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나는 시간이 구부러지고 접힌다거나, 평행우주 같은 다른 형태로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이론적인 얘길 하는 게 아니다. 그럴 리가, 나는 일상적인, 매일매일의, 우리가 탁상시계와 손목시계를 보면 째깍째깍 찰칵찰칵 규칙적으로 흘러감을 확인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초침만큼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굳이 시간의 유연성을 깨닫고 싶다면, 약간의 여흥이나 고통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 학창시절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결코 그때가 그립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33, 34)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인입니다.

(81)

그렇다면 문제는, 수많은 것들이 걸린 그런 문제로 인한 손실에 어떻게 대처할까이다. 상처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억누를 것인가. 또 그 상처는 우리의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상처를 받아들여 중압감을 덜어보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상처받은 이들을 돕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다.

(107)

젊을 때는 서른 살 넘은 사람들이 모두 중년으로 보이고, 쉰 살을 넘은 이들은 골동품처럼 느껴진다.그리고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면서 우리의 생각이 그리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준다. 어릴 때는 그렇게도 결정적이고 그렇게도 역겹던 몇 살 되지도 않는 나이차가 점차 풍화되어간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젊지 않음이라는 동일한 카테고리로 일괄 통합된다. 내 경우는 그런 문제로 신경 쓰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

(116)

마거릿은 여자는 두 종류라고 말하곤 했다. 매사에 분명한 여자와 미스터리를 남겨두는 여자. 그리고 이는 남자가 여자를 볼 때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이자, 가장 먼저 그를 매료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요소였다. 남자들마다 끌리는 유형은 각기 다르다.

(144)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순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잘 살았다고 상을 주는 게 인생이란 것의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생이 저물어갈 때 우리에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의무도 없는 것 아닌가. 생의 진화론적 목적 중에 향수라는 감정이 종사할 만한 부분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162)

그러나 시간이란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간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문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179-180)

인성의 깊이와 세월의 흐름은 비례하는 걸까? 소설에선 물론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인생에선 어떨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의 태도와 견해가 바뀌고, 새로운 습성과 기벽이 생기긴 하지만, 그건 뭔가 다른 것, 이를테면 장식에 가까운 것이다. 어쩌면 인성이란 다소 시간이 지나서, 즉 이십대에서 삼십대 사이에 정점에 이른다는 점만 빼면, 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그때까지 쌓은 소양에 여지없이 고착되고 만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뿐이다. 그렇다면 그걸 통해 여러 인생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폼 잡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의 비극까지도.

(210)

시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마흔은 아무것도 아니야. 쉰 살은 돼야 인생의 절정을 맛보는 거지. 예순은 새로운 마흔이야시간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이 정도다. 객관적인 시간이 있다. 그리고 주관적인 시간도 있다. 가령 손목의 요골동맥 바로 옆에 시계의 앞면이 오도록 차는 경우, 이런 사적인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시간이며, 기억과 맺는 관계 속에서 측정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기묘한 일이 일어났을 때 새로운 기억이 느닷없이 나를 엄습했을 때 는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마치 강물이 역류한 것 같았다.

(242)

인생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은 무엇인가,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 적도, 패배한 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 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고지서 납부를 하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나 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나 구경한 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속 깊이 아파한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이 모든 일이 따져봐야 할 일이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흔치 않은 회한에 시달렸다. 그것은 상처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쳤던 인간이 비로소 느끼게 된 고통, 그리고 바로 그랬기 때문에 느끼게 된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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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스탠은 이야기 시작부터 독자들과 은밀하게비밀을 공유한다. 만화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슈퍼히어로들을 내복 입은 캐릭터들이라고 부프며 그런 캐릭터는 흔해 빠졌다고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새로운 캐릭터는 조금은다르다!:라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길고 긴 설명을 하는 동안 스탠은 이미 독자들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고,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구별되는 스파이더맨의 분위기와 배경이 형성되었다. 그의 익살스러운 말투는 의도적으로 느긋한 분위기를 만들며 이 히어로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강조해주었다.

.

(224-225)

편집자이자 아트 디렉터인 스탠은 신뢰하는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과 일하며 마블의 목소리와 스타일을 이끌었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면, 그는 일부러 그 작가 또는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마블 특유의 작업 방식을 밀어붙였다. 예를 들어, 스탠은 만화책 산업에서 가장 독특한 그림 실력을 가졌다고 인정받는 스타일리스트 조지 투스카의 유려한 작품들을 일찍이 알아보았고, 곧 투스카의 그림을 가장 선호하게 되었다. <데어데블>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진 콜런은 이렇게 말했다. “스탬은 항상 (투스카의)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만화가들도 그렇게 그리기를 바랐습니다.” 스탬은 이러한 관리 방식으로 마블의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반면, 일러스트레이터들로 하여금 그가 원하는 그림 스타일을 알려주어 작업을 빠르게 끝낼 수 있도록 유도했다.

.

(253)

훗날 DC의 대표 제넷 칸은 1950년대 이후의 만화 세계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스탠을 언급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만화 속 캐릭터들은 저도 모르게 그 시대의 특색을 띠게 되고 그런 특색들의 대변인이 됩니다. 그게 바로 사람들이 어떤 캐릭터가 신화의 일부가 될지 그토록 확실히 구분해내는 이유예요. 스탠 리의 캐릭터들은 1960년대를 대표했습니다. 그는 당시 사람들의 반체제적인 감정과 소회감, 자기를 비하하는 모습을 잡아냈지요. … 입 냄새와 여드름, 거친 생각, 어린 나이 등 당시 청년들은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자신들의 아픔을 대신해줄 상징물을 원했고, 스탠은 그걸 캐릭터들 속에 집어넣은 거예요.”

마블의 최대 적수이자 경쟁자가 보내는 나쁘지 않은 찬사였으며, 만화 산업이 극복해야 할 저급문화 인식에 대한 내용이었다.

.

(277)

이 특별한 <스파이더맨>을 출판함으로써 스탠은 코믹스 코드를 현대문제로 끌어왔을 뿐만 아니라 같은 주제의 만화를 작업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돌던 DC 코믹스를 마블이 앞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DC의 편집장 카민 인판티노는 마약에 관한 내용을 다룬 마블을 매도하면서 그런 이야기가 만화책을 읽을 아이들에게 특히 유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283)

그는 직원들이 새로운 일에 아주 열성적으로 도전하도록 만들었어요.” 스탠과 커비 모두와 함께 일했던 작가 마크 에바니어가 말했다. “직원들은 간혹 편집자들을 대할 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만, 스탠에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토머스도 스탠에 이어서 직원들에게 지지를 얻었지만, 한 달에 40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대량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출판 일정은 여전히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었다. “스탠이 편집장으로 있었을 때 발휘하던 힘이 내게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토머스가 회상하며 말했다. “하지만 난 누구에게도 겁먹지 않았어요. 어느 누가 나보다 더 스탠과 가까이 지내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아주 편안했고, 그렇게 불안해했던 적은 거의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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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스탠의 독특한 목소리가 만화계를 장악했다.

그는 대중문화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극성스러운 유명인 문화(유명인들의 이름이 과도하게 거론되고 사생활까지 관심을 받는 현상)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만일 청소년과 대학생 연령대의 독자들이 스탠에게 그들의 리더가 되어주길 원한다면, 그는 기꺼이 그 역할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든든한 왕이 되어야 했다. 마블 만화책 속 문장들을 통해서나 미국 전역의 대학교에서 강연을 하며 형성된 이미지로나, 스탠은 자신의 출판사와 직원들보다 더 큰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그 결과, 스탠 리는 만화 산업을 바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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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 개인적인 확신을 유지하며 글을 쓴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 대화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그는 캐릭터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정말로 내 모습이었다. … 그들 하나하나가 나와 같았다. … (하지만) 특히 스파이더맨의 삶은 내 자서전이나 다름없었다.”

.

(391)

SLM이 실패하고 많은 사람들이 스탠의 경력이 끝나기 일보 직전 같다고 생각했다. 만일 정말 그랬다면, 그는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스탠은 자기만의 슈퍼히어로 체인점을 갖기 위해 창작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기반을 다지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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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스탠을 만나보니, 10대 시절부터 배우가 되기를 꿈꾸었던 열망으로 그의 대중적인 이미지가 성장했으며, 그것이 훗날 유명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스탠은 어릴 적에 주변에서 보아왔던 뉴욕 특유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가면은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도중에 벗겨졌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는 신중했고, 사려 깊었으며, 마치 그 모든 세월 동안 그가 얻은 행운을 믿지 못하겠으며 어째서 수백, 수천 명이나 되는 팬들이 자신을 보려고 줄을 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듯한 모습으로 질문에 대답했다. 스탠의 젊고 긍정적인 가치관은 허풍을 떨며 과장스럽게 보이던 대중적 이미지를 상쇄시켰다. 9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이제 귀도 잘 들리지 않았고 2012년에 삽입한 심박 조율기가 그의 심박 속도를 조절해주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대중들 앞에 나왔고 마블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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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9-05-25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벤져스 엔드 게임 2번이나 봤습니다.ㅎㅎ

bookholic 2019-05-25 20:5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39)

그렇게 보면 추상적인 개념적 도구를 사용해 세상을 체계적으로, 또 정밀하게 설명하려는 의도가 바로 수학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77)

공리라는 단어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의 사실에 대해 증명하지 않고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때, 이를 기초로 다른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다. 공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전개될 내용도 전혀 받아들일 이유가 없으며, 이 공리가 맞다고 상정하면 앞으로 나올 결론들도 맞다고 여길 수 있다.’ 바로 이것이 공리적인 사고체계입니다. 유클리드는 <기하학 원론>이라는 책을 통해 기하학에 대한 5개 공리를 만들고, 그다음에 그 공리만 이용해서 여러 가지 증명을 전개했습니다. 가정과 공리만 사용해서 결론을 이끌어낸 이 책은 당시 서구세계에 굉장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107)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하게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어떤 종류의 해결점을 원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에 필요한 정확한 프레임워크와 개념적 도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9)

수학적인 사고가 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느냐는 질문에 답할 때, 수라는 개념 안에서만 생각한다면 굉장히 제한적인 관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 생각에 건전한 과학적 시각이란 근사(approximation)’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처음부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완벽하게 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기 보다는,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나중에 뒤집어지더라도 현재의 조건 안에서 이해해나가는 것이죠. 애로의 경우도, 뉴턴의 경우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근사해가는 과정, 항상 바꿀 수 있는 것, 그리고 섬세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학문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265-266)

수학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인간이 답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명료한 과정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맨 처음에 했던 질문이 기억나나요? ‘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제 그 질문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겁니다. 여전히 답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학에 대해, 수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에 대해 느끼고 있습니다. 더 탐구하게 되고, 생각게 되겠지요. 무엇보다 수학이 이제 특정한 논리학이나 기호학과 같은 학문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했을 겁니다.

(291)

알파벳 다섯 글자로 만들 수 있는 단어는 과연 몇 개일까요? 아무 제약 조건도 주지 않고 의미를 고려하지 않으면 26^5, 1200만 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면 의미 있는 다섯 글자 영어 단어는 희한한 것들까지 포함해서 약 1 5,000개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알파벳 3개 글자를 효율적으로 써서 26^3=17,576개의 단어를 만들면 될 것을, 5개의 글자로 왜 1 5,000개 단어밖에 만들지 않은 것일까요? 다섯 글자 영어 단어에 들어 있는 정보율은 약 5분의 3입니다. 의미 있는 단어는 1 5,000개밖에 안 되는데, 다섯 글자나 쓰는 낭비를 정보율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단어의 길이를 늘려서 쓰게 된 데는 인간의 언어가 자연적으로 정보 처리 문제를 해결하면서 진화한 것이 중요한 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언어 자체도 방금 이야기한 오류의 관측과 정정이 가능하게 만들어졌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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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사랑이란 느릿느릿 들어와 어느덧 마음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앉아 눈치 없이 아무 때나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힘들고 거추장스러우니 제발 나가 달라고 부탁해도 바보같이 못 알아듣고 꿈쩍도 않습니다.

(58)

영국의 고전학자이자 시인인 A.E. 하우스먼은 시()상처받은 진주조개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분비 작용을 하여 진주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진주를 얻기 위해 극심한 고통을 겪듯, 시인의 고뇌와 아픔 속에서 아름다운 시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예이츠의 경우는 짝사랑이 그를 위대한 시인으로 만드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66-67)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예이츠의 시가 한 편 있는데요, 그 시의 제목은 ‘A Drinking Song’입니다. 우리말로 음주가라고 번역합니다.

-------------------------

음주가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게 될 진실은 그것뿐

술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가며

그대 보고 한숨짓네.

-------------------------

영시 중에 한 편을 외워 오라는 숙제를 학생들에게 내주면 가장 많이 외워 오는 시입니다. 짧아서 부담이 없기도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마음에도 어필하는 시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보며 술 한잔 마시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죽기 전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122-123)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 떠돌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 작자 미상의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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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기분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날 때 너털웃음을 짓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혼자 마음껏 울 장소가 없어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는 매일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가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있나 보다매일 자책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격언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어서 잘 깨지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자식들이 늦게 들어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는 아들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바라면서도 아니,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하고 이중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일해도 부자 아빠가 못되어 큰소리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봄가을을 오고 가지만 아버지 마음은 가을겨울을 오간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한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이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

-----------------------

(126)

진정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너는 아니?”

아버지 에드워드가 묻습니다.

한 남자가 자기 아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위대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148)

사랑하는 일은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요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항상 배려하는 마음,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해도 항상 의식의 언저리에 있는 그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은 대단한 영혼의 에너지를 요한다.

(150)

사랑받는다는 것은 진짜가 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모난 마음은 동그랗게(‘사람이라는 단어의 받침인 날카로운 ㅁ을 ㅇ으로 바꾸면 사랑이 되듯이), 잘 깨지는 마음은 부드럽게, 너무 비싸서 오만한 마음은 겸손하게 누그러뜨릴 때에야 비로소 진짜가 되는 것이다.

(155)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짝사랑이란 삶에 대한 강렬한 참여의 한 형태이다. 충만한 삶에는 뚜렷한 참여 의식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환희뿐만 아니라 고통 역시 수반하게 마련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의 다른 모든 일들처럼 사랑도 연습을 필요로 한다.

(157)

젊은이들이여,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짝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저 푸른 나무 저 높은 하늘을 사랑하고,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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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과학에서 어떤 가설을 모든 의심이 해소되는 수준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태양계가 성간 가스구름의 수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거의 확실해 보인다. 다른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이 가설도도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 더욱이 이 경우에는 증거가 너무나 확실해서 과학자들이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과학 용어로서 이론은 추측이나 가설과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가설이 신중하게 확인되고 제시된 모든 검증 과정을 통과하면 이론이 된다. 나중에 다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이건 그저 이론일 뿐이야라는 말은 과학자들이 정의한 이론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완전히 잘못된 말이다.

(155)

생명이 진화한다는 세 번째 성질은 종들이 주위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한다. 진화적 적응 능력이 없었다면, 생명은 그 오랜 기간 동안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리적 환경은 불가피하게 변화를 겪게 된다. 지구의 기후는 추운 빙하기부터 매우 더운 시기까지 시간에 따라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런 환경 변화에 대한 적절한 적응은 생명이 우리 행성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도록 했다. 추측하건대 생명은 아주 오래 전에 어떤 방법으로든 시작되었을 것이며, 바로 그 시기에 일부 조상 격 미생물이 처음으로 무질서에서 질서를 창조하고 번식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적인 적응이 없었다면 이러한 미생물들은 우리가 오늘날 발견하는 생명으로 결코 변화되지도 번성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171~172)

지구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의 부피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물을 제외하며,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성분은 탄소이다. 지구의 생명을 탄소 기반이라고 한다. 이는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DNA를 포함하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중요 분자들 모두가 수소, 산소, 질소처럼 다양한 다른 원소들이 붙은 필수적인 탄소 원자의 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소들은 우주 도처에 존재하는데, 1장에서 다루었듯이 그것들이 별의 잔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에서 유용한 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원소가 환경으로부터 추출될 수 있는 형태로 이용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탄소의 이용성은 제한적일 것이다.

(225~226)

지난 대량 멸종이 벌어지는 동안, 먹이사슬의 꼭짓점에 있던 우점 동물 종들은 결코 멸종의 위기를 견뎌내지 못했다. 오늘날, 우점 동물 종은 인류이다. 인류의 지능이 주위에 있는 다른 종들이 멸망하는 동안에도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예상을 맹신하지 않는다. 되풀이된 멸종의 역사와 지질학적 역사는 대량 멸종을 자행하는 것이 결코 인간에게 이득이 되지 않음을 말해준다. 인간이 다음 우점 동물 종(아마도 어떤 종류의 곤충이 되지 않을까?)에 의해 교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거의 교훈에 주의를 기울이는 현명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한 우리 생존이 달려 있는 뛰어난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는 보다 훌륭한 일을 시작해야 한다.

(227)

생명이 기본 이상으로 발전하려면 하나의 행성이 필요하다. 이 행성은 생명의 근원이 가능하도록 우호적인 조건을 지녀야 하며, 이 조건은 생명이 다음 수준으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수십억 년의 시간 동안 안정된 상태여야 한다. 태양계에는 지구가 그런 조건을 갖춘 유일한 세계이다. 실제로 우리가 아직 주위 다른 별들에서 지구 같은 행성은 고사하고 지구 크기의 행성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따라서 당분간은 지구가 지능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유일한 행성이다. 그러니 이제는 무엇이 지구를 알려진 세계 중에서 이처럼 특이하게 만들었는지 탐구할 시간이다.

(247)

경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세요,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지구의 기후는 우리가 어떤 피해를 주든 자동적으로 복구될 테니까요.” 너무나 어리석은 소리이다. 수 세기, 수백만 년 그리고 좀 더 오랜 시간 동안에, 다른 요소들이 자연적 온도조절장치를 쉽게 압도할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지구가 그렇게 많은 빙하기와 온난기를 통해 고통을 겪었다. 만약 인류가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을 파괴할 정도로 지구라는 행성을 망치기로 작정했다면, 자연은 결코 우리를 구하기 위해 나서지 않을 것이다.

(397)

사실 우리가 계속 성정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우리는 계속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새로운 기술을 발달시키지만, 그런 기술들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기분이 우울할 때에는 우리가 우리의 잠재력을 너무 몰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수백 년 뒤의 고고학자가 우리 문영의 흔적을 발굴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궁금해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더 심하게는 우리가 우리 행성에 너무나도 심각한 손상을 입혀 인류가 공룡들처럼 멸종을 하고 새로운 지적 생명체가 나타날 때까지 수백만 년이 필요해지지 않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예술이나 음악, , 문학, 스포츠, 과학, 인류가 만들어낸 훌륭한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이 모든 것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슬픔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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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는 이 해답들 모두 단 세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1. 우리는 혼자다. 문명은 너무나 드물기 때문에 우리은하에는 다른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은하에서 처음으로 생긴 문명이고, 어쩌면 전 우주에서 처음일 수도 있다.

2. 문명은 흔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아무도 은하를 정복하지는 못했다. 첫 번째 해답이 옳지 않다면 다시 문명이 흔하게 존재한다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 고려했던 가능성에 따르면 우리은하에는 우리보다 앞선 수천 개 또는 수만 개의 문명이 존재해야 한다. 두 번째 해답은  실제로 많은 문명이 있지만 아직 항성 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문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 다른 문명은 존재한다. 하지만 너무나 멀리 있어서 발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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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5-07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어느 인터넷 신문에서 MCU의 미래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아서 클라크라는 분이
발달된 과학 기술은 마법과 다르지 않다고
했던가요...

우주에도 누군가 마법 같은 과학 기술문명
을 가진 외계인들이 존재할 것 같습니다.

bookholic 2019-05-08 00:3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칼 세이건이 말한 것처럼 이 광대한 우주 속에 만약 우리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이고 말이죠.. .