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산책 5권 - 개화기편, 교육구국론에서 경술국치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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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가끔씩 읽는 강준만 님의 <한국 근대사 산책> 5권을 읽었단다. 5권의 부제는 <교육구국론에서 경술국치까지>란다. 4권에서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으로 빼앗기고, 강제로 군대까지 해산된 대한제국. 뜻있는 지식인들은 이 난관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교육뿐이라고 생각하고, 학교들을 세우고, 계몽 운동을 많이 했는데, 강준만 님은 그런 활동을 교육구국론이라고 하신 것 같구나. 그런 계몽 운동을 하는 단체 중에 1907년 안창호가 주도하여 만든 신민회라는 비밀단체가 있단다. 비밀리에 활동을 해서 일제가 이 단체의 전재를 알게 된 것은 1911년이라고 하는구나.

나중에 이야기되기겠지만 1911년 신민회 사건으로 많은 애국지사들이 감옥에 가게 된단다. 바로 그 신민회가 1907년에 만들어졌고, 교육 구국 운동을 펼쳤단다. 이때 많은 학교들이 문을 열었단다.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 안창호, 윤치호, 이종호가 함께 세운 평양의 대성학교가 대표적이란다. 1908 5월에는 한성고등여학교가 개교했는데, 오늘날 경기여고가 바로 한성고등여학교하고 하는구나.

이 시기에 의병 활동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조국의 원수들을 처단하는 일들도 있었어. 그 중에 아빠는 처음 들어보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게 되어 소개해줄게. 일본 통감부 외교고문으로 일하던 일본의 앞잡이 스티븐슨이란 자가 있었단다. 일본의 한국 지배가 정당하다고 주장한 사람이야. 그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을 우리나라의 두 명의 애국지사가 동시에 암살을 시도했다고 하는구나. 두 애국지사는 장인환, 전명운이라는 분들인데, 두 분은 서로 모른 채 각각 거사를 단행했다고 하는구나. 아빠는 이름도 처음 들어본 분들인데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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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3 23일 스티븐스(일본 통감부 외교고문)는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역 구내에서 장인환, 전명운 두 애국지사의 총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같이 행동한 게 아니라 서로 모른 채 각각 거사에 나섰다. 먼저 전명운이 권총을 쏘았으나 불발되자, 장인환이 다시 3발을 쏘아 2발은 스티븐스의 가슴과 허리를 관통했고 나머지 한 발은 전명운의 어깨에 맞았다. 스티븐스는 병원에 옮겨진 후 사망했다. 그는 보호조약을 강제로 맺게 함으로써 나의 강토를 빼앗았고, 나의 종족을 학살했기에 이를 통분히 여기어 그를 쏜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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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다 보니, 너희들과 최근에 보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한 장면이 떠오르더구나. 극중 애신과 유진이 동시에 미국인 외교관을 저격하는 장면 말이야. 아마 드라마 작가가 스티븐슨 암살 사건을 모티브로 하지 않았을까 싶더구나.

이렇게 악덕 외국인이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를 위해서 온 힘을 쏟았던 분들도 있었단다. <대한매일신보>를 만들어 동양척식회사를 연일 비판하던 베델이라는 분이란다. 반일 논조의 기사로 인해 베델은 상하이 감옥에 투옥하기도 하셨고, 석방 후 다시 신문을 냈는데, 1909 5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그의 나이 고작 36세였는데, 하늘은 왜 이런 이를 일찍 데리고 가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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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3)

(베델)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나는 죽더라도 신보는 앵생케 해 한국 민족을 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베델의 그런 한국 사랑은 그가 강한 민족주의 정서를 갖고 있는 웨일스 출신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걸까? 베델의 한국 사랑과 반일정신은 매우 투철해 한때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대한매일신보>의 통감부에 대한 공격을 중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란 베델을 암살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베델의 장례식은 동대문 밖 영도사에서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히 거행되었으며 그의 시신은 양화진(서울 합정동) 외국인 묘지에 묻혔고 그의 공적을 기리는 사람들의 성금에 의해 1910년 묘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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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신문과 잡지들도 많이 출간하였는데, 18살이던 최남선도 1908 11 <소년>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단다. <소년>이라는 잡지는 우리나라 최초 종합 잡지로, 안창호가 만든 청년학우회 기관지 성격을 띠었고, 창간호에 그 유명한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시가 실려 있단다. 이 잡지에서는 외국 문학 작품도 번역해서 소개했는데, 톨스토이 책이 번역 소개되면서, 톨스토이 열풍을 이끌었다고 하는구나.


1.

1909년에는 간도에서 관한 청과 일본의 협약이 이루어졌는데, 우리나라 국경에 관한 문제인데 우리나라만 쏙 빠져있었구나. 이 청일협약에 의해 국경선이 두만강이 되면서, 간도 땅이 청나라 땅이 되고 말았구나. 열 받는 일뿐이구나. 신채호는 1910년경부터 만주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는 등 많은 이들이 간도를 빼앗으려고 노력했단다. 나중에 북한이 중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간도영유권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하는구나.

을사늑약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 투쟁이 활발하다고 했잖아. 1907 7월에 고종이 강제 폐위 당하고 8월에는 군대가 해산된 이후 의병 투쟁은 더욱 불이 붙었단다. 이제 정규군이 없어졌으니 모두 비정규군이 되어 의병 활동을 하게 된 거야. 그러자 일제는 의병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1909년에는 남한 대토벌 작전을 벌여 많은 의병들이 돌아가셨단다.

….

지식인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교육과 계몽에 힘썼어. 중국 양계초의 학문을 받아들여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하려고 했고, 민족주의자들은 우리나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책들을 많이 쓰셨어. 신채호가 역사인물들을 출간한 것도 그런 취지였단다. 군대가 없어진 마당이 비밀리에 체력과 군사 훈련 비슷한 것을 하기 위해 운동회도 많이 열렸다고 하는구나.

그런 와중에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1909.10)과 이재명의 이완용 암살 미수 사건(1909.12)이 전해졌어. 안중근의 이토 히루부미 사건은 아빠가 여러 번 이야기해서 오늘은 생략할게. 하나만 이야기하고영국의 찰스 모리머라는 기자가 재판을 보고 쓴 기사가 있는데, 안중근이라는 분이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글이란다. 그런 분이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이 안타깝고, 아직까지도 유해를 찾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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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133)

1910 2 7일 오전 9시 뤼순 법정. 당시 15만 부를 발간하던 영국 최대의 주간지 <그래픽>의 기자 찰스 모리머는 재판 참관기를 통해 세기적인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 그는 영웅의 월계관을 거머쥔 채 자랑스레 법정을 떠났다. 그의 입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했다고 썼다. 모리머는 재판을 참관하던 많은 일본인들조차 안중근에게 지극한 존경심을 가졌으며 그들에게서는 살해된 정치인의 추억보다 안중근의 명성이 더럽혀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안중근에 대해 그는 삶의 포기를 열렬히 염원했다이 사건으로 인해 재판에 오른 건 다음 아닌 일본의 현대문명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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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결국 1910 8 29일 일본에 흡수되고 말았단다. 경술년의 나라의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하여 경술국치라고 했어. 조선은 518년만에 망하고 말았단다. 한 나라가 망하는데 전쟁도 없이, 간신배들 여럿이 도장 찍는 것으로 끝났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답답하구나. 이 일에 연루된 조선인 68명이 일본으로부터 귀족 신분을 부여 받았다고 하는구나. 양심도 없는 사람들 같으니

지은이는 500년이나 긴 역사를 가진 조선은 왜 망했는가에 대한 많은 역사가들의 평가들을 소개해 주었단다. 그리고 조선이 왜 망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조선이 어떻게 500년이나 유지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역사들의 평가도 소개해 주었단다. 보통 당파 싸움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일제 역사가들이 세뇌시킨 식민사관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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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

조선은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일본인들의 주장이 많은 한국인들에게도 먹혀 들어갔다면, 그건 조선이 망해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의 힘 때문일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 조선이 망했는가? 이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우리 스스로 내놓지 못한 채 당파싸움 때문에 망한 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건 매우 옹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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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망한 이유들이 역사가들마다 생각이 다 다르듯이 어떤 한 가지 원인에 의해서 망한 것 같지는 않구나. 하지만, 바뀔 수 없는 한 가지는 사악한 일본 때문에 망한 것은 명백하구나. 일본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망하지 않았겠지. 당시 제국주의가 만연해서 다른 나라가 쳐들어왔을 수도 있겠지. 넓게 이야기하면 제국주의가 조선을 망하게 했다고 볼 수 있겠구나. 조선이 시대의 흐름을 제때 읽지 못하고 근대화에 늦춰졌을 수는 있어도 그것이 나라가 망하게 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이렇게 조선의 멸망과 함께 <한국 근대사 산책> 5권의 이야기도 끝이 났단다.

5권에서 이야기한 내용 중에 너희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두어 가지 소개하고 편지를 마치련다. 먼저 우리나라가 종교를 수용하는데 있어 상당히 개방적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글이란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같은 경우 심한 갈등을 보이는 종교들이 우리나라에는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는 점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라고 이야기하는데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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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85)

한국은 종교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활기찬 나라이나 어떤 단일 종교도 한국인들의 종교생활을 지배하고 있지 않고 있는 다종교 국가이다. 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많은 동구,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기독교(개신교), 천주교, 불교, 유교, 천도교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종교적 다원주의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종교적 평화의 모델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은 유교의 문화적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나라이면서도 아시아적 가치를 변용하여 서구의 자유주의, 합리주의를 수용하는 데 가장 개방적인 나라이다. 한국은 아시아적 가치와 서구의 가치가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한국은 새무얼 헌팅턴이 역설한 문명의 충돌에 대한 해답까지 제공해줄 수 있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다. 이는 한국의 극단주의는 신바람특성과 맞물린 것으로 늘 잠재돼 있긴 하지만 오래 지속되긴 어렵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도 있겠다. 한국인은 단기적으로 극단주의적이지만, 장기적으론 중용 지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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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독립신문에 실린 시계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시계라는 것이 시간만 잘 맞추면 된다면서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기사가 재미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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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독립신문> 1898 2 8일자 논설에 따르면, “사람이 시계를 살 때마다 기계 속을 모른즉 시계 좋고 아니 좋은 것을 아는 도리는 다만 전면에 비늘 둘이 시간과 분과 각을 옳게 가리키는지 아니 가리키는지 하는 것을 가지고 아는지라. 그것과 같이 사람을 옳고 그른 것을 아는 것은 그 사람의 하는 행사를 가지고 알기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라. 설령 시계가 보기에 훌륭하고 금과 보석으로 꾸민 시계나 그 시계가 시를 맞추지 아니 할 것 같으면 그것은 시계가 아니라 일개 값진 물건이라. 금과 보석을 팔면 돈은 생길지언정 시계로 쓸 것은 못 되지 그것과 같이 사람도 외양이 좋고 의복을 잘 입어 보기에는 좋은 사람 같이 보이나 자기 맡은 직무를 못 할 지경이면 무용지안이라. 그러하기에 시계 살 때에 외양과 모양은 어떠하였든지 시만 잘 맞추면 그 물건이 쓸데 있는 물건이요 사람도 지체가 없고 모양도 준수치 않더라도 맡은 직무만 착락 없이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보배로운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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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906 4월 대한자강회의 설립 이후, 애국계몽운동으로서의 학회 조직은 계속됐다.

책의 끝 문장: 나와 내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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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4)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잡고 끊임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强盜) 일본의 통치의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서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서 사회를 약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 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 2000만 민중은 일치하여 폭력 파괴의 길을 매진해야 하리라.”


(58)

최남선은 1928 10월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의 촉탁으로 임명되었고, 12월에는 조선사편수회 위원이 되었다. 한국 최고의 단군 연구가이자 조선학의 제창자인 최남선이 식민사학의 총본산으로 들어갔으니 논란이 없을 리 만무했다. 정인보(1893~?)최남선이는 죽었다며 조문(弔文)을 썼으며, 일부 사람들은 종로의 명월관에 모여 굴건(屈巾), 제복(祭服) 차림으로 제상(祭床)을 차려놓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최남선 장례식을 지냈다. 최남선은 이후 일본에 가서 조선인 대학생의 학병을 권유하는가 하면 중추원 참의, 만주 건국대 교수, 만주 <만선일보> 고문 직책을 맡는 등 노골적인 친일 행각을 벌였다.


(77)

공식적인 서울대학교사는 개교를 1946년으로 잡고 있지만 한편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락사>, <서울법대백년사>에서 볼 수 있듯이 경성제국대학을 그 뿌리로 간주하는 이중적 인식의 대학사를 가지고 있다. , 국립 서울대학교의 설립 주체는 명백히 대한민국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법학부와 의학부는 개별적인 단과대학사를 통해 경성제국대학을 그 모체로 간주하고 동문의 범위를 경성제국대학 출신자에게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립 서울대학교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스스로의 대학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고찰을 가지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서울대학교가 그동안 이루어낸 많은 업적들에도 불구하고 대학 정체성의 반성 부재에서 비롯된 식민지적 엘리트 의식은 여전히 왜곡된 형태로 남아 서울대학교를 중심축으로 하는 현재의 대학교육 체제와 문화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40-141)

<개벽> 1926 6월호 발표된 이상화(1901~1943)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다. 정끝별은 이 시의 매력은 굳세고 비장한 의지와 어우러진 섬세한 감각에 있다. 가르마 같은 논길,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 삼단 같은 머리를 감은 보리밭, 살진 젖가슴 같은 흙 등 빼앗긴 들을 온통 사랑스런 여성의 몸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니 온몸에 햇살을 받고 이 들()을 발목이 저리도록 실컷 밟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야말로 내 나라 내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관능적인 연애시의 옷을 입은 지극한 애국애족의 저항시다고 평가했다.


(158-159)

김려실은 나운규가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걸 지적하면서, 이런 의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가 <아리랑>을 통해 정말 관객에게 호소하고 싶었던 것은 동포여, 저항을 계속하라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검열 때문에 그 뜻을 직접적으로 영화에 표현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아리랑>의 영웅 영진은 정신 이상자로 설정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역설적이게도 <아리랑>은 저항은 뜻을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221)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거의 외우다시피 했던 민태원(1894~1935) <청춘예찬>이다. 삶이 고달픈데도 청춘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하는 의아심을 갖고 그 내용을 음미했던 학생들도 많았으리라.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 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냐?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끓는 피다. 청춘의 피는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 기뻐하고 즐거워함)의 새가 운다.


(229-231)

강점기 노동파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건 1919 1월에서 4월까지 벌어진 원산총파업이다. 이는 그 규모와 지속성, 그리고 강인성과 투쟁성이란 점에서 식민지 시기 한국 노동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분수령을 이루는 중요한 사건이다. 원산총파업은 원산항에서 하물의 하역, 운반에 종사하는 부두노동자를 주축으로 조직된 원산노동연합회에 의해 지도되었는데, 1921년 설립된 원산노동회를 원산노동연합회의 전신으로 볼 수 있다. 경철과 군대를 동원한 일제의 극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90여 일이나 지속된 원산총파업은 3.1운동, 광주학생운동과 함께 일제하 대표적 민족해방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286-287)

1927년부터는 사학의 명문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의 맞대결이 연보전(훗날의 연고전)이 세인의 관심을 끌었으며 이후 정기전을 갖게 되었다. 1927 9월 상하이에서 열린 제8회 극동올림픽대회에서 필리핀을 누르고 우승한 일본 와세다대학 축구 팀이 경성에 들러 17일부터 19일까지 3차전을 갖기로 했다. 첫 경기 상대는 연희전문이었는데, 와세다대학 팀이 0 4로 대패하고 말았다. 크게 놀란 와세다대학 팀은 남은 경기 일정을 취소하고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나고 말았다. 박경호, 김덕기는 이 같은 소식을 접한 국민은 잠시나마 피지배민족으로서의 설움을 잊을 수 있었다와세다 팀을 완전히 제압한 사실에 대해 국민들은 극동올림픽 쟁패전은 우리의 승리라고 외치고 승리감을 만끽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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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걸스 - 강렬하고 관능적인, 결국엔 거대한 사랑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아리(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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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이번에 읽은 <시티 오브 걸스>라는 책은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알게 된 책인데, 평점이 좋고 책 소개를 읽어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별 생각 없이 읽은 책이란다. 지은이는 엘리자베스 길버트라는 분인데 이 분은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이번에 읽은 책이 처음인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익숙한 제목의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쓰신 분이라고 하는구나. 지은이 이력도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알게 되었지, 그 이전에는 지은이가 누구인지도 몰랐단다. 가끔 별 생각 없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게 되는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이 그런 소설이었단다.

시대적 배경은 1940년부터 시작되고, 뉴욕이 주무대란다. 1940년이면 유럽은 2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의 시기를 겪던 시절이고, 미국은 아직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곧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그런 시기였단다. 이 시기 미국에 관련된 책들을 최근에 몇 권 읽었는데 각각 다른 분위기 책들인데, 그 시절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했어. 책이 두꺼웠지만, 재미 있어서 책이 금방금방 넘어갔단다. 밀린 독서편지를 따라잡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만 짧게 써보련다.


1.

2010년대 주인공 비비안이 친구의 딸 안젤라에게 자신의 지난 일들을 알려주려고 글을 쓰는 형식이란다. 친구의 딸이라고 해서 어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데 안젤라는 1942년생으로 2010년대면 안젤라도 이미 할머니가 되었겠구나. 안젤라도 지난 비비안의 이야기를 다 이해할 만큼의 나이가 되었겠구나.

….

주인공 비비안은 보수적인 시골에서 살다가 대학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고치고 성적이 좋지 않았어. 십대 후반의 젊은이들이 다 그렇지 뭐. 그렇게 말썽 피우자 비비안의 부모님은 비비안을 뉴욕에서 극단을 운영하는 고모 페그에게 보냈단다. 당시는 1940년이었고, 비비안은 19살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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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4)

1940년의 뉴욕이란!

그런 뉴욕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 이전이나 이후의 뉴욕을 폄하할 생각은 물론 없다. 언제라고 뉴욕이 중요하지 않았겠니. 하지만 그때의 뉴욕은 그 도시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그 도시, 오직 내 눈에만 새롭게 창조된 뉴욕은 다시 존재하지 못하겠지. 그 뉴욕은 책 사이에 끼워 말린 나뭇잎 책갈피처럼, 나만의 완벽한 뉴욕으로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단다. 너에게 너만의 완벽한 뉴욕이 있겠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의 뉴욕은 언제나 나만의 뉴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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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그 고모가 운영하는 극단의 이름은 릴리 플레이하우스라는 극단인데, 최근에는 경영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 극단의 경영 등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는 이는 페그 고모의 친구인 올리브라는 분이었어. 올리브는 엄격하면서도 꼼꼼해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극단이 쓰러지지 않게 잘 운영해 나가고 있단다. 비비안은 할머니로부터 어렸을 때 배운 바느질 솜씨가 좋아서 극단에서 공연 의상을 만드는 일을 도왔단다. 비비안은 셀리아 레이라는 쇼걸과 함께 방을 썼는데, 셀리아와 친해진 이후 둘은 뉴욕 시내를 돌아다니며 젊음으로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욕구를 누렸단다. , 사랑, 그 어떤 것도 그들의 젊음을 막을 수 없었어.

1940,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혼동의 시절이었어. 영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부부인 에드나 파커 왓슨과 아서 왓슨도 전쟁을 피해갈 수 없었단다. 적의 폭격으로 그들의 집이 불타 버렸어. 배우의 활동도 할 수 없고 말이야. 에드나의 친구였던 페그 고모는 왓슨 부부를 뉴욕에 초대했단다. 에드나와 아서는 뉴욕에 와서 고모의 극단에서 지내게 되었어. 에드나는 우연히 알게 된 비비안의 바느질 솜씨에 놀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지게 되었단다.

에드나가 뉴욕에서 연극을 준비하게 되는데 의상은 비비안이 도맡아서 하게 되었어. 거물급 배우가 뉴욕에 왔으니 페그 고모에게도 찬스였어. 그래서 페그는 <시티 오브 걸스>라는 극(뮤지컬)을 준비하기로 했어. 멀리 서부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 빌리에게도 도움을 청했단다. 페그와 빌리는 부부이긴 했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단다. 빌리는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이었어. 에드나가 주인공으로 하는 대본을 며칠 만에 써냈어. 오랜만에 극단 릴리 플레이하우스는 활기가 돌았단다.


2.

극단 릴리 플레이하우스는 <시티 오브 걸스> 준비로 정신이 없었어. 페그 고모아 빌리 삼촌은 부족한 배우들을 공개 오디션으로 뽑았단다. 비비안의 룸메이트 셀리나도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비비안은 무대 의상을 맡았단다. 뉴욕에 있는 중고시장에서 옷을 구해서 멋지게 리폼을 했단다. 새로 캐스팅된 배우 중에 안소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비비안은 안소니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중요한 무대를 앞두고 있던 시기에 주연배우와 스탭의 사랑이라서 그들의 사이를 비밀로 하려고 했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숨긴다고 숨겨지는 거겠니.

드디어 첫 공연….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단다. 대중들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호평이 이어졌어. 특히 주인공을 맡은 에드나에 대해서는 극찬이 이어지면서 세계적인 대스타 반열에 올랐어. 비비안은 의상도 좋았다는 평가에 기뻐했단다.

그렇게 극이 성공을 거둔 얼마 후 비비안의 오빠인 월터가 프린스턴 대학교를 중퇴하고 해군 입대를 준비한다면서 뉴욕에 잠시 들렀어. 페그 고모와 비비안에게 인사를 나누려고 온 것이었는데, 비비안이 안소니와 사귀는 것을 알고 심하게 반대를 했단다. 안소니는 월터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가 오히려 갈등만 심해졌단다.

<시티 오브 걸스>의 성공으로 주연배우의 자격으로 에드나와 안소니가 자선행사에 초대되었는데, 에드나의 남편 아서가 심한 질투로 소동을 벌이기도 했단다. 에드나의 남편 아서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했는데, 아서는 얼굴 하나만으로 배우가 된 사람으로 성품도 안 좋고, 연기도 못하고 그랬단다. 아서가 그렇게 질투를 했지만 사실 아서는 셀리나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단다. 더 나쁜 놈이구나.

에드나와 안소니가 자선행사에 간 그 날, 셀리나가 비비안에게 만나자고 해서 나갔는데 그곳에 아서도 같이 있었어. 이제서야 비비안은 셀리나와 아서 사이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런데 그날 술도 먹고 그러다 보니 더블 데이트를 하게 되었단다. 그 장면이 사진에 찍히고 말았어. 밤 늦게 극단에 돌아오니, 극단은 초상집 분위기였어. 비비안, 셀리나, 아서가 셋이 껴안고 더블데이트를 찍은 사진이 비비안보다 극단에 먼저 도착해 있었어. 다음날 기사로 나갈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다들 고민에 빠져 있었어.

페그 고모는 비비안의 이름만은 기사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했어. 이 걱정에 술을 많이 먹어서인지 취해 있었어. 에드나는 비비안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어. 이런 사고를 해결하는 것은 늘 그렇듯 올리브였단다. 올리브는 비비안을 데리고 사진을 찍은 기자를 만나러 갔단다. 간신히 비비안의 이름을 넣지 않게 했단다. 사진까지 막을 방법은 없었어. 오랜만에 잘 나가는 극단의 치명타였던 스캔들이었지만, 에드나의 훌륭한 연기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단다. 셀리나는 해고되었고, 비비안도 안소니에게 버림 받고 극단에서도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서 집으로 오게 되었단다. 에드나가 비비안에게 크게 실망하고 질책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거든.


3.

집에 머물면서 아버지 회사의 일을 도와주었어. 짐 라슨이라는 아버지 회사의 직원과 사귀어 결혼도 할 뻔했는데, 비비안이 처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멀리한 짐은, 전쟁에 참전한다는 핑계로 파혼하자고 했단다. 어느날 페그 고모가 비비안의 집에 와서 비비안의 아버지에게, 그러니까 자신의 오빠한테 비비안을 다시 뉴욕에 보내달라고 했어. 자신의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이야.

다시 돌아온 뉴욕은 많이 바뀌어 있었단다. 전쟁 때문에 페그 고모는 해군 상대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비비안도 도와주었어. 그러다가 1945 3월 일본의 가미카제 공격으로 인해 비비안의 오빠 월터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비비안을 비롯한 모든 식구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어. 1945 3월이면 전쟁이 끝나기 몇 달 전인데, 몇 달만 더 버티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1950년 뉴욕은 도시 계획에 따라서 릴리 플레이하우스는 철거되고 말았단다. 페그 고모는 고등학교에서 연극반을 가르치게 되었고, 올리브는 그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비서 일을 하게 되었어. 비비안은 예전부터 알고 지낸 중고 옷가게를 하는 마조리와 함께 부티크 사업을 했단다. 수제 웨딩드레스 사업을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어느 정도 사업이 잘 되었단다. 비비안 마조리는 모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어느날 마조리가 임신을 했단다.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비비안에게 함께 키우자고 했어. 아들 네이슨을 낳고 이제는 세 식구가 되었단다.

….

1960년대에 우연히 월터 오빠의 군대 후임이었던 프랭크를 만났단다. 이 프랭크가 바로 안젤라의 아버지란다. 안젤라가 누구냐고? 이 독서편지의 맨 앞부분에 보면 안젤라가 나온단다. 비비안이 지난 일을 안젤라에게 알려주려고 지난일을 글로 쓰고 있다고 했었지. 안젤라는 1942년에 태어났는데, 프랭크는 그 이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단다. 월터가 죽은 일본의 가미카제의 공격에서 프랭크는 다행히 살아났지만, 온 몸의 60퍼센트를 화상을 입었단다. 그 일로 인해 극심한 트라우마로 앉지도 못하고, 누군가 자신을 만지는 것도 극도로 싫어했단다.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런 시점에 비비안과 알게 되었어. 프랭크는 힘들 때마다 비비안에게 전화를 했고, 비비안은 따뜻하게 대화를 나누었단다. 그렇게 둘은 사랑하게 되었어. 비록 만질 수 없지만 말이야. 육체적 쾌락을 즐겼던 비비안에게는 어쩌면 그런 육체적 쾌락 없이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깨닫지 않았을까 싶구나. 1971, 프랭크는 자신의 딸, 그러니까 안젤라가 결혼한다고 비비안에게 웨딩드레스를 부탁했단다. 그렇게 비비안은 처음으로 안젤라를 만나게 되었어. , 그 이후에 또 만날 일은 없었지. 그리고 1977년 안젤라로부터 프랭크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단다. 돌이켜 보면 키스 한번 안하고 포옹 한번 안 해던 프랭크인데, 비비안은 프랭크가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단다.

….

비비안의 이 글을 통해 안젤라도 다시 한번 아버지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구나. 이미 안젤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분이니 비비안의 글로 인해 삶이 바뀌거나 큰 가르침을 얻고 그러지는 않겠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생각 드는구나. 그것은 비단 안젤라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빠도 포함해서 말이야. 짧게 쓴다고 했는데, 이야기 하다 보니 길어졌구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며칠 전, 그의 딸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책의 끝 문장: 비비안 모리스.


"네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하나 있어. 비비안. 너는 절대 흥미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래, 물론 예쁘긴 하지. 하지만 그건 오직 젊기 때문이란다. 아름다움은 곧 사라져. 하지만 넌 결코 흥미로운 사람이 될 수 없어. 내가 이 말을 해주는 이유는, 네가 스스로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네 삶도 중요하다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넌 전혀 흥미롭지도 않고, 네 삶도 전혀 중요하지 않아. 한때는 나도 네가 흥미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틀렸어. 네 고모 페그가 바로 흥미로운 사람이야. 올리브 톰슨도 흥미로운 사람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야. 하지만 넌 전혀 흥미롭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니?" - P358

"아무나 쉽게 어른이 되지 못해." 올리브는 페그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다시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아빠가 해주신 말씀이지. 어른의 세상은 어린이의 세상과 다르다고. 너도 알다시피 아이들은 고통을 견딜 필요가 없지. 그런 기대를 받지도 않고.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려면 어른의 자리에 서야 해. 당연히 그런 기대도 받게 되고. 자기만의 원칙과 신념도 지켜야 하고. 희생도 필요하단다. 사람들은 널 판단하겠지. 실수를 하면 해결해야 하고. 어름이 되지 못한 사람보다 충동을 자제하고 더 고상한 입장을 취해야 할 때가 있을 거야. 물론 많이 아프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른의 자리가 힘든 거란다. 이해하겠니?" - P498

나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아본 적은 없었다. 내 경험을 말로 표현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말한 어둠이 ‘죄’나 사악함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내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 세상의 빛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오직 섹스만 그곳에 가닿을 수 있었다. 태곳적부터 내 안에 존재하는 곳, 문명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곳, 말이 가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우정으로도 불가능했다. 창의적 노력으로도, 경외와 기쁨으로도 건드릴 수 없는 곳이었다. 내 안의 그 어둠은 오직 섹스를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 그 어둡고 은밀한 공간에 도달하면 나는 마침내 나라는 인간의 기원에 내려섰다고 느꼈다. - P529

"잘 들어요, 프랭크 그레코. 당신이 겁쟁이라면 그래요, 당신 말대로 그렇다고 쳐요. 그래도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내 고모 페그는 알코올 중독이에요. 고모는 술을 절제하지 못해요. 그래서 인생이 엉망진창 꼬였죠. 그게 무슨 뜻일까요? 아무 뜻도 없어요. 그렇다고 고모가 나쁜 사람일까요? 술을 조절하지 못한다고 실패한 사람일까요? 당연히 아니에요. 고모는 그저 그런 사람인 거예요. 어쩌다 알코올 중독이 된 것뿐이에요, 프랭크. 누구나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우리예요. 그 사실을 바꿀 수 있는 건 없어요. 빌리 삼촌은 약속을 밥 먹듯 어기고, 여자에게 충실하지 못해요. 그것 역시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에요. 빌리는 멋진 사람이면서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삼촌은 그저 그런 사람인 거예요. 그뿐이지 아무 뜻도 없어요. 그래도 우린 그를 사랑해요." - P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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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생전·운영전·최척전·상사동기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1
정환국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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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몇 달 전에 읽은 <월간 김어준 part I>에서, 그 책에서 우리나라 고전 <최척전>을 소개해주었는데, 너무 재미있을 것 같더구나. 그래서 그때 너희들한테도 <최척전>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잖아. 아빠는 <최척전>의 전문을 읽고 싶어서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고, 책 하나를 구입했단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한국 고전 문학 전집 시리즈였어. 이 책에는 최척전 뿐만 아니라, 주생전, 운영전, 상사동기 이렇게 4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단다. <월간 김어준 part I>라는 책에서 <최척전>을 소개해주었을 때는 분량이 꽤 많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그리 길지는 않더구나. 352페이지 안에 작품 4개가 한문 원문 전문과 한글 번역본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이 네 작품 중에 <운영전> <상사동기>라는 작품은 예전에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읽은 적이 있단다. 다른 출판사에서는 <상사동기> <영영전>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었어. 처음에는 다른 작품인 줄 알고 읽었는데, 읽다 보니 익숙한 줄거리 때문에 찾아보니 <영영전>과 같은 작품이더구나.

이 책에 실린 네 편 모두 재미있었단다. 이 책의 한가지 아쉬움 점이 있다면, 주석의 위치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품의 한문 원문보다 한글 번역본을 볼 것 같은데, 주석은 한문 원문이 있는 곳에 있었단다. 그래서 낯선 단어나 인물이 나오면 혹시 주석이 있나 한문원본의 페이지를 찾아가서 읽어봐야 했단다. 정말 번거로운 일이었단다. 머리말에서는 많은 주석을 정성스럽게 달아놓았다고 했지만, 주석 찾아 읽기가 이렇게 힘드니…. 아빠는 거의 읽지 않았단다. 정말 궁금한 것만 찾아서 보았단다.


1.

먼저 <주생전>이라는 작품을 이야기해줄게. 주생은 명나라 사람이 있어. 배도라는 기녀와 사랑에 빠졌지. 배도가 기녀다 보니, 부잣집 잔치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 주생은 배도를 만나지 못해 애가 닳았단다. 배도가 어느날 노승상 부인의 잔치에 갔는데, 주생은 배도가 보고 싶어서 몰래 뒤 따라 갔다가 또 다른 여인 선화에게 푹 빠지고 만단다. 완전 바람둥이로구나.

그 날 이후 주생의 머릿속에는 선화로 가득했어. 그런데 며칠 후 선화의 동생 국영의 개인 공부 부탁을 받게 되는 주생. 이름이 국영이라공부를 잘 할 것은 이름이구나. 국영수였으면 더 잘했을 텐데. 아무튼 주생의 입장에서는 이 찬스를 놓칠 수 없지처음에는 국영이 주생의 집에 와서 배웠는데, 주생이 직접 집으로 가겠다고 해서 선화의 집에서 선화의 동생을 가르치게 되었단다.

선화를 만날 타이밍을 보던 주생, 우연을 가장하여 선화와 말을 섞게 되고, 이후 둘은 사랑에 빠졌단다. 선수구나. 한편, 배도는 주생이 고무신 갈아탄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얼마 후에 병에 걸려 죽고 말았단다.

그런데 얼마 후에 주생은 선화와 잠시 헤어질 수밖에 없었어. 그들이 공식적으로 사귀는 것이 아니고 몰래 사귀는 것이니 대놓고 찾아갈 수도 없고그런데 어느날 주생에서 선자리가 들어왔는데 바로 선화였단다. 이제 정식으로 만날 수 있고, 그것도 평생 함께 할 수 있게 된 거야. 그런데…. 조선에서 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나서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을 했어. 이때 주생도 그만 전쟁에 끌려가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결혼 날짜만 잡아놓고 말이야. .. 아무래도 첫사랑 기녀를 내친 것에 대한 죄값이 아닐지

그렇게 주생은 조선에 오게 되었단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단다. 주생은 과연 다시 명나라로 돌아갔을까. 고전 소설 치고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끝난 것이 소설을 쓰다가 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2.

다음 작품은 <운영전>인데, 아빠가 예전에 읽고 쓴 줄거리가 있으니 오늘은 생략하련다. 이해바람~

짧게 이야기하면 김진사와 운영이 신선이었는데, 하늘에서 잘못을 해서 인간세계로 귀양 왔다가 유영이라는 사람을 만나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전해주는 작품이란다. 읽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더구나.

그리고 다음 작품은 <최척전> 최척은 남원 사람이란다. 옥영이라는 이가 최척을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져 쪽지를 먼저 보내는 등 적극적이었단다. 조선의 여성의 이미지와 좀 거리가 있지만, 조선 시대에도 당당하게 사랑을 표현한 여성이 있었다는 것이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어. 둘은 그렇게 사랑에 빠졌단다. 최척이 아버지에게 옥영과 혼사를 부탁했고, 결국 혼인을 약속했단다.

그런데 시국이 흉흉했어. 왜놈들이 쳐들어왔거든. 그래,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였어. 변사정이라는 사람이 의병을 일으켰는데, 그는 최척을 데리고 갔단다. 최척은 그 전부터 소문난 활의 명수였거든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전쟁터에 끌려갔으니 어떻겠니. 최척이 전쟁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옥영의 부모는 부잣집에 결혼 시키려고 했어.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쪽지까지 보내는 여자에게 강제 결혼을 시키려고 하다니

옥영이 순순히 따라가겠니? 자실 시도를 했어.. 이에 옥영의 부모는 마음을 접었단다. 전쟁터에서 상사병에 걸린 최척은 시름시름 앓기만 해서, 결국 귀가 조치 당했단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서 최척과 옥영은 결혼을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 아들 몽석도 낳았어.

그런데 정유년 왜가 다시 쳐들어왔단다. (역사에서는 정유재란이라고 하지) 그들이 살고 있는 남원도 침략을 받아서 지리산 속 연곡이라는 곳으로 피신했단다. 최척이 음식을 구라고 간 사이, 일본군이 연곡까지 쳐들어와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라졌어. 최척이 왔을 때는 옥영과 아들 몽석도 사라졌어. 다행히 몽석은 할아버지가 찾았는데, 옥영은 보이지 않았어. 최척은 옥영을 찾으러 다니다가 명나라 장수 여유문을 만나게 되었어. 여유문은 활을 잘 쏘는 최척을 신임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 최척은 여유문을 따라 명나라에 갔단다. 혹시 옥영이 그곳에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명나라에서 정착한 최적. 옥영과 헤어진 지도 꽤 되었는데 계속 혼자 지냈어. 혼사 자리가 있었는데도 다 거절했어. 여유문이 죽고 최척은 학천이라는 상인을 만나 함께 장사를 했단다. 학천은 장사를 위해 멀리 안남(오늘날 베트남)까기 갔어. 그런데 그곳에서 정말 우연히 아내 옥영을 만났단다. 햇수를 헤아려 보니 4년만이었단다. 어떻게 그 먼 곳에서 옥영을 만날 수 있었을까.

옥영은 연곡에서 일본군 돈우에게 잡혀가 일본을 끌려갔단다. 옥영을 끌고 갔지만 돈우는 심성이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옥영은 일본 나고야에서 남장을 하면서 지냈단다. 돈우도 옥영이 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고 지냈단다.  그거 집안일과 심부름과 고기 잡은 일을 돕게 했어. 돈우는 원래 고기 잡는 어부였는데 전쟁에 끌려갔던 거야. 어느날은 고기를 잡으러 멀리 언남까지 오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옥영은 남편이 즐겨 부르던 퉁소소리를 들을 줄 꿈에도 몰랐겠지.

그렇게 4년만에 만난 최척과 옥영. 둘의 사연을 들은 주변 사람들이 축하를 해주었어. 돈우도 옥영을 풀어주기로 했단다. 그래서 최척과 옥영은 명나라로 돌아가서 같이 살게 되었단다. 그리고 아들 몽선도 낳았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말이 쉽지 조선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았어. 세월은 예전에도 빨리 흘러갔나보나. 몽선이 어느덧 장성해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어. 이웃에 살고 있던 중국 처녀 홍도와 결혼했단다.

그런데 청나라 누르하치가 명나라를 공격하게 되었고, 최척도 징병 당해 명나라 군인으로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단다. 그랬다가 청나라에 포로가 되었어. 감옥에서 최척은 같이 포로로 있던 조선 청년을 만나는데둘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이런, 그 조선 청년이 바로….. 최척의 첫째 아들 몽석이었단다. 둘은 얼싸안고 울고불고 난리났지. 둘은 풀려나서, 함께 남원으로 돌아왔단다.

얼마 만에 돌아온 고향인지부모님도 아직 살아계셨어. 그런데 놀랄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다. 고향집 이웃에 진위경이란 사람이 있었어. 진위경은 원래 명나라 사람인데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 왔다가 조선에 정착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바로…. 최척의 며느리 홍도의 아버지였던 거야. 그러니까 사돈인 거지

해피엔딩의 끝에 거의 다 왔단다. 중국에 있던 옥영은 명나라가 대패했지만, 조선군은 풀어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쩌면 최척이 조선이 돌아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옥영도 조선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단다. 아들 몽선, 며느리 홍도와 함께 그들은 먼 길을 떠났단다. 배를 타고 무작정 조선으로 향했는데 이 또한 순항은 아니고, 해적을 만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조선 땅에 도착했단다. 그리고 남원으로 가서 남편 최척을 만나면서 해피 엔딩. 아참, 돌아가신 줄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난 홍도도 해피 엔딩….

<월간 김어준 part 1>에서 <최척전>을 소개해주면서 조선판 <전쟁과 평화>라고 했는데, 정말 스케일이 엄청나구나.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이 다 나오고주인공들은 중국, 일본, 베트남까지 오가고우연적인 요소가 많긴 하지만, 그 우연이 재미를 더해 준 것 같았단다. 우리나라 고전 소설도 재미있는 소설이 많구나. 더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

그런데 Jiny가 다니는 국어 학원에서 지난 달에 읽어야 하는 책 중에 <최척전>이라는 책이 포함되어 있었잖아. 아빠는 몇 달 전에 제목조차 처음 들어 본 작품인데, 너희들은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선정된 것을 보니, 꽤나 유명한 책인가 보구나. Jiny도 재미있게 읽었니?

….

마지막 <상사동기>란 작품은 아빠가 이미 오래 전에 읽었다고 했잖아. 찾아보니 2006년에 읽었구나.  당시 쓴 리뷰를 쓴 것이 있으니 오늘은 생략하마. 당시 쓴 리뷰를 다시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음 쑥스럽구나.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고…. 17년 전이라니

,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주생의 이름은 회다.

책의 끝 문장: , 애석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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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구는 그 많은 행성들 중 어쩌다 생긴 하나에 불과했고,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행성이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별 상관 없는 행성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안에서 존재의 이유조차 알 수 없도록 우연히 생긴 생명체였다.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이 땅을 외롭게 만든 것은 오롯이 인간의 짓이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 나는 그저 이 행성을 떠나야만 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35-36)

그리고 어느 곳이든 네가 나아가는 곳이 길이고, 길은 늘 외롭단다. 적당히 외로움을 길 밖으로 내던지며 나아가야 한다. 외로움이 적재되면 도로도 쉽게 무너지니까. 알겠니?

나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아버지에게 카림한테서 들었던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설령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거짓말했더라도, 내 출발지가 그곳이었음은 변하지 않으니까. 나는 아버지에게 보지 않은 것은 쓸 수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보지 않은 우주를 꿈꿨다. 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가고 있고, 긴 주행을 마친 아버지는 현재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정착했다.


(93)

엄마는 원장과 눈을 마주 보고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엄마가 자주 하는 우기기의 비법인데,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펼칠 때일수록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네모난데 왜 동그랗다고 하는 거예요? 라는 말을 내뱉은 학자처럼 말이다. 원장은 그럴 수도 있나? 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고 엄마의 계략에 넘어갔다. 세상이 이렇게 얼렁뚱땅 생겼다는 걸 엄마를 통해 배웠다. 세상은 치밀해 보이지만 사실 대체로 엉성하고 얼렁뚱땅 넘어간다는 것을.


(153)

이 사랑은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사랑일까. 나를 꽉 끌어안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이 미적지근한 온도의 사랑은.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알려준 것은 온도였다. 이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런 온도의 존재를 만나야 한다고.


(235)

내가 가족들을 가능 늦게 만났잖아. 늦게 태어났으니까. 그 단단한 결속력, 나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쌓았을 추억. 그런 걸 감내하고 버텨야 하는 자리라고, 막내가. 그런 의미로 애교란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단인 셈이지. 나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어필. 마치 강아지나 고양이가 주인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애교를 부리듯이. 언니는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 언니가 태어났을 때는 언니 혼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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