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비탈길은 사람의 발길을 느긋하게 잡아놓는다. 제아무리 잰걸음의 성급한 현대인이라도 이 비탈길에 와서는 발목이 잡힌다. 사람은 걸어다닐 때 머릿속이 가장 맑다고 한다. 여러분 생각해봐라. 직장에서 집까지,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머릿속에서 무엇을 했나. 돌아오는 길은 어떠했나. 최소 하루 두 시간 자기만의 명상 시간을 갖고 있는 셈인데 대부분은 그 시간을 소비해버리고 있다.

그러나 비탈길은 그런 경박과 멍청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아무리 완만해도 비탈인지라 하체는 긴장하고 있다. 꾹꾹 누르는 발걸음의 무게가 순례자의 마음속에 기여하는 바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은 걷는 발뒤꿈치에서 시작한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35)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 끝에 안양류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안양루에 오르면 발아래는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마치도 저마다 독경을 하고 있는 듯한 자세인데,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소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 웅대한 스케일, 소백산맥 전체를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9품 계단의 정연한 질서를 관통하여 오른 때문일까. 안양루의 전망은 홀연히 심신 모두가 해방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지루한 장마 끝의 햇살인들 이처럼 밝고 맑을 수 있겠는가.

(65-66)

이 점에 대해서는 건축가 승효상이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 셋>이라는 글에서 아주 핵심을 잡아 논한 부분이 있다.

우리의 전통 음악에서는 음과 음의 사이, 전통 회화에서는 여백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던 것처럼 전통 건축에서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방과 방 사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더욱 중요한 공간이었다. 즉 단일 건물보다는 집합으로서의 건축적 조화가 우선이었던 까닭에 그 집합의 중심에 놓이는 비워진 공간인 마당은 우리 건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개념이 된다. 이 마당은, 서양인들이 집과 대립적 요소로 사용한 정원과도 다르며 관상의 대상으로 이용되는 일본의 정원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서양의 눈에는 그냥 남겨진 이 비움의 공간은 집의 생명을 길게 하여 가족공동체를 확인시키고 사회공동체를 공고히 하여 우리의 주체를 이루게 하는 우리의 고유한 건축 언어이며 귀중한 정신적 문화유산인 것이다.

(179-180)

수덕사 대웅전 건축은 그 구조와 외형이 아주 단순하다. 화려하고 장식이 많아야 눈이 휘둥그레지는 현대인에게 이 단순성이 보여주는 간결한 것의 아름다움,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아무런 수식이 가해지지 않은 필요미(必要美)는 얼른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안정된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덕사 대웅전의 저 간결미와 필요미가 연출한 정숙한 아름다움에 깊은 마음의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가벼운 밑화장만 한 중년의 미인을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 같은 것이다.

(237)

해인사 조실 자운스님은 열반에 드는 날 저녁에 4행시를 지었는데 맨 끝 구절은 서쪽에서 해가 뜬다였다. 서산대사는 운명 직전에 당신의 초상화를 가져와서는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라고 적고는 입적하셨다. 또 수덕사 만공스님은 저녁공양 후 거울을 보면서 만공, 자네는 나와 함께 70여 년 동고동락했지. 그동안 수고했네라고 말하고 떠났고, 인조 때 걸출한 스님 진묵대사는 제자들을 불러놓고 얘들아, 내 곧 떠날 것이니 물을 것 있으면 빨리 다 물어나보아라하고는 한두 마디 대답하더니 앉은 채로 열반했다고 한다. 단재 신채호의 수필 중 비뚤어진 험악한 세상에서는 차라리 이단을 택하리라는 내용의 글이 있는데, 청주의 어느 스님이 제자들을 보고 얘들아, 앉아서 죽었다는 사람 보았느냐?”고 물으니 , 있습니다.”고 답하자 그러면 서서 죽은 사람도 있느냐?”고 묻고 들어보진 못했으나 있을 법은 합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스님은 거꾸로 서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였더니 제자들은 그건 불가능할 것입니다라고 답하자 그 스님은 그 자리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는 돌아가셨다고 한다. 모두가 죽음을 알아차린 분들의 이야기들이다.

(248)

그러나 좋은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건축적으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여기에서 건축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이다. 조용한 산세에는 소박하게, 화려한 산세에는 다채롭게, 호방한 산세에는 기세 좋게 건물을 세운 것이 우리 산사 건축의 미학이다. 전국 각 산사의 건축이 비슷한 것 같지만 자연과의 어울림은 모두가 저마다의 여건에 따라 이런 원칙을 지키고 있다.

(254-255)

답사를 가든, 수학여행을 가든 우리의 마음과 눈을 가장 즐겁게 해주는 것은 자연 그 차제다. 장엄한 산, 시원한 바다, 유장한 강줄기, 그 사이를 비집고 뻗은 길…… 그것이 국보급 문화재를 보는 것보다 더욱 감동을 준다. 그중에서도 철 따라 바뀌는 꽃과 나무는 우리의 정서를 더없이 맑게 표백시켜준다. 그 꽃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감지하지 못하는 서정의 여백이 없다면 국보도 그저 돌덩이, 나뭇조각으로만 보일 것이다.

(262)

조선의 소나무는 그래도 죽지 않고 여기 이렇게 사철 푸르게 살아 있지 않은가. 웬만한 소나무는 그 칼부림, 도끼날에 생명을 다했을 거이련만 조선의 소나무는 그 아픔의 상처를 드러내놓고도 아리따운 자태로 늠름히 살아 있지 않은가. 저 푸른 소나무에 박힌 상처는 우리가 극복해낸 역사적 시련의 상처일 뿐이다. 아무리 모진 시련도 우리는 그렇게 꿋꿋이 이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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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12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존의 답사기에서 산사 엑기스만
뽑아낸 책인가 보네요.

bookholic 2019-04-13 00:3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예전에 답사기에서 읽었던 것들일텐데, 처음 읽는 기분이었어요.ㅎㅎ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45)

나보다 더 행복하게 유년기를 보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모님은 너그러웠고 벗들은 사랑스러웠다. 우리는 공부를 강요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는 언제나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었기에 열성적으로 공부에 정진할 수 있었다. 경쟁심이 아니라 이처럼 자발적인 열의로 연구를 했던 것이다. 엘리자베트는 친구들이 자기를 앞지를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제 손으로 마음에 드는 풍경을 그려 외숙모를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림을 배웠다. 우리는 라틴어와 영어로 쓰인 글들을 읽기 위해 라틴어와 영어를 배웠다. 벌 받으며 공부하느라 공부가 끔찍이 싫어지기는커녕, 오히려 학문을 사랑했다. 우리의 즐거움은 다른 아이들에게는 힘든 노동이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평범한 방식을 따라 공부한 사람들만큼 많은 책을 읽거나 언어를 빨리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건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68~69)

그때는 무심함을 죄악으로 간주하고 내게 잘못을 묻는 아버지가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 비난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고 보았던 아버지가 옳았다고 확신한다. 완벽한 인간은 언제나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해야 하고, 정념이나 찰나의 욕망에 휘둘려 마음의 평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지식의 추구가 이 법칙의 예외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 매진하고 있는 공부가 사랑하는 마음을 약하게 하고 어떤 연금술로도 합성할 수 없는 소박한 즐거움을 아끼는 취향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그 공부는 분명 불법적이며 인간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법칙이 항상 준수되었다면, 그리하여 어느 한 사람도 가족의 애정이 주는 평온을 깨뜨리는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노예국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나라를 삼키겠다는 야욕을 갖지 않았을 것이요, 아메리카는 좀 더 서서히 발견되어 멕시코와 페루 제국은 파멸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129)

! 어째서 인간은 짐승보다 훨씬 우월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일까? 그로 인해 훨씬 더 유약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될 뿐인데. 우리의 욕망이 굶주림, 갈증, 그리고 성욕에 국한되었다면, 거의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 한 줄기, 우연한 한 마디, 아니면 그 말로 전달되는 풍경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않는가.

(161)

또 다른 깨달음 몇 가지는 내 가슴에 더 깊이 새겨졌다. 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에 대해서도 들어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갓난아기의 미소에 얼마나 무조건적으로 기뻐하는지, 아이가 좀 더 자라면 활기차게 뛰어나오는 그 모습에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그 고귀한 임무에 어머니의 삶과 관심이 얼마나 집중되어 있으며,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지식을 확장하고 얻어나가는지를 배웠고, 형제, 자매, 그리고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상호 유대로 묶어주는 다양한 인간관계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287~288)

힘겨운 행군에 지칠 때면 밤이 올 때까지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밤이 되면 내 소중한 사람들의 품 안에서 현실을 만끽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들을 향한 내 사랑은 얼마나 괴롭고 괴로웠던가! 심지어 눈을 뜨고 있을 때고 내 온 마음을 사로잡던 그네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얼마나 필사적으로 매달렸으며,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으려 얼마나 애썼던가. 그런 순간 내 안에서 불타던 복수심은 심장 속에서 죽어버리고, 그 악마를 파괴하기 위한 행보는 내 영혼의 열렬한 갈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늘이 내린 사명, 나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어떤 힘의 기계적 충동 같았다.

(302)

하지만 내가 저주받은 괴물이라는 건 사실이다. 사랑스럽고 힘없는 이들을 무참히 죽였으니. 죄 없는 이들이 잠자는 사이에 그 목을 졸랐고, 나나 다른 살아 있는 존재를 한 번도 해한 적 없는 사람의 목덜미를 죽도록 그러쥐었다. 인간들 중에서도 사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한 우수한 인물인 내 창조자를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결코 치유할 수 없는 파멸의 길로 그를 쫓았다. 저기 그가 누워 있군, 하얗고 차가운 몸으로 죽어서. 당신은 나를 미워하겠지. 그러나 그 증오는 나 스스로 느끼는 혐오감에는 차마 비길 수도 없다. 나는 그 일을 집행한 손을 본다. 그런 상상을 품었던 심장을 생각한다. 그들이 내 눈길과 마주치고 그 행위가 내 생각을 온통 사로잡을 그 순간만을 갈망한다.

(303)

안녕히! 이제 난 당신을 떠난다. 그리고 당신은 내 눈이 보게 될 마지막 인간이 되겠지. 이제는 작별이다. 프랑켄슈타인! 아직 살아 있어 내게 복수심을 품고 있다면, 나를 죽이는 것보다는 살려두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 테지.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당신은 내가 더 큰 불행을 초래할까봐 두려워 나를 파멸시키려 했으니까. 하지만 혹시라도,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방식을 통해 당신이 아직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면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자 내 목숨을 원치는 않을 거다. 당신이 아무리 비참하게 무너졌다 한들, 내 괴로움이 당신보다 훨씬 크니까. 회한의 쓰라린 가책은 죽음이 영원히 상처를 덮어버리지 않는 한 상처 속에서 끝없이 곪아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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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시계만 들여다 보면 44분을 보게 되어 기분이 더러웠던 내가

오늘 우연히 들여다본 시계에 '4'가 다섯개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리...

평상시 44분을 보면 왠지 기분이 더러웠으나,

오늘 4월 4일 4시 44분은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네.

내가 언제 또 '4' 다섯 개가 모여 있는 것을 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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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경제성장이 멈춘 세상에서 우리의 인간다운 삶은 자급적 삶의 공간을 최대한 넓히고, 상부상조의 생활방식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데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런 각도에서 보더라도, 피폐일로에 있는 농민과 농촌을 살리고, 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의 분산적 방법으로 에너지 자급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하는 것이야말로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래의 상투적인 정책과는 전혀 다른 이러한 방향으로 전환하려면, 직업 정치가들이나 소위 전문가들의 판단과 결정에 맡겨 놓을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정신과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활발하게 논의하여 공정하고 숙고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진실로 민주적인 정치시스템이 확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도, 우리는 대한민국 국회가 하루라도 빨리 진정한 애국심을 발휘하여 이 나라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자신의 소임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고 만일 계속해서 지금과 같이 국회 그 자체가 백해무익한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면, 우리는 국회의 존재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고려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틀, 예컨대 시민의회를 제도화하기 위한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59-60)

저자에 의하면 수축사회에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원칙이 없이 이기주의가 판을 치게 되며, 생존이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된다. 보편적인 가치 혹은 기후변화와 같은 전 인류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미국의 이익만 최우선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둘째, 사회적 갈등이 전방위에 걸쳐서 제로섬 전쟁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모두가 전투 중이고, 전선은 입체적이다. 세계화와 정보통신의 발달로 모든 영역이 서로 중첩되고 서로 의존적이기 때문에, 전선은 더 입체적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셋째, 근시안적 태도가 확대되면서 미래에 대한 전망이 실종된다.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규범이 없는 아노미상태이며, 눈앞의 승리에만 집착해 전체 흐름과 미래 변화를 포착하지 못한다. 넷째, 수축사회에서도 여전히 팽창하고 있는 지역이나 분야로 집중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대도시권 집중화 현상, 한국의 경우 강남 집중화 현상 등이 그러하다. 다섯째, 서로 물고 물어뜯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집단적인 의사결정 장애가 나타나며, 치열한 전투가 지속되면서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사람들이 늘어난다.

 (73-74)

그렇다면 공유경제 모델은 꼭 나쁘기만 한가. 그 역시 복잡하다. 인류가 도시를 구성한 이유 중 하나는 효율이다. 모여 살면서 정보를 주고받으면, 자원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대낮에도 비어 있는 사무실, 하루 종일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인류가 도시를 구성했음에도 낭비되는 자원, 그래서 느끼는 답답함이 공유경제 아이디어에 날개를 달았다. 아울러 도시생활은 신뢰의 축적을 어렵게 한다.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런데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은 도시에서도 신뢰를 쌓는 길을 열었다. 요컨대 공유경제는 도시의 낭비를 줄이고 도시에 신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88)

농민기본소득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 그리고 사회적 약자인 농민에 대한 기본권 보장이다. 그러나 최근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농민수당제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보상 측면으로 기울어 있다. 왜 기본소득을 개별적으로 제공해야 하는가?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자유와 평등,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거나 실시할 계획인 농가수당은 농가 내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지 않는다. 농가주(대부분 남성인)의 권리를 강화할 뿐 그 권리를 나누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가 내 구성원의 평등과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개별 농민에게 지급되는 농민수당이 필요하다.

(99-100)

미국의 범지구적 헤게모니는 워싱턴이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은 오일달러를 순환시키고 국채를 발행함으로써 초제국주의를 추구해왔고, (석유의 뒷받침을 받은) 지폐(달러)를 담보로 하여 방대한 적자를 메워왔다. 그리고 좀더 일반적으로는, 세계은행, 국제통과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것과 더불어 미국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서 국제무역과 금융시스템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미국 자본주의는 자신의 세계적 지배력과 달러의 지위가 도전을 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01)

석유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날 중국이나 인도가 추구하고, 오랫동안 서구 세계가 추구해온 성장을 포기해야만 우리의 계속적인 생존이 가능하다. 또한 지속가능한 건강한 농사 없이는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 농사를 파괴하거나, 혹은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식량의 지속적 생산을 위한 원천적 조건(기후, 깨끗한 물, 토종 씨앗,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온 전통적 농사법과 관습, 비옥한 흙 등등)을 파괴한다면 실제로 우리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커다란 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103)

전세계적인 농사에 대한 통제는 미국 자본주의의 지정학적 전략의 핵심이 되어왔다. ‘녹색혁명은 석유기업들의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되어 세계 각처로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가난한 나라들은 농업자본이 만들어낸 화학물질 의존적 농사 모델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 그러한 농사에 드는 재료와 인프라 개발을 위해 빚을 얻지 않으면 안되었다. ‘녹색혁명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은 예속적인 부채와 불리한 무역을 강요하는 글로벌 시스템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하여 그들의 민족적 및 지역적 경제는 파괴되고 말았다. 실제로 우리는 세계 각처에서 지역 중심생산시스템들이 다국적기업들의 압력 밑에서 상업화되고, 뿌리로부터 흔들리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121)

그러면 남한은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답은 명확하다. 남한은 에너지 소비와 검약한 생활방식이라는 면에서 북한을 닮을 필요가 있다. 남한은 에너지 낭비를 멈추고 밤중에는,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래왔듯이, 어둠에 잠겨 있어야 한다. 남한의 모든 아파트 건물에는 쓸데없는 빛이 사라져야 하고, 상업건축물의 네온사인을 제거하고, 불필요한 과잉 난방을 극적으로 줄이고, 대부분의 건물에서 보이는 높은 천정과 콘크리트와 유리와 강철 외장으로 구성된 낭비적인 디자인을 끝장내야 한다. 남한은 한반도의 역사 대부분을 통해서 특징적인 삶의 형태였던 검소함과 소박함의 전통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123)

나는 북한 사람들이 오늘날보다 더 자유롭게 살고, 좀더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오늘날 남한 전역을 뒤덮고 있는 그리하여 한때 시민들의 경제적 독립을 보장하던 가족 소유 가게들을 파괴하고 있는 편의점에는 자양분이 풍부한 식품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남한 사람들도 날이 갈수록 더 많이 정신없이 소비하도록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사슬들에서 풀려나기를 바란다. 소비를 많이 하면 할수록 끝없는 경쟁이라는 야만적인 문화 때문에 친구들과 가족으로부터 점점 더 깊이 소외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인 사슬들로부터 말이다.

(180)

후치탄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활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돈을 번다. 잉여분의 돈은 집단을 위해서 혹은 축제를 위해서 사용한다. 이런 유형의 경제는 매우 유연하다. 설령 경제적 위기상황이 오더라도 쉽게 극복할 수 있고,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들보다 훨씬 더 친환경적인 삶을 가능하게 한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시장을 독점하려 하고, 이익을 내고, 투자하고, 확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안정적일 수가 없다.

(197)

책을 한 권도 가지지 않고 살고 싶다. 아무리 덜어내도 쌓이는 책. 나무에게 미안할 일이다.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책을 모른 채, 아니, 문자를 해득하지 못하는 삶을 살다가 죽고 싶다. 그렇게 되면 지구생명에게 빚지는 삶을 살지 않을 테니. 함께 사는 모든 생명은 물론 우주의 모든 것들의 숨소리와 감정들을 이해하고 느끼고 소통하는 삶을 살 테니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할까! 단순해서 그윽해지고 소박해서 넉넉한 삶을, 제발 한번 살아보았으면

(234)

해외에선 핵발전 비용을 둘러싼 논쟁은 끝났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핵발전이 천연가스나 재생에너지보다 비싸다고 결론이 났다. 그간 위험성이나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찬핵/탈핵 논쟁이, 결국 경제성 논점으로 사실상 끝나가는 추세이다. 핵발전소 폐쇄 비용,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 비용, 사고위험 비용 등이 드러나면서 알고 보니 핵발전이 더 비싸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아직도 가장 경제적인 핵발전을 안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핵산업계가 감춰온 청구서를 찾아볼 것을 권하고 싶다. 아직 날아오지 않았지만 조만간 우리 눈앞에 나타날 핵발전의 숨겨진 청구서 말이다. 앞으로 어떤 청구서가 날아올지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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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내가 트랄파마도어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죽는다 해도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여전히 과거에 잘 살아 있으므로 장례식에서 우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이다. 모든 순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은 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늘 존재할 것이다. 트랄파마도어인은 예를 들어 우리가 쭉 뻗은 로키산맥을 한눈에 볼 수 있듯이 모든 순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든 순간이 영원하다는 것을 봐서 알고 있고, 그 가운데 관심이 있는 어떤 순간에도 시선을 돌릴 수 있다. 마치 줄로 엮인 구슬처럼 어떤 순간에 다음 순간이 따르고 그 순간이 흘러가면 그것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여기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113)

지구인을 연구하느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았다면 자유의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전혀 몰랐을 겁니다. 나는 우주의 유인행성 서른한 곳을 찾아가보았고, 그 외에도 백 개 행성에 대한 보고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직 지구에서만 자유의지 이야기를 합니다.” 트랄파마도어인이 말했다.

 

(166)

포로가 된 미군 징집병을 처음 다루는 수용소 행정관들은 주의해야 한다. 심지어 형제들 사이에서도 형제애는 기대하지 마라. 개인 사이에 응집력은 전혀 없을 것이다. 모두가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침울한 아이처럼 구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캠벨은 독일인이 포로가 된 미군 징집병들을 만나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야기한다. 이들은 어디에서나 전쟁 포로들 가운데 가장 연민이 심하고, 우애가 가장 부족하고, 가장 더럽다고 알려져 있다. 캠벨은 그렇게 말한다. 그들은 서로 도울 능력이 없으며 이는 결국 자신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가운데서 나온 지도자를 경멸하고, 그를 따르려 하지도, 심지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도 않는다. 그가 자신들보다 나을 것이 없고, 따라서 허세를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242)

도살장에 도착했을 때 빌리는 마차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트랄파마도어인들은 빌리에게 인생의 행복한 순간에 집중하라고, 불행한 순간은 무시하라고 예쁜 것만 바라보고 있으라고, 그러면 영원한 시간이 그냥 흐르지 않고 그곳에서 멈출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런 선별이 빌리에게 가능했다면, 그는 수레 뒤에서 햇볕에 흠뻑 젖은 채 꾸벅꾸벅 졸던 때를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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