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의문을 갖지 말아라. 회의도 하지 말아라. 미래를 아는 인간은 아무도 없으며, 가망 없는 미래를 예상해서 현재의 삶에 불충실하는 것처럼 큰 어리석음은 없다. 공부에 열중해라.”

 

(66)

시어머니는 해방 전해에 돌아가셨고, 시아버지는 해방되고 4년 만에 돌아가셨지요. 고문당하고 해서 감옥에서 얻은 병은 자꾸 깊어가고, 살림은 쪼들려 병 다스릴 돈은 없고, 나라가 섰대도 독립운동한 분네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히려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시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말예요. 이승만이가 시아버지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새 나라가 서고 장관들이 임명되는데, 그중에 소문난 친일파들이 한둘이 아니었잖아요. 그걸 보시고 시아버지께서는 한바탕 통곡을 하시더니 그 다음부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셨어요. 그런데 글쎄 다음날 보니까 베갯잇에 눈물 젖었던 자리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있지 않겠어요. 처음엔 그게 뭔가 했는데, 그게 글쎄 말로만 듣던 피눈물이었어요. 그 뒤로 시아버지께서는 말 대신 한숨만 땅이 꺼지게 쉬시고, 병세는 날로 심해지다가 결국 한 달을 못 넘기고 돌아가셨어요.”

 

(81-82)

이봐, 술도 아직 안 취하구선 그런 순진한 소리 하지 말어. 케네디가 뭐 별거야? 그는 충실한 미국 대통령일 뿐이야. 미국은 공산주의 종주국인 쏘련과 대적하는 자유민주주의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고, 케네디는 그 총사령관으로서 세계에서 제일가는 반공주의자야. 그러니까 그가 가장 환영하는 건 반공을 내세우는 나라의 지배자들이지. 박정희는 바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 거야. 그런데, 박정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가 차지하고 있는 지정학적 중대성이야. 미국의 입장에서 남한이 적화된다 하면 어떻겠어? 그거야말로 눈 뒤집힐 끔찍한 일인 거야.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는 곧바로 일본의 공산화로 확대되고, 그렇게 두 겹의 방화벽이 무너지면 미국은 자기네 호수처럼 독차지하고 있던 태평양을 반이나 잃으면서 쏘련과 맞닥뜨리게 되는 거지.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 태평양으로 진출한 쏘련의 승리는 중공을 자극해서 대만을 단숨에 손아귀에 넣게 되고, 월남이나 라오스같이 지금 불안한 상태에 있는 나라들까지 금방 중공의 영향권에 들어가고 말야. 그럼 어떻게 되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는 연쇄적으로 적화 위험에 빠지게 되고, 미국은 동북아시아에 이어 동남아시아까지 잃게 되어 마침내 세계 2대 강국에서 탈락하는 비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는 거야.”

 

(214)

한 번 배신한 자 두 번 배신한다는 말 있잖아. 만군으로 독립군 등뒤에 총질한 친일파가 또 한 짓이 쿠데타 주동이야. 자네 알지? 만군의 만행을. 자네와 내가 광복군으로 임정에 있지 않고 만주에서 활동했더라면 그자가 우리의 등뒤에 총질을 한 거라고. 그런 자가 일으킨 쿠데타에 야합해 뭘 해? 국회의원? 맙소사, 그것들이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어. 그자들 수뇌부에 만군과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한둘이 아닌 걸 자네도 잘 알지? 난 그자들과 맞서 싸우는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어.”

 

(255-256)

! 그거 꽤 논리적인 지적이군.” 신준호는 민경섭을 빤히 쳐다보며 담배를 빼들고는, “그게 말이야……,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군사정권에서 추진한 그런 일들은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권에서나 해야 했고, 국민들이 원하고 호응하는 일이었어. 4.19, 그 혁명의 상황 속에서 정권을 수립한 장면정권은 그런 일들을 처리할 강한 의지를 세웠어야 했고, 국민의 불신으로 경찰력이 무력화된 상황이었으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인들을 동원했어야 해. 그런 권한은 엄연히 법이 보장하고 있었거든. 그랬으면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도 대환영이었을 거야. 그런데 불행하게도 장면정권은 나라를 바로잡을 국가적 문제점도 투시하지 못했고, 국민적 요구를 파악할 능력도 없었고, 혁명적 정치를 추진할 의지도 없었어. 그러니 주어진 권한을 활용하지도 못하고 권력을 잃은 거지. 너무 가혹했나?”

 

(281)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으며 수없이 불렀던 노래. 전우는 사라졌지만 분단은 험상궂은 얼굴로 남아 있었다. 빽 없이 내던져진 사병 신세는 당연히 향해 총부리를 겨눈 분단의 험악함이었다. 무수히 생각해 보았지만 왜 그러고들 있어야 하는지 끝내 답을 얻지 못했다. 이념 때문에라고 하기에는 민족의 상처와 손실이 너무나 컸고, 민족의 비극을 외면한 어리석음을 탓하자니 이념의 벽은 너무 완강했다. 자신이 2년 넘게 젊은 세월을 바친 것은 분단을 지속시키는 데 실낱 같은 힘을 보탠 것일 뿐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땅에 사나이로 태어난 죄로 할례를 하듯 병역의무라는 통과의례를 치른 것뿐이었다. 그 의무이행이 아버지 때문에 의심받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인생의 한 고비를 넘겼는데 앞길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변함없이 막막하고 오늘의 날씨처럼 먹구름만 가득했다. 이런 상태에서 임채옥은 감당하기 어렵고 부담스러운 짐이었다. 고맙고 사랑스러운 감정과는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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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우어
천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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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감성적이고 사람 향기 풀풀 나는 SF 소설을 쓰셔서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천선란 님의 신간 소설집이 나와서 읽어 보았단다. 아빠가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천선란 님의 단편소설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이번에도 큰 기대와 함께 책을 펼쳤단다. 너무 큰 기대였는지^^ 지난 소설들보다 약간 실망을 주기도 했지만, SF소설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단다. 지구온난화가 점점 심해지면서, 미래의 지구는 어떻게 될까 늘 불안한 마음을 살다 보니, 미래 세계를 상상할 때면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이 그려지더구나.

요즘처럼 기후 변화의 위기를 몸소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빠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싶구나. 그래서인지 천선란 님의 소설도 미래를 배경을 한 소설은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이 많이 있었단다. 이번 소설에서도 소설의 중심에는 인간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전 소설에 비해 몽환적인 요소도 좀 곁들인 느낌이 들었단다. 그래서 가볍게 읽다 보면 소설 속 배경을 머릿속에 그려보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있었단다.

첫 번째 소설 <얼지 않는 호수>도 그런 측면이 있었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지구는 혹독한 추위와 엄청난 눈보라에 휩싸인 곳에 되어 있었어. 주인공이 어려움에 빠졌을 말하는 산양 이 구해주었단다. 산양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산양은 머릿속에 칩이 있어 말을 할 수 있었단다. 주인공은 산양과 오랜 세월 단 둘이 보냈는데, 어느날 야자라는 아이가 나타나 얼지 않는 호수로 간다고 했어. 그러면서 품 속에는 친구 이 있다고 했는데, 품 속에 있는 것은 친구 의 심장이었어. 꽁꽁 얼어버린 지구에 얼지 않는 호수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야자는 얼지 않는 호수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길을 떠났단다.

 

1.

두 번째 소설 <모우어>는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데, ‘모우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소설을 시작했단다. 인류는 점점 진화하여 더 이상 개체를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단다. 몸의 젊은 세포들이 늙은 세포들을 먹어 치우면서 계속 젊음을 유지했어. 1년에 한번 특정 시기에만 다른 지역의 인간들을 받아들였어. 그리도 또 하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어. 그동안 사용했던 인간들의 언어는 인간에게 해악만 준 실패한 것으로, 더 이상 언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어. 대신 의음이란 것으로 소통을 하는데 이 의음이라는 것은 머릿속의 생각으로 바로 소통하는 것이란다. 초우라는 사람이 어떤 호수에서 우는 아이를 발견하는데 그 아이는 진화가 덜 되어 입으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어. 초우는 그 아이를 숨겨서 보살피면서 모우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단다. 모우에게 의음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쳤지만, 모우는 자라면서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생기는 갈등을 이야기해주었단다.

….

<너머의 아이들>이란 소설은 외계 생명체의 침입했는데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필요했고,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외계에서 온 우주선에 타게 된단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죽었지만, 죽음 너머의 곳에서 다시 깨어나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실제 세상. 그들이 실제라고 살고 있던 곳은 프로그램 속 세상. 영화 매트릭스를 비롯하여 비슷한 소재의 SF가 떠올랐단다.

<뼈의 기록>이란 소설은 천선란 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AI 나온단다. 이번 소설에서는 장의사 역할을 하는 안드로이드 로비스의 이야기. 주로 고독사하는 노인들의 장례를 맡곤 하는데 가끔은 자살한 젊은이, 사고로 죽은 아이도 장례를 맡는단다. 장례를 하면서 장례식장의 미화원 모미와 친해져 우정을 쌓게 돼. 그런데 로비스는 안드로이드이다 보니 늙지 않잖아. 고장만 나지 않는다면세월은 모미마저 데리고 가고, 로비스는 일반적인 장례절차를 어기고 모미가 꿈꾸었던 우주로 보내주게 된단다. 이 일로 질책을 받기도 했지만, 로비스는 계속 장례 업무를 하는데 인연을 맺었던 이들을 모두 자기 손으로 보냈단다. 자신이 녹이 슬어 무릎이 고장 날 때까지 말이야. 미래는 인공지공이 많은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하니, 이 소설은 소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점점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있는데 안드로이드에게도 감정이 있고 영혼이 있을까? ChatGPT나 빅스비와 이야기할 때도 보면 감정이 느껴질 때도 있는데 말이야.

<서프 비트>는 이 소설집에서 실린 작품 중에 재미로만 봤을 때는 가장 재미있었단다. 초능력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지. 그런 장르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많았는데 작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무빙>이 많이 떠올랐단다. 물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어둠에서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벽을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 그리고 또 다른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서프 비트>에 담겨 있단다.

그 외에 <사과가 말했어>, <입술과 이름의 낙차>, <쿠쉬룩> 이 실려 있단다.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천선란 님의 소설 속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나라도 작년 말부터 갑자기 디스토피아가 된 기분이구나. 역사 속에서만 들어본 비상계엄과 내란이라는 단어를 실제로 듣게 되다니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많다는 것이 섬뜩하더구나. 그들이 아빠가 꼬박꼬박 내는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어찌나 열 받는지얼른 이 상태가 마무리되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봤으면 좋겠구나.

….

아빠가 천선란 님의 소설들을 여럿 읽어보았는데 단편보다는 장편이 더 나은 것 같았단다. 신간을 내고 인터뷰를 한 것을 봤는데, 장편을 한편 계획하고 계신다고 했어. 그 장편을 기대하면서 오늘 독서편지는 이만하련다.

 

PS,

책의 첫 문장: 그녀는 그 일대의 파수꾼으로 삼십삼 년을 보냈다.

책의 끝 문장: 햇빛 가림막 아래서 불을 피우고 있는 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자연은 반복돼, 모우. 소멸하는 듯 보이지만 자신의 탈각(脫殼)을 집어삼키며 재생하고, 회복하고, 되살아나는 거야. 자연의 시간은 우리가 달라. 유한한 시간에 갇힌 건 인간뿐이야. 인간은 자연에서 떨어져나왔어. 아주 한때 하나였겠지만, 인간의 언어가, 언어를 가진 인간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이 생태계의 이방인이 된 거야. - P33

초우, 현혹되지 마. 실패한 것에는 이유가 있어.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자세히 들여다봐. 언어가 장착되고, 그리하여 많은 것은 정립되고, 끊임없이 전달되면서 세상은 전쟁과 빈곤, 파괴와 몰살, 멸종의 길을 걸었어. 시야는 좁아지고 감각은 둔해졌지. 언어에 지배당한 인류의 끝은 자멸이었다. 우리의 뇌는 언어를 탈락시키며 발전했어. 언어가 통제했던, 최초의 인류가 가졌던 감각을 다시 깨웠다. 우리의 소리는 언어에 정복되지 않기 위한 저항이다. 언어가 생겨나고 규칙이 정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몸짓이지. 지켜라. - P49

"언어를 알게 되면서 엄마도 나와 같은 같은 시간을 살게 되겠지. 느려지고, 멀어지고, 작아지고, 힘겨워지겠지. 이건 저주야. 맞아, 저주가 맞아. 기껏 자연이 인간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저주의 주문이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영원히 말의 미로 속을 떠돌다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인간이 되겠지. 하지만 나는 엄마가 그러길 바라."
모우가 초우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의음으로 초우에게 속삭인다.
엄마, 영원의 없어. 가려진 세상을 제대로 봐. 인간은 진화하지 않았어. 그의 말이 맞아. 나는 인간의 저주야. 그러니 우리의 만남부터 언어로 새겨보자. 모두가 볼 수 있게. 그 시작은 엄마의 말이 좋겠어.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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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만해라는 존재는 평화 그 자체이다. 평화는 단지 전쟁(싸움)의 부재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이 부질 없는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날 때 달성되는 것이다. 만해의 시는 이러한 해탈이 사랑의 단절이 아니라 사랑의 속박으로 달성된다는 아이러니를 제시하고 있다. 평화는 문명의 궁극적 목표이며 자연의 원상(元相)이다. 평화라는 가치가 없으면 진과 선과 미가 모두 불인(不仁)해진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부재하면 모험조차 불인해진다. 인류의 역사는 과정이며 노경(老境)이 없다. 끊임없는 청춘의 노래이다. 청춘의 꿈은 항상 비극의 결실을 수확하게 마련이다. 이 우주의 모험은 꿈과 더불어 시작하지만 항상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수확한다. 이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만해는 자유라고 부른다. 이 민족에게 자유는 해방을 의미하며 일본이라는 사악한 권력의 패망을 사실로서 전제한다.


(40-41)

논개나 이순신, 김시민, 김성일, 김천일, 최경회 같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 항쟁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또다시 일본놈들이 이 조선삼천리금수강산을 짓밟는 강도질을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제2차 진주성대첩 때 성내에 있었던 6만 명의 국민들이 모두 목숨을 던졌던 것이다. 열흘 동안에 25번의 전투가 있었는데 24번을 이겼고 마지막 한 번만 졌다. 그때는 성내에 사람이 없었다. 처절한 전투였는데 결코 일본이 승리한 전투가 아니었다. 조선땅에 있던 왜군 10만이 집결하여 4만 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주만 생각하면 치를 떨었고 다시는 진주에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또다시 3백여 년 후에 일본의 식민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집필하고 있는 이 시점의 정권은 일본의 한국상륙을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후회스러운 현실인가! 지금와서 동아시아에 나토 비슷한 집단군사동맹체제를 만든다면 화약고를 자처하는 꼴이 아닌가?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아무리 보수라 할지라도 국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전쟁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닌가!


(44)

민중들의 생활이 다 무너져 젊은이들은 삶을 설계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고 자식 낳을 꿈도 꾸지 못한다. 물가는 치솟고 세계적으로 모범적으로 의료체졔를 망가뜨려 사기업화시키려 하고, 이상(異常)적인 금융체제 속에서 투자가들은 불건강한 투기에 시달리고 있으며, 부동산, 토목공사, 건설업이 모두 건강한 싸이클을 벗어나고 있다. 이에 기후위기가 가중되고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던 사회통합이나 공통체모랄이 붕괴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독자적으로 해결해나갈 힘이 있다. 만해의 시대로부터 오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진보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은 자력갱생(自力更生)의 자결권을 확보하여 왔다. 이제 와서 반일 종족주의를 반성하고 친일로 나아가자니! 이게 도무지 국가비젼을 만드는 자들이 할 말인가?


(69-70)

나의 정과 한은 님의 이마보다 낮고 무릎보다 얕은 것이다. 나의 손은 낮고, 나의 다리는 짧다. 이것이 인간조건이다. 정하늘에 오르고 한바다를 건너려면, 즉 정과 한을 완성하려면 단 하나의 해결책 밖에는 없다. 님에게 안기는 것이다. 조국의 승리를 믿고 그 품에 안기는 것이다. 배반, 변절 없이 조국의 정과 한을 나의 삶 속에서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정과 한을 통해 정과 한을 극복하는 그 아이러니의 교차점에 님이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인간의 정())과 한()이라는 현실조건을 통해 인간의 이상(理想)을 창출할 수 있는 애국애민의 길을 노래하고 있는 위대한 운문이라 할 것이다.


(79)

만해문학에 쎅씨한 느낌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것으로 아름다운 여인 선호 성향운운하는 것은 만해문학의 오묘한 질감을 천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는 것만큼 본다 하는 것이 정론일 것이다. 여기 중요한 것은 젊은 여자가 아니라, 길에는 우주론적 법칙과 인간론적 행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론적 법칙은 객관적인 질서가 나에 선행하지만, 인생론적 법칙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발자취라는 질서에 선행하는 인간의 주체적인 행동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계사전>이 말하는 성지자성야(成之者性也)” 이루어지가는 것이 본성이다라는 인간의 능동성과 책임성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덕이라는 것이다. 도덕이란 자연의 법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 내재하는 것이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아 갑니다.”


(83)

만해는 어쩌다 술이 들어 거나하게 취하면 흥분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한다.

만일 내가 단두대에 나감으로 해서 나라가 독립된다면 추호도 주저하지 않겠다.”


(90)

여기서 극히 조심해야 할 또하나의 의미의 뉴전(紐轉, 트위스트)이 있다. “인간(人間)사람이라는 만해의 표현이 말해주듯이, 만해의 용례에 있어서 인간사람은 전혀 다른 뜻이다. 같은 말의 반복이 아니다. 지금 우리 현대어에 있어서는 인간(人間)”은 사람을 의미하므로 인간사람이 되면 사람사람”, 즉 동어반복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일본식 한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한학의 세계에서는 인간(人間)”은 어디까지나 사람사이라는 의미로만 쓰였다. 인간은 사람사이, 혹은 사람사이의 세상, 그러니까 인간은 “man”이 아니라 잭이“society”를 의미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용례가 <장자> 내편의 인간세(人間世)”라는 표현이다. 인간은 곧 인간세를 의미하는 것이다. <논어><맹자>에도 인간보편을 말할 때는 그냥 인()”이라고만 한다. “인간(人間)”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은 타인을 말하며 자기를 말할 때는 ()”라고 표현한다.


(114)

만해의 시가 연작시라는 것은 주체의 흐름의 구성이 매우 명료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님의 친묵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별을 이야기한 님의 주제는 이제 마지막에 님의 오심으로 귀결되고 있다. 오서요라는 시는 85번째로 실려 있는데, “오심의 당위성에 관하여 읊고 있다. 님의 오심은 너무도 마땅한 것이고, 그 마땅함을 가능케 한 것은 님을 기다려온 민중의 주체적 역량이라는 것이다. 만해는 이미 25년 전에 광복을 예견하고 독립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133)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의 인권선언을 모태로 한 법질서,

세계사 민주주의의 모범을 달려온

조선민중의 피눈물나는 노력의 결실이

고작 요 따위 양아치정권일까요?

대통령이 사법 입법 질서를

뭉개뜨리고

매일밤 술만 마시고 있습니다.

연산군의 폭정은 개인적 슬픔의 사연이라도

있었습니다.

오서요. 어서 오서요.

이제 엎어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사랑의 끝판입니다.

오늘 우리 민중의 요구는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닙니다.

폭정에 대한 해명도 아닙니다.

이 사회의 리더십이 저열해지고

퇴락하고 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현 정권은 역사의 근원적 퇴행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167)

만해, 금강산 표훈사에서 안중근의사의 기대를 읊은 한시를 짓다.

<해주에 사는 안중근> : “일만석의 뜨거운 피와 열말의 큰 담력, 담금질 끝낸 서릿발 칼날 칼집속에 넣어두고, 벽력치는 의용 홀연히 밤의 적막을 깨드리니, 육혈포 탄환은 꽃처럼 날고 가을빛은 드높더라.”


(169)

장남 벽초 홍명희에게 남긴 <유서> :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나 조선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진 나라를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


(187)

만해,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 가출옥(만기 2달 남기고 가출옥시킴은 지속적으로 경찰의 엄격한 감시를 하겠다는 가혹한 행정). 출감한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호기있는 답 : “내가 옥중에서 느낀 것은 고통적으로 쾌락을 얻고, 지옥 속에서 천당을 구하라는 말이올시다. 내가 경전으로는 여러 번 그러한 말을 보았으나 실상 몸으로 당하기는 처음인데 다른 사람은 어떻하였는지 모르나 나는 그속에서도 쾌락으로 지냈습니다. 세상사람은 고통을 무서워하야 구차로이 피하고자 하기 때문에 비루한데 떨어지고 불미한 일들을 듣게 되나니 한번 엄숙한 인생관 아래에 고통의 칼날을 밟는 곳에 쾌락이 거기 있고, 지옥을 향하야 들어간 후에는 그곳을 천당으로 알 수 있으니 우리의 생각은 더욱 위대하고 더욱 고상하게 가지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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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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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김금희 님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라는 책을 이야기해줄게. 김금희 님의 소설은 <경애의 마음>이라는 장편과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단편 <문상>이라는 소설이 아빠가 읽은 전부란다. <경애의 마음>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었는데, 그냥 그랬던 소설로 기억이 된단다. 그래서 그 다음에 자주 찾지 않은 것 같구나. 이번에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되어 책소개를 읽어보니, 창경궁의 대온실에 깃든 역사가 담긴 소설이라고 들었어.

창경궁이라고 하면 일제 시대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어. 일제가 우리의 신성한 궁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바꾸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란다. 이름도 창경원이라고 바꾸고 말이야. 해방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동물들을 과천으로 옮겨 서울대공원을 만들고, 다시 창경궁으로 복원을 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일제 시대 지어진 대온실은 그대로 두었다고 했어. 이번에 읽은 소설 제목의 대온실이 바로 창경궁에 있는 대온실이란다. 너희들이 어려서 생각이 안 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함께 창경궁 대온실에 가 본 적이 있단다. 인근 대학로에서 어린이 연극을 보고, 시간이 남아서 창경궁을 갔었거든너희들이 너무 어렸을 때라서 기억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

이번에 김금희 님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은 사람들이 이 책을 들고 창경궁 대온실에 가서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한다는데, 우리도 한번 가볼까? 이 책은 읽다 보면 실제 있었던 일인가? 착각할 수도 있는데 작가의 말을 통해 모두 허구라고 이야기를 해주었어. 소설가들은 대단하신 것 같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창경궁 대온실을 가도 그 곳에 있는 식물들을 감상하는 것이 전부인데, 대온실을 보면서 그 곳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니까 말이야. 이번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이번에는 김금희 님의 다른 소설들에 관심을 두게 될 것 같았어. 누군가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이 책을 리스트에 넣게 될 것 같구나. , 그러면 책 이야기를 해줄게.

 

1.

소설의 시작은 석모도에서 시작한단다. 석모도는 강화도 옆에 있는 작은 섬인데, 아빠는 두 번 가 본 적이 있단다. 처음 갔을 때는 배 타고 갔는데, 두 번째 갔을 때는 다리가 생겨서 차를 타고 갔었단다. 그 석모도에서 석모도의 헤밍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강영두가 주인공이란다. 남자 이름 같기도 하지만 여자야.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 은혜의 소개로 일자리를 얻어 건축사 사무소에 갔단다. 그 건축사 사무소에서 이번에 창경궁의 대온실을 보수작업하기로 했는데, 그 보수 작업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 달라고 했어. 정식 명칭은 문화재 공사 백서 기록 담당자. 그런데 하필 다른 곳도 아니고 창경궁의 대온실이라니…. 영두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려면 그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영두는 네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강화도에서 아버지와 둘이 지냈단다. 살림도 넉넉하지 않았어.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 인근의 중학교가 없어서 고민을 했는데, 외할머니가 자신의 친구 문자 할머니에게 영두의 거처를 부탁했고, 그렇게 영두는 강화도를 떠나 서울에 와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어. 외할머니가 소개해 준 문자 할머니는 창경궁 옆 원서동이라는 곳에서 낙원하숙을 운영하셨어. 그곳에서 지내면서 근처 중학교를 다니게 된 거야. 그 집에는 문자 할머니의 손녀 리사도 있었는데, 영두와 같은 학년이었어. 영두는 그렇게 서울살이를 시작했는데, 리사와는 그리 친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단다. 서울에서 만들어진 인연이라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이순신과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

그런데 학교에서 중간고사 시험지가 유출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어. 영두는 그것과 관련이 없는 일인데, 리사가 영두도 보았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로 인해 선생님한테 불려서 영두도 조사를 받았지만, 영두는 끝까지 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단다. 하지만 이 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다시 강화도로 왔단다. 일 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서울생활이었지만, 이렇게 안 좋은 기억이라서 창경궁 대온실 보수 작업에 참가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것이란다. 그래도 일단 하기로 했단다. 영두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영두는 강화도로 내려와서 학교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로 학과과정을 마쳤단다. 문자 할머니가 강화도까지 오셔서 영두를 설득했지만, 영두는 그냥 강화도에 남았어. 그 때가 문자 할머니와 마지막 만남이었어.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 영두가 스물 살 때,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그 이후 영두는 혼자 지냈단다.

 

2.

일을 맡고 건축사 사무소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다들 좋은 사람들 같았어. 영두도 창경군 대온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보고서 준비를 했단다. 창경궁의 대온실을 처음 만든 이는 일본의 건축학자 후쿠바 노보루로 이 책에서 나오는데, 이 부분은 실제 인물인줄 알았단다. 그런데 책 뒤편에 나오는 일러두기를 읽어보니, 창경궁의 대온실의 총책임자는 후쿠바 하야토라는 사람으로, 소설 속의 후쿠바 노보루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했단다. 이 소설은 창경궁의 대온실을 뺀 나머지 부분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하면 돼.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실제로 최근에 창경궁의 대온실 보수 작업이 있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는데, 그것도 소설 속 허구란다.

암튼영두는 옛 설계도면을 보다가 대온실의 지하에 배양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이번 보수 때 이곳 지하까지 복원을 해야 하지 않냐고 의견을 내고, 담당공무원과 의견이 분분하여 갈등을 빚기도 하는데, 이번 복원의 책임자인 건축사 사무소장 빼자고 하여 일단락되었단다. 하지만 영두뿐만 아니라 다른 건축사 사무소 직원들은 문화재 보수를 하면서 원래 있는 곳을 보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어.

창경궁이 창경원이던 시절 식물원뿐만 아니라 동물원도 있었는데, 일제 시대 말기, 동물들 먹이를 줄 형편도 안 될 정도로 어려워지자, 일제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대규모 학살하는 만행을 일으켰단다. 그 때 동물의 시신을 대온실 지하에 숨겼다는 소문도 있었어. 다시 찾은 창경궁그리고 자신이 지냈던 낙원하숙의 자리에 가보니 지금은 빈집으로 남아 있었어. 몇 년 전 문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줄곧 빈집이었던 거야. 명의는 리사로 되어 있는데, 리사는 미국에 살고 있었어. 영두는 빈 낙원하숙 집에 다시 갔다가 문자 할머니가 남긴 글들을 보게 되었단다. 그리고 그 글을 통해 한 사람의 일생을, 그러니까 문자 할머니의 인생을 다시 알게 되었단다. 문자 할머니가 일본인이었다고 이야기가 있는데, 그 글을 읽어보니 실제로 일본인이었고, 일본인인 할머니가 어쩌다 한국땅에서 지내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단다.

 

3.

일제 시대 창경궁 관리 공무원 박목주라는 사람이 있었어. 그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였는데, 그 일본인 아내는 재혼이었고 이미 딸 마리코가 있었어. 박목주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이후 아들 유마를 낳았단다. 그러니까 마리코와 유마는 엄마는 같은데, 아버지는 다른 남매였단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모두 일본으로 돌아가야 해서 일본인 엄마는 일본으로 돌아갔어.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갔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단다. 마리코와 유마는 한국인 아버지 박목주가 있으니 한국에서 지내는데 문제 없었단다.

이제부터 마리코는 박진리, 유마는 박유진이라는 한글 이름으로 생활했어. 하지만, 마리코는 아버지도 일본인, 어머니도 일본인으로 순수 일본인이었단다. 마리코의 엄마도 다시 한국에 못 온 이유 중에는 한국전쟁도 있었을 거야. 해방이 된지 얼마 안되어 전쟁이 일어나고, 서울에 있던 박목주는 피난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런데 이창충이라는 동료가 있었는데, 그가 황실 심부름이라면서 박목주에게 일을 시켰어. 피난준비를 하던 박목주는 아이들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대온실 지하 배양실에 잠시 머무르게 했어. 이틀이면 갔다 올 것 같다고 생각하여 안전을 위해 자물쇠를 잠그고 갔어. 진리와 유진은 지하 배양실에서 둘이 숨어 있었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런데 약속했던 이틀이 지났지만 아버지 박목주는 오지 않았어. 진리는 자신들을 두고 혼자 피난을 갔나? 이런 생각까지 했어. 진리와 유진이 지하에 머무르고 있다가 유진이 열병이 나서 심하게 앓아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없다고 생각했어. 진리는 창문을 깨어 문을 열고 무작정 달렸어. 밖은 어두운 밤이었어. 간신히 약방을 찾아 약을 사서 다시 돌아오다가 절룩거리며 오는 아버지 박목주를 만났어. 다리를 다쳐서 늦었다고 했어. 그런데 이창충이 갑자기 나타나 박목주를 쏴 죽였단다. 이창충은 진리를 보지 못하고 돌아갔고, 진리는 무서워서 지하실로 돌아왔단다. 하지만 동생 유진은 끝내 숨을 거뒀어. 그순간 그곳에 이창충이 찾아왔고, 진리에게 못된 짓을 하려고 했고, 진리는 숨겨두었던 주사기로 이창충의 눈을 공격하고 도망갔단다. 그런 아픔을 가진 진리가 바로 낙원하숙의 문자 할머니였던 것이란다. 그렇게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던 거였구나.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박유진이 인천요양원에서 지내는 것을 알게 되었어. 문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영두는 인천요양원을 찾아가 박유진을 만났단다. 진리는 유진이 죽은 줄 알았지만, 사실 죽지 않았어. 그리고 진리에게 공격 당한 이창충이 박유진을 데리고 나와서 치료해주었다고 했어. 그 이후에도 이창충은 박유진을 보살펴주어 박유진은 이창충을 자신의 은인이라고 생각했어. 이창충이 뒤늦게 죄를 뉘우친 것일까. 영두는 박유진에게 문자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이창충이 한 나쁜 짓은 이야기하지 않았어

….

여기까지 굵직한 줄기의 줄거리란다. 그 밖에 영두와 은혜 사이의 우정 이야기, 영두와 건축사 사무소 사람들의 보수 작업 이야기, 어른이 된 이후 다시 만난 영두와 순신 이야기, 어른이 된 이후 다시 만난 영두와 리사 이야기 등도 담겨 있단다. 김금희 님은 이번 소설로 다시 보게 되었단다. 글에 흡입력도 있고, 짤 짜여진 틀 안에서 이야기 전개로 자연스러웠어. 다른 작품들도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너희들도 바쁘지 않으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텐데이 책을 읽고 나니, 창경궁에도 또 한번 가보고 싶구나. 가 본 적도 오래되었으니 말이야.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처음에 배운 건 수리의 종류에 관한 용어들이었다.

책의 끝 문장: 나는 잎을 다 떨구고 가지를 층층이 올려 나무로서 강건함을 띠는 벚나무를 올려다보다가 기쁘게 뒤돌아 다시 섬으로 향했다.



필요한 내용을 찾았는지 한동안 집중해서 읽던 산아가 사전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오늘 면접에서 받아 온 옛날 건축에 관한 사전이라 설명하고 몇몇 용어를 알려두었다. 중수는 손질하여 고치는 것, 중창은 다시 짓는 것, 재건은 크게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고. 한옥에서 문은 창살무늬에 따라 이름이 다 달라서, 세로살을 꽉 채우고 가로살을 위아래와 중간에만 넣은 건 세살문, 가로살과 세로살을 다 채운 문은 만살문, 문 중간에 빛이 들어갈 수 있도록 사각형이나 팔각형으로 작은 창을 낸 문은 불발기문, ‘完’자 형태로 살을 짠 문은 완자문, ‘亞’자 무늬가 있으면 아자문이라 한다고. - P18

학생 수가 많아서 그런지 교실은 마치 퍼즐판처럼 세밀한 경계로 각자 나뉘어 있었다.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서른명도 되지 않는 석모도에서 그물처럼 성글었던 구분들이 여기서는 한층 촘촘해졌다. 어디 사는지, 출신 초등학교가 어딘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가 너무 중요한 기준이었다. 내 하굣길을 누가 볼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 보였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 학원 승합차를 타고 일시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 P84

그러자 당연한 수순처럼 순신이 수난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순신에게 손바닥을 펼쳐보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 얼음조각이 놓여 있다고 상상해보라고. 그러면 어떻겠어? 하고 물었다. 순신은 아주 시원할 것 같다고 해서 내 김을 빼놓았다. 나는 지금이 겨울이라 생각해보라고 다시 조건을 달았다. 이제 더 이상 매미도 울지 않고 나뭇잎도 일렁이지 않는다고, 길이 얼어 자전거를 탈 수도 없고 옷 밖으로 몸을 내놓으면 아플 정도로 바람이 차고. 그런 겨울에 손바닥에 얼음이 있으면 손이 얼겠지, 아프고 따갑고 시렵겠지, 그런데 얼음을 내던질 수는 없고 가만히 녹여야만 한다고 생각해봐. 그 시간이 너무 길고 험난하게 느껴지겠지. 그런 게 수난이고 그럴 때 하는 게 기도야. - P158

우리는 방을 나와 서로의 얼굴을 최대한 보지 않은 체 인사하고 퇴근했다. 나는 차창을 열어놓고 속력을 내어 섬으로 돌아갔다. 얼른 가서 무화과나무가 있는 마당을 지켜보며 마루에 누워 섬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정작 마을에서는 파도가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물결치는 소리만이 섬 소리의 전부는 아니었다. 배를 타고 나갔다 빈 배로 돌아온 사람들의 불평 소리, 어느 집에서인가 쓰레기를 쌓아놓고 타닥타닥 태우는 소리, 밥을 짓거나 부엌에서 그릇을, 외할머니가 ‘설음질’이라고 부르던 것과 똑같이 설렁설렁 닦는 소리, 말린 생선을 노리는 고양이들의 착지, 마을 노인정에서 들려오는 노래방 소리, 소라껍데기에 귀를 가져다대고 그 안에서 바닷소리를 발견해내듯 그런 섬의 소리를 변별하다보면 다시 평정이 찾아올 것이다.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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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아버지, ……아버지, 제발, 제발 내려오지 마세요. 만나서 당하는 비극보다 만나지 않고 그냥 그리워하며 사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북에서는 왜 자꾸 사람들을 내려보내는지 모르겠어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선가요? 그건 남쪽을 너무 모르고 하는 일입니다. 6.25를 겪고 난 남쪽 사람들은 공산당이나 사회주의를 너무 무서워하고 싫어합니다. 나라에서 감시하고 처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6.25를 통해 북쪽에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며 공산당을 싫어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상황에 사람들을 내려보내 무슨 효과를 보지는 겁니까. 여기 있는 가족들만 더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입니다.

 

(95)

정치란 마술 같은 면이 있고, 특히 기회 포착이 중대합니다. 국민이나 대중들은 순진한 관객이구요. 마술사가 연달아 실수하면 관객들이 가만히 있습니까? 특별법을 지연시킨 건 분명 잘못이고, 그걸 당장 만들 수는 없고, 국민들 마음은 급하고, 그렇게라도 임시방편을 하지 않으면 정말 수습할 수 없는 큰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한 의원님이나 저나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서 따낸 당선인데, 일도 못 해보고 밀려날 수야 없는 일 아닙니까/”

 

(189)

이규백은 핏빛 낭자한 동백꽃들을 바라보았다. 한 많은 여자의 넋이 환생했다는 꽃. 그래서 저리도 선연한 핏빛으로 곱고, 처연한 느낌으로 아름다운지도 몰랐다. 바람결에는 아직 찬 기운이 서려 있는데도 동백꽃들은 어느 꽃보다도 먼저 서둘러 피어나고 있었다. 겨울 내내 푸르렀던 잎들은 봄기운을 타고 한결 싱싱한 초록빛으로 돋아오르고, 그 초록색에 떠받쳐 동백꽃 송이송이는 더욱 붉고 선명했다.

동백꽃은 색깔이 붉되 야하지 않고 정갈했고, 꽃송이가 크되 허술하지 않고 단아했으며, 시들어 떨어지되 변색하지 않고 우아했다. 그러나 동백꽃의 절정의 아름다움은 낙화에 있었다. 꽃이 지되 벚꽃처럼 꽃잎이 낱낱이 흩어지지 않고 꽃송이 그대로 무슨 슬픔이나 서러움의 덩어리인 양 뚝뚝 떨어져내렸다. 변색하지 않고 떨어진 그 꽃송이들은 또 땅 위에다 새로운 꽃밭을 현란하게 이루어놓았다. 사무친 한을 풀 듯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 번, 땅 위에서 또 한 번, 두 번 피어나는 꽃이었다.

 

(222)

비상계엄이 선포된 상태에서 혁명군사위원회에서는 정권 인수와 국회 해산을 선언함과 아울러 장면 내각 장차관 전원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고, 주한미국 대리대사와 미8군 사령관은 불법적인 쿠데타를 부인하고 장면 정권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윤보선 대통령은 쿠데타 지지를 표명하고, 쌀값은 당일로 치솟아 혁명위에서는 매점매석하는 미곡상들을 극형에 처한다는 포고령을 발동하고, 장면 총리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그 행방이 묘연하고, 혁명위에서는 서울시내 각 경찰서장들을 중위 대위로 임명하고, 검열을 당한 신문들은 부분부분 먹통이 된 채 찍혀 나오고, 혁명 수행상 필요 시에는 체포, 구금, 수색을 영장 없이 집행한다는 포고령이 잇따르고 있었다.

 

(314-315)

그건 당연히 박수를 받을 만큼 잘한 일이오. 조직폭력을 일삼아 시민생활을 불안하게 한 깡패들을 소탕애 사회질서를 바로잡고, 국민의 기본의무를 기피해 개인의 이득만 추구한 파렴치한 자들을 색출해내 국가의 기강을 바로세우는 건 백 번 잘한 일이오. 그런데 그런 겉에 드러난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 국민들이, 아니 이성적인 대학생들이 쿠데타정권의 부당성까지 망각하게 된다면 그건 큰 문제요, 무슨 말인고 하면, 지금 군인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그런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 그 저변에는 불법으로 정권을 탈취한 부당함을 하루빨리 정당화시키기 위해 자기네 능력을 과시하고 민심을 회유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그거요. 그들이 참으로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그런 중요한 일들을 빨리 끝내고 군인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야 하고, 그땐 온 국민이 박수를 치고, 박정희에게는 중장 진급이 아니라 국민의 이름으로 별 다섯, 원수를 달아줘도 아까울 것 없소. 허나, 지금은 감시의 시기요.”

 

(315-316)

하 이거. 우리 아가씨가 본격적으로 나오시네.” 원병균은 싱긋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지금 그건 아무도 예측하거나 속단할 수 없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혁명공약이란 것에 밝히기는 했지만 그걸 전적으로 믿는 건 바보 중에 상바보요. 그건 모세가 받은 십계명이 아니라 자기들의 정치 목적을 위해 내세운 구호니까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거요. 다시 말하면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은 이미 쿠데타를 모의할 때부터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들이었고, 정치란 거짓말 올림픽이고 정치인들이란 거짓말 선들이라 그거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시해야 할 것은 미국 태도요. 쿠데타정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현재의 미국 태도를 보고 미국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호하려 한다고 믿는다면 그건 혁명공약을 믿는 것보다 더 바보요. 미국이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자기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허울뿐이고, 그들이 진짜노리는 것은 자기네들 말 고분고분 잘 듣는 기생 같고 하인 같은 정권인 거죠. 미국이 날벼락 맞듯 한국에서 쿠데타를 당했고, 그 불쾌감과 불안감 속에서 지금 쿠데타정권을 겁 먹이고 어르기에 한창 열중하고 있는 참이오. 그러다가 어느 때 서로 짝짜꿍이 되면 미국은 민주주의고 정권이양이고 싹 감추고 딴전 피울 거요. 미국 정치인들은 한국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고수의 금메달 감들이니까. 현재 미국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약소국들의 한 가지 공통점이 뭔지 알겠소? 그 나라 지배자들이 모두 미국의 말을 굽실굽실 잘 듣는 반민주적 독재자들이라는 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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