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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의 최후의 방정식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박하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책을 집어들 수 밖에 없는…]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책제목에 앨런 튜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운의 수학자로 알려진 앨런 튜링에 대해
그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앨런 튜링.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암호기계인 '이니그마'에 대한 암호를 풀어낸 사람으로, 그것으로 인해 전쟁을 몇 년을 앞당겨
끝나게 하고, 또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살렸다고 한다. 그
독일군의 암호기계인 '이니그마'의 암호의 경우의 수는 세기도
어려운 158,962,555,217,826,360,000라고 한다. 그
암호를 푼 사람이 바로 앨런 튜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보안 상의 이유로 그는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갔고, 전쟁 중에 있었던 그의 기록과 업적은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또 세간에 이목을 끈 것은 청산가리를 묻은 사과를 먹고 자살하고
나서이다. 누군가는 애플의 로고가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해서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좀더 찾아보니, 앨런 튜링의 세계대전에서의 활약상은
나중에 같이 참여했던 사람에 의해서 알려졌다고 하고, 2013년이 되어서야 그의 업적이 복권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인공지능 컴퓨터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경기가 있어서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킨 적이 있었다.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개념. 즉, 인공지능에 대한 개념을 착안한 사람도
바로 앨런 튜링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앨런 튜링에 대한 소설이다.
어떤 지적 호기심이 많은 젊은 경찰이, 앨런 튜링의 자살을 접하고, 그에 대한 조사를 해가면서, 결국 그가 전쟁의 영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작년 초에 우리나라에서 앨런 튜링에 관한 영화가 한편 개봉했었다. <이미테이션 게임>. 남자 주인공은 영드 <셜록>에서 셜록 홈즈의 역할로 나온 베네딕트 컴버배치이고, 여자 주인공은 내가 좋아하는 키이라 나이틀리이다. 그래서 더욱 보고
싶었던 영화다. 이 영화를 꼭 봐야지 하면서 보지 못하고 있다가 이 소설을 읽고 나서야 찾아서 봤다. 이 책의 책띠에 <이미테이션 게임>에 영감을 불어넣은 소설이라고 광고를 하고 있는데, 그만큼 소설과
영화의 내용이 많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영화도 소설만큼 괜찮았다.
그리고 이 책을 집어 든 또 하나의 이유는 지은이 때문이다. 지은이는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라는 스웨덴 사람인데, 처음 들어본 이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이 때문에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이
사람이 <밀레니엄> 시리즈 4부의 지은이로 공식 선정되었다고 해서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으나, 3부까지 쓰고 지은이가 심장마비로 죽어서 나를 비롯한 전세계의 <밀레니엄>시리즈의 팬들을 슬프게 했다. 그는 원래 10부작까지 쓰려고 했는데 3부에서 중단되고 만 것이다. 그런 <밀레니엄> 시리즈의 4부의 작가로 선정되었다니..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이 소설에 대한 기대가 쫙 올라갔다.
[어떤 동성애자의 자살]
이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여덟 살 코렐이라는 젊은 형사다. 1954년 6월 영국. 어떤
가정부의 신고로 사망 사고가 접수되었다. 그 죽은 이의 집에 들어갔는데, 온통 복잡한 실험장치와 독극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강한 아몬드향이
가득 찼고, 시신 옆에는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있었다. 강한
아몬드향. 그것은 청산가리 냄새란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의
집에서는 청산가리도 발견되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앨런 튜링. 대학
교수였다. 그의 집에는 복잡한 기계와 독극물도 많았고, 그리고
그의 수첩에는 아주 복잡한 수학 공식이 적혀 있었다. 많은 책들이 있었고, 특이한 물건으로는 전쟁훈장이 있었다. 수학자의 집에 왜 전쟁훈장이
있지?
코렐은 사실 어렸을 때부터 수학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수학자의 죽음을 접하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에 대한
조사를 해보고 싶었다. 그가 적어 놓은 수학공식에 대한 것도 풀고 싶었다. 그런데, 그의 자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고위 공무원들이 찾아와서
코렐에게 앨런 튜링의 자살 사고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수학자가 고위 공무원과 인맥이 있다? 코렐은 앨런 튜링을 조사해보니, 3년 전인 1951년 집에 절도범이 들어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절도범이 집에
들었는데, 없어진 물건은 없다고 했다. 경찰은 이것이 더
수상하게 여겨서 그를 조사했더니,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이야기를 했다.
앨런 튜링은 속이고, 잔머리를 굴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다. 지금이야 동성애자가 불법이 아니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불법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앨런 튜링은 동성애 범죄로
당시 경찰의 취조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코렐이 조사하게 알게 된 것들이다. 이 사건은 동성애자인 수학 교수가 자살을 한 사건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고위 공무원들이 찾아왔지?
[과거가 사라진 남자]
코렐을 도서관이나 경찰 자료 등에서 앨런 튜링에 대한 조사를 해보았다. 하지만, 그가 케임브리지 교수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앨런 튜링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동성애로써의 앨런의
애인인 19살 머레이를 만났다. 앨런은 전자두뇌를 만든다고만
했고, 과거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존 튜링. 앨런의 형이 시신을 확인하려 왔고, 코렐은 그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앨런은 1951년 동성애자로 경찰 조사를 받고 난 이후, 의사들은 앨런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에스트로겐 주사를 놓았다고 한다. 에스트로겐? 그건 여성호르몬인데... 동성애자에게 남성호르몬이 아닌 여성호르몬을? 이해가 잘 안 간다. 의상의 실수인가? 코렐이 조사를 좀 해보니,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으면 우울증을 유발하게
된다고 한다. 어쩌면 앨런의 자살이 이 에스트로겐의 주사에 의해 생긴 우울증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이미 남성호르몬을 동성애자들에게 써보았는데, 효과가 없어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주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런
근거없이 임상 실험을 한 것이다. 존 튜링은 앨런이 전쟁 때 무슨 중요한 일은 했다는 것은 알지만, 정확한 것은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자살이 아니라 사고사일
가능성은 없는지 코렐에게 물어보았다. 왜냐하면, 앨런이 평소
덤벙대고 주의심이 없었기 때문에, 독극물 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먹을 가능성은 없는지 물어 본 것이라고
한다. 코렐은 청산가리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
코렐은 앨런이 로빈이라는 사람한테 몇 년 전 쓴 편지를 손에 넣게 되었다. 그 편지 속에는 당시 앨런의 고민이 묻어 있었다. 동성애 사건으로
재판을 자주 받아 괴롭다는 내용이 있었고, ‘그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그들’은 누구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헌신한 사람들부터 제거될
수 있는 두려움이 있다는 말도 있었다. 더욱 궁금해졌다. 도대체
앨런은 전쟁 때 무슨 일을 한 걸까? 그리고 코렐은 어쩌면 앨런이 자살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의심을
했다. 편지는 일단 자신만 보고, 동료 경찰 등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전쟁의 영웅]
검시관은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앨런이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코렐은 혹시 자살이 아닐 가능성이 없냐고 돌발 질문을 했다가 상사로부터 강한 질책을 받았다. 그런데, 그 돌발행동으로 그에게 프레드릭 크라우스라는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찾아왔다. 그와 앨런 튜링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몇몇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코렐은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전쟁 훈장을 받았다는 것. 앨런이 전쟁 중에 지능을
가진 기계를 제작했다는 사실. 그리고 체스 챔피온인 휴 알렉산더도 앨런과 같은 전쟁 훈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런 정보들로 코렐은 앨런이 전쟁 중에 암호 해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추리를 했다.
코렐은 좀더 공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휴가를
쓰고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 가서 앨런이 주려고 했던 편지의 주인공 로빈 교수를 만났다. 로빈은 코렐을
경계하면서도 지적 호기심이 많은 코렐에게 호감을 가졌다. 코렐은 앨런이 전쟁 중에 암호 해석을 했을
것이라는 자신의 추측을 이야기하니까, 로빈은 놀라면서도 즉답을 피하고 피파드라는 사람을 만나보라고
했다. 코렐은 피파드를 만나러 갔다. 피파드는 이미 코렐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피파드은 전쟁 중에 코렐을 고용한 정부기관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코렐에 대한 뒷조사를 했다. 피파드는
그 전에 코렐을 찾아온 고위 공무원들, 즉 팔리와 서머셋과도 아는 사이였다. 코렐은 피파드에게 자신의 추측을 이야기했더니, 피파드를 코렐을 내쫓듯
보냈다.
이런 코렐의 추리를 어떤 이로부터 미행까지 받게 만들었다. 앨런의 편지 속에 적혀 있는 ‘그들’인가? 그는 미행 받다가 폭행까지 당해서 중상을 입었다. 이 일은 금방 관련자들의 귀에 들어갔고, 전에 코렐을 만나기 위해
경찰서에 찾아왔던 팔리가 코렐이 묵고 있는 호텔방에 찾아왔다. 그리고 코렐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팔리는 이성적인 사람으로 중상을 입은 코렐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코렐에게
앨런이 전쟁 중에 어떤 일을 했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코렐이 추리했던 것처럼, 앨런 튜링은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칼리지 교수로 일하다가 전쟁 중에 암호 해석을 위해 ‘블레츨리 파크’에서 일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독일군의 암호기계인 '이니그마'가 내뱉는 말을
해석하는 일에 매달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58,962,555,217,826,360,000의 경우의 수가 있는 암호. 그것도 하루에
한번씩 바뀌는 그런 암호... 즉, 하루 안에 158,962,555,217,826,360,000의 경우의 수에서 하나를 찾아내야 한다는 소리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지 않는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이 블레츨리
파크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암호해석의 패턴을 찾아내려고 했는데, 앨런 튜링은 접근 방식을 다르게 했다. 기계의 언어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가장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이니그마'라는 기계를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비용도 엄청나게 들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결국 앨런이 성공을 했다. 158,962,555,217,826,360,000의
경우의 수는 이제 한낱 숫자일 뿐 독일군의 암호는 바로 해석이 되었다.
하지만, 어려운 결정의 순간들도
있었다. 독일군이 영국의 민간인을 수송하는 배를 포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것을 막게 된다면 독일군은 영국이
자신들의 암호를 풀었다는 것을 알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분명 암호를 바꿀 것이다. 몇 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수송선의 공격을 막아줄 수 없었고, 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독일군의 모든 잠수함을 비롯한 많은 군사시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 이후 전세는 뒤바뀌어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우세가 되었고, 독일군의
항복까지 받아내어 전쟁을 끝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앨런이
만든 '기계'는 전쟁을 일찍 끝나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던 것이다. 그는 전쟁의
영웅이다.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는 전쟁이 끝나고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고,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근거도 없는 강제 치료를 받고, 어쩌면 그 후유증으로 자살까지 하게 된 것이다. 국가의 권력으로
개인이 희생당한 또 하나의 사건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나는
또 다른 소설이 하나 있었다. 몇 년 전에 읽은 로버트 해리스의 <이니그마>라는 소설이다. 세계대전 당시
'이니그마'의 암호해석을 하는 블레츨리 파크에서 일어난 일에 관한 소설인데,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지은이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밀레니엄> 시리즈 4부를
어떻게 그릴지 기대되지만, 과연 스티그 라르손 만큼의 흡입력을 보여줄지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 소설이 재미있긴 했지만, 스티크 라르손의 소설만큼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그래도 출간되면 꼭 읽어볼 예정이다.
...
아참,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보다가 괜찮은 대사가 나와서 적어보았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때로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