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집단생활의 역학은 아른험 집단에서 일어난 지도력의 변화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변화 과정은 수개월에 걸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리더십의 변화가 단 몇 차례의 투쟁으로 결판나지 않았다. 내 연구는 결코 눈에 띄지 않게 계속되는 사회적 책략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최종적으로 리더의 추방으로 이어진다. 집단의 안정성은 그 토대부터 천천히 무너진다. 개체들은 제각기 음모에 찬 감시망 속에서 자기가 완수해야 할 역할을 가지고 있다. 미래의 새로운 리더는 스스로 그 길을 개척해 나가지만 혼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단독으로 자기의 리더십을 집단에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지위는 부분적으로 다른 침팬지에 의해 주어진다. 리더, 즉 우두머리 수놈도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감시망에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39)

1년 중 침팬지들이 가장 기쁜 날은 바로 겨울 주거지에서 벗어나는 날이다. 그날 아침이 되면 사육 담당자가 야외 사육장으로 통하는 문을 통보 없이 열어젖힌다. 침팬지들도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는 없지만, 건물에 있는 모든 문의 움직임을 소리만으로도 쉽게 분간할 수 있다.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집단 전체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 반응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집단 별로 나뉘어 야외로 나간다. 비명과 후우후우하는 소리는 여전히 계속된다. 광장 여기저기서 침팬지들이 서로 포옹하거나 키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때로는 세 마리, 또는 그 이상의 침팬지들이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거나 서로의 등에 올라타기도 한다.

 

(49)

침팬지의 표정은 각각의 특정한 기분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즐거운 기분과 불안한 기분 사이의 차이는 이빨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지로 추측할 수 있다. 침팬지는 놀라거나 괴로울 때면 즐거울 때보다 훨씬 길게 이빨을 드러낸다. 보통의 구경꾼에게 입을 크게 벌린 표정이 즐거워서 웃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적어도 침팬지의 경우는 웃을 만한 일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 확실하다. 이와 같이 이빨을 드러내는 것은 엄마가 제멋대로 방치해서 외톨박이가 된 새끼가 집단 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구성원과 싸우게 된 제법 나이든 침팬지에서 가끔 볼 수 있다. (서열이 높은 침팬지는 좀처럼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

 

(76)

이런 견해에 따르면 기술적인 창의성은 부차적인 발전이다. 영장류 지능의 진화는 꾀로 상대방을 이기고, 속임수 전략을 감지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타협을 이루며, 자신의 삶에 이득이 되는 사회적 연대를 증진시키기 위한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침팬지들은 이런 영역에서 분명히 뛰어나다. 그들이 가진 기술적인 재주는 인간보다 떨어지는 것이 확실하지만, 그들의 사회적인 능력도 그렇다고는 쉽게 단정하지 못하겠다.

 

(79)

침팬지들은 각기 나름대로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얼굴 생김새의 특징으로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알아보듯 침팬지들도 서로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게다가 목소리까지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는 목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침팬지들은 각자 걷는 법, 잠자는 자세, 그리고 앉는 모양새에도 특징이 있어 머리를 돌린다거나 등을 만지는 것만 보고도 어떤 놈인지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의 개성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각각의 침팬지들이 집단 내에서 동료들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이다. 이런 차이는 사람들을 특징 짓는 데 사용하는 것과 똑 같은 형용사를 쓰지 않는다면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다.

 

(106-107)

그 사육사는 일하는 날이면 종종 곤욕을 치러야 했다. 아침에 단디를 잠자리에서 밖으로 불러내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단디는 다른 침팬지들과 같은 시간에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매몰차게 거부했다. 그에 대한 벌칙으로 사육사가 하루 종일 음식을 주지 않으려고 하자 나는 이렇게 충고했다. 그런 심한 수단은 옛날에나 통하던 것이었고, 그러자 사육사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가장 영리한 묘안을 생각해냈다. 며칠 지나서 그는 자랑스럽게 자신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다른 챔팬지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는데도 단디는 손을 놓고 실내에 앉아 있었다. 사육사는 단디의 손에 바나나 두 개를 들려주었고, 그러자 곧 단디가 밖으로 나왔다. 사육사는 자신이 단디가 밖으로 나오도록 가르친 것으로 여겼지만, 내 생각에는 거꾸로 단디가 사육사로 하여금 바나나를 가지고 오도록 훈련시켰을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았다. 만일 침팬지에게서 그런 뇌물 수수가 유행처럼 번지기라도 한다면 매일 아침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127-128)

큰 소란이 순식간에 시작된 것처럼 평화도 그렇게 찾아온다. 이에룬이 자리를 잡으면 다른 침팬지들이 서둘러 그의 곁으로 와 인사를 한다. 마치 왕이나 된 것처럼 집단적 경의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면서 신하 몇쯤은 쳐다볼 가치조차 없다는 듯 무시한다. 이 같은 의례(formalities)’가 끝나면 모두가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고 새끼들도 어미에게서 떨어져 멀리 돌아다니며, 이에룬은 편안한 자세로 암놈들의 털고르기에 몸을 맡기거나 요나스나 바우터 같은 새끼들과 장난을 치기도 한다. 이 새끼들은 늘 두목과 장난 싸움을 할 태세가 되어 있다. 새끼들은 이에룬에 대한 경의는 까맣게 잊어버린 양 그를 쫓아다니며 모래를 뿌리거나 나무 막대기를 집어던진다.

 

(142)

내 경험에 의하면 장성한 수놈 침팬지 사이에서 나타난 위협 과시의 경우, 열 번 중 네 번 정도가 이에룬이 비명을 지르고 라윗이 빰을 강하게 후려치는 것과 같은 실제적인 충돌로 이어졌다. 이 같은 사건은 대개 위협, 추적, 비명 같은 일련의 행동이 포함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놈들 사이에서 서로 때리는 일은 흔하지 않지만 한 번 가격을 했다고 그 자체로 싸움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심각한 다툼일 때는 실제로 맞수끼리 서로 붙잡고 물어뜯는다. 백 번의 충돌 가운데 한 번 이하, 정확하게는 수놈까리의 대결 중 0.4퍼센트만이 진짜 결판을 내는 결투에 이른다. 빈도는 낮지만 결투의 위협은 늘 상존하고 있고, 바로 이런 점이 우위 다툼 과정의 긴장감을 더욱 부채질한다.

 

(164)

우리는 싸움의 결과를 사회적 관계를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회 관계가 싸움의 결과를 결정했다. 뒤에 살펴볼 우열을 둘러싼 교섭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 사회적인 배경이 경쟁자들의 자신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다른 구성원들의 태도에 의해 그들의 실력이 결정되는 것과 같았다(이것은 축구팀이 원정 경기보다는 홈 경기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것과 비슷하다). 한 달쯤 뒤 숙소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라윗은 이에룬보다 육체적으로 강력하다는 점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집단 전체에서 자신의 승리를 확인하기까지는 9주일이나 더 걸렸다. 그 무렵 이에룬은 더 이상 다른 동료들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파위스트는 이미 그의 진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라윗은 이에룬에게 노골적으로 도발하기 전에 먼저 집단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폈다. 최후의 결전에서 거둔 그의 승리는 단순히 야만적인 힘의 과시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라윗이 이에룬에게 다른 구성원들의 태도가 이미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시켰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71)

털고르기, 눈길 맞추기, 평화 협정, 중재 등을 생각하면 화해라는 주요 테마가 우리의 큰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런 행동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믿는다. 그것은 분명 집단생활을 파괴할 우려가 있는 여러 세력에 대한 건설적인 균형추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화해 행동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960~1970년대에 걸쳐 인간이나 동물의 공격적인 행위에 대한 연구에는 막대한 연구비가 투여되었지만 그 행위가 어떤 식으로 종결되는지에 대한 연구에는 무심했다.

 

(185)

강자의 보안관 역할과 그 강자가 위협에 직면했을 때 약자로부터 받는 지원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뻔하다. 암놈과 그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1인자 수놈은 장차 라이벌과의 권력투쟁에서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1인자 수놈의 보안관 역할은 호의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1인자로서의 지위는 이 같은 의무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에룬의 몰락은 그가 라윗이나 니키의 공격으로부터 다른 구성원들을 효과적으로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로도 설명될 수 있다. 라윗의 행동도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해석될 수 있다. 라윗은 암놈들을 공격하거나 이에룬에게 지원을 요청해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 점을 시위했던 것이다. 하지만 쿠데타에 성공하고 나자 그는 완전히 태도를 바꾸어서 스스로 보호자의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231)

동물원 관람객들 중에는 침팬지의 성행위를 보고 충격을 받아서 함께 온 아이들의 손을 잡아당기며 발걸음을 돌리는 이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인간과 비교하는 사람도 있고, 숨을 죽인 채 그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다. 섹스는 누구라도 냉정함을 잃게 만든다. 부풀어오른 암놈들의 음순은 즉각적으로 주목을 끈다. 외부인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는 부풀어오른 암놈들의 아랫도리에 너무 익숙해서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심지어 암버르나 호릴라 같은 암놈의 성기는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침팬지의 성기가 역겹게 느껴지거나 만성적인 종기로 오해받기도 한다. 언젠가 한 여성이 동물원의 안내창구로 찾아와서는 괴물처럼 빨간 머리를 한 침팬지가 있다고 제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 암놈 한 마리가 팽창된 성기를 자랑스럽게 공중에 드러내고 잠시 물구나무를 섰던 모양이다. 그것은 발정한 암놈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세였다.

 

(248)

왜 이토록 너그럽지 못한 것일까? 어째서 수놈들은 다른 놈들을 가만 놔두지 못하는 것일까? 질투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관건은 그런 질투의 기능이 무엇인가이다. 질투에 수반되는 긴장과 위험이 아무런 긍정적인 기능을 갖지 못했다면 질투는 이미 오래 전에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성행위를 둘러싼 수놈 간의 경쟁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암놈은 한 마리의 수놈에게서만 수정된다. 수놈은 다른 수놈들은 암놈에게서 멀리하도록 해야 그 암놈이 낳은 새끼의 아비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너그러운 수놈보다는 질투심 많은 수놈이 자신의 자식을 임신시킬 확률이 높아진다. 만약 질투심이 유전되는 것이라면(이것이 이 이론이 전제하는 바이다) 이런 성질을 가진 새끼들이 점점 많이 태어날 것이며 훗날 어른이 되어 다른 수놈들을 번식 행위에서 배제하려 들 것이다.

 

(270)

서열을 결정짓는 원리를 성별에 따라 다르다. 수놈 사이에서는 연합이 우열을 결정한다. 수놈이 암놈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은 주로 육체적 우월성에 기인한다. 한편, 암놈끼리의 서열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성격나이.

 

(279)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 선천적인 사회적 성향을 사용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날개를 갖고 태어난 어린 새가 비행에 숙달하려면 몇 달 간의 연습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적 전략의 경우에 경험은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나는 경험을 사회적 과정 자체에 직접 활용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경험을 사회적 과정 자체에 직접 활용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오랜 경험을 미래에 투영하는 경우다. 이 중 첫 번째 가능성은 이에룬 같은 침팬지가 니키를 지원함으로써 그가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올지를 알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조건화될 수 있다. , 특정한 행동이 그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에 의해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283)

인간은 말하는 영장류이지만 행동은 침팬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말다툼, 도발적인 언어폭력, 항의와 간섭, 화해의 언사 등 여러 형태로 언어를 활용하지만, 침팬지는 그것들을 언어가 아닌 형태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인간이 말 대신 행동으로 무언가를 표현할 경우에는 침팬지와 더욱더 유사해진다. 침팬지는 비명과 큰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리고, 물건을 던지고, 도움을 청하고, 나중에는 우호적인 접촉이나 포옹으로 무마하려 한다. 우리 인간들도 보통 의식적인 결정 없이 그러한 형태의 행동을 모두 연출한다. 이러한 행동들의 동기를 볼 때 인간과 침팬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298)

다른 침팬지들을 위해 가지를 붙들고 있어주는 행위는 연합 형성 행위 그 이상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도움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뭇잎과 고기를 나눠먹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가 성적 특권을 양보한다거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것보다는 선뜻 이뤄질 수 있는 관용적 행위라고 여긴다. 물론 이 두 가지 형태의 협력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침팬지 수놈은 물질적인 것을 나눌 때에는 놀랄 정도로 너그럽다. 자기 손에 있는 물건을 암놈들이 낚아채는 것조차 용인할 정도다. 이러한 특성은 사회적 행동에서도 나타난다(라이벌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지만). 그들은 도움을 줌으로써 동시에 통제하려 한다. 이를 보호해주는 대신에 그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받아내는 것이다.

 

(312-313)

인간을 침팬지와 비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욕적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죄악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동기를 더욱 동물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팬지들 사이에서 권력 정치는 단지 나쁘다거나 더럽다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른험 집단에 사는 침팬지들에게 논리적 정합성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주적 구조도 안겨주었다. 모든 파벌들은 일시적인 권력 균형에 이를 때까지 사회적 영향력을 계속해서 찾는다. 그리고 이런 균형은 서열상의 지위를 새롭게 결정한다. 다소 유동적인 지위가 고정될 때까지 관계는 계속해서 변한다. 이 같은 서열의 공식화가 어떻게 화해 가운데 일어나는지를 보게 되면, 집단 내의 서열이 경쟁과 충돌을 제한하는 응집적요소임을 이해할 수 있다. 육아, 놀이, 섹스, 협력 등은 그로 인해 찾아오는 안정 상태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상황은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권력의 균형은 매일매일 시험되며, 만일 그것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침팬지들의 정치도 건설적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분류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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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애사 대한민국 스토리DNA 1
이광수 지음, 이정서 편역 / 새움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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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지은이가 별로거나 문제가 있으면 책을 꺼리게 된단다. 친일파 변절의 아이콘 이광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란다. 변절하기 전 작품들은 읽을 만하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아빠도 예전에 이광수의 <무정>이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단다. 이번에 읽은 책 <단종애사>는 비운의 왕 단종에 관한 역사소설로 읽고는 싶으나 역시 지은이가 이광수라는 점에서 좀 망설였단다. 이광수가 <단종애사>를 쓴 시점이 본격적으로 친일로 돌아서기 전인 1928년도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광수가 변절의 기미를 보인 것은 1920년대 초반에 쓴 <민족개조론>때라는 이야기도 있단다. <민족개조론>을 쓴 시점이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상하이로 망명 갔다가 여자 문제로 다시 국내로 돌아온 시점이기도 해.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에 관한 이야기는 아빠가 작년에 이야기해준 강준만의 <근대사산책(6)>에서 좀더 자세히 알 수 있단다.

이광수의 <단종애사>는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단종에 관한 이야기란다. 삼촌인 세조한테 왕자를 빼앗기도 멀리 강원도 영월에 유배를 가서 어린 나이에 삶을 마감해야 했던 단종. 이미 여러 책들에서 단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지만 또 단종에 관한 책을 읽은 이유는 소설로는 어떻게 그 이야기를 그랬을까, 궁금했단다. 오래 전에 북한 작가 림종상의 <사육신>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도 이광수의 <단종애사>와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어. 그 소설의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읽고 쓴 독후감이 있어서 한번 읽어보았단다. 두 소설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1.

1441년 세종 23 7 23일 단종이 태어났단다.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 사이에는 문종을 비롯한 대군 8, 공주 2명이 있었고, 세종은 다른 후궁으로부터 군 10, 옹주 2명도 있었어. 그 중에 첫째 아들 문종이 세자로 책봉되었단다. 문종이 세자일 때 세자비 휘빈 김씨였는데, 문종은 세자비를 무척 사랑했단다. 그런데 소헌왕후 심씨가 질투를 했대. 그리고 궁녀들의 모략으로 휘빈 김씨는 누명을 쓰고 폐위가 되었어. 문종이 무척 상심했겠구나.

뒤 이어 세자비가 된 사람은 순빈 봉씨였어. 문종은 순빈 봉씨를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세자비가 된 지 8년째 아이가 없었어. 그런 와중에 궁녀 양씨가 아이를 임신했단다. 그렇게 되자 순빈 봉씨는 궁녀 홍씨와 짜고 궁녀 양씨를 독살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고 말았어. 이 일로 순빈 봉씨마저 폐위를 당했다는구나. 문종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여자 문제가 자꾸 복잡해지는구나. 그 다음 세자비로 들어선 이가 나중에 왕후가 되는 현덕왕후 권씨란다. 현덕왕후 권씨는 경혜공주와 단종을 낳았는데, 단종을 낳은 지 하루 만에 그만 죽고 말았단다.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거야. 단종은 세종의 후궁 중에 한 명인 혜빈 양씨가 키웠단다. 혜빈 양씨가 얼마 전에 영풍군을 낳아서 모유를 할 수 있었거든. 혜빈 양씨는 심성이 찾아서 자기 아들보다 단종을 더 잘 챙겼고, 단종은 커서서 혜빈 양씨한테 많이 의지했다고 하더구나.

문제는 문종이 즉위한 지 3년도 안되어 죽고 말았다는 거야. 당시 단종 나이는 고작 12살이었어. 왕이 어리면 섭정을 하기 마련인데 문종이 죽으면서 그것을 식구들이 아닌 영의정 황보인 등 노신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죽고 말았어. 아빠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문종은 수양대군 등 동생들에게 아들을 맡겼어야 했다고 생각해. 물론 그렇다고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을 하지 안 했을 거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모략꾼인 한명회와 만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구나. 이미 섭정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명분 없이 왕자리까지 차지하기가 쉽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물론 아빠의 개인적인 생각이란다.

수양대군은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승하한 문종에 섭섭해 했어. 그걸 눈치 챈 권람이라는 자가 접근하여 수양대군을 떠보기 시작했단다. 에둘러 이야기했지만 결국에는 정권을 차지하라는 거였어. 그러면서 권람은 개성에서 경복궁직이라는 한직에 있는 한명회를 추천해 주었단다. 한명회가 한직에 있었지만 중앙정부에 진출하려는 기회를 복고 있었던 사람이었어. 수양대군 입장에서는 지방의 한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 무슨 능력이 있겠냐고 생각했는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수양대군은 한명회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단다. 수양대군은 날마다 권람, 한명회와 모임을 갖고 쑥덕쑥덕 했단다.

단종이 왕에 올랐을 때 명나라에 그 소식을 알리는 사신보을 보내야 했어. 단종은 자신의 매부, 그러니까 경혜공주의 남편 정종을 보내려고 했지만, 수양대군이 자청해서 자신이 가겠다고 했단다. 아무도 수양대군의 말을 막지 못했고, 수양대군이 명나라를 다녀왔단다. 이때 수행하는 사람은 집현전 학자 출신 신숙주도 있었는데, 수양대군이 이때 신숙주를 자기 편으로 포섭한 것이 아닐까 싶구나. 명나라를 다녀 온 후 수양대군은 본격적으로 준비를 했단다. 한명회는 여러 무인들을 모았어. 그리고 디데이.

 

2.

이 반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좌의정 김종서였단다. 김종서는 세종 때부터 북벌을 정벌한 장군이자 문신이기도 한 사람이었어.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인데 무력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힘으로 거사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김종서를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결사의 날, 수양대군의 측근들도 의견이 분분하여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 수양대군은 직접 무리들을 데리고 김종서를 찾아갔단다. 사전에 한명회가 조언해준 대로 김종서의 아들 김승규를 자리 비우게 한 다음, 데리고 간 무리들로 하여금 김종서를 철퇴로 내리쳤단다. 김종서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뒤늦게 아들 김승규가 와서 저항했지만, 김승규도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곧바로 단종을 찾아갔어.

수양대군은 모든 일은 하룻밤 사이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어.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전두환의 1212군사구데타가 생각나는구나. 몇 달 전에 본 영화 <서울의 봄>의 대사도 생각났어.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란이라고 했던 말.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는 것 같구나.

단종을 찾아온 수양대군이 말하기를, 영의정 황보인과 김종서가 안평대군을 왕위를 세우려는 반란을 도모했다고 이야기했어. 그래서 그 반란 사건을 진압하고 있다고 했어. 단종의 처지에서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단다. 사전에 작성된 한명회의 살생부에 적혀 있던 사람들이 궁으로 소환되었어. 그들은 왕의 부름이 있으니 궁 안에 오게 된 것인데 이유도 제대로 듣지 않고 다 죽고 말았단다. 그 중에는 영의정이었던 황보인도 포함되어 있었어. 역사는 이것을 계유정난이라고 한단다. 나중에 너희들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을까 싶구나.

다음날 수양대군과 수양대군의 측근들이 권력을 대부분 차지했단다. 수양대군은 영의정이 되었고, 좌의정은 정인지, 우의정은 한확이 되었어. 그 외 도승지 최항, 대사간 이계전, 좌찬성 신숙주 등 중요 요직을 모두 수양대군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었어. 안평대군도 이 반란에 연루되었다고 하면서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단다. 안평대군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을 것 같구나.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반란의 주동자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야. 이후 정인지와 신숙주는 안평대군을 계속 죽이라고 상소를 올렸지만 단종은 계속 거절했단다. 단종도 어리기는 하지만 안평대군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거야.

….

한편, 수양대군의 역모 사건을 제대로 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어. 도총관 성승의 집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였단다. 성승의 아들 성삼문을 비롯하여 박팽년, 이개, 하위지, 김질 등이 모여서 안평대군을 살릴 방법과 수양대군을 처단하기 위한 회의를 했어. 그들은 안평대군의 무죄를 주장한 글을 가지고 좌참판 허후를 찾아갔단다. 허후는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 중에 수양대군에 포섭되지 않은 사람이었어. 허후도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다음날 정인지를 고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이미 수양대권이 정권을 다 잡고 있었어. 정인지는 계속 안평대군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상신을 올렸고, 단종은 계속 거절했어. 결국 수양대군이 직접 사약을 내렸고, 동생 안평대군을 그렇게 죽고 말았단다.

 

3.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은 지 2년이 되었어. 단종도 즉위한지 3년째가 시작되었어. 1455년이었지. 이제 슬슬 다음 단계를 시작하려고 했어. 단종이 나이를 더 먹게 되면 왕권을 강화할 수도 있으니 그 전에 수양대군을 왕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말이야. 정인지는 단종에게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선위하라고 매일같이 상소를 올렸어. 단종이 꿈쩍하지 않자 신숙주도 동참했어. 이 사실을 알게 된 금성대군은 형 수양대군을 찾아가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단종이 왕위를 내려올 명분은 지금 하나도 없었거든. 하지만 정인지 일당은 단종에게 계속 선위할 것을 요청했어

결국 단종이 지고 말았단다. 이왕 선위를 하는 것 지긋지긋한 정인지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우의정 한확을 따로 불러 자신이 선위하겠다고 했어. 선위는 보통 왕이 아들이나 손자한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인데 왕이 삼촌에게 세대를 거슬러 선위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일이었는데 그 일이 일어난 것이란다. 말이 선위이지 그냥 왕자리를 빼앗은 거야. 단종은 이제 상왕이 되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겨 지냈단다.

이제 수양대군은 그렇게 바랬던 왕이 되었단다. 염치 없이 왕이 되었지만 잘 해보겠다고 자신의 측근들뿐만 아니라 반대세력도 포섭하려고 하였지만, 잘 안되었단다. 이번에도 명나라에 왕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하는데,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명분이 없었단다. 단종이 어리고 나라를 다스리는데 어려움이 있어 숙부인 수양대군이 도와주고 있지만 여전히 반란을 도모하는 잔당들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어서 단종 자신은 역량이 부족하여 왕을 숙부에게 선위하겠다는 내용의 가짜 서신을 작성했다는구나.

수양대군은 왕이고 상왕은 단종이니, 단종이 조카이긴 하지만 왕의 족보로 봐서는 단종이 위가 되는 것이란다. 그래서 수양대군은 상왕이긴 단종에게 인사를 하러 가게 되는데 단종은 이를 거절했다는구나. 정인지의 악랄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단종이 살아 있는 한 언제나 역모의 불씨가 있으니 죽이거나 군으로 강등시켜 시골로 보내라고 했어. 수양대군은 단종을 불쌍히 여기는 민심을 알고 있어서 단종을 죽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어.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이 궁 안에 외진 곳으로 보내는 것이었단다.

의식 있는 신하들 사이에서 단종을 다시 왕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단다. 성상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 하위지, 성승, 박쟁, 김질, 유성원 등이 그들이란다. 거의 성공할 뻔한 이 거사는 약간의 우유부단함과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이 실패하고 말았어. 결정적으로 김질의 배신으로 거사의 계획이 수양대군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지. 실패 소식을 들은 유성원은 자살을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잡혀 들어가 처참하게 사형당하고 만단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 중에 성상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서우언, 유응부를 사육신(死六臣)이라고 부른단다. 그들은 죽기 전까지 시조를 읊으면서 기개를 굽히지 않았단다.

=======================

(470-471)

삼문은 붓을 들어,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하는 단가 한 편을 지어 쓰고, 이개도 붓을 들어,

 

가마귀 눈비 맞아 흰 듯 검노매라

야광 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하였고, 박팽년은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腔)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며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임마다 좇을 건가

 

하였다.

=======================

….

이들의 단종복위 실패 후에도 단종의 장인어른인 송현수에 의해 한번 더 복위 시도가 있었지만 이번에도 실패를 했단다. 수양대군은 단종이 궁 안에 있는 동안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보냈단다. 청령포는 우리도 가 본적이 있는데 기억나니? 청령포는 한쪽은 높은 절벽이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그런 곳이었단다. 유배를 갔으니 그 다음 단계는 안 봐도 뻔한 것이었어. 사약을 내리는 것이었지.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반란을 일으키려다 실패하고 마는데 이 일로 단종에게도 사약이 내려지게 된단다. 그렇게 17살 짧은 삶을 마감하고 만단다.

할아버지가 세종이었는데, 이렇게 불우한 삶을 마감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성군인 세종에서 어떻게 수양대군이 나올 수 있냐고 하는 있지만, 덧붙여 수양대군의 할아버지가 이방원이었다는 사실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단다. 이방원만큼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동생들을 죽이고 조카까지 죽인 수양대군 세조…. 마음 편히 왕노릇을 했을지 모르겠구나.

….

소설을 그렇게 끝이 났단다. 대부분의 내용을 알고 있어서 극적인 장면은 없었지만 구성이나 재미 면에서는 나쁘지 않았단다. 단지 지은이가 변절의 아이콘 이광수였다는 것. 소설 속에서 변절한 신숙주를 엄청 까곤 했는데, 정작 자신이 변절의 아이콘이 되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PS,

책의 첫 문장: 누구보다 조선을 사랑하고 한글과 음악, 시계로 유명했던 세종대왕 치세 23(1441) 7 23, 경복궁 안 자선당(資善堂)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책의 끝 문장: 밤에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시체를 건져 어머니 위하여 짜두었던 관에 부중에서 북으로 5리 되는 곳에 평토장을 하고 돌을 얹어 표하여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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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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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해줄 책은 아빠 친구가 추천한 책으로 <브릿마리 여기 있다>라는 책이란다. 이 책은 <오베라는 남자>로 빅히트를 친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스웨덴 작가가 쓴 소설로 아빠도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단다. 아빠도 오래 전에 <오베라는 남자>를 읽었는데, 그 다음 작품들까지 읽어보고 싶은 정도의 책은 아니었단다. 책은 늘 취향이니까그런데 아빠 친구가 <브릿마리 여기 있다>라는 책이 재미있다고 추천을 해서 이제서야 책소개를 읽어보니 가볍게 읽으면서도 힐링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인 것 같아서 읽었단다.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브릿마리가 주인공이란다. 그런데 브릿마리는 지은이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라는 책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람이라고 하더구나. 그 소설에서는 밉상 캐릭터로 등장했는데, 그런 브릿마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고 해서 옮긴이는 놀랐다고 하더구나. 아빠는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읽지 않아서 그 소설 속에서 브릿마리의 캐릭터가 어떤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 읽은 소설 <브릿마리 여기 있다>의 앞부분을 읽다 보면 브릿마리가 왜 밉상이라고 생각했는지 알 것 같았어.

.

1.

63살의 브릿마리는 남의 평판을 무척 중요시하고 결벽증이 있다고 할 만큼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모든 것은 정리가 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브릿마리가 평생 집안일만 하다가 63살이 되어서야 일자리를 구하려고 고용센터를 찾아갔단다. 왜 갑자기 일자리를 찾으려고 했냐면 말이야. 남편이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가서 브릿마리는 집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는데, 혼자 지내다가 죽으면 썩어서 냄새가 난 상태에서 발견될까 봐 취직을 하려고 것이래. 취직 상태에서 죽게 되면 출근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집에 찾아 올 테고 그러면 냄새 나기 전에 발견될 것이라는 거지.

이 정도로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사는 사람이야. 고용 센터의 아가씨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가씨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적하면서 교양인이 갖추어야 하는 덕목들을 이야기해주는데, 그야말로 진상 고객과 같은 행동을 했단다. 고용센터의 아가씨가 참 착하기도 하지, 그걸 다 받아 주었어. 브릿마리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었단다. 아마도 브릿마리가 그런 성격을 갖게 된 것도 다 그 아픈 과거 때문일 거야. 어렸을 때 언니 잉그리드가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어. 엄마가 브릿마리를 차갑게 대했고, 엄마한테 잘 보이기 위해 청소를 열심히 하게 된 것이 결벽 수준까지 된 것이었단다.

….

아무튼 브릿마리는 보르그의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관리인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단다. 보르그는 가상의 시골 마을인데, 브릿마리는 취직을 해서 처음 가보는 마을이었단다. 보르그는 경제위기와 수익성 악화로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았단다. 그래서 보건소 겸 우체국 겸 피자가게 겸 슈퍼마켓 겸 자동자정비소를 한 곳에 다 하고 있었어. 브릿마리는 보르그를 방문하여 만난 사람이 바로 보건소 겸 우체국 겸 피자가게 겸 슈퍼마켓 겸 자동자정비소를 운영하는, 휠체어를 탄 미지의 인물이었단다.

브릿마리는 잘 곳이 없어서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지냈어.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관리로 있으면서 동네 어린이 축구단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어. 그 중에 베라, 오마르, 새미 남매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엄마가 해외로 돈 벌러 갔고 아빠는 도망을 가서 지금은 아이들끼리 살고 있다고 했어.

까칠하긴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브릿마리는 그 아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어. 축구단 아이들은 운동장도 없이 주차장에서 연습을 했단다. 그리고 그들의 코치가 한 달 전에 죽어서 지금은 코치도 없었어. 하지만 아이들은 참 열심히 했단다. 아이들이 응원하는 축구팀의 축구 중계가 있는 날이면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모여서 같이 봤단다.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브릿마리는 마음에 내키기 않았지만, 허락을 해주었단다. 그리고 아이들의 지저분한 유니폼을 보고는 다 걷어다가 세탁도 해주었어. 지저분한 꼴을 못 보는 그런 성격이잖니. 아이들은 브릿마리에서 축구단 코치를 해달라고 했어. 시합을 나가기 위해서는 코치가 필요한데, 자신들의 코치는 한 달 전에 돌아가시고 말았대. 브릿마리는 알겠다고 했어. 이름만 올려 놓은 코치였지만, 브릿마리에게 대충대충은 없었어. 축구에 대해 배우려고 했단다.

보르그 마을에 경찰인 스벤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스벤은 이혼남인데, 브릿마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 가끔씩 브릿마리에 찾아오곤 했단다. 그런 스벤이 브릿마리도 싫진 않았어.

….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브릿마리는 뱅크라는 사람의 집에 머물기로 했어. 뱅크도 불쌍한 사람이란다. 뱅크는 전직 여자축구 국가대표 출신이었어. 그러나 갑자기 병이 생겨서 시력을 거의 잃어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어. 아주 가까운 것만 보여서 거의 장님 수준이었어. 젊은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 성격도 무척 날카로워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까칠했어. 그런 뱅크의 빈집에서 브릿마리가 함께 살게 되었단다.

 

2.

어느날 시에서 나와서 축구팀 참가 신청을 한 것을 가지고 왔어. 축구팀 코치가 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브릿마리는 자격증이 없어서 아이들 축구팀이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는 거야. 이걸 듣고 있던 뱅크가 자신이 자격증이 있으니 코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적으라고 했단다. 아빠가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음지에 남들과 벽을 쌓고 살던 뱅크가 다시 무대로 나오게 된 것도 브릿마리의 영향이었어. 이것뿐만 아니라 브릿마리는 보르그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단다. 여전히 까칠하고 결벽증이 있긴 하지만 말이야.

브릿마리와 스벤의 사이가 점점 좋아지고 있는 와중에 브릿마리의 남편 켄트가 찾아왔어. 켄트는 자신이 잘못했다면서 같이 집으로 가자고 했어. 브릿마리는 켄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 브릿마리가 다시 집으로 간다고 소문이 퍼지자, 아이들이 싫어했단다. 특히 베가가 싫어해서 대놓고 브릿마리에게 차갑게 굴었어. 브릿마리는 축구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머무르겠다고 했단다.

브릿마리는 아이들끼리 생활하는 베가, 오마르, 새미와 친했어. 그 아이들 밥도 자주 챙겨주곤 했어., 그렇게 좀더 사이가 친해지자 새미는 숨겨두었던 이야기를 했어. 사실 엄마가 외국으로 돈 벌러 간 것이 아니고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이 사실을 이야기하면 복지부에서 아이들을 데려가게 되어 보르그 사람들이 다 같이 그 숨기고 있었고, 새미도 자신이 동생들을 충분히 돌볼 수 있다고 했어. 충분히 그렇게 하고 있었고 말이야.

그런데 새미의 친구 중에 질 나쁜 친구가 한 명 있었어. 사람들은 그를 사이코라고 했어. 사이코가 사고뭉치인 것은 맞지만, 폭행을 휘두르던 아버지로부터 같이 맞서 싸워준 이후로 새미는 사이코와 친구가 되었단다. 그리고 새미는 사이코가 나쁜 짓을 해도 그와 의리를 지켰지.

대망의 축구 대회가 열렸어. 운동장도 아닌 주차장에서 연습했던 보르그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도 최선을 다하고 마을 사람들도 최선을 다해서 응원을 했단다. 늘 좋은 일만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니새미가 난처한 상황에 빠진 사이코를 도와주러 갔다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보르그 마을은 슬픔에 빠졌어. 새미의 동생 베라와 오마르는 더 이상 그들끼리 살 수 없었어. 복지부에서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단다.

그리고 브릿마리도 보르그를 떠나기로 했단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고, 이젠 더 성장할 것도 없는 63살의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브릿마리는 보르그에서 생활한 시간은 값진 시간들이었고 그를 더 성장하게 하는 그런 시간들이었단다. 브릿마리는 자신만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새로운 길을 떠나면서 소설은 끝을 맺었단다.

….

아빠가 짧게 이야기한다고 중간중간 이야기들을 생략을 많이 했는데, 이 소설은 위트 넘치고 마음씨 따뜻한 등장인물들이 가득하여 읽는 동안 힐링이 되는 그런 소설이었단다. 브릿마리의 새로운 앞날을 응원하며 오늘은 여기서 마칠게.


PS,

책의 첫 문장: 포크.

책의 끝 문장: 모두 브릿마리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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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작곡을 시작한 이유가 뭐냐면, 학교에서 힘든 하루를 보냈거나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마다 그냥 혼자 이런 말을 하게 됐어요. “괜찮아, 언젠가 이걸로 곡을 쓸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스스로 뇌를 훈련시켰던 것 같아요. “아파? 아픔에 대해서 노래를 쓰자. 뭐야, 주제 못 할 감정? 그걸로 노래를 만들자.”

 

(39)

음반 계약을 따내려고 할 때는 절대로 제 목소리는 유명한 누구누구와 꼭 같아요라는 말을 해서는 안 돼요. 절대로 레이블에 그 말은 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쪽에서는 글쎄, , 우리한테는 어차피 그런 거물 아티스트가 많이 있어요-그러니까 그쪽과 계약할 필요는 없겠네요라고 할 거예요. 젊은 아티스트라면, 독창적인 소리를 내려고 노력해야 해요. 누구와도 닮지 않은 소리 말이에요.

 

(41)

제 나이를 홍보 수단으로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걸 제가 남보다 뛰어난 점이라고 내놓고 싶지 않았죠. 홍보는 음악에 맡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열일곱 살이라는 사실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헤드라인에 오르기를 바란 적도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음악이 승리를 따내길 원했거든요. 실상은 열일곱 살이라는 게 장애물에서 가까웠어요. 라디오방송국에, 또 그 라디오를 듣는 중년 청취자들에게 실력을 입증해야 했거든요.

 

(51)

같이 공연하는 사람들 모두의 말을 듣는다는 건 정말로 근사한 일이에요.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데, 가끔은 웃기는 이야기도 나오고, 최근 동기부여가 된 게 뭔지 얘기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지금 내가 같이 공연하는 이 사람들이 평생 바로 이 순간을 꿈꾸며 살아왔다는 실감이 덮치거든요. 제가 열두 살 때 곡을 쓰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 댄서들도 네 살 때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일평생 춤만 추고 살고 싶다는 결심을 했던 거예요. 그리고 지금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거고요.

 

(61)

저는 생각이 너무 앞서 나가곤 해요. 이러는 거예요. “서른 살이 되면 뭘 하지?” 하지만 그건 알아낼 길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도저히 답이 없는 공식을 풀겠다고 끝도 없이 속을 끓이고 있는 거죠. 저 자신을 과도하게 분석하다 못해 결국 커다란 걱정 꾸러미가 되어버리죠.

 

(65)

저는 구제 불능 낭만주의자로 분류될 거라 생각하는데, 여러분도 그럴 것 같아요. 여기 계시잖아요. 우리가 맞닥뜨리는 난제, 그러니까 답이 없는 낭만주의자들의 난제는 뭐냐 하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안녕, 하고 첫인사를 할 때는 마술에 걸린 것 같아서 언젠가 그 첫인사가 작별 인사가 되리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누군가와 첫 키스가 마법처럼 근사할 때도 마지막 키스로 변할 날이 올 거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고요.

 

(82)

할 가치가 있는 사랑이라면, 싸워서 지켜야 할 만큼 좋으면 그러면 그게 올바른 사랑임을 알죠.

 

(89)

제 노래에 영감을 주는 건 실연이 아니에요. 제 노래에 영감을 주는 건 사랑도 아니에요. 제 노래에 영감을 주는 건 제 삶에 들어오는 고유한 개인이에요. 저에게 정말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도 왠지 그에 대해 노래 한 곡조차 쓸 수 없던 적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제 인생에 2주일만 들어왔다 나간 사람을 만나고 앨범 한 장을 통째로 쓸 수도 있거든요.

 

(127)

정말로 그냥 제 삶에 대해서만 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을 내놓으면 그 노래가 바로 다른 여자아이의 방에서 울려 퍼지고 제가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차 안에서 재생된다는 사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고 나니까…… 인간으로서 우리가 정말 원하는 건 타인과의 연결이라는 실감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음악이 바로 그런 궁극적 연결이라고 생각해요. 연결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제든 음악을 틀면 같은 일을 겪은 누군가가 있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164)

제가 잘못한 일이 있거나 저한테 문제가 있을 때 그걸 찾아내면 얼마나 비싼 값으로 팔릴까, 그 생각을 하면 조금 무서워져요. 그러니까 어떤 순간에는 정말로 겁이 날 때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제 호텔방 창문으로 누가 사진으로 찍으려 하지 않을까 싶은 그럴 때요. 방에 들어가면 무조건 블라인드를 치고 살아야 해요. 그런 부분이 가끔 실감나서 울컥할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날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잡지 <TMZ>의 누군가가 제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제가 뭘 잘못 했나 찾고 있을 거예요.

 

(178)

예전에는 공공연하게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는 일은 삼갔어요. 그렇지만 지난 2년간 제 인생과 세계에 있었던 여러 일들을 거치고 나서 지금은 생각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저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인권을 옹호하는 후보에게 제 표를 던질 거예요. 이 나라의 모든 국민이 인권을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LGBTQ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믿고, 성적 지향이나 젠더를 근거로 어떤 형태의 차별도 가해져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우리 눈앞에서 이 나라의 유색인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체계적 인종주의는 소름끼치고, 역겨우며, 사방에서 횡행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182)

언론에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낱낱이 꼬투리 잡히거나, 노화의 흔적이 보인다고 흠잡히거나, 노화를 막으려 한다고 욕을 먹지 않은 여성 음악인을 찾기 어려워요. 음악인으로 늙어가는 건 여자한테 훨씬 더 어려운 일처럼 보여요. 제 선택으로 최대한 우아하게 나이 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죠.

 

(195)

삶을 살아가며 모든 인간과 사물을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려는 욕구가 우리에게 있지만, 본질적으로 인간은 단순화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냥 선하거나 그냥 악하기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최악의 자아와 최고의 자아, 깊디깊은 비밀과 디너파티에서 즐겨 떠벌리는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짜인 모자이크입니다.

 

(198)

저에게 아름다움은 진지함이에요. 아름다움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해요. 외모와 무관하게 너무 웃겨서 아름다운 사람도 있단 말이에요. 남을 웃기는 일에 진심이라서요. 아니면 정말로 감정적이라서, 우울하고 사려 깊고 금욕적이라서, 그런 자기 자신에게 진지해서 아름다운 사람도 있어요. 군중 속 어떤 사람이 너무 행복해서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면, 빛나는 진심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는 거거든요.

 

(199)

두려울 게 없다는 건, 인생이 예측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는 뜻이에요. 대처하는 방식이 모든 걸 좌우해요. 나에게 던져지는 것과 주어진 것과 빼앗긴 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해요. 그리고 두려울 게 없다는 말은 겁을 모른다거나 상처로부터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거나 하는 뜻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두려울 게 없다는 건 무서운 것이 있더라도 꿋꿋이 자기 삶을 살아내고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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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 세계 문명을 단숨에 독파하는 역사 이야기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조 지무쇼 엮음, 최미숙 옮김, 진노 마사후미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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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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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알라딘 북플에서 어떤 분이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으로 하루에 하나씩 식구들과 함께 낭독을 한다는 글을 보았어. 식구들과 함께 책을 낭독하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분이 소개한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가 하루에 한 도시씩 읽는데 참 적합한 책이라는 생각했어. 그래서 이 책을 구입했지. 그런데 너희들도 바쁘고, 아빠도 회사에 늦게 오는 경우가 잦다 보니.. 이 책을 함께 읽을 시간을 만들기 쉽지 않더구나.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일단 아빠가 혼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번에 읽었단다.

이 책의 지은이는 조 지무쇼라고 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니 지은이가 아니고 엮은이로 되어 있구나. 조 지무쇼는 일본에서 쉽게, 재미있게, 정확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85년에 창립한 기획, 편집 집단이라고 하는구나. 집단 지성이 모여서 활동을 하고 책도 내는 그런 집단인 것 같구나.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는 책제목에서 이미 대략 어떤 내용인지 알겠지? 세계에 오래된 도시 30개를 선정하고 그 도시에 얽힌 세계사를 이야기해주는 거야. 한 권에 30개 도시를 다 싣다 보니, 내용이 깊지 않은 것이 다소 아쉽더구나. 30개 도시 중에 아빠가 가 본 도시들도 몇 있지만, 안 가본 도시들이 더 많더구나. 그리고 어떤 도시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도시들도 있었어. 또 지금은 사라진 도시들도 소개를 해주었단다.

30개 도시를 한번 나열해 보자면바빌론,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테오티우아칸, 로마, 콘스탄티노플, 장안, 바그다드, 교토, 사마르칸트, 앙코르, 튀니스, 베이징, 믈라카, 모스크바, 이스파한, 베네치아, 델리,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 암스테르담, 런던, 뉴욕, , 리우데자네이루, 시드니, 싱가포르, 상하이, 두바이.. 이렇게 30개 도시란다. 우리나라의 도시가 없는 것이 다소 아쉽더구나. 이 책을 엮은이들이 주관적으로 선정한 것이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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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도시를 모두 소개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고, 이미 다른 여행 에세이나 세계사 책 등에서 언급된 도시들도 많이 있으니 오늘은 아빠에게 낯선 도시 몇몇을 아주 간단히 이야기해볼게. 그런데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책에서 각 도시별로 이야기한 내용이 많지 않아서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 수준일 것 같구나.

먼저 이름초자 처음 들어본 테오티우아칸이란 도시..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에 위치해 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고 도시 기능은 하지 않아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 고대 도시라고 하는구나. 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고대 도시로 거대한 피라미드가 세워지고 신전도 있는 등 천문학 지식을 갖춘 흔적이 있다는구나. 그런데 8세기 경에 모든 자취가 사라졌는데 그 이유도 모른다고 하더구나.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 살았고, 어떻게 살았고, 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그럼 문명 도시라고 하더구나. 혹시 외계인들이 잠시 살다 갔나?

….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라는 도시도 처음 들어본 도시란다. 이 도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야. 우즈베키스탄이라고 하면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나라로, 사마르칸트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주요 요충지로 무역 중계지로 번성했다고 하더구나. 중국의 당나라와 이슬람 국가의 아바스 왕조와 관계를 맺었대이 도시가 가장 번성한 시기는 15세기 티무르 왕조 시대로 인도와 터키까지 영토를 확장했다는구나. 그러면서 이슬람 중심지가 되어 여러 이슬람 관련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대.

믈라카라는 도시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도시고 이 책에서 소개하기로는 세계유산과 일상이 혼재하는 오래된 항구도시라고 하는구나. 옛날에 말레이반도 대부분을 차지한 믈라카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던 믈라카는 동서해상무역의 중계지로 발생했대. 오늘날은 전성기 때 만들어진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역사유물 등으로 관광도시로 인기가 있다고 하더구나.

이스파한이라는 도시는 이란 소속의 도시로 오랫동안 페르시아 문화를 지켜온 곳이란다. 16세기에서 17세기 중동의 대부분의 지역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이란의 사파비 왕조는 이스파한에서 독자적인 페르시아 문화를 지켜냈다고 하는구나. 이스파한에는 넓은 광장이 있는데 이곳의 바자르를 통해 물물거래와 상업이 번성하게 이루어졌고, 유럽과 인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하는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신비로운 분위기의 고도로 유명해진 이스파한은 많은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했대. 나중에는 왕의 광장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는구나. 후에 왕의 광장은 이맘광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대.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로, ‘1월의 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구나. 1502 1월 대서양을 건너온 포르투갈의 탐험가 가스파트 지 레모스 일행이 그곳을 강의 하구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대. 브라질이라고 하면 삼바가 떠오르는데 리우데자네이루는 그 유명한 카니발 축제로 유명하기도 하다. 해변이 무척 아름답고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거대한 그리스도 동상도 있단다. 16세기부터 항구로 발전했는데 남아메리카에서 생산된 금은과 커피를 이곳을 통해 수출했다고 하는구나. 예전에는 이곳이 수도였으나 인구과밀 문제 등으로 계획도시를 만들어 수도를 이전했는데 그곳이 브라질리아란다. 브라질의 수도는 브라질리아이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 중요 국제 행사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만큼 브라질 제 1의 도시라도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구나. …

이렇게 이 책에서 소개한 몇몇 도시를 소개해 보았단다. 이 책은 쉽고 요약해서 도시를 소개해서 너희들도 쉽게 읽을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애초의 목표처럼 낭독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너희들도 이 책을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어. 너희들도 가본 도시들은 읽을 때 좀더 감회가 다를 것 같고, 대부분 가보지 못한 도시들을 읽을 때는 가 보고 싶은 도시가 있을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할게.

 

PS,

책의 첫 문장: 구글 지도 등을 통해 이라크의 항공사진을 보면 국토 대부분이 사막지대인데,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군데군데 녹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의 끝 문장: 오늘날 두바이에서 이와 같은 도시개발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노동력과 더불어, 강력한 권한을 가진 통치자의 철저한 준비성과 지도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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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8-20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계사는 테마별로 가는 게 정리가 잘 되더라고요~‘도시‘로 나눈 세계사라니, 관심 갑니다~

bookholic 2024-08-20 23:27   좋아요 0 | URL
네, 도시에 깃든 역사를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 도시에 여행가기 전에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4-08-27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리가 잘 되어 있어요.
조 지무쇼 저자의 책이 몇권 더 있는데,,, 쉽게 간략하게 정리해서 전달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것 같아요.

bookholic 2024-08-27 18:40   좋아요 1 | URL
아이고,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님 덕분에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 님께서 아이들과 도시 하나씩 낭독하는 것은 실패했지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