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2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70
샬럿 브론테 지음, 나선숙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제인 에어> 2권을 이야기해줄게. 2권도 흥미진진 이어진단다. 약간 우연이 지나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재미가 막아줄 수 있지. , 그럼 시작할게. .. 오늘은 스포일러도 있으니 유의 바람..^^

제인이 리드 부인의 장례식을 마치고, 사촌 언니들이 부탁하는 것들을 도와주고 한 달 만에 손필드에 돌아왔단다. 그 사이에 손님들은 모두 돌아가고 손필드는 다시 조용해졌지. 어느 날 밤,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고백을 하며 청혼을 했단다. 로체스터가 잉그램 아가씨와 결혼한다는 것은 그저 소문뿐이었어. 1권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로체스터의 마음에는 이미 제인 에어가 가득 차 있었음을 알 수 있었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치 트랩 대령이 마리에게 품었던 마음과 비슷해 보였어. 제인 에어도 로체스터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 페어팩스 부인의 반응은 약간 놀람이었단다. 나이차가 많이 나서 말이야. 하기야 제인 에어는 이제 10대 후반이고 로체스터는 30대 후반이니제인과 로체스터는 4주 후에 결혼하기로 했단다. 손필드 사람들만 모아놓고 교회에서 조용히 하기로 했어. 제인과 로체스터는 결혼을 준비하면서 사랑 또한 뜨겁게 타올랐단다.

어느 날 제인이 이상한 경험을 겪었어. 제인이 자고 있을 때 누군가 제인의 방에 들어왔어. 괴상한 모습을 한 여인이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한 동안 머물렀다가 간 거야. 그리고 웨딩드레스도 찢어졌단다. 잠결에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 싶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이 진짜 찢어져 있었어. 이 이야기를 로체스터에게 하자, 꿈이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옷은 그레이스가 그랬을 것이라고 했단다. 하지만 제인이 본 사람은 그레이스가 아닌 것이 분명했단다. 그 사람이 그레이스가 아니지만 그레이스가 계속 마음에 걸렸어. 그레이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시간이 흘러 드디어 결혼식 날. 집 앞 작은 교회에서 손필드 사람들만 불러서 조촐히 그리고 조용히 결혼식을 진행했어. 결혼 서약을 하려는 찰나 누군가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이 결혼은 무효라고 외쳤어. 그는 다름 아닌 메이슨과 변호사였어. 메이슨 기억 나지? 1권에서 손필드에 찾아왔다가 그레이스에 중상을 입고 의사와 함께 떠난 사람. 그가 왜 이 결혼을 반대하는 걸까? 그리고 그가 어떻게 제인과 로체스터가 결혼하는 사실을 알았을까.

리드 부인이 죽기 전에 제인의 친가 삼촌 이야기를 했었잖아. 그래서 제인은 친가 삼촌인 존 에어에게 편지를 썼단다. 편지에 결혼한다는 소식도 전했어. 그런데 존 에어와 메이슨이 알고 지내는 사이라서 메이슨과 제인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된 것이란다. 남편 될 사람이 로체스터라는 것도 알게 된 거지. 그런데 왜 이 결혼을 무효라고 하는 걸까? 그것도 변호사까지 데리고 와서 말이야. 리처드 메이슨. 그는 누구란 말인가.

 

1.

리처드 메이슨이 이야기하기를 로체스터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내도 살아 있기 때문에 또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했어. 심지어 로체스터의 부인은 손필드 저택에 있다고 했어. 뭐라고? 설마 그레이스가 로체스터의 부인인가? 결국 로체스터도 시인했어. 그리고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모두 이야기해주었단다. 로체스터의 아내는 리처드 메이슨의 여동생은 버사 메이슨이었어.

로체스터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버사 메이슨과 결혼을 했어. 당시 버사 메이슨은 서인도 제도 자메이카에 살고 있어서 로체스터는 자메이카까지 가서 결혼을 했단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버사는 미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단다. 알고 보니 버사의 어머니도 미쳐서 정신병원에 수감 중이었단다. 유전되는 병이었나 봐. 버사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의사의 진단도 버사가 미쳤다고 했단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없었어. 아무런 사유 없이 이론을 하는 것은 불법이었고 말이야.

4년간 자메이카에서 지내면서 로체스터는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여 자살할 생각마저 했다는구나.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손필드를 물려받게 되었단다. 좋은 생각이 났어. 버사를 손필드 저택에 감금하고 나서 자신은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단다. 영국으로 돌아온 로체스터는 버사를 손필드 저택 3층의 구석진 방에 감금했단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바로 버사 메이슨을 돌보는 그런 사람이었어. 버사의 존재는 손필드에서도 그레이스와 로체스터만 알고 있었어. 몇 달 전 리처드 메이슨이 손필드에 찾아왔다가 다친 것도 그레이스의 짓이 아니고 버사의 짓이었단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제인의 방에 나타나 옷을 찢은 것도 바로 버사의 짓이었어.

이런 버사가 손필드에 있어서 로체스터는 손필드에 거의 오지 않고 외국이나 타지에서 지낸 것이란다. 오랜만에 손필드에 오는 길에 제인을 만나고 첫 눈에 반하고 모든 것이 변해버렸지. 이야기를 하면서 로체스너는 제인에게 미안해 했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했어. 제인도 로체스터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었지만 당시 영국법으로는 로체스터와 결혼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갈등하다가 제인은 결국 손필드를 밤에 몰래 떠나게 된단다.

 

2.

갑작스러운 결정에 아무런 준비물도 없이, 돈도 조금밖에 없었어. 일단 가지고 있는 돈으로 마차를 타고 최대한 멀리 가서 내렸는데 그곳은 히트크로스란 곳으로 황무지였단다. 인전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지만 돈이 없어서 이틀 동안 노숙을 했고, 먹은 것도 거의 없었어. 쓰러지기, 어쩌면 죽기 직전에 세인트 존 리버스라는 목사가 제인을 보고 집에 데리고 갔단다. 그 집은 사실 세인트 존의 아버지의 집 무어하우스였어. 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존이 와 있는 것이었고, 같은 이유로 세인트 존의 동생들인 메리와 다이애나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어.

그들은 무척 친절했단다. 그들의 도움으로 제인은 며칠 만에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어. 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싶었어. 로체스터가 자신을 찾아 나설 수 있으니 말이야. 그 전에 겪은 일들은 최대한 비밀로 하고 요점만 간단히 이야기를 했단다. 메리와 다이애나는 제인을 친자매 대하듯 잘 해주었단다. 한 달 뒤 메리와 다이애나는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고, 세인트 존도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어. 제인이 세인트 존에게 일자리를 부탁했었는데, 세인트 존은 제인에게 빈민가의 여자 아이들을 위한 학교 선생님을 제안했고 제인은 흔쾌히 수락했단다. 제인은 학교 옆에 딸린 조그마한 오두막에서 지냈단다.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쳐서 존경 받는 선생님이 되었어.

그러던 어느 날 세인트 존이 찾아왔어. 어떤 변호사가 사람을 찾는다고 했어. 그러면서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제인의 과거 행적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그러니까 그 변호사가 제인 에어를 찾고 있는 거야. 세인트 존은 이미 제인 에어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왜 변호사가 제인 에러를 찾고 있는 걸까? 앞서 이야기했던 친가 삼촌 존 에어가 있었다고 했었잖아. 존 에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만 얼마 전에 죽었고 그의 전재산 2만 파운드를 제인 에어에게 남겼다고 했어. 그래서 변호사가 제인 에어를 찾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변호사가 하필 세인트 존에게 물어본 걸까? 세인트 존의 엄마의 동생이 바로 존 에어였다는 구나. 그러니까 세인트 존에게 존 에어는 외삼촌이었던 거야. 가족 관계를 정리해야겠구나. 존 에어의 친조카가 제인 에어이고, 세인트 존의 엄마의 동생이 존 에어이면 세인트 존과 제인 에어는 무슨 사이? 바로 사촌지간이란다. 사촌이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줄 알겠지? 제인 에어의 아빠가 형제들과 연락을 끊고 살아서 친척들을 모르고 살았던 거란다.

제인은 자신이 큰 돈을 유산으로 받는다는 사실보다 갑자기 가족이 생긴 것에 더욱 깜짝 놀래고 기뻤단다. 그것도 자신이 살려준 이들이 바로 자신의 가족이라니어떻게 일언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가. 제인은 자신이 받을 2만 파운드를 세인트 존, 메리, 다이애나와 정확히 4분의 1씩 나눠 갖겠다고 했단다. 제인은 이제 돈도 충분이 많아져 넉넉해졌단다. 크리스마스 때 메리와 다이애나에게 연락해서 무어하우스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어. 메리와 다이애나도 진짜 사촌 자매가 된 제인 에어에게 더욱 잘해 주었단다. 행복한 날만 있을까?

 

3.

당시 세인트 존은 인도로 선교를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어. 어느날 세인트 존은 제인을 찾아와 자신과 결혼해서 인도에 함께 가자고 했단다. 제인에게는 자신과 결혼하자는 것이 너무나 뜻밖이었단다. 제인이 보기에 세인트 존이 결혼하자는 것은 사랑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자 의무로 결혼하겠다는 것으로 보였어. 그래서 제인은 그 청혼을 거절하고 그냥 동생으로 가자고 가면 같이 가서 도와주겠다고 했단다. 하지만 세인트 존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제인을 찾아와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했어. 제인은 계속 거절하고, 세인트 존은 계속 청혼을 하고..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지만 거의 스토커 수준이었단다. 읽는 아빠가 무서울 정도라니까

계속 거절하던 제인은 결국 승낙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제인을 세 번 부르는 소리를 들었단다. 환청인가? 하지만 제인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로체스터인 것 같았어. 세인트 존과 결혼을 하더라도 로체스터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은 해야겠다 싶었어. 그래서 정말 제인은 손필드로 갔단다. 손필드는 폐허가 되어 있었단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큰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 화재로 버사는 죽고 말았고, 로체스터는 한쪽 손을 읽고 장님이 되었다고 했어.. 지금의 그의 시골 별장에서 지낸다고 했단다.

제인은 다시 로체스터를 찾아가 결국 다시 만났단다. 그리고 제인은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어. 로체스터를 사랑을 다해 보살폈단다. 제인은 그곳에서 로체스터와 결혼하였단다. 그리고 10년이 흘렀고, 아이도 생겼고, 그 동안에 로체스터는 한쪽 눈 시력까지 되찾았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샬롯 브론테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구나. 아빠가 몇 달 전에 책표지가 예뻐서 산 책 <빌레뜨>란 책을 지은이를 확인도 안하고 샀는데 그 책의 지은이가 샬럿 브론테의 책이더구나. 그 책도 조만 간에 읽어봐야겠구나. 그리고 브론테 자매들의 책도 찾아봐야겠구나. 오래 전에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읽었으니 앤 브론테의 책도 함 찾아서 읽어봐야겠구나.1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브론테 자매의 짧은 삶이 너무 안타깝구나. 그들의 머릿속에는 많은 작품들이 담겨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아무튼 이 책은 너희들도 꼭 한 번 완역본으로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로체스터 씨가 나에게 허가한 휴가는 일주일뿐이었다.

책의 끝 문장: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정말로 저는 떠나야 돼요. 제가 여기 남아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자동인형인 줄 아세요? 감정 없는 기계처럼 보이나요? 내 입에 문 빵 조각을 빼앗기고 내 컵에 담긴 생명수가 엎질러지는 걸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가난하고 미천하고 못생기고 작다고 해서, 영혼도 마음도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잘못 생각하셨어요! 나도 당신처럼 영혼을 갖고 있어요. 당신과 똑같이 마음이란 걸 갖고 있어요! 하느님이 나에게 미모를 선물하시고 부유함을 허락하셨다면, 내가 지금 당신을 떠나는 게 힘든 것처럼, 당신도 나를 떠나기 힘들었을 거예요. 나는 관습이나 전통이나 죽어 없어질 육신을 매개로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말하는 거예요. 우리 둘 다 무덤을 지나, 하느님의 발치에 동등하게 서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동등하니까요!" - P26

"한동안은 아마 지금과 같으시겠죠. 아주 잠깐 동안요. 그 후에는 냉정해지실 거예요. 그러다 변덕스러워지시겠죠. 그러다 엄해지실 테고, 저는 나리의 마음에 들려고 많은 고생을 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저에게 많이 익숙해지시면 어쩌면 다시 저를 좋아하게 되시겠지요. 절 사랑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실 거라는 말이에요. 나리의 사랑은 6개월이나 그 이전에 거품이 되어 사라질 거예요. 남들이 쓴 책을 보니, 남편의 열정은 아무리 오래 지속돼 봐야 그 정도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친구와 동료로서는 저의 친애하는 주인께서도 저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 P37

‘외롭다’고 표현한 이유는, 내 눈에 보이는 골짜기 굽이에, 나무에 반쯤 가려진 교회와 사제관을 제외하고는 건물을 하나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 저 멀리 끝에 부유한 올리버 씨와 그의 딸이 살고 있는 베일 저택의 지붕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눈을 가리고, 돌로 된 문설주에 머리를 기댔다. 하지만 곧 나의 작은 마당과 그 너머 풀밭을 가르는 쪽문을 밀어 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리버스 씨의 포인터인 늙은 개 카를로라는 것을 금세 알아보았다. 세인트 존은 팔짱을 끼고 거기에 기대 서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언짢아 보이는 얼굴로 근엄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들어오겠느냐고 물었다. - P1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인 에어 1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한글판) 69
샬럿 브론테 지음, 나선숙 옮김 / 더클래식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읽은 키두니스트의 <고전 리뷰툰 : 냉정과 열정-열정 편>에서 첫 번째로 리뷰 및 추천한 책이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란다. 워낙 유명한 책이다 보니 제목을 모르는 이는 별로 없을 거야. 아빠도 제목은 알지만, 완역본을 읽어 본 적이 없는 그런 책이지. 너희도 어렸을 때 도화로 번안 편집된 책을 읽어서 줄거리는 대충 알고 있을 거야. 고아인 주인공 제인 에어의 그저 그런 성장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이번에 읽고서 그저 그런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엄청 흥미진진하고 반전도 있고, 스릴도 있는 그런 소설이었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소설들은 뭔가 다르긴하구나.

<제인 에어>의 지은이는 그 유명한 브론테 자매 중에 한 명인 샬럿 브론테. 브론테 자매 모두 소설을 쓸 정도라면 유복한 집안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모두 짧은 생을 살다가 갔더구나. 샬롯 브론테는 셋째 딸로 태어났지만 언니들이 모두 어렸을 때 죽어서 첫째나 다름 없었다고 했어. 밑으로 동생이 세 명이 있었는데, <폭풍의 언덕>으로 유명한 에밀리 브론테가 30살에, 또 다른 브론테 자내 앤 브론테가 29살에 삶을 마감했다는구나. 남동생도 하나 있었는데 남동생도 31살에 죽었대. 어머니도 이미 샬럿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 샬럿은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고 하더구나. 그러다가 38살에 결혼을 하고 되었고, 그 다음해에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그만 임신 중에 죽고 말았대. 19세기 중반의 일이었어. 당시만 해도 삼십 대 후반에 임신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었던 것이란다.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 보내고 혼자 남은 아버지는 84살까지 장수를 했다고 하지만 홀로 된 삶은 얼마나 쓸쓸하고 비참했을까. 브론테 자매들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겼을 텐데, 안타깝구나.

 

1.

, 그러면 이제 <제인 에어>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여러 출판사에서 <제인 에어>를 출간했는데, 아빠는 몇 년 전에 사둔 더클래식출판사의 책으로 읽었단다. 두 권으로 되어 있어서 오늘은 1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제인 에어가 10살 때 이야기가 시작된단다. 이미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외삼촌은 리드 삼촌이 제인을 기른다고 데려가셨는데, 리드 삼촌 마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단다. 리드 삼촌이 돌아가신 다음에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리드 외숙모와 사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단다. 다정한 리드 삼촌과 들리 리드 숙모는 신데렐라 계모 맞먹는 악녀였단다. 제인을 하녀보다도 못한 취급을 하면서 온갖 집안일을 시키고 툭하면 독방에 가뒀단다. 사촌 오빠와 언니들도 제인을 못살게 굴었단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와 알고 지내던 로이드 씨가 방문하여 제인을 자선 학교에 보내는 것이 어떠냐고 리드 부인을 설득했고 리드 부인도 자신의 손에서 떼어내는 것이니 좋다고 했어. 그렇게 해서 제인은 마리아 템플 교장 선생님이 운영하는 자선학교인 로우드 시설에 갔단다. 그곳은 교칙이 엄격한 기독교 기숙 학교였단다. 이 학교는 주로 고아들 또는 편부모를 둔 아이들이 있었어. 제인은 그 학교에서 헬렌 번스라는 친구와 친하게 되어 서로 의지하였단다. 헬렌은 기독교 신념이 강한 아이로, 죄를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아이였어. 학교 생활이 엄격하고 기부금으로 운영하다 보니 먹는 것이 부실해서 힘들었는데, 제인은 헬렌에게 의지하면서 꿋꿋하게 학교 생활을 했단다.

어느날 로우드 학교의 총 책임자인 목사 브로클허스트 씨가 학교를 방문했는데, 교칙을 어긴 것과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는 이유로 교장 선생님에게 심한 질책을 했어. 뿐만 아니라 제인 에어에게는 공개적으로 벌을 주었어. 이유는 브로클허스트 씨가 리드 부인과 아닌 사이였는데, 리드 부인이 한 제인의 험담을 그대로 믿었던 거야. 제인이 거짓말쟁이에, 리드 부인에게 못되게 군 아이라면서 전교생 앞에서 벌을 준 거야. 제인은 억울하면서 친구들이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할 거라고 속상해하면서 울었어. 이 때 헬렌은 와서 위로를 해주었는데 큰 힘이 되었단다.

===================

(106)

그래, 내가 나를 좋게 생각해야 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이 날 사랑하지 않으면 그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외톨이로 미움받는 건 견딜 우 없어. 헬렌 여길 봐. 너한테든, 아니면 템플 선생님에게든, 내가 정말 사랑하는 누구에게든 진정한 애정을 받을 수 있다면 내 팔이 부러져도, 황소가 나를 내던져도, 사나운 말 뒤에 섰다가 발굽에 가슴을 차이는 한이 있어도 난 기꺼이 감수할 거야.”

===================

브로클허스트 씨가 돌아간 다음 탬플 선생님이 와서 제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인의 이야기가 진실임을 확인한 다음 전교생에게 제인이 결백하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제인에게 헬렌과 템플 선생님은 고귀한 존재였단다. 얼마 후 로우드 자선 학교에 티푸스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어. 전교생 80명 중에 45명이 걸렸고, 많은 아이들이 죽었단다. 그 죽은 아이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헬렌이 포함되었어. 헬렌은 죽기 전에 격리 생활을 했는데, 제인은 몰래 헬렌을 찾아갔어. 헬렌은 그 어린 나이에 죽음에 초연했고, 심지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어. 전염병이 진정되고, 학교 시절이 열악하고 환경이 엉망이라서 이런 전염병이 돌았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어.

이 사실을 알게 된 여러 독지가들에 의해 로우드 시설은 많이 개선되었단다. 제인은 그곳에서 8년을 더 지냈어. 6년은 학생으로 나머지 2년은 선생님으로 지냈단다. 어린 시절 불우했던 제인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듯 했단다. 하지만 그런 안정적이고 반복적인 일상이 조금은 지겨워지기 시작했단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가 된 거지.

 

2.

제인은 학교에 이야기를 하고 가정교사 광고를 냈단다. 밀코트에 살고 있는 페어팩스 부인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가정교사로 일하기로 했단다. 밀코트까지 가는 길은 16시간이나 걸리는 멀리 있는 곳이었어. 제인이 머무르는 곳은 손필드 저택이라는 곳이었어. 당연히 페어팩스 부인이 그 저택의 주인인 줄 알았는데, 저택의 관리인이자 가정부라고 했어. 조인은 로체스터라늘 사람이고, 집에는 거의 오지 않는다고 했어. 제인이 가르칠 학새응ㄴ 아델 바랭이라는 7~8살 되어 보이는 아이였어. 아델 바랭은 프랑스에서 살다가 6개월 전에 영국으로 와서 영어가 서툴다고 했어.

제인은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워서 아델과 이야기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어. 아델 바랭의 유모 소피도 함께 살았고, 그 외에 하인, 하녀들이 그 저택에 함께 살았단다. 그렇다면 아렝 바탤이 로체스터 씨의 딸이냐고? 그건 아니야. 로체스터가 한때 사랑했던 프랑스 오페라 무희의 딸이었어. 그 무희가 죽고 나서 홀로 된 아델 바랭을 어찌지 못하고 로체스터가 데리고 온 것이란다.

손필드 저택에 있는 하인들 중에 그레이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좀 이상했어. 그레이스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였는데, 방에 있을 때 괴상한 웃음소리와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곤 했단다. 그 외 손필드 저택에서 생활은 무난했단다. 아델도 제인을 잘 따랐어.

몇 달이 지나고 편지를 붙이러 마을에 가다가 말에서 떨어진 여행객을 만나 도와주었는데, 나중에 손필드 저택에 돌아오니 그가 바로 손필드의 주인 로체스터였단다. 30대 후반의 독신남. 스캔 끝. 로체스터는 변덕스러운 명도 있고,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주인장 행세를 하기도 했어. 하지만 제인이 로우드 시절 그렸던 그림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제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 처음에는 퉁명스럽고 사무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서로 사랑이 감정이 싹트는 것이 보이더구나.

어느 날 밤 복도에서 괴이한 소리에 잠을 깼어. 아무래도 그레이스 같았어. 복도에 나가 보았는데, 로체스터 씨 방에서 불이 난 것을 알게 되어 제인은 로체스터 씨를 깨워서 그 불을 껐단다. 다행히 크게 번지지는 않았어. 로체스터는 나중에 자신의 실수로 불이 났다면서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켰단다. 로체스터는 그레이스의 잘못을 감싸는 듯했단다.

로체스터는 두어 주 손필드 저택을 떠나 외출을 했는데, 손님을 초대한다는 소식이 전해왔어. 며칠 뒤 십여 명의 손님들이 방문하여 손필드 저택이 북적거렸단다. 손님 중에 블랑시 잉그램이라는 25살 된 아가씨가 있었는데, 로체스터와 사귀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장차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어. 그런데 블랑시는 못된 성격을 가진 아가씨였단다. 무척 불손하고 오만하고 남들을 멸시했어. 로체스터가 왜 저런 여자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어.

 

3.

그런데 손님 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한 명 있었어. 메이슨 씨가 그 사람인데, 로체스터는 메이슨이 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단다. 로체스터는 메이슨 씨를 만나고 잘 이야기가 된 것 같았어. 그런데 그날 밤 3층에서 비명 소리가 나고 누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어. 다들 잠에서 깨고 로체스터 씨가 3층에 다녀온 후 조용해졌단다. 로체스터 씨가 이야기하기를 하인 중 한 명이 악몽을 꾼 것이라고 해서 사람들은 다시 침실로 돌아갔단다.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도와달라고 하면서 3층으로 데리고 갔어. 그곳에는 메이슨 씨가 칼에 베여 중상을 입고 있었어. 로체스터는 제인에게 메이슨 씨를 보살펴 주라고 했고, 그 사이에 로체스터는 의사를 데리러 갔다 왔단다. 메이슨은 제 때 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 로체스터는 의사에게 메이슨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단다. 메이슨을 누가 그렇게 했나? 제인이 생각하기에 그레이스 밖에 떠오르지 않았어. 메이슨과 그레이스는 그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던 것 같아. 로체스터는 그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고도대체 어떤 내막이 있었던 것일까.

….

며칠 후 리드 부인의 마부가 제인을 찾아왔어. 먼저 제인이 그곳을 떠난 이후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이야기해주었어. 제인을 괴롭혔던 사촌 오빠 존은 타락의 길을 걷다가 감방을 두 번이나 다녀오고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했어. 그 이후 리드 부인은 병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 했어. 딸들도 엄마를 잘 보살피지 않고그런 리드 부인이 제인을 찾는다고 마부가 찾아온 거야. 제인은 로체스터 씨에게 허락을 받고 리드 부인을 만나러 갔단다.

리드 부인은 혼수 상태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고, 잠깐 정상으로 돌아오곤 했단다. 리드 부인은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제인에게 두 가지 잘못한 것이 있다고 용서를 빌었어. 외삼촌의 유언을 듣고도 제인을 잘 보살피지 않은 점…. 3년 전에 제인의 친가 삼촌으로부터 제인을 양녀로 삼고 싶다면서 연락이 왔었는데, 제인이 전염병으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했어. 미안하다면서 지금이라도 연락해 보라고 친가 삼촌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제인에게 주었단다. 죽음을 앞둔 외숙모가 그렇게 잘못했다면서 사과를 하는데 착한 제인이 어찌 용서를 안하겠니…. 그렇게 조카와 화해를 한 리드 부인은 얼마 못 가 돌아가셨단다. 여기까지 <제인 에어> 1권의 이야기란다.

아빠가 재미없게 이야기를 하는 편인데도 이 이야기는 그래도 재미있지 않니? 아빠가 이 책을 읽을 때 Jiny가 고전소설을 한 편 읽어야 한다고 해서.. 아빠가 이 책을 추천했었잖니그랬다가 이 책은 책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 숙제 하느라 바빠서 이 두꺼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프랑켄슈타인>을 추가로 추천해 주었잖아. 다시 생각해보니 <제인 에어>가 두껍긴 해도 재미 있어서 술술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무튼 1권에서 나온 몇몇 떡밥들이 어떻게 회수되는지는 2권에서 이야기해줄게.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산책하는 게 가능하지 않은 날이었다.

책의 끝 문장: 우린 둘 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인간에게 평온한 삶에 만족하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소용없는 일이다. 인간에게는 활동이 필요하고, 그걸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 내기도 하는 법이다. 나보다 더 적막한 운명에 처한 사람이 수백만이고, 자신의 운명에 말없이 항거하는 사람이 수백만이다. 정치적인 반란 이외에도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반란들이 격동하고 있는지 어느 누가 알고 있을까. 여인들은 보통 매우 차분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자도 남자들과 똑같이 느낀다. 그들의 오빠나 남동생처럼 여자들도 자신의 능력을 연습하고 노력해 볼 기회가 필요하다. 여자도 남자들이 괴로워하는 만큼, 경직된 속박과 답답한 정체를 고통스러워한다. 그들에게 푸딩을 만들고 스타킹을 짜고 피아노를 치고 가방에 수나 놓으라고 하는 것은 더 많은 특권을 가진 남성들의 생각이 편협한 탓이다. 관습이 허락하는 것보다 더 배우거나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한다고 해서, 그들을 비웃거나 단죄하는 것은 생각이 얕은 자들의 경솔한 행동일 뿐이다. - P167

나는 손필드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문지방을 넘어가면 정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조용한 현관홀을 지나 어둠침침한 계단을 올라, 외로운 내 작은 방으로 들어가고, 늘 변함없는 페어팩스 부인을 만나 오로지 그녀와만 긴긴 겨울밤을 보낸다는 것은, 오늘의 산책이 깨운 나의 희미한 흥분을 송두리째 없애 버리는 일이었다. 너무나 평온하고 한결 같은 생활의 보이지 않는 족쇄를 다시 나에게 채우는 일이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감사할 수 없는 것이 되어 가는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의 족쇄. 차라리 힘겹고 불안정한 삶의 폭풍우에 내던져져 모질고 쓰라린 일을 다 경험한 후에, 지금의 이 평온함을 갈망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너무 안락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지겨워진 사람이 오래도록 산책을 한 것만큼 좋으리라. 그리고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처럼, 나 같은 상황에서 꿈틀거리고 싶은 소망이 일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 P177

"솔직히, 저는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가 안 돼요. 제 이해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라서 이 대화를 계속할 수가 없겠어요. 다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요. 나리는 자신이 선량하지 않다고 하셨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애석해하셨어요.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거 하나예요. 나리는 더럽혀진 기억이 영원한 맹독이 될 수 있다고 하셨죠. 제가 보기에 나리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언젠가 스스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날로부터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 위해 단호하게 시작한다면 몇 년 후에 새로이 오점 없는 기억들, 즐거이 돌이켜 볼 수 있는 기억들이 쌓일 거예요." - P209

"그러지, 간단하게. 당신은 혼자이기 때문에 추워. 그 안에 있는 불을 일으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당신은 병들었어.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최고의 고상하고 달콤한 감정을 멀리 떼어 놓았거든. 스스로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감정에서 다가오라고 손짓하지 않으니 당신은 어리석어. 당신은 그게 기다리는 곳으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을 거야." - P297

예감이란 이상한 것이다! 교감도 그렇다. 정조도 그렇다. 이 세 가지가 합해지면 인간이 아직까지 풀어내지 못한 하나의 신비가 된다. 나는 이제껏 예감을 비웃은 적이 없다. 나 스스로가 그런 기이한 예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교감이라는 것도 존재한다고 믿는다(예를 들면, 멀리 떨어져 오래도록 왕래가 전혀 없던 친지들 사이에, 그렇게 떨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그렇다). 교감 작용은 인간의 이해력을 당황스럽게 한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정조라는 것 역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일 수 있다. - P3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5-36)

브라이트비저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술품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아름다움에 둘러싸여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지금까지 미학을 논한 예술품 도둑은 없었다. 여러 언론사와 장시간 인터뷰를 할 때도 그는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죄를 감추려는 마음 따위 없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당시의 감정을 현재 시제를 사용해 즉각적으로, 그리고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자세히 묘사한다. 정확성을 위해 필요 이상의 말을 할 때도 있다. <아담과 이브>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할 때는 야구 모자와 가짜 안경을 쓰는 등 변장을 하고 현장으로 돌아가 나사를 뺀 방식과 작품을 감상하는 척할 때 취했던 자세 등을 재연하기도 했다. 다른 절도 사건도 비슷하게 재연했다. 그가 한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하는 경철 보고서가 수백 건이다.

 

(37)

브라이트비저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 작품은 성적으로 자극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침대가 가까이에 있으면 좋다. 기둥이 네 개 달린 침대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파트너도 옆에 있다면 타이밍이 절묘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빼면 그는 방에 있는 작품 하나하나를 금지옥엽 보살핀다. 온도와 습도가 괜찮은지, 빛은 적절한지, 먼지가 많지는 않은지 세세히 살핀다. 그는 자신의 방이 박물관보다 작품에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한다. 이런 그를 야만적인 다른 도둑들과 하나로 묶는 것은 잔인하고도 불공평한 처사다. 브라이트비저는 예술 도둑이 아닌 조금 색다른 방식의 예술 수집가로 여겨지기를 원한다. 그도 아니라면 예술 해방가라 불려도 좋다.

 

(72-73)

<모나리자>를 훔친 도둑도 처음에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8개월 동안 수리공으로 일했다. 1911 8월 어느 월요일 오전 7, 빈센초 페루자는 평소와 다름없이 작업복을 입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박물관에 들어갔다. 대청소 때문에 박물관은 폐장했고 보안 요원도 대부분 쉬는 날이었다. 페루자는 특별히 중요한 몇몇 작품에 추가로 안전 장치를 설치하는 일을 맡았는데, 그 덕분에 벽에 걸린 <모나리자>를 떼어내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나리자>를 들고 나선형으로 된 직원용 계단 아래에 있는 방으로 재빨리 숨어들어갔다. 그러고는 그림을 액자에서 분리한 뒤 백양목 화판(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나무 화판에 그림을 그렸다)을 천으로 감싸서 밖으로 들도 나왔다. 페루자는 <모나리자> 말고 다른 작품은 훔친 적이 없다.

 

(102-103)

이처럼 예술의 역사는 절도의 역사와 맥을 함께 한다고 브라이트비저는 이야기한다. 인류가 기록을 시작한 초창기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도굴꾼을 조심하라는 문구가 있다.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 역시 예루살렘에서 언약궤를 빼왔고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를, 그리스는 페르시아를, 또 로마는 그리스를 약탈했다. 반달족은 로마의 부를 탐했다. 16세기 초 에스파냐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에르난 코르테스는 각각 잉카와 아스테카를 파괴하고 강탈하지 않았는가.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1648년 프라하에서 그림 1,000점을 빼앗아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하사했다.

나폴레옹은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하기 위해 훔쳤고 스탈린은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채우기 위해 훔쳤다. 히틀러는 야심만만한 수채화가였으나 비엔나 미술아카데미에서 두 번이나 입학을 거절당했고 나중에는 고향인 오스트리아 린츠에 직접 박물관을 지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을 모두 모아놓고자 했다. 1759년 계몽 시대에 개관한 세계 최초의 국립 미술관인 영국 박물관은 어떠한가. 영국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인 베닌 브론즈와 로제타석은 각각 나이지리아와 이집트에서 약탈했고 엘긴 마블스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왔다.

 

(139)

브라이트비저가 내부 액자를 한번 잡아당겨 보니 벨크로 몇 개로 고정한 게 전부다. 벨크로를 뜯어내는 소리가 커다란 전시관에 울려 퍼졌지만 그림은 금세 느슨해졌다. 브라이트비저는 망설임 없이 액자채로 바지 안에 밀어 넣고 셔츠로 덮어 가린다. 바지 앞쪽이 툭 튀어나와 어색하지만 경비원이 이쪽을 쳐다본다 해도 브라이트비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그쪽으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제 재빠르게 몇 걸음만 걸어 타일 바닥을 지나면 마법처럼 바로 문이 나온다.

 

(149)

그럼에도 지구상의 어느 문화에나 예술이 존재하며, 그 형태는 실로 다양하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드러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술 이론가들은 예술이 이토록 널리 퍼진 것이 인류가 자연선택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믿지만, 사실 예술은 짝을 유혹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에서 다윈주의에 부합한다. 예술은 생존의 압박과는 거의 무관하며 여가 시간에 나오는 부산물이다. 인간이 더는 포식자를 피해 도망 다니고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도구라고 알려진 대뇌를 이용해 상상력을 펼치고 탐구하며 깨어 있는 동안에도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신의 생각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은 인간의 자유를 상징하고, 진화 전쟁에서 인간이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151)

많은 도둑이 눈독 들이는 피카소의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 현대 미술은 예술을 느끼기보다는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티치아노와 보티첼리 같은 르네상스 시대 슈퍼스타들의 작품 역시 훌륭하고 강렬하긴 하지만 브라이트비저에게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심지어 다빈치의 작품조차 그저 그렇다. 브라이트비저는 예술가들이 돈 많으 후원자에게 종속되어 그들이 원하는 작품 스타일과 구도, 색감을 구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이 위대한 화가들이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일깨우지 않고 재능에만 의지하는 바람에 작품을 망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재능을 좀 덜하더라도 감정적으로 깊이가 있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예술가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197)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제 브라이트비저가 작품을 제대로 돌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예술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라고 늘 주장해왔지만, 그뤼예르성의 섬세한 융단을 창문으로 던지고 침대 밑에 처박아두는 것은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르네상스 시대 그림들은 어떠한가. 거의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벽에서 잡아채 급하게 액자에서 빼내고 차 트렁크에 실어 덜컹거리는 길을 이동한다. 보안 카메라를 등지고 훔쳤던 약제상 유화는 나무판 세 개가 결합되어 있는데, 다락에서 이미 화판 사이가 벌어지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198-199)

앤 캐서린은 경찰 조사에서 예전에는 브라이트비저의 미학적 안목을 존중했지만, 이 시점부터는 그가 더러운방법을 써서 병적으로도둑질을 했다고 말한다. 한때는 아름다움을 숭배하며 작품 하나하나를 귀한 손님처럼 대하던 브라이트비저였지만, 이때부터는 마치 사재기를 하듯 그저 무엇이든 끌어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집에 가져오는 물건 대부분은 앤 캐서린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중 일부는 추하기까지 했다.

 

(232)

어미는 다락으로 올라간다.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아들이 도둑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락을 직접 볼 마음의 준비가 된 건 아니다. 제정신인 사람이 모았다고 볼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예술 작품으로 가득한 공간. 다행히도 아들과는 달리 다락에 들어서자마자 색감에 취하거나 아름다움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나이만 먹었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애 같은 아들 덕에 인생을 망친 듯하다. 그녀는 방을 보며 전부 훔친 물건이겠구나생각한다. 장물을 은닉해주는 것 역시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300개가 넘으니 시소도 300건 이상일 수 있다. 모욕을 당하고 감옥에 갇혀 결국 파멸할 것이다. 스텐겔은 다락에 있던 예술품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을 향한 화살처럼 느껴졌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235-236)

성 밖으로 던져서 갖고 나온 융단은 독일 국경 옆 84번 국도 도랑에 버려져 있었다. 며칠 수 소변을 보려고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발견했다. 보기에도 귀한 융단인 것 같아 해당 구역 경찰서에 갖다 주었지만 경찰은 융단을 알아보지 못했다. 누가 갖다 버린 값싼 카펫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색이 화려하니 경찰서 휴게실 바닥에 깔아두었다. 융단 위에 당구대를 올려놓고 몇 주 동안이나 밟고 다니다 운하에서 예술품이 대거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프랑스 경찰과 폰데어뮐에게 알렸다. 17세기 융단은 운하에서 나온 물건들을 보관 중인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9)

은우의 이야기는 우리 몸의 디톡스 시스템이 마비되면 생기는 일을 한번에 보여준다. 안 좋은 식습관이 을 얼마나 고단하게 하는지, 장의 변화가 아이의 컨디션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장 건강이 악화되어 변비가 생기면, 우리 몸속 디톡스 시스템의 출구가 마비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각종 독소들이 몸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되고, 빠져나가지 못한 독소들로 인해 온몸의 세포들에 매연이 많아진다. 매연이 많아지면 세포의 기능이 떨어지는데, 이때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세포 중 하나가 면역세포뇌세포이다. 그래서 장 건강이 나빠졌을 때 은우가 감기에 자주 걸리고 멍해진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한참 발달 중이기 때문에, 성인보다 독소에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55-56)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이 생리통이 사라졌다는 공통적인 후기를 전해줄 수 있었을까. 생리통의 발생 기전은 아직 완벽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원인으로 생각되는 물질이 있다. 바로 포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이하 PG)이라는 염증 물질이다. 생리를 할 때 PG는 자궁과 자궁의 혈관을 수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PG가 너무 많을 경우 자궁벽과 혈관이 지나치게 수축하고, 자궁에 산소가 부족해진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통증이 바로 생리통이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PG를 증가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물질이 존재한다. 바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르겐이다. 그렇다면 생리통을 줄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다. 첫 번째, PG가 생성되는 것을 줄이고, 두 번째, 에스트로겐이 높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74-75)

세상 뭐 별거 있니. 맛있는 거 먹고 행복하면 되지라는 메시지가 첫술을 뜨게 만들고, 그 첫술이 뿜어내는 도파민이 우리를 중독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음식 중독을 악화시키는 엄청난 요인이 늘상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바로 현대인의 고질병, ‘스트레스와 바쁨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미래를 준비하고 생각하는 고차원의 뇌, 전전두엽의 기능이 급격하게 저하된다. 본능에 충실한 뇌 영역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나에게 도파민을 가져와!’라고 명령한다. 이런 뇌의 작용 앞에서 활기찬 내일을 위해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의지는 맥없이 무너지기 일쑤다.

 

(119-120)

디톡스를 할 때 물을 충분히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독소 배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독소 배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독소 배출 길 중에 조금 더 흔히 막히는 길이 있다. 바로 을 통하는 길이다. 수용성 독소들이 나가는 소변 길은 신장이 아주 나쁜 사람이거나, 결석이 생기는 환자 외에는 막히는 경우가 잘 없는 반면, 장은 그렇지가 않다. 간에서 장으로 가는 통로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간에서 해독한 물질을 장으로 이동시키는 물질인 담즙이다.

 

(137-138)

현재 장에는 간의 해동 과정을 통해 수용성 물질이 붙은 상태의 독소가 담즙과 함께 흘러와 도착한 상태다. 이때 장이 존재하고 있던 장내세균은 처음으로 이 독소들과 만나게 되는데, 장내세균 중 일부는 아주 기막힌 효소를 가지고 있다. 간이 열심히 해독해서 붙여둔 수용성 물질을 똑 떼어버릴 수 있는 효소다.

이 효소를 가진 균이 많아지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장내세균들이 분비한 이 효소들은 독소들을 해독 전 상태로 되돌려버린다. 해독 전으로 돌아간 독소들은 장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앞서 말한 담즙의 재활용 통로를 통해 다시 간으로 돌아간다. 실컷 변비까지 해결해서 독소들이 나갈 길까기 다 뚫어놨는데, 장내세균이라는 복병이 독소를 우리 몸으로 되돌려보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193)

우리 몸이 분업화를 통해 이룩한 세포들의 총합임을 배웠다. 가장 작은 생명의 단위인 세포에서 인간의 몸에 이르기까지, 산소와 영양분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생명의 법칙을 따르며 산다. 모든 생명의 에너지 발전소가 바로 세포마다 존재하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에너지 공장이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하게 발생되는 부산물, 즉 활성산소라 불리는 매연이 나온다. 이 활성산소라는 매연은 단백질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노화를 발생시키는 근간이 된다. 여기서 세포 디톡스의 목표를 세워볼 수 있다.

 

(237)

하지만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 수준만큼이나 다른 유전자를 타고난다. ‘어떤 사람은 평생 콜라와 햄버거를 먹어도 90세까지 건강하게 잘만 살더라’, ‘어떤 사람은 곱창을 한 끼에 10kg씩 먹어도 49kg의 날씬한 몸을 유지하더라라는 특이한 케이스들을 보고 나면 합리화하고 싶은 대한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먹는 정도는 그에 비하면 약과지하며 배달 음식을 시키고, ‘에이, 뭐 꼭 오래 살아야 하나, 적당히 즐겁게 살다 죽으면 도지하면서 오늘의 나에게 한없이 관대해진다.

이 마음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나에게도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마음들이다. 우리는 내일의 안녕보다 오늘의 즉각적인 욕구 충족을 우선시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눈앞의 유혹을 뿌리치고 귀찮음을 물리치고, 내 몸을 위한 양치질인 디톡스를 시작하려면 이 엄청난 합리화의 유혹을 떨쳐내는 게 필수적이다.

 

(293)

또한 건강한 삶이란 아니면 라는 흑백 논리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과정을 인지하길 꼭 부탁드린다. “이건 먹으면 안 되나요?”, “이건 이래서 나쁘다는데,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밀가루, 유제품, 설탕, 튀김, 가공식품이 몸에 안 좋다고 해서 평생 이걸 안 먹고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점심 식사 메뉴를 고를 때 수육과 돈가스 중에 수육을 고르는 것 정도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앞에서 가능하면 육류는 목초육을 선택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돼지고기를 살 때 독소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지방을 적게 섭취하도록 삼겹살보다 목살을 선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팬지 폴리틱스 -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은 작년 말부터 유시민 님께서 적극 추천해 주는 책이라서 알게 되었단다. <침팬지 폴리틱스>를 읽으시다가 누군가 연상이 되었다면서, 그 누군가의 생각을 알고 싶을 때 침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똑 들어맞는다고 하셨어. 그래서 그 누군가에 대한 책을 출간하셨을 때 책 표지에 침팬지 모양의 심벌을 넣으신 것 같더구나. 그만큼 이 책을 무척 좋게 읽으신 것 같았어. 유시민 님의 추천이다 보니 아빠도 이 책을 리스트에 추가해두고 이제서야 읽게 되었구나.

침팬지라고 하면 인간과 가장 비슷한 영장류 중에 하나라고 알고 있어. 그래서 영화 <혹성탈출> 시리즈도 지능 높은 침팬지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들도 인간보다 지능이 낮지만, 사회 조직을 이루고 살고 있단다. 제인 구달 같은 분들도 평생 침팬지 등 유인원들을 연구하셨는데 이 책의 지은이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 연구에 있어 친밀감을 빼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회성을 연구하였단다.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침팬지들을 연구하면 좋겠지만 이것은 여러 가지 여건으로 쉽지 않을 것 같구나. 그래서 지은이가 선택한 것은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는 동물원에서 연구를 했단다.

네덜란드 아른험 동물원이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했어. 우리가 가본 동물원과 차원이 다르게 아른험 동물원은 무척 넓은 곳에서 침팬지들이 무리를 지내고 살기 때문에 정글에서 살고 있을 때의 습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 겨울에만 날씨문제로 좁은 우리에서 지내는 것이 다르지만, 나머지 계절은 밖에서 지낸다고 하는구나. 아른험 동물원의 침팬지들이 일 년 중 가장 기쁜 날은 겨우내 우리에 있다가 봄에 우리 밖으로 나가는 날이라고 하더구나. 그 심정 이해가 갈 것 같구나.

=======================

(39)

1년 중 침팬지들이 가장 기쁜 날은 바로 겨울 주거지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그날 아침이 되면 사육 담당자가 야외 사육장으로 통하는 문을 통보 없이 열어젖힌다. 침팬지들도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는 없지만, 건물에 있는 모든 문의 움직임을 소리만으로도 쉽게 분간할 수 있다.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집단 전체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반응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집단 별로 나뉘어 야외로 나간다. 비명과 후우후우하는 소리는 여전히 계속된다. 광장 여기저기서 침팬지들이 서로 포옹하거나 키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세 마리, 또는 그 이상의 침팬지들이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거나 서로의 등에 올라타기도 한다.

=======================

....

 

1.

침팬지들은 다툼도 잘하지만 이내 화해도 잘 한다고 하는구나. 화해하는 방법이 영장류마다 다른데, 침팬지는 키스를 통해 화해의사 표시를 한다고 했어. 아른험 동물원에는 23마리의 침팬지들이 있는데... 초창기에는 암컷 중에 우두머리 마마가 리더 역할을 했어. 영장류들 중에 일부는 암컷이 조직의 리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침팬지는 대부분이 힘 센 수컷이 조직의 리더 역할을 한대. 초창기에는 나이 많은 암컷 마마가 리더 역할을 했지만, 성인으로 성장해서 힘이 세진 수컷 중에 이에룬이라는 침팬지가 조직의 리더가 되었단다.

그들 무리 중에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수컷들은 4마리가 있는데 이들이 나중에 리더를 놓고 권력 다툼을 하게 된단다. 이에룬, 라윗, 니키, 단디가 그들이란다. 그리고 암컷 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는 침팬지들은 앞서 이야기한 마마가 있고, 동성애 기질이 있고 암컷보다 수컷들과 잘 어울리지만 사랑은 나누지 않는 파위스트가 있단다. 그리고 호릴라라는 암컷이 있었어. 호릴라는 젖이 적어 안타깝게도 아기가 몇 번 죽었어. 어쩔 수 없이 사람이 개입하여 젖병으로 아기를 키우는 법을 알려주고, 그 이후에는 젖병으로 아기 침팬지를 잘 키웠다고 하는구나.

...

본격적으로 수컷들의 권력 다툼에 대해 이야기를 해줄게. 한동안 이에룬이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라윗이 조금씩 도전을 해봤단다. 다른 암컷과 이에룬 앞에서 교미를 하는 등 리더인 이에룬 앞에서는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 이런 행동을 이에룬이 용납하지 않아서 싸우게 되었지. 라윗은 아직 이에룬을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다 보니, 이에룬 눈치를 보면서 다툼이 있어도 먼저 화해 체스처를 보였어. 라윗의 권력 도전은 두 달 동안 이어졌어. 다른 침팬지들도 이에룬과 라윗이 권력 다툼을 하는 것을 알고 어디로 줄을 서야 하는지 망설이는 모습도 나타났어. 그런 와중에 수컷 서열 3위였던 니키가 라윗 쪽에 붙으면서 권력 중심의 추가 라윗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고, 결국 72일간 이어진 권력 다툼은 라윗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그래서 서열 1위가 라윗, 라윗을 도와준 니키가 서열 2, 이에룬은 서열 3위로 밀려났어. 이에룬이 서열 3위로 밀려나면서 억울해하며 울부짖는 듯한 사진이 책에 있는데, 침팬지들도 권력에 대한 탐욕은 대단한 것 같구나. 권력에 대한 탐욕은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단다. 서열 순으로 인사를 하는 침팬지 사회의 특징상 이제 이에룬이 라윗에게 먼저 인사를 해야 했어. 조직의 리더가 된 라윗은 스스로 보호자임을 자청했단다. 암컷들도 모두 라윗을 지지했어. 라윗은 누가 보더라도 리더처럼 보였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동물원 견학을 온 학생들에게도 누가 일인자인지 물어보았는데, 라윗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하는구나.

=======================

(185)

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 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 수놈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1인자로서의 지위는 이 같은 의무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에룬의 몰락은 그가 라윗이나 니키의 공격으로부터 다른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로도 설명될 수 있다. 라윗의 행동도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해석될 수 있다. 라윗은 암놈들을 공격하거나 이에룬에게 지원을 요청해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 점을 시위했던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에 성공하고 나자 그는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서 스스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

..

하지만 권력은 영원하지 않단다. 니키가 권력을 노리고 있었어. 니키 혼자 힘으로는 안될 것 같으니, 이에룬과 연합하려고 했어. 이에룬도 자신의 권력을 빼앗은 라윗을 좋게 생각할 수 없었지. 이에룬과 연합을 한 니키가 라윗에 도전을 했고, 결국 일인자의 자리에 올랐단다. 하지만 니키는 암컷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대. 암컷들은 여전히 라윗을 지지했다는구나. 민심을 얻지 못한 리더는 진정한 리더라고 할 수 없지. 인간 세계나 침팬지 세계나. 리키가 권력을 잡았지만, 지지를 받지 못했어. 그렇게 되자 리키는 공포 정치를 시작했단다. 민심을 얻지 못하는 리더는 강압적으로 군림하려는 것도 인간세계와 비슷하구나. 자꾸 한 사람이 떠오르는데, 유시민 님이 이 책을 읽고 왜 그 사람을 떠올렸는지 알겠구나. 리키보다 전직 대통령, 아니 전직 리더인 이에룬에게 존경 표시를 하는 침팬지들이 더 많았어. 리키는 자신이 권력을 빼앗은 방법이 다른 침팬지와 연합했던 거잖니? 그래서 리키는 이에룬과 라윗이 가깝게 지내지 못하도록 철저히 간섭을 했다는구나. 그들의 연합은 곧 자신의 권력이 끝나는 날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

 

2.

이 책은 수컷들의 권력 다툼 이외에는 침팬지의 사회 생활과 성생활 등 인간으로 따지자면 풍습 같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어. 각자 뚜렷한 개성을 자기고 있다고 했는데, 그들은 다른 동물들과 같은 취급을 하면 안될 것 같구나.

=======================

(79)

침팬지들은 각기 나름대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얼굴 생김새의 특징으로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알아보듯 침팬지들도 서로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침팬지들은 각자 걷는 법, 잠자는 자세, 그리고 앉는 모양새에도 특징이 있어 머리를 돌린다거나 등을 만지는 것만 보고도 어떤 놈인지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의 개성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각각의 침팬지들이 집단 내에서 동료들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이다. 이런 차이는 사람들을 특징 짓는 데 사용하는 것과 똑 같은 형용사를 쓰지 않는다면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다.

=======================

암컷들은 수컷들과 달리 서열 정리가 간단했다는구나. 암놈의 서열 구조는 일반적으로 나이에 의해서 정해지고 충돌도 적다고 했어..

그들의 사회성에 대해 이 정도로 책 이야기를 끝내려고 했으나, 에필로그에서 반전이라면 반전이고, 충격이라면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어. 아직 수컷들의 권력 투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란다. 니키가 이에룬과 연합해서 권력을 잡은 이후 니키는 이에룬과 라윗 사이를 간섭하여 연합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잖아. 하지만 늘 감시를 할 수 없었는지 이에룬과 니키의 갈등이 고조되다가 이에룬은 니키의 지지를 철회했단다.

이제 니키는 라윗과 일대일을 해야 하는데, 라윗이 니키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라윗은 다시 권력을 차지하게 되었어. 니키는 라윗에 굴복하고 라윗은 다시 일인자가 되었단다. 하지만 라윗의 권력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어. 10주 후 니키와 이에룬이 재결합 했단다. 이러고 보면 이에룬이 권력의 키를 잡고 있는 것 같구나. 나이가 들어 예전만큼 힘이 세지 못해 일인자가 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자를 일인자로 만들 수는 있는 킹 메이커 같았어. 니키는 이에룬과 재결합하자마자 일을 벌였어. 니키와 이에룬은 라윗을 힘을 누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야밤에 잔인하게 죽이고 말았단다. 쿠데타를 일으킨 거야.

이 쿠데타는 밤에 일어났기 때문에 동물원 관리인도 알 수 없어서 막을 수가 없었어. 아침이 되자 다른 세상이 된 거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파위스트는 니키를 공격했지만, 죽은 라윗이 돌아올 수는 없었단다. 이때 그 동안 조용했던 단디도 이 권력 다툼에 끼어들 만큼 성장했단다. 단디는 이에룬에 접촉하려고 했고, 니키는 그들을 떼어놓으려고 했단다. 둘이 모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 거지. 시간이 흐르고, 단디와 이에룬은 결국 반니키 연합을 구성했단다. 그리고 또 다시 권력다툼이 일어났고, 니키가 도망가다가 그만 물에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니키가 물에 빠졌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었다는 거야.

앞서 이야기했듯이 니키는 공포 정치를 했었잖아. 아무도 그를 살려주고 싶지 않았던 거지. 결국 단디가 일인자가 되었단다. 권력 다툼으로 두 마리의 수컷 침팬지가 목숨을 잃었단다. 인간 사회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죽인 것을 역사에서 심심치 찾을 수 있잖니..  침팬지들의 권력 다툼을 보니, 인간의 정치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지은이도 침팬지의 정치도 인간만큼 건설적이라고 평가했단다. 침팬지와 인간은 동급이다.

=======================

(312-313)

인간을 침팬지와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욕적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죄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동기를 더욱 동물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팬지들 사이에서 권력 정치는 단지 나쁘다거나 더럽다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른험 집단에 사는 침팬지들에게 논리적 정합성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주적 구조도 안겨주었다. 모든 파벌들은 일시적인 권력 균형에 이를 때까지 사회적 영향력을 계속해서 찾는다. 그리고 이런 균형은 서열상의 지위를 새롭게 결정한다. 다소 유동적인 지위가 고정될 때까지 관계는 계속해서 변한다. 이 같은 서열의 공식화가 어떻게 화해 가운데 일어나는지를 보게 되면, 집단 내의 서열이 경쟁과 충돌을 제한하는 응집적요소임을 이해할 수 있다. 육아, 놀이, 섹스, 협력 등은 그로 인해 찾아오는 안정 상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상황은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권력의 균형은 매일매일 시험되며, 만일 그것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침팬지들의 정치도 건설적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분류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야만 한다.

=======================

이상으로 <침팬지 폴리틱스>를 이야기해 보았단다. 책에는 침팬지들의 많은 사진들이 담겨 있단다. 침팬지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들은 상당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어. 그들을 다른 동물들과 같은 취급을 하지 말고, 사람과 같은 취급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구나. 앞서 이야기했던 침팬지가 주인공인 <혹성탈출> 시리즈 중에 보지 않은 시리즈를 한 편 보고 싶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동물원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챔팬지를 보고 즐거워한다.

책의 끝 문장: 정치의 기원에 대한 전통적 주장에 의문을 던지게 해준 한 편의 정치적 드라마를 볼 수 있었기에, 그리고 그런 올바른 시공간에 내가 존재했던 것에……



집단생활의 역학은 아른험 집단에서 일어난 지도력의 변화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변화 과정은 수개월에 걸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리더십의 변화가 단 몇 차례의 투쟁으로 결판나지 않았다. 내 연구는 결코 눈에 띄지 않게 계속되는 사회적 책략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최종적으로 리더의 추방으로 이어진다. 집단의 안정성은 그 토대부터 천천히 무너진다. 개체들은 제각기 음모에 찬 감시망 속에서 자기가 완수해야 할 역할을 가지고 있다. 미래의 새로운 리더는 스스로 그 길을 개척해 나가지만 혼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단독으로 자기의 리더십을 집단에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지위는 부분적으로 다른 침팬지에 의해 주어진다. 리더, 즉 우두머리 수놈도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감시망에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P36

침팬지의 표정은 각각의 특정한 기분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즐거운 기분과 불안한 기분 사이의 차이는 이빨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지로 추측할 수 있다. 침팬지는 놀라거나 괴로울 때면 즐거울 때보다 훨씬 길게 이빨을 드러낸다. 보통의 구경꾼에게 입을 크게 벌린 표정이 즐거워서 웃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적어도 침팬지의 경우는 웃을 만한 일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 확실하다. 이와 같이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엄마가 제멋대로 방치해서 외톨박이가 된 새끼가 집단 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구성원과 싸우게 된 제법 나이든 침팬지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서열이 높은 침팬지는 좀처럼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 - P49

이런 견해에 따르면 기술적인 창의성은 부차적인 발전이다. 영장류 지능의 진화는 꾀로 상대방을 이기고, 속임수 전략을 감지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타협을 이루며, 자신의 삶에 이득이 되는 사회적 연대를 증진시키기 위한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침팬지들은 이런 영역에서 분명히 뛰어나다. 그들이 가진 기술적인 재주는 인간보다 떨어지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들의 사회적인 능력도 그렇다고는 쉽게 단정하지 못하겠다. - P76

큰 소란이 순식간에 시작된 것처럼 평화도 그렇게 찾아온다. 이에룬이 자리를 잡으면 다른 침팬지들이 서둘러 그의 곁으로 와 인사를 한다. 마치 왕이나 된 것처럼 집단적 경의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 신하 몇쯤은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는 듯 무시한다. 이 같은 ‘의례(formalities)’가 끝나면 모두가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고 새끼들도 어미에게서 떨어져 멀리 돌아다니며, 이에룬은 편안한 자세로 암놈들의 털고르기에 몸을 맡기거나 요나스나 바우터 같은 새끼들과 장난을 치기도 한다. 이 새끼들은 늘 두목과 장난 싸움을 할 태세가 되어 있다. 새끼들은 이에룬에 대한 경의는 까맣게 잊어버린 양 그를 쫓아다니며 모래를 뿌리거나 나무 막대기를 집어던진다. - P127

내 경험에 의하면 장성한 수놈 침팬지 사이에서 나타난 위협 과시의 경우, 열 번 중 네 번 정도가 이에룬이 비명을 지르고 라윗이 빰을 강하게 후려치는 것과 같은 실제적인 충돌로 이어졌다. 이 같은 사건은 대개 위협, 추적, 비명 같은 일련의 행동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놈들 사이에서 서로 때리는 일은 흔하지 않지만 한 번 가격을 했다고 그 자체로 싸움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다툼일 때는 실제로 맞수끼리 서로 붙잡고 물어뜯는다. 백 번의 충돌 가운데 한 번 이하, 정확하게는 수놈까리의 대결 중 0.4퍼센트만이 진짜 결판을 내는 결투에 이른다. 빈도는 낮지만 결투의 위협은 늘 상존하고 있고, 바로 이런 점이 우위 다툼 과정의 긴장감을 더욱 부채질한다. - P142

털고르기, 눈길 맞추기, 평화 협정, 중재 등을 생각하면 화해라는 주요 테마가 우리의 큰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행동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믿는다. 그것은 분명 집단생활을 파괴할 우려가 있는 여러 세력에 대한 건설적인 균형추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화해 행동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960~1970년대에 걸쳐 인간이나 동물의 공격적인 행위에 대한 연구에는 막대한 연구비가 투여되었지만 그 행위가 어떤 식으로 종결되는지에 대한 연구에는 무심했다. - P171

서열을 결정짓는 원리를 성별에 따라 다르다. 수놈 사이에서는 연합이 우열을 결정한다. 수놈이 암놈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은 주로 육체적 우월성에 기인한다. 한편, 암놈끼리의 서열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성격’과 ‘나이’다. - P270

다른 침팬지들을 위해 가지를 붙들고 있어주는 행위는 연합 형성 행위 그 이상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도움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뭇잎과 고기를 나눠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가 성적 특권을 양보한다거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것보다는 선뜻 이뤄질 수 있는 관용적 행위라고 여긴다. 물론 이 두 가지 형태의 협력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침팬지 수놈은 물질적인 것을 나눌 때에는 놀랄 정도로 너그럽다. 자기 손에 있는 물건을 암놈들이 낚아채는 것조차 용인할 정도다. 이러한 특성은 사회적 행동에서도 나타난다(라이벌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지만). 그들은 도움을 줌으로써 동시에 통제하려 한다. 이를 보호해주는 대신에 그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아내는 것이다. - P2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