 한다. 그런 빛살, 그런 열정, 그런 문장 없이는 자신 안에서 그 무엇도 완벽해질 수 없다. 내게는 그것이 음악과 늑대인 셈이다.

어떤 행위에 속에 어떤 생각 속에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해서는 강한 에너지와 견고한 믿음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 무수한 상황들을 모두 통제한다는 것은 충족시키기 어려운 바람이다. 하지만 그런 바람 없이 기적은 과거에도 일어날 수 없고, 지금도 일어날 수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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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구한 책인 만큼 값진 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자유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지구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늑대, 영혼, 행복, 인생, 너희들 등등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구나. 오늘은 아무것도 안하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명상하듯 엘렌 그리모의 음악을 찾아 들어봐야겠구나. 찌든 영혼의 때 좀 걷어내기 위해서


PS:

책의 첫 문장: 나는 심한 허기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책의 끝 문장: 잠에서 깨니 정오였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수습하리라. 내게는 여유와 사랑과 고독이 필요했다. 그러면 은밀히 나를 괴롭히는 불안, 나를 압박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의문의 근원과 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 P18

그의 얼굴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 "행운이 함께해 집중할 줄 아는 학생들을 만났을 때 내가 그들의 마음에 새기고자 했던 게 바로 그거랍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공부하고 심화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무엇보다도 적절한 때에 ‘전인미답의 것’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이런 열의야말로 배움이고, 이런 배움의 과정 가운데 열심히 헌신하기만 한다면 인간은 최상의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현재 있는 것을 무시하지 않는 겸손,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오만을 가져야 하지요." - P43

"그렇지요. 많은 예술가와 영웅과 성자들이 그런 위대한 교훈을 주고 있지요. 자유로워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역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유로워지는 것은 위대한 창조의 알파벳을 배우기 위한, ‘지금 여기’에 낙원을 쓰기 위한 준비일 뿐입니다. 따라서 모든 글쓰기는 어쩔 수 없이 사랑의 편지가 됩니다. 시인 오든은, ‘글을 쓸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개념을 좀 더 밀고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오직 사랑 때문에 죽어야 하고 그런 죽음은 비극이 아닙니다. 인간이 뭔가를 창조하는 건 바로 이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서고, 그 창조가 끝나는 것도 오직 이 죽음에 의해서지요." - P50

"개개의 공간에는 독특한 소리가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도시를 생각해 보세요. 두 눈이 천으로 가려지고 청각만을 쓸 수 있는 상태에서 당신이 어딘가에 떨어졌다고 해보죠. 그렇다 해도 거의 즉각적으로 그곳이 프랑스의 어느 도시란 것 정도만 알 수 있을 거예요. 성당의 종탑에서 시간을 알리는 소리, 뛰어노는 아이들의 외침 소리, 아침마다 열리는 하수구의 물소리, 창문 아래로 지나가는 유리 장수의 외침 소리 같은 게 들릴 테니까요. 그것이 도시라는 것, 하지만 파리나 리용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소도시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대도시라면 줄곧 이어지는 자동차 소리, 전철이 우틍거리는 소리, 열차가 삐걱대는 소리, 소방대와 구급차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 상점이나 자동차의 경보음이 줄곧 들려올 테니까요. 가엾은 사이렌들! 과거에는 노래를 부르더니 오늘은 울부짖고 있네요." - P81

뉴욕을 떠나면서 나는 휴가, 곧 여행이 내게 필요한 휴식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상의 판에 박힌 일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빡빡한 일정이 표시된 시간표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나 자신에게 생각을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이란 사물함 속에 넣어두고 떠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끝에 이르러도, 극지나 적도에 가도 사람은 여전히 자기 고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옥이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다. - P119

고백하건대, 나는 잠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잠이 건방진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하게 대한다. 잠자는 것을 좋아하고 육체적으로 잠이 몹시 필요한 나는 아주 기분 좋게, 관능적인 쾌감까지 느끼면서 잠의 품에 안겨 몸을 웅크린다. 침대에 들어가 눕는 순간 내 몸은 서양가새풀이 된다. 가장 깊은 꽃잎 속까지 나는 잠을 초대한다. 하지만 종종 연주회에 대한 신경성 긴장이나 피로가 잠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친다. 그럴 때면 다가온다 해도 잠의 포옹은 표면적인 것에 머문다. 이따금 결합이 이루어지면 잠은 나를 일으켜 이끌어간다. 내 꿈은 그와 하나가 된다. - P183

구름에도 음악이 있다. 모차르트 소나타 같은 작고 둥근 흰 구름. 모리스 라벨과 에릭 시터 같은 풀어헤쳐진 긴 구름. 베토벤 같은 묵직하고 검은 안개구름. 브람스의 구름에는 성당의 하늘 같은 갈라진 틈이 있는데, 그 틈으로 빛줄기로 이루어진 붉은 광채가 비쳐 나온다. 그 광채가 어디에서 솟아나오는지는, 태양에서인지 지옥에서인지 혹은 희망에서인지 알 길이 없다. - P216

그렇습니다. 자유, 다시 말해서 원치 않는 것을 사랑으로 거부하고, 원하는 것, 받아들일 만한 것을 받아들이는 선택권 말입니다. 저는 불필요한 것들에서 벗어나 빛에 도달했습니다. 청빈의 정신을 넘어서만이 도달할 수 있는 빛 말입니다. - P235

갈매기 한 마리가 작은 배의 돛 위에서 웃음을 터뜨렸고, 세 마리 제비가 하늘을 가르며 태양을 향해 날아올랐다.
나는 나 자신을 축소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활짝 펼치고 싶었다.
또다시 나는 내 운을 시험해 보리라.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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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08 0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밤중 늑대의 울음소리 ㅋ구름에도 음악이 있다는거 그리모 음악연주뿐만 아니라 일상의 구도자 철학자 였네요 ^^

bookholic 2021-10-08 23:38   좋아요 1 | URL
훌륭한 음악가이자, 훌륭한 명상가였고, 훌륭한 환경학자인 것 같았어요...^^
 















(64)

적은 외국의 문화권에서 오는 것이지 나와 같은 민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오, 대시종장. 상대라는 말이 더 낫겠군. 일반적인 표현에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단어니까. 아니, 나는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보복 대상으로 보지 않소.” 카이사르는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으나, 그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차가운 응어리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관용을 방침으로 삼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관용의 입장을 고수할 거요. 내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직접 찾으러 온 까닭은 진실한 우정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고 싶어서요. 아첨꾼들만 우글거리는 원로원으로 들어가는 건 딱한 노릇일 테니까.”


(203-204)

인색하게 굴지 마시오, 클레오파트라! 당신 돈을 써서 백성들을 먹이시오. 가난한 자들에게 비용을 떠넘기지 마시오! 로마가 무산자들과 별 갈등이 없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오? 전차 경주 입장료를 받지 말고, 아고라에 무료로 몇 가지 구경거리를 오릴 생각을 하시오. 그리스인 배우들로 이루어진 극단을 데려다가 아리스토파네스와 메난드로스같이 유쾌한 희극작가들의 작품을 공연하게 하시오. 일반 민중은 자기네 삶 자체가 비극에 가까워서 비극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한나절 잠깐이라도 웃으면서 걱정근심을 잊어버리고 싶어한다오. 공공 분수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설치하고 공중목욕탕도 몇 개 만드시오. 로마에서는 목욕탕에서 한 번 마음껏 즐기는 데 4분의 1세스테르티우스 밖에 들지 않소. 그 돈이면 사람들은 몸도 깨끗해지고 기분도 좋아져서 나가는 거요. 여름 동안 저 망할 새들을 관리하시오! 남녀 몇 명을 고용해서 거리 청소를 하고, 오물을 내보내는 하수구가 있는 곳마다 제대로 된 공중변소를 설치하시오.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는 관료들로 꽉 차 있으니 귀족은 물론 다른 인구까지 포함하는 시민 명부를 마련하시오. 또 빈민들에게 매달 밀 1메담노스를 받을 자격을 주는 곡물 목록을 작성하고 맥주를 빚어 마실 수 있게 보리 배급도 포함하시오. 당신이 소득으로 받는 돈은 썩어 없어지게 처박아두지 말고 고루 분배해야 할 것이오. 그 돈을 쌓아두면 경제가 붕괴하는 거요. 알렉산드리아는 이제 길들었지만, 계속 그 상태로 있을지는 당신 하기에 달렸소.”


(207)

나는 군주가 아니오! 로마에는 집정관과 법무관과 다수의 정무관이 있소. 독재관은 임시방편일 뿐, 다른 의미는 없소. 독재관으로서 로마를 바로 세우는 일이 끝나는 즉시 그 자리에서 물러날 거요. 술라가 그랬듯이. 내게 법적으로 로마를 지배할 특권은 없소. 그런 게 있었다면 로마를 벗어나지 않았을 거요. 당신이 이집트를 떠나선 안 되는 것처럼 말이오.”


(340)

브루투스는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카이사르는 내전의 승자로서 권리가 있어. 이봐, 카시우스, 이번 전쟁이 로마 최초의 내전도 아니잖나. 우린 가이우스 그라쿠스 이후 최소 여덟 번 내전을 치렀고, 승자들은 고난을 겪는 법이 없었어. 물론 패자들은 그 반대였고, 지금까지는 말이네. 그런데 이제 카이사르라는 사람이, 과거는 과거로 기꺼이 묻어두려는 승자가 나타났어. 이런 승자는 처음이네, 카시우스, 처음이라고! 사면을 받는 게 어때서 그래? 사면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말로 부르게. ‘과거는 과거로 묻기도 괜찮아. 카이사르는 자네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하지도 않을 거고, 자넬 벌레처럼 본다는 인상도 주지 않을 거야! 그는 내게 더할 수 없이 친절했네. 내가 잘못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조차 않는 것 같았다니까. 그가 나를 위해 사소한 무언가라도 해줄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느낌을 받았어. 정말이지 카이사르는 그랬다네, 카시우스! 마치 폼페이우스의 편에 선 게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각자 서야 하는 편에 서는 것이 모두의 권리라는 것처럼 말이네. 카이사르는 지극히 예의바른 사람이야. 그는 남들을 하찮게 보이게 하거나 그렇게 느끼게 해서 본인을 드높이겠다는 필요를 전혀, 조금도 느끼지 않아.”


(383)

베니, 비디, 비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이 말을 모토로 삼을까 생각중이네. 이 말에 들어맞는 상황이 걸핏하면 생기는데다 간명한 표현이기까지하니 말이지.


(386)

내 말이 무정하고 다소 경박하고 답답하게 들린다는 것 아네. 하지만 난 몰라볼 정도로 변했어, 마티우스. 한 사람이 반드시 필적할 자가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갈 필요는 없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네. 나와 치열하게 경쟁할 만한 사람들은 다 죽었어.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가이우스 쿠리오. 마르쿠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파로스의 등대가 된 기분이야-자기의 반만큼 높은 것조차 전혀 없는 등대 말이지. 이런 걸 원했던 건 아닌데, 내겐 선택권이 없었어.


(532)

게다가 <파이돈>은 또 뭔가? 스타틸로스한테서 이야기를 듣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지만, 카이사르가 스타틸로스를 곧 브루투스한테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낌새를 보이자 그 끔찍한 자살의 전모를 샅샅이 듣게 되었다. , 카토의 그 담금질할 강철 같은 불굴의 페르소나가 속으로는 완전히 부스러졌다는 걸 알게 되니 기분이 무척 좋은걸. 죽을 때가 되자 카토는 죽기를 두려워했어. <파이돈>을 읽어 자신이 영원히 살 것임을 스스로에게 확신시켜야 했던 거지. 거참 흥미롭군. 그리스어로 쓰인 가장 아름답고 시적인 저서 중 하나지만, 그 책을 쓴 사람은 제삼자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지. 저자도, 최고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논리와 합리성, 상식에 있어 타당하지 않아. <파이돈>, <파이드로스>, 그 밖의 책들도 궤변으로 때로는 순진한 거짓으로 점철되었고 케케묵은 철학적 죄를 저지르고 있어. 다시 말해 그들은 진실이 아니라 자기들 입맛에 맞는 결론에 도달한다. 스토어 철학보다 더 편협한 철학이 어디 있겠나? 그 외의 어떤 정신적 강령이 그렇게 완벽한 미치광이를 그토록 성공적으로 탄생시킬 수 있겠는가?


(533)

, 하지만 카이사르의 인생은 갈수록 고독해지고 있다. 카토, 비불루스, 아헤노바르부스, 렌툴루스 크루스, 렌툴루스 스펜테르, 아프라니우스, 페트레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쿠리오까지 다 죽었다. 로마는 과부들의 도시가 되었고 제대로 된 카이사르의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카이사르에게 동기부여가 될 반대 없이 그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가? 하지만 절대, 절대로, 그의 군대로부터 반대를 당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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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29 00: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가장 재밌는 부분만 발췌!

시월의 말 아끼며 읽었습니다 ^ㅅ^

bookholic 2021-09-30 08:06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
어느덧 구월의 마지막날이네요...
구월 마지막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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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의 소설들을 가끔 살펴본단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보다 보니, 우리 나라 젊은 작가들이 많고, 그들이 다루고 있는 소설의 소재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번에 읽은 천선란 님의 <천 개의 파랑>도 인터넷 서점에서 살펴 보다가 알게 된 책이란다. 이 소설의 장르는, 책 제목에서는 유추하기 어려운, SF였단다. 젊은 작가들 중에 SF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 이들이 꽤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 소설은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탄 책이라고 하는구나. 아빠가 그 전에도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들을 읽은 적이 있었고, 그 작품들이 괜찮아서 이번 책도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있잖니이 소설이 아빠가 읽은 우리나라 SF 소설들 중에 가장 좋았단다. 소설이라는 것이 개인적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리긴 하는데, 아빠의 취향에 있어서 만큼은 이 소설이 가장 좋았어. 지은이는 천선란이라는 분인데, 이번 소설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추가해야겠구나. 더욱이 작가 소개에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라고 쓰신 것을 보고 더욱 호감을 갖게 되었단다. 천선란 님의 다른 소설도 더 찾아봐야겠구나.


1.

때는 서기 2035우리 일상에 휴머노이드라고 하는 인공 로봇이 상용화되어서 여기저기에 쓰이고 있었단다. 경마 대회의 기수도 모두 인공로봇으로 대체되었어. C-27. 이 휴머노이드도 그런 기수였어. 그런데 다른 기수 휴머노이드와는 조금 달랐어. 개발자가 실수로 개발중인 학습능력 소프트 칩이 장착되어 있었거든. 다른 기수 휴머노이드와 달리 좀더 사람에 가까운 그런 휴머노이드였어. 물론 C-27은 자신이 다른 기수와 다른 줄 모르고 있었지.

C-27이 경마장에서 탄 말은 투데이라는 이름을 가진 말이었어. 투데이는 한창 때 우승을 다투던 명마였는데, 이제는 전성기가 지난 말이었어. 경주 중에 투데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게 된 C-27은 일부러 말에서 떨어졌어투데이가 자신의 무게 때문에 힘들어 하는 줄 알고그런데 뒤에서 오는 다른 말들에 밟혀서 C-27는 고장이 나서 폐기처분 대상이 되었단다.

….

이 소설의 주인공 우연재. 열일곱 살. 엄마 보경, 언니 은혜와 셋이 살고 있었어. 엄마 보경은 젊었을 때 배우 지망생이고 몇몇 단편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어. 그런데 다니던 연기 학원에서 불이 나서 그만 얼굴에 화상을 입고 말았단다. 배우 지망생에게 화상이라니..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 화재 발생했을 때 보경을 구해준 소방관이 있었는데, 그 소방관이 바로 은혜와 연재의 아빠였단다. 그런데 어빠는 그만 큰 화재 진압 도중 돌아가시고 말았어. 그래서 셋이 살고 있는 거야.

엄마 보경은 연재의 외할머니가 하던 식당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단다. 언니 은혜는 태어날 때부터 척추 장애를 갖고 있었어, 지금은 경마장의 매표소에서 일하고 있었고, 언니 덕에 연재도 경마장에 자주 놀러 갔단다. 연재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소프트 로봇 개발의 영재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평범한 학생이었어. 그런데 연재가 경마장에 갔다가 우연히 고장난 C-27을 보게 되었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해서 받은 돈을 탈탈 털어서 그 고장 난 C-27을 사가지고 왔단다. 그것을 수리하려면 또 돈이 들어가지만 일단 가지고 왔어. 그리고 그 C-27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어. 콜리. 브루콜리에서 딴 이름 콜리.


2.

C-27의 짝꿍인 투데이도 전성기가 지가고 무릎을 다쳐서 더 이상 경주에 나갈 수 없었어. 경주에 나갈 수 없는 경주마들은 관리 비용을 충당할 수 없어서, 대부분 안락사를 하게 된대. 무릎을 다쳐서 경주에 나갈 수는 없지만 투데이는 아직 말 인생에 있어 젊은 축에 드는데 말이야. 너무 불쌍하구나. 투데이를 늘 지켜보던 은혜는 친하게 지내는 수의사 복희에게 투데이의 다리를 고쳐줄 없냐고 부탁했어. 복희는 경마장의 경주마들을 보살피는 수의사였거든하지만 안락사 하기로 한 날은 점점 다가오고, 투데이의 다리는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

연재의 학교 친구 중에 서지수라는 아이가 있었어. 부잣집에 공부 잘하는 아이이지만 연재와는 별로 친하지 않고, 친해지고 싶은 아이도 아니었어. 그런데 그 서지수가 연재에게 차세대 다르파제작하는 대회에 같이 나가자고 했어. ‘다르파는 인공 개 로봇이었단다. 연재는 친해지고 싶지 않은 지수였기 때문에 거절했지만, 지수는 계속 따라다니면서 부탁을 했어. 심지어 집까지 따라왔단다.

지수는 살갑게 구는 스타일이었어. 지수가 우연히 고장 나 있는 콜리를 보게 되었고, 자신이 콜리를 고칠 수 있도록 부품도 구해줄 테니 다르파 제작 대회에 같이 참가하자고 했단다. 거기서 입상을 하게 되면 대학 입학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지수가 거기에 그리 집착하는 것이었단다. 사실은 지수가 아니라 지수의 엄마가 집착하는 것 같았어. 아무튼, 콜리의 부품을 구해준다는 말에 혹해서 연재는 그러겠다고 했단다.


3.

연재의 엄마 보경은 고장 난 콜리를 가지고 온 것에 대해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고, 적대감을 가지고 바라 보았어. 그것도 돈 주고 사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욱 더 말이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콜리와 이야기를 하면서 위로를 받게 되었단다. 콜리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다른 휴머노이드와는 좀 다른 휴머노이드였잖아. 보경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에 콜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를 받고 외로움도 달래는 듯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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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보경은 콜리가 아닌 주방에 난 창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떼어낸다는 게 가능한가요? 그러다 죽어요.”

. 이러다 나도 죽겠지. 죽으면 다 그만이지, 하면서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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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데이를 살리는 것에 은혜와 연재,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총 동원되었어. 지수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왔고, 수의사 복희, 연재와 은혜의 사촌오빠인 신문기자 서진도 도왔어. 때론 신문기자 서진이 협박성 발언으로 경마장 관계자한테 이야기하기도 했어. 경마 조작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결국 투데이의 안락사 일은 2주 뒤로 늦추었고, 경마 경주에도 출전할 수 있게 허락을 받아냈단다. 비록 안락사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투데이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선물로 주고 싶었던 거야. 경주마가 가장 행복한 것은 달리는 것이니까 말이야. 투데이가 경주에 출전한다고 하면 기수는 당연히 C-27, 아니 콜리여야 했지. 그들은 남은 2주 동안 열심히 준비했단다. 일등이 목적이 아니고 행복하게 달리는 것이 목적인 그런 경주

그리고 콜리와 투데이의 마지막 경주이 책을 읽는 이들도 이들이 마지막 경주를 응원하게 된단다. 비록 투데이가 일등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말이야. 말이든 사람이든 로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한 것이니 말이야. 경주 도중 콜리는 다시 한번 낙마를 했어. 아마 투데이가 좀더 자유롭게 달릴 수 있도록 착한 콜리가 이번에도 일부러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콜리의 이번 낙마는 상반신까지 완전히 망가져서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단다. 투데이에서 떨어져 다른 말들에 밟히고 마지막 전원에 꺼지기 전에 바라본 파란 하늘에서 콜리는 행복을 느꼈을 거야. 그리고 후회 없는 삶이었다고도 느꼈을 거야.

….

안락사를 앞둔 마지막 질주를 한 투데이의 소식이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경주마들의 안락사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 올랐단다. 그리고 투데이를 살려달라고 하는 청원도 올라왔어. 결국 그 청원은 받아들여져 투데이는 제주도의 어느 목장에 가서 살 수 있게 되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이 천선란 님의 소설은 SF 소설이라고 하지만, SF적은 요소보다 사람 냄새가 더욱 풍기는 소설이었단다. 책 표지는 파란색 일색이지만, 참 따뜻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지난 여름의 끄트머리에서 읽었지만 따뜻함을 느꼈던 소설너희들도 조금만 더 크면 읽을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꼭 한번 읽어보고 너희들도 아빠와 같은 취향이길…^^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기수(騎手)방은 성인 한 명이 웅크려 앉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다.

책의 끝 문장: 파랑파랑하고 눈부신 하늘이었다.


물론 콜리가 스스로 깨닫거나 책에서 읽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책보다 더 정확하고 지혜롭다는 인간의 삶에서 나온 진리였다.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 P233

"틀렸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세상에는 원래 이유가 없었어. 인간들이 이유를 가져다 붙인 거지. 그러니까 순서를 따지자면 이유 없이 생겨난 게 먼저야."
"하지만 저는 틀릴 수가 없는데…"
"누구라도 틀려. 원래 살아가는 건 틀림의 연속이야."
- P313

인간의 눈이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콜리는 인간의 구조가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 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때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다른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으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맞았다. 어렵고 복잡했다. 하지만 즐거울 것 같기도 했다. 콜리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리라. 삶 자체가 연속되는 퀴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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