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어떤 이들은 고전이 진부할 것이라 지레짐작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래 살아남은 고전은 처음부터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웠는데 지금 읽어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읽어도 새로운 것은 쓰인 당시에도 새로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전이라고 해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당대의 진부함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고전은 당대의 뭇 책들과 놀랍도록 달랐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그렇기에 진부함과는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낡거나 진부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들은 살아남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후대로 전승되었을 겁니다.

(21)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처럼 소포클레스 역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이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할 필요를 느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연대기적 서술을 포기합니다. 게다가 그가 쓰려고 했던 것은 몇 시간 안에 끝을 내야 하는 연극의 대본이었으니 과감한 압축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연극이 시작되면 우리는 이미 왕좌에 오른 오이디푸스를 보게 됩니다. 이런 서사기법을 결정적 순간의 바로 직전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57)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사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을 감염시키고, 행동을 변화시키며, 이성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책은 서점에서 값싸게 팔리고, 도서관에서 공짜로 빌릴 수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물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책에는 주술적인 힘이 서려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책은 곳곳에서 금지당하고, 불태워지고, 비난당했습니다.

어떤 책은 분명 위를 살짝 미치게 만듭니다. 중독성 있는 마약처럼 작용합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저는 에마 보바리처럼 소설책에 탐닉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대학 입시가 불과 반 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무릎 위에 놀려놓은 소설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대여점에서 빌려온 책들이어서 표지는 너덜너덜했고 종이는 누렇게 변색돼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67)

<돈키호테> <마담 보바리>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미치광이 돈키호테와 광기 어린 사랑으로 자신을 망쳐버린 에마 보바리는 세르반테스가 플로베르가 창조한 인물이지만, 그들에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야기 속의 세계가 계속되기를 바라고, 그 안에 머물기를 원하는 우리가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인물들에 매료되고 자기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며 그들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우리의 의식에 침투해 우리의 일부를 돈키호테와 에마 보바리로 바꾸어놓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읽은 소설은 우리가 읽음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일부가 됩니다. 한번 읽어버린 소설은 더 이상 우리 자신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나가사와의 말은 그런 면에서 일리가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두 사람의 자아 안에 공유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니까요.

(69)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바로 우주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요.

(81)

소설이든 영화든 끝까지 봐야 온전한 반응이 나올 수 있는데, 소설은 영화와 달리 끝까지 보는 경우가 드물고, 일단 끝까지 보았다면 그것은 그 작품의 어떤 면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등장인물을 이해하고 그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으면 소설을 끝까지 읽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떤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면 거기엔 무엇이든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소한의 것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만약 어떤 소설이 실망스러웠다면 바로 던져버리고 그 작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거나 입을 다물었을 겁니다.

(102)

소설은 세심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입니다. 그것은 성으로 향하는 K의 여정과 닮았습니다. 저멀리 어슴푸레 보이는 성을 향해 길을 다라 걸어가지만 우리는 쉽게 그 성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대신 낯선 인물들을 만나고 어이없는 일을 겪습니다.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를 곰곰이 짚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서점 서가에 꽂힌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우리가 굳이 소설을 집어드는 이유는,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에 싫증이 난 운전자가 일부러 작은 지방도로로 접어드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의 이성은 줄거리를 예측하고, 작가의 의도를 가능하고, 인물의 성격을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의 누군가와 비교하기도 합니다. 반면 우리의 감성은 작가가 써놓은 적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탄복하기도 하고, 예리한 인물 묘사에 공감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처한 고난에 가슴 아파하기도 합니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우리의 독서는 만족스러운 경험이 됩니다. 때로 이성에 이끌렸다가 때로 감성에 이끌렸다가 하면서 우리의 정신은 책 속에 구현된 그 이상한 세계를 점차 이해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세계의 일원이 됩니다.

(182)

누구나 알다시피 도서관은 책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누구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어떤 신성함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저자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책등은 묘비처럼 느껴집니다. 그곳은 죽은 이와 산 자가 가장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가 죽어 있는지 살아 있는지 신경쓰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작가는 자기가 쓴 책에 묻힌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곳도 바로 도서관일 겁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대담을 하던 장클로드 카리에르가 내가 책이 많이 있는 어떤 방으로 가서 그중 한 권도 손을 대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한답니다. 그러면 무어라고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받게 돼요. 그것은 어떤 강한 흥미라고도 할 수 있고, 어떤 안도감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라고 말할 대, 책을 사랑하는 우리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단박에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9)

사실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짧은 생물학적 생애를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 잠시나마 그 세계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가장 큰 보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별들이 수백 수천 년 전에 보내온 빛이 이제야 우리 망막에 와닿듯이 책 역시 시공을 초월해 우리에게 도달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밀란 쿤데라의 통찰처럼, 비록 우리 현대인의 시야가 마치 요제프 K의 그것처럼 좁아져 있고 모두가 세속적 이해와 단기적 전망으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고, 세계가 돈키호테와 같은 모험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는 이 좁은 전망을 극적으로 확장해줄 마법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의 바다로 뛰어들어 책의 우주와 접속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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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11-25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자로 산다는 것에 현실적 보상 같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여운이 짙게 남습니다. ^^;
 
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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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 전에 약간은 우연히 읽게 된 책이 있었어.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너무 재미있게 읽었단다. 그리고 그 소설의 지은이 천명관에 반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두어 권 구입했고, 이번에 <고래>라는 책을 읽었단다.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2004년에 쓴 책이고, 당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상이라고 하는구나. 앞표지를 넘겨 책날개의 프로필에 나와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랬단다. 인터넷 서점에 있는 단정한 용모에, 지적으로 보이는 뿔테 안경, 비교적 긴 머리칼이 자연스러운 그의 프로필 사진과는 대조적이었거든. 무뚝뚝한 표정에 머리를 빡빡 밀어서, 머리칼 하나 보이지 않고, 눈썹마저 흐릿한 사진이었거든. , () 것 같은 사진.

10년 정도 흐른 시간인데, 요즘 사진이 더 젊어 보이더구나. ㅎㅎ 그래서 얼마 전에 읽었던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사진도 확인해 봤어. 인터넷 서점의 프로필과 유사한 사진이더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빠의 10년 프로필 사진을 보면, 남들에게 숨기고 싶을 정도로 거칠게 생겼으니, 그의 사진을 보고 뭐라 할 입장이 아니구나


 

1.

소설 <고래>을 아빠가 한 마디로 평가해 보려고, 몇 줄을 썼다가 백스페이스를 쭉 눌러 버렸단다. 좀처럼 짧게 평가할 수 없는 소설이구나. 왜 그런지, 아빠가 그로 그 줄거리를 좀 이야기해줄께.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등장인물이 나온단다.

120kg의 거구의 춘희. 양아버지로부터 벽돌을 만드는 걸 배우고, 벽돌공장에서 일하던 벙어리 소녀 춘희. 춘희가 살던 평대라는 동네에 극장에서 큰 화재로 인해 수백 명이 죽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화재의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사면을 받고 다시 평대로 왔는데, 대화재 이후 평대는 모두가 떠난 폐허의 도시가 되어버렸단다. 감옥에서의 오랜 세월은 그를 스물일곱 살로 만들어 놓았어. , 그 춘희의 이야기를 해줄께. 춘희의 이야기를 하려면 아주 오랜 옛날로 돌아가야 해.

멀고 먼 옛날, 국밥 집을 하던 못생긴 노파가 한 명 있었어. 노파는 자신이 버리고 눈을 애꾸로 만들어버린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이 어느날 찾아왔어. 그 딸은 젊은 나이인데도 백색머리였고, 꿀벌 한 무리가 그를 따라다녔어. 그 출현이 마치 무협지에서나 나오는 등장인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 그런데 당시 노파는 며칠 전에 빙판길에서 넘어져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어. 딸은 노파에게 모아둔 돈을 달라했지만, 노파는 끝끝내 거절하였고, 딸은 노파를 죽였어. 하지만, 노파에게 찾은 것은 몇 푼 안 되는 돈이었어. 그 돈을 가지고 자취를 숨겼단다.

 

2.

, 이번에는 또 다른 여인 금복이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 금복은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서 술주정뱅이인 홀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동네에 온 생선장수의 트럭을 얻어 타고 그곳에서 도망쳤어. 생선장수를 따라 바닷가까지 갔다가 금복은 난생 처음 고래를 보았어. 그리고 그 이후 그는 고래를 마음속에 품고 다녔어. 금복은 돈을 버는 데 수단이 좋았어. 생선장수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생선장사보다 생선을 말려서 팔아 많은 돈을 벌게 되었어. 그런데 금복은 늙은 생선장수를 버리고걱정이라고 부르는 덩치 큰 젊은이와 눈이 맞아 같이 살았단다. 그런데, 그 걱정이 일하다가 크게 다쳐서 금복은 하루 종일걱정만 보살폈어.

그러다가칼자국이라는 한쪽 손에 손가락이 2개씩 밖에 없는 남자를 알게 되었어. 그는 예전에 일본에서 깡패로 조직의 넘버원까지 올라간 이력이 있었는데, 자신이 사랑하는 게이샤에게 사랑을 얻기 위해 손가락을 세 개나 자른 무모한 순정파 깡패였어. 그런칼자국은 금복에게 접근하여 극장을 데리고 갔어. 금복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고래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 큰 충격과 환희를 느꼈어.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 그 이후칼자국은 가끔 금복을 극장에 데리고 갔어. 한편걱정은 계속 누워만 있었고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 ‘칼자국’과 금복이 점점 가까워졌지만, 금복은걱정을 버릴 수 없었어. 금복은칼자국과 함께 살면서 딴 방에 금복을 데리고 와서 보살펴 주는 선에서 스스로 타협안을 내놓았어. ‘걱정’은칼자국에 질투를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질책을 하고는, 자살을 하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그때칼자국이 말리려고 뒤따랐지만 실패했어. ‘걱정’은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깊은 바다 속에 몸을 던졌어. ‘칼자국’은 안타깝게걱정을 잡지 못했어. 그런데 곧바로 작살에 찔리고 말았어. ‘칼자국’이걱정을 죽인 줄 알고 눈이 뒤집어진 금복이 작살을 들고 와서칼자국을 찌른 거야. ‘칼자국’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죽었단다.

그 이후 금복은 바닷가를 떠났어. 그 사이에 나라에서는 전쟁도 일어났어.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황하던 4년 뒤 금복은 어떤 코끼리 헛간에서 아이를 출산했어. 그런데 왜 장소가 낯설고도 낯선 코끼리 헛간이냐고? 그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야. 뜬금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코끼리 헛간처럼 뜬금 없는 장소로 나온단다. 하지만, 그 이유는 명백하게 있었어. 그 코끼리 헛간은 식당을 하는 쌍둥이 자매의 것이었어. 쌍둥이 자매는 서커스를 했었는데, 그때 같이 지내던 코끼리가 늙어서 서커스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부터 보살펴 주고 있었던 거야. 근데 출산을 앞둔 금복이가 급한 대로 들어간 곳이 바로 그 코끼리 헛간이었던 거지. 금복은 아이를 출산을 했는데, 태어났을 때부터 거구였어.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서 몸을 막 굴렸기 때문에 누가 아빠인지는 몰랐어. 그런데 그 아기가 덩치가 산만하고 얼굴도 큼지막한 것이 4년 전에 죽은걱정을 꼭 닮았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랬어. 그 딸 아이의 이름을 춘희라고 지었어.

뒤늦게 금복과 춘희는 쌍둥이 자매에게 발견되었고, 쌍둥이 자매는 금복과 춘희를 잘 보살펴주고 같이 지냈어. 춘희는 점점 자라면서 코끼리와 친하게 지냈어. 춘희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커서도 말을 하지 못했어. 말을 하지 못하는 춘희는 더욱 코끼리와 친하게 지냈고, 코끼리와 말도 주고 받았어. 춘희가 좀 자라자 금복은 춘희가 함께 길을 떠났는데, 그래서 정착한 곳이 아빠가 앞서 이야기한 노파가 죽고 비어버린 식당이었단다.

  

3.

처음에는 평범한 식당을 운영했어. 그런데 금복은 예전에 좋아하던 커피가 생각나서 마셨는데, 그 향을 처음 맡아본 평대의 사람들은 밥보다 오히려 커피를 찾았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금복은 식당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 다방을 차렸고, 성행했단다. 그런데 운명의 날을 맞이하게 돼. 어느 비가 억수로 쏟아 붓는 날, 건달들의 공격을 받아 벌어놓은 돈을 모두 빼앗겼어. 그런데, 폭우로 젖어버린 천장이 찢어지면서 무너져 내렸는데, 그 안에 수많은 돈과 땅문서들이 쏟아져 내렸단다. 노파가 평생 숨겨두었던 돈이 발견된 거야. 그야말로 금복은 돈벼락을 맞은 거지. 금복은 그 돈으로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쌍둥이 자매와 코끼리를 데리고 왔어. 춘희도 코끼리를 보자 너무 반가워했어. 말 못하는 춘희에게 코끼리를 유일한 친구니까 말이야. 그때쯤 금복은 다방을 즐겨 찾던 이라는 사람과 친하게 되었는데, 은 예전에 벽돌 공장을 했었어. 그래서 금복은 벽돌 공장을 짓기로 했어.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돈 뿐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은 없었어. 그런데, 벽돌공장을 짓고, 벽돌을 잔뜩 만들었는데, 사가려는 사람이 없었어. 인부들의 임금도 밀릴 정도로 그 많던 돈도 거의 바닥이 났단다. 그런데 그때 벽돌의 품질을 알아본 이들이 찾아왔어. 그 이후로 벽돌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다시 갑부가 되었단다. 금복은 여자였지만, 호탕한 사업자 기질이 있었어. 뿐만 아니라 불의를 참지 못했고, 정도 많았어. 그래서 버림받은 창녀 수련도 걷어들였고, 옛날 한때 같이 지냈던 생선장수가 찾아오자 그에게 차를 뽑아주었어. 그리고 운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돈을 벌게 해주었단다. 그런데, 자신의 딸에게만은 모질게 대했단다. 그 옛날 걱정을 닮은 딸이 싫었던 거야.

어느날 생선장수의 차에 코끼리가 치여 죽는 사고가 났는데, 쌍둥이 자매와 춘희가 엄청 슬프게 울었고, 이에 금복은 코끼리를 박제하는 놀라움을 보여주었어. 춘희는 이후 코끼리의 영혼과 이야기하는 아이가 되었단다. 그런데, 코끼리는 자신이 거기에 서서 사람들의 볼거리가 되어 있는 게 싫다면서 불에 태워 달라고 했어. 그래서 춘희는 그렇게 했단다. 코끼리 박제가 불에 타는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금방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 사건은 사라져갔단다.

어느날은 벌떼를 잔뜩 몰고 온 외눈박이에 여인이 찾아왔어. 그 여인의 주위에는 수천 아니 수만 마리의 벌들이 감싸고 있었어. 누군지 알겠지? 노파의 딸이었어. 몇 안 되는 꿀벌 한 무리를 달고 다니던 옛날과는 차원이 달랐던 것이지. 바람과 함께 나타난 그녀. 그를 대적하는 금복.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상상을 해보면 바로 영화 속에 한 장면처럼 떠오르더구나. 그런데 이 싸움은 시시하게 끝이 나고 말았단다. 금복이 여왕벌이 들어 있는, 양봉용 벌집을 가지고 온 거야. 그러자 벌떼들이 그 벌집으로 모두 들어가 버렸고, 그때 벌집에 불을 질러 버린 거야. 삼손이 머리카락이 잘리면 힘을 잃는 것처럼, 노파의 딸도 더 이상 아무런 힘이 없었어. 금복은 노파의 딸이 섭섭해 하지 않을 만큼 돈을 주었고, 노파의 딸은 다시 길을 떠나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금복이 점점 사업을 확장시켜나면서 점점 남자처럼 변하는 거야. 금복의 자신의 일생일대의 꿈이었던 극장 건설을 할 때쯤엔 외모도 완전히 남자처럼 변했어. 그리고 자신이 거둬들였던 창녀 수련을 사랑하게 되었어. 수련의 말에 따르면 금복이 진짜 남자가 되었다고도 했어. 그런데 어느날 수련은 남자, 그것도 금복을 찾아온 옛 고향친구와 함께 야반도주를 했단다. 금복은 수련을 깊이 사랑했었나 봐. 수련이 떠난 이후 금복은 깊은 슬픔에 빠졌어. 그가 세운 극장은 고래 모양으로 지었단다. 금복이 첫눈에 반했던 고래와 극장. 그것을 모두 만족하는 것이 고래 모양의 극장이었던 거야. 극장은 일대 성행을 하게 되어 금복에게 또 큰 돈을 벌게 해주었어. 하지만, 금복은 이때부터 슬픔 속에 살았고, 죽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걱정, 칼자국, 그리고 본 적도 없는 노파까지.. 그러다가 극장 안에서 금복의 실수로 불이 났는데, 이상하게 극장 문이 밖에서 모두 잠겨 있었던 거야. (그 죽은 노파가 나타나서 문을 잠궜어.) 그래서 극장 안에 갇혀 있던 수백 명이 모두 죽고, 불은 다른 건물로 번져 평대의 거의 대부분의 건물을 태우고 말았어. 물론 금복도 그곳에서 죽고 말았단다.

 

4.

경찰은 조사 끝에 벙어리인 춘희를 용의자로 체포해갔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방생활을 했어. 춘희는 덩치가 무척 커서 감방에서 누가 감히 건들일 수 없었어. 많은 시간이 흘렀어. 십대 후반에 들어온 감방은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단다. 감옥에서 나왔지만, 춘희는 갈 곳이 없었어. 그녀가 갈 곳은 벽돌공장 하나뿐이었어. 대화재 이후 폐허가 된 평대의 텅 빈 벽돌 공장에 그렇게 돌아온 거야. 드디어 다시 소설의 첫 부분으로 돌아왔구나. 소설의 첫부분에 나오는 그 장면은 이렇게 오랜 역사가 담겨 있었던 거야. 그곳은 먹을 것도 변변치 않았고, 춘희는 돈도 없어서 자연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야 했어. 완전 야만인이라고 해야 하나. 춘희는 벽돌을 만들기 시작했어. 딱히 누구한테 팔려고 했던 것도 아니야. 춘희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것이라고는 그것밖에는 없으니까.

그런데, 어느날 누가 찾아왔어. 예전에 안면이 있었던 트럭 운전사였어. 그는 아주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 벽돌공장을 찾아왔다가 어린 춘희를 본 적이 있었어. 그런데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이지. 그런데 덩치가 커다란 춘희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어. 그래서 자주 찾아오게 되었고,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되었어. 춘희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랑. 그렇게 아이까지 갖게 되었는데, 그 소식을 트럭운전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는 무슨 두려움이 있었는지 새벽에 몰래 도망을 갔어. 그런데, 나중에 다시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 다시 벽돌 공장에 찾아오다가 그만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단다. 아빠는 내심 이 소설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지은이는 냉정했단다. 춘희는 혼자 아이를 낳았어. 그리고 그곳에서 춘희는 혼자 아이를 키웠어.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열병이 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 길을 떠났는데, 하지만, 병원에 도착도 못해보고 길에서 아이는 죽고 말았어. 다시 한번 해피엔딩의 희망을 짓밟힌 기분이었단다. 춘희는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고통을 받았단다. 그렇게 춘희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어떤 건축가가 대형 극장을 짓는 일을 하게 되었어. 그가 좋은 벽돌을 찾으려고 몇 날 며칠을 돌아다녔지만, 그런 벽돌을 찾지 못했어. 그랬다가 한참 만에 버려진 벽돌 공장을 찾았고, 그곳에 커다란 공터에 엄청나게 많은 벽돌이 쌓여 있는 걸 발견하게 되었단다. 그 품질은 그가 기다렸던 최고의 품질의 벽돌이었어. 그곳에는 여자 유골이 발견되었어. 그래, 춘희의 유골이었어. 자신의 아이를 잃고 춘희는 그곳에서 평생 한()과 고통을 벽돌로 빚은 거야. 그 벽돌에는 춘희의 혼과 아이의 혼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건축가는 위대한 건축물을 지었고, 그는 이름 모를 위대한 벽돌공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고 이야기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지은이 천명관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부분을 확대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구나. 그의 다른 작품들이 기대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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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25주년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쭉 번창하길 바라는데
상황이 많이 어렵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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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사피엔스>란 책은 출간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한 책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평점을 아끼지 않은 그런 책이란다. 막상 책을 보면 제목은사피엔스’. 두께는 만만치 않은 두께. 읽기 쉽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인기는 식지 않고 이어졌단다. ... 아빠도 집어 들었단다. 지은이는 유발 하라리란 사람인데, 이 사람은 책을 내기 전에 유투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강의를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 강의를 바탕으로 쓴 책이 바로 사피엔스란 책이란다.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까? 분명 인류, 즉 사피엔스라고 부르는 영장류의 모든 것? 또는 역사? 과학? 뭐 그런 것들에 관한 책이란다.

그는 인류 역사에 있어, 인류를 크게 변화시킨 것을 세 가지로 보고 있단다. 그 세 가지는 너무 큰 변화를 일으켜서 그는 혁명이라고 이름 붙였어.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 바로 그것이란다. 역사, 인문학, 과학, 인류학 등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호기심을 갖고 다음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힘을 가지고 있단다. 그래서 이 책이 많은 나라에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란다. , 그럼 아빠가 이해한 수준에서 최대한 간단하게 이야기해 줄게. 나중에 너희들도 커서 이 책을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1.

지금이야 인간이 한 종인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늘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불과 10만년 전에는 여섯 종의 인간들이 있었대. 10만년 전을불과라고 하냐고? , 지구의 역사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생명체의 역사로만 봐서도 10만년은 아주 가까운 옛날이 되는 거지. 인간이 자신 스스로 역사를 만들다 보니, 10만년 전은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낄 뿐이야. 좀 더 멀리 가보자꾸나. 우주의 역사. 우주의 역사는 한 점에서 빅뱅이라는 큰 폭발로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란다. 그것이 약 135억년 전이래. 그리고 38억년 전에 지구에 생명체가 출현을 했대. 그리고 7만년 전에 드디어 이 책의 주인공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을 했다고 하는구나. 이때가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인지혁명이라고 한단다. 나중에 이야기할 농업혁명은 12,000년 전에 이루어졌고, 과학혁명은 오백 년 전에 이루어졌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인류의 역사는 학창시절에 배워서 아직도 기억 속에 단단히 박혀 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네안데르탈인을 거쳐 6종의 인간이 같이 살았다고 하는데호모 에렉투스, 호모 솔로엔시스, 호모 데니소바, 호모 루돌펜시스,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사피엔스가 그것이란다. 이런 인간들이 다른 동물에 비해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들은 일단 뇌가 크단다. 몸무게의 2~3%를 차지하고 있어. 그런데, 그 큰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휴식 상태일 때가 전체 몸이 소모하는 에너지의 무려 25%에 해당된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무게에 비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니, 인간은 먹어야 할 식량이 늘어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육량은 적었대. 점점 머리는 커지고, 직립보행을 하다 보니, 아기가 나오는 길인 산도는 좁아졌단다. 그래서 임신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미숙아로 빨리 출산하게 되었고, 제 몸을 가누지 못한 상태로 태어나서 다른 동물들과 달리 오랜 시간 부양해야만 했단다. 그렇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그것은 엄마의 역할이 되었고, 부족들의 도움이 필요했어.

아주 먼 옛날에서 생태계의 꼭대기는 인간이 아니었대. 그들은 거대한 동물들이 나타나면 도망 다녀야 했어. 그러다가 40만년 전부터 대형 사냥감을 사냥하기 시작하다가 10만년 전이 되면 먹이사냥의 최고 꼭대기에 앉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것은 생태계의 시간으로 봤을 때 너무 빨리 정점에 오른 것이라서 생태계에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고 하는 구나.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정점 중에 정점에 다다르게 되었고, 음식을 익힐 줄 알게 되면서, 다양한 음식을 갖게 되었단다. 사피엔스가 그럼 어떻게 다른 인종들을 없앴을까?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다른 인종들과 교배를 하면서 없애거나 또 다른 학설은 인종학살에 의한 멸종되었다는 설도 있단다.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통해 그들의 게놈 지도가 최근에 만들어졌는데, 인간과 같은 유전자가 1~4% 정도 된다고 하는구나. 어떤 이들은 교배이론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교배이론이 왜 멸종을 뒷받침을 하냐면, 다른 종들과 교배를 하게 되면 후손을 이을 수 없다고 하는구나.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말과 당나귀 사이에 태어난 노새라는 동물이 있는데, 노새는 번식을 할 수 없대. 그렇듯 다른 인종과 교배를 하면서 그 인종들을 없앴다는 것이 교배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란다. 아무튼, 7만년 전이 되면 이 지구상에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 1종만 남게 된다고 하는구나. 이쯤 되니, 아빠는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여전히 이 지구상에 인간 6종이 공생하고 있다면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말이야. 너희들도 한번 상상해봐. 즐거운 상상이니? 무서운 상상이니?

  

2.

인지혁명은 7만년 전부터 3만년 전까지 이어진 새로운 사고방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 이때 호모 사피엔스는 의사소통방식을 터득하게 돼. 그전까지 그렇지 않다가 왜 이때 그들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졌을까? 그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아무튼 이때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동물들과 차별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유연한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거짓말을 할 줄 알게 되었고, 언어는 정보의 수단이 되었대. 그로 인해 오늘날 인류까지 인간은 가상의 실재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구나. , 국가, , 법인 등등이 모두 그런 것들이야. 사피엔스는 사회구조와 인간관계의 속성들을 빨리 바꿀 수 있었어. 교역하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지. 그럼에도 인지혁명을 하던 시기 대부분의 인간은 수렵채집인으로 살았어. 그렇게 수렵채집 생활을 하다 보니 인간은 고칼로리음식을 먹었대. 그리고 성생활도 많이 달랐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여러 남자의 정자들이 축적되어야 아이가 생긴다고 생각했대. 오늘날 일부일처제는 고대 공동체를 생활하는 이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제도인 거야. 수렵채집 생활은 외부관계와 거의 단절하는 삶을 가지고 했다고 해. 당시 정착생활을 하는 곳은 그나마 먹을 것을 쉽게 수렵채집을 할 수 있는 바닷가의 어촌 정도였어. 당시 그들은 일주일에 35~45시간을 일하면서, 가사 노동도 적었을 것이라고 했어. 지은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아마 오늘날 우리보다 적게 일하고도 잘 살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렇게 일해도 영양실조도 적었고, 전염병도 적었대. 60대 이상의 사람들도 꽤 있었대. 물론 어린 사망률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고, 고난과 결핍이 뒤따르기도 했었어. 당시 정치 사회는 어땠을까? 추측불가 하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당시 전쟁은 있었을까? 학자들마다 의견이 달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자연과 더불어 수렵채집 하는 인간들이었는데, 생태계를 이미 많이 바꾸어놓았다고 하는구나.

인지혁명 이후 많은 인간들이 외부 세계로 나아가게 되었고, 그래서 4 5천년 전 호주까지 정착하였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어떻게 먼 바다를 건너 호주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모른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인간이 호주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 거대동물 수십 종이 멸종을 했대.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 16,000년 전 사피엔스는 시베리아를 통해 알래스카를 거쳐 드디어 아메리카에 도착을 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2000년 만에 대형 동물 대부분이 멸종을 했대. 그렇게 사피엔스가 가는 곳마다 대형동물들이 멸종을 했다는구나. 생태계 최고 정점에 있는 이의 만행이라고 할까? 과연 그들은 지구 생태계에 필요한 존재인가? 이것은 이미 석기 시대부터 논의가 필요했던 것이었구나. 이런 일들이 인지혁명이 일어났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하는구나.

  

3.

1만년 전 상황은 급격하게 변했대. 사피엔스는 농업 기술을 터득한 거야. 더 이상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지도 않게 된 거지. 제한된 지역에서 농업을 시작하여 점점 퍼지게 되었고, 다양한 곡식을 재배하게 되었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어. 기원후 1세기에는 세계 대부분의 사피엔스들이 농민이었대. 아빠가 학교에서 배운 농업혁명이 가져다 준 것은 이익이 많았고, 인류가 진보한 근거였어. 하지만, 지은이는 아빠가 몰랐던 사실들을 일깨워 주었단다. 물론 농업을 통해 식량 총량은 확대되었어. 그런데, 그 이전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악한 식사를 하게 되었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농업으로 인해 그 전에 없던 새로운 질병들이 출현을 했어. 그리고 정착지를 지켜야 하는 의무도 생겨났고, 그로 인해 전쟁도 일어났어. 농경사회에서 15%가 인간 폭력으로 사망했대. 더욱이 남자는 25%가 인간폭력으로 죽었대. 전쟁으로 죽었다는 거지.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식량 총량이 늘어나면서 인구의 증가를 가져왔다고 하는구나. 그렇게 곡식량만 늘어난 농업혁명. 지은이는 밀과 감자, 쌀 등이 자신들의 개체를 늘이기 위해 인간들을 길들였다고 하는 기발한 생각까지 해냈어. 마치 리처드 도킨스가 이야기한 이기적 유전자들이 자신들의 번식을 위해 인간들을 조종하는 것처럼? 아무튼 농업 사회가 되면서, 인간들은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어. 당연히 삶이 더 나아질 거라 기대했을 거야. 하지만, 인구가 늘어 삶의 질은 그대로가 되었어. 인구가 늘어나서 다시 수렵채집시절로 돌아갈 수도 없었어. 그래서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도 불러.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원래 있었던 것인지, 지은이가 독창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이 사실을 처음 보게 된 아빠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단다. 농업 사회로 들어선 인간이 결코 발전한 게 아니었다니그것은 말, 감자, 쌀 등이 발전한 것이었어. 동물들의 가축화 또한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단다. 오늘날 가축화된 동물은 엄청난 개체수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 또한 불행한 시절이 되고 말았단다. 현재 지구 상에는 양이 10억마리, 돼지도 10억 마리, 소는 10억 마리 이상, 닭은 무려 250억 마리가 있다고 하는구나. 그들은 그려 식용 또는 옷의 재료로 또는 우유생산을 위한 목적일 뿐이란다. 동물에게 있어 농업혁명은 재앙이었던 것이야.

농업혁명은 그 동안 없었던 인구 급증을 만들어냈고, 흉년이 들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식량을 비축하게 만들어야 했고, 그로 인해서 일을 그전보다 더 많이 해야 했단다. 그리고 지배자와 엘리트를 출현하게 하였고, 그들은 농업을 하지 않는 대신 잉여 식량을 가져가게 되었고 본격적인 국가가 생기기 시작했단다. 국가가 생기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뇌의 기억 용량이 부족하게 되면서, 쓰기가 출현하였단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있던 수메르인들이 점토판에 숫자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런 숫자나 문자는 점점 복잡해졌어. 그들의 문자를 쐐기문자라고 했어. 수메르인들이 문자를 쓰기 시작한 것이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500년이래. 이후 이집트의 상형문자와 중국 등지에서도 문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대.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수많은 국가가 생겼지만, 인류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 또한 생겨난 것이 사피엔스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단다. 그것은 바로 돈, 제국, 종교란다.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것들이란다.

  

4.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과학혁명은 상당히 최근에 일어난 일이란다. 하지만, 그것은 그 전에 인류 변화보다 훨씬 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단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피엔스를 더 풍요롭거나 더 행복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농업혁명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500년 전 과학혁명은 그것이 향후 사피엔스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줄거라 예상하지 못한 채 우연히 일어났단다. 과학은 오늘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으로 생각하고 있고,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과학은 자본주의를 낳았고, 자본주의는 사회 전체의 부의 총합이 늘어나지 않으면 종속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단다. 사피엔스 개체수의 증가율보다 부의 증가율은 월등히 높게 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겠니? 예전에는 필요 없는 사치품들을 필수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사도록 하면 되겠지. 그리고 사람들은 필수품이 된 사치품을 사기 위해서 더 많이 일을 해야 하고

그래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과학의 도움으로 분명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좀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니? 너무 바빠서 집에 오면 이미 너희들은 아빠를 기다리다 잠이 들고.. 아빠도 책 한 장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잠들고.. 이것이 과학이 만들어낸 삶이 아닐까 생각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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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우리 시대의 친숙한 예를 또 하나 들어보자. 지난 몇십 년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 이들 기계는 삶을 더 여유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과거엔 편지를 쓰고 주소를 적고 봉투를 우표에 붙이고 우편함에 가져가는 데 몇 날 몇 주가 걸렸다. 답장을 받는 데는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이 걸렸다. 요즘 나는 이메일을 휘갈려 쓰고 지구 반대편으로 전송한 다음 몇 분 후에 답장을 받을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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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혁명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이 수렵채집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듯이, 과학혁명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은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단다. 그런데, 과학혁명이 만들어놓은 또 다른 폐해가 있어 그 문제가 심각하단다. 바로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거야. 모든 이들이 이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아빠는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돌아갈 수 없는 것 같아. 그냥 이렇게 종말로 가야만 가는 것일까? 과학혁명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왔단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다. 그래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신비도 풀어낼 것이고, 과학은 신의 경지에 다다를지도 몰라. 어쩌면 이미 신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과연 이 지구 파괴의 길을 멈출 수 있을까? 그렇게 어떻게 하면 파괴의 길을 걷는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갑자기 지구가 터져버려 지구와 사피엔스가 이 우주에서 사라져버려도 이 우주는 아주 평온하게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무슨 고민을 하고 있나 싶기도 하더구나. 지은이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데,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하지 않나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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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고 해도 우주는 아마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우리가 아는 바로는 인간의 주관성을 그리워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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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과학혁명의 영향으로 바쁜 날들을 보내서, 책의 뒷부분에 대해 메모를 하지 못해서 내용이 많이 부실하단다. 이해해주렴. 오늘은 여기까지 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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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 영혼 노을처럼 번지리

겨레의 가슴마다 핏빛으로

내 영혼 영원히 헤엄치리

조국의 역사 속에 핏빛으로

-       장준하

 

(215)

신념이란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고 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생명력이란 것을, 나는 체험을 통해 확신했다. 나의 신념은 앞으로 계속 날 지배하고, 또 내가 속해 있는 단체를 지배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도 나의 신념을 필요로 할 것이다.

 

(227)

장준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임시정부의 문제점을 국무위원과 교포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고발하기로 작정했다. 국내정세의 보고로 분위기가 처연해지자, 임시정부 내부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요즘 우리는 이곳을 하루빨리 떠나자고 말하고 있다. 나도 떠나고 싶다. 오히려 오지 않고 여러분을 계속 존경할 수 있었다면 더 행복했을지 모를 일이다. 가능하다면 이곳을 떠나 다시 일군에 들어가고 싶다. 일군에 가면 항공대에 들어가 중경폭격을 자원, 이 임정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싶다.

선생님들은 왜놈들에게 받은 설움을 다 잊으셨는가. 그 설욕의 뜻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임정이 이렇게 분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조국을 위한 죽음의 길을 선택하러 온 것이지. 결코 여러분의 이용물이 되고자 이를 악물고 헤매여 온 것은 아니다.”

 

(349)

<사상계>가 들사람 함석헌을 필자로 발굴한 것은 성공 요인 중 하나였다. 장준하와 함석헌은 <사상계>를 통해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이후 한국 사상계와 정신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뿐 아니라 언론사와 반독재 민권운동사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장준하가 존재하므로 <사상계>가 있었고, 함석헌의 존재로 인해 <사상계>는 그 존재의 빛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사상계>를 매체로 하여 함석헌과 장준하의 가치와 역량은 상승 효과를 띠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사상계>가 사라진 뒤에도 반독재투쟁을 함께하면서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355~356)

우리나라 역사는 벙어리 역사다. 무언극이다. 이 민중은 입이 없다. 표정이 없다. 사람인 이상 입이 없으리오만 있어도 말을 아니하고 자라온 민중이다. 할 말이 없어서일까? 아니 있다면 세계 어느 나라의 민중보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입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을 가슴에 사무치게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발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시비비의 판단이야 없지 않지만 있는 소감을 발표했다가는 언제 판국이 바뀌어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오랜 역사의 경험에 비추어 알기 때문에 구차한 목숨 하나를 보전하기 위하여 그들은 벙어리가 되기로 했다. 그러나 민중이 무표정이면 무표정일수록 구경하는 격이 되면 될수록 특권자들의 싸움은 점점 더 노골적이 되고 압박은 더욱더 꺼림 없이 하게 된다. 그러면 비겁한 민중은 더욱 더 무표정한 구경꾼이 됐다. 이리하여 원인이 결과를 낳고 결과가 원인이 되어 세계에서 다시 볼 수 없는 무언극의 역사가 엮어졌다. 참혹하지 않은가. 비통하지 않은가.”

함석헌의 논설은 한국사회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373)

“6.25 전쟁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이승만과 소련, 중공을 배경으로 한 김일성의 싸움이었지 민중이 한 싸움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서울을 빼앗겼을 때 저 임진왜란 때 선조가 그랬듯이 이승만도 국민을 다 버리고 민중 잡아먹고 토실토실 살이 찐 강아지 같은 벼슬아치들과 여우 같은 비서나부랭이들만 끌고 야밤에 한강을 건너 도망을 간 것이다.

밤이 깊도록 서울은 절대 아니 버린다고 공포하고 슬쩍 도망을 쳤으니 국민이 믿으려 해도 믿을 수 없다. 저희끼리만 살겠다고 도망을 한 것이지 정부가 피난간 건 아니다.”

이승만 시대에는 이 대통령’ ‘이 박사’ ‘대통령 각하정도가 일반적인 호칭이었다. 그런데 함석헌은 아무런 관형사나 존칭 없이 그냥 이승만이라 표기했다.

 

(422)

언론이란 항상 민중 편에 서서 치자의 그릇된 정치로부터 민중을 보호고 치자의 비정을 가차 없이 고발하고 또한 민중을 대변하는 것이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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