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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90대 80대 70대 60대 4인의 메시지
피천득 외 지음 / 샘터사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반가운 만남]
이 책은 알라딘 인터넷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알게 된 책이다. 지은이가 네 분 중에 법정 스님과 최인호를 워낙 좋아해서 눈이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먼저 주문해갈까 싶어 얼른 주문했다. 이런 것 또한 중고서점을 이용하는 또 다른
즐거움인 듯하다. 일명 보물찾기.
이 책은 월간 <샘터> 400호 기념으로 엮은 책이다. <샘터> 잡지라고 하면, 예전에 공공기관 등에서 순서를 기다리면서 읽었던
기억들이 있다. 군대에 있을 때도 읽었던 기억도 있다. 학창시절
사촌형 집에서 봤던 기억도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기저기서 <샘터>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만큼 유명하고 오래된 월간지이다. 검색해보니, 여전히 샘터는 계속 출간되고 있다. 그리고 올해 2016년 4월호가 창간 46주년이라고
한다. 책 가격도 놀랄만큼 싸다. 아메리카노 한잔보다 싸다. 다음에 책 주문할 때 같이 구입해 봐야겠다. 그런 <샘터> 400호 기념으로
2003년 4월에 피천득과 김재순, 법정스님과
최인호의 대담을 하였고, 그 대담을 엮은 책이 바로 이번에 읽은 책이다.
피천득은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인연>이라는 수필로 유명한 수필가이고, 김재순은 몰랐던 사람인데, 국회의장도 지낸 정치인이자, 샘터사를 창간하였고, 지금은 고문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샘터>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법정스님과 소설가 최인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책이 출간될 당시 피천득은 90대, 김재순은 80대, 법정스님은 70대, 최인호는 60대여서, 이 책의 부제가 <90대 80대 70대 60대 4인의 메시지>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김재순을 제외한 나머지 3분은 이제 모두 고인이 되셨다. 법정스님의 책들은 대부분 다 읽었고, 최인호의 책들도 많이 읽었는데, 모르고 있던 그들의 책을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 줄 몰랐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외진 골목길에 우연히 만난
그런 기분이다. 이 책은 지은이들이 말씀하신 내용 그래도 적어놓아서 눈을 감으면 그들이 서로 마주보면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눈에 떠오른다. 오랜만에
법정스님과 최인호의 육성을 듣는 기분이어서 정말 좋았다.
[90대와 80대의 대화]
수필가 피천득.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고,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학창시절 배운 <인연>이라는 수필이 내가 읽은 그의 유일한 작품이다. 솔직히 나는 <인연>이라는 수필에 큰 감동을 받지 못해서, 그가 대작가라는 것은 알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교과서에 나온 수필의
지은이라는 느낌만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피천득 선생님의 삶을 다룬 책이나 그가 쓴 수필집을
한번 정독을 해봐야겠다.
피천득과 김재순이 나눈 대화...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나누셨고, 두 분 사이의 오랜 친분으로 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하셨고, 우리 나라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다. 김재순이 정치에 몸을
담기도 해서인지, 정치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당시의 정치와
언론이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오늘날의 정치와 언론을 생각하면, 그시절의
정치는 더욱 민주주의에 가까웠고, 언론 또한 그렇게 자유로웠던 시절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스컴, 즉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널리즘이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오늘날 언론들이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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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쪽)
우암(김재순) : 정치뿐 아니라 매스컴도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인데요.
매스컴 얘기를 하니 저는 '저널리즘이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
즉 권력에 아부하는 것,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거시다;
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선생님께서는 요즘의 매스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금아(피천득) : 매스컴은 우선 거짓과 왜곡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까지든 정직해야 되고, 또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지요.
다른 것을 가져다 붙이거나 하지 말아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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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듦. 요즘 이것에 관해 가끔씩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세월의 빠름을 깨달았고, 체력의
저하를 자주 느껴서인지, 간혹 나이듦에 대해 생각을 한다. 나이
든 모습. 우리 아이들이 자란 모습의 상상. 피천득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음 날의 방황과 욕망, 분노, 초조감 같은
것들이 지그시 가라앉고 안정된다는 의미라고 하셨다. 나는
아직도 작은 일에 분노하고 초조감을 자주 느끼니 아직 젊다고 해야 하나? ^^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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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쪽)
금아(피천득) : 나이가 든다는 건 젊은 날의 방황과 욕망, 분노, 초조감 같은 것들이
지그시 가라앉고 안정된다는 의미이지요.
인생을 관조하고 지난날을 회상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고요.
늙음이란 물론 젊음만은 못하겠지만, 잘
늙는 경지에 이르면
노년도 아름다울 수 있고 또 어느 순간 죽음이 닥쳐와도 두렵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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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와 60대의 대화]
법정스님과 최인호의 대화가 2부로
이어진다. 최인호는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한때 불교에 깊게 빠져서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라는 책을 쓰기도 하고, 경허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길 없는 길>이라는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최인호도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고, 한편으로
천주교 신자로써의 믿음도 깊다. 그래서인지 두 분은 종교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했고, 상대방의 종교를 이해를 해주셨다. 두 분처럼 상대방의 종교를 이해해준다면,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 분쟁, 종교 전쟁이 없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분의 말씀은 모두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인생의 가르침이라서, 한 자 한 자 빼먹지 않고 가슴에 새겨야 할 말씀들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법정스님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어쩌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욕망에 빠지고 욕심에 휩싸여 그 진실을 잊고 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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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3쪽)
법정스님 : 행복이란 어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지요.
우리에겐 원래 행복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있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고마운 일이 될 수도 있고
불만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욕지족(少欲知足), 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을 보는 눈이 열리겠지요.
일상적이고 지극히 사소한 일에 행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인호 : 행복의 기준이나 삶의
가치관도 세월에 따라 변하는 것 같습니다.
~~
지금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가난 자체가 행복한 것은 아니죠.
사실 빈곤과 궁핍은 불행이잖습니까.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행복이란
마음에서 비롯되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같은 온도에서 추워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서늘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지만 특히 행복은 전적으로 마음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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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인호가 법정스님의 하신 예전의 말씀을 다시 이야기해주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그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생각에서 말이 나오고, 말에서
습관이 나오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을 이룬다.” 이 말씀이 너무 공감이 가서 다이어리에 적어 놓았다.
…
올해도 여지없이 봄이 왔다. 봄이
오면 한번쯤은 장영희 교수님이 생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남은 생에 봄이 몇 번이나 더 올까 생각을
하면, 이 아름다운 봄을 만끽해야 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말씀. 올 봄은 좀더 많은 시간을 식구들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인호는 같은 봄이라도 불치병에 걸렸을 때 보는 봄의 풍경은 다르다면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마음의 벽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사람은 그 벽 속에 갇혀 있으면서 남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도 못 본다고 하셨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 또한 마음 안에 큰 벽이 있는 것 같다. 그
안에 갇혀 지내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런 것 때문에 작은 일에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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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쪽)
최인호 : 사람은 다 벽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의 벽 속에 갇혀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는 것이죠.
해마다 맞는 봄이지만 불치병에 걸렸을 때 보는 봄의 풍경은 정말 다르거든요.
평소에는 바보의 벽에 가로 막혀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 벽을 뛰어넘어야만, 그 벽을
부서뜨려야만 사람은 변화할 수 있고,
남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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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집에만 오면 아빠를 찾는 아이들이 있어서 외롭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 외로움이 그리 싫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그렇다고 스님은 되지 말라는 미소 짓게 하는 충고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내가 이상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했는데, 이 책에서 법정 스님은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하여 공감하였다.
외로움에 너무 갇혀 있으면 안되지만, 외로움은 옆구리에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는 멋진 표현으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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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쪽)
법정스님 :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 지나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바람을 쏘이면 사람이 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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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의 대화가 너무 짧게 끝이 나서 아쉬웠다. 이젠 두 분의 대담을 볼 수 없어서 더 아쉽고… 어쩌면 저 세상에서 만나 지금도 활짝 웃으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 중간중간에 대담 당시 촬영한 지은이들의 사진들을 담고 있는데, 그 모습이 여유롭고도 슬기로운 모습에, 지성까지 묻어나는, 아름답게 늙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아름답게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이고, 지금 이 순간 이 아름다움 봄을 같이 즐겨야겠다는 다짐하였다. 그런데, 내일 미세먼지가 잔뜩 끼면 어쩌나? 한편으로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우암(김재순) : 정치뿐 아니라 매스컴도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인데요. 매스컴 얘기를 하니 저는 `저널리즘이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 즉 권력에 아부하는 것,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거시다; 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선생님께서는 요즘의 매스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금아(피천득) : 매스컴은 우선 거짓과 왜곡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까지든 정직해야 되고, 또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지요. 다른 것을 가져다 붙이거나 하지 말아야 하지요.
우암(김재순) : 정치뿐 아니라 매스컴도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인데요. 매스컴 얘기를 하니 저는 `저널리즘이 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 즉 권력에 아부하는 것,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거시다; 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선생님께서는 요즘의 매스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금아(피천득) : 매스컴은 우선 거짓과 왜곡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디까지든 정직해야 되고, 또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지요. 다른 것을 가져다 붙이거나 하지 말아야 하지요.
(72~73쪽) 법정스님 : 행복이란 어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지요. 우리에겐 원래 행복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있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고마운 일이 될 수도 있고 불만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욕지족(少欲知足), 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을 보는 눈이 열리겠지요. 일상적이고 지극히 사소한 일에 행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134쪽) 최인호 : 사람은 다 벽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의 벽 속에 갇혀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는 것이죠. 해마다 맞는 봄이지만 불치병에 걸렸을 때 보는 봄의 풍경은 정말 다르거든요. 평소에는 바보의 벽에 가로 막혀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 벽을 뛰어넘어야만, 그 벽을 부서뜨려야만 사람은 변화할 수 있고, 남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140쪽) 법정스님 : 사람은 때로 외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 지나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그런 바람을 쏘이면 사람이 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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