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 기록과 소서노 이야기는 일맥상통한다. , 졸본부여로 망명한 주몽이 계루부의 족장 연타취발의 둘째 딸 소서노와 결혼하여 계루부의 세력 확장에 기여하고 마침내 연노부를 누르고 왕이 됨으로써 계루부 중심의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켰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연노부를 중심으로 한 졸본부여의 국호는 구려였는데, 계루부를 일으킨 주몽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위대한’, ‘숭고한등의 뜻을 가진 고()를 덧붙여 고구려라고 했다. 부족연맹체 성격이 강했던 구려는 고구려라는 국호를 사용하면서 중앙집권적 국가인 고구려로 재탄생했던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주몽에 의해 처음으로 개국된 나라가 아니라 적어도 고()조선 말기부터 구려라는 이름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주몽에 의해서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섰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21-22)

<삼국사기> 13 유리명왕 31년 기록에 서한의 왕망이 고구려를 낮춰 부르며 ()구려비천한 구려라고 칭한 바 있는데, 이를 보아도 고구려의 역사는 구려를 빼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고구려는 위대한 구려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당연히 고구려의 역사에 구려의 역사를 포함시켰을 것이다. 고구려 900년설은 이 같은 설정을 바탕으로 했을 때 정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은 고구려를 고려(高麗)’라고도 쓰고 있는데, 이는 고려에 대한 영어식 표기인 Korea의 어원이다. 흔히 Korea라는 말은 왕건이 세운 고려에서 비롯했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왕건이 세운 고려조차 고구려를 계승하기 위해 그 명칭을 답습한 것이기 때문이다. ‘Korea’가 왕건이 세운 고려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어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한국의 영어식 국명인 Korea의 역사를 천 년 이상 앞당기는 결과를 낳는다.)


(37)

동이라는 말은 초기에 하나의 민족을 의미하기보다는 중국의 한()족이 자신들의 동쪽에 사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부른 명칭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그렇지만 동이가 단순히 한족의 동쪽에 머무른다는 의미만 갖고 있지는 않다. 동이를  풀이하면 동방의 이()’족이란 뜻인데, ()에 대하여 중국 최초의 문자학 서적으로 후한 때 허신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큰 것을 따르고 활을 잘 다루는 동방의 사람들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설명은 이족이 큰 것()를 숭상하고 활()을 잘 다루는특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이는 단순히 한족이 머무르던 곳의 동쪽에 살던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큰 것을 지향하고 활을 잘 다루는 동방 종족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4)

따라서 태조라는 묘호는 고구려가 주변국에서 종주국으로 변모한 사실을 담고 있는 칭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고구려의 세력으로 봐서 스스로 종주국을 칭한다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나라도 그것에 대해 시비를 걸지 못할 상황이었다. 때문에 고구려인들이 제6대 임금의 묘호를 태조라고 붙인 것은 그가 고구려를 재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고구려가 종주국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9)

이처럼 평양이 어떤 특정한 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조선 시대에 도읍이 있던 곳을 부르는 일반명사였을 것이라는 박지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또한 박지원의 주장을 근거로 할 때, 고구려 영토 안에는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평양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여러 지역이 있었고, 동천왕은 그 가운데 한 곳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또한 동천왕 당시 고구려는 대동강변까지 영토를 확장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동천왕의 평양이 평안남도 대동강변의 평양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동천왕의 평양과 대동강변의 평양은 전혀 무관한 것임을 먼저 밝혀둔다.


(288)

당시 백제와 고구려 사이엔 말갈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말갈은 신라와 고구려의 북쪽 변경지대에서 세력을 형성하여, 틈만 나면 쉴 새 없이 백제와 신라를 공략했다. 백제와 신라를 공략한 말갈은 일곱 종류의 말갈 중 백산 말갈로서 압록강변과 청천강 사이에 거점을 형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고구려에 조공하면서도 한편으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백제와 신라에 압박을 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광개토왕의 백제 원정 때에는 말갈군이 동원된 흔적은 전혀 없으며, 말갈을 통과한 기록도 없다. 다시 말해 고구려군은 말갈 지역을 통과하거나 말갈군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육로를 이용할 경우 말갈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광개토왕은 해로를 이용했던 것이다.


(383)

이 같은 결과는 연개소문의 일인독재 체제가 고구려 멸망의 주된 원인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비록 그가 살아 있을 때는 국력이 안정되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그가 죽으면서 그에게 집중되어 있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조정은 권력다툼의 장으로 급변하였고, 그것이 곧 멸망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고구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고구려의 군사력이 약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권력다툼 때문이었다는 뜻이다. 그 누구의 의한 것이라도 독재체제는 국가를 멸망으로 이끈다는 평범한 진리를 연개소문이 진작 알았더라면 고구려가 결코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389)

중국을 통일하고 천하의 영웅호걸로 통한 이세민을 이토록 비참한 모습으로 쫓겨가게 한 안시성 성주는 불행히도 사서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와서 송준길과 박지원은 이름이 전하지 않던 이 안시성 성주를 양만춘(梁萬春)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고구려 말의 학자 이색과 이곡은 당 태종 이세민이 안시성 싸움에서 눈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고 회군한 것으로 적고 있다. 하지만 당 태종이 눈에 화살에 맞았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주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당 태종이 안시성 싸움에서 패배하여 회군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당 태종을 물리친 안시성 성주는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도 안시성을 지키며 고구려 재건을 노렸는데, 불행히도 671 7월 안시성은 당나라 군대에 의해 함락되고 만다. 불세출의 영웅 안시성 성주가 이 때 죽었는지 아니면 그가 죽은 뒤에 안시성이 무너졌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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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살인자 쿠르트 발란데르 경감
헨닝 만켈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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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스웨덴의 작가 헨닝 망켈의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 없는 살인자>를 읽었단다. 아빠가 읽은 헨닝 망켈의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는 이번이 두 번째란다. 예전에 읽은 <사이드 트랙>이라는 잔인하면서 무서운 소설이 첫 번째였고, 이번이 두 번째야. 헨닝 망켈의 쿠르트 발란데르 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 출간될 때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았대. 인기 있다고 소문난 소설을 번역 출간한 다음 장사가 되다 보니, 그것이 시리즈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 하나둘 찾아서 번역하지 않았나 싶구나. 그렇다 보니 가장 첫 번째 시리즈가 최근에 번역 출간되었지. 범죄스릴러 소설들이 사건들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는 않지만, 등장 인물들은 계속 나오니, 아무래도 1권부터 차례대로 읽는 것이 등장인물들을 이해하기 편했을 텐데, 좀 아쉽구나.

그런데 1권부터 읽었다면, 아빠는 그 다음 시리즈는 안 찾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전에 읽은 <사이드 트랙>이라는 작품도 아빠의 성향과 좀 다르고, 다른 북유럽 범죄 스릴러인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나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보다 재미가 덜 했는데, 이번에 읽은 <얼굴 없는 살인자> <사이드 트랙>보다 좀더 아빠 취향이 아니었단다. 다음 작품을 찾아 읽을 동기마저 줄어들었어. 그런데 헨닝 망켈의 책이 우리 집에 두어 권 더 있는데 그 책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외국인 지은이의 이름을 우리나라로 쓸 때 좀 통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헨닝 망켈이라고 책에 써 있는데, 인터넷서점의 지은이 소개에는 헨닝 만켈로 되어 있더구나. 헨닝 망켈이나 헨닝 만켈이나 발음도 비슷한데 굳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지 모르겠네.

이런책 내용 이야기는 안하고 군소리만 잔뜩 했구나.


1.

시작은 괜찮았단다. 범인은 왜 그런 일을 벌였을까, 하는 궁금증이 확 올라왔단다. 시골 농장에서 노부부가 강도로 보이는 침입자로부터 공격을 받아 남편은 잔인하게 죽음을 당하고, 노부인은 줄에 묶여 중상을 입고 정신을 잃고 있었어. 병원에 옮겨졌지만 오래 못 가 결국 죽고 말았단다. 그런데 죽기 전에 이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한 마디를 남기고 죽었어. 그 한 마디는 외국이라는 단어였단다. 이 단어는 상당히 민감한 단어였어. 이 소설의 배경이 된 1990년대 초반 스웨덴은 자유 이민 정책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거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난민 캠프들도 있었어. 이 수사를 맡게 된 발란데르도 노부인이 마지막 한 말에 대해 언론 통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 하지만, 이 말이 어떻게 언론에 새어 나갔는지 모르지만, 언론에서 노부부를 죽인 범인이 외국인의 소행인 것 같다는 기사를 내 보냈어. 그리고 이후 난민 캠프에 대한 테러가 일어나게 되었어.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의해 난민 캠프에 방화에 의한 화재가 발생하고, 급기야 살인 사건까지 일어나게 되었단다.

1990년대 스웨덴의 사회 문제를 소설에 옮겨왔다는 점에서 문제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당시 스웨덴 독자들이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외국인 혐오 등에 대한 반성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작가는 사회문제를 반영할 줄 알아야 하는 측면에서 지은이 헨닝 망켈에게 점수를 좀 주자꾸나.


2.

주인공 발란데르. 북유럽 범죄스릴러에 나오는 주인공 형사들은 캐릭터들이 어찌 다 비슷비슷한지 모르겠구나. 발란데르는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와도 비슷해 보였어. 발란데르에 대한 가족관계는 전에 읽은 <사이드 트랙>의 독서편지에서 이야기했는데 다시 한번 해 주면, 아내와 이혼한 상태이고, 딸 린다는 다 커서 독립한 이후로는 아빠를 잘 보러 오지도 않고, 아버지는 치매가 있으셔서 자주 보살펴 드려야 했단다. 이런 가정사라면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구나. 그러니 형사 일이나 열심히 해서 유능해 지는 것 아닌가 싶구나. 그런데 이런 형사일수록 또 룰도 잘 어기고 말썽도 자주 피우고 약간은 독단적이고, 결정적으로 술을 좋아하는, 그런 캐릭터잖니. 발란데르도 술 먹고 운전하다가 경찰도 그만둘 뻔 했어. 하지만 그 집요함. 그 집요함이 발란데르의 큰 장점이었어. 그 집요함으로 범인의 범위를 좁혀간단다.

그리고 살해당한 노인이 평범한 시골 노인이 아니라는 것도 밝혀졌단다. 단순 강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지. 그 노인의 이름은 뢰브그렌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전쟁 통에 모은 엄청난 돈을 숨겨 놓았고, 돈뿐만 아니라 식구들 몰래 숨겨 놓은 여자도 있었고, 그 여자 사이에 낳은 아들도 있었단다. 피해자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게 된단다. 하지만 결말은 예상치 못한 결말은 아닌, 범죄스릴러 소설의 일반적인 규칙을 잘 지킨 결말로 끝을 맺는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너무 기대를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괜한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오늘은 짧게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잠에서 깼을 때 그는 자신이 확실히 아는 무언가를 잊어버렸다.

책의 끝 문장: 이제 그는 마침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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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 품은 드립 커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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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08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부엌에 전구알 빛 받으면서 드립커피 한잔..... ㅎㅎ

bookholic 2023-01-08 13:41   좋아요 2 | URL
전구알 빛 가미된 커피는 더 따뜻할 것 같아요~~^^

scott 2023-01-08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쉬! 북홀릭 주말 아침을 평안하게 해주는 건! 커피 ! PPL알라딘 드립백 ^^

bookholic 2023-01-08 13:42   좋아요 1 | URL
평일에는 누릴 수 없는 호사~~^^
이젠 원두 갈기가 귀찮아져서 드립백으로 ㅎㅎ

새파랑 2023-01-08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 혹시 알라딘 임원? ^^

죄송합니다 😅

bookholic 2023-01-08 13:43   좋아요 1 | URL
제가 알라딘 임원이면 적립금도 팍팍~~ 굿즈도 팍팍~~^^

페넬로페 2023-01-08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편이 늦게 일어나 저 혼자 토스트 한 조각에 드립 커피 내려 마셨어요~~
그렇게 분위기 내고 나서 한식으로 반찬 준비했어요 ㅋㅋ

bookholic 2023-01-08 13:45   좋아요 1 | URL
주말 아침의 진리는 커피향^^
저는 쿠키와 한잔 했어요~~^^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 제철 채소 제철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을 것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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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소설가 김탁환 님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한 책,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를 읽었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빠가 예전부터 김탁환 님의 백탑파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그의 소설들을 제법 많이 읽었단다. 독서기록을 뒤져보니, 생각한 것보다 많이 읽었더구나. 대부분이 소설인데 이번에 읽은 것은 에세이란다.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일기란다.

새로 터를 잡은 곡성의 섬진강변에서 지내면서 2021 1년간 쓴 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란다. 김탁환 님은 집필실을 여러 번 옮긴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섬진강변에 터를 잡았다고 하는구나. 새로운 장편 소설을 준비하면서 말이야. 김탁환 님은 주로 장편 소설을 쓰셨는데, 장편 소설 작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보니 미래를 사는 사람이라고 하고, 그렇게 장편에 매력을 느낀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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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장편 작가는 미래를 사는 사람이다. 단편이라면 올해 쓰고 올해 발표할 수도 있지만 장편은 불가능하다. 구상부터 탈고까지 최소한 3년은 걸리고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5년이나 10년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기에 장편은 이 계절의 유행이 아니라 삶의 본질에 천착할 수밖에 없다. 치명적인 매력이자 기꺼이 감수하는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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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라는 것이 꾸준하게 쓰는 게 쉽지 않은데, 김탁환 님은 1년간 거의 매일 일기를 꼬박 쓰셨더구나. 일상에 대한 내용도 쓰고, 생각에 대한 내용도 쓰고 그야말로 격식 없는 글들이었어. 그런데 일기를 출간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아주 사적인 글들은 안 실었거나 살짝 편집했겠지?^^ 김탁환 님의 일기를 읽으면서 아빠도 올해는 다시 일기를 써보겠다고 다짐을 해보았단다. 일기라는 것이 밥 먹는 것처럼 매일 하는 것이라서 루틴만 잡으면 명문을 아니더라도 짧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예전에 한때 일기를 참 부지런히 쓸 때가 있었는데, 어떤 호르몬이 아빠를 변화시킨 것인가. 늘 해마다 데일리 다이어리를 준비는 하는데, 창피할 정도로 텅 빈 다이어리를 연말에 만나게 되더구나. 올해는 다시 한번 굳은 결심을 해와야겠구나. 책 이야기가 아닌 딴 이야기로 빠졌네.^^


1.

김탁환 님이 집필실로 여러 곳을 옮겨다녔는데, 시골은 처음이신 것 같았어. 최근 몇 년 사이에 귀농 귀촌이 한참 유행이었어. 그래서 아빠도 아주 조금은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 자꾸 유튜브에서 관련 동영상을 보게 되더구나. 어떤 사람들은 주중은 도시에서 주말은 시골에서 지내곤 하는데, 그런 것도 꿈꿔보지만 아빠처럼 게으른 사람은 못할 것 같아. 얼마 지나면 시골집이 귀신 나오는 집으로 바뀌지 않을까 싶어. 김탁환 님도 그런 시골 생활을 처음 하면서 농사도 처음 해보셨다고 했어. 그러면서 건강한 재철 음식도 먹고 말이야. 아빠처럼 입맛에 둔한 사람도 직접 기른 시금치의 맛의 차이를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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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농부는 흙을 믿기에 시금치를 솎는다. 시금치를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상의 쾌감을 열 배는 더 독자에게 주고 싶다. 그 상상이 엷어지고 저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엔 선입견과 오만이 깔려 있다.

솎아낸 시금치와 봄나물로 점심을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시금치 중에서 맛과 향이 가장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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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살이가 그리 쉽고 낭만적인 것만 아니야. 특히 여름이면 무성하게 자라는 풀들과 전쟁, 그 풀들 사이에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하는 벌레들이 정도까지는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빠가 진짜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뱀의 출현은 귀촌의 망설임을 꺾는데 일등공신이란다. 설마 뱀이 나올까, 싶은데 김탁환 님도 뱀을 여러 번 봤다고 하더구나. 계단에 또아리를 틀고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상상만 해도 무섭구나.

김탁환 님은 시골에 살면서 그곳 사람들과 어울리는 노력도 많이 하셨단다. 농사 일도 거들고, 자신의 전공답게 글쓰기 학교도 열고, 자연을 공부하는 생태학교도 열고 조그마한 시골서점도 열었다고 했어. 그래서 초보 책방지기도 되었다고 하는구나. 책방 이름이 <들녘의 마음>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가 보고 싶구나. 너무 멀긴 하지만김탁환 님의 서점뿐만 아니라 주변에 좋은 서점이나 카페 등도 추천을 해주었어. 나중에 곡성, 구례 쪽에 여행 갈 일이 있으면 이 책에서 소개된 곳도 메모하면 좋겠구나.

귀농 귀촌이 유행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시골에는 사람들이 적어서 그것이 사회 문제가 되는 지방들이 많아지고 있단다. 하지만, 김탁환 님은 시선을 달리 봐서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아빠도 그 생각에 동의하게 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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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

이곳 섬진강 들녘은 사람이 매우 적은 대신,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생물들이 아주 많다. 소멸하고 있는 곳은 사람만 득실대는 서울이다. 만인에서 만물로 시선을 돌리면, 곡성을 비롯한 소위 소멸예정지역들이 달리 보인다.

인가 증가 대책만 세울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제외한 생물들을 어떻게 잘 지켜낼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들지 말고, 만물을 위해 무엇도 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


2.

1년간 쓴 일기를 읽다 보니 글 속에서도 세월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단다. 그러면서 아빠의 2021 1년은 어땠는지 생각해 보았단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제대로 여행도 못하고 회사와 집만 쳇바퀴 돌 듯 다닌 일 년이었구나. 그리고 1년이 너무 금방 휙 지나감이 실감났어. 일년 동안 쓴 일기를 몇 시간 만에 휘리릭 읽었더니 더욱 일년의 짧음이 느껴졌어. 새로 시작한 2023년도 금방 휙 지나가겠지? 너희들과 더 알찬 시간을 가져야겠구나.

오늘은 책 이야기보다 아빠의 잡생각을 더 이야기한 것 같구나. 뱀 때문에 시골살이가 어려울 수 있지만, 아빠도 김탁환 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나무와 하늘이 반반이 세상에서 살고 싶구나. 살기 어려우면 자주 가보기라도 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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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나무와 하늘이 반반인 세상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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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쓰고 싶은 장편이 있어 섬진강 들녘으로 집필실을 옮겼다.

책의 끝 문장: 장르를 따진다면 모험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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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1-08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보다 새 책을 쓸 때마다 집필실을 옮겨가며 산다는데 팍 꽂히면서 너무 부럽네요. ㅠ.ㅠ
직장다니는 우리는 그런거 못하잖아요. 아 진짜 나도 섬진강가에 가서 한동안 살고싶게 해주는 책이네요. ^^ 이상하게 낙동강은 그 옆에 살고싶다는 생각은 안드는데 섬진강은 왜 그런느낌이 드는걸까 궁금하기도 해요.

bookholic 2023-01-08 13:47   좋아요 1 | URL
낙동강 주변에는 더 멋진 해변가가 있어서~~^^
우린 새로운 책 읽을 때 마음가짐만 새롭게~~^^
 














(12)

이렇게 보자면 추리소설은 사회사에서 아주 유용하고도 풍부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미 1952년 윌리엄 서머싯 몸이 추리소설이 향후 사회사가들에게 매우 귀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고 콜린 왓슨은 역사가들의 과제란 추리소설처럼 대중적인 작품에서 사람들의 가치관과 태도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왓슨의 주장은 대중에 천착해왔으면서도 정작 대중의 기호에는 무심했던 학계의 엘리트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작업은 ‘B급 문학을 역사연구소의 소재로 활용해보는 모험적 시도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20세기 영국의 역사, 특히 전간기(戰間期, 1차 세계대전 종결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까지의 시기)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역사가로서 아주 기쁠 것이다.


(24)

애거서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동정심을 가지고 벨기에 난민들을 친절하게 보살펴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다지 고마워하는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런 모습을 본 탓에 애거서가 푸아로를 까달스러운 캐릭터로 설정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벨기에 사람인 푸아로는 영국 독자들에게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벨기에의 존재감이 약했던 탓이리라. 실제로 어떤 학자는 당시 대중의 상상력 속에 벨기에는 무시해도 좋을 만한 그저 통과하는 나라였다고 설명한다. 종종 프랑스인으로 오해받았던 푸아로가 자신이 벨기에인이라고 밝히기만 하면 언제나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던 것처럼 말이다.


(42)

애거서는 집을 오랜 수명을 지닌, 반드시 보존해야만 할 생명체처럼 묘사하곤 한다. 집은 주인공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최고의 유산이다. 그런 애착을 강력한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 <엔드하우스의 비극>이다. 주인공 닉 버클리는 황폐해가는 엔드하우스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탓에 상속세를 내기 위해 그 집을 저당까지 잡혀야 했다. 닉은 나는 그 집을 사랑해요. 팔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사촌오빠이자 변호사인 찰스 바이스는 닉이 집에 대해 광적인 애착을 가졌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닉이 절대 유별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조차 지키기 힘들게 된 영국 중상류의 초상일 뿐이다.


(68)

흥미롭게도 병역법은 자녀가 있는 홀아비와 보호 직업군(혹은 예비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징집에서 면제해주었다. 보호 직업군은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는 직업군으로 성직자, 의사, 교사, 열차기관사, 농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2차 세계대전기에는 징집면제보다 더 강한 병역배제의 개념이 적용되어 채탄, 조선업 등 특정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은 설사 자신이 원할지라도 군 복무를 할 수 없었다. 농업 역시 보호 직업군이었는데, 농부뿐만 아니라 농업을 공부하는 학생도 징집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는 농과대학에 입학하지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153-154)

그렇다면 애거서가 제일 좋아했던 교통수단은 기차였을까? 아니다. 애거서는 스포츠카 광팬이었다. 애거서는 자동차에 열광했다. 어린 시절 파리에 갔을 때 처음으로 자동차를 보고 위대한 기계시대의 선구자를 접하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자기집은 부자가 아니었기에 마차도 없었고 자동차는 꿈도 꾸지 못했다. 결혼 후 만삭으로 런던의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닐 때는 단 하루라도 차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자서전에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길게 적을 만큼 자동차는 애거서에게 정말 소중한 어떤 것이었다.


(170)

흥미롭게도 애거서는 영국인이 가진 민족적 우월성을 의식하고 있었고, 때때로 그것을 작품 속에서 비꼬기도 했다. ‘섬나라 근성같은 단어를 콕 짚어 쓰면서 말이다. <비둘기 속의 고양이>에는 그런 애거서의 인식이 잘 표현된 대목이 있다. 먼 나라를 다녀온 섯클리프 부인은 영국에 올 때마다 비가 내려서 우울하기 짝이 없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딸 제니퍼는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영어로 얘기하고, 정말 맛있는 차와 버터나 잼을 바른 빵, 제대로 된 케이크가 있는 곳에 돌아와 좋기만 하다고 대답한다. 섯클리프 부인은 난 네게 그 섬나라 근성이 좀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면박을 준다. 집에 있는 것이 그토록 좋으면 그 먼 페르시아만까지의 여행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면서 말이다. 또 있다. <벙어리 목격자>에서 푸아로가 영국인들은 영국인 의사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의사들이라고 믿고 있죠. 섬나라 근성이에요라는 부분 말이다.


(205)

마녀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지식을 통해 일상사의 궂은일을 해결해주는 존재였다. 전쟁터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가족의 생사를 점쳐주고 너무나 미운 사람을 해코지할 방법을 알려주며, 짝사랑의 상대가 자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미약을 주기도 했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배가 불러올 때 그것을 중단시킬 비밀스러운 약초를 주는 것도 마녀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움직이는 손가락>에는 그런 습속을 넌지시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동네에서 마녀로 불리는 클리트 부인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약초를 뜯으러 나가는데 일부러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마플은 은근슬쩍 그리고 아마도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녀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려 할 테지요?”라고 내뱉고야 만다.


(218)

미시사는 1970년대 서구 곳곳에서 거시사에 대항하여 나타나기 시작한 연구방법론이다. 거시사는 서구의 근대가 만든 역사서술로, 대개 국가를 중심으로 한 역사다. 그렇기에 국가 권력의 중심축이던 정치와 경제를 그 핵심에 놓는다. 그런데 일군의 학자들이 기존 권력이 억압했던 주변적 요소들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즉 지배층이 아닌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고자 한 것이다. 거시사가 국민 일반의 공통점을 주목했다면 미시사는 인간 개개인의 다양한 행위, 동기, 전략 등을 찾아보려 했다. 미시사가들은 그런 작업이 탐정의 실마리를 찾는 것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일까. 애거서의 추리소설에는 미시사를 설명할 수 있는 단초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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