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 대부분의 원소는 최소한 우리에게 익숙한 보통 온도에서는 차가운 회색 고체 물질이다. 오른쪽 끝부분에 있는 몇몇 세로줄에는 기체 원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실온에서 액체인 원소는 수은과 브롬(브로민), 두 가지뿐이다. 금속 원소들과 기체 원소들 사이에는 정의하기가 다소 애매한 원소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러한 모호한 특징 때문에 이 원소들은 흥미로운 성질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화학 실험실에 보관돼 있는 것보다 수십억 배나 강한 산을 만들 수 있다.


(43)

각 가로줄을 수평 방향으로 지나가며 주기율표를 읽으면 원소들에 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며, 그나마 가장 좋은 이야기도 아니다. 같은 세로줄에서 수직 방향으로 늘어선 이웃들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계에 있다. 거의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사람들은 무엇을 읽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혹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길들여져 있다. 그렇지만 주기율표는 위에서 아래로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그러면 예기치 못했던 경쟁 관계와 대립 관계를 비롯해 원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주기율표는 나름의 문법을 갖고 있으며, 행간을 잘 살피면 아주 놀랍고 새로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48)

이런 난잡스러운 행동이야말로 탄소의 미덕이다. 산소와 달리 탄소는 가능하기만 하면 어느 방향으로건 다른 원자들과 결합된다. 사실, 탄소는 자신의 전자들을 최대 4개의 다른 원자들과 동시에 공유한다. 이러한 성질 덕분에 탄소는 복잡한 사슬 구조의 분자를 만들 수 있으며, 심지어 3차원 분자 그물까지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탄소는 전자를 다른 원자에게서 빼앗아오는 게 아니라 공유하는데, 이렇게 생겨난 공유 결합은 튼튼하고 안정하다. 질소도 맨 바깥쪽 전자 껍질을 가득 채우려면 다중의 결합을 해야 하지만, 탄소만큼 많은 결합을 할 필요는 없다. 앞에 나온 아나콘다와 같은 단백질은 원소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긴 분자를 만든다. 한 아미노산의 줄기에 있는 탄소 원자가 다른 아미노산의 끝부분에 있는 질소 원자와 전자를 공유함으로써 두 아미노산이 연결되는데, 이런 식으로 탄소와 질소가 무한히 연결된 사슬을 통해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59)

그러나 게르마늄의 운명은 순탄치 못했다. 1954년에 이르자 트랜지스터 산업이 급성장했다. 컴퓨터의 처리 능력이 수십 배 이상 증가했고, 휴대용 라디오 같은 새로운 제품의 생산 라인이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급성장기 동안에 공학자들은 실리콘에 미련을 갖고 연구를 계속했다. 실리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 중 일부는 게르마늄의 단점 때문이었다. 게르마늄은 전기를 아주 잘 통하게 하는 성질이 있는 반면, 바로 그 때문에 불필요한 열이 너무 많이 발생해 게르마늄 트랜지스터가 과열되어 작동이 중단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더 중요한 이유는, 흙보다도 더 싼 실리콘(모래의 주성분인)의 가격 경쟁력에 있었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게르마늄을 고수하면서도, 실리콘 트랜지스터 개발에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었다.


(74)

갈륨은 실온에서는 고체이지만 29.8℃에서 녹기 때문에,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 놓으면 녹아서 수은처럼 변한다. 갈륨은 액체 상태에 만져도 뼛속까지 살이 타지 않는 희귀한 금속 물질 중 하나이다. 그래서 갈륨은 화학 전문가들이 사람들에게 장난치고 싶을 때 선호하는 물질이 되었다. 많이 쓰이는 방법 중 하나는 알루미늄처럼 보이고 원하는 모양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갈륨으로 찻숟가락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뜨거운 차와 함께 손님에게 내놓고는, 손님이 찻잔에 담근 찻숟가락이 사라지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즐긴다.


(93-94)

목성 내부에 원소들이 이렇게 기묘한 형태로 존재하는(그다음으로 큰 행성인 토성에서는 그 정도가 좀 덜하다) 이유는 목성이 보통 행성이 아니라 별이 되려다 실패한 행성이기 때문이다. 목성이 지금보다 10배쯤 더 많은 물질을 끌어모았더라면, 일부 원자핵이 융합을 일으킬 만큼 충분한 질량을 가지게 되어, 행성에서 졸업해 낮은 에너지의 갈색 빛을 방출하는 갈색왜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태양계에서는 2개의 태양이 쌍성계를 이루어 존재할 것이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이런 상황은 그다지 기이한 것이 아니다.) 그러는 대신에 목성은 핵융합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해 식어버리고 말았지만, 원자들을 아주 촘촘하게 압축시킬 만큼 충분한 열과 질량과 압력을 지녀 원자들이 지구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행동을 보인다. 목성 내부에서 원자들은 화학 반응과 핵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가능성의 림보(limbo, ‘가장자리란 뜻인 라틴어 limbus에서 유래한 말로, 지옥과 천국의 중간에 있는 장소)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는 행성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나 기름 같은 금속성 수소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142-143)

가끔 이러한 이론적 종이 뭉치가 핵폭발이란 결과를 낳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는 성공한 것으로 쳤다. 하나의 계산이 끝나고 나면, 여성들은 곧바로 다른 무작위 수들을 가지고 다시 계산을 했다. 그것이 끝나면 또 다른 계산이 계속되었다. ‘리벳공 로지는 전쟁 기간에 산업 현장에서 일한 여성을 상징한다.(리벳공 로지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전쟁터로 나간 남자들을 대신해 산업 현장에서 일한 여성을 상징했다. 유명한 포스터에서 리벳공 로지는 소매를 걷고 우린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여성들은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승리와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 얻은 새로운 기술과 자유에 자부심을 느꼈다.-옮긴이) 하지만 엄청난 수치 자료를 일일이 손으로 계산한 이 여성들이 없었더라면 맨하튼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여성들은 컴퓨터라는 신조어로 불렸다.


(243)

질소는 그러한 시스템의 작동을 방해한다. 질소는 냄새도 색깔도 없으며, 혈관 속에서 산을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는 질소를 쉽게 들이마시고 내보내는데, 폐도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않으며, 질소는 우리의 어떤 심리적 인계철선도 건드리지 않고 자유롭게 드나든다. 질소는 체내의 보안 시스템을 무사통과해 돌아다니면서 우리를 자비롭게 죽인다.”(질소와 같은 족에 있는 원소들을 옛날에는 닉토겐족이라 불렀는데, 그 이름이 질식또는 목을 조름이란 뜻의 그리스어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게 재미있다.) NASA의 그 기술자들(22년 뒤 텍사스 주 상공에서 공중 폭발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컬럼비아 호에서 발생한 최초의 희생자들)은 질소 안개 속에서 머리가 몽롱해지고 몸이 처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33시간 동안 계속 일한 뒤에는 누구라도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으며, 아무 이상도 못 느끼고 질소를 들이마실 수 있기 때문에, 의식을 잃고 질소가 뇌의 작동을 멈추기 전까지 더 이상 정신적으로 다른 걸 느끼지 못했다.


(283)

주기율표의 역사가 정치로 얼룩져 있다면, 돈과의 관계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긴밀하다. 많은 금속 원소의 이야기는 돈의 역사와 얽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원소들의 역사는 위조의 역사와도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소, 향신료, 돌고래 이빨, 소금, 카카오콩, 담배, 딱정벌레 다리, 튤립 등이 돈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위조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에 금속은 위조하기가 쉽다. 특히 전이 금속 원소들은 전자 구조가 비슷해 화학적 성질과 밀도가 비슷하며, 서로 잘 섞이기 때문에 합금을 만들 때 다른 물질 대신에 쓸 수도 있다. 위조범들은 귀금속과 값싼 금속의 배합 비율을 달리하는 방법으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을 속여왔다.


(297-298)

20년 뒤, 한 프랑스인이 알루미늄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대규모로 추출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렇지만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기 때문에 알루미늄은 여전히 금보다도 비쌌다. 알루미늄은 지각에서 가장 풍부한 금속이지만(무게로 따질 때 약 8%를 차지해 금보다 수억 배나 더 풍부하다), 순수한 알루미늄광의 형태로 산출되지 않기 때문에 추출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알루미늄은 항상 다른 원소와 결합한 상태로 산출되는데, 대개 산소와 결합한다. 순수한 시료는 기적의 물질처럼 간주되었다. 프랑스인은 한때 대관식용 보석류 곁에 알루미늄 나이프와 포크를 내놓았다. (덜 중요한 손님에게는 금으로 된 나이프와 포크를 내노핬다.) 미국에서는 정부에서 일하던 공학자들이 1884년에 워싱턴 기념비를 세울 때, 미국의 산업 기술을 과시하고자 꼭대기에 무게 2.7kg 의 알루미늄 피라미드를 씌웠다. 한 역사학자는 그 피라미드에서 알루미늄을 1온스만 깎아내도 그것으로 그 작업에 투입된 모든 노동자의 일당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321)

리튬은 생체 시계를 제어하는 단백질을 조절한다. 생체 시계는 기묘하게도 뇌 깊숙한 곳의 특별한 뉴런들 안에 들어 있는 DNA가 작동시킨다. 매일 아침 사람들의 DNA에는 특별한 단백질이 들러붙었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면서 떨어져나간다. 그런데 햇빛이 단백질을 계속해서 되돌려놓기 때문에 단백질은 더 오래 들러붙었다가 단백질은 어둠이 찾아온 뒤에야 완전히 떨어져나가는데, 이 시점에서 뇌는 DNA가 벌거벗은 것을 눈치 채고자극 물질 분비를 멈추어야 한다. 그런데 조울증 환자의 경우, 햇빛도 없는데도 단백질이 DNA에 단단히 들러붙은 채 남아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긴다. 뇌가 달리는 걸 그만 멈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리튬은 DNA에서 단백질이 떨어져나가게 도와줌으로써 그 사람을 진정시킨다. 낮 동안에는 햇빛이 리튬을 이겨 단백질을 계속 되돌려놓으며, 밤이 되어 햇빛이 사라진 뒤에야 리튬이 DNA의 해방을 돕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리튬은 햇빛의 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 ‘햇빛과 반대되는작용을 한다. 리튬은 신경학적으로 햇빛을 없애고 그럼으로써 생체 시계를 24시간 주기로 되돌린다. 이런 작용을 통해 조증이 상승하거나 울증이 심해지는 것을 막는다.


(343)

오늘날 우리는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면서 이렇게 수선을 피운 걸 보고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가 보여준 그가 보여준 놀라운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뢴트겐은 자신이 뭔가 획기적인 것을 발견했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대신에 어딘가에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꼼꼼히 따졌다. 당황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증명하려고 연구실에 7주일이나 틀어박힌 채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조수들도 다 내보내고, 식사도 마지못해 억지로 삼켰고, 가족에게는 대화보다는 불평을 더 많이 했다. 뢴트겐은 크룩스나 메갈로돈 탐색자, 폰스와 플라이시만과는 달리 자신이 발견한 것을 알려진 물리학으로 설명하려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혁명가가 되길 원치 않았다.


(483-484)

그나저나 보통 사람들이 별 불편 없이 써오던 원소 이름을 왜 갑자기 바꾸자고 한 것일까? 미국 유학파가 다수인 대한화학회 관계자가 설명한 내용 중에 이런 게 있었다. 국제 회의 같은 데 가면, 우리나라에서 칼륨이나 나트륨으로 배운 사람들이 포타슘이나 소듐이라고 하면 헷갈려서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도 대학 때 원서로 화학을 배우면서 약간 헷갈린 경험이 있는지라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국제 회의에 참석할 정도면 머리가 상당히 좋은 사람일 것이다. 우둔한 나도 영어 원서를 계속 보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져서 전혀 불편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불편하다고? 그렇다면 수소와 산소는 왜 바꾸자고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평소에 하이드로전과 옥시전이라고 배워야 국제적으로 제대로 소통하지 않겠는가?    -- 옮긴이의 말 中에서


(487)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새로 바뀐 원소명은 일관성도 없고 표기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어서 뭐라고 평가할 수조차 없다. 주식 시장의 용어를 빌리자면 감사 의견 거절이다. 감사 의견 거절이 나오면 해당 주식은 상장 폐지되어 주식 시장에서 퇴출된다. 어쨌든 번역자의 양심상 이런 이름들은 도저히 쓸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름들을 이미 교과서에 쓰기 시작했다니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캘리포늄, 아인슈타이늄, 프로탁티늄만 바뀐 이름으로 쓰고, 나머지는 이전에 쓰던 이름을 그대로 쓰되 처음 한두 번은 괄호 안에 바뀐 이름을 병기하기로 했다. 번역자의 책임은 아니지만, 독자 여러분에게 혼란과 불편을 드려 괜히 송구스럽다. 대한화학회와 국어연구원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여 조속히 제대로 된 개선안을 내놓기 바란다.     옮긴이의 말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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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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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책은 카렐 차페크의 <평범한 인생>이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몇 달 전에 인터넷 알라딘 서점의 블로그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평을 해주어서 알게 된 책이란다. 그렇게 사람들이 좋은 평을 많이 하니, 귀가 얇은 아빠가 안 넘어갈 수 없지.

평범한 인생이라아빠도 지금까지는 참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란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어떤 평범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어. 더욱이 아빠가 좋아하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이기도 하니이 소설의 지은이는 카렐 차페크라는 사람으로,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까먹을 것 같은 낯선 이름이구나. 카렐 차페크는 체코 사람인데,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하니, 꽤나 유명한 사람인 것 같구나. 그의 이력 중에 독특한 것 하나. 카렐 차페크가 오늘날 모르는 사람이 없는 로봇(Robot)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고 하더구나. 이런 이력을 보니 더더욱 그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 같구나. 나중에 그의 로봇이라는 책도 읽어봐야겠구나.


1.

사실 평범한 사람의 일생은 아빠가 소설가라면 한 번쯤 써보고 싶었단 소재였단다.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자신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많겠지. 그러니 그런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않을까, 싶었단다. 재미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런 평범한 사람의 일생을 소재로 한 소설이 있었구나. 지은이 카렐 차페크도 그런 생각을 하고 썼을까? , 평범한 인생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하지만 그 반전이 평범하지 않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겠더구나.

어떤 평범한 사람이 죽고 자서전을 남긴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그는 죽기 전에 자서전을 씀으로써 자신의 삶을 정리하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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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는 여러 번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제 마지막으로 뭔가 익숙한 것을 할 수 있다는 편안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더 이상의 두려움은 생기지 않았고, 죽음의 느낌이 야기하던 놀라움은 익숙함과 친근함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으로 옮겨 갔다. 이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잠이나 휴식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대상으로 이름 붙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이미 그 길을 지나간 친구들을 만나길 희망하면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감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가 보다. 아마도 한 인간의 죽음이 중요한 경제적 사건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유언을 남기는 것일 게다. 그래,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나는 내 주변을 정리하려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또한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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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초반부는 예상했듯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어. 마치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기대하듯 말이야. 주인공의 이름이 안 나왔던가, 못 본 것 같구나. 주인공의 아버지는 나무를 다루는 장인인 소목장으로 작은 가게를 가지고 있었어. 주인공의 어머니는 그에게 사랑을 듬뿍 주시는 그런 평범한 어머니였어. 주인공은 어렸을 때부터 모나지 않고 학교생활도 모범적이었고, 공부도 잘하려고 노력해서 성적도 나쁘지 않았어. 대학교는 철학과에 입학했어. 아버지가 원하는 선생님이 데려고 말이지.

그런데 막상 대학을 가보니 주인공은 시인이 간절히 데고 싶었어. 하지만 아버지는 강력 반대를 했단다. 이 때 아마 처음으로 아버지에 반항을 했을 거야.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 부모님께 반항 한번 안 해본 평범한 사람은 없었을 거야. 그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철도청 공무원 시험을 보고 합격했어. 뭐냐, 결국에는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는 거냐? 시인은?

주인공은 철도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보니 적성에 맞는 것 같았어. 특히 세상의 끝과 같은 조용한 시골 역에서 일하는 것은 너무 좋았어. 그 시골역의 역장의 딸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그의 사랑에 빠진 그의 사랑에 대한 예찬은 외우고 싶을 만큼 공감이 가고 좋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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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04)

그러나 다른 면을 보자. 그것은 유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혀 유희가 아니었다. 위대하고 힘든 것이 사랑이다. 또한 가장 행복한 사랑일지라도 도가 지나치면 끔찍하고 부담스러워진다. 고통 없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으로 죽을 수 있고, 고뇌를 통해 사랑의 원대함을 측정할 수 있다면! 기쁨은 무한할 수가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너무도 행복했고 처절할 정도로 서로의 손을 꼭 쥐었다. 그대, 나를 구원해 주오. 나의 사랑은 너무 지나치오. 아직 우리 머리 위에 별들이 있고, 사랑과 같이 커다란 것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공간이 있어 다행이오. 우리는 침묵이 우리를 억누르지 못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자요, 안녕. 영원을 시간의 조각으로 찢어 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잠을 자지 않았고, 무거운 마음이 되어 사랑에 울며 목이 메었다. 빨리 날이 밝아 그녀의 창가에 인사할 수 있기만을 기다리는 시절이었다.

============================

결혼하고 나서는 장인어른이자 역장님이 잘 봐줘서 좋은 역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단다. 그리고 장인어른의 배경으로 젊은 나이에 역장이 되기도 했어. 역에서 일하는 것이 그의 적성에 딱 맞았어. 그렇게 일을 좋아하다 보니, 아내보다 일을 더 사랑하는 그런 일꾼이 되어버렸어. 전쟁이 나는 위기도 있었지만, 잘 넘겼단다.


2.

죽음을 앞두고 쓰는 자서전이다 보니 뜻하지 않게 며칠 동안 아팠기 때문에 글을 못 썼다.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고 나서 글을 다시 쓰기 했는데, 문체가 바뀌었단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서 약간은 객관적으로 써 내려갔는데, 이제는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쓰기 시작했단다. 겉으로 보여주는 자아가 아닌 자신의 몸 속에 숨겨져 있는 악인도 불러내서 말이야.

그 두 자아는 서로 말을 주고 받았어. 그 동안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자아는 사악한 마음을 갖고 있었고 더러운 욕망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선한 마음을 갖고 있던 원래 자아는 사악한 자아를 비판하면 설득하려고 했어. 이는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둘은 서로 상반되는 영혼의 소유자였어. 그런데, 소설은 갈수록 내 속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자아들이 나타나 자신의 목소리를 냈단다. 그의 자아에는 우울증 환자 자아가 있고, 그거 억척이라고 부르는 억척스러운 자아가 있고, 원래 평범하게 살아온 자아도 있었어. 그들은 주인공의 몸 안에서 서로 공존하며 살아왔던 거야.

============================

(201-202)

그건 우울증 환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는 어머니가 관련되어 있다. 어머니는 나를 응석받이로 만들었고, 나 자신 속에 있는 억척스러운 자아의 나약한 동생 같은 인물이 내게 형성된 것이다. 둘 다 분명 이기주의자들이었다. 그런데 억척이는 공격적이었고, 우울증 환자는 방어적이었다. 이 우울증 환자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소극적이었고, 오로지 안전한 생활만을 원했다. 그는 아무데에도 끼어들지 않으려 했고, 안전한 항구나 방풍막 같은 것만을 찾았다. 무엇보다 그 때문에 공무원이 되었고, 결혼을 했고, 자신의 주위에 울타리를 친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첫 번째 자아인 평범하고 착한 인간과 지내기가 가장 편했다. 규칙적으로 일하는 생활은 그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은신처를 만들어 주었다. 억척이의 불만에 찬 명예욕은 때로 우울증 환자가 느긋하고 편안히 지내는 데 방해가 되기는 했지만, 생활이 더욱 윤택해지는 데에는 쓸모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세 개의 삶은 서로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었으나 조화를 이룬 셈이었다. 평범한 자아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일을 했고, 억척스러운 자아는 그 일을 상품화하면서 한눈팔지 않고 이 일은 하고 저 일은 하지 말라는 지침을 정해 주었으며, 우울증 환자인 자아는 가장 괴로워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우울증 환자인 자아는 가장 괴로워하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았고 모든 일을 적당히 처리했다. 그처럼 세 개의 상이한 본성이었지만 서로 불화하지는 않았다. 말없이 타협했고, 아마도 서로를 배려하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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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내 안에 숨어 있던 자아는 그 숫자가 더 늘어나게 된단다. 결국 주인공은 깨닫게 된단다. 사람은 사람들의 집합이라고그 사람들의 집합에는 평범한 인간, 우울증 환자, 영웅, 억척이. 시인, 거지 등 많은 자아들이 뒤섞여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 그 중에서 승기를 잡은 자아가 겉으로 표출된다고 했어. 이쯤 되면 평범한 인생이 아닌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자신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안에 숨어 있는 여러 자아들이 있음을 인정하게 될 거야. 물론 아빠도 그렇고 말이야. 그래서 더더욱 이 소설에 공감이 갔던 것 같구나.

============================

(215)

사람은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집합 속에 평범한 인간, 우울증 환자, 영웅, 억척이 같은 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람은 그처럼 뒤섞인 무리로 이루어진 존재이지만, 이 무리는 같은 길을 가고 있다. 늘 그중 누군가가 앞장서서 한동안 길을 인도한다. 그가 지도자라는 걸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왕의 깃발을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 깃발에는 <내가 자아>라고 쓰여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가 나의 자아이다. 이건 간지 단어에 불과하지만 강력하고 거창한 단어이다. 그가 자아인 동안 그는 집합의 지배자이다. 그 후 또다시 누군가 무리 중의 다른 인물이 앞으로 헤쳐 나오고, 이제는 그가 왕기(王旗)를 들고 인도하는 자아가 된다. 이 자아는 단순히 명분일 뿐이며, 그런 깃발이 그저 이 무리의 단일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가정하자. 집합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공통된 표지도 필요하지 않으리라. 단순하고 단지 유일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을 사는 동물에게는 자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존재가 복잡하면 할수록 우리는 이 자아를 우리의 내면에 각인시키고 최대한 부각시켜야 한다. <여길 보라, 이것이 나의 자아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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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의 삶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게 되더구나. 자꾸만 아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고, 아빠의 속에 숨겨져 있는 자아들을 생각하게 되고, 만약 젊은 시절 선택의 기로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아빠를 이루고 있는 자아들은 다른 자아들이었을 것이고, 승기를 잡아 겉으로 표출된 자아도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아빠는 또 어떤 자아들이 생겨날까도 궁금했고, 너희들 몸 속에는 승기를 잡아 겉으로 드러난 자아 말고 또 어떤 자아들이 자리를 잡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

생각 거리도 던져주고 재미도 던져주고 좋았단다. 지은이 카렐 차페크. 정말 평범하지 않은 멋진 소설을 쓰셨구나. 그의 이름을 꼭 기억해야겠다. 그의 이름을 까먹지 않기 위해서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어. 검색을 해보자. 카렐 차페크. , 우리나라에도 그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있구나. , 제목 마음에 드는 거 장바구니에 일단 넣어 둬보자.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아니, 정말입니까?

책의 끝 문장: 의사가 중얼거렸다.


노신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친구가 죽었어. 그처럼 규칙적인 사람도 해내는 걸 보면 죽는다는 건 아주 평범한 일임이 틀림없겠군. 하지만 분명히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겠지. 아마 삶에 애착이 있었으니까 자서전을 썼을 게야. 그렇게 평범해 보이던 사람도 어느 날엔가는 훌쩍 세상을 뜨게 된다는 걸 누가 알겠나. - P9

하지만 인생이란 별난 모험이 아닌 일상적 법칙의 흐름이다. 삶에 나타나는 특이하고 비일상적인 것은 단지 삶의 바퀴가 덜컥거리는 소리일 뿐이다. 오히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찬미해야 옳지 않을까? 덜컥거림이나 비통함이 없고 산산이 부서지지 않았다고 해서 부족한 삶일까? 그 대신 우리는 많은 일을 해냈고,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임을 완수했다. 나의 삶은 전체적으로 보아 행복했고, 소심하지만 목가적인 삶에서 발견한 조그맣고 규칙적인 행복은 부끄러울 게 없다. - P20

지금도 아버지는 일을 하며 셈을 하고, 어머니는 걱정과 사랑의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으며, 나는 은밀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아이로 남아 있는 것이다. - P52

<행복한 청춘 시절>이라는 말은 얼마나 단순한 표현인가! 그런 표현과 더불어 우리는 분명 그 당시 건강했던 치아와 위장을 생각을 따름이지 고통스러워하던 영혼은 간과해버린다. 우리에게 그때처럼 긴 인생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즉각 우리의 존재를 바꾸려 할 것이다. 나는 그때가 내게 가장 불행했던 시기였고, 동경과 고독의 시기였음을 안다. 하지만 내가 변화하고 그 우울했던 청춘을 두 손으로 다시 붙잡는다고 해도, 나의 영혼이 또다시 그처럼 한량없이 절망하고 괴로워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 P57

유희란 진지한 일이며, 규칙과 구속력이 있는 질서가 유지된다. 유희는 어떤 것에 대해, 오로지 어떤 것에 대해 깊이 몰두하거나, 감미롭게 또는 열정적으로 집중하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몰두하는 것을 그 밖의 다른 것으로부터 격리하고, 그 규칙에 따라 구분하고, 주변의 현실에서 떼어 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놀이는 축소된 규모가 되기를 좋아하는 것이리라. 어떤 것이 축소되면, 그것은 다른 현실로부터 분리되고 그 자체로 더욱 넓고 심오한 세계가 된다.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는 우리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다른 세계로부터 우리 자신을 떼어 내는데 성공하여 우리를 구분하는 마법의 원 한 가운데에 있다. - P97

절약이란 수동적인 미덕이며, 안정된 생활에 대한 희구이자 닥쳐올 미래와 위기와 우연에 대한 두려움이다. 탐욕이란 잔인할 정도로 우울증과 유사하다. 아버지는 엄숙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자주 훈계를 했다. "공부만 해라, 얘야. 공무원이 되기만 하면 생활이 <안정>된단다. 그게 인생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란다. 확실한 기반과 안정과 자신감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것도 걱정할 일이 없지." 나무처럼 크고 강했던 아버지가 그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나약하고 응석받이인 아이가 어디에서 용기를 배웠겠는가? 내게는 어린 시절부터 그런 성향이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었으며, 육체적인 충격이 나타나자 겁을 먹고 움츠러든 나는 삶에 대한 방어적 두려움을 느꼈고, 그 두려움을 삶의 질서로 삼았던 것이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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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곡 소오강호 3
김용 지음, 박영창 옮김 / 중원문화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랜만에 김용 무협 소설을 읽다 보니, 예전에 읽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더구나.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십 년도 훌쩍 넘긴 시간들. 소설 속에서도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던 김용의 소설들. 또 시간이 지나고 미래의 어느 날, 오늘 읽은 이 소설들과 이 소설을 읽을 때의 감정들과 일상들이 생각나겠지.

소오강호 3권의 이야기를 다시 부지런해 해보자꾸나. 2권의 마지막 부분은 중상을 입은 영호충과 그를 간호해 주기 위해 육후아만 남고 화산파 사람들은 잠시 그들의 본거지를 떠나 있기로 했잖아. 그런데 얼마 뒤 악영산이 되돌아왔어. 아버지 악불군이 갖고 있던 자하비급이라는 책을 갖고 왔단다. 이 책에서는 자하신공에 대한 비법이 실려 있는데, 자하신공을 연마하면 영호충의 부상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 몰래 그 책을 훔쳐가 가지고 온 거야. 그 책만 전달해주고 악영산은 다시 돌아갔단다.

영호충이 정신이 들었을 때 육후아가 그 이야기를 하자, 자신은 스승님 몰래 자하신공을 익힐 수 없다고 거절했단다. 하지만 육후아는 그보다 사형의 부상을 치료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자하비급을 대신 읽어주었단다. 영호충은 하지 말라고 해도 육후아는 계속 읽어주자, 육후아를 잠시 움직이지 못하게 혈도를 누르고 그곳을 떠나버렸단다. 영호충은 그 정도로 바른 생활 사나이였고, 예와 전통을 중시했단다.

영호충은 가는 길에 의림과 의림의 아버지 불계화상을 만났단다. 의림의 아버지 불계화상은 스님이었지만, 결혼하지 말라는 격식 따위는 지키지 않는 스님이었어. 심지어 의림의 어머니도 비구니라고 했어. 불계화상은 영호충을 만나자마자 사위라고 하면서 의림과 짝을 맺으라고 해서 의림을 당황하게 했단다. 그런 와중에 다시 화산으로 돌아오는 악불군, 악부인, 악영산을 만났어. 악영산이 자하비급을 빼돌린 것을 알고 그것을 찾으러 가는 것이었어. 영호충도 함께 다시 화산으로 갔는데, 그곳에 도착하고 보니 자하비급은 사라지고, 육후아는 죽어 있었단다.

악불군은 자하비급을 영호충이 훔쳐갔다가 의심했지만, 영호충은 결백했어. 다만 잠깐 정신을 잃게 혈도를 누른다는 것이 실수로 육후아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큰 자책감과 큰 슬픔에 빠졌단다. 그렇다면 자하비급은 도대체 누가 가지고 간 것인지그들은 화산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다시 길을 떠나고 화산파의 다른 일행들과 만났단다. 그런데 복면을 쓴 열다섯 명의 괴한이 그들을 공격했어. 알고 보니 벽사검보를 빼앗으려고 왔던 거야. 임평지가 화산파에 있으니 벽사검보가 화산파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악불군과 악부인이 상대했지만 복면을 쓴 이들은 무공이 뛰어나고 숫자로도 역부족했어. 영호충은 자신이 중상을 입었지만,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는 단숨에 복면 15명의 눈을 공격하여 모두 눈을 멀게 했단다. 풍청양한테 배운 독고구검이 영호충 자신도 모르게 무공을 레벨업 시켰구나. 그는 복면을 쓴 15명을 공격하는데 기력을 소진해서 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단다.


1.

영호충의 검술을 바로 앞에서 본 악불군. 그가 그런 검술을 보인 것은 벽사검보를 영호충이 익혔을 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단다. 영호충도 스승님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마음이 아팠어. 그가 실력이 는 것은 풍청양한테 배운 덕분인데, 풍청양을 만난 사실을 이야기 않겠다고 약속을 해서 말도 못하고 말이야.

위기를 넘긴 화산파 사람들은 임평지의 외가에 들르게 되었어. 임평지의 외가 사람들은 영호충이 벽사검보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어. 그러면서 자기네 책이니 내 놓으라고 협박까지 했단다. 영호충은 없다고 하자, 강제로 몸까지 뒤져서 몸 속에 숨겨진 책을 하나 찾아낸단다. 그런데 그 책은 벽사검보가 아니었어. 그 책은 오래 전에 유정풍과 곡양이 죽으면서 남긴 악보인 소오강호지곡이었어. 그런데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임평지의 외숙부들은 그 책이 벽사검보라고 우겼단다. 영호충이 악보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를 않았어. 결국 주변에 있는 악사 녹죽옹과 그의 고모를 찾아갔어. 그리고 그들이 그 책은 금과 퉁소를 위한 악보라는 것을 확인해 주고 나서야 영호충은 혐의에서 벗어났단다. 이런 인연으로 영호충은 녹죽옹과 그의 고모와 인연을 맺었어. 그의 고모한테는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친해졌단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영호충도 금을 배우게 되었어.

다시 길을 떠난 화산파 사람들그런데 길에서 만난 이들이 자꾸 영호충을 도와주는 것이었어. 누군가 시킨 일이라면서 말이야. 살인명의라고 부르는 명의 평일지도 영호충을 도와주었어. 평일지가 살인명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가 못 고치는 병이 없어 다 고치는데, 그대신 조건은 한 사람의 병을 고치는 대신 한 명이 대신 죽어야 한다고 했어. 강호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평일지가 영호충을 치료했는데, 그도 영호충의 병은 어쩔 수 없다고 했어. 진료를 해보니 100일 정도 살 수 있다고 했어. 영호충은 자신 때문에 사제 육후아도 죽고, 사랑하는 악영산도 자신을 멀리하고, 스승으로부터 믿음도 잃고그래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여 100일밖에 못 산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슬퍼하지 않았단다.


2.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영호충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자꾸 나타난다고 했잖아. 그 중에 조천주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친구 노두자가 불치병에 걸린 자신의 딸을 살리려고 만든 진귀한 약을 훔쳐서 영호충에게 몰래 먹였단다. 영호충에게 약이라고 하면 안 먹을 것 같으니 몰래 먹인 거야.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영호충은 자신 때문에 노두자의 딸이 죽게 되었다면서, 자신의 피를 뽑아서 노두자의 딸에게 먹였단다. 자신의 피에 약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 피를 얼마나 많이 뽑았던지, 영호충은 그만 기절하고 말았단다. 순진하면서 착한 영호충이구나.

이번에는 오선교 남교주인 남봉황이 직접 영호충을 찾아와서 영호충을 치료하겠다면서 온갖 진기를 불어넣었단다. 이번에는 진짜 영호충이 기력을 많이 회복을 했단다. 그렇다고 그가 죽음을 면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데 도대체 영호충을 도와주는 사람들 뒤에는 누가 있는 걸까? 그렇게 영호충을 돕는 이들은 영호충을 오패강이란 곳에 데리고 갔단다. 그 숫자가 하나 둘 불어나더니 천 명 가까이 되었어. 그들이 모두 영호충을 보거나 영호충을 도와주기 위해 모인 거야. 영호충은 그들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 말이야.

오패강에서 명의 평일지를 다시 만나서 진료를 받았는데, 그동안 영호충을 진료하겠다고 하는 영웅들이 들이부은 진기들이 영호충의 몸 안에서 얽히고 설켜서 더 안 좋은 상태가 되었다고 했어. 이젠 정말 완치할 수 없다고 했어. 그러면서 생명을 좀더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그 방법이란 것이…. “술 끊어라, 여자 생각하지 말라였단다. 하하, 영호충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랑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니그것들을 하지 않다가는 영호충은 더 일찍 죽지 않을까 싶구나.

여기까지 대충 3권의 이야기란다. 영호충을 뒤에서 몰래 도와주는 이는 누구일까? 그 정체는 4권에서 나올까? 오늘은 여기까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육후아는 산 아래까지 사부와 사모, 여러 사형제들을 전송하고 외롭게 영호충이 있는 작은 집으로 돌아왔다.

책의 끝 문장: 그럴 바에는 일찍 죽는 게 낫고 그것이 대장부의 떳떳한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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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본 것을 그린다.”

뭉크가 남긴 많은 글 가운데 그의 예술을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문구이다. 뭉크는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처럼 풍경이나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대상을 관찰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 자신의 기억을 그리려고 했다.


(14)

뭉크의 예술은 그의 인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뭉크는 평생 외롭고 고독했다. 어린 시절엔 죽음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었고, 청년이 되어서는 사랑을 갈구하고 그에 집착했다. 비극적 이별과 좌절을 겪고, 병마에 시달리면서 정신병을 앓기까지 했다. 공황 장해, 우울증, 불면증, 정신 분열, 불안 장애, 환각, 피해망상 등의 정신병적 증상들은 뭉크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기에, 그는 자신에게 닥친 불운과 불행에 대해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했고, 자기 내면의 심연으로부터 그림의 대상을 찾았다. 대표작 <절규>를 비롯하여 <마돈나> <불안> <아픈 아이> <이별> <키스> 등의 모티프를 그는 몸소 겪은 경험에 가져왔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마치 그림으로 된 일기장을 보는 듯하다.


(22)

스물여덟 살의 뭉크가 그린 <칼 요한 거리의 저녁>(1892)은 뭉크의 불안정한 심리나 비관적인 태도가 잘 드러나는 그림이다. 아직 눈이 쌓이지 않은 늦은 가을 혹은 겨울 초입, 차라리 눈이라도 내려 쌓였더라면 거리의 불빛이 눈에 반사되어 조금은 환하고 포근한 느낌을 줄 테지만 눈이 본격적으로 내리지 않은 이 무렵은 노르웨이의 1년 중 가장 암울한 계절이다. 오전 늦게 뜬 해가 빨리 져서 초저녁인데도 어느새 거리는 어둡다. 색깔도 없다. 가로수의 잎도 다 떨어져버리고, 사람들도 짙은 색깔의 겨울옷을 꺼내 입어 도시 전체가 무채색이다.


(35)

뭉크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가는 아니었다. 당시 그는 진보적인 정치사상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입장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에게르가 당시 사회 관습에 정면으로 반하는 파격적 사상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또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후 화단에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혁신적 예술을 선보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55)

뭉크의 <절규>는 일그러진 얼굴과 독특한 분위기로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강한 인상에 압도당하고 만다. 해골 같은 얼굴에 늘어지고 비틀린 입과 턱, 강한 원색들이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움직이는 풍경은 당시 선호되던 아름답거나 숭고하게 느껴지는 풍경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절규>는 마치 환상 속이나 꿈속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그린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67)

표현주의는 이후 추상 미술의 탄생을 이끌었다. 뭉크의 영향을 크게 받은 청기사파의 바실리 칸딘스키는 이후 내면의 감정을 순수한 형태와 색으로만 표현하는 경지에 이르면서 형상을 완전히 해체해버리게 되는데, 이때부터 추상 미술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시대를 앞서갔던 뭉크의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는 동시대인들로부터 예술에 대한 모독 혹은 오만방자한 화가라는 혹평 세례를 받았지만 미술사 전체로 보면 현대 미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추상 미술을 탄생시키는 씨앗을 만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68)

노을 부분을 보면 아주 작은 한 줄의 글귀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라는 이 글귀가 최초로 발견된 건 1904년인데, 뭉크 자신이 썼는지 다른 이가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필체를 분석해 본 결과 뭉크보다는 관람객 중 누군가가 썼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103-105)

뭉크의 <아픈 아이> 또한 모티프상 이 시기의 베개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뭉크는 단지 이 모티프가 당시의 유행이기 때문에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 그리고 어릴 적부터 병약하여 생사를 넘나들었던 경험에서 나온 모티프였다. 그렇기에 <아픈 아이>에서 뭉크는 사실주의적 화법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 자신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드러내다 보니 기술적으로 이를 보완할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그저 자연을 관찰하듯이 볼 수는 없는 법이다.


(138-141)

스물한 살 젊은 뭉크에서 첫사랑 밀리는 사랑이라는, 그가 추구하고 탐구해야 할 예술의 구심점을 만들어 주었다. 검은 새끼 돼지 그룹에서 만난 율은 30대에 들어선 뭉크에게 여자의 관성성과 마력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30대 중후반에 만난 툴라는 뭉크에게 인생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예술을 담도록 자극한 여인이었다. 이들은 모두 예술가 뭉크에게는 다양한 자극을 주었던 반면, 한 인간으로서의 뭉크에게는 외로움과 상실감에 빠지게 했다. 밀리는 쫓아 크리스티아니아를 헤매던 청년 뭉크와 툴리와 관련된 모든 지인들에게서 멀어지고 싶어 크리스티아니아를 등진 중년의 뭉크. 뭉크의 인생은 이들과의 사랑과 이별을 통해 더욱 침잠하고 고독해졌다.


(150)

지금은 뭉크 덕분에 잘 알려진 곳이긴 하지만 여전히 오스고쉬트란드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작은 해변 마을이었다. 뭉크는 오스고쉬트란드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작은 해변 마을이었다. 뭉크는 오스고쉬트란드에 대해 낮은 언덕 아래에 피오르로 뻗은 만()이 있고, 일렬로 서 있는 노랗고 흰 나무로 지은 집들이 마치 치아 같다. 둥근 돌로 이루어진 해변 쪽으로 바닷물이 파도를 친다라고 묘사했는데, 100여 년 전 뭉크의 묘사처럼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물론 뭉크가 지내던 당시보다 훨씬 많이 발전하고, 고깃배들보다는 개인 보트들이 더 많아졌지만 뭉크가 묘사한 아기자기한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189)

베를린에서 뭉크는 채 4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절규> <불안> <뱀파이어> <마돈나>과 같은 작품 대부분을 완성했다. 검은 새기 돼지 그룹의 급진적이고 과격한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뭉크는 자신의 예술을 정립시켜 나갔다. 그리고 여러 전시회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렸을 뿐 아니라, 독일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뭉크 미술에 영향을 받은 이들은 이후 표현주의를 꽃피우고 추상 미술을 끌어내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72년 독일 국립 미술관은 독일 예술계 발전에 기여한 뭉크의 공로를 인정하여 뭉크의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 전시회는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에서도 열렸다.


(203)

1891년 여름, 뭉크는 노르웨이로 돌아와 오스고쉬트란드에서 방학을 보내고 늦은 가을이 되어서야 연장된 유학 3년차를 위해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 도착한 지 며칠 후, 건강상에 딱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뭉크는 다시 니스로 향했다. 니스에게 뭉크는 편안하게 그림도 그리고 휴양과 도박을 즐기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꽤 외로운 시간을 보낸 듯하다. 뭉크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얼마나 외로운가. 나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듣는 걸 오래전에 그만두었다. 왜냐하면 그 발소리들은 나를 찾으러 오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주길 간절히 바라는 듯한 뭉크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216)

뭉크는 <생의 프리즈>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그림들을 그릴 때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모아보았을 때, 각각의 그림들이 내용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그림들이 전시되자 그림들 사이에서 하나의 울림이 터져 나왔고, 그림들이 따로따로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교향곡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생의 프리즈를 그리게 되었다.”

- 뭉크의 노트(MM N 46, 1930~1934)


(262-263)

오슬로 대학 강당 벽화 작업은 뭉크 스스로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다. 대형 공공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뭉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생의 고통스러운 에피소드와 그 의미에 집중했던 반면, 오슬로 대학 강당의 벽화 작업을 하면서 인류와 민족, 지식과 역사 그리고 희망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젊은 시절의 깊은 방황,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끝없는 관찰과 집요한 탐구에 몰두했던 뭉크는 50대를 눈앞에 둔 중년의 나이에 이르자 더 큰 관점에서 인류와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시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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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기 쉬운 것들의 과학 꿈꾸는돌 22
태 켈러 지음, 강나은 옮김 / 돌베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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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한국계 미국인인 태 켈러가 우리나라 전래 동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로 뉴베리 대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작년에 그 책을 살 때, 태 켈러의 또 다른 책 <깨지기 쉬운 것들의 과학>도 평이 좋아서 같이 샀단다. 그리고 이제서야 읽게 되었단다.

, 아빠는 이번에 읽은 <깨지기 쉬운 것들의 과학>이 더 좋았단다. 그리고 이 책은 너희보다 살짝 나이가 많은 한 소녀가 주인공이고, 소설 내내 식물을 키우는 내용도 나와서, 얼마 전에 강낭콩을 키우고 있는 shon 생각도 나더구나. 이 책은 너희들도 재미있을 게 있을 것 같아, 꼭 한 번 읽어보렴.


1.

그러면 이 책의 이야기를 해줄게. 주인공은 내털리 나폴리이고, 아빠는 존이었는데, 아빠는 한국계로 한국 이름은 영진이었고 상담사로 일하고 있어. 아빠 존의 아버지,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이탈리아 사람이고, 아빠 존의 어머니, 그러니까 할머니가 한국 사람이었어. 내털리의 엄마는 예전에는 식물학자였는데, 지금은 아파서 계속 자기의 방에서만 생활했단다. 엄마의 병명은 심한 우울증이었어. 엄마의 병 치료 때문이지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고 늘 돈이 쪼달렸단다. 내털리의 가장 친한 친구는 트위그란 친구로 부잣집이었어. 그런데 사실 어렸을 때는 미케일라라는 더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멀어져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단다. 미케일라의 엄마는 멘저 교수이고, 내털리의 엄마는 멘저 교수와 같이 일했었는데, 그곳에서 해고되고 그 이후에 우울증에 걸렸어. 그것도 미케일라와 멀어지는데 한 몫 했지.

내털리의 엄마는 혼자 계속 방 안에만 있어서 내털리의 아빠가 요리도 다 하고 집안일도 다 했단다. 내털리는 처음에는 그런 엄마를 이해했지만, 십대 소녀로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 간혹 화를 내기도 했단다. 엄마가 예전의 모습을 다시 찾은 적이 있는데, 추수감사절 때 할머니가 왔을 때 잠깐 이었어. 할머니에게 자신의 그런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연기를 했던 것 같아. 할머니가 가시고 나자,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가셨단다. 내털리는 엄마가 침대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마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어.

엄마의 영향으로 내털리도 정서적으로 불안한 경우가 있어, 아빠는 내털리에게 병원에서 전문 상담을 받을 것을 권했고, 내털리는 그걸 싫어했지만, 아빠의 계속된 설득으로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상담을 했단다.


2.

하지만 착한 내털리는 엄마를 다시 예전의 엄마로 되돌리려는 방법을 알았어. 식물학자였던 엄마는 코발트블루 난초를 좋아했는데, 그 코발트블루 난초를 구해오면 엄마도 회복될 것이라 생각했어. 그 코발트블루 난초는 뉴멕시코에 있었어. 뉴멕시코까지 가려면 돈이 필요했고, 과학 선생님 닐리가 추천해준 달걀 떨어뜨리기 대회의 상금이 500달러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내털리는 그 대회 우승이라는 목표가 생겼어. 트위그가 같이 하자고 했고, 같은 반 친구 중 범생인 다리가 자기도 같은 팀으로 참가해도 되냐고 물어봤어. 트위그는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다리가 똑똑하기 때문에 같이 하기로 했단다. 다리는 팀원이 된 다음부터는 학교에서 과학실험을 할 때도 트위그와 내털리의 실험조에 와서 같이 실험했어.

내털리와 트위그와 다리는 집에 모여서 달걀 떨어뜨리기 대회를 열심히 준비했어. 아참, 달걀 떨어뜨리기 대회란 것이 무엇이냐면높은 곳에서 달걀을 안 깨지게 떨어뜨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란다. 아빠도 대학교 다닐 때 학교 축제에서 그런 이벤트를 했던 것 같아. 아빠는 참여해 보지 않았지만, 해보면 재미는 있을 것 같구나. 너희들도 한번 생각해 보렴… 3층 높이에서 달걀을 떨어뜨렸을 때 어떻게 하면 깨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내털리와 트위그와 다리는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실패했단다. 그들의 달걀이 깨지고 말았어. 내털리는 아직 코발트블루 난초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어.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 엄마가 일하던 대학교 연구소에 갔었는데 그곳에 코발트블루 난초의 씨가 있었거든. 몰래 그 연구소에서 코발트블루 난초의 씨를 가져오려고 했어. 트위그와 다리가 같이 가겠다고 했어. 용감한 십대들^^ 몰래 연구소에 들어가는 것까지 성공했고, 내털리가 코발트블루 난초로 알고 있던 식물에 독일 붓꽃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어. 그럼 그 동안 잘못 알고 있던 건가? 그리고 또 하나 진실을 알게 되었어. 엄마가 일하던 연구소에서 엄마의 책상과 사무실과 물건이 그대로 있었어. 그러니까 엄마가 그곳에서 짤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만 둔 거였어. 다시 이야기하면 연구소에서 짤린 것 때문에 우울증 걸린 것이 아니라, 우울증에 걸려서 연구소를 그만 둔 것이었지. 엄마의 책상과 물건이 그대로 있다는 것은 엄마가 다시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그것도 모르고 내털리는 그동안 오해를 해왔구나. 내털리와 트위그와 다리가 실험실에 있다가 그만 경비원에게 걸리고, 내털리는 멘저 교수와 아는 사이라면서 멘저 교수를 불러 달라고 했단다. 멘저 교수가 오자, 연구소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지금까지 멘저 교수가 엄마를 해고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다면서 용서를 빌었어.

내털리의 아빠와 엄마도 내털리가 엄마를 위해 한 일들을 알게 되었단다. 내털리의 아빠가 엄마의 병에 대해 내털리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어. 엄마가 우울증에 걸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서 이번에는 예전처럼 잘 이겨내고 다시 예전의 엄마로 돌아올 거라고 말이야. 엄마도 내털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단다. 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털리와 함께 하는 시간도 늘려갔어. 내털리는 덴저 교수 때문에 더 멀어졌던 친구 마케일라와도 오해를 풀고 화해를 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희망을 갖고 끝이 났단다. 우울증은 마음이 깨졌을 때 병이라고 생각해. 달걀이 깨졌을 때 그것을 원래 상태로 만들기 어렵지만, 마음이 깨졌을 때는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의 사랑으로 다시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수 있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혹시 우리 가족 중에 마음이 깨지는 일이 있다면 내털리와 내털리의 아빠처럼 사랑으로 잘 보살펴주자꾸나.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니까 말이야.

이 책의 목차를 보면 관찰, 질문, 연구 조사, 가설, 실행 계획, 실험, 결과, 결과 분석으로 되어 있는데 과학의 탐구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듯 해서 좋았단다. 중간중간 실험에 관한 삽화들도 나오고너희들도 이 책을 좋아할 것 같구나. 다시 한번 추천하면서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우리가 해야 할 첫 과제를 칠판에 구깃구깃한 글씨로 써 놓은 닐리 선생님은 우리에게 과학적 탐구 과정이란 것을 가르치기가 아주 신나는 모양이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 답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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