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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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 두 편을 읽었단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된 책으로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 두 편이 실려 있단다. 아빠가 슈테판 츠바이크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그가 쓴 책들을 하나 둘 모았는데 그 중에 하나란다. 이야기꾼 슈테판 츠바이크이 진면목을 보여주는, 짧지만 강렬한 두 작품이었단다.

 

1.

첫 번째 이야기는 <체스 이야기>란다. 체스는 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다루는 단골 소재란다. 아빠도 체스를 다룬 여러 작품들을 보았는데, 비교적 최근에 본 것은 드라마 <퀸즈 갬빗>이 생각하는구나. 이번에 읽은 <체스이야기>를 읽을 때 그 드라마가 간혹 생각이 나더구나.

체스를 다룬 여러 작품들이 그러듯이 이 작품에는 천재 체스 기사가 나온단다. 남슬라브의 작은 도시에 뱃사공이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아가 된 미르코 첸토비치라는 소년이 있었어. 어떤 신부님이 첸토비치를 양자로 거둬들여 보살펴 주었지. 그 소년이 말을 어눌하게 하고 좀 모자라 보였단다. 그런데 신부님이 다른 사람과 체스를 두는 것을 곁눈질로 보고 배웠는데 그 실력이 정말 뛰어났어. 당시 첸토비치는 열다섯이었어. 신부님은 첸토비치의 체스에 대한 천부적 소질을 바로 알아보고 그에세 체스를 가르쳐주었는데 곧바로 남슬라브 지역의 모든 체스 고수들을 꺾으면서 유명해졌단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이 되었단다.

뉴욕에서 경기를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기 위에 배를 탔단다. 시대적 배경은 1940년대 초반이라서 비행기가 아니고 배를 타고 가는 그런 시절이란다. 이 배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도 같이 타게 되었단다. ‘는 호기심에 많은 사람으로 그가 탄 배에 체스 세계 챔피언이 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와 체스를 두고 싶어했단다. 하지만 그와 체스를 두려면 큰 돈이 필요했어. 탑승객 중에 매코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었어. ‘는 매코너에게 첸토비치 이야기를 하자, 돈 많은 매코너는 바로 첸토비치를 찾아가 체스 경기를 성사시켰단다. 아무래도 첸토비치는 세계챔피언이니, 매코너는 혼자가 아닌 팀을 이루어 하기로 했어. 물론 도 참가를 했지. 그렇게 첸토비치 vs 매코너 팀의 체스 경기가 열렸는데, 1차전은 첸토비치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그리고 이어진 2차전에서 역시 매코너 팀이 불리하게 흘러갔는데, 구경을 하던 B박사라는 사람이 훈수를 두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단다.

갑자기 나타난 B박사라는 사람에 관심이 쏠렸어. B박사는 지난 30년간 체스를 둔 적도 없다고 했어. 그런 사람이 어떻게 세계챔피언을 상대로 무승부를 할 수 있었을까. ‘ B박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 B박사는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이었어. B박사는 유대인으로 게슈타포에 의해 감옥에 1년간 갇혀 있었다고 했어. 그 고립된 생활은 B박사에는 큰 고통이었어. 미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한계가 있었어. 감금생활은 그를 미치게 하기 일보직전이었지. 어느날 간수의 대기실에 있게 되었는데, 간수의 외투 주머니에 있는 책을 한 권 훔쳤어. 그 책은 체스 게임을 기록한 책이었단다. 체스에 관심이 없던 B박사는 그 책이 체스에 관한 책이란 걸 알고 크게 낙심했어. B박사는 그 책이라도 봐야겠다며, 그 책에 나와 있는 체스 게임들을 모두 통달했단다. 그리고 그 이후는 혼자 상상으로 체스를 둔 거야. 그렇게 감금해있으면 머릿속에 온통 체스 생각만 해서 체스중독증에 걸린 것 같았어. 신경과민으로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서 병원까지 갔단다. 그런 연유로 B박사가 지난 30년간 체스를 두지 않았는데도, 체스챔피언과 대등한 경기를 했던 것이란다.

이제 다시 첸토비치와 B박사와 일대일 체스 경기가 펼쳤는데 그 경기에서 B박사가 이겼단다. B박사는 흥분하기 시작했어. 첸토비치와 B박사가 다시 체스 경기를 했는데, B박사의 증상을 유심히 보던 B박사를 설득하여 게임을 포기하게 했단다. 왜냐하면 체스중독 증세를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B박사를 말리지 않으면 신경 과민 증상으로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날 것 같았어. 그렇게 B박사의 포기로 첸토비치의 승리로 끝이 났단다. <체스이야기>는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B박사의 이야기가 체스 기술을 터득하는 방법이 오늘날 인공지능이 기술을 터득하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인 것 같구나. 그리고 B박사의 그 뒷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야기가 그렇게 끝이 나서 다소 아쉬웠단다.

이 작품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죽기 전 발표한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B박사의 뒷이야기도 없겠구나. 아빠의 헛된 바람이겠지만, 이제 와서 뒤늦게 그의 유고 중에 B박사의 뒷이야기가 발견되었으면 좋겠구나.^^

 

2.

두 번째 작품 <낯선 여인의 편지>는 어떤 여인이 유명 소설가 R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단다. 시작부분은 그 소설가의 열렬 팬의 팬심 담긴 편지인가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그 소설가를 욕하게 되더구나. 유명 소설가 R은 마흔한 살이란다. 마흔한 살 생일날 긴 편지 한 통을 받았단다. 무려 스물네 장이나 되었어.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에게로 시작했지.

편지 쓴 여인은 최근에 자신의 아이를 잃고 큰 슬픔에 빠졌다고 했어. 그러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어. 여인이 13살 때 빈에서 처음으로 소설가 R을 알게 되었대. 여인이 살고 있는 건물로 소설가 R이 이사를 왔던 거야. 13살이던 여인은 한 눈에 소설가 R에 사랑에 빠졌지만 속으로만 좋아할 수밖에 없었어. R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렜고, 그의 발자국 소리도 사랑했고,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의 재혼으로 그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여인은 심한 좌절감과 상실감에 빠졌어. 소설가 R과 멀리 떨어져 인스부르크로 가야 했거든. 18살이 되었을 때 여인은 독립하겠다면서 빈으로 돌아왔어. 빈에 있는 친척집에 머무르면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독립은 핑계였고, 소설가 R을 보기 위해서 빈에 온 것이었어. 매일 그의 집 앞에서 창문으로 바라보았어. 우연히 그와 마주치기도 했는데, 소설가 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어. 몇 번을 마주치고서야 소설가 R은 여인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단다. 여인은 흔쾌히 저녁을 함께 하고, 그 이후 매일 만나 사랑을 나누었단다. 여인의 소망이 드디어 이루어진 거야. ‘매일만났다고 했지만, 3 일이 전부였어.

3일 뒤, 소설가 R은 여행을 간다면서 당분가 연락하지 못한다고 했어. 여행을 다녀온 후에 연락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끝이었단다. 그런데 그 3일간의 사랑으로 인해 여인은 임신을 하게 되었단다. 소설가 R을 다시 찾아가보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버림받고 아이를 지우라고 할까 봐 여인은 혼자 아이를 낳았단다. 돈도 없어서 보호 시설에서 아이를 낳았어. 편지 첫 부분에서 여인의 죽은 아이가 이 아이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단다. 편지를 읽는 소설가 R도 그렇게 느꼈겠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까? 여인은 아이를 낳고 가난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잘 지냈단다. 여인의 외모가 뛰어나서 여러 번 청혼을 받았지만 다 거절했단다. 혹시나 소설가 R에게 연락이 올까 봐 말이야.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단다.

어느날 오랜 만에 친구와 클럽에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소설가 R을 다시 만났단다. 그런데 소설가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심지어 여인을 꼬셨단다. 그렇게 여인과 소설가 R은 다시 하룻밤을 보냈는데, 여전히 소설가 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단다. 소설가 R이 얼마나 많은 여인과 이런 짓을 했는지 알겠구나. 그러니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지. 이번에도 소설가 R은 곧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했어. 거기에 여인에게 돈까지 주어 모욕을 안겨 주었단다. 이런 못된 놈. 여인은 가난하지만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 11살이던 아이가 그만 죽고 말았단다.

이제 여인의 삶의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어. 소설가 R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이도 죽고 말았지. 여인은 이제 자신도 죽을 거라고 했어. 매년 소설가 R에게 생일마다 보낸 하얀 장미를 보낸 것도 자신이라고 밝히고, 이젠 못 보내니 스스로 장미를 사라고 했단다. 그렇게 편지는 마무리되었단다.

이 소설은 독자가 소설가 R에 감정이입하여 자신이 편지를 받은 것처럼 읽으면 더 실감날 것 같더구나. 그렇게 감정이입되어 읽다가 죄책감과 후회와 미안함이 가득 들었다면, (어찌 보면 그게 당연한 감정이겠지만) 소설가 R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놈들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려고 할 거야.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합리화를 하겠지. 아마 이 편지도 다 읽기도 전에 불 속에 던졌을 수도 있어. 소설가 R은 그런 사람이야.

, 오늘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이 남긴 <체스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라는 책 이야기를 해보았단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은 늘 옳다는 것을 다시 확인 확인하면서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자정 무렵,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출항 예정인 대형 여객선 위는 출발 직전 흔히 볼 수 있는 일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여인을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을 생각하듯 육체 없이도 정열적으로 생각했다.


체스는 하늘과 땅 사이 무함마드의 관처럼 이 범주들 사이를 부유하는 학문이요 예술이며, 대립하는 모든 것들을 유일하게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즉 태곳적인 것이면서도 영원히 새로운 것이요, 그 구도가 메커니즘적이면서도 판타지를 통해서만 작동하며, 기하학적으로 일정 공간에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그 조합에서는 무제한적이고 항상 자기 발전적이며 번식력이 없다. 무(無)로 이끄는 생각, 무에 이르는 수학, 작품 없는 예술, 실체 없는 건축, 그럼에도 명백하게 그 존재 자체가 어떤 책이나 작품보다 영속적이며, 모든 민족과 모든 시대에 속하는 유일한 게임이면서도, 지루함을 죽이고 감각들을 예리하게 하며 영혼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신이 이 땅에 가져온 게임이라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이 게임에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어떤 아이들이라도 기본 규칙을 배울 수 있고, 체스에 서투른 사람이라도 누구나 자신을 게임에서 시험해볼 수 있다. - P20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에게 그 순간의 절망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요? 당신이 저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 운명을 고통스럽게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당신이 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그런 운명을 전 한평생 견뎌왔고, 그 운명과 더불어 죽게 될 테지요. 어떻게 제가 이 절망을 묘사할 수 있을까요! 보세요. 인스부르크에서 보낸 그 이 년 동안 매 순간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빈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상상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그 시절, 전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가장 행복한 순간뿐 아니라 가능한 최악의 순간까지도 꿈꾸었습니다. - P116

얼굴에 비치는 나이는 명암에 따라 묘하게 변하고, 입는 옷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체념한 이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러나 아직 소녀였던 저는 당신의 망각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끊임없이, 그리고 쉼 없이 생각하고 있으니 당신도 저를 종종 생각하고 기다려줘야 한다는 헛된 마음을 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당신에게 미미한 존재이며, 저에 대한 어떤 기억도 당신에게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면, 제가 어떻게 숨인들 쉴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이 마음속에 저를 알아볼만한 그 어떤 것도 없으며, 당신 삶의 거미줄 같은 기억 한 오라기도 저와 연결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신의 눈길 앞에서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것이 현실로 떨어지는 최초의 추락이었고, 제 운명을 예감하는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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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삼체문체 : 질량이 같거나 비슷한 물체 세 개가 상호 인력의 작용 아래 어떤 운동을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전 물리학의 중요 문제이고, 천제 운동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어 16세기 이후 계속 관심을 받았다. 오일러, 라그랑주 및 근대 이후 학자들이 삼체문제에 관한 특수해를 찾아냈다.


(297)

태양은 전파 증폭기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태양은 지구가 방출하는 무선 전파를 포함한 우주에서 온 전자기복사를 늘 받는데 어째서 그중 일부만 증폭할까? 이유는 명확했다. 에너지 거울이 반사 주파수를 선택할 수 있기도 하지만 태양 대류층의 차단 작용이 더 큰 이유였다. 표면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대류층은 복사층 위에 위치한 태양의 가장 바깥에 있는 액체층이다. 우주에서 온 전파는 우선 대류층을 통과해야 복사층의 에너지 거울에 도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증폭되어 발사될 수 있다. 이때 전파의 일률은 역치(閾値)를 초과해야 하지만 지구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무선 발사는 이 역치보다 낮다. 그러나 목성의 전자기복사는 이를 뛰어넘는다.


(352)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삶의 지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45억 달러와 다국적 석유회사를 소유했지만 그게 또 무슨 소용입니까? 인간이 멸종 위기에 빠진 생물을 구하기 위해 쏟아붓는 돈은 분명 4500억 달러가 넘을 것이고요. 하지만 무슨 소용입니까? 문명은 여전히 자기 궤도대로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에 있는 다른 생명을 멸망시키고 있는데요. 45억 달러면 항공모함 한 척을 건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공모함 1000척을 만든다 해도 인간의 광기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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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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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즘 선거를 앞두고, 관련 영상을 본다고 너희들에게 써야 할 독서편지는 자꾸 늦어지는구나. 오늘은 영상 보기를 꾹 참고, 조정래 님의 <아리랑> 11권을 이야기해줄게.

정재규, 정상규, 정도규 삼형제 중에 둘째 정상규가 드디어 꿈을 이루었단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작인들을 쥐어짜면서 결국 그의 꿈인 만석꾼이 되었어. 얼마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냐면, 아들의 교육까지 시키지 않으면서 돈을 아껴 만석꾼이 된 거야. 첫째 아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불만을 갖고, 일도 안하고 술만 먹고 그랬대.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차피 그 땅은 모두 자기 것이 된다는 생각으로만석꾼이 된 정상규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오천석꾼으로 목표를 상향 조정했단다. 식구들까지 쥐어짜며 만든 만오천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삼형제 중에 유일하게 사람다운 정도규는 국내에서 공산주의 활동이 어려워지자, 동료들과 협의하여 위장 전향하여 활동하기로 했단다. 위장 전향을 한 것은 몇몇만 알고 있다 보니, 다른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어.

10권에서 연해주에 살고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고 했단다. 허허벌판 중앙아시아 땅에서 정착하기도 쉽지 않았어. 열악한 화물 기차 안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중앙아시아에 도착해서는 풍토병으로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윤선숙의 막내 아들 경환이도 그만 풍토병으로 죽었어. 오늘 길에 남편이 죽고, 막내 아들까지 세상을 떠나자 삶의 의욕을 잃었지만, 남아 있는 두 아이를 위해서 다시 이를 악물어야 했단다. 사람들은 폐허에 집을 집고, 다시 농사터를 일구었단다. 소련은 그런 조선인들을 탄압했어. 거주지 이동을 금지시키고, 당국에 무엇인가 문의하러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했어. 어느 정도 집들도 짓고 자리를 잡아가면서, 마을 사람들의 요청으로 윤선숙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소련에서는 조선어 금지시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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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조선족에게 쏘련은 도대체 무엇인가. 쏘련은 왜 조선족을 이렇게 핍박하는가. 전인류적 해방을 외치고 있는 공산주의 모국 쏘련이 왜 이 모양인가. 약소민족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쏘련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그건 다 거짓이고 위장인가? 아니, 강제이주를 시키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하자. 우리에게 알릴 수 없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당하게 사람 대접을 해야 할 게 아닌가. 왜 할 일은 제대로 안하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가. 제놈들에게 사람을 개 잡듯 죽일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 아니, 짐승도 이렇게는 취급할 수가 없다. 흉악무도한 놈들! 인민해방, 인민혁명, 인민의 천국, 전인류적 해방, 약소민족의 독립 지원, 새빨간 거짓말! 도둑놈들! 사기꾼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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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윤선숙의 사촌오빠 윤철훈과 그의 아내 차은심은 만주에서 일본 장교를 상대로 사진관을 차리고 그들의 정보를 하나씩 빼서 독립군 동지들에게 전달했단다.

 

1.

만주 지역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항일연군 소속이었는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서 추위와 굶주림과 싸워야 했어. 거기에 일본의 심리전까지 더해지면서 투항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단다. 그래서 독립운동은 점점 어려워졌어. 방대근도 소수정예로 움직이면서 게릴라 작전으로 일본군을 공격했어. 보급창고를 공격하여 식량과 군수품을 훔쳐오기도 했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독립운동을 하기로 한 송가원은 의사 출신답게 비밀 아지트를 돌아다니면서 부상자들을 치료해 주었단다. 옥비는 송가원의 옆을 지키면서 치료하는 것을 도와주었어. 힘든 와중에 둘의 사랑을 무럭무럭 자라서 딸을 낳았단다.

일본 관동군들이 항일연군을 공격하는데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게 되어 독립군들은 더 힘들어졌단다.  관동군은 독립군에 현상금까지 걸고 교묘한 심리전을 펼쳤어. 방대근은 부대를 이끌며 게릴라 작전을 펼치는데, 여기저기 동료들의 시신들이 발견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시신 무리에서 조카 오삼봉의 시신을 발견했단다.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스스로 만주로 온 조카의 죽음을 보았으니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팠겠니그렇게 이름 없이 사라진 독립군이 정말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구나.

방대근 부대는 계속 행군을 해서 송가원이 소속된 부대과 재회를 했단다. 송수익이 죽고 나서 필녀와 수국도 독립운동을 하기로 했잖아. 필녀와 수국도 자진해서 전투 병력에 투입했어. 필녀와 수국도 일본군과 대치하여 끝까지 총을 놓지 않았지만 결국 전사하고 말았단다. 아리랑 초반부터 나온 이들의 죽음은 더욱 안타까운 것 같아. 독자와 소설 속 등장인물로 맺은 인연이지만, 정이 많이 들었는데 말이야.

한편, 만주국으로 이민을 온 조선사람들은 또 한번 일제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 후회를 했단다. 남만석이라는 사람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처남인 김진배의 식구들까지 다 데리고 와서, 처남에게 늘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단다. 농사철이 아닌 겨울철에는 숯 공장에 끌려가 중일전쟁물자로 쓸 숯을 겨우내 만들어야 했어. 그것만이 아니었어. 일본 낭인들이 만주에 나타나서 마을 처녀들을 납치해가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만 김만배의 큰 딸도 그렇게 잡혀가고 말았단다. 이에 남만석의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땅을 치고 후회를 했단다.

….

 

2.

다시 국내 사정을 이야기해줄게. 일제 지배 체제가 길어져서 그런지 너도나도 친일로 전향했단다. 송중원이 다니던 잡지사도 결국 친일 성향으로 바뀌자, 송중원은 잡지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왔단다. 고향에 내려온 송종원 가족은 장인어른 신세호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지내며 지냈단다. 여전히 일본 형사들의 감시와 간섭은 계속 되었어. 송중원은 농사 지내는 것 이외에 동네 아이들에게 이야기도 해주었어. 대놓고 야학을 차리지는 못하니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척 하면서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단다. 그것이 경찰의 감시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었어.

보름이는 아들 삼봉이가 피 흘리며 끌려가는 꿈을 자주 꾸었단다. 아무래도 삼봉이가 저승으로 가기 전에 엄마의 꿈에 나타났나 보구나. 보름이는 둘째 딸 금예와 홍씨 집에서 함께 지냈단다. 홍씨 누군지 알지? 공허 스님이 사랑했던 여인. 공허 스님과 홍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동걸이가 장성한 청년이 되어 일본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토지조사사업 때 땅을 빼앗긴 이후 평생 그 땅을 되찾으려고 일본의 항거했던 박건식이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그의 첫 번째 아들 동화는 10권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독립운동에서도 참여했었는데 결국 친일로 전향을 했잖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제 노골적으로 전향했단다. 하지만 이전에 독립운동 이력과 공산주의 이력, 그리고 퇴학당한 이력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어. 박건식의 둘째 아들 용화는 형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일본을 숭배했단다. 학교에서도 공부도 잘해서 사범학교에 진학을 했어. 박용화는 사범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인 학생 에이꼬를 개인과외를 하면서 돈도 벌었어. 그런데 그 에이꼬의 유혹에 넘어가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용화는 당연히 에이꼬와 결혼할 생각이었으나, 에이꼬는 결혼은 생각지도 않고 한 동안 사귀다가 일본으로 돌아가버렸어. 에이꼬와 연애를 하다가 공부를 게을리하다 보니 임용 시험에서 성적이 안 좋아 시골 학교에 발령을 받았어. 용화는 자신이 이렇게 시골에서 썩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방법을 생각했어. 그 중에 하나가 관동군 장교가 되는 거였어. 이 부분을 읽다 보니 다카기 마사오, 박정희가 생각나는구나. 그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그만두고 일본 관동군 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잡는 일을 했었잖니. 조정래 선생님도 그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구나. 용화가 성공하는 두 번째 길은 법관이 되는 것이란다. 용화는 고민 끝에 법관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단다.

….

 

3.

일본이 무리수를 두었단다. 1941 12 8,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도 너무 크게 건드린 것 같구나. 당시 공허스님의 아들 전동걸은 동경에서 유학 중이었어. 전동걸은 비밀리에 사회주의 활동을 했어. 그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만난 일본인 여자 지요꼬가 동걸에게 호감을 가졌어. 동걸도 지요꼬가 싫은 건 아니지만, 조선인 유학생 이미화에게 마음이 가 있었거든.. 동경 유학생 중에는 송중원의 아들 송준혁도 있는데, 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렵게 공부하고 있었단다. 또 동경 유학생 중에 박용화도 있었단다.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 동경 법대에 합격하여 유학을 온 거야.

….

만오천석꾼으로 목표를 상향한 정상규에게 큰일이 벌어졌어. 둘째 아들 의현이 아버지의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간 거야.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상급 학교를 보내주지 않자 아버지 돈을 훔쳐 도망을 간 거지.

그런데 셋째 아들 동현은 한 수 더 떴단다. 형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학교에 못 다니게 하자, 동현은 아버지의 논 문서를 훔쳐가서 헐값에 팔아 넘기고 도망가버린 거야. 이 일로 정상규는 충격을 받고 쓰러져서 한쪽 몸은 쓰지 못하고 마비가 되었단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더니 끝이 아주 깨끗하구나.

….

보름이의 둘째 금예는 홍씨네 머슴 배필룡과 결혼을 했단다. 배필룡은 성실하고, 돈도 많이 모았고 홍씨가 잘 챙겨주었단다. 금예가 처음에는 배필룡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지만, 배필룡의 진심을 알게 되고 성실함에 서로 사랑하게 되었어. 결혼한 지 한 달 밖에 안된 깨 쏟아지던 어느 날 배필룡은 2년간 강제 징용을 떠나야 했단다. 일본은 여기저기서 전쟁을 벌이고 있어서 인력과 군수품이 부족한 상태였어. 강제 징용과 징병을 시작했는데 배필룡이 그렇게 끌려가게 된 것이란다.

일본의 진주만 폭격 소식을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들었단다. 임시정부는 일본군이 분산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반격할 기회라고 생각하여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단다. 조선의용군을 이끌던 김원봉도 한국광복군 소식을 듣고 찾아와 합류했단다. 한국 광복군 창설 소식은 하와이까지 이어져 하와이에서도 지원하겠다는 이들이 있었어. 하지만 이 일로 부부싸움을 하지고 했다는구나. 남편은 아들을 한국광복군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아내는 나라가 무엇 해준 것이 있냐면서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어. 많지는 않지만 여섯 명이 하와이에서 한국광복군으로 지원해서 왔단다. 그들이 숫자는 적을지 모르지만, 영어를 잘해서 통역관으로 큰 공을 세우기도 했대. 인도에 주둔한 영국군 동남아전구사령관과 상호군사협정 체결에도 큰 역할을 했다는구나.

중경 임시정부에 또 하나의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어. 우리나라가 해방을 하더라도 자체적인 독립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의한 신탁통치를 받는다는 소식이었어. 이 소식을 들은 임시정부 요원들은 신탁통치에 대한 결사반대 결의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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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308)

만장하신 여러분, 오늘 우리는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현하 세계정세는 독일과 일본을 적으로 하고 중국 영국 미국 불란서를 중심으로 연합국 사이에 대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주지의 사실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 또한 진작에 대일선전포고를 함과 동시에 우리 청장년들이 이 전쟁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도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심히 유감스러운 설()이 들려 우리 조선인들을 분노케 하고 실망케 하고 있습니다. 그건 다름아닌 대한민국의 신탁통치설입니다. 그건 연합국 중의 두 나라 대표인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종전 후 처리문제 중의 중대사인 아세아와 아프리카 식민지국가들의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신탁통치란 무엇입니까! 일본이 패망하면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연합국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건 우리 민족이 스스로 국가를 세울 능력도 없고, 국가를 운영할 지질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강대국의 일방적인 횡포이며, 처칠과 루스벨트의 무지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재론할 여지도 없이 신탁통치란 우리나라를 또다시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음모이며,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인 동시에 조선인들의 자존심을 능멸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석달 전인 지난 2월에 임정의 조소앙 외교부장께서 비판의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족하지 않아 우리는 좌시할 수 없어서 오늘 이렇게 비판대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하여 신탁통치의 부당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신탁통치를 절대 거부하는 조선인들의 불굴의 결의를 만천하에 밝히고, 그리하여 처칠과 루스벨트가 자신들의 무지를 자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기탄없는 비판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이상으로 인사의 말씀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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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아리랑> 11권의 이야기란다. 국내, 만주, 중앙아시아, 일본, 하와이 등으로 이야기가 왔다갔다해서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는 것이 쉽지는 않구나. 이제 <아리랑> 한 권이 남았구나. 아프고 슬픈 역사를 되풀이 되지 말아야겠지만, 부끄러운 역사도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단다. 현시점으로부터 지난 2년간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는 퇴보를 해서 많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단다.  3년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요즘이다.

, 그럼 오늘은 이만.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천산산맥은 언제나 신비스럽고 우람하고 장엄했다. 천산산맥은 몸피가 거대하면서 길이도 끝없이 길었다. 그리고 능선은 톱니 모양으로 이어져 나가며 험준한 산줄기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천산산맥은 하늘을 가르며 하늘에 닿아 있었다. 마치 하늘에 도전하고 하늘에 제압하려는 것처럼. 천산산맥은 사람이 오르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아득히 멀리 있으면서도 언제나 사람들을 위압하고 있었다. 천산산맥을 보고 압도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경건한 마음을 갖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 장엄한 모습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솟는 경탄의 소리와 함께 압도당했고, 계절의 변화를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순백의 자태를 드리운 만년설을 보면서 신비스러운 경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P23

사람들은 숯 굽는 일의 생소함이나 고달픔 이전에 숯 굽는 일 자체에 혐오감을 나타냈다. 일본세상이 되면서 숯은 장작이나 솔가리나무를 압도할 정도로 번창했다. 다다미방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일본사람들은 방마다 숯불화로를 끼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산속 숯가마에서 숯쟁이로 먹고 사는 조선사람들도 많아졌고, 숯장사로 떼돈을 버는 일본사람들도 많아지면서 목탄조합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짚불이나 솔가리불을 화로에 담아 쓰는 농부들로서는 숯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더구나 코밑은 물론이고 손이며 옷에도 숯검정을 하고 다니는 숯쟁이나 숯장수들을 농부들은 싸잡아 <숯쟁이>라고 부르며 천시했다. 그건 단순히 자기들에 비해 그들의 몰골이 지저분하고 더러워서 그러는 것만이 아니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대대로 물려온 자부심을 은근히 품고 있는 농부들은 기껏 일본사람들한테 빌붙어 먹고 사는 숯쟁이나 숯장수들을 경멸하고 있었던 것이다. - P81

김원봉은 1938년 9월에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조선의용대는 곧 중일 양국이 치열한 공방전이 벌이고 있는 무한 전선에 참전했다. 그러나 무한은 함락되었고, 조선의용대들은 중국군 부대에 배속되어 일본군에 대한 선전활동, 일본구 포로들의 신문, 일본군 점령지에서 첩보수집, 암살, 파괴활동 같은 것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중국군의 보조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군의 지휘를 받는 그런 역할에 불만을 품은 대원들은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조선독립군으로 무장하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김원봉 앞에 닥친 현실은 냉엄했다.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자기네 군대의 운영에도 정신이 없는 중국정부에서는 조선독립군의 지원을 냉정하게 외면했다. 김원봉은 중국정부를 상대하는 현실과 대원들이 주장하는 이상 사이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공산주의 간부들이 이탈하면서 김원봉의 세력은 그 어느 때 없이 약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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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걸 -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의 전쟁, 폭력 그리고 여성 이야기
나디아 무라드 지음, 제나 크라제스키 엮음, 공경희 옮김, 아말 클루니 서문 / 북트리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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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조그마한 지구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단다. 그 전쟁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준단다. 특히 여성이나 아이들과 같은 이들은 전쟁에 더욱 고통을 받게 된단다. 지구 상에는 여러 분쟁 지구가 있는데, 그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 중에 하나가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 지역이란다.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 인해 이슬람 전체에 대한 이미지도 실추되었고, 그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단다.

오늘 너희들에게 소개해줄 책은 그런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큰 아픔과 고통 속에서 살다가 탈출에 성공한 이후 여성 인권 운동과 IS의 만행을 전세계에 알리는 나디아 무라드라는 사람의 자서전이란다. 나디아 무라드는 두 번째 최연소 수상자로 201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어. 평화롭고 조용한 이라크의 시골 마을에 도대체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읽는 내내 가슴 아프고 답답했단다. 나디아 무라드의 가족, 친구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 이들은 IS라는 사람들인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IS Islamic State의 약자로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로도 부른단다. 이 책에서도 IS ISISI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단다. 아빠는 철자가 짧은 IS라고 할게. IS라는 조직은 책에 설명이 되어 있으니 그걸 참고하는 것이 낫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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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2003년 국제 테러 조직 알 케에다의 이라크 하부 조직에서 출발해,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시리아로 거점을 옮겨 활동하였으며 세력을 넓혔다. 급진 수니파 무장 단체로, 집단 학살과 잔인한 테러를 일삼았다. ISIS IS(Islamic State)가 그들 스스로 국가 수립을 선언하기 이전의 이름이다. 2019년 현재 IS는 대부분 와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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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지은이 나디아 무라드의 이야기를 해볼게.

 

1.

나디아가 살고 있는 곳은 이라크 북쪽의 코초라는 작은 야지디 마을이란다. 야지디란 이라크 모술 지역과 터키 디야르바기르 지역, 이란의 일부 지역, 아르메니아 등지에 분포된 종교로써,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유대교, 네스토리우스 파의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도적인 요소가 혼합된 종교라고 하는구나. 나디아가 살고 있는 코초 마을의 사람들은 대부분 야지디를 믿고 있었어. 코초 사람들의 언어는 쿠드르어를 사용했으며, 종파 유지를 위해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결혼하지 않았대. 종파 유지를 위해 다산을 장려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나디아도 11남매 중 막내로 1993년에 태어났단다. 나디아의 아버지는 첫 번째 부인과 네 남매를 낳았고 나디아의 어머니와 열한 남매를 낳았단다.

야지디가 정통 이슬람교가 아니다 보니, 이웃한 다른 종파들로부터 탄압을 받기도 했는데, 특히 수니파 아랍족이 그들을 많이 탄압했다는구나. 코초 마을이 이라크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라크 북쪽은 늘 전쟁과 끊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여러 민족과 종교의 종파들이 이웃하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아빠가 예전에 읽은 김영미 님의 <세상의 왜 싸우는가>라는 책에서 알게 된 것인데 쿠르드 족이 살고 있는 땅이 엄청 큰데 중동 여러 나라에 걸쳐 있고, 그들이 독립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했어.

국경이 불분명하던 중동 지역을 서양 열강이 자기 마음으로 국경을 긋다가 쿠르드 족을 여러 나라에게 속하게 국경을 긋는 바람에 생긴 문제라고 했어. 그때 쿠르드 족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하는 국경을 그었다면 나았을 텐데 지금 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단다. 쿠르드 족은 쿠르드 족대로 독립 운동을 할 수 밖에 없고 말이야. 이라크는 한때 수니파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 지배했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에는 시아파로 지배를 하고 있었어. 아무튼 코초 마을이 있는 이라크 북쪽 지역은 상황이 늘 복잡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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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코초의 북동쪽, 쿠르드 자치구의 남쪽 경계에는 아랍인과 쿠르드 인에 이어 제3의 민족인 투르크멘족이 산다. 무슬림은 투르크멘족 역시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뉜다. 기독교인들은-그중 아시리아인, 칼데아인, 아르메니아인-나라 전역, 특히 니네베 평원을 흩어져 산다. 기타 지역에는 아프리카인과 같은 마쉬 아랍족을 비롯해 카카이, 샤박, 로마니, 만다야 같은 소수 집단이 산다. 바그다드 인근 어딘가에는 아직도 이라크의 유대인 집단이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고 들었다. 이라크의 종교와 민족을 두고서는 다양한 구분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쿠르드족은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그들은 쿠르드족이라는 정체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야지디의 경우는 종교를 믿는 이들이 그 자체로 하나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대부분의 이라크 아랍족은 시아파나 수니파 무슬림이다. 이러한 복잡한 구분들이 오랜 세월 수많은 분쟁을 야기해 왔다. 이런 세세한 이야기는 이라크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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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의 집안 이야기를 다시 해줄게. 나디아의 아버지가 나중에 후처를 들인 후 어머니와 식구들을 버렸대. 그렇다 보니 나디아의 어머니와 아이들은 가난하게 살았다고 하는구나. 2003년에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이후는 더욱 생활이 궁핍해졌지만, 나디아의 어머니가 그 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어찌어찌 꾸려나갔단다. 나디아의 식구들은 가난했지만 서로 의지하며 행복하게 지냈어. 나디아가 어렸을 때 코초 마을도 개방이 조금씩 되어 텔레비전, 세탁기 등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서구 세계와도 조금씩 교류를 하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수니파 사담 후세인이 정권을 잡은 이후 쿠르드 지역을 포함한 이라크 북쪽 지역에 강력한 탄압이 이어졌어.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몰아내는 2003년까지 이어졌단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했을 때 쿠르드 지역에서는 해방이라고 이야기를 했어. 야지디 사회도 안정을 되찾고 외부와 교류도 하게 되었단다. 한편 정권을 잃어버린 수니파는 조금씩 반항군을 조직하였는데, 그 조직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 IS가 되었단다.

 

2.

2009년 미국은 이라크에서 철수를 했어. 미국이 철수하자마자 힘을 키워오던 IS가 쿠르드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지. 그들의 침략은 예견되어 있어서 나디아가 살고 있는 코초 마을 사람들도 도망갈 기회가 있었어. 하지만 쿠르드 자치 정부에서 그들이 방어하겠다면서 그냥 있으라고 권고했지. 그런데 어느날 쿠르드 지역의 사람들 대부분 도망을 가 버렸고, 야지디 사람들만 그대로 남겨져 있다가 IS에게 점령당하고 말았어. IS는 이라크 북부 주요 도시인 모술을 점령하고 야지디 마을들을 모두 포위했는데 나디아 살고 있는 코초 마을도 포위되었어. 외부와 모든 것이 단절된 코초 마을은 먹는 것도 부족한 상태에서 미국이든 쿠르드든 구조만 기다리는 상황이었어.

하지만, 미국과 쿠르드 모두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어. 굶주려 죽는 사람도 생겼고, 탈출하다가 잡혀 죽는 사람도 생겼어. 점령군이 야지디 마을들로 들어와서, 젊은 남자들만 모아서 데리고 갔는데 그들은 모두 총살 당했단다. 나디아 오빠들 중 두 명이 그렇게 죽고 말았어. 다른 오빠 중에는 총상을 입고 죽은 척하고 있다가 밤중이 되어서 산으로 도망을 간 오빠도 있었어. IS는 여자들과 아이들은 따로 모아 감금했는데, 며칠 뒤 젊은 여자들을 데리고 모술로 데리고 갔어. 가는 길에 성추행을 당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되어 나디아는 항의했다가 뺨만 맞고 말았단다. 더 심한 것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나디아와 여자들은 어떤 곳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에 먼저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어. 강간 당하고 IS의 간부들에게 성노예로 끌려간다는 거야. 이것이 21세기에 있을 법한 이야기란 말인가. 나디아는 성노예로 살 바에는 자살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생각했다가 살아서 도망갈 계획을 세우기로 했단다. 하지만 쉽지 않았어. 나디아는 조카인 캐서린, 니스린, 로지안과 올케 질란이 함께 있었는데, 그들은 얼마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단다. 모두 성노예로 팔려가게 되고, 나디아도 하지 살만이라는 사람에게 팔려갔어. 나디아는 하지 살만에게 강간과 폭행을 당해야 했어. IS에게는 양심도 없고 인권도 없고 윤리도 없었어.

나디아는 혼자 있는 기회를 틈타 도망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단다. 실패에 대한 대가는 너무 컸어. 경비대 3명에게 성폭력을 당하게 하고, 다시 다른 IS 사람에게 팔려갔단다. IS 사람들을 다에시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 책에서 다에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단다. 그 이후로도 계속 다른 다에시로 팔려 다니는 나디아한 명쯤은 나디아를 불쌍히 여길 만도 한데, 다에시들은 모두 짐승 같은 놈들이었어. 나디아는 다시 도망을 시도했어.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나디아는 신에 운명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아무 집이나 노크를 했어.

 

3.

열린 문으로 들어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도와달라고 애원을 했어. 그 집은 수니파 집안이었지만, 심성이 모두 착한 사람들이었단다. 자신의 지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나디아를 숨겨주고 도망가는데 도와주겠다고 했어. 그 집은 히샴이라는 사람이 가장이었는데, 히샴의 도움으로 외국에 있는 큰 오빠 헤즈니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어. 헤즈니와 도움으로 탈출하게 되면 만나는 장소를 잡았단다. 그런데 그곳까지 나디아 혼자 가기는 너무 위험했어. 나디아는 도망자 신분으로 수배령도 내려진 상태였거든. 검문소마다 사진도 붙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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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지난 3년간 야지디 여자들이 ISIS에게 잡혀 성 노예가 된 사연을 많이 들었다. 대부분 같은 폭력을 겪은 피해자들이었다. 우린 시장에서 판매되거나, 신병 혹은 고위 지휘관에게 선물로 건네졌다. 그러면 그의 집으로 끌려가서 강간당하고 모욕을 받았으며, 대부분 폭행당했다. 그런 뒤에는 다시 팔리거나 선물로 건네져서 강간과 폭행을 당하고, 또다시 팔리거나 선물로 건네져 강간과 폭행을 당했다. 쓸모가 다하고 죽기 전까지 이런 식이었다. 탈출을 시도하면 지독한 벌을 받았다. 하지 살만의 경고처럼 ISIS는 검문소에 우리 사진을 붙였고, 모술 주민들은 노예를 가까운 IS 센터에 신고하라고 지시받았다. 그러면 5,000달러를 보상금으로 받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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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샴의 큰아들 나세르가 탈출하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어. 나디아와 부부 사이로 위장을 하고 나디아의 친정집에 가는 것으로 말을 맞췄어. 나세르 또한 이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단다. 드디어 그들의 탈출이 시작되었단다. 가장 힘든 관문은 모술 밖으로 나는 것이었어. 모술 밖으로 나가는 모든 차들에 대해서 검문을 하는데 무척 자세히 조사를 했어. 몇 개의 검문소를 지나는데, 읽는 아빠도 조마조마하더구나. 마지막 검문소에서 모술 밖의 수니파 사람 중에 신원을 보증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어. 네사르는 아버지의 친구분이 생각이 났단다. 그 아버지의 친구와 통화가 되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어.

모술을 통과한 이후에도 방심하지 않고 여러 번 택시를 갈아 타고 안전 지역인 쿠르디스탄에 드디어 도착을 했단다. 그곳에서 조카 사바와 만났어. 그곳까지 목숨을 걸고 도와주었던 네사르는 이제 다시 모술로 돌아가야 했어. 나중에 알게 된 소식으로는, IS가 네사르가 나디아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체포되었다고 했어. 그 이후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하고네사르는 부디 안전해야 할 텐데, IS의 지금껏 만행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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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왜 나세르는 선량한데 모술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리 잔인했는지 모르겠다. 마음 깊이 선량한 사람이라면 IS 근거지에서 나고 자라도 여전히 선량한 것 같다. 강제 개종을 당해도 내가 그 종교를 믿지 않고 여전히 야지디인 것처럼. 그런 인품은 내면에 달려 있다. 내가 나세르에게 말했다. “조심해요. 몸을 잘 챙기고, 가능한 범죄자들과 멀리 지내요. , 헤즈니의 전화번호를 받아요.” 나는 헤즈니의 휴대폰 번호를 적은 쪽지와 그의 가족이 내준 택시비를 내밀었다. “언제라도 헤즈니에게 전해도 돼요. 내게 베푼 은혜를 잊지 않을게요. 당신은 제 목숨을 구해줬어요.”

그가 말했다. “행복하게 살기 바라요, 나디아. 지금부터 쭉 멋진 인생을 살아요. 우리 가족은 당신 같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쓸 거예요. 모술에서 탈출하려는 여자들을 알게 되면 우리에게 전화해요. 우리가 도와주려고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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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는 난민캠프에 도축을 해서 살아있는 식구들을 하나둘 만나게 되었고, 그 동안 몰랐던 식구들의 소식도 듣게 되었어. 그 소식 중에는 나디아의 어머니의 죽음 소식도 있었단다.  IS에 의해 총살 당하셨다고 했어. 정말 나쁜 놈들이구나. 나디아와 함께 성노예로 잡혀 있던 캐서린이 몇 번의 도망 실패 뒤에 성공하여 난민 캠프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하지만, 그만 오는 길에 지뢰를 밞아 죽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정말 가슴 아픈 소식이었어.

….

독일 정부는 나디아 같은 IS의 성노예였던 이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 나디아는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로 왔다가 유학을 하게 되었단다. 그 후 나디아는 여성 인권 활동가가 되어 활동하였단다. UN 등에서도 야지디의 성노예 희생자들에 대해 알라고, IS의 만행을 폭로하는 등 활동을 했단다. 지금도 계속 그런 일을 하실 것 같구나. 이 책의 제목이 <더 라스트 걸>인 이유는 나디아의 연설 속 일부를 따 온 것이란다. 자신 같은 사람이 자신으로 마지막이길 바라는 연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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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나는 간단히 연설했다. 내 사연을 말한 다음 계속 이야기했다. 나는 연설을 잘하는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든 야지디는 ISIS가 집단 학살 죄로 기소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청중들은 세계의 약한 자들이 보호받도록 도울 만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난 우릴 유린한 남자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그들이 벌받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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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정당한 폭력은 있을 수 없단다. 전쟁은 더욱 정당할 수 없단다. 일부 극단주의자들과 무능한 지도자들에 의해 전쟁은 일어나는데 그런 전쟁이 오늘날에게 끊이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구나. 하기야 우리 나라도 우파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전쟁의 위험 지수가 올라가니 남 탓을 할 때가 아니구나. 그러니 선거를 잘 해야 하는데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때가 많구나.

이 책의 지은이 나디아 무라드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악몽처럼 보냈는데, 이제라도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았으면 좋겠구나. 많은 가족들과 친구들을 잃은 슬픔이 쉽게 잊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남겨진 가족들과 새로 만난 친구들과 희망을 만들어가길 바래 본다.

오늘은 이만 할까?

 

PS,

책의 첫 문장: 코초는 이라크 북쪽 지역에 있는 작은 야지디 마을로,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고 최근까지 평생 살 줄 알았던 곳이다.

책의 끝 문장: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삶은 흘러간다. 이라크인, 특히 야지디족 같은 소수 부족들은 새로운 위협에 잘 적응했다. 무너지는 나라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 적응이라 하면 때론 아주 소소한 일들을 뜻한다. 우리는 꿈의 크기를 줄였다. 학교를 졸업하는 것, 농사일을 그만두고 덜 힘든 일을 하는 것, 제때 결혼식을 하는 것 같은 바람들 말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 꿈은 이룰 수 없었다고 쉽사리 자신을 설득했다. 이따금 적응은 아무도 모르게 차츰 이루어졌다. 학교에서 무슬림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을 멈추었고, 낯선 이가 마을을 지나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또 공격과 관련된 TV 뉴스를 보면서 정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혹은 입 다물고 지내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고 아예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기도 했다. 매번 공격이 있을 때마다 남자들은 시리아에 면한 서쪽에서 시작해 코초 외곽 장벽을 연장했다. 어느 날 깨어 보니 성벽이 마을을 완전히 에워싸고 있었다. 그래도 불안해서 남자들은 마을 주변에 참호를 팠다. - P26

어린 시절 나는 내 나라가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제재와 전쟁, 극악한 정치, 점령 등이 일어나는 행성 같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이웃들은 서로 등을 돌려 버렸다. 이라크 북단은 쿠르드족이 독립을 원하는 지역이었다. 남쪽은 주로 시아파 무슬림들의 본거지였는데, 이들이 종교와 정치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중부에는 수니파 아랍족이 있다. 이들은 한때 수니파 대통령 사담 후세인과 함께 주(州)를 지배했던 적도 있었으나, 이라크 침공 이후 지금은 시아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라크에 저항하는 세력이 되었다. - P49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살고 있었다. 주민들은 ISIS의 눈에 뛸까 봐 집 안에만 있었고, 그렇게 코초의 삶은 정지되었다. 마을 사람들과 떨어져서 지내니 이상했다. 코초는 밤늦도록 남의 집에서 친구들과 식사하고, 옥상에서 이웃끼리 떠들다 자는 일이 일상인 동네였다. 그러나 ISIS가 포위한 뒤로는 잠에 바로 옆에 누운 사람과 소곤대는 것과 위험해 보였다. 우린 최대한 눈에 안 띄려 했다. 그러면 ISIS가 우리를 잊기라도 할 것처럼. 점점 뼈만 남게 말라 가는 것도 자기를 보호하려는 방법 같았다. 곡기를 끊으면 결국 투명인간이라도 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친척들은 살피러 가거나, 물품을 가지러 가거나, 아픈 사람을 도우러 갈 때만 집을 나섰다. 그때도 빗자루를 피해 달아나는 벌레들처럼 늘 피할 곳이 있는 쪽으로 잽싸게 걸었다. - P102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부분이다. 이 때문에 야지디에서는 종교 지도자층의 일원을 종교적인 의미의 형제자매로 삼는다. 그들은 종교를 가르치고 내세에서 우릴 도와준다. 나의 자매는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고 아름다웠으며 야지디 교리를 매우 잘 알았다. 그녀는 한 번 결혼했다가 이혼을 했고, 친정에 돌아와 살면서 신과 종교에 자신을 바쳤다. 나의 자매는 ISIS가 집 가까이 오기 전에 탈출하여, 독일에서 안전하게 지냈다. 이런 형제나 자매의 가장 중요한 소임은 우리가 죽은 뒤 신과 타우시 멜렉 곁에 앉아 우리를 변호하는 일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자는 제가 생전에 알던 사람입니다. 영혼이 지상으로 돌아갈 자격이 있는, 선량한 사람입니다." - P148

난 떨면서 연설문을 낭독했다. 어떻게 코초가 점령당하고 나 같은 여자들이 사비야로 끌려갔는지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어떻게 반복해서 강간과 폭행을 당하다 결국 탈출했는지 설명했다. 오빠들이 살해당한 이야기도 전했다. 청중은 조용히 경청했다. 연설이 끝나고 나서, 나중에 한 터키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 오빠 알리도 살해됐어요. 그 일로 온 가족이 충격에 빠졌어요. 어떻게 한꺼번에 오빠 여섯을 잃고 버틸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정말 힘들어요. 하지만 우리보다 더 많은 가족을 잃은 집도 있어요." 내가 말했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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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예술로 빛난다 -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조원재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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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방구석 미술관> 시리즈의 지은이 조원재 님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작년에 들었는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이제서야 읽었단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라는 책이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책을 쓰곤 하는데 이 책도 그런 측면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아빠가 10년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데, 자기 전에 그날 있었던 일을 메모 형식으로 간단히 적는단다. 그런데 어느 때는 계속 비슷한 내용의 반복일 뿐이야. 그래서 너무 졸린 날은 어제와 비슷이라고 적은 날도 있었단다. 지은이는 이런 반복적인 삶에서 예술적 행위를 찾는구나. 반복적인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늘 같은 일 속에서 다른 점을 찾고, 그것을 즐겁게 느끼는 것 또한 예술적 행위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화가 이우환 님의 어머니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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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

화가 이우환은 어릴 적 어머니와의 대화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한다. 소년 시절 그는 쌀을 씻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매일 똑 같은 쌀 씻기를 하면서 어떻게 즐거우실 수 있냐고.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똑 같은 쌀 씻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신은 그 일을 할 때마다 매일 다르게 느낀다고. 어떤 때는 시원한 물이 생기를 주고, 지저귀는 새소리에 흥이 오르기도 한다고. 쌀과 물과 손이 하나가 되어 잘 움직일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어 매일 쌀 씻는 것이 항상 새롭다고. 어린 후환의 눈에 매일같이 반복되는 어머니의 쌀 씻기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쌀 씻기는 매일, 매 순간 전혀 새롭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행위였다. 이를 우리는 예술적 행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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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듣고 매일 지나오는 퇴근길이 다시 보였단다. 퇴근길에 가로수들이 색상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요즘은 더욱 실감이 되더구나. 아빠는 비슷한 시간이 늘 같은 거리를 지나지만, 가로수는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공기의 느낌도 점점 달라지니 어제와 오늘이 같다고 볼 수 없겠구나. 지은이에 따르면 아빠의 퇴근길은 예술적 행위가 되는구나. 그러니까 지은이가 이야기하려는 핵심 우리 삶은 예술 그 자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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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삶과 예술, 예술과 삶. 이 둘은 너무나도 닮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예술은 우주 어딘가에 지구로 떨어진 출처가 불분명한 운석 같은 것이 아니다. 예술은 분명히 인간의 삶 속에서 나온 것이다. 엄마의 배 속에서 나온 아기가 엄마를 빼닮듯, 인간의 삶 속에서 나온 예술이 인간과 삶을 쏙 빼닮지 않을 수는 없다. 아이가 엄마의 정수를 담고 있듯, 예술은 인간과 삶의 정수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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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렘브란트는 수많은 자화상을 그린 사람으로도 유명하단다. 20대 젊었을 때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자주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어.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라 이야기를 한단다. 젊은이 한풀 꺾인 렘브란트의 50대 자화상에 대해 지은이가 설명을 해주었는데, 이제 막 50대에 들어선 아빠도 그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담긴 감정이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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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50대에 그의 내면을 물감으로 물질화한 이 자화상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한껏 찌푸린 미간과 꼿꼿이 당겨 세운 하관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삶의 난관에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가 엿보임과 동시에, 검고 큰 눈동자에서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감지되어 때문이다. 중년이 되어 맞닥뜨린 어떤 난관의 거친 파도 앞에서 렘브란트는 전의를 불태우려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그는 그런 내면의 심정을 숨김없이 마주했고, 속속들이 자화상에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50여 년을 산 한 화가의 자아 성찰의 힘과 진정성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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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지은이는 아빠처럼 그림에 소질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하기 위해 일기를 써보라고 제안하는구나.

앞서 삶과 예술은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둘 모두 처음에는 허접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듭하지만, 꾸준하게 나아가면 결국 그 허접함은 비범함이 된다고 말이야. 너희들도 젊은 시절 실수와 시행착오를 하게 되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말고 비범함으로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좋겠구나. 또 예술은 누군가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가들의 예를 들어주었어. 돌을 예술로 만든 이우환, 물방울을 예술로 만든 김창열, 소쿠리를 예술로 만든 최정화 등이 그들이란다. 그들의 작품이 책에 실려 있는데, 감탄할 만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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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예술가가 예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언가에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힘으로부터 예술이라는 삶의 꽃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우리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겐 무언가에 의미를 발견하고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대량생산된 물감으로 오밀조밀 칠해진 화면을 보며 예상치 못했던 무언가를 느낄 수 있고, 버려진 나뭇조각을 이리저리 그러모아 만든 독특한 구조물을 보며 색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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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낯설게 보기란 것이 있단다. 예술가는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모습을 낯설게 보는데, 그것은 일상 속에서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낸다는 것을 말해. 그렇게 예술이 되는 것이지. 평범했던 우리 삶을 낯설게 보면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예술이야. 우리 삶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예술이 담겨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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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라는 평범한 이가 바다를 매 순간 낯설게 보고자 노력하며 그것의 숨겨진 미를 매 순간 새롭게 발견하고 감동하는 일상. 그 낯설게 보는 눈으로 미술관에 가 작품의 숨겨진 미를 새롭게 발견하며 미적, 지적 쾌감을 느끼는 일상. 그 눈으로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미를 새록새록 발견하는 기쁨. 그 눈으로 내 삶에 주어진 것들을 새롭게 보고 항상 감사히 여기는 풍요. 그 눈으로 세상에 놓인 모든 것을 새롭게 보며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놀라운 마법.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마법 같은 일상과 삶이 먼 곳에 있는 것 같지 않다. 낯설게 보고자 하면, 모든 것에서 그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샘솟아 나는 마법이, 예술이 펼쳐지니 말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돌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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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과 예술의 또다른 공통점, 둘 다 정답이 없다고 하는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정답은 없지, 자시만의 삶을 살아갈 뿐. 예술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한다고 하는데, 그래도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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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예술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 예술을 창안해 낸 우리 인간의 삶 역시 정답이 없다. 예술을 즐기기 위해 나에게 예술이 무엇인지를 먼저 스스로 정의해야 하듯, 삶을 즐기기 위해 나에게 삶이 무엇인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당연히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가르쳐둔다 한들 자신이 몸소 체험을 통해 깨닫지 않는 이상 삶에 깊이 스며들지 않는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만의 삶의 정의를 체험하고 감각하며, 그 속에서 숱한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영감을 얻고 깨닫는 과정을 반복해 가며 삶에 대한 자기 나름의 정의를 찾아나가야 한다. 예술가를 자기 나름의 예술의 정의를 정립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하듯, 삶을 사는 우리도 자기 나름의 삶의 정의를 정립해 자기만의 독창적인 을 창조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삶은 예술과 하나가 된다. 인간은 삶과 다르지 않은 예술을 삶 속에서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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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식상한 말이지만,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해보라고 했어.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경제적 수입과 연계되면 좋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더구나.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부부가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독특하게도 포장이라는 것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야. 별 거 없이 어떤 사물을 포장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다른 이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기도 했대.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그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했대. 결국 그들의 포장은 하나의 예술 행위이자 작품이 되었어. 프랑스 파리의 퐁네프 다리도 포장을 했다는구나. 행정적인 절차 포함하여 퐁네프 다리를 포장하는데 10년을 준비했다는데, 전시는 14일만 하고 철거를 했다는구나. 긴 준비 기간에 비해 전시기간이 짧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미학은 10년 동안의 준비 과정에 있다고 했대. 멋지시네.

지은이 조원재 님도 젊은 시절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대학 졸업 후 무작정 미술 여행을 떠났다고 하는구나. 일본과 유럽에서 긴 여행을 마치고 바뀐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대. 그 여행을 통해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하네. 그래서 일탈이 필요하다고 하는구나. 자신의 의지로 한 일탈은 참 를 찾는 과정이라고 하는구나. 비록 여행을 통해서 지은이처럼 참 를 찾을 수 없을지라도, 세상을 보는 눈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행과 일탈은 좋을 것 같구나.

어떤 화가 한 명이 있었어. 그 화가도 일탈 후 화가가 되었대. 16살 때 화랑에서 일하던 그는 7년 후 해고 당하게 되었는데 자발적 일탈로 벨기에 광산에서 전도사를 하면서 광산 일도 도와주었대. 광산에서 5년간 전도사 일을 했는데, 다른 전도사들의 멸시를 받게 되어 쫓겨나게 되었다는구나. 그리고 다시 자신의 쓸모를 찾고 있던 그는 자신이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27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구나. 그 화가는 바로 빈센트 반 고흐였대. 아빠가 이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를 축약해서 하다 보니 재미가 반감되었구나. 지은이는 그 사람의 정체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게 하면서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가서 마지막에 짜잔, 정체를 밝혔단다.

지은이 조원재 님은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독자를 끌어당기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이 빈센트 반 고흐의 예를 이야기해 준 이유는 자발적 일탈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는 것이었어. 한 번 일탈로 안되면, 두 번, 세 번 일탈을 해보라고생각해 보니 아빠는 그런 일탈을 한 번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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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

한 차례 자발적 일탈을 감행했음에도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여전히 흐릿하다면, 두 번째 자발적 일탈을 감행하면 된다. 그 후에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여전히 불투명하다면, 세 번째 자발적 일탈을 감행하면 된다. 화랑에서 일을 하다, 불쑥 기숙학교에서 선생을 하다, 불쑥 광산으로 간 빈센트처럼. 한 번, 두 번, 세 번그 모든 불확실한 일탈의 감행이 모여 건강한 방황으로 정의되리라 믿는다. 그 일탈의 체험과 기억이 쌓이면 쌓일수록 자신의 정체가 점점 밝고 분명해지리라. 수많은 시도 끝에 점점 초점이 또렷해지는 피사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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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예술이란 무엇인지 물어본단다. 지은이는 예술을 삶에서 행한 어떤 행위가 행위자에게 정신적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라고 이야기하는데, 문득 이 사람 나이가 궁금하더구나. 그래서 찾아보니 이제 39살이네. 아빠보다 한참 어린데, 저런 걸 깨닫다니여행과 일탈을 하게 되면 참 를 발견하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깊은 생각도 얻을 수 있는가 보구나. 지은이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행하는 삶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이고 싶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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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예술인가 무엇인가?” 그래서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삶에서 행한 어떤 행위가 행위자에게 정신적 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 그것이 예술이다.” 겉으로 예술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이가 실제로 정신적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예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정말 그 행위를 왜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정신적 만족을 충성하게 누리는 예술이 되기 위한 해답은 결코 우리 바깥에 있지 않다. 우리 안에 있다. 자기 내면에서 울리는 자신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흔들림 없이 행하는 삶을 창조해 가야 한다. 그 어떤 외부의 압력과 강요에도 굴하지 않고, 결국 자기 내면에서부터 끝없이 선명하게 울려오는 나만의 그림 그리기를 평생 흔들림 없이 행한 세잔처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행하는 삶. 이런 삶은 필연적으로 정신적 만족을 동반한다. 그렇게 정신적 만족을 누리는 삶을 사는 이를 두고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

….

아빠는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눈을 장착하지는 못했단다. 그래서 이 책에 담겨 있는 많은 작품을 보면서 큰 감흥은 느끼지 못했지만, 많은 새로운 작품들을 보게 되어서 좋았단다. 아빠가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들에도 좋은 내용도 많고, 많은 예술가들도 소개해 주어서 좋았어. 아빠의 변변치 못한 기억력으로 오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아빠가 주변 사람들에게 책 추천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누군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이 책은 추천해 주고 싶구나. 물론 너희들도 좀더 커서 읽어보면 좋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어릴 적 우리는 모두 예술가였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그것을 단 한 번뿐인 당신의 삶에서 행할 때, 당신에게 예술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다른 대상이 아닌, (당신 자신)이 된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말이 있다. 평생에 이뤄지는 단 한 번의 만남, 단 한 번뿐인 일. 이 말은 차 마시는 행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다도(茶道)에서 쓰인다. 어제도 차를 마셨고 엊그제 역시 차를 마셨지만, 차를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은 평생에 단 한 번 일어나는 일임을 가슴에 새겨 차 한 모금을 아주 새롭게 음미한다는 마음의 자세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한 인간이 지닌 지성의 문제로, 누군가가 가르쳐주고 알려준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이 내면에 지닌 지성으로 해내는 일이다. 우리의 일상이, 삶이 아무리 매일 반복되더라도 매 순간은 진실로 새로운 순간이다. 우리가 지성을 발휘해 그 진실을 매일 매 순간 의식하려 노력한다면, 무미건조하게 여기던 것들 것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의미로, 전혀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 듣도 보도 못한 색과 형과 향을 지닌 꽃이 피어날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 예술이 피어날지 모른다. - P31

정말 <모나리자>를 봤는지, <모나리자>를 누가 언제 그렸는지, 그림을 그린 화가는 어떻게 살았는지, 화가가 살던 시대상은 어땠는지, 그를 후원해준 사람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 ‘<모나리자>라는 작품에서 파생되는 나오는’ 지식을 알고 있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모나리자>라는 그림 자체, 그 이미지 자체, 그 물리적 대상 자체를 진심으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보기 위해 노력했는지 묻는 것이다. 예술작품 하나를 몸으로 만나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진심을 다해 보고 듣고 감각하며 생각하고 느끼는 체험을 했는가 묻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 체험의 과정 속에서 당신만의 독창적인 ‘의미’가 내면에서 샘솟듯, 꽃피듯 생성되었다면, 그 작품은 평생 당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당신 스스로 창조한‘의미’와함께 생생히 살아 숨쉬게 될것이다. 그리고 그 작품은 당신의 기억 속에 생생히, 또렷이 남아 있는 ‘본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당신의 정신을,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구성할것이다. - P62

인간은 모두 자신에게 무지한 백지상태로 태어난다. 누군가는 삶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영영 자신에 대해 정확히 모를 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는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스스로 번데기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 번데기 속에서 누군가는 자기만의 해답을 발견해 찢고 나와 나비가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실패하기도 한다. 물론, 거듭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다면 끝내 나비가 될 수도 있다. 애벌레가 번데기 껍질을 까고 나와 나비가 될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이는 온전히 애벌레의 선택과 노력에 달렸다. 지금 우리는 그 과정 어디쯤에 있을까?

- P94

그렇다. 이 모든 행위는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이고 쓸모없이 보이는 것이다. 나태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으로 비생산적이고 쓸모없이 보이는 행위에 골몰할 힘을 얻게 된다. 내 눈을 넘어 오감을 강렬하게 사로잡으며 뒤흔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 거대한 나태함으로 그것을 영혼이 흠뻑 젖을 때까지 감각하고 생각하고 느낄 한없는 시간의 여유를 창조할 수 있다. 그 작품과 대화를 나눈 뒤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 나태해지는 시간의 공터를 습관처럼 만들어놓을 수 있다면, 당신을 흔들었던 그 작품은 당신의 삶과 맞물리며 어느 날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나태함으로 그 작품을 마음속으로 붙잡아 한껏 곱씹어 보며 진정 내 영혼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나태한 시간이 모여 당신의 기억을 구성하고, 나아가 당신의 내면, 당신만의 독창적인 정체성을 구성할 것이다. - P112

예술의 순간을 체험하는 것이 예술가가 아닌 이에게 무슨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건 오직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체험뿐이라고. 내가 하는 체험만이 지금과 내일의 나를 빚는 재료가 되는 것이라고. - P237

삶에서 하는 일 자체를 예술로 만든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서 자신만의 수단과 통찰로 진진하고 순수한 ‘나만의 작품’을 시도했다고 말하는 세잔의 정신을 본다. 내가 미술관에 가서 만난 어떤 작품. 그 작품만이 지닌 고유한 형식과 재료, 그만의 독특한 색채와 형태, 그만의 오묘한 에너지와 개성, 그만의 비범한 철학과 주장을 내 몸과 정신으로 직접 파헤쳐 마주했을 때 느끼는 희열. 그러니까 세상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그 작가만의 독창적인 미학과 감각을 외부로 표현해 낸 작품을 만났을 때 맞이하는 찬란한 기쁨. 그 감정과 동일한 것을 나는 일상에, 도처에 있는 이들에게서도 본다. 그 감정과 동일한 것을 나는 일상에, 도처에 있는 이들에게서도 본다. 그러니까 그들 모두 예술가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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