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인문학 - 인간과 더불어 사는 생명체에 대한 새로운 성찰
박병상 지음 / 이상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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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
눈물 없이 못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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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새는 단순히 운이 나빴던 걸까?

앞서 내려앉은 철새들이 평화롭게 내려갔을 뿐인데.

내려와 보기 웬 구더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허기진 철새에게 구더기는 반가운 영양식임에 틀림없으니 허겁지겁 먹었을테고,

이윽고 구더기는 보툴리늄 균을 겨울철새에 전파시킬 수밖에 없었을 터.

정신은 멀쩡한데 슬그머니 온몸은 마비되더니 날 수가 없다.

공포에 질려 물에 떠 있을 수밖에 다른 방법도 없는데

창공에서 그 모습을 본 철새들이 연이어 내려온다.

그리고 구더기를 허겁지겁 훑어 먹는다.

구더기들은 유수지에 맥없이 떠 있는 

철새의 옆구리를 뚫고 꾸물꾸물 연실 빠져나온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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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녹색평론 147>에서 인용한 <동물 인문학>의 글이다. 이 글을 보고 얼마나 울컥했는지... 겨울 철새들은 우리나라의 갯벌을 찾아 오는데, 인간들은 그들의 터전을 개발이라는 이유로 덮어버리고 그곳에 공장을 세웠다. 그래서 터전을 잃어버린 철새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더 남쪽으로 내려왔다. 먼저 온 친구들이 갯벌에 평화롭게 앉아 있어서 따라 내려왔고배가 고프니 허겁지겁 구더기를 먹었다. 하지만 먼저 온 친구들은 평화롭게 앉아 있던 것이 아니고, 날개가 마비되어 날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독에 중독된 구더기를 먹고 날개가 마비되어 날지 못하고 있었던 것. 다른 철새들도 내려와 같이 먹고 모두 중독이 되고그렇게 그들은 떼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알고 시민단체와 봉사하는 학생들이 내려앉지 말라고 손을 흔들고 깃발을 흔들어도, 배고픈 겨울 철새들은 내려와 앉아서 구더기를 먹고 또 죽어간다고 하니 더 안타깝다. 그것을 본 봉사하러 온 어린 학생들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이런 일들은 왜 일어날까. 모두 인간의 탐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생명체에 대해 전혀 배려를 하지 않는 인간들그들의 탐욕.

이 책의 저자 박병상이란 분은 오랫동안 도시와 생태 문제에 대해 연구하신 분이다. 지은이가 갯벌이 많았던 인천에서 태어난 것이 이런 연구를 오랫동안 하게 된 이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분이 인천에서 태어나서 이런 연구를 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인간들의 죄]

모든 존재는 이유가 있다. 그러면 인간의 존재는 무엇일까? 인간은 왜 지구에 왔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생각을 많이 했다. 인간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진화론과 창조론이 대립하고 있다. 만약 전지 전능한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지구에 와서 한 것이라고는 지구를 망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생물들, 인간보다 먼저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생물들을 해치고 없애는 일도 했다. 도대체 도움이 되는 일은 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생물들, 특히 동물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인간은 그들의 최대의 적, 공공의 적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법을 모르는 인간. 과연 인간을 고등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지능만 높았지, 결코 지혜롭지 못한 동물...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앞서 책에서 발췌한 철새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인간들에 의해 핍박을 받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해충이라고 부르는 벌레들도 억울할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폐해를 끼쳤다고 해충이라고 부르냐고... 모기, 파기, 바퀴.(바퀴 벌레라고 하는 것은 잘못 부르는 것이고 그냥 바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모기는 큰 병을 옮기는 경우도 있지만도시에 서식하는 도시 모기는 그저 피 쪼금하고 가려움만 줄 뿐인데, 그들은 그 댓가로 생명을 내놓는다. 그리고 파리는 더럽고 병균을 옮긴다고 하는데, 사실 파리보다 사람들의 손으로 옮기는 병균이 훨씬 많다고 한다. 그리고 바퀴는 인간의 역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 억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저 혐오스러운 겉모습을 가졌다고 해충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들에게는 억울할 것이다. 그것도 그들보다 한참 후에 지구에 온 인간으로부터 말이다. 이 세상에 곤충과 벌레가 멸종하면 인간은 오래 못 가서 인류가 멸종하게 되지만, 인류가 멸종한다고 해서 곤충과 벌레가 멸종하지는 않는다는 지은이의 말에 벌레들이 더 지혜로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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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곤충을 해충이라 배척한다면 익충이라 반기는 곤충도 있을 테지.

그런 곤충들에게 사람은 어떻게 인식될까?

광대무변의 탐욕을 가진 생물은 아닐까?

지구촌에서 가장 늦게 동참해 생태계를 제멋대로 교란한 인간은 편견도 참 많다.

가치중립을 외치는 점잖은 곤충도감도 바퀴를 해충이라고

몰아붙이는데 뒤지지 않지만,

생태계에 잡초가 없듯이 해충도 있을 수 없다.

다 나름대로 질서를 가진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다.

파리와 모기, 그리고 바퀴가 사람에게 질병을 옮긴다지만

사실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고 싶을 리 없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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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동물들]

인간은 참 다양한 방법으로 동물들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과도한 산업발전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그것으로 인해 환경변화에 취약한 동물들이 먼저 사라지고 있다. 물론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사람들도 곧 사라질 것이다. 아직 살만한지 자본주의 귀신에 홀려 여전히 모든 나라가 성장과 개발에 목을 메고 있으니 큰 걱정이다. 그리고 옛날부터 내려오던 천수답도 사라지면서 무자치, 드렁허리 등 들어보지 못한 동물들도 사라지고, 미꾸라지, 왕잠자리, 거머리 등 어린 시절만 해도 시골에서 쉽게 볼 수 있던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산업 발전으로 돈 좀 벌었다고 인간들의 유희를 위해서 산을 황폐화시키는 골프장. 이 골프장에 의한 피해는 그야말로 막심하다. 다람쥐, 담비, 족제비 등 많은 동물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호수들... 그 쓸데없는 4대강으로 사라진 돈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것으로 인해 사라진 동물들이다. 아빠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동물들인 흰수마자, 꼬치동자개, 누치, 꾸구리, 꺽지 등은 모두 이 4대강의 피해를 본 동물이라고 하는데, 비단 그 동물들뿐만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4대강 사업으로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큰빗이끼벌레.. 그들의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데 그들은 무슨 죄가 있는가? 모두 인간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일인 것인데...

 

[더불어 사는 세상]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인해 생선조차 맘놓고 먹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고, SNS에 자랑질하려고 애완용으로 해외로부터 사온 동물들의 피해. 그리고 그 동물들을 아무렇게 방치하거나, 우리의 산과 강에 불법으로 풀어놓아 우리나라 생태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자칫 사람한테도 피해를 줄 있다는 이야기 등등... 인간의 탐욕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말 읽을수록 인간이라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웠던 적이 있나 싶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의 도움 없이 혼자만 살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구 또한 여러 생명체들이 함께 있어야 살 수 있다.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이라는 사람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구도 많은 다양한 생명체들로 인해 자신의 체온을 유지해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인간은 탐욕을 없애고,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면서 더불어 살아 가는 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은데, 지은이가 이야기하는 것이 소수의견인 것 같아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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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제대로 순환해야 건강하다.

순환이 원할치 못하면 병에 걸리고, 멈추면 죽는다.

38억 년 동안 살아온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개체의 삶은 짧아도 개체들이 모인 종의 수명은 길듯,

종들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수명은 더욱 긴데,

순환되는 생태계는 38억 년 동안 지구를 건강하게 이끌고 있다.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진화와 멸종을 반복하면서 표면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숨 쉬고 먹고 배설한 이래,

지구는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면서 대기를 구성하는 원소의 균형을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며

그는 지구를 '대지의 여신', '가이아'라고 찬미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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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박병상님이 하는 세상이 올까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 주변에 있는 동물들조차도 다르게 보였다. 그들 또한 존귀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그 생명을 보호받아야 한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지은이가 꿈꾸는 인간들과 동물들이 더불어 사는 그런 세상이 오길 기대한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개중에 미꾸리도 있었을 테지만
우리는 암갈색에 거무튀튀한 무늬가 지저분하게 배열된 녀석들을 통틀어 미꾸라지라 했다.
미꾸리는 분류학적으로 미꾸라지와 매우 가까울 뿐 아니라
사는 곳도 같아 전문가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렵다.
입주변 5쌍의 수염이 미꾸라지보다 짧고 비늘도 작고
몸도 날씬한 편이라지만 그 정도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성능 좋은 돋보기로 옆줄의 비늘을 세어 150개가 넘으면 미꾸리,
모자라면 미꾸라지라고 전문가는 판정할 것이다.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창자 호흡을 한다.
그래서 항문으로 공기방울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것을 보고 `밑이 구리다`했고, 그래서 미꾸리가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창자 호흡에 많이 의존하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민물고기가 그렇듯, 강물이 따뜻해지는 5월마다 짝짓기에 들어가는 누치는
겨울이 유난히 길었던 2010년이 더욱 불안했을 터.
지구온난화 탓으로 번식 시기가 앞당겨지는데 얼음이 늦게 녹지 않았나.
봄이 짧아지리란 걸 직감해 모래와 자갈 바닥을 선점하려 애썼을 텐데, 아뿔싸!
어느 날 다가온 삽차 떼가 모래를 마구 퍼올리며 흙탕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수온이 찬 계절이라면 호흡량이 작아 견딜 만했는데,
따뜻해지면서 숨이 막혀왔을 것이다.
겨울밤에도 쉬지 않는 삽차들이 시멘트 가루가 따뜻해진 하천으로
독극물처럼 스며들자 그만 목숨을 내놓아야 했을지 모른다.

법적으로 허가된 외래동물이라도 입양하려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호기심이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들여놓았다가 귀찮아 방치하거나 버리는 태도는
생명에 대한 폭력이고 외래동물의 개성을 무시하는 결례다.
유리상자 안에 꼼짝 못하고 던져주는 먹이만 받아먹는 외래 개구리,
몸 돌리기 비좁은 응접 테이블에 갇힌 악어,
에어컨 켜 놓은 거실 한 구석에 웅크린 채
투명한 상자를 두드리는 사람을 외면하는 카멜레온, 이구아나와 목도리도마뱀은
죽지 못해 살아갈 따름이다.
처지를 바꿔 그들의 복지를 생각해 보라.

바다 중에서 생태적 가치가 가장 높은 곳은 대륙붕이고,
대륙붕 중에서 단연 갯벌이다.
세계의 해양학자들은 면적으로는 5번째지만
생태적 가치로 볼 때는 최고라고 우리나라 갯벌의 가치를 평가했단다.
그도 그럴 게, 조수간만의 차가 큰 만큼 조간대가 드넓지 않은가.
서해안 갯벌은 해안에서 수 킬로미터로 펼쳐졌다.
그 넓은 조간대에 날아드는 도요새와 물떼새,
오리와 기러기 종류의 종 다양성은 철새를 연구하는 조류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우리 갯벌은 반드시 보전해 주기를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람사 국제 보호 습지`에 해당하는 `세계 3대 철새 이동통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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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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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스포일러 포함/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수 있음.

 

 

[아쉬움]

일년에 한편씩 영화를 본다는 생각으로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곤 한다. 그런데, 솔직히 점점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 같다. 일년에 한편씩 소설을 쓰는 것은 자신과의 약속인지, 출판사와 약속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에 구애 받지 말고 좀 더 재미있고 완성도 있는 소설을 썼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1991. 아서. 25. 레지던트 응급실 의사가 주인공이다. 그의 아버지는 같은 병원의 의사인데,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관계가 소원해져서 연락도 잘 안하고 살았다. 사실 친아버지가 아니다. 엄마가 바람을 피우고 몰래 난 아들이었고, 아버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날 찾아왔다. 아버지는 어떤 등대로 아서를 데리고 갔고, 유산이라면서 등대와 등대에 붙은 집을 그에게 줄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를 용서하고 아서를 친아들로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아버지의 친아들과 친딸보다는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등대를 준다고 하면서, 조건이 있다고 했다. 첫째 절대로 등대를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라는 것. 둘째는 등대의 철문을 막아 쌓은 담을 절대로 헐지 말 것. 이것은 아서의 할아버지가 아버지한테 시킨 것이라고 했다. 아서의 할아버지는 1954년에 실종되었다가 1958년에 한번 나타나셨다고 한다. 그때 문을 절대로 열지 말고 벽돌로 막아놓으라고 이야기하셨다는데, 아버지는 그 말대로 했고, 그 이후로 할아버지는 다시 실종되었다고 한다.

아서는 궁금증에 휩싸였다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길래 그 철문을 열지 말라고 하신 걸까. 등대를 조사해 보았다. 할아버지 이전의 등대 주인을 추적해보았더니 그분도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실종되었다가 몇 년 뒤에 그를 봤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그 또한 연락이 두절되었다. 할아버지와 그 이전 주인의 이상한 공통점은 아서에게 더욱 큰 궁금증으로 만들었고, 결국 아서는 벽들을 허물고 철문을 열기로 했다. 궁금증에 결국 지고 만 것이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이다. 벽을 허물고 철문을 뜯어내고 그 창고 같은 곳에 들어갔는데, 기대와 달리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철문이 닫히고 찬바람이 불더니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뉴욕의 어느 성당에 사람들 사이였다. 사람들이 신고해서 그는 경찰서에 갇히게 되었고,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이 1992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년이 휙 지나갔다. 더 이상한 것은 그 일년 동안의 일들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것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 등대의 창고의 그 무엇인가가 그를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했고,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온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다. 아버지한테 대충 그간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혹시 모르니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사실 할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신다고 했다. 정신병원에 계시지만 말이다. 그는 경찰서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고,  집 앞에서 다시 정신을 잃었다.

 

[시간을 점프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여자 혼자 사는 집의 욕실이었고, 그 여자는 샤워 중이었다. 상황이 대략난감이다. 아서를 본 여자는 놀라서 소리지르고 아서는 또 경찰에 잡히기 싫어서 도망을 쳤는데그만 그 집에 지갑을 흘리고 와서, 나중에 몰래 그 집에 들어갔다. 그 집의 주인은 이미 외출하고 난 뒤였다. 집주인의 이름은 리자. 모델과 배우를 꿈꾸는 20살 아가씨였다. 그런데,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또다시 일년이 지난 1993년이었다. 무슨 병에 걸린 걸까? 도대체 어찌 된 것인가? 그 동안 기욤 뮈소의 소설을 즐겨 읽는 이라면 그다지 놀라지 않고, 눈치 챘을 것이다. 기욤 뮈소의 소설에서 타임 슬립은 자주 등장하는 소재니까 말이다. 이번 소설에서는 1년 미래로 시간 점프를 하는 그런 소설이라고, 다들 눈치를 챘을 것이다. 아버지의 전화가 기억이 나서 아서는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면회 온 아서에게 자신이 등대의 비밀을 알고 있다면서 자신을 이 병원에서 빼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정신병원 탈출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아서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어서 무턱대고 그 리자라는 여자를 찾아갔다. 리자는 자신의 집에서 본 그 남자가 아서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그저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많은 남자들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리자는 거절했지만, 아서는 리자가 빚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돈을 주겠다고 했다. 리자는 아서의 계획에 동참을 했다. 사실 아서가 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다. 암튼 그들은 할아버지의 작전에 따라 구급차를 운전하고 정신병원으로 갔고, 그 시간에 맞게 할아버지는 심장마비가 온 것처럼 연기를 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구출에 성공을 했다하지만 아서는 이내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1994 5월 어느 방에서 깨어났는데어떤 여자가 자살을 시도하고 욕실에 정신을 잃은 채 있었다. 리자였다. 아서는 리자를 데리고 병원에 데려가 주었고, 간신히 생명은 구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한테 연락을 해서 만났고 할아버지는 비밀을 아서에게 알려 주었다. 말도 안되는 황당한 비밀... 그 등대 창고에 들어가면 시간의 늪에 걸린다는 것이다. 24번의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데, 1년씩 시간을 점프하게 되고그곳에 머무는 시간은 24시간이라고 한다. 그렇게 24시간씩 24번의 시간여행을 하면 24년이 지나버린다는 것이다. 그 시간여행을 멈추는 방법은 없고, 24번이 끝나야 그 시간여행이 멈춘다고 한다. 이건 저주다. 24시간씩 24번이면 24일이다. 24일이 24년이라니...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도 없다. 그런데 나쁜 소식은 더 있다.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여인에게 잘 설명을 했고, 24번 시간을 여행을 하면서도 사랑을 지속했다고 한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일년에 하루 그것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남자를 사랑하는 게 힘들었을 텐데… 그것을 극복했다는 것이다. 24번의 시간여행을 마치고 이젠 행복한 시간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녀에게 갔는데 그녀는 할아버지를 처음 보는 사람 취급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인과 낳은 아이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였다. 할아버지는 충격으로 그 여인에게 자신을 모르냐고 다그쳤고그러다가 여인이 찻길로 쓰러졌고, 때마침 온 차에 치여 죽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거의 실성상태였고, 그의 이야기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당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사랑한 여인은 어디에 있는가? 또다른 평행 우주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황당한 결과가 기다리고… ]

일 년 뒤 아서는 리자를 찾아갔고, 그들은 이내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24시간이 지나자 아서는 사라졌다.  자신의 정체를 이야기한지 못한 채. 그리고 리자의 기준으로 일년 뒤에 아서가 나타났다. 이미 다른 남자친구도 있었고, 아서를 외면했다. 아서는 할아버지를 만났지만, 24시간이 지나면 여지없이 그는 사라졌다. 2001 WTC 무너질 때 근처에 있던 리자와 아서는 다시 만났는데, 그때 그들은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아서는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고 리자는 그를 이해했다. 할아버지의 그 여인처럼… 그들은 이후 몇 년의 시간여행 동안 계속 만나고 벤자민과 소피아를 낳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는 또 멀어졌다. 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만한 한다. 더욱이 리자는 유명 배우가 되어 바쁜 스케줄로 아서를 만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 벤자민도 아서의 24번의 시간여행이 끝나면 자신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면서 아서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 24번의 시간여행의 끝이 가까이 오면서 아서는 시간여행이 끝나고 지금처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뿐이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할아버지도 이젠 돌아가시고 드디어 24번의 시간 여행이 끝이 났다. 과연, 할아버지와 같은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약간은 황당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전이라고 생각하고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랑 소설에 판타지 요소를 넣는 기욤 뮈소...이번에는 소설 전체를 또 다른 소설로 만들어 버렸다 ... , 그런데 신선하지가 않다. 기욤 뮈소의 소설을 많이 읽은 이라면 예상 결말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더 이상의 줄거리를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 심한 스포일러일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이야기는 여기에서 줄인다.

한가지 기욤 뮈소에게 바램이 있다면, 일년에 꼭 한편이 아니고, 몇 년이 걸리더라도, 예전의 필력을 되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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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제대로 순환해야 건강하다.

순환이 원할치 못하면 병에 걸리고, 멈추면 죽는다.

38억 년 동안 살아온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개체의 삶은 짧아도 개체들이 모인 종의 수명은 길듯,

종들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수명은 더욱 긴데,

순환되는 생태계는 38억 년 동안 지구를 건강하게 이끌고 있다.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주장한다.

진화와 멸종을 반복하면서 표면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숨 쉬고 먹고 배설한 이래,

지구는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면서 대기를 구성하는 원소의 균형을 변함없이 유지해 왔다며

그는 지구를 '대지의 여신', 즉 '가이아'라고 찬미했다.



(41쪽)

어떤 곤충을 해충이라 배척한다면 익충이라 반기는 곤충도 있을 테지.

그런 곤충들에게 사람은 어떻게 인식될까?

광대무변의 탐욕을 가진 생물은 아닐까?

지구촌에서 가장 늦게 동참해 생태계를 제멋대로 교란한 인간은 편견도 참 많다.

가치중립을 외치는 점잖은 곤충도감도 바퀴를 해충이라고

몰아붙이는데 뒤지지 않지만,

생태계에 잡초가 없듯이 해충도 있을 수 없다.

다 나름대로 질서를 가진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다.

파리와 모기, 그리고 바퀴가 사람에게 질병을 옮긴다지만

사실 사람에게 질병을 옮기고 싶을 리 없다.



(60쪽)

겨울철새는 단순히 운이 나빴던 걸까?

앞서 내려앉은 철새들이 평화롭게 내려갔을 뿐인데.

내려와 보기 웬 구더기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허기진 철새에게 구더기는 반가운 영양식임에 틀림없으니 허겁지겁 먹었을테고,

이윽고 구더기는 보툴리눔 균을 겨울철새에 전파시킬 수밖에 없었을 터.

정신은 멀쩡한데 슬그머니 온몸은 마비되더니 날 수가 없다.

공포에 질려 물에 떠 있을 수밖에 다른 방법도 없는데

창공에서 그 모습을 본 철새들이 연이어 내려온다.

그리고 구더기를 허겁지겁 훑어 먹는다.

구더기들은 유수지에 맥없이 떠 있는 철새의 옆구리를 뚫고 꾸물꾸물 연실 빠져나온다.



(88쪽)

개중에 미꾸리도 있었을 테지만 

우리는 암갈색에 거무튀튀한 무늬가 지저분하게 배열된 녀석들을 통틀어 미꾸라지라 했다.

미꾸리는 분류학적으로 미꾸라지와 매우 가까울 뿐 아니라

사는 곳도 같아 전문가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구별하기 어렵다.

입주변 5쌍의 수염이 미꾸라지보다 짧고 비늘도 작고

몸도 날씬한 편이라지만 그 정도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성능 좋은 돋보기로 옆줄의 비늘을 세어 150개가 넘으면 미꾸리,

모자라면 미꾸라지라고 전문가는 판정할 것이다.

미꾸라지와 미꾸리는 창자 호흡을 한다.

그래서 항문으로 공기방울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것을 보고 '밑이 구리다'했고, 그래서 미꾸리가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미꾸리가 미꾸라지보다 창자 호흡에 많이 의존하는 모양이다.



(152쪽)

대부분의 민물고기가 그렇듯, 강물이 따뜻해지는 5월마다 짝짓기에 들어가는 누치는

겨울이 유난히 길었던 2010년이 더욱 불안했을 터.

지구온난화 탓으로 번식 시기가 앞당겨지는데 얼음이 늦게 녹지 않았나.

봄이 짧아지리란 걸 직감해 모래와 자갈 바닥을 선점하려 애썼을 텐데, 아뿔싸!

어느 날 다가온 삽차 떼가 모래를 마구 퍼올리며 흙탕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수온이 찬 계절이라면 호흡량이 작아 견딜 만했는데,

따뜻해지면서 숨이 막혀왔을 것이다.

겨울밤에도 쉬지 않는 삽차들이 시멘트 가루가 따뜻해진 하천으로

독극물처럼 스며들자 그만 목숨을 내놓아야 했을지 모른다.



(181쪽)

한겨울 동해의 북쪽, 검푸른 바다에서 올라오던 '명태'는 

함경도 명천군의 태가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았다 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명태는 상태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꽁꽁 얼렸다 얇게 떠 전으로 부쳐먹는

'동태'와 소비자 손에 넘어갈 때까지 얼리지 않아

살이 부들부들한 '생태', 

햇빛이 강한 영하의 덕장에서 40일간 얼다 녹기를 반복하여 부드러운 황색으로 말린 황태와 

고성 해안에 다짜고짜 두 달 동안 바싹 말려 단단해진 '북어'만이 아니다.

어린 녀석을 비쩍 말린 '노가리'와 

노가리보다 조금 큰 '코다리'도 무시하면 안 된다.

주머니가 얇은 주당의 안주로 그만이 아닌다.

그토록 우리 삶에 밀착된 명태, 

민속학자 주강현은 조기와 함께 제사상에 올라간다는 걸 상기한다.

인간에게 절 받는 지체 높은 생선이라는 것이다. 

요즘 명태는 '금태'다.

금처럼 귀하다는 뜻일 게다.



(227쪽)

법적으로 허가된 외래동물이라도 입양하려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호기심이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들여놓았다가 귀찮아 방치하거나 버리는 태도는

생명에 대한 폭력이고 외래동물의 개성을 무시하는 결례다.

유리상자 안에 꼼짝 못하고 던져주는 먹이만 받아먹는 외래 개구리,

몸 돌리기 비좁은 응접 테이블에 갇힌 악어,

에어컨 켜 놓은 거실 한 구석에 웅크린 채

투명한 상자를 두드리는 사람을 외면하는 카멜레온, 이구아나와 목도리도마뱀은

죽지 못해 살아갈 따름이다.

처지를 바꿔 그들의 복지를 생각해 보라.



(272쪽)

인간이 그은 국경에 관심이 없는 봉순이는 하필 봉하마을에 내렸다. 우연일까?

유기농업으로 자리를 잡은 지역답게 주변 화포천은 

주민들의 정화작업으로 깨끗해졌고,

생태계가 살아나면서 황새의 먹이가 될 생물이 충분히 늘어났다는 걸

감지한 능력 덕분이겠지.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만 먹던 미호에게 봉순이와 같은 능력이 있을까?

있어도 발휘되기 일렀을지 모르는데,

봉순이와 잠시 떨어진 사이 쓰러진 미호는 자칫 못 일어날 뻔했다.

엉뚱한 지역의 하천에서 농약에 오염된 먹이를 먹었다는 게 아닌다.

하지만 미호도 덩치가 큰 만큼 잘 이겨냈고,

그 사건은 소중한 경험이 되었겠지.



(330쪽)

바다 중에서 생태적 가치가 가장 높은 곳은 대륙붕이고,

대륙붕 중에서 단연 갯벌이다.

세계의 해양학자들은 면적으로는 5번째지만

생태적 가치로 볼 때는 최고라고 우리나라 갯벌의 가치를 평가했단다.

그도 그럴 게, 조수간만의 차가 큰 만큼 조간대가 드넓지 않은가.

서해안 갯벌은 해안에서 수 킬로미터로 펼쳐졌다.

그 넓은 조간대에 날아드는 도요새와 물떼새,

오리와 기러기 종류의 종 다양성은 철새를 연구하는 조류학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우리 갯벌은 반드시 보전해 주기를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람사 국제 보호 습지'에 해당하는 '세계 3대 철새 이동통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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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돈이 많고 적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의 크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삶의 철학과 가치'에 따라 달라지므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자립은 의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실제 많고 적음, 크고 작음도 대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음, 많고 적음과 같이 두 종류만이 존재하고,

그 두 가지를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것을 실제 잣대로 삼아 휘둘려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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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 철학은 미국의 경쟁 문화와 일본의 식민지 교육의 열기를 혼합한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고,

좋은 직업은 좋은 보수를 받고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등식이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유지돼 왔다.

또한 오랫동안 문명은 비문명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며,

가난은 벗어야 할 것으로 선전하면서, 

가난을 벗어나려면 '도시에서 받는 문명 교육'이 필요하다고 계몽해 왔따.

그리고 이러한 문명과 교육은 한 궤를 달리면서 

자본주의 사상과 문화를 전 세계적 단일 경제시장으로 형성하는 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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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이란 우리 삶을 관통하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사회와 국가에 바라는 것이 많았다.

국가가 우리의 행복을 위해 움직여 줄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기네,

바라는 것만큼 현존 사회가 국가를 개조하기 위한 투쟁을 했다.

그러나 국가권력은 우리 개인의 행복을 위해 싸워온 적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내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흙이나 자연 속에서 지내는 것이 나의 본연의 행복을

찾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흙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수치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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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은 귀하고 무엇은 천하다고 여기면 마음이 불편하다.

무엇이든 귀하다고 여기든지, 아니면 무엇이든 다 천하다고 여기게 되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귀천의 분별로 마음을 태울 일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시비는 이기고 지는 결말을 노린다.

이기면 옳은 것이고 지면 그른 것이라는 비참한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그래서 시비는 사람을 강박하게 하고 잔인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의 시비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입맛대로 살아가되

다른 이의 입맛을 배타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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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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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기억력에 의한 내용상 오류 있을  있음.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이 책은 알라딘 인터넷 서점의 책 전용 SNS인 북플이라는 곳에서 알게 된 책이다. 법정 스님을 좋아해서 책에 눈이 바로 갔다. 법정 스님이 떠나신 봄이 벌써 여섯 해 전이다세월이 참 빠르다.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는 그가 늘 자리잡고 있다. 그런 법정 스님이 성철 스님과 나눈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설전>이라는 책이다. 부제가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라고 되어 있다.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말씀으로 유명하신데, 나는 성철 스님의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성철 스님이 입적하신 것이 1993년이었다고 하니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책과 담을 쌓고 지내던 시절이라서, 그 분의 책을 접하지 못한 듯성철 스님이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서 그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어 좋았다. 이 책은 부제에서 말한 것처럼 법정 스님이 묻고, 성철 스님이 답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법정 스님보다 성철 스님의 생각이 더욱 많이 드러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으로 치면 대담이나 토크콘서트를 책으로 엮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묻고 답하는 경우, 답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것이 맞지만, 좋은 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좋은 질문이다. 이 책은 책의 뒷표지에 적힌 것처럼 현문과 현답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 두께는 그리 두껍지 않다. 그리고 책에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자연의 사진들이 많이 들어있다. 그래서 금방 읽을 수 있지만, 그 적은 양이 담고 있는 슬기와 교양은 깊은 심금을 울린다.

 

[눈싸움]

책 제목 설전. 설전이라고 하면 말로 옳고 그름을 다툰다는 설전(舌戰)이 바로 생각이 난다. <썰전>이라는 TV 프로그램도 생각이 나고그런데 책 제목에 옆에 적혀 있는 한자를 보니 눈 설(), 싸울 전(). 이라고 써있다. 우리말로 해석해보면 눈싸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눈이 온 겨울이면 눈을 뭉쳐서 던지면서 놀던 그 눈싸움. 책제목을 왜 그렇게 지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후반부의 대화 주에 두 분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많은 시주들 앞에서 이루어진 대화가 있다. 다른 제자들은 성철 스님 앞에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는데,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꼬치꼬치 캐묻기도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좀더 진면목의 답을 이끌어내신 것이다. 이렇듯 두 분이 서로 주고 받는 말씀이 마치 즐거운 눈싸움 같았기 때문에 제목을 눈싸움이라는 뜻의 <설전(雪戰)>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나중에 책 뒷날개를 보니 아래와 같이 책제목이 <설전(雪戰)>인 이유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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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 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설전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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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불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불교에 관한 이야기. "불교란 무엇입니까?", "타 종교와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등 처음 불교를 접하는 사람들이 가질 만한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질문들도 있고, 중도 이론이나 중국 선종에 관한 질문 등 비교적 불교를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낯선 질문과 답변도 오가곤 했다. 아무래도 두 분이 불교 신도들 앞에서 나눈 대화들도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예전에 불교에 관련된 책들을 좀 접해서 그리 낯설지 않게 읽으면서, 오랜만에 불교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새기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그런데 이 책을 법정 스님이 생전에 쓰신 수필집처럼 생각하고 책을 편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의 대화의 또 다른 주제는 우리네 삶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관한 질문들도 오가곤 했다. 많은 대화 중에 요즘 우리나라 언론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내용과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특히 공감을 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우리나라 언론의 편향성은 이제 당연한 것으로 생각들 하고 있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 중에도 주요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분명 다른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대안 언론을 찾아 듣는 이들이 더 많다.

객관성이 결여되고 주관성이 깊이 개입한 기사들... 그런 언론들을 향해 성철 스님이 주시는 깊은 가르침 같은 글이 실려 있었다. 그들이 들을 리 없겠지만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졌으니, 그들은 더욱 편향적이 될까 싶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더욱 편향적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

어떤 언론이든지 사회의 공기라는 것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는 근본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이용물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곤란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춘추필봉(春秋筆鋒

말 그대로 시퍼런 필봉을 세워 나가야만 사회에 공헌을 하고

사회에 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언론이 근본정신을 버린다면 사회와 인류에 해를 주지 않겠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겠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한 필봉으로

춘추필봉을 발휘하면 사회를 잘 선도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살릴 수 있겠지요.

=====================================

...

그리고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을 다시 읽고 발췌해 보았다. 이 쉬운 지도자의 덕목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그나마 이번 선거에서 그런 지도자들에게 백성들이 회초리를 들어준 것을 보고, 아직 우리 백성들의 힘은 세다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희망을 보았다.

=====================================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고 하면 근본 전제가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요.

정치하는 사람이 사리사욕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자살이 되고 맙니다.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면 그 단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죠.

그렇게 하려면 사리사욕에서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면 그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것을 버려야만 국가도 살고 민족도 살고 단체도 살고 자기 자신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정치를 결국엔 국가와 민족에 큰 손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기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지도자의 자격이란 참으로 사리사욕을 완전히 버린 

무아(無我)사상에서 전체를 위해 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

 

 

 

※ 이 리뷰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를 수정하여 작성함.

 

어떤 언론이든지 사회의 공기라는 것,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는 근본정신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이용물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곤란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춘추필봉(春秋筆鋒)
말 그대로 시퍼런 필봉을 세워 나가야만 사회에 공헌을 하고
사회에 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언론이 근본정신을 버린다면 사회와 인류에 해를 주지 않겠어요?
지금도 잘하고 있겠지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한 필봉으로
춘추필봉을 발휘하면 사회를 잘 선도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살릴 수 있겠지요.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고 하면 근본 전제가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지요.
정치하는 사람이 사리사욕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자살이 되고 맙니다.
어떤 단체의 지도자라면 그 단체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죠.
그렇게 하려면 사리사욕에서 완전히 떠나야 합니다.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면 그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것을 버려야만 국가도 살고 민족도 살고 단체도 살고 자기 자신도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정치를 결국엔 국가와 민족에 큰 손해를 줄 뿐만 아니라
자기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지도자의 자격이란 참으로 사리사욕을 완전히 버린
무아(無我)사상에서 전체를 위해 사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30쪽
내가 자꾸 깨친다 깨친다 하는 것은 사람이 그런 깨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다면 만날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오. 땅 밑에 금이 많이 있는 줄 알면,
거기에 금이 꼭 있을 것 같아서 땅을 파면 금이 나오지만,
암만 파도 금이 없을 것 같으면 헛일이지 않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생에게 부처님과 같은 그런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깨치는 공부를 해도 헛일입니다.
문제는 그 광맥이 사람 사람 마다에 다 있나 없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에게 그런 무진장한 대광맥,
금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진장의 대광맥이
사람 사람 가슴속에 다 있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이것을 개발하고 이것을 소개한 것이 불교의 근본 생명선입니다.

46쪽
무엇보다도 정신적으로 모든 생각을 쉬어 버리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구하는 생각, 이것이 마음에 들어 있으면 아무리 섭생을 잘해도 소용이 없거든요.
그런 구하는 생각을 어느 정도 떨쳐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쉬고 사는 이것이 건강에 좀 도움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85쪽
흔히 `용서를 하자. 용서를 하자`고 하는데, 불교의 근본사상에 용서란 없습니다.
용서란 내가 잘하고 남이 잘못됐다는 것인데,
모든 것의 책임은 나한테 있는 것이며,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남의 인격을 근본적으로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설사 어떤 사람이 칼로 나를 찌른다 할지라도
찌르게 한 것의 근본 책임은 나한테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참회`를 해야지 저 사람을 `용서`하다니요.
그래서 우리 불교사전에서 `용서`라는 말을 빼야 한다고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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