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찌하여 이 땅의 권력을 쥔 자들이

또 다시 일본에게

이 땅을 팔아먹고

일본의 이익에

우리 삶을 예속시키며

일본의 군대가

이 땅에 상륙하는 것을

도우려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들은 영원한 죽음의 사자들입니다.

 

(8)

여러분! 친일파들을 물리칩시다.

현해탄 건너 그들의

고향으로 보냅시다.

밀정들을 동해 건너

그들의 조국으로 보냅시다.

 

(35-36)

명진스님의 사자후

도대체 만해가 없었다면 이천 년의 호국불교를 자랑하는 한국 불교계가 무슨 낯짝으로 얼굴을 듭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나라를 잃은 놈이 나라를 되찾는 데 헌신하지 않고 존재의 도덕성을 운운할 수 있냐 말이오. 민족의 해방 없이 어떻게 종교적 해탈을 운운할 수 있냐 말이오. 고귀한 종교적 경지? 다 헛말입니다. 불교계뿐 아니라 내외 전체를 통틀어 만해 스님만큼 뚜렷하게 항일운동을 한 사람이 없었어요. 천도교이건, 기독교이건, 유교의 선비이든 만해처럼 변절 않고 고고한 지조를 지킨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만해 덕분에, 체면치레라도 하고 사는 조계종 사람들이 만해를 존경하질 않았습니다. 시궁창에 내버려 두었어요. 만해를 역사의 잿더미 속에 덮으려고만 했어요.

그 와중에도 만해를 발굴한 것은 문학하는 사람들이었죠. 만해의 문학적 향기가 너무도 날카롭고 치열했기 때문에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겁니다. 만해는 일반인들에게 위대한 독립운동가니 심오한 종교적 사상가로서라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탁월한 시인으로서 접근이 되었던 것이죠.

 

(67)

나는 개인적으로 김수영의 시의 세계를 사랑하고, 그 인간됨을 깊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후학이지만, 김수영이 조지훈보다 더 진보적이라든가, 조지훈이 김수영보다 더 보수적인 삶의 자세를 취했다는 것은 도무지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수영과 지운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지훈이 한 살 먼저 태어났고, 두 사람은 모두 같은 시점에 비명에 갔다) 지훈이야말로 역사의 굽이마다 정확한 행적을 남겼다. 지훈은 지조를 목숨보다 아끼는 선비였고 수영은 자유롭기에 좀 퇴폐적인 성향을 가진 도시인이었다.

 

(130-131)

이 몇 권 안되는 시집의 출현은 모두가 그 나름대로 한국근대시의 정체성과 조선의 근대적 시형(詩形)을 창안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각기 자기위상이 있다. 그러나 <님의 침묵>의 출현은, 김춘식의 평가대로 초창기 시문학의 전개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도약에 해당할 만큼의 파격적인 성취라고 평가되고 있다. 나는 차라리 1920년대 초반에 출현한 시집들과의 비교를 절()하는 독보적 가치와 형식과 주제의식을 유()하고 있으면서도 또 동시에 초창기 시유형의 모든 가능성과 연속성을 보유하는 특이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겠다. <님의 침묵>이야말로 조선인의 내면에 흐르는 시정(詩情)의 자연적 유로(流露)인 동시에 근대시의 독창적 아키타입을 형성하는 형이상학적 세계라는 좀 특이한 평어를 여기 남겨놓겠다. 1920년대의 어떠한 시들과도 <님의 침묵>은 비교될 수가 없다. <님의 침묵>은 너무도 심오하기 때문이다. “이라는 추상적 주제를 원융한 척수(脊髓)로 하면서 거기서 뻗어나가는 88개의 신경조식은 수억만 개의 뉴론세포의 화장(華藏)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 화장세계의 케미스트리는 범용의 지력으로는 헤아릴 수 없다.

 

(154-155)

이 모든 논의를 리얼하고 신실하게 만드는 것은 만해의 삶의 지조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혁명에 투신하였고, 지고의 선의 경지를 증득하였고, 시인으로서 고매한 언어를 구사하였다 하더라도 단 한 번의 변절, 배신의 족적만 남겨도 위에 그린 삼각형들은 다 부서져 버린다. 멀리 산속으로 도망가 숨어 살면서 절개를 지키는 것은 혹 가할지 모르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조선총독부를 등지고 살면서 호통을 치면서 당당한 지조와 타협 없는 절대를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생과 사를 초월한 사람이 아니면 그 경지를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지훈은 만해의 절개가 그의 삶의 업적을 빛내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의 암흑 속에서 빛나는 유일한 진주임을 확인한다.

 

(158)

우리는 만해를 통해서 비로소, <독립 선언서>를 짓고도 자기 이름을 명단에서 빼달라고 비굴하게 요청한 육당이나, 창씨개명에 앞장서서 본인의 이름을 카야마 미쯔로오로 바꾸고, 황민화 운동, 대동아공영권을 지지하며 조선의 젊은이들이 일본군으로 나아가 싸울 것을 독려한 춘원이아, 타쯔시로 시즈오로 이름을 바꾸고 카미카제 같은 전쟁범죄를 찬양하며 조선청년들의 전쟁참여를 독려한 미당 서정주(1915~2000) 등등의 민족지도자들의 삶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만해의 시가 오늘까지 살아있지 아니하면, 일본 식민지강점시대의 암울한 저류를 흐르던 우리민족의 정의감이 그 좌표를 잃고 증발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176)

그러나 <서상기>에서는 최초의 무산지몽(巫山之夢)에 관한 기술에 있어서도 남자중심의 기술이 아니라 여자의 주체적인 선택을 나타내고 있다. 여자는 더 이상 남자에게 따멕히는존재가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보다 더 주체적이고 적극적이다. 앵앵은 여러가지 방편을 통해 장생을 시험한다. 그의 상사병이 진실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위태로운 증세임을 확인하고 스스로 이불과 베개를 먼저 보내고 장생이 누워있는 서상(西廂, 큰 건물의 서쪽 회랑)으로 나아간다. 앵앵의 모습은 연약하지만 모든 것을 비우는 듯한 극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 자태는 곡패 원화령(元和令)”의 운을 밟는 시로써 표현되고 있다.

 

(206-207)

20세기 일제강점이라는 사건은 메이지시대의 권력다툼의 분규 속에서 태동한 사쯔마 계열의 정한론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결국 알고보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망상이 재현일 수도 있다. 그 망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퇴각하는 일본함대를 남김없이 섬멸하기 위하여 이순신은 목숨을 바쳤던 것이다. 이 땅에서 최후 일 척까지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임란의 의병의 활약 중에서 가장 용맹스럽고 전투력이 출중한 부대가 승병조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스님들은 철학이 있었고 호국불교의 사명이 있었고, 무술에 능한 자가 많았고, 조직적 전투력이 있었다. 명령계통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기네 불교와는 달리 대처가 아닌 비구의 순결한 전통을 지니고 있어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역()이 말하는 바, 이간(易簡)스러웠다는 것이다. 일본침략자들에게 승병은 공포였다.

 

(236-237)

조선불료유신의 개혁을 꿈꼬고, 또 개혁의 실현을 위하여 8만대장경을 재편집하는 웅장한 작업을 하였어도 그것은 문자의 장난이었지, 자기가 추구하던 진정한 존재의 자유에 도달하지 못했다. 존재의 자유는 생활의 자유로 표현되지만, 생활의 자유는 내면의 정신적 자유가 달성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신적 자유는 스스로를 속박한 자박(自縛)의 상태로부터 자기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해방의 소리를 해풍 속에 쓸려가 떨어지는 잡물의 추락성 속에서 들었던 것이다. 동시에 객수(客愁)의 어설픈 고뇌가 사라지고 나 만해는 삼천계를 향하여 할파하노라! 백설(白雪)과 도화(桃花)의 편편은 동시에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우주의 실상일 때는 시공의 분별심을 초월하는 것이다. 복사꽃의 붉음이 흩날리는 백설을 붉게 물들이는 모습이야말로 객수(客愁)가 사라진 고향의 모습이리라. 그것은 존재의 자유인 동시에 기나긴 방황을 거친 자기 삶의 족적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298-299)

조선왕조 전체를 개관할 때, 한글이 언문이라 하여 비하된 듯하나 그 실용적 가치는 꾸준히 증가되었으며, 세종의 창제동기를 충분히 실현되어 갔다고 볼 수가 있다. 백성들이 하고 싶은 말을 여과없이 글에 실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단지 방대한 한글자료들이 방치된 채 연구되고 있지 아니한 것이 현금의 정황이다. 백성이 권력기관에 항의하는 괘서들이 한글로 쓰인 예가 많았다 하고, 특히 임진왜란 이후로 한글의 사용은 급증하였다고 한다. 왜놈들이 읽지 못하는 암호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광해군 이후로 왕후들이 청정(聽政)이 많았던 까닭에, 한글정치라고 말할 정도로 국정문서에 한글이 많이 등장하였다. (김일근 <언간(諺簡)의 연구(硏究)>, 건국대학교출판부, p.330)

 

(317)

님은 갔습니다. ~~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이 첫 구절을 읽고 더욱이 1925년 만해가 이 시를 쓰던 시점에서 읽고, 3.1만세혁명을 떠올리지 아니하는 자는 천치바보이거나 위선자일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거부하며 사랑하는 남녀의 이별만을 여기다 덧붙이면서 순수문학을 운운하는 자도 무뎌빠진 감상론자, 아니면 뉴라이트의 근대화론의 정당화를 위해 애쓰는 자들의 도피처가 될 것이다. 물론 만해의 시가 위대하고 옹혼한 까닭은 개인의 사랑의 테마와 조국의 운명 혹은 코스믹한 해탈의 테마가 항상 병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님은 갔습니다의 최초의 인상이나 최종적 의미는 역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환상이 불러일으킨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민족의 독립이 가능하리라 믿고 목 터져라 만세를 불렀던 민중적 좌절감의 절규가 아니 될 수 없는 것이다. 님은 갔습니다. ~ ~ 사랑하는 나의 조국은 사라졌습니다.

 

(347)

그러나 타고르는 시종일관 거리를 두었다. 간디의 아이디어를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하다고 생각했고, 영국으로부터의 인도의 독립만이 장땡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독립보다 인도인의 정신적 개화가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간디를 독립이 곧 인도인의 정신적 해방을 가져오는 첩경이라고 생각했다. 독립의 과정에서 인도인들은 근대적 가치를 배우고 구현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타고르는 인도인의 기질에 배어있는 선민주의나 비합리성, 신비주의를 배격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고, 아직도 서구에서 배울 것이 많다며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357)

타고르는 한국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벵골의 구석에서 자라난 그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와 언어와 정감을 알 리가 만무하다. 그러한 타고르에게 민족의 구원을 기대는 예언자적 시를 기다리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타고르는 근원적으로 픽션이다. 그가 쓴 등불시는 타고르와 간디의 사상적 대결을 연상시킨다. 타고르는 모르는 상대로부터 시를 부탁 받았기 때문에 최대한 소극적으로, 최대한 부딪힘 없이, 최대한 안전빵의 시를 쓴 것이다. 그러한 허구가 조선역사 정취의 1세기를 장악하였다면 우리의 한 세기 그 자체가 허구가 아니겠는가? 내 말이 너무도 혹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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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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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오랜만에 역사책을 이야기해줄게. 정통역사는 아니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면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란다. 조형근 님의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라는 책인데, 책 제목은 이 책에 실린 18편의 이야기 중에 한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해. 이 책을 읽다 보면 일요일 오전에 방영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도 있었어. 그래서 찾아보니 어떤 이야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된 내용이 있더구나.

책 제목에 나오는 콰이강의 다리는 어디에 있는 다리인지 몰랐지만, 오래 전 유명한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떠오르게 했단다. 이 영화는 유명해서 아빠도 제목은 알고 있지만, 워낙 오래된 영화이다 보니 아빠도 보진 못했단다. 그 다리에 어디에 있는 다리인지도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단다.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철도에 있는 다리인데 태국에 있다고 하더구나.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내용도 이 책을 통해서 조금 알게 되었는데, 콰이강의 다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잡혀온 영국군 포로들이 건설한 다리이고, 일본군 장교와 포로로 잡혀온 영국군 장교 사이의 갈등을 그린 영화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다리에 조선인이 있었다고?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의해 강제로 부역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았으니 콰이강의 다리에 조선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닌 것 같구나. 다만, 노동자로 있는 것이 아니고 포로감시원으로 있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이야기해주려고 했어.

아빠가 작년에 읽은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산책>에서도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단다. 일본군 밑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고 전범자로 분류되어 재판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들이 많다는 내용도 기억나는구나. 이것이 올바른 재판인가에 대해 생각했었지. 이 책에서도 그런 조선인 포로감시원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어. 강제로 끌려오긴 했지만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임 몇몇은 인간적으로 대해준 사람들도 있지만, 포로들을 학대하는 등 비인간적으로 다루기도 했대. 이런 경우 그들을 전범자로 분류하는 것이 맞는가. 만약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런 짓을 했겠는가. 아빠 생각에 그들이 전범자로 교수형까지 당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한단다.

 

1.

이 책에 실린 18가지 이야기 중에 조선인 포로감시원 이야기처럼 예전에 다른 책들을 통해서 알고 있던 이야기들고 있었고, 처음 알게 된 이야기도 있었단다. 첫 번째 등장하는 이야기는 리샹란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란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만주 지역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만들었어. 만주국은 1932년에 세워져 1945년에 사라진 나라로 아주 짧은 역사를 가졌구나. 이런 만주국의 최고의 스타로 알려진 리샹란이라는 배우 겸 가수가 있었단다. 당시 사진이 실렸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서구적인 미모를 가진 사람이었어. 만주국에서 만든 영화에 많이 출연하였는데, 주로 일본의 부역 영화였다고 하는구나. 가수로도 활약했는데, 등려군의 노래로 잘 알려진 <아래향>이라는 노래의 원곡도 이 사람이 불렀다고 하는구나. 리샹란의 신분이 철저히 숨겨져 있어서 중국, 일본,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리샹란의 부모라고 하는 이들이 있었대. 일본이 패전하고 나서 리샹란의 부모가 일본 사람이고 본명은 야마구치 요시코라는 것이 밝혀졌어. 일본이 처음부터 리샹란을 선정용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했어. 리샹란은 중국에서 추방되어 일본으로 돌아갔대. 일본에 와서는 영화배우로 계속 활동하여 미국에서도 영화를 찍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는 참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서 활동을 했대. 그리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활동하였지만, 정부의 입장에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단체 입장에서 기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비난을 받기도 했다는구나. 하지만 2014년 그가 죽고 나서 일본 정부 위안부에 대해 쓴 야마구치 요시코의 글도 삭제되었다는구나. 일본 정부는 못 말릴 사람들이구나.

올림픽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딴 사람은 손기정이라는 분이란다. 일제 시대에 참가하여 어쩔 수 없이 일장기를 달고 달렸지만, 그의 금메달 소식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었단다. 그리고 함께 달린 남승룡이라는 분도 동메달을 따서 기쁨은 두 배가 되었지.

==================

(242)

방송은 끊겨도 신문은 쉬지 않았다. 베를린과 계속 통화를 했다. 수화기 너머로 손기정이 1위로 달리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 왔다.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새벽 1시께 다시 광화문에 사람이 모였다. 점점 더 많은 인파가 운집했다. 마침내 새벽 2시께, 동아일보 사옥 2층 창으로 여자 아나운서가 나타났다. “손기정 선수가 일착으로 골인해 우승했습니다.” 사람들은 잠시 멍했다. 이윽고 펄펄 뛰며 소리를 질렀다. “만세, 만세, 손기정 군 만세!” 잠시 후 제2보가 전해졌다. “다시 베를린에서 온 소식입니다. 손기정 군이 2시간 29 12초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였고 남승룡 군도 3위로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손기정 만세”, “남승룡 만세소리를 질렀다. 함성은 어느새 조선 만세로 바뀌고 있었다. 온 조선이 함께 환호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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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올림픽이 하필 베를린이었구나. 히틀러의 나치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던 그 베를린. 올림픽을 마치고 독일에서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사람이 올림픽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는데 손기정도 그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다는구나. 손기정을 더 알려주는 고마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는 친 나치이자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대. 전쟁이 끝나고 레니 리펜슈팔은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을 기록하는 등 다큐멘터리의 거장으로 거듭나지만, 나치 연루자의 꼬리표는 계속 달고 다녔단다. 레니는 자신은 그것에 대해 변명처럼 이야기하기를, 당시 자신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대. 너무 하기 쉬운 변명이 아닌가 싶구나. 레니 리펜슈팔과 달리 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 다른 독일출신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고 하는구나.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 나치에 맞섰다고 하는구나.

레니 리펜슈탈처럼 처음부터 나치 연루자인 것이 알려진 사람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나치 친위대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이들도 있었대.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양철북>이라는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라는 사람이야. 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난 몇 년 뒤 자신이 나치 친위대였다며 양심 선언을 했다고 했어. 그 전에 나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그였고, 노벨문학상까지 받고 침묵했던 그가 뒤늦게 양심선언 것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도 일었다고 하는구나. 양심 선언의 용기보다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컸다는구나.

….

너희들도 본,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 그 영화가 실화를 바탕에 둔 영화였다고 하는구나. 아빠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란다. 영화 속 히로인 마리아가 쓴 책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실제보다 마리아가 너무 미화되었다고 하는구나. 폰 트랍 대령으로 나온 아이들의 아버지는 실제로 아이들에게 무척 자상하고 가정적이었다고 했고, 마리아가 자신들의 집에 오기 전에 이미 악기들을 연주하고 음악에도 소질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 영화가 오히려 그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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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275)

아카테는 뮤지컬을 보고 울었다. 다른 가족들도 속상해했다. 무대에 오른 냉정한 남자는 아빠가 아니었다. 뮤지컬과 영화는 아름다웠지만 진실은 아니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우리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마리아는 가족 이야기의 판권을 9000달러라는 헐값에 독일 영화사에 팔았고, 영화사는 다시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제작사에 판권을 팔았다. 그리고 영화로 이어졌다. 가족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통제할 수 없게 됐고, 기억을 빼앗긴 느낌이었다고 90세가 다 된 아가테는 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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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실화를 바탕으로 두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너희들과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는 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다행히 너희들은 몰랐다고 해서 아빠의 말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이 책에 실린 몇 가지 야이기를 해주었는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다른 책에서 봐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어서 조금은 아쉬웠단다. 하지만 내용들이 재미있어서 너희들에게도 추천하고 싶구나. 바빠서 책 읽은 시간들이 없긴 하지만….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2023 3 28, 일본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가 세상을 떠났다.

책의 끝 문장: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리샹란(1920~2014)은 만주국을 대표하는 스타였다. 영화배우와 가수로서 만주국을 넘어 중국과 조선,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각지에 명성을 떨쳤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 사이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했던 여성 스타라면 조선의 최승희와 만주국의 리샹란을 꼽게 된다. 최승희 후원회에는 여운형과 마해송, 후일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등 유명인들도 속해 있었지만, 그래봐야 이들은 권력 없는 문인이었다. 그에 비해 리샹란의 후원자들은 만주국의 실세들이었다. 그녀를 키운 건 일본 제국주의였다. 마치 푸이가 그랬던 것처럼. - P20

역사적 책임에 관한 오랜 고민들이 깃털처럼 가벼운 그 말들 속에서 증발했다. 리샹란, 아니 야마구치 요시코와 그의 동료들은 "아무리 사과해도 아물 수 없는 편법을 추진했다고 비판받았다. 지금은 한국 대통령이 나서서 일본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다며 손을 젓고 있다. (역사의) 전진이나 후퇴와 같은 거칠고 자의적인 표현은 가급적 삼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써야만 한다.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 P31

<나비부인>은 예술의 이름을 빌려 동양 여성에 대한 서양 남성의 성적 환상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탈리아 사람 푸치니가 어쩌다 미국 장교와 일본 여성 사이의 사랑을 오페라 소재로 삼게 됐을까? 전기에 따르면 코벤트가든에서 <토스카> 초연을 보기 위해 런던에 머물던 1900년 6월 무렵, <나비부인, 일본의 비극>이라는 단막극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 미국 해군 장교가 일본에 파견 나와 게이샤를 아내로 두고 자식까지 낳지만, 곧 ‘진짜’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영어가 짧은 푸치니였지만 바로 이 이야기다 싶을 정도로 인상이 강렬했던 모양이다. 푸치만 그랬던 게 아니다. "당시 서양 세계는 이 이야기에 미친 듯 열광했다." - P133

베트남전쟁은 20세기의 가장 부도덕한 전쟁 중 하나였다. 크리스처럼 잠시 베트남에 온 미국의 시각으로는 이 전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베트남전쟁은 30여 년에 걸친 두 차례의 인도차이나전쟁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만 그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오늘날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일본군이 진주한다. 나치의 괴뢰 비시프랑스 정부의 지시를 받은 프랑스군은 전투에 없이 일본군의 온순한 포로가 됐다. 종전 후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베트남 남부에는 영국군이, 북부에는 중국군이 진주한다. 영국군은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한 다음 프랑스군에게 다시 무기를 쥐여준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다시 식민지로 지배하겠다고 선언한다. - P141

2012년 3월 29일,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 50년 경과를 기념하는 연설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이렇게 전쟁을 미화했다. "베트남전쟁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피부색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지닌 채, 매우 힘겨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함께 의무를 다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온 나라 구석구석에서 사랑하는 조국에 봉사하기 위해 따뜻한 가족의 품을 떠나야 했던 미국인들의 이야기다." 권투 영웅 무하마드 알리처럼 부도덕한 전쟁에 끌려가길 거부하며 감옥행을 택했던 수많은 이들, 반전운동에 나섰던 수많은 미국인 대중의 분노를 생략하는 화법이다. 미군의 총칼에 죽은 베트남인에 대해 침묵하는 화법이다. - P144

님 웨일즈와의 인터뷰 말미에 장지락은 강경하기만 했던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은 것이 아닐까? …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가 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신념과 오류를 지닌 채 행복하게 죽도록 내버려두어라. 근본적인 질문으로 타인의 영혼을 괴롭히지 말라."
적과의 싸움에 목숨 건 혁명가들이 동지가 밀정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의혹과 믿음 사이에서 흔들렸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한 독립혁명의 길에서 증오가 자랐다. 미움이 서로를, 스스로를 파괴하기 일수였다. 사방이 캄캄한데 어쨌든 나아가야 했다. 싸우고 사랑하고 실패하고 반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별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했다. 상처 입은 채 서로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그 걸음을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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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의 비극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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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해 줄 책은 제목 때문에 궁금해서 산 책이란다. I의 비극. I라고? 제목을 보고 아빠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MBTI란다. 많은 성격 테스트가 있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MBTI가 대세가 되었잖니. MBTI에서 첫 번째 성격을 가르는 E I. 아빠는 확실한 I인데, 그런 아빠에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I가 비극까지 될 것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러면서 설마 그 I는 아니겠지? 설마 그 I인가? 이런 생각이 번갈아들면서 결국은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읽게 되었단다. 지은이는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일본 작가인데, 그의 책은 처음인데 그가 쓴 책제목을 보니 서점에서 눈에 띄던 책들이 있더구나. 일본에서는 추리 소설 관련 상도 많이 받은 유명한 작가인 것 같았어.

그런데 막상 읽으려고 보니, 소설 제목이 익숙했어. .. 조금 생각하다 보니 엘러리 퀸의 소설들이 생각나는구나. X의 비극, Y의 비극, Z의 비극그런 알파벳 비극의 연장선인가? 궁금해.. 얼른 책을 펼쳤단다.

 

1.

일단 I는 아빠가 생각했던 I는 아니었단다. I‘I을 의미하는데 I턴은 출신지와 다른 지역, 특히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을 말한대.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 마을을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 타지 사람들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돕는 프로젝트. I턴 프로젝트가 이 소설의 주요 이야기란다.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고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농촌이 늘어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구나. 일본에도 그런 것이 사회 문제가 되어 빈 농촌에 사람들을 다시 이주시키는 프로젝트를 하나 봐. 정확한 것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농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유튜브에서 본 기억이 있단다. 참 좋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어. 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폐허가 되니까 말이야.

….

이 소설은 그런 I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공무원들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단다. 마지막 주민이 죽고 나서 6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미노이시라는 마을. 신청자를 뽑아 이주 지원을 해주는 일은 소생과 공무원들이 담당했어. 만간지 구니카즈가 주인공이고, 소생과 신입 공무원 간잔 유카가 함께 일을 추진했어. 소생과 담당 과장은 니시노 히데쓰구라는 사람인데, 주로 지시만 하고 자신은 칼퇴근을 즐기는 사람이었어. 대부분의 일을 만간지 구니카즈가 했단다.

처음에 이주 온 두 집부터 만만치 않았어. 시골 생활을 하는데 적합해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만간지는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지원해 주었단다. 야간 근무는 말할 것도 없이 주말 근무도 해야 했어. 하지만 두 집은 결국 서로 불화를 일으키고 얼마 못 있다가 미노이시를 떠났단다. 그리고 다시 빈 마을이 되었어.

그리고 얼마 후 정식 개촌식을 열고 여러 식구들이 이사를 왔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일들이 꼬이면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시 미노이시를 떠나는 일들이 일어났어. 그렇게 떠나는 이유들도 각양각색이었단다. 양식업을 준비하던 이는 새에게 물고기를 모두 빼앗기고 떠났고, 어떤 아이는 미아가 되어 지하에서 발견되어 떠났고 그 아이가 미아가 되게 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낀 이웃도 떠났고 구급차가 오는데 40분이나 걸리는 것을 알고 불안해서 떠난 이도 있었고, 식중독에 걸려서 떠난 이도 있었고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언제나 소생과 과장 니시노 히데쓰구였어. 현장에 잘 오지도 않고 근무시간도 칼같이 지키는 그는 신입 간잔 유카가 준 자료만 보고 숨어 있는 사건의 핵심을 찾아냈단다.

결국 몇 남아 있던 사람들도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면서 모두 떠나게 되고 미노이시는 다시 빈 마을이 되었어.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었던 것은 누군가의 작전이 있었던 것이란다. 빈 농촌 마을에 사람들이 이주하게 하는 I턴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사람… I턴 프로젝트는 세금만 많이 들어가고 시설이 부족한 농촌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또 돈도 들어가고 말이야.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거야. 그래서 몰래 이 이 프로젝트를 방해하려고 했던 거지의도적으로 오래 정착하지 못할 것 사람들을 선정하고, 그 사람들이 지내면서 의도적으로 이런 저런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도록 유도한 사람누굴까? 그건 나중에 너희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오늘은 미공개…^^

이 소설이 추리 소설이긴 하지만 무섭고 누군가 죽을지 모른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어. 사건들이 약간은 귀엽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사건들이었지. 문체는 가벼워 보였지만, 소설의 주체는 고령화 사회, 도시 집중 문제 등 제법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단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데, 나라는 산으로 가고 있으니 정말 걱정이구나. 얼른 탄핵이 인용이 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갔으면 좋겠구나.

오늘은 짧게 끝낼게.

 

PS,

책의 첫 문장: 날숨도 얼어붙은 듯한 새벽, 올해로 100세인 노인 여성이 숨을 거뒀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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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요즘 사람들은 얼룩백이 소라고 하면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점박이 무늬의 홀스타인 젖소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홀스타인 품종의 소가 널리 보급된 것은 1960년대 이후라고 합니다. 이 시가 발표된 때는 1927년이니 당시에 홀스타인 젖소가 우리나라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홀스타인 젖소도 아니라면, 얼룩백이 소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여기서 얼룩백이란 칡소를 말합니다. 오늘날 한우의 대표는 누런 소가 되었지만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소는 누런 소 외에도 흰 소, 검은 소, 몸에 호랑이처럼 줄무늬를 가진 칡소 등 다양한 종류의 소가 있었습니다.

 

(44-45)

사람들의 선택으로 언어는 변화합니다. 없던 의미가 새로이 생기기도 하고, 기존의 부정적인 의미가 완화되거나 심지어는 미화되어 쓰이기도 하며, 의미가 추가되기도 합니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잘 쓰이지 않게 되면서 한때의 유행어로 남기도 하고 일상적으로 쓰이게 되어 안착하기도 하지요. 기존에 알던 단어가 새로운 의미로 쓰일 때, 그리고 그 단어를 자신도 쓰게 될 때 왜 이런 의미로 쓰이는 걸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많은 단어를 무심코 써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78-80)

, 음식물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이용하였는데 그 도구를 재료의 명칭인 양지라고 부르게 되었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를 양지질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양지질이라고 말이 이를 닦거나 헹구는 행위 전반을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고, 시간이 더 많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양지나 양지질이라는 말이 기원적으로 버드나무 가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지요.

우리나라는 한자 문화권이었으므로, 한자어 가운데 를 뜻하는 이 치()라는 한자가 있으니 세월이 흘러 양지라는 단어가 사람들 사이에 쓰이면서 를 혼동하여 쓰게 되었고, 양지나 양지질이 양치 내지 양치질이라는 말로 바뀌게 됩니다.

 

(107)

제가 생각하는 국어학자 역할은 이렇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오하고 사람들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뒤쫓아 가면서 확인하는 거죠. 다만 그 방향이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이건 생객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선택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고 사람들의 방향이 맞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114)

예전에는 돼지와 고양이의 새끼를 뜻하는 단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단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돼지와 고양이입니다. 무슨 말장난이냐고 할지 모르나 돼지와 고양이는 원래 새끼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에 와서 성체를 뜻하는 말로 변한 것이지요.

옛날에는 돼지와 고양이가 새끼를 뜻하는 말이었다면 성체를 뜻하는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전 사람들은 돼지를 돝이라 하였고 고양이는 괴라고 하였습니다. 돝이라는 말은 현대에는 사라져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우리가 지금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윷놀이에서 도, , , , 모 할 때 의 형태로, 또 마산 앞바다에 있는 돝섬이란 지명에, 또 물고기 이름 돗돔에 남아 있습니다. 돗돔은 원래 돝돔에서 유래한 것인데 돝이란 말이 사람들 사이에 쓰이지 않게 되면서 표기까지도 ㅅ으로 바뀌었지요.

 

(136)

강원도에서는 왜 생강나무를 동백이라 불렀을까요? 이유는 두 식물의 용도가 공통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백나무 씨앗에서 짜는 동백기름은 식용으로도 쓸 수 있지만 부녀자들의 머리에 바르는 기름으로도 많이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백이 자라지 않는 강원도에서는 동백기름 대신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사용하였어요. 동백기름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그 이름까지도 동백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초기에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동백나무를 뜻하는 <Camelia>라고 제목을 붙였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었습니다.

 

(219)

갈매기살의 갈매기는 가로막이라는 말이 변한 형태입니다. 갈비와 삼겹살 사이의 부위가 갈매기살이라고 하였는데요. 갈비는 가슴에 위치하고 삼겹살은 배에 있으니 갈비와 삼겹살 사이란 가슴과 배의 경계 부위가 됩니다. 포유류의 가슴과 배는 횡격막(橫膈膜)이라는 얇은 막으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한자어 횡격(橫膈)을 우리말 가로로 바꾸어 횡경막에 해당하는 말을 새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가로막입니다. 세로가 이닌 가로로 되어 있는 막()이라는 의미이지요.

 

(228-229)

요즘은 어떤 사람을 두고 아저씨와 아주머니라고 부르나요? 잘 알지 못하는 남자 어른을 두고 아저씨라고 하거나 마찬가지로 잘 알지 못하는 여자 어른을 두고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예전에는 남자 친척을 모두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삼촌, 외삼촌, 숙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부, 이모부를 모두 구분해 부르지만, 예전에는 이들을 모두 아저씨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아주머니 역시 고모, 이모, 숙모, 백모 할 것 없이 집안의 여자 어른을 부르는 단어였습니다.

 

(231-232)

그러다 보니 김치가 우리 고유의 음식이므로 김치라는 단어 또한 순우리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김치는 침채(沈菜)라는 한자어가 변해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침채는 담글 침()에 채소 채()자로 채소를 담근 것이라는 의미이지요. 현대 한자음으로는 침채이지만, 옛 한자음으로는 팀ㅊ.l이었고, 사람들이 말할 때는 딤ㅊ.l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딤채를 김치냉장고 브랜드 이름으로 더 익숙하게 알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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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 좋고
커피 맛도 좋고
인도 리버 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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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5-01-18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너무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커피향이 막 나는 것 같아요. ㅎㅎㅎ

bookholic 2025-01-19 00:3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주말 아침 소소행입니다..^^
꼬마요정 님도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