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렇게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 형태를 바꿔 가며 상태를 바꿔 가며 이런저런 화합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뿐이다. 누군가의 몸속에 있었던 원자든지 인간이 나고 자라고 죽고 문명이 성하고 쇠하고 꽃이 피고 지고 숲이 우거지고 새가 울다가 날아가 버리는 동안 언제나 같은 원자인 채로 남아서 세상을 떠돈다. 원자는 불멸의 존재다.

불멸의 원자라는 개념은 놀라울 만큼 일찍 인간의 문명 속에 나타났다. 2,400년 전 아브데라 출신의 데모크리토스는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근본적인 물질인 원자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세계관을 펼쳤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는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는 불멸의 존재였고 데모크리토스에게 이 세상은 빈 공간과 원자로 이루어진 물리적 대상이었다.

(23)

지구에 가장 많은 원자는 지구 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철이고 그 다음은 산소, 그리고 규소다. 그러나 우주 전체에 가장 많은 원자는 소소다. 수소는 우주 전체에 있는 원자 개수의 약 90퍼센트에 달한다. 그리고 나머지 10퍼센트는 거의 헬륨이다. 세 번째로 많은 원자인 산도도 0.06퍼센트에 불과하다. 태양을 비롯해서 우리가 보는 별은 대부분이 수소와 헬륨으로 되어 있다. 수소는 별들이 타오르는 연료다. 중력에 의해서 성간 물질이 뭉쳐져서 별을 만들고, 내부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서 약 1000만 도에 이르면 별이 점화된다.

(26)

오늘날 우리는 우주에서 원자핵을 합성하는 모든 과정을 알고 있다. 밤하늘의 많은 별들 속에서는 지금도 계속 수소가 헬륨이 되는 핵융합이 일어나고 있고, 헬륨은 다시 탄소와 산소를 만든다. 더 무거운 별들 속에서는 네온과 마그네슘, 규소 등 점점 무거운 원자가 생겨나서 마침내 철과 니켈까지 만들어진다. 그보다 더 무거운 원자들은 중성자를 천천히 흡수해서 만들어지거나, 초신성이 폭발할 때와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 중성자나 양성자를 급격히 흡수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28)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수십억 년 전 어느 별 안에서 만들어져서 초신성의 폭발과 함께 우주 공간에 흩어지거나 적색 거성의 표면에서 흩날려서 떠다니다가 서로 만났다. 우리는 언젠가 우주 어디선가 일어났던 초신성의 흔적이며 수많은 별들의 죽음 속에서 태어난 존재다. 우리가 언젠가 죽겠지만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언제까지나 남아서 지구 어느 곳인가, 혹은 우주 어느 곳인가에서 또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48)

맥스웰의 고전 전기 역학에 양자 역학의 원리를 적용한 이론을 양자 전기 역학(Quantum Electrodynamics, QED)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거의 전자기적인 상호 작용이므로, 양자 전기 역학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습을 대부분 설명해 주는 근본적인 이론이다. 그래서 양자 전기 역학 이론을 확립하고 전기장의 양자 역학적 효과를 이론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1920년대 후반부터 이론 물리학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55)

다시 전자를 바라보자. 우리가 전자를 볼 때, 우리는 전자와 전가기장을 따로따로 보는 것이다. 애초에 전자기장 없는 전자 그 자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전자만을 보려고 생각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옳지 않다. 우리가 보는 진짜 맨물리량과 양자 역학적 효과를 모두 합친, 그러니까 재규격화된전자이며,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전자다. 이것이 양자 전기 역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일이다. 그렇게 우리가 전자 하나를 보는 일조차 근본적으로 이론과 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62)

숨은 쿼크는 양자 역학의 효과로 양성자 속에서 생성되었다가 소멸하는 쿼크-반쿼크 쌍이다. 전자가 양성자 안에 들어왔을 때, 드러난 쿼크를 만날 수도 있지만 마침 생성된 쿼크나 반쿼크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양성자가 너무나 작아서, 그 속은 양자 역학이 완전히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더구나 양성자 안에서는 대부분의 일이 강한 상호 작용을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러한 생성과 소멸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난다. 숨은 쿼크들은 항상 입자-반입자의 쌍으로 만들어졌다가 소멸하기 때문에 양성자 전체로 보아서는 이들의 성질은 서로 상쇄되어서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쿼크뿐 아니라 글루온도 강한 상호 작용 자체의 양자 효과로 계속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하고 있으므로, 전자는 쿼크뿐 아니라 글루온을 만날 수도 있다.

(86~87)

반입자는 입자와 질량은 똑같고, 전하뿐 아니라 모든 물리적 성질이 정반대인 상태다. 그래서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면 모든 물리적 성질이 서로 상쇄되어 0이 되고 두 입자는 소멸한다. 다만 입자와 반입자의 질량만은 상쇄되지 않고 남아서, 그 질량만큼의 복사 에너지가 된다. 한마디로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면 빛을 남기고 살져 버리는 것이다. 우리 세상은 그냥 물질로 되어 있으므로, 반물질이 나타나면 물질과 만나서 금방 소멸해 버린다. 그러니까 반물질을 보관하려면 보통 물질로 만들어진 용기에 그냥 담을 수 없고 항상 진공 속에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언가로 반물질을 붙잡아서 공중에 떠 있게 만들어야 한다. 양전자나 반양성자라면 전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전자기장으로 조종해서 일정한 위치에 잡아놓을 수 있다. 이는 베트라 부녀가 아니더라도 물리학자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지, CERN의 소장쯤 되는 사람이 놀랄 일은 아니다. (물론 실제로 구현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119)

페르미가 즐겨 그렇게 했듯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적절한 가정을 통해 단순화시켜서 자세한 계산 없이 정량적인 값을 어림해 내는 것을 페르미 해답(Fermi Solutio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페르미 해답을 구하도록 문제를 페르미 문제(Fermi Question)라고 한다.

(133)

1947 12 23, 바딘과 브래튼은 저마늄 표면에 0.05밀리미터 간격으로 놓인 텅스텐 침을 통해 진공관처럼 전류를 증폭시킬 수 있는 소자를 개발하고 특허를 취득했다. 이 소자의 이름은 트랜지스터로 명명되었고, 특히 이들의 발명품은 점-접촉 트랜지스터라고 부른다. 특허권자의 이름에 쇼클리는 없었다. 쇼클리는 이 발명은 자신의 이론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시금 충격을 받은 쇼클리는 호텔 방과 집에 틀어박혀서 몰래 새로운 방식의 소자를 연구했다. 두 종류의 반도체를 접합한 쇼클리의 트랜지스터는 1948년에 발표되었다.

(252)

오늘날 입자 물리학의 실험적 연구는 가속기 없이는 생각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입자는 시간이 지나면 보다 안정된 상태로 붕괴해 버린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물질은 모두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전자가 안정된 상태로 결합된 원자로 만들어져 있다. 다른 입자를 보고 싶으면 특별히 높은 에너지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지구에서 그런 높은 에너지 상태는 초신성 폭발 등을 통해서 만들어진 입자인 우주선이 우주를 날아오다 지구에 부딪힐 때만 생긴다. 그래서 1940년대까지 입자 물리학 실험은 하늘 높이 띄운 기구에 설치된 검출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1933년 미국의 어니스트 로런스가 원형 입자 가속기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하면서, 가속기로 입자를 직접 만들어서 연구할 수 있게 되었고, 입자 물리학 연구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304~305)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속도와 4차원 같은 새로운 발명으로

걱정거리를 만들죠.

미스터 아인슈타인의 이론에는

이제 조금 지쳤어요.

그래서 가끔은 땅에 내려와서

긴장을 풀고 쉬어야 해요.

무슨 전본가 있건

무엇이 더 증명되든

인생의 단순한 사실은

사라질 수 없다는 것.

험프리 보거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한 1942년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제곡 <시간이 흐르면서( As time goes by)>는 원래 1931년에 허먼 후펠드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위해 만든 곡이다. 영화에 나오면서 이 곡은 대히트를 거둬, 1931년에 취입한 루디 발레의 곡이 10년도 더 지나서 뒤늦게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곡의 앞부분 가사는 사실 앞에 보인 내용이다. 이 가사를 보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당대에 얼마나 광범위하게 충격을 미쳤는지를 느낄 수 있다.

(338~339)

이 모임의 이름은 홀브루 컴퓨터 클럽으로 결정되었다. 이 모임과 그 주변에서 앞으로의 컴퓨터 기술의 , 아니 컴퓨터 산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인물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당시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아마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은 홀브루 클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알테어용 컴퓨터 언어 베이직을 개발한 시애틀 출신의 깡마른 십대였다. 자신의 프로그램이 팔리기 시작하자 다니던 하버드 대학교를 때려치우고 컴퓨터 사업에 뛰어든 이 젊은 천재는 약 20년 뒤에 컴퓨터 산업의 황제가 되어, 말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다. 그의 시름은 윌리엄 헨리 게이츠 3, 흔히 빌 게이츠라고 부른다.

또 다른 인물들은 홈브루 클럽에 나오던 두 사람의 스티브였다.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 중에 나이가 많은 쪽은 전자 공학과 컴퓨터에 대한 전설적인 능력으로 유명해서, 그가 홈브루 클럽의 회합이 열리던 스탠퍼드 선형 가속기 연구소 강당의 뒷자리에 앉아 있으며 주변에는 그의 뛰어난 컴퓨터 능력을 숭배하는 추종자들이 몰려 앉아 있곤 했다. 어린 시절엔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던 어린 쪽의 스티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자 공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친구의 소개로 나이 많은 스티브를 알게 되어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얼마 후 나이 많은 스티브가 새로 나온 6502 칩을 사용해서 만든 개인용 컴퓨터를 홈브루 클럽에서 발표했다. 그는 그저 자신이 만든 컴퓨터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려는 것이었지만, 이를 지켜본 어린 스티브는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함께 사업을 시작할 것을 권했다. 직접 만든 컴퓨터를 파는 그들의 사업은 곧 성공해서, 얼마 뒤에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석권하기에 이른다. 무수한 우여곡절과 부침을 거친 후, 이 회사는 2011년 석유 회사인 액슨 모빌을 제치고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회사가 된다. 이 회사가 그들이 처음 만든 개인용 컴퓨터의 이름은 애플이고, 나이 많은 스티브의 이름은 스티븐 워즈니악, 어린 쪽은 스티브 잡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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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우리가 가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부터 우리는 나무를 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그리고 비는 나무라고 부릅시다. , 주위를 둘러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 풍부한 비가 보이지 않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들은 온통 비에 둘러싸여 있었다.

(60)

바깥세상과 마찬가지로 헤움 사람들도 한두 가지 걱정거리는 늘 있었다. 내일 해가 뜨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월식이 일어나 달이 사라지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만간 큰 자연재해가 일어나 세상이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이도 있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남자아이거나 여자아이거나 쌍둥이거나 더 나아가 세쌍둥이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있었다. 헤움 사람들은 누구보다 똑똑했기 때문에 문제를 발견하는 데도 뛰어났다.

(137-138)

하루는 내가 나이를 먹었나 보다고 느끼게 되었지.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말하는데도 귀가 잘 들리지 않았거든. 아내가 걱정을 했고,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브제시치의 그 병원으로 가서 청력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아 보기로 했어. 그래서 둘이서 그곳으로 갔지. 당신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온갖 기분 나쁘고 쓸데없는 검사를 한 다음에 의사는 결과를 장담할 순 없지만 내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다면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어. 검사 결과 내가 늙었기 때문에 한쪽 귀가 잘 안 들리게 되었다는 거야. 나는 입원을 할지 집으로 돌아갈지 잠시 망설였어. 그런데 갑자기 이 의사가 실로 멍청한 친구라는 판단이 드는 거야. 왜 그는 나의 양쪽 귀가 똑같은 나이라는 걸 모르는 저지? 내가 늙은 것이 문제라면 똑같은 나이인데 왜 한쪽 귀는 멀쩡하고 다른 한쪽 귀만 안 들리는 거지? 그런 판단이 서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병원을 빠져나와 전속력으로 집에 돌아왔어. 그래서 그런 곳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가지 말라고 당신들에게 충고하는 거야.”

(167)

그 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항아리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고는 소리쳤다.

정말 구려! 구린 걸 보니 진실이 틀림없어!”

그렇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그것이 정말로 진실 그 자체라고 소리쳤다.

진실이 맞아! 진실은 원래 심한 구린내가 나잖아!”

(172-173)

한번은 신이 그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지상에 내려온 천사는 아기를 바라보며 짓는 엄마의 미소를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신은 매우 기뻐하며, 정말로 아름답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하진 않았습니다. 천사는 다시 지상에 내려와 꾀꼬리의 노래,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등을 신에게 보여 주었지만 신의 눈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포기하기 직전에 천사는 어느 초라한 집의 작은 부엌 한구석에서 들리는 나즈막한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누구에게서도 다정한 말을 듣지 못했던 가난한 여인이 누군가가 베푼 친절한 행위에 감동받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그 눈물 한 방울을 가져다 신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신이 찾고 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은 그 기쁨의 눈물을 선사한 영혼들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178)

아들아,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참견하고 지적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보다 가진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우리보다 가진 것이 없으면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긴단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202)

내 생각에는 돌이 우리에게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헤움에 나타난 돌의 존재를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도록 합시다. 돌 주위에 울타리를 쳐서 수레와 마차들이 우회해서 가게 합시다. 강물이 흘러가다 강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난 바위를 돌아서 흘러가듯이 말입니다. 이 돌은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과, 때로는 그 위치에 그대로 놓아두는 게 더 좋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모두가 베렉의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 제안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곧이어 돌 주위에 울타리가 세워지고, 울타리 정면에 특별한 기념 명판이 걸렸다. 그 명판에는 이렇게 적혔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218)

찬애하는 고덱, 걱정하지 마시오. 이것은 매우 단순한 일이오. 모텍의 미래는 성공적일 겁니다. 한 바보가 그림에 묘사된 장면을 설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나머지 바보들은 자신들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모텍의 잘못이 분명 아닙니다. 그러니 집으로 가서 모텍이 처음의 영감에 따라 계속 그림 작업을 해 나가도록 격려해 주세요.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작업일 뿐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도 있으니까요!”

(232-233)

베렉의 말에 모두 침묵에 잠겼다. 그의 주장은 매우 강력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하임을 포함한 의회 현자들 모두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의회는 이제부터 위기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그 대신 축복받은 환경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의회의 결정 사항은 곧바로 공표되었으며, ‘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자 헤움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267)

시장에서 노래하는 눈먼 거지는 천사일지도 모른다네. 그리고 그대의 아내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 신의 계율을 압축하면 이것이라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게.”

(276)

너무 상심하지 마, 아나톨. 나의 할머니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다고 늘 말씀하셨어. 헤움의 큰 사건들은 마을의 연대기에 기록되지만 날의 작은 일들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아. 그것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만약 당신이 그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쓴다면 당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일들이 문자로 기록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게 될 거야. 헤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해도 적어도 당신의 책 속에서는 언제까지나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될 거야.”

(280-281)

헤움 사람들은 버터 바른 빵이 바닥에 떨어지면 언제나 버터 바른 쪽이 아래를 향하도록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돌에 새겨진 십계명이나 율법처럼 분명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빵은 왜 버터 바른 쪽이 위를 향하도록 떨어졌을까?

논리에 어긋나는 중대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즉시 현자들이 모였다. 긴 토론 끝에 의회 대표 베렉이 하와를 불러 결정문을 읽어 주었다.

친애하는 하와, 헤움 의회는 버터 바른 빵이 바닥에 떨어질 때 언제나 버터 바른 쪽이 아래 쪽으로 떨어진다는 데 동의한다. 따라서 그대가 떨어뜨린 버터 바른 빵은 잘못된 쪽으로 떨어진 것이거나, 아니면 그대가 실수로 빵의 반대쪽에 버터를 바른 것이다.”

(306)

그래서 식당 주인들은 손님에 대한 소유욕이 무척 강했다. 늘 외식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은 미혼인 남자 교사였다. 그는 언제나 도로 왼편에 위치한 베니오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베니오는 그 교사가 도로 오른편에 위치한 오스왈드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베니오는 교사가 나올 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그에게 자기 식당의 음식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지 물었다.

교사는 자신이 여전히 베니오의 음식을 가장 좋아하지만 지독한 치통 때문에 오스왈드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고 대답했다. 헤움에는 치과가 없어서 조언을 얻기 위해 랍비에게 갔는데, 랍비가 그에게 치통을 줄이려면 다른 쪽으로 먹으라고 조언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320)

그런 다음 그는 사이즈 10의 새 구두 한 켤레를 달라고 했다. 슈물은 그 말을 듣고 사이즈 8의 신발을 건네주었다. 베니오가 이유를 묻자 슈물이 설명했다. 신발이 2사이즈나 작기 때문에 그것을 신는 동안 다른 문제들은 모두 잊을 거라고. 그리고 실제로 그러했다.

(331)

구두 수선공 요아브가 친구들과 앉아서 교리에 대해 토론하다가 갑자기 일어나며 집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걱정하자 요아브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고 떠났다. 그러나 걱정이 된 친구들은 집으로 걸어가는 요아브를 지켜보았고, 그가 걸으면서 매우 격렬하게 온몸을 흔드는 것을 알아차렸다.

친구들은 서둘러 랍비에게 달려가 요아브가 중병에 걸렸다고 알렸다. 랍비 또한 걱정이 되어 요아브의 집으로 찾아가 몸 상태를 물었다. 요아브는 매우 평화롭게 별문제 없다고 말했다. 온몸을 흔든 이유를 묻자 그는 의사가 처방해 준 기침약 병에 적힌 설명을 읽어 주었다.

복용하기 전에 잘 흔드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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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노회찬은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시대를 느꼈으며 그들의 언어로 정치를 해석하고 그들의 소망을 정치에 투영하려 분투했습니다. 인간사회에서 제일 이루기 어려운 그 일을, 오늘보다 내일 더 잘하기 위해 쉬지 않고 공부했고요. – 유시민 <추도의 글> 중에서

(22)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는 곧 헌법개정의 역사이다. 그리고 헌법 개정의 역사는 대부분 헌법정신 유린의 역사이다. 자신의 재선과 3선을 위해 1952, 1954년 두 차례나 변칙적인 헌법개정을 감행하고 헌법정신을 유린한 독재자 이승만이 헌법의 수호동상이 되어 제헌절 제56주년 행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27)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정당의 지지율만큼 의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정당의 지지율은 정책, 노선, 인물에 대한 종합평가이다. 전체 유권자 중 3%, 100만 명이 지지하는 정당이 있다면 이 100만 명은 국회 내에 자신을 대변할 3%의 국회의원을 가져야 한다. 32%, 29%, 18%로 나타나는 최근의 지지율로 국회의석을 배정한다면 열린우리당 120, 한나라당 109, 민주노동당 68석 가량이 되어야 한다. 부산에서 열린우리당이 30%의 의석을 갖고 광주에서 한나라당이 최소 15%의 의석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포함하는 완전비례대표제만이 정답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선거제도이기도 하다. 차선책으로나마 이런 효과를 보려면 16개 광역시도를 각각 하나씩의 선거구로 하는 대선거구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36)

숲은 미래다.

숲은 관념이 아니라 과학이다.

숲이 병들면 미래가 병드는 것이다.

숲에서 지낸 7시간.

2004년 들어서서 가장 좋은 하루를 보냈다.

(144)

그와 헤어진 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바로 다음 날부터 목에서 가래가 사라졌고, 생방송 전화인터뷰 도중에 목소리가 갈라지는 낭패를 겪지 않아도 되었다. 보름쯤 지나서 라면을 끓여 먹는데 신라면 국물맛이 그렇게 깊은 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박재갑 국립암센터 원장을 마주칠 때의 두려움도 사라졌다.

다른 사람들처럼 헤어진 그의 등에다 비난을 던질 생각은 없다. 내가 그를 버렸지, 그가 나를 거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지난 30년을 후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정든 것들과 하나씩 이별하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64)

울산바위는 울산에 있어야 한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만든다며 저 육중한 바위를 울산에서 올라오게 만든 것은 조물주의 사려 깊지 못한 처사였다. 금강산 일만이천봉 속에 포함되었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 무영의 봉우리로 전락했을 저 바위가 그나마 설악산 근처에 머물게 되어 약간이라도 빛을 발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 잘생긴 바위가 본디 그대로 울산에 그냥 남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르는 국민이 없는 명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또 전국 각지의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205)

오늘날 한국정치의 불안정성은 무엇보다도 낡은 정치구조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 한국정치의 비극은 정체성과 기본노선의 거의 비슷한 두 세력이 권력을 반분하고 대립하며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대한 두 개의 보수정당이 권력을 담당해 온 역사는 깁니다.

(246)

잃어버린 10이란 허구가 낳은 허위의식 중 대표적인 것은 대미관계와 대북관계에 관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좌파정권들때문에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고 또 북한에는 퍼주기만 하면서 끌려다녔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이 낳은 첫 작품이 지난 4 18일 타결된 쇠고기수입협상이다. 향후 거래를 위해 원청회사에 한 턱 크게 써서 환심 사겠다는 사업가정신의 발로로밖에 볼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은 바로 검역주권, 국민건강권을 포기해서라도 미국과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들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8.07.13)

(301)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금 현대자동차 그 고압선 철탑 위에 올라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3명씩 죽어나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용산에서 지금은 몇 년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고 있는 저 남일당 그 건물에서 사라져간 다섯 분도 다 투명인간입니다. (2012.10.21)

(302)

강물은 아래로 흘러갈수록 그 폭이 넓어집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중정당은 달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실현될 것입니다.

(313)

수첩을 읽는 게 아니라면 정치인의 말은 짧을수록 미덕이다. 허나 생각해보면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같은 뜻을 짧게 표현할 수 있다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뜻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은가? 여느 사람이라면 자신이 살아온 역정을 밤새워 얘기해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인생도 줄이고 또 줄이다 보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3분 이내에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하냐고? 실험해보면 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쓴 뒤 그것을 계속 줄여보는 거다. 하다 보면 마침내 3분 분량으로까지 줄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380)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지 당장 알 수 없을 때에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라.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382)

어려서는 공부시간 세계 1, 커서는 노동시간 세계 1, 늙어서는 정년퇴직 후 노동시간 세계 1, 한국남성은 퇴직하고도 11.2년 더 일해야 한답니다. 오늘은 회의 2시간 외에는 좀 쉬어야겠습니다.

(388)

순간순간을 보면 역사가 후퇴할 때도 물론 있지요. 그러나 지그재그로 발전하는 것이 역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역사적 낙관주의! 저는 늘 이 바탕 위에 서 있습니다. 그래야 어려운 조건도 이겨낼 수 있으니까요. 물방울이 끝내 바위를 뚫는 자연의 섭리를 되새깁니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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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지만 기후변화라는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불과 몇 인치이지만 그것 없이는 지상의 모든 생명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흙(토양)이 지금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2차대전 후 지금까지 전세계 표토의 절반이 사라졌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는 흙의 대량 소실이라는 이 현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깊게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흙이 잘 보존되고 가꾸어진다면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상당한 정도의 대응은 가능하고,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11)

시골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도시인들 탓으로 돌리면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골과 도시의 대립이라는 오래된 도식은 물론 여전히 진실이며, 시골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도시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더욱 진실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하다. 실제로 시골사람들도 갈수록 도시인들처럼 살고 있고, 따라서 도시인들과 공범이 되어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시골사람들은 도시인들처럼 텔레비전과 세일즈맨, 외부 전문가들이 설정한 경제적, 사회적 기준을 자기들의 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우리의 쓰레기는 시골 매립장에서 뉴저지의 쓰레기들과 뒤섞여 있고,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13)

저 옛사람들의 후손들은 지금 대부분 멀리로 떠나버렸다. 그 원인은 부분적으로 내가 조금 전에 언급했던 문화적 경제적 실패에 있다. 어쨌든 그들은 더 이상 저녁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잠잘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면서 매 수간을 광고를 듣는 데 쓰고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광고의 메시지는, 시청자가 다른 사람들처럼 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36)

농사를 살리는 것은 당면 위기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난제 중의 난제, 즉 수도권 과밀현상과 지역균형발전 문제의 해결에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중앙의 주요 기관 지방 이전이라는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경제가 우선 살아나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경제의 핵심이 농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다. 농사를 살리면 지역의 토착 소상공업이 살아나고, 지역사회와 마을문화가 활기를 찾고, 거기에 뿌리를 박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늘어나게 마련이다.

(53~54)

분단체제는 다른 체제로 체제전환(system transformation)됨으로써 사라진다. 분단체제 안에서 성장해온 힘이 이 체제의 작동을 정지시키면서 새로운 체제로 전환해가는 것이다. ‘촛불혁명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체제전환의 계기, 출발점이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분단체제가 체제전환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한다면, 그 환골탈태한 새 체제란 과연 무엇일까? 남북의 적대가 해소되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체제 아니겠는가? 그래야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가 이윽고 끊기지 않겠는가? 그것이 한국과 조선이 서로를 인정하여 수교하는 양국체제, 즉 양국 평화체제, 양국 공존체제 아닌가? 그것이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체제전환인 것이고, 이것이 촛불을 진정 혁명으로 만드는 징표가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과연 분단체제론은 어떻게 생각할까?

(81)

1999 8현대의료를 생각하는 모임회원 아홉 명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바르바샤의 게토 유적, 그리고 독일 베를린으로 답사여행을 떠났다. 일본과 자주 비교가 되기도 하지만, 독일 또한 전쟁 당시 나치에 의해 의학범죄가 행해졌던 나라이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 중의 의학적 범죄에 대해서 조금도 반성하거나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 데 비해서, 독일의 경우에는 나치 의학이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가치 - 1918년부터 1945년까지의 독일 의학>은 나치 당시의 독일 의학을 반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독일의사회가 발행한 보고서이다. 여기에는 과거의 나치 독일 치하에서의 의학범죄 사실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에는 일본의사회를 비롯해서 아무 데서도 이러한 노력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28)

대학은 과학에 대해서 무엇을 해왔는가? 대학은 대학의 경비 염출을 위해서 과학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희생시켰다. 대학은 과학을 싸구려로 만들고,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통속적으로 만들었다. 대학에 의해서 과학은 홍보용 속임수 수단이 되었다. 이런 종류의 교육에 의해서 나온 산물이 그래도 좋은 물건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젊은이들의 정신이 아직 건강한 탄력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회복 불가능할 만큼 손상을 입고 있다.

(129)

오늘의 과학은 공적 지원에 너무나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보조금을 받지 않고는 연구를 수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과학자들의 연구비 신청이 거부된다면, 가장 젊고 원기 넘치는 조교수들조차도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 이와 같이 연구비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다 보면, 그것은 일종의 파블로프형 조건반사 작용을 낳고, 과학을 돌이킬 수 없이 손상시키는 일반 신경쇠약 증상을 초래한다. 그러고 보면 너무 가난해지기 전에 너무 부유해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법하다. 왜냐하면 그사이에 실현될 가능성도 별로 없는 길로 많은 젊은이들이 유혹을 받고 끌려 들어왔기 때문이다.

(229)

따라서 자본주의시스템에서 모든 개인은 중독시스템을 구성하는 기본세포이다. 이 세포의 성장은 중독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를 확대재생산한다. 아니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이 세포는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 결국 세포, 그들이 속한 다양한 조직인 학교, 가족, 노조, 기업, 정부 그리고 이것들을 품에 안고 작동하는 사회 전체가 하나의 중독시스템으로 완성된다. 잘 짜인 연결망으로 서로를 얽매어 중독이라는 단일한 작동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괴물체,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독 과정을 영속화하는 병든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인 것이다.

(233)

중독시스템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물론 그 출발은 나 자신이 (동반) 중독자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유보다 존재를 지향하는, 결과보다 과정을 지향하는, 그리고 외면보다 내면을 지향하는 삶으로서의 방향전환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향전환을 토대로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시스템을 상상해볼 수 있다. 저자들은 기계의 원리인 자동성, 획일성, 무한성이 지배하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파괴를 특성으로 하는 근대성 패러다임의 극복을 말하는데, 야생성, 다양성, 순환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자연의 원리와 계획성, 창의성, 윤리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인위적 원리의 중간 어디쯤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기본 원리를 찾을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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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

원자와 같이 미시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너무나 이상했기 때문에, 뉴턴의 물리학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이론을 찾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원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던 상식적인 생각들을 모두 떨쳐 버려야만 했던 것이다. 마침내 1926년에 이르러 물질 내부의 전자가 취하고 있는전혀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설명해주는 비상식적인 이론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터무니없는 이론이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양자역학이라고 불리는 이론이 바로 그것이었다. ‘양자 quantum’라는 말 자체가 상식을 거스르는 이상한 자연현상을 지칭하고 있으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상한 자연현상에 관한 것이다.

(27)

양자역학은 모든 화학적 현상과 물질의 다양한 성질을 모두 설명할 수 있었으므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빛과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은 여전히 문제점으로 남아 있었다. , 전지와 자기에 관한 맥스웰의 이론도 양자역학이 제시한 새로운 원리에 부합되도록 수정이 가해져야 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일단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1929년 빛을 보게 되었으며, 거기에는 양자전기역학이라는 끔찍한 이름이 붙어졌다.

(30)

먼저 양자전기역학이 얼마나 많은 자연현상을 설명해낼 수 있는지를 상기해보자. 아니, 거꾸로 말하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 양자전기역학은 몇 가지를 제외한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해주고 있다. 그 몇 가지의 예외란 여러분을 의자에 붙잡아두고 있는 중력현상과(물론 내 생각에는 중력과 연사에 대한 예의가 혼합된 현상이지만) 핵자의 에너지 준위를 변형시키는 방사능 현상이다. 만일 우리가 중력과 방사능(정확하게는 핵물리학)을 제외한다면, 자동차의 엔진에서 끓고 있는 가솔린, 거품 현상, 소금과 구리의 딱딱한 성질 및 강철의 견고한 구조 등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생물학자들은 생명현상까지도 가능한 한 화학적 원리로써 설명하려고 하는데, 내가 이야기한 대로 화학보다 더욱 근간을 이루는 이론은 양자전기역학인 것이다.

(42)

빛이 유리면에서 반사되는 것은 사실 엄청나게 복잡한 현상이다. 실제로 조그만 유리조각 속에는 끔찍하게 많은 전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여기에 광자 하나가 들어오면 그것은 유리표면에 있는 전자뿐만 아니라 유리 속에 있는 전자들과 상호작용을 주고받는다. 광자와 전자가 복잡 미묘한 춤을 추고 그 복잡한 중간 과정을 거쳐 나타나는 결과는 마치 광자가 유리의 표면에서 반사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분가 빛이 유리의 표면에서반사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문제를 쉽게 다루기 위한 편법이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70)

빛에 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성질은 단색광의 부분반사현상에서 볼 수 있는데, 이는 지난 첫 번째 강연에서 논의되었다. 유리판의 한 쪽면에서는 입사된 광자의 평균 4%가 반사되었다. 이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신비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광자가 유리면에서 반사될지, 아니면 통과할지를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유리판의 두 번째 표면, 즉 아랫면까지 고려한다면 문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윗면에서 4%가 반사되고, 윗면을 통과한 96% 중의 4%가 아랫면에서 반사되어 반사된 광자의 전체 비율은 약 8%가 되리라는 상식적인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것은 유리판의 두께의 따라 0%에서 16% 사이를 오락가락 하였다.

(96)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빛은 직진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에게 친숙한 현상을 편의에 따라 대충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울에서 빛이 반사될 때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127)

오늘은 조금 어렵다고 할 수 있는 양자전기역학이론의 핵심을 다루기로 한다. 나의 두서없는 강의를 듣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지금 청중석에는 낯선 사람들도 여기저기 보이는 것 같다. 미안한 말이지만 처음 참석한 사람들은 어쩌면 이 강의가 이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 참석한 사람들도 강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는 피차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첫날 말했던 바와 같이, 자연을 설명하는 매커니즘 자체가 일반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것이므로 실망할 필요는 없다.

(133)

이것이야말로 자연의 신비한 조화이다. 어느 길로 광자가 지나갔는지 알기 위해 별도의 검출기를 설치하면 광자의 경로는 알 수 있지만, 그 순간 경이로운 간섭효과는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광자가 지나간 길을 보여주는 검출기를 제거하면 간섭효과는 다시 나타난다! 정말로 신기한 일이다! 광자가 우리를 놀리고 있는 것일까?

(170)

이렇게 단순한 행위로부터 생성된 이 세계가 그토록 복잡 미묘한 이유는, 엄청나게 많은 광자들이 서로 뒤엉켜서 간섭현상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기본 행위는 단지 실제의 세계를 분석하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또한 계산이 불가능한 복잡한 광자 교환이 진행되고 있는 영역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큰 사건들을 구별해낼 수 있는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이리하여 우리는 자연의 깊숙한 배후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잡한 과정을 근사적으로 묘사하는 굴절률, 압축률, 원자가 등의 거시적 개념들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체스 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체스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고 기본적이지만 게임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각 말의 특성과 배치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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