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이 광속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SF 작품들에서는 단순히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닌 다른 기술적인 아이디어들이 등장했다.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 <배틀스타 갈락티카> 등에 등장한 워프나 최근 국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도 선보였던 웜홀 등이 그 예다. 워프는ㄴ 우주선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선과 목적지 사이의 공간을 수축시킨다는 발상으로 광속한계를 피해가고, 웜홀은 우주의 다른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통로로서 3차원 우주의 벽을 넘어서는 일종의 지름길이다. 이런 개념들은 나름대로 물리학에 기초하고 있지만 아직은 이론적인 상상 수준이며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 가능성도 높다.

(81)

이 괴물 화산들이 갑작스레 폭발하여 생성된 상황은 한때 물이 많고 대기가 짙었던 이 행성이 지금 같은 모습이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광경을 한번 상상해보자. 땅과 하늘이 뒤집어지며 흙과 바위들이 공중으로 날아간다. 대기가 흩어지면서 한때 파랗던 하늘은 검게, 이어서 붉게 변하고 바다와 강은 증발하거나 얼어붙는다. 이 모든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대참사가 불과 며칠 만에 벌어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제 우리가 접해온 각종 재난 영화의 종말 광경 정도는 우스워진다.

(86)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대로 오래전 화성에는 풍부한 물과 공기가 분명 존재했고 따라서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었을 가능성도 적기 않다. 그런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정부가 수억 달러를 들여 화성에 탐사선과 착륙선을 수시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만약 화성에 그런 과거가 있었다면, 그들 중 일부는 문명을 세우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우주를 탐사하며 번영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상에서 우리 인류가 보여준 실례가 증명하듯 일단 생명체가 타고난 지능이 특정한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문명과 과학기술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4)

생각해보자. 태양계에 있던 9개의 행성 중 네 번째인 화성과 다섯 번째인 행성 Z, 이웃한 두 개의 행성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이 사건들에 공통분모는 분명히 존재할 거라고 여겨지지만, 한쪽이 파괴됐다고 해서 다른 한쪽도 저렇듯 대기와 물이 증발하고 지표가 처참하게 찢겨나갈 정도로 괴멸될 개연성은 없다. 어디선가 거대한 천체가 날아와서 행성 Z를 부수고 튕겨나가 다시 화성에 부딪쳤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과연 어떤 가능성이 남을까. 서로 떨어진 세계의 괴멸로 귀결되는 하나의 사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리는 그런 예를 잘 알고 있다. 바로 전쟁이다.

(127)

남아프리카 부시맨족의 신화는 홍수 이전에는 밤하늘에 달이 보이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스 남서부 펠로폰네소스에 있었다는 전설상의 나라 아르카디아의 구전에 따르면 홍수 이전에는 걱정과 슬픔을 모르는 천국 같은 세상이 있었으며 달은 홍수 후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의 감독관이었던 아폴로니우스는 BC. 3세기에 과거에는 지구의 하늘에서 달을 볼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핀란드의 서사시 칼레왈라와 남아메리카 전설은 대홍수 등 우주 대격변의 원인이 달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191)

바그다드의 옛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는 건전지 역할을 할 수 있는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수천 년 전의 유물들 중 전기가 없이는 만들 수 없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출토되고, 역시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얇은 피막의 순금으로 도금된 칼이 발견된 적도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 과거에 국지적으로나마 전기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49)

하지만 이렇듯 모세와 예수 등을 논함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모세가 화성인이고 예수는 행성 Z인이라거나 그 후예들이 혈연으로 계속 엮어졌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모세와 예수는 지구인이고 단지 화성과 행성 Z의 가치관과 기술(기적) 등을 전하기 위해 선택된 이들이며, 그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정보 없이 그저 저 두 갈래의 가치관을 직간접적으로 추종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283)

이 태양계 제국의 비밀을 전수받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힘과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앞선 지식과 정보, 기술 등을 통해 고대 이집트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엘리트로서 드러나지 않는 막후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이다.

(287)

이렇게, 고대 태양계 제국의 그림자 속에서 지구를 포함한 행성의 잔존 세력들이 암암리에 주도권 다툼을 벌여온 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5000년 인류 문명의 역사인 것이다. 화성의 모세와는 상반된 가치관을 지녔던 예수가 나타나 행성 Z의 세계관을 전파하고, 그의 사후 1000년이 지나 다시 모세적 도그마로 굳어져간 세상에 도전한 성당기사단의 가치는 18세기 이후 프리메이슨으로 이어져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의 실현을 통해 근대정신의 산파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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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그의 얼굴은 억센 독수리와 같은 인상을 주었다. 콧날이 날카롭고 콧마루가 오똑하며, 코끝이 삐죽하게 아래로 숙어져 있다. 이마는 됫박을 얹어 놓은 것처럼 불거져 있고, 살쩍에는 털이 버성기지만 머리숱이 많고 곱슬곱슬해 조인다. 눈썹도 숱이 많으며, 콧마루 위쪽에서 거의 맞닿아 있다. 두툼한 콧수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입매는 딱딱하고 조금 잔인한 느낌을 주었고, 기이하게 날카로운 하얀 이가 입술 위로 비죽 나와 있는데, 그 입술이 유난히 붉어서 그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싱싱함을 느끼게 한다. , 귓바퀴는 파리하고 끝이 매우 뾰족하다. 턱은 넓고 억세며, 뺨은 여위었으나 단단해 보인다. 그의 얼굴이 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대단히 창백해 보인다는 것이다.

(89)

어떤 숙녀에게 오늘 저녁 어떤 파티에 초대를 받고 거기에 가야 하기 때문에, 자네가 한가하다는 것을 내 알고 있지. 그래서 이렇게 주저 없이 자네를 부르는 것일세. 자네 말고 한 사람만 더 오기로 했네. 자네 알잖나, 우리가 오래전에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사귀었던 잭 수어드 말이야.

(231)

나는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성의를 다했다. 그런 경우에 남자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가 없다. 손을 한번 꽉 잡아 준다든가. 어깨 위에 팔을 얹고 힘주어 눌러 준다든가, 함께 울어 준다든가 하는 것이 한마음의 표시가 되어 사나이의 가슴에 진하게 전해진다. 나는 그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나 나서 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254)

, 부인, 내가 여기서 와서 알아내려는 것이 얼마나 해괴한 것인가를 알면 정작 웃으실 분은 부인일 거요. 나는 어떤 사람이 믿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이상한 것이라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소. 나는 열린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 왔소. 게다가 그 일은 그냥 덮어둘 수 있는 일상의 평범한 일이 아니라, 이상하고 특별한 일이며, 미친 사람이든 온전한 사람이든 의혹을 않을 수 없게 하는 일이오.”

(261)

여보게 존, 자네는 영리한 사람일세. 추리력도 비상하고, 대담한 생각도 곧잘 하지. 그런데 자네는 선입견에 너무 꽉 잡혀 있는 게 탈이야. 왜 눈을 활짝 열어서 보지 않고 귀를 활짝 열어 들을 생각을 안 하는 건가? 일상의 삶을 벗어난 것들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을 가지려 들지 않는단 말일세. 자네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 안 드나? 세상에는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네. 오래된 것도 새로운 것도 있네.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볼 수 없지. 다른 사람들이 가르쳐 준 어떤 것만 알고 있기 때문이지 정확히 말하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만. , 그건 사람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하는 과학의 잘못이지. 과학은 모든 걸 설명하려고 들거든. 그러다 설명이 안 되면, 설명할 게 없다고 말해 버리지. 그러나 매일 우리의 주위에서 새로운 신념들이 성장하는 걸 보라고. 스스로는 새롭다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척 흉내를 내는 것일 뿐, 정작은 새로운 것이 아니냐 오페라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인들 같은 거지.

(424)

그자가 살았던 바로 그곳. 이 모든 세기 동안 죽음이 없었고 그곳은 지질학과 화학 세계에서의 이상한 일들로 가득 차 있고 어디로 이를지 아무도 모르는 깊은 동굴들과 갈라진 틈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화산들도 있어서, 그중 몇몇 분화구에서는 성질이 이상한 물과 목숨을 빼앗거나 생기를 주는 가스들을 분출하고 있었습니다. 의심할 바 없이, 육체적인 삶에 이상한 방법으로 작용하는 이 비밀스러운 힘들의 조합 중 몇 가지에는 뭐가 자기적이거나 전기적인 것이 있는데, 더군다나 그자는 원래부터도 비상한 자질을 좀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쟁 같은 어려운 시기에는 그자가 누구보다도 더 강한 정신력과 뛰어난 두뇌와 담대한 용기를 지닌 출중한 인물이었지요. 그자에게는 어떤 활력이 이상한 방법으로 절정을 이루었고, 그의 몸이 강해지고 성장해 감에 따라 그의 뇌도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그자에게 속하는 것이 분명한 마성(魔性)의 도움이 없다면 선의 상징으로부터 나오는, 선의 상징인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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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그리하지요. 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을음입니다. 소나무를 태워 생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송연묵(松煙墨)이라 하고, 참기름, 비자기름, 오동기름 등을 태워 생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유연묵(油煙墨)이라 합니다. 아궁이에 소나무를 태우게 되면 굴뚝에 그을음이 붙게 되는데 위쪽에 모이는 것일수록 좋은 먹이 될 수 있습니다. 소나무의 송진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묵은 먹색이 맑고 깊습니다. 예로부터 중국 황산에서 나는 소나무로 만든 먹을 최상품으로 칩니다. 그 이유는 다른 지역보다 송진이 진하고 많아 가늘고 고운 그을음 입자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탁하지 않고 맑은 먹을 얻어야 먹색이 깊어집니다.

(154)

내가 보고 싶었던 그림들이 바로 이것이다. 놀라는 얼굴 표정을 곁에서 보는 듯하고 밥 한술과 한 사발 탁주에 만족해하는 너털웃음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것 같구나. 길거리에서 송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어떤 판결이 내려지는지 한번 참견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처럼 서로 부대끼며 백성들과 함께 살아가는 수령이 있으니 과인이 바라던 바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이토록 자세히 읽어내고 그려내다니, 마치 백성들이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 같구나. 더욱이 표암이 유려한 필치로 느낌까지 적었으니 그 강평이 날카롭게 풍자되어 읽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만 하다.

(174~175)

김홍도는 지극히 평범한 서민들의 모습에서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쉬운 표정을 잡아내 익살스러우면서도 해학적이고 감칠맛 나는 그림을 그렸다. 얼굴 표정 표정마다 이유가 있어 따뜻한 정도 묻어났다. 문무대관들이 아무리 설명을 한들, 아무리 서책으로 상세히 편찬해낸들 이 그림만 할까. 김홍도 그림 한 장이면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으니 무엇에 비견한단 말인가! 더욱이 그 속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숨겨져 있으니 느끼는 생동감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248)

정조가 원대한 계획을 펼쳐나가는 데 의지하고자 했던 인물은 채제공과 정약용, 그리고 김홍도였다. 외형적으로 붕당을 없애고 고루 인재를 등용하면서 노비제도를 철폐하여 위아래 없이 모두 잘사는 평등사회를 건설하면서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는 관행과 제도를 개혁하고 그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출판 사업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후대의 모범으로 남기를 바라며 문화 부흥의 꽃을 피워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노년에 이르러서는 화성 행궁으로 물러나 여생을 예술과 더불어 노닐고자 하는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

(313)

예리한 지적을 해주셨사옵니다. 인물뿐 아니라 의습선 또한 품위 있게 받쳐주어야만 그림에서 정기를 느낄 수 있사옵니다. 우리 초상화의 경우 중국과 달리 터럭 한 올 한 올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리면서도 생생한 생명을 불어넣듯 그리는 준엄성을 요구하옵니다. 채색 작업에서는 문무백관의 지위를 나타내는 흉배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 은은한 색조를 넣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색조가 들떠 보이거나 경박스럽지 않아야 화원의 진중함이 따라야만 비로소 완성의 미를 이룰 수 있사옵니다.

(318)

군주와 신하가 초상화 초본 석 점을 걸어놓고 자유로이 의견을 나누고 어느 초본이 마땅한지 정하는 과정이 참으로 민주적이다. 그리고 어진 작업을 일일이 살폈을 정조는 화원 이명기가 자신의 의도와 의중을 바로 살펴 어진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염려하면서도 복식보다는 눈동자가 주는 정채로움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처음부터 서편 유지본이 마음에 든다고 피력하였고 좌의정 채제공까지 동의하였는데도 신하들이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중앙 원유복 초본으로 결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신하들의 의견을 존중해 준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홍도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동편 유지본을 선택하였다. 대략 그려진 초본이기에 세밀하게 묘사되지 못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무언가 시선을 당기는 강한 기운을 느꼈고 주상의 어진 동참 화사로서 명주 올리고 채색을 하는 마지막 단계까지 고려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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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간혹 비행기를 타고 조국의 강토를 하늘에서 굽어보면 그림같이 신기한 밭이랑 논이랑의 무늬진 아름다움과 순한 버섯처럼 산기슭에 오종종 돋아난 의좋은 초가지붕의 정다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해줄 때가 있다. 그리 험하지도 연약하지도 않은 산과 산들이 그다지 메마르지도 기름지지도 못한 들을 가슴에 안고, 그리 슬플 것도 복될 것도 없는 덤덤한 살림살이를 이어가는 하늘이 맑은 고장.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 강산에서 먼 조상 때부터 내내 조국의 흙이 되어가면서 순박하게 살아왔다.

(37)

뒷동산의 잘 생긴 바위 한 덩어리, 등 넘어가는 오솔길 한 갈래, 축동의 노목 한 그루에도 정령과 생명이 스며 있다는 생각, 즉 자연도 인간 못지않은 존귀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우리 민족은 믿고 있었다. 이것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사고이다. 어떤 의미로는 현대의 뛰어난 경륜을 지닌 지성보다도 한 걸음 앞선, 자연 보존의 존귀한 가치관과 신념을 지녔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49)

또 어떤 일본인 학자가 서울에 다녀와서 교토에서 저희들끼리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옆에서 들은 일이 있다.

서울 박물관에 가서 나는 일본의 고대 문물이 얼마나 초라한 것이고 또 시골뜨기인지를 실감했다. 신라 장신구들이 보여주는 찬란한 황금빛의 황홀함이나 비취곡옥들이 지니고 있는 신비롭고도 지체 높은 아름다움에 우선 양적으로 압도되었고, 질적으로 과연 큰집이라는 느낌이 깊었다. 여러분들도 서울에 한번 다녀오면 종래의 생각을 고치게 될 것이다.”

(54-55)

옛날 안동 하회마을에는 고려 중엽까지는 허씨 문중이 모여 살았고 그 후에는 안씨가 모여 살았으며 조선 초부터는 유씨 문중이 모여 살아왔다고 한다. 그때 허씨 문중에서 허 도령이라는 멋진 청년이 있었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하회탈을 만들라는 신탁을 받았다. 허 도령은 목욕재계하고 별실에 금줄을 쳐놓은 다음 탈을 만들기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허 도령에게는 그를 사모하는 고운 마을 처녀가 있었다. 날이 가고 달이 감에 이 처녀는 허 도령의 안부와 그리운 정을 참지 못해서 금기를 어기고 창구멍을 뚫어서 그의 모습을 엿보았다. 가면의 완성을 서두르던 허 도령은 마지막 이매탈의 턱을 맞추지 못한 채 바로 그 순간에 피를 토하고 죽어갔다. 처녀의 연정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그 연인을 죽였고 열두 개 하회탈 중의 마지막 이매탈은 오늘날에도 턱이 없는 채로 전해온다고 한다.

(71)

조선 5백 년의 도자사상에는 이 분청사기와 아울러 백자, 청화백자가 또 하나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쌓고 있었다. 원래 중국 명나라에서 유행하던 청화백자의 풍조에서 자극된 것이지만 한국 민족은 흰빛을 그리도 좋아했다. 흰빛으로 빚어진 어수룩하게 둥근 뭇 항아리의 군상들, 때때로 목화송이 같이 따스하고 때로는 백옥같이 갓맑은 살결의 감촉. 조선시대 백자의 흰빛은 그 아름다움에 참으로 변화가 많다. 우리의 미술 중에서 무엇이 가장 한국적이냐 할 때 나는 서슴지 않고 조선시대 박자기를 들고 싶다. 세계 어느 민족의 사기그릇 가운데 이렇게 스스롭지 않은 애정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그릇이 또 있을까. 세상에는 조선백자 취미를 흔히 병적 취미라고 흉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조선자기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건강하고 또 착실한 아름다움이다. 민중이 실용하는 그릇이요, 기교나 허식을 멀리 벗어난 숫보기의 아름다움이다. 젊을 때는 애틋한 애인같이 그리고 나이 들어서는 잘생긴 며느리처럼 순박한 아름다움에 바치는 마음의 즐거움, 이것은 병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낭만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까.

(79-80)

추한 것이 진정 아름다운 것들을 짓밟는 행패 속에 얼마 안 남은 우리 주택 건축사의 결정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하나 그 아름다운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물론 세계의 각 지역 간에 문화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오늘날 현대 한국인의 생활에서 오로지 주택문화만은 고격을 고수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판 없이 남의 것만을 새롭고 곱게 보려는 풍조는 우리 민족처럼 틀이 잡힌 문화전통을 가진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97)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은 청자 비색의 아름다움과 곡선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위에 또 하나 상감의 아름다움이 곁들여진다. 이 청자 상감의 기법은 오로지 고려 도공들만이 보인 창의였다. 벽옥같이 푸르고 갓맑은 살갗 위에 검고 희게 수놓인 상감의 아롱진 무늬들이 마치 흘러간 고려 문화의 꽃 그림자처럼 차가운 청자 살갗 위에서 파시시 숨을 쉬고 있다. 얼마나 많은 백학이, 그리고 얼마나 많은 흰 구름장이 고려 도공들의 망막을 스치고 지나갔을까. , 그리고 또 학, 학은 고려 사람들의 마음속 하늘을 나는 하나의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165)

그림을 감상하는 데 너무 관념적인 태도는 금물인 줄 알지만 동양의 산수화란 항상 작가 자신을 그 풍경 속에 집어넣고 그 속에서 거닐면서 그려지는 것인 까닭에, 멀리서 바라보는 경치로서 그려지는 서양 풍경화의 감상법과 그 처지가 매우 다름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말하자면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작가 정신 자신이 바로 긴 지팡이를 끌고 이 창해를 뒤돌아보며 유연하게 그림 속에서 소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바로 이 그림을 그릴 때 정선의 마음 자세가 그러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73-174)

한국의 미라고도 부를 수 있고 또 한국의 멋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미묘한 단원 그림의 흥겨움은 어찌 보면 대범하고 어찌 보면 거친 것 같으며, 또 때로는 싱거운 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싱거움은 마치 맑고 담담한 샘물 맛처럼 못 잊을 한국미의 한 토막이 된다고 믿는다. 또 거칠고 대범한 맛은 잔재주를 못 부리는 때 벗은 마음씨의 발로이며, 말하자면 벗은 한국 멋의 한 토막이 아닌가 한다.

(178-180)

세상에는 단원을 단지 퐁속화가의 한 사람으로, 또는 신선화를 잘하는 화원의 한 사람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단원의 숨은 산수화 대작들을 많이 보고 또 그가 지녔던 18~19세기 화단사적인 위치를 훑어보면 그러한 인식은 대개 고쳐질 것이 아닌가 한다. 그는 중국 산수화의 본보기를 되그리는 것을 일삼던 당시의 화단 풍조 속에서 산수화를 뚜렷하게 국풍화하여 비로소 풍토 감각이 짙은 한국 산수화의 한 정형을 세웠던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풍속화 작품의 주제는 거의 서민사회 전반에 걸치는 민생을 다룬 작품들이 많았으며, 이것은 같은 시대 혜원의 풍속화와 더불어 매우 주목할 만한 사회사적인 의의를 포함하는 것이었다.

(186-187)

한국미가 지니느 장점의 하나는 구수함이요 또 은근스러움이며 때로는 익살스러움일 수도 있다는 것은, 이러한 서민적인 대상 속에서 숨김도 과장도 없이 풍겨나는 일종의 흥겨움을 지칭하는 것이다. 고려자기나 조선자기 또는 불상조각이나 건축 등 각 분야의 작품에서 이러한 아름다움의 요소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이 발견된다면, 이것은 대부분이 서민 자신들을 위하여 자신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작품에서 농후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왕실의 권위나 종교의 권위를 돋우기 위한 작품 같은 것에는 그 상대방의 주문에 따라 위엄과 기교가 앞서야 되고, 따라서 한국 사람들의 본바탕 생활문화나 생활감정을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서민감정의 자유가 보장돼 있지 못했던 것이다.

(203)

혜원은 원래 산수화에 조촐한 솜씨를 보인 작가였다. 말하자면 그 풍속화는 산수화가로 하나의 여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간송미술관에 있는 산추병풍채나 일품산수들을 보면 한층 그러한 실감을 느끼게 될뿐더러 우리가 혜원 대접을 올바로 못하고 있었구나 싶어지기도 한다. 혜원이 풍속화에서 보여준 작가적인 역량, 즉 인물 풍속의 배경처리라든가 화면 포치의 원숙함이라든가 만만치 않은 필력 등은 이미 그러한 산수화의 기량에서 보여준 격조의 높이를 반영했음이 분명하다. 말하자면 화가 혜원은 뛰어난 풍속화가로서도 고금에 없는 외벌 인물일뿐더러 산수화가로서도 격이 높은 사람이었다.

(267)

한국의 고찰 특히 산지 가람의 아름다움은 이렇게 융성했던 고대, 중세 불교의 여운이 중건된 근세의 석조 건물들 사이에 혼재되어서 주위의 자연 속에 조화된 일종의 스산하고도 안온한, 한국 특유의 정서와 장관을 이루어주는 동()에 있다. 이것은 언뜻 보면 잡연스러운 듯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높은 격조를 지닌 질서 아닌 은근한 질서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268)

건축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멀리서 바라보는 운치의 멋이요, 하나는 그 속에 몸을 담고 느끼는 즐거움이다. 한국 건축, 특히 정자 건축의 경우 한국 사람들처럼 자연 속에 건물이 들어설 제자리를 멋있게 잡을 줄 아는 민족은 드물다고들 말한다. 즉 어떤 자연의 일각에 딱 세워서 자연 풍광을 한층 빛나게 하고 자연과 건축을 일심동체로 만들어 마치 자연 속에 점정하는 신기한 효과를 낼 줄 안다고 말이다. 평양 대동강의 을밀대나 부벽루가 그것이요, 의주의 통군정이나 창덕궁의 부용정, 수원의 방화수류정이나 화홍문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322)

이러한 고려시대의 기록을 뒷받침해주는 뛰어난 고려의 자개상자, 자개함들이 지금 일본의 국립박물관, 도쿠가와미술관, 다이마데라, 미국의 보스턴미술관, 독일의 쾰른동양박물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동양박물과 등 외국에만 남겨져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람 누구에게나 야릇한 심경을 금할 수가 없게 한다. 고려시대에 중상서라는 국영 국예품제작소, 또는 세함조성도감 같은 나전칠기의 대량 생산기구까지 두고 만들어낸 고려의 많은 자개그릇들이 오히려 국내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뜻있는 한국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씩 생각해보아야만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404)

명상적인 조용한 빛깔과 은은하고도 지체 있는 청자의 질감이 고려시대 상형청자의 아름다움에 고요와 신비의 생명감을 불어넣어주었다고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대개 공예 조각이란 예술의 경지에까지 미치지 어려운 경우가 많고, 따라서 지나친 잔재주와 아첨이 깃들인 속물이 되기 쉬운 법이다. 그러나 고려의 상형청자 작품들을 보면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모두 늣늣하게 때를 벗었다는 느낌을 깊게 받게 된다. 더구나 다루기 어려운 청자연적이나 문진 같은 작은 문방구들의 경우만 보더라도 조형이 자칫 복잡해질 듯싶지만 도리어 간명하고 순진하며 물체가 지닌 습성과 아름다움의 기미를 너무나 잘 살렸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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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외모를 보면 뭔가 정상이 아닙니다. 뭔가 불쾌하고 뭔가 아주 혐오스러워요. 이렇게 싫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정말 처음이었는데 그 이유를 딱히 알 수가 없어요. 어딘가 기형인 게 분명해요. 어디라고 꼬집어 얘기할 순 없지만 하여튼 기형의 분위기가 강하게 납니다. 정말 특이하게 생긴 사람인데 저로서는 도저히 묘사할 수가 없네요. 그래요, 할 수가 없어요. 설명이 안 되네요. 기억을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눈 앞에 생생히 떠오르거든요.”

(106~107)

그 진실이란, 인간은 진정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것이다. 내가 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 지식이 그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기 대문이다. 같은 선상에서 혹자는 나를 뒤따를 것이고, 혹자는 나를 앞질러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내가 감히 추측건대 인간은 결국 여러 개의 모순되면서도 각기 독립적인 인자들이 모인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내 경우, 내 삶의 본성이 한 방향으로만, 오직 한 방향으로만 절대적으로 전진했다. 그것은 도덕적 측면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는 나란 인간 속에서 철저하고 근본적인 인간의 이중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 의식 속에는 서로 갈등하고 있는 두 개의 본성이 있으며, 비록 내가 그중 어느 한쪽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하더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내가 양쪽 모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찍이 애 과학적 발전의 경로를 통해 두 본성을 분리하는 기적이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기 전에도 나는 그러한 몽상을 즐기곤 했었다.

(108)

그러나 나는 지금 고백함에 있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런 과학적 부분은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자 한다. 첫째는, 우리 인간은 인생의 불운과 고난을 영원히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 그 짐을 던져버리려고 시도하면 그것이 더욱 낯설고 더욱 끔찍한 무게로 되돌아와 우리를 짓누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불행히도, 내 이야기를 들으면 자명해지겠지만, 그 발견이 결국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자연적 육체에서 정신을 구성하는 어떤 힘이 발산되어 빛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뿐 아니라 그 힘의 주도권을 빼앗은 후 제2의 형태와 모습으로 대체하는 약을 제조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제2의 형태라는 것 또한 내 영혼의 근저에 있는 요소들을 표현하고 그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이었기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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