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3)

망가지고 손상되고 상처 나고 부서진 모든 것에 자꾸만 끌리는 것, 이것이 나의 증상이다. 시시한 것들, 뭔가를 만들다가 발생한 실수, 막다른 골목, 좀 더 발전할 수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선가 더 이상 뻗어 나가지 못한 것들, 혹은 그 반대의 경우, 즉 애초의 설계에서 너무 많이 확장된 것들 말이다. 표준을 벗어난 것, 너무 작거나 너무 큰 것, 넘치거나 모자라는 것, 끔찍하고 역겨운 것. 좌우대칭이 어긋난 모형,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사방으로 번식하고, 싹을 틔우는 것, 혹은 그 반대로 수많은 개체가 하나로 줄어든 경우도 그렇다. 반면에 통계 수치에 따라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 예를 들어 모두가 흡족한 표정으로 화목한 미소를 지으며 뭔가를 축하하는 풍경은 내게 아무런 흥미도 일으키지 못한다. 내 감수성은 기형학(畸形學)이나 괴짜를 향하고 있다. 나는 이런 기형의 상태 속에서 존재가 참모습을 드러내고 본성을 나타낸다는 고통스럽고도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갑작스럽고 우연한 출현. 당황해서 튀어나오는 아이쿠소리, 완벽하게 주름 잡힌 스커트 아래로 삐져나온 속치마 솔기. 벨벳 의자 덮게 밑에서 돌연 모습을 드러낸 흉측한 금속 받침대, 부드러움에 대한 환상을 뻔뻔하게 깨뜨린, 푹신한 안락의자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스프링 하나.


(40)

심장. 그 신비는 확실히 밝혀졌다. 주먹 하나 정도 크기의 고르지 못한, 더러운 크림색 덩어리. 칙칙하고 보기 싫은 잿빛이 감도는 크림색, 크게 바로 우리 몸의 색깔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나 벽지를 고른다면, 우리는 절대 그런 색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둠의 색깔이자 내부의 색깔이다. 햇볕이 들지 않고 물질이 낯선 시선으로부터 음습하게 자신을 감추는 내부. 아무것도 과시할 게 없다. 하지만 피가 돌기 시작하면 화려한 치장이 허용된다. 피는 경고이고, 그 붉은빛은 경고의 신호다. 우리를 덮고 있던 조개껍데기가 열리고 세포 조직의 지속성이 깨질 수도 있다는.

실제로 우리 몸의 내부에는 아무런 색깔이 없다. 심장이 원활하게 혈액은 펌프질 할 때 혈액의 색깔은 콧물과 같다.


(83)

하지만 시간에 대해 나는 의견이 다르다. 모든 여행자의 시간은 수없이 많은 시간이 하나로 모인 결합체다. 그것은 혼돈의 대양 속에서 정리된 시간, 섬과 군도의 시간이다. 기차역의 시계가 만들어 내는 시간, 가는 곳마다 달라지는, 그때그때 약속된 시간이자 자오선의 시간이기에 그 시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사라져 버리고, 먼동이 크기가 무섭게 오후와 저녁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온다. 그저 잠시 머무는 대도시에서의 빡빡한 시간은 하룻저녁을 송두리째 바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비행기에서 목격할 수 있는, 인적 없는 평원의 느긋한 시간이 있다.


(108)

뭔가를 글로 묘사한다는 건, 그것을 사용한 것과 비슷해서 결국엔 그것을 망가뜨리게 된다. 색깔이 엷어지고 모서리는 닮아서, 글로 적어 놓은 것들은 결국 희미해지고 사라져 버린다. 특히 장소에 관한 글이 그렇다. 여행 안내서들은 침략이나 전염병처럼 지구의 상당 부분을 파괴하고 막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다양한 언어로 수백만 부를 찍으면서 해당 장소를 속박하고 약화시키고 그 윤곽을 지워 버렸다.


(318)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인체는 전적으로 신비로운 대상이다. 아무리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모든 것을 더욱 가까이 들여다보기 위해 열심히 유리를 갈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엄청나게 어려운 언어를 창조했던 렌즈 연마공 스피노자, 그 철학자의 논리와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흔히 말하듯 보는 것이 아는 것이므로.


(346)

밤이 되면 세상 위로 지옥이 떠오른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현상은 공간의 형태를 파괴하는 것이다. 모든 곳을 더욱 비좁게 만들고, 더욱 거대하게 만들고,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 세부 항목들은 사라지고 사물은 자신의 고유한 모양을 잃어버리며 쪼그라들어서 불분명해진다. 낮에는 아름답다혹은 유용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들이 밤에는 마치 형태를 잃어버린 몸뚱이처럼 이전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지옥에서는 모든 것이 가상으로 존재한다. 낮 시간에 드러난 형태의 다양성, 색의 현존, 음영 따위는 전부 헛된 것이 되어 버린다. 대체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편한 편의점 2 (단풍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김호연 님의 <불편한 편의점 2>는 우리 jiny 가 기다린 책이잖아. 그래서 아빠도 jiny가 읽고 나서 빌려 읽었단다. 지난 봄에 <불편한 편의점>을 뒤늦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올 여름에 <불편한 편의점> 두 번째 이야기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Jiny 가 예약 구매를 해달라고 한 책. <불편한 편의점> 첫 번째 이야기에서 따뜻한 사람 이야기를 전해주었던 지은이 김호연 님은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그것이 비록 의도적으로 감성팔이를 한 이야기라고 해도 책도 술술 잘 읽히고, 가슴 찡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됐지, 이렇게 생각한단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염영숙 사장님과 독고 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잖니, 두 번째 이야기는 또 다른 사람들이 등장한단다. 1권에서 나왔던 염영숙 사장님은 Always 편의점을 아들 강민식에게 넘겼단다. 강민식은 1권에서도 나왔지만 말썽쟁이 아들이었단다. 크게 바뀌지 않아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어. 편의점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편의점에서 일하시던 오선숙에게 점장직을 주고 전담하게 했단다. 그리고 돈에 우선된 것들만 간섭을 했어. 오선숙 점장은 1권에서도 나왔던 인물로, 염영숙 사장과는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단다. 2권의 시작은 야간 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던 곽씨가 그만 두는 것에서 시작했단다.


1.

야간 타임 아르바이트는 구하기 어려웠는데, 불리한 모든 근무 조건을 감수하고도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단다. 40대의 황근배라는 사람인데,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그의 이력서에는 온갖 아르바이트가 다 적혀 있었단다. 덩치가 크고 둥글둥글한 모습이 오래 전 홍콩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홍금보를 닮았다고 해서 별명도 홍금보라고 했어. 그래서 명찰도 본명이 아닌 별명 홍금보로 달았단다. 이 황근배 씨가 바로 <불편한 편의점>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이란다. 그를 중심으로 편의점에 들리는 손님과 여러 사람들의 사연들이 소개가 된단다.

숙명여대 출신의 3년차 취업준비생 소진은 힘든 생활에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것은 자갈치 한 봉지에 소주 한 잔이었단다. 자갈치는 자신의 아버지와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의 소울 스낵이었어. 소울 스낵이라는 말을 보니, 아빠에게 소울 스낵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단다. 아빠도 너희들처럼 과자를 좋아하긴 하는데, 최근에 좋아하게 된 과자 말고 오래 전 어린 시절부터 쭉 좋아했던 과자나 추억에 깃든 과자를 생각해보려니 잘 떠오르지 않는구나. 소설 속 소진처럼 소울 스낵을 하나 정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너희들과 함께 소울 스낵을 하나 정해봐야겠구나. 소진은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살기 위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황근배 씨와도 알게 되었어. 우연히 나눈 황근배 씨와 대화에서 도움을 얻어 취업 면접에서 합격을 하게 되었단다.

소고기 집 최 사장은 코로나로 가게 운영에 직격탄을 맞았단다. 코로나로 시장 환경은 바뀌어서 아내와 아들이 배달도 하는 등 가게 운영 방식을 바꾸자고 조언을 했지만, 자신만의 방식이 옳고 생각하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자존감이 강한 것이 아니라 고집이 센 것이었지. 최 사장은 가끔 편의점을 들르는 손님이기도 했는데, 황근배 씨는 최 사장과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기고 나서 최 사장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주었단다. 최 사장이 옛방식만 고집하는 것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꼰대 중에서 상꼰대라고 이야기했어. 최 사장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아내와 아들과 진솔하게 이야기를 해봤어. 변화를 해보겠다는 마음과 함께 말이야.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는 민규는 저녁마다 편의점에서 1+1 행사 상품을 사고 그것을 먹으면서 편의점에서 죽치곤 했단다. 민규가 그러는 이유는 집에서는 부모님이 부부싸움을 해서 그랬던 거야. 민규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황근배 씨는 민규에게 편의점과 가까운 남산 도서관을 추천해 주었단다. 편의점보다는 그곳에 낫지 않냐고, 민규는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황근배 씨의 추천으로 남산 도서관에 가보니, 완전 자신의 취향이었어. 그래서 이젠 편의점이 아닌 남산 도서관에서 죽치는 학생이 되었단다.

….


2.

이런 에피소들 이외에도 황근배 씨는 까칠하고 싸가지 없는 편의점 사장인 강민식과도 친해지고 되었어. 알고 보니 황근배 씨도 강민식이 나온 대학교를 나왔던 거야. 대학교 앞의 식당들도 모두 알고 있는 등 옛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어. 그 이후 강민식은 자주 황근배 씨와 대화도 하고 밥도 먹고 그랬단다. 그러면서 강민식도 변하게 되는데, 결정타는 황근배 씨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로 하면서 강민식을 설득해서 황근배 씨 후임으로 야간 타임 아르바이트를 하게 한 거야.

강민식은 자신이 사장을 하고 있지만 편의점 보다는 좀더 큰 사업, 사실은 허황된 사업만 구상하고 있었거든. 하지만 황근배 씨가 그를 잘 설득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 사장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그렇게 일해봐야 편의점을 잘 아는 사장이 될 수 있다면 서 말이야. 그런데 황근배 씨는 왜 갑자기 편의점을 그만 두냐고?

사실 황근배 씨는 연극 배우였어. 황근배 씨의 지인 중에 연극 시나리오 작가인 인경 씨가 있었어. 혹시 인경 씨 기억나니? 1권에서도 나왔던, 편의점이 맞은 편 빌라에 잠깐 살았던 그 사람그 인경 씨가 편의점에서 일했던 독고 씨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시나리오를 썼고, 그 역을 황근배 씨가 맡기로 했거든그래서 황근배 씨는 그 연극을 위해 직접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독고 씨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독고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이란다. 이제는 연극 준비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 것이고 말이야.

….

몇 달 뒤 황근배 씨가 독고 씨 역할을 맡은 연극의 막이 올랐단다. 관객으로는 Always 편의점에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참석을 했단다. 전 사장이었던 염영숙 사장님, 그리고 독고 씨도 연락을 받고 찾아왔단다. 그렇게 훈훈하게 소설은 마무리 되었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소설은 읽는 내내 따뜻한 이야기들이 이어져서, 책에서도 실제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듯 했단다.


PS:

책의 첫 문장: 출근하던 선숙은 사람들의 시선이 연달아 자신에게 꽂히고 나서야 마스크를 안 쓴 걸 깨달았다.

책의 끝 문장: 옆에서 미소를 나눌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며 함께 웃겠다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11-02 2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머릿속에서 상황이 막 그려지네요
불편한 편의점 2편도 1편 만큼 재밌을것 같습니다 ^^

bookholic 2022-11-03 23:15   좋아요 1 | URL
네, 잔잔하고 따뜻하고 재미있습니다~~^^

파이버 2022-11-03 0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따뜻한 이야기들이 더 끌리는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1권과 2권의 인물들이 연결되는군요~

bookholic 2022-11-03 23:15   좋아요 2 | URL
네.. 따뜻한 날씨와 어울리는 소설 같아요...
기회되시면 함 읽어보세요^^
 















(13)

신경과학은 내가 매일 하는 예사로운 일이지만, 지금도 나는 인간의 뇌를 손에 받쳐들 때마다 경외감에 빠진다. 뇌의 상당한 무데(성인의 경우 1.4킬로그램), 기이한 균질성(꼭 탄탄한 젤리 덩어리 같다), 쭈글쭈글한 겉모습(둥그스름한 전체에 깊은 골들이 패여 있다)을 살펴보고 나면, 뇌가 순전히 물리적인 대상이라는 점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 보잘것없는 물질 덩어리와 그것이 산출하는 정신적 과정들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16)

이제 아기의 스냅스 개수는 최대치에 도달했으며, 그 개수는 앞으로 아기에게 필요한 개수보다 훨씬 더 많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연결들의 만발 대신에 신경학적 가지치기가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된다. 당신이 성숙하는 동안, 당신이 가진 시냅스들의 50퍼센트가 감축된다.


(38)

요컨대 그 생일잔치에 대한 당신의 기억은 이미 퇴색하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첫째, 당신이 보유한 뉴런의 개수는 유한하며, 모든 뉴런은 여러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각각의 뉴런이 때에 따라 다른 연결망에 참여한다. 그 생일잔치에 대한 기억을 담당하는 생일뉴런들이 다른 기억 연결망에 동원되는 일이 거듭됨에 따라, 그 생일잔치 기억은 퇴색한다. 기억의 적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기억들이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유한한 개수의 뉴런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망이 형성되어야 한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기억이 퇴색했는데도 당신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은 그날의 장면 전체가 기억에 남아 있다고 느끼거나 최소한 추측한다.


(64)

시각이란 눈에 들어온 광자들을 뇌의 피질이 손쉽게 해석하는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시각은 온몸이 참여하는 경험이다. 뇌로 들어오는 신호들은 훈련을 거쳐야만 유의미하게 해석될 수 있고, 그 훈련은 그 신호들을 우리 활동의 감각적 귀결들과 비교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만 우리의 뇌는 시각 데이터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할 수 있게 된다.


(74)

뇌의 작동도 마찬가지다. 뇌의 작동은 한 지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뇌의 어떤 구역도 격리되어 홀로 작동하지 않는다. 뇌의 도시에서 모든 일은 거주지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 그 상호작용은 온갖 규모에서 일어난다. 국소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먼 거리를 가로질러 일어나기도 한다. 열차들이 도시로 들여온 천연자원과 직물이 가공되어 도시의 경제에 편입되듯이, 감각기관들에서 유래한 미가공의 전기화학적 신호들은 뉴런들로 이루어진 초고속도로로 운반된다. 그러면서 그 신호들은 가공과 변환을 거쳐 우리가 의식하는 실재에 편입된다.


(86)

결론적으로, 당신의 머리 바깥에 있는 세계의 참모습은 어떠할까? 그 세계에는 색깔이 없을뿐더러 소리도 없다. 그 세계에 있는 공기의 압축과 팽창이 당신의 귀에 포착되어 전기 신호로 변환될 뿐이다. 그러면 뇌는 그 신호들을 감미로운 음악과 하는 소리와 덜거덕거리는 소리와 쨍그랑거리는 소리로 가공하여 우리에게 제공한다. 냄새도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뇌 바깥에는 냄새 따위가 없다. 공중에 떠도는 분자들이 우리의 콧속 수용기들과 결합하고 뇌에 의해 다양한 냄새로 해석될 뿐이다. 실재 세계는 풍부한 감각적 사건들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뇌가 손전등으로 대상을 비추듯이 고유한 감각 능력으로 세계를 비추는 것이다.


(110)

그러니 다음번에 사람이 걷거나 달리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거든, 잠깐 멈춰서 인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동작을 완벽하게 지휘하는 무의식적 뇌의 능력에도 감탄할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동작들의 복잡한 세부 사항은 수조 회의 계산에서 나온 결과다. 그 모든 계산은 당신이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공간적 규모에서 당신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일어나는 신호 전달의 형태를 띤다. 지금까지 제작된 로봇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신체 동작에 훨씬 못 미친다. 게다가 슈퍼컴퓨터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반면에, 우리의 뇌는 놀라운 에너지 효율을 자랑한다. 인간 뇌에 에너지 소비량은 대략 60와트 전구와 같다.


(121)

컵 쌓기 챔피언 오스틴 네이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몰입 상태에 진입한 극한 스포츠 선수의 뇌파는 의식적 숙고의 재잘거림(내가 멋있게 보일까? 내가 이러이러한 말을 해야 할까? 내가 집에서 나올 때 문을 잘 잠갔나?)으로 요란하지 않다. 몰입 상태의 뇌에 서는 이마엽 저하(hypofrontality)’가 일어난다. 이 용어는 앞이마엽피질의 몇몇 부위에서 일시적으로 활동이 감소하는 것을 뜻한다. 그 구역들은 추상적 사고, 미래 계획, 자아감에 주의 집중하기를 담당한다. 이 배경 활동들을 줄이는 것은 선수가 암벽을 타는 비법의 핵심이다. 딘이 발휘한 것과 같은 솜씨는 내면의 재잘거림이 없을 때만 발휘될 수 있다.


(142)

당신의 뇌는 경쟁하는 정당들로 구성된 의회와 유사하다. 정당들은 국가라는 배를 조정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당신은 때때로 이기적으로 결정하고, 때로는 자비롭게, 때로는 충동적으로, 또 어떤 때는 장기적인 전망을 고려하면서 결정한다. 우리는 복잡한 존재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많은 욕망들로 이루어졌고, 그 모든 욕망들이 저마다 통제권을 쥐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189)

전통적으로 뇌 연구는 고립된 뇌를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엄청나게 많은 외 회로들이 다른 뇌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는 깊은 수준에서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는 우리의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거래 상대들이 중첩되어 이룬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 주위의 모든 곳에서 우리는 관계의 형성과 결렬, 친밀한 유대, 강박적인 사회연결망 형성, 충동적인 동맹을 본다. 이 모든 사회적 결합을 위한 접착제는 뇌 속의 특별한 연결망들에서 생산된다. 어지럽게 퍼져 있는 그 연결망들은 타인들을 주시하고, 타인들과 소통하고, 타인들의 고통을 느끼고, 타인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타인들의 감정을 읽어낸다. 우리의 사회생활 솜씨는 뉴런 회로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 회로를 이해하는 일은 사회신경과학이라는 신생 분야의 기초다.


(202)

나의 얼굴 근육은 나의 감정을 반영한다. 그리고 당신의 뉴런 장치는 이 사실을 이용한다. 나의 감정을 이해하려 할 때, 당신은 나의 표정을 흉내 내본다. 물론 작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흉배내기는 무의식적으로 신속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이 자동적인 거울 효과에서 당신은 내 감정에 관한 신속한 추정 결과를 얻는다. 이것은 당신의 뇌가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더 잘 예측하기 위해 사용하는 강력한 묘수다. 알고 보면 이것은 수많은 묘수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212)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생존을 도울 수 있다. 그들은 더 안전하고 더 생산적이며 위기를 더 잘 극복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호 결속의 성향을 일컬어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고 한다. 진사회성은 혈연과 상관없는 무리, 집단, 나라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접착제 구실을 한다. 물론 개체 선택은 엄연히 일어난다. 그러나 개체 선택만 가지고는 인간의 행동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경쟁적이고 이기적이지만, 우리가 삶의 상당한 부분을 집단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면서 보낸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 협력 덕분에 인간 집단들은 지구 상의 모든 곳에서 번성하면서 사회와 문명을 건설해왔다. 고립된 개인들은 저마다 아무리 환경에 적합하더라도 절대로 이런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진보는 오르지 연합과 연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의 진사회성은 우리가 사는 현대세계의 풍요와 복잡성을 낳은 주요 원인들 중 하나다.


(277-278)

개별 뉴런은 어둠 속에서 산다. 뉴런 각각은 다른 뉴런들과 함께 이룬 연결망 속에서 단순히 신호들에 반응하면서 평생을 보낸다. 개별 뉴런은 자신이 셰익스피어를 읽는 당신의 눈을 움직이는 일에 참여하는지, 혹은 베토벤을 연주하는 당신의 손을 움직이는 일에 참여하는지 알지 못한다. 애당초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른다. 당신의 목표, 의도, 능력은 이 작은 뉴런들의 존재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이 뉴런들은 자신들이 모여서 이루는 결과를 알아채지 못하는 채로 더 작은 세계에서 산다.


(285)

만일 의식의 업로드가 가능하다고 밝혀진다면, 다른 별들로 가는 여행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우리 우주에는 제각각 1000억 개의 별들을 거느린 은하가 최소 1000억 개나 있다. 우리는 그 별들 주위를 도는 외계 행성들을 이미 수천 개 발견했다. 그것들 중 몇몇은 지구와 꽤 유사하다. 문제는 우리가 현재 지닌 생물학적 몸으로는 그 외계 행성들로 가는 여행이 영영 불가능하리라는 점이다. 우리가 그토록 먼 시공을 가로질러 그곳들에 도달할 전망이 전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디지털화되어 있다면, 당신의 시뮬레이션을 중단시킨 상태로 먼 우주로 발사한 다음에 1000년 후 어느 외계 행성에 도착할 때 재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의식은 당신이 지구에서 발사된 다음에 곧바로 새 행성에 도착했다고 느낄 것이다. 의식을 업로드하는 기술의 등장은 웜홀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일 것이다. 그 기술은 우리가 우주의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주관적인 관점에서)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을 가능케 해줄 테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8 - 순조에서 순종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8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마지막 8권을 읽었단다. 즉 조선이 망해가는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그 즈음 조선이 망하는 것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되는 것 하나 없는 시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까지조선 시대의 왕 중에 존경하는 왕을 뽑으라고 할 때, 위 다섯 명 중에 한 명을 뽑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싶구나. 지난번 7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왕이 되었을 때, 세도 정치가 득세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는데, 8권의 첫 부분은 그 세도정치부터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순조가 왕위에 오르고, 장인 어른인 김조순을 비롯하여 안동 김씨의 처가 식구들이 권력을 잡는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단다. 순조는 힘 하나 쓰지 못하고 있었지. 그런데 순조에게는 똑똑한 아들이 한 명 있었으니 효명세자였단다. 효명세자가 어느 정도 컸을 때 순조는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켰단다. 그렇게 효명세자는 1827년 대리 청정을 시작했단다. 효명세자의 부인은 나중에 조대비라고 부르게 되는 신정왕후였단다. 신정왕후는 풍양 조씨였는데, 효명세자는 풍양 조씨의 도움을 받아 세도 정치의 주축이었던 안동 김씨를 축출해내어 권한을 약화시켰단다. 그리고 군권을 강화하고 백성이 국왕에게 바로 청원하는 상언제도를 만들었어. 그리고 춘앵무라는 궁중 무용도 직접 만들기도 했어. 그렇게 대리청정을 하면서 왕이 될 준비를 하고 있던 효명세자는 그만 갑자기 죽고 말았단다. 마지막 조선이 부활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고나 할까, 순조가 죽고 손자인 헌종이 왕이 되었단다. 그런데 헌종은 아들 없이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단다.


1.

왕이 죽었는데, 후사가 없다? 그러면 왕실 중에서 그 다음 순위가 왕이 되어야 정상인데, 복잡한 사정이 있었단다. 왕을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권력을 잡고 싶은 이들이 있었던 거야.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은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였단다. 순원왕후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김조순의 딸이었잖니효명세자에 의해 권력에서 잠시 밀려 있던 안동 김씨가 이 기회를 그냥 넘길 사람들이 아니지.. 그들은 왕이 될 자격을 그나마 갖춘 사람 중에서 가장 능력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찾아내게 된단다. 정조의 이복 동생 은언군의 아들 이원범이라는 사람인데 이원범의 집안은 역모의 혐의를 받고 강화도로 유배를 가 있었단다. 왕실에서 이원범을 왕으로 모시려고 강화도로 행차를 하게 되는데, 이원범의 형은 자신들을 잡으러 오는 사람인줄 알고 도망갔다가 다치는 해프닝도 일어났다고 하는구나.

이원범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왕이 되었단다. 왕실에서 세자로 왕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이 바로 왕이 되었단다. 왕은 되었지만, 권력은 안동 김씨가 다 차지하고 있었지. 안동 김씨의 만행이 점점 심해지자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게 되었어. 민란이 많아지자 조정에서는 민란을 잠재우기 위한 민심 정책을 펴려고 했지만, 모두 중단되었단다. 점점 탐관오리가 판을 치고, 농민들을 착취하고 부정부패가 들끓는 사회가 되었단다. 왕노릇 제대로 하지도 못한 철종은 젊은 나이에, 이번에도 후사 없이 죽고 말았단다. 왕이 안 되고, 강화도에서 계속 살았다면 마음 편히 살았을 텐데, 왕이 되어 왕실에 갇혀 지내다가 스트레스로 일찍 죽은 것 같구나.

철종이 후사 없이 죽었으니 또 다시 왕을 골라야 했단다. 이 때의 왕실의 최고 어른은 효명세자의 부인이었던 신정왕후, 조대비였단다. 조대비는 철종이 죽기 전부터 후사를 모색해 왔었단다. 조대비는 흥선대원군과 손을 잡고,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을 왕위에 세우는데 성공한단다. 고종의 나이 12살에 왕위에 오르고, 어린 왕을 대신해서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게 되었단다. 세도 정치를 직접 본 흥선대원군은 세도 정치를 하지 않을 집안에서 왕비를 고르기로 했단다. 그렇게 왕비가 된 사람이 바로 민치록의 딸 명성황후란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결혼할 당시에 민치록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여서, 흥선대원군이 생각하기에 세도정치를 할 수 없는 영향력 없는 집안이라고 생각했단다. 어린 명성황후가 나중에 자신과 대적할 만한 배포를 가지고 있는 줄은 그때는 몰랐을 거야.


2.

고종이 나이를 먹으면서 친정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왕비인 명성황후도 움직임이 빨라졌단다. 왕비의 빽으로 민씨 척족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고, 명성황후 주도로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는 등 개방 정책을 펼쳤단다. 당시 조선은 명성황후의 세력과 흥선대원군의 세력을 나뉜 것 같았어. 조정으로부터 홀대를 받건 군인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임오군란을 일으켰는데, 명성황후는 이 일로 피신을 하게 되고, 다시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잡게 되었단다.

명성황후는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 청나라의 지원을 요청하고 러시아와도 손을 잡게 되었단다. 국내 문제는 점점 주변국까지 간섭하게 되는 국제 문제가 되어갔어. 그러다가 일본군의 왕실 침입으로 명성황후는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러시아의 건축가 사바틴이라는 사람에 의해서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단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가 서로 다른 길을 가지 않고, 화합의 길을 갔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들이 화합했다면 조선의 운명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구나.

=======================

(110)

(주진오) 확실히 흥선대원군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어요. 흥선대원군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세도정치의 여러 가지 폐해를 정리하고 왕실 중심의 국가 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거든요. 고종 혼자서는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신병주) 흥선대원군에게 그런 공은 분명히 있지만, 외교적으로 대응하는 문제라든가 국제 정세를 보는 시각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있죠. 반면에 명성황후는 상당히 국제적 안목도 있고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두 사람이 가지는 긍정적인 면이 잘 조화를 이루어서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면 가장 좋았을 텐데, 결국 서로 화합하지 못함으로써 근대사 부정적으로 흘러간 것은 매우 아쉬운 측면이죠.

=======================

우리나라에도 근대국가를 꿈꾸며 혁명을 한 이들이 있으니,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재필 등이 그들이란다. 그들은 급진개화파로 수구 대신들을 죽이고 고종과 명성황후까지 납치한 후 권력을 잡았단다. 그들은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나라의 꿈을 꾸지만, 그들의 꿈은 3일 천하, 정확히 이야기하면 46시간만에 끝나고 말았단다. 갑신정변는 왜 실패했는가는 많은 역사들이 연구를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명성황후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했고 청나라 군인들이 개입하여 진압당했단다. 그리고 처음에는 지지를 표방했던 고종도 등을 돌리는 바람에 그들은 청나라 군대를 막아낼 힘이 없었단다.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핵심 멤버들을 도피 생활을 했는데, 김옥균은 홍종우라는 프랑스 유학파에 의해 상해에서 살해당했단다. 이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빠가 오래 전에 읽은 조재곤 님의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라는 책을 읽어봐도 좋을 것 같구나. 그리고 김탁환 님의 소설 <리심>에서도 이 이야기가 등장했었단다. 홍종우의 배후에는 고종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가 근대화로 가는 과정에서 많은 일들 중에서 동학농민운동을 건너뛸 수는 없단다. 점점 심해지는 조정의 수탈은 더 이상 농민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단다. 고부 군수 조병갑이라는 사람은 탐관오리의 갑 중의 갑인 사람이었단다. 결국 참지 못한 고부 백성들은 녹두장군 전봉준을 지휘로 군대를 만들고 관군을 공격하였단다. 백성들이 스스로 만든 군대이지만 조정의 정규군을 압도했단다. 그만큼 나라의 군대가 얼마나 썩어 있었는지 알게 해준 일 이었단다. 조정도 한 발 물러나서 동학농민들의 의견을 들어주었단다. 하지만 그건 작전이었어. 조정이 스스로 진압을 하지 못하니 청나라 군과 일본군을 끌어들여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게 된단다.

청나라 군과 일본군의 화력에 결국 무릎을 꿇은 동학군전봉준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지휘부 대부분 체포되거나 죽고 말았단다. 동학농민운동 이후 청나라와 일본은 우리땅에서 나가지 않고 눈치 보면서 버티다가 둘은 우리나라에서 전쟁을 일으켰단다. 전쟁의 이름은 청일전쟁이지만, 그 전쟁이 일어난 곳은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땅이었단다. 동학운동 또한 안타까운 결말로 끝이 나고, 계속되는 우리나라 수난사가 이어졌단다.


3.

고종이 왕이 된 것의 9할 아니 99푼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역할이 컸단다. 하지만 고종이 친정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대립은 끊이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고종은 왕비인 명성황후의 뜻과 함께 했고, 늘 아버지와 대척점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고종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죽었을 때,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놀라운 일이로다.

이 책은 역사의 큰 흐름 뿐만 아니라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도 들려주어 주었단다. 고종이 많은 비자금을 숨겨두었다는 사실은 아빠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그런데 고종으로부터 그 비자금을 찾아오라는 명을 받은 이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헐버트라는 미국인이라는 점도 흥미롭구나. 여차하면 비자금을 가지고 도망갈 수도 있는데, 미국인에게 그런 걸 맡기다니.. 그런데 헐버트는 고종을 배신하지 않았단다. 결국 비자금을 찾지는 못했지만 고종이 죽은 이후 자신이 죽을 때까지 비자금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죽은 다음에는 그의 소원대로 우리나라에 묻혔다고 하는구나. 괜찮은 미국인이구나.

=======================

(259)

(그날) 근데 고종의 밀명을 받았던 헐버트라는 사람이 왠지 익숙하기는 한데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거든요.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신병주) 고종에게 크게 신뢰받았던 대표적인 미국인입니다. 1905년에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전에도 대한제국의 위급한 상황을 미국에 전하고자 상당히 애썼던 인물이죠. 헐버트의 삶이 대단히 극적이었던 게, 이후 40여 년간 사라진 비자금의 행방을 계속 찾으려고 합니다. 해방 이후인 1949년에도 방한해서 비자금을 꼭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안타깝게도 1949년의 광복절 행사에 참석하러 왔다가 8 5일에 사망했어요. 지금은 본인이 원했던 대로 대한민국에 묻혀 있죠.

=======================

점점 기울어가는 조선은 국제 기류에 발 맞춰 제국 선언을 하는데, 말뿐인 제국이었단다. 그렇게 지은 이름이 대한제국이고, 나중에 대한민국으로 바뀌어 우리나라 이름이 된단다. 대한제국의 의미는 이렇다고 하는구나.

=======================

(267)

(신병주) 큰 한이라는 뜻이지요. 우리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조선에서 역사가 시작되는데, 고조선에서 남하한 이주민 일부가 한을 세웠다고 국사책에 나옵니다. 마한, 진한, 변한인데, 당시의 역사 인식을 보면 삼한을 통합한 나라가 고려라는 인식이 아주 굳건히 지속됩니다. 그래서 조선이라는 국호를 대신할 새로운 국호를 찾다 보니까 역사적으로 조선 다음에는 한이라는 국호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거죠. 그래서 삼한을 계승한다는 의식을 이어받아서 그 한 중에서도 더 큰 한, 즉 대한을 나라 이름으로 정했는데, 황제의 나라라서 대한제국이 됩니다.

=======================

….

이렇게 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8권으로 조선이 마무리되었단다. 조선 통사를 다루는 많은 역사책들이 있단다.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역사저널 그날 시리즈는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기반을 해서 그런지 재미도 좋고 읽기도 좋고 그렇구나. 아빠의 기억력이 좋지 않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도 여럿 있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간간히 너희들에게 역사 이야기도 해줄 수 있어 좋았단다. 조금만 더 크면 너희들도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조선에 대한 역사 상식을 키울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닐까 싶구나. 역사 저널 그날은 <고려 편>도 있던데, 그 책도 기회 되면 읽어봐야겠구나. 아빠가 고려의 역사는 더 모르거든


PS:

책의 첫 문장: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19세기 초반, 순조는 기존의 노론 벽파를 제거하고 시파를 대거 등용하면서 국정을 직접 챙기고 전국에 암행어사를 파견하는 등 왕의 국정 주도권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책의 끝 문장: 망국의 역사로 외면하기보다는, 희망의 씨앗을 품었던 대한제국의 진면목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최태성) 신정왕후가 수렴청정한 게 4년 정도인데, 교과서에 나오는 흥성대원군의 개혁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시기가 바로 그 4년이거든요. 수렴청정 기간에 신정왕후가 내놓았던 정책들을 보면 경복궁 중건, 과제의 폐단 시정, 서얼의 허통(許通) 등이 있습니다. 효명세자가 시행하려고 했던 개혁들을 다 실행에 옮기는 거죠. 다시 말해 세도정치 이후에 추진된 개혁을 흥선대원군의 개혁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 출발점이 효명세자에게 있다는 얘기입니다.
- P40

(박은숙) 갑신정변이라는 계획에 고종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은 급진 개화파가 반청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고종으로서는 청나라의 개입을 막으면 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서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 진행되는 걸 보니까 왕권과 왕실 제정을 제약하고 입헌군주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오히려 왕권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위기를 느끼면서 당연히 뒤도 안 돌아보고 태도를 바꾼 것이죠. - P137

(신영우) 동학은 갑오년에 패배하고 난 뒤에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에서 탄압받았습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탄압받았고요. 광복 이후에는 교과서에서 반란으로 규정해서 오랫동안 매도당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큰 원인으로 보면 일본 사람들이 교묘하게 만든 것도 있지만, 양반 지주층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동학농민군을 ‘과거에 나쁜 짓을 했던 사람들’로 매도한 경향이 있었죠. 그런 인식이 오랫동안 풀리지 않다가 100주년이 될 때 명예를 회복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에야 비로소 특별법에 의해서 명예회복을 위한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 P18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2-10-30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선조 최악의 군왕으로
선조-인조 그리고 고종
을 꼽아 봅니다.

특히 인조는 도성을 세
번이나 뺏긴 최악의 군주
였습니다.

앞의 2인은 전란의 주범
이고, 마지막은 망국의
주범이네요.

bookholic 2022-10-30 22:35   좋아요 1 | URL
네, 공감합니다~~
저는 특히 인조가 싫어요 ^^
 















(55)

그는 로세르의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지갑에 넣어 둔 유일한 사진이었다. 로세르가 피아노 옆에 서 있었다. 어쩌면 연주회 중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짙은 색 소박한 블라우스에 평소보다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반소매에 목에는 레이스가 달린 옷은 몸매를 감추는 촌스러운 교복 같았다. 그 흑백사진에서 로세르는 아마득하고 흐릿했다. 멋도 없고, 나이도 불분명하고, 무표정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과 검은 머리카락, 조각처럼 곧은 코, 표정이 담긴 눈썹, 돌출된 귀, 기다란 손가락, 그녀에게서 나는 비누 향. 느닷없이 그를 덮쳐 고통스럽게도 하고 잠 못 이루게도 하는 섬세한 표정은 애써 떠올려야 했다. 그리고 이런 표정을 떠올리다 보면 깜빡 방심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180-181)

그들은 칠레가 몹시 가난한 나라로 광물, 그중에서도 특히 구리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지만, 정착해서 성공할 수 있는 비옥한 땅도 많고, 어업에 종사할 수 있는 수천 킬로미터의 해안도 있고, 무수히 많은 숲과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달과 같은 북쪽 황무지부터 남쪽의 빙하까지 칠레의 자연은 경이로웠다. 칠레 사람들은 한순간에 모든 걸 무너뜨려 사망자와 이재민이 속출하는 지진 같은 자연재해와 가난에 길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망명자들에게는 자기네가 살아왔던 과거와 프랑코 권력하에 있는 스페인의 미래에 비하면 칠레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칠레 사람들은 그들이 많은 것을 받을 테니 보답할 준비나 하라고 했다. 칠레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가난하지만 인색하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고 너그러웠다. 칠레 사람들은 늘 두 팔 벌려 자기네 집을 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나를 위해, 내일은 너를 위해.” 그것이 슬로건이었다. 그리고 총각들에게는 칠레 여자에게 한번 찍히면 도망칠 방법이 없으니 조심하라고 충고했다. 칠레 여자들은 매력적이고 강하고 권위적이라 죽음의 조합이었다. 그 모든 말이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판타지처럼 들렸다.

(316)

쿠바 혁명에 영감을 받은 지지자 몇몇은 진정한 혁명을 이뤄 평화롭게 미국 제국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무기를 들고 싸워야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옌데에게 혁명은 견고한 칠레 민주주의에 넉넉히 들어맞았고, 그는 칠레의 헌법을 존중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한 손에 자기네 운명을 움켜쥘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고발하고 설명하고 제안하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마지막까지 믿었다. 또한 그는 적들의 힘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공인일 때 아옌데는 약간 우쭐해하며 근엄하게 행동해 적들에게 건방지다는 트집도 잡혔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수수하고 농담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지켰다. 그로서는 배신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마지막에 가서는 그 자신을 잃게 되었다.

(462-463)

빅토르는 임종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의 로세르의 말을 듣는 것 같았다. 그때 그녀는 우리 인간은 모여 사는 생명체이고, 우리는 고독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기 위해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가 혼자 살면 안 된다며, 심지어 그를 위해 애인까지 정해 주며 집요하게 굴었다. 빅토르는 느닷없이 매체를 정감 있게 떠올렸다. 그에게 고양이를 선물하고 텃밭의 토마토와 허브를 가져다주는, 마음이 열린 옆집 사람, 뚱뚱한 요정들을 조각하는 꽤 자그마한 여자였다. 빅토르는 딸이 떠나자마자 오징어 먹물 파에야와 크레마 카탈라나 남은 것을 메체에게 가져다주기로 했다. 그것을 새로운 항해이며, 그렇게 그는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