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숲 Untold Originals (언톨드 오리지널스)
천선란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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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천선란 님의 신간이 나오면 문자가 온단다. 이번에 읽은 <이끼숲>이라는 책은 그렇게 알게 되어 읽은 책이란다. 아빠가 좋아하는 SF 소설은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SF 소설인데, 천선란 님의 소설들이 그런 아빠의 취향에 딱 맞는 것 같단다. 그리고 Jiny도 천선란 님의 책을 읽곤 하니까 같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출간 문자를 보자마자 구매했단다.

이번 책은 <바다눈>, <우주늪>, <이끼숲> 이렇게 3편이 실려 있는데, 독립적인 소설이 아니라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연작소설이란다. 아빠는 이런 소설 구성을 좋아한단다. A라는 작품에서는 까메오나 단역으로 나왔던 인물이 B라는 작품에서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구성 말이야. , 그럼 이야기를 해볼게.


1.

먼저 <바다눈>이라는 작품을 이야기 볼게. 먼저 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세상을 이야기해주어야겠구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지하 세계를 구축해서 살고 있단다. 왜 지하 세계에서만 살고 있는지는 소설의 뒷부분에 나오니 그때 자세히 이야기해주겠지만, 대략 왜 그런지는 추측해 볼 수 있겠구나. 대기는 점점 오염되고 이상기후로 인해 지구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서, 지상에서는 살 수 있게 되어서 지하에 살고 있을 것 같구나.

<바다눈>의 주인공 마르코는 15살로 제작실 경비를 서고 있단다. 마르코의 친구들로는 소마, 유오, 톨가, 의주 등이 있단다. 경비를 서던 마르코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끌려 갔는데, 그곳에는 은희라는 동갑내기 경비원이 있었어. 그 이후 마르코와 은희는 친하게 되었단다. 마르코는 은희에게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은희는 마르코를 지하 깊이 위치하고 있는 재즈바에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노래를 불러 주었단다. 은희는 그곳에서 이미 유명했었어.

마르코가 따르는 선배 커커스가 있는데, 커커스를 비롯하여 많은 동료들이 임금인상을 위한 파업을 했어. 마르코는 입사한 지 얼마 안되어 동참하지 않았고, 파업한 이들을 대신하여 대리 근무를 하게 되었단다. 은희는 집안일로 결근을 하였고, 마르코는 은희의 집을 찾아갔단다. 은희는 외진 곳에서 좋지 않은 집안 환경이었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었어. , 가슴 아픔 이야기인데,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지은이의 경험에서 소재를 따 온 것 같구나. 지은이 천선란 님의 어머니는 많지 않은 나이에 치매에 걸려서 고생하시고 계시거든. 치매라는 것이 완치는 없다고 하는데, 부디 진행이 아주 천천히 되길

금방 끝날 것은 파업은 길어지면서 4개월간 이어졌고, 커커스는 마르코에 동참해줄 것을 부탁해서, 마르크도 고민 끝에 서명을 했단다. 하지만 그들의 파업은 실패를 했어. 그래도 회사가 내년에는 임금을 인상해준다고 약속을 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도 되려나. 긴 파업 투쟁 동안 커커스는 그만 건강을 잃고 말았고 어디론가 사라졌어.

그 해 마지막 날, 회사의 부도 소식이 전해졌어. 그리고 다른 회사가 인수를 한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약속했던 내년도 임금 인상은 사라졌지. 새로 인수한 회사는 그런 약속을 지킬 의무가 없다면서, 이런 개 뼈다귀 같은 소리가 있니. 부도가 난 것도 거짓일 수 있어. 임금 인상을 해주기 싫어서 회사 명의만 지인이나 친척에 넘길 것일 수도어느 곳에나 직원들을 하나의 부속품처럼 보는 회사의 본능은 똑같구나.

그 해 마지막 날 마르코는 다시 은희의 집을 찾았단다. 하지만 은희는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계속 찾아갔지만 나타나지 않았단다. 마르코와 은희가 애틋한 정을 쌓아가던 소설의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우울하고 암울함으로 가득 찬 이야기였단다. 어쩌면 우리가 맞닥뜨릴 미래의 모습이 아닌가 싶구나.


2.

두 번째 소설은 <우주늪>이라는 소설이란다. 의주와 의조는 쌍둥이란다. 의주는 앞선 소설 <바다눈>에서도 마르코의 친구로 잠시 등장했단다. <우주늪>의 주인공은 의주의 쌍둥이 동생 의조였단다. 미래에서는 계획에 없는 사람들은 사회 생활이 허락되지 않는 세상이었단다. 지하 세계에서 살아가도 보니 사람수에도 제한을 두고, 신고 받은 사람만이 칩을 받고 머리에 그 칩을 심어야 했단다. 그 칩이 없는 사람은 제거당할 수도 있었어. 의주와 의조를 임신했을 때 쌍둥이였던 것을 몰랐던 부모님은 한 명만 신고를 했고, 칩도 하나만 받게 되었단다. 나중에 쌍둥이인 것을 알게 되고 칩을 하나 더 받으면 좋았겠지만, 그곳 세계에서는 그런 것이 용납되지 않는 콱 막힌 사회였던 것 같았어.

부모님은 결국 부모님들의 가위바위보를 해서 칩을 넣을 아이를 결정했고, 그렇게 의주의 머릿속에 칩을 넣었단다. 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할 의조를 부모님은 죽여야 했지만, 자기 자식을 죽일 수 있는 강심장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되겠니. 부모님은 의조를 집안에서만 키우기로 했단다. 집에서만 지내는 어린 시절 의조는 어느날 집 밖으로 나갔다가 이를 알게 된 아버지가 혼비백산이 되어 의조를 데리고 온 적이 있었단다. 다행히 칩 센서가 설치된 곳까지 안 갔고, 의조를 알아챈 사람들도 없었어. 그 이후 의조는 계속 방안에서는 지냈고, 의조는 자기 대신 선택되어 바깥 생활을 하는 의주를 미워하기도 했단다.

의조는 어느날 도시의 환풍구를 위한 배관 통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배관통로를 통해 도시 곳곳을 다니게 되었단다. 주로 의주가 다니는 곳을 돌아다녔어. 가끔 창살 밖 세상을 쳐다보기도 했는데, 그때 창살 밖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도 했어. 나중에 둘은 대화도 나누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치유키로 의주의 친구 중에 한 명이었어. 치유키는 의조를 알게 된 사실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어. 둘은 호감을 갖게 되었지만, 등록이 안된 의조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지.

의조는 배관통로를 다니다가 벽에 이곳은 위험하니 가지 말 것이라는 내용의 낙서를 했어. 이건 자신을 위한 낙서였단다. 그런데 어느날 그 낙서에 답변이 달려 있는 것을 보았단다. 그러니까 배관통로를 은밀히 다니는 존재가 의조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이지. 의조에게는 꿈이 있단다. 치유키가 알려준 폭탄이 가득 들어 있는 방을 찾는 거야. 그리고 그 폭탄을 이용해서 이 도시를 날려버리는 것…. 의조는 그 꿈을 위해 오늘도 배관통로를 산책하고 있단다. 의조 같은 삶이라면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까.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 세상을 없애고 싶어하는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가는구나.


3.

세 번째 마지막 이야기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끼숲>이란다. 마르코의 친구 소마는 통신국에서 일하는데 며칠 째 회사에 안 오고 있었어. 소마가 그렇게 집에만 있는 이유가 있었어. 얼마 전에 친구 유오가 죽었기 때문인데, 유오가 죽은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 때문이었어. 유오가 하는 일은 건축 관련 일인데, 그 일이 좀 위험한 일이었단다. 유오처럼 위험한 일을 하는 경우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클론을 만들어 놓는단다. 그 클론이라는 중상을 입을 경우를 대비한 것인데, 이번처럼 죽었을 경우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단다. 유오처럼 클론의 주인이 죽은 경우는 더 이상 클론이 필요가 없어지게 되어 클론을 폐기하게 되는데, 유오의 클론도 폐기하기로 결정되었고, 그 소식을 마르코가 소마에게 전해주러 왔단다.

마르코는 소마에게 유오의 클론을 막아야 하지 않냐고 이야기를 했고, 소마도 그 생각에 동의했단다. 유오가 죽기 전 꿈이 있었는데, 마르코와 소마는 유오의 꿈을 유오의 클론으로 이루어 주자고 했어. 유오의 꿈은 지상 세계에 있는 숲에 가는 것이었단다. 유오의 클론이 비록 유오의 기억까지 갖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야. 마르코와 소마의 친구들인 의주, 톨가, 치유키 등도 그들을 도왔단다.

<이끼숲>에 왜 그들이 지하 세계에서 생활하게 되었는지 이야기가 나온단다.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정책으로 광합성을 잘하게 하려고 오래된 나무를 뽑고 그 자리를 어린 나무로 심는 정책이 있었어.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정책이었던 것 같은데 이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정책이란다. 소설에서는 그렇게 심은 어린 나무들에 전염병이 생겼고, 전염병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오히려 산불로 전염병의 경로를 차단하자고 했는데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악영향만 주어 산불과 나무의 전염병으로 황폐화되었고, 더 이상 지상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 지하 세계를 건설하고 그곳에서 생활했던 것이란다.

이 지하 세계의 꼭대기는 숲으로 이루어진 돔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실제로 그곳까지 가 본 사람은 드물었단다. 소마와 마르코의 친구들과 함께 유오의 클론을 빼왔고 소마가 유오의 클론을 업고 돔까지 도착했단다. 돔에는 지하세계의 통치자가 있었는데 소마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어. 그 통치자는 마치 소마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어. 돔에는 소문과 달리 숲이 없었고, 말라 비틀어진 나무들만 있었단다. 그곳도 이미 죽음만 가득한 공간이었단다. 통치자는 소마가 돔 밖에 나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걸 막지 않겠다고 했어. 그 또한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보였단다. 소마는 유오의 클론을 업고 돔 밖으로 나갔어.

거대한 녹색 벽이 보였단다. 소마는 무작정 그 벽을 향해 갔단다. 벽 근처에 가니 그 벽의 정체가 드러났단다. 거대한 숲의 시작이었어. 그곳까지 유오의 클론을 업고 온 소마는 지쳤고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단다. 잠에서 깬 소마, 그곳에서는 깨어난 유오의 클론이 있었어. 그런데 그 클론이 유오의 기억마저 갖고 있었단다. 그렇게 유오의 꿈은 완성되었단다.

올 여름은 엘리뇨 때문에 경함하지 못한 엄청난 장마를 겪고 있단다. 그와 함께 무더위도 함께 찾아왔는데,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겠지. 그 뿐만 아니라 얼마전에 지구의 평균 기온을 연일 경신하고 있어. 기후 위기는 이제 미래가 아니고 현실이란다. 이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지구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될 거야. 어쩌면 이 소설처럼 지하 세계를 건설해야 할 수도 있어. 그런 지하 세계에서라도 생활할 수 있으면 다행일 수도이런 비극적인 미래를 막기 위해서 모든 인류들이 노력을 해야겠지만, 이미 편안함에 익숙한 사람들이 할 수 있을는지

정말 걱정이구나.


PS:

책의 첫 문장: 노래가 들려온 건 제작실 서문 쪽에 있는 반 층짜리 계단 아래였다.

책의 끝 문장: 절대로.

"너 그 사람의 목소리에 흠뻑 빠졌구나! 그 목소리를 사랑하는 거야. 상대방이 가진 만 가지의 특징 중에서 단 하나의 특징이 마음에 쏙 들어오면, 사랑이 시작되는 거 같아. 나는 그 형이 문장 끝에 마침표를 잘 찍는 게 그렇게 좋았어. 다른 사람들은 그 말투가 딱딱해서 정이 안 간다고 하던데, 나는 자기 생각이 확고한 사람 같아서 좋았거든." - P40

"인간 복제는 인간의 한계 같아. 그 한 사람을 온전히 살릴 수 있다면 아무도 인간 복제 따위는 하지 않으려 할걸. 인간은 영생에 실패했고, 뇌 정복에 실패했어. 전부 다 실패했어. 고작 똑 같은 인간 만들고 땅이나 파고 있다니. 최악의 진화 아니니? 이런 세상인 줄 알았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건데. 너는?" - P69

어떤 것도 안 됐을 거야. 지상이 황무지라고 하더라도 어쩌다 남은 들꽃 한 송이에 그 애는 모든 가진 듯 행복해했겠지. 세계를 지배한 절망보다 나약하게 핀 희망을 사랑했을 테니까.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면서. - P156

이끼가 처음 등장하고 그로부터 일억 년 후, 관다발식물이 등장해 지표면세 붙어 퍼지는 이끼와 다르게 하늘로 솟아오르며 광합성을 시작했다. 고생대 데본기에 들어선 뒤에야 흩어져 있던 식물들이 군집을 이룬 숲이 등장했다. 고생대 초창기에는 커다란 고사리류가 이끼와 함께 지구를 뒤덮었다가, 고사리류는 버티지 못하고 멸종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침엽수 수목들이 대신하고 꽃은 더 나중에야 등장한다. 식물의 생태는 침묵 속에서 그 어떤 생태보다 소란스럽게 격변했다.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숱한 개체가 근본 없이 생겨나는 동안 이끼는 가장 낮은 곳에,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는 축축한 틈 곳곳에 머물고 있다. 멸종되지 않고. - P163

바위틈에도 살고, 보도블록 사이에도 살고 멸망한 도시에서도 살 수 있으면 좋잖아. 고귀한 필요 없이, 특별하고 우아할 필요 없이 겨우 제 몸만한 영역만을 쓰면서 지상 어디에서든 살기만 했으면 좋겠어. 햇빛을 많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물을 마시지 못해 메마를 일도 없게. 그렇게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야. 시시하겠지만 조금 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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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조선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 있어서 사진은 결코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았다. 카메라는 자주 폭력적이었다. 사진에 대한 민중의 저항에 그런 폭력성에 대한 자각이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늘 피사체가 되어야만 하는 처지에선 사진을 결코 좋게 볼 수 없었으리라. 조선의 운명도 그와 같지 않았을까?


(26)

개화기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선인들의 지극한 담배 사랑에 놀라곤 했다. 독일인 애쏜 써드는 1902년에 발표한 글에서 대한제국의 남자들이 얼마나 골초인가 하면 그들이 50여 년 일생 동안 피우는 담배연기만으로도 우리나라 베를린의 국립보건소 인원 전체를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죽게 할 만하다. 그런데도 조선 남자들은 모두가 괄괄하고 건강하게만 보인다고 썼다.


(53)

김옥균은 유길준에게 귀국을 만류했지만 유길준은 다음과 같은 답으로 거절하고 12 2일 일본을 떠났다.

형님께서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는 생각은 정말로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귀국을 해야 하겠어요. 물론 들어가서 장차 어떤 일을 당할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건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들어갈 수가 없겠지요. 또 나는 살기 위해서 형님들과 관련이 없다고 변명하러 들어가려는 것도 아닙니다. 변명이 될 일도 아니고 형님이나 나나 내일의 일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지금 형님의 처지와는 좀 달라요. 형님들은 어떻게 됐든 한번 일을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요. 그런데 까닭 없이 일본에 앉아서 나라의 불행한 현실만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들어가서 한번 부닥쳐볼 작정입니다. 요행히 살아남아 발붙일 곳이 마련된다면 나는 국민을 계몽하는 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내가 국내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 장차 형님에게도 재기하시는 데 절대 필요한 발판이 되지 않겠습니다.”


(108)

사실 조선의 기독교야말로 전형적인 역사적 상황의 산물이었다. 물론 기독교가 조선인들에게 출애굽기만 가르친 건 아니었다. 1900년대 후반 일제의 압박이 강해지면서 정반대되는 메시지를 전파하기도 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서양을 대변하는 것으로 여겨진 기독교는 일부 조선 민중에게 하나의 대안 모델이었던 동시에 내외로 착취당하는 현실에 대한 보호막이나 방파제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보호받을 길 없는 민족공동체에서 보호와 위로가 주어지는 교회공동체로 발길을 돌렸다고나 할까?


(146-147)

김옥균에 대한 평가는 양극을 치달린다. 개화파와 척사파의 견해가 다른 건 물론 개화파 내부의 견해도 다르다. 정변 동지 서재필은 김옥균을 시대의 추이를 통찰하고 조선을 힘 있는 근대 국가로 만들기를 절실히 바란위인으로 평가했지만 정변에 불참한 윤치호는 위로 나랏일을 실패하게 하고 아래로 민심을 흔들리게 한 경망스런인물로 폄하했다.


(199-200)

참으로 묘한 일이었다. “10년 전 개화파의 갑신정변에 밀려났던 대원군이 조선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정치 개혁의 얼굴 마담이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1894 7 28(음력 6 26) 정오 74세의 노인인 대원군은 비상시국의 첫 번째 회의를 주재하면서 나는 완고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완고의 장본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개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원군은 이 회의에 군국기무처라는 이름을 부여하면서 개혁지지를 선언하고 김홍집을 영의정 겸 군국기무처 총재로 임명했다.


(231)

김용옥은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은 뒤부터 조선은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 상태에 들어갔으며 이때부터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집어먹기 시작했다우금치 전투 이후 일본의 조선 침탈은 가속됐고 일본은 식민통치 기간에 좌우 이념 대결, 6.25 동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모든 죄악을 다 뿌려놓은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296)

민비 시해의 음모 단계에서부터 가담한 조선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있던 우범선(1857~1903)이었다. 훈련대는 그해 4월 친일정권에 의해 창설되었는데 우범선은 민씨 정권의 훈련대 해산계획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에게 포섭된 우범선이 이 사건에서 맡은 임무는 훈련대 병력동원과 민비의 시신 처리였다. 폭도들에 의해 시해된 후 불태워진 민비 시신의 타고 남은 재는 궁궐 내 우물에 버려졌고 유해 일부는 우범선의 지시로 휘하의 윤석우가 증거인멸을 위해 땅에 묻어버렸다.


(349)

, 무거운 곡괭이가 검은 흑벽을 크게 찍어내자 돌연 반짝반짝 노랗게 빛나는 것이 보였다. ‘노 터치! 노 터치!” 즉각 미국인 채굴 감독의 고함이 광구 속을 쩡쩡 울렸다. 조선인 광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 금맥이 나왔구나. 땅속에서 금맥이 드러날 때마다 미국인들이 지르는 소리는 똑같았다. 노 터치(No touch, 손대지 마라)! 혹여 금을 훔칠까봐 소리치는 것인데 조선인 광부들의 귀에는 노다지로 들렸다. 그들은 노다지을 가리키는 양인들 말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자신들도 금맥을 발견하면 즉각 소리쳐서 금이 나왔음을 알렸다. “노다지! 노다지!” 평안북도 운산 금광의 조선인 광부들에게 황금은 곧 노 터치였다. ‘노다지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광물이 쏟아져나오는 광맥이 발견되었다는 뜻의 광산 용어로 쓰이다 이내 큰 횡재를 뜻하는 말로 조선인의 일상생활 속에 들어갔고 이제 10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엿이 한국어사전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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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7-12 0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울 내용이 많아서 좋아요.

bookholic 2023-07-12 21:03   좋아요 0 | URL
금방 까먹아서 문제입니다 ㅎㅎ
 
녹색평론 2023년 여름호 - 통권 182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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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기다리고 기다리고 녹색평론 182호가 돌아왔단다. 2021 11, 창간 30주년과 함께 1년간 쉰다고 했었어. 2022 30년만에 대한민국은 녹색평론이 없는 1년을 보냈고, 많은 것이 바뀌었단다. 기후 위기는 더욱 강력해지고, 코로나는 만성이 되어 규제를 완화되고,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어버렸단다. 녹색평론의 쓴소리가 필요한 시기에 녹색평론이 잠시 없었어. 아빠는 올해 1월이 되자마자 녹색평론 182호를 검색해 보았단다. 쉬기로 했던 1년이 지났으니까.... 그런데 소식이 없더구나.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검색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소식 없던 녹색평론. 초여름 더위가 아빠를 짜증내기 시작할 즈음 나타났단다.

새롭게 계간지로 돌아왔어. 계간지로 바뀌어서 앞으로는 적게 만나게 되겠지만 반갑더구나. 녹색평론이 없던 1년 동안 녹색평론이 추구했던 철학은 더 후퇴한 사회가 되었으니, 얼마나 또 할 말이 많을까. 반가워서 바로 주문을 해서 읽었어. 예전 그대로 우리 주변의 숨겨져 있던 불편한 진실들을 많이 이야기해주었단다. 불편한 진실이 불편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두려운 미래를 예견하고 있어서 걱정도 같이 쌓였단다.

앞으로는 쉬는 기간 없이 우리 사회와 생태계를 위해서 좋은 가이드를 해주길 바란다. 녹색평론이 읽기 어려운 글들도 있지만, 아빠도 그들의 노력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읽어보련다. 그러면 이번 호에서 이야기해 준 것에 대해 몇몇을 소개해 줄게.

1.

아빠가 얼마 전에 읽었던 <6℃의 멸종>이라는 책에서도 나왔던 지구를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 1.5℃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녹색평론에서도 했단다. 아무래도 지구에 놓인 위기 중에서 가장 심각하고 급한 것이 기후 위기이다 보니, 그 주제를 먼저 다룬 것 같구나. 지구 구성원 모두 다 함께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지만, 전쟁이나 경제성장 등 역행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다. 우리나라 정부의 환경정책도 환경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환경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만 일삼고 있다고 하는구나. 환경부에서 하는 일이 환경을 살리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규제를 완화해주는 일만 하고 있대. 설악산 케이블카도 문제없다고 도장 찍은 준 것이 환경부라고 하니, 정말 속이 부글부글 끓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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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9)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환경성, 경제성 등 모든 면에서 낙제점으로 이미 지난 정부 때 불허했음에도 막가파식 억지 논리를 받아들여 환경부는 손바닥 뒤집듯 환경영향평가를 협의해주었다. 한국환경연구원, 국립공원공단, 국립생태원, 국립환경과학원, 국립기상과학원 등 5개 전문기관이 부정적인 검토의견을 냈지만 대통령의 공약사항은 무조건 통과다. 해당 지역은 국립공원의 자연보전지구, 백두대간 보호지역 중 핵심구역,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보호지역 카테고리II(보전 중심 관리),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 국내외 법제도로 겹겹이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이제 우리 국토 중 관광용 케이블카가 놓이지 못할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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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정책도 문제란다. 국제 협약에 의해 아니 그것이 아니더라도 인류가 살 수 있는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탄소중립은 빨리 실천해야 한단다. 2030년까지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은 5억톤이 넘게 남았는데, 현정부는 자신의 임기까지 25%만 줄인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단다. 임기가 끝나면 2030년까지는 3년 남았는데, 그때 나머지 70%를 줄여야 하는데, 다음 정부한테 책임을 떠넘기면서 죽어봐라, 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니.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환경부가 환경을 파괴하는 정부가 25% 약속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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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우리가 2050년 탄소중립을 하려면 2021 6 8000t이 넘는 총배출량을 2050년에는 8000t(시나리오 A) 수준으로 줄이고, 8000t을 흡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2030년까지는 총배출량 5 1200t으로 줄여야 한다. 앞으로 7년여 동안 1 6800t을 줄이는데, 그다음 20년은 4 3200t을 줄여야 하니 감축부담을 뒤로 미룬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수립한 계획의 가장 큰 특징도 2030년 감축목표량을 윤석열 정부 임기 이후로 떠넘겼다는 것이다. 현 정부 임기 동안 2030년까지의 총감축량 25%를 줄이고, 다음 정부는 3년 만에 75%를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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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번 호에서 많은 이야기를 다룬 것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란다. 아무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때문이겠지. 러시아의 명분 없는 전쟁 때문에 양국의 많은 군인들과 국민들이 죽은 것이 가장 비극적인 일이긴 하겠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봐도 심각한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있단다. 그리고 두 나라 간의 휴전이나 정전에 대한 전제 조건이 까다로워서 당장 전쟁이 끝날 것 같지도 않아서 더욱 심각하단다. 아빠는 잘 몰랐는데, 전쟁이라는 것이 엄청난 탄소를 배출한다고 하는구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이 일어난 후 첫 7개월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는 네덜란드가 배출한 양과 같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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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환경부 등이 전쟁 9개월쯤 군사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계하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쟁 7개월 동안 배출된 온실가스는 약 1tCO2eq에 달하고, 이는 네덜란드와 같은 국가가 같은 기간 동안 배출한 온실가스량과 유사한 수준이다. 그러나 전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전투는 우크라이나에서 재생에너지 단지가 밀집한 지역 위에서 벌어지고, 기후위기 대응 프로그램이 운영되던 시설 인근을 배경으로 하기도 한다. 전쟁은 어떤 경제활동보다도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한 국가와 시민들의 노력, 성과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기후위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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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전쟁은 생태적 비용이 엄청 들어가기 때문에 이 전쟁뿐만 아니라 그 어떤 전쟁도 일어나서는 안 된단다. 생명의 희생뿐만 아니라 지구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키기 때문이야.

….

녹색평론이 잠시 쉬기로 했던 2021 11월은 코로나가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던 시기였고 거의 모든 규제가 없어진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 환자가 간간히 발생하고 있단다. 이제 코로나는 토착화되었다고 볼 수 있단다. 하지만 안심을 놓기에는 이르단다. 앞으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우리가 모르고 있던 바이러스의 출현은 더 잦아질 것이고, 그것들은 더 빨리 전 세계로 퍼질 것이라고 예상들하고 있단다. 이번 호에서 코로나에 대한 리뷰를 두 개 꼭지 들어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

그 밖에 녹색평론에서 꾸준히 다루고 있던 농업과 농촌 살리기에 대한 주제도 이번 호에서 다루었고, 마지막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서평들로 마무리를 했단다. 이번에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해주었는데 아빠는 <해월 최시형 평전>이라는 책과 <노동자 없는 노동>이라는 책을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읽어보려고 리스트에 올려 두었단다. 이렇게 해서 녹색평론 182호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았단다.

이 책의 뒷부분에 보면 각 지역별 독자모임에 대한 실려있단다. 우리 동네 근처에도 모임 소식이 있더구나. 아빠가 녹색평론을 십 년 넘게 읽었지만, 그런 모임에 나가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오랜만에 재개한 녹색평론을 읽다 보니 녹색평론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녹색평론에서 추구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실천할 수 있는지 서로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그런데 아빠가 이런 생각만 하고, 실천까지 옮기는 데는 또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그리고 굳이 그 모임까지 안 나가고 우리 식구들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해 봐도 좋을 것 같구나. 너희들도 학교에서 탄소중립이라든가, 기후위기 같은 것을 공부하는 것 같으니 말이야.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 그리고 녹색평론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다시는 녹색평론이 휴간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너무 늦은 것을 아닐까?

책의 끝 문장: 과연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이것은 한가한 관전자의 물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걸린 절체절명의 화두다.


전쟁이라는 비상상황 앞에서 기후대응은 언제까지나 뒷전으로 미루어도 좋은 것일까. 현재 기후과학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일은 온난화로 인해서 영구동토층과 심해에 묻혀 있는 메탄이 대기 중으로 풀려나서 지구온난화가 손쓸 수 없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이 위험을 전 세계 440여 기 원전에서 멜트다운이 일어나는 일에 비견하는 전문가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지구온난화의 결과로 많은 지역, 특히 남반구에서 전쟁의 참화와 하등 다를 것 없는 재난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인류, 특히 북반구 선진국 주민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무기를 들지 않고도 일상적으로 전쟁에 가담해왔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약탈적 관계 한가운데에 기후변화와 군국주의가 맞물린 위기가 놓여 있는 것이다. - P3

환경정책은 실종되고 오로지 산업정책만 난무한 이번 정부의 폭주는 고작 1년 만에 국토 곳곳을 난도질하며 짓밟고 있다.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지구적 합의에도 빠른 걸음으로 역행하는 정부다. ‘대한민국 1호 세일즈맨’을 자처하는 대통령은 환경부에서 산업부처가 되라면서 대한민국의 환경과 우리의 미래를 시나브로 팔아먹고 있다. 다만 무엇을 대가로 받는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환경부가 아주 기본적인 존재의무도 저버리고 반(反)환경 정권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는 몇 가지 사례들을 나열해보겠다. - P25

한번 훼손되고 오염된 땅을 농지로 복원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농지에 불법폐기물 투기하는 일도 종종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것도 빨리 해결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서둘러 계획을 세워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지목이 농지인 것 외에도 간수할 방법도 찾아야 됩니다. 학교에서 농사를 가르치고, 지역사회마다 텃밭을 마련해서 사람들이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고, 아직 남아있는 농지를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됩니다. - P158

지금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지구 위에서의 삶(生) 자체의 종언에 맞닥뜨리고 있다. 생물종, 바다, 숲, 호수, 강이 퇴락하고 있다는 기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현상이 지구의 생물지구화학 체계들을 교란하고 있다. 우리는 마비가 된 것 같다. 아니면 매혹되어 있는 것일까. 지금 인류는 더할 나위 없는 규모로 죽음을 유발하면서, 동시에 죽음을 있는 힘껏 거부하고 있다. 어차피 맞게 될 죽음을 이토록 애써 부정하거나, 언젠가 닥칠 죽음을 예고할 뿐인 얼굴의 주름 같은 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토록 돈을 퍼붓는 문화는 없다. 기술에 의해서 우리의 두려움은 더욱 확대되었고, 죽음과 대면하는 일은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일이 되었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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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3-07-12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사 보고 녹색평론 소식을 알게되었습니다.
https://v.daum.net/v/20230612170600905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 한 분이 녹색평론 기사 한 꼭지를 읽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bookholic 2023-07-12 21:02   좋아요 1 | URL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참 멋지셨네요~~^^
 

















(172)

혹은 나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아예 이유가 없든가. 혹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평균적인 사람은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아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끝에 합리적인 윤리학을 만들어 낸 다음, 그것에서 결점이 발견되었을 때 적절한 수정을 가한다고? 그건 순수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일들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그들의 인격은 자기들이 제어할 수 없는 영향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입니까? 본인이 그것을 원하고, 또 그것에 의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


(198)

문제는둘 중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당신이 관측을 행하기 전에는, 파동함수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당신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파동함수는 단지 5050의 확률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가르쳐 줄 뿐이에요. 하지만 일단 당신이 관측을 행한 후에는, 다시 한번 그 계를 관찰하더라도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와요. 처음에 상자를 들여다보았을 때 고양이가 죽어 있었다면, 다시 들여다 보았을 때도 여전히 죽어 있을 거라는 얘기죠. 전문 용어로 말하자면, 관측한다는 행위가, 각기 다른 가능성을 대표하는 두 개의 파동함수의 혼합을 단 한 가지의 가능성만을 대표하는 순수한파동, 그러니까 고유 상태라고 불리는 것으로 변화시켰다고 할 수 있어요. 이것이 바로 파동함수의 수축이라고 불리는 현상이죠.


(281)

그리고 만약 당신이 개개의 광자가 어떤 진로를 취하는지 관측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 계를 하나의 고유 상태로 수축시키고간섭 패턴을 파괴하고, 홀로그램을 망쳐버릴 거예요. 하지만 두 줄기의 광선이 방해를 받지 않고 다시 하나로 합치게 놓아둠으로써 두 개의 고유 상태들이 상호작용할 기회를 준다면, 홀로그램은 사라지지 않고 양쪽의 고유 상태들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확고한 증거로서 영구히 남게 되죠.


(322)

이봐요, 걱정하지 말아요. <ASR> <버블>의 존재 이유가 인간에 의한 가능성의 고갈을 방지함으로써 우주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당장 전 세계에 발표하지는 않을 테니까. 사람들은 설명이 없었어도 <버블>이 출현한 것만으로도 난리를 쳤잖아요. 진실이 너무나도 폭발력이 큰 탓에, 사람들이 그걸 오해하는 쪽이 위험할지, 아니면 그걸 제대로 이해하는 쪽이 더 위험할지 갈피를 못 잡겠군요. 인간의 지각이 우주 대부분을 소멸시켰다. 인생이란 다른 버전의 나 자신을 끊임없이 학살하고 행위다. 대중에서 이런 아이디어를 던져주면, 그걸 중심으로 도대체 어떤 컬트 교단이 생겨날지 상상해 봐요.


(401)

그래서 나는 인간답게 기다렸다. 무의미하며 비생산적인 두려움에 고뇌하면서, 상상 불가능한 것을 상상해 보면서 말이다. 만약 이 행성 전체가 영원히 확산 상태에 놓인다면,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는 것일까? 왜냐하면 수축은 아예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그 무엇도 현실이 될 수 없으니까? 아니면 모든 것을 따로따로 체험하게 될까? 한 고유 상태당 고립된 의식이 하나씩 존재하는, 다세계 모델을 정말로 현실화한 듯한 방식으로 말이다. 혹은 모든 것을, 동시에 경험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들이 불협화음처럼 중첩되는 식으로? 그 어떤 미래에서도 모든 가능성들이 불협화음처럼 중첩되는 식으로? 그 어떤 미래에서도 수축 현상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내가 지금까지 경험해 왔든 일들-아니면 적어도 수축에서 살아남은 나의 기억들-, 그런 우주의 본질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과거를 유일무이한 것으로 만드는 수축 과정이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면, 경험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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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 서울편 4 - 한양도성 밖 역사의 체취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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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 : 서울편 4>를 읽었단다. 이번으로 서울편은 마무리가 되었단다. 4권에서는 성북동, 선정릉, 봉은사, 겸재정선미술과 허준박물관, 망우리역사문화공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다들 유명한 동네이고 장소여서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그곳에 깃든 역사는 모르고 있었단다. 먼저 나온 성북동은 <성북동 비둘기>라는 유명한 시 때문에 알고 있는 동네이지, 가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그런데 그 성북동은 근대 사회를 거치면서 형성된 동네로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동네가 되었다고 하는구나.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에 위치하여 성북동이라고 불렀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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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과 맞붙어 있는 산동네로 북악산(백악산) 구준봉에서 발원한 성북천의 산자락에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집들이 무리 지어 들어서 있다. 타동네 사람들은 성북동이라고 하면 번듯한 외국 대사관저와 높직한 축대 위의 대저택들이 들어서 있는 부촌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드라마에서 부잣집 사모님이 전화를 걸 때 여기는 성북동인데요라는 대사가 나오곤 한다. 그러나 이 집들은 1970 12 30, 삼청터널이 개통된 이후 양지바른 남쪽 산자락을 개발해 꿩의 바다라는 길을 중심으로 들어선 신흥 저택들이다. 성북동에는 이곳 외에도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되어온 묵은 동네들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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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사람들 거주를 금지하던 곳이었는데, 18세기 영조 때부터 살기 시작했고 성북둔이라는 둔전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근현대로 오면서 이곳에 별장과 별서가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구나. 이곳 주민들이 복숭아나무를 심어서 봄이면 복사꽃이 만발하여 복사꽃 마을로 부르기도 했다는구나. 성북동과 관련된 인사들인 이태준, 김환기, 박태원, 한용운, 윤이상, 김광섭 등의 일화도 들려주었단다. 그리고 대원각이라는 요정의 주인 김자야라는 분이 법정 스님께 기증하여 길상사로 다시 태어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길상사도 이곳 성북동에 있단다.

이 이야기는 아빠가 예전에 <백석 평전>을 이야기할 때도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단다. 왜냐하면 김자야라는 분이 바로 백석과 사랑에 빠졌던 진향이라는 기생이었거든.. 본명은 김영한이었고자야라는 이름도 백석이 지어준 이름이었다고 하는구나. 대원각의 재산이 아깝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의 자야가 어떻게 답변했는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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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2)

일선에서 물러난 김자야는 스승 하규일의 일대기와 가곡 악보를 채록한 <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펴냈다. 그러다 1987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다가 불현듯 대원각을 절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법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법정은 주지를 맡아본 경험이 없고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라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거절했다. 이후 자야가 10년을 두고 부탁하자 법정은 마침내 이 곳을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이자 맑고 향기롭게운동의 근본 도량으로 삼기로 했고, 대원각은 1997년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야게는 길상화라는 법명이 주어졌다.

당시 대원각의 재산은 시가 1천억 원이 넘는 것이었다. 기자간담회 때 그 많은 재산이 아깝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야는 “1천억은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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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시구나.

1.

서울 한양도성 밖에는 왕릉이 많이 있단다. 그중에 선정릉을 소개해 주고 있단다. 선정릉은 선릉과 정릉을 함께 부르는 말인데, 선릉은 강남 근처에 있는 왕으로 2호선 지하철 역으로 유명하고, 정릉은 아빠가 알기로는 서울 북쪽 국민대학교 근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걸 왜 함께 선정릉이라고 부르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정릉은 성북구에 있는 정릉이 아니고, 선릉 옆에 함께 있는 정릉이라고 하는구나. 그리고 선릉역 말고 선정릉역이라는 지하철도 있다고 하는구나. ㅎㅎ 아빠가 시골 촌놈 티를 팍팍 냈구나.

선정릉은 그럼 누구의 릉이냐먼저 선릉은 성종과 성종의 왕비인 정현왕후의 릉이라고 하는구나. 보통 부부는 합장해서 하나의 릉으로 조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종과 정현왕후의 릉은 각각 떨어져서 조성했다고 하는구나. 그래도 두 개의 릉을 합쳐서 선릉이라고 부른대. 예전에 이곳에 정릉까지 포함해서 묘지가 일단 세 개가 있으니, 누군가 잘못 알고 삼릉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고 하는구나. 여긴 엄연히 릉은 선릉과 정릉, 두 개가 있어 삼릉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하는구나. 그럼 정릉은 누구의 릉이냐면, 바로 중종의 릉이란다.

왕릉들이 누구의 왕릉인지는 외워도 시간이 지나면 늘 헛갈리는구나. 지은이 유홍준 님도 그래서 문화재청장 시절에 왕릉을 부를 때 왕의 이름과 같이 부를 것을 제안했다고 하더구나. 성종대왕 선릉, 중종대왕 정릉, 세종대왕 영릉, 정조대왕 건릉 이렇게 말이야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당시 국회의원과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거절을 했다고 하는구나. , 왜 그랬을까. 이름 조금 길어지는 것이 그렇게 불편했을까? 국회의원과 전문가들 중에 유홍준 님을 싫어하는 이들이 많았을 수도

선정릉 다음으로는 봉은사를 소개를 해주었단다. 강남 한복판에 왠 절이 있나, 싶지만 조선 시대에는 그곳은 그저 한양도성 밖의 마을이었던 것이란다.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가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 할 때 불교를 중흥시키려고 세웠던 절이라고 하는구나. 강남 개발이 한창일 때 사라질 뻔 했는데 당시 주지 스님인 영암 스님의 노력으로 살아남았다고 하는구나.

2.

다음은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을 소개해주었단다. 이 두 곳은 너희들과 함께 외가댁을 갈 때 늘 이정표만 보던 곳이란다. 아빠는 그 이정표들을 볼 때마다 왜 이곳에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이 있을까, 생각하고 한번도 방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단다.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이 있는 곳은 서울 강서구인데, 겸재 정선은 그곳에서 양천현 현령으로 일한 적이 있고, 허준은 그의 관향(管餉), 즉 시조의 고향이 그곳이었다는 인연이 있다고 하는구나.

책에서는 겸재정선미술관과 허준박물관의 관람기와 겸재 정선과 허준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대부분 새로 알게 된 내용들인데,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넘어갈게. 허준이 <동의보감>을 쓰면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하더구나. 첫째는 병을 고치기 앞서 수명을 늘리고 병에 안 걸리게 하는 방법을 중요시했고, 둘째는 처방은 요점만 간추려서 하고, 셋째는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약초 이름을 한글로 쓴다는 것이었대. 허준의 배려심을 느껴지는구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서울의 마지막은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이었단다.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은 오래 전에는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렀단다. 이곳에는 시인 박인환, 화가 이중석, 조봉암, 안창호의 가묘를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묻혀 계신단다. 예전에는 서울 곳곳에 공동 묘지가 있었는데, 1933년 도시 계획을 하면서 망우리 한 곳에 모았고, 그렇게 이장하면서 연고 없는 분들의 합동묘들도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유관순 누나도 그런 합동묘에 계셔서 따로 묘지가 없다고 하는구나. 안타까운 일이구나.

유럽에는 그 나라의 유명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 공원을 관광 코스로 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망우리 역사문화공원도 그런 곳과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해야 한다고 하셨어. 그러면서 우리 나라를 위해 애쓰시고, 희생하신 분들을 한번 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될 수 있게 말이야. 이곳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에는 어린이날을 지정하신 방정환 님도 잠들어 계신대. 1922 5 1일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지정했는데, 노동절과 겹쳐서 5월 첫째 일요일로 바꾸었다가 1937년 일제 탄압으로 어린이날 행사가 중단되었고, 해방 후 5 5일로 어린이날로 다시 지정했다고 하는구나. 방정환 님이 어린이라는 말과 어린이날을 만드신 분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운동도 많이 하셨다고 하는구나. 몸이 허약하셔서 1931 31살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하셨다고 하니 무척 안타깝구나.

….

여기까지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2 : 서울편 4>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이야기해 보았단다. 서울은 주로 친구들을 만나거나 행사가 있을 때만 주로 가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 탐방으로도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서울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서 가끔씩 역사탐방 하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서울편 총 4권의 각 챕터에 나와 있는 장소들을 책과 함께 가면 더 좋을 것 같구나.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성북동은 한양도성 북쪽 성곽과 맞붙어 있는 산동네로 북악산(백악산) 구준봉에서 발원한 성북천의 산자락에 성격을 전혀 달리하는 집들이 무리 지어 들어서 있다.

책의 끝 문장: 우리는 홍어 대신 코다리(명태)회를 무친 비빔냉면을 맛있게 먹으면서 계속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받은 감동을 되새김하듯 답사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동아일보> 1930년 4월 6일자에 실린 김동섭의 <성북의 향기>는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성북동에 별장이 많다. 그것은 예전 일이려니와 요새는 없던 집에 들어서곤 또 들어선다. 늙은 울송(鬱松) 밑에 양관(洋館)이 있는가 하면 좌청룡 우백호를 서로 응하고 화해서 네 귀를 든 조선식 건물이 있다. 그 뒤로 빠근히 내다뵈는 아담한 모던 빌딩이 보인다. 성북동은 이렇게 기(氣)를 피우고 있다. 어떤 사람은 십 년 뒤 평(坪) 값까지 구구(九九)를 치기도 한다. 집거간(부동산 중개업자)이라는 새 직업이 마전으로 먹고 사는 이 동리에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 P42

또 내가 존경하는 문학평론가 형님께 "형님이 해방공간에 있었으면 어떻게 처신하셨겠어요?"라고 묻자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남에 있었으면 북으로 올라갔을 거고, 북에 있었으면 남으로 내려왔겠지."
일제강점기라는 불우한 시대를 살다가 마침내 희망찬 해방을 맞이했으나 어지러운 해방공간에서 길을 잘못 들어 결과적으로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그분들과, 동족상잔의 전란 속에 남에서 북으로, 혹은 북에서 남으로 올라가고 내려오고 한 지식인들의 삶이 안타깝게 다가오기만 한다.
- P91

봉은사는 명종 5년(1550) 문정왕후(중종의 왕비)가 어린 명종을 대신해 대리청정하면서 보우(1509~65) 스님을 앞세워 조선불교를 중흥하며 선교 양종(兩宗)을 부활시킬 때 선종의 수사찰(首寺刹)이 되었다. 그때 교종의 수사찰은 세조 광릉의 능사인 남양주 봉선사였다. 그리고 보우 스님은 판선종사 도대선사로 봉은사 주지를 맡으면서 사실상 오늘날 봉은사의 중창조가 되었다. - P193

본래 불상이란 그 시대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반영한다. 삼국시대 청동불이 절대자의 친절성을 나타내는 미소가 특징이고, 통일신라 석불이 이상적인 인간상으로서 절대자의 근엄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고, 나말여초의 철불에 힘있고 현세적인 능력이 강조되어 있고, 고려시대 철불 석불이 파격적인 괴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반하여 조선시대 불상은 이 봉은사 삼존불상처럼 거의 다 조용히 앉아 있는 침묵의 좌상 모습을 하고 있다. - P219

압구정 정자를 세운 한명회는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란의 일등공신으로 이후 세조대부터 줄곧 정승 자리를 차지하고 두 딸을 예종과 성종의 왕비로 시집보낸 당대의 권세가였다. 압구정이라는 정자 이름은 한명회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예겸이라는 당대의 문인에게 부탁하여 기문과 함께 받은 것이다. 뜻인즉, 송나라 때 한 재상이 정계를 떠나 갈매기와 벗하며 지냈다는 고사를 이끌어 만년에 자연과 벗하면서 지낼 만한 곳이라고 지어준 것이다. 이후 압구정은 한강변의 뛰어난 명소로 수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시문을 남겼다. - P263

선조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을 겪었기 때문에 간혹 의주로 피란한 무능한 임금으로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선조는 문예를 아끼고 키운 인문군주였다.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펴내게 지시하며 왕실 소장본까지 내준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한석봉을 만년에 조용한 곳으로 가서 편안히 작품활동 많이 하라며 한직인 가평군수로 내려보낸 것도 감동적이다. 또 율곡 이이에게는 매월당 김시습 전기를 지어오라고 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정조 시대 문인들은 선조의 치세를 일컬어 그의 능 이름을 따서 "목릉성세(穆陵盛世)’하고 칭송했다. 풀이하자면 선조대왕 문예부흥기라는 뜻으로 명문이 나오면 ‘목릉성세’에도 이런 문장은 없었다’라며 칭송하곤 했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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