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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주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1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유명한 사건이
있단다. 아주 짧게 이야기를 하자면, 19세기 프랑스에서
프랑스군 장교 드레퓌스가 스파이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그가 진범이 아니었어. 증거들도 누가 봐도 조작한 것처럼 보였어. 드레퓌스가 유대인이었는데, 당시 유럽은 반유대인 정서가 강했기 때문에 드레퓌스가 무죄라는 정황이 있었음에도 조작된 증거들이 인정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단다. 이때 양심 있는 지식인들이 하나둘 드레퓌스가 무죄라고 용기 있게 이야기를 했단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에밀 졸라로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기고했단다. 이 일로 오히려 에밀 졸라는 프랑스 극우파들로부터 비난과 협박을 받아서 영국으로 망명까기
가게 되었어. 이후 드레퓌스의 무혐의가 확정된 뒤 에밀 졸라는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극우파의 비난은 계속
되었어. 그런 와중에 그가 자는 동안에 가스 중독으로 죽었는데 사고가 아니고 누군가 고의로 굴뚝을 막아서
죽인 것이라고도 하더구나. 드레퓌스 사건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에밀 졸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아이콘이
되었어.
아빠는 에밀 졸라가 프랑스의
유명한 지식으로 알고 있었어. 그런데 간혹 세계문학 시리즈에 에밀 졸라의 책들이 보였단다. 에밀 졸라가 소설도 지었나 싶었는데, 이번에 에밀 졸라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 엄청난 양의 소설을 썼다는 것을 알았단다. 특히 20권에
다다르는 루공 마카르 총서는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하더구나.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하는 <패주>도 루공
마카르 총서의 한 권인데 문학 상식이 낮은 아빠는 루공 마카르 총서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루공
마카르 총소는 에밀 졸라가 1871년부터 1893년까지 발간한
총 20권짜리 이야기란다. 등장 인물 중에 아델라이드 푸크의
첫 번째 남편이 루공이고 아델라이드 푸크의 동거남이 마카르이고 루공과 마카르의 자손들까지 이어지는 이야기하고 해서 루공 마카르 총서라고 부르게
되었나 봐. 20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연관성이 있지만 이야기는 독립적이라서 한 작품씩 읽어도
된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루공 마카르 총서가 모두 번역되지 않아서 모두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겠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패주>는 루공 마카르 총서의 19번째 작품이었어. 아빠는 이런 시리즈를 읽을 때 1권부터 차례대로 읽곤 하는데, 20권 다 번역도 안되었고, 한 권씩 읽어도 무방하다고 하고, <패주>의 배경 지식을 알기 위해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을 읽었는데 <패주>를 뒤로 미뤄서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 그냥 읽기로 했단다.
1.
주인공은 장 마카르와 모리스
르바쇠르가 주인공이란다. 장 마카르는 서른아홉 살이고, 루공
마카르 총서의 또다른 소설 <대지>의 주인공이기도
했대. 그 소설에서 땅과 아내를 모두 잃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대지>를 읽어봐야겠구나. 1870년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이 일어나서
장은 군대에 재입대하여 하사 계급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단다. 그가 속한 부대는 106연대이고 장 마카르의 상사로는 보위앵 대위, 로샤 중위가 있었고
장의 후임 분대원으로는 모리스, 오노레, 고드, 라풀, 파슈 등이 있었어. 그들은
뮐루즈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전방부대의 패전 소식과 함께 후퇴 명령을 받았어.
일단 패전 소식에 충격을 받았단다. 그들은 나폴레옹의 후예로 프랑스 군대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변방의
프로이센에게 졌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말이야. 아침밥을 준비하던 분대원들은 밥도 못 먹고 퇴각해야 했단다. 프로이센 적군은 보이지 않는데 계속 퇴각해야 했어. 그래서 장군
등 지휘관들이 겁쟁이라고 욕하는 병사들도 있었단다. 군대가 그렇게 후퇴를 하고 있으니, 민간인들도 덩달아 피난길에 나서면서 군대와 민간인들이 섞여 대혼란을 이루었단다.
장은 하사로써 분대원들을 잘
대해주었어. 모리스는 학교를 다니지 않은 농민 출신의 하사인 장을 무시하곤 했단다. 모리스 자신은 파리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나름 가방 끈 긴 사람이었거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의 책임감과 후임병을 대하는 태도 등에서 마음에 조금씩 바뀌었단다. 그러다가
모리스가 발 부상을 당했을 때 장이 옆에서 계속 챙겨주고 치료를 해주는 모습을 보고 장을 완전히 신뢰하여 호칭도 ‘형’이라고 불렀어.
…
그들은 계속 퇴각을 하는데 여전이
프로이센의 군대는 보이지 않았어. 지휘관들은 우유부단한 모습을 계속 보였고 적군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어. 어디로 퇴각해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였고… 리더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란다. 그들은 스당까지 퇴각해서 진지를 구축하려고 했단다. 그들의 퇴각길에는 황제도 같이 했는데 군인들은 황제에 대한 불만도 컸단다. 황제와
그의 무리들의 이동은 이동 속도도 느렸고, 군인들은 며칠씩 굶고 있는데 황제와 측근들은 잘 먹고 있었으니
말이야. 지금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인데 말이야.
…
퇴각하는 길에 분대원 중에 한
명인 오노레의 집이 있어서 장의 분대원들은 그곳에서 하룻밤 묵었단다. 오노레와 모리스는 친척이었어. 오노레의 아버지가 모리스의 외삼촌이었어. 그런데 오노레에게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있었단다. 오노레는 자신의 집 하녀인 실빈과 사랑에 빠졌었는데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했어. 그러다가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되었어. 그 사이
살빈은 외지에서 온 골리아트와 정을 통하고 임신까지 하게 되었단다. 실빈은 자신의 순간적인 실수를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단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골리아트가 프로이센의 첩자였던 거야. 그는 정보를 얻고 나서 다시 프로이센으로 도망을 갔단다. 실빈은
아이를 낳고 혼자 기르고 있었단다. 오노레는 그런 실빈과 재회를 했단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실빈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실빈을
용서하고 전쟁을 마치면 결혼하자는 약속을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단다.
…
퇴각길은 쉽지 않았어. 굶주림과 수면부족과 피로로 장병들은 하나둘 쓰러졌단다. 장과 분대원은
이번에는 모리스의 쌍둥이 누가 앙리에트와 남편 바이스의 집에서 하룻밤 묵기도 했단다.
…
2.
그들의 패주는 한 달 넘게 이어졌어. 여전히 프랑스는 우왕좌왕 오합지졸이었고 작전도 없이 프로이센 공격에 임시응변으로 대응을 했단다. 지역의 전문가들이 군 지휘관에게 지형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었지만, 지휘관은
그들의 말을 무시했단다. 망하는 군대의 전형적인 리더의 모습. 회사도
저런 리더가 있으면 회사가 곧 망할 텐데.. 주변에 그런 리더들이 보여서 걱정이구나.
모리스의 쌍둥이 누나 앙리에트의
남편 바이스는 민간인이지만 전투 상황이 어떤가 도움이 될 만 한 것은 없나 하는 생각으로 전쟁터로 향했단다. 이에
앙리에트는 남편 걱정으로 안절부절. 직접 남편을 만나러 바제유란 곳으로 가는데… 바제유는 이미 프로이센 군들이 많이 진격하여 무척 위험한 곳이야. 군인들도
앙리에트를 만류했단다. 한편 바이스는 전쟁터에서 군인들을 도와 프로이센 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으나, 프로이센 군에 역부족이었어. 바이스와 저격수 한 명만 생포되고 나머지는
모두 죽었단다. 생포되었지만 그들도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지. 그런데
그때 앙리에트가 바제유를 도착을 했고, 바이스가 죽게 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어. 바이스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결국 바이스는 프로이센에게 처형당했단다.
..
장과 모리스는 서로 도와가면서
그 험난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단다. 프로이센의 계속된 공격과 프랑스의 반격이 있었는데 소설 속에서 전투
장면을 무척 사실적으로 묘사했단다. 전쟁의 잔혹함과 무서움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구나. 장과 모리스는 앙리에트를 만나고 바이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장의 분대원들 중에도 살아 남은 사람이 적었어. 죽은
사람 중에는 앞서 아빠가 이야기했던 오노레라는 사람도 있었단다. 전쟁이 끝나면 실빈과 결혼하기로 했었는데
말이야. 실빈도 오노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시신을 눈으로 확인하겠다면서 전쟁터로 향했단다. 버려진 오노레의 시신. 실빈은 오노레의 시신을 마차에 태우고 고향
땅으로 돌아왔단다.
…
전쟁은 프랑스의 항복으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어. 장과 모리스는 결국 프로이센 군에 붙잡혀 수용소에 수감되었단다. 수용소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어. 굶주림과 병마가 그들을 괴롭혔어. 빵을 빼앗으려고 살인 사선도 일어나고 수용소를 탈출하려다가 죽은 이들도 많았어. 하지만 생지옥 같은 수용소에 있다가는 그냥 죽을 것 같아서 장과 모리스도 수용소 탈출을 시도했단다. 장이 다리에 총상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탈출에 성공했단다. 장은
모리스의 외삼촌 푸샤르의 집, 그러니까 오노레의 집에서 숨어 지내면서 치료를 받고 있었단다. 모리스는 파리로 가겠다고 했어. 파리는 프로이센에 항복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앙리에트는 군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기도 했었는데 장이
부상당해 숨어 있는 것을 알고 날마다 와서 장을 치료하고 말동무도 되어주었단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는
애틋한 감정이 싹트기도 했어.
3.
실빈이 낳은 아이의 아버지 기억나니? 프로이센의 첩자였던 골리아트. 그가 다시 찾아와서 실빈에게 자신을
따라 오라고 했어. 그렇지 않으면 장을 비롯하여 푸샤르의 집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프로이센에
넘기겠다고 했어. 실빈은 자신의 아이의 아버지를 죽여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대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리기로 했어. 실빈은 민병대에게 골리아트가 다시 오기로 한 시간을 알려주었고, 민병대는 푸샤르의 집에 숨어 있다가 골리아트를 죽였단다.
…
장은 몸이 회복되어 다시 군대에
가기로 했어. 장은 당연히 정부가 조직한 군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프로이센에게 항복 선언을 한 정부가 조직한 군대인데 그쪽으로 가는게 맞나 싶구나. 더욱이
모리스는 파리로 갔는데… 파리에는 파리 코뮌 중심으로 국민자위대가 만들어져 프로이센에 항전을 하고 있었고
말이야. 그런데 이 국민자위대를 진압하려고 보르도 회의는 정부군을 파리로 보냈단다. 프랑스 정부군과 국민자위대는 서로 총칼을 겨누면서 싸웠단다.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거라 그들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파리가 불타고 서로 잔인하게
죽였단다. 1만 2천여 명이 죽었다고 했어. 정부군 소속이었던 장도 어떨 수 없이 국민자위대와 싸웠는데 그가 어떤 적군을 칼로 찔렀는데, 뒤늦게 모리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아, 깊은 탄식과 후회가 밀려왔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것. 그때부터 장은
군대도 전쟁도 다 때려치우고 오직 모리스를 살리는 데만 힘썼단다. 장은 부상당한 모리스를 데리고 피신하고 몰래 숨기면서 치료를 했단다. 그곳에 앙리에트가 찾아와 앙리에트도 모리스 치료에 도움을 주었어. 다행히
모리스가 점점 회복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물어가던 상처게 안에서 터져서 그만 질식사로 죽고 말았어.
갑작스럽게 찾아온 황망한 죽음이란다. 장은 죄책감에 어떻게 살아가라고… 장과 앙리에트 둘이 달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모리스가 죽었으니 그것도 쉽지 않았을 거야. 앙리에트는 장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신의 길을
떠났고, 장도 자신의 길을 떠났단다. 지은이는 전쟁에는 해피엔딩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가.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났단다.
…
에밀 졸라의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사실적인 묘사로 느리지만 꽉 차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 좋았단다. 그의 다른 소설들도 더 찾아보게
될 것 같구나. 루공 마카르 총서를 중심으로 해서 말이야. 아빠가
이 책 읽기 전에 배경 지식을 쌓기 위해서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을 읽었다고 했잖아. 그건 너무 잘 한 선택인
것 같구나. 그 책을 읽고 에밀 졸라의 <패주>를 읽었더니 소설을 이해하기가 더 쉬웠단다. 그리고 앞서 읽은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을
복습하는 느낌도 들었어. 누군가에게 이 책 <패주>를 추천하게 될 일이 있으면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1789~1871>도 함께 추천을 해야겠구나. 자..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뮐루즈에서 라인강 쪽으로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기름진 평원에 야영지가 구축되었다.
책의 끝 문장: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겸허한 사내인 장은 프랑스를
재건할 힘겹고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문득 높다란 황색 담장에 쓰인 "나폴레옹 만세!"라는 글귀가 꿈을 꾸는 듯 멍한 모리스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좌절감과 가슴이 찢기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전설적인 승리를 구가하며 전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가 안중에도 없었던 약소국의 일격에 쓰러졌다는 게 사실일까? 반세기 만에 세상천지가 변했다. 뼈저린 패배감이 영원한 승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모리스는 매형 바이스가 일전에 뮐루즈 앞에서 고통스럽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 오직 그만이 사태를 통찰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를 서서히 약화시킨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었고, 젊음과 활력이 담긴 새로운 바람이 독일에서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패권 시대가 끝나고 또다른 패권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뜻할까? 하기야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나라에서 불행이 닥치고, 미래를 향해 가는 나라, 가장 합리적이고 건강하고 강고한 나라가 승리하는 게 당연하잖아! - P82
모두가 울화통을 터뜨렸다. 병사들을 재미삼아 이리저리 돌리는 놈들이 세상천지에 어디에 있나! 헐벗은 들판에 펼쳐진 주름진 대지를 통해 병사들은 길 양쪽 가장자리로 열을 지어 걸었고, 장교들이 두 대열 사이로 지나갔다. 랭스에서 야영한 다음날 샹파뉴에서 병사들이 했던 즐거운 행군, 농담과 노래로 떠들썩했던 행군, 프로이센군을 따라잡아 격퇴하리라는 희망 속에서 배낭을 가볍게 들어올렸던 행군과는 전혀 달랐다. 이제 분노와 침묵 속에서 그들은 어깨를 짓누르는 소총과 배낭을 저주했고, 지휘부를 더 이상 믿지 않았으며, 절망에 사로잡힌 채 채찍질을 두려워하는 가축떼처럼 천근만근 발을 그저 앞으로 옮길 뿐이었다. 이 가련한 군대는 자기들의 십자가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 P152
그러나 많이 배운 모리스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전쟁이 삶 자체요, 세계를 움직이는 법칙이라고 생각했다. 정의와 평화의 개념을 도립한 자는 불쌍하고 유약한 존재가 아닐까? 어차피 냉혹한 자연이란 끝없는 살육의 장일 뿐이니까. - P227
스당에서는, 황제의 거추장스러운 짐이 주민들의 저주와 비난이 이는 가운데 군청 정원의 라일락 뒤에 놓여 있었다. 비참한 고초를 겪는 불쌍한 주민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것을 어디로 치우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짐에 어린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운, 그 짐이 자극하는 뼈아픈 패배의 기억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둠이 깊은 어느 밤이었다. 수많은 은냄비, 꼬치 회전기, 고급 포도주 바구니와 함께 말들, 마차들, 화물 마차들이 극비리에 스당에서 빠져나갔고, 도둑질할 때처럼 살금살금 불안한 걸음으로 캄캄한 도로를 통해 벨기에로 넘어갔다. - P456
그때 장은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땅거미가 지는 이 시각. 불타는 도시 위로 서광이 비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가차없는 운명과 감당하기 힘든 재앙 속에서 분명 모든 것이 종말을 맞이했다. 프랑스는 그처럼 엄청난 불행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잇따른 패전, 지방 영토의 상실, 수십억 프랑의 배상금, 피로 물든 참혹한 내전, 사방에 널린 시체와 파괴의 잔해물, 돈도 명예도 없는 궁핍, 한마디로 다시 건설해야 할 하나의 세계! 그 자신도 찢기는 가슴을 거기에 묻었다. 그가 사랑한 모리스도 알이에트도,그가 꿈꾸었던 행복한 내일의 삶도 폭풍우에 휩쓸려갔다, 그렇지만 아직도 이글거리는 맹화 너머로,싱그러운 희망이 더없이 맑고 고요한 하늘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영원한 자연,영원한 인류의 신선한 소생이었다.그것은 희망을 품고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새로운 청춘이었다. 그것은 수액이 오염되어 잎을 노랗게 물들이는 썩은 가지를 잘랐을 때 푸르른 줄기를 힘차게 내뻗는 생나무였다. - P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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