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장난이 아니라고. 개별 학생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학생의 뛰어난 점이 보였을 뿐이고, 내가 모두에게 A를 준 것은 무슨 얼치기 평등주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라 각 학생 고유의 두드러지는 점에 점수를 준 것이라고. 나는 어떤 학생이건 점수나 시험 성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느꼈다. 어떤 환자든 그렇게 할 수 없듯이. 그 학생의 다양한 면면을 접해보지 않은 내가 어떻게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그들의 공감 능력과 배려심, 책임감과 판단력 같은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자질은 또 무엇으로 평가한단 말인가?


(236-237)

나는 글쓰기 행위를 통해서 글을 쓰는 동시에 생각을 발견하는 쪽인 듯하다. 어쩌다 깔끔하게 딱 완성되는 글도 있지만 그보다는 수차례 다듬고 잘라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같은 생각을 여러 가지로 표현해보는 내 스타일 탓인 듯하다. 글을 쓰다 보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생각들이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와 문장 중간에서 글의 주제와 결합해 발전하곤 한다. 그런 경우에는 괄호 안에 넣거나 종속절로 덧붙여 때로는 문장 하나가 단락 하나 길이가 되기도 한다. 형용사 여섯 개가 쌓여 더 적확한 문장이 될 수 있는데 다 쳐내고 하나만 쓰는 것은 결코 내 방식이 아니다. 내가 느끼는 세계는 온통 촘촘하고 빽빽하기만 하다. 이것을 글에 다 담으려다 보니(클리퍼드 거츠(1926~2006, 미국의 인류학자)가 말하는) “두툼한 기술(thick description)”이 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글의 짜임새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쇄도하는 생각들에 도취해 올바른 구성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이다. 글쓰기에서는 때때로 냉철한 머리와 평정심으로 돌아보는 시간이 넘쳐흐르는 창조의 샘만큼이나 중요하다.


(453)

이처럼 뇌의 여러 영역에서 두루 일어나는 신경세포 발화의 상호작용과 동기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뇌 지도들 간의 무수한 연결점(시냅스 synapse)이다. 양방향으로 신호를 전달하도록 연결된 시냅스는 수많은 신경섬유로 이루어지는데 많으면 수백만 가닥이 되기도 한다. 어떤 의자를 손으로 만졌을 때 오는 자극이 한 세트의 지도에 작용한다면, 의자를 눈으로 보았을 때 오는 자극은 다른 세트에 작용한다. 한 의자의 지각 처리 과정에서 이들 지도 세트 사이에서 신호 재입력이 일어난다.


(475)

열네 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 현재 1,000권에 육박한다. 늘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형 일기장에서 큰 책만 한 것까지 모양도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나는 꿈속이나 밤중에 생각이 떠오를 경우를 대비해 항상 머리맡에 공책을 놔두고, 수영장이나 호숫가, 해변에도 웬만하면 한 권 놔둔다. 수영은 생각이 굉장히 활발해지는 활동이어서 특히 완성된 문장이다 단락으로 떠오르면 곧바로 나가서 써놔야 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었다.


(476)

편지 역시 내 인생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다. 편지는 쓰는 것도 받는 것도 다 좋아한다. 편지는 사람들, 중요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매개체다. 글쓰기가 잘 안 될 때도 편지 쓰기는 무리 없이 잘되는 경우가 많다. ‘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든지 간에 말이다. 나는 내가 받은 모든 편지를 보관할 뿐 아니라 내가 쓴 편지까지 사본으로 보관한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가령 처음 미국에 와서 많은 중대한 사건을 겪었던 1960년대)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위해 오래된 편지들을 다시 읽노라니, 이 편지들이 내 인생의 보물임을 새삼 깨닫는다. 잘못된 기억과 변덕스러운 기분으로 착각했던 온갖 오류를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477)

글쓰기는 잘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얻지 못할 기쁨이다.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잡념이나 근심걱정 다 잊고, 아니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오로지 글쓰기 행위에 몰입하는 곳으로, 좀처럼 얻기 힘든 그 황홀한 경지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쉼 없이 써내려간다. 그러다 종이가 바닥나면 그제야 깨닫는다. 날이 저물도록, 하루 온종일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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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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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마지막 열 번째 책을 읽었단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이라는 사람이 쓴 <푸른 십자가>라는 책이란다. 아빠는 지은이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사람인데 영국의 유명한 추리 문학의 거장이라고 하더구나.

그의 추리 소설은 주인공에 주요 탐정은 브라운 신부라고 하는구나. 마치 코난 도일의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셜록 홈즈처럼 말이야.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에는 그의 대표적인 단편 소설 4편이 실려 있단다. 낯선 작가의 낯선 제목이라서 어려우면 어쩌다 싶었는데, 아빠가 좋아하는 추리 소설이라는 소개를 읽고 기대 가득 책을 펼쳐 들었단다.


1.

첫 번째 작품 <푸른 십자가>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하는구나. 프랑스 경찰 발랑탱이라는 사람이 악명 높은 도적 플랑보를 쫓아 영국까지 오게 되었단다. 그를 쫓다가 플랑보가 신부로 변장했다는 것을 눈치챘어. 그가 키가 크기 때문에 키다리 신부를 추적했어. 그런데 그 키다리 신부를 본 사람들은 그 키다리 신부보다 그 옆에 있던 키 작은 신부를 더 기억해냈단다. 온갖 기행을 저지르고, 괴상한 사고를 쳤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와 더불어 옆에 키 큰 신부가 있었다고 이야기했어.

그 키 작은 신부님이 바로 브라운 신부란다. 브라운 신부도 그 키다리 신부가 플랑보인 것을 경찰들이 추적하기 쉽게 하려고 일부러 괴상한 사고를 쳤던 거야. 그러면 목격자들이 이상한 사고를 치는 신부 옆에 키 큰 신부가 있었다고 쉽게 기억을 할 테니 말이야. 그리고 브라운 신부는 플랑보가 훔치려는 푸른 십자가도 미리 빼돌리고 가짜 꾸러미 상자를 대신 놓았단다. 플랑보는 브라운 신부 쳐둔 덫에 걸려 경찰에 잡히고 말았단다. 브라운 신부는 플랑보의 계획을 다 눈치채고 있었는데, 그것은 브라운 신부가 고해성사를 통해서 범죄자들이 범죄 저지르는 방법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고 하는구나. 고해성사를 통해서 얻은 범죄의 노하우로 유능한 탐정이 된다는 설정이 재미있구나.,

두 번째 작품 <기묘한 발소리>는 브라운 신부가 얼마나 관찰력이 좋은지 알려주는 작품이란다. 브라운 신부가 어떤 호텔에 머물고 있었어. <참된 어부 열두 명>이라는 클럽이 파티를 그 호텔에서 했는데, 나이프와 포크 세트 등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런데 그곳에 브라운 신부가 있었어. 그 사건이 있긴 전 이상한 발소리를 들었던 브라운 신부그 발소리와 이 사건을 연관성을 찾아내서 사건을 해결하게 되었지. 다들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발소리에서 평소와 다른 패턴의 발소리를 듣고 그것으로 범인을 찾아내다니, 발상이 새롭더구나.

세 번째 작품은 <날아다니는 별들>이라는 소설이란다. 어쩐 부자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날아다니는 별들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신의 다이아몬드를 구경시켜주었어. 하도 많은 도둑들이 노려서 주인이 자주 바뀐다고 해서 이름을 날아다니는 별들이라고 정했다고 하는데, 그런 걸 알면서 주인은 왜 그 다이아몬드를 사람들에게 보여줬을까. 크리스마스 파티 행사로 무언극을 했는데, 그 행사 도중에 날아다니는 별들이 사라진 거야. 하지만 그곳에는 브라운 신부가 있었어. 단 한번의 추리로 범인을 찾아냈어.

네 번째 작품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소설이란다. 빵집에서 일하는 로라는 두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았단다. 스미스와 제임스라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스미스는 편지를 로라에게 보냈고, 제임스는 아무 소식이 없었어. 그런데 어느날 제임스의 웃음소리만 들렸단다. 그리고 로라는 스미스와 결혼하면 스미스가 죽게 된다는 협박 편지를 받고, 스미스는 진짜로 살해를 당하게 돼. 경찰이 동원하여 범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범인은 찾을 수가 없었단다. 하지만 브라운은 단번에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돼. 범인은 바로 보이지 않는 사람. 투명인간이냐고? 그게 아니라 여기서 보이지 않는 사람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인 것을 말해. 그러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존재가 너무 미미해서 선뜻 떠올릴 수 없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범인이었던 것이란다.

….

아빠는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소설들을 처음 읽어보았지만, 이야기 구성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주인공 브라운 신부의 예상치 못한 행동그가 너무 천재라는 것은 약간의 흠…^^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소설들을 더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이로써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10권을 모두 읽었구나. 주말마다 한 권씩 언제 읽나 싶었는데, 금방 시간이 흘러 다 읽었구나.(마지막 두 권은 한 주에 2권 읽었단다~) 이제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를 읽어야겠구나. 라인업을 보니,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만큼 화려한 라인업이구나. 기대되는구나.


PS:

책의 첫 문장: 은빛 아침 하늘과 반짝이는 초록 바다 사이로 배 한 척이 하리치항에 들어와 파리 떼처럼 보이는 승객 무리를 내려놓았다.

책의 끝 문장: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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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18 08: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눈 세트를 다 읽으셨군요~!! 곧 미드나잇 세트도 다 읽으시겠네요. 전 미드나잇 세트가 더 좋더라구요 ^^

bookholic 2022-05-18 08:33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읽기는 전에 다 읽었는데 게을러서 리뷰가 늦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페넬로페 2022-05-18 1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눈 세트 다 읽으셨군요.
전 아직 ㅠㅠ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은 저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영국에서는 그 입지가 탄탄하더라고요^^
북홀릭님께서는 언제나 독서에 부지런하시고 좋은 아빠이십니다^^

bookholic 2022-05-18 21:3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noon새트 읽으면서 새로 알게된 작가, 작품들 좋았어요~~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이름이 길어서 외워질지 모르겠지만 잘 기억하고 있다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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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아홉 번째 책은 아서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 3개를 엮은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이란다. 표제작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이외에 <보헤미아 스캔들>, <빨간머리 연맹>이 실려 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아빠가 학창시절 문구판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 여름의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주는 셜록 홈즈 시리즈는 여전히 아빠의 좋은 추억 한 켠을 자리잡고 있단다. 비록 줄거리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을 얼마 안되지만 말이야. 이 책에 실린 세 편은 모두 단편이지만, 짧고 굵은 재미를 주고 있단다.


1.

첫 번째 작품은 <보헤미아 스캔들>이라는 작품이란다. 결혼을 앞둔 보헤미아 대공이 찾아와 자신이 예전에 사귀었던 오페라 가수 아이린 애들러가 예전에 같이 찍은 사진으로 자신을 협박하고 있다고 이를 해결해 달라는 의뢰였단다. 그런데 그 가수가 지금은 은퇴하고 런던에 살고 있다고 했어. 지금 같아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옛날에는 결혼을 앞둔 이에게 이런 일은 큰 스캔들이었나 보구나.

홈즈는 목사로 변장하고 아이린에게 접근을 하고 왓슨과 연기를 해서 아이린이 사진을 어디에 보관하는지도 알게 되었지. 아이린도 아이린 나름 이유가 있었고, 지금은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보헤미아 대공을 괴롭히지 않겠다면서 길을 떠났단다. 그런데 아이린도 변장을 하고 홈즈를 미행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겼어. 홈즈가 그런 아이린을 알아보지 못했고, 아이린이 남긴 편지를 통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홈즈가 목사로 변장한 것도 모두 알고 있었던 거야. 홈즈도 아이린의 지능에 놀랬단다.

….

두 번째 작품은 <빨강머리 연맹>이라는 작품이란다. 제목만 보면 <빨강머리 앤>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빨강머리 앤>과는 관련 없는 소설이란다. 전당포 주인의 새로 들어온 점원의 권유로 빨강머리인 사람만 할 수 있는, 쉽게 돈 버는 일을 소개해 주었단다. 빨강머리 연맹 사무실에 하루 4시간씩 출근해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손으로 베끼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면 주 4파운드를 준다는 거야. 전당포 주인이 빨간 머리여서 점원이 그에게 알려 준거야. 많은 지원자가 몰렸지만, 전당포 주인이 합격을 하고, 전당포 주인은 날마다 가서 백과 사전을 베꼈단다.

그렇게 8주 후 어느 날 빨간 머리 연맹의 사무실은 닫혀 있었고, 빨간 머리 연맹은 해체되었다고 적힌 안내문을 보게 되었어. 이 이상스러운 빨간 머리 연맹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홈즈는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게 된단다. 전당포 옆에 은행이 있었고, 그 은행에서 돈을 훔치기 위해서는 전당포 바닥을 파서 은행의 금고까지 가려고 했던 거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당포 주인이 자를 비워야 하고, 그래서 그를 돈으로 꼬드겨서 이해할 수 없는 <브리태니커 백과 서전>을 베끼게 했던 것이란다. 생각이 기발하더구나. 이 책에 실린 세 편 중에 가장 재미있던 소설이었단다.

세 번째 작품은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이란다.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남군으로 참가했던 오펀쇼라는 사람이 주인공인데 그는 영국의 한 시골에서 지내고 있었어. 그런데 그에게 다섯 개의 씨앗이 들어 있는 봉투, 그 봉투의 겉에는 KKK가 적혀 있는 봉투를 받았단다. 그 봉투를 받고 난 오펀쇼는 공포에 질려 유언장을 다시 쓴단다. 그리고 홈즈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이내 오펀쇼를 살해당하고 말았어.

KKK는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단체로, 미국 남북 전쟁 이후 흑인들이나 흑인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테러를 일삼던 단체였단다. 오펀쇼도 남북 전쟁 당시 KKK와 연루된 일이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가 죽음으로써 그 사건을 밝혀내지 못했단다. 홈즈는 그들을 추적을 해서 그들이 어떤 범선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배는 폭풍우로 대서양에 침몰하는 바람에  결국 사건의 진상을 알 수 없었단다. 셜록 홈즈의 미제 사건 중에 하나로 남은 소설이란다.

이렇게 간단히 이 책에 실린 셜록 홈즈 단편 3개를 소개해 보았단다. 단편이라서 이야기가 중간에 끊긴 감도 없지 않지만, 셜록 홈즈의 위트와 명석한 추리를 보는 재미는 단편도 만만치 않구나. 올해는 셜록 홈즈 전집에서 또 한 권 꺼내 읽어봐야겠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셜록 홈스에게 그녀는 항상 <그 여자>였다.

책의 끝 문장: 우리가 론스타호의 운명에 관해서 알게 된 것은 이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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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2)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부부 간 애정이 넘쳐 나고 가구며 그릇이며 침구며 모두 새롭기만 했던 신혼 시절은 아내가 임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매우 행복하게 흘러가서, 이반 일리치는 결혼이란 것이 자신이 전에 누리던 생활, 즉 편안하고 유쾌하며 즐거운 데다 사회의 인정을 받는 고상한 생황을 망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내가 임신한 지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무언가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롭고, 불쾌하고, 힘들고, 고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그런 종류의 일이었다.


(53)

그는 의사를 찾아갔다. 모든 게 예상한 대로였다. 병원에서 으레 벌어지는 상투적인 일들이 여기서도 그대로 벌어졌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그리고 이반 일리치 자신이 법정에서 짓는 것과 똑같아서 전혀 낯설지 않은 저 근엄한 척 무게 잡는 의사의 표정도 예상과 똑같았다. 이곳저곳 두드려 보기, 청진기 대보기, 뻔한 답변을 요구하는 중요치 않은 질문 던지기조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맡기세요, 우리가 전부 다 알아서 합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다 잘합니다. 누구든 다 똑같이 잘해 드립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심각한 표정도 똑같았다. 모든 것이 법정에서 벌어지는 것과 똑같았다. 그가 법정에서 피고를 앞에 두고 짓는 표정을, 이 저명한 의사가 그의 앞에서 똑같이 짓고 있었다.


(75)

그는 그 생각의 자리에서 새로운 생각들을 차례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의지할 데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죽음에 대해 잊어버릴 수 있도록 자신을 지켜 주던 지난날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때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고 감싸 주고 지켜 주던 예전의 모든 생각들이 이제는 더 이상 효과가 없었다. 그래 들어 이반 일리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차단해 주던 이전의 감정 상태를 복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일하자, 일을. 나는 일 덕분에 사는 사람 아닌가>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84-85)

사람들의 거짓말은 그를 고문했다. 그들은 모두가 알고 있고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을 인정해 주려 들지 않았다. 이반 일리치의 끔찍한 상태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이반 일리치 자신도 그 거짓말에 동참하게 만들려고 했다. 거짓, 거짓, 그의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행해지는 이 거짓, 무시무시하고 장엄한 죽음의 의식을 한낱 문병이니 커튼이니 식사에 나온 철갑상어니 하는 것들로 격하시키는 이런 거짓이 이반 일리치를 무섭도록 고통스럽게 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짓거리를 벌일 때면 <거짓말은 그만둬. 내가 곧 죽는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잖아. 그러니 제발, 거짓말만은 좀 그만둬>라고 여러 번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이상하게도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럴 기력도 없었다.


(103)

<너한테 필요한 게 무엇이냐?> 그가 맨 처음 들은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랬다. <필요한 게 뭐냐고? 무엇이 필요하지?>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무엇이냐고?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것. 사는 것.>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통증조차 못 느낄 정도로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귀를 기울였다.

<사는 것이라고? 어떻게 사는 걸 말하는 거지?> 영혼의 목소리가 물었다.

<그래, 사는 것. 예전처럼 편안하고 행복하게.>

<예전엔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어?> 목소리가 물었다. 그는 머릿속에서 자신의 즐거웠던 삶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하나씩 되새겨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즐거웠던 삶에서의 좋았던 순간들이 이제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104-105)

결혼…… 뜻하지 않게 했던 것. 환멸, 아내의 입 냄새, 애욕, 위선! 이 생명력 없는 업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1, 2, 그리고 10, 20. 언제나 똑 같은 삶. 살면 살수록 생명은 사라져 가는 삶. 그래, 나는 산에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랬었던 거야. 분명 사람들 눈에 나는 올라가고 있었어. 하지만 정확하게 그만큼씩 삶은 내 발아래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다 끝났어. 죽는 것만 남았어!


(113)

전에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여겼던 생각, 즉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으신 분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에 저항하고 싶어 했던 한때의 희미한 충동, 그러나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곧바로 떨쳐내 버리곤 했던 그 충동만이 진짜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업무, 그가 삶을 살아온 방식, 가족, 사회와 직장에서의 이해관계 같은 것들이 모두 잘못된 것일지도 몰랐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변호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돌연 자신이 변호하려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허접하기 그지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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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당신의 문해력 (워크북 포함 한정판) - 공부의 기초체력을 키워주는 힘 EBS 당신의 문해력 시리즈
EBS <당신의 문해력> 제작팀 기획, 김윤정 글 / EBS BOOKS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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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가끔 EBS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엮은 것을 읽곤 한단다. 다큐멘터리를 찾아 볼 수도 있지만, 아빠는 활자가 더 익숙해서 말이야. 틈틈이 읽을 수도 있는 장점도 있고 말이야. 이번에 읽은 것은 <EBS 당신의 문해력>도 그런 책이란다. 문해력이라는 단어가 최근에 여러 매체상에서 많이 보이는데, 이 문해력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터 쓰기 했지? 최근 들어 많이 보긴 했지만, 많이 익숙하지 않은 말이거든비슷한 뜻으로 독해력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문해력이라니원래 있던 말인지 새로 만들어낸 말인지 잘 모르겠더구나. 누군가 새로 만들어낸 말이라고 하면, 이오덕 선생님을 존경하는 아빠로서는 마음에 안 드는 단어로구나. 정체 모를 한자어.

한자어를 그냥 풀어서 문해력이란 뜻을 이해해 보려고 하면 문자나 문장을 이해하는 힘? 이라고 생각드는구나. 이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독해력과 뭐가 다를까? 이런 생각을 했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문해력은 '단순히 글이나 문자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서, 이를 통해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이야기하고 있더구나. 독해력을 좀더 확장한 개념처럼 보이는구나. 책을 읽은 것을 이용해서 사회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능력. 드물겠지만, 책만 많이 읽었지, 수구 꼴통이나 사회악이 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런 사람은 독해력은 좋으나 문해력이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이번에 읽은 책은 거의 독해력과 비슷한 의미로 보였단다.


1.

우리나라는 한글이라는 쉽게 배우는, 위대한 글자가 있어서 문맹률은 무적 낮단다. 하지만 우리나라 글자로 이루어진 글을 읽으면서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문해력이 낮은 사람들이라고 했어. 사실 아빠도 가끔 글을 읽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어려운 문장들도 더 잘 이해하고 그 속에 숨은 뜻을 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러면 읽고 싶은 어려운 책들도 더 많이 읽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이 책을 읽고 나니 아빠가 왜 문해력이 떨어지는 알겠더구나.

이 책에서는 문해력을 좋으려면,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많은 책을 읽어야 하고, 늦어도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책을 많이 읽어서 문해력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아빠는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단다. 그나마 예전에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이 유혹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좀 읽어서 어느 정도의 문해력을 갖추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래도 확실히 책 읽는 양은 적었어. 그래서 이 책의 기준이라면 문해력의 기초를 튼튼하지 못한 것이었어. 어른이 되어서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어 읽게 되었지. 어른이 되어 책을 처음 읽을 때보다는 문해력 또는 독해력이 좋아진 것 같지만, 여전히 읽기 어려운 책들은 많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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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이야기하기를 문해력 발달의 골든타음은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하는구나. 디지털 지지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다행히 너희들은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싫어하지 않아서,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구나. 문해력 발달의 골든타음은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나름 그 시절 책을 많이 읽었지. 지금도 아빠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많이들 읽으시고

자신의 아이들이 어렸을 때 책 많이 읽고 그러면 좋아하지 않을 부모는 없을 거야. 하지만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강제로 책을 읽게 해서 즐거움 없는 독서가 된다고 하면 어떨까. 이 책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가이드를 주고 있지만, 마음 조급한,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켜주고 싶은 부모님이 그 가이드대로만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부모님들이 모두 독서 지도사 같은 전문가들도 아니고 말이야.

분명 부작용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가뜩이나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놀지 못하고 이것저것 배운다고 바쁘게 사는 아이들인데,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읽기 능력을 갖추어 한다고 하니, 그걸 잘못 이해해서 무조건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노는 시간까지 빼앗아 책을 읽히게 하는 부모님들도 있을 것 같아. 아이들의 노는 시간이 더 줄어드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구나. 문해력도 중요하지만, 건강과 기초체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아빠는 이 책이 별로였단다. 문해력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하고, 문해력이 높은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이 집중될 것이라고 단정짓듯 이야기하는 것도 별로 마음에 안 들었고 말이야.

우리는 그냥 즐거운 책 읽기를 하자꾸나. 재미있는 책 읽기, 행복한 책 읽기를 하자꾸나. 아빠는 가끔 어려운 책을 읽기도 하는데, 읽을 때는 힘들지만 다 읽고 나면 이런 책을 내가 읽었네, 하면서 성취감의 기쁨도 살짝 느껴지더구나. 너희들도 가끔은 너희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책들도 읽어보고재미는 살짝 없어서 읽고 나면 살짝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그러면서 독해력을 조금씩 키워보자꾸나.


PS:

책의 첫 문장: 2020 8 17일이 임시공휴일로 확정되면서 사흘이라는 단어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일이 있다.

책의 끝 문장: 아이들은 함께 읽기를 통해 책 읽기를 지속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예전에는 몰랐던 책 읽기의 즐거움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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